‘장진우식당’은 생각할수록 묘한 공간이다. 하나뿐인 테이블에 메뉴는 매일 바뀐다. 아무리 소문난 맛집이라도 ‘합석’은 불편하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이곳에서는 기꺼이 곁을 내준다. 항상 같은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게 아니지만 불평하는 사람은 없다. ‘장진우식당’은 단순히 맛과 음식을 파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곳에는 예측 불허의 순간이 안겨주는 설렘이 있다. 오늘의 메뉴에 담긴 주인 장진우의 이야기는 무엇일까, 나와 함께 음식을 나눌 사람들은 누구일까… ‘장진우식당’은 예기치 못한 만남을 준비해 놓고 손님을 기다린다.
그래서 사람들은 ‘장진우식당’으로 간다. 이태원의 한적한 골목길, 주차도 쉽지 않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도 까다롭지만 굳이 시간을 내어 찾아간다. 그 정성스러운 걸음이 더해져 경리단길은 떠오르는 핫플레이스가 됐다. 골목을 따라 자리 잡은 장진우의 가게들도 늘어갔다. ‘장진우식당’을 시작으로 ‘그랑블루’, ‘마틸다’, ‘문오리’ 등의 음식점들이 생겨났고, 빵집 ‘프랭크’, 카페와 바로 이루어진 ‘칼로 앤 디에고’, 실내포차 ‘방범포차’까지 문을 열었다. 경리단길은 ‘장진우거리’라는 애칭을 갖게 됐다.
‘장진우’라는 세 글자는 경리단길의 동의어이자 성공의 대명사가 된 듯했다. 많은 이들이 그의 성공 비결을 궁금해 했고, 일부 사람들은 그가 타고난 금수저쯤 될 거라 넘겨짚었다. 그러나 모든 것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장진우 안에 쌓인 수많은 이야기들에 비하면 배경이니 결과니 하는 것들은 그저 작은 조각일 뿐이다. 『장진우식당』을 들여다보면 그 사실이 더욱 명징해진다.
“이 책은 정말 솔직한 일기 같은 거예요. 그냥 식당을 하는 어떤 30대 남자의 일기 같은 거죠” 그의 말은 옳았다. 『장진우식당』에는 거짓 없는 고백이 담겨있었다. 친구들과 음식을 나누던 서재가 ‘장진우식당’으로 변모하게 된 과정과 그 안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 그들 사이에 머물렀던 이야기, 음식에 대한 단상들, 가게마다 숨어있는 사연들, 개인적인 취향에 이르기까지 장진우를 이루는 순간들과 생각들이 촘촘히 박혀 있었다.
경리단길이 뜨면서 욕을 좀 먹었죠
오랫동안 이 동네에서 거주하셨다고 들었어요. 경리단길이 핫플레이스가 되기 전부터요. 예전에는 평범한 골목길이었는데, 이제는 많이 달라졌죠?
그래서 욕을 조금 많이 먹었던 거죠.
주민 분들께서 싫어하셨던 건가요?
주민들은 욕을 안 해요. 다들 저랑 오래 살았는데 면전에 대고 욕할 게 뭐가 있겠어요. 같이 오랫동안 살았는데. 대개 실질적으로 여기 살지도 않으시는 분들이 그렇게 말씀하세요.
이 거리가 번잡해지는 걸 싫어하시는 분들이 계신 걸까요?
그냥 번잡해지는 게 싫은 사람들도 당연히 있겠죠. 그런데 모든 게 과도기를 겪고 나서 더 좋아지잖아요. 제가 봤을 때 지금은 거리가 되게 조용해요. 그렇게 시끄럽거나 번잡하지 않아요. 처음에 시작했을 때는 조금 시끄러웠죠. 원래 10명이 다니던 거리에 100명이 왔으니까요. 그때 조금 많은 불만을 들었는데, 꾸준하게 지역 발전을 위해서 노력하고 어르신들이랑 소통하려고 하다 보니까 지금은 완전 좋아하시죠. 그들이 ‘장진우 거리’라고 불러요. 제가 그러는 게 아니고요. 오히려 그 분들은 제가 장진우인지 모르세요. 어제도 부동산에 갔는데 ‘혹시 장진우 거리에 나온 집도 괜찮으세요?’ 하고 물으시더라고요.
