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 디자이너 이기준의 첫 산문집 제목을 포털사이트에 입력했다. 웬걸. 고민상담 게시글이 수두룩하게 먼저 보인다. “저, 죄송한데요.” 아, 우리가 이 말을 이렇게 많이 하고 있었나? 새삼스러웠다. 『저, 죄송한데요』를 일찌감치 읽은 독자들은 한줄평을 남겼다. “엄청난 문장들이 많다.”, “심심풀이용.” 극과 극의 평가를 받은 이 책의 속살이 궁금했다. 200쪽이 채 넘지 않는 가벼운 책, 시집 판형보다 작은 책은 저자의 한 마디로 시작한다. “오른쪽 말줄임표를 없애고 보면 꽤 단호한 어조입니다. 어눌하게 말한다고 해서 흐리멍덩하게 사는 건 아니랍니다.”책을 다 읽고 나니, 이 문장이야말로 제대로 된 한줄평이 아닐까, 싶었다.
서울 마포구 창전동에 자리한 독립책방 ‘이후북스’에서 이기준 디자이너를 만났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책방에는 이기준 디자이너가 작업한 책이 꽤 많았다. 『저, 죄송한데요』의 주인공은 책 서두에서 이렇게 말한다. “말주변 어눌한 친구의 하소연을 들어 준다 생각하시고 넉넉한 마음으로 읽어 주시길...” 슬며시 헷갈리기 시작했다. 간단한 일을 결코 간단히 넘기지 못하는 ‘쫀쫀한’ 주인공은 과연 누구란 말인가? 자분자분 이야기를 이어나가다 “하하하” 호쾌하게 웃는 이기준 디자이너는 책 속 화자와 당황스러우리만치 똑같고, 또 달랐다.
생뚱맞게 튀어나오는 글을 어떻게 하지?
왠지 곧 책이 나오지 않을까 짐작했어요. 그간 출간 제의를 많이 받았을 것 같아요.
몇 년 전, 책이 한 번 나올 뻔했어요. 시기상조가 아닐까 생각했기 때문에 그 때 불발된 게 오히려 다행이다 싶어요. 이후 열심히 다듬고 해서 그 때보다는 좀 나아진 것 같은데 잘 모르겠네요. 그 때 쓴 글 중 몇 편은 살렸어요. 일부는 다른 책으로 넣고 싶어 준비하고 있고요. 대학 다닐 때부터 책을 몇 권 내고 싶다는 생각을 해서, 혼자 글 쓰는 연습은 쭉 했어요. 꾸준히 성실하게는 못했지만 지금도 머릿속에는 몇 권이 있어요. 자꾸 시작만 되풀이하곤 했는데, 작년에 반 년 정도 여행하면서 이 책 마감은 반드시 하자고 생각했어요. 원래 일정대로라면 여행을 가기 전에 원고를 완성해야 맞는데, 좀 늦게 나왔어요.
산문집 제목이 독특해요. 계속 되새김질하게 되는 말이에요.
책 제목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떠오른 표현이에요. ‘죄송한데요’가 아니라, ‘저, 죄송한데요’잖아요. 바로 핵심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표현인데요. 주인공의 성격을 보여주는 말이기도 하고, 책이 독자에게 말 거는 표현일 수도 있어요. 또 생활 속에서 느낀 부분이기도 하고요. 왜 이렇게 죄송해하지 않는 거야? 같은 상황도 많고, ‘나라도 좀 죄송해야 할 땐 죄송하자’는 다짐이기도 해요.
‘목차’가 없는 책이에요. 인터넷서점에서 책을 검색했는데, ‘목차가 없는 상품입니다’라고 뜨더라고요. 뭔가 표현이 재밌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북 디자인을 하면서 ‘이 책에는 꼭 목차가 없어도 되지 않을까’ 생각한 적이 많아요. 그래서 출판사에 제안한 적도 있는데, 받아들여진 적이 한 번도 없어요. 그래서 저한테 결정권이 있을 때, 목차 없는 책을 한 번 해보고 싶었어요. 제 책이니까요.
디자인도 직접 하셨어요. 디자이너의 책이라고 해도 흔치 않은 일이에요.
