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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지양·홍한별 "'번역가'라는 투명한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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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지양 저자
“작가는 아니지만 글 쓰는 사람입니다”

출판 번역가 노지양, 홍한별 저자의 책 『우리는 아름답게 어긋나지』에 실린 첫 번째 글의 제목이다. 흔히 번역가는 원문을 우리말로 옮길 뿐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이국의 언어로 된 작품을 모국의 언어로 다시 쓰는 일을 한다. 일반적인 글쓰기와 차이가 있다면 번역은 “보이지 않으려고 분투하는 글쓰기”라는 점. 필연적으로 투명해질 수밖에 없는 일을 사랑하는 두 사람이 2주에 한 번씩 나눈 편지가 책으로 묶였다.


“오늘도 나는 언어의 매개자, 조용한 그림자로서의 의무를 다하자 싶어”  _(116쪽)  


(※ 이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원문의 ‘쨍그랑 울림’을 전하는 사람 

‘우리는 아름답게 어긋나지’라는 제목이 참 좋았어요. 번역가의 일을 한 문장으로 압축할 때, 이보다 더 적절한 말을 찾기란 어려울 것 같아요.

홍한별 : 사실 제 입으로 우리를 아름답다고 말하는 게 쑥스러워서 소심한 반대 의사를 밝혔어요(웃음). 그리고 저희 어머니께 보여드렸는데 “너희가 아름답다는 게 아니라 글이 아름답다는 거니까 괜찮다”고 지지해 주셔서 생각을 바꾸었죠. 출간 후 제목이 좋다는 칭찬을 무척 많이 들었어요. 역시 편집자님의 감각은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노지양 : 줄곧 ‘우리는 아름답게 어긋나지’라는 가제가 적힌 교정지를 주고받았는데 결국 제목으로 확정되었네요. 몇 가지 대안을 생각해봤지만, 마지막에는 가장 적합하고 시선을 끄는 제목이라는 데 동의했죠. 편집자님이 한별의 글에 있던 문장에서 영감을 받아 붙여주신 제목이었어요.

“아름답게 어긋난 상태로 남기려면 번역가가 용기를 발휘해야 했겠지(100쪽)”라는 문장이었죠. 일을 하면서 특히 용기가 필요한 순간은 언제인가요?

홍한별 : 커다란 용기는 아니지만, 작은 용기들이 소소하게 필요해요. 책에 쓴 일화 중 하나인데, 소설 『클라라와 태양』을 번역했을 때의 일이에요. 소설의 서술자 클라라는 인공지능을 지닌 안드로이고, 어린아이 같은 상태로 세상에 나와 일반 사람들과 생각하는 방식이나 말투가 조금 달라요. 독특한 개인어를 사용하기도 하고요. 특히 클라라가 자주 하는 말 중 ‘high-rank clothes’라는 말이 있어요. 일반적으로는 잘 사용하지 않는 어색한 표현인데, 이걸 그냥 ‘고급스러운 옷’으로 옮기면 클라라의 특징이 잘 살지 않아서 ‘등급이 높은 옷’이라고 옮겼어요. 그런데 독자 서평에 어색한 표현이라면서 번역이 좋지 않다는 내용이 있더라고요. 이렇게 원문의 독특한 느낌을 ‘쨍그랑 하는 울림’이 남도록 번역할 때마다 작은 용기를 내야 해요. 때로는 편집 과정에서 잘려 나가기도 하고, 살아남더라도 ‘직역투’라는 비판을 피할 수가 없거든요.

서로에게 받은 메일 중, 가장 기억에 남거나 개인적으로 의미가 있었던 메일은 무엇이었나요?

노지양 : 한별에게 받은 첫 번째 편지였어요. 손으로 썼다고 했었죠. 글이 좋을 거라고 당연히 예상했는데, 편지를 직접 읽어보니 생각보다 더 좋아서 놀랍더라고요.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이 가장 많이 인용해주시는 번역에 관한 문장도 첫 편지 안에 있어요. “원문에서 느껴지는 아름다움, 스산함, 슬픔, 따뜻함, 고요함, 충격, 통렬함을 조심스럽게 내 언어로 어루만져 이루어내는 일(24쪽).” 번역을 정말 아름답고 품격있게 표현한 문장 아닌가요? 첫 편지를 읽자마자 같이 하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했어요(웃음).

홍한별 : 모든 편지가 의미 있었지만, 우리와 같은 일을 하다가 이른 나이에 세상을 뜬 친구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던 지양의 편지를 읽은 순간을 수가 없어요.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이렇게 아픈 이야기도 할 수 있을만큼 우리 사이가 더 단단해졌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홍한별 저자

겸손은 번역가의 숙명

번역가에 대한 오해 중, 가장 억울한 것이 있을까요? 

노지양 : 혼자 일하기 때문에 고고하고 우아한 직업으로 보일 수 있지만, 감정 노동을 해야 할 때가 많아요. 특히 교정 과정에서도 편집자와 의견이 달라 속상하곤 하죠. 그럼에도 현명하게 타협하고, 양보하고, 소통하려고 노력해야 하고요. 번역을 하려면 오만하거나 고집스럽지 않고, 유하고 겸손해야 해요. 아마 주변에 번역가 친구를 두시면 나쁘지 않을 거예요(웃음). 신간 도서를 선물로 받으실 수도 있고요!

홍한별 :흔히 번역을 거치면 글이 원문에서 멀어지고, 그 과정에서 빈틈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해요. 번역이 불가능해서 사라지는 부분이 있는가 하면, 번역 과정에서 새롭게 생겨나는 것들도 있거든요. 번역문을 원문과 별개의 성취로 바라볼 필요가 있는 거죠. 사실 원문에 가장 가까운(가깝다는 것 또한 정의가 불가능한 개념이지만) 번역이 가장 좋은 번역은 아니거든요.

