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이야기가 연일 뜨겁다. 말은 무성하고, 당장이라도 다른 세상이 올 것처럼 갖가지 추측이 넘친다. 그나저나 ‘내일의 경제’를 이야기한 자리에서 왜 인공지능 이야기를 꺼냈나? 다름 아닌 ‘세대의 경험’을 짚어보고 싶기 때문이다. 장년층의 안경을 끼고 세상을 보자. 전쟁과 가난부터 민주화, 가파른 경제 성장에서 디지털 세상까지, 한 명의 삶 안에 벌어진 일들이 참 놀랍다. 청년층의 안경을 끼면? 국가 부도와 구직난, 정보의 평준화와 인공지능 세상까지, 역시 다채롭다. 그러니 앞으로 얼마나 더 사회가 변화할지 짐작하기조차 힘이 든다. 그런데 가치, 패러다임은 좀처럼 바뀌고 있는 것 같지 않다. 1990년대,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20년도 더 된 시기의 가치가 여전히 힘을 발휘한다. 그것은 바로 경제, 경제, 또 경제다. 이원재 희망제작소 소장은 반복해서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내일은 암울하지 않다,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낫다”는 것.
“삶의 방식은 생각을 조금 바꾸면 훨씬 재미있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해요. 재미있는 일과 돈 버는 것과 주변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것, 이런 것들을 은퇴 후가 아니라 지금부터 균형 있게 가지고 가겠다고 생각하면 다른 삶은 가능하죠. 많이들 그렇게 살게 될 것 같지 않으세요?”
무엇보다 강조하는 것은 미래 세대가 리더십을 갖고 사회를 이끌어야 한다는 점이다. 기존의 패러다임으로는 계속 이대로 하향하는 수밖에 없다. 연대와 협력의 가치, 지속 가능한 사회, ‘아들의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대전환의 기로에 선 한국 사회는 어디로 갈 것인가. 이 인터뷰가 힌트가 되길 바란다.
그렇게 암울하진 않다
2010년대 중반, 청년들은 패자의 줄에 서있다고 진단했습니다. 빨간 화살표가 아래를 가리키는 ‘아들의 나라’와 파란 화살표가 위를 가리키는 ‘아버지의 나라’, 표지도 눈에 띄고요. 다소 서늘하기까지 해요.
지금 젊은 게 문제죠.(웃음) 20년 전에 젊었으면 계속 성장하는 사회에 살았으니까요. 그런 사회기 때문에 갖는 이점이 굉장히 많은 거죠. 그 이점은 전통적인 경제학의 시각으로 다 설명 가능한 이점들이고요. 지금은 전통적인 경제학 관점에서 보면 굉장히 암울한 시기죠. 그걸 표현하고자 한 거예요. 하지만 계속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그렇게 암울하진 않다는 거예요. 암울하지 않을 수도 있는데 암울한 것처럼 여기기 때문에 더 재앙적인 결과가 올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암울하지 않도록 사회를 이끄는, 정책을 결정하는 사람들부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시민들까지 생각하는 방식을 바꿔야 한다, 라고 이야기하는 거죠.
그것은 전형적인, 우리가 과거에 많이 따르던 재테크와 자기계발로 대변되는 각자도생의 전략과는 다른 전략이에요. 다른 전략을 선택해야 한다고 강조하기 위해서 이야기한 거예요. 지금과 같은 전략으로 가면 우리는 앞으로 내려가는 사회에 살게 되는 거죠. 사회는 늙고, 고령화는 점점 진행되고, 경제 성장은 과거처럼 빠르게 진행되지 않고, 소득이 높아지는 속도도 빠르지 않고, 자산 가격 즉 우리가 갖고 있는 재산의 시장 가치는 높아지지 않고, 이렇게 되는 거니까요.
청년 문제, 사회가 나아갈 방향 등에 대한 담론이 많죠. 다른 전략이라 했는데 확실히 사회가 기로에 서있다고도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한편 담론을 떠나 지금의 현실을 본다면 그렇게 희망하기가 쉽지 않죠.