직접 할 생각은 사실 없었어요. 늘 다른 사람의 책을 디자인했기 때문에 제 책이 다른 디자이너 손에서 어떻게 나올지 궁금했어요. 물론 제 마음에 안 들 수도 있겠지만 원고만 딱 주고 관여하지 않으려고 했거든요. 결국 제가 하게 됐지만요.
좋은 점도 있었을 것 같아요.
제 책이 아닐 때는 책에 관한 어떤 제안이 선뜻 받아들여지기 어려워요. 그래서 제안을 못하기도 하고요. 그런데 이번에는 제 책이니까 목차도 없애고 빈 페이지도 내버려둘 수 있었죠. 오른쪽 페이지는 여백으로 남기면 절대 안 된다는 출판사도 많거든요. 제 책은 그런 제약 없이 하고 싶은 대로 다 할 수 있어서 가장 좋았어요. 민음사에서도 흔쾌히 받아주셨고요. 그간 디자이너 입장에서 제안했을 때, 거절 당한 아쉬움이 많았기 때문에 누군가 제 책을 디자인한다면, 누가하든 절대 손대지 않으려고 했거든요. 다음 책은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생각보다 장점이 컸다고 생각해요.
거꾸로 저자의 입장을 생각한 계기도 됐을 텐데요.
국내 저자의 책을 디자인할 때, 수정 요청이 굉장히 많아요. 10교 이상 볼 때도 있고요. 조사를 이렇게 붙였다가 다시 전으로 돌리는 경우도 많고요. 교정지를 보는 일이 끝이 안 나니까, 하다 보면 힘들거든요. 그래서 내 책은 그러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만들다 보니 정말 표현 하나 놓고 갈팡질팡 고민되는 거예요. 하하하. 예전에는 ‘한 번 마음먹었으면 그냥 놔두지’ 싶었는데, 그 심정이 충분히 이해되더라고요.
왼쪽 페이지는 ‘주석’ 같은 글이 실렸어요. 오른쪽에 있는 글을 읽다가 왼쪽을 또 읽어야 하고. 산만하면서 재밌는 책이에요.
처음 원고를 쓸 때는 괄호로 각주처럼 썼다가, 디자인하면서 분리를 시켰어요. 본문은 오른쪽에 넣고 잡다한 이야기는 왼쪽으로 몰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림도 나중에 그렸어요. 글로만 책을 만들고 싶었는데 계속 고치다 보니 생각이 바뀐 거죠. 생뚱맞게 튀어나오는 글을 어떻게 하지? 생각하다가 이런 형식이 나왔어요. 그림을 곁들이자는 제안은 편집자가 줬고요.
117쪽에 “배려일까요? 소심함일까요?”라는 문장이 나와요. 셔츠를 맞추려고 옷 매장에 들린 주인공이 매니저의 식사 시간을 챙기는 장면이죠. 독자들이 퍽 공감할 대목이라고 생각했어요. “무참히 두드려 맞으면서도 가해자의 손에 피 묻을까 봐 걱정하는 격”이라는 표현도요. 주인공 캐릭터가 매력적인데요. 피곤한 성격이기도 해요.
캐릭터를 극단적으로 몰고 가서 썼어요. 딱 저를 닮은 인물보다는 어떤 캐릭터를 설정하면 더 재밌을 것 같았어요.
많은 독자는 ‘이기준 디자이너’를 상상하면서 책을 읽었을 텐데요. 나를 오해할 수도 있겠다는 우려는 없었나요?
그런 걱정은 안 하는 편이에요. 어차피 모든 독자에게 “저 사실은 이런 사람이에요” 설명할 수도 없잖아요. 또 저라는 사람에 대해 판단하는 것은 다른 사람의 영역이고요. 어찌할 수 없는 일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아야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해요. 또 책에서 몇 편의 글은 현실일 수 없는 내용이에요. 일종의 장치인데, 그 장치를 발견할 때 읽는 재미가 있지 않을까 싶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 진짜 이 사람은 어디서 만나기 무섭다’ 생각하면 어쩔 수 없는 거죠. 하하하.
혼자만 알고 싶은 식당 이야기도 쓰셨잖아요. 어딘지 엄청 궁금했어요. 사람들이 많이 물어보지 않았나요?
