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아파트』, 『수상한 우리 반』, 『수상한 학원』의 뒤를 잇는 ‘수상한 시리즈’의 네 번째 이야기가 찾아왔다. 아이들에게 가장 익숙한 공간-학교와 학원, 아파트를 배경으로 소통이 단절된 현실을 그려냈던 박현숙 작가. 그녀가 새롭게 주목한 곳은 ‘친구의 집’이다. 평범한 장소와 수상한 사건, 그 안에 감춰진 ‘이상한 일상’은 『수상한 친구 집』에서 다시 되살아난다. 이야기는 한층 묵직해진 소재를 다룬다. 가정 폭력과 아동 학대, 그 속에 숨죽이고 있는 아이와 그 곁의 친구들을 열세 살의 맑고 건강한 시선으로 담았다.
여진이네 반으로 전학 온 ‘오하나’는 온 몸으로 차가운 기운을 내뿜는 아이다. 짝꿍 두식이가 베푸는 무조건적인 친절에도 고마워하는 기색이 없다. 작은 일에도 불같이 화를 내면서 싸우려 드니, 아이들은 점점 오하나와 거리를 두기 시작한다. 우연히 오하나의 뒤를 따라 걷게 된 여진은 아이가 살고 있는 집이 ‘귀신이 산다고 소문 난’ 파란대문집이라는 걸 알게 된다. 담 너머 을씨년스러운 공간 안에서 오하나는 어떤 시간을 살고 있을까.
『국경을 넘는 아이들』, 『형, 나를 지켜줘!』, 『도와 달라고 소리쳐!』, 『Mr. 박을 찾아주세요』등 100여 편의 작품을 발표해 온 박현숙 작가는 왕성한 활동만큼이나 다양한 주제들을 다뤄왔다. 앞서 언급된 작품들만 보더라도 탈북자와 학교 폭력,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과 코피노가 겪는 문제들을 소재로 하고 있다. ‘수상한 시리즈’에서는 이웃 간의 무관심, 경쟁이 일상화 된 교실, 과도한 사교육의 실태를 그렸다.
자칫 무겁게 느껴질 수 있는 소재들이지만 박현숙 작가 특유의 경쾌한 필치, 생생한 묘사, 개성 있는 인물들은 텁텁한 공기를 산뜻한 기운으로 몰아낸다. 『수상한 친구 집』역시 예외가 아니다. 아이들의 꽉 막힌 속을 뚫어주고 어른들의 모순을 가볍게 비트는, 개운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이 안겨주는 코 끝 찡한 감동은 긴 여운을 남긴다.
아이들은 다 알고 있어요
『수상한 친구 집』을 보면서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다른 분들은 어떻게 읽으셨을지 궁금해지더라고요.
저도 궁금해요. 이 작품은 아동 학대, 가정 폭력에 대한 이야기거든요. 과하게 비춰지지 않으려고 애썼어요. 책에 그려진 것보다 현실은 훨씬 더 심각한데, 그걸 어린이 책에 담을 수는 없잖아요. 어린이 책에서 넘어서는 안 될 선을 지켜서 쓰려고 노력했어요. 과연 독자 분들은 어떻게 읽으셨을지, 굉장히 궁금해요.
예상되는 반응이 있다면 어떤 건가요?
『수상한 학원』, 『수상한 우리 반』은 아이들하고 가장 밀접한 이야기였잖아요. 이번 작품에서 다룬 가정 폭력은 그렇지 않은 거라서, 독자인 아이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상당히 조심스러워요. ‘수상한 시리즈’ 가운데에서 제일 반응이 궁금한 책이에요.
독자 중에는 ‘오하나’와 같은 상황에 있는 아이들도 있을 텐데요. 그 아이들은 이번 책을 읽으면서 위안을 얻지 않을까 싶어요.