저는 세대론을 이야기하고 있는 셈인데요. 베이비붐 이후 세대, 1955년에서 1963년생 이후 세대가 그전 세대보다는 훨씬 가능성이 있는 세대죠. 베이비붐 세대는 각자도생의 전략에 굉장히 익숙하고 그걸 사회질서로 잘 만들어서 그 방식으로 사회를 운영해왔어요. 그렇게 해서 성공한 게 산업화, 경제성장, 그리고 굉장히 다른 것 같지만 쌍을 이루어서 민주화였죠. 베이비붐 세대의 논리가 다음 세대까지 사실 충실하게 전파가 됐고요. 특히 1990년대 중반 이후에는 충실하게 쭉 따라온 게 한국 사회인데요. 이 세대 즉, ‘아버지 세대’는 그럴 수밖에 없는 합리적인 이유가 있었어요. 왜냐하면 밀려나면 진짜로 죽었거든요. 물리적으로 그랬어요. 굶어죽거나 사회적으로 죽거나 하는 절박함이 있는 세대였어요. 대학 진학률도 굉장히 낮았고, 사회는 소수의 엘리트가 교육을 받지 못한 다수의 사람들을 끌고 가야 하는 체제였죠. 각자도생의 전략을 체화하고 먹고 사는 것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것이 몸에 배있는 세대고요. 지금의 40대부터 그게 조금씩 약해지기 시작해서 20대는 훨씬 그런 면이 약해진 것 같아요. 밀려나면 죽는다는 생각은 덜한 것 같거든요. 물론 불안하고, 방황하고, 어려운 일이 많은데요. 그건 그전보다는 훨씬 덜한 거예요. 지금의 불안은 과거의 불안보다 훨씬 덜하다, 따라서 연대의식을 가질 가능성이 높다,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지금의 불안이 과거의 불안보다는 덜하다고요.
OECD 조사 결과가 있어요. 10대에서 50대까지 세대를 나눠서 OECD 30여 개 국가 국민들한테 같은 질문을 던졌어요. ‘어려움에 처했을 때 도움을 받을만한 친구나 친척이 있는가?’라고요. 한국의 경우 50대 이상은 압도적인 최하위고요. 10대, 20대는 다른 선진국과 거의 비슷했어요. 그래서 저는 주관적인 조건은 그렇게 절망적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멤버십 사회(사회의 의사결정 과정에 이해 당사자들이 모두 참여하고 합의하며 진행되도록 설계하는 사회 운영 원리)’라고 표현했는데요. 그 원리를 중심으로 사회 질서를 바꾸면 괜찮아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려면 다음 세대가 빨리 리더십을 갖고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야 하죠.
그 부분에서 막차 문 닫기 게임에 비유한 고령자 지배체제, ‘제론토크라시’사회를 분석했어요. 한국이 그렇게 되지 않도록 하는 방법이 바로 젊은 세대가 리더십을 가져야 한다고 한 건데요.
이제 의사결정은 미래 세대가 해야 한다는 이야기인데요. 제 생각은 굉장히 단순해요. 각자도생에 익숙할 수밖에 없던 세대가 지금 의사결정을 하는 것은 상황을 더 악화시킬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새로운 기술이 나오고 인간의 역할을 창의적으로 찾아내야 하는데 그런 경험이 없잖아요. 또 자산 가격이 계속 높아지는 사회에 살았으니 자산 소유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그런 전략으로는 이제 만족스럽게 살 수 없거든요. 그런 방식의 일자리 기회, 그런 방식의 소득 기회, 그런 방식의 자산 증식 기회가 줄어드는데 사람은 그대로 있고 경쟁은 더 심해져서 ‘헬조선’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거잖아요. 과감하게 미래 세대, 이것 말고 다른 질서를 빠르게 받아들일 수 있는 세대가 의사결정을 하게 하자, 이런 얘기를 하는 거예요. 사회 전체를 위해서 그래요. 연대와 협력의 가치 아래서 재편할 수 있는 세대가 결정권을 가져가는 게 좋죠.
그렇지만 공존해야죠. 어른들은 나이가 들어도 발휘할 수 있는 ‘팔로워십’을 계발해서 미래세대가 의사결정을 하고 나이 든 사람들도 거기에 참여자로서 살 수 있는 그런 체제를 만들어야죠. 그게 안 되고 있는 게 문제예요.
