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와의 인터뷰를 정리하며 한 가지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사랑 때문에 아픈 날엔 그녀가 떠오를 것이다. 그리고 ‘그녀라면 어떤 말을 들려줬을까’ 자문할 것이다. 그녀의 조언은 문제의 핵심을 파고들기 때문이다. ‘왜 나의 사랑은 이렇게 고통스러운 건가요?’라고 물으면 ‘어쩌면 사랑은 힘든 것인지도 몰라요’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상대’와 ‘우리’ 안에서만 문제의 원인을 찾으려고 하자, 그보다 ‘자신’에 대해 아는 것이 먼저여야 하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지난 해 12월, 출판사 달은 사랑 고민을 공개 모집했다. “연애칼럼니스트 곽정은 작가에게 사랑과 관련된 고민을 보내주세요. 보내주신 사연을 채택하여 직접 해결해드립니다”라는 것이 그 내용. 수많은 사연들이 도착했고, 그 중 110여 편에 대한 응답이『우리는 어째서 이토록』안에 담겼다. 사랑을 시작하기 두려워서, 연인의 이성 친구 때문에 괴로워서, 권태기가 힘겨워서, 좋은 상대를 고르는 기준을 알 수 없어서, 현명하게 이별하는 방법이 궁금해서... ‘사랑에 대한 거의 모든 고민’이 실렸다. 마치 나의 이야기인 듯 익숙한 사연들. 그러나 뒤따르는 곽정은의 조언은 번번이 예상을 빗나간다.
“권태기가 찾아와서 함부로 행동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매너가 없어진 자리에 권태감이 자리잡는다”고 명쾌하게 정리하는가 하면, 여자 친구를 다른 남자가 낚아챌까 봐 두렵다는 고민에는 “그녀는 다른 남자에게 낚아챔을 당하는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존재예요”라는 말로 허를 찌른다. 당혹감은 이내 후련함으로 바뀐다. 애먼 곳에서 헤매다 제대로 돌파구를 찾은 듯한 느낌이다. 『우리는 어째서 이토록』이 안겨주는 이 개운함은 곽정은과의 인터뷰에서도 계속 이어졌다.
사랑의 핵심은 힘듦과 고통이 아닐까요?
독자들의 사랑 고민을 모아 출간된 책입니다. 사연 채택에는 직접 참여하셨나요?
네, 당연히 제가 모든 사연들을 봤는데, 상황은 조금 달라도 결국 답은 비슷할 수밖에 없는 부분들이 있었어요. 정리를 하는 과정에서 에디터 분과 작업하는 부분은 필요했고요. 모든 사람의 질문에 답을 해주는 상담집이 아니라, 한 권의 주제가 있고 흐름이 있는 거의 모든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완성된 책을 만들고 싶었어요. 그 차원에서 완결성도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아쉬운 점도 있을 수는 있다고 생각해요.
어떤 부분에서 아쉬움이 남으세요?
어떤 저자든 시간이 더 있었으면 ‘이것도 넣을 걸’하고 생각되는 부분이 있을 수 있죠. 그런데 이 책은 제가 사연을 만들어서 혼자 질문하고 답하는 게 아니라 오롯이 사람들의 사연에 기대서 만들어진 거잖아요. 그 사연들을 통해서 제 말이 나올 수밖에 없고요. 그렇다 보니까 시간이 지나고 나서 ‘이 이야기도 넣고 싶었는데 질문이 오지 않아서 못 썼구나’ 싶은 부분들이 생겨나기는 해요. 그런데 그건 또 다른 책을 통해서 들려드리겠죠. 서두에서 밝혔듯이 정말 많은 분들이 상담요청을 보내오세요. 아침부터 새벽까지 메일이 도착하는데, 그 시간까지 고민하시면서 곽정은에게 메일을 보내고 싶다고 생각하시는 것 자체가 저한테는 굉장히 부담이기도 하면서 감사하기도 해요. 그런데 상담 메일을 드리는 건 제 일이 아니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을 하다가 책이라는 형태를 통해서 답을 전하고 싶었던 거죠. 이건 일대일로 상담을 하는 게 아니잖아요. 완결된 콘텐츠를 갖춘 책을 통해서 또 다른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게 되니까, 사연을 보낸 분이 아니어도 이 책을 통해서 다시 생각을 해볼 수 있죠. 저는 그런 가치가 좋다고 생각했어요.