이사 준비 중이세요?
이사를 하려고 해요. 계약이 끝나가지고요.
이렇게 많은 가게를 운영하시는데, 아직도 반지하에 사신다고 들었습니다.
반지하에 너무 오래 살았어요.
이제 지상으로 올라오시려고요?(웃음)
그게 아니고 직원들이 그 집을 물려 달라고 해서요.
집터가 좋다고 생각하나 봐요(웃음).
그 집이 좋아요, 그냥. 남산 밑이어서 공기도 좋고, 일단 싸요. (직원들이) 사장님은 자기보다 돈이 많으니까 조금 더 좋은 데 가는 데 경제적으로도 맞다고, 자기들한테 이렇게 좋은 터를 줘야 된다고 하더라고요. 그것도 맞는 이야기인 것 같아서 이사를 준비하고 있어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작가님이 돈을 엄청 많이 벌었을 거라고, 그래서 삶이 많이 달라졌을 거라고 생각할 텐데요.
빚이 늘었죠, 빚이.
사업 확장 때문인가요?
사업을 확장한 것도 있고, 직원도 많고, 직원들한테 줘야 될 돈도 많죠. 나라에 내야 될 세금도 더 많아졌고요. 그런데 경기는 계속 안 좋아지고… 그렇죠.
사람들이 장진우에 대해서 오해하고 있는 것도 있겠죠?
오해하는 것도 있고 욕하는 사람도 많고 그렇죠. 매체에 나와서 욕을 안 먹는다는 게 쉽나요. 아마 아무도 없을 거예요. 포털 사이트 기사 같은 걸 봐도, 몇 억을 기부했다고 해도 그 아래 달린 리플들이 가관이죠. 저에 대한 오해는… 모르겠어요. 저는 너무 많이 나온 것 같아요. ‘계속 나오니까 싫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많이 하죠. 꽤 오래 나왔잖아요.
요리를 정식으로 배우신 적이 없는데 어떻게 요식업으로 성공하실 수 있었나요?
그건 뭐, 백종원 아저씨도 요리를 정식으로 전공하지는 않으셨잖아요.
경리단길이 지금처럼 인기를 끌게 된 원인으로 항상 ‘장진우 거리’가 손꼽히잖아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이야기 중에 하나인 게, 제가 가게를 시작했을 때는 여기에 뭐가 없었어요. 아무것도 없었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그리고 초창기에는 가게를 오픈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거의 다 우리 식당에 모여서 저녁을 먹었어요. 가게를 보고 공사를 하면서 다 친하게 지내고 그랬어요. 그런 점에서 일조는 했지만 저 때문에 이렇게 됐다는 건 모르겠어요.
손님들에게 주고 싶었던 건 ‘조금은 다른 경험’
『장진우식당』을 보면, 직원을 뽑는 기준이 남다르신 것 같아요.
그냥 아무나 다 뽑아요. 저희는 누구를 뽑는 기준이 없어요. 무조건 3개월 동안 수습을 해내면 그때 정직원으로 계약을 해요. 옛날에는 진짜 이상한 애들이 많이 있었어요. 처음에 가게를 시작할 때는 (직원들이) 제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또 이 골목에 와서 누가 일하려고 했겠어요. 가로수길이나 압구정 같은 좋은 곳에서 유명 셰프 밑에서 일하려고 했죠. 그러니까 그때는 자연스럽게 ‘왜 왔냐’ 이러니까 ‘열두 번 면접을 봤는데 다 떨어져가지고 왔다’ 이런 이야기가 많았어요. 대기업 다니다가 오는 사람도 있고, 되게 다양한 사람들이 있는데요. 어떻게 보면 바보죠. 대기업 그만두고 오면 바보인 거예요. 그리고 면접에 열두 번이나 떨어졌는데 아직도 꿈을 잃지 않는다는 것도 바보인 거예요. 제가 생각하는 바보라는 건 그런 거예요. 멍청이들이 온다는 건 절대 아니고요.
