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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지예, 히잡을 벗은 사임당의 이야기 『사임당의 붉은 비단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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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지예 작가의 소설 『붉은 비단보』가 『사임당의 붉은 비단보』로 이름을 바꾸어 재출간됐다. 주인공인 항아(恒我), 늘 자기 자신이고자 했던 여인이 본래의 이름을 되찾기까지 8년이란 시간이 걸린 셈이다. 『붉은 비단보』는 처음부터 사임당을 주인공으로 쓰여진 소설이었으나, 그대로 출간하기에는 시기상조라는 주변의 우려 탓에 수정을 거칠 수밖에 없었다. ‘우상이 아닌 한 인간을 호명하고 싶었다’는 작가의 바람은 더없이 소박했지만, 사임당을 옭아맨 틀은 예상보다 더 단단했다. 그녀는 위대한 어머니라는 이름을 얻는 대신 여성으로서, 예술가로서, 살아온 삶을 외면당했다. 권지예 작가는 역사가 기록하지 않은 그녀의 시간에 주목했고 『사임당의 붉은 비단보』에는 그 순간들이 고스란히 담겼다. 최초 출간 당시 덜어내고 잘라내야 했던 부분들까지 살려낸 것이다. 여성으로서 꽃피우지 못했던 사랑, 예술가로서 펼쳐 보이지 못했던 재능, 진짜 사임당의 뜨거운 열정이 꿈틀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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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임당의 붉은 비단보』, 히잡을 벗은 사임당의 이야기


2012년 출간하신 『유혹』이후로 작품 활동이 뜸하셨는데요. 많은 독자 분들이 작가님 소식을 궁금해 하셨을 것 같아요.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어요?


안 그래도 ‘이러다가 독자들이 나를 완전히 잊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고, 저도 신작을 발표하지 못하고 있으니까 계속 의기소침해 있는 상태였던 것 같아요. 그동안 건강이 별로 좋지 않았어요. 큰 병은 아니지만, 옛날하고 달리 조금만 피곤하거나 면역력이 떨어지면 감기가 걸리고 한 번 아프면 계속 아프더라고요. 제 스타일이 뭔가 하나에 꽂히면 안 먹고 안 자면서 끝을 보듯이 해서 마침표를 찍어야 되는데, 이제는 체력이 뒷받침 되지 않더라고요. 체력이 안 되니까 집중이 잘 안 되기도 하고요. 이제는 옛날만큼 빨리빨리 쓰지는 못하는 것 같아요.

 

쉼 없이 달려오셔서 그럴까요? 공백기 없이 꾸준히 작품을 발표해 오셨잖아요.

 
제가 활동한 기간이 그렇게 길지는 않아요. 늦게 등단한데다가 5년 정도 무명 생활을 거치고 나서 ‘이상문학상’을 받았는데, 그때부터 청탁도 밀려오고 소설을 계속 내게 됐죠. 나름대로는 10년 정도 굉장히 애를 쓰면서 했던 것 같아요. 2012년에 『유혹』완결판을 내고 나서 ‘너무 힘들다, 조금 쉬자’ 생각했던 게 한 번 손을 놓으니까 옛날 속도를 회복하는 게 쉽지가 않더라고요. 건강에 대한 자신감도 조금 덜하다 보니까 너무 몰아치면 아플 것 같고, 조금만 하면 힘이 드니까요. 이제는 작업 패턴을 조금 바꿔서 규칙적으로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운동도 하고 건강관리도 하면서 해야 되는구나, 싶고요.

 

새로운 작품을 준비 중이신가요? 


한 3~4년쯤 쉬다시피 했으니까 ‘이제는 조금 써야겠다, 너무 많이 쉬었잖아’ 이런 생각이 들어요. 10월 중순 쯤에 쿠바로 떠날 계획인데, 다녀오면 새로운 전기가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해요. ‘올해부터는 써야지’라는 생각으로 준비 단계에 들어갔고요. 그동안에는 여성들의 사랑, 욕망을 주제로 많이 썼었는데, 이제는 제2의 작업을 하는 시기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늘 하고 있어요. 그런데 지금까지는 확 다가오는 정체성의 문제가 별로 없었거든요. 게다가 요즘 한국 문학이 죽었다는 이야기들도 많고, 출판 시장도 상황이 너무 안 좋다 보니까, 여러 가지로 의욕이 줄기도 했어요. 그런데 모색을 좀 해봐야 될 것 같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문학 생태계가 많이 달라졌으니까요. 저도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보고 싶고요.

