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란 무경력, 무경험에서 생겨나는 수많은 일의 연속이다.” 글로벌 저널리스트 손지애가 자신의 첫 책『손지애.CNN.서울』 에필로그에 쓴 문장이다. 동양인 최초 CNN 서울 지국장, <뉴욕타임스> 기자, 청와대 홍보 비서관, 최연소 아리랑 국제방송 CEO 등 자신을 따라온 수많은 타이틀을 두고, 그는 “자격, 경험이 없다고 주저앉았다면 아무런 모험도 못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25년간 직장맘으로 일하면서 딸 셋을 낳은 이유도 같다. 몰라서 무작정 뛰어들었지만 결국 후회하지 않는 선택이었다.
“누가 나에게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일이 이토록 진 빠지고 초조함과 아픔의 연속이라고 미리 가르쳐주었다면 아이를 셋이나 낳았을까? 그러나 나는 별생각 없이 흔쾌히 부모라는 역할을 맡았다. 그러지 않았더라면 내가 진정 이 세상에 태어나 제일 잘한 일, 내 딸을 셋이나 얻지 못했을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나이 들면서 많은 것을 보고 경험할수록 이런 모험을 시도하는 일이 점점 줄어든다는 것이다. 그러니 무경험, 무경력의 장점을 십분 활용하기에는 젊을 때가 제일 좋다. 젊을 때는 미래를 생각하면 비어 있는 컴퓨터 페이지를 들여다보는 느낌이라는 걸 잘 안다. 그러나 비어 있는 게 아니라 아직 쓰지 않았을 뿐이다.” (『손지애.CNN.서울』에피로그 중에서)
큰딸과 책을 쓰고 싶었다
언론인 지망생들이 특히 잘 읽었다는 리뷰를 봤습니다.
그랬다면 다행인데요. 너무 가볍게 쓰지 않았나? 고민도 좀 했어요. 외신기자로 오래 일하다 보니, 한국말로 글을 쓰는 게 익숙하지 않아요. 문체가 좀 멋있고 화려해야 하는데, 구어체로밖에 안 되더라고요. (웃음) 책을 읽은 지인들은 “딱 네 말투랑 똑같이 썼네”라고 하더라고요.
‘손지애. CNN. 서울’은 교수님의 클로징 멘트였지요?
CNN 서울지국장 겸 특파원으로 일할 때, 수천 번 했던 멘트라 지금도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단어예요. 책 제목에 이름이 들어가는 게 좀 낯설었지만, 제 이야기를 담은 책이니까 그렇게 이상하지도 않다고 생각했어요.
책은 어떻게 쓰게 되셨나요?
2014년에 미국 남가주대학에 방문교수로 있었어요. 만 30년 만에 처음으로 풀타임 직장이 없었던 거라, 상대적으로 한숨 돌릴 수 있는 기회가 됐어요. 6개월쯤 지나 미국 생활에 적응했을 때, 이제 책을 써봐도 되겠다 싶었어요. 아이들을 일찍 학교에 등교시키고 나서 혼자 카페에 앉아서 900자를 쓰기 전까지는 무조건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어요. 적어도 평일은 그렇게 하려고 마음먹었더니 이렇게 책이 나왔네요.
특히 담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나요?
요즘 젊은 사람들이 너무 움츠러들잖아요. 한국은 대외적으로는 역동적이지만, 개개인으로 들어가보면 너무 위축되어 있어요. 그게 좀 안타깝다고 생각했어요. 젊은 세대들이 읽고 조금 와 닿을 수 있는 희망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결국 제 살아온 인생을 나누게 됐어요. 처음에는 큰딸이랑 같이 책을 써보고도 싶었어요. ‘엄마가 본 딸, 딸이 본 엄마’를 주제로 우리 둘이 커온 과정을 글로 담고 싶었는데, 딸이 반대했어요. 자기는 학자가 될 거라서 자기 이름으로 나온 첫 책은 자신의 전문분야가 돼야 한다고요. 엄마 이름을 빗댄 책이면 안 된다고 해서, 딸 의견을 존중해줬어요. (웃음)
엄마의 책은 어떻게 읽었다고 하던가요?
