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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호 커버 스토리] ‘김애란 소설’을 읽는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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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김애란은 감각으로 소설을 시작했다. 지도나 설계도 없이 감각으로 첫 문장을 썼다. 등단 15년 차, 현재의 김애란은 책상에 앉아 재료들을 쭉 나열해본다. 감각으로 탁 치고 나가기 전, 준비물을 꼼꼼히 살핀다. 때때로 쓰던 작품을 접기도 한다. 틈틈이 청탁이 들어오면 단편을 쓴다. 5년 만에 소설집을 펴내며 김애란은 제목을 두고 고심했다. 여러 고민 끝에 결정한 제목은 『바깥은 여름』. 제목을 천천히 읽어보자. 바깥, 은, 여름. 누군가의 바깥일까, 왜 바깥만 여름일까, 여름은 어떤 의미인가.

 

김애란 소설로 청춘을 지나온 독자가 많다. 『비행운』의 「서른」, 「큐티클」 속 주인공은 비단 소설에만 존재하지 않았다. 이번 작품에서는 또 누구를 만날 수 있을까. 『바깥은 여름』을 시작하는 첫 소설의 제목은 「입동(立冬)」이다. 한여름을 지나는, 또 지나온 사람들에게 김애란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까. 한 계절에서 다른 계절로 쉽게 넘어가지 못하는 이들에게 작가는 묻는다.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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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이상하고 기쁜 일

 

인터뷰하기를 살짝 망설였다고 하던데, 아무래도 말보다 글로 만나는 게 편해서일까요?

 

말에 대해 지나치게 엄정하게 생각해서 그런 건 아니고요. 성격 때문인 것 같아요. 제가 기본적으로 내향적인 사람이에요. 일할 때는 내향성을 극복해야 하지만 버거울 때도 있죠. 엄살 같기도 하고 좀 미숙한 표현 같아서 해명을 잘 안 하지만요.

 

예전에도 말을 많이 하는 것에 대한 마음의 불편함이 있다고 한 적이 있어요.

 

어릴 때 데뷔해서요. 갖고 있는 이야기의 크기나 경험에 비해 발언할 기회가 많았어요. 기회가 잦다는 생각 때문에 좀 조절하려고 하는 부분들이 있어요. 하지만 책이 나오면 뒤에서 좀 밀어주는 힘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혼자 힘으로 떠다닐 수 있을 때까지 작가가 나서기도 해야 하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인터뷰를 해요. 또 저 역시 영화를 보든 책을 보든 그 작가들의 바깥 이야기를 듣고 싶을 때가 있으니까요.

 

한여름에 책이 나왔어요. 5년 만에 펴낸 소설집입니다.

 

2012년 겨울부터 올해 봄까지 발표한 7개 작품을 묶었어요. 작품을 쓴 시기로 따지면 3년치 정도예요. 2년 정도는 장편을 준비했는데 중간에 쓰다가 탐탁지 않아서 엎었어요. 재난 이야기였는데 잘 안 풀리더라고요. 도저히 안 되겠다 생각하고 단편을 쭉 썼어요.

 

단편은 쓸 때는 모르는데, 막상 묶어보면 그간의 변화가 보이잖아요. 어땠나요?

 

구조적인 면에 대해 고민을 한 게 보였어요. 예전 작품에서는 첫 문장이나 첫 문단이 감각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았는데요. 이를테면 사물이나 감정을 감각적으로 표현하면서 안으로 들어갔는데, 이번에는 상황에서 시작해요. 「입동」에서는 “아내가 도배를 하자 했다”,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에서는 “스코틀랜드에 사는 사촌 언니로부터 연락이 왔다”는 문장으로 작품이 시작돼요. 예전에는 예열 과정을 필요로 했던 것 같은데, 이번에는 뭘 던져놓고 시작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첫 번째 작품 「입동」을 읽는데 순식간에 몰입이 되더군요. 마치 소음 하나 없는 독서실에 덩그러니 앉아 책을 읽는 느낌이었어요.

