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애증의 거리가 있다. 연세대학교 학생에게는 신촌 대학약국 골목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골목마다 서려 있는 회한과 철없음, 실수들에 몸서리를 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추억에 잠겨 아름다웠던 청춘을 회상하고 미화하는 사람이 있다.
“이 가게 몇 년도에 시작했어요 사장님? 한 번인가 두 번 왔던 기억이 나요. 아직도 대학 친구들 여기서 만나거든요. 3차까지 가서 이 앞에서 술 먹고 울고 그랬어요.”
신촌 인근 술집 ‘서른즈음에’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조선희 작가는 추억을 꺼내 들었다. 아련함이나 후회는 없어 보였다. 오랜만에 신촌에 왔다던 서수민 PD도 마찬가지였다. 과거를 담백하게 바라본다는 건 현재를 잘살고 있다는 증거다.
전 KBS 예능국 서수민 PD와 사진작가 조선희는 연세대학교 의생활학과 동기다. 대학에서 만나 연탄을 갈아야 하는 반지하 방에서 룸메이트 생활을 하던 ‘촌년’ 둘은 각각 KBS에서 11년 만에 뽑은 여자 PD이자 <개그콘서트>를 이끈 예능 프로그램의 주역, 패션계와 광고계를 넘나들며 무수한 연예인의 사진을 찍어 온 유명 사진작가가 되었다. 각자 자기 영역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한 둘이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며 풀어놓은 책이 『촌년들의 성공기』다.
인터뷰 내내 투닥거리는 모양이 진짜 친구구나 싶었다. 서로 의견이 다른 부분도 있었지만 서로에 게 믿음과 애정이 있었다. 사회적 성공이나 자아실현 말고도 저런 친구를 둔 게 성공이 아니겠는가 싶었다.
대학에서 만난 ‘절친’
동기 중에 사진작가나 PD처럼 전공과 전혀 상관없이 직무를 택한 경우는 거의 없지 않나요?
서수민 선희가 이렇게 사진을 하게 된 것도 특이하고, 저희 둘이 다른 분야로 가서 나름대로 자리를 잡은 것도 특이하죠.
대학교 다닐 때 같이 방을 쓰셨다고요. 그 정도면 서로의 장단점은 잘 아시겠어요.
서수민 장점은 모르고 단점만 알죠. 같이 살면 장점을 보게 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어요. 부부 사이도 그렇고요.
조선희 너무 부정적이다. 나는 장점도 많이 봤는데.
서수민 같이 살 때도 친하게 산 건 아니에요. 선희랑 별로 친하고 싶지 않았어요. (웃음) 같은 과에 세련되고 예쁜 애들하고 더 친하다고 생각했는데 자꾸 얘가 저한테 말을 시키고 그런 게 부담스러웠어요. 대학 오리엔테이션 때 다들 예쁘게 원피스 입고 왔는데 우악스럽게 생긴 애가 초록색 파카에 초록색 양말, 초록 귀걸이를 하고 누가 봐도 ‘나는 의생활학과다!’ 라는 세팅으로 나온 거예요. 그게 조선희였어요. 오리엔테이션 일일대표 맡은 사람의 말을 안 들으니까 얘가 ‘모이라 이 가시나들아-!’ 소리를 질러 대는데 저도 모르게 그쪽으로 가게 됐어요.
예전에 같이 살 때랑 다르게 나이가 들어서 또 새로운 면을 발견하기도 하잖아요.
조선희 똑같은 것 같아요. 예전보다는 조금 세련되어지고 조금 더 풍요로워진 거지 사람은 똑같아요. 심지어 머리 모양도 대학 때부터 수민이는 늘 앞머리를 내리고 쪼매서 묶고 다니고요. 둘 다 외모에 그렇게 신경을 쓰지 않았어요. 조금이라도 덜 늦으려면 뛰어가야 하니까 아침부터 일어나서 나가기 바빴죠. 치장하고 화장하는 시간은 거의 없었네요.
말 그대로 촌 스타일이었던 거네요.
조선희 촌 스타일이라고 느끼진 못했는데, 지나 보니 그랬다는 거죠. 그 당시 초록색 귀걸이도 저 나름대로는 나름 멋을 낸 거였어요.
원래 의생활학과 지망이 아니었다고 책에 나와요.
조선희 1지망은 공대 시험 봤었어요. 무슨 과였는지 기억도 안 나요. 2지망 쓸데 없다니까 지나가던 선생님이 연대 의생활학과 괜찮다더라 해서 그냥 썼어요.