“가장 불안하고 겁먹은 사람 위주로 뽑는다”고 쓰셨어요.
그렇죠. 지금은 그렇지 않은데 옛날에는 조금 그랬어요. 너무 당당하고 너무 멋진 사람들은 안 뽑았어요.
직원들의 처우에도 신경을 많이 쓰시는 것으로 유명하시잖아요.
그러니까 지금 100명이 넘는 직원이 있겠죠. 그런데 제가 직원들에게 잘 해주지 못한다고 오해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런 이야기가 어디에서 나오는 건지 모르겠지만, 회사가 크는 건 직원이 많아지니까 가능한 거거든요. 굉장히 간단한 경제관념이잖아요. 회사가 커지고 가게가 많아진다는 건 그만큼 뽑아도 사람이 오니까 가능한 건데, 그걸 잘 모르는 분들이 계시더라고요. 대우가 안 좋으면 왜 여기에 와서 일하겠어요. 저희는 요식업계 최초로 주5일 근무를 시작했어요. 제가 처음에 가게를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일주일에 5일 동안 근무하는 데가 없었어요. 하루 8시간 근무하는 데도 없었고요. 그래서 낮에는 영업을 안 했어요. 돈이 없으니까 두 명을 쓸 수가 없었거든요. 그런 식으로 노동법이 정한 것대로 4대 보험 다 들어주고, 수습 기간 때도 4대 보험을 다 들어주는 이상한 회사였죠. 그런데 사람들이 오해하는 부분이 많아서 화가 나기도 하지만 그냥 ‘그런 사람도 있구나’ 하고 생각해요.
이른바 ‘장진우 사단’이라고 불리는 직원들이 곁을 지키고 있는 건, 근무 조건 때문만은 아니겠죠. “욕을 먹더라도 사장이 욕먹고 사장이 책임져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고 하셨는데, 그게 진짜 이유가 아닐까요?
다른 곳이랑 다른 게, 모든 고객들한테 장진우라는 사람이 너무 가까이 있어요. 그러니까 저한테 욕해도 되고 화나면 집어 던져도 되고, 그런 게 맞다고 생각해요. 직원들한테 하는 것보다. 보통 유명한 레스토랑에 가면 누가 사장인지 모르잖아요. 저는 그게 약간 싫었어요. 매니저 불러서 욕이나 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알바생들한테 화를 내고. 이럴 바에는 차라리 내가 조금 가까이 있으니까, 장진우한테는 안 좋은 점도 말을 많이 할 수 있으니까 낫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이만큼 올 수 있지 않았나 싶고요. 칭찬만 받다 보면 사람이 도태되잖아요. 그런데 매일 욕하는 사람들도 있고, 그만큼 저를 좋아해주고 응원해주고 사랑해주는 분들이 더 많기는 하지만, 진짜 마음에 상처 주는 말을 하는 사람도 되게 많아요. 아무것도 모르면서. 알면서 하는 말이고 그게 정말 진실이면 ‘아, 고쳐나가야겠다’라고 하는데, 한 번도 안 와보고 잘 모르면서 그렇게 하는 사람들이 되게 많죠. (저를 보고) ‘집이 부자였나 보다, 든든한 빽이 누가 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기도 하고요. 그래서 한국이라는 곳이 작은 아이한테 모든 책임을 묻고 싶어 하는 곳이구나, 라는 걸 많이 느끼죠.
