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덕국’은 내 고향인 충청도 청양 지역에서 흔히 쓰는 말이다. 건더기가 없는 멀건 국을 말한다. 가난한 집에서 어떻게 건더기를 많이 넣고 국을 끓일 수 있었겠는가.(중략) 건더기를 찾아 숟가락을 부지런히 휘젓다보면 숟가락과 그릇이 부딪치면서 맑은 소리를 낸다. 건더기가 적을수록 더 맑게 들리는 그런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어머니는 고깃덩이를 찾느라 자식 놈이 휘젓는 국그릇에서 맑은 소리가 날수록 더 슬펐을 것이다. 어머니의 눈에서 쏟아지는 눈물은 마침 별빛을 반사하여 또 얼마나 맑은 슬픔을 주었겠는가.(23~24쪽)
1986년 월간 『동서문학』으로 등단하고 올해로 등단 30년이 되었다. 30년, 무거운 시간이다. 공광규 시인은 이 30년을 기념하고자 했다. 그는 자신의 첫 산문집 『맑은 슬픔』을 아껴둔 산문집이었다고 말했다. 그 귀한 첫 산문집의 제목은 또 어떠한가. “어머니의 눈에서 쏟아지는 눈물”이 준 ‘맑은 슬픔’이라는 문장을 읽는 순간, 이름이 없어 불리지 못했던 어떤 감정들이 비로소 제 옷을 입는 느낌이 들었다.
『맑은 슬픔』은 시인이 말하는 삶의 고백이자, 시와 사회를 바라보는 시인의 솔직한 목소리다. 고향과 불심(佛心)과 부모님과 시심(詩心)이 가득 담겨있다. 『맑은 슬픔』은 공광규 시인의 시를 좋아했던 사람이라면 시인의 생각과 관찰이 어떻게 시가 되는가를 엿볼 좋은 기회일 테고, 공광규 시인을 몰랐던 사람이라면 시인의 삶이 어떻게 우리의 그것과 닿아있는지 알 수 있는 기회가 될 책이다.
이제 시인은 새로운 도전을 하려고 한다. “거의가 눈치 보는 삶이었”음을 고백하더니 “그런 문학 말고 마음대로 해보는 문학을 한 번 해보고 싶다”는 게 아닌가. 등단 30년을 맞은 시인의 이 도전을 얼마나 많은 사람이 반가워하게 될지 자못 기대가 된다.
거의가 눈치 보는 삶이었다
등단 30년, 첫 산문집. 여러 면에서 특별한 책이 나왔습니다. 시인에게도 의미가 남다를 것 같아요.
아낀 거죠, 사실은. 그동안 여러 번 낼 기회가 있었는데요. 아낀 거예요. 이왕이면 30주년을 기념해 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었어요. 산문집을 내고 문학의 방향도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겠다 싶었습니다. 제 자신에게 의미가 있는 책이에요.
문학의 방향을 점검하셨다고요.
커다랗고, 솔직하고, 좀 더 마음대로 써보는 그런 시를 한 번 생각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동안에는 사실은 남의 눈치도 많이 봤고요. 거의가 눈치 보는 삶이었죠. 우리 삶이 그렇잖아요. 이제는 그런 문학 말고 마음대로 해보는 문학을 한 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부모님, 절, 고향 같은 이런 정서가 담뿍 담긴 글들은 시인의 표현대로 ‘글맛도 잘 변하지 않는다’는 말을 떠올리게 하는 것들이었어요.
그건 원체험인데요. 원체험은 잘 사라지지 않는 것 같아요. 어렸을 때 형성된 정서라 그런지 잘 사라지지 않아요. 다르게 써보려고 해도 다시 거기로 돌아오고요. 또 써보려고 하면 다시 거기로 돌아오게 돼요. 그래서 고민이 많은 거죠. 그 원체험을 희석시킬 만한 다른 체험들, 큰 변화가 있어야 하는데요. 그런 것을 찾아내기가 힘들다는 생각이 들어요.
시인의 시와 글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시인의 그 원체험에 매료된 부분이 많을 텐데요. 한편 시인은 변화에 대한 갈증을 느끼고, 대단히 갈등적인 상황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시인 자신도 지겹지만(웃음) 독자들, 많지 않은 독자들이라도 마찬가지일 수 있어요. 만날 똑같은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 있죠. 그래서 한번 변화를 가져보려고 하는데 결과는 알 수가 없는 거죠.