 

8년 만에 주인공에게 본래의 이름을 찾아주셨는데, 감회가 남다르실 것 같습니다.


개정판은 8년 만에 나오게 됐지만, 처음 이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생각한 건 거의 10년 전이에요. 초고는 『사임당의 붉은 비단보』와 거의 같은데, 당시에는 출판하기에 시기상조인 것 같았어요. 그때 마침 5만 원 권에 신사임당의 초상을 넣느냐 마느냐 하는 이야기도 있었고요. 여러 분야에서 모니터링을 조금 해봤는데 우려하시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노이즈 마케팅으로 비춰져서 작가가 도마에 올라서 논란이 되는 것 자체가 너무 싫기도 했고요. 그래서 고민하다가 출간을 안 하려고 했었어요. 제 나름대로는 당시 고증을 위해서 자료, 역사책, 신사임당 평전 등 관련된 책도 많이 읽고 공부도 많이 하면서 쓴 작품인데, 그런 난관에 봉착하니까 속상하더라고요. 잘못하면 버려질 수 있는 소설이라고 생각하니까 그동안 애써서 쓴 게 너무 아깝고요. 쓰는 동안 신사임당한테 빙의돼 있었으니까 애틋한 마음도 컸거든요.

 

그렇다면 『붉은 비단보』는 어떻게 세상에 나오게 됐나요? 


처음에는 소설로 안 내고 그냥 묵혀두겠다고 생각했었는데, 갈수록 마음이 안 좋더라고요. 애써서 썼는데 언제 꺼내야 될지도 모르고 그냥 땅에 묻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거예요. 그래서 신사임당이 아니더라도, 일반 조선의 여성 예술가들도 이렇게 힘들지 않았을까 생각하고 다시 고쳤어요. 주제의식 면에서는 그런 예술가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니까요. 너무 강렬하게 스며있는 신사임당의 이야기들은 조금 빼고, 그래도 마음이 안 좋아서 ‘신사임당을 모티브로 차용해서 썼다’고 밝혔죠. 그때는 너무 섭섭한 마음에 작가의 말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쓰기도 했고요.

 

개정판 『사임당의 붉은 비단보』의 출간을 결심하신 계기가 있었나요?


그리고 8년 반 정도 세월이 지나서 『사임당의 붉은 비단보』로 다시 나왔는데요. 『붉은 비단보』가 거의 다 소진된 상태여서 더 찍어낼까 하던 차였는데, 사임당을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가 방영된다는 이야기가 있었어요. 드라마 내용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불멸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라고 홍보하는 것 같더라고요. 『사임당의 붉은 비단보』도 신사임당의 마음속 불멸의 사랑이 예술혼으로 승화된 이야기인데, 이런 분위기라면 이름을 찾아줘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출판사에서도 그렇게 생각했고요. 그래서 초고를 다시 꺼내 보면서 완성시켜서 개정판을 내게 된 거예요.

 

어쩔 수 없이 외피를 둘렀다가 이제야 본 모습을 드러내게 됐네요.


아랍권 여성들이 어쩔 수 없이 히잡을 둘러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였죠(웃음). 황진이나 허난설헌 같은 경우에는 소설이 나왔는데 신사임당에 대한 소설은 별로 없어요. 제가 이 작품을 쓸 때도 거의 없었어요. 물론 평전은 많이 있겠지만, 저는 소설가니까 예술가의 내면을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역사와 반드시 맞지는 않다고 하더라도 훌륭한 예술가라는 측면에서 핍진하게 인간의 내면을 소설적으로 형상화해 보면 어떨까 싶었던 거죠. 결국 사임당은 모든 고난이라든가 인생의 희로애락을 겪고 난 이후에 성숙한 예술가가 되었다는 걸 말하고 싶어서 여러 이야기를 집어넣은 거고요. 주변에서는 그런 시도조차 불편해 하시는 분들도 있을 수 있다고 이야기하니까 걱정이 좀 됐어요. 그래서 히잡을 두르는 것 같은 방법을 택했던 거죠. 그런데 사임당이 이런 삶을 살았다는 이야기도 아니고, 소설이라면 주제의식을 조금 더 재밌게 접근해야 되잖아요. 그러니까 소설을 읽으시고 나서 ‘그럴 수밖에 없었겠구나, 그러니까 오히려 더 훌륭한 여성이다’ 이렇게 생각하실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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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혹』에 붙은 ‘19금’ 철퇴를 맞은 것 같았어요


