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없는 세 남매의 이야기 『불량 가족 레시피』로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는 손현주 작가가 ‘애니멀 호더(animal hoarder, 동물의 수를 늘리는 것에 집착하는 사람들을 이르는 말)’인 엄마와 낡은 버스에서 살아가는 가족의 이야기 『소년, 황금버스를 타다』로 돌아왔다. 교육열 높은, 부유한 동네 ‘청당동’. 그 한 구석 공터에 버려진 낡은 버스에는 주인공 ‘이주노’의 가족이 산다. 자꾸 유기견과 유기묘를 데리고 오는 엄마, 어린 동생과 셋이서 지내는 버스 생활은 불안하기 짝이 없다. 친구들에게 들킬까, 아픈 개가 죽을까, 열다섯 살 주노는 온갖 걱정을 가슴에 품은 채 가족 안에서, 학교에서 불안한 줄타기를 이어나간다.
문제는 주노의 가족뿐만이 아니다. 소위 명문학교라는 주노의 학교에는 전학생을 괴롭히는 ‘밥통들’이 있고, 문제를 해결해야 할 의무가 있는 담임선생님은 그러나 이들의 폭력을 외면하며, 주노는 어쩐지 첫사랑을 시작한 것 같다. 그러는 사이에도 아빠의 죽음 이후 우울증을 겪고 있는 엄마는 세상과 드세게 싸우며(혹은 싸움을 걸며) 하루하루를 살아낸다.
모두가 마음이 쓰인다. 한창 주변이 신경 쓰이는 사춘기의 주인공 주노와 남편을 잃고 궁핍한 형편에 두 아이를 키워내야 하는 엄마, 그 엄마 밑에서 제대로 보호 받지 못하는 많은 동물들과 의외의 아픔을 가진 밥통들까지. 『소년, 황금버스를 타다』는 재료가 듬뿍 들어간 풍성한 요리 같다. 여러 번 다른 맛을 내며 이야기의 다채로운 즐거움을 선사한다. 그 안에 있는 폭력과 계층 갈등과 사회 문제의 쓴맛은 이야기가 진행되며 새로운 맛으로 모습을 바꾼다. 이것이 작가가 말한 이야기의 즐거움, “인간 군상이 모여 있는 재미있는 이야기”일 것이다.
다 불완전한 존재들
주인공 ‘주노’의 꿈에 등장한 ‘황금버스’라는 장치가 재미있어요. 이상적인 공간인데요. 처음에 어떤 이미지를 상상하고 만들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버스에서 사는 가족이라는 것은 미리 구상을 했고요. 인터넷에서 많은 개와 고양이를 데리고 살다 집에서 쫓겨난 가족에 대한 기사를 보고 소설을 시작한 거거든요. 그들이 버스로 가게 된 것은 상상인데요. 버스라는 공간은 굉장히 누추하고 비루한 공간이잖아요. 주노도 얼마나 버스를 떠나고 싶겠어요. 그러나 고정되어 있고 움직일 수 없는 공간이지만 상상 속에서는 얼마든지 다를 수 있죠. 하늘을 날 수도 있고요. 황금버스는 그런 공간이에요. 주노 스스로가 이 공간이 이랬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꿈꾸는 욕망의 공간이죠. 누추한 버스에서 멈춰있는 게 아니라 꿈을 가지고 갈 수 있다는 하나의 희망인 거예요. 버스는 사실 절망의 공간이기도 하거든요. 그러나 주노가 꿈을 꾸기에 따라서는 같은 버스라도 희망의 공간으로 바뀔 수 있는 거죠.
버스라는 공간을 상상하게 된 이유가 있었나요?
어렸을 때 살던 동네에 종점 버스가 있었어요. 그 공간이면 개도 충분히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기사에서도 가족이 쫓겨난 직후에 공터에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생각하게 된 거예요.
황금버스를 꿈 혹은 희망이라고 읽을 수 있다면, 누추하고 비루한 상황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가슴에 황금버스 하나쯤 두라고 말하는 듯도 하네요.
