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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으로서의 번역가 ③] 권일영 “번역을 하면서 계속 뭔가를 적어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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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예스>가 매달 한 명의 번역가를 만나, 이 시대에 번역가로 산다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세번째 주인공은 권일영 번역가입니다.

 

일본 미스터리를 접할 때 반드시 듣게 되는 이름이 있다. 그것은 바로 ‘일본 추리소설의 아버지’, 혹은 ‘대란포(大亂步)’라고 불리는 에도가와 란포다. ‘에드거 앨런 포’의 이름에서 착안한 필명 ‘에도가와 란포’로 평생을 추리문학에 헌신했던 그는 실로 다양한 작품을 대거 발표, 일본 문학계는 물론 사회적으로도 큰 반향을 일으키면서 명실공히 국민 작가가 되었다.

 

검은숲에서 출간되는 ‘에도가와 란포 결정판 시리즈’는 고분샤판 『에도가와 란포 전집』을 정식 계약하여, 란포 문학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핵심작품을 중심으로 재기획한 것이다. 완성도가 높으면서도 문학사적으로도 가치 있는 작품들 중 그동안 국내에 소개되지 않았던 장편소설과, 작가 및 평론가, 한일 독자들이 손꼽는 최고의 단편소설을 포함한 총 4편을 엄선했다. 일본 추리소설 권위자이자 전문번역가 권일영의 충실한 번역과 풍부한 주석으로 내실에 힘을 쏟았으며, 초판 한정으로 누드제본과 단권용 케이스를 제작, 외향적으로는 현대적인 고전미를 살렸다.

 

번역가 권일영은 동국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여성중앙〉, <소년중앙> 등에서 기자로 일하다 전업 번역자로 일하고 있다. 1987년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무라타 기요코의 『남비속』을 우리말로 옮기며 번역을 시작, 일본어와 영어로 된 소설을 번역했다. 옮긴 책으로는 모리미 도미히코의 『유정천 가족』, 마키메 마나부의 『사슴남자』, 아야츠지 유키토의 『미로관의 살인』과 『암흑관의 살인』, 가이도 다케루의 『바티스타 수술 팀의 영광』을 비롯한 다구치-시라토리 시리즈, 아비코 다케마루의 『살육에 이르는 병』『탐정영화』, 기리노 나쓰오의 『다크』『IN』 등이 있다. 또 미야베 미유키, 오리하라 이치의 작품과 에이드리언 코난 도일과존 딕슨 카가 함께 지은 『셜록 홈즈 미공개 사건집』을 우리말로 옮기기도 했다.

 

권일영1.jpg

 

 

‘틀리지 말아야 한다’고 중얼거린다

 

출판사에서 의뢰 받은 작품 외에도 스스로 기획, 출판사에 출간 제안한 작품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기준으로 작품을 선정하시고, 또 출판사를 설득하시는지요?

 

다른 분들은 어떻게 작업하는지 몰라 제가 기획이나 제안이 많은 편인지 모릅니다. 편집자와 대화할 때 그간 읽은, 혹은 읽는 중인 책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하는 편이기는 합니다. 제 경우 기준의 세부 항목은 복잡하지만 간단하게 ‘이 정도 작품이면 출판사가 손해를 볼 일은 없겠다’는 판단이 서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주 멋진 판매 결과를 보여줄 작품을 골라낼 재주는 없어도 ‘이건 아니다’라는 정도는 알아볼 수 있다고 믿습니다.

 

출판사를 직접 설득하는 일은 드뭅니다. 대부분 편집자가 설득하죠. 저는 편집자가 회사를 설득하도록 자료와 논리를 제공합니다. 제가 편집자를 설득하는 과정이 편집자가 회사를 설득하는 과정의 시뮬레이션이라고 여깁니다. 그리고 최대한 자세하게 스토리를 알려드립니다. 기획회의에서 상사나 관련 부서를 설득하려면 무엇보다 줄거리를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고 생각하죠. 물론 이렇게 제안해 출간된 소설 가운데는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둔 작품도 있지만 편집자와 출판사에 미안할 만큼 초라한 결과를 얻은 경우도 있습니다. 그 이유야 어떻든.

