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작가세계>로 등단했으니 김상미 시인의 시력은 더 말하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말해야 하는 것은 이것이다. 시인이 품은 작가들, 그들의 생과 죽음, 그리고 문학. 『오늘은 바람이 좋아, 살아야겠다!』에서 시인은 카프카의 얼굴이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프란츠 카프카 특급열차를 탄다. 사드와 마주 앉아 본래의 인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르네 샤르의 집으로 가 큰소리로 그의 문을 두드린다. 잉게보르크 바흐만과 둘도 없는 친구가 되고, 우리는 모두 고골의 ‘외투’에서 나왔다 말한다. “아, 콜레트처럼 살고 싶어!”라고 했던 전혜린에 이끌려 콜레트를 찾아간다. 시인은 말한다. 이들 작가에게는 모두 인간에 대한 사랑이 있다고. 어려워도 문학을 삶보다 우선했던 작가들 주변을 서성이겠노라고.
『모자는 인간을 만든다』, 『검은, 소나기떼』, 『잡히지 않는 나비』이후 14년 만에 네 번째 시집 『우린 아무 관계도 아니에요』를 내고 “참 좋았다”는 김상미 시인은 그 마음이 반가워 머지않은 시기에 다섯 번째 시집을 내고 싶다고 말했다. “언어에 대한 신뢰가 더 많이 생겼고요. 글도 많이 쓰고 싶어졌어요.”라는 시인에게서 도리어 설렘을 전달 받은 느낌이 들었다. 덕분에 가만히 서서 바람이 참 좋다, 살아야겠다, 하고 읊조려보았다.
유령과의 데이트
제목에서 발레리의 시구를 차용한 것이 눈에 띕니다. 이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이 시구를 처음 만났을 때 단번에 매료되었다고도 하셨잖아요.
제가 부산 출신이에요. 바닷가에서 태어났죠.(웃음) 발레리를 처음 보았을 때가 80년대 후반 정도였는데요. 그때는 전문이 번역되지 않고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라고 하는 그 부분만 번역이 되어 있었어요. 어린 마음에도 굉장히 멋지게 느껴지더라고요. 바람이 부니까 살아야겠다, 정말 멋지잖아요. 또 보면 파도를 작은 돛단배에 비유했는데 그런 것이 참 좋더라고요. 그때부터 발레리를 좋아했어요. 고등학교 2-3학년 즈음에 민음사에서 ‘세계시인선’이 나왔거든요. 300원이었어요. 그걸 모으면서 시를 많이 좋아하고 읽었죠.
나이가 드니까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는 말이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뜻으로 여겨져요. 그래서 또 좋고요. ‘오늘은 바람이 좋아, 살아야겠다’라고 하면 더 적극적인 느낌이 들잖아요. 출판사에서 정해준 제목인데요. 참 마음에 들어요.
시인의 글을 모두 품는 느낌도 있어요. 제목이 글과 잘 어울려요.
화가 나서 지나가다가도 길가에 민들레가 예쁘게 핀 것을 보면, 그것도 시멘트 바닥에 피어 있는 것을 보면 깜짝 놀라잖아요. 희망적인 느낌을 주잖아요. 제목도 그런 느낌이 들어요.
말씀을 듣고 보니 이해가 되네요. 책에서 다룬 11명의 작가들은 사실 힘든 삶을 살기도 하고, 여러 오해 때문에 세상과 갈등하며 지내기도 했잖아요. 시인은 그럼에도 그 안에서 삶의 경이, 희망 같은 것을 읽어내고 있어요.
이 글을 쓴 건 십 년 정도 됐어요. 문예지에 산문 연재를 했는데요. 아무거나 써도 된다고 하기에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에 대한 짧은 평전을 쓰면 어떨까 싶었어요. 일명 ‘유령과의 데이트’였죠. 타임머신을 타고 그때로 돌아가서 작가를 만난다는 것이었거든요. 그렇게 해서 두 군데에 1년 씩 연재를 한 글이에요. 뒷부분에 있는 카렐 차페크나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좀 다르죠. 이들은 시인의 기호에 대해 쓴 글이고요. 마르키 드 사드는 ‘에로티시즘과 문학’이라는 특별 코너에 썼던 글이에요. 그렇게 쓴 글을 묶은 거예요.
그랬군요. 어쩐지 사드는 다소 이질적으로 느껴졌어요. 흔히 ‘사랑한 작가’로 꼽는 작가라고 할 때 쉽게 떠올리는 작가는 아니기 때문인 것 같아요. 하지만 역시 시인의 시선에 애정이 있죠.
