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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새난슬 “그냥 모난 돌로 살아가자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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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새난슬, 독특한 네 글자 이름만큼이나 그녀의 삶은 평범함과는 거리가 있어 보‘였’다. 가수 정태춘과 박은옥의 외동딸, 온몸에 그려진 타투, 펑크록 밴드 보컬과의 (조용하지만은 않았던) 결혼과 이혼, 싱글맘, 서른이 넘어 데뷔한 싱어송라이터… 그녀의 책 『다 큰 여자』를 펼치며 “문제적 여자의 파란만장 멘탈 성장기”라는 부제 앞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책장을 덮을 때 즈음, 그녀의 이름 앞에 붙은 ‘문제적 여자’라는 수식어를 떼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뜨겁게 사랑한 후에 차가운 이별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그녀만의 일도 아닐뿐더러, 모성 앞에 여성성이 희생되는 사회 속에서 겪게 되는 심각한 산후우울증도 낯선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진짜 ‘문제적’인 건 그녀와 같은 삶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 안의 시선, 그 속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편견이다. 타투를 새긴 여성의 몸을 바라보며 “저래서 시집이나 가겠어?”라고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는 것처럼.

 

『다 큰 여자』가 정새난슬의 ‘성장기’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그녀는 자신을 바라보는 곱지 않은 시선들 사이에서도, 흔들릴지언정 ‘나다움’을 잃지 않았다. 여전히 사회는 이혼녀를 향해 “이혼이 자랑이냐”고 힐난하고 “애도 있는데 네가 더 참고 살지 그랬니”라고 책망하지만, 정새난슬의 대답에는 주저함이 없다. “모든 계절을 겪고 이렇게 튼튼하게 지내는 게 나는 너무 자랑스러워요” 그렇게 그녀는 흔들려도, 불안해도, 우울해도, 스스로의 목소리를 따라 걷는 길을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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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 벌린 상처로 노래를 불러봐

 

『다 큰 여자』에서 아주 솔직한 이야기들을 들려주셨어요. 산후우울증과 자살기도, 이혼에 대한 부분들까지요. 짐짓 모른 체 하거나 에둘러 말하실 수도 있었을 텐데, 힘들게 이야기를 꺼내신 이유가 있나요?

 

제가 한창 산후우울증에 걸렸을 때 생각한 건데요.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네가 유별나서 그래’라거나 ‘네가 지금 미쳐가고 있는 거야’라고 말을 하기도 하잖아요. 그런데 사실 그게 아니거든요. 많은 여성들이 그런 일을 겪고 있지만 수면으로 많이 드러나지 않는 거잖아요. 그래서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우울에 침잠한 채로 사라져 가는 거죠. 자존감도 떨어지고 정체성에 큰 혼란을 겪게 되고요. 그렇다면 차라리 그런 것들을 기록으로 남기자고 생각했어요. 네가 미친 거라는 소리를 듣고 있는 다른 여성들을 위해서라도. 그 사람들이 미친 게 아니잖아요. 인생의 어떤 지점에서 누구나 우울할 수 있고, 누군가 어둠 속에 잠겨 있을 수도 있는 거니까요. 이 책이 훌륭한 사료가 되는 것도 아니고 개인의 기록이기는 하지만, 누군가 ‘이런 여자도 있었구나, 나보다 더 유난스러웠구나’ 하고 마음을 놓을 수 있다면, 이 이야기가 기록으로 남을 필요가 있다고 느꼈어요.

 

책을 다 읽고 보니 ‘어물쩍 넘어가는 건 정새난슬의 스타일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사실 이혼하고 나서 많이 다운돼 있었어요. 이혼은 굉장히 고통스러운 일이니까요. 그때 저를 구해준 책이 『정희진처럼 읽기』였어요. 그 책에 프란츠 파농의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의 독후감도 실려 있었는데, 그런 이야기가 있더라고요. 어떤 얼룩을 뒤집어씀으로써 얻게 되는 인식론적 자원이 있다고요. 제가 이혼을 하고 자살 기도를 했다는 상처를 밖으로 드러내면, 사람들이 저를 멀쩡한 부류가 아닌 바깥의 사람으로 바라볼 수도 있죠. 그런데 그곳에 서서 안쪽을 들여다보면서 깨닫는 것들이 있는 것 같아요. 내 안에 차오르는 새로운 말들도 있고요. 제가 노래 가사에도 썼는데 “입 벌린 상처로 노래를” 하라는 게, 상처에서 벗어난 뒤에 다시 그곳으로 걸어 들어가서 바라보는 거예요. 그런 후에는 정말로 단어들을 얻게 돼요. 오히려 저는 (그런 게) 힘이 되는 것 같아요. 제가 타투를 많이 한 것과도 관련이 있는 저의 성향 같기도 해요. 누군가가 ‘왜 타투를 하고 그래’라고 하면 더 (타투를) 하거나, 그런 식으로 부딪혀가는 거죠.