 

『에도가와 란포 결정판』역시 번역뿐만 아니라 기획에도 적극 참여하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이미 모든 단편이 국내 출간된 란포를 다시 소개하게 된 이유가 있을까요?

사연이 좀 깁니다. 제가 에도가와 란포의 작품을 처음 접한 때는 1980년대 중반입니다. 1985년이나 1986년으로 기억하는 춥지도 덥지도 않던 어느 날 동아일보사, 한국일보사 등에서 기자 생활을 하던 선배 오현리(현 한국추리작가협회 회원) 작가와 명동 프린스호텔 앞 어느 중국집에서 식사를 하다가 ‘에도가와 란포의 단편소설을 읽어보라’는 권유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당시 명동의 중국대사관(지금의 대만대사관) 앞에 있는 일본서적 전문서점에서 단편집을 구해 읽었던 게 란포 읽기의 시작입니다. 그리고 여러 해 흘러 일본 고분샤 문고판 전집이 나오기 시작했고 배본될 때마다 광화문 교보문고에 들어왔는데, 그걸 구입해 작품 목록을 정리하면서 읽었습니다.

 

맨 처음 출판사 편집자에게 이 시리즈 형태의 기획을 넌지시 제안한 때는 10년쯤 전입니다. 그분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주셨기 때문에 기획에 필요한 자료 수집에 들어갔고, 전집 가운데 읽지 못했던 작품을 더 부지런히 읽고 어떤 소설은 번역하면서 읽었습니다. 그렇게 준비하던 중에 그분의 소속사가 바뀌었고, 마침 다른 환경도 여의치 않아 읽기와 번역을 제외한 준비는 중단 상태였죠. 그러다가 전부터 알고 지내던 지금 이 시리즈의 담당 편집자가 2009년에 시공사로 오면서 탐색하기 시작했고 조금씩 논의했습니다. 그리고 2013년 12월에 제가 기획용 문서를 처음 보내면서 편집자와 번역자의 공동 기획 작업이 시작되었죠.

 

이 시리즈의 초기 기획 단계에는 독자들이 구입할 수 있는 란포의 소설이 동서문화사가 발행한 작품뿐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두드림에서 2008년~2009년 사이에 전단편집 3권이 나왔죠. 두드림 대표님을 이때 처음 만나 뵈었습니다. 시공사와 진행한 기획 초기에는 전단편집이 시중에 판매되는 상황을 전제로 했기 때문에 제 머릿속 구상은 지금의 『에도가와 란포 결정판』과 전혀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그런 준비를 진행하던 어느 날 두드림 대표님께서 전화를 주셨습니다. 일본 측에서 판권을 회수해갔으니 전단편집은 절판될 텐데 당신이 알아보고 란포의 작품들을 새로 출간해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기획을 다시 조정해 2013년 말에 일본 측과 접촉을 시작했고, 2014년 1월에 지금과 같은 상태의 기본 틀이 만들어졌습니다.

 

600쪽이 훌쩍 넘는 『에도가와 란포 결정판』1, 2권을 연이어 번역하셨습니다. 역주 내 화보와 상세한 설명이 눈에 띄던데요. 이 작품을 번역하시면서 특히 신경 쓰신 점은 무엇인지요.


오래된 소설이라 역주가 없으면 대충 얼버무리고 넘어가거나 문장을 빼먹지 않고서는 번역으로 해결할 수 없는 부분들이 자주 나옵니다. 그래서 필요하다고 느끼는 부분마다 역주를 답니다. 채택은 담당 편집자의 권한이고요. 때론 편집부에서 역주를 추가해달라는 요청이 오기도 합니다.