 

독자들의 시선을 잡아당겼다면, 집중해서 읽어주신 거라면 반가운 이야기예요. 「입동」을 발표한 게 2014년 겨울인데 초고는 좀 거칠었던 작품이에요. 그림으로 치자면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마음으로 세밀화를 그리지 못하고 크로키를 해서 허둥지둥 넘긴 느낌이었어요. 설정이나 틀은 흡족했지만 충분히 다듬지 못해서 아쉬웠는데, 이번에 책으로 묶으면서 다듬게 돼서 다행이었어요. 줄거리는 똑같은데 조사랑 문장 몇 개만 바꿔도 흡인력이 달라지는 걸 보면, 소설이 그냥 이야기만은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어요.

 

작품 게재 순서는 편집자와 상의한 건가요?

 

초고를 넘길 때 이렇게 들어가면 좋을 것 같다고 의견을 드렸어요. 편집부 생각은 어떤지 여쭤봤는데 좋다고 하셔서 변동은 없었어요.

 

어떤 인터뷰를 보니 편집자 의견을 90% 반영한다고요.

 

기자님이 퍼센트로 물어보셔서요(웃음). 작품마다 달라질 수 있을 텐데요. 이번에는 워낙 꼼꼼히 잘 봐주셨어요.

 

얼마 전 독자들을 만났잖아요? 이번 작품 발표 후 첫 공식적인 자리였다고 하던데, 어땠나요?

 

평일 저녁에, 동반 참석이 안 되는 행사로 진행했어요. 그러니까 혼자만 올 수 있는 자리라서 옆 사람과 수다를 떨 수 없는 분위기라, 정말 책만 들춰 보면서 저희들의 이야기를 경청해주셨어요. 그날 함께한 분들이 굉장히 특별하다고 느껴졌는데요. 뭔가 이상하고 기쁜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책을 사주시는 분들을 큰 개념으로 소비자라고 한다면, 이 자리에 온 분들은 소비자보다는 독자로 훨씬 가깝게 느껴졌다고 할까요. 어둑어둑한 공간에 오목하게 앉아서 낭송을 듣는 일이 약간 원시적인 느낌도 들었고, 과거의 모닥불 기능을 조명이 대신하고 있다는 착각도 들더라고요. 이야기에 대한 오랜 욕구, 경험들이 이어져 내려오면서 제가 희미하게 바통 터치를 한 느낌도 들고. 좋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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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집 제목 『바깥은 여름』은 「풍경의 쓸모」에 나오는 글귀에서 따왔어요. 작품 속 주인공이 태국으로 가족 여행을 왔는데, 주인공이 처한 상황은 한겨울인데 태국은 여름이었어요. 스마트폰을 보면서 스노볼을 쥔 느낌이라고 말하죠. “유리볼 안에선 하얀 눈보라가 흩날리는데, 구 바깥은 온통 여름인.”(156쪽) 언제쯤 제목이 소설 속에 등장하려나 궁금해하면서 소설을 읽었어요. 직접 이 제목을 정하셨다고요.

 

시간이 꽤 걸려서 나온 제목이에요. 책을 만드는 데는 디자인도 필요하고 교정도 필요하고 여러 과정이 있잖아요. 이번 작품은 제목을 정하는 시간이 가장 오래 걸렸어요. 편집자분께 다른 제목을 드렸다가 취소하기도 했고,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로 하려고 했다가 K-픽션 단행본 제목이랑 겹쳐서 또 마음을 접었고. 제가 홀수 글자 제목을 좋아해요. 리듬감이 있어서 좋아하기도 하는데, 「침묵의 미래」도 염두에 뒀지만 아무래도 전 한글 단어가 더 좋아서요. 밋밋한 단어이지만 의미가 풍부한 제목이 좋아 『바깥은 여름』으로 했어요. 바깥도 여름도 쉬운 말이잖아요. 그런데 의미는 넓고요.