등단 30년인데 여전히 고민을 하시는군요.
30년 지났으면 이제 얼마 안 남았잖아요. 고민을 계속 해야 하는 거죠. 새로워지고 잘하고 싶다는 욕망은 끊임이 없어요.
시인의 시가 일상의 공감을 일으켜서 좋아하는 분들이 많은데요. 평범한 순간이 시가 되는 장면을 들려주세요. 어떤 순간을 포착해내는 건가요?
제재를 일상에서 찾는 거죠. 일상, 현재 시점에서 찾아요. 일상이나 현재라는 것이 평범한 것이잖아요. 작가는 이야기를 팔기도 하지만 자기 경험을 파는 거거든요. 경험을 팔아먹고 사는 문제라고 해도 좋겠죠. 그러니까 자기 경험을 먼저 이야기하는 것이 좋아요. 포착할 수 있는 능력이 바로 시적 재능이랄까, 문학적 재능 이런 것 같은데요. 똑같은 경험을 다 해요. 누구나 똑같이 살지만 어떤 사람은 그걸 쓰고 어떤 사람은 안 써요. 표현 능력이 좀 부족하면 못 쓰는 거고요.
아버지는 미루나무처럼 성정이 물러터진 나를 항상 걱정하셨다. 커서 제 밥벌이나 할까 싶어서였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미루나무가 그림붓이 거꾸로 서 있는 모습으로 보였다. 계절에 따라 들판 풍경이 색깔을 바꾸니, 모두 미루나무가 색칠을 하는 것이었다. 바람이 부는 날은 사생대회에 나온 학생들이 마감을 앞두고 더 열심히 붓질을 하는 모습이었다.(중략)
미루나무도 집으로 돌아가는 저녁이 되면
붓을 빨러 냇물로 내려가다 뒹구는지
노란 물감을 하늘에 뿌리거나
언덕에 물감을 흘려놓기도 합니다.
-「미루나무 붓글씨」일부
(31~32쪽)
가령 시 「미루나무 붓글씨」에서는 미루나무를 붓으로 상상해 시골풍경을 그려낸다는 표현을 했잖아요.
그것도 제 어렸을 때의 경험, 이런 거예요. 시골 논밭을 가로지르는 냇가에 서 있던 미루나무. 그 이야기거든요. 그 미루나무를 제가 아주 오랫동안, 한참 보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런 발견을 한 거죠. 그러니까 시인은 발견자일지도 몰라요. 발견을 하려면 대상을 오랫동안 관찰하고 생각해야 해요. 그래야 발견 대상에서 물질이 툭 튀어나와요.
관찰한 장면에 시적 이름을 붙이는 것이 시인의 작업이겠죠.
그렇죠, 이름을 붙였을 때와 안 붙였을 때, 의미가 굉장히 다르거든요. 일반 대중들도 ‘누구 씨’라고 불렀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와는 차이가 엄청나잖아요.
얼굴반찬이 되어주자
어떤 면에서 이번 산문집은 시인의 시론집처럼 읽히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자신의 문제로부터 시가 시작되어야’ 한다고 여러 번 이야기하고 있어요.
제게 글을 어떻게 쓰느냐고 물으면 저는 무조건 자신의 경험부터 백지에 옮겨라, 이런 말을 해요. 경험을 옮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런 이야기를 하죠.
경험에서 시작했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 명백한 차이가 있겠죠?
자기 글이 안 되는 거죠. 글에 자기 경험이 없으면 자기 글이 안 되고요. 그러면 쓰나마나한 거예요. 그렇잖아요. 남의 이야기, 내 것이 아닌 이야기를 쓴다는 것이 굉장히 헛된 일이잖아요.
페이스북도 하시잖아요. 요즘 작가가 SNS로 독자와 직접 소통하는 경우가 많죠. 또한 그 토양에서 시가 다시 소환되기도 했어요. 오랜 시 생활에서 이런 새로운 면면들을 어떻게 보고 계시는지 궁금해요.
