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 페스티벌에 한 해 몇십만의 인파가 몰리는 기이 현상은 말 그대로 기이현상에 불과하다. 최근 몇 년간 서울 시내의 재즈클럽들은 계속 하나 둘씩 문을 닫고 있는 와중에 재즈 연주자들의 숫자는 계속 늘어간다. 연주자들에게 무대는 접접 비좁아지고 있다. 21세기 들어 급성장한 국내 재즈계에서 10년 가까이 연주 생활을 해온 연주자들에게 현재의 고단한 현실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러한 현실 속에서 최근 연주자들끼리 공동의 연습실을 차리고 매주 일요일 함께 무대에 서는 무리가 생겼다. 기타리스트 옥진우, 베이시스트 김대호, 드러머 김민찬. 이들은 재즈동네에서는 첫 손으로 꼽히는 연주자들이다. 하지만 그들이 단 하나의 무대를 잡기 위해 얼마나 고군분투하는지는 웬만한 사람들은 상상도 하지 못할 것이다. 그들을 만나러 어느 일요일 양재동에 있는 지하 연습실 '재즈벙커'를 찾아 갔다(색소포니스트 김지석도 함께하려 했으나 개인 사정으로 인터뷰 중반에 합류했다.)
예쁜 조명등도 있고. 바(bar)도 있고. 칙칙하고 어두운 작업실을 상상했었는데 분위기가 예상 밖이다.
김민찬: 일하다가 바에 모여 서로 좋아하는 음악도 들려주고 한 잔씩 하면서 이야기 나누면 좋을 것 같아서 이렇게 만들어 보았다.
원래는 인터뷰 서문에 음악인의 간략한 이력을 인터뷰이가 밝히는 게 원칙인데 이번에는 특별히 세 분이고 해서 그럴 수가 없었다. 간략히 한 분씩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옥진우: 기타리스트이고 2003년부터 활동을 시작했다. 당시 임인건, 임달균 밴드에서 연주를 시작했다.
김민찬: 형, 한상원 밴드에서도 연주하시지 않았어요?
옥진우: 그건 고등학교 때. (일동 웃음) 고3 때 재즈 아카데미에 들어갔는데 그때 내가 1기였다. 그곳에서 한상원 선생님께 배우고 밴드에서도 연주했다. 한영애 밴드에서도 했었고. 그러다가 네덜란드로 가서 재즈를 더 공부했고 2003년부터 재즈클럽에서 연주를 시작했다. 유학이 완전히 끝나지 않아 한국과 네덜란드를 오가며 연주하다가 2011년 유학을 완전히 끝내고 한국에서 연주 중이다. 박성연 선생님, 이노경 씨, 허소영 씨, 김마리아 씨 음반에 참여했다.
옥진우씨 처음 등장했던 2000년대 초반, 비밥을 제대로 연주하는 신선한 기타리스트가 나타났다고 주변에서 이야기 하던 기억이 아직 생생하다. 계속 자기소개 부탁한다.
김대호: 베이스 연주자다. 2008~09년부터 활동을 시작했다. 홍대 앞에 있다가 지금은 문을 닫은 클럽 팜에서 전지연 씨의 레귤러 공연 때 베이스를 연주한 것이 첫 일거리였다. 대학 졸업반 때였을 것이다. 작년에 기타리스트 조영덕 씨와 어쿠스틱로지 음반을 발표한 것이 첫 앨범이었고 이전에 진킴 재즈유닛, 김마리아, 황은정, 데이먼 브라운 음반에 참여했다.
김민찬: 2005년 대학 들어가고 나서부터 이런저런 밴드에서 연주하다가 대략 2008년쯤부터 진푸름 밴드에서 연주를 시작했다. 이후에 이지영, 임달균 선생님이랑 '옐로 재킷' 스타일의 펑크(funk) 밴드도 몇 달 동안 해보고. 그때 그 밴드에는 대호 형도 함께했었다.
