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일단 가고봅시다!』, 『엄마, 결국은 해피엔딩이야』의 두 주인공 태원준 저자와 어머니가 세 번째 여행을 떠났다. 아시아와 유럽 여행에 이어 다시 한 번 시작된 대장정의 무대는 중남미. 모자는 200여일 동안 멕시코, 쿠바, 코스타리카, 페루, 칠레, 브라질 등을 거치며 지구의 나머지 절반을 여행했다.
“베테랑 여행자조차 애를 먹일 만큼 상당히 높은 여행 난이도를 자랑하는 곳이자 치안과 관련된 무시무시한 괴담이 가득한 곳”으로 떠난 만큼,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를 정도로 아찔한 순간들도 있었다. 하지만 보석 같은 자연과 문화 앞에서 잠깐의 고생은 씻은 듯이 사라졌다. 앞서 300일 동안 이어졌던 유라시아 여행을 통해 ‘캡틴’으로 거듭난 어머니는 “태어나 처음으로 내일이 궁금해 밤잠을 설치던 행복에 비하면 그깟 고단함은 밥알에 씹히는 작은 모래알이었다”고 회상한다. 그리고 태원준 저자는 “엄마가 세계를 여행하는 동안 나는 엄마를 여행했다”고 고백한다.
한계를 넘어서는 데에는 나이가 필요 없더라고요
앞서 두 권의 책을 출간하신 후 어머니와 다시 여행을 떠나게 되더라도 ‘오랜 기간은 힘들 것 같다’고 하셨는데요(웃음). 결국 다시 떠나셨네요.
실제로 긴 여행을 갈 생각은 없었고요. 책이 나온 후에 나름대로 바쁜 삶을 살고 있었기 때문에 어머니와 여유롭게 여행을 가는 꿈은 꾸지 않았어요. 취재나 촬영을 위해서 해외로 가는 일이 워낙 많았고, 지방 강연도 많았거든요. 거의 집에 머무는 시간이 없었을 정도였죠.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어머니께서 조금씩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이전에 300일을 여행하고 돌아오셨기 때문에 아직도 그 불씨가 남아있으셨겠죠. 또 다른 여행을 가고 싶으셨을 거고요. 유라시아 여행을 마칠 때도 어머니가 너무 아쉬워하셨어요. 조금 더 보고 싶으시다고요. 그런데 제가 바쁘다는 핑계도 있었고, 저는 나름대로 계속 여행을 떠났었기 때문에 어머니를 신경 못 쓴 거죠. 제가 나쁜 아들인 거죠. 그런데 계속 시간을 두고 그러다 보니까 어느 순간부터 어머니께서 슬그머니 여행 이야기를 하실 때가 많았어요.
이번 여행을 시작하게 되신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나요?
TV프로그램에 출연한 적이 있었는데, 제가 강연을 마치고 나서 방청석에 계신 어머니와 MC 분께서 대화를 나누셨어요. 그때 처음으로 남미에 가보고 싶으시다고 하시더라고요. 어머니께서 나중에 말씀하시길, 더 이상 여행을 가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하면 재미가 없을 테니까 그냥 한 말이라고 하시는 거예요. 신경 쓰지 말라고요. 그때까지만 해도 마음이 일렁이기는 했어도 결심한 건 아니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TV에서 마추픽추를 보시고는 엄청 흥분을 하시면서 저를 깨우시는 거예요. 그때 어머니가 정말로 다시 가고 싶어 하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뒤의 일정들을 정리하고 최대한 빨리 떠날 수 있는 날짜에 덜컥 비행기표를 예약했죠.
처음 계획하셨던 여행 기간은 어느 정도였나요?