사드를 알게 된 건 고등학교 졸업 후 읽은 콜린 윌슨의 『아웃사이더』에서였어요. 그때 관심을 갖고 읽었어요. 사실 사드는 너무 방대해서 제가 감히 다룰 만한 작가는 못 돼요. 특집을 맡으면서 그렇다면 내가 아는 사드를 대담하는 방식으로 써보자 생각하고 글을 쓴 거죠. 솔직히 사드의 작품은 너무 읽기 힘들어요. 그런데 사드가 갖고 있는 박식함, 통념이나 관습을 전복시키는 철학적인 부분 등은 굉장한 통쾌감을 주죠. 사드는 자신을 자연이라 생각했어요. 자연은 무차별적이잖아요. 또 그걸 계속 반복해요. 잔혹한 성행위를 계속 반복하기도 하잖아요. 그런 면이 흥미진진했어요. 시지프와 이카루스가 합쳐진 괴물 같은 느낌이 많이 들더라고요. 게다가 유일무이하잖아요. 문학사에 이런 녀석(웃음)은 없으니까요.
다시 있기 힘들 것 같은 존재죠.(웃음)
인생도 참 처절하죠. 굉장한 귀족임에도 불구하고 생의 1/3 이상을 감옥에 갇혀서 살았어요. 그 안에서 작품을 써냈고요. 사드는 악을 다뤘잖아요. 누군가는 선을 추구하지만 사실 선과 악을 다 알면 훨씬 자유로워지거든요. 그런 이유로 사드나 로트레아몽 같은 작가를 좋아해요. 사드의 작품을 안 읽어도 돼요. 철학을 뒤엎는 이 사람의 서간문이나 산문을 보면 진짜 통쾌해지는 면이 있어요.
인간을 사랑하기 때문에
‘시인이 사랑하고 사랑한 작가 11인’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잖아요. 이들 작가들을 관통하는, 이들의 삶과 문학이 주는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이것은 시인이 이들 작가를 사랑하는 이유이기도 할 거예요.
이 사람들은, 사드조차도 심중에는 인간에 대한 사랑이 있어요. 사드가 바스티유 감옥에서 세상에 대한 복수의 글을 쓴다고 말했지만요. 인간을 사랑하기 때문에 모든 악을 드러낼 수가 있는 거거든요. 자기가 좋아하는 선배 작가들의 모든 악적인 면을 모아서 로트레아몽이 『말도로르의 노래』라는 시집을 냈죠. 로트레아몽은 일찍 죽었는데요. 그 시집을 출간한 후 모든 선을 모아서 또 『시:미래의 서적에의 머리말』이라는 시집을 냈어요. 이런 것이죠. 또 이 작가들의 생이 저는 참 좋아요. 문학 때문에 삶이 망가지기도 했잖아요. 그럼에도 문학을 우선에 두었던 삶, 그런 삶들이 참 좋아요. 저는 그렇게 못 살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구두 뒤축이 다 닳도록 그들 주변을 서성이는 게 좋아요.
이 중 특별히 좋아하는, 여러 번 들여다보게 되는 작가가 누구인지 궁금합니다. 역시 제일 처음에 소개한 카프카일까요? 카프카를 ‘점점 좋아지는 작가’라고도 표현하셨죠.
카프카는 문체가 참 좋아요. 참 간단, 단순하게 쓰는데 끔찍하잖아요.(웃음) 볼 때마다 새롭죠. 카프카는 평생 읽을 것 같아요. 제 글쓰기에도 도움이 되고요. 이 사람이 남긴 짧은 글이나 우화시 같은 것은 읽을 때마다 다른 것을 주더라고요. 계속 읽어야 하죠. 아직 다 읽지도 못했고요. 또 르네 샤르는 제가 시인이기 때문에 의미가 더 커요. 책에 실린 11명 중에 시도니 콜레트나 니콜라이 고골 정도를 제외하곤 거의 시를 쓰거나 했는데요. 덕분에 이들이 제 시에 도움도 많이 줘요. 이들의 정신이 말이에요.
정신이라면 무엇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현대 사회에서 사람들은 다 편이 갈려 있잖아요. 그럴 때 이런 작가들이 힘을 안 주면 우리 같은 사람은 못 버티죠.(웃음) 감히 이 작가들을 따라갈 수는 없지만 이들이 저한테 좋은 기운을 주니까요.
시인의 쓰기에도 도움을 많이 준다고 거듭 말씀하시네요.