김대호: 그땐 야심차게 지미 해슬립(밴드 '옐로 재킷'의 베이시스트) 시그너처 모델도 구입하고 했는데........ 아무나 그걸로 연주하는 게 아니더라. 지금은 팔아버렸다. (일동 웃음)
김민찬: 그리고 음반으로는 진푸름 쿼텟, 진킴 재즈유닛 앨범에 참여했다.
세 사람은 언제, 어떻게 만났나?
옥진우: 대략 2008년쯤으로 기억한다. 한국에서 활동하던 독일인 베이스 주자 마틴 젠커의 무대에서 모두 만났다. 그리고 2011년 내가 한국에 완전히 들어오고 연습실을 같이 쓰면서 매우 가까워졌다.
이미 연습실을 함께 썼다는 것은 이전에 뭔가 서로 통했다는 것이 아닌가?
김민찬: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 시점에 당시 세 사람이 서로 좋아하는 음악이 비슷하니 이야기도 통하고 하고 싶은 음악이 비슷하니 함께 연주하는 게 너무 당연해 졌다.
옥진우: 한국의 재즈 연주자들이 근래 많이 늘었지만 사실 연주자층이 아직 두터운 것은 아니다. 그러다 보니 한 연주자가 이런 스타일, 저런 스타일 모두 연주해야 한다. 펑크스타일도 연주했다가, 모던재즈도 연주했다가....... 그래야 먹고 살 수 있고. 그런데 나 같은 경우엔 좀 마니아적인 기질이 강해서 그런지 한 가지 방향만 계속 파고들게 되더라. 그게 메인스트림 재즈, 정통 재즈 스타일인데.......그러다 보니 다른 스타일을 겸해서 연주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연주에 완전히 만족하기가 어려웠다. 분명히 저보다 연주 잘하는 사람인데도 메인스트림 재즈의 디테일한 부분까지는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쉽게 말해 잘 맞는 연주자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2008~09년 즈음에 비슷한 음악을 추구하는 연주자들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고 2011년에 한국에 완전히 들어오니 민찬이가 연주자들이 함께 쓰는 연습실에 자리가 비었으니 나보고 들어와 함께 하자고 연락이 왔다. 그때 이미 대호는 민찬과 함께 연습실을 쓰고 있었고.
김민찬: 여러 용어가 있겠지만 우리가 좋아하는 음악을 스트레이트 어헤드(Straight Ahead: 정통적인, 꾸밈이 없는) 재즈라고 표현하고 싶다. 그러니까 스윙 느낌이 있는 재즈다. 사실 그런 음악을 좋아하는 연주자들을 현재 국내에서 만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함께 연습실을 쓰게 된 건데 전에 연습실에 다른 연주자들도 너무 많아서 정신이 좀 부산하고 해서 우리끼리 아담하게 따로 연습실을 만들면 어떨까 생각하다가 1년 8개월 전에 이 장소를 만들게 된 거다. 2014년 7월이었다.
'재즈벙커'란 이름이 좋다.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가?
옥진우: 원래는 이 근처에 작업실로 꼭 들어가고 싶은 곳이 있었는데 그 자리가 '벙커 피시방'이었다. 결국 그 자리에는 못 들어갔지만 모두들 '벙커'란 이름이 입에 익어서 결국 '재즈벙커'가 된 거다.
(웃음) 피시방? 그게 전부인가?
옥진우: 재즈가 계속 맥을 이어갈 수 있는 대피소 같은 의미도 있는 거 같고.......
그럼 김지석 씨는 '재즈벙커'와 별 상관이 없었나?
김민찬: 양재동으로 연습실 얻으라고 계속 꼬신 사람이 지석이 형이다. 그 형은 이 옆에, 가까운 데에 오래 전부터 연습실을 쓰고 있었는데 우리가 이곳에 작업실을 마련하자 와서 일도 많이 도와주고 여러모로 힘이 되어 주었다.
