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아이가 있다. 아이는 말한다. “(나는) 남들이 왜 웃는지 우는지 잘 모른다. 내겐 기쁨도 슬픔도 사랑도 두려움도 희미하다. 감정이라는 단어도, 공감이라는 말도 내게는 그저 막연한 활자에 불과하다.”고. 감정이 없는 아이에게는 다행히도 엄마와 할머니가 있다. 이들은 불운한 사고로 곧 아이 곁을 떠나지만 또한 다행스럽게도 ‘심 박사’가 곁에 남는다. ‘알렉시티미아’라는 병을 안고 살아가는 한 인간이 사회 속에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바로 이런 것들이다. 그러니까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타인에 대한 편견 없는 시선’ 같은 것.
『아몬드』로 제10회 창비청소년문학상을 수상한 손원평 작가는 “인간은 고등동물이지만 결국 굉장히 원초적인 어떤 것이 없으면 인간으로 성장할 수 없는 것 같”다고 말한다. 아이를 낳고 키우며, 너무나도 연약한 존재 앞에서 작가는 여러 가지 질문을 떠올렸고, 그 질문들은 하나의 이야기가 됐다. 감정이 없지만 사랑으로 흔들림 없이 자란 아이 윤재와 가진 것은 많지만 사랑이 부족해 어긋나버린 아이 곤이는 그렇게 탄생했다. 이들이 어떤 가능성을 가진 존재로서 만들어가는 이야기, 이것은 그 자체로도 지켜볼 만하다.
<인간적으로 정이 안 가는 인간> 등 여러 영화의 각본과 연출 작업을 해온 영화인이기도 한 작가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다작하고 싶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에게서 시작된 무수한 질문들이 어떤 모습이 되어 독자에게 읽는 즐거움을 안겨줄 것인지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감정이 없다면 어떻게 세상을 바라봐야 할까
제10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이에요. 먼저 수상 축하드립니다. 기분이 어떠셨어요?
충격 받았어요. 며칠 동안 잠도 못 자고요. 진짜 될 줄 몰랐거든요. 사실 소설에 도전을 되게 많이 했어요. 될 것 같다, 싶을 때도 정말 안 됐고요. 그래서 안 되나보다, 생각을 한 거죠. 이때도 저는 기대도 안 했는데 수상했단 소식을 듣고 정말 충격 받았어요.(웃음)
이어 『1988년생』이라는 작품으로 ‘제주4.3문학상’도 수상하셨잖아요.
처음에 수상 소식 들었을 땐 울고, 떨리기도 하고 그랬는데요. 두 번째는 울진 않았어요.(웃음) 처음에 받은 상이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 있어요.
‘알렉시티미아’라는 병증에 대한 이야기예요. ‘감정표현불능증’이라고도 하죠. 소재가 강렬한데요. 어떻게 관심 갖게 되었는지 궁금해요. ‘작가의 말’에서는 출산을 거치며 윤재와 곤이, 두 아이를 만들게 되었다고 설명하기도 했어요.
아이를 낳고 여러 가지 생각을 했어요. 그러다보니 감정을 못 느끼는 아이라는 게 떠올랐는데요. 진짜 있을지 자료 조사를 하다가 병에 대해 알게 됐어요. 병을 먼저 알고 시작한 건 아니고요. 감정을 잘 못 느끼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시작됐어요.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어떤 생각들이 들어 감정 못 느끼는 아이라는 소재를 생각하게 된 거예요?
아이와 교류를 감정으로만 하잖아요. 그러니까 감정은 인간이 가지고 태어나는 건데 이게 어디서 올까, 이걸 못 하면 아이는 어떨까, 이런 생각을 했었어요. 마침 병을 알게 된 거고요.
쓰면서 작가의 상상력을 가장 자극한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주인공 윤재가 감정을 조금씩 느끼게 되는, 그 변화에 시선이 많이 가기도 했거든요.
아이를 키우다보니 감정이라는 것을 서로 드러냄으로써 소통을 하고 있다고 생각이 들었어요. 감정만 가지고 소통하죠. 그런데 감정이 없다면 어떻게 세상을 바라봐야 할까, 어떻게 타인을 이해할까, 그게 소재이자 이 이야기를 상상하게 된 시초였어요. 쓰면서는, 어려움은 잘 몰랐고요. 그 다음부터는 그냥 내가 감정이 없다고 생각했을 때 세상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했죠. 모든 걸 팩트로 받아들일 것 같았어요. 누가 무언가를 했다, 먹었다, 걷는다, 이런 식으로요. 화를 낸다, 이런 것은 엄마가 가르쳐주어서 알고요. 상상력의 문제는 아니었고요. 이 아이를 어떻게 표현할까의 문제였는데요. 나는 감정이 있으니까 윤재를 표현할 때 주의를 하려고 했고요. 그렇게 잡아나갔던 것 같아요.