맞아요, 그것이 실제 현실에는 다가오지 않을지라도 누구나 그것 하나 정도는 품고 살아야 하는 게 아닐까 생각한 거예요. 그것이 살아가는 힘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있었어요.
그런 응원이 필요한 것은 우리 모두가 불완전한 존재들이기 때문이겠죠. 가장 덜 불완전해 보이는 인물 ‘예지’ 마저도 결핍이 있잖아요.
누구에게나 결핍이 있어요. 대부분은 자기만 결핍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아니에요. 속을 보면 누구에게나 말하지 못한 자기 환경 속 결핍이 있거든요. 상대적일 뿐이죠. 등장인물들도 그래요. 각자 모두 나름대로 결핍이 있잖아요. 그러니 누구에게나 황금버스도 필요한 거죠.
특히 작품 안에 등장하는 어른들은 모두가 저마다의 문제를 안고 있어요. 어딘가 어른스럽지 않은 모습이기도 하고요. 어른들을 굳이 그런 모습으로 두드러지게 표현한 이유가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어른이라고 성숙한 존재는 아니죠. 어른이라고 할지라도 누구나 가슴 속에 우는 아이 하나쯤은 있는 거고요. 다 불완전한 존재들이라고 생각해요. 모습만 어른일 뿐이지 여전히 자기모순에 빠져 있고, 부조리한 현실을 견뎌나가는 것뿐이죠. 결국 각각의 욕망대로 움직이는 거라고 저는 생각해요. 동물병원 원장도 그렇고요. 오히려 그 인물들이 현실에 가까운 인물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현실에서는 훨씬 더 치사하고 견딜 수 없는 모순에 빠져 있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래서 자기 앞의 생을 어떻게 할 수 없는 자가당착적인 삶에 빠질 때도 있거든요. 이 소설에 등장하는 어른들은 자기 욕망대로 행동하면서 각각의 자리에서 움직이는데요. 오히려 그게 현실이라고 바라봤어요. 소설적 인물이지만 공감이 가는 현실적 인물들이라고 할 수 있어요.
문학, 특히 청소년 문학에서 그런 현실적인 인간형을 보여준다는 것이 의미가 있을 거예요.
청소년들은 아직 알을 깨고 나가지 못한 상태잖아요. 현실이 어떤 건지 정확히 모르죠. 세상은 그들이 생각하는 것과 달라요. 저는 이 안에서 청소년들도 현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으면 했어요. 동물병원 원장도 유기견 치료를 돕지 않잖아요. 우리 생각과 다르죠. 현실은 너희들이 생각하는 이상 세계의 모습과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아갈 수 있었으면 했어요. 다들 자기 한계를 갖고 있는 거니까요.
사실 성장이 바로 그것인 것 같아요. 보기에는 너무 이해 안 되는 것들이지만 현실의 틈새를 조금씩 열고 나가보면 새롭게 깨닫게 되는 부분이 있죠. 그것이 성장이라고 봐요. 그래서 어른들의 모습을 포장하기보다 각각의 상황 속에서 그 나름의 최선을 다하는, 그런 모습을 가감 없이 보여주고 싶었어요.
대표적인 인물이 엄마예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일삼지만 자녀로 인해 변화하게 되죠.
엄마는 굉장히 문제적 인물이죠. 주노가 아니라 엄마가 문제적 인물이기 때문에 주노는 어쩔 수 없이 영향을 받는 인물인데요. 사실 대다수 청소년 시기에 문제적 인물은 청소년 자신이 아니라 주변부라고 생각해요. 결국 환경이 그 아이를 문제적 인물로 만들잖아요. 부모도 어찌할 수 없는 환경적 부분이 자신은 문제적 소년이 되고 싶지 않은데도 자기도 모르게 문제적 소년이 되는 상황을 만드는 거죠. 『불량 가족 레시피』도 주변부가 문제였어요. 태어나면서부터 어찌할 수 없는 환경 말이에요. 때문에 저는 아무래도 그런 쪽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 같아요.
저마다의 사정
큰 상실을 겪었고, 가난하고, 우울하고, 불안한, 그래서 마음이 쓰이는 인물이 바로 엄마였어요. 작가님도 그러셨을 것 같은데요.