5개월 정도 후에 돌아오는 표를 예약했었어요. 중남미는 워낙 큰 대륙이라 최소 4개월 정도는 여행해야 될 것 같았거든요. 그리고 미국도 경유해서 둘러보다 보면 5개월은 걸리겠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결국 또 길어졌죠(웃음). 여행이 끝날 때쯤 되니까 어머니께서 더 보셔야 될 것 같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때까지 절반 정도 밖에 보지 못했거든요. 그래서 제가 한국에 있는 누나에게 연락을 해서 여행을 연장했죠. 8개월 가까이 늘어났어요.
이전의 유라시아 여행과는 달라진 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어머니께서 주도적으로 계획하시고 이끌어 주시는 모습도 보이더라고요.
그렇죠. 이제는 어머니도 베테랑이 되셨으니까요. 300일 동안 배낭여행을 하셨잖아요. 웬만한 젊은 친구보다 더 베테랑이 되셨죠. 더 이상 낯선 곳에 대한 두려움이 없으시고 ‘일단 가서 해결하면 되지’ 하고 생각하시는 스타일이세요. 그리고 유라시아 여행을 갈 때는 제가 어머니를 모시고 다녔다면, 중남미에서는 그냥 같이 다닌 거죠. 친구랑 여행하는 것처럼요. 또 소위 각개전투가 가능해져서(웃음), 유라시아 여행 때는 무조건 어머니와 같이 다녔지만 남미에서는 달랐어요. 서로 보고 싶은 게 약간 다르면, 완전히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건 아니지만, 한 지역 내에서는 각자 보고 와서 다시 만나는 일들이 가능했어요. 제가 늦잠을 자고 있으면 어머니 혼자 동네 한 바퀴를 산책하시거나 아침을 드시고 오시기도 했고요. 유라시아 여행 때는 그런 일 자체가 없었거든요. 이번에는 파트너로써 같이 여행을 했던 것 같아요. 때로는 어머니께서 저를 이끌고 가기도 하셨고요.
어떤 여행자보다도 용감하게 도전하는 모습을 보여주신 것 같아요. 특히 온두라스는 너무 위험한 곳이라고 만류했지만 어머니께서 선택하셨잖아요.
그렇죠. 중남미 같은 경우에는 사실 치안이 안 좋은 곳들이 조금 있어요. 그 중에서도 가장 위험한 곳이 온두라스라고 하는데, 그래서 저는 온두라스를 건너뛰려고 했어요. 그런데 어머니께서 어차피 여행 나왔는데 1박 2일이라도 들르면 좋지 않겠냐고 하시더라고요. 어머니께서 대단하신 거죠. 두려움이 없으신 것보다 저보다 호기로우세요. 여행과 새로운 곳에 대한 열정도 넘치시고요. 여행을 가서 한 곳에 오래 머무는 분들도 계시고, 여행의 방식이 다 다르기 때문에 뭐가 더 좋다고 할 수는 없지만, 어머니는 최대한 많은 곳에 발자국을 남기고 싶어 하셨어요. 용기도 많으시고, 새로운 곳을 탐험하고자 하는 열정도 대단하시니까, 누구보다 뛰어난 여행자이시죠.
물 공포증을 떨치시고 직접 바다에 뛰어들기도 하셨던데요. 그렇게 스스로 틀을 깨시는 모습을 보면서, 아들로서 자극도 많이 받으셨을 것 같습니다.
자극도 받고 정말 대단하시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러면서 저도 많이 배웠죠. 물 공포뿐만 아니라, 유라시아 여행 때부터 계속 한 꺼풀씩 넘어서셨거든요. 예전에는 오토바이가 굉장히 위험하다고 생각하셔서 저한테도 절대 못 타게 하셨는데, 베트남에서 오토바이 택시를 타보자고 제안하시기도 했고요. ‘송끄란’이라는 굉장히 격한 축제가 있는데, 자칫하면 다칠 수도 있는 축제라서 저는 어머니가 즐기실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어머니는 숙소에 모셔다 드리고 혼자 가려고 했더니 뛰어나오시더라고요. 왜 데려가지 않느냐고 하시면서요. 그리고는 젊은 친구들이랑 어울려서 축제를 즐기셨어요. 그건 어머니 입장에서도 넘어서신 거고, 저 스스로도 ‘엄마는 안 될 거야’라고 생각했던 관념조차 없어진 거죠. 그런 모습을 지켜보면서 ‘정말 엄마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생각했어요.