서수민 우리 둘 다 과에서는 꼴찌였어요. 학사 경고를 면하는 게 항상 이슈였어요.
서로 다른 사람의 살아온 이야기
둘이 대화를 나누는 식으로 책을 구성했어요.
서수민 교정지를 보는 데 저 자신이 좋더라고요. 그 당시 회사를 그만두고 나와서 방황하던 때였는데, 저보다 빨리 야생의 길을 걸었던 친구가 저한테 해주는 말이 있는 거예요. 물론 독자들이 보시기에는 자기들끼리 서로 덕담하고 끝난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제가 몰랐던 저의 면을 가까이 봤던 친구가 얘기해주는 게 좋았고, 읽으시는 분들도 한 사람의 일방적인 이야기보다는 서로 다른 사람이 이야기하는 방식이 조금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는 부분이 있겠다 싶었어요.
PD님은 첫 책이라 부담이 있으셨을 것 같아요.
서수민 얘는 책을 여섯 권째 내지만, 저는 처음 낸 책이거든요. 책을 낸다는 걸 상상할 수 없었어요. 제가 한 말에 책임져야 하는 게 부담스러워서 내고 싶지도 않았고요. 아직도 부담은 많아요. 그래서 솔직히 홍보를 적극적으로 못하겠어요.
조선희 혼자 내면 인터뷰 두세 번 하고 말았는데 친구와 같이 낸 책이기도 하고, 서로의 민폐가 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더 홍보하게 되는 것 같아요. 또 책을 낸다는 기회로 학교 다닐 때 이후에 제일 자주 만나고 있으니 좋은 일이죠.
사진과 방송이라는 자기 분야를 내려놓고 글을 쓰는 건 어떠셨어요?
조선희 평소에도 글 쓰는 걸 재밌어하는 편이에요. 글쓰기는 자기와의 대화의 일종이어서, 저는 오히려 글을 쓰기 위해 책 계약을 해요. 계약하면 언젠가는 써야 하니까 간간이 쓰게 돼요.
서수민 글을 쓰고 싶어요. 작가도 되고 싶고요. 그런데 글을 못 써요. 만약 젊었다면……. 하지만 그것도 핑계인 것 같아요. 지금부터라도 글을 쓸 수 있고 써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정성이 들어가야 하는 일이라 힘든 거죠.
조선희 옆에서 볼 때 잘 써요. 글 쓰는 게 습관이 안 돼서 어려운 거지. 너도 나중에 미리 계약을 해놔.
젊은 친구들에게 하고 싶은 말
90학번이면 IMF 때는 아닌 거죠? 취업이 엄청나게 어려운 세대는 아니었네요.
서수민 취직 자체가 어려웠다기보다 의생활학과를 나와서 방송 PD를 하겠다고 해서 어려웠던 것 같아요. 그래서 복수전공을 해서 학교 2년을 더 다녔죠.
조선희 한 번도 취업해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어요. 3학년 때부터 사진을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나서는 원서를 내 본 적이 없어요. 사진 하기가 어려웠던 거지 취직하기가 어려웠던 것 같지는 않아요. 사람들이 하고 싶은 일보다 취직을 먼저 생각해서 그런 것 같아요. 먹고 사는 일을 하는 게 취직이잖아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 먹고 살아야 하는 데 반대가 된 거죠.
서수민 문화업계 종사하는 사람으로 봤을 때 90년대가 우리나라에서 문화가 가장 부흥했던 시기예요. 음반이나 영화 시장이 드라마틱하게 커졌잖아요. 앨범 하나 터지면 몇십억씩 현금으로 쌓아서 들어올 때였으니까요. 그런 시기에 같이 자라서 시장화되어 있을 때 그 업계에 들어가서 이 일을 업으로 삼을 수 있었다는 건 진짜 큰 행운이었죠. 그래서 후배 PD들을 보면 지금은 터졌던 문화가 굳어지면서 앞뒤가 답답해진 그런 시기거든요.
조선희 사진작가로서 나도 그런 게, 처음 사진가가 됐을 때 여자 사진가가 거의 없었어요. 그게 사람들이 마이너스로 생각하지 않고 장점으로 봐주는 인식이 있었고, 그 당시 연예 프로그램이 생기면서 사람들이 연예인을 찍으러 왔는데 이상한 여자애를 본 거죠. 목소리도 크고 행동도 큰 사진기 든 이상한 애.