 

‘타투녀’, ‘이혼녀’라는 이유로 사회의 편견에 부딪힐 때가 있으시잖아요. 그럴 때는 ‘그럼 평범하게 사는 게 어떤 건데?’라는 생각도 들 것 같은데요. 어떤가요?

 

저는 오히려 제가 모난 돌 같지 않고요. 사람들이 조금 신기한 것 같아요. 어떤 통념이 지배하는 사회에 사느냐에 따라서 사람의 삶이 너무 다르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그것에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있나 싶기도 하고요. 물론 ‘모난 돌이 되지 말고 동글동글하게 섞여 나가서 문제를 일으키지 말고 살자’는 것도 방식의 하나이긴 하죠. 그런데 사실은 제가 이상한 게 아니잖아요. (스스로를) 이상하다거나 문제적 여자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는 것 자체가 오히려 그 이상함에 맞대응 하기 위한 제 나름의 단어 선택이었는지도 모르겠어요. 제 깊은 속마음에서는 제가 정말 자연스러운, 흔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게 있는 것 같아요. 영국 같은 데에서도 살아봤지만 이런 정도로 해서 눈에 띄는 사람은 아니거든요. 다만 나라마다 상황이 다르니까, 한국에서는 아직까지 이런 것에 대한 논의가 많이 되지 않았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없으니까, 그렇다면 지금 이야기하자고 생각하는 거예요. 앞으로는 바뀔 거니까요.

 

책 제목이 『다 큰 여자』예요. 스스로 ‘다 큰 여자’라고 생각하세요? 아니면 ‘다 큰 여자’이기를 기대하는 외부의 시선이 있는 건가요?

 

<다 큰 여자>라는 동명의 일본 영화가 있거든요. 제가 20대 후반에 봤는데, 30대의 결혼한 여성과 미혼 여성의 일상들을 다루고 있었어요. 그런데 ‘다 큰 여자’라는 말이 일본 제목을 번역한 것이다 보니까, 약간 이질감이 들면서도 ‘성인 여성’하고는 확실히 다른 느낌이잖아요. 어떤 면에서는 반어법 같기도 하고, 해석의 여지가 많은 단어라고 생각했어요. ‘나는 다 큰 여자야’라는 애틋한 선언 같기도 하죠. 기본적으로 저는 모든 인간이 완료가 되는 시점은 없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다 큰 여자’라는 말은 내가 완전히 완료가 되었다는 게 아니라 일종의 선언이죠. 이면을 바라보면 다른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고요. 저는 이 제목이 함의하는 바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 정한 것 같아요. 저한테 ‘사회가 부과하는 책임이나 의무를 다하고 있는 성인 여성이냐, 어른이냐’고 물으신다면, 거기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어요.

 

‘정태춘 박은옥의 딸’, ‘펑크록 밴드 보컬과의 결혼과 이혼’ 등을 이유로 많은 주목을 받아오셨어요. 그렇기 때문에 더 괴롭다고 생각하신 적은 없나요?

 

그건 이미 정새난슬이라는 이름을 가졌을 때부터 시작된 일이라서, 거기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맷집이 생겼다고 해야 하나요. 어렸을 때부터 뭔가 특별한 것도 없는데 정새난슬이라고 하면 사람들이 다 쳐다봤으니까요. 제가 그런 부모님 밑에서 태어나서, 남편과 그런 일을 겪어서, 편견을 더 겪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요즘 여성 혐오와 관련해서 쏟아져 나오는 증언들, 이제야 쏟아져 나오는 여성의 진실들을 보면 저라서 그런 게 아닌 거예요. 더 특별한 경우라기보다는 다 다른 경우들이지만 맥락은 같은 거죠. 너무나 딱딱하게 이 사회에 뿌리 내린 편견들이 있는 것이고, 어떤 여성이라고 고단하지 않겠어요. 다들 고단할 거예요, 정말. 저는 이제라도 이렇게 들끓는 상황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단계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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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평판 나쁜 엄마예요

 

책에서 페미니즘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하셨잖아요. 생각해 보면 여성들 스스로 남성 중심적인 시선에 길들여져 있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저 역시 그런 것 같아서 많이 뜨끔했어요(웃음).