그럼 ‘좋은 번역’이란 무엇인가요?

홍한별: 어려운 질문이네요.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히 파악하고, 독자에게 그 의미를 전하기 위해서 택한 형식을 존중해야 하고요. 그러면서 최대한 원문과 비슷한 효과를 내도록 적절한 우리말로 표현하는 번역이 좋은 번역이라고 생각해요. 

노지양 : 한별이 책에서 말했듯이 “최대한 한국어처럼 읽히도록 자연스럽게 옮기면 지나치게 길들여 동글동글한 자갈돌 같은 번역”이 될까 조심스럽다고 하잖아요. 저도 기본적으로 독자 입장에서 술술 읽히는 번역문을 만드는 게 1차 목표이지만, 이국 문화의 낯선 느낌이 살아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어요. 또 제가 생각하는 좋은 번역은 작가의 의도를 잘 살린 번역이에요. 단어의 위치, 문장의 길이, 리듬감을 조절해서 원문이 강조하고 싶었던 내용을 살린 번역이 좋죠. 가끔 번역에서 잘 보이지 않았던, 순수한 우리말이 들어간 번역문을 봐도 신선한 느낌이고요. 

책에는 번역하기 까다로운 단어에 대한 이야기가 여럿 실렸는데요. 반대로 좋아하는 단어, 혹은 번역 작업을 하다가 만나면 반가운 단어 등이 있나요? 

노지양 : 저는 'smart'라는 단어가 은근히 좋아요. 영민한, 똑똑한, 현명한, 영특한, 우수한 등 문맥에 맞게 다르게 번역하는 재미가 있거든요. 또 페미니즘이나 젠더 인종 관련 어휘는 많이 접한 편이라 익숙하기 때문에 검색을 덜 할 수 있어서 좋아요. 참정권 운동가인 ‘수잔 B. 앤서니’, ‘아이다 웰스’, 교차성 이론의 ‘킴벌리 크렌쇼’, 미투의 기원이 된 ‘타라나 버크’ 등의 이야기도 이미 배경을 잘 알고 있으니 원문에서 우연히 만나면 반갑죠. 

홍한별 : 저는 'boring(지루한)'이라는 단어를 좋아해요. 특별한 이유는 없고요. 뜻은 심드렁한데, 생긴 모양이나 소리가 귀여워서요. 사실 영어의 특별한 재미는 단어의 품사를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다는 점인 것 같아요. 예를 들어 ‘ring(반지)’은 보통 명사라고 생각하지만 ‘ringed finger(반지 낀 손가락)’라는 말도 하거든요. 얼마 전에 번역한 글에서는 ‘bright sting(빛나는 자극)’이라는 표현이 있었어요. 이렇게 아름답게 어긋나는 것들이 재미있어요.

번역에 대한 편견과 처우 등 어두운 면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셨어요. 특히 합당한 보수를 받지 못하는 문제는 비단 번역가뿐 아니라 집필 노동자라면 대부분 공감할만한 지점이었죠. 출판 번역가의 처우가 개선되기 위해서는 궁극적으로 어떤 변화가 있어야 할까요? 

홍한별 : ‘출판’이라는 산업은 사실 노동집약적이고 부가가치가 크지 않잖아요. 여러 제작단계에 있는 사람들이 파이를 나누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무조건 번역료를 올려달라고 주장하기가 쉽지는 않아요. 하지만 번역 품질이 높으면 교정 등에 들어가는 비용을 줄일 수 있거든요. 그 부분을 고려하면 출판사에서 좋은 번역가에게 조금 더 투자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노지양 : 외서의 경우, 번역이 독서 체험을 결정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주셨으면 좋겠어요. 독자 분들이 마지막 장까지 재미나게 읽은 외서가 있다면, 번역이 잘 된 책이었던 게 분명하거든요. 번역가의 수입이 어느 정도 보장되면 독자들이 더 질 높은 번역물을 즐길 수 있을 거예요. 더불어 각 출판사, 문화부 등에서 주최하는 번역상이 더 생기고 청년 지원 사업처럼 번역가도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창구가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일반적인 조건 외에, 일의 수락 여부를 결정할 때 중요하게 작용하는 기준은 무엇인가요?

홍한별 : 첫 번째 조건은 ‘재미’예요. 내가 좋아하는 책, 글이나 내용이 재미있는 책, 번역 과정이 흥미로운 책, 흥미로운 사실을 알려주는 책 등이 모두 ‘재미있다’의 범주에 들어가죠. 

노지양 : 저는 말맛을 살릴 수 있는 일러스트 도서나 감성적이고 유머러스한 에세이를 선호해요. 진지한 순수문학, 사회과학 책 등은 다른 번역가가 훨씬 더 훌륭하게 번역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고사하기도 하죠. ‘내가 하면 잘할 수 있겠다, 자신감을 갖고 할 수 있겠다’ 싶은 책에 끌립니다. 


번역, 나를 사랑하게 하는 일

노지양 번역가님은 출간 제의를 받고 ‘만약 이 프로젝트를 한다면 반드시 홍한별 번역가와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셨다고요. 

노지양 : 편한 친구이자, 제가 좋아하는 번역가였으니까요. 작업 과정이나 번역에 대한 한별의 생각이 궁금했고, 뭔가 함께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늘 가지고 있었어요. 예전에도 우리가 좋아하는 책을 소개하는 팟캐스트를 해보자는 말을 건넨 적 있었거든요. 물론 당시 한별에게 “그 재미없는 걸 누가 듣겠냐”는 말을 듣고 1초만에 계획을 접었지만요(웃음). 

두 분의 첫 만남이 궁금해요. 