하늘을 날기도 하셨죠.
짚라인이라고 불리는 ‘캐노피’도 타셨고요. 끝나고 나서는 패러글라이딩을 하시자고도 했어요. 아쉽게도 바람이 너무 세서 하실 수는 없었지만요. 유라시아 여행 때는 어머니께서 환갑이셨고 이번 남미는 63세에 떠나신 거였거든요. 그런 분이 하늘을 날고 바다 속에서 스노쿨링을 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우리 엄마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었고, 한계를 넘어서는 데에는 나이가 없다는 사실도 절절하게 느꼈어요. 그리고 어머니가 새로운 것에 도전하실 때 제가 옆에서 같이 하는 것도 재밌었지만, 어머니가 도전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기록하는 게 더 재밌었어요. 덕분에 책에도 어머니의 사진이 많이 실릴 수 있었고요.
비로소 어머니를 여행한 것 같아요
“엄마가 세계를 여행하는 동안 나는 엄마를 여행했다”고 하셨어요. 이번 여행을 통해서 어머니를 더 이해하게 된 부분이 있다면, 어떤 건가요?
유라시아 여행보다 속 깊은 대화가 훨씬 더 많았어요. 아시아는 여행의 출발지였기 때문에 서로 정신이 없었거든요. 적응 기간이 필요했던 거예요. 그리고 어머니께서 첫 여행을 나오셨기 때문에 멋진 모습들을 보시면서 감탄하시느라 바쁘셨죠. 유럽의 경우는 현지 친구들 집에서 주로 묵었기 때문에 단 둘이 같이 있는 시간들이 없었어요. 그런데 중남미 여행은 시작부터가 많은 대화가 오고 갔죠. 유라시아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어머니는 가게를 하셨고 저는 대학에 진학하면서 누나랑 서울에서 살았기 때문에 대화가 깊을 수가 없었거든요. 그런데 여행 이후에는 어머니와 같이 살면서 대화가 많아졌어요. 그런 상태에서 남미까지 같이 다녀왔기 때문에 훨씬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눴죠. 어머니랑 저랑 둘만 알 법한, 둘만 알아야 할 비밀 이야기까지도 하게 됐고, 예전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기도 했어요. 일상 속에서는 낯 뜨거워서 하지 못할 속 깊은 이야기도 하고요. 유라시아에 여행 때보다 훨씬 더 마음을 터놓고 속 깊은 이야기를 많이 나눴기 때문에, 이 여행을 마치고 나서야 비로소 어머니를 여행했다고 고백한 거예요.
어머니께서 가장 인상적이었다고 말씀하신 곳은 어디였나요?
아르헨티나를 굉장히 좋아하셨어요. 아르헨티나에서 네 개 정도의 지역을 돌아봤는데, 다 좋았어요. 남미의 스위스라고 불릴 정도로 풍경이 예쁜 산악 호수 마을, 빙하가 있는 곳, 땅끝 마을, 부에노스아이레스, 이렇게 네 군데를 봤는데 다 너무 좋으셨대요. 또 아르헨티나가 소고기가 맛있고 싸요(웃음). 정말 질이 좋은 고기인데 한 근에 5000원이 안 해요. 어머니께서 고기를 좋아하시거든요. 그런 점도 작용한 거 같아요(웃음). 그리고 풍경도 좋았고요. 소고기뿐만 아니라 아르헨티나 음식이 맛있었어요. 심지어 좋아하시는 고기까지 싸서, 호스텔에서 매일 요리해서 드실 수 있었으니까, 아르헨티나를 굉장히 좋아하셨던 것 같아요.