이제 장진우라는 이름은 성공이라는 단어와 함께 쓰일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저는 돈이 없었어요. 집안이 좋지가 않아요. 학연, 지연, 이런 게 하나도 없어요. 서울 사람도 아니고 학교도 중퇴했고, 답이 없는 사람이죠. 그런데 제가 이렇게 되니까 답이 있는 사람들이 너무 싫은 거예요. 자기는 돈도 있고 뭐도 있으면서 왜 내가 더 성공했다고 하는 거예요? 최소한 제 목표는 직원들이 잘 돼서 좋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거였어요. 그런 마인드로 살았어요. 제가 반지하 집에 살아도 차라리 그걸 오픈하고, 내가 얼마 버는 지도 오픈하고, 직원들한테 돈이 없을 때는 미안하게 생각도 하고, 이렇게 해야 되잖아요. 이제는 직원들이 독립을 해서 다 성공을 했는데, 그래서 제가 성공한 사람인 것 같다고 인터뷰를 한 적이 있어요. 제 밑에서 일하다 나가서 가게를 냈는데 다 잘되잖아요. 그건 진짜 성공한 거죠. 그 친구들이 매일 찾아와서 같이 밥을 먹고, 서로 응원하고, 장난을 치고… 그러면 나름 성공하지 않았나 생각하죠.
장진우의 가게를 찾는 손님들에게 주고자 했던 건 무엇이었나요?
‘조금 불편하고, 찾아가야 되고, 주차도 어렵고, 그런데 그렇게 나쁘지 않다’ 이 정도 느낌만 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어요. 왜냐하면 처음에는 손님들이 여기까지 찾아오는 게 되게 민망했어요. 미안했어요. 그런데 사람들한테 ‘오늘은 조금만 다르고 싶다’는 감정이 굉장히 많더라고요. 왜냐하면 대한민국 사람들은 너무 똑같이 살거든요. 매일 똑같은 회사에 갔다가, 똑같은 동료에, 똑같은 밥집에, 똑같은 옷에, 똑같은 동네에. 그러다가 어느 날 하루는 조금 불편하고 어려워도 일상에서 여행하듯이 탈출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매일 오는 레스토랑보다 여기에 와서 경리단길의 투어를 한다든지 여행을 한다든지, 이런 감정이 얼마나 소중한 거예요? 그 감정을 조금 더 느끼게 하면 좋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래서 제가 가게를 크게 안 내는 거예요. 다 작잖아요. 콩알만 한 가게에서 성공해봤자 얼마나 성공하겠어요. 벌어봤자 얼마나 벌겠어요. 그런데도 큰 가게를 열지 않는 건 그런 이유 때문이에요.
장진우의 취향 때문에 가게를 찾아오는 손님들도 있겠죠.
그걸 알아봐주는 사람이 많으면 좋겠지만 솔직히 많지 않아요. 그냥 음악이 흐르나 보다, 조명이 달려있나 보다, 하는 거죠. 그런데 굳이 가치를 알아봐 주지 않아도 그런 게 좋은 거예요. ‘내가 제일 아끼는 걸로 손님을 맞이해야겠다’는 마인드인 거죠. 비싼 접시를 내놓으면서 ‘식당에서 쓰다가 깨지면 어떡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깨지면 열심히 벌어서 다시 사면 되지’ 하고 생각했어요. 내가 가진 것 중에서 제일 좋은 걸 갖다 놔야 된다는 생각이었죠. 그런데 그걸 알아 봐주는 사람이 있으면 혼자서 되게 신나 하죠. 그 사람하고 친구가 되고요. 그래서 ‘장진우 사단’이 생긴 거예요. 그런 사람들과 동업을 하는 식이 됐고요. ‘와, 이거 멋지다’라고 했을 때 ‘어떻게 아셨어요?’라고 하다 보니까 빨리 빨리 발전할 수 있었죠. 처음에는 취향을 공유하는 사람들과 사업도 공유를 했어요.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요.
새로운 가게를 여는 이유는 ‘결핍’
『장진우식당』을 읽다 보면 성공한 사업가치고 셈에 밝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셈에 하나도 안 밝죠. 셈이라는 건 저한테 별로 중요한 가치가 아니에요. 돈 많이 벌어서 뭐하겠어요.
그렇다면 가장 중요한 가치는 무엇인가요?
그냥 ‘we are the world’, 다들 즐겁고 행복하고 재미있었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산다는 것 자체가 이렇게 판타스틱하다는 걸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고요. 내가 살아있기 때문에 오늘 이 맛있는 음식도 먹었구나, 하고 생각하는 것도 마찬가지죠.