몇 번 들었는데 말을 안 해주고 있어요. 하하하. 말해주면 나만 알고 있다는 사실이 깨지는 거잖아요. 한 번 깨지기 시작하면 연쇄적으로 퍼질 수밖에 없고요. 제가 처음 갈 때만 해도 줄을 서지 않고 먹었는데, 지금은 줄을 서야 해요. 속상해요.
동네라도 알려주시면 안 되나요?
하하하. 안 됩니다.
이기준 디자이너가 작업한 책들
희한하고 좋은 경험
2012년부터 유유출판사의 책을 디자인했어요. 전속 디자이너라고 불릴 정도인데요. 작은 판형, 간결한 디자인 덕분에 출판사 고유의 독자성이 높아졌다고 생각해요.
유유출판사는 제 판단을 웬만하면 쳐내지 않고 많이 받아들여주는 편이에요. 그래서 다른 책을 작업할 때보다 제 색이 많이 드러나요. 처음 유유출판사에서 책을 냈을 때, 대표님이 주변으로부터 우려의 목소리를 많이 들으셨다고 해요. 책 디자인이 뭐 이러냐, 하고. 하하하. 그런데 그 때도 대표님은 흔들리지 않더라고요. 굉장히 용기라고 생각해요. 디자이너로서 고마운 마음이 커요. 큰 행운인 것 같아요. 어떤 전략을 가진 것도 아니었던 두 사람이 각자 다른 데서 경험을 쌓다가 우연히 만나서 작업하게 됐거든요. 유유에서 지금 50권을 넘게 책을 냈는데, 3권 빼고 모두 제가 디자인했어요. 유유가 구상하고 있었던 것이 제가 추구하는 조형언어와 잘 맞았는데, 운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어요. 출판사가 자리잡은 후에는 디자인을 특정 방향으로 끌고 갈 수도 있는데, 그런 것도 없었고. 좀 희한한 일이고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지금도 작업 중인 책이 있나요?
이번 주에 새 책 시안을 보내줬어요. 그간 유유에서 시도한 것과 좀 다른 분위기를 내보려고 해요. ‘문구의 과학’이라는 번역서인데, 2월쯤 나올 것 같아요. 유유 책은 두 달에 3권 꼴로 작업하고 있어요.
디자인을 하기 전에는 디자이너도 한 책의 독자잖아요. 작업하면서 참 좋았던 책은 무엇인가요? 두 권 정도 꼽아주신다면요.
비교적 최근에 나온 『사회학공부의 기초』가 생각나요. 제가 정말 뼛속까지 개인주의자거든요. 막힌 구석도 있고요. 심지어 사회문제가 많은 것도 개인이 스스로에게 충실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책을 보니까 그렇지 않구나 싶더라고요. 되게 재밌게 봤어요. 또 슈테판 츠바이크의 책은 언제든지 좋고, 장세이 작가의 『후 불어 꿀떡 먹고 꺽!』도 좋아요. 장세이 작가의 전작 『서울 사는 나무』도 제가 작업했는데, 자기만의 문장이 있더라고요. 다른 저자에게서는 본 적 없는 토속적이면서도 독특한 멋이 있어요.
평소에 즐겨 읽는 책은 어떤 장르인가요?
소설을 많이 봐요. 디자인 관련 책은 거의 안 보고요. 이탈로 칼비노를 좋아해요. 『반쪼가리 자작』을 무척 재밌게 봤는데, 내가 이런 책을 쓸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어요. 테드 창 책도 좋아해요.
저자 소개글의 첫 문장이 “그래픽 디자이너, 첫 직장은 두 달 만에 그만뒀다”예요. 일찍 회사를 그만둔 이유를 물어봐도 될까요?
디자인회사에 들어갔는데 제 관심사에 맞지 않은 일을 맡게 됐어요. 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들어갔으니, 허드렛일부터 배우는 게 맞는데 당시에는 ‘내가 하는 일이 고작 이런 거야?’ 생각했어요. 회사에서는 “이거 몇 년 동안 계속하는 것도 아니고 돌아가면서 하는 일”이라고 했지만. 차라리 책 만드는 일을 하면 좋을 것 같아, 두 달 만에 나와서 출판사에 들어갔어요.
출판사에는 오래 계셨나요?
