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한 일간지에 가족 인터뷰가 실려 화제를 모았다. 김포 시골로 내려와 아이 넷을 사교육에 의존하지 않고 키운 부모의 이야기였다. 주인공은 바로 김준희 ‘바른 경영 아카데미’ 대표. 웅진씽크빅과 능률교육 대표이사를 지낸 그는 ‘책 읽기’로 아이들의 공부 근육을 만들었다. 남들이 강남으로 이사를 갈 때,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 놀 수 있는 김포 농가주택으로 이사간 여섯 가족. 덕분에 네 아이는 자연과 가까이 지내며 눈에 띄게 성정이 부드러워졌고, 빡빡한 학원 스케줄 대신 아빠가 만든 책을 읽었다.
그의 첫째 딸은 이화여대 과학교육과를 졸업하고 모교인 고등학교에서 과학 교사를 하고, 둘째 딸은 서울대 소비자아동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템플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셋째 딸은 고려대학교에서 임상병리학을 공부하고 현재 경희대 의학전문대학원에서 의사가 될 공부를 하는 중이고, 막내 아들은 서강대 생명과학과를 다니다 제대 후 치과의사로 진로를 정해 경희대 치의학전문대학원에 다니고 있다. 사람들은 김준희 대표를 때때로 시샘한다. “어떻게 아이들이 그렇게 다 좋은 대학을 갔나요? 초등학생 때보다 중학생, 고등학생이 되면서 공부를 더 잘했다지요? 그게 가능한가요?”라고 묻는다.
김준희 대표가 아이를 키우면서 유념했던 것은 딱 세 가지. 첫째, 아이의 의견을 존중하되 한 말에 대해서는 스스로 책임지게 할 것. 둘째, 책을 많이 읽히기. 셋째,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것을 가르치기였다. 대학은 인생의 목표를 향해 가는 과정일 뿐이다. 공부는 마라톤 같은 것. “책 읽기만큼 개념을 파악하는 데 도움은 없다”고 말하는 김준희 대표에게 ‘아이 잘 키우는 법’에 관해 물었다.
거칠게 세상의 지식을 습득하는 법
그동안 자녀교육서를 써보자는 제안을 많이 받으셨다고 들었습니다. 망설였던 이유가 있었나요?
자랑하면 탈이 난다고 하잖아요. 학원이나 과외를 시키지 않아서 조금 특이하게 키웠다고 할 수 있지만, 자식 이야기를 쓰는 게 망설여졌어요. 사교육을 받지 않고 아이들이 대학에 잘 들어간 건 맞지만, 좀 이름난 대학에 들어가면 성공한 것인가? 괜한 자녀교육책을 냈다가 아이들에게 부담을 주게 되면 어쩌나 하는 염려도 있었어요.
본격적으로 책을 쓰기 시작한 건 언제인가요?
작년 봄쯤이에요. 일간지에서 인터뷰를 했는데, 그 기사가 조금 화제가 됐어요. 사교육걱정없는세상에서 강연 요청이 왔고 교육청, 대학에서도 강연을 했어요. 그동안 짬짬이 정리했던 글이 있어서 책은 수월하게 썼습니다.
책을 두른 띠지 문구가 인상 깊더라고요. “자식은 부모의 머리보다 태도를 닮는다.”
종종 주변 사람들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어요. “아버지가 공부를 잘해서 애도 잘하는 게 아니냐?” 100% 부정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해요. 부모가 공부를 잘한 부분이 아이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어요. 하지만 명문대를 나온 부모의 자식들이 100% 다 공부를 잘하진 않아요. 자녀는 부모의 뜻대로 되지 않아요. 머리를 닮을 수는 있지만 전적인 건 아니죠. 중요한 건, 공부하는 걸 겁내지 않는 태도예요. 공부가 어떤 것인지 감을 잡으면, 맹목적으로 두려워하는 마음이 사라집니다. 그러면 흥미를 가질 수 있어요.
책을 읽어보니, 핵심은 존중과 책임이더라고요. 아이에게 자율권을 주되 책임도 주셨어요.