제일 마음 쓰이는 건 엄마였죠. 주노도 마찬가지지만요. 이야기는 또한 엄마가 우울증, 그리고 아이들을 혼자 키워야 하는 현실을 극복하고 자신을 일으켜 세우는 과정들이잖아요. 자기도 어찌할 수 없는 시간들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무기력과 두려움의 공간으로 유기견과 유기묘를 데려오는 거죠. 사실 성숙한 사람 같으면 그렇게 할 수 없죠. 그런데 엄마는 대책이 없어요. 자기 심리 상태가 통제되지 않기 때문이에요. 그렇게 해서라도 내면의 허전함을 채워야 했을 거고요. 싸워나갈 힘을 유기견을 통해 얻었을지 몰라요. 발단은 작은, 한 마리 유기견이었지만 자신도 모르게 불어난 건데요. 우리도 자기 앞에 놓인 문제를 스스로 치우지 못하는 모순에 빠지기도 하거든요. 어떤 결단을 내리는 건 죽을 만큼의 고통을 겪어야만 가능하다고 봐요. 누가 얘기해도 소용이 없죠. 엄마 역시 그러다가 자식의 결핍된 모습, 자기 때문에 아들이 피해를 받고 있는 현장을 보고서야 결단할 수밖에 없었던 거예요.
결단을 내려야 했던 순간도 무척 마음이 아파요. 주노의 아픔을 마주하고 미안하다고 말하는 엄마 모습이 오래 기억에 남더라고요.
요즘 그렇잖아요. 명문 학교 보내놓으면 그것 하나로 다 한 것 같고, 아이가 행복할 거라고 많이 생각하는데요.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걸 주노를 통해서 알 수 있죠. 이 아이에게는 명문 학교가 의미 없잖아요. 그게 고통의 진원지기 때문에요. 그런 모습도 다각도로 보여주고 싶었어요.
재료가 많고 다채로운 인물들이 등장하거든요. 인물의 내면을 상상하는 데 도움이 된 것들이 있었나요?
제 이야기들이 있어요. 아주 추운 겨울, 재래시장에 간 적이 있었어요. 거기서 거리를 돌아다니는 개를 우연히 봤는데 험상궂고 털이 다 얼어붙은 개였어요. 제가 그때 새우깡을 샀는데요. 개에게 그 과자를 뜯어 줬거든요. 과자를 너무 잘 먹는 거예요. ‘새우’는 그렇게 탄생했죠. 잊히지가 않더라고요. 엄마의 심정도 마찬가지인데요. 저도 자녀를 세 명 키웠어요. 그런데 자녀를 혼자 키운다는 건 굉장한 공포가 있었을 거란 생각을 해요. 남편이 죽고 혼자 자녀를 키우는 과정은 엄청난 고통이었겠죠. 저 역시 육아를 하면서 경험한 우울감이 있는데, 그때는 현실을 외면하고픈 마음이 있거든요. 그러니 상당히 황폐했을 거라고 생각했죠. 그런 부분들이 많이 담겨 있는 것 같아요.
생생한 장면들이 있었는데 역시 이유가 있었네요.
새우가 죽은 장면도 직접 겪었던 일이에요. 개를 한 마리 입양했는데 바이러스에 감염이 된 개였던 거예요. 그 개를 살리려고 정말 애를 많이 썼어요. 병원도 하루에 몇 번씩 가고요. 그런데 너무 어린 개가 이미 바이러스에 감염이 되어서 살리기가 어렵더라고요. 며칠 째 누워서 기운을 못 쓰고 있더니 어느 날 여태껏 쓰러져서 일어나지도 못했던 강아지가 현관 쪽에 앉아 있는 저한테 비척비척 걸어와서는 제 무릎에서 숨을 거뒀어요. 제 무릎까지 정말 죽을힘을 다해 걸어온 거죠. 그때 너무 많이 울었어요. 상상하지 못했던 깨달음을 그때 얻었죠. 자기를 살리려고 애썼다는 걸 개도 알았던 거잖아요. 마지막 고마움의 표현을 제게 하고 숨을 거뒀어요. 그 생각이 너무 오래 남았기 때문에 새우의 죽음도 그런 장면으로 그리게 됐어요.
