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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병주 “조선의 쫓겨난 왕들, 소통과 포용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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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다” 이 한마디에서 인터뷰는 시작됐다. 어쩌면 『왕으로 산다는 것』이 시작된 출발점일 지도 몰랐다. ‘조선의 리더십에서 국가경영의 답을 찾다’라는 부제가 말해주듯, 시대는 달라도 한 나라를 이끄는 인물에게 요구되는 자질은 다르지 않다. 국민에 의해 선출된 권력이 국민에 의해 그 생명을 마감한 것처럼, 조선 시대에도 신임을 잃은 통치자는 왕위에서 끌어내려졌다. 시대의 흐름과 백성의 요구에 부응했던 왕은 성군으로 남았고, 그에 역행했던 왕은 혼군으로 기록됐다. 한 번의 큰 진통을 겪고 새로운 출발을 준비하는 지금, 우리가 이 책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왕으로 산다는 것』은 태조부터 순종까지 조선의 27명 왕 대부분을 조명한다. 왕이 되기까지의 과정과 왕이 된 후 펼친 정책, 그 곁에 있었던 참모들, 왕의 라이벌 등 주요한 사건과 인물들에 대해 들려준다. 매 순간 역사의 갈림길에 섰던 이들이 어떤 선택을 했는지, 그 이유와 결과는 무엇인지 지켜보고 있노라면 자연스레 현재의 시간을 되돌아보게 된다. 이곳에 필요한 해법과 이곳에 필요한 리더에 대해 자문하게 되는 것이다.

 

신병주 저자는 역사 대중화에 깊은 관심을 가져 온 사학자로 KBS <역사저널 그날>에 출연했으며 <역사추리>, <역사스페셜>, <불멸의 이순신>, EBS 어린이 역사 드라마의 자문을 맡은 바 있다. 현재 KBS1라디오 <글로벌 한국사, 그날 세계는>, EBS <신병주의 역사여행>을 진행하는 동시에 건국대 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어렵고 딱딱한 역사를 평이한 언어로 풀어서 설명해주는 그의 작업은 『왕으로 산다는 것』에서도 계속됐다. 이번 책은 2015년부터 <매경이코노미>에 연재되었던 동명의 칼럼을 엮은 것으로, 다양한 시각 자료와 함께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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쫓겨난 왕들의 공통점


서문에서 ‘조선의 왕들이 보여준 긍정적, 부정적 리더십을 반면교사로 삼았으면 좋겠다’고 하셨는데요. ‘반면교사’라는 말 속에 책을 출간하신 이유가 함축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죠. 역사는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고, 역사의 여러 상황들이 과거의 옛이야기로만 그치는 게 아니에요. 놀랍게도 지금의 시대와 비슷한 상황이 나타나요. 이번에 대통령 탄핵 사태를 맞았지만, 사실 조선 시대에도 왕이 쫓겨난 경우가 있었어요. 중종반정과 인조반정이 그것이죠. 그 왕들이 왜 그렇게 쫓겨났는지 상황을 잘 분석해 보면, 소통하지 않고 철저하게 측근들만으로 정치를 했어요. 반대 세력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탄압하고 포용의 리더십을 보이지 못했죠. 그 역사를 통해서 소통과 포용의 리더십을 보여야 된다는 걸 반면교사로 삼아야 해요. 훌륭한 리더십은 그대로 잘 수용을 하고 부정적인 리더십에 대해서는 극복해 나갈 때, 역사가 단지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의 시대에도 정말 필요하다는 걸 느낄 수 있죠.

 

조선왕조가 500년 이상 장수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요?


백성을 위주로 정책을 펴는 것, 즉 ‘민본’이라는 것에 대해서 철저했어요. 우리가 흔히 왕이라고 하면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하면서 굉장히 호화롭게 지냈을 것 같은데, 실제로 보면 그렇지 않았어요. 조선은 언론3사라고 해서 왕권에 대한 견제 기능도 강했고요. 드라마를 봐도 신하들이 제일 많이 하는 소리가 ‘아니되옵니다’라는 거잖아요. 그런 문화가 조성이 되어있었다는 거예요. 지금 그럴 수 있겠어요? 특히 탄핵된 대통령 앞에서는 ‘아니되옵니다’를 거의 못했잖아요. 그렇게 비교를 해보면 분명히 조선이라는 나라가 가지고 있었던 우위가 있어요. 전통 시대라고 해서 무조건 낡은 것이라고 볼 게 아니라, 이런 부분은 염두에 두고 봐야 되는 거죠.