사임당의 시 ‘낙구’의 구절을 읽으시다가 사임당의 사랑을 상상하기 시작하셨다고요.


조금 발칙한 상상을 한 거죠.

 

말씀하신 것처럼 그런 작업을 ‘발칙한 상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있을 거예요. 우리 사회에서는 그런 시선이 이상하지도 않고요. 소설 속에서 사임당은 많은 것에 옭아매어진 인물인데, 아직도 그녀는 자유롭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요.


황진이는 기생이니까 젊은 시절의 사랑을 어떤 식으로 각색하든 역사에 알려지지 않은 어떤 이야기를 쓰든 괜찮을 텐데, 사임당이라는 여성에 대해서는 우리가 훼손시킬 수 없는 어떤 것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만인의 어머니이기 때문에 이 어머니가 여성이 되는 걸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 정서가 있는 거예요, 대한민국에는. 그게 500년 동안이나 공고하게 있었고요. 그런데 사실 별로 나쁜 것도 아니에요. 작품에 나와 있듯이 사임당이 그 남성이랑 불륜을 저지른 것도 아니고, 충분히 처녀 총각들이 연모하는 정을 나눌 수 있단 말이에요. 그건 당연한 본능인데 여기에서는 사임당이기 때문에 쉽게 넘길 수 없는 부분이 되는 거죠.

 

흔히 하는 말로 누구나 오욕칠정을 가진 존재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사임당처럼 위인이라고 일컬어지는 사람들은 어떤 이미지에 박제되어 있는 것 같아요. 『사임당의 붉은 비단보』를 읽어 보니, 그런 이들에 대한 연민이 생기더라고요. 


우상의 눈물이죠. 본인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우상의 반열에 오른 사람들은 좀 힘들죠. 그런데 사임당은, 후세에 와서 그렇게 되었지만, 살았던 당시에는 자연스럽게 살았을 것 같기도 하거든요. 나름대로, 본성대로, 그렇지만 조금 더 지혜롭고 재능이 많은 여성이었을 것 같아요. 사임당의 어린 시절이라든가 기록되지 않은 시간들은 우리가 알 수 없는 건데, 그렇게 역사가 말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작가들이 얼마든지 상상을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그게 좀 인간적인 것 같아요. 현재의 예술가보다 그 당시의 예술가들은, 특히나 여자 예술가는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자아가 강하니까 표현하고 싶었을 텐데 그게 어려운 사회였잖아요. 그런 점에서 작가로서 예술가로서 동병상련이 느껴지더라고요. 그래서 이런 이야기를 한 번쯤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졌었어요.

 

사임당이 살던 시대와 현재 사이에는 많은 간극이 있지만, 같은 예술가로서 동질감을 느끼시는 지점들이 있을 것 같아요. 여전히 여성 예술가가 짊어져야 할 것들이 남아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제가 <문학사상> 8월호에 ‘작가의 일상’이라는 꼭지를 쓰게 돼서 ‘쏘냐의 이중생활’이라는 제목의 글을 썼는데요. 이중생활을 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분열될 수밖에 없는 거예요. 멀쩡하게 주부로 살아야 하고 아이를 키워야 하는데, 작가로서는 현실과 괴리된 상황에서 집중해서 어느 세계에 빠져서 글을 써야 되는 거죠. 그 양극에서 왔다 갔다 하는 분열감이라고 할까요, 그게 너무 힘들더라고요. 지금은 아이들이 다 독립을 해서 정말 힘든 시절을 지나서 조금 나아진 것 같은데, 여자 작가나 예술가는 그런 식의 갈등 같은 게 있어요. 내 작품 세계를 지켜내야 되고 한편으로는 자연인, 일반인으로서 똑같은 의무를 다 이행해야 되죠. 옛날에는 더했으니까 사임당도 힘들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 항상 제 머릿속에 살림에 대한 생각과 작품에 대한 생각은 5:5 거든요. 그런데 사임당 같은 경우에는 7:3 정도 되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런 식으로 이해가 되는 부분이 있었어요.

