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가 80개 들어왔다. 현재까지 진행한 광고는 7개. 양경수의 그림으로 패키지를 만든 빵도 출시됐다. 사람들이 그에게 자꾸 묻는다. “돈 많이 벌었겠네요.”, “그림은 언제 그려요?” 양경수는 어떤 질문이든 반갑게 받는다. 직장 생활을 하진 않았지만 사회생활 경력으로는 10년이 훌쩍 넘은 “심심한 인생에 약 좀 치자”고 말하는 ‘그림왕 양치기’ 아닌가! 올해 5월 『아, 보람 따위 됐으니 야근수당이나 주세요』의 표지와 삽화를 그린 후, 소위 뜬 그가 첫 책 『실어증입니다, 일하기싫어증』을 펴냈다. 출근부터 퇴근까지 직장인의 24시간을 솔직하게 그린 책. 제목만 읽고도 공감이 된다는 독자들이 많다. 책은 5일 만에 3쇄를 찍었다.
양경수의 정체성은 일러스트레이터도 웹툰 작가도 아닌 ‘현대미술작가’다. 대학에서 서양학을 전공하면서 갖은 아르바이트를 섭렵했고, 불교미술을 재해석한 작품으로 ‘2015 불교박람회 ‘우수콘텐츠상’을 수상했다. 현재 네덜란드 국립세계문화박물관 ‘더 붓다’전에 초청돼 작품이 전시 중이다. 양경수 작가는 주류와 비주류를 넘나들며 ‘B급계의 A’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양경수의 필명 양치기(梁治己)는 ‘자신을 다스린다’는 뜻이다.
너도 싫어증을 앓고 있니?
무척 바빠 보인다. 요즘 스케줄은 어떻게 되나?
책이 나오니 확실히 인터뷰와 강연이 많아졌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그림을 그리는 생활을 한 지가 거의 10년이 된 것 같다. 하루에 3시간 정도 자고 있는데, 잠을 많이 안 자는 건 익숙하다. 늘 피곤하다. 눈에 다크서클이 떠나질 않는다. (웃음)
저자로 쓴 책은 『실어증입니다, 일하기싫어증』이 처음이다. 책을 처음 받아 들었을 때 기분이 어땠나?
너무 좋았다. 어릴 때부터 만화책을 워낙 즐겨 읽었다. 내 이름으로 책이 나오면 어떨까? 늘 그런 생각을 했는데, 꿈이 실현됐다. 요즘 광고 일이 많이 들어와서 바쁘지만, 책에 관한 일정은 대부분 소화하려고 한다. 편집자분이 나와 동갑인데, 놀라시더라. 다른 일정이 많으면 책에는 대개 신경을 쓰지 않는데, 책에 애정이 많아서 놀랐다고. 사실 나는 책이 나왔다는 것에 혈안이 돼 있다. (웃음)
올해 5월에 출간된 『아, 보람 따위 됐으니 야근수당이나 주세요』에 그림으로 참여했는데, 책이 화제가 되면서 크게 주목받았다. 이번 책은 언제부터 준비했나?
『아, 보람 따위 됐으니 야근수당이나 주세요』가 나오기 전부터 준비했다. 편집자분이 내 그림을 보고 연락을 했다. 그림을 SNS에 계속 올리고 있었는데 70번째 그림부터인가, 화제가 됐다. 이미 원고가 많이 있었기 때문에 책 작업은 빨리 진행됐다.
『실어증입니다, 일하기싫어증』이 5일 만에 3쇄를 찍었다. 제목은 누가 정했나?
편집자분과 같이 정했다. 다른 후보도 많았는데 이 그림이 가장 알려졌으니 제격이라고 생각했다. 은유 없이 대놓고 가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다들 일하기 싫지 않나?
(웃음) “직장 상사에게 이 책을 선물하고 싶다”는 리뷰가 많더라.