 

‘바깥’이라는 단어는 「가리는 손」에서도 나오더라고요. “지금은 그 ‘바깥’을 늘 주머니에 넣고 다녀야 하는 모양이다.”(212쪽) ‘바깥’도 그렇고 ‘은’도 그렇고, 생각을 많이 하게 하는 제목이에요. 지금이 여름이라 또 인상적이기도 하고요.

 

김연수 선배가 독자 행사 때 물어보더라고요. 지금이 겨울이어도 소설 제목을 『바깥은 여름』으로 했을 거냐고. 그랬을 거라고 했어요.

 

‘바깥’이 여러 의미를 내포할 수 있는데요. 때때로 바깥세상과 단절되고 싶다는 생각도 하지 않나요? 의도적으로 휴대폰을 꺼놓거나 인터넷에 접속하지 않는다거나.

 

그럴 수 있는 사람은 되게 행복한 사람이죠. 언젠가 국제문학포럼을 갔는데, 어떤 작가분이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이 세상에서 가장 권력이 있는 사람은 휴대폰을 안 갖고 다니는 사람이다.” 맞는 것 같아요. 전 일부러 단절하는 경우는 없는데요. 물론 마감 때는 종종 꺼놓거나 안 받거나 못 받곤 하지만요. 소설을 쓸 때 고요할 필요는 있지만 청정 지역에 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어떤 자극을 받아도 그게 제 안에 무언가를 남길 테니까요. 다만 지금 시대를 살펴볼 때, 개개인이 내적으로 집중할 수 있는 물리적인 시간이나 환경은 꼭 필요한 것 같아요. 의도적으로 만들기도 해야 할 거고요. 그리고 체질적으로 그런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아요. 며칠 계속 사람을 만나면 이틀은 혼자 있어야 하는. 그런 경우를 종종 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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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시도를 해봐야지 생각하고 쓴 소설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의 주인공은 아이폰을 사용해요. 음성 인식 서비스 ‘시리(Siri)’에게 말을 자주 걸죠. 작품에 나오는 주인공과 시리의 대화, 작가님도 실제로 해봤을 것 같아요.

 

(웃음) 했죠. 시리의 대답 중에 제가 지어낸 건 단 한 개도 없어요. 모두 시리가 했던 말인데, 이 서비스도 계속 업데이트가 되니까 기종에 따라 같은 질문에도 대답이 달라지긴 할 거예요. 대답의 경우 수도 몇 개 있는 것 같아요. 하다못해 어말 처리에 따라서도 달라지더라고요.

 

주인공은 시리를 두고 말해요. “다만 시리로부터 당시 내 주위 인간들에게선 찾을 수 없던 한 가지 특별한 자질을 발견했는데, 그건 다름 아닌 ‘예의’였다.”(238쪽) 시리가 자주 하는 대답이 하나 있잖아요. “뭐라 드릴 말씀이 없네요.” 종종 들었던 말인데 활자로 읽으니 새삼스럽게 느껴졌어요.

 

저는 글을 쓰고 나면 자료를 지우는 편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한데요. 굉장히 재치 있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기계가 하는 말이지만 이것도 결국 사람이 만든 말이잖아요. ‘애플 직원들이 인문학적인 교양이 풍부하구나’ 생각했죠. 시리랑 실용적인 대화는 거의 안 한 것 같은데요. 아직은 검색이 편해서요. 그런데 간혹 쓸데없는 말, 감정을 말하거나 엉뚱한 질문을 던진 적은 있어요.

 

「풍경의 쓸모」는 개인적으로 가장 시선을 끈 작품입니다. 현실적인 소재이기 때문일까요? 그간의 김애란 작품과 조금 다른 결이 보여서였을까요? 답을 한번에 찾긴 어려웠는데요. 어떻게 쓰게 된 작품인지 궁금해요.