 

사임당이 예술혼의 표현 자체를 억압당했다면, 지금의 여성 예술가들은 특정 부분에 있어서 표현에 제약을 받는 것 같아요. 성적 묘사 같은 부분도 그 중 하나인데요. 『유혹』을 발표하셨을 때, 이와 관련해서 우려하신 부분이 있으셨을 것 같아요.


조금 있었죠. 그때의 저는 ‘여성작가라서 못 쓰는 부분은 없다, 쓸 수 있는 데까지 써보자’ 생각하고 썼는데 여성작가로서는 수위가 꽤 높았어요. 그런데 남성 작가들은 그보다 더 수위 높게 연재할 때도 많이 있었거든요. 어쨌든 제가 느끼기에는, 우리나라에서는 아직까지 여성이 그렇게 노골적으로 표현하는 것에 대해서 불편해하는 시각이 있어요. 『유혹』을 5권으로 냈는데, 그 중에 두 권인가 세 권이 ‘19금’이 찍혀버렸어요. 그것보다 더 야한 소설들도 얼마든지 있을 수도 있는데 19금이 찍혀버리니까 출판사에서 판매하기가 너무 힘들어진 거예요. 19금이면 비닐 포장이 돼서 진열되잖아요. 그것도 너무 가슴이 아픈 거예요. 뭐라고 할까, 약간 철퇴를 맞은 느낌 같았어요. 청소년에게 유해한 부분 때문에 19금을 붙이는 건데, 인터넷을 켜면 광고라고 해서 이상한 영상들이 나오고, 소설 내용보다 더한 동영상도 얼마든지 돌아다니잖아요. 그렇다고 제가 완전히 포르노를 쓴 것도 아니고, 나름대로 주제의식을 갖고 쓴 건데... 주변에서도 정말 시대착오적이라고 말씀해 주시는 분들이 많았어요. 

 

소설에는 사임당이 현실과 예술혼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이 나오는데요. 작가님께서는 둘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고 계세요?


조금 외줄타기 하는 것 같죠. 글을 열심히 쓸 때는 굉장히 긴장감이 있었던 것 같아요. 아이들도 키워야 하고 혼자 사는 게 아니니까, 내 스케줄에 모든 게 맞춰지는 게 아니잖아요. 몸은 힘들게 생활에 맞춰야 되고 정신은 유리시켜서 소설 세계를 꿈꿔야 되니까요. 그 균형이 잘 맞도록 해야 하니까, 계속 머릿속에 서랍이 많다고 생각하고 살았어요. 외줄타기 하는 곡예사처럼 머릿속에는 항상 내가 할애해야 될 부분을 자리 잡아 놓고 글 쓰는 것하고 타협하죠, 제가 ‘이상문학상’을 받았을 때도 그런 상황이었어요. 지방 대학에 전임교수가 됐는데, 아이는 초등학교를 들어가야 됐고, 그런데 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돼서 아이가 적응을 잘 못하고 있었거든요. 처음에는 그 모든 역할들을 다 해보자고 욕심을 냈어요. 그런데 너무 힘든 거예요. 몸이 너무 안 좋아지더라고요.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순위를 정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렇다고 이혼을 하고 아이를 포기하는 건 아니잖아요. 그렇다고 소설을 포기할 수도 없고요. 그래서 교수가 무슨 의미가 있나, 하고 포기하고 열심히 전업 작가로 살기로 한 거죠. 그런데 남은 두 가지만으로도 너무 힘들었죠. 그런 세월이 있어서 일하는 여성, 워킹맘에 대해서 아직까지 짠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요.

 


진정성이 있는 남자는 좋아할 수밖에 없잖아요?


사임당과 준서의 사랑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겠죠. 개인적으로 준서가 보여준 순정이 너무 가슴 아프면서도 멋있었어요(웃음).


준서가 그렇게 멋있었어요(웃음)? 요즘 이런 남자들 별로 안 좋아하지 않나요(웃음).