이상적으로 들리기도 해요. 그것이 가능할까, 이런 질문을 하게 되는 거죠. 젊은 세대의 리더십이라는 방향을 위해서는 어디서부터 매듭을 풀어야 할까요?
정치 지도자를 젊은 사람 뽑으면 되잖아요. 하다못해 동호회에서 젊은 사람을 대표 시키면 되잖아요. 아파트 동대표, 젊은 사람 시키면 되거든요. 그렇게 하면 되는 거예요. 제가 보기엔 그걸 두려워하는 거예요. 깨뜨려야 돼요. 호칭 문화부터 바꿔보면 어떨까 싶기도 하고요. 안 될까요? 안 될 것 같으세요? 그냥 내주면 돼요. 예를 들면 정당에서 지금 의사결정권 갖고 있는 분들 있잖아요. 그분들이 결단하면 돼요. 젊은 사람 위주로 공천하겠다고요. 또 유권자들은 조금이라도 젊은 사람 뽑겠다고 결정하고요. 그런 문제죠. 지금 정부 국무회의 이런 데 가면 50대가 완전히 애잖아요. 50대 여성 이런 분이 가면 비서 같은 분위기고요. 그래선 안 되죠.
33세의 안철수가 안철수연구소를 세우고, 30대 초반의 기업가들이 줄줄이 등장한 1990년대 풍경을 생각하면 확실히 비교가 되죠. 지금 30대 초반은 아직 사회진출도 하지 않았거나 이제 막 발 딛은 나이거든요. 시작 자체가 점점 늦어지는 거예요.
지금 같은 분위기로 가면 어느 조직에 들어가 팀장 정도의 리더십을 발휘하려면 한 50살이 돼야 하고(웃음), 대표가 되려면 70살이 돼야 할 것 같아요. 그러면 우리 다 같이 망하는 거예요. 어떻게 이 급변하는 환경에 적응하겠어요. 머리로는 다 알고 있거든요. 인생 5모작이니 10모작이니 하잖아요. 나이가 들어도 계속 새로운 걸 배워서 적응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얘기, 다 알고는 있어요. 그런데 두려워서 선택 못하는 거예요. 특히 가장 두려워하는 건 지금의 장년 세대, 베이비붐 세대예요. 놓지 못하고 쥐고 있어요. 놓아야죠.
불쌍하니까 도와달라?
그 세대의 선한 의지로 결정권을 놓고 물러나길 바라고만 있을 순 없을 거예요. 그래서 젊은 세대가 더 나서서 리더십을 가져야 한다고 하는 거겠죠.
나서서 할 수 있는데 안 하는 부분도 사실 많아요. 저는 청년 세대, 특히 20대의 활동하는 분들의 문제점을 한 가지 짚고 싶어요. 우리는 불쌍하니까 도와달라는 이야기를 자꾸 하거든요. 리더는 그런 이야기하지 않아요. 30대에 한국의 산업, 정치를 이끌었던 사람들이 있죠. 그들이 우리 30대를 대변하겠다고 한 적은 없거든요. 정당에서 청년 비례대표라고 나오는 분들이 청년 이야기하면 안 돼요. 대한노인회부터 찾아가야 합니다. 베이비붐 세대 중 아주 어려운 분들 많거든요. 그런 분들을 어떻게 도울지 이야기하고, 사회 문제를 우리가 해결하겠다고 이야기해야 하는 거죠. 1990년대 말, 2000년대 초에 한국을 주름잡던 벤처기업가들이 우리는 청년을 대상으로 사업하겠다, 이런 얘기 한 거 아니잖아요. 그때 만들었던 바이러스 백신, 전 국민이 다 사용하는 거고, 그때 만든 게임, 한국의 엔터테인먼트 산업 이끌고 가는 거고, 그때 만든 포털 사이트 같은 경우 모든 사람이 다 사용하는 거잖아요. 그런 식으로 접근하면 될 거라고 생각해요.
