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이례적인 인기를 얻은 그림책이 하나 있다. 일러스트레이터 ‘안녕달’이 그리고 쓴 『수박 수영장』. 풀장 대신 수박 안에서 수영을 한다는 기발한 상상력은 어린이 독자는 물론, 성인 독자들의 마음까지 흠뻑 시원하게 만들었다. 최근 출간된 안녕달 작가의 후속작 『할머니의 여름 휴가』는 휴가를 떠나지 못하는 할머니를 위해 손자가 ‘소라’를 선물하면서 시작된다. 소라를 통해 파도 소리, 갈매기 소리, 게가 움직이는 소리를 듣게 되는 할머니는 강아지 ‘메리’와 함께 바다 햇볕과 시원한 바닷바람을 느낀다. 연필과 색연필의 간결한 필치로 완성된 『할머니의 여름 휴가』는 다정하고도 평안하다. 꽃무늬 수영복을 입고 뒤뚱뒤뚱 조심스레 바닷가를 거니는 할머니의 몸짓은 한없이 푸근해, 잠시 잠깐 더위를 잊게 만든다.
얼굴을 공개하지 않는 ‘안녕달’ 작가를 서면으로 만났다. 그림책이 탄생한 계기가 무척 흥미롭다. 유년 시절 조부모와의 추억을 담았으리라 예상했는데, “어린 시절의 추억보다는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하면서 거의 백수로 살면서 지켜본 세상 이야기에 가깝다”고 한다. 작가는 현재 바닷가 근처 학교에서 일러스트를 배우고 있다. 후속작으로는 “왜요?”라는 엄마와 아이의 대화로 이뤄진 이상한 책과 시골 할머니와 강아지의 따뜻한 이야기를 그린 책을 펴낼 계획이다.
공모전 수 차례 탈락, 책 나와서 기뻐요
최근 『할머니의 여름 휴가』, 를 출간하셨는데요. 어떻게 만들게 된 그림책인지 궁금합니다.
5~6년 전 공모에 내려고 만들었던 그림책이에요. 공모에 다 떨어지고 다시 원고를 수정해서 개인적으로 여러 출판사에 투고도 했는데 다 거절 당했어요. 너무 많이 거절 당해서 세상에 못 나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책이 나와서 너무 기뻐요.
전작 『수박 수영장』에 이어, 할머니 할아버지가 등장합니다. 유년시절 조부모님과의 특별한 추억이 있지 않을까 싶은데요.
친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명절 때 집에 방문해서 뵙는 정도여서 직접적인 추억은 많지 않고요. 제가 사는 동네가 독거노인들이 많이 사는 곳이었는데요. 제가 거의 백수이다 보니까 제가 밖에 나갈 때는 그나마 있던 몇몇의 젊은 사람들은 일하러 가서 없고 한적한 동네에는 할머니와 할아버지 들이 많이 있는데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의 느릿느릿한 움직임을 보고 있으면 왠지 마음이 편안해져서 그분들 보고 있는 걸 좋아했어요. 어린 시절의 추억보다는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하면서 거의 백수로 살면서 지켜본 세상 이야기에 가까워요.
할머니가 꽃무늬 수영복을 입은 모습이 너무 다정하고 예쁩니다. 할머니, 캐릭터는 어떻게 탄생했나요?
학교 다닐 때 교수님이 과제로 어떤 노래를 들려주며 거기에 맞는 홍보물 같은 걸 만들라고 하는 수업이 있었는데요. 그때 저는 그 노래가 할머니 할아버지가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을 하는 느낌이라고 생각해서 CD 케이스와 함께 만든 애니메이션이랑 홍보용 모빌을 만들었어요. 그 작품 속 할머니들이 『할머니의 여름휴가』에 나오는 할머니랑 비슷하게 생겼어요. 나중에 그 교수님이 주신 노래가 원래는 여자가 남자를 유혹하는 노래라고 해서 살짝 놀랐어요. 나중에 『할머니의 여름휴가』를 그리는데 그때 만든 모빌이 제 집에 걸려 있었고 자연스럽게 그 모빌 속 할머니가 주인공이 되었어요.