다른 작품을 번역할 때도 마찬가지인데, 작업할 때 가장 두려운 점은 오역이죠. 많이 틀릴까봐 두렵습니다. 항상 ‘틀리지 말아야 한다’고 중얼거리는 편입니다. 모르면 틀린 줄도 모르니 평소 공부를 하지 않으면 큰일이죠.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다시 확인하고, 도움을 주시는 분에게, 또는 저 스스로에게 다시 묻습니다. 그래도 늘 불안하고 그런 불안감은 항상 결과로 증명됩니다.

 

란포1 (4).jpg

 

히가시노 게이고, 미야베 미유키, 기리노 나쓰오, 가이도 다케루, 하라 료, 그리고 최근의 에도가와 란포까지. 한 작가의 작품을 꾸준히 번역하고 계신데요, 번역하기에 어떤 작가의 작품이 가장 까다롭고, 반대로 가장 수월하셨나요.


까다로운 면도 있고 수월한 부분도 있습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들은 번역하기 쉬운 것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술술 읽히는 작품들이라 그런 속도와 리듬감을 죽이지 않기 위한 우리말 어휘 선택을 고민하게 됩니다. 미야베 미유키의 도도한 수다는 듣기 즐겁지만 호흡을 놓치지 않고 따라가기 간단치 않았습니다. 가이도 다케루는 수많은 언어유희와 농담, 야유, 속담, 비유가 난무합니다. 그래서 뉘앙스 전달에 늘 애를 먹었습니다. 게다가 다작이고 다른 시리즈끼리도 연결되는 작품이 많아 번역하는 소설 이외의 작품을 참고로 읽지 않고는 작업하기 어려운 때가 종종 있습니다. 전체 과정은 즐겁지만 번역 작업으로만 따지면 무척 까다로운 작가인 셈입니다. 하라 료는 사실 힘든 부분마저 즐겁게 작업하는 편입니다. 그래서 스스로 지나치게 등장인물들에 몰입되는 게 아닌지 늘 경계합니다. 기회가 주어지면 하라 료의 작품들은 전체적으로 번역 개정판을 만들고 싶습니다. 아비코 다케루의 『살육에 이르는 병』번역 개정판이 나왔듯. 담당 편집자에게 그런 뜻을 이미 전했는데 제 바람이 이루어지면 좋겠군요.

 

번역가의 입장에서 가장 좋아하는 작가, 혹은 작품을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좋아하는 작품은 아주 많죠. 거의 대부분이라면 말이 안 되겠지만 ‘가장’ 좋아하는 작가와 작품을 꼽기는 어렵네요. 굳이 표현하자면 항상 지금 읽고 있는 작가와 작품을 가장 좋아합니다. 그 다음으로 지금 번역하고 있는 작가와 작품을 좋아하고요. 작가 성향으로 따지면 풍부한 상상력을 보여주는 작품들을 좋아합니다. 예를 들면 저는 미나가와 히로코의 작품에서 다른 독자들보다 더 재미를 느끼는 모양입니다. 아직 읽지 못한 작품이 여러 편이라 다행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또 작품 스타일과 특성상 우리나라 독자들이 수월하게 읽기 힘들겠지만 사토 아키의 모든 작품들에서 매력을 느낍니다. 판매에 자신 있는 출판사가 검토해보시기 바랍니다. 문학이 뭔지도 모르는 주제에 이 두 분의 작품을 읽고 나면 ‘모름지기 소설이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역사소설도 즐겨 읽습니다. 앞으로 재미있는 역사소설도 소개하고 싶은 욕심이 있습니다.