맞아요. 부모들은 아이가 밥을 안 먹으면 숟가락 들고 쫓아다니잖아요? 답답한 마음은 이해하지만, 아이에게는 결코 좋지 않아요. 아이들도 밥 먹기 싫을 때가 있을 거예요. 먹기 싫다고 하면 억지로 먹이지 않았어요. 대신 복수도 하지 않았죠. 아이가 밥을 다시 먹겠다고 할 때, “안 먹는다고 할 때는 언제고, 이제는 먹니?”라고 말하지 않았어요. 그냥 당시에 먹기 싫다는 걸로 이해해야지, 아이의 투쟁이나 반항으로 받아들이면 안 돼요. 아이가 배고파서 나중에 밥을 찾아 먹었더라도, ‘밥이 줄었네?’라고 말할 필요가 없어요.
사교육, 선행학습이 무조건 나쁜 건 아니라고 지적하셨는데요.
적당하게 하는 건 괜찮다고 생각해요. 무조건 사교육은 안 된다는 순혈주의에 찬성하지 않아요. 조금 선행을 시켜도 아이는 망가지지 않아요. 조금이라도 계획에서 어긋났을 때, 아이에게 큰일이 났다고 생각하는 조바심이 문제예요. 이런 생각이 아이를 망쳐요. 사교육의 문제는 자녀교육을 전적으로 학원, 과외에만 의존하는 데서 생겨요. 지식 소화 능력이 중요한데, 시험만 잘 보는 아이로 키워지는 거죠. 선행학습은 어떤 것을 배울지 미리 조감도를 보는 수준에 그쳐야 해요. 부모가 시험 점수에 목을 매면 본말이 뒤바뀝니다. 정작 길러야 할 지식 소화 능력은 없어지고, 아이들은 써먹을 데도 별로 없는 지식을 외우는 일에만 올인해요. 부모가 쉬운 일은 아니지만 ‘지금 못하더라도 앞으로 더 잘하면 되지’하는 태도를 취하면 아이들도 조급해하지 않고 건성으로 아는 체 하지 않아요. 그래야 소화 능력이 생겨요.
지나치게 선행을 시키면 아이가 공부에 흥미를 잃고, 너무 느긋해도 아이가 공부에 흥미를 갖지 않아요. 간혹 한글을 깨치지 않은 상태로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를 보면, 학교수업을 따라가기 어렵다고 합니다.
네 아이를 키우면서 한글을 체계적으로 가르친 적은 없어요. 큰 아이가 한글을 깨치니까 둘째, 셋째는 자연스럽게 따라왔어요. 언니가 선생 놀이를 하면서 도와주니까, 저절로 깨치더라고요.
다만 책 읽기는 강조하셨어요.
독서는 거칠게 널려 있는 세상의 지식을 습득하는 행위에요. 당장에는 직접적인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지만 나중에 교과공부를 할 때 유용하게 쓰여요. 책을 읽어 지식을 삼킨 아이는 왕성한 소화력을 가져요. 거친 풀, 날것으로 된 곡식을 먹어봤으니, 어지간한 것쯤은 씹어 삼킬 수 있는 거죠. 반면 참고서와 문제집의 지식은 정제된 음식이에요. 잘 갈아진 밀가루와 설탕으로 만든 음식은 부드럽지만 소화기관은 그에 맞춰 약해져요. 대입 준비는 단기간 승부가 아니잖아요. 초,중,고 합쳐서 12년을 달려야 해요. 거친 음식을 먹어 본 아이는 소화기관이 발달해 어떤 상황이 와도 이겨낼 수 있어요. 책으로 얻은 지식은 기억이 잘 나요.
아이들에게 독서 습관을 갖게 하기 위해, 용돈을 주기도 하셨어요.
요즘 애들은 놀 거리가 워낙 많아요. 그렇다면 그냥 놔둬야 하나? 아니 방법을 찾아야 해요. 사실 시작은 성경 읽기였어요. 한 챕터를 읽을 때마다 백 원을 줬어요. 셋째 아이는 초등학교 때 성경을 두 번이나 읽었다. 다른 돈은 박하게 주되, 책 용돈은 후했어요. 성경은 어른들이 읽기도 어려운 문장이 많아요. 낯선 지명, 문어체를 어릴 때부터 접하다 보니, 나중에는 소화하지 못하는 책이 없었어요. 책에 흥미를 갖기 시작하니 용돈을 줄 필요가 없었어요. 부모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면, 모두 “얼마나 줘야 하나? 이럴 땐 어떻게 줘야 하나?” 등 방법론적인 질문을 하는데요. 가장 중요한 건 책, 텍스트에 관심을 갖게 하는 일이에요. 방법적인 건 자기 형편에 맞게 하되 동기 부여는 부모가 해줘야 합니다.