작가님께서는 어디가 제일 좋으셨어요?
저는 갈라파고스가 제일 좋았어요.
책에서 말씀하시길, 파라다이스 같은 곳이라고 하셨죠.
제가 자연과 동식물을 진득하게 보는 걸 좋아하거든요. 그런데 갈라파고스는 동물들이 사람을 보고 겁을 내지 않아요. 태어날 때부터 사람이 자신들을 해치지 않는다는 걸 아니까요. 경계하는 느낌은커녕 먼저 놀자고 다가오는데, 너무 신기하고 재밌는 거예요. 그리고 갈라파고스는 굉장히 특색 있는 곳이잖아요. 지형이나 형성 과정도 흥미로운 부분이 많고요. 본토와는 또 다른 토착문화도 있어요. 우리나라도 섬에 사시는 분들만 가지고 계신 문화가 있듯이, 자신들의 문화를 지키려고 하고 자부심이 강해요. 동식물의 보존은 국립공원에서 하고 있는 일이지만, 시민들이 동참해서 잘 돌봐주기도 하시고요. 사람들도 너무 착했고 두루두루 좋았어요.
‘우유니 소금 사막’은 일생에 한 번은 꼭 봐야 할 풍경이 아닐까 싶었어요.
그곳은 지구상에서 제일 비현실적인 풍경이거든요. 그리고 마침 저희가 갔을 때가 우기였어요. 제가 건기 때도 촬영차 가봤는데, 건기와 우기 때 풍경이 많이 달라요. 건기 때는 정말 메마른 사막이에요. 물론 그 풍경도 독특하기는 하죠. 전 세계에 온 사방이 하얀 곳은 없으니까요. 그런데 우기에는 비가 와서 하늘이 반사가 되거든요. 그곳에 서 있으면 ‘내가 지금 여기 있는 게 맞나’ 하고 혼란이 와요. 말도 안 되는 풍경이어서요. 시각적으로는 우기의 우유니 사막 풍경을 따라올 만한 곳은 없는 것 같아요. 갈라파고스가 최고라고 말씀 드렸던 건, 제가 여행지를 시각적으로만 따지지 않기 때문에, 저에게는 우유니 사막이 1순위는 아닌 건데요. 시각적인 걸로만 따진다면 우유니 사막이 압도적인 1위죠.
마추픽추는 어머니께서 오랫동안 꿈꿔 오신 곳이었잖아요. 그런데 막상 가셨을 때는 허탈함을 느끼기도 하셨어요. “영원한 꿈으로 남겨둘 걸” 하고요.
그 말씀을 듣고 이제는 정말 여행자가 되셨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뭐든지 좋다고 감상을 하는 게 아니라, 지금까지 쌓아온 여행 내공과 봐 왔던 풍경들을 종합해 가면서 어머니의 생각으로 풀어낼 수 있으신 거잖아요. 진정한 여행자라는 느낌이 들었죠. 그리고 ‘그냥 나의 로망으로 남겨둘 걸’ 하고 생각하시는 것도 대단한 거잖아요. 여행이라는 게 보고 느끼는 것만 반복될 수는 없는 것 같아요. 때로는 기대가 너무 커서 실망이 커지기도 하는 게 여행인데, 어머니를 보면서 그걸 다시 한 번 느꼈어요. 저도 장기간 여행을 하다가 가끔 매너리즘에 빠지거든요. 어느 순간 설렘이 없어질 때가 있어요. 실망이라기보다 감흥이 덜 한 순간이 있는 거예요. 이제 어머니도 그런 걸 알게 되시겠구나, 싶기도 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구 곳곳에는, 제가 알지도 못하고 가보지도 않은 그곳에, 무언가 더 대단한 것들이 계속 나와요. 그래서 여행을 계속할 수밖에 없어요(웃음).