 

왕들의 생활은 어땠나요?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호화롭지 않았다고 하셨는데요.


영조가 대표적인데, 철저하게 절약했어요. 처음에 정도전이 설계해서 궁궐을 지을 때도 그 규모가 상당히 크지 않았고요. 그렇게 왕이 검소와 절약의 정신으로 무장하고 있으니까 신하들도 그랬죠. 물론 그 중에서도 안 그런 사람이 분명히 있기는 했지만, 전반적인 문화는 그렇지 않았다는 거죠. 그래서 조선에서는 항상 청백리가 강조되는 거고요. 이런 청렴성, 도덕성 같은 건 지금의 우리 시대에도 상당히 요구되는 덕목이잖아요. 이 책에서 조선 왕들이 살아왔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보면서 ‘이런 면도 있었구나’라는 걸 자연스럽게 알게 됐으면 좋겠어요. 우리 삶에 적용해 볼 것들을 생각하면서 도움도 되고요.

 

책에서 영조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놀란 부분이 있었어요. 무신란이 일어났을 때는 문제의 원인을 “내가 덕이 부족한 탓”으로 돌리고, 청계천 준천 사업에 백성들을 동원할 때 “나는 백성들에게 혜택을 주지 못했으니 무슨 마음으로 백성을 괴롭히겠는가?”라고 슬퍼하더라고요. 지도자의 위치에 오르는 자가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 아닌가 싶었어요.


특히 영조 같은 경우는 정치적으로 탕평책을 펴서 반대 세력까지도 포용했잖아요. 자신이 쓰라린 경험을 했기 때문에 그랬던 건데, 반대로 나갈 수도 있었거든요. ‘내가 당한 게 있으니까 똑같이 하겠다’라고 생각하는 건데, 연산군이 그런 리더예요. ‘우리 어머니 죽인 놈들 다 나와’ 한 거잖아요. 그런 군주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폭군으로 불리게 되는 거죠. 이런 이야기를 하면 묘한 기시감을 느낄 수도 있을 거예요. 그리고 말씀하신 청계천 공사는 당시 백성들이 홍수의 피해를 입지 않게 하려고 했던 건데, 그것도 임금 지불을 하면서 효율적으로 진행했죠.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왕들도 있는데요. 숙종도 그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책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기존의 사극을 통해 “인현왕후와 장희빈, 그리고 숙빈 최씨의 치마폭에 둘러싸여 궁중 음모의 중심에 있었던 왕이라는 이미지”로 그려졌어요.


영조와 정조가 뛰어난 리더십을 발휘하면서 정치 문화의 중흥을 이룩하게 된 데에는 숙종이라는 왕이 있었어요. 숙종이 46년간 재위했는데, 국방이나 경제, 문화 부분에서 많은 업적을 이루었죠. 그런데 우리는 숙종 하면 장희빈, 인현왕후 등 여성들과의 스캔들만 떠올려요. 편견을 가지고 있는 거죠. 그게 아니라 숙종이라는 왕이 이런 진면목을 가진 리더였다는 걸 강조하고 싶었어요. 성종의 역할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죠. 흔히 조선 전기에는 창업의 시기와 수성의 시기가 있다고 하는데, 성종은 수성의 시기가 도래할 수 있게 해준 왕이에요. 성종이 조선이라는 나라의 기틀을 빨리 잡았기 때문에, 물론 그 뒤에 사화와 당쟁과 전란이 있었지만, 그런 위기를 극복하고 바로 복귀시키는 자생력을 가질 수 있었던 거예요.

 

숙종과 영조가 즉위했던 시기를 ‘부국과 중흥의 시대’라고 정의하셨어요.