한국 현대사와 경제 발전 맥락을 통해 세대의 차이를 설득력 있게 진단했습니다. 대부분 대학을 나오고, 도시에서 성장했으며, 신기술을 자연스럽게 익힌 ‘불평등에 민감’한 세대가 지금 청년세대라는 것, 이런 진단 안에서 사회를 보니 좀 더 많은 것들이 해석되더라고요.
우리가 잘 인정하지 않는 사실은 지금이 사실 가장 평등 지향적인 때라는 거예요. 아주 역설적인데요. 불평등이 굉장히 커지고 있잖아요. 그렇지만 사람들은 비슷해졌어요. 모든 사람들이 똑같이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인터넷을 사용하고요. 전엔 그렇지 않았거든요. TV 있는 사람만 볼 수 있었고, 레코드판 살 수 있는 사람만 들었고요. 뮤지컬을 보러 가야지 유튜브로 음악을 들을 수 없었잖아요. 영화도 마찬가지고요. 지금은 아주 비슷해졌거든요. 그래서 폭발력이 있는 거죠. 불평등에 대한 이야기를 우리가 많이 하게 되는 이유는 그런 측면도 있다고 봐요. 물론 현실적으로 소득격차가 늘어나고 있는 건 사실이죠. 그렇지만 그것에 대해 이렇게까지 문제제기를 할 수 있는 이면에는 우리 모두 비슷해지고 있다, 라는 게 있다고 저는 생각해요. 그런데 잘못하면 폭발하죠. 폭발해서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죠.
나락으로 떨어진다는 건 어떤 의미예요?
주체 환경은 아주 평등지향적인데 객체 환경은 점점 불평등이 커져가는 방향으로 가면 이게 안 맞으니까요. 그러면 외국으로 나가든지, 폭동을 일으키든지, 아니면 절망하고 좌절해서 그냥 사회로부터 격리돼 살아가는 식이 되겠죠.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객체 환경을 바꿀 여지가 있는데 그게 되려면 빨리 그런 세대로 의사결정권이 넘어가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어요. 더구나 시간이 그렇게 많이 남은 것 같지 않아요. 한국이 고령사회로 접어드는 게 2017~2018년 이렇게 이야기하는데요. 거기서 몇 년 더 지나면 초고령사회가 되거든요. 평균치라 그렇고 서울과 몇 개 도시 제외한 나머지 지역은 지금 다 초고령사회예요.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어요. 빨리 전환할 필요가 있겠죠.
시간이 많이 없다고 했는데 경제와 사회적 차원에서 본다면 정확히 지금이 우리 경제에 어떤 순간이라고 봐야 할까요?
90년대 중반부터 우리가 선택한 하나의 길이 있죠. 이제 그 길의 한계를 명확하게 본 것 같아요. 경로의 한계죠. 90년대에 크게 전환을 한 거거든요. 80년대 말 경제적 여유를 바탕으로 민주화도 되고, 중산층도 형성되고 하면서 미국식 시장 방향으로 가야겠다고 전환을 했죠. 그런데 완전히 미국식은 아니었어요. 소수 특권층은 남아 있었고요. 결과는 앙상해요. 격차도 커지고요. 이제 다시 전환을 해야죠. 어디로 전환할 거냐, 논쟁이 필요한 시점이에요. 논쟁을 안 하는 것 같아서 걱정이 되는데요.(웃음)
방향은 두 가지겠죠. 충분히 미국화하지 못해서 그렇다, 이런 이야기가 나올 거예요. 훨씬 더 시장주의적으로 가면 다시 성장할 거라고 생각하는 측이 있을 거고요. 다른 방향은 국가가 좀 더 역할을 많이 하고, 복지를 늘리고, 유럽식 사회민주주의 형태로 더 가야 한다, 이런 방향이겠죠. 제 얘기는 제3의 방향인데요. 공동체의 힘을 기본적으로 키워야 한다, 이런 방향이죠. 지속가능한 발전, 사회적 경제를 중심에 놓고 이야기하는 방향이에요. 개인들은 자유롭게 모험할 수 있도록 하되, 노후나 기초생활을 보장하고 안전망을 잘 다지는 거죠. 사람들의 의식을 변화시켜서 삶의 패턴 자체, 너무 많이 생산하고 소비하는 것을 좀 바꿔보자는 거예요. 소프트웨어 중심, 콘텐츠 중심으로 말이에요. 이런 여러 방향을 놓고 논쟁을 하는 게 정상이죠. 전환해야 할 시기기 때문이에요.