김지석씨는 여러 스타일의 재즈를 두루 연주해 왔는데 음악이 잘 통하는 편인가?
옥진우: 지석이나 나는 학교 다닐 때부터 정통 재즈를 제일 좋아했다. 커리큘럼에서 의무적으로 공부하는 게 아니라 여러 음악 중에서 이 스타일을 제일 연주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게 이뤄질 수는 없었다. 하지만 대호 민찬은 아예 연주생활 시작하면서 정통 재즈 쪽으로만 고집했고 그게 어느 정도 가능했던 시절에 두 사람은 등장했다. 우리들도 이 친구들을 만나면서 보다 자주 정통 재즈를 연주할 수 있게 된 거다. 왜 이런 음악을 고집하느냐고 묻는다면, 그냥 단순히 내게 이 스타일의 재즈가 가장 잘 맞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럼 보다 구체적으로 자기 악기에 따라서 각자 제일 좋아하는 연주자들을 꼽아 달라.
옥진우: 웨스 몽고메리, 케니 버럴, 그랜트 그린 그리고 요즘 연주자로는 피터 번스틴. 너무 뻔하지 않나? (웃음)
김대호: 폴 체임버스, 레이 브라운, 샘 존스 그리고 현역으로는 크리스천 맥브라이드. 완전 좋아한다.
김민찬: 단 한 명만 꼽으라면 아트 블레이키. 그다음에 필리 조 존스, 엘빈 존스, 빌리 히긴스. 앨 헤어우드. 많지만 이 정도로.
김대호: 교과서 인물 이름 대기네. (웃음)
여기 계신 연주자들이 이제 프로 연주경력 10년 안팎이 된 것 같다. 그간에 한국 재즈 씬의 변화가 느껴지는가?
옥진우: 물론이다. 연주자 숫자도 많아졌고 젊은 연주자들의 실력도 굉장히 빠르게 발전했다. 연주 실력 하나만 놓고 보면 다른 나라의 비슷한 또래 연주자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그런데 추구하고 있는 정통 재즈 쪽에서도 그러한 변화가 보이나?
김대호: 많지 않은 것 같다.
옥진우: (잠시 고민하다가) 내 경우엔 아직 못 만났다. 사실 재즈 연주자들이면 모두가 자신들이 비밥을 연주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누구나 학교에서 비밥을 배우기 때문이다. 누구나 그 리듬과 화성진행을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그 음악을 연주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아니다. 그 음악을 계속 파고들어야 진짜 그 스타일의 맛이 나는 연주를 할 수 있는데 정통 재즈 쪽으로 오는 젊은 연주자들은 없는 것 같다. 미국의 경우에는 딕시랜드 재즈(트레디셔널 재즈)만 전문으로 연주하는 사람들도 있지 않은가? 색소폰 주자 에릭 알렉산더는 하드밥 외에 다른 연주는 전혀 하지 않는다. 그의 밴드의 베이스 주자 존 웨버는 팻 메시니의 음악도 참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김민찬: 존 웨버는 4/4 박자 외에는 홀수 박자도 연주 하지 않겠다고 한 사람이다. 그러니까 그들은 그렇게 좋은 스윙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전반적으로 국내 연주자들의 실력이 굉장히 좋아졌지만 전문성은 아직 그러지 못한 것 같다. 연주자의 전문성은 각각의 시장이 어느 정도 돼야 가능한데 그렇지는 못한 것 같다.
옥진우: 다시 말하지만 연주자들의 개인 기량은 엄청나게 빠르게 발전했다. 그래서인지 모두 어떤 스타일의 재즈도 다 연주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개인 기량이 좋다고 음악이 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어떤 스탠더드 넘버를 알고 있는 것 하고 그 음악을 밴드를 통해 잘 연주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다들 스탠더드 넘버를 알고 있지만 실제 연주해 보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표현하고 음악을 진행 시킬지에 대해 아이디어가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너무 남의 욕을 많이 하나?
