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은 꿈이 뭐예요?” 얼마 전 칠순 파티를 한 박혜란에게 한 젊은 엄마가 물었다. “아이들한테 당신의 꿈을 투사하지 말고 엄마 자신의 꿈을 꾸라”는 말에 대한 물음이었다. 순간 움찔한 박혜란은 여든 살까지 하고 싶은 일을 빛의 속도로 떠올렸다. 그렇게 태어난 일흔 살의 버킷리스트가 ‘마음에 드는 도시에서 한 달씩 살아보기, 연극 무대에 서기, 캐리커처 배우기, 손주들이 읽을 는 동화책 쓰기, 제주도 올레 일주’ 등이다.
『오늘, 난생처음 살아보는 날』은 박혜란이 칠순을 맞이하고 쓴 책이다. 그답게 하루하루의 일상을 담박하게 썼다. 50대 초반 『나이 듦에 대하여』를 쓰고, 60대가 되어 『다시 나이 듦에 대하여』를 썼던 그는 70대가 돼서야 비로소 ‘노인인증서’를 받은 느낌이 들었다. “설렘인지 두려움인지 아리송한 기운으로 썼다”는 14번째 책. 한데 지금까지 박혜란의 책 중에 가장 가볍고 유쾌하다. 호모헌드레드 시대에 즐겁게 나이 드는 비결이 있을까. ‘여성학자, 대한민국 육아 멘토, 칠순 할머니, 이적 엄마’로 사는 박혜란에게 물었다.
나에게 너그러워지면 상대에게도 너그러워져요
1992년부터 책을 쓰시기 시작하셔서 벌써 14번째 책입니다. 표지가 참 귀여운데요. 후루룩 재밌게 읽었습니다.
점점 마음이 가벼워져요. 잘 쓰겠다는 생각도 없고. 마음에 부담이 없어요. 이제는 아무리 스스로를 포장해도 정체를 숨길 수 없거든요. 예전에는 멋있게 쓰려고 하는 생각이 5% 정도 있었다면 이제 1%밖에 없는 거예요. 좋게 말하면 자유로워진 거고 제대로 말하면 뻔뻔해진 거죠.
‘내가 할머니가 되면 어떨까?’ 기대감이 생기더라고요.
나이가 들어도 똑같아요. 할머니가 된다고 달라지는 건 많지 않아요. 본질은 그냥 있잖아요. 얼굴이 좀 쭈글쭈글해지고 누가 봐도 ‘저 사람은 나이든 사람이구나’ 느낄 뿐이지 머릿속 생각은 거의 똑같아요. 단지 큰 기대, 욕심 같은 게 없어지니까 마음이 좀 평안해지는 것, 그 차이죠.
나이가 들면 사람들에게 너그러워지잖아요. 여유도 생기고. 물론 모두 그런 건 아니지만요.
자기 자신에게 너그러워지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도 너그러워지는 거예요. 더 이상 ‘나는 왜 이거밖에 안 될까, 더 가지고 싶다’는 생각을 안 하니까요. 나이 들어서 좋은 점은 딱 이거 같아요. 도가 터서 그런 건 아니에요. 그렇게 갖고 싶어해봤자 남의 것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죠. 이 세상에서 내가 차지할 수 있는 몫이 그렇게 크지 않다는 걸 알면, 마음이 편안해지잖아요.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게 되니까 남을 보는 것도 똑같아요.
책 카피가 ‘박혜란 세대 공감 에세이’예요. 젊은 독자가 읽고 나서 부모에게 건네도 좋겠다, 싶었어요.
항상 궁금한 게 젊은 사람들 생각이에요. 내가 글을 쓸 때, 젊은 사람들, 나이든 사람을 의식하고 쓰지 않거든요. 내가 쓰고 싶은 걸 쓰는 거죠. 그런데 젊은 사람이 공감, 위로를 받았다고 하면 도대체 어디서 위안을 받았을까, 그런 게 궁금해요.
