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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려령 “19금 소설? 내숭 떨지 않는 사랑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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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득이』의 작가로만 김려령을 기억한다면, 앞으로 나올 그의 작품에 다소 놀랄지 모른다. 2007년에 데뷔해 마해송문학상(『기억을 가져온 아이』)과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내 가슴에 해마가 산다』), 창비청소년문학상(『완득이』)을 수상하며 어린이책, 청소년소설을 꾸준히 발표한 김려령 작가가 이제부터 성인소설, 아니 일반소설을 본격적으로 발표할 태세다. 김려령 작가는 “동화는 대학을 졸업할 무렵 가장 마지막에 찾아온 장르다. 동화로 데뷔를 하게 됐는데 독자들에게 ‘한 번 쓰고 마는 작가’로 인식되고 싶지 않았다. 늦게 찾아온 장르지만 끝까지 할 거라는 믿음을 심어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처음부터 청소년소설과 성인소설을 구별하여 작업하지 않았다”는 김려령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10대의 전유물로 생각하고 작품을 쓴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대학 시절, 습작을 하며 주인공들을 하도 많이 죽여서 교수님으로부터 “살벌한 김려령이 청소년소설을 써서 의외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김려령 작가. 그가 처음으로 선보이는 일반소설 『너를 봤어』는 작가가 오랫동안 애착을 가지고 쓴 작품이다. 그리고 또한 살벌하다. 사랑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동시에 폭력을 말하고 죽음을 이야기한다. 영화감독 변영주는 『너를 봤어』를 읽는 내내,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라는 영화가 떠올랐단다. 두 작품 모두 인간 스스로의 죄의식, 그 안의 심장을 두드리고 있기 때문이다.

『너를 봤어』는 중견소설가 정수현과 베스트셀러 작가였지만 죽음을 선택한 그의 아내, 수현이 사랑한 후배작가 서영재의 이야기다. 표피적으로는 평탄하게 살아온 것처럼 보이지만 아버지와 형의 폭력 속에 끔찍한 자의식을 갖고 있는 수현은 사랑하지 않는 아내와 결혼하고, 그녀를 결코 사랑할 수 없는 자신을 발견한다. 사랑을 논하는 작가이지만 스스로에게는 사랑이 없다고 자시하던 수현. 영재를 만난 뒤, 변하는 자신을 깨닫지만 또한 변할 수 없는 본성에 고통스럽다. 김려령 작가는 “풋풋하고 설레는 연애 소설이 아니라 30,40대 인생을 아는 사람들의 사랑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내숭이 아니라 저절로 손이 가는 사랑, 보고 싶고 만지고 싶은 그런 사랑을 그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너를 봤어』는 소설 속 영재와 도하가 쓴 단행본의 제목이기도 하다. 작가는 “누군가를 처음 봤을 때의 설렘을 담고 싶었다. 아픈 설렘일지라도 놓고 싶지 않은 감정, 어떤 사람을 보고 시선이 간 그 순간. 그게 관계의 시작일 수 있다”고 했다. ‘너’는 수현이 본 영재일수도, 어쩌면 수현의 형이 저수지에서 본 수현일지도 모른다. 분명한 건 이인칭 대명사보다 ‘봤어’에 방점을 찍는 게 소설에 더 깊이 빠져들 수 있다는 것.




참 예쁘게 살 수 있는 사람인데

“가만히 보면 참 예쁘게 살 수 있는 사람인데, 이해할 수 없는 폭력이나 어떤 행위들로 힘들어지고 망가지는 모습을 볼 때 안쓰러웠어요. 한 사람만 놓고 보면, 건드리지 않으면 자기 할 일 하면서 잘 살 사람인데 옆에서 건드려서 망쳐버리는 경우가 있잖아요. 소설 속 수현도 잘 사려고 애썼던 사람인데 예기치 않게, 의도적이든 아니든 우발적인 사건을 겪고 그것을 평생 지고 살아가게 돼요. 죄의식에 짓눌러 싫어도 싫다는 말을 못하고. 자신을 끔찍하게 만든 현장을 봤을 때, 그게 본인에게 나온 악의인지, 누구한테 씌어서 한 행동인지, 그런 것들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수현은 폭력을 당하는 소년이었다가 성인이 되어 어느 순간, 폭력의 주체가 되는 자신을 발견한다. 김려령 작가는 과거에 끔찍할 정도로 맞는 아이를 본 적이 있다. 당시 그와 또래였던 아이인데, 아이를 보며 작가는 “내가 아니라서 다행이라는 못된 생각을 품은 적도 있었다”고 말했다. 작가는 “어른이 되어 ‘내가 잘못했던 일이구나’라고 생각이 되면 상처가 되지 않지만, 이해 못할 폭력은 여타 다른 데서 받은 폭력보다 더 심한 관계가 된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김려령은 작가의 말에서 “내가 처음 소설을 쓴 동기는 매우 불온하다. 나와 직접 관련 있든 없든, 죽이고 싶은 사람이 많았고, 그래서 죽여야 했다. 미운 놈 처치하고 일생을 피 말리며 살 수 없으니 펜을 사용했다”고 밝혔다. 작품을 쓸 때, 미운 사람 한 사람에게 악의를 몰아주는 성향이 있다는 김려령 작가. 모든 사람이 나쁜 건 싫어서 자신도 모르게 한 사람에게 몰아주게 된다고 한다. 마치 그 사람만 사라지면 세상이 평안해질 것일 마냥. 하지만 『너를 봤어』의 인물들 중 온전히 악의로만 가득 찬 사람은 없는 듯 하다.