어필이 되는 건 좋지만 이 책 때문에 불이익을 당하는 독자가 없었으면 좋겠다.
작가가 20대라고 생각하는 독자가 많은 것 같다. 스무 살 때 2만 원 들고 집을 나와서 갖은 아르바이트를 다 했다고 들었다.
야반도주는 아니었고 낮에 나왔다. 홍대 근처에서 일하면서 친해진 친구들이랑 같이 살았다. 군대를 다녀와서는 장사도 하고 클럽에서도 일했다. 24살 때부터는 인테리어 일을 했다. 벽화를 그리다 보니 자연스럽게 일이 들어오더라. 동대문에 있는 가게 인테리어를 주로 했는데 순간순간 들어오는 일들을 하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여러 직업군을 옮겨 다녔다.
직장 생활을 하진 않았지만 보통 직장인보다 다양한 사회생활을 했다. 그래서 많은 독자들이 양경수의 그림에 공감하는 것 같다.
군대나 직장 할 것 없이 말도 안 되는 상명하복이 정말 많다. 나는 회사에 다니지 않아서 더 심했던 것 같다. 인테리어를 하면서 특히 많이 느꼈다. 동대문 도매 시장도 요즘은 백화점처럼 인테리어를 한다. 그들은 장사 끝판왕인데 나보다 젊은 사람도 많았다. 어쨌든 그들이 나에게 일을 주고 돈을 주는 사람 아닌가? 신뢰감을 줘야 하니까 알 없는 안경도 쓰고, 슈트도 입고 다녔다.
고생을 많이 했나?
직장은 그래도 월급이 나오지 않나? 나는 돈을 떼인 적도 많다. 시공업자가 돈을 들고 튀었는데 날짜도 정확하게 기억한다. 2008년 여름이었는데 2천만 원을 안 주더라. 민사소송까지 준비했는데 소송비가 더 든다고 해서 결국 포기했지만 어려운 일이 많았다. 당시에 내가 어린 나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25살 때 일이니까. 지금 생각해보면 어릴 때였구나 싶다.
자기 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려달라는 독자들도 많을 것 같다.
엄청 많다. 쪽지도 자주 오는데, 정중한 사람도 있지만 진짜 무례한 사람도 있다. 이런 그림 그려주면 자기 프로필로 쓰겠다는 사람도 있고, 원본을 보내달라는 사람도 있다. 카피만 싹 지워서 상업적 광고로 쓰는 사람들도 많아서 현재 소송 중이다. 합의금을 받으면 좋은 일로 쓸 계획이다. 이런 게 좀 이슈화가 됐으면 좋겠다. 내 그림을 퍼가고 즐기는 건 좋지만, 저작권을 함부로 사용하면 안 되지 않나?
점심시간만을 오매불망 기다리는 직장인의 모습을 많이 그렸다. 밥심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요즘 하는 강연 주제도 ‘그림으로 밥 먹고 살기’다. 힘들게 성공한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저렇게 살았으니까 성공했지’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죽지 않는 이상 해야 하는 일도 있지 않나? 먹고 사는 것만큼 중요한 일은 없다.
책에 실린 그림 중에 가장 좋아하는 그림이 있다면?
34쪽 그림이다. “남들과 다른 삶을 살기 위해 오늘도 나 남들과 같은 삶을 사네.” 표지로 하고 싶었던 그림인데, 이 한 문장이 모든 걸 담고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남들과 다르게, 특별하게 살고 싶어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지 않나?
『실어증입니다, 일하기싫어증』 34쪽
기대하는 의외의 독자는 없나?
글쎄, 이 책이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되는 책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아마 상사들이 읽는다고 하더라도 ‘아, 너희가 이랬구나. 내가 좀 신경 쓸게’라고 생각할 일은 전혀 없을 거다. 다만 비슷한 상황에 있는 사람들끼리 서로서로 보면서, 속으로 ‘너도 싫어증 있겠구나’ 생각하는 거다. 우리가 한마음일 때 평화롭지 않나? 지하철에서 누군가와 부딪히면 화가 나는데, 그럴 때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예명이 ‘그림왕 양치기’다. 특별한 뜻이 있나?