 

저도 그랬어요(웃음). 어려운 일이잖아요. ‘저 페미니스트예요’라고 이야기하려면 (페미니즘에 대한) 모든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고요.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부터 쉬운 일이 아니죠. 거울을 보고 자신을 사랑하기가 참 힘들어요. 바깥의 시선, 남성들의 시선이 내면화되어서 거울을 보면서 괴롭단 말이에요. 그러다 보니까 ‘내가 페미니스트라고 할 수 있을까’ 싶은 거죠. 그런 작은 것부터 걸리는 거예요. 그런데 결국은 페미니스트라고 선언하는 것 자체가 내 인식을 바꾸고 각성하는 일인 것 같고, 그런 과정에 있는 사람이라도 그렇게 발언할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해요.

 

여성의 권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여자라고 해도 ‘좋은 엄마 콤플렉스’는 버리기 힘든 것 같아요. 작가님은 어떠셨어요?

 

저는 대놓고 이야기하잖아요. 저는 평판 나쁜 엄마라고요. 처음부터 저는 모성애 경쟁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생각했어요. 오늘 우리 아이 이유식을 어떻게 만들어줬는지 사진으로 찍어서 올리시는 분들도 있잖아요. 그 분들도 좋은 엄마예요. 아이에 대한 사랑이 그만큼 큰 거죠. 그런데 사람이 모두가 같지 않잖아요. 일로써 성취하고 싶은 여성들도 있고, 엄마라는 것 자체가 한 여성의 모든 정체성을 차지하는 건 아니거든요. 그런데 자꾸 모성 신화를 들이대면서 ‘엄마는 다르다’라거나 ‘아이 엄마가 되더니 달라졌다’고 해요. 저는 엄마가 되어도 똑같거든요. 여전히 클럽에 가고 싶고, 술을 마실 수도 있어요. 저는 그런 시선들을 조금 거부하고 싶어요. 제가 그렇게 나쁘지 않은 엄마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평판 나쁜 엄마라고 이야기하는 건 엄마들의 세계에 숨구멍을 트여주고 싶은 거예요. 여자는 뭘 해도 부족한 엄마잖아요. 맞벌이를 해도 부족한 엄마이고, 집에서 아이와 있어도 부족한 엄마죠.

 

주변 사람들이나 사회에서 요구하는 것들에 흔들리지 않기란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그런 점에서 자의식이 굉장히 단단한 분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부모님으로부터 영향 받은 바도 있으셨나요?

 

그런 것 같아요. 제가 어렸을 때 아빠가 사전 심의 철폐 운동을 하셨는데, 그건 사실상 아빠 혼자 하셨거든요. 누가 편을 들어주지도 않고 싸움에 동참해 주지 않아도, 혼자 ‘검열 받지 않는 영혼’ 도장을 만드셔서 찍으러 다니셨어요. 그때 사전 심의 신청을 안 했기 때문에 불법 음반이었는데, 그 음반을 싸들고 다니시면서 공연하실 때마다 팔았거든요. 그런 걸 보고 자란 사람이니까, 그런 영향은 있었던 것 같아요. 

 

책에서 들려주신 아버지의 사랑 방식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자식을 대하시는 데 있어서 가부장적이거나 권위적이지 않으시고, 눈높이를 맞추시고 부드럽게 소통하시더라고요.

 

저는 엄마랑은 많이 이야기하지 않아요(웃음). 엄마랑은 정말 갈등이 심해요(웃음).

 

세상 모든 모녀가 그렇죠(웃음).

 

네, 육아 갈등부터 시작해서 요즘에는 장난 아니에요(웃음). 그래서 엄마하고는 정말 일상적인 이야기로 투닥투닥 하는 반면에, 아빠하고는 두 시간씩 계속 이야기를 나눠요. 어렸을 때부터 그랬어요. 아빠가 직장을 다니지 않으셨으니까 저와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셨고요. 저는 아빠가 걸어왔던 길을 보면서 한 남성이 시대에 따라서 변해간 모습, 계속 성장하는 모습을 본 것 같아요. 제가 느끼기에는 지금도 멈춰있지 않으시고 계속 성장하시는 거예요. 그런 아버지를 바라보면서 존경스러운 거죠. 누가 저한테 ‘너는 좋은 아버지를 만나서 그래’라고 하면, 거기에 대해서는 ‘응’이라고 답할 수밖에 없어요. 아빠와는 각별한 사이죠.