 

번역되었는데 큰 관심을 받지 못한 아까운 작품 좀 들이밀겠습니다. 미사키 아키의 『사라진 도시』와 심포 유이치의 『아직 필름이 남아 있을 때』 (『스트로보』를 개제). 사라지기 전에 도서관에서 빌려서라도 읽어주십시오. 미사키 아키는 꾸준히 지켜보며 더 작업해보고 싶은 작가입니다. 그 밖에도 좋은 작가와 작품은 동서양 가리지 않고 너무 많아 이 질문에는 답변하지 않았어야 옳다는 생각이 드네요. 아, 물론 답변을 하지 않았더라도 다카무라 가오루, 기리노 나쓰오 같은 작가의 이름은 반드시 꼽아두었을 겁니다.

 

소위 하드보일드한 작품을 많이 번역하셨습니다. 여성 작가인 기리노 나쓰오의 문체도 건조한 편이고요. 이런 작품들을 주로 번역하신 이유가 있을까요?


평소 장르를 거의 인식하지 못합니다. 구분에 관심도 없죠. 그래도 쓰이는 명칭에 따라 이야기하자면 본격 추리도 좋아하고 사회파 미스터리도 좋아합니다. 하세 세이슈나 혼다 데쓰야 같은 느와르도 즐겨 읽습니다. 번역되기 어렵겠지만 『짐승의 성』 같은 끔찍한 작품도 재미있게 읽죠. 하지만 가만히 생각하면 그 가운데 하드보일드를 더 좋아하는 모양입니다. 제 품성이 건조해서 현련하게 나불대는 말과 글은 본능적으로 혐오합니다.

김봉석 평론가가 『하드보일드는 나의 힘』에서 이야기한 ‘하드보일드는 일종의 스타일이며 애티튜드’라는 표현에 공감합니다. 그런 의미에서-젊은 분들은 좀 고루하다고 느낄지 모를-하라 료의 사와자키 탐정이 보여주는 ‘스타일과 애티튜드’에 경의를 표합니다. 내 현실은 비록 이리 구차해도 마음은 사와자키처럼 살고 싶습니다. 일본 작가만 따지면 기리노 나쓰오의 작품도 더 읽고 작업하고 싶고, 하라 료의 작품이 일본에서 여러 권 더 나오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리고 아직 소개되지 않은 몇몇 일본 하드보일드 작가들도 선보일 수 있게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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뉘앙스를 감지한 독자를 만날 때

 

주로 장르문학을 번역하셨는데요. 독자로서는 어떤 작가나 작풍을 즐겨 읽으시는지요. 최근 재밌게 읽으셨던 작품이 있다면 추천 부탁 드립니다.

 

저는 장르 구분에 관심이 없습니다. 결과적으로 보아 장르라고 불리는 쪽을 다른 분들보다 더 읽을 뿐이겠죠. 공책이나 메모에는 ‘논픽션과 픽션’으로만 나눕니다. 요즘 독자로서 읽는 책은 논픽션이 50~60%입니다. 픽션 부분만 장르를 구분하면 60~70%쯤이 미스터리와 과학소설, 환상소설일 겁니다. 물론 이 안에서도 미스터리 비중이 절대적이고요. 나머지는 이른바 순문학과 고전문학입니다. 고전문학 독서가 부족하다는 생각에 꾸준히 읽고 싶었지만 회사에 다닐 때는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번역을 업으로 하면서 고전을 읽지 않고는 도저히 버틸 수 없어 가까이 두고 더 자주 들추려고 애쓰는 편입니다. 이쪽 독서를 통해서 뭔가 결과물을 만들고 싶어 궁리 중입니다. 최근 읽은 더 재밌는 작품도 많지만 뻔뻔해도 제가 작업한 소설을 꼽겠습니다. 하마나카 아키의 『로스트 케어』, 데뷔작으로는 꽤 성공적인 소설입니다. 이 작가의 두 번째 작품인 『침묵의 절규』도 함께 읽으면 더 재미있을 겁니다.

 

국내에 꼭 소개되었으면 하는 작가나 작품이 있을까요?