계속해서 새로운 사업 분야에 뛰어드시는 이유가 있나요?
‘이게 부족하니까 해야 되겠다’는 생각 때문이에요. 결핍이죠. ‘이게 없으니까 너무 불편해’ 이런 거예요. 빵집이 없으니까 빵을 사러 매일 다니는 게 너무 스트레스 받아서 ‘그러면 빵집을 만들어야겠다’ 생각해서 빵집을 만든 거고요. 빵집이 있는데 커피가 없으니까 스트레스 받아서 ‘커피숍을 만들어야겠네’ 해서 커피숍을 만들었어요. 매일 파스타를 먹으니까 너무 지겨워서 소줏집을 만든 거고요. 제주도에 제가 좋아하는 음식점이 있는데 매일 갈 수 없으니까 ‘그냥 제주도 음식점을 하나 만들자’ 했던 거예요. 없으니까 만들어 나간 것 같아요.
식당을 통해서 많은 분들과 인연을 맺으셨습니다. 배우 공유 씨도 그 중 하나고요.
공유 형은 제가 되게 좋아하는 사람이에요. 멋있어요, 사람이.
『장진우식당』에서 함께 여행을 다녀온 이야기도 들려주셨는데요. 굉장히 각별한 사이이신가 봐요.
우연히 같이 가게 된 거예요. 저랑 각별해서 간 건 아니고요.
두 분은 마이큐(싱어송라이터) 씨를 통해서 만나게 되신 거죠?
네. 여행도 셋이 같이 가게 된 건데, 마이큐 생일날 계획하게 됐어요. 그 날 지철이 형(공유)이 마이큐 생일인지 몰랐어요. 그래서 제가 전화해서 ‘지철이 형, 오늘 마이큐 형 생일이래’ 그래가지고 모였어요. 모여서 밥을 먹다가 마이큐 생일 선물로 독일 행 비행기표를 사서 줬는데, 지철이 형이 ‘그럼 나도 갈래, 이번 촬영 끝나고 바로 갈게’ 그래서 가게 된 거예요.
<장진우식당>에서의 만남을 계기로 배우 공효진 씨는 마이큐 씨 앨범에 피처링을 해주셨더라고요.
맞아요. 저희 식당에 오셨는데, 마이큐도 그 날 처음 공효진 씨를 만났어요. 그래서 서로 팬이었다고 이야기하고 피처링 참여해달라고 해서 참여해주셨고, 제가 그 앨범의 사진을 찍었어요. 그때도 공유 형이 있었어요. 네 명이 같이 모여 있었죠.
배우 박상원 씨는 “모든 취향을 만들어 준 선생님”이라고 하셨어요.
맞아요. 아빠 같은 사람이에요. 서울의 아빠. 그런데 약간 날라리 아빠 같은 스타일이라고 해야 하나(웃음).
어떤 부분에서 영향을 받으셨어요?
멋있어요. 선생님은 사진도 잘 찍으시고, 그림도 잘 그리시고, 글도 잘 쓰세요. 사람들한테 베푸는 것도 좋아하시고요. 봉사활동도 많이 하시잖아요. 학생들 교육하는 것에도 굉장히 열의가 있으시고요.
창업학교 프로젝트는 사회 공헌의 일환으로 하고 계신 건가요?
사회 공헌의 일환이기도 하고, 저도 같이 발전하더라고요. 가르치면서 조금 더 제 자신을 돌아보기도 하고요. 100% 사회 공헌이 처음의 목표였지만 하다 보니까 제가 더 도움을 받는 것 같은 느낌도 들더라고요. 잘 돼서 좋아요.
“장진우 회사의 가장 큰 목적은 사회 공헌, 사회 환원”이라고 하셨습니다.