평생 배워야 하죠.(웃음)
작가 소개글에서 언제나 시인 곁에는 책이 있었다고 하고 있는데요. 그와 같은 배움에의 의지나 욕망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어요.
저는 읽는 걸 좋아해요. 쓰는 것보다 읽는 걸 더 좋아해요. 힘들고 그럴 때는 추리소설, 스릴러, 범죄소설을 잔뜩 빌려 놓고 봐요. 그러면 위로가 돼요.
추리소설이요? 의외예요.
추리소설은 심리학과 비슷해요. 인간 심리를 잘 다루고 있죠. 여러 인간형들이 나오잖아요. 게다가 요즘 외국 추리소설 작가들, 정말 잘 쓰더라고요. 굉장히 문학적이죠. 의사나 기자로 활동하던 전문가들이 쓰는 경우도 많고요. 덕분에 세계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도 알게 되고, 재미있어요.
결국 시인이 매료되는 것들은 삶의 이면, 일상의 바깥에 위치한 어떤 것들이 아닐까 싶네요.
그렇기도 하지만요, 제가 매료되는 것은 삶 자체이기도 해요. 그들이 그들의 삶 자체에서 어떻게 그것을 견디고 살았는가, 하는 것이죠. 글을 쓰면서 포기해야 했던 생활들이 있잖아요. 안타까움도 있고, 아쉬움도 있죠. 카프카에 대해서도 ‘밀레나와 계속 사랑을 유지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라고 했잖아요. 그런 삶 앞에서 작가들이 어떻게 했는지, 이런 것들을 지켜보는 것 역시 저한테는 도움이 많이 됐어요. 잉게보르크 바흐만 같은 경우도 그렇죠. 사랑에 계속 실패하잖아요. 파울 첼란과 사랑에 빠졌는데 잘 안 됐죠. 그래도 이 사람들은 편지를 주고받았어요. 바흐만의 유언에 따라 2025년까지 편지가 공개되지 않고 있는데요. 개봉되면 너무 재미있을 것 같아요. 이렇게 여러 작가의 삶을 생각하는 것이 많이 도움이 돼요.
작가의 삶을 엿보고, 상상하는 것이 시인의 문학이나 삶에도 바로 연결이 되나요?
네, 언어를 쉽고 간결하고 깊게 쓰는 데 굉장한 도움이 돼요. 이들의 문장에서 많이 배워요. 가령 ‘고독’이라는 단어가 들어갈 문장을 창조할 수 있는 발견도 주고, 재치도 주죠. 작가의 문장들은 저에게 지혜를 줘요. 사는 데도 도움을 주고요. 인간성을 잃지 않고 생각한 대로 사는 데 이들이 많은 힘을 주죠. 이들은 다 소신껏 살아왔잖아요. 남이 볼 때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일지 몰라도 본인들은 자기가 가진 그대로 살았잖아요. 결국 자살하는 사람도 있고 해도 그 삶 자체를 볼 때는 이해도 되고, 아름다워요. 아마 후회도 없을 것 같은 느낌 들어요. 그래서 나는 죽은 사람을 더 좋아해, 죽은 사람과 더 잘 놀아, 이런 말도 하고 그렇죠.
‘시인’은 시 시(詩)자와 사람 인(人)자
잉게보르크 바흐만이나 거트루트 스타인처럼 특히 여성 작가들의 삶에서 시인이 읽어내는 면들이 와 닿았어요. 이중의 고통이잖아요. 사는 동안 사회적 성공이나 명예를 얻었다 하더라도 말이에요.
맞아요, 거트루트 스타인과 시도니 콜레트는 같은 시기 파리에서 살았어요. 20세기 초, 전쟁이 두 번 일어날 동안 말이죠. 거트루트 스타인은 남자와 연애는 안 했어요. 그 주변에 참 똑똑한 여자들 많았는데 양성애자들이 많았죠. 그 시절이 성에 대해 많이 자유로웠던 것 같아요. 사회 분위기와는 상관없이 그들 스스로 말이에요. 방종이 아니라 자유로움이었는데요. 멋있어 보이죠.(웃음) 시도니 콜레트는 방종하다고 할 정도로 성에 대해 굉장히 자유로웠는데요. 그러면서도 열심히 글 쓰고 해서 사회에서 인정도 받았어요. 프랑스에서 국장까지 치러줬을 정도로요. 이런 사회가 부럽죠. 우리 나혜석, 그렇게 죽게 내버려뒀는데 말이에요. 전혜린도 그렇게 못살게 했는데, 그러니까 그런 사회가 부러운 거죠.