처음부터 제목이 ‘아몬드’였나요?
네, 쓰기 전부터 제목은 그거였어요. 이런 아이가 있을까 조사하다가 있다는 걸 알게 되고 바로 정한 제목이었어요. 그래서 이 제목이 끝까지 유지되기를 바랐는데 그렇게 되어서 감사하고, 좋아요. 왜냐하면 이 제목 안에 제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나 주제가 은유적으로 담겨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약간 귀여운 느낌도 조금 있고요.(웃음)
타인에게 한 번 더 주는 시선, 사랑
서사 안에서 몇 가지 질문을 하고 있다고 느꼈어요. 한 가지는 탈정상에 관한 이야기인데요. 정해진 답이 없다, 평범하기 어렵다, 는 등의 이야기를 군데군데 하고 있거든요.
정상이냐 비정상이냐에 대한 이야기가 저의 주목적은 아니었는데요. 제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인간을 구할 수 있는 건 사랑이 아닌가, 이런 이야기 쪽에 좀 더 가까워요. 우리가 쉽게 사람을 이해한다거나 공감한다거나 소통한다는 이야기를 하지만 결국은 타인을 이해한다는 게 과연 가능한가 하는 의문이 들거든요. 타인을 공감한다는 게 가능한가, 라는 질문을 가지고 있었어요.
인간을 구할 수 있는 게 사랑이라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주인공은 조금 다르게 태어났잖아요. 그런 경우 보통 사이코패스가 되거나 할 수도 있죠. 그런데 엄마와 할머니, 주변 사람들이 햇빛과 물을 주잖아요. 결국 윤재가 나중에 그런 행동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흡수한 어떤 것들의 영향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한편 곤이도 다른 환경이었다면 전혀 다른 아이로 성장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런 걸 받지 못한 아이었죠. 결국 한 인간을 완성하는 두 가지가 타고난 기질, 주변 환경과 인간관계라고 할 수 있을 텐데요. 그러니까 좁은 의미의 사랑은 아니고요. 타인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쉽게 결론짓지 않는 것부터가 출발이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꼭 남을 공감한다, 이런 것이 아니더라도 말이에요.
사랑이라는 단어에 덧씌워진 이미지 때문에 오해할 수도 있겠어요. 작가님이 말하는 사랑은 좀 더 넓은 의미의 사랑이군요.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이러는데 사랑을 안 주면 안 되는 존재가 다 인간인 것 같아요. 또한 당신이 어느 정도 그럭저럭 보통의 인간으로 자라났다면 일정 정도의 물과 햇빛을 받은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고요. 인간은 고등동물이지만 결국 굉장히 원초적인 어떤 것이 없으면 인간으로 성장할 수 없는 것 같아요. 때문에 사랑이 대단히 박애적인 이런 것이라기보다는 타인에게 한 번 더 주는 시선, 또는 낙인을 찍기 전에 왜 저렇게 됐을까 하고 질문하는 것 자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실제로도 해요.
주인공들을 청소년으로 설정한 이유도 거기에 있어요. 성인의 경우는 조금 다른 것 같아요. 얘들은 아직 소년이라는 시기가 주는 고유의 느낌과 상징성이 있죠. 자아는 있으면서도 닫혀 있지 않잖아요. 그런 아이들의 가능성이 있죠. 반드시 청소년, 아이라서 가지는 가능성이 아니라 가능성을 가진 인간이라는 것을 소년이라는 존재 안에 넣은 것 같아요.
멀면 먼 대로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외면하고, 가까우면 가까운 대로 공포와 두려움이 너무 크다며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껴도 행동하지 않았고 공감한다면서 쉽게 잊었다.
내가 이해하는 한, 그건 진짜가 아니었다.(245쪽)
후반부에 윤재가 탓하듯이 생각을 해요. 느끼면서 행동하지 않고, 공감해도 쉽게 잊는다, 왜 그러냐, 하고 말이죠. 작가의 또 다른 질문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윤재가 감정을 잘 느끼지 못하는 것이 한 개인의 병증이라고만 한정시키고 싶진 않았어요.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소통이나 공감이 쉽게 쓰이는 사회잖아요. 그 속에서 다시 한 번 환기해보고, 질문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윤재의 시선을 통해서요. 그런데 그렇다고 제가 독자들에게 ‘공감하세요’라고 하고 싶진 않고요.
주인공이 ‘다른’ 존재이기 때문인지 주변 인물들은 꽤나 단단한 인물들이에요. 엄마, 할머니는 물론이고요.