살다 보면 모든 것에 항상 가치가 있잖아요. 예전에는 ‘돈이 많은 사람들이 행복할까?’라고 생각해서 돈을 많이 벌어봤어요. 엄청 많이. 그런데 별로 안 행복하더라고요. 그래서 ‘뭔가 구조를 짜는 게 행복할까?’ 했는데 그것도 별로 재미있지는 않았어요. 제일 재미있는 건 뭔가를 해서 좋은 영향을 받는 일인 것 같아요. 되게 유기적인 거죠. 뭔가 하나를 만들었는데 이걸로 끝나는 게 아니고 고용 창출도 되고 지역 발전도 되면서 수익도 높아지는 거예요. 제가 원하는 건 무조건 사회 봉사가 아니에요. 사회 산업이에요. ‘소외된 사람들과 함께 어떻게 돈을 많이 벌 수 있을까’ 이 생각인 거죠.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 하다 보니까 일단 즐겁잖아요. 더 큰 명분이 생겨서 더 열심히 할 수 있죠. 똑같은 국밥을 팔아도 ‘이 국밥이 뭔가 나에게 돈을 가져다 줄 거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열심히 파는 거랑 ‘사람들이 지치고 힘든 몸을 녹일 수 있고, 저렴하게 한 끼를 때울 수 있고, 먹고 더 힘을 내서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국밥을 만들겠다’라고 하는 거랑 굉장히 다르다는 거예요. 그런 사장의 마인드가 중요하잖아요. 제가 원하는 삶은 소외되고 낮고 힘들고 멍청하고 이런 곳에서 열심히 일하다가, 나의 신념이 다하면 그때 말없이 떠나는 거예요. 그게 제일 제가 하고 싶은 일이죠.
사람과 사람 사이를 닮은 음식, 라자냐
넓은 인맥의 비결이 무엇인가요? 책에 쓰셨듯이 “누구와도 대화를 할 수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을까요?
제가 원래 운동을 했었고 국악을 전공한 음악인으로, 그리고 포토그래퍼로도 살았잖아요. 지금은 셰프이기도 하고요. 일단 남들보다 경험한 일이 네 개가 더 있는 거니까, 그래서 조금 더 넓게 이야기할 수가 있겠죠.
『장진우식당』을 이야기하면서 음식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겠죠. 그 중에서도 라자냐는 “식감, 온도, 본질이 사람과 사람 사이를 닮은 음식”이라고 하셨어요.
‘라자냐’라고 말만 해도 조금 짠한 느낌이 있어요. 라자냐가 원래 한 번 식혔다가 먹어야 더 맛있거든요. 그게 사람 관계 같더라고요. 사람도 처음에는 되게 뜨거운데 점차 식어 가잖아요. 뜨거운 건 무조건 식을 수밖에 없죠. 계속 끓여주지 않으면. 그런데 라자냐는 한 번 식고 나서 다시 데워 먹었을 때 완벽한 형태와 맛이 있어요. 그리고 사람 관계는 같이 나눴던 시간, 추억, 말들을 잘 쌓아 올려도 식을 때가 있더라고요. 그런데 라자냐는 겹겹이 쌓아 올린 재료가 식어도 다시 뜨겁게 해서 먹었을 때 오목한 맛이 나는 것 같아요. 둥근 맛이 나는 거죠. 그래서 제가 라자냐를 되게 좋아해요. 옛날에 ‘장진우식당’에서도 라자냐를 많이 팔아서 이만큼 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정말 정성들여서 많이 만들었어요.
식당에서 만난 손님들과 밤늦게까지 음식과 술을 즐기실 때도 있잖아요. 정말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기분이 너무 좋을 때가 아닐까 싶은데요. 그런 순간에는 어떤 요리를 해주세요?
짜파게티를 만들어 먹죠. 술을 많이 먹으면 배가 고프니까요. 일단 그 전에는 맛있는 음식을 먹는데요. 계속 그렇게 맛있는 음식을 만들 수 없고 저도 술을 마셨으니까 대단한 요리를 할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짜파게티를 만들어서 먹을 때가 많아요. 제가 만든 짜파게티가 정말 맛있어요.