『너를 봤어』속 중요한 배경은 출판계, 대부분의 인물은 작가다. 수현도 성공한 작가고 그를 따르는 후배 도하와 영재도 꽤 인정 받는 신예작가다. 김려령 작가는 2006년에 초고를 쓰면서 건축가를 주인공을 했지만, “서사를 가지고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생각에 직업을 바꿨다. 인물 중에 자신과 가장 닮아 있는 캐릭터는 서영재. 집필과정도 비슷하고 원고를 썼다가 또 버리는 습관도 닮았다. 김려령 작가는 “배고프면 밥을 먹듯이 나에게 소설은 밥 같은 거였다. 소설에 허기질 때가 있었다. 그러면 일상으로 썼다. 발표하려고 쓴 게 아니라 허기져서 썼고, 불필요하게 많이 썼다 싶으면 버렸다. 화가 나서 버리기도 했고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싫어서 버리기도 했다”고 말했다. 대학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하고 문단에 나왔을 때는 다소 실망했단다. 아니, 환상의 세계가 확 깨져버렸다.

“뭔가 고아하고 깊이 있는 곳이 문단이라고 생각했어요. 막연하게 거대한 장벽 같았던 곳이었고 그 안에 들어가면 깨달음을 얻고 성숙할 것만 같았어요. 하지만 습작생이 가지고 있는 환상이었을 뿐, 사는 모습은 똑같았어요. 오히려 그 안에 들어가서 상처를 받기도 했고요. 일반인이었을 때는 전혀 듣지 못했던 말들도 듣게 되고, 그것이 상처가 되기도 힘이 되기도 했던 것 같아요.”




청소년문학과 일반소설, 구분하지 않고 쓰겠다

그동안 주로 청소년소설, 동화 등을 발표한 김려령 작가. 청소년문학 작가로 대표된 자신의 위치에 대해서는 “어떤 장르든 문학성이 좋으면 좋은 작품이지 않나. 청소년문학이 일반문학보다 떨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작품성이 떨어지는 일반문학도 많다”고 말했다. 작가는 『완득이』를 집필할 때도 성장소설이라고 한정 지어 작품을 쓰지 않았다. 당시 고등학교 1학년생이었던 딸이 다문화가정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것을 보고, 아이들도 읽을 만한 이야기를 쓰기 위해 『완득이』를 썼다. 일반 소설로 공모하면 청소년들이 읽기 어려우니, 청소년문학상에 지원한 것이다. 영화로도 제작된 소설 『완득이』는 60만 부 이상 팔리며 청소년을 비롯해 일반 독자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청소년소설이었기 때문에 저평가 받았다는 그런 이야기는 사실 체감하지 않아요. 문단에서 하는 이야기니까 맞기도 하겠지만, 작품 자체가 그렇다기 보다는 장르에 대한 편견일 수 있을 것 같아요. 청소년소설로 데뷔를 했으니, 주력해온 글을 최대한 성실하게 쓸 생각이었고 『너를 봤어』는 발표할 때가 되어 선을 보이게 된 것 같아요. 당분간은 일반소설에 집중할 것 같아요. 물론 동화가 제게 온다면 동화를 써야겠죠.”

『너를 봤어』에서 김려령 작가와 가장 닮아 있다는 인물 ‘서영재’는 한 팬의 이름에서 따왔다. 작가가 인터넷을 검색하던 중, 자신의 작품을 좋아한다는 한 블로거가 ‘김려령 작가가 내 이름으로 소설을 써주면 소원이 없겠다’고 쓴 글귀를 보고 인물의 이름으로 사용했다. 어쩌면 작가가 할 수 있는 최고의 팬 서비스일지 모른다. 김려령 작가는 “학생인 것 같았는데 『너를 봤어』를 읽을 수 있을까요? 고등학생이라면 읽어도 될 법 싶기도 한데”라며 어렴풋이 미소를 지었다.

어느 언어 천재가 조어 하나 만들었으면 싶을 정도로 진부한 저 사랑이라는 말이 내 글로 들어왔다. 때로는 터무니없고 미련하고 살벌한 사랑마저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수많은 당신을 죽이며 갈망했던 것이 결국 사랑이었나 보다. 지리멸렬한 삶일지라도 끝내 버릴 수 없는, 그러면 안 되는 사랑. 그것으로 이제 독자를 만난다. 이 책을 펼친 당신이 한번쯤 웃었으면 좋겠고 한번쯤 울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행복했으면 좋겠다. 내 작은 사랑이 당신에게 가 닿으면 좋겠다. (작가의 말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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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봤어김려령 저 | 창비
이 책은 사랑과 폭력을 주제로 벼린 매혹적인 서사를 담고 있다. 소설의 주인공이자 화자인 ‘정수현’은 대중과 평단으로부터 공히 인정받는 중견 소설가이자 유수한 출판사의 편집자이다. 모자랄 것 없어 보이는 삶이지만 그에겐 폭력으로 얼룩진 지옥과도 같은 과거와 충격적인 비밀들이 있다. 가족과의 끈질긴 악연과 자신의 이중성으로 나락에 빠져들게 되는 수현에게 어느날 마주한 후배 작가 ‘서영재’의 존재는 유일한 희망과 설렘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태어나 처음 진정으로 느낀 사랑은 커다란 행복임과 동시에 벗어날 수 없는 죄책감을 안기는 굴레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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