 

당시 호란 이후에 지나친 대결의 시대가 분명히 존재했지만, 그런 걸 극복하고 북벌에서 북학으로 나아갔어요. 저들을 오랑캐라고 여기면서 적대시할 게 아니라, 저들에게서 우리가 배워야 한다는 의식의 전환이 일어난 거죠. 현대사에서도 비슷한 경우가 있었죠. 우리도 예전에 공산국가와는 전혀 수교를 하지 않다가 점진적으로 개방의 시대로 나아갔잖아요. 그런 것과도 맥이 같다는 거죠. 그런 점에서 역사는 우리가 살아온 상황을 잘 비춰주고, 앞으로 살아가는 방향까지도 제시해줄 수 있는 매력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어요. 이 책을 읽으시면서 그런 지혜를 찾고, 역사에 조금 더 관심을 갖고 현장을 많이 찾아보셨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삶이 조금 더 윤택해지지 않을까 생각해요.

 

숙종과 마찬가지로, 흥선대원군에 대해서도 우리가 한쪽 측면만 보고 있는 건 아닌가 싶어요.

 

흥선대원군 이야기를 하면 보통은 쇄국정책을 떠올리는데, 일단 그 용어 자체가 부정적인 평가가 가미되어 있는 거죠. 흥선대원군 입장에서 보면 부국강병 정책이거든요. 외세가 침략하는 데 대해서 무기력하게 당하지만은 않겠다고 했던 건데, 어쨌든 준비가 덜 된 상황에서 전투를 벌여서 병인양요나 신미양요 때 조선의 피해가 컸었죠. 그러나 이후에 보여준 행보를 보면, 보통은 척화비를 세운 것만 알고 있는데, 국방지도를 다량으로 제작해서 지역을 확실하게 파악하고 거기에 필요한 국방시설 같은 걸 점검하는 노력도 했거든요. 그리고 내정에 있어서는 여러 가지 업적들도 남겼어요. 이런 면모들도 같이 봐줘야 우리가 정당하게 평가할 수 있는 거죠. 가능하면 역사적 팩트를 이야기하고, 그것을 가지고 해석하는 것은 읽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이런 면모도 있었구나’ 하고 생각 하게 만들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해석은 독자의 몫으로 남겨두고 싶으신 거군요.

 

그렇죠. 개인적인 해설이나 견해를 덧붙이면 평설처럼 되는 거잖아요. 가능하면 우리가 잘 몰랐던 조선 왕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어요. 어떤 식으로 살아왔고, 주요 업적은 무엇이었고, 최후의 모습은 어땠는지, 이런 것들을 이야기하고 싶었죠. 우리에게는 굉장히 풍부한 기록들이 남아있어요.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해서 개인의 기록, 문집에서 나오는 내용들만 잘 엮어도 그 자체로 흥미롭다는 거죠. ‘이런 일도 있었구나’ 하고 잘 몰랐던 사실도 알게 되고요. 굳이 해석을 더해서 살을 붙일 필요는 없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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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적을 대하는 리더의 자세

 

지금까지 재평가가 필요한 왕들에 대해 이야기했는데요. 반대로 재고의 여지가 없는 인물을 꼽는다면, 역시 연산군일까요?


그렇죠. 연산군은 재고의 여지가 없을 뿐만 아니라, 그 실체를 알게 되면 ‘이렇게까지 했어?’라고 할 정도예요. 대부분은 흥청이라는 기생들을 불러서 연회를 했다는 것만 알고 있는데, 신하들에게 신언패라는 걸 차고 다니게 했었거든요. ‘입은 화의 문이고 혀는 몸을 자르는 칼이다’라고 써놓고 입조심 하라고 한 거예요. 섬뜩하지 않아요? 그리고 모자에는 충성이라는 두 글자를 쓰고 다니게 했어요. 온갖 고문 기술을 개발하기도 했고요. 연산군 같은 경우는 이 책을 통해서 더 알게 되면 ‘저렇게 하니까 쫓겨날 수밖에 없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 거예요. 저도 연산군일기를 보면 ‘이런 왕실에 살았던 신하나 백성들은 어땠을까’ 생각이 들어요. 물론 연산군이 쫓겨난 왕이기 때문에 더 가혹한 기록이 이뤄졌을 가능성은 많지만, 어쨌든 기록을 토대로 보면 그래요.

 

<역사저널 그날>의 연산군 편을 보니까, 짐승들을 가둬놓고 활을 쐈다는 기록도 있더라고요. 정서적으로 문제가 있었던 게 아닌가 싶어요.


그런 면에서는 문제가 많은 사람이죠.

 

사도세자도 정신질환을 앓았었죠?