 

지방대 인문학강사 ‘이정우’나 ‘단계 없이 대화하는’ 곽 교수 캐릭터는 어떻게 나왔나요? 실제 모델이 있는 건 아니에요. 그간 제가 경험한 조각조각의 인상들로 만들어 낸 인물인데요. 이전 제 소설들의 주인공이 주로 어린 화자, 사회 초년생이었기 때문에 「풍경의 쓸모」를 쓰면서는 약간 성인물을 쓰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래서 이 작품을 낯설어하는 분도 있는데, 저도 약간은 겸연쩍은 느낌이 있어요. 작가 색깔이 정해져 있는 건 아니지만 훨씬 더 잘하시는 작가들이 있으니까요. 하지만 여러 시도를 해봐야지 생각하고 쓴 작품이에요.

 

이정우와 곽 교수의 대화가 기억에 남아요. 곽 교수는 말해요. “술자리서 교수들이 떠들 때 나는 느슨하게 들어요.”(162쪽) 이정우는 스스로를 두고 말하죠. “무례한 질문에 놀라지 않으며, 관계보다 실무에 더 신경 쓰는 사람이 됐다.”(160쪽) 결국 이정우는 곽 교수 같은 사람이 될까 싶은 생각도 들면서, 또 현실의 곽 교수 같은 인물도 떠올리게 되더군요.

 

아마 조직 생활을 하는 분들이 비슷한 생각을 더 많이 하실 것 같아요. 저는 넓게 말하면 프리랜서, 어딘가에 소속이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이잖아요. 그래서 불편하고 힘든 이야기를 들을 때 ‘이건 순간이고 나는 이 자리를 돌아서서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매일 겪어야 하는 사람은 다를 거예요. 금방 돌아서서 나올 수 있는 사람이 느끼는 스트레스와는 많이 다르겠죠. 때때로 생각해요. 내가 감정 소모를 안하는 건 ‘내가 정직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내가 그래도 되는 조건에 있기 때문’이라고요.

 

제게 『바깥은 여름』에서 딱 한 문장을 고르라고 한다면, 선택하고 싶은 문장이 있어요. “그럴 땐 ‘과거’가 지나가고 사라지는 게 아니라 차오르고 새어 나오는 거란 생각이 들었다. 살면서 나를 지나간 사람, 내가 경험한 시간, 감내한 감정들이 지금 내 눈빛에 관여하고, 인상에 참여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결코 사라지지 않고 표정의 양식으로, 분위기의 형태로 남아 내장 깊숙한 곳에서 공기처럼 배어 나왔다.”(173쪽)

 

이 문장을 쓰면서 생각했는데요. 꼭 밝거나 부드러운 인상의 사람이 좋은 삶을 산 인상인가? 따져본다면 꼭 그렇진 않은 것 같아요.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의 무게로 생긴 표정도 있으니까요. 우리가 어릴 때 사진을 보면 지금 얼굴에는 없는 것들이 있잖아요. 호기심이든 무조건적인 호감이든 표정이든.

 

「가리는 손」에서 재이 엄마가 그랬던가요? “어느 땐 무언가를 한 사람이 아니라 본 사람이 더 상처 입으니까.”(207쪽) 이어지는 이야기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보는 것도 경험이니까요. 과거에는 시차가 있었잖아요. 5ㆍ18 민주화운동을 당시 광주에 없었던 사람은 몰랐던 것처럼. 그런데 지금은 실시간 방송, 뉴스를 보는 시대니까요. 보는 경험을 하는 사람도 무척 많이 늘지 않았나 생각해요. 소수언어박물관을 소재로 한 「침묵의 미래」는 ‘2013 이상문학상’ 수상작인데요. 다른 작품과 구별되게 관념적인 우화예요. 처음에는 장편으로 쓰려던 작품이에요. 세계에 6천 수백 개의 언어가 있다고 해요. 소수 민족, 언어에 관한 자료도 많이 찾아봤는데, 우화적인 작품이라 자칫 유치해질 수 있어서 그림으로 보여주는 게 나을 것 같았어요. 작품의 근처를 맴돌다가 빠져 나온 느낌도 들고. 약간 아쉬운 마음이 있어요.