홍한별 : 같은 대학, 같은 과를 다녔지만 함께 수업을 들은 적은 거의 없었어요. 전공 수업에서는 학번순으로 반을 나누는데, 학번이 가나다순이거든요. 지양이는 늘 앞반, 저는 언제나 뒷반이었죠(웃음). 졸업 후 한참 뒤에 지양이도 번역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십 년이 훨씬 지나서야 다시 만났는데 대화가 끊이지 않았어요. 

노지양 :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아마 제가 먼저 만나자고 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같은 업계에 있는 동창생이고, 멀리서 봐도 호감이 생기는 친구라서 만났는데 너무 잘 통했어요. 그 뒤로 다른 친구들한테는 못하는 번역으로 울고 웃었던 이야기들을 나누는 사이가 되었죠. 사실 한별은 상대를 함부로 판단하지 않고,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라 한번 친해지면 누구든 관계를 오래 유지되는 편이에요. 저도 한별과의 관계를 놓치고 싶지 않아 하는 여러 친구 중 한 명이고요. 

홍한별 번역가님은 책에서 “내가 찾아낸 책을 내가 한국어로 옮기고 그 책을 좋아하는 독자들을 만난다는 것(171쪽)”이 궁극의 소망이라고 하셨어요. 노지양 번역가님도 ‘궁극의 소망’이 있으신가요? 

노지양 : 다음 페이지에 무슨 내용이 나올지 궁금하고 기대되고, 매일 아침 번역하고 싶다고 생각되는 책을 번역하는 일이요. 모든 번역은 어렵지만, 그래도 내 문체와 궁합이 잘 맞는 책이 있거든요. 인세로 계약한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꿈을 꾼 적도 있지만 큰 가능성은 없어 보입니다(웃음). 

서로의 번역서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책을 소개해주신다면요? 

노지양 : ‘세라 스마시’의 『하틀랜드』를 밑줄을 그어가면서 두 번 읽었어요. 쉽지 않은 내용인데도 매끄럽게 술술 넘어가서 ‘이런 책을 만나 기쁘다, 행복하다’는 느낌이 들었죠. 최근 읽은 ‘샤샤 세이건’의 『우리, 이토록 작은 존재들을 위하여』도 섬세하고 미려한 문체에 대한 이야기가 많은데요. 아마 한별의 번역이 큰 몫을 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홍한별 :지양이 번역한 것 중, 좋은 책 진짜 많은데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책은 록산 게이의 『헝거』예요.

오랫동안 번역가로 일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해 두분 모두 “결국에는, 내 일을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하셨어요. 번역의 어떤 면을 특히 사랑하시나요?

홍한별 : 번역의 결과물이 책이기 때문이에요. 영화, 게임, 유튜브, 소셜미디어 등 세상에는 재미있는 게 너무나 많지만 아직도 제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책이니까요. 

노지양 : 저는 여러 면에서 부족한 사람이지만 번역만큼은 제 강점이 발휘되는 일인 것 같아요. 인내심, 성실성, 센스, 감성, 유머, 문장력 등이 있으면 살아남을 수 있는 일이거든요. 일상 생활에서는 한심하고 서투르지만, 번역을 하고 있는 저는 꽤 괜찮은 사람인 듯이 느껴질 때가 있어요. 나를 사랑할 수 있게 하는 일이기 때문에 번역을 더 사랑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노지양

번역가이자 작가. 달리기와 자전거를 사랑하고 각종 스포츠 중계와 미드, 스탠드업 코미디까지 챙겨 보며, 틈틈이 그림도 그리고 피아노도 배우는, 좋아하는 것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은 ‘건강한 자기중심주의자’다. 연세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한 후 단순히 ‘라디오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라디오 작가가 됐다. 겨우 메인 작가가 될 무렵 아이를 가지면서 방송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 이후 번역을 시작해 10년이 넘어가면서 점차 인정받는 번역가가 되었지만, 마음 한편에는 늘 자신만의 글을 쓰고 싶은 갈망이 있었다. 번역가로서 만나온 단어들과 그에 관한 단상들을 쓴 책 『먹고사는 게 전부가 아닌 날도 있어서』로 처음 ‘지은이’로서 독자들을 만났다. 두 번째 책 『오늘의 리듬』은 나이가 들어간다는 현실을 필사적으로 부정했으나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게 그것을 받아들이고, 여전히 서툰 어른 생활을 헤쳐나가기 위해 분투하는 일상을 그려내고 있다. 옮긴 책으로 『나쁜 페미니스트』 『헝거』 『케어』 『다만 죽음을 곁에 두고 씁니다』 『센 언니, 못된 여자, 잘난 사람』 『트릭 미러』 『믿을 수 없는 강간 이야기』 『인종 토크』 등이 있다.



*홍한별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와 같은 학교 대학원을 졸업하고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글을 읽고 쓰고 옮기면서 살려고 한다. 옮긴 책으로 『도시를 걷는 여자들』, 『하틀랜드』, 『우먼 월드』, 『먹보 여왕』, 『밀크맨』, 『온 컬러』, 『권력과 테러』, 『자라지 않는 아이』, 『위대한 생존』, 『오카방고 숲속의 학교』, 『나는 그림으로 생각한다』, 『두 살에서 다섯 살까지』, 『나무소녀』, 『네모난 못』, 『자유 방목 아이들』, 『밴버드의 어리석음』, 『식스펜스 하우스,』 『토머스 페인 유골 분실 사건』, 『히치콕 미스터리 매거진 걸작선,』 『사악한 책, 모비 딕』, 『이 문장은, 내 삶을 완전히 바꾸어놓았다』, 『아웃런』, 『바다 사이 등대』, 『달빛 마신 소녀』, 『나는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페이퍼 엘레지』, 『몬스터 콜스』, 『가든 파티』 등이 있다. 『다시 동화를 읽는다면』과 『미스테리아』 등에 글을 실었다. 『밀크맨』으로 제14회 유영번역상을 수상했다.