있었다고 봐야죠. 그런데 사도세자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생기는 데 단서를 제공해 준 인물이 영조예요. 아버지가 워낙, 요즘 표현으로 하면 들들 볶으니까, 사도세자가 그렇게 만들어진 거죠. 조선시대에 왕과 아들의 관계는 그렇게 좋지 않은 사례가 더 많아요. 태조와 태종, 선조와 광해군, 영조와 사도세자, 흥선대원군과 고종이 그렇죠. 아마 권력 앞에서는 일반적인 부자 관계와는 다른 것 같아요. 태종과 세종, 세종과 문종은 관계가 좋았던 대표적인 사례로 볼 수 있죠.

 

『왕으로 산다는 것』에서 보니까, 영조는 본인뿐만 아니라 타인에게도 엄격한 사람이었던 것 같더라고요. 빈틈이 없는 사람 같았어요.


그렇죠. 초상화가 남아있지만, 일단 얼굴을 봐도 상당히 깐깐하게 보이시죠. 영조의 초상화는 당시의 실제 모습을 그린 거거든요. 그리고 영조는 유일하게 젊을 때와 나이 들었을 때의 모습을 다 볼 수 있는 왕이에요. 스물한 살 때 세제 시절에 그린 초상화(예진)와 51세 때 왕위에 있을 때 그린 초상화(어진)가 그대로 남아있어요. 그런데 그 사이에 체형 변화가 거의 없어요. 영조가 상당히 건강관리를 했다는 걸 알 수 있죠. 어진과 예진을 보면 상당히 체형이 마르셨어요. 

 

세종의 어진은 남아있지 않죠?


없죠. 만 원권 지폐의 그림은 후대에 그려진 거예요.

 

세종의 어진이 있었다면, 영조와 사뭇 다른 모습이었겠어요(웃음).


조금 비만하셨다는 이야기들이 있죠. 사실 그런 기록도 있고요. 『왕으로 산다는 것』에서 가능하면 주제와 관련된 도판을 많이 배치하려고 했는데요. 자료를 보면서 조금 더 생생하고 생동감 있게 상황을 이해할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였어요.

 

조선에서 임금과 신하는 서로 견제하면서 정치적 균형을 맞췄는데요. 이 관계를 이상적으로 조율한 왕은 누가 있을까요? 탕평책을 실시한 영조 이외에 또 다른 인물이 있을까요?


영조 이전에 대표적으로 세종이 그랬죠. 적절하게 집현전 학자들도 등용하고, 신권도 적절하게 인정을 해줬어요. 성종도 그런 역할을 많이 했죠. 성종 때 ‘동국통감’, ‘경국대전’, ‘동국여지승람’과 같은 대대적인 편찬 사업이 이루어지면서 국가의 틀이 완성됐는데, 그런 작업은 신하들의 협조가 없으면 이루어지지 않거든요. 성종은 그런 방식으로 왕권과 신권의 균형을 잘 이루어나갔던 왕이죠.

 

숙종 같은 경우는 어떤가요? 한 당파를 견제하기 위해 반대 당에 힘을 실어주면서 인위적으로 균형을 맞췄는데요.


왕이 중심이 돼서 특정한 당파가 지나치게 비대화되는 것을 막았던 거죠. 그런 면에서 보면 숙종도 상당히 노련한 정치술을 발휘했던 왕이에요. 그때는 당장의 폐해가 너무 심했기 때문에 일당독주를 허용하지 않았던 거거든요. 결국은 숙종의 그런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영조의 탕평책이 가능할 수 있었던 거죠.

 