본격 선거철이잖아요. 투표의사 묻는 설문에 20대의 70% 이상이 반드시 하겠다고 답했다는 뉴스도 있었어요. 변화를 갈망하는 사람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도 있겠죠?
대표자가 젊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조금이라도 젊은, 젊은 척이라도 하는 사람을 뽑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이 드네요. 이번 선거를 앞둔 한국 정치는 다 늙은 척을 하는 분위기거든요. 우리는 이렇게 빵빵한 어르신들을 모시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좀 기묘한 분위기예요. 퇴행적인 분위기죠. 그래서 잘 모르겠어요. 그래도 투표를 잘 해야죠. 저는 이번 선거에는 가치를 가지고 투표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저는 옹호하는 가치가 있거든요. 그걸 가지고 우리 지역에 나온 후보가 누구고, 정당들이 어떤 공약을 냈는지 볼 생각이에요. 그런 식으로 하면 좋을 것 같아요. 의외로 다른 가치들이 있거든요. 그걸 보고 나서 투표하면 좋겠어요. 환경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노동자의 권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자유롭게 시장에서 경쟁하는 걸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를 좀 생각해야 해요. 결국 그런 걸 유권자들이 생각해야 정치인들도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한국에서 세금을 내는 사람은 다 부자
반복해서 새 패러다임을 받아들여야 할 때라고 하는데 이를 가능하게 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것이 뭘까 라는 질문을 가지고 왔었거든요. 그런데 듣다보니 결국 모든 방면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네요.
나의 접점에서 일단 뭔가를 해야죠. 회사에서는 젊은 리더를 발굴하고 키우는 일을 하고요. 젊은 사람은 좀 두려워도 적극적으로 리더십을 가지고, 포지션이 생기면 획득하고, 권한을 행사하는 연습을 해야 하고요. 그 다음 와야 한다고 생각하는 패러다임의 내용은 다섯 가지예요. 청년에게 투자해야 한다, 죽을 때는 평등하게 죽어야 한다, 격차가 줄어야 한다, 세금을 많이 내고 복지를 늘려야 한다, 시민이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 예요. 청년에게 투자하고, 노년을 보장하고, 격차를 줄이는 것은 정부와 정치가 해야 할 일이죠. 이것은 반드시 풀려야 해요. 거시 환경이 우리를 제압하고 있는 그 장악력은 생각보다 굉장히 커요. 사람의 마음 속 불안을 없애기 위해서는 제도를 바꿔야 하는 측면이 분명히 있죠.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국민연금은 내 돈을 빼앗기는 거야, 재벌은 돈 안 내는데 나는 왜 세금을 내야 해’ 이런 얘기 하면 안 돼요. 한국에서 세금을 내는 사람은요, 다 부잡니다. 소득공제 후 낸 세금이 더 많다면 ‘나는 부자다’ 이렇게 생각하면 돼요. 세금 내는 사람이 그만큼 적어요. 내고 더 받아야 하는 거죠.
내고 더 받아야 한다, 아주 중요한 말처럼 들려요.
작년 연말정산 논란이 있었죠. 자녀 공제가 줄어든 이슈가 있었어요. 어린 자녀 있는 사람이 세금을 더 내게 된 거죠. 그런데 보육이 무상으로 제공된 게 몇 년 안 됐잖아요. 그게 일 년에 몇 백만 원 되거든요. 그러니 나는 십만 원 더 내고 백만 원짜리 복지를 받겠다, 이렇게 생각해야죠. 또 사람들은 대기업이 비정규직 채용한다고 막 욕해요. 자기 아파트에서는 고용주 입장에서 비정규직을 쓰죠. 경비원, 청소 노동자 임금 천 원 올려주기도 아까워해요. 그럼 안 되는 거죠. 자기와 접점 있는 곳에서 먼저 실천해야 하는 거죠. 그런 다섯 카테고리를 책에서 말씀드렸어요.