사연들을 읽으시면서 어떤 기분이 드셨어요?
글쎄요. 제가 했던 고민들도 있었고, 또 상상하지 못했던 일들을 많은 사람들이 경험하는 걸 보기도 했죠. 사랑이란 자기가 선택하는 것이지만, 선택한다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운명적으로 다가와서 인생에 많은 영향을 끼치잖아요. ‘그렇다면 사랑이란 뭘까?’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사랑의 핵심은 행복이라고 생각하고 다들 시작하지만 결국 사랑의 핵심은 힘듦과 고통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우리는 어째서 이토록』이라는 제목 뒤에 감춰진 의미가 궁금해집니다.
굳이 대답을 한다면 ‘우리는 어째서 이토록 고통스러울까’, ‘우리는 어째서 이토록 힘들까’ 정도가 숨어 있을 거예요. 너무 힘들다고 생각해서 사연을 보내신 분들을 통해서 만들어진 책이니까요. 사연들을 쭉 읽어가다 보면 결국은 ‘사랑은 힘든 거구나’라는 생각에 다다르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사랑은 힘든 거구나’라고 생각하면 더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인생의 다른 일들도 달콤할 수만은 없고 만만할 수만은 없잖아요. 그런데 유독 사랑은 분홍분홍 하고 뽀송뽀송하고 행복행복 할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사랑하는 건 힘들 거야, 행복한 만큼 힘들어질 수 있어’라고 각오하는 사람에게는 오히려 수월해지는 측면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차원에서도 이 책은 사랑에 대해서 시사하는 바가 있다고 생각하고요.
“좋은 연애를 시작할 수 있는 시점은, 너무 외롭거나 너무 힘들 때가 아니라 혼자서도 재미있게 잘 지낼 수 있을 때일 거예요”라고 쓰셨습니다. 전작들을 통해서도 ‘혼자 있을 때 충만해야 둘이 되어서도 행복하다’고 말씀하셨는데, 같은 맥락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죠. 그래서 『혼자의 발견』과 『우리는 어째서 이토록』은 거의 같은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하지만, 약간 컬러감이 다른 책이기도 하고요. 메시지가 비슷한 걸 떠나서 애초에 저는 그렇게 생각하니까요. 연애와 관련된 어떤 이야기를 풀든 빠트릴 수 없는 부분인 거죠. 그런데 사연들을 봤을 때 다들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게, 혼자 있는 시간을 견디지 못 하는 태도들이었던 것 같아요. 물론 ‘혼자 있는 것이 싫어’라고 느끼는 부분이 좋은 연애를 시작하게 해주는 동력이 될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누구를 만나든 만나지 않든 자기 상태를 부정하려고 하고 벗어나려고만 한다면 그 안의 좋은 가치를 발견하지 못 하는 건데, 그러면 결국 어떤 식의 선택이든 도망치는 것일 수밖에 없거든요. 나로부터 도망치고, 지금 내가 감당해도 좋을 고독으로부터 도망치고, 자신을 직면하는 노력을 하지 않으려고 하는 거죠. 그 상태에서 누구를 만났을 때는 당연히 상대에게 ‘나의 외로움이나 상처를 해결해줘’라는 태도로 일관하게 돼요. 그 사람을 만나려고 한 건 외롭지 않으려고 했던 일이니까요.
책에서 반복적으로 이야기하시는 것 중에 하나가 “나는 언제 행복해지는 사람이지?”, “내가 원하는 연애란 어떤 거지?”를 생각해 보라는 건데요. 작가님은 ‘내가 원하는 연애’가 무엇인지 찾으셨나요?