엄청 냉정해요. (웃음) 처음 가제를 봤을 때는 “엄마는 그냥 엄마에 관한 이야기를 썼는데 왜 제목은 마치 청소년에게 뭔가를 주장하는 느낌이야?”라고 하더라고요. 제가 만 26살에 결혼해서 27살에 첫째를 낳았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딸이랑 같이 성장했어요. 시행착오가 많았기 때문에 지금 직장맘들의 입장을 정말 이해할 수 있어요. 이건 보통의 두려움이 아니라 정말 강한 두려움이에요. 실수도 많이 했고, 다른 사람들처럼 직장을 그만두려고도 했지만 결국 30여 년을 직장맘으로 살았어요. 그래서 나중에 딸이 사회에서 인정하는 성공하는 사람이 되면, 같이 책을 써보고 싶었어요. 특별한 교육을 안 했어도 직장맘 자녀로 이렇게 잘 컸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요.
언젠가 나올 수 있는 책이네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요. 주변 분들이 제게 자주 말해요. “딸을 업고 다녀야 한다”고. 저는 저 나름대로 노력했는데,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렇지 않나 봐요. 보통 엄마들만큼은 신경 쓰지 않았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웃음)
사회적으로 성공한 엄마들의 자녀를 보면, 대개 자존감도 높고 잘 자랐어요. 다만 궁금한 건, 성장기의 결핍인데요. 아무리 엄마가 노력해도 함께 있는 시간이 적다 보면, 정서적 결핍이 많지 않았을까 걱정이 생기는데요.
아마 많았을 거예요. 저 역시 상처 받는 아이들을 보면서 엄청나게 혼란을 겪고 무너진 적도 많고요. 하지만 아이들은 반드시 상처를 극복해요. 다시 사랑을 채워주면 새로운 용기를 가져요. 아이가 커서 사회에 나가면, 더 큰 상처를 만나잖아요. 그럴 때마다 쿨하게 극복할 수 있는 용기와 융통성은 결코 작은 자산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조금만 상처도 전혀 안 겪은 것보다는 딛고 일어서서 자기 삶을 꿋꿋이 살아가는 모습이 훨씬 좋다고 봐요. 어떤 상처도 없이 큰다면, 더없이 좋겠죠. 하지만 그건 불가능하잖아요. 오히려 부모가 더 상처를 받지, 아이들은 오히려 잘 극복한다는 믿음을 부모들이 가졌으면 좋겠어요.
30년 동안 직장생활을 하면서 딸 셋을 키우셨는데요. 자녀교육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아이 각자마다의 성향에 따라 맞춤교육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부모의 바람이 아니라, 내 아이의 성격을 토대로 ‘아이가 뭘 하면 평생을 즐겁게 살 수 있을까’를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우리는 알잖아요. 명문대를 나왔다고 행복한 인생을 사는 게 아니라는 걸요. 아이가 재능을 잘 살릴 수 있도록 지지하는 것보다 중요한 부모의 덕목은 없는 것 같아요. 또 아이에게 문제가 발생했을 때는 학교 선생님과 상의를 하는 게 맞아요. 학원 선생님과 상담을 하면 공부를 더 가르치라고 말하겠죠. 물론 좋은 학원 선생님도 많지만, 그래도 학교 선생님을 더 신뢰하는 게 맞다고 봐요.
풍부한 여성성을 드러낼 때, 지원군이 생겼다
요즘 젊은 세대는 대개 큰 조직에서 첫 직장생활을 하기 바라는데요. 교수님의 경우 첫 직장이 작은 영문 잡지 <비즈니스 코리아>였습니다. CNN, <뉴욕타임스>에서 일하기 전, 7년이라는 긴 시간을 보내셨는데요. 처음부터 더 큰 조직에서 일할 생각은 없었나요?