우리는 아름답게 어긋나지
우리는 아름답게 어긋나지
노지양,홍한별 공저
동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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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정세운 "책을 쓰는 모든 순간이 좋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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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싱어송라이돌’ 정세운은 자신의 첫 책 『아끼고 아낀 말』에 대해 “책을 낼 거라는 건 상상치도 못했기 때문에 앨범 내는 것 이상으로 뿌듯하다”고 말했다. 갑작스러운 책 제안에 고민도 많았지만 “그래도 일단 해보자는 마음으로”썼다. “몇 안 되는 경험이긴 하지만 일단 해보자, 했을 때 얻었던 게 많았”기 때문이다. TV 오디션 프로그램을, 뮤지컬을, MC를 ‘일단’ 해본 것은 그를 다양한 곳으로 이동시켜주었다. 해보지 않으면 몰랐을 자신의 새로운 면도 발견했다. 그리고 책 역시 마찬가지였다. 뜻밖에 책을 쓰는 일에 큰 흥미를 느꼈다는 정세운은 “책을 안 내더라도 앞으로 그냥 조금씩 이렇게 기록해 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밝히기도 했다. 

흘러가버리고 말 20대를 붙잡아 두고 싶은 마음으로 기록한 정세운의 에세이 『아끼고 아낀 말』에는 문득 솟아난 하루의 생각들이 모여 한 시절의 단단한 생각이 되는 과정이 담긴 듯하다. 그 여정에 선 정세운이라는 사람은 자신이 혼자인 것 같고, 이야기가 통하지 않아 답답함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손 내민다. 해결책도, 정답도 이 책에는 없지만 책으로 만나 작은 공감을 나누고 싶은 반짝이는 마음으로. 



20대의 나를 기억하고 싶었어요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아 기억하기 위한 기록’이라는 작가 소개글에 눈길이 가요. 또 책의 첫 문장은 “이상할 만큼 10대 시절의 기억이 희미하다”(5쪽)죠. 연결해보면 이 책은 20대의 정세운이라는 사람을 잡아 두고 싶은, 기억하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된 것이 아닐까 싶어요. 

10대의 기억이 왜 이렇게 없을까 생각해봤어요. 별다른 생각 없이 살았던 것 같아요. 물론 몇 가지 기억나는 것이 있지만 대부분은 하루하루가 빠르게 지나간 느낌이에요. 그건 20대도 비슷하거든요. 데뷔한 지 이제 5년 정도 됐는데요. 시간이 너무 빨라요. 말이 안 되게 빠른 느낌이고, 의식을 하고 보니 어느덧 데뷔 6년 차가 된 거죠. 사실 이 하루는 다시 돌아오지 않잖아요. 너무 아쉬운 마음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좀 더 특별하게 이 순간들을 기억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오늘이 내일을 만들고, 내일의 내가 어떤 모습일지는 결국 오늘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러니까 책을 통해 20대 중반의 나라는 사람이 어떤 생각을 했고, 어떤 하루를 살았으며,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기억하고 싶었던 거예요. 시간이 지나서 볼 수 있도록 기록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출발했어요.

그 중, 특별히 꼭 기억하고 싶다는 생각에 기록한, 쓰면서 즐거웠던 장면을 고른다면요?  

특별한 한 편에 대한 것보다는요. 책을 쓰려니까 저의 감정이나 하루의 생각을 훨씬 더 예의주시하게 되더라고요. 쓰는 내내 내가 어떤 기분인지, 어떤 상태인지를 더 돌아보게 되는 느낌이 있었어요. 평소 그저 해야 할 일들을 하기 바빴다면 책을 쓰면서는 하루의 끝에 오늘 있었던 일, 오늘 느꼈던 기분 같은 것들을 한 번 더 생각하게 됐어요. 그 과정이 정말 즐거웠어요. 왜 진작에 이렇게 안 했을까 싶을 정도로 말이에요. 더구나 음악을 하는 사람으로서 이런 기록, 메모들이 다양하게 쓰일 수 있잖아요. 새삼 그런 생각도 하게 됐고요. 책을 쓰는 모든 순간이 저에 대해 더 깊게 들여다보는 시간이어서 참 좋았어요.

한편으로 책 제안을 받고 고민을 많이 하셨다고 들었어요. 

제가 작사도 해서, 이런 일이 글쓰기와 아예 관련이 없지는 않았기 때문에 그나마 책을 쓰겠다는 결심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은데요. 막상 글을 써보니까 작사와는 아예 다른 근육이 필요하더라고요. 작사의 경우, 주어진 멜로디가 있고 3-4분 되는 시간 안에 최대한 이야기를 함축해서 표현을 해야 하죠. 또 멜로디랑 잘 안 붙으면 가사를 다시 써야 해요. 반면에 글은 정말 자유로워요. 어떻게 시작하고 끝낼지 제 마음대로 해도 되고요. 그런 것들이 다르기는 했어요. 그래도 작사하는 기술을 글 쓰는 데 많이 반영한 편이거든요. 함축적으로 이야기를 한 것이나 최대한 심플하게 주제를 전달하고자 한 것은 작사 덕분이었어요. 그렇게 쓰다 보니까 지금과 같은, 장황하게 설명하지 않으면서 하고 싶은 말을 담아내는 글이 스타일처럼 책에 묻어난 것 같아요.

재미있는 부분이, 각 챕터 하단에 노래가 한 곡씩 함께 소개되어 있는 것이었어요. 어떤 과정이 있었는지 궁금해요. 