출판사 사장님이 던지는 질문 같습니다. 그렇게 여기고 답변하겠습니다. 많습니다. 아주 많죠. 일본뿐 아니라 여러 나라 작품들이. ‘낼 책이 없다’는 말씀은 그냥 투정 아닐까요? 좋은 책, 재미있는 책은 많습니다. 그게 보이지 않거나, 또는 ‘팔 자신이 없다’는 이야기로 들립니다. 어떤 작품이 낼 만한 소설인지는 함께 일하는 직원에게 물어보는 것이 가장 좋겠죠. 그분은 급여를 받으니 답변할 의무가 있고 자기 회사이니 저보다 좋은 답변을 하실 겁니다. ‘꼭 소개되었으면’ 하는 제 목록은 비록 내용이 초라하더라도 비용이 지불될 때 공개하고 싶군요.
 
기자 생활을 그만두고 번역가가 된 이유와 계기가 궁금합니다.


기사를 쓰는 일은 거슬러 올라가면 고등학교 때 학교 신문, 대학 때 학보사 시절부터 했던 일입니다. 뭐랄까, 경제학과를 나왔지만 동북아 경제사라는 생계에 도움이 되지 않을 분야에 관심이 있었고, 다른 재주도 없으니 해본 짓 쪽으로 풀린 것 같아요. 고등학교 때 같은 반 친구 가운데 기자가 된 이들이 몇 있습니다. 그들과 무척 친했죠. 그리고 대학 학보사 시절에도 주로 만난 이들이 이 분야 사람들이었습니다. 학보사 선배, 동기들도 대개 언론사에 취업했고요. 학보사에 같은 해에 취재기자로 들어간 동기 남학생은 세 명인데 사회에 나와 모두 이쪽 일을 했습니다. 그래서 직장 선택은 오솔길을 따라 걷다 보니 그 세상으로 들어선 느낌입니다. 선택 가능한 다른 직업이 있었다고 해도 아마 그 길을 갔을 테지만요.

 

오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둔 이유는 다른 직종 종사자들과 다를 바 없습니다. 회사라는 큰 배를 타고 마냥 실려 가다가는 내가 원하지 않는 세상으로 갈 것 같아 내렸습니다. 배의 방향을 바꿀 능력이 제겐 없었죠. 지금 돌이켜봐도 그때 잘 내렸다고 생각합니다. 요즘은 다니던 회사에 쏟아지는 비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지만, 제게는 고마운 회사였고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난 곳이라 사람들에 대한 애틋한 마음은 그대로입니다.

 

번역을 하게 된 계기도 크게 다르지 않네요. 뚜렷한 전기가 없습니다. 처음 금전적인 대가를 받고 ‘야매’로 번역을 시작한 때는 대학시절이라고 해야 할 1980년대 초반입니다. 그리고 제 이름이 처음 번역자로 찍혀 나온 소설은 1987년 아쿠타가와 상 수상작입니다. 지금은 사라진 <소설문학>이라는 월간지에 2회에 걸쳐 실렸죠. 원래 소설가 이호철 선생님이 늘 하시던 번역인데 그때 갑자기 잡혀가시는 바람에 일이 제게 넘어왔던 걸로 기억합니다. 첫 소설 번역은 죽을 맛이었습니다. 그 뒤로도 필요할 때마다 사전을 뒤져 이 나라 저 나라 문장을 읽어야 하는 직업이다 보니 늘 번역은 조금씩 하며 지낸 셈입니다. 여러 나라 기사를 자주 참고하던 시절이었으니까요.

 

직장 생활이 번역 작업에 끼친 긍정적인 영향과 부정적인 영향이 있을까요.