자연스럽게 사회가 어떻게 다양성을 수용하느냐에 대한 생각으로 옮겨가게 돼요.
모두 여걸들이죠. 파리를 중심으로 한 그 시대가 끝나고는 페기 구겐하임이 미국으로 건너가서 예술가도 도와주고, 콜렉터로서 많은 역할을 하잖아요. 여성들의 그런 활동이 좋아요. 그들의 사생활이 어떠했든 상관없이 말이에요.
책에 미처 소개하지 못한 나만의 작가가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나만의 작가로 생각하는 사람은 빈센트 반 고흐예요. 그의 글도 좋아하고, 그림도 좋아하고,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공동체 의식도 되게 좋아해요. 고흐의 편지가 고등학교 때 문고판으로 나왔는데 아주 인상적이었어요. 참 다정한 사람, 따뜻한 사람이었고요. 인생을 보는 눈이 인간적이더라고요. 그때 고흐가 좋아했다고 하는 것들도 찾아보고 그랬죠.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는 스페인의 혁명 시인이에요. 집시들의 생활을 많이 노래했거든요. 로르카는 언어가 대단해요. 달의 시인 같아요. 시인으로서 많이 좋아하는데 삶도 흥미롭죠. 로르카가 마드리드 대학에서 살바도르 달리를 만난 이야기가 영화로도 나왔잖아요. 로르카는 굉장히 긍정적인 사람이고요. 네루다의 자서전에서 로르카에 대해 이야기한 것을 보면 그는 항상 주변을 환하게 해줬다고 해요. 그런데 저도 로르카의 글을 보면 참 아름답다고 느껴요. 어떤 것은 비단을 발밑에 쫙 펼치는 것 같아요.
국내 작가 중에서는 누구를 좋아하세요?
우리가 좋아하는 백석이나 이상에 대해서는 자료가 많이 나와 있죠. 만약 살아있는 사람 중에서 쓴다면 이승훈 시인과 김승희 시인을 쓰고 싶어요. 두 분은 제가 시 세계도 좋아하지만요. 그분들의 지적 탐구를 따라가도 재미있거든요. 정말 지적인 분들이에요.
조세희 시인은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과 엮어서 재미있는 것을 쓸 수 있을 것 같아요. 액자소설 같은 것을 한 번 써보고 싶어요.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을 밑에 깔고 그 위에 다른 이야기를 써보고 싶은 마음은 있어요.
카렐 차페크나 프란츠 카프카 등을 시인으로 말하기 좋아한다는 대목이 있거든요. 시인이 생각하는 시인이란 어떤 존재인지 궁금해져요.
시인은 꿈꾸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요. 때로는 악몽을 꾸기도 하고, 때로는 좋은 꿈을 꾸기도 하죠. 시인은 그것을 기록한다는 생각이 요즘 들더라고요. 그러니까 좋은 꿈뿐만 아니라 악몽까지, 이 모든 게 다 필요하죠. 차페크의 경우 문장이 거의 시예요. 한 부분만 살짝 가져와서 제가 발표하면 그대로 시가 될 거예요.(웃음) 그 정도로 문장이 시적이고요. 카프카는 우화시를 많이 썼잖아요. 책에는 짧은 시를 닮은 「인디언이 되었으면」을 소개하기도 했고요. ‘시인’은 시 시(詩)자와 사람 인(人)자잖아요. 그래서 시와 인간이 같이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면이 있거든요. 인간은 별로인데 시만 잘 쓰는 사람은 별로 안 좋아해요. 이 사람들처럼 인생과 문학을 같이 하는 사람이 시인이라고, 제 마음대로 생각해요.(웃음)
적어도 시인이라면 삶과 문학이 분리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씀이 중요하게 들리네요.
시인으로서 시를 안 쓰면 아무리 잘 쓴 것을 읽어도 공허해요. 감동이 덜 오기도 하고요. 그건 전해지는 것 같아요. 느껴져요. 하지만 너무나 기교가 뛰어나면 무시할 수는 없죠. 그것도 하나의 재주고, 그의 능력이니까요. 다만 어설프게 한 것들은 금방 탄로가 나요. 발레리는 굉장히 지적이잖아요. 그보다 지적인 사람이 있을 수 없다고 할 정도인데요. 이 사람이 쓴 아포리즘 보면 참 대단해요. 그런데 이 사람은 불쑥 찾아오는 영감, 이런 것들이 자기를 무너뜨릴까봐 고민했잖아요. 그걸 보면 ‘그냥 시를 쓰지’(웃음) 할 정도죠. 하지만 다 제각기 자기들의 추구하는 형이 있으니까 이해해요.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거죠. 그런 것을 보면서 느끼거나 건지는 것도 있고요.