그 이야기는 『혼자의 발견』에서도 썼고, 이번 책에도 나와 있는 내용인데요. 예전에는 같이 있으면 나의 고통을 잊게 해주고, 같이 있으면 위로가 되고, 같이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행복한 사람과 있으면 좋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같이 있지 않은 시간에도 나는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행복해야 하잖아요. 그러니까 굳이 같이 있지 않아도 늘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는 사람, 그 느낌에 대해서 나 스스로가 편해질 수 있는 관계, 그런 가치를 같이 공유할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 곁에서 서로가 평온하게 지낼 수 있는 관계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예전에 제주도에 갔을 때 비자림에서 연리목을 본 적이 있어요. 저도 한 때는 그런 사랑을 하고 싶었고, 내 존재가 잊혀질 정도로 상대방에게 헌신하고 그만큼 상대도 나한테 헌신하는 걸 꿈꿨던 적이 있어요. 그런데 지금은 예전과는 많이 달라진 것 같아요.
지금은 어떤 연애를 꿈꾸세요?
제가 좋아하는 시 중에 칼릴 지브란의 「함께 있으되 거리를 두라」는 시를 보면 이런 구절이 나와요. 사원의 기둥들도 서로 떨어져 있다고요. 예전의 저는 연리목 같이 지고지순하고, 얽히고설키고, 가장 극적인 형태로 결합하는 걸 꿈꿨다면, 지금은 떨어져 있지만 두 사람이 똑같이 소중한 존재로 서로를 인정하고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사랑이 좋다고 생각해요. 사원의 기둥처럼, 떨어져 있어도 어쨌든 같은 사원을 이루고 있는 거죠.
‘왜 솔직하게 말을 못해?’ 내 애인의 이중언어
책에 실린 고민처럼 다툴 때마다 ‘헤어져’라는 말을 쉽게 하는 연인 때문에 힘들어하는 사람들도 있는데요. 그 말은 반어법 적인 표현일 수도 있고, 충격요법으로 사용한 것일 수도 있다고 하셨어요.
어떤 사람은 정말 지긋지긋해서 헤어지자고 할 수도 있죠. 마지막 통보 식으로요. 어떤 상황에서는 손을 내민 채로 마음속으로는 ‘나 좀 잡아줘’라고 생각하면서 그렇게 말하기도 해요. 마음의 경우의 수는 너무 많은 것이 있지 않을까요. 그래서 그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고 답을 드렸던 거예요. 그렇게 헤어짐을 쉽게 이야기하는 태도는 잘못 되었지만 ‘네가 이러니까 정말 못 사귀겠다’라고 단칼에 끊어내는 것보다는, 그 말에 숨겨져 있는 메시지를 읽어보려고 노력할 필요는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다양한 이유가 있지 않겠느냐고 이야기해 드린 거예요.
“A라는 생각을 A라고 표현하지 못 하고 돌려서 A′로 표현하는 것”이 문제의 본질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연인은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우리는 왜 솔직하게 말하지 못할까요?
그게 연애 관계 자체가 갖고 있는 극단성, 양면성이 아닐까요. 부모님한테도 못할 이야기를 연인한테는 하고, 부모님하고는 소원하게 지내는 경우라도 연인한테는 피와 살을 다 내어주고 대신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은 감정이 들기도 하잖아요. 혈연보다도 더 강렬하게 나를 매혹하지만 끊어지는 순간에는 그렇지 않죠. 책에도 썼듯이 사귀기 시작할 때는 두 사람의 마음이 필요하지만 헤어지자고 할 때는 ‘너랑 못 살겠다’ 말해버리면 끝이에요. 그런 관계라는 걸 우리는 다 알고 있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내가 진짜로 원하는 걸 말하면 이 관계에 불편함이 오지 않을까’ 우려해서 조심스러운 것도 있고요. 한편으로는 ‘B라고 말해도 사실은 A라고 말하는 거 알아채 줄 수 있지?’라고 이중언어를 사용하는 것 때문에 그렇게 보일 수도 있어요. 그런데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과의 커뮤니케이션을 배우는 일은 거의 없거든요. 그렇다 보니 메시지를 조금 더 깊이 숨기거나 간결하지 않게 전달하는 상대를 만나고 있는 사람은 불편한 점들이 분명 있겠죠. 하지만 또 사랑하는 사람이니까, 이해할 수 없는 커뮤니케이션조차도 이해해 보려고 노력하는 게 연애 관계 아닐까 싶기도 해요.