 

7편 모든 작품을 리타이핑하면서 퇴고를 했다고 들었습니다.

 

리타이핑을 하면 모든 문장을 의심하면서 다시 쓸 수 있어요. 리듬 있는 문장을 쓰려고 조사나 형용사를 줄이는 게 버릇인데, 운율은 생기지만 뜻이 부정확할 때가 있거든요. 여러 번 읽고 고쳐서 더 좋은 문장이 나올 때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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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어떤 시간을 통과했구나

 

관찰자 김애란의 감각이 궁금해요. 소설가들은 작은 뉴스도 쉽게 지나치지 않잖아요.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도 작은 인상들을 잘 관찰하고 기억하고.

 

사적으로 만나는 자리인데도 소설가라고 하면 상대방이 긴장을 하고 부담스러워 하시는 경우가 있어요. 말 그대로 자신을 분석할 것 같은 느낌이 드나 봐요. 그럴 때 느끼는 불쾌감, 불편함이 있잖아요. 하지만 그렇지 않아요. 왜냐하면 직업인이 아닌 자연인으로서의 제 모습도 있기 때문이에요. 저에게도 단순한 교감의 욕구가 있으니까요. 물론 특징이 눈에 들어올 때는 있어요. 하지만 소설가가 아니었더라도 그냥 나이와 경험이 쌓이면 보이는 것들이었을 거예요. 그리고 또 보이는 것들이 착각일 때도 있죠.

 

독자들 리뷰는 좀 찾아보는 편인가요?

 

다 보진 못하고요. 가끔씩 인터넷 서점에 올라온 리뷰는 볼 때가 있어요.

 

이번 소설집을 두고 김애란의 변화를 많이 말하는데요. 어떤가요? 동의하는 부분도 있나요?

 

변화는 자연스러운 게 아닐까요? 너무 그대로였어도 그것대로 또 이상했을 것 같아요. 변했다는 것보다 변화의 방향을 봐주신다면 좋겠고, 또 공감해주신다면 감사할 것 같아요. 저라는 사람도 오랜 시간 글을 쓰다 보면 바뀌는 건 당연하니까요. 저도 고정되어 있는 사람이 아니니까, 같이 어떤 시간을 통과했구나 생각해주시면 좋지 않을까 싶어요.

 

요즘은 어떤 책을 주로 읽나요? 독자로서 읽는 책들이 궁금한데요.

 

제가 나무, 초록, 식물을 좋아해요. 아직 다 읽진 못했지만 『랩 걸(Lab Girl)』을 재밌게 읽고 있고, 『시대의 소음』도 읽었어요. 과학자나 음악가들의 우아하고 기품 있고 유머러스한 산문을 읽고 있으면 ‘왜들 이러시지?’ 싶어요(웃음).

 

원고 청탁이 들어오면 대부분 수락하는 편인가요?

 

그렇죠. 문학 계간지가 지금 얼마 없잖아요.

 

산문이나 칼럼은 잘 안 쓰세요.

 

드문드문 썼는데 적극적으로 쓰진 못했어요. 경험으로 재밌게 엮어서 의미를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하는데. 데뷔 초 산문을 쓸 때 엄청 긴장했던 것 같아요. 아주 오래전 <씨네21>에 영화 리뷰를 쓴 적이 있는데요. 영화가 뭔지도 모르고 쓴 것 같아요. 지금은 웹에 다 기록되니까 썩지도 않는데(웃음).