그리면서 가장 즐거웠던 뿌듯했던 장면은 무엇인가요?
바다로 가는 첫 장면이요. 모래사장이랑 에메랄드 색 바다가 펼쳐지는 장면이요. 갑자기 화면이 변하면서 시원한 느낌도 들지만 작은 소품 하나하나 다 그려야 되는 저로서는 별로 그릴 게 없어서 더 좋았어요.
작년 여름에 출간된『수박 수영장』이 1년도 안 지나 6쇄를 찍었습니다. 정말 큰 인기를 얻었는데요. 혹시 기억에 남는 리뷰가 있었나요?
음, 아기들이랑 책 읽고 진짜 수박으로 노는 분들도 있고 아기가 그림 그린 거 올리는 분도 있었는데 재미있었어요. 아기가 그린 그림 보고 너무 웃기고 귀여워서 빵 터진 적도 있어요. 아기들은 참 이상하고 재미있는 것 같아요.
안녕달 작가
『수박 수영장』을 그리게 된 계기도 궁금합니다.
그게 너무 오래 전부터 구상한 거라 자세히는 기억이 안 나요. 수박 씨를 빼려고 수박에 손가락을 넣었다가 시원해지면서 물이 고이는 걸 보고 거기서 확장된 이야기였던 것 같은데요. 원래는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싶어서 스토리 보드를 짜다가 계속 몇 년을 미루다 미루다 귀찮아져서 그냥 그림책을 만들었어요. 그래서 카메라 움직이는 걸 상상하면서 만든 이야기라 책인데도 영상 같은 느낌이 조금 남아 있어요.
그림 작업을 하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나요?
제가 별달리 특별한 신념을 가지고 그림을 그리는 건 아니라서, 별로 할 말이 없는데요. 다만 그림책 그리면서 저는 어떤 장면이나 흐름을 독자가 이해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난해하다고 편집자 분이 언급해 주실 경우가 있는데요. 그때 의견을 듣고 다시 고치고 그러면서 점점 그림이 나아지는 것 같아요. 원래 완벽주의랑 거리가 너무 먼 저로써는 피드백과 수정 과정이 그림으로 이야기를 잘 전달하는 데 중요한 부분이었던 것 같아요.
일러스트 작업과 그림책 작업은 어떻게 다른가요?
그림책은 제가 제일 좋아하고 익숙한 걸 그리게 돼서 좀 더 편하게 그릴 수 있어요. 일러스트 작업은 글을 보고 맞춰서 그리면 제가 평상시에 잘 안 그려 보던 소재나 이야기를 그리게 돼서 새로운 걸 하고 재미있는데 슬프게도 제가 잘하지는 못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일러스트 작업할 때 일이 별로 없었어요.
두 권의 그림책이 작품도 좋지만, 그림책의 만듦새도 참 좋다는 느낌이 들었는데요. 제본이나 종이 인쇄 등등이요. 작가님이 보시기엔 어떠신지요? 그림책을 펴낼 때, 저자로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신 부분이 있나요?
그림책의 만듦새에 대해서는 제가 한 건 반짝이는 종이 싫다고 투정 부린 것밖에 없어요. 그건 다 편집자와 디자이너 분들이 알아서 잘하셨어요. 저도 책 받아 보고 놀랐어요 너무 예뻐서. 제가 인쇄로 구현되기 힘든 색을 많이 써서 인쇄할 때 원화 색대로 인쇄하기 힘든데 디자이너 분이 색을 진짜 잘 살려 내시는 것 같아요. 저는 종이 선택을 중요하게 여기는데 번번이 원하는 종이에 색이 잘 안 나오거나 비싸서 원하는 종이를 못 쓰다가 이번에는 소원 성취해서 엄청 만족하고 있어요.
그때그때 생각나는 그림책
‘안녕달’은 어떻게 짓게 된 이름인가요?
라디오에서 어느 인디 밴드가 초창기에 이름이 예뻐서 가끔 공연 불러 줄 때가 있었다고 들은 적이 있어요. ‘아! 나도 이름이 예뻐서 날 좀 써 줬으면 좋겠다.’ 해서 저도 예쁜 단어 조합을 했어요. 급하게 지은 것치고 괜찮은 것 같아요.