우선 글을 제일 먼저 썼고요. 글을 마무리하면서 사진을 준비했어요. 음악은 가장 마지막으로 선곡한 건데요. 음악은 글과 잘 어울리는 것이었으면 해서 제가 좋아하는 곡들 중에서 찾았어요. 독자 분들은 그냥 음악 없이 책을 쭉 읽으셔도 좋고, 제가 소개한 음악을 들으면서 글을 읽으셔도 좋아요. 또 그 음악이 끝날 때까지 글에 대해 생각하셔도 좋고요. 그것도 아니면 그냥 자연스럽게 음악을 들으면서 떠오르는 생각들을 마주해보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해요. 이런 생각으로 제가 전달하고자 하는 그 글의 이야기를 뒷받침해 줄 수 있는 분위기가 담긴 곡들을 선정했습니다.

선곡 아이디어는 직접 내신 건가요? 

편집자 님께서 먼저 제안을 해주신 건데요. 사실 즐겁지는 않았어요.(웃음) 일단 잘 선택해야 한다는 마음이 있었으니까요. 그렇지만 생각보다 오래 걸리진 않더라고요. 독자 분들은 저의 선곡을 듣는 재미가 쏠쏠할 거라고 생각해요. 초반에는 약간 잔잔한 음악이다가 신나는 곡도 나오다가 감성적인 곡도 나오고 조금 덜 잔잔한 곡들도 나오고, 하는 식이거든요. 이런 것들을 다 생각하면서 곡의 순서까지 배치한 거니까요. 글과 사진만 보는 것도 좋겠지만 음악을 들으면서 글을 읽으면 색다른 감정이나 생각을 얻으실 수 있을 거예요. 



보이지 않는 마음을 보려는 사람

『아끼고 아낀 말』은 무엇보다 작가님이 스스로 많이 질문하고, 내게 일어난 상황을 이해하려고 애쓰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글들이었어요. 실제로 정세운이라는 사람은 어떤가요? 

저는 객관적으로 생각하려고 많이 노력해요. 스스로를 생각할 때, 가지고 있는 것보다 더 크게 생각하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거든요. 예를 들면 1km도 못 달리는 체력인데 3km를 달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든지, 그런 면이 있어요. 그래서 어떤 것이든 객관적으로, 솔직하게 나를 바라보려고 하는 스타일이에요. 이것은 상황에 대해서도 같아요. 벌어지는 일들을 정확하게 바라보려는 노력을 하는 편인데요. 어떤 일이 벌어졌을 때 감정이 먼저 반응하는 경우가 있잖아요. 저는 그럴 때, 일단은 최대한 정확하게 상황을 파악하는 걸 중요하게 생각하는 스타일이에요.

글을 쓰고 곡을 쓰는 일은 어쩌면 자신에게 매우 집중해야 하는 일 같은데요. 스스로를 최대한 객관적으로 생각하려고 한다는 말씀이 묘하게 어긋나는 것 같으면서도 이해되기도 해요. 내게 집중하는 일과 객관성을 유지하는 일, 서로 어떻게 영향을 주고 받을까요? 

나에게 집중하는 것, 되게 좋은 말이에요. 근데 제 생각에는 너무 본인에게만 몰두하다 보면 놓치게 되는 가치도 많은 것 같더라고요. 상대방과 교류하고, 소통할 때 얻을 수 있는 가치도 많다고 생각하고요. 특히나 제 직업상 저는 그런 면에서 아주 조심해야 된다는 생각이 있어요. 연예인이라는 직업이 자칫 수동적이게 되기 쉽거든요. 이동이나 메이크업, 무대 세팅까지 다 도움을 받잖아요. 많은 스태프 분들이 고생해주시는 덕분인데요. 이때 객관적으로 생각을 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자칫 필요한 말을 듣기가 어렵게 되는 것 같기도 해요. 때문에 저는 연습생부터도 그런 부분에 있어 잘 깨어 있어야겠다고 많이 생각했던 것 같아요.

‘포기도 습관이라서’라는 챕터에 자꾸 포기하고 싶어지는 마음을 다잡는 이야기가 나오죠. 그밖에 바꾸고 싶어서 노력하는 것들은 무엇이 있나요? 

저는 되게 게으른 스타일이에요. 누구에게나 하기 싫은 것들이 너무 많잖아요. 이 얘기는 좀 가벼운데요. 제가 아침에 찬물 샤워를 해요.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한 뒤에 마지막으로 하는 건데요. 찬물 샤워 너무 하기 싫어요.(웃음) 그렇지만 계속 나한테 도전을 거는 거죠. 진짜 찬물을 틀기 직전까지도 너무 하기 싫고, 오늘은 따뜻하게만 샤워하고 마무리 끝내고 싶은 충동이 계속 일어나요. 그런데 에라 모르겠다, 하고 찬물을 틀면 성취감도 있고, 30초라도 찬물 샤워를 했다는 것이 하루에 좋은 영향을 많이 주더라고요. 기분도 좋아지고요. 책 쓰는 것도 그랬어요. 책 쓰는 게 큰 도전이었고, 글 쓰는 습관을 만드는 게 힘들었거든요. 쓰기를 시작하는 게 쉽지 않잖아요. 하지만 일단 앉아서 쓰려고 했죠. 그러면 뭔가를 끄적이게 되더라고요. 저는 그런 식으로 좋은 기운들을 찾으려고 애를 써요. 그런 것들이 제 하루에 좋은 영향을 준다고 생각해요.

되고 싶은 사람에 대해서는 “보이는 것에 속지 않는 사람. 보이지 않는 마음을 보려는 사람”(109쪽)이라고도 했어요. 