1년 만에 그만뒀어요. 입사하자마자 새로 꾸린 팀에 들어갔는데 편집자 3명, 디자이너 1명인 팀이었어요. 선배 디자이너 없이 혼자서 만드니까 좀 불안하더라고요. 아직 배울 게 많은데 제가 뭐든지 결정해야 하니까 너무 발전이 없을 것 같았죠. 계속 책만 파다 보니까, 이러면 진짜 책만 만드는 사람이 되나, 음반도 만들고 싶은데 생각하다가, 나왔어요. 이후에 디자인회사를 몇 군데 더 다녔는데, 조직생활이라는 형식 자체가 저하고는 안 맞는다고 생각했어요. 5,6년 회사를 다니다가 혼자 일하기 시작했죠. 혼자 일한 지 11년쯤 됐어요.
프리랜서는 일을 계속 선택해야 하잖아요. 선호하는 일이 있나요?
일단 시간이 되면 가능한 하려고 하는데, 아동물은 잘 못하겠더라고요. 교육 관련 일도 그렇고요.
교육은 왜죠?
일단 한국 교육 시스템에 문제가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시장에 손을 얹고 싶지 않아요. 잘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고. 제가 아이가 없으니까 아는 것의 한계가 있을 테니, 뭔가를 만들어낼 자신이 없어요.
후배들이 북디자인과 관련해 조언을 물어오면, 어떤 이야기를 해주시나요?
디자이너들과의 교류가 전혀 없어서요. 그런 경우가 없어요. 강연을 가끔 하긴 하지만, 특별히 조언을 말한 적은 없는 것 같아요. 아, 제가 어제 건축가 황두진 씨가 진행하는 영추포럼에 갔어요. 매년 주제를 정해서 두 달에 한 번씩 연사 강연을 하는데, 어제는 황두진 씨가 직접 했어요. 한국 근현대 건축에 관한 사진을 보여주면서 이야기를 풀어갔는데, 제가 꼭 하고 싶었던 말을 하더라고요. 한 건물이 세워질 때는 그 건물이 거리에서 해야 할 역할이 있다는 이야기였는데요. 우리는 건물의 정면만 유심히 보지만, 측면으로 봤을 때도 도로라는 맥락에서의 흐름이 이어져야 한다는 사실이에요. 책도 그런 것 같아요. 텍스트를 떠나, 그 책을 쓴 저자의 상황, 그 책을 선택한 출판사의 환경이 또 있잖아요. 디자이너로서는 보기 좋게 만들어야 하는 의무도 있지만, 여러 상황을 같이 보는 지혜도 필요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어요.
엇박자로 지냈으면 해요
프리랜서 디자이너의 하루는 어떤가요? 예상이 되면서 또 궁금하네요.
특별할 게 없어요. 아침 식사를 한 후 작업하고, 점심을 먹고 또 작업하고. 하하하. 물론 틈틈이 밖을 나가기도 하지만 보통 책상 앞에 앉아서 보내는 편이에요. 약속도 거의 없고요. 저녁을 먹고 나서는 일을 안 하려고 해요. 사실 저녁 먹기 전부터 작업을 접는 경우가 많죠. 『저, 죄송한데요』 표지를 보면 오른쪽 위에 시계가 하나 있잖아요. 바늘을 보면 4시 30분을 향해 있어요. 사실 이게 제가 생각하는 퇴근 시간이에요.
아침을 일찍 시작하는 편이신가 봐요.
보통 7시 전후에 일어나요.
좀 지나가는 질문으로요. 하지만 책과 연결되는 질문이기도 해요. 제가 만약, 인터뷰 시간을 30분 정도 늦었는데 “저, 죄송합니다”라고 말하지 않고 그냥 인사치레로 건성건성 사과했다면, 어떠셨을 것 같아요? 인터뷰하기 불쾌하셨을까요? ‘뼛속까지 개인주의자’라는 표현이 인상 깊어서 드리는 질문이에요. (웃음)
아마 20대였더라면 불쾌했을 것 같아요. 먼 훗날 제가 발표하고 싶은 소설에서도 1분, 2분 때문에 예민해지는 사람이 나오거든요. 그런데 지금 나이가 좀 들어서인지, 크게 개의치 않아요. 개인주의자로 오랜 시간을 살다 보니, ‘나만 잘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옆에 일어나는 일에 관심을 갖지 않고, ‘혹시 내가 실수하지 않았나?’만 생각했는데요. 요즘 시국이 안 좋다 보니, ‘나도 되게 문제가 많은 사람이었구나’ 생각하게 됐어요. 말해주지 않으면 제가 문제를 모를 때가 있더라고요. 학습을 해야 하는 시기가 왔구나, 느꼈어요.