당시의 왕과 신하의 관계를 현재에 대입해 보면, 대통령을 필두로 한 여당과 야당의 관계라고 볼 수 있을 텐데요. 지금의 리더는 정적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정책 목표는 확실하게 설정하면서도 반대 세력에게까지도 협조를 구하는 리더가 필요하죠. 쉽지는 않겠지만 계속 노력을 해야 된다고 봐요. 당장은 힘들더라도, 그래야 안정적으로 오래갈 수 있으니까요. ‘너희들은 맨날 반대만 하니까 나는 우리 쪽으로 가겠다’라고 했을 때는 금방 또 한계를 보이잖아요. 그렇게 자꾸 정치 세력이 바뀌어버리면 정책들도 다 없어지고요. 그런 악순환들이 없었다고 보기 어렵죠. 그런데 어느 정부에서나 탕평을 이야기했거든요. 통합, 화합, 지역 갈등 해소를 매번 이야기해요. 그런데 현실에서 잘 지켜졌는지 생각해 보면 조금 회의적인 부분도 많죠. 이제는 진정한 정치적 탕평, 국민 화합을 이루어야 한다고 봐요. 쉽지 않겠지만 단계적으로 쌓아 가면 가능할 거라고 보고요. 조선 시대에도 성군의 조건 중 하나가 나의 시대에 완성하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은 거예요. 내가 어느 정도 하고, 그 다음에 또 쌓아가게 한 거죠. 그렇게 축적된 기다림의 시간들도 필요해요. 빨리 쌓은 건 빨리 무너질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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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리더, 세종을 모델로 삼아야

 

최근 사드 배치를 두고 한중 관계가 악화되고 있습니다. 조선의 왕들에게서 배울 수 있는 외교의 원칙과 기술이 궁금해요. 광해군에게서 답을 찾을 수 있을까요?

 

어쨌든 외교 문제에 있어서는 광해군이 상당히 적절하게 잘했으니까요. 실리외교의 부분은 우리가 높게 평가할 수 있죠. 광해군이 인조반정에 의해서 쫓겨나면서 외교에서 잘했던 부분조차 청산의 대상이 돼버렸는데, 실제로 인조 때 호란이라는 전쟁을 맞은 상황을 고려하면 광해군의 외교 정책은 우리가 어느 정도 수용해야 했다고 생각돼요. 현재의 정치 문제와 연결을 해보면, 정부가 바뀌면 무조건 전 정부의 것들은 다 바꾸려고 하잖아요. 그런 건 지양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정부가 바뀌면 각종 부서를 개편하는데, 완전히 바람직하다고만은 볼 수 없지만, 조선시대에는 이호예병형공의 6조 체제가 그냥 이어졌거든요. 그래도 500년 동안 장수할 수 있었다는 거예요. 부처를 바꾸지 않는다고 해서 일을 못하는 게 아니라는 거죠. 그런 점에서 전대의 성과를 계승하려는 노력들이 중요한 것 같고요. ‘경국대전’과 ‘동국통감’도 세조 때 편찬을 시작해서 성조 때 완성됐듯이, 반드시 자신이 집권하는 시기에 성과를 이루려는 생각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시대를 잘못 만나서 뜻이 좌절된 왕들도 있었던 것 같은데요. 효종의 경우는 어땠나요?


결과적으로 시대의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던 왕이죠. 호란의 후유증을 극복하기 위해서 왕이 될 수 없는 위치에서 왕이 되었으니까, 소위 말하는 북벌이라는 이념을 국시로 삼을 수밖에 없었던 거예요. 모든 에너지를 그곳에만 집중시키니까 정책이나 민생, 복지 같은 부분은 거의 제대로 해놓지 못했죠. 대표적으로 효종 때 하멜 같은 인물이 표류해 왔는데, 청나라와의 관계 때문에 숨기려고만 했어요. 당시에 조선 사회가 가졌던 경직성을 보여주는 예죠. 효종 본인은 노력을 많이 했지만, 시대적인 목표라든가 과제 설정의 면에서 결과적으로 보면 제대로 되지 못했다는 거죠.

 

선조와 인종의 경우 임진왜란과 정묘호란, 병자호란을 겪지 않았다면 또 다른 모습의 군주로 역사에 남을 수 있었을까요?

 

역사에서 가정은 없다지만, 어쨌든 간에 한 나라의 리더가 전쟁을 초래했다면 상당히 문제점이 많은 거예요. 물론 상대가 침략해 왔으니까 어쩔 수 없었다고 하지만, 광해군의 사례만 보더라도 호란 같은 경우는 겪지 않아도 될 전쟁이었거든요. 그런 상황을 고려한다면 선조와 인종은 어쨌든 전쟁의 원인을 제공했고 전쟁을 맞은 왕이었어요. 특히 선조가 전쟁 때 보여준 처신은 상당히 부정적이었다는 거죠. 의주까지 피난을 갔잖아요.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고 하더라도, 일단은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에는 조금 힘들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선조는 초반에는 인물들을 양성하는 역할을 꽤 많이 했어요. 정철, 율곡 이이, 유성룡, 이항복, 이원익 등 아주 쟁쟁한 인물들을 많이 배출하거든요.