<비즈니스 코리아>에 기자로 들어간 게 1985년이에요. 당시에는 몰랐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정말 잘한 선택이에요. 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을 때, 여러 고려 사항이 있었어요.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 갈 수 있는 큰 언론사가 당시에도 몇 개 있었어요. 하지만 대학에서 동아리를 함께한 선배가 극구 말리더라고요. 영어를 못하는 선배 기자가 영어를 잘하는 후배 기자가 들어오면, 잘못된 영어로 기사를 고쳐놓고는 후배 이름으로 기사를 내보낸다면서, 제가 여기에 입사한다고 하면 짐 싸서 말릴 거라고 했어요. 그래서 아예 시도조차 안 했어요. 그 선배는 결국 그 언론사를 관뒀고요. <비즈니스 코리아>는 작은 잡지사였지만 제대로 교육 받은 기자들이 많았어요. 아마 제가 큰 언론사에 들어갔다면, 이렇게 오랫동안 언론인 생활을 못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뉴욕타임스> 서울 주재 기자가 될 수 있었던 건, 좋아하는 영어에 승부를 걸었기 때문이었어요.
1988년 서울 올림픽이 열린 후, 세계가 한국을 주목하기 시작했어요. 외신에 진출하고 싶었기 때문에 그동안 한국의 여러 산업에 대해 쓴 기사를 복사해서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등의 사무실로 보냈는데, <뉴욕타임스>에서 연락이 왔죠. 내가 쓴 기사를 잘 봤고 마침 서울에서 글을 쓰던 기자가 떠나게 됐다고 면접을 보자고 했어요. 처음 영어로 기사를 쓸 때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일이죠.
서울 주재 기자로 일하다, CNN에서 ‘서울 특파원’으로 러브콜을 했고 30대 초반의 나이에 CNN 최초로 동양인 지국장이 되었어요. 방송기자와 신문기자는 꽤 차이점이 큰데요.
방송에 미래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새로운 걸 해보고 싶다는 끼가 발동한 거죠. 무모한 도전이었지만 부딪히고 싶었어요. 방송 경험이 부족했던 터라 기사 작성부터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아시아의 가장 경험 있는 특파원이 운영하는 방콕 지국에서 연수도 받았고, 여러 분께 도움을 받았어요. 카메라 기자가 갑자기 그만뒀을 때는 녹음기사와 직접 촬영, 편집을 하기도 했고, 목소리가 자주 갈라진다는 지적을 받고 발성에 관한 원서도 탐독했어요. 치열하게 공부하고 부딪혔던 때예요.
지금은 여기자가 많지만, 1980년대 중반만 해도 많은 숫자는 아니었는데요. “풍부한 여성성을 드러낼 때, 오히려 지원군이 많이 생겼다”는 이야기를 하셨어요.
기자직으로 첫 직장에 입사했지만 ‘미스 손’이라는 이름으로 불렸으니 말 다했죠. 하지만 여자라는 게 눈에 띄어서 더 질문을 많이 할 수 있었던 취재 현장도 있었어요. 불리할 거라 생각하는 것보다 더 준비하는 게 현명한 방법이에요. 지금은 과거 남자만 했던 많은 일을 여자들이 함께하고 있잖아요. 하지만 여자가 경찰이 되고 군인이 된다고 해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지는 않아요. 이제는 여성 경찰서장과 여성 군 장성이 어떻게 남자와 다른지를 보여줘야 해요. 몇 년 전 한 기사에서 여성 장교에 대한 부하들의 의식을 조사했는데, 눈에 띄는 답변이 하나 있었어요. “남자처럼 행동하는 여성 장교보다 여성임을 굳이 숨기려 하지 않는 장교가 좋다”는 이야기였어요. 많은 여성이 남성 지배 사회에서 성공하려면 남성과 똑같이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오랜 사회생활 끝에 제가 내린 결론은 오히려 여성임을 드러낼 때 더 인정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에요.
예를 들면요?