편안하게 썼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래서 읽는 내내 편안했고요. 86쪽에 상냥한 호의를 베푼 청년 이야기가 나오잖아요. 전화를 잘못 걸었는데 전혀 불쾌해하지 않고 친절히 응대한 청년이요. 몹시 따뜻한 전화를 받은 느낌이라고 할까요. 책을 읽는데 그런 느낌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인터뷰를 하러 오는 길에 번거로운 문자가 왔는데, 친절하게 답신을 했어요. (웃음) 아침이니까 기분 좋게 시작하시라는 의미로요.
와, 좋은데요. (박수) 내가 기분이 좋으면 다른 사람에게 기분 좋게 대할 수 있어요. 일상 속에 작은 행동들이 너무 중요한데, 젊을 때는 잘 몰라요. 저도 나이 들면서 깨친 거죠. 젊었을 때는 누군가 선의를 베풀어도, ‘왜 이렇게 착한 척 해?’하면서 삐딱하게 보는 면이 있잖아요. 그런 마음이 없으면 자기도 좋고 남도 좋은데. 이것도 젊을 때는 잘 모르죠.
책 제목은 한번에 정하셨나요? 제목만으로도 의미가 전해집니다.
2% 부족한 느낌이라 조금 아쉬웠는데 나오고 보니 좋아요. 책을 쓸 때마다 더 좋은 제목이 없을까 고심하게 돼요. 이번에는 가족들한테 공모를 받았어요. 아무래도 젊은이들의 머리를 빌리면 좋은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으니까요. 재밌는 제목도 있었는데 『오늘, 난생처음 살아보는 날』이 다들 좋다고 하더라고요. 책 제목은 긍정적인 느낌이 좋아요. 『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들』도 긍정적이잖아요. 이번 책 제목은 사실 중립인데, 뭔가 긍정적으로 느껴지는 것 같아 좋더라고요.
‘세상이 그렇잖아요’ 그 말이 제일 싫어요
가족들이 선생님의 책을 읽나요?
읽죠. 나오자마자 금방 읽어요.
이번 책의 반응은 어땠나요?
아들이 “어머니, 여전히 발랄하시네”하던데요.(웃음)
손주 이야기가 꽤 많이 나와요. 손주를 6명 두셨는데, 요즘은 ‘할머니, 할아버지 능력’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시대잖아요. 가끔 부담스러울 때는 없으신가요?
내 능력에 따라 해주면 되는데, 왜 부담스러워요? 할머니라면 이만큼 해야 한다, 이런 게 어디 있나요? 전 그런 생각이 잘 이해가 안 가요. 왜 가족이 서로 부담스러울 정도를 기대하고 당연하게 여기는지 모르겠어요. 조그만 거라고 주면 고맙고, 안 주면 그런가 보다라고 생각해야죠. 부모자식 간에 능력대로 하는 게 맞지 않나요? 나는 “세상이 그렇잖아요”란 말이 제일 싫어요. 자식 신혼 여행 가는데 얼마를 해줘야 한다는 정답이 어디에 있나요? 하고 싶은 만큼, 할 수 있는 만큼을 하면 되는 거예요.
“하고 싶은 만큼, 할 수 있는 만큼.” 정말 그렇네요.
직업도 마찬가지에요. 남 보기에 멋진 게 무슨 소용인가요? 인생은 혼자 사는 거잖아요.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이렇게 해야 한다, 그런 것도 없어요. 기대가 없어야 원망도 없는 거 아니겠어요? 조금 잘해주면 고맙고, 안 해주면 당연한 거라고 생각하면 그만이예요. 왜 남의 눈치를 그렇게 봐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아들이 내 일에 돈을 쓰는 거. 본능적으로 마음이 걸린다”고 쓰셨어요. 효도를 받고 싶다는 기대를 전혀 안 하시는 것 같아요. 그냥 잘살면 고마운 일이라고 생각하실 뿐이고.
그렇잖아요. 잘 살아주면 얼마나 고마워요? 그러다 가끔 호의를 베풀면 과분한 거죠. 과분한 거예요.
그래도 자식에게 서운한 마음이 생길 때도 있지 않나요?