사진 찍는다고 페인트 뿌리고, 쓰레기통에 들어가라고 했다는 일화가 나와요. (웃음)
조선희 얼마나 신기해요. 모델 보고 물에 들어가라 그러고 막 소리 지르고요. 저 이후에 대중적으로 유명한 사진 작가가 별로 없어요. 제가 사진을 잘 찍고 실력이 있었다기보다 그냥 운이 좋았던 거예요. 마침 많은 브랜드가 유명한 배우를 쓰기 시작했고, 마침 제가 배우를 많이 찍고 있었던 거죠. 그런 점에서는 수민이 말이 맞아요. 우리는 혜택을 본 사람들이죠.
이 업계에서는 다른 지망생들에게 롤모델로 비춰질 텐데, 부담스럽진 않으세요?
서수민 많이 부담돼요.
조선희 부담스럽진 않아요. 나를 롤모델로 삼은 사람들은 그만한 이유가 있을 테고, 내가 강요한 건 아니잖아요? 책임감은 조금 더 따르겠죠. 꼭 그들만을 위한 건 아니지만 그들에게 50대의 사진가, 60대의 사진가라는 모델을 보여주긴 해야겠죠. 우리나라에서 40대 후반, 50대 사진가가 할 수 있는 게 사실 별로 없거든요. 그래서 고민이 돼요.
책이 젊은 친구들에게 하는 말처럼 들렸어요.
서수민 저도 막막했거든요. 전공이 아닌 다른 길을 가고자 했던 여대생이었고, 얘도 정말 보장받을 게 하나 없이 답답한 여대생이었을 것 아니에요. 그런 길에 있는 친구들이 봤을 때 도움받을만한 말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때 헤맸던 것들이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누군가 말해준다면, 가려는 길이 틀린 게 아니라는 확신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잖아요. 반성도 하고 후회도 했지만 지나보니 남들이 하지 말라고 하는 걸 했을 때 더 잘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후배들에게 하고 싶으면 하라는 이야기를 많이 해요.
조선희 제 어시스턴트도 20대 중반인데, 지금 너무 아름다운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암흑의 길에 있어요. 지금 내가 하는 길이 맞는 건지, 여기서 시간을 쓰고 있는 게 맞는지 불확실한 상황에서 오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있어요. 지나고 나면 무엇을 해도 맞았고, 그게 정말 아름다운 시기였는데 모르고 지나가요. 지금 어떤 고민을 하든, 어떤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든 다 정답인 거예요. 이 길이든 저 길이든, 너무 고민할 필요 없이 그냥 가면 돼요. 그걸 놓쳐버리는 게 더 나쁜 거거든요.
여성으로서 커리어를 이어나가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어요. 워킹맘에게 던지는 시선도 부담스러우셨을 것 같고요.
서수민 내적 갈등이 더 컸어요. 아이를 잘 키우고 싶으면서도 일은 또 해야 하고요. 다행히 제가 만드는 게 예능 프로니까 딸이 좋아할 수 있는 거여서, 그것도 저한테는 행운이었죠. 그렇지 않은 워킹맘들이 많잖아요. 참 힘들겠다는 생각을 해요. 주변에서 사연을 들어 보면 다 결혼할지, 결혼하면 애를 낳을지, 애를 낳고 나서는 일 할지 말지, 이런 고민을 많이 물어봐요. 저는 하라고 그래요. 하다 보면 길이 생겨요.
워킹맘이 아니라 워킹 부모잖아요. 남편에게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을 텐데 여성들에게만 책임이 주어지는 것 같아요.
서수민 그게 논리적인데, 살다 보니까 그렇게 안 되더라고요. 어쨌거나 학원 선생님과 학교 선생님은 엄마에게 전화하고, 학부모 회의도 가면 엄마들만 있어요. 그런 상황에서 절반씩 나누자고 남편에게 하는 순간 결과적으로는 싸움이 되더라고요.
‘자기만의 방’을 얻은 이야기에서는 여성이 자기만의 공간과 자기 지위를 가져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으셨던 것 같아요.