‘우리는 99%다’대신 ‘우리는 20%다’ 라고 한다면 다르지 않았을까 상상하는 장면이 있었어요. 복지는 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세금을 더 내야 한다면 무척이나 부당하게 느끼죠.
사람들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복지를 늘려야 하니 세금을 올려야 한다고 하면 흔히 듣게 되는 반론이 부정부패를 먼저 척결하고, 지하경제를 먼저 끌어내야한다, 재벌들이 빼먹는 것만 잘 걷어도 충분히 된다는 이야기예요. 가장 황당한 이야기예요. 그게 없다는 말이 아니고요. 그러면 나머지는 세금 안 내도 되는 거예요? 그게 옳은 거예요? 그건 아닌 것 같아요. 아이들이 용돈에서 일주일에 천 원 씩 모으면 1년에 오만 원이니까 아빠가 십만 원 보태 십오만 원을 만들어서 누군가를 돕기 위해 내놓자, 이렇게 얘기하는 게 훨씬 설득력 있죠. 아빠 숨겨놓은 돈 있죠, 그것 가지고 어떻게 하세요,(웃음) 이거는 가능성이 훨씬 떨어지죠. 그런데 이런 얘기하면 화내죠.
다들 정말 살기가 힘들다고 얘기하거든요.
네, 정말 힘들더라고요. 양가 부모님 모시고 일 년에 한 번 해외여행 가야하고, 자동차도 몰아야 하고, 영어 사교육 시켜야 하고, 보딩스쿨 보내야 하고, 주상복합 살아야 하는데 관리비는 너무 많이 나오고요. 그런데 삶의 방식은 생각을 조금 바꾸면 훨씬 재미있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해요. 재미있는 일과 돈 버는 것과 주변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것, 이런 것들을 은퇴 후가 아니라 지금부터 균형 있게 가지고 가겠다고 생각하면 다른 삶은 가능하죠. 많이들 그렇게 살게 될 것 같지 않으세요?
네, 특히 오늘보다 내일이 나을 거란 생각을 못하는 상황에서는 더 그런 방식을 택해야 할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바로 그 관점에 반대하는 거예요. 이렇게 사는 게 더 ‘나은 거’예요.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낫다니까요. 지금은 평생 일해서 잘 되면 아파트 한 채 건지고 은퇴 후에 할 일 없이 등산 다니는 게 제일 잘 된 인생이잖아요. 그게 오늘이고요. 그게 안 되니까 내일이 낫지 않을 거라 생각하는 거잖아요. 저는 하지만 내일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처음부터 보람 있는 일을 하면서 일하는 시간도 줄이고, 일과 삶 사이에 균형을 맞춰 살다가 어느 시점에선 약간 여유가 생기면 자원 봉사도 하고, 또 돈을 벌며 살기도 하고, 이렇게 말이죠. 노후에도 재산 가지고 놀러 다니는 게 아니고 늦게까지 조금이라도 보람 있는 일을 일주일에 다섯 시간이라도 계속 하면서 80살까지 지내는 것, 그게 더 나은 삶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내일이 더 나은 거예요. 명백하게요. 이렇게 생각을 바꾸지 않으면 너무 불행해져서 못 살아요.
공포가 가장 덜한 세대가 나서야
모두의 마음속에 공포가 있다는 말, 참 공감했어요. 공포 때문에 각자도생은 강화되고, 변화는 허황되게 느껴지죠. 건물주가 장래희망이라는 설문에서도 엿볼 수 있잖아요. 세대를 막론하고 공포가 만연해 있어요.