전혀 없어요. 아이들이 다 잘살아줘서 고맙고, 그래서 저도 되도록 잘해주고 싶고 그런 거예요. 며칠 전에 우리 막내 손주 생일이었어요. 막내 아들이 미역국을 끓여줬다고 하더라고요. 일요일이라서 엄마는 늦잠 자고. 전 이런 이야기 들으면 되게 좋아요. 요즘 젊은 아빠들은 요리 잘하잖아요. 참 보기 좋아요.
며느리도 셋을 두셨습니다. 시어머니로서는 어떠신가요?
아들보다 며느리들이 더 안 됐죠. 요즘 남자들이 육아에 많이 참여한다고 해도 아직 여자들의 몫이 더 많아요. 남자는 애 낳는다고 직장을 그만둘 생각은 안 하지만, 여자는 다르잖아요. 먼저 산 입장에서 여성운동을 한 사람으로서, 며느리들을 보면 안쓰럽고 그래요. 그래도 인생은 기니까 열심히 살다 보면 자신을 펼칠 수 있는 기회가 생길 거다, 그렇게 말해줘요.
“가장 좋은 가족 관계는 쿨하면서도 따뜻한 관계다. 지킬 건 지키되 최대한 서로 보살피고 베푸는 관계”라고 하셨는데, 이게 참 어려워요. 한국 사회에서는 특히요.
그렇죠. 우리나라처럼 끈끈한 정이 발휘되는 나라가 없으니까요. 화끈하면 쿨하다고 하는데, 동시에 인정머리 없다고 하잖아요. 모든 가족의 비극은 기대가 크기 때문에 생긴다고 생각해요. “형제인데 이것도 못해줘?”라고들 하는데, 객관적으로 보면 그만하면 잘해주는 거거든요. 고부관계도 마찬가지예요. 시어머니가 며느리한테 기대가 너무 커요. 자기가 며느리였던 시절을 생각하는데, 그건 이미 지난 시대거든요. 가족으로 맺어진 인연은 보통 인연이 아니에요. 그거 자체로 정말 고마워해야 해요. 요즘 가족 간에 일어나는 사건을 들으면, 정말 무섭죠.
저출산을 넘어 비혼률이 높아지고 있어요. 물론 결혼을 안 해도 잘 살 수 있고 행복할 수 있지만, 사회구조적인 문제 때문에 비혼이 많아지는 건 안타까워요.
결혼을 해서 이익이 없는데 어떻게 결혼을 하겠어요. 일자리가 많아지고 주택도 좀 싸지고, 남녀가 좀 더 수평적인 관계가 되야 하는데, 지금 현실은 거꾸로잖아요. 엊그제 읽기 시작한 책이 우에노 지즈코의 『비혼입니다만, 그게 어쨌다구요?!』예요. 일본도 정말 우리나라와 똑같더라고요. 결혼이 정말 여러 요인에 의해서 사라지고 있어요. 사회적으로도 비혼을 이해하고 있고요.
일흔 살의 버킷리스트
이번 책에도 ‘대충대충 살자’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청소도 요리도 대충대충 하신다고요. “아이 셋도 최선을 다해 키우려 하지 않고 대충대충 키웠기 때문에 지들이 스스로 컸지 않냐”고 하셨습니다.
우리 시대 여성들은 슈퍼우먼 콤플렉스가 많아요. 요즘은 여성이 일하는 게 당연해졌잖아요. 슈퍼우먼 콤플렉스에 빠지면 누구라도 괴로울 수밖에 없어요.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요. 우리 집이 더러운 건, 천하가 알아요. 하하. 언젠가 TV에서 이 이야기를 했어요. 저는 사실이니까 뭐 기분이 나쁘거나 그러지 않았는데, 주변에서 그러더라고요. “어떻게 엄마 흉을 그렇게 공개적으로 보냐”고. 재밌어 하는 것보다 저를 안쓰러워하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이렇게 말했어요. “없는 이야기를 했으면 몰라도 사실인데 뭐, 괜찮다”고.
자녀교육 강연을 많이 하시잖아요. 가장 요청을 많이 받는 주제는 무엇인가요?