연애 조언을 해주다 보면 때로 단호한 표현을 하게 될 때도 있으실 텐데요. 걱정이 되실 때는 없나요? 타인의 연애에 대해서 의견을 낸다는 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일이잖아요.
아뇨, 저는 일대일로 상담을 한 것이 아니니까 걱정되지 않아요. 이건 책이잖아요. 책은 결국 담고 있는 콘텐츠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인데 겁이 났다면 저는 <마녀사냥> 때부터, 아니 그 이전에 <코스모폴리탄> 때부터 조언하는 역할을 하면 안 됐겠죠. 저는 제 조언이 정답이라거나 ‘이거대로 하세요’라고 명령하거나 어떤 가르침을 주는 사람이 아니에요. 저 역시 숱한 연애를 경험했고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을 만나서 13년 동안 취재를 했던 사람으로서 ‘지금 저의 결론은 이런 것인데, 당신이 나를 신뢰하고 질문을 한다면 이 정도의 답이 맞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최종 선택은 당신의 몫입니다’라고 말하는 거죠. 아시다시피 제 생각을 털어놓는 작업이었기 때문에 그것 때문에 부담감을 느낀 적은 없어요.
현재 한국에서 연애에 대해 가장 잘 알고 많이 조언해 주는 사람 중 한 명이신데요. 그런 작가님께서는 연애 문제를 누구에게 상담하실지 궁금합니다.
저에게도 신뢰할 수 있고 마음을 털어놨을 때 따뜻하게 혹은 냉정하게 이야기해줄 수 있는 친구들이 있죠. 제가 방송이나 책을 통해서 연애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모든 정답을 다 알고 있는 건 아니잖아요. 저도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하지만 사랑 때문에 예상외의 행복과 예상외의 힘든 시간을 보낼 때가 분명히 있거든요. 그렇지만 누군가의 조언에 기대는 경우는 사실 많지는 않죠. 이야기할 사람이 필요하니까 정말 친한 누군가에게 털어 놓을 때는 분명히 있지만, 조언대로 실행을 하는 게 아니라 다양한 방법을 찾죠. 책을 많이 찾아보거나, 열심히 운동을 하거나, 내 마음 속을 들여다보기 위해서 요가나 명상을 하죠. 행복한 일이 있을 때는 그걸 만끽하려고 노력하고, 불행하다는 느낌이 들 때는 그대로 또 나 자신을 마주하려고 노력하는 편인 것 같아요.
혼자일 때와 연애할 때, 발견하게 되는 나의 모습도 다르겠죠?
연애를 하지 않을 때는 자기 자신과 조금 더 내밀한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장점이 있는데, 연애를 하면 혼자 있을 때는 전혀 알지 못했던 단점을 깨닫기도 하니까요. 그런 부분들이 다시금 나를 돌아보게 하는 것 같아요. 대학교 강연을 가면 많은 친구들이 저한테 물어봐요. 솔직히 자기는 연애 생각도 없고 결혼 생각도 없는데, 다들 연애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분위기로 만들어서 자기가 루저 같이 느껴진다고요. 연애를 별로 하고 싶지 않은데 억지로 할 필요는 전혀 없죠. 그렇지만 연애할 수 있는 기회가 왔을 때는 굳이 밀어내지 않고 둘이 시간을 보내본다면, 그 안에서 분명히 나 자신도 알지 못했던 나를 깨달을 수 있다고 말해줘요. 그러다 보면 새로운 방향으로 성장이 이루어질 수도 있다고요. 혼자 여행을 다니고 영화를 보는 것도 너무 좋죠. 그런데 둘이 있을 때만 비로소 알게 되는 자신의 영역이 분명히 있는 것 같아요.
주위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해서 다툼이 생기는 경우도 빈번한 것 같습니다. 친구의 애인과 자신의 애인을 비교하면서 불만이 쌓이기도 하고요.