 

임진왜란으로 인해 제대로 평가 받지 못한다고 볼 수 있겠네요.

 

전쟁 이후에 보여줬던 부정적인 측면 때문에 앞에서 잘했던 인재 양성 부분에 대해서 인정받지 못하는 부분이 있는 거죠. 특히 선조는 기축옥사 이후로 반대세력을 축출하고 선비들을 많이 희생시켰어요. 그런데 지금의 리더도 다르지 않아요. 특히 20~30년 이상 재위하면 똑같을 수가 없어요. 초반에 긍정적이었다가 후반에 부정적일 수도 있고, 반대로 갈수록 또 잘하는 리더도 있는 거죠. 그런 걸 한쪽으로만 볼 수 없다는 거예요.

 

누구나 공과가 함께 있다는 말씀이시죠?

 

그렇죠. 공과가 있죠. 어떤 측면에서는 그렇게 만든 시대적인 조건, 당시 주변 인재들의 등용 문제도 함께 고려해야 된다는 거죠.

 

『왕으로 산다는 것』에는 조선왕실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도 실려 있는데요. 그 중에서도 정치적인 식견이나 판단력이 뛰어났던 인물이 있었나요?

 

아무래도 이 책은 조선 왕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보니까, 결국은 왕비들 정도만 언급할 수 있었는데요. 그렇게 보면 소현세자빈 강씨 같은 인물을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남편 소현세자와 같이 청나라 심양에 갔을 때, 나름대로 새롭고 진취적인 여성상을 보여줬죠. 그런 부분 때문에 시아버지인 선조에 의해서 희생을 당한 안타까운 인물이기도 하고요.

 

명성황후의 정치적 판단에 대한 평가는 아직까지 논란의 여지가 있겠죠?


명성황후도 어쨌든 공과가 있고요. 초반에는 너무 민씨, 소위 말하는 척족을 등용한 게 사실이죠. 그런데 다른 관점에서 보면 오히려 고종보다 대외적인 인식이 뛰어난 측면이 있었어요. 특히 일본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러시아하고 어느 정도 외교를 맺어야 된다는 걸 알고 있었죠. 일본의 제거 대상이 됐다는 것 자체가 상당히 일본에게는 부담스러운 인물이었다는 걸 보여주는 거고요. 그만큼 만만치 않은 인물이었다는 걸 확실하게 보여주는 거예요. 한 때는 명성황후에 대한 평가가 조금 과장된 측면도 있었어요. 그렇다고 명성황후가 고종을 완전히 무력화시켰다고 볼 수도 없어요. 어떤 면에서 보면 고종과 협조 관계일 수밖에 없는 거죠. 고종과 완전히 척을 지는 모습은 아니라는 거죠. 그런 양면성이 있어요.

 

지금 우리 사회에는 어떤 리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는지, 그 리더에게 어떤 왕을 모델로 제시해 주고 싶으신지 궁금합니다.


이 책에서는 세종에 대한 이야기는 상대적으로 조금 짧게 언급했어요. 워낙 유명해서, 인간 세종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썼는데요. 사실 세종이라는 왕은 본인도 뛰어난 리더였지만 주변의 인물들을 정말 많이 키웠어요. 장영실, 음악가 박연, 황희 정승, 김종서, 성삼문 등 본인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뛰어오르게 하는 리더였어요. 그렇게 주변 인물들도 자신의 분야에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리더가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이번에 대통령 탄핵 때도 안타까운 게 너무 많았잖아요. 왜 그렇게 주변에 사람이 없었을까, 그 많은 관료들을 왜 저렇게 활용하지 못했을까, 그런 거에 대한 안타까움이 많았잖아요. 세종처럼, 본인도 정말 열심히 일하지만 주변 사람들을 함께 부각시키는, 그런 리더가 배출이 되면 우리 사회가 조금 더 나아지지 않을까 싶어요.


 

 

왕으로 산다는 것 신병주 저 | 매일경제신문사
이 책은 정통 역사학자로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는 건국대학교 사학과 신병주 교수가 500여년의 조선왕조 역사를 8개의 분류로 나누어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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