출판사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했고, 교육기업 CEO까지 지내셨어요. 아무래도 책 선택에 있어서는 전문가세요. 책을 보니, 아이들에게 전집을 많이 읽히셨더라고요.
전집을 읽는 건 뼈대를 세우는 것과 비슷합니다. 단행본은 뼈대에 붙는 근육이고요. 전집을 출간할 때는 기본적인 편집 의도가 있습니다. 에디터들이 뼈대를 갖고 구성해요 낱권으로 책을 읽는 것도 좋지만, 전체적인 균형을 맞추려면 전집을 읽는 게 좋아요. 아이의 선호에 따른 책을 사줘도 좋지만, 확신이 없을 때는 전집을 선택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에요. 전집에 의존하라는 말은 아닙니다.
자녀 분들은 어떤 책을 즐겨 읽었나요?
제가 출판사에 다녔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집에 책이 많았어요. 집에 있는 책들을 자연스럽게 읽었고, 필요한 책은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 보기도 했어요. 만화나 로맨스 같은 책은 자기들이 용돈으로 직접 사기도 했고요. 제가 얼마나 읽었는지, 감상문을 썼는지는 일일이 체크하지 않았어요. 소화하는 능력은 스스로 키웠죠.
선택에 있어 스스로 책임지는 게 중요
책을 보면, 아이들이 사달라는 것을 후하게 사주신 편은 아니신 것 같아요.
다 사주면 밑도 끝도 없어요. 너무 쉽게 얻는 것도 좋은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꼭 필요한 것은 물론 해주지만, 경계선을 왔다 갔다 하는 것은 협상했어요. 옛날 일기를 보니까, 집에서 컴퓨터를 살 때 아이들이 1%씩 보탰어요. 얘네도 이유가 있는 거예요. 자기네도 쓸 데가 있을 것 같았던 거죠. 너무 당연하게 쉽게 얻는 부분은 절제할 필요가 있어요. 싫다고 안 사주면, 아이들은 결국 다른 방법으로 사요. 오히려 공개적으로 협상해서 사게 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어요.
자녀 분들 이야기가 많이 담긴 책인데요. 책이 나오기 전에 자녀들에게 원고를 보여주셨나요?
일일이 다 확인을 받았죠. 제 기억과 다른 사실이 있을 수 있으니까요. 민감한 부분은 뺐으면 한다고 해서 수정한 부분도 있습니다. 둘째 아이는 일기 쓰기 숙제는 다 했다면서 정정을 요구해서 그렇게 했죠. (웃음) 잘못 해석하면 약간 잘난 체 하는 느낌을 주는 내용도 있다고 해서, 톤을 좀 다운 시키고 그랬어요.
자율적으로 아이들을 키우셨는데, 이것만은 그래도 잔소리를 한 부분이 있나요?
공부에 관해서는 없었고요. 거짓말 하는 부분에서는 엄했던 것 같아요. 큰 아이한테 누가 아버지가 어땠냐고 물어보면, 무서웠다고 그래요. 거짓말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엄하게 했어요. 또 하나, ‘자기 좋다고 남 괴롭히는 일은 절대 안 된다’고 했어요. 예를 들어 재밌다고 고양이 꼬리를 꺾는 것은 약한 상대에게 피해를 주는 거니 단호하게 못 하게 해도 돼요. 그런 것 말고 아이들의 선택에서 인생을 좌우할 만한 큰일은 없어요. 잘못된 선택을 하더라도 다시 시작할 기회는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아이가 한 선택에 있어 스스로 책임질 의사만 있으면 돼요. 때때로 잘못된 선택으로 곤란을 겪어 보는 것도 훌륭한 학습이에요.
최악의 부모를 “스칸디맘과 타이거맘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는 경우”라고 하셨습니다.