 

작가님도 한 아이의 엄마가 되셨잖아요. 어머니에 대한 느낌도 달라졌을 것 같아요.

 

제 전남편도 음악을 하는 사람이었잖아요. 그렇다 보니까 아이를 낳고 나서 엄마 모습이 겹쳐서 떠오르더라고요. 매니저처럼 아빠를 따라다니면서 챙겨주시던 엄마 모습이 생각나는 거죠. ‘엄마처럼 살지 말아야지’가 모든 딸들의 돌림노래인데, 어느새 나도 모르게 엄마처럼 살고 있다는 느낌도 들었어요. 그게 나쁘다는 게 아니라, 저는 그런 (엄마 같은)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거든요. 저희 엄마는 집안의 카우보이 같은 성격이신데 저는 아니거든요. ‘나는 뭔가 내 걸 하고 싶은데 한 남자의 세계에, 가정 안에 함몰되고 말까’ 그런 불안감도 있었던 것 같아요. ‘나도 이렇게 엄마의 인생을 대물림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런데 엄마랑 다른 게 있다면, 저는 그걸 박차고 나온 거죠. 

 

작가님의 이름 앞에 항상 ‘정태춘 박은옥의 딸’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데, 불편하지는 않으세요?

 

그런 수식어가 붙어서 사람들한테 더 많이 회자되니까, 그게 장점이고 좋은 시작이라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어요. 다른 한편으로는 ‘지금 친정집에 얹혀살고 있는데, 엄마 아빠 이름에도 얹혀서 가는구나’라는 자괴감이 약간 들죠. 그런데 (부모님에 대해서) 물으시는 것에 관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요. 저 자신도 그런 질문에 대답하는 데에 익숙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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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조각난 저를 기워주셨어요

 

책에서 말씀하시길, 부모님의 음악적 재능을 많이 물려받은 편이 아니라고 하셨는데요. 앨범을 들어보니까 엄살이신 것 같던데요(웃음).

 

재능은 아니에요. 저희 아빠 같은 경우는 멜로디를 들으면 바로 악보로 옮겨 적으시고, 엄마 같은 경우는 정말 화려한 가창력을 가지신 분이란 말이에요. 그런 집안에서 내가 음악적인 재능이 있다고 느끼기가 정말 힘들어요(웃음). 오히려 저는 음악적으로 두각을 나타낸 적도 없고 노래를 잘 부르는 편도 아니었기 때문에 제가 재능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지금도 재능이 있다고는 이야기 안 해요. 정말 그건 신이 저한테 빠트린 부분이에요. 음악적인 재능 없어요. 그래도 생활 속에서 음악이 있었다는 게 제일 큰 것 같아요. 삶의 방식으로써 음악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저한테 그것이 높은 문턱이 아니었죠. 작사 작곡도 그냥 앉아 있다가 ‘배가 고프구나’ 하면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 것 같아요. (음악을) 삶의 방식으로써 물려받은 거지, 재능을 물려받지는 않았어요.

 

이번 책의 출간과 함께 동명의 앨범 『다 큰 여자』도 발표하셨는데요. 아버지께서 편곡에 참여하셨어요. 부녀가 함께한 작업은 어땠나요?

 

아빠가 많이 맞춰주신 것 같아요. 음악적인 정서가 완전히 다르잖아요. 세대 차이도 있고요. 제 음악 같은 경우는 저의 보컬을 고려하거든요. 작은 텃밭이에요. 제가 심을 수 있는 것도 아주 작은 농작물들이고요. 그런데 아빠는 큰 정원을 생각하시고 음악을 만드시는 거죠. 그러니까 저는 ‘나의 소박함을 짓누르는 편곡이다’라고 이야기하고, 아빠는 ‘편곡 자체가 훌륭해야 한다, 네가 이야기하는 건 제대로 된 음악이 아니다’라고 하시고, 이런 식으로 계속 부딪혔어요. 음악적인 정서를 맞추는 게 많이 힘들더라고요. 정말 갈등이 심할 때는 아빠도 저도 ‘안 해’ 이렇게 돼요(웃음). 아빠도 너무 스트레스 받으신다고 하고요(웃음). 그래도 서로 많이 타협하니까 중간 지점이 찾아지더라고요. (이번 작업은) 저희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어요. 사실 이혼한 상황에서 그렇게 하기가 힘들잖아요. 그런데 아빠가 먼저 같이 해보자고 하셨어요. 딸이 이혼하고 넝마가 되어서 왔으니까요. 사실은 음악 작업 이상이죠. 조각조각 난 저를 기워주신 거죠.