애틋했던 ‘엄마의 여행 노트’
『엄마, 내친김에 남미까지!』에는 아버지와의 여행을 회상하는 순간도 담겨 있습니다. 아버지와의 여행이 “지금 내 여행의 토양”이라고 하셨는데요. 어떤 의미인가요?
어릴 때 아버지를 잘 따랐다기보다는, 아들들은 암묵적으로 그런 게 있어요, 아버지의 말씀은 무조건 명령인 거죠(웃음). 친근한 존재이기도 하지만요. 아버지 입장에서는 뭐든 시키면 잘하고 말 잘 듣는 아들이 예쁘셨겠죠. 그래서 어디 가실 일이 있으면 많이 데리고 다니셨어요. 어디 간다는 말씀도 안 하시고 그냥 차에 태우고 가셨어요. 대화도 없이 그냥 음악 틀어 놓고 가시는 거예요. 그때는 가기 싫었던 적도 있었고 지루하기도 했는데, 지나고 보니까 아버지께서 아들이 예뻐서 더 많이 데리고 다니고 싶으셨던 거죠.
당시의 경험이 작가님께 미친 영향은 무엇인가요?
제가 중학교 때 미국으로 캠프를 갔었는데, 너무 큰 세상을 보고 충격을 받았었어요. 그때의 경험이 여행을 좋아하고 많이 다니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됐죠. 그런데 원초적으로 들어가 보면, 아버지와 계속 어딘가를 여행했기 때문에 세상에 더 큰 게 있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던 것 같아요. 미국에서 낯선 환경에 적응하고 즐길 수 있었던 것도 그래서 가능한 일이었던 것 같고요. 그리고 대학교에 간 이후에는 방학마다 배낭여행을 떠났죠. 그때 아버지가 여비를 보태주기도 하셨고, 아버지 공장에서 일을 하고 정당하게 월급을 받아갈 기회도 주셨어요. 제가 귀국했을 때 공항에 마중을 나오시기도 했고요. 제가 지금까지 많은 여행을 다녔지만, 귀국했을 때 공항에 마중 나왔던 분은 아버지가 유일해요. 두 번 마중을 나오셨었는데, 여자친구가 있을 때도 공항에 마중을 온 적은 없었거든요(웃음). 아버지가 표현은 하지 않으셨지만 특별하셨던 거죠. 관심 없는 척하시지만 엄청나게 마음이 따뜻하셔서 결국에는 다 챙기시는 분이셨던 것 같아요. 공항에 마중 나오셨던 기억만 떠올려도 마음이 찡한데, 지금은 그런 아버지가 안 계시니까 가슴이 아프죠.
이번 여행에서 아버지를 떠올리신 이유가 있으세요?
이번 남미 여행이 저한테는 조금 더 ‘여행다운 여행’이었거든요. 유라시아 여행도 재밌었지만, 예전에 유라시아 지역을 꼼꼼하게 본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중남미는 촬영 차 한 나라 정도만 갔었고 다 돌아본 적이 없었거든요. 다 처음 가본 곳이었고 너무 좋았던 거죠.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저도 내일이 기대되는 거예요. 그런데 새로운 걸 보고 좋은 걸 보다 보면 사랑하는 사람이 생각나잖아요. 그럴 때 아버지 생각을 많이 했죠. 어머니와는 그래도 많이 여행하면서 다양한 것들을 봤지만, 아버지는 더 이상 보여드릴 수 없는 상황이라... 아쉽기도 하면서 많이 생각이 나서 책에서 고백을 한 거죠. 보고 싶다고.
<엄마의 여행 노트>에서 어머니는 이렇게 적으셨어요. “당신이 눈을 감던 날은 내게 없는 날이야. 내 인생에 그 하루는 없는 날이지”라고요. 이 문장을 읽으시고 가슴이 먹먹해지셨을 것 같아요.