페이스북도 일종의 글쓰기거든요. 자기표현 욕구가 있기 때문에 쓰는 거죠. 때문에 페이스북 글쓰기와 시나 소설의 글쓰기는 전혀 다른 것이 아니다, 같다, 라고 봐도 좋을 거예요.
혹시 역기능에 대해서도 고민을 하시나요?
글쎄요. 역기능을 생각해보진 않았어요. 굳이 꼽는다면 자기 관리겠지만요. 자신이 SNS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투여하느냐, 그것 때문에 잃어버리는 시간이 얼마나 되느냐, 이런 정도이겠고요. 소통의 장으로써 SNS가 오히려 굉장히 시를 현실감 있게 해준다고 생각해요. 보편적 정서가 쓰는 데 도움이 되는, 아주 유용한 도구라고 생각을 해요. 시간은 자기가 관리하면 되는 거고요. 개인정보도 마찬가지겠죠. 어디까지 말할 것인가 고민해야 하겠지만요. 오히려 대중과 사이버상에서 호흡하고 정서의 흐름이랄까, 시대의 흐름이랄까, 이런 것을 읽어내기에는 무척 중요한 도구인 것 같아요.
보편적인 정서, 시대의 흐름을 말씀하셨는데 지금 시인에게 가깝게 다가오는 이슈가 있나요?
일단 사회 전반의 문제에 대해서는 모두 관심이 있죠. 이미 시간이 지난 세월호라든가, 이런 데에 관심을 안 가질 수가 없어요. 청년 실업 문제, 40~50대 중년 독신 가구 증가라든가 이런 사회적 이슈에 관심을 가지고 있어요. 그 안에 내가 존재하고, 그 안에서 밥 먹고 살고 있기 때문이에요.
“얼굴이 반찬이여!”라는 직장 동료의 말에서 나온 「얼굴반찬」이라는 시가 인상적이에요. 혼밥, 혼술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서로 얼굴반찬이 되어주자는 말이 새롭게 들리기도 하거든요.
혼자 사는 가구가 많이 늘어나고 있어요. 거기에 사회과학적으로 쓰는 용어, 행정 용어 쓰지 말고 ‘얼굴반찬’이라는 말을 써도 좋겠어요. ‘소셜다이닝’이라고 하잖아요. 혼자 사는 사람들끼리 만나서 밥 먹는 건데요. 이것을 다른 방식으로, ‘얼굴반찬이 되자’고 한 거예요. 왕따를 당한다든가, 이혼을 했다든가, 사별을 했다든가, 실직을 했다든가 하는 여러 이유로 혼자인 친구를 찾아가서 얼굴반찬을 해주는 것, 그것이 굉장히 좋은 방식의 사회운동이기도 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들어요. 혼자 밥 먹고, 일하고 그러잖아요. 보면 ‘이게 뭐지?’ 이런 생각이 들어요.
『논어』에 나온 이야기인데요. ‘흥관군원(興觀群怨)’이 있어요. ‘군(群)’이 무리 ‘군’이거든요. 시는, 문학은 사람을 모으는 역할을 해요. 우리 사회를 분열시키고, 찢는 게 아니라 통합시키고, 정돈시키고, 좀 더 좋은 사회, 행복한 사회로 갈 수 있도록 하는 게 문학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아주 간단한 것부터 시작할 수 있다는 거예요.
세상의 변화는 거창한 것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해서 오히려 냉소하기도 하잖아요. 그게 아니라는 거죠.
그런 건 오히려 관념이거든요. 관념은 사실 실생활에 필요가 없어요. 저는 관념이 위험하다고 봐요. 이념에 의한 맹신 때문에 사람을 죽이기도 하잖아요. 종교 전쟁을 일으키기도 하고요. 살육을 하기도 하죠. 우리도 과거에 그런 경험이 있었죠. 이념, 관념 때문에 서로를 죽인.
신기하게 이야기가 다시 만나요. 문학도 자신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삶도 가까운 곳에서부터 변화해야 한다는 말씀이거든요.
그렇죠. 악수하고, 얼굴보고, 밥 먹고, 이런 것부터 시작해야죠. 의견이 안 맞는다고 만나지 않는 것, 여기서부터가 깨지는 거예요. 지금 우리 사회의 균열은 아마 그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요. 만나지 않기 때문에요. 특히 돈 중심의 사회, 굉장히 나쁜 사회거든요. 이런 사회가 낳은 게 여러 갈등들이죠. 가족해체, 빈부격차, 경쟁, 모두 그래요. 남북문제도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해요.