그런데 그 공포가 가장 심한 분들이 누구 같으세요? 가스통 할아버지 같은 분들이죠. 너무 공포스러운 거예요. 진짜 공산당이 자기를 잡아죽일까봐. 전 그런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 측면에서 보면 나이가 젊을수록 공포가 덜할 수밖에 없어요. 구조적으로 그렇죠. 경험이 다르잖아요. 그러니까 공포가 가장 덜한 세대가 나서야 하는 거죠. 물론 말씀드린 대로 제도적 뒷받침이 있어야 하고요. 실패해도 죽지 않는다는 확신을 주는 제도가 있어야 하는데요. 궁극적으로는 노후보장이에요. OECD 국가 중 한국이 가장 낮은 편이고 그래서 노인 빈곤율, 노인 자살률이 가장 높아요. 그건 일단 없애줘야죠. 또 근로 빈곤율을 없애야 해요. 그러려면 청소, 경비, 편의점 알바 등 저임금 일자리의 사람들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 이런 고민을 해야 할 거예요. 정책수단은 한 가지가 아닐 수도 있어요. 최저 임금을 올리는 방법, 복지 혜택을 더 주는 방법, 이런 것들은 국가에서 만들어줘야 하는 거죠. 그걸 안 해요, 근데. 그걸 안 하는 게 지금의 가장 큰 문제예요. 이대로는 공포가 더 심해지는 거죠.
스스로 중산층이라 믿는 계층이 빠르게 줄고 있잖아요. 여기서 생각해야 할 것은 ‘성장해야 한다’보다 ‘어떤 성장인가’라고 했어요.
저는 세대가 바뀌어야 한다는 게 그런 개념이 다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거예요. 중산층이 줄어든다, 이런 기사도 많이 나오는데요. 저는 탐탁치가 않아요. 소득만 갖고 따지는 것 자체가 중산층에 대한 과거의 정의만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 같아서 말이에요. 소득, 자산이 얼마나 되느냐, 이것만 보는 거죠. 중산층이란 원래 많은 유럽 국가에서는 지식수준이 어느 정도 되고, 공동체 네트워크를 어느 정도 갖고 있고, 교양 있는 사람들, 이렇게 정의하잖아요. 그 정의가 베이비붐 세대에는 그렇게 체화되지 않았죠. 그 반성을 젊은 세대는 처음부터 가지고 가면서 실천하는 게 필요한 것 같아요. 부가 1%에 몰려있으니까 나눠야 한다, 라고 하는데 나누면 문제가 해결 되느냐는 거죠. 그렇지 않아요. 우리가 자산을 똑같이 나눠 가졌는데 좋은 환경도 없고, 일도 재미가 없고, 노동 시간도 길고, 문화예술 인프라도 전혀 없고, 이건 나쁜 삶이거든요. 다양한 가치가 반영된 대안이 나와야 해요. 이런 다양한 이야기를 하면 화끈하고, 확산성 있어 보이진 않는데요.(웃음) 그래도 그게 답이죠. 세대를 바꾸면 그렇게 될 거라고 생각해요. 생각하는 틀 자체가 바뀔 필요가 있어요.
최근 한 인터뷰에서 채현국 선생이 이런 말을 했어요. “정권을 탓하는 사람들을 향해 우리가 잘못 뽑은 것이다, 찍은 놈이 우리들”이라고요. 저자 역시 거대한 악이 이끌었을 것 같은 이 패러다임은 사실 모두가 함께 선택한 것이라고 했죠. 탓하는 게 편리하니까 쉽게 그렇게 하길 택한 게 아닐까 싶더라고요.
평생 한 번도 만날 수 없을 것 같은 사람한테 다 덮어씌우는 게 가장 편하죠.(웃음) 그렇지만 결국 따져 보면 우리 엄마, 아빠 때문일 수도 있고 나 때문일 수도 있는 거예요. 더 미시적으로 가면 한국에서 IMF 구제금융 이후 시장 만능 주의, 재테크, 자기계발 붐을 누가 이끌었다고 볼 수 있을까요. 모두가 그렇게 한 거 아니에요? 아파트 투기하고, 재테크 책을 베스트셀러로 만든 것도 다 평범한 회사원들이죠. 그런 가운데 이명박 현상도 있었고요. 우리가 만든 거예요. 현실 비판하는 건 좋은데 주체를 너무 빼놓고 이야기하면 바꿀 수가 없게 돼버려요. 그러니까 아파트 주민들이 무언가 결정하는 것들은 굉장히 중요한 거예요. 내가 아파트 주민회에서 하는 결정과 살고 있는 지역 공동체에서 하는 결정의 질과 국가 공동체 전체의 결정의 질이 특별하게 다를 거라고 생각하면 안 돼요. 대통령이 하는 결정이나 동대표가 하는 결정이 비슷한 것 같아요.