 

다음에도 함께 작업하실 생각이 있으세요?

 

일단 제 음악 가지고는 못하겠고요(웃음). 아빠랑 동료를 해볼까, 그런 생각은 해요. 사실상 제 목소리는 동료에 적합한 목소리이기 때문에, 같이 동료를 해볼까 싶기는 해요. 딸 서하가 있으니까 그렇기도 하고요. 생각에서 그칠지 실천을 하게 될지는 모르겠어요.

 

『다 큰 여자』의 수록곡을 들으면서, 어머니의 음색을 닮으셨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특히 고음 부분에서요.

 

그래서 엄마도 조금 이상하다고 하시더라고요. 어렸을 때는 안 그랬는데,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모르겠어요. 고음이라든지 어떤 부분에서 음색이 비슷할 때가 있는 것 같더라고요.

 

책에도 앨범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각각의 곡에 얽힌 에피소드를 들려주셨는데요. 아버지와 작업하실 때도 말씀하셨던 부분들이죠?

 

그렇죠. 특히 「다 큰 여자」 같은 경우는, 음악은 조금 책이랑 다른데, 음악 자체는 약간 각성하는 내용이에요. 이를테면 저는 약간 애니메이션 주제가처럼 생각했어요. 그때가 가장 산후우울증이 심할 때였고 자살 기도 하는 일들이 있을 때여서, 정말 벗어나기 힘든 상황이었거든요. 노래에 등장하는 다 큰 여자도 저 자신이고, 혼자 침묵에 잠겨 있던 것도 저 자신이고, 사실 굉장히 개인적인 노래예요. 그 곡도 드라마틱하게 편곡을 갔는데 ‘유치하거나 말거나 이건 나의 성장노래니까 이렇게 가겠다’고 생각한 부분들이 있었죠. 제가 상상력 빈곤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경험했던 것이 아니면 잘 쏟아져 나오지는 않아요.

 

한 앨범에 담긴 모든 곡에 대해서 이면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게 흔한 일은 아니잖아요. 작품 외적인 이야기를 언급하고 싶어 하지 않는 뮤지션들도 있고요. 작가님의 경우는 어땠나요?

 

그것도 맞는 말이에요. 어떤 작업물을 내 놓고서 이런 방향으로 읽혀야 된다고 말하는 게 대중한테는 폭력적인 일이 될 수도 있거든요. 그런데 저 같은 경우는 서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고, 제 인생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났을 때마다 적었던 곡들이기 때문에, 앨범만 들으시는 분들은 자기 방식대로 음악을 소화하고 즐겨주시면 될 것 같아요. 저로서는 ‘이러저러한 일들이 있을 때 이 노래를 만들었습니다’라고 적어보고 싶었던 거죠. 특히 「아기가 되었다」 같은 곡은 가사에 있는 그대로거든요. 누군가는 함축적이라고 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진짜로 새벽에 한강 수영장에 갔고, 전남편이 어디에서 오토바이를 가지고 왔고, 그러다가 아기가 된 내용이에요. 제 곡들이 전부 다 그런 것 같아요. 그 이야기를 한 번 해보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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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큰 여자』는 기록이죠

 

독자들이 『다 큰 여자』를 어떻게 읽으면 좋을까요?

 

저는 산후우울증 같은 이야기가 인터뷰에서 더 많이 다뤄지기를 원했었거든요. 산후우울증 또는 우울증을 겪거나, 배우자한테 ‘네가 유별나서 그래’라는 소리를 들으시는 분들이 있다면 제 책을 보여주셨으면 좋겠어요. ‘이것 봐, 나보다 더 이상한 여자도 있잖아’라고 사용해 주시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했어요(웃음). 그리고 기본적으로는 ‘그냥 모난 돌로 살아가자’는 거예요. 이것 역시도 정희진 선생님 책에서 봤던 내용인데, 모난 돌들이 소통할 수 있는 사회가 좋은 사회이지 모난 돌을 깎아서 둥근 돌들이 사는 사회가 좋은 사회가 아니라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이 책에서 저의 다름을 어떻게 다루는지, 어떻게 소화하고 있는지 보실 수 있었으면 좋겠고요. 그런 부분에 있어서 모난 돌로 살아가자는 거죠.

 

집필하시는 동안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새로 알게 되신 부분도 있었을 것 같아요.