그런데 연주자의 전문성은 시장의 크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외국처럼 딕시랜드 팬들, 스윙팬들, 비밥팬들, 퓨전팬들이 각각 어느 정도 되면 연주자들도 한 분야에 매진할 수 있는데 한국은 그런 환경이 아니지 않는가? 더군다나 궁금한 점은 클럽들은 하나 둘씩 문을 닫고 연주자들은 계속 늘어나는데 그렇게 되니 점점 더 연주할 기회는 줄어들 것 같다.
김대호: 실용음악과 바람이 불어서 현재 한 해에 실용음악과 졸업생들이 적어도 천 명 단위로 나올 것이다. 그중에 재즈를 연주하는 사람은 극소수이겠지만 작은 재즈시장을 놓고 보면 매해 대단한 숫자가 늘고 있다. 더군다나 현재 서울 시내 재즈클럽은 열 개도 채 안 된다. 솔직히 올댓재즈, 에반스, 블루문 세 곳을 빼면 연주자 페이를 제대로 주는 곳은 없다고 봐야 한다. 대신에 연주자들이 직접 판로를 뚫어서 일반 카페나 바, 레스토랑에서 연주기회를 잡고 있다. 그러니까 재즈클럽 일변도에서 지금은 조금 변하고 있는 시점이다. 하지만 그런 장소가 재즈클럽처럼 매일 정기적으로 연주 무대를 세우는 것은 아직 아니다.
옥진우: 그런데 한국에서는 재즈를 너무 럭셔리한 문화로 인식하다 보니까 재즈클럽도 대규모로 멋진 인테리어를 갖춘 고급 장소로 차려야 한다는 인식이 많은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적자가 나면 금세 문을 닫는 것을 많이 봤다. 하지만 외국에서도 그런 클럽들은 극히 소수다. 블루노트 클럽과 같은 곳은 극히 일부다. 대신에 소규모 클럽, 일반 식당 등에서도 재즈를 연주한다. 그런 곳에서도 일급의 재즈 연주자들을 볼 수 있다. 대호, 민찬은 밴드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베이스와 드럼이고 그래서 나보다 연주 기회가 더 많은 편인데 여기에 나까지 포함해서 전반적으로 생각해보면 그래도 연주 기회가 10년 전에 비해 준 것 같지는 않다. 재즈클럽은 아니지만 작은 장소에서 연주해달라는 요청이 꾸준히 들어온다. 2000년대 초처럼 클럽 앞에 사람들이 줄을 서 있는 광경은 볼 수 없고 페이도 오르지 않은 채 그대로이지만 그래도 연주를 계속할 수 있다는 것은 다행이다. 관객의 감소는 비단 재즈만이 아니라 모든 라이브 클럽이 겪고 있는 문제고 해외나 국내나 모두 마찬가지라고 본다. 모든 연주자가 학교나 레슨을 통해 수입을 만들고 작은 장소에서 연주하며 살아가는 게 대부분일 것이다. 문제는 그 속에서 어떻게 완성도 있는 자기 음악을 만드는가에 있다.
이제 얼마 후 저녁 8시면 근처 바 '크로스비'에서 연주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일단 저녁을 먼저 먹으면서 인터뷰를 계속하자. (이후 근처 순댓국집에서 이야기가 계속되었다.)
재즈클럽이 사라짐에도 불구하고 연주 기회가 줄지 않았다니 정말 다행이다.
김민찬: 재즈클럽 말고 연주 장소가 생긴 것은 물론 음악이 있어야 하는 곳도 있지만 연주자들이 직접 뚫은 곳도 많다. 우리가 연주하는 '바 크로스비'도 그렇다. 우리 작업실 근처에 있고 들어가 보니 재즈도 많이 나오고 음반도 많이 있어서 사장님이 틀림없이 재즈를 좋아하실 것 같아 가끔 연주하자고 제안을 드려서 현재는 매주 일요일 저녁 8시에 연주하고 있다. '크로스비'는 전설적인 가수 빙 크로스비를 뜻한다. 국제적으로 명망 있는 색소폰 연주자 제스 데이비스가 한국에 왔을 때도 우리랑 '크로스비'에서 연주했다.