만화 『원피스』를 무척 좋아한다. 해적왕 이야기가 나오는데 여기서 왕은 절대권력자라는 의미가 아니다. 동료들한테 권위도 없다. 그런데 다 책임을 진다. 이런 선장이 진짜 왕이라고 생각한다. 그림을 그리면서 꿈꾸는 일도 다르지 않다. 실력은 있는데 아직 빛을 못 본 후배들이 너무 많다. 내가 선배라서가 아니라 동료의식으로 그들과 함께 일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왜 자기 내면의 아픔을 못 봐주냐고?
네이버 웹툰에서 <잡다한 컷>을 연재 중이다. ‘잡(JOB)다(多)하지 않은 우리들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책이랑 비슷한 콘셉트로 그릴 계획이었는데, 여자친구 이야기를 듣고 생각을 바꿨다. 여자친구가 어느 날 은행에 갔는데, 그때가 영업 종료 시각 20분 전이었다. 번호표를 들고 자기 순서를 기다리는데 직원이 엄청 짜증을 냈다더라. 화가 여기까지 올라오는 걸 참고 있는데, 알고 보니 그 직원은 임신 중이었다. 여자친구가 내 그림이 떠오르면서 ‘아, 저 사람 얼마나 일하기 싫을까’ 생각이 들어 참았다고 했다. 그때 생각했다. ‘직장인뿐 아니라 모든 직업군의 애환을 그리면, 조금이라도 서로를 배려하고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요즘은 내가 역으로 인터뷰를 하러 다닌다. 그나마 조금 유명해져서 쉬워졌지만 아직 어렵다. 12월에는 ‘매일 오는 산타’라는 콘셉트로 택배 기사들의 애환을 노래로 만들 예정이다. JTBC에서 새로 시작하는 프로그램에서 공개한다.
‘프로스펙러’ 편을 봤는데 찡하더라. 스펙을 ‘쓰펙’이라고 표현했다.
다음 편은 “밥 먹기 위해서 일하는데 밥을 못 먹네”다. 네이버 웹툰 작가 모임에 나가봤는데 정말 다양한 주제로 웹툰을 연재 중이다. 소위 병맛이 있어야 독자분들이 관심을 갖는다고 하는데, 여러 색깔이 공존하는 게 좋은 것 같다. 사소한 이야기도 자주 다뤄보고 싶다. 예를 들어, 신문사 기자들은 지진이 나면 다른 사람들과 반대쪽으로 뛰어야 한다더라. 은행 직원은 고객들이 종이표를 뽑고 째려보고 있으니 화장실도 못 간다고 하고. 조금 재미없는 에피소드일지 몰라도 그 직업군은 이 웹툰을 보지 않겠나? 서로 다른 직업군의 이야기를 읽으면, ‘아 그랬구나’ 하고 접점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본업은 현대미술작가다. 불교미술을 현대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현재 네덜란드 국립세계문화박물관 ‘더 붓다’(THE BUDDHA)전에 초청돼 작품이 전시 중이다.
불교미술은 내가 평생 해야 할 작업이다. 나는 웹툰이나 다른 작업도 이름만 다를 뿐이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내가 그리는 그림을 보면 불교적인 내용도 많다. 불교의 핵심이 뭔가? ‘부처님을 믿어라’가 아니라, ‘내가 소중하면 상대도 소중하다’는 말이다. 내가 부처면 상대도 부처라는 것이 핵심이다.
한 지인이 페이스북 포스팅에 “물 들어올 때 노 저어라”라고 댓글을 달았더라. 맞는 말이지만 초심을 잃을까 봐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을 것 같은데.