서수민 물리적인 공간에 대한 만족감도 표현하고 싶었지만, 제 인생에서 저에게 집중할 수 있는 여유라고 생각했어요. 지위가 없어도 할 수 있는데 왜 못했을까 하는 후회도 있고요. 직장에서 내 프로그램을 만든다고 하지만 많은 사람과 같이 일하는 거잖아요. 다 지나 보니까 나만의 방을 만들어서 나를 신경 쓴 적은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요즘에 나만의 방을 스스로 만들려고 많이 노력했어요. 파마도 해봤고요. 미용실에서 그렇게 돈을 써본 적이 없었어요. 돈이 없었던 게 아니라, 제가 스스로 저에 대한 만족감을 늘 뒷순위에 놨던 거예요. 일에서는 성과가 나오는 게 중요했는데 나에 대한 성과는 그다음이었던 거죠. 지금 20대한테 하는 말은 아니지만, 지금 달려왔다고 생각하는 분이 계신다면 여유를 가지면서 나를 안고 가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썼어요.
방송과 비교하면 사진은 사진가의 주관이 조금 더 들어갈 수 있지 않나요?
조선희 비슷해요. 클라이언트, 아트 디렉터, 매니저, 헤어디자이너 등 관련된 사람이 많죠. 100% 내 마음대로 할 수는 없고 그저 의견을 조금 더 넣는 거죠. 결국 셔터를 누르는 건 나니까요. 어린 시절에는 잘 몰랐어요. 다 좋은 사진 찍기 위해서 모인 거 아니냐고, 다 나랑 똑같이 생각하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어떤 사람들은 일이기 때문에 그냥 하는 건데, 어떤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 하는 거였는데, 다른 사람들은 다르게 생각할 수 있다는 걸 안지 얼마 안 됐어요. 더 좋은 사진이 나온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쉽게 갈 수 있는 길을 어려운 방법을 선택해서 했던 거예요.
두 분이 같으면서도 다르네요.
서수민 선희는 꿈을 좇아 갔어요. 저도 꿈을 좇았죠. 하지만 저는 안정된 직장에서 꿈을 찾는 월급쟁이의 길을 갔다면 선희는 무모하게 자기 꿈만 좇은 거예요. 이 고민을 하는 분들이 많을 거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과자를 만들고 싶은데 대형 프랜차이즈 빵집에 취직해야 할지 고민하는 사람이 있다고 쳐요. 가게를 차려도, 대기업에 들어가도 둘 다 괜찮지만, 안정된 길과 무모한 길을 걸어온 사람을 보고 과감하게 질러도 괜찮다고 해주고 싶은 거예요.
조선희 사실 처음부터 이렇게 생각하진 않았고 친구라서 책 내 보자고 한 건데, 우리가 참 괜찮은 기획을 했다. (웃음) 수민이와 내가 다른 목표로 다른 길을 갔지만 사람들이 말하는 어떤 성공한 여자의 지점에서 만난 거잖아요. 그중 공통점이 있다면 우리는 포기하지 않았던 거고요. 나 같은 방법이 아니더라도 다른 방법을 선택해서 하고 싶은 것에 도달할 수 있어요. 그래서 젊은 친구들이 조금 해보다가 포기하면 좀 답답해요.
서수민 근데 그건 아냐. 나도 20대에 대한 공부 많이 하는데, 안쓰럽게 생각하는 게 뭐였냐면 우리는 실패해도 그게 경험이 되는 세대였어. 지금은 하나 틀리면 격차가 너무 커지는 세대야. 수능부터 해서 모든 평가 단위가 하나 틀리면 인생이 갈리는 거야. 나도 우리 후배한테 엎어져도 괜찮다고 아무리 얘기해도 받아들여지지 않아.
조선희 사회가 그렇게 말하는 거지 모두가 그런 건 아니잖아.
서수민 왜냐하면 우리가 그 세대랑 다른 잣대로 살고 있잖아.
아무리 괜찮다고 해도 안 되더라고요. (한숨)
조선희 아니 왜 한숨을 쉬고 그래. (웃음)
서수민 (웃음) 그게 쉽지 않죠.
조선희 옛날에는 누가 젊음을 줄 테니 가진 걸 다 내놓으라고 하면 절대 안 내놓을 생각이었는데, 지금은 내놓을 의향이 있습니다.
예전으로 돌아가면 뭘 하고 싶으세요?
조선희 더 많이 경험하고, 더 많이 연애하고 사랑하고, 더 저지르고 살고 싶어요.