“새우야…….”
새우는 내 목소리에 힘겹게 눈을 뜨더니 뭔가 힘없는 몸을 간신히 일으켜 한 걸음 두 걸음 내 쪽으로 비척거리며 걸어왔다. 내게로 오는 시간은 아주 느리지만 분명 새우가 몸을 일으켜 내게 오고 있었다. 잠시 후 새우는 내 발치에 다가와 간신히 몸을 뉘었다.(중략)
직감적으로 새우의 숨소리가 끊어졌다는 사실을 여윈 몸에서 전해지는 체온을 통해 알 수 있었다.(170-171쪽)
쓰면서 따로 취재를 하신 부분도 있었나요? 가령 중학교 교실에서 『이기적 유전자』를 읽는 장면도 있었거든요.
오랫동안 학원을 했었는데요. 그러다보니 학생들의 상황을 잘 알고 있는 편이었고요. 그것이 주노의 상황과 대비가 되잖아요. 주노 입장에서 그것은 어느 나라 외국어보다도 더 안 들리는 소리들이죠. 그런 차이를 보여주려고 했어요.
맞아요, 바로 그 장면에서 계층 문제를 짚어내고 있어요. 학교 폭력이 발생하는 장면도 같은 맥락이죠.
맞아요. 계층적 사다리가 없으면 상당히 힘든 구조가 있죠. 그러나 학교 폭력의 문제는 꼭 그런 측면만은 아니에요. 요즘 아이들에게는 부모가 주는 스트레스가 너무나 많아요. ‘밥통들’ 캐릭터는 그렇게 그리려고 했어요. 이렇게 좋은 학교에서도 폭력이 일어나고, 그 속을 들여다보면 부모의 욕망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상황에서 발생한 경우죠. 물질적인 건 아주 풍요롭지만 주변에서 과도하게 요구하는 것들이 더 무서워요. 아이들이 부모가 원하는 만큼을 채워주지 못했을 때 혹독하게 비난받고, 상처를 또 받거든요. 그랬을 때 학교 안에서 또 다른 문제를 일으킨다는 점을 경고하고 싶었어요. 폭력의 가해자도 하루아침에 그렇게 되지 않은 거죠. 저마다의 사정에 놓여 있기 때문에요. 단순한 폭력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고요. 그 아이에게조차도 이유가 분명하게 있다는 걸 보여주려고 했어요.
인간 군상이 모여 있는
『불량 가족 레시피』에서 다룬 ‘코스프레’ 소재나 이번 작품에서 다룬 ‘애니멀 호더’의 문제 등을 보면 작가의 관심사가 폭넓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요. 지금 관심을 두고 있는 이슈는 뭔가요?
학교와의 결별을 생각하고 있는데요. 자퇴하는 학생들의 삶에 대해 관심을 많이 갖고 있어요. ‘이것이 정상’이라고 하는 시스템, 정규 교육의 문제점이죠. 거기서 오는 어려운 부분이 분명히 있어요. 지금의 학생들은 아주 다양한 문화적인 환경에 놓여 있고 기성세대보다 더 자유롭잖아요. 게다가 그들이 살아 갈 세상은 공부 중심의 세계보다는 다양성이 더 많아진 세계거든요. 반드시 학교 교육을 통해서가 아니라 각자의 재능에 따라 다양한 삶을 꾸릴 수 있다고 봐요. 정규 교육을 통해 사회에 진출하는 사람도 있지만 학교를 그만 두고 자신만의 또 다른 삶을 개척하는 사람도 많다고 생각하고요. 그래서 학교를 그만둔 아이들의 삶에 대해 관심이 있어요. 그들이 어떻게 또 자신의 삶을 잘 개척해서 살아가고 있는지 그런 부분을 관심 있게 보고 있죠.
학교 바깥의 삶에 대한 이야기가 많지 않은 게 현실이잖아요.