그렇게 되기가 쉽지 않아서 쓴 거예요. 눈에 보이는 게 힘이 크잖아요. 확 와 닿기도 하고요. 보이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너무 그것만 보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하는 거죠. 보이지 않는 부분에도 중요한 가치들이 많이 있는 것 같거든요. 저는 결국 뭔가 보이지 않는 부분에서 많이 감동을 받아요. 그래서 보이는 걸 보는 와중에 보이지 않는 것도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꿈에 대해 쓴 ‘나의 작은 꿈’도 참 좋았어요. 꿈을 특정 직업이나 명사로 쓰지 않고 “하루하루 평안한 시간을 누리며 내 그릇을 넓힐 수 있는 준비와 공부를 하는 것”(215쪽)처럼 문장으로 쓰신 부분이 좋더라고요. 

꿈에 대한 생각을 하다가 쓴 글이에요. 초등학교 때 꿈은 뭐였지, 생각하다보니 대통령(웃음)이라고 얘기하고 다녔던 기억이 나더라고요. 그러면 나는 왜 대통령이라고 말하고 다녔을까, 하고 계속 되물으면서 글을 썼어요. 어떤 꿈을 세우고, 그 꿈을 언젠가 이룬다고 했을 때를 생각하면요. 이루고 나서도 ‘이제 뭐 하지’ 이런 생각이 들 수 있잖아요. 그걸 이루고 난 다음에는 많이 허무할 것도 같아요. 그렇게 생각하니까 뭔가를 이루거나 실패하는 것을 떠나서 그저 매일 좋은 기분으로, 즐거운 기분으로 보낼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던 거예요.



음악이 너무 재미있어요

10대에 TV 오디션을 봤고, 세상에 알려졌죠. 이를테면 누군가가 꿈이라고 말하는 과정을 앞서 걸은 건데요. 그런 경험이 앞서 말한 것과 같이 꿈에 대한 생각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거든요. 

어쨌든 저는 좋든 나쁘든 제가 했던 모든 경험이 다 저의 생각에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는데요. 예를 들어 연습생들의 꿈은 데뷔예요. 그런데 저는 연습생 때부터 나는 데뷔가 꿈이 아니라고 생각했었어요. 오래 음악 하는 게 꿈이었기 때문이에요. 연습생을 하면서도 데뷔하고 나면 허무함을 느끼는 친구들, 다른 동기부여를 얻지 못하는 친구들도 많이 봤고요. 아마 그래서 그때부터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데뷔는 꿈을 이루는 게 아니라 시작되는 것이라고요. 이런 식으로 하나 딱 이룰 수 있는 꿈을 세우는 것보다 지속적인, 가치를 가져갈 수 있는 바람을 그때부터 생각하게 되지 않았을까 싶어요.

음악에 대한 깊은 애정도 느껴져요. 뮤지션으로서는 어떤 꿈을 갖고 있나요? 

사실 무엇을 보여드리려는 것보다 제가 음악이 너무 재미있어요. 공부를 하고, 그걸 음악으로 만들어보고, 또 새로운 도전을 해보는 게 엄청 재미있거든요. 더구나 오래 음악을 하려면 계속해서 공부를 해야 돼요. 그게 진짜 음악이 힘든 이유이기도 한 것 같은데요. 계속 무언가가 바뀌니까요. 어렸을 때 선망했던 뮤지션들, ‘존 메이어’처럼 영향을 많이 받은 가수들을 보면 무대 위에서 정말 자유로워요. 기타는 보지도 않고 치고, 그냥 몸으로 자유롭게 한단 말이에요. 그래서 초반에는 무작정 ‘저렇게 자유롭고 재미있게 음악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요. 자유롭고 재미있게 하려면 엄청나게 공부하고 연습해야 하더라고요. 그런 생각에서 해가 바뀌고 시간이 갈수록 경험치를 계속 획득하면서 나만의 독특한 음악들을 만들어내고, 그걸로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책을 안 쓰더라도 기록하는 일을 계속 하고 싶다고 하셨잖아요. 조금 더 본격적인 내 이야기, 또는 조금 더 긴 호흡의 글을 써볼 생각도 있으세요? 

당연히 뭐든 저는 열려 있고요. 이번에는 그냥 그때의 생각들이나 공감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간략하게 써 내려갔지만 길게도 충분히 할 수 있는 거니까요. 어쨌든 연습을 많이 해야 되지 않을까 싶어요. 그렇지만 저는 저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고 싶은 욕구를 가진 사람은 아니에요. 



지금 마음속에 가득 차 있는 것

이 책이 “언제든 들러 편히 쉴 수 있는 정원 같은 책이 되면 좋겠다”(6쪽)고 쓰셨잖아요. 어떤 마음을 담은 건가요?  

제가 지금 20대 중반인데요. 생활하면서 필요했던 게 정원이기도 하고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게 비슷할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깊은 이야기들을 편안하게 터놓고 싶을 때 이 책이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좋겠지만 그런 사람이 없을 수도 있고, 그럴 수 없는 상황도 있을 수 있잖아요. 책을 쓰면서 이 책에 담은 저의 생각에 공감을 해주는 분들이 얼마나 있을까 궁금했는데요. 공감하는 분들이 있다면 그 분들이 이 책에서 위안을 얻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근데 또 그냥 가볍게 “괜찮다”고 얘기하지 않고, 약간의 객관적인 시선에서 “괜찮지 않은 건 괜찮지 않은 거야, 근데 괜찮은 건 또 괜찮아”라고 말하는, 객관적으로 스스로를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그런 책이었으면 했어요.

요즘 생활하면서 정원이 필요했다는 말이 의미심장하게 들려요. 

저는 쉼의 공간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성격이 그렇기도 한데요. 생활하면서도 잘 충전을 하면서 생활해야 하는데 그런 걸 놓치게 되는 상황들이 많아요. 그래서 정원이 필요하다고 종종 생각해요.