시인이 더 많아야 한다
산문집이 네 개의 장으로 나뉘어 있는데 4부에 가면 특히 시와 시인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말씀을 많이 하고 계시거든요. 시대의 변화, 지금의 실용주의 사회의 한복판에서 시가 어떻게 유리되지 않고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하시는지 묻고 싶어요.
틀림없이 역할을 할 수 있어요. ‘시의 직장’ 선언 같은 경우도 그렇고요. 오늘도 지하철을 타고 왔는데요. 을지로입구역에서 내려 시청 쪽으로 걸어가면 ‘시 항아리’가 있어요. 박원순 서울시장의 아이디어예요. 큰 건물 로비라든가 공공기관 로비 같은 곳에 그 항아리 하나만 놓으면 되거든요. 거기에 담긴 시를 선택하면 되는 거고요.
우리가 시가 삶의 사유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교육을 계속 받아왔어요. 그러나 분명히 시는 직접적으로 필요한 물건일 수도 있어요. 도구일 수 있죠.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하나의 물질이죠. 그동안 배워오고, 교육해오고, 읽어온 시들이 현실과 무관하다고 여긴 것은 시인의 표현 미숙으로 시를 잘 못 썼기 때문이에요. 그런 시들을 독자가 읽고 시를 쳐다보지 않고 시를 버리게 됐던 거죠.
‘요즘 시들이 기백이 없고 횡설수설에다 난잡, 난해, 불통인 것은 시가 현실과 접촉하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적기도 했어요.
그런 시는 과거에도 있었어요. 다만 현실과 접촉하지 못한 시들은 지금까지 살아남지 못한 거죠. 지금 시인들이 많다고 하는데요. 저는 절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시인이 더 많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더 많은 사람이 시를 써야 해요. 더 많은 책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해요. 시도 더 많이 떠돌아다니고 말이죠. 이를 테면 옛날에도 공부를 하고, 문자를 아는 사람은 다 시를 썼거든요. 그런데 그 시들이 살아남지 못했을 뿐이에요. 왜냐하면 어렵기 때문인데요. 뭘 썼는지 시인 자신조차도 잘 모르고 읽는 사람도 이해를 할 수 없고, 이런 시들을 썼을 때 그렇죠.
시가 생활 안으로 들어와야 한다는 말씀이시네요.
이미 생활 안으로 들어온 시가 있고, 안 들어온 시가 있고 그런 거예요. 안 들어온 시는 이미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는 거고요. 시를 잘 못 써도, 안 읽히게 써도 그게 유명해질 수는 있어요. 당분간. 매체의 힘, 출판 자본의 힘, 이런 것 때문에 그럴 수는 있죠. 그러나 금방 잊어버리죠.
오래 살아남는 시는 어떤 시인가요?
공감을 할 수 있는 시라고 할 수 있을 텐데요. 보편적인 감정이랄까 정서, 이런 것이 굉장히 중요하고요. 그것을 읽어내려면 시가 잘 읽혀야 하는 거거든요. 그런 조건들이죠.
시에 대한 오해도 있었던 것 같아요. 시란 어려운 것이고, 의미를 함축하고 있어야 하고, 이런 식으로요. 때문에 독자가 떠난 면도 있었을 테고요.
어려운 시도 다 시예요. 잘 못 쓴 시도 시고요. 잘 쓴 시도 시죠. 시라고 쓰면 다 시거든요. 그런데 어떤 시를 쓸 것인가는 시인의 선택인 거예요.
이 책이 ‘가끔 꺼내볼 수 있는 오래된 서랍이면 만족하겠다’, ‘몇 사람의 독자가 있어서 내 시를 이해하거나 시를 쓰려는 사람들에게 어떤 도움이 될 수 있었으면 한다’고 했는데 산문집이지만 결국 시예요. 쓰다 보니 자연스럽게 시 이야기가 된 거죠?