많지 않죠. 그러나 그것 또한 삶이에요. 꼭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도 없는 거거든요. 무조건 공교육만이 최고라 할 수는 없는 거예요. 아이들은 학교 안에서 여러 문제로 학교를 그만 두고 싶은 마음이 많거든요. 아직 학교는 입시 중심에 갇혀서 다양성을 수용하지 못하니까요. 결국 어쩌면 이들이 기성세대보다 더 많은 것을 보고 있을지도 몰라요. 물론 학교도 많은 노력을 하고 변화하는 과정이라고 보는데요. 시간이 걸리겠죠. 지금 당장은 학교를 그만두는 학생이나 학교에 적응 못하는 학생을 무조건 문제아라는 시각으로 바라봐서는 안 될 거예요. 그건 정말 이분법적 사고죠. 지금 시대에 맞지도 않고요. 세상은 너무 빠르게 바뀌고 있어요. 획일화된 사고만을 강요하는 그런 학교를 더 이상 학생들은 참을 수 없죠. 저는 학교 바깥에서도 삶을 잘 개척해나갈 수 있다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기도 해요. 당장 계획이 있는 건 아니고요.
결국 이 질문을 드려야 할 것 같아요. 좋은 이야기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재미있게 읽히는 이야기가 좋은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재미있기만 해도 역할을 다한 거라고 봐요. 책이 꼭 교훈을 얻어야 하는 건 아니라고 보고요. 그 책을 읽고 웃을 수 있었고 울을 수 있었으면 그거면 충분하겠죠. 아이들에게 그 이야기가 비상구 역할을 하고 감정의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게 해야죠. 그런 이야기를 만드는 게 작가들의 사명이라고 생각해요. 너무 권위적이거나 의미만 두는 책을 아이들에게 강요하는 것도 폭력이라고 봐요. 그래서 저는 가독성도 있고, 감정도 다양하게 공유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싶은 생각이 언제나 많아요.
재미를 준다는 것 역시 쉬운 게 아니잖아요. 재미있는 이야기를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늘 해요.
재미 주는 게 상당히 어렵거든요. 그냥 아주 슬픈, 눈물을 쭉 뺄 수 있는 이야기, 그것도 그 역할을 다 한 거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그런 이야기가 별로 없는 것 같아 안타까워요. 다른 재미있는 것들도 너무 많으니까요. 그래서 이제는 작가들이 재미있는 요소를 많이 배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너무 무게만 갖고, 경고만 주고 끝난다면 좀 결국 외면 받겠죠. 어차피 문화적인 거잖아요. 독자가 없으면 의미가 없잖아요. 그래서 작가들이 진지하게 많이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대중적인 지지를 받으려는 노력은 꼭 해야죠.
그런 의미에서는 작가님이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문제들을 이야기 안에 담는 것도 대중과 소통하려는 노력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그렇죠, 왜냐하면 청소년 문학에 단순한 주제 하나를 전달하려는 면이 많아서 싫더라고요.(웃음) 교훈을 상정해두고 그 주제 하나만 이야기하는 건 재미가 없잖아요. 제가 재미가 없어요. 좀 심심하죠. 저는 서사 중심, 캐릭터 중심으로 가는 걸 좋아하는데요. 그러다보니까 조금 더 변동성이 커지는 요소를 가져가려고 하는 거죠. 사건도 많고요. 그렇게 역동적으로 가는 게 제 성격에 맞는 것 같아요. 조금 영화적인 서사를 좋아하거든요. 장면도 상상이 되고, 좌충우돌하는 요소가 많은 이야기를 좋아해요. 인물 역시 교훈적인 인물보다 예외적인 인물들이 좋고요. 조금 모자란 듯하지만 어쨌든 그것이 다 인간들의 다양한 모습이죠. 그런 인물들끼리 부딪치게 놓고 이야기를 만드는 게 제 스스로 더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결국 인간 군상이 모여 있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재미있는 요소만 쫓아 다녀도 괜찮다
작품을 시작할 때도 그런 이야기가 떠올랐을 때 시작하는 건가요? 어떤 생각이 들 때 이것을 소설로 써야겠다, 생각하시나요?