서수민 내가 가진 시간이라는 것에 대해서 겁을 덜 내는 거죠. 겁을 덜 내고 그 시간을 쓸 수 있었을 것 같아요. 돌아가면 감정에 헤퍼지고 싶어요. 감정을 되게 많이 아꼈어요. 좋아한다는 마음도 아끼고, 누가 다가오면 받아들이기만 했지 그걸 키우질 못했어요. 감정을 아낀다는 건 인간관계나 모든 것에 있어서 아끼고 안 쓴다는 이야기거든요.
조선희 내가 안 다가갔으면 우리가 친구 되기도 어려웠을 거야.
서수민 다칠까 봐, 그래서 그랬던 것 같아요. 그래서 후회스러워요.
우리는 늘 새로운 걸 해야 해요
꼰대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 해보신 적 있으세요?
조선희 있죠. 늘 있어요. 매일 아침 일어나서 거울 보면서 웃는 연습을 해요. 그리고 잔소리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해요. 그런데 가자마자 잔소리를 해요. 생각해보면 나도 그때 실수를 하고 그랬을 텐데 왜 여기서 똑같은 얘기를 하고 있나, 싶죠.
처음에는 매너가 없었다는 얘기도 쓰셨어요.
조선희 농담처럼 말했지만, 내가 매너가 없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냥 더 좋은 사진을 찍고 싶던 욕심이 많았던 거지 매너가 없어서 그런 건 아닌 거죠. 뭐가 더 우선순위에 있는가 하는 문제 같아요.
서수민 저도 매너 많이 없거든요. 회사에서 업무 관계로 타부서랑 얘기할 때 태도가 마음에 안 든다는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그럼 저는 늘 억울해했죠. 지금 일 이야기를 하는데 왜 자꾸 나한테 태도를 이야기하냐, 애교라도 떨어드려요? 이러면서요. 참 현명하지 못했던 거죠. 그게 뭐가 중요하다고, 그냥 한 번 굽히고 부탁한다고 말 한 번 하면 되는 일이었는데 그걸 하기 싫어서.
조선희 근데 그게 하기 싫었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있고 지금의 네가 있는 거야. 모든 걸 잘하는 사람은 없어.
예전 인터뷰에서 ‘욕심과 열정의 차이에 대해 고민한다’(채널예스 인터뷰 : http://ch.yes24.com/Article/View/24127)고 말씀하셨어요. 지금도 고민하시나요?
조선희 지금은 같다고 생각해요. 욕심이 있어야 열정이 있는 거예요. 욕심을 보통 부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이는데 저는 긍정적으로 봐요. 욕심이 있다는 건 에너지원이고, 내가 뭔가 더 잘하고 싶다는 거잖아요. 그게 있어야 열정이 생기는 거죠. 욕심이 없다면 지금 사진 안 찍고 돈 안 벌어도 잘 먹고 잘살 수 있어요. 하지만 그게 과연 잘 먹고 잘사는 걸까? 내 속은 아직도 좋은 사진을 죽을 때까지 찍고 싶은데, 그럼 그 방법을 고민하는 게 결국에는 내 욕심인 거잖아요. 이제까지 충분히 했으니까 안 한다 그러면 내 삶이 얼마나 무의미해지겠어요.
두 분 다 해당하는 얘기지만, 사회가 급격하게 바뀌면서 기존에 했던 방향이 더 이상 먹히지 않잖아요. 필름 카메라에서 디지털카메라로 옮겨가기도 했고요. 시대가 급변하는 것에 위기감은 없나요?
조선희 디지털카메라로 바뀐 게 2005년 즈음인데, 그때 위기감이 많이 들었죠. 지금은 나이 들어가는 거에 대한 위기감이 있어요. 아직 20대 같은 청춘인데, 사람들은 나를 작가님, 선생님이라고 불러요. 우리나라 사회가 존칭 사회라 높여서 대하잖아요. 그러지 않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긴 해요. 유럽이나 미국 가보면 사진가들이 80대가 되어서도 서로 이름 부르면서 사진을 찍어요. 얼마나 부러운 일이에요. 한국에서는 기자들 나이는 점점 어려지고 나만 나이를 먹는 것 같은 거예요. 그걸 어떻게 풀어낼지 고민하는 게 제 숙제죠.
PD님은 어때요? 모바일 환경이나 MCN처럼 방송 플랫폼 자체가 바뀌는 시대잖아요.