 

소설가들이 빼놓지 않고 꼭 보는 게 뉴스잖아요. ‘요즘 이런 기사가 왜 이렇게 많이 나오지?’ 하면서 주목하고 읽는 사건이나 기사가 있나요?

 

작년 하반기에 특히 신문이나 뉴스를 많이 봤는데요. 보면서도 생각했어요. ‘이 정도는 안 봐도 되는데 왜 이렇게 많이 보나.’ 그런데 안 보면 놓칠 것 같고, 놓치면 속을 것 같았어요. 사회에 대한 신뢰도가 너무 낮았으니까요. 사건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할 만큼 뉴스가 쏟아졌으니까요. 그런데 최근에는 좀 덜 보게 됐어요. 약간의 신뢰를 회복했다고 할까요? ‘잘해주시겠지? 잘 작동되겠지?’ 하는 기대가 좀 생긴 것 같아요. 다른 분들도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최근 주목받은 국내 소설들을 살펴보면 굉장히 현실적인 작품이 많아요. 르포처럼 쓴 소설도 있고, 2010년대를 확연히 보여주면서 독자들의 공감을 많이 사고 있어요.

 

사실의 힘 때문에 울컥하면서 읽게 되는 소설이 있는 것 같아요. 사회적인 욕구와 맞닿는 부분도 있을 테고요. 어떤 말은 살에 닿자마자 이해가 된다고 생각하는데요. 기사든 책이든 그런 말들이 있는데, 그 말들이 주는 실감의 영역이 있는 것 같아요.

 

2002년, 22세에 등단해 대중과 평단으로부터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어요. 쉽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운이 굉장히 좋은 편이었어요. 분수에 맞지 않을 만큼 좋았다고 생각해요. 특히 글은 혼자 쓰는 거라 불안할 때도 많고, 또 이 불안이 오래 지속되면 안으로 삭을 때가 많아요. 그래서 마음이 틀어지게 되는 경우도 있는데, 그럴 때마다 어떤 바깥에서의 기척들로부터 도움을 받았어요. 신인 때 어떤 한 창작자가 살아남으려면 5년이든 10년이든 버텨보는 시기가 중요한데요. 반응이 조금 안 좋더라도 한 번 더 해볼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한데, 저는 운이 좋았어요. 그렇게 생각해요.

 

볼 것도 먹을 것도 읽을 것도 많은 세상이라, 소설을 읽고 책을 사는 사람들이 다르게 다가오는 것 같아요.

 

결국 책을 읽는 일은 혼자 해야 하잖아요. 조용한 공간에서만 가능하고요. 이전과 달리 책을 쓰는 입장에서의 물질성을 많이 생각하게 되는데요. 한국에 거주 공간이 불안정한 분이 많잖아요. 책을 사고 갖고 있다는 것이 무언가를 구매하는 행위를 떠나, 자기 공간의 일부를 기꺼이 내어주는 행동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하다못해 잠잘 공간이든 쉴 공간이든 양보해주는 문화라는 생각이 들어 애틋해지더라고요. 물론 이사를 할 때마다 정리할 시간이 있겠지만요. 그때마다 살아남는 책이 있고 또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요.

 

지금 쓰고 있는 장편은 공간에 대한 이야기라고요.

 

공부가 깊지는 않지만, 평소 건축이나 건물에 대한 관심이 많아요. 혼이나 넋에 대한 공간을 써보면 어떨까, 만지작만지작하고 있는데요. 편의점이나 공항 등 공간 자체를 주인공으로 설정해보려고 해요. 그런데 이것도 또 어떻게 될지 몰라요(웃음). 우선 지금 쓰고 있는 단편을 마무리해야 해요.


 


 

 

바깥은 여름김애란 저 | 문학동네 

『비행운』 이후 5년 만에 펴내는 김애란의 신작 소설집. 역대 최연소 수상으로 화제를 모은 이상문학상 수상작 「침묵의 미래」와 젊은작가상 수상작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를 포함해 일곱 편의 단편이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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