술자리 같은 경우에도 그래요. 예외도 있지만, 여자는 체질적으로 남자 만큼 주량이 세지 못해요. 그런데 똑같이 마시겠다고 부어라 마셔라 하면, 다음 날 출근은 어떻게 하나요? 우선 첫 잔은 함께 마시는 게 좋지만, 자신의 주량을 생각해야죠. 일로서 인정 받겠다고 생각하되, 다른 직장생활을 남자와 똑같이 하겠다고 나서면 오히려 역효과가 생겨요. 지금도 주변 여성 후배들을 만나면, 아직도 그들의 롤모델이 없다는 게 아쉬워요. 언론에 나오는 롤모델은 많아도, 실질적으로 내 옆, 내 앞에 있는 롤모델로서의 여자 상사는 없으니까요.
청와대에서 모유 짠 일화를 공개하기도 하셨어요.
2000년이었을 거예요. 둘째가 태어난 지 6개월이 됐을 때였는데, 당시 김대중 대통령을 인터뷰하기 위해 청와대에 들어갔어요. 첫째 아이 모유 수유를 6개월 밖에 못했기 때문에, 둘째는 꼭 1년 이상 모유를 먹이고 싶었어요. 급한 인터뷰가 생겼는데 집에 사놓은 분유는 없었고, 또 미리 유축을 하지 않으면 상당히 곤란한 일이 일어나잖아요. 어쩔 수 없이 인터뷰 전에 잠시 짬을 내서 화장실에서 몰래 모유를 짰어요. 아마 모유 수유를 안 해본 사람은 모를 거예요. 분유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모유를 먹인다는 게 그저 자연스럽게 되는 일이 아니라는 걸요. 셋째도 우유를 뗄 때까지 모유를 먹였는데, 제가 생각해도 참 유별나나 싶지만 분유보다 더 좋다는 게 명백한 사실이니까요. 한국과 미국의 책들을 샅샅이 보고 내린 결정이기 때문에 제 나름의 최선을 다했어요.
좋은 동반자가 좋은 커리어를 만든다
“좋은 동반자가 좋은 커리어를 만든다”는 이야기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직장맘으로 잘 살아가기 위해서는 “결혼을 잘해야 한다”고 하셨어요.
단연코 가장 중요해요. 아무리 국가 복지 제도가 발달해도 아무리 훌륭한 어린이집이 많아져도 부부가 아이를 어떻게 키울 것인지, 각자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 그리고 이런 역할과 각자의 커리어를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지를 제대로 소통하지 않으면 온전한 결혼 생활을 영위할 수 없어요. 저희 부부는 같은 잡지사에서 기자로 만나 사내 결혼을 했어요. 그 뒤로도 20년 넘게 같은 직업을 갖고 살았고요. 서로의 커리어를 인정했고 결혼 전부터 서로의 미래에 대해 많은 대화를 나눴기 때문에 각자의 꿈을 지지하면서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요즘은 운동을 하나 펼칠까 해요.
무슨 운동인가요?
젊은 여성들이 결혼 조건으로 ‘미래의 남편에게 육아 휴직을 쓸 것’을 약속 받는 거예요. 육아휴직을 쓸 생각이나 할 수 있는 용기가 없다면, 나와 결혼할 생각을 하지 말라고 선언하는 거예요. 우리나라의 많은 직장맘이 의지하는 건, 친정엄마나 어린이집이잖아요. 하지만 그건 친정엄마 몫이 아니에요. 아버지의 권리이자 몫을 대신하고 있는 거예요. 지금 우리나라도 남성의 육아휴직제도가 있지만 전체 육아휴직자의 5.6%에 불과해요. 언제까지 정부 정책만 믿고 기다릴 수는 없잖아요. 정부가 못하면 우리끼리라도 해야 해요. 국민이 나서서 사회적 운동으로 펼치면, 국가도 가만히 있을 수 없어요.
스웨덴 아빠들은 육아휴직을 평균 100일을 쓴다고 들었어요.