마지막 부분에 독자 분들에게 질문을 하셨죠. 그 질문을 작가님께 드리고 싶거든요. 지금 이 순간에 마음속에 가득 담겨 있는 것, 무엇인가요? 

지금은 치킨이 너무 먹고 싶어요.(웃음) 저는 가볍게 생각하는 것도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굳이 매일 힘을 주면서 최고의 삶, 후회하지 않을 삶을 살아야 된다는 생각에 집중하면 그게 잘 안 되거나 무너졌을 때 더 힘들잖아요. 실패하더라도 그냥 ‘내일 다시 도전해보자’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요. 뭐, 일단 오늘은 치킨 너무 먹고 싶네요.(웃음) 요즘 하루하루가 되게 좋아요. 저는 타인과 소통하고 주변 사람들과 대화하는 데에서도 큰 즐거움을 느끼는데요. 요즘은 그런 하루하루라 너무 좋아요. 지금은 서로에 대한 정보를 너무 확인하기 쉬운 시대잖아요. 비교도 많이 하게 되고요. 지금 제 마음속에 가득 차 있는 건 그런 건 필요 없다는 생각이에요. 뭘 쟁취하려고, 돈을 더 많이 벌려고, 명예를 더 많이 얻으려고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요. 그보다는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서 저를 충전하고, 저를 잘 대하는 것, 건강한 생각들과 공부에 대한 관심이 지금은 가득해요.

이 인터뷰를 읽고 『아끼고 아낀 말』이 궁금해졌을 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제 인생 영화 중 하나가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거든요. 그 영화를 지인한테 추천을 받았었는데요. 보지 않고 있다가 3년 뒤에 갑자기 생각이 나서 봤어요. 그런데 한 10분 봤는데 별로 재미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껐죠.(웃음) 그리고 몇 달 뒤에 다시 생각이 나서 봤는데요. 너무 좋은 거예요. 그때 비로소 인생 영화가 된 거죠.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언젠가 살다가 이 책 생각이 번뜩 스친다면 그때 책을 보셔도 좋다는 거예요. 지금 안 읽고 싶은데 억지로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고요. 그냥 이런 책이 있음을 알고 계시다가 문득 찾아보셔도 좋을 것 같아요. 



*정세운

뮤지션. 음악을 만들고 연주하고 노래한다. 음악을 통해 행복을 찾고 음악을 통해 행복을 주는 사람. 10대 시절 TV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처음 대중 앞에 등장한 이후 2017년 첫 번째 앨범 <EVER>로 데뷔했다. 부드러운 목소리와 가창력은 물론 자작곡 능력까지 겸비하여 ‘싱어송라이돌’이란 수식어가 붙었다. 담백하고 진솔한 이야기를 담은 노래로 듣는 이들에게 공감과 위로의 순간을 선물하는 가수이자 계속해서 자신의 세계를 확장하고 성장하는 아티스트이다.




아끼고 아낀 말
아끼고 아낀 말
정세운 저
위즈덤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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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의학 전문의 반건호 “성인 ADHD는 양파 같은 질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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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시간 동안 ADHD는 아동의 영역으로 여겨졌다. 최근 ‘성인 ADHD’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면서 많은 정보를 접할 수 있게 됐지만, 확인되지 않은 사실과 오해도 혼재되어 있다. 성인 ADHD의 증상과 진단, 치료 방법과 사례 등 믿을 수 있는 정보가 필요한 시점이다. 『나는 왜 집중하지 못하는가』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오랜 진료, 연구 경험을 바탕으로 “성인 ADHD이 모든 것”을 이야기한다. 

반건호 저자는 37년 동안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로 일했으며, ADHD 전문가로서 한국형 ADHD 검사, 평가, 교육 도구를 개발했다. 국내 최초로 ‘성인 ADHD 교과서’를 발행했고, 2012년 ‘성인 ADHD 진료지침’을 발표했다. 현재 경희대학교 의과대학 소아정신과 교수로 일하고 있다.



주의력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최근 성인 ADHD에 대한 이해가 높아진 것 같은데요. 아직 부족하다는 생각도 드시나요? 

그렇죠. 이론적으로는 성인 ADHD가 국내 전체 인구의 3~5% 정도거든요. 우리나라 성인 인구를 4천만 명이라고 가정하면 3%는 100만 명이 넘죠. 이론상 100만 명이 넘는 사람이 있는 거예요. 그러면 실제로 진료 받는 인구는 얼마나 되느냐 하면, 2020년에 성인 ADHD 진단 받은 사람이 6500명 정도였어요. 그나마 10년 전하고 비교하면 6배가 늘어난 거예요. 10년 전에는 1000명 정도 됐어요. 2016년에 성인 ADHD도 국민건강보험이 적용되기 시작했는데, 보험 처리가 되니까 사람들이 진단을 받기 시작한 거죠. 그래서 진단 받은 사람의 숫자가 늘어난 건데, 어떻게 보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거예요. 그런데 폭발적인 게 아니라 그동안은 몰랐다가 찾아내는 것뿐이죠.

처음 성인 ADHD 환자를 만나셨을 때의 이야기도 쓰셨어요. 30여년 전의 경험인데, 그때는 성인 ADHD에 대한 인식이 거의 없을 때였죠? 

그렇죠. 이론들이 막 나올 때였고 구체적인 데이터가 없었거든요. 그리고 책에 쓴 것처럼, 그때 만났던 환자는 겉으로 드러나는 증상이 너무 많았어요. 고등학교 때는 학교에 안 가고 술 마시고 싸우고, 그게 문제가 돼서 입원했었고요. 성인이 되고 나서는 조현병 같은 증상이 나타나서 그걸 치료했었어요. 조현병이 그렇게 빨리 증상이 좋아지지 않는 병인데 많이 좋아졌어요. 그래서 이상하다고 생각했었죠. 조현병 치료하고, 알코올 중독 치료하고, 품행장애 치료하고, 우울증 치료하고, 그래도 문제가 계속 남으니까 그때 ADHD를 생각하게 됐어요.