아이들 키운 이야기를 들려달라는 요청이 가장 많고, 나이 듦에 관한 강연도 종종 해요. 지금은 백세시대잖아요. 자녀 인생에 올인하지 않고 내 인생을 새로 디자인하라는 말을 많이 해요. 여성과 교육은 떨어져 있지 않으니까 함께 다루기도 하고요.
한 독자의 이야기가 생각나는데요. 남편이 뇌졸중으로 쓰러져 간병하는 60대 여성에게 ‘일기를 써보라’고 권하셨어요.
글을 쓰면 진짜 치유돼요. 저는 평소에 “이렇게 살아라”는 이야기는 하지 않지만, “글 써보라”는 말은 자주 해요. 사람들은 글 솜씨가 없다고들 하는데, 자기 마음을 그대로 적으면 되는 거예요. 남이 어떻게 볼까, 너무 유치하지 않을까 생각할 필요가 없어요. 솔직히 쓰면 돼요. 자신이 살아온 인생은 누구도 갖지 못한 콘텐츠잖아요.
30, 40대 젊은 엄마들을 볼 때, 언제 가장 안쓰럽나요?
애 키우는 일에 지나치게 목숨을 걸 때, 안쓰러워요. 목숨을 거는 것까지도 좋은데 너무 비장해요. 우리 좀 가벼웠으면, 즐거웠으면 좋겠어요. 쓸데없는 정보에 너무 휘둘리니까 엄마 노릇에 너무 자신이 없어요. 자기 능력의 120%를 아이 키우는 데 쓰는 것 같아요. 그렇다고 애가 잘 자라는 거 아니거든요. 아이에 대한 집착만 늘고 나중에는 고부관계도 생기죠.
『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들』이 1996년에 나왔어요. 초기 독자의 자녀들도 이제 많이 장성했을 텐데요.
가끔 강연회에서 만날 때가 있어요. 책에 나온 대로 아이를 키웠다며 간증을 하는 경우도 있어요. 마치 제가 심어 놓은 사람처럼. (웃음) 그 분들과는 이제 나이 듦에 관한 이야기를 하죠. 같이 나이를 먹고 있으니까요.
‘여성학자 박혜란’보다 ‘아들 셋을 모두 서울대에 보낸 엄마’, ‘가수 이적 엄마’로 불릴 때가 많으세요. 서운하거나 싫을 때는 없으신가요?
강연을 가면 현수막이 붙어 있잖아요. 항상 제 이름 앞에 ‘이적 엄마’라고 써있어요. 요즘 서울대는 지위가 많이 격하됐잖아요. 서울대 나온다고 다 잘사는 것도 아니고요. 그런데 가수 이적은 끊임없이 노래를 부르잖아요. 작년에는 아들이 드라마 OST로 부른 「걱정 말아요, 그대」가 일년 내내 들리더라고요. 듣고 싶든 아니든 강제로라도 들리니까, 이적이 누군질 아는 거예요. 만약 가수 이적이 「달팽이」만 내놓고 비실비실했다면 저를 ‘이적 엄마’라고 부르진 않았을 거예요. 그런 점에서는 아들에게 고맙죠. 이적한테 종종 “너 팔아먹고 산다”고 이야기해요. 그런데 몇 년 전, 여대 총학생회에서 저를 부르면서 ‘이적 엄마’라는 현수막을 건 거예요. 여대생들이 주체적으로 살겠다면서 강연을 요청했는데, 내 앞에 ‘누구누구의 엄마’를 붙이는 걸 보고서 여성 역할에 관한 고정관념이 참 크다는 걸 새삼 깨달았어요.
2년 전부터 페미니즘 책이 쏟아지고 있어요. 우리나라 1세대 여성학자로서 반가운 마음이 드실 것 같아요.