그런 말씀을 하신 적은 있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의 흑백이라고요. 어머니가 참 밝고 유쾌하신 분인데, 길가에 핀 꽃만 봐도 좋아하시는 분이거든요. 그런데 이제는 세상이 흑백이라고 보인다고 말씀하시니까... 그래서 제가 모시고 떠나게 된 거죠. 어머니를 보듬어드리고 치유해 드리기 위해서요. 저도 여행을 하면서 고민이나 스트레스가 희석되거나 없어졌거든요. 어머니도 새로운 풍경을 보고 리프레시를 하면 저와 같은 감정을 가지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예상이 맞아 떨어진 거죠. 맞아 떨어지다 못해 철철 흘러 넘쳤죠(웃음). 그래서 500일 넘게 여행을 하게 된 거고요.
<엄마의 여행 노트>를 읽고 어떤 느낌이 드셨어요?
어머니가 글을 잘 쓰신다는 생각도 들고요(웃음). 제가 쓴 대여섯 페이지의 글보다 어머니의 한 줄이 임팩트가 훨씬 더 크다고 느껴졌어요. ‘어머니의 연륜에서만 나올 수 있는 글이구나’ 하는 생각도 들죠. 어머니에 대해서 몰랐던 점들도 알게 되고요. 할머니에 대한 애틋한 감정들은 잘 몰랐던 것 같아요. 물론 할머니가 얼마나 그리우신지, 또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알지만 <엄마의 여행 노트>에서 정말 솔직하게 고백하시잖아요. 여행지에서 할머니를 떠올리신 적도 있다고 하시는데, 그 순간에 저한테 말씀을 하시지는 않았거든요. 그런 점에서 특히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들은 많이 와 닿았죠. 저도 완벽히 알고 있었던 게 아니니까요. 누구나 엄마 하면 애틋함이 있잖아요. 저는 엄마를 떠올리면 웃음이 나오지만, 대부분 엄마 하면 애틋하잖아요. 어머니도 자신의 엄마를 그렇게 생각할 텐데, 저는 그걸 알 리가 없었거든요. 그냥 할머니라고 생각하지 ‘엄마의 엄마’로 생각하지는 않잖아요. 그러다가 비로소 ‘아, 우리 할머니가 엄마의 엄마였구나’ 하고 깨닫게 되는 거죠. 그런 생각을 하면서 애잔해지고 애틋해지고... 그랬죠.
중남미 여행은 블록버스터 영화와 같아요
유럽, 아시아, 중남미를 모두 여행하셨는데요. 부모님과 배낭여행을 떠나기에 가장 좋은 곳은 어디라고 생각하세요?
아시아죠. 일단 부모님을 모시고 가신다고 하면, 그 분들의 부모님은 대부분 50대 이상이실 텐데, 체력적인 측면이나 경험적인 측면에 있어서 장시간 이동은 부담이 될 수밖에 없잖아요. 유럽만 해도 가는 데 열 시간 넘게 걸리고, 남미는 서른 시간 정도 걸리거든요. 그리고 부모님을 모시고 가신다면, 저처럼 오래 떠나시기 보다는, 휴가를 이용한 짧은 여행일 거예요. 그런데 아시아는 어디를 가나 이동에 무리가 없고, 그게 체력적으로도 도움이 돼요. 이동 시간이 짧다는 건 더 오래 여행을 할 수 있는 거니까, 그런 점에서도 좋을 것 같고요. 주어진 시간 내에서 최대한 길게 여행하시는 게 좋잖아요. 그리고 유럽은 물가가 비싸서 경제적인 측면에서 부담이 되실 수 있어요. 특히나 부모님을 모시고 가면 조금 더 편한 곳에 모셔야 하잖아요. 숙소도 그렇고 식당도 그렇고요. 물론 경제적인 문제가 없으시다면 유럽도 추천해요.
아시아를 추천하시는 또 다른 이유가 있나요?