『장진우식당』에서 실제 레스토랑의 레시피도 공개하셨습니다. 특별히 추천하고 싶은 메뉴가 있으세요?
책에서 레시피를 공개한 것들이 다 맛있는 메뉴들이에요. 그래서 다 맛있을 것 같은데요. 일단 제일 쉬워 보이는 음식부터 만드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제일 중요한 건 어떤 요리를 만드느냐 보다 어떤 사람을 생각하면서 만드느냐 하는 거예요. 제 경우에도 정말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서 만들었던 요리가 지금까지 온 거예요. 그 요리들이 ‘장진우식당’을 만들었고요. ‘장진우식당’은 정말 좋아했던 친구들이 놀러 오는 곳이었고 정말 사랑했던 여자가 오는 곳이었거든요. 그러니까 너무 기대됐던 거죠. 그런 친구를 생각하면서 ‘맛있게 만들어줘야 될 텐데’라는 마음으로 만들면 웬만하면 다 맛있어질 거예요. 그리고 요즘에는 레시피가 너무 잘 정리되어 있잖아요. 책도 많고 인터넷 방송도 많이 하니까 어렵게 생각하지 마시고 ‘내가 진짜 좋아하는 사람한테 이걸 만들어주고 싶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요리하시면 제일 좋을 것 같아요.
‘장진우식당’은 원래 서재였잖아요. 책을 굉장히 좋아하시는 것 같은데, 주로 어떤 책을 고르시나요?
일단 자기 지침서 같은 건 안 보고요. 시를 되게 좋아하는 데 시는 너무 어렵고, 소설을 좋아하는데 시간을 내기가 약간 힘든 부분이 있어요. 제일 많이 읽는 건 에세이나 소설인 것 같아요. 여행책도 잘 안 보는 스타일이이에요. 여행 가기 전에 먼저 책을 읽기보다 ‘내가 가서 보면 되지 뭐’ 하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에세이를 좋아하는데 ‘이 사람 진짜 재미있는 생각을 가지고 사는구나’ 싶은 책들이 좋아요.
『장진우식당』에서 좋아하는 시인들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주셨어요. 그 중에서도 가장 사랑하는 시인이 있다면 누구인가요?
겨울이면 피천득 아저씨의 시가 좋고 배가 고프면 백석 아저씨가 생각나요. 백석 시인의 시에는 음식이 굉장히 많이 나오거든요. 함경도 음식이요. 그건 저희가 안 먹어봤으니까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그리고 뭔가 힘들고 일이 잘 안 될 때는 도종환 시인이 생각나죠. 그 분의 시가 대부분 힘내라는 이야기잖아요. 가지 않을 수 없는 길은 없었다, 어떤 길은 피해갔어야 했다, 그런 글들이요.
유행에 뒤처질 거란 고민은 하지 않아요
성공과 관련해서 독특한 시각도 보여주셨어요. “집어치워야 할 것은 선택과 집중”이라고 하셨죠. “잘하는 걸로 돈 벌고 좋아하는 걸로 즐기는 걸 다 해야 성공”이라고요.
선택과 집중을 해야 성공한다는 건 옛날 말인 것 같아요. 제가 가장 잘하는 일은 사진을 찍는 거예요. 그런데 사진 찍는 것보다 요리하는 게 더 행복하기 때문에 요리를 했어요. 그래서 더 잘 된 거예요. 사진을 찍을 때는 정말 잘 찍는다는 소리만 들었어요. 클라이언트도 많았고요. 그런데 안 행복했어요. 저는 활동적인 사람인데 매일 스튜디오에만 있으니까 너무 싫었어요. 그래서 더 이상 이걸 하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고, 지금도 사진을 계속 찍고 있지만 취미로 찍고 있어요. 정말 좋아하는 요리도 하면서요. 그때는 사진을 잘 찍고 요리를 못 했던 사람이었는데, 좋아하면 잘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선택과 집중만 강조하는 건 별로인 것 같아요. 일단 여러 가지를 해보는 게 좋아하는 것 같은데, 더 중요한 건 안정성이에요. 저도 처음에는 식당을 하면서 사진도 찍었어요. ‘식당을 할 거야, 사진은 그만두자’가 아니었어요. 매일 사진을 찍으러 가고 저녁에는 요리를 했어요. 먹고는 살아야 되잖아요.