 

글을 쓰면서 조금 선해지는 것 같아요. 자기 자신과는 다르게. 글 속에서 자신을 재발견하게 되잖아요. 정말 악에 받친 날은 ‘내가 좋은 사람일까’ 하는 고민에 휩싸일 때가 많잖아요. 그런데 글을 쓰다 보면 정리가 되고 정화가 되거든요. 위악보다 위선이 낫다고 하잖아요. 그래서 글을 쓰면서 자신을 발견하게 되니까 ‘나한테 이런 면이 있었나?’라고 생각되기보다는 ‘그래, 이렇게 살아야 돼’ 하고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특히 딸에게 하는 말 같은 경우는 사실 저 자신한테 하는 이야기죠.

 

딸 서하가 커서 『다 큰 여자』를 읽을 수도 있을 텐데요. 책에 담긴 솔직한 이야기를 알게 되더라도 두렵지는 않으세요?

 

어차피 저는 우리 모녀 관계가 정말 환상적일 거라는 기대는 안 해요. 물론 그렇게 되면 좋죠. 하지만 인간관계는 복잡하고 서하가 어떤 인물로 자랄지 모르잖아요. 서하의 인생관이 나와 다를 수도 있는 거고요. 하지만 저는 ‘엄마는 완벽한 사람이 아니야, 미안해’, ‘나는 그랬어, 나는 복잡한 여자로 이해해 줘’, ‘엄마이기도 하지만 나는 수많은 정체성들이 있어, 나를 여성으로 봐 줄래?’ 이렇게 말하고 싶은 것 같아요. 딸한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나중에 가서 생각하기로 하고요(웃음).

 

엄마도 여자이고, 엄마도 부족할 수 있다는 걸 받아들이기가 쉽지는 않잖아요. 작가님은 그런 딸이었나요(웃음)?

 

아뇨(웃음). 저는 오히려 엄마가 일을 포기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싶기도 해요. 엄마가 엄마로 남아있기를 선택했기 때문에 저랑 갈등이 생겼다고 생각하거든요. 저희 엄마가 바라는 엄마는 귀여운 일러스트 같은 거 그리면서, 예쁜 그릇 모으고, 엄마랑 같이 요리도 배우러 다니고, 그런 모습인데 저는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저는 엄마가 자기 일을 하고 야망이 있었다면, 물론 거기에서 얻어지는 섭섭함도 있었겠지만, 그랬다면 지금보다 덜 부딪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해요.

 

훗날 서하에게 『다 큰 여자』는 어떤 의미가 될까요?

 

‘우리 엄마아빠가 왜 이혼하게 됐을까’를 생각했을 때 한 번 읽어 보면, 제 버전의 이야기를 읽게 되겠죠. 그리고 자기가 알아서 해석하겠죠. 아빠를 보면서 자라기도 할 테니까요. 그 균형을 잘 잡아주도록 제가 이야기를 많이 해야 될 것 같아요. 그리고 제가 남편과 헤어지기는 했지만 한 때 정말 사랑했던 사람이니까, 저는 그것까지 엉망으로 만들어 버리고 싶지는 않거든요. 그래서 전남편한테 보냈던 편지도 그대로 실려 있는 거예요. ‘우리는 사랑해서 결혼했고 그래서 너를 낳았어, 그것만큼은 변하지 않아’라는 건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다 큰 여자』는 ‘정새난슬의 이야기’를 담고 있잖아요. 독자들이 정새난슬을 어떤 여자로 이해하길 바라세요?

 

딱히 어떻게 생각해줬으면 좋겠다는 건 없고요. 첫 책이라서 그런지 대중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사실 잘 모르겠더라고요. 일단 저는 ‘지금이 어떻게 생각될 것인가’는 잘 생각 안 하고요. 시대가 조금 더 많이 바뀐 뒤에, 그때도 헌책방 같은 게 있다면, 어린 여자 아이들이 이 책을 집어 들고 ‘세상에 이것 좀 봐, 옛날에는 이랬대, 어이없다’ 그랬으면 좋겠어요. 그런 책으로 남았으면 좋겠어요. 기록이죠. 풍속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고 이혼한 여성, 타투한 여성, 빨갱이 딸로서의 기록이기도 하고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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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큰 여자정새난슬 저 | 콘텐츠하다
서른 중반의 몸만 커버린 여자로, 어느 누구보다 아팠던 시간과 부족했던 스스로를 인정하는 용감한 고백이자 우울하고 상처받은 영혼의 치유담, 그녀처럼 남들의 시선에 정의되고 싶지 않은 이 시대 여자들에게 보내는 독려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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