장점이 꽤 많죠. 음식 같은 것도, 곳곳에 향이 강한 음식이 있기는 하지만, 심한 거부감 없으실 거고요. 생각보다 볼거리가 많아요. 중국 같은 경우도 그렇죠. 저는 전 세계 볼거리의 1/3 또는 1/4은 다 중국에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워낙 면적이 크고,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고, 다양한 문화를 가진 나라니까요. 중국을 포함해서 동남아시아 곳곳에는 부모님이 충분히 감탄하실 만한 볼거리가 많아요. 그래서 부모님과 여행을 가신다면 아시아 지역이 좋죠.
『엄마, 내친김에 남미까지!』를 읽고 부모님과 떠나는 중남미 여행을 계획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 같아요. 그 분들에게는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으세요?
스페인어를 몇 마디라도 아시는 게 도움이 될 거예요. 스페인어 단어장 정도만 가져가도 좋으실 것 같아요. 남미에서는 몇몇 나라를 빼고는 스페인어를 쓰는데 영어가 잘 통하지 않거든요. 의사소통이 안 돼서 길 위에서 헤매게 되면 부모님은 체력적으로 힘들어하세요. 저는 여행을 할 때 언어 걱정하지 말고 일단 가보시라고 말씀을 드리는 편인데, 중남미는 영어가 잘 통하지 않는 곳이어서 스페인어가 꼭 필요해요. 그리고 중남미는 아무래도 치안적인 문제들을 많이 걱정하시니까, 가급적 혹은 절대, 밤에는 나가시지 않는 게 좋습니다. 그리고 이건 어떤 여행이든 공통되는 이야기인데요. 부모님과 여행하실 때는 식사를 잘 챙겨드려야 돼요. 어르신들이 ‘당 떨어진다’는 표현을 하시잖아요. 그게 진짜예요. 제때 끼니를 안 드시면 당이 확 떨어지시면서 신경도 예민해지세요. 그러니까 가급적 부모님의 식사 시간을 지키셔야 조금 더 수월하게 여행을 하실 수 있을 것 같아요.
중남미 여행의 가장 큰 매력은 무엇일까요?
여행지에 대해서 기대하는 모든 것을, 그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보실 수 있을 거예요. 중남미는 정말 여행계의 블록버스터거든요. 제가 종종 여행을 영화에 비유하는데, 아시아는 역사 다큐멘터리라면, 유럽은 로맨틱 코미디 같아요. 아시아는 워낙 역사가 오래 된 나라들이 많고 유적이나 볼거리가 많거든요. 유럽은 달달하고요. 남미는 규모로 밀어붙이는 블록버스터 같은 곳이에요. 일단 모든지 규모로 압도해요. 우유니 소금 사막도 전라북도만한 크기이고요. 수십 미터에 달하는 피라미드 유적이 여기저기 있어요. 그래서 블록버스터라고 하는 것 같아요. 볼거리가 많기도 하지만 규모가 압도적으로 크니까요. 그리고 우리가 이전에 경험해 보지 못한 문화와 사람들이 있죠. 도시나 유적 같은 것도 생각보다 크고, 아름답고, 멋져요. 무엇을 기대하시든 최소한 그 기대치까지는 미칠 거고요. 남미를 처음 가보신 분이라면 웬만해서는 실망하실 일이 없으실 거예요. 아마 남미를 다녀오신 분들은 저와 같은 이야기를 하실 것 같아요. 여기저기 다녀봤지만 여행의 끝판왕은 남미라고요. 저도 남미를 다녀오고 나서 남미 예찬론자가 됐어요.
엄마, 내친김에 남미까지!태원준 저 | 북로그컴퍼니
아시아편 《엄마, 일단 가고봅시다!》가 여행 초반 모자의 설렘을 담았다면, 유럽편 《엄마, 결국은 해피엔딩이야!》는 사람 사이를 여행한 모자의 유쾌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출간 전부터 화제를 모은 이번 책은 보는 것만으로도 압도되는 중남미의 장대한 자연 속에서 500일간의 여정을 아름답게 마무리한 모자의 코끝 시큰한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