 

이 소설을 읽고 나니까, 이제 나쁜 남자의 시대가 가고 순정남의 시대가 다시 올 것 같던데요(웃음).

 
사임당의 마음을 훔칠 만한 남자라면 멋있는 남자여야 하는데, 어떤 남자여야 할까 생각했었어요. 사임당의 사랑을 그리면서 몇 가지 조건이 있었는데요. 결혼 이후에 만난 남자면 안 될 것 같았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어야 했죠. 정말 마음을 훔칠 만큼 멋있어야 하고요. 그런 조건들을 생각하면서 준서라는 인물을 만들어 냈는데, 의외로 준서를 좋아하는 분들이 계시더라고요. 사실 진정성이 있는 사람이라면 진정성 있는 남자를 좋아할 수밖에 없잖아요. 나쁜 남자한테 끌리는 건, 처음에는 어쩔 수 없이 끌리는 매력을 느낄 수는 있지만, 죽을 만큼 사랑하는 진정성을 가지고 있다면 마음이 안 움직일 수가 없을 것 같아요. 저는 나쁜 남자도 가끔 그리지만, 아직까지도 운명적인 사랑을 좋아하나 봐요. 그래서 『4월의 물고기』같은 작품에서도 목숨까지 거는, 그런 사랑을 많이 그린 것 같아요.

 

신사임당의 삶을 모티프로 하고 있고 배경이 조선시대이다 보니, 사랑에 관한 부분은 살짝만 건드리시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런데 역시 작가님의 소설이라 그런지 격정적이더라고요(웃음).


관통을 했죠(웃음). 아마 사임당의 사랑 이야기는 다루기가 어려워서 쉽게 쓸 수가 없었을 거예요. 그리고 이 소설에서는 사임당이 적극적인 면도 있는데, 그렇게 쓰고자 마음먹은 사람은 없었던 것 같아요. 소설로 쓸 법도 한데 없더라고요, 저도 작품을 쓰기 전에 찾아봤는데 소설로 쓴 사람이 없더라고요. 그런데 아마 이렇게 하고 나면 조금 다른 각도로 쓰는 작가들이 있지 않을까 싶어요. 이번에 사임당에 대한 드라마가 방영되고 나면 또 많은 책들이 나올 것 같은데, 조금 색다르게 표현하는 작품들이 나올 수도 있겠죠. 자유롭게 놔두는 게 좋을 것 같아요. 크게 훼손하지 않으면.

 

‘이렇게 써도 되나?’ 싶은 생각도 드셨어요?


그런 생각 했어요. 조심조심 하면서 썼는데 어느 순간 넘어가 버리더라고요. 그런데 그걸 멈출 수가 없었어요(웃음). 나중에 가서 사임당이 ‘그림은 그리움이다’라는 이야기를 하는데, 저는 이 사랑이 사임당의 예술혼을 돌리는 동력이라고 생각했어요. 사랑이 너무 시시하면 사임당에게는 별로 의미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사랑이 하나의 불쏘시개가 될 거라고 생각했죠. 소설에서 사임당은 그 마음 자체를 가지고서 계속 그림을 그리고자 하는 아쉬움을 가지고 있었잖아요. 그리움이 있는 시도 쓰고, 자기 나름대로 어떤 동력이 됐던 거죠. 그래서 사랑이 대충 대충이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렇다고 막 사랑을 쓰기에는 너무 우아한 여인이고 옛날이야기이니까, 균형을 잡는 게 힘들었어요. 그래서 준서를 사화로 화를 입는 가문의 서자로 설정했고, 나름대로 유기적으로 엮느라 조사를 많이 했어요. 일반화된 여성 예술가들의 이야기도 하려다 보니까 황진이라든가 허난설헌의 어릴 때 이야기를 조금 입히기도 했고요. 사임당뿐만 아니라 당시 여성 예술가들의 삶이, 운명이, 순탄치 않았잖아요. 그런 걸 염두 해 두고 썼죠.

 

사임당에게는 상처와 그리움이 예술 활동의 밑거름이 되었는데요. 작가님께서도 비슷한 말씀을 하신 적이 있더라고요. “상처는 나의 힘. 나는 고통을 잉크 삼아 글을 쓴다”고요. 어떤 상처가 힘이 되어준 것 같으세요?