쓰다 보니 그렇게 된 거죠. 시에 대한 이야기를 또 해야 하니까요. 옛 사람이 이미 한 말이긴 하지만 ‘시를 쓰려면 시보다 시 쓴 사람의 정신을 배워야 한다’는 거거든요. 그런 거겠죠. 그러니까 이 선배는 시를 어떻게 썼는가를 알아보려면 이 책을 읽으면 되겠죠. 시만 봐서는 그걸 잘 모르니까요. 그래서 앞부분은 대개 그런 식으로 시, 그리고 시와 관련된 이야기를 적었고요. 뒤로 갈수록 조금 다른 이야기를 했죠.
오천만 분의 일의 인간
독자는 이 책을 어떻게 읽었으면 하세요?
글쎄요. 아무렇게나 읽으면 돼요.(웃음) 아무렇게나 손에 잡히는 대로, 아무렇게나 펴서 읽어도 되죠. 읽으면서, 시를 통해서 시인을 이해하는, 하나의 인간을 이해하는, 이런 책이었으면 좋겠어요. 오천만 분의 일의 인간이거든요, 제가. 오천만 분의 일의 인간은 삶이 어땠는가, 그 삶을 어떻게 표현해왔는가, 시라는 도구를 가지고 어떤 표현을 했는가, 그런 것을 봤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동시도 쓰시고, 다양한 글쓰기를 하고 계신데 산문집으로 또 만날 기회가 있을까요?
당장 계획은 없는데요. 앞으로 또 기회가 있으면 내겠지만요. 시집을 끊임없이 내야 할 거고요. 다른 장르도 해야겠죠. 할 수밖에 없어요.
구체적인 계획이 잡힌 건 없나요?
내년쯤에 시집이 나와야 할 것 같고요. 시그림책이 하나 나와야 해요. 그동안에 인터뷰를 한 게 있어요. 인터뷰집도 하나 내야 하고요. 윤동주에 대한 대화식 평전이랄까 이것도 하나 있는데 그것도 내야 해요.
지역 초청 행사도 자주 가시는데 무척 바쁘실 것 같아요.
오히려 그런 행사가 많아야 해요. 그래야 글을 잘 쓸 수가 있어요. 그런 곳에 가서 대중을 만나고 오니까요. 자극을 받는 거죠. 그러니까 바쁠수록 더 많은 책을 읽고 더 많은 글을 쓸 수 있는 것 같아요. 더 많은 사람을 만나야 더 많은 글을 쓸 수 있습니다. 골방에 앉아서는, 혼자 고립되어서는 말이죠. 저는 그런 게 문학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만나서 보고, 어떤 아픔이 있는지 듣고, 그런 이야기를 받아서 써야 하는 거죠.
최근 ‘문화계 블랙리스트’가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많이 시끄러웠어요. 블랙리스트 인사로 포함되어 있었는데, 어떠셨어요?
그것은 뭐,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어차피 한 사회를 구성하면 대립과 갈등이 있을 수밖에 없어요. 그런 나쁜 사회에 대해서 문인이 이야기를 하고, 글을 쓰고, 저항할 수 있는 거죠. 또 해야 하는 거죠. 그래서 이 사회를 좋은 쪽으로 수정해나가는, 문인으로서의 역할을 해야 하는 것 같아요.
과거 대학시절에 낸 시집 내용이 사회비판적이라는 이유로 해직을 당한 적도 있으시잖아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많은 시간이 흘렀는데 제 자리에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렇죠, 제 자리죠. 그런데요, 사실은 전체 국민의 책임이죠. 국민의 일부인 문인의 책임도 있고요. 이 사회의 권력 문제를 제대로 만들지 못한 책임이 다 있는 거죠.
시인으로서, 작가로서 사회 문제에 발언하려고 하는 것은 그 책임감의 일환이기도 한 거군요.
네.
인터뷰 처음에 좀 더 큰, 다른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고 하셨는데요. 아마 그런 이야기가 될 까요?
아마 그런 쪽의 이야기가 될 것 같습니다.
맑은 슬픔공광규 저 | 교유서가
이 책은 사회현실을 날카롭게 비판하고 소외된 이웃과 더불어 고향과 가족에 대한 서정적 시편들로 사랑받아온 공광규 시인의 등단 30년을 정리하는 첫 산문집이다. 고향에서 가족과 함께 보낸 유년 시절의 추억과 도회지에서의 삶을 자신의 대표적인 시와 함께 마흔한 편의 산문으로 담백하고 잔잔하게 그려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