그렇죠. ‘수상한 시리즈’의 작품들은 제목 앞에 ‘수상한’이라는 말이 붙는데, 들어가서 보면 우리의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일들이거든요. 우리가 일상 속에서 평범하게 받아들이는 이런 일들이 수시로 여기저기에서 일어날 수 있다는 거예요. 정말 수상한 게 아니라 우리가 만날 수 있는 일인 거죠. 전부 다 우리 일상에서 볼 수 있는 일들이에요. 어딘가 ‘오하나’와 같은 아이가 있겠죠. 『수상한 학원』에 나오는 ‘승자’나 ‘승리’처럼 평범한 아이들도 있고요. 그런데 그 아이들이 결코 평범하지 않거든요. 그런데 우리는 평범함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거예요.
‘수상한 시리즈’를 이어가시는 이유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예를 들면, 『수상한 아파트』는 독거노인들의 고독사가 이슈가 됐을 때 쓴 작품인데요. 우리는 그런 이야기를 볼 때 그냥 무심히 넘겨요. 일상이 되어버린 거죠. 그런데 여기에 ‘수상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여서 바라보면 ‘이러면 안 되겠다’라는 답이 나오는 거잖아요. 『수상한 우리 반』같은 경우에도 그냥 평범한 교실이지만 그 안에서 일어나는 아이들의 문제를 보면 ‘이런 일을 해서는 안 돼’라는 생각이 들죠. 학부모들이 아이들을 너무나 다그치잖아요. 그것도 일상이 되어버린 거예요. 당연시 생각하고 있죠. 그런데 역시 ‘수상한’을 넣어 보면 ‘이건 아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죠.
최근 아동 학대에 대한 뉴스가 많았어요. 『수상한 친구 집』의 모티프도 거기에서 얻지 않으셨을까, 하고 짐작했었는데요. 비슷한 경험이 있으셨더라고요.
동화를 쓰다 보면 예전에 보고 겪었던 일들이 생각나는데요. 최근의 그런 사건들을 볼 때도 마찬가지예요. 그렇다 보니까 글을 쓰는 데 지난 경험이 많이 반영되는 것 같아요. 『수상한 아파트』의 경우도 그래요. 작가의 말에도 썼지만, 어릴 때 저희 마을에 빈집이 하나 있었어요. 그 집에 어디에서 살았었는지 모르는 아줌마가 이사를 왔는데, 겨울이 되니까 일도 없고 추워서 사람들이 나오지도 않았었어요. 그런데 다음 봄에 가서 보니까 죽어있더라고요. 어린 저에게 그 일은 엄청난 충격이었어요. 고독사 문제를 접할 때면 그때 생각이 났죠. ‘이건 평범한 일상처럼 넘겨서는 안 되겠다’, ‘어른들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자라는 아이들에게는 이건 아니라는 걸 이야기해줘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서 쓰게 됐어요.
지금의 현실에서 아이들이 희망이 될 수도 있겠어요.
성선설을 믿거나 전적으로 동의하는 건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사람은 ‘세상을 살아가야 되는 정도(正道)’를 갖고 태어나는 것 같아요.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는 게 옳은 것인지를 알고 태어난다는 거죠. 우리는 그것이 교육으로 인해서 만들어진다고 생각하는데 저는 반대로 생각해요. 잘못된 교육으로 인해서 그것이 망쳐진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우리 아이들의 마음 깊은 곳에는 아직 그것이 살아있다고 생각하고요. 그래서 아이들이 이런 책을 읽게 되면 더 바르게 살 수 있는 길을 찾아가지 않을까 생각해요.
아이들은 이미 정답을 알고 있을지도 모르죠.
아이들하고 이야기해보면 그런 걸 많이 느끼거든요. 아이들은 다 알고 있어요. 그런데 너무나 잘못된 교육으로 인해서 아이들을 더 망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거예요. 동화 작가가 할 일은, 굳이 뭘 가르치려고 하지 않고, 우리 일상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는 걸 알려주기만 하면 되는 것 같아요. 그럼 아이들이 그걸 읽고 어떻게 살아야겠다는 방법을 생각하는 것 같아요.