잡히지 않는 나비, 글자들과 함께 날아가다
과거를 살았던 이들 작가가 지금도 살아서 말을 건네요. 바로 문학의 위대함이기도 할 텐데요. 이들이 시인의 오늘에 어떤 말을 건네고, 시인은 이들에게서 어떤 응원을 받으세요?
여기 나오는 작가들은 계속 번역이 되어 나오고 있잖아요. 좋은 작가들은 양파 같아요. 까면 깔수록 다른 게 나와요. 늘 새롭게 느껴져요. 독서를 하다보면 젊어서 읽어야 할 책, 늙어서 읽어야 할 책이 있는데요. 이 작가들은 언제 읽어도 그만큼의 새로움을 주더라고요. 다시 읽는 것의 의미가 분명히 있어요.
지금까지의 이야기에서 재미있는 책읽기 힌트를 얻을 수 있어요. 책과 더불어 바깥에 있는 작가의 삶, 세상과의 관계 등을 함께 읽으면 훨씬 풍성한 책읽기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시인 이상만 해도 난해하고 어렵잖아요. 그런데 이상이 폐결핵 환자였고, 당시가 일제강점기였고, 그가 청년으로서 좌절했었고, 어린 시절 양자로 살면서 부모의 사랑에 굶주렸다는 사실들을 알고 읽으면 이해가 돼요. 사드가 그렇게 잔혹한 것이라도 쓰지 않으면 견디지 못했을 거라는 걸 이해하듯 말이에요. 이상도 죽음 앞에서 어떻게 했겠어요? 그런 것을 생각하면 이해가 되죠.
카프카의 묘비 글을 보며 떠오른 질문인데요. 시인은 묘비에 어떤 말을 새겨 넣고 싶으세요?
세 번째 시집이 『잡히지 않는 나비』예요. 그래서 생각한 건데요. ‘잡히지 않는 나비, 글자들과 함께 날아가다’ 이렇게 해볼까요.(웃음) 잡히고 싶지 않으니까요. 그냥 재미로 생각한 거예요. 제가 세 번째 시집을 참 좋아하거든요.
올해 오랜만에 네 번째 시집을 내셨죠? 무려 14년 만인데요.
시집만 늦게 냈지 작품은 계속 쓰고, 발표도 했어요. 사실은 갑자기 21세기가 되면서 시단 구조도 엄청 바뀌었어요. 대거 젊은 시인들도 등장했고요. 그러면서 약간 혼란스러웠어요. 그 사이에 연극도 했고요. 연극배우들, 여성 시인들과 같이 1년 가까이 연습하고 24회 공연을 했거든요. 그러면서 시집이 늦어진 거고요. 원래 저는 많은 시집을 내고 싶은 마음은 없어요. 그런데 이번에 네 번째 시집이 오랜만에 나왔는데 기분이 정말 좋은 거예요.(웃음) 원고가 아직 한 권 분량이 남아 있으니까 늦지 않게 다섯 번째 시집을 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반가운 이야기입니다!
『우린 아무 관계도 아니에요』에 있는 시들이 제가 살면서도 아팠던, 우울했던 시기의 시들이거든요. 그런데 지금 시집을 내니까 아픔이 좀 경쾌하게 변한 것 같아서 기분이 좋더라고요. 언어도 저절로 익나봐, 생각했어요. 사람이 인생을 잘 극복하면 아플 때 쓴 언어들도 그 사람을 따라오는가보다,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내가 잘 견뎠더니 너도 잘 견뎠네, 이런 거 있잖아요. 그래서 되게 고마운 거예요. 네 번째 시집은 교정보고 책 나올 때까지 내내 행복했어요. 기분이 참 좋았어요. 그러면서 언어에 대한 신뢰가 더 많이 생겼고요. 글도 많이 쓰고 싶어졌어요.
오늘은 바람이 좋아, 살아야겠다! 김상미 저 | 나무발전소
『오늘은 바람이 좋아, 살아야겠다!』는 프란츠 카프카, 마르키 드 사드, 르네 샤르, 고골, 바흐만, 거투르드 스타인, 콜레트, 애드거 앨런 포, 폴 발레리, 카렐 차페크, 나보코프! 문학사에 큰 족적을 남긴 11인의 문학 연금술사들, 그들의 창작세계를 엿볼 수 있는 시인의 에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