그냥 어린 시절에는 충분히 그런 일들이 더 많이 일어난다는 생각이 들어요. 많은 사람을 만나보고 이 사람과 보내는 시간의 가치가 나에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되면 달라지는 거죠. 그런데 사실은 내 남자친구를 친구의 남자친구와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자기를 이루고 있는 거의 모든 것들을 다 저주하고 부정해야 되는 거나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어차피 나는 누군가 보다는 돈이 없고, 누군가 보다는 집이 작고, 누군가 보다는 학벌이 낮을 수밖에 없으니까요. 옆에 있는 사람을 자신의 트로피 같은 존재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누구를 만나든 불행한 상황이 이어지지 않을까요? 그런 마음이 들지 않을 때야 말로 옆에 좋은 사람을 허락할 수 있는 때가 아닐까 싶네요.
기자로 일하시면서 수많은 연애 실용서를 읽으셨잖아요. 그 가운데 가장 인상적이었거나 가장 많은 영향을 받으신 책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특별히 어떤 책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말하는 건 맞지 않을 것 같아요. 사랑 때문에 힘들어한 모든 사람들이 저한테 가르침을 준 사람들이었다고 생각해요. 제가 연애 기사를 많이 썼기 때문에 실제로 서른 살 쯤부터는 연애 상담을 해달라고 이야기하는 친구들이 많았고요. 그런 과정들 속에서 아픔의 사연들을 모으고 많은 분야의 전문가 분들과 만나서 취재를 해야 했어요. 그렇기 때문에 사랑 때문에 생겨난 아픔을 저에게 이야기해주고, 제가 그 아픔에 대해서 이야기했을 때 전문 분야의 답을 해준 사람들이 잊지 못할 한 권 한 권의 책들이나 마찬가지죠.
다음 연애에도 권태기는 옵니다
많은 연인들이 권태기를 겪으며 괴로워합니다. 이 시기를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사랑이 식었다는 신호인 건지 의심하기도 하는데요. 어떤 조언을 들려주고 싶으세요?
강연 때마다 권태기에 대한 이야기는 끊이지 않고 하는 편이에요. 거의 모든 커플들이 경험하는 일이기 때문이죠. 실제로 통계에도 나와 있어요. 1년 반에서 3년 사이에는 별로 안 만나고 싶다거나 이제는 별로 섹스를 하고 싶지 않다거나, 혹은 다른 이성이 눈에 들어오는 시간을 맞닥뜨리게 된다는 거예요. 그랬을 때 (관계를) 끝내도 돼요. 끝낼 수밖에 없는 사람은 그냥 그 만큼의 사랑을 했던 거죠. 그런데 끝내지 않아야겠다고 판단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이야기를 해줘요. 열정이 식은 자리에 서로의 신뢰나 ‘열정이 끝났지만 우리는 그게 다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마음이 자리한다고요. 바로 그 마음이 소중한 사람을 지키는 힘이 되는 거죠. 권태기가 왔을 때 끝내고 싶다고 생각되면 끝내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억지로 버틸 수는 없으니까요. 단, 그런 식으로 해도 다음 사람과 연애를 할 때 다시 권태기가 올 거라는 거예요. 그러면 그때 또 끝낼 건가요? 문제를 이번 연애에서 해결하지 못 하면 더 나이가 들었을 때 그 부분을 괴로워하다가 ‘서른쯤 됐으니까 결혼을 해야겠어’ 해서 결혼해도 분명히 또 권태기가 올 거거든요. 그때는 어떻게 하겠냐는 거죠. 그러면 또 이혼하나요?
열정이 식었다고 해서 사랑이 끝난 건 아니라는 걸 알아야 하는 거군요.
결국 핵심은, 사랑이라는 감정이 열정이 전부가 아니라 열정 뒤에 찾아오는 친밀함이 결국 관계를 지속하게 해주는 힘이라는 거예요. 친밀함이라는 건 서로에 대해서 오랜 시간을 함께 했을 때, 그리고 많은 일들을 경험했지만 그 안에서 서로에 대한 신뢰가 있다고 둘 다 느낄 때 생겨나게 되는데요. 그걸 인정 못 하겠다거나 나는 그게 뭔지 모르겠다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들은 헤어지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특히나 어린 날에는 열정만이 사랑의 전부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떨리는 마음이 사라지면 마음이 식었다고 판단하고 끝내기 쉽죠. 저는 20대 친구들이 ‘권태기인 것 같은데 어떡하죠?’라고 물으면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해요. 그런데 지금 못 배우는 건 괜찮지만, 친밀감이라는 게 존재한다는 걸 알지 못한 채로 중요한 시기에 맞닥뜨렸을 때는 정말 좋은 사람을 또 떠나 보내게 된다고 말해주죠.