작가님의 평상시 일상이 궁금합니다. 일상 중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무엇을 할 때인가요?
전 엄청 게을러요 거의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날이 많아요. 진짜 아무것도 안 하는데 하루가 다 가 버려서 항상 신기했어요. 침대에서 빈둥거리다가 멍하니 창 밖을 보다가 밥 해 먹는 무의미한 시간을 좋아해요. 침대에 누워서 노트에 낙서하는 것도 좋아하는데 그럴싸하게 완성하는 건 별로 안 좋아해요. 그래서 마감할 때쯤에는 불행해요.
현재 해외에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잠깐 공부하러 바닷가 근처 학교에 와서 일러스트를 배우고 있어요. 학교 근처에 바다가 있다고 해서 학교 끝나고 친구들과 다 같이 수영하러 가는 것을 상상하기도 했는데 전혀 그러진 못하고 있어요. 제가 상상한 바다가 아니고 여기는 날씨도 추워요. 어서 한국 돌아가서 제주도에 가고 싶어요.
작가님 홈페이지(http://www.bonsoirlune.com)에 가보니 ‘재료’ 라는 제목으로 여러 작품들이 올려져 있던데요. 평소 스케치를 한 작업물을 모두 홈페이지에 올려 놓으시는지요?
그거 스케치가 아니라 일러스트예요. 초창기 그림이라 완성도가 조금 떨어져서 스케치로 보이나 봐요. 프리랜서 시작했을 때 홈페이지 만들고 주기적으로 그림을 올려 보려고 단편적인 그림 자주 올렸었는데 일을 하기 시작한 후로 잘 안 올리고 있어요. 일이 있으면 뭔가 안심이 돼서 개인 작업을 안 하게 돼요.
지금 한창 수박의 계절입니다. 혹, 가장 좋아하는 과일이 ‘수박’인지요? 여름을 사계절 중에 가장 좋아하시는지요?
네 과일 엄청 좋아하고 수박도 엄청 좋아해요. 여름이면 수박을 슈퍼에서 사기엔 너무 비싸서 수박 트럭 아저씨 오기만 기다리곤 했어요. 여름을 제일 좋아하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여름이 되면 떠나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 나뭇잎이 초록색이 되면 왠지 설레요.
앞으로 어떤 그림책을 만들고 싶나요?
전 계획하고 체계적으로 이야기를 쓰는 것이 아니라 그냥 제가 떠오르는 이야기를 쓰는 편이어서 별 계획 없이 그냥 그때그때 생각나는 그림책을 만들 것 같아요. 그래도 저의 먹고 살 걱정이 좀 덜어지고 혹시 내 주시겠다는 출판사가 있으면 좀 더 어른용 그림책도 내 보고 싶어요.
그림책의 매력을 표현해주신다면요.
글을 잘 못 써도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어요. 그래서 저한테는 가장 쉬운 이야기 전달 수단이에요. 근데 그림 그리는 건 조금 귀찮아요.
어린이, 엄마 아빠, 젊은 독자 외에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이 그림책들을 읽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가님께서 특히 소망하는 독자층이 있는지요?
집에서 손자 손녀 보느라 힘드신 할머니들이 잠시나마 이 책을 읽는 동안 작은 위안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수박 수영장 안녕달 글,그림 | 창비
뜨거운 여름날, 커다란 수박 안에 들어가 수영을 한다는 시원하고 호방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그림책입니다. 사람들이 수박 안에서 수영하는 모습이나 수박씨와 수박 껍질을 이용해 다양하게 노는 모습들이 즐겁게 전해집니다.
할머니의 여름휴가 안녕달 글,그림 | 창비
더운 여름날, 바닷가에 다녀온 손자가 혼자 사는 할머니를 찾아옵니다. 손자는 휴가를 떠나지 못하는 할머니를 위해 바닷소리가 들리는 소라를 선물합니다. 할머니는 소라를 통해 뜻밖의 여름휴가를 떠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