가르치려고 하면 그 동화는 실패한 거예요
『수상한 친구 집』을 읽고 ‘오하나는 자라면서 어떤 시간을 살게 될까’ 궁금해졌어요. ‘과연 이 아이가 제대로 자랄 수 있을까’ 걱정이 되기도 하고요.
작가의 말에 쓴 것처럼 저도 ‘오하나’와 같은 아이를 만난 적이 있어요. 지금 그 아이가 어떤 어른으로 자랐을까 굉장히 궁금해요. 그래도 ‘오하나’에게는 희망이 있잖아요. 자신의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친구가 생겼고, 그러면 앞으로의 삶은 이전과는 달라지지 않을까라는 희망을 갖게 돼요. 저는 이 책을 읽는 아이들이, 만약 ‘오하나’와 같은 아이가 곁에 있다면, 손을 붙잡아줄 수 있는 아이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작품을 쓰면서 ‘오하나’ 같은 아이가 이 책을 읽는다면 스스로 용기를 얻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동화를 쓰시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아이들한테 가르치려고 하면 그건 실패한 동화라는 생각을 해요. 저는 작품을 쓰면서 소통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요. ‘누군가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줘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작품을 쓰지 않아요. 이 작품을 읽으면서 ‘오하나’ 같은 아이가 스스로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용기를 얻었으면 좋겠고요. 다른 아이들이 읽었을 때도 ‘이런 일이 있을 수도 있어, 이럴 때는 이렇게 해야 되겠구나’ 하고 스스로 깨달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수상한 시리즈’에는 아이들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는 어른들이 등장합니다. 아이들의 의견 같은 건 아무렇지 않게 뭉개기도 하죠. 그런데 『수상한 친구 집』의 할머니는 그렇지 않아요. 이들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 걸까요?
작가를 예로 들어 이야기하자면 이런 거예요. 어떤 작가는 ‘나도 어린 시절이 있었고 지금도 동심이 있어, 그러니까 주인공 아이도 나처럼 생각할 거야’라고 생각하고 글을 써요. 그렇게 쓴 글이 재미있을 수가 없죠. 소통을 하는 작가는 그렇지 않아요. 내가 어렸을 때와 지금의 아이들은 너무나 달라요. 세월이 많이 흘렀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주인공 아이가 보이는 반응은 옛날의 나와는 완전히 다를 수 있어요. 그러니까 지금의 아이들을 이해해야 되는 거죠. 그렇게 쓴 작품은 독자들의 공감을 얻어요. 다 내 이야기 같고, 내 친구 이야기 같고, 어제 우리 학교와 마을에서 일어난 이야기 같고, 그러니까 재미있어서 끝까지 읽겠죠.
자신의 관점으로 아이를 바라보면 안 되는 거군요.
어른들이 충분히 아이를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면, 대화에 성공하고 소통이 이뤄질 수 있겠죠. 소통하지 않고 자신이 하는 게 옳다고 생각하는 어른이라면 절대 그렇게 될 수가 없는 거고요.
아이들은 ‘수상한 시리즈’를 읽으면서 많이 통쾌해할 것 같아요. 아이들 눈에 비친 어른들의 모습, 그 안의 모순, 아이들이 털어놓을 법한 불평들까지 생생하게 담겨 있잖아요. 아이들 마음을 어떻게 이렇게 잘 알고 계세요?
저는 글을 쓸 때 어려운 단어는 쓰지 않아요. 굳이 어려운 말을 쓰지 않아도 충분히 다 이해시킬 수 있는 글을 쓰면 되는 거니까요. 아이들의 심리를 잘 묘사하는 건,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어요. 제가 23년 동안 학원을 운영했어요. 그래서 저는 사실 어른들의 언어를 몰라요. 어른들의 언어를 몰랐다는 건 어른들의 세상을 잘 몰랐다는 거예요. 저는 아이들의 언어만 알고 있었고, 아이들의 세상만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작품 안에서 어떤 해결책을 내려도 어른의 눈이 아니라 아이의 눈으로 내리는 거죠. 그렇게 하려고 노력한 게 아니라 너무 오랫동안 아이들과 생활했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수상한 아파트』부터 『수상한 친구 집』까지, 추리의 형식을 빌려서 이야기를 전개하고 계신데요. 이유가 있나요?