핸디캡이 적은 세대
책을 쓰면서 가장 염두에 뒀던 건 뭐예요?
첫째가 중학교 1학년 됐어요. 걔하고 이야기를 하면서 썼어요. 저는 그냥 우리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궁금하지만 한 번도 체계적인 스토리를 접하지 않으셨던 분이 읽어도 좋도록 썼어요. 그런 문체를 가지려고 노력했고요. 그런 숫자와 비유를 쓰려고 노력했어요. 사회 문제 인식하는 데 몇 가지 단계가 있는 것 같아요. 처음에 미디어를 통해 ‘문제구나’ 생각하는 단계가 있고요. 다음에 주변에 벌어지는 일들에 관심을 가지고 관찰하는 단계가 있고, 공부하는 단계가 있을 거예요. 그 다음은 참여하는 단계가 있죠. 이 책은 첫 번째와 두 번째 사이에 있는 단계의 분들이 보면 좋을 책이란 생각을 했어요.
지금 청년 세대라고 하는 젊은층보다 더 어린 세대, 자녀 분 또래의 세대가 가지는 사회에 대한 감각도 궁금하네요.
모든 중1과 이야기 한 건 아니라서 잘 모르겠지만요.(웃음)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나 해드릴게요. 2014년에 미국에서 6개월 동안 지냈어요. 첫째를 데리고 가서 현지의 공립학교에 그냥 보냈거든요. 이야기를 하다가 잘 사는 나라 이야기를 하게 됐어요. 그랬더니 한국은 좀 잘 사는 나라인 것 같다는 거예요. 미국에 와 있는 상태였잖아요. 그런데 “미국은 뭐, 잘 사는 나란가?” 이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그러니까 한국과 미국이 대등한 거예요. 실제 경험을 했잖아요. 똑같은 초등학교라는 곳과 친구들을 경험했죠. 그런 아이 생각에 한국이 뒤지지 않는 거죠. 굉장히 자신감이 있어요. 핸디캡이 없는 거죠. 사실 세대가 높을수록, 나이가 많아질수록 핸디캡이 큰 것 같아요. 젊을수록 적은 것 같은데 그런 면에서 긍정적이죠. 그 긍정적인 힘을 우리 사회가 잘 받아들여야 하는데 거기서 불협화음이 많은 거죠. 자신감이 있는 건 아주 좋은 거예요.
경제나 사회 구조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이 읽어도 충분한 책이에요. 이 책을 통해 경제와 사회의 미래에 대해 더 알고 싶은 사람들이 많을 것 같은데 그런 분들에게 더 읽어보면 좋을 책을 몇 권 추천해주세요.
로버트 스키델스키의 『얼마나 있어야 충분한가』도 괜찮은 것 같고요. 『이상한 나라의 경제학』도 좋은데(웃음) 제 책이라서요. 제 생각에는 『얼마나 있어야 충분한가』가 최고인 것 같아요. 정책 대안에 관심이 있는 분은 앤서니 앳킨슨의 『불평등을 넘어』를 보시면 좋아요. 이 책이 참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어요. 앳킨슨이 피케티의 스승이라고 하는 사람인데요. 이 책도 참 좋죠. 우리가 얼마나 불평등한지 데이터가 많이 필요하시면 장하성 교수님 최근 책 『왜 분노해야 하는가』를 보시면 될 것 같아요. 그게 더 데이터가 많고 쉬워요.
아버지의 나라, 아들의 나라(2016년)이원재 저 | 어크로스
저자는 아버지 세대가 굳게 믿고 있는 성장 중심의 경제 패러다임이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는 우리 시대를 진단하고, 절망하는 대신 새로운 사회에 필요한 새로운 약속을 쓰고자 한다. ‘좋은 삶’을 함께 정의내리고, 그런 삶을 창출할 수 있는 경제구조를 함께 그려내기 위한 ‘희망의 경제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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