제 여동생이 스무 살 때 암으로 3년 동안 투병하다가 죽었어요. 저는 암인지 몰랐어요. 엄마가 말씀해주지 않으셨거든요. 그 여동생이 문재가 있었어요. 그림도 잘 그렸고요. 그래서 살아있었다면 지금쯤 그 아이도 작가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어쨌든 재주가 있는 아이였고, 저도 작가가 되고 싶어 하던 차에 동생이 그렇게 돼서, 동생이 갑자기 죽은 걸 받아들이는 데 굉장히 오래 걸렸어요. 그렇게 재능 있는 사람이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에 대해서 너무 가슴 아파해서, 어떻게 보면 약간 부채감에서 시작한 작가 의식을 갖게 된 거죠. 그렇게 간 게 너무 허무해서 그 허무함, 실존주의 쪽으로 많이 갔죠. 사는 게 무엇인지, 대학 때부터 생각을 많이 했는데 ‘결국 사람이 죽으면 아무것도 아닌데, 남는 건 예술 밖에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작가가 되기로 결심하시는 데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군요.


‘영원한 거에 대한 건 예술 밖에 없고, 내 동생이 이렇게 허무하게 갔다는 걸 모두가 잊을 수밖에 없는데, 그걸 내가 글로 써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으로 작가가 되고 싶었던 거예요, 처음에는. 제가 작가가 되고자 했던 건, 물론 다른 것도 작품으로 쓰고자 했지만, 나한테 약속을 하기로는 ‘처음 소설은 동생의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생각에서 출발했어요. 그래서 파리에 가서도 틈틈이 노트에 썼는데, 그게『아름다운 지옥』이에요. 첫 장편이요. 어쨌든 데뷔는 단편으로 하고 상도 단편으로 탔지만, 제 마음 속에는 항상 동생에 대한 오마주 같은 거죠. 동생에 대한 헌정 소설을 쓰고 그 다음부터 작가의 길을 가겠다는 마음이 있었거든요. 그 고통, 수십 년 간 간직한 동생에 대한 아쉬움, 부채감, 그런 것들이 작가가 꼭 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게 했었어요. 『아름다운 지옥』을 첫 소설로 내고 싶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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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라면 누구나 ‘붉은 비단보’를 가지고 있죠


‘상처는 나의 힘’이라고 말씀하신 걸 보고, 작가에게는 ‘질투는 나의 힘’이기도 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작품 속에서 사임당은 가연이 가진 예술적 재능에 질투심을 느끼기도 하는데요. 예술가라면 서로 그런 감정을 느끼지 않을까요? 작가님은 어떠세요?


그럴 때도 있죠. 어떤 작가들이 내가 쓰지 못하는 작품을 쓸 경우에는 질투와 동경이 섞인 묘한 감정을 느낄 때가 있어요. 완전히 100% 질투라고 하기는 뭐하고요. 그런데 젊을 때는 ‘열심히 써야 되겠다, 저렇게 잘 쓰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렇게 생각되는데, 나이를 먹으니까 ‘이제 나는 틀렸나 보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웃음). 어느 정도 시점이 되니까. 가능하면 동경과 질투가 5:5면 참 좋은데, 질투가 너무 많으면 괴롭기만 하고 글이 안 써지고요. 동경이 너무 많으면 ‘저 작가는 정말 대단해, 나보다 훨씬 나은 작가야’ 하고 쉽게 그 작가를 인정해 주게 되더라고요. 그런데 요새는 인정을 해주는 게 마음이 편하더라고(웃음). 나이가 들수록 ‘받아들일 건 빨리 받아들이고 비울 건 비우자’ 싶기도 하고 이게 편하게 사는 방법은 맞는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까 젊었을 때는 ‘나는 저걸 넘어서는 작품을 쓰고 싶어’라고 생각했다면 이제는 ‘저 작가 참 잘 쓰는구나, 부럽다’ 이렇게 돼요. 그런데 또 상처와 고통이 예술혼의 밑거름이 된다고 생각을 하다 보니까, 어떤 위대한 작품을 쓴 사람을 보면 ‘저 분은 정말 고통도 많고 상처도 많았을 거야, 이렇게 멋있게 표현했을 때는 얼마나 갈고 닦으며 힘든 세월을 보냈을까, 작가로서의 삶도 작품도 존경한다’ 이렇게 생각하게 돼요. 그렇게 마음을 먹으면 조금 더 편해지기도 하고요.