일단은 재미를 위해서 그랬죠. ‘수상한 시리즈’가 동화로써는 많은 분량이거든요. 재미없는 이야기가 되면 아이들이 읽어내기가 힘들어요. 그래서 일단은 재미있게 쓰자고 생각했죠. 뒤에 이어질 내용이 궁금하면 계속 보게 되잖아요. 제가 ‘수상한 시리즈’ 말고도 추리 기법을 활용했던 작품들이 제법 되는 것 같은데, 특별히 그러고 싶었던 게 아니라 일단은 재미가 있으니까 그런 방식을 택했던 거예요.
청소년 소설 중에 그런 작품들이 많이 있지 않았나요? 주인공이 탐정 역할을 하기도 하고요.
국내에서는 잘 모르겠어요. 추리소설 하면 아무래도 정통의 외서를 많이 가져 오니까요. 한국사회에서는 아동 동화에서 정통 추리로 가면 성공하기 어렵거든요. 그래서 한국의 아동 문학과 정통 추리 문학, 추리를 문학이라고 하지 않고 장르라고 하죠, 그 중간에 어떤 지점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요. 정통 추리는 조금 괴기스러운 면이 있잖아요. 그런데 한국사회에서 아동 책은 부모나 교사의 일차적인 검증을 뚫고 나가서 아이들에게 읽혀지는 게 대부분이이에요. 그래서 동화와 추리 장르가 만나서 한국 아동 문학만의 ‘추리 동화’가 태어나야 된다고 생각하는데요. 아직은 미개척 부분인 것 같아요. ‘수상한 시리즈’는 추리 기법만 가지고 온 것이지, 정통 추리하고는 조금 거리가 멀잖아요.
캐릭터를 살리는 말의 힘
‘수상한 시리즈’가 많은 사랑을 받은 건 추리의 형식 때문만은 아니겠죠. 또 다른 이유도 있을 것 같아요.
저는 그게 캐릭터라고 생각해요. 재미라는 게 캐릭터가 살아있느냐 죽었느냐에 따라 달라지거든요. 캐릭터가 정말 살아서 움직여야 돼요. 캐릭터가 죽어 있어서, 인물들이 이름만 다를 뿐 똑같이 그려진다면, 정말 재미없거든요. 착한 아이라 하더라도 전반적으로 착한 아이가 나오는 게 아니라, 이 아이가 어느 부분에서 엄청나게 착한 아이라고 캐릭터를 확 구축시켜야 되는 거죠. 어른들이 볼 때 진짜 나쁜 아이라면 왜 그런 아이로 비춰지는지, 그 부분이 확실하게 살아있어야 되고요. ‘수상한 시리즈’는 캐릭터가 잘 살아있기 때문에 재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어떻게 하면 캐릭터를 살려낼 수 있을까요?
저는 대화글로 살리거든요. 말하는 걸로써 그 사람의 캐릭터를 살려요. ‘수상한 시리즈’에서 엄마는 조금 얄밉기도 해요. 그게 대화글에서 표현이 되죠. 그렇게 대화글에서 캐릭터를 확실하게 살려서 작품을 끌고 나가니까 캐릭터가 살아있고, 그래서 조금 더 재미있지 않나 생각해요.
‘수상한 시리즈’에서 가장 애정이 가는 인물이 있다면 누구인가요?
제가 가장 사랑하는 캐릭터가 할머니예요. 작품 속에서 할머니는 가장 솔직하고, 할머니의 입을 통해서 문제점이 다 나와요. 다른 캐릭터가 그런 말을 하면 ‘가르치려고 하는 거야?’라는 생각이 들지만 할머니의 입을 통하면 전혀 그렇지가 않은 거죠. 그래서 할머니는 ‘수상한 시리즈’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에요. 엄마에게 바른 말을 할 때도 보면, 할머니의 입을 통해서 세상을 비판하는 이야기가 나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재미있죠.