6개월 동안 육아휴직을 쓴 스웨덴 아빠를 만난 적이 있어요. 다른 일을 하면서 아이를 돌본 게 아니라, 오로지 아이를 위한 6개월을 보냈는데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이라고 하더라고요. 핀란드 부부를 만나서 이야기한 적도 있는데, 아이를 낳으면 부부가 동일하게 육아 휴직을 쓸 거라고 했어요. 육아휴직을 쓰지 않을 남자라면 결혼하지도 않았을 거라고 단정짓더라고요. 제도가 중요한 게 아니라 생각이 중요한 것 같아요. 먼저 생각을 바꾸려고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직장맘에게 특히 강조하고 싶은 말씀이 있나요?
어딜 가나 직장맘은 죄인이잖아요.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죄인이 되는데, 저는 직장맘이 절대 사회 약자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나라를 이루는 건 국민인데, 국민은 어떻게 만들어지나요? 엄마가 아이를 낳고 키워야 하잖아요. 엄마들은 가장 위대한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모두 상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예시보다 나은 훈교는 없다고 단언해요. 내 일을 소중히 여기고 열심히 사는 엄마를 보면서 자라는 아이는 더 건전한 사회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아이에게 본이 될 수 있는 삶을 사는 것보다 훌륭한 일은 없지 않을까요? 어렵지만 두 가지 일을 잘 이끌어가는 엄마를 보면서 자라는 아이들은 어른스럽고 예의 있는, 남을 배려하는 아이가 돼요. 사회에 있어서도 명문대생 10명보다 더 나은 존재가 될 거라고 믿어요.
또 다른 독자 ‘언론인 지망생’들에게 강조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요?
사회에 나가서 직접 체험하는 경험도 좋지만, 풍부한 간접 경험도 절대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때문에 정말 책을 많이 읽어야 해요. 저도 목표치 만큼은 잘 못 읽어서 아쉽지만, 기자들을 보면 책을 너무 안 읽어요. 오히려 글쟁이들이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읽는 것과는 담을 쌓는 것 같아요. 사람에 대한 존중은 많이 알면 알수록 깊어진다고 하잖아요. 사람은 만나는 일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풍부한 경험을 만들기 위해서는 책을 꼭 읽어야 해요. 또 젊은 세대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글로벌 시민의식을 가졌으면 하는 점이에요. 국제무대에서 활동하는 한국 젊은이들을 자주 만나는데, 능력도 좋고 똑똑하고 외모까지 정말 멋진데 한 가지 아쉬움이 있어요. ‘글로벌 시민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어떤 도움을 줘야 하는지’에 관한 고민이 좀 부족한 것 같아요. 탁월한 능력에 시민의식까지 있으면 얼마나 그들이 환영 받을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종종 해요.
지금은 모교인 이화여자대학교에서 국제대학원 초빙교수로 제자들을 가르치고 있는데요. 일상은 어떻게 보내고 계신가요?
두 번째 학기를 보내고 있는데, 아직도 수업이 있는 날은 긴장해요. 9시 30분 수업인데,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준비해요. 우리나라 학생 4명을 포함해서 프랑스, 미국, 영국, 멕시코. 콜롬비아, 핀란드 학생을 가르치는데 교환학생이라서 더 부담이 돼요. 짧은 시간 동안 한국에 있는 학생들인데, 한국 교수 꽝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안 되잖아요. (웃음)
앞으로의 계획도 궁금합니다.
국제소녀운동을 대내외적으로 소통하는 일에 집중할 예정이에요. 연구 결과에 따르면 세계 저개발국에서 가장 취약한 계층이 9살부터 18살까지의 여자 아이라고 해요. 사회국제운동을 통해서 이들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지 여러 사람과 고민하고 있어요. 우리나라의 경험을 토대로 실질적인 도움을 주려고 계획하고 있어요.
손지애.CNN.서울 손지애 저 | 김영사
이 25년간의 외신 기자 생활, G20 정상회의를 통한 공무원으로의 변신, 최연소 최초의 여성 아리랑 국제방송 CEO까지. 그녀의 성공 뒤에 숨은 노력과 도전의 과정을 솔직하게 기록했다. 끝없는 도전으로 존경받는 멘토의 자리에 선 그녀가 대한민국의 청년들에게 보내는 따뜻한 위로와 열정의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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