 

드라마 <사임당, 빛의 일기>가 10월에 방영될 예정입니다. 『사임당의 붉은 비단보』와 드라마의 연관성을 궁금해 하시는 분들도 계실 텐데요. 드라마 제작사로부터 연락을 받기도 하셨나요?


전혀 없었어요. 그래서 저는 사실 드라마가 방영된다는 것도 잘 모르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출판사에서 이야기하기도 하고, 인터넷에도 찾아보니까 많이 나오더라고요. 이영애 씨가 오랜만에 복귀한다고 해서 화제가 된 것 같더라고요. 내용에 대해서 밝혀진 바는 많이 없는 것 같고요. 저는 드라마 작가도 모르고, 내용도 많이 나오지 않아서 자세히 몰라요. 다만 타임슬립으로 과거와 현재를 오간다고만 알고 있는데요. 예상 밖으로 사임당의 이야기를 굉장히 현대 트렌드에 맞는 형식으로 풀어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직 드라마를 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그렇다면 옛날 사임당의 모습은 굉장히 현모양처로 그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했고요. 옛날과 현대 사이에 선을 그어 놓은 것일 수도 있잖아요. 어떻게 보면 드라마가 선을 그어놓고 사랑 이야기로 완전히 밀어붙이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기는 해요. 제 개인적인 판단이에요.

 

『사임당의 붉은 비단보』는 푸른 비단보와 붉은 비단보에 대해 의문을 던지면서 시작하잖아요. 붉은 비단보에는 진짜 사임당의 모습이 감춰져 있다고 볼 수도 있는데요. 작가님도 붉은 비단보에 담아두고 싶은 것, 혹은 담아둔 것이 있으세요?


그런 게 있다고 볼 수 있죠.

 

밝히실 수는 없는 건가요(웃음)?


그러면 붉은 비단보가 아니죠(웃음). 작가들은 누구나 있을 거예요. 저는 있다고 보는데요. 작가도 결국에는 자기가 기록하고 출판하는 작품에 한해서 알려진 사람이에요. 작품을 아기라고 한다면, 출산해서 온전하게 낳은 아이도 있지만 무수히 많이 유산된 아이도 많단 말이에요. 여기저기 쓰다 만 것들도 많고, 내밀한 기록들도 있을 수 있죠. 그런데 만약에 제가 갑자기 죽었을 때, 그게 다 공개되기를 원하느냐고 하면, 별로 원하지 않거든요. 제가 고등학교 1학년 때인가, 작가가 되겠다고 생각해서 겨울방학 내내 썼던 작품이 하나 있더라고요. 나름대로 장편이라고 해서 대학노트에 써놓은 게 있는데, 옛날 순정 만화 같기도 하고 당시 유행했던 로맨스 소설 같기도 한 소설이에요. 예전에 그 소설을 강연회에서 보여준 적이 있는데 사진은 찍지 마시라고 했어요(웃음). 너무 창피한 거예요. 귀엽기도 한데 정말 못 썼더라고요. 그런 글들이 다 드러난다고 하면 싫을 것 같은 거예요. 그런 식으로 나름대로 붉은 비단보가 있어요. 작가들이 삶에서 얻는 영감, 상처, 잊지 못할 한 장면, 이런 것들이 어느 순간에 소설이 돼서 나올지는 본인도 잘 모르는 것 같아요. 그런 것들을 독자들한테 날 것 그대로 보여주기를 원하지 않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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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임당의 붉은 비단보권지예 저 | 자음과모음
『붉은 비단보』에는 사임당의 이름이 명시되어 있지 않았다. 그러나 개정판을 내면서 그녀의 이름을 되 찾아주게 되었다.‘사임당.’ 어긋난 사랑의 상처를 예술로 승화시키며 훌륭한 어머니, 아내, 딸로서의 삶을 온전히 지켜온 사임당을 오늘의 시간으로 다시 불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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