할머니의 말씀을 들으면서 속 시원해질 때가 많았어요.
이야기를 듣다 보면 ‘맞아, 할머니들이 저런 이야기를 해’, ‘세상을 모르니까 저렇게 이야기할 수 있어’ 그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요새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잘 모르니까 아무 생각 없이 저렇게 말할 수 있는 거야’라고 말하면서 영악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이 가는 길은 바르지 못할 수 있어요. 반면에 요즘이 어떤 세상인지 모르는 할머니가 하는 말이 바른 말일 수가 있거든요. 아무 생각 없이 하는 할머니의 말에서 정말 세상을 비판하는 말이 나오는 거죠.
『수상한 친구 집』에서 할머니가 보여주신 사랑을 보면 ‘참어른’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다고 해서 무게 있는 사람은 아니니까 더 재미있는 거죠. 무게 있는 사람이 그렇게 했다면 재미가 없죠. 어떻게 보면 위선적으로 보일 수도 있고요. 점잖게 생긴 사람이 착한 일을 하면 ‘저 사람은 생긴 대로 착한 척 하는 거야?’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이 할머니는 그렇지 않은 사람인 것 같은데 그런 행동을 하기 때문에 더 진심이 느껴지는 거예요. 그래서 캐릭터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지금까지 100여 편의 작품을 발표하셨습니다. 이렇게 많은 이야기의 소재를 어떻게 다 발견해 내시는지 궁금해요.
말씀드렸던 것처럼 제가 23년 동안 학원을 운영했어요. 20대부터 40대까지 아이들하고만 살았어요. 제 머릿속에 있는 건 아이들과의 생활밖에 없어요. 동화를 쓰다 보면 자연스럽게 예전에 만났던 아이들이 생각나고 그 아이들이 다 책 속에 등장해요. 그 때 있었던 일이 소재가 되고요. 그리고 저는 도서관을 자주 가서 아이들이 어떤 책을 읽는지 눈 여겨 봐요. 저희 집이 초등학교와 가까운데, 아이들이 끝날 때쯤 되면 문방구에 자주 가기도 해요. 가서 아이들이 하는 이야기를 가감 없이 듣죠. 주말에는 거의 하루 종일 서점에 있는데요. 엄마들이 어떤 책을 선호하는지, 아이들은 어떤 책을 읽고 재미있어 하는지,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를 주로 봐요. 그런 게 많이 도움이 되겠죠. 아이들 옆으로 가려고 많이 노력을 해요.
‘어른들의 길’을 걷는 게 모범답안은 아니에요
탈북자, 한국전쟁 등 다양한 주제를 다뤄오셨는데요. 최근에 깊이 생각하고 계신 주제는 무엇인가요?
정말 다양한 주제를 이야기했죠. 『국경을 넘는 아이들』에서는 탈북자에 대해 썼고, 『아미동 아이들』에서는 한국과 일본 모두에게 아픈 역사를 간직한 마을 ‘아미동’의 이야기를 썼어요. 요즘에 생각하고 있는 건 동물보호에 대한 거예요.
최근에 쓰신 칼럼 ‘책 읽어주는 동화작가’를 읽었어요. 『어떤 개를 찾으세요?』와 관련해서 유기동물 이야기를 들려주셨더라고요.
작년에 독일에 가서 보호소를 보고 왔는데, 정말 우리나라와는 많은 게 달랐어요. 독일의 보호소는 완전 동물원이에요. 자원봉사자들이 하루에 두 번씩 와서 산책을 시켜주고요. 사람들이 버려서 오는 동물들은 없고, 키우다가 형편이 안 돼서 보호소로 온 아이들이에요. 주인은 보호소에 와서 각서를 쓰고 벌금을 내요. 그러면 그 아이가 입양될 때까지, 입양이 안 되면 죽을 때까지, 보호소에서 돌봐줘요. 가장 크게 느꼈던 건, 독일의 개들은 사람과 더불어 살기 위한 교육을 받더라고요. 애완견이 아닌 반려견으로서 사람과 동물이 공생하는 걸 보고 올 수 있었죠.