스타일보다 중요한 건 일관성입니다. 스칸디맘이라고 해서 어릴 때부터 모든 걸 용인하는 게 아니에요. 타이거맘도 마찬가지예요. 100% 부모에게 의존하면 이 아이는 평생 어른이 될 수 없죠. 부모가 유순하고 아이가 자유분방하면 스칸디맘 쪽이 어울리고, 부모가 적극적이고 아이가 순응적이면 타이거맘 스타일이 잘 맞을 수 있어요. 하지만 부모가 타이거맘 스타일이라고 해도, 대학생 때까지 일관성 있게 하는 건 미친 엄마예요. 아이가 어렸을 때는 부모에 대한 저항력이 없어서 잘 따라요. 하지만 아이라고 부모가 시키는 대로 하는 걸 좋아하는 건 아니에요. 부모가 “내 아이는 어렸을 때 말을 잘 들었다”고 그대로 믿고 있는 건 무책임해요. 아이가 커갈 때마다 자율성을 조금씩 더 주고, 부모의 개입을 줄어가는 원칙은 지켜야 해요.
대표님께서는 어렸을 때 어떤 학생이셨나요?
모범생이었죠. 공부를 잘하니까 사람들이 좀 주목을 해주더라고요. 그래서 공부를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부모님은 시골에서 태어나 무학이셨어요. 친척 중에 검사를 했던 분이 계셨는데, 성공의 모델이었죠. 제가 어릴 적에는 공부를 잘하면 당연히 법대를 가는 시절이었어요. 다른 부분에 특별한 소질이 없었기 때문에 법대에 진학했어요.
부모님께서 공부하라는 잔소리는 안 했나요?
하면 내가 하는 거지, 잔소리를 듣는 걸 싫어했어요. 남의 소리를 들으면서 하고 싶지 않았어요. 아이들에게 요구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었어요. ‘어차피 해야 할 거면 네가 알아서 하고, 나는 억지로 하기 싫다는 걸 싸워가면서 시킬 마음은 없다.’ 아이들도 이게 빈말이 아니라는 걸 알았던 것 같아요.
첫째 따님은 초등학생 아이를 키운다고요. 아빠에게 양육 고민을 털어놓기도 하나요?
안 물어요. 자기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한다는 확고한 신념이 있어요. 사람들이 가끔 제게 “손녀는 어떻게 키우냐?”고 묻는데, 손녀를 왜 제가 키워요? 손녀의 교육은 딸과 사위의 몫이죠. 전적으로 부모가 알아서 키우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아빠로서, 지금 생각해보니 그래도 좀 아쉬운 부분이 있을 것 같아요.
제가 많이 엄한 편이었어요. 공부에 대한 다그침은 없었지만, 모든 걸 마음대로 하는 방임은 아니었어요. 에필로그에 쓰기도 했는데요. 막내가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 병원에 갔더니 저를 보더니 막 울어요. 놀라서 그러는 줄 알고 달래주려고 했더니, “한 눈 팔아서 아빠한테 혼날까 봐 걱정 됐다”는 거예요. 그 때, 좀 멍했죠. 애 키우는 게 이렇게 엄격하게 했나, 반성했어요. 책을 보시면, 제가 너그럽고 자상한 아버지처럼 묘사됐을지 모르겠는데요. 저도 여러 시행착오를 겪었어요. 키우다 보니, 결국 공부 잘하는 것보다 건강하게 잘 자라서 사회에 기여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어요.
엄마, 아빠 역할은 어떻게 나누셨나요?
절대적인 기준은 없었어요. 빈자리를 알아서 메꾸는 게 중요하죠. 아이들 엄마가 공격수로 나가면 저는 수비수가 돼주고, 거꾸로일 때도 있고요. 아내는 전업주부였기 때문에 하루 종일 아이들을 봤어요. 어쩔 수 없이 이래저래 잔소리를 할 수밖에 없죠. 저는 퇴근 후에나 아이들을 만나니, 아내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었죠. 아이들이 엄마를 고생시키면 “왜 너네들 아빠 마누라 고생시키냐? 너희 엄마 이전에 내 마누라다” 말해주니, 아이들이 엄마를 함부로 못했어요.
아내 분은 네 아이를 키우면서 김포에서 농사도 지으셨다고요.