평소 ‘지금 참 좋다’하고 느낄 때는 언제인가요?
비가 많이 와서 출근길 혼잡이 예상되는 날,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일 때, 좋아요. 뭔가 살짝살짝 어긋나는 순간이 있잖아요. 조금만 타이밍이 달랐으면 겪었을 불편을 피했을 때, 참 좋죠. 저는 복잡한 출퇴근길이 싫어서 사무실을 알아볼 때도 걷거나 자전거로 이동이 가능한 곳을 찾아요.
디자인을 전공하게 된 계기는 있었나요?
11살 때쯤, 록 음악을 듣기 시작했어요. 외국 가수들의 앨범 자켓을 매일같이 따라 그리고, 가상의 밴드를 상상해서 로고도 만들었어요. 멤버들 복장, 기타 모양 같은 걸 그리면서 놀다가 시각디자인과에 들어가게 됐어요. 처음에는 뭘 배우는 지 모르고 들어갔는데, 다행히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곳이더라고요. 실기 준비를 해야 한다고 해서 입시 미술을 공부하긴 했지만, 학원을 다니면서 오히려 그림을 못 그리게 된 것 같아요. 입시라는 틀에 맞춰서 그림을 그리다 보니, 창작이 자유롭지 않게 된 거죠. 그 때 좀 타격을 입지 않았을까 싶어요.
16년차 그래픽 디자이너시니, 강의 요청도 꽤 들어올 것 같아요.
가끔 오는데요. 고정적으로 하는 건 없어요. 예전에 대학에서 다섯 학기 정도를 가르쳐봤는데, 저 같은 사람은 이런 일 하면 안 되겠다 싶었어요. 하하하. 지지난주에는 부산에 있는 대학에서 요청이 와서 갔는데, 디자인과 전공자들이 아니라 어문학 계열을 공부하는 학생들 대상이었어요. 부산에 내려간 김에 3일 동안 부산 여행을 하면서 작업했는데요. 제 작업은 부산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니까, ‘내 직업은 참 좋다’ 그런 생각을 다시 한 번 했어요.
개인의 삶에 있어서, 앞으로 바라는 것이 있다면요?
지금처럼 쭉 지낼 수 있으면 아주 좋을 것 같아요. 계획하는 책들을 꾸준히 잘 내면 좋겠고, 너무 사회에 흘러 들어가지 않고 약간 엇박자로 지낼 수 있었으면 해요. 요컨대 현재처럼 잘 지내면 좋죠. 지금은 생계라는 중요한 문제가 있기 때문에 어렵지만,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클라이언트 일을 줄이고 제 작업을 좀 더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저, 죄송한데요』를 누구에게도 선물할 수 있다면요. 어떤 사람에게 주고 싶나요?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저씨에게는 안 건넬 것 같고요. 왜냐면 훅 던져버릴 것 같아서인데, 이것도 편견의 작용이겠죠? 아무래도 인상이 좀 마니악하게 보이는, 자기 세계가 있을 것 같은 분에게 줄 것 같아요.
아까 소설 이야기도 하셨잖아요. 소설은 언제쯤 볼 수 있을까요?
제가 글쓰기에 능숙한 사람이 아니다 보니, 끝까지 쓸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제가 소화할 수 있는 형식과 분량을 찾아내는 게 중요할 것 같아요. 우선 여행하면서 생긴 에피소드를 쓰고 있거든요. 그 글들을 좀 정리해서 책으로 낼 수 있으면 좋겠어요.
저, 죄송한데요이기준 저 | 민음사
『저, 죄송한데요』는 우리 이웃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친근성, 그리고 주변에 없다면 주변에 두고 싶은 친근성이 새삼 매력으로 다가오는, 에세이의 정통적인 미덕을 잘 보여 주는 산문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