성공하는 식당의 비결은 무엇일까요?
주인이 앞장 서 있으면 다 성공해요. 국밥집 같은 경우도 주인 아줌마가 직접 하고 주인 아저씨가 계산대에 앉아있는 데는 무조건 성공해요. 그런데 대부분은 가게가 조금 잘 되면 매일 골프만 치러 다니고 사람들이 많아요. 그런 가게는 금방 망해요. 프랜차이즈 가게가 왜 잘 안 되냐 하면, 가게에 가면 주인이 없어요. 가맹점주가 있어야 되는데 없어요. 다 직원이 하고 있어요. 주인이 가게에 있으면서 손님들과 소통할 줄 알고 열심히 하면 다 잘 될 수 있다는 게 제 생각이에요. 주인이 제일 머슴 같이 일을 해야 돼요. 저는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어요. 직원들보다 주인이 무조건 더 많이 일을 해야 돼요. 그러면 성공할 수 있어요. 망하지 않을 수 있는 거죠.
운영하시는 가게들이 성공을 거둠으로써 새롭게 생긴 고민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일단 제 삶 자체가 너무 많이 노출이 돼 있으니까요. 사람들의 잣대라고 할까요, 그런 게 너무 날카로울 때가 있죠. 저는 약간 엉망진창인 인간인데 자꾸 정직하게 살라고 하고 정의롭게 살라고 하죠. 제가 신도 아닌데 말이에요. 그런 게 약간 스트레스이긴 하죠. 그리고 가게가 너무 많아지니까 그만 두고 떠날 수가 없어요. 직원들이 실직자가 되잖아요. 그것도 약간 잘못한 일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어요. 떠날 수 있을 때 쉽게 못 떠나니까요. 원래 여행을 엄청 좋아하는 사람인데 요즘은 짧게 짧게 떠날 수밖에 없어요. 이제는 결정해야 될 일들도 많고 그 규모도 커졌어요. 한 번의 결정으로 옛날에는 10만 원이 날아갔다면 이제는 1000만원 날아갈 수도 있는 거죠. 그런 점에서 ‘규모라는 게 참 무섭구나’ 그런 생각을 하죠.
요즘에는 음식점도 유행의 하나로 소비되잖아요. 그렇게 가볍게 소비되는 것에 대해서 걱정하지는 않으세요?
그런 건 없어요. 저희 식당 중에 유행에 맞는 레스토랑이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상관이 없어요. 파스타는 전 세계적으로 몇 백 년 된 음식이고 전골은 한국 사람들이 죽을 때까지 먹어야 되는 거잖아요. 그게 어떻게 유행이에요. 저희는 아이템이 핫한 데가 없어요. 그냥 이걸 좋아하는 사람들이 여기 오는 거죠. 그게 그들의 삶이 될 수 있게 노력을 하는 거고요.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칼로‘에서 위스키 한 잔 정도 먹으면서 좋은 음악 들으면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점점 생겨나고 있어요. 그리고 저희 식당은 이제 단골손님 체제로 바뀌고 있어요. 늘 보던 사람들이 거의 매일 있어요. 그리고 그들이 데리고 온 친구들이 있고요. 그래서 정말 좋죠. 트렌드에 도태되거나 트렌드 때문에 힘들거나 하지는 않을 것 같아요.
장진우식당장진우 저 | 8.0(에이트 포인트)
그 식당은 테이블이 하나다. 의자는 여덟 개. 그날의 공기와 내음, 햇살에 따라 매일 달라지는 메뉴. 어디에도 없고 누구와도 같지 않은 작은 식당은 2011년 이태원 경리단길 주택가 골목에 불을 밝혔다. 책 『장진우식당』은 한 사람의 인생과 우리들의 문화를 바꾼 한 식당의 기록이자, 기억하고 싶은 모든 설렘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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