아내 의견에 따라 김포로 이사를 왔던 거였어요. 아내는 한 번 정한 일을 추진하는 데는 거침이 없어요. 김포 생활이 익숙해질 때쯤 아내가 어느 날, 농사를 짓겠다고 했어요. 농사일을 전혀 안 해본 사람이었는데, 금세 농부의 신체리듬으로 바뀌더라고요. 보통 수험생을 둔 엄마는 아이가 돌아올 때까지 잠을 안 잔다고 하잖아요. 우리 아내는 저녁 8시만 되면 곤히 잠들어버렸어요. 농사 짓느라 녹초가 됐으니까요. 아내는 아이들에게 공부해라, 책 읽어라 잔소리한 적이 없어요. 성적 가지고도 마찬가지에요. 아이들 공부에 관심을 갖고 있지만 적당히 무심하게 행동한 게 오히려 아이들에게 도움이 됐어요. 자기들을 믿고 기다리는 것을 아이들이 슬슬 알아갔던 거예요.
사실 잔소리를 안 하고 참는 게, 더 힘든 일이에요.
아내가 친구들한테 이런 말을 들었나 봐요. “넌 엄마로서 한 일도 없이 애들이 명문대에 척척 붙어서 좋겠다”고. 아내가 제게 말하더라고요. “왜 내가 한 일이 없어요? 아이들에게 참견하고 싶은 것 참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른다”고. 정말 힘든 일을 해낸 거예요. 적당한 무관심으로 인해 아이들의 공부에 대한 자율성이 훨씬 커졌으니까요.
아이들에게 참 고맙다고 느꼈을 때는 언제였나요?
아이 넷 모두 고등학생 때, 대입 과정에서 저희들이 신경을 거의 안 썼어요. 어느 학교를 들여다봐야 하나, 추천해줘야 하나 고민하지 않았어요. 모두가 알아서 자기 성적이랑 적성이랑 맞는 학교를 결정했어요. 자기들이 결정해야 하는 몫이라는 걸 아는 건, 이미 성숙했다는 거잖아요. 둘째 아이는 회사를 다니다 미국 유학을 갔는데, 이것도 자기가 직장 생활을 하다 보니 공부가 더 체질에 맞는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에요. 고등학교 이후의 진로들에 대해 모두 부모를 의지하지 않았어요. 자녀가 부모 품을 벗어나서도 잘 살 수 있다는 것, 되게 감사한 일이거든요. 부모를 의지하지 않아서 서운할 수 있겠지만 이게 아이들을 키우는 보람 아닐까 싶어요.
아빠들에게도 좀 물어보자
아마 초등학생이나 중학생 자녀를 둔 부모들이 이 책을 가장 많이 읽을 텐데요. 어떤 시각으로 보면 더 좋을까요?
방법론적인 것을 기대하실 수 있지만, 더 중요한 건 방향성이에요. 사람마다 환경이 다 다르잖아요. 내 아이에게 통용됐다고 모두에게 통용될 리는 없어요. 사람들이 교육에 대해 이야기할 때, 물고기를 주지 말고 잡는 방법을 알려주라고 하는데, 아이들 교육도 마찬가지예요.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 희생해야 한다는 건, 넌센스예요. 자녀 공부 때문에 부모가 불행해지지 않아야 해요. 공부를 싫어하는 과정도 있어야 해요. 부모는 참아줘야 해요. 아이가 힘들어 하면 격려해주면 돼요. 방향성을 생각하지 않으면 흔들릴 수밖에 없어요. 부모들이 불안하니까 자꾸 정보만 찾는 거예요. 불안의 근거는 내 아이를 못 믿는다는 거잖아요. 내 아이를 믿는다면, 너무 불안해하지 마세요. 믿었더니 뒤통수 맞았다고 말하지 마시고, ‘믿는 게 원래 뒤통수 맞는 일’이라고 생각해야 해요. 때때로 내 기대에 어긋나는 걸 용인하고, 한 번 어긋나도 계속 어긋나진 않을 거라고 생각해주는 게 부모의 역할입니다.
한국사회는 여전히 엄마들이 더 자녀교육에 관심이 많습니다. 아빠들에게 하고 싶은 조언은 없으신가요?
거꾸로 엄마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어요. 가끔 아빠들한테도 “아이를 어떻게 키우고 싶냐?”고 물어봤으면 좋겠어요. 대다수 엄마들이 자기 욕심에 의한 계획을 세워놓고, 남편에게 동의만 구해요. 남편들은 싸우기 싫으니까 포기하고 동의하죠. 그런데 또 이러면, “당신은 아빠면서 왜 관심이 이렇게 없냐?”고 화를 내요. 아빠들이 무관심한 게 아니라, 엄마들이 욕심이 많은 것일 수도 있어요. 엄마들이 너무 혼자 하려고 하지 마시고, 아빠들에게도 의견을 물어볼 필요가 있어요. 강의를 다니면서 이야기를 들어 보면, 아빠들이 조금 더 본질적이고 너그럽다는 생각도 들어요.