극적인 걸 좋아해요. 첫 장을 썼을 때 한계상황에 몰려 있는 상황에서 이야기를 시작하는 편인데요. 평범한 인간이 균형이 깨졌을 때 어떤 생각과 행동을 하며 상황을 돌파해 나가는지 제가 궁금하거든요. 그런 이야기로부터 시작했을 때 스스로 흥미가 생기기도 하고요. 주인공의 인생이 어떻게 전개되어 갈까 하는 호기심이 내 안에 있어야 글이 시작되는 것 같아요. 특히 장편을 주로 쓰다보니까 내가 재미있지 않으면 길게 호흡을 끌고 갈 수가 없겠더라고요. 나 스스로 인물에 빨려 들어 갈 요소가 없으면 독자를 설득할 자신이 없어서요.
이야기의 즐거움을 모르는 분들에게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 당부의 말도 해주실 수 있을까요?
저는 지금 초등학생 대상 책들을 많이 봐요. 어른이라고 꼭 어려운 책을 읽을 필요는 없어요. 두껍고 글밥이 많은 책을 펼치면 우선 부담이 오잖아요. 그럴 때 성인이라고 성인책을 읽는 게 아니라 어렸을 때 읽었던 책들 중에 못 읽은 책들을 읽어보면 좋을 것 같아요. 나이와 상관없이 말이에요.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은 그림이 함께 있는 책을 선정해서 봐도 되고요. 거기서부터 조금씩 확장해나가는 거죠. 재미있는 요소만 쫓아 다녀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굳이 관심 없는 것들을 고문하듯 읽을 필요는 없잖아요. 흥미 요소가 있는 것들만 쫓아가는 독서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공감 가는 캐릭터 하나, 호기심 요소 하나거든요. 그런 걸 발견하고 읽으면서 나의 재미를 찾아가는 것도 좋을 거예요.
흥미로운 책 읽기네요. 요즘 초등학생 대상 책을 읽으신다고요?
제가 동화에도 관심이 많아서요. 초등학생 대상으로 한 다양한 분야 책들이 굉장히 잘 나와 있더라고요. 인문 분야도 그렇고요. 지금은 영상에 많이 익숙하잖아요. 그러니까 책에 삽화라도 같이 들어가 있으면 한결 이해의 폭도 넓어지거든요. 중요한 건 책을 읽고 아는 거잖아요. 그것도 굉장히 좋은 독서의 출발점이라고 생각을 했어요. 초등학생 대상의 책을 읽은 다음 성인 대상의 같은 책을 읽으면 부족한 부분을 메우며 확장하는 독서가 되죠. 영화를 먼저 봤으면 그 다음 책을 읽을 수도 있겠고요. 내가 쉽다고 느끼는 걸 먼저 찾아서 독서를 해나가면 훨씬 즐겁게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 독서를 직접 하기도 하셨었나요? 그렇게 이야기의 즐거움을 느낀 경험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트레이시 슈발리에의 『진주귀걸이 소녀』가 그랬어요. 저는 영화를 먼저 보고 호기심에 책을 찾아본 경우에요. 그런데 이 작품 안에서 요하네스 베르메르라는 화가를 또 발견한 거죠. 호기심이 생겨서 요하네스 베르메르라는 화가의 <화가의 아틀리에>라는 그림을 또 찾아보게 됐고요. 그렇게 호기심이 이동하는 경험을 한 거예요. 이런 방식으로 읽어도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독서는 어린 아이 같은 호기심이 가장 큰 원천이 되는 것 같거든요. 그런 부분들은 다양하게 경험하면 책이 주는 즐거움에 빠지게 될 거예요.
소년, 황금버스를 타다 손현주 저 | 자음과모음
전작에서 짜임새 있는 스토리텔링으로 ‘가족’이라는 둘레에 새로운 정의를 제시하며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은 손현주 작가가 이번에는 한부모 가정, 애니멀 호더, 계층 갈등, 교내 집단 괴롭힘 등의 사회적 이슈를 적절한 비율로 반죽해 특별한 미감을 지닌 이야기로 빚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