기자라는 직업을 통해 경험한 것들은 번역 일에 큰 도움이 됩니다. 매일 무엇인가를 써야 한다는 일, 여러 분야의 사람과 현장을 만나고 조사하는 일, 만난 지 얼마 되지 않는 낯선 이들로부터 속에 있는 이야기를 들어내야 하는 일 등은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없죠. 부정적인 영향은 느껴본 적 없군요. 아니, 어쩌면 제가 어려서부터 기자의 일과 번역자의 일이 뒤섞인 상태로 지내왔기 때문에 아직도 ‘전업 번역자’라는 인식이 부족한지 모르겠습니다. 다른 분들과 달리 번역자로서의 프로 의식이 결여된 게 아닌지 걱정되기도 합니다. 그냥 예전부터 하던 일을 계속하는 느낌입니다. 번역 작업을 하면서 계속 뭔가를 적어 남기고, 뭔가 적어 남기면서도 계속 번역하는 상태입니다.

 

장르문학 전문카페로는 최대 규모인 ‘일본 미스터리 즐기기’를 운영하고 계십니다. 운영하시는 데 어떤 방침이 있으신지요?


초기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이제 막 미스터리를 즐기기 시작한 분들도 편하게 들어와 구경하며 어울릴 수 있는 곳’이 되기를 바랍니다. 몇 해 전부터 최소한의 관리만 합니다. 초기와 달리 제가 미스터리 관련 정보나 의견을 올리지 않습니다. 이제 제가 그런 정보와 의견을 늘어놓을 시대나 공간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카페는 회원이 꽤 많아져 어느 방향으로건 저절로 움직이는 상태라 주변 정리만 하면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인터넷 커뮤니티로는 무척 차분한 분위기이고요. 혹시 카페에 다른 무엇인가가 필요하다면 다른 커뮤니티를 만들면 되겠죠. 여러 해 전부터 인터넷 카페라는 커뮤니티 도구가 좀 낡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해서요.

 

번역가로서 짜릿할 때는 언제인가요?


가장 짜릿한 순간은 많은 분들이 제가 작업한 책을 찾을 때죠. 그리고 그런 분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눌 때입니다. 특히 미스터리 독자 가운데 책 안에서 제가 의도했던 뉘앙스를 감지한 분을 만날 때가 가끔 있죠. 내가 만진 나뭇결을 그분도 똑같이 만진 듯한 느낌이 들어 고맙고 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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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출판계의 미래를 어떻게 보시나요?


바둑 17급에게 프로 기사의 대국을 해설하라는 듯해 입이 떨어지지 않네요. 모르면서도 이런 생각은 듭니다. 한국 출판계의 미래는 암담하고, 밝은 미래를 위해 출판계가 고민해야 할 점은 시작도 끝도 ‘경영 주체들의 자기 혁신’이라고. 이쯤에서 입을 다물어야 그나마 17급 행세라도 할 수 있을 겁니다. 안타까워 덧붙이자면 제 눈에 한국 출판계는 고급 인력을 데려다가 저렴한 업무에 함부로 소비하는 이상한 곳으로 비칩니다. 그래도 아직 떠나지 않고 자리를 지키는 귀한 인력이 더는 돌아서지 않도록 소중하게 쓰이기를 바랍니다.

 

전업 번역가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둘 다 쉽지 않은 일인데, 우선 ‘작업 물량’을 균형 있게 유지하는 일. 많지도 않게, 적지도 않게. 그리고 ‘마감’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저 자신이 제대로 유지하고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중요하게 여깁니다.

 

전업 번역가를 준비하는 이들에게 한 말씀 부탁 드립니다. 


‘전업’ 번역가가 되려는 분들에게 제가 해드릴 수 있는 좋은 말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꼭 원하신다면 부디 그것을 이루시기 바란다는 말 밖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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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가와 란포 결정판에도가와 란포 저/권일영 역 | 검은숲
일본 미스터리를 접할 때 반드시 듣게 되는 이름이 있다. 그것은 바로 ‘일본 추리소설의 아버지’, 혹은 ‘대란포(大亂步)’라고 불리는 에도가와 란포다. 필명 ‘에도가와 란포’로 평생을 추리문학에 헌신했던 그는 실로 다양한 작품을 대거 발표, 일본 문학계는 물론 사회적으로도 큰 반향을 일으키면서 명실공히 국민 작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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