비슷하게 매일 연주를 갖지는 않지만 비정기적으로라도 재즈 연주를 하는 곳이 몇 군데나 되나?
김대호: 클럽 올댓재즈가 조그마한 바를 한남동에 열었는데 그곳에서도 주말에 연주가 있고 압구정동 '온더그러운드'도 있다.
옥진우: 또 이태원 시가 바 '번'도 있다. 그곳도 연주자들이 뚫은 곳이다. 또 근처에 '그랑블루'라는 식당도 있다.
김민찬: 한남동 카페 '톨릭스', 홍대 근처에는 '토끼굴', '상수리', '멜피콩', 분당에는 카페 '카레 클린트'가 있다. 우리가 모르는 곳도 많을 거다. 나는 여러 장소 중에서 '크로스비'에서 연주할 때가 가장 좋다. 연주도 마음에 들고 관객들도 음악에 굉장히 집중한다.
[식사 후 '크로스비'로 자리를 옮겼다. 예정대로 8시부터 공연이 있었고 대략 10시경에 공연을 마쳤다. 그리 큰 장소는 아니었지만 객석은 완전히 채워져 있었다. 공연 후에 마무리하지 못했던 인터뷰를 이어갔다. 이 자리에는 앞에 인터뷰에 참여하지 못했던 색소포니스트 김지석 씨가 함께 했다.]
항상 이렇게 자리가 꽉 차는가?
옥진우: 오늘은 그리 많은 편이 아니다. 작년 말에는 밖에서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렸었다.
김지석: 아시겠지만 재즈클럽의 숫자가 많이 줄었다. 단지 재즈뿐만이 아니라 여러 라이브 클럽들이 경영난에 허덕인다. 이는 사람들이 기존의 장소를 찾아가는데 더 이상 재미를 못 느끼는 것이라고 봐야 한다. 하지만 라이브 연주를 듣는 것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늘 틈새시장은 있다. 연주자들이 적극적으로 그곳에 접근해야 한다고 본다. 세상이 그만큼 빨리 바뀌는 것이다.
이곳에서는 언제부터 연주를 시작했나?
김지석: '크로스비'에 처음 온 것이 2014년 12월이었다. 그런데 음악도 너무 좋고 분위기도 좋아서 사장님께 이곳에서 재즈 연주를 해도 되겠냐고 여쭤 보았다. 하지만 사장님께서는 당연히 거절하셨다. 그래서 두 달 뒤인 2015년 2월에 다시 찾아가 요청을 해봤다. 하지만 그때도 역시 거절하셨다. 아시지 않는가. 이 연주가 돈을 많이 못 벌어서 갈급한 게 아니다. 연주자들은 연주를 자주 해야 하는데 그게 안 되니까 답답한 거다. 그래서 그다음 달에 아예 색소폰을 들고 갔다. 그리고 연주 딱 한 곡만 해도 괜찮겠냐고 물었다. 사장님은 대답하기가 곤란하셨는지 저기 테이블에 앉아계신 손님들께 양해를 구해보라고 하셨다. 그날이 일요일이라 손님은 그분들뿐이었다. 그런데 그분들이 연주를 듣자고 했고 그래서 나는 재빨리 '재즈벙커'에 있는 진우, 대호에게 연락했다. 금세 그들은 악기를 들고 왔다. 그리고 딱 한 곡만을 연주하자 손님들은 언제 또 연주를 들을 수 있냐고 묻는 것이었다. 그러자 사장님은 연주와 반응이 마음에 들었는지 매주 일요일에 이곳에서 연주하자고 하셨다. 물론 연주 페이는 없었다. 그런데 그렇게 두 달을 연주하자 한가했던 일요일에 사람이 들어오기 시작하고 나중에는 자리가 없을 지경이 되었다. 그때부터 페이도 받고 연주를 해서 오늘까지 하는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재즈를 음반도 아니고, 라이브 클럽도 아니고 오로지 재즈 페스티벌에서 듣는다. 일 년에 한 두 차례 그곳에서 재즈를 듣고 올해 들을 재즈를 이제 다 들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데 정작 한국의 재즈 페스티벌은 한국 재즈 연주자들 대부분과 무관하다. 