‘잘 싸우는 방법’도 있을까요?
싸우기 시작하면 존댓말을 한다거나, 책에도 썼듯이 한 시간 정도 나갔다 오면서 시간을 갖는다거나, 다양한 방법이 있을 수 있겠죠. 제가 썼던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을 거고요. 그런데 한 시간 나갔다 오는 것에 대해서 상대방은 무시당했다는 기분이 들 수도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정답은 없는 거죠. 다만 왜 싸웠는지를 보면 분명히 커플마다 패턴이 있을 거예요. 상대의 말에 빈정거리거나 화살을 다시 상대방한테 돌리다가 싸우게 되는 식으로요. 매번 다른 주제를 가지고 싸우더라도 사실은 고유한 패턴이 있다는 걸 발견을 해야 되는 거거든요. 그래서 제일 중요한 건 ‘우리가 어떤 때 싸우는지’를 조금 더 넓은 시각에서 지켜볼 줄 알아야 되는 것 같아요. 싸움의 고유한 패턴을 찾아서 깰 수 있도록 해야 되는 거죠.
많은 경우 대화하는 과정에서 싸움이 커지는데요.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말 때문에 싸우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죠. 다른 것 때문에 싸우는 경우는 흔치 않거든요. 편하고 가장 가까운 사람이니까 ‘이 정도는 항의해도 되겠지’ 혹은 ‘이 정도까지 삐쳐도 되겠지’라는 느낌으로 조심하지 않는다면, 일단 자신을 먼저 지켜보세요. 그에 대한 리액션이 어떻게 돌아오는지 보고 ‘우리는 항상 이럴 때 싸우는구나’라고 생각되면 그걸 끊어낼 수 있도록 해야 돼요. 문제의식을 가진 입장 쪽에서 먼저 그렇게 말하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한 거예요. 저는 어느 누구한테나 필요한 대화법 중에 하나가 비폭력 대화라고 생각해요. 상대를 나쁜 사람이라고 판단하고 비난하거나, 책임을 전가하고 명령하는 식으로 대화를 하다 보니까 감정이 격해지고 서로 상처 주게 되는 거잖아요. 그러지 말고 ‘내가 이런 기대를 가지고 있었는데 지금 같은 현상이 나타나서 정말 속상해, 앞으로 안 그래 줬으면 좋겠어’라고 너무 무섭지 않게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렇지만 단호하게, 또 동시에 진지하게 말하는 거죠. 상대에게 상처가 되지 않도록 자신의 감정을 털어놓는 게 중요해요.
상대를 비난하지 않으면서 나의 감정을 전달한다는 게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사실 우리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이런 대화법을 배우고 사용하는데, 가까운 사람한테도 친절하게 내 의견을 전달하는 방법을 배워야 하는 거죠. 그게 쉽지 않은 이유는 ‘네가 알아서 나를 만족시켜 주지 않아서 내가 이렇게 불만을 늘어놓을 수밖에 없는 거야’라고 매 순간 자신의 기대치를 높이 올려놨기 때문이에요. 나도 내 마음 같지 않잖아요. 그런데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어떻게 내가 원하는 대로 다 해줄 수 있겠어요. 기대를 조금 느슨하게 해주는 순간 둘 사이는 오히려 더 타이트해지는 것 같아요.
믿음에 대한 이야기는 마치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 같죠. ‘네가 믿게끔 해야 믿지’라는 입장과 ‘나에 대한 믿음이 없으니까 의심을 하는 거잖아’라는 입장이 맞서고, 이야기가 그 안에서 뱅뱅 돌아요. 일단 믿어주는 게 답일까요?