이런 인물이 있을 때 보통은 불우한 환경 속에서 자라 결국은 잔혹한 어떤 짓을 저지르는 캐릭터들을 우리가 더 많이 알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그냥 윤재에게도 사랑을 주는 사람들을 만든 거예요. 왜냐하면 아이를 낳았을 때 지금은 건강하게만 자라길 바라고 있는데 전혀 다른 모습으로 자란다고 하더라도,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계속 사랑을 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거든요. 또한 원래대로라면 잘 컸을 아이가 이런 손길을 못 받았을 때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에서 곤이가 탄생한 거고요.
당신도 한 때는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존재였다
이야기를 계속 써오셨잖아요. 이번 작품이 출산과 육아를 거치며 탄생한 이야기라고 한다면 출산 이전과 이후가 많이 달라진 건가요?
완전히 달라졌어요. 일단은 제가 전혀 몰랐던 새로운 세계니까요. 한 인간을 정말 처음부터 이해하거나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계기가 됐죠. 굉장히 큰 것 같아요. 또 당신도 한 때는 누군가에게 그런 의미를 주는 존재였을 거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런 얘기를 생각할 정도로 아이가 큰 영향을 끼친 셈이죠. 다른 단편에도 아이에 대한 생각이 들어 있기도 한데요. 그런 것들이 출산 이후에 자연스럽게 변화하게 된 것 같아요. 알고 있는 모든 것들이 다 신기하게 보이는 계기가 됐어요.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지게 됐고요.
창작욕을 불러일으키는 장면도 궁금해요. 주로 어떤 것에 자극을 받는 편이세요?
20대 때는 내가 봤던 한 이미지, 단편적인 것들이 단초가 되기도 했어요. 지금도 그런 게 단초가 되기는 하는데요. 지금은 뭔가 영감을 얻는다기보다 그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을 했느냐가 더 중요하게 된 것 같아요. 그래야 이야기를 완성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더라고요. 단상만 가지고 이야기를 만드는 게 아니라, 예를 들어 인간이 어떻게 해서 완성이 되는지에 대한 질문, 저런 일이 왜 일어날 수밖에 없는가 하는 질문들이 생길 때 이야기가 되는 것 같아요.
지금은 어떤 질문을 갖고 계세요?
그런데 그게 꼭 사회에 대한 구체적인 질문이 아니고요. 수없이 작은 단초들이 모여서 어느 순간 튀어나와서 도움을 주는 것 같아요. 모자이크의 한 부분처럼 말이에요. 가령 곤이가 브룩 쉴즈의 현재 모습 이야기를 하면서 하는 이야기들도 그런데요. 저도 주변 사람들이나 이해할 수 없는 장면들을 일상에서 보고 그때는 그냥 넘겨요. 그런데 나중에 다시 생각해보고 저 사람에게도 어떤 역사가 있었을지 몰라,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하거든요. 그런 거예요.
그러니까, 브룩 실즈는 젊었을 때 알고 있었을까? 늙을 거라고. 지금이랑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이 들어 있을 거라는 거. 늙는단 거, 변한다는 거, 알고는 있어도 잘 상상하진 못하잖아.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어. 어쩌면 지금 길 가다 보는 이상한 사람들, 그러니까 뭐 지하철 안에서 혼자 중얼대는 노숙자 아줌마라든가, 무슨 일을 겪은 건지 다리가 양쪽 다 없어서 배로 땅을 밀면서 구걸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도 젊었을 때는 전혀 다른 모습일 수 있었겠구나, 하는 생각.(150쪽)
영화와 소설, 이 두 가지를 통해 각각 해내고 싶은 것들이 있나요? 혹은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커다란 저만의 테마를 아직까지는 잘 모르겠어요. 아직까지는 나만의 거대한 테마가 있어서 그것을 향해 내 모든 작품들이 복무한다고 생각하진 않는 것 같아요. 언젠가는 그런 걸 발견하거나 결과적으로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이 사람은 결국 공통된 게 이거구나’라고 결론 내려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요. 아직은 한 가지 주제가 나의 공통 관심사라고 말할 수 있는 게 없는데요. 영화나 소설이 각각 표현할 수 있는 게 다르잖아요. 영화 안에서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따로 있고요. 영화는 어쨌든 협업이니까요. 소설은 좀 더 인물이나 세계관을 내밀하게 표현할 수 있는 점이 있는 것 같고요. 두 가지가 굉장히 다르기 때문에 바로 그 이유로 저한테는 더 매력으로 다가와요.
『아몬드』를 영화가 아닌 소설로 해야 했던 이유도 있었을까요?
이야기를 나중에 누군가가 영화화할 수는 있겠죠. 그런데 이 이야기를 처음부터 영화로 하기는 좀 어려운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특히 한국 영화 시장에서 주인공 나이 대라든지 장르라든지 표현 방식 같은 것이 어려움이 있었죠. 그렇기도 했고요. 사실 시나리오는 시나리오대로 쓰고 있었기 때문에 이 작품은 소설로 쓰고 싶었어요.