긍정적이죠.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시작했잖아요. 그 때는 투쟁의 대상이 법과 제도였어요. 제도를 고치기 위해서 운동을 시작했는데 호주제 폐지가 됐잖아요. 여성가족부도 생기고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우리 나라 여성의 지위가 급격히 올라가면서, 착시 현상이 생겼어요. 이제 한국은 더 이상 여성을 억압하는 요소가 없다는 측면이에요. 예전에는 대학교에 여성학 강좌가 많았는데 1990년대 말에 싹 없어졌어요. 여성 차별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면서요. 강의가 사라진 건 듣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거든요. 그런데 막상 사회에 진입해보니 현실은 아닌 거예요. 제도적으로는 여성 차별이 없어진 것 같지만, 취업에서부터 차이가 나는 거예요. 현실에서 여성을 차별하고 혐오하는 뿌리는 너무 깊다는 걸, 이제야 자각하기 시작했죠. 결국 강남역 사건에서 터진 거고요. 해방됐다는 건 착각이었던 거예요. 이제 또 시작인 거죠.
버킷리스트도 발표하셨어요. 마음에 드는 도시에서 한 달씩 살아 보기, 연극 무대에 서기, 캐리커처 배우기, 손주들이 읽을 동화책 쓰기, 제주도 올레 일주 등. 실현 가능성이 가장 빠른 리스트는 뭘까요?
얼마 전에 캐리커처 책을 한 권 샀어요. 제가 배우러 다니는 건 잘 못해서 책으로 한 번 해볼까 해요. 연말쯤이면 사람 얼굴은 쓱쓱 그릴 수 있지 않을까, 꿈에 부풀어 있어요. 뱃살 빼는 것도 목표인데, 이건 할 수 있을까 모르겠네요. 올레 일주는 가을쯤 하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70세가 돼서야 “드디어 노인이 되었다고 느꼈다”고 하셨어요. 가장 행복한 죽음의 모습을 떠올려보시기도 할 것 같아요.
하죠. 자주 해요. 농담처럼 이런 이야기를 하잖아요. “나이가 들수록 비행기를 자주 타고 여행을 다녀야 한다.” 그런데 사실 비행기에서 사고가 날 확률은 적잖아요. 또 젊은 승객들도 있으니까 민폐를 끼치는 거고요. 사고가 나면 미안한 일이죠. 얼마 전 폐미니스트 영화 <안토니아스 라인>을 다시 봤어요. 의지가 굳은 한 여성이 주체적으로 농장을 일구고 가족을 만들어 가는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그녀의 마지막 모습이었어요. 그녀는 어느 날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고 온 가족을 불러 모아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평화롭게 눈을 담아요. 이게 최고의 죽음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지금은 많은 사람이 삶의 질 못지않게 죽음의 질을 걱정해요. 가장 싫은 건, 치매에 걸려서 언제 죽을지 모르는 거죠. 논쟁적인 주제지만 죽음을 선택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요.
평소에 행복하다, 느끼는 순간은 언제세요?
따끈따끈한 신간 서적을 볼 때, 손자들을 볼 때, 봄이 와서 새싹을 볼 때 행복해요. 점점 더 많아지는 것 같아요. 살아갈 날이 자꾸 짧아지니까요. 일흔이 넘어서니, 이 사실이 확실하니까요. (웃음)
아무래도 선생님보다 젊은 사람들 이 인터뷰를 읽을 텐데요.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우리는 젊었을 때 평균 수명이 60세인줄 알았어요. 그런데 70, 80세를 넘어서 100세 시대가 됐어요. 노년이라는 걸 생각을 못해본 세대예요. 우리가 그랬으니까 자식이 당연히 부양한다고 생각했죠. 노년 준비 없이 장수시대를 맞이하니까 다들 너무 힘들어 해요. 우리나라가 OECD 국가 중에 노인빈곤률 1위잖아요. 행복한 노인이 너무 드물어요. 젊은 사람들은 지금 이 비참한 노년들의 모습을 보고 있잖아요. 자기가 100세까지 살 거라는 걸 알잖아요. 그러니까 자식들에게 너무 올인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아무 일 없이, 하는 일 없이 세상을 원망하면서 죽으면 너무 속상하잖아요. 노년을 재앙이라고 생각하는 이 시대를 살면서, 더 길게 인생을 그렸으면 좋겠어요.
오늘, 난생처음 살아 보는 날박혜란 저 | 나무를심는사람들
『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들』로 대한민국에 육아 신드롬을 일으킨 여성학자 박혜란이 진솔하게 써내려 간 노년의 일기와 같은 『오늘, 난생처음 살아 보는 날』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