나를 아끼고 나를 조금 더 대우해 준다고 생각하면 ‘네가 믿게 해줘 봐, 그럼 내가 믿지’라는 말이 나오기 쉽지 않다고 생각해요. 내가 나를 대우하는 것과는 관계없이 상대의 행동이나 태도에 따라 나의 행복 여부가 정해진다고 생각하면 당연히 거기에 기댈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마음속에 깊은 불안감이 있으면, 혹은 상대에게 좌우되지 않는 고유한 나만의 평안이 없으면, 믿는 척은 할 수 있지만 계속 믿는 관계가 될 수는 없는 거죠. ‘믿게끔 행동해’라고 말하는 사람은 사실은 ‘나는 네가 언제라도 도망갈까 봐 불안하고, 나는 네가 없으면 안 될 것 같아’라는 메시지를 보내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가장 가까운 자리를 허락해놓고 그 사람을 믿지 못 하면 결국 자기가 상처 받는 거예요. 그런 패턴은 충분히 깨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노력을 하지 않는 거죠. 계속 ‘네가 잘못했기 때문에 내가 못 믿는 거고, 네가 잘하면 믿을 거야’라고 이야기하지만 믿음의 문제는 자기 내면에 있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믿어주겠다’가 아니라 ‘그냥 믿는다, 저 사람이 눈앞에 보이지 않아도 내 시간과 내가 따로 맺는 관계들이 매우 소중하다’라고 생각해야죠.
어쩌면 불신은 ‘배신에 대한 두려움’에서 시작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약 믿었는데도 불구하고 상대가 믿음을 저버렸다면, 그냥 놓아준다고 생각하면 돼요. 그러면 ‘믿게끔 해’라고 말할 필요도 없는 거죠. ‘믿음을 깨버리는 너라면 나는 너를 곁에 두지 않을 거야’라는 생각을 매일 떠올리고 중심을 자신에게 두는 사람이 관계에서도 조금 더 건강하게 지켜볼 수 있어요. 믿지 못 하겠다면 가장 가까운 자리를 허락하지 말든가, 가장 가까운 자리를 허락했다면 믿든가, 아니면 아무도 안 사귀든가, 셋 중 하나를 선택해야 되는데 그게 쉽지만은 않죠. 연애의 어려운 점일 거예요. 제가 몇 년 전에 책에 이런 비유를 썼었어요. 상대방을 믿을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는데, 그 사람 머리에 헬멧을 씌우고 카메라를 장착하는 거라고요. 그러면 24시간 뭘 하는지 알 수 있죠.
24시간 감시하는 방법이 있었군요(웃음).
그런데 그걸 계속 보려면 나의 24시간은 온전히 버려져야 돼요. 굉장히 역설적이지 않아요? 내가 원하는 만큼 다 확인하고 싶으면 나의 삶이 없어지면 되는 것이고, 놓아버리는 순간 오히려 내 마음의 평안을 찾는 거죠. ‘나의 믿음에 대해서 네가 책임져, 나의 감정을 네가 다 알아서 해줘’라고 믿는 사람에게는 진짜 행복은 허락되지 않는 것 같아요. 결국은 결정해야 되는 거죠. 불신이 문제가 된다면 둘 중에 하나예요. 마음속에서 믿고 그걸 계속 되새김질하든지, 아니면 카메라를 달든지. 그런데 카메라를 달면 또 그 안의 영상 때문에 매일 전쟁이 벌어지지 않겠어요?
내 사랑은 왜 이토록 힘들까?
“지금 당장 잠자리가 부담스럽고 시도조차 하고 싶지 않다면 억지로는 절대 하지 마세요”라고 조언하셨는데요. 그렇다면 소위 ‘의무 방어’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모든 스킨십과 섹스는 두 사람의 동의가 완벽히 필요한 거잖아요. 원치 않으면 내가 왜 원치 않는지 설명할 필요는 있는 거죠. 나는 상대와 똑같은 인격체이고 똑같은 욕구가 있는 사람이니까요. 섹스가 하고 싶지 않다면 뭔가 문제의 포인트가 있는 건데, 그걸 놔둔 채로 그냥 물리적인 결합만 한다면 그게 뭘까요? 저는 사람과 사람의 결합에 대해서 그런 식으로 그냥 해버리면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하기 싫다는 내 의견을 전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이렇게 중요한 부분에 대해서 가볍게 여기는 사람과 어떤 이야기를 같이 할 수 있겠어요? 그리고 어떻게 같이 길을 걸어갈 수 있겠어요? 섹스를 하고 싶은 마음이 귀한 것처럼 하기 싫은 마음도 귀하다는 걸 스스로 인식하지 못 하면 자기는 그냥 소비되어 버리고 마는 거예요. 침대 위에서 소비 되어 버리고 마는 게 얼마나 슬픈 일이에요. 내 몸과 마음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이야말로 나를 사랑하는 방법이면서, 이 관계를 위해 가장 큰 노력을 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우리 사회에는 침대 위에서 침묵하는 여성들이 많은 것 같아요.