서수민 예능이라는 콘텐츠가 힘들어지는 시대라고 느껴요. 처음 예능PD를 시작했을 때는 예능이 홀대받고 관심도 없었는데 지난 5년간 예능이 주목받으면서 문화도 만들어지고 파워도 생겼잖아요. 하지만 많은 사람이 함께 웃어야 힘을 받을 수 있는데 이제는 취향의 시대가 된 것 같아요. 각자가 재밌지만 전체가 다 즐거울 필요는 없는 콘텐츠요. 문화적으로 봤을 때 그게 좋은 방향일 수 있죠. 그런 시장 변화에 저희가 대처해야 하는데, KBS는 이미 공룡으로 시작했잖아요. 각자의 취향에 각개격파할 제작형태부터 고민해야 하니까요. 그래서 몬스터유니온이라는 별동 부대를 만들었는데, 많은 사람을 만족하게 할지, 아니면 취향을 맞춰야 할지 하는 딜레마가 있어요.
지금 몬스터유니온에는 몇 명이 있나요?
서수민 드라마는 좀 있지만 예능 파트는 저랑 유호진 피디 딱 두 명이에요. 둘이 맨날 회의하고 아무도 관심 가지지 않는 세상 걱정과 콘텐츠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나이 들어서 새로운 걸 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있을 것 같아요.
서수민 애써 새로운 거라고 들고 나왔는데 새롭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하는 부담감이 있어요.
조선희 나이 들어서 새로운 걸 해야 된다는 부담감이 아니라 새로운 걸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죠. 우리는 늘 새로운 걸 해야 돼요. 조선희답지만 또 새로운 걸 늘 기획하고, 새로운 시각과 사진 톤을 늘 찾아야 해요.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사는 게 성공
두 분 다 연예인 옆에 있는 직업이잖아요. 어쩌다 보니까 연예인처럼 유명해졌고요. 유명해지는 기분은 어떠세요?
조선희 어쩌다 보니, 본의 아니게 그렇게 됐어요. 나는 아무렇지 않아요. 그들이 나를 그렇게 만든 거지 유명하든 유명하지 않든 내가 하는 일은 똑같잖아요. 유명하기 때문에 조금 더 이익 보는 게 있고 또 피해 보는 게 있겠죠.
서수민 저는 유명하지 않아요. 유명해지고 싶지도 않고요. 선희는 그렇게 해서 일에 도움이 될 수도 있는데, 저는 사실 불편하기만 해요. 모르는 사이 누리고 있을 수도 있지만, 잘 모르겠어요.
제목이 ‘촌년들의 성공기’예요. 남의 시선과 상관없이 자신이 생각하는 성공이 있다면요?
조선희 그렇게 보면 20년 전에도 성공했다고 생각해요. 내가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사는 거.
서수민 저도 그래요. 중요한 건 지금 이 상태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한 번 더 한다고 했을 때 나에게 판이 주어지고 기회가 주어진다는 게 가장 큰 성공이라고 생각해요.
요새 계획은 뭔가요?
서수민 새로 옮긴 몬스터유니온에서 예능 코미디 드라마를 준비하고 있어요.
조선희 올해는 여행을 많이 할 생각이에요. 프리랜서니까 걱정도 많죠. 여행을 다녀오고 나면 내년이나 내후년은 어떻게 할까, 그래서 일 년 내내 다니지는 못하고 상반기 3개월, 하반기 3개월 정도 다닐 생각이에요. 50대를 위한 준비과정이라고 생각하고 나를 들여다보는 일을 해야죠.
책에 패션 전시회 하고 싶다고 말씀하셨는데, 기회가 주어진다면 다시 할 생각 있으신가요?
조선희 할까? 재밌겠네. 해볼까? 그 생각은 못 해봤네요.
서수민 하자. 아까 선희랑 잠깐 얘기했는데 50살까지 계속 일하면서 50대에는 아틀리에를 같이 만들자고도 했거든요. 그림을 배우고 싶어요. 몇 년 후에 그림 전시회를 같이 하면 어떨까요?
조선희 그래, 같이 하자. 나는 사진 할게.
촌년들의 성공기서수민,조선희 저 | 인플루엔셜
KBS 〈개그콘서트〉의 황금기를 이끌고 ‘용감한 녀석들’의 “못생겼다”라는 공격을 통편집으로 받아쳐낸 바로 그 PD 서수민. 패션계, 광고계, 잡지계는 물론이고 영화 포스터까지 영역을 넓히고 있는 바로 그 유명 사진작가 조선희. 이러한 두 사람이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 현재에 이르기까지, 단단한 인생 이야기를 솔직하고 열정적으로 풀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