다음 작품에서는 동물과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겠네요.
이 세상이 사람만 사는 곳이 아니고 동물과 사람과 더불어 사는 곳이잖아요. 조금 더 평화롭게 살아야 될 필요성이 있지 않을까 싶어요. 제 힘으로 다 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글을 써서 책으로 나올 수 있으니까요. 누군가는 그 책을 읽게 될 거고, 제 책을 읽은 아이가 성장을 해서 동물 보호에 있어서 바른 생각을 하는 아이로 자랄 수도 있잖아요. 거기에 조금이라도 힘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 이야기를 담아서 재미있는 책을 써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죠.
첫 그림책 『뒤로 가는 기차』도 출간하셨어요. 이전에 발표하신 작품에 비하면 글밥이 많이 적은데요. 동화와 또 다른 부분도 많이 있었을 것 같아요.
사실은 글밥이 없이 그림책을 만드는 게 힘들었어요. 할 말이 너무 많은데 줄이고 줄여야 하는 거예요. 그리고 그림책에서는 그림이 하고자 하는 말이 또 따로 있어서 그걸 침범하면 안 되거든요. 그런 부분에 있어서 그림책을 만드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너무 다 이야기해도 안 되고, 그림과 글이 각자의 몫이 있어서 서로 어우러져야 해요. 그렇게 힘들게 나왔지만 저는 『뒤로 가는 기차』를 정말 좋아해요. 따뜻해요.
『뒤로 가는 기차』는 시간 여행을 소재로 한 작품이죠?
과거로 가는 이야기인데요. 주인공 아이는 시골에서 올라오신 할머니를 보고 창피해해요. 예쁘지도 않고 너무 시골스러운 거죠. 그리고 할머니는 원래부터 저랬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러다가 할머니의 어린 시절로 가서 그때 그 모습을 보게 되는 내용이에요.
마침 오늘이 수능이에요. ‘수상한 시리즈’를 읽어서 그런지 몰라도, 시험을 치른 아이들이 절망하고 스스로를 비하할 걸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수상한 시리즈’의 아이들도 압박감과 절망감 속에서 지내잖아요. 그런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 없으세요?
있죠(웃음). 저는 어렸을 때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지금은 그 꿈을 이뤘어요. 그런데 사실은 그 꿈을 오래 접어뒀었거든요. 마흔이 넘어서 등단을 했으니까요. 생각해 보면 저는 부모님이 원하는 만큼 공부를 잘하지도 못했었어요. 어른들이 원하는 평탄한 길을 걷는 아이는 아니었던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당당하게 살고 있거든요. 그건 저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똑같을 것 같아요. 수능이라는 규정도 어른들이 만들어낸 거잖아요.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길을 그대로 잘 걸어가는 게 모범 답안은 아니거든요. 그걸 알았으면 좋겠어요.
우리 아이들이 흔들리지 않고 중심을 잡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가장 큰 건 마음속에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 자신이 갖고 있는 꿈을 간직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게 확연하게 담겨 있지 않아도 ‘무언가 내가 할 일이 있을 거야’라는 마음만 가지고 있다면, 지금 내가 조금 더 뒤처지는 것 같아도 낙담할 필요는 없다고 봐요. 하고 싶은 일을 하되 정말 열정을 가지고 최선을 다할 줄 알면 행복하고 만족한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수상한 친구 집박현숙 글/장서영 그림 | 북멘토
‘수상한 시리즈’의 네 번째 이야기 수상한 친구 집은 집이라는 사적인 공간에서 지속적이고 은밀하게 행해지는 ‘가정 폭력’과 ‘아동 학대’를 열세 살 아이들의 시선으로 포착하여 상처받고 피폐해진 피해 아동의 모습을 그려낸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