많이 들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독 남이 잘되면 배 아파하는데, 내가 고생을 많이 했기 때문에 응원해주는 친구들이 많지만 시샘하는 친구도 분명 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내가 덜 열심히 살 수는 없으니까. 요즘 술을 안 마시려고 한다. 바쁘다고 돈이 좀 벌린다고 흥청망청 놀면 안 되지 않나? 자기관리를 열심히 하려고 노력 중이다. 다행스러운 건 20대 초반에 잘 풀린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현대미술을 하면서도 돈을 벌기 위한 작업을 꾸준히 했다. 벌이가 많지 않아도 직장인 평균 수준 정도는 벌었기 때문에 체계적으로 돈을 쓰는 습관은 길렀다. 얼마 전에 사업자도 냈는데, 평소 눈여겨봤던 오타쿠 후배들과 함께 작업하려고 준비 중이다.
대중이 원하는 일과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다를 때, 어떻게 할 생각인가?
미술하는 후배들에게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사실 작가가 자기 이야기를 그리는 건 가장 쉬운 일”이라는 말이다. 왜냐면 바로 그리면 되기 때문이다. 작가들은 자신이 고민을 많이 하고 사니까 이게 엄청난 주제라고 생각하는데, 물론 대단한 주제지만 대중을 설득하는 일은 10배, 1,000배 더 힘들다. 예술가는 사람들이 자신을 못 알아봐 준다고, 왜 자기 내면의 아픔을 못 봐주냐고 하는데. 이건 틀린 말이다. 못할 것 같아서 안 했을 뿐이다. 사람들이 나를 두고, ‘불교미술을 한다면서 왜 웹툰을 그리고 일러스트를 하냐’고 말하기도 하는데, 나는 양으로 더 승부하고 싶다. 더 쉬지 않고 작업할 생각이다. 대중에게 인정받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기 때문이다.
<스포츠경향>에서는 꾸준히 ‘양치기의 세상 약치기’라는 제목으로 그림을 연재 중이다. 지금 우리나라가 약 때문에 난리가 나지 않았나? 좋은 약은 뭘까?
(웃음) 정확한 진단과 정확한 처방으로 받는 약이 아닐까? 웃음에 관련된 것은 많이 섭취해도 좋으니까 내 책은 좀 많이 드셔도 될 것 같다.
아무래도 세상의 ‘을’들이 이 책에 특히 공감할 것 같다. ‘갑’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없는지.
오히려 반대로 지금의 을에게 말하고 싶다. 언젠가 이들도 갑이 되지 않겠나? 지금의 갑들은 어차피 안 바뀐다. 바뀌는 척은 할지 몰라도 안 바뀐다. 그렇다면 우리가 바뀌는 게 더 현실적이다. 우리가 마음을 달리 먹고 행동을 달리하는 일이 더 빠르다. 광화문 촛불시위를 보면서 문화예술의 힘을 깨닫는다. 우리가 결국 하나가 될 때는 이승환, 전인권의 노래를 들을 때 아닌가. 진짜 오그라들지만 문화예술의 힘이 가장 위대하다고 생각한다.
독자들에게 자유롭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퇴사를 조장하는 책이라는 이야기를 심심찮게 들었는데, 그렇지 않다. 0.5초 만에 픽 웃을 수 있는 그림이길 바라며 쓴 책이다. 읽는 데 30분도 안 걸린다. 아무 페이지나 열어도 웃을 수 있는, 늘 들고 다니는 책이었으면 좋겠다.
양경수의 '녹원전법상'
실어증입니다, 일하기싫어증양경수 저 | 오우아
양경수 작가가 그동안 그려온 ‘약치기 그림’에 미공개컷들을 더해 첫번째 책을 출간한다. 각각의 장면을 따로 떼어놓고 보면 위트 있는 한 컷 그림이지만, 출근부터 퇴근까지 직장인의 24시간을 완벽하게 재구성한 이 책을 읽고 있노라면 매일 반복되는 직장인의 고투를 담은 장편 그림책처럼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