여성이 자신의 몸에 대해서 설명하거나 섹스에 대해서 불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굉장히 여성답지 못한 것으로 여겨지곤 하잖아요. 혹은 ‘많이 아니까 취향이 있는 거 아니냐’라고 하면서 지식이 곧 경험으로, 취향이 곧 경험의 많음으로 오해되고요. 이런 문화권에서는 자신에 대해서 설명하는 게 쉽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아요. 그래서 특히 여성들한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데요. ‘나는 이게 싫어’라고 이야기하는 과정 중에서 내 옆에 있는 남자가 계속 옆에 둘 만한 남자인지 아닌지를 아주 명쾌하게 파악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테크닉 적인 부분에서 부족하거나 둘 다 어색해서 잘 못할 수는 있어요. 그런데 자신의 욕구만 채운다든지, 그래서 나는 이게 뭔지 잘 모르겠는데 그것에 대해서 설명을 하지 못 하게 한다든지, 설명해도 들어주지 않는 관계가 지속된다면 ‘내가 여기에서 왜 이러고 있나’ 하고 생각해 봐야 될 적절한 타이밍이겠죠.
아직 『우리는 어째서 이토록』을 읽어보지 않은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세요?
책의 띠지에 보면 ‘내 사랑은 왜 이토록 힘들까’라는 메시지가 써져 있잖아요. 이건 제 마음 속에 일어나는 일이기도 하고, 연애 전문 칼럼니스트라고 하는 저에게도 쉽지 않은 주제예요. 이 주제는 단지 결혼 전까지의 고민거리 혹은 썸남썸녀만의 것이 아니에요. 누군가를 사랑하는 문제는 나와 관계를 맺는 문제와 멀리 떨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인생을 두고 고민해야 되는 큰 주제라고 생각해요. 『우리는 어째서 이토록』에는 그 큰 주제에 대한 사람들의 자잘한 고민들이 거의 다 담겨 있다고 생각하고요. 나와 다르지 않은 고민을 많은 사람들이 하고 있는 걸 보면서 ‘애초에 사랑은 그렇게 쉬운 게 아니었구나’라고 깨닫고 결국에는 ‘나의 생각들은 어떻게 정리할 것인가’를 고민해봤으면 좋겠어요. 누군가는 책을 보면서 ‘맞아, 나도 이런 고민이 있었는데, 이렇게 해야겠다’라고 생각하고 문제집이나 Q&A처럼 읽을 수도 있는데요. 그렇게 보셔도 무방하다고 생각해요.
말씀을 들으며 띠지를 바라보다 보니 책 표지에도 눈길이 갑니다.
보시면 핑크랑 블루가 예쁘게 섞이잖아요. 중간에는 굉장히 아름다운 그라데이션이 있고요. 한편으로는 서로 다른 두 존재가 만나서, 서로의 영역이 유지되면서도, 중간에 있는 영역이 아름답게 다른 컬러를 만들어낼 수 있는, 그런 관계의 양상을 보여준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런 연애를 하기 위해서는 ‘이 고민 정도는 뛰어넘어야 되는구나’라는 생각을 하면 좋을 것 같아요.
우리는 어째서 이토록곽정은 저 | 달
“연애칼럼니스트 곽정은 작가에게 사랑과 관련된 고민을 보내주세요. 보내주신 사연을 채택하여 직접 해결해드립니다”라는 공모를 진행하였다. 그중 110여 편을 추려 『우리는 어째서 이토록』에 모았다. 물론, 곽정은 작가의 다정하면서도 명쾌한 조언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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