‘바른경영 아카데미’를 설립해 대표코치로 활동하고 계세요. ‘인생학교 서울’에서는 리더십과 죽음에 관한 강의를 하신다고요.
인생학교는 지식을 알려주는 학교는 아니에요. 참여한 분들이 다양한 의견을 내고 상호작용하는 가운데 배우는 게 많아요. 죽음에 관해서 제가 다 아는 것은 아니지만, 인생 후반전을 보내면서 생각하는 것들을 나누고 있어요. 바른경영 아카데미를 만든 건, 독립된 사업체를 운영하거나 회사의 본부장급 되는 분들의 고민을 들어주다가 시작됐어요. 벌써 6년째 접어들었는데요. 경영학에 대해서 가르치는 게 아니라, 경영을 대하는 마음가짐, 시각을 알려주고 있어요.
상사와 부하 간, 관계적인 일 때문에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특히 윗사람과의 관계가 어렵죠. 어찌 보면 윗사람은 환경과 비슷해요. 북극은 춥고, 열대지방은 덥잖아요. 바꾸려고 해도 안 바뀌고, 바꿀 힘도 없는 게 현실이에요. 그럴 때 취할 수 있는 방법은 추우면 두꺼운 옷을 입고, 도저히 못 참겠으면 장소를 옮기는 거예요. 또 사람들은 춥다, 춥다 말하는데, 이것도 상대적인 거예요. 나만 추운 거 아니거든요. 나만 유난스럽게 춥다고 말하는 건 아닌지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어요. 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 잘못된 것인가, 그런 부분을 점검할 필요가 있어요.
구조적인 문제는 혼자 힘으로 바꿀 수 없을 텐데요. 어떻게 직장생활을 견뎌야 할까요?
한 기업에서 설문조사를 했어요. ‘내가 다른 팀의 요청을 얼마나 수행하고 있나?’를 물었더니, 평균이 80점이 나왔어요. 그런데 ‘다른 팀은 내 요청을 얼마나 수행하고 있나?’는 문항에서는 평균 50점이 나왔어요. 실제로 주는 사람들은 80을 줬다고 생각하는데, 받은 사람은 50으로 체감하고 있다는 거예요. 이게 세상의 이치예요. 억울하다고 하지만 30만큼의 갭은 있을 수밖에 없어요. 구조적인 개선도 필요하지만, 개인의 문제로 돌아봐야 해요. 구조적인 문제만 이야기하면서 자기 것을 놓치는 건, 현명하지 않아요.
2017년도 특별한 계획이 있나요? 2015년 출간한 『그림 수업, 인생 수업』도 반응이 좋았는데요. 후속작을 쓰고 계신지요?
우선 그림 그리는 일을 더 즐겁게 하고 싶어요. 지금 하는 일이 글 쓰는 일과 강연하는 것, 찾아오는 사람들을 상담하는 일이에요. 더 잘하고 싶어요. 다음 책은 ‘바른경영 아카데미’에서 강연한 내용을 에세이로 풀어볼까 해요. 찬스가 생기면 유학 같은 것도 가보고 싶어요. 일본 같은 나라에서 컨설팅 내지 상담, 코칭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으로 회사에 들어가봐도 좋을 것 같아요. 월급은 받지 않아도 되니까 인턴도 좋고요. 곁눈질로 좀 더 가까이에서 보면, 답답해서 저를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더 잘해줄 수 있을 것 같아요.
CEO 아빠의 부모수업김준희 저 | 나무를심는사람들
『CEO 아빠의 부모수업』은 저자 김준희가 김포 농가주택에서 네 아이를 사교육 없이 수재로 키운 교육 비결을 담은 책이다. 그는 ‘책 많이 읽으면 좋은 대학 갈 수 있다’는 소신을 아이들 교육에 적용했고, 독서로 ‘지식 소화 능력’을 기른 네 아이는 사교육의 도움 없이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