다작하고 싶다
『아몬드』는 고등학생 소년이 주인공이고, 『1988년생』 역시 작가와는 거리가 있는 인물들이에요. 재미있는 지점이었어요.
저는 제 내면 고백에 별로 관심이 없어요. 나의 자서전을 쓴다고 해도 쓸 이야기가 별로 없기 때문에 시나리오 등에서 인물을 만드는 작업을 계속 해왔고요. 때문에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을 때 그 주인공의 캐릭터나 나이가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 같아요. 생각해보니 30대 여자가 주인공인 경우는 없었던 것 같아요. 오히려 50대 여자, 40대 여자, 40대 남자는 있었는데 말이에요. 일부러 피한 건 아닌데요. 뭔가를 대변하기에는 아직 30대라는 시기를 제가 평탄하게 살고 있어서 그런지(웃음) 그냥 제 주제들에 안 맞았던 것 같아요. 그렇지만 저는 어떤 생각이 들었을 때 그대로 옮기기보다 변용시키려고 하기 때문에 그걸 다른 나이, 다른 성별의 사람에게 주거나 하는 방식을 취했던 것 같아요. 아, 지금 준비하고 있는 영화는 30대 여자가 주인공이에요.(웃음) 가리거나 피한 건 아니에요.
앞서 소설에 오래 도전했다고 말씀하셨잖아요.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분들에게 해줄 수 있는 말도 있을 것 같아요. 어떻게 포기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웃음)
제가 어떻게 감히 조언을 하겠습니까.(웃음) 특히 문학은 전공도 아니고 해서 해드릴 말씀이 별로 없는데요. 그냥 어렵지만 자신감을 잃지 않아야 할 것 같아요. 그것도 힘든 일이긴 한데 그게 있어야 계속 쓰는 것 같거든요. 말하자면 ‘내가 더 잘하거든’ 같은, 결코 저들보다 못한 게 아니라는 자기 확신이 필요하단 생각이 들어요. 그것도 계속 실패하다보면 동력을 얻기 힘들거든요. 미끼가 있거나 누군가가 칭찬을 해줘야 하지 혼자는 힘들거든요. 저는 그래서 사소한 것들에 감사하기 시작했어요. 콘센트만 있으면 할 수 있는 일이잖아(웃음) 하면서 콘센트가 있으면 감사하자, 이렇게 된 거죠. 그럼에도 안 될 때마다 다시 그렇게 생각하게 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려요. 그래서, 이게 정말 중요한데, 응원해주는 가족들이 있어서 가능했던 것 같아요. 반복해서 실패를 경험할 때 그게 큰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언젠가 꼭 해보고 싶은 이야기는 없으세요?
없어요. 내 인생의 역작, 이런 건 현재 없고요. 그냥 다작하고 싶다는 생각은 있어요. 물론 해보고 싶은 이야기도 있고, 생각해놓은 이야기도 지금 몇 개 있지만요. 이 이야기를 꼭 해야 한다는 생각은 없어서 없다는 대답을 드린 거고요. 다작하고 싶다는 말씀은 드리고 싶네요.
꾸준히 작업을 해오셨는데요. 지금은 육아도 병행하고 계시잖아요. 하루 일과가 어떠세요? 두 가지 일을 해낸다는 게 쉽지 않을 것 같거든요.
시간대 별로 할 일이 분명한 삶을 살고 있는데요. 주로 아이가 유치원에 가 있는 낮 동안 작업을 하고요. 시간이 없으면 밤에도 해요. 힘들긴 한데요. 어쨌든 그 덕분에 일의 속도가 빨라졌다는 점도 있어요. ‘마감빨’ 같은 게 있잖아요.(웃음) 아이가 자면 그 시간 동안 집중해서 막 하는 거죠. 일어나면 끝이니까요. 몇 시에 아이를 데리러 가야 하니까 또 그 동안 집중해서 하고요. 그게 좋은지 안 좋은지는 잘 모르겠어요. 나중에는 바뀌게 될지도 모르고요. 나중에는 한 작품, 한 작품 고민을 많이 해야 할 때가 오지 않을까 싶어요.
영화와 소설은 함께 진행이 되나요?
A와 B가 하루에 진행된 적은 없는데요. A는 시놉을 써놓고, B는 초고를 고치고, 이런 식으로 비슷한 시기에 교차로 하는 경우는 있어요. 같은 작품을 하루에 하지는 못하죠. 어쨌든 작품에 몰입해야 하기 때문에요. 또 시간을 두고 나중에 보면 오히려 더 잘 보이는 것들이 있거든요.
독자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전해주세요.
책으로 하고 싶은 말은 다 건넨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라는 말뿐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