재즈 페스티벌이라고 해놓고 국내 팝 뮤지션들만을 주로 부른다던지, 국내 연주자들은 메인 무대가 아니라 서브 스테이지에만 세운다. 메인 무대에 서는 해외 연주자들이 국내 연주자들보다 잘 하지도 못하는데도 그렇다. 국내에서 열리는 국제 재즈페스티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김지석: 괜히 잘못 말했다가 영원히 우릴 부르지도 않고 매장 당하는 거 아닌가? (웃음) 물론 사람들 많이 오게 하는 것은 페스티벌 주최 측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일 것이다. 페스티벌을 비즈니스의 입장에서 접근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아닌가? 그런데 지금 상황을 보면 페스티벌에서 '재즈'란 단어는 빼야 할 것 같다. 음악적인 컨셉이 너무 희박하다. 캠핑 페스티벌이나 그냥 뮤직 페스티벌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사과가게라고 간판 걸어 놓고 배를 파는 것과 똑같다. 프랑스 마시악 재즈 페스티벌에 가면 그곳도 사람들이 많이 모여 음식 먹고 마시고 즐기는 것은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곳에서 재즈를 들으려면 그 내부에 별도의 공간으로 별도의 돈을 내고 들어가야 한다. 그 안에서 사람들은 조용히 음악에 집중하며 듣는다.
옥진우: 난 페스티벌 측으로부터 초대받은 일도 없다. (웃음) 그리고 출연진 라인업을 봐도 별로 관심이 가질 않는다. 더욱이 무대가 너무 대형화되고 고출력 사운드로 소리를 내다 보니 정작 재즈 사운드는 들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팝이나 록 페스티벌에 온 것 같다. 재즈라는 음악의 특성을 잘 모르는 것 같다.
매주 이렇게 모여서 연주하고 있는데 '재즈벙커' 이름으로 음반 낼 계획은 없나?
옥진우: 원래는 다음 주에 녹음 들어가야 하는데 게을러서 준비를 못 했다. 하지만 조만간 꼭 해볼 거다. 모두 학교에 나가서 학생들 가르치고 다른 밴드에서 연주도 해야 하고 이렇게 일주일에 한 번 모이기도 참 어렵다. 하지만 일요일 저녁 '크로스비'에서의 공연이 우리는 소중하기 때문에 가급적 다른 약속을 안 잡고 이곳에 계속 모이고 있다. 오랫동안 계속 모여서 더욱 재즈다운 재즈를 연주해보고 싶다.
이즈음에서 김지석 씨가 주문한 위스키 한 병이 테이블 위에 올라왔다. 모두들 기분 좋게 한 잔씩 마셨고 어느새 병이 바닥나자 와인 몇 병을 더 사 들고 다시 지하 '재즈벙커'로 들어갔다. 그때의 이야기들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하지만 레드 갈런드 트리오의 음악이 흘렀고 모두 유쾌하게 재즈 이야기를 끊임없이 주고받았다. 오랜만에 재즈 천국에 와 있는 기분이었다. 그러던 중 시계를 보니 어느새 아침 다섯 시 반이었다. 나는 가방을 들고 슬며시 그리고 억지로 그 천국을 빠져나와야 했다. 그 천국과는 달리 월요일 아침 양재동 거리는 아직 조용했다.
인터뷰 : 황덕호
정리 : 황덕호
사진 : 이석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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