환자의 학교생활기록부도 살펴보셨더라고요. 

어릴 때부터 쌓인 정보가 있어야 되는데 확인할 방법이 생활기록부 말고는 없었어요. 환자의 ‘궤적’을 보니까 초등학교에서 중학교, 고등학교로 갈수록 성적이 계속 떨어졌어요. 그런데 나중에 군대에 다녀와서 지방에 있는 2년제 대학을 갔다가 서울에 있는 좋은 4년제 대학으로 편입을 했거든요. 사람들이 처음에는 의심을 했어요. 이전에 거짓말도 하고 나쁜 짓도 했었으니까, 대학도 편법으로 간 거 아니냐고 생각한 거죠. 그런데 그 환자가 어렸을 때 지능 검사 했던 자료를 우리가 봤거든요. 지능이 굉장히 좋았어요. 그런데 왜 성적이 안 좋을까, 의아했죠. 그때는 성인 ADHD를 생각하지 않을 때라서 혹시 심한 우울증 때문에 그런 것 아닐까, 알코올 중독 때문일까, 어릴 때부터 술 담배를 해서 그런 걸까 생각했던 거예요. 그때 좋은 의사를 빨리 만났으면 조금 더 달라졌을지도 모르죠.



『나는 왜 집중하지 못하는가』에서 성인 ADHD에 대한 오해, 편견, 거짓 정보들을 하나하나 짚어주셨는데요. 그 중에서 가장 심각하게 생각하시는 건 무엇인가요? 

‘ADHD는 평생 지속되는 병’이라고 생각하잖아요. 일부는 맞는 이야기예요. 환자의 절반 정도는 좋아져요. 그런데 책에서 소개한 ‘제이콥 클롬스트라’처럼 평생 지속되는 경우도 있어요. 제이콥은 58세에 ADHD 진단을 받았거든요. 그러니까 평생 지속되는 경우도 있는 게 사실인데, 솔직히 말씀드리면 환자와 가족 분들이 받아들이기 힘드시니까, 우리(의료진)가 하는 일에 방해가 되기도 해요. 제대로 일을 하기 어려워지거든요. 또 다른 걸로는 ‘ADHD가 있으면 매사 집중하기가 힘들다’고 하는 오해가 있어요. 우리말로 ADHD가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잖아요. 주의력결핍이라고 하니까 주의력이 없다고 오해하는 것 같아요. 사실은 주의력에는 문제가 없고, 주의력을 활용해야 될 때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거거든요. 실제로 집중을 잘해요. 자신한테 필요한 일에는 집중을 잘하죠.

ADHD의 약물 치료 효과는 상당히 좋은 것 같아요. 

좋죠, 효과가 뛰어납니다. 소아의 경우에는 이 말이 모든 환자한테 맞고, 성인은 그렇지 않은데요. 제가 책에서 ADHD는 ‘양파’ 같은 질병이라고 했잖아요. 그래서 치료가 잘 안 돼요. 알코올 중독이 있을 수도 있고, 우울증이 있을 수도 있고, 심한 경우는 조현병처럼 보이기도 하거든요. 소아는 양파 같지 않고 꺼풀이 하나밖에 없어서 약을 썼을 때 효과가 좋아요. 어른은 그게 안 되죠. 만약 우울증이 있으면 우울증 치료가 우선이에요. 그렇게 다른 문제가 있거나, 아니면 성격적으로 굉장히 위축돼 있으면 치료가 어려운 것 같아요. (약물) 치료 효과가 좋은 건 틀림없어요.

63세에 성인 ADHD 진단을 받은 사례도 실려 있는데요. 이 분이 치료를 시작하신 뒤에 하신 말씀이 인상적이었어요.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다른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가 들리더라고요. 너무 놀라웠어요.”

정말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환자들이 약물 치료에 대한 경험을 여러 가지로 이야기하는데, 흔히 아이들이 말하는 건 ‘학교에서 선생님한테 칭찬 받았어요’라는 거예요. ADHD 환자는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데, 공감이라는 건 말 그대로 뭔가를 공유한다는 거거든요. 엘리베이터를 탔다면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가지 않게 떠들지 말아야 하고, 아는 사람이면 인사를 해야 하고, 혹시 저 사람이 나를 해치지는 않을까 경계도 해야 되는 거예요. 

그런데 그 63세의 환자 분의 경우에는, 엘리베이터를 탔을 때부터 ‘내리면 무엇을 할지’ 쫙 생각하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전혀 공감이 될 수가 없죠. 옆 사람이 인사를 해도 못 알아들을 거예요. 그 상황에서의 주의력이 부족한 거죠. 자기 머릿속에 있는 것에만 집중하면서 평생을 살아오신 거예요. 앞에서 제이콥 클롬스트라 이야기를 했는데, 그 사람이 쓴 책의 이름이 『불꽃놀이』예요. 계속 (머릿속에서) 불꽃이 터지는 거죠. 하고 싶은 거, 해야 되는 거, 그런 것들이 계속 생각나는 거예요. 다른 사람한테 전혀 집중이 안 되고요. 특히 공부할 때는 더 하겠죠. 



동기 부여가 중요해요

책에 실린 다양한 사례들을 보면, 나의 자녀나 배우자가 ADHD라는 사실을 몰라서 오해가 깊어지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왜 저렇게 행동하는지’ 모르니까 이해해 주지도 못하는데요. 그렇다면, 자신이 ADHD라는 것을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는 게 좋은 걸까요? 

그건 사회의 분위기에 따라 다를 것 같은데요. 미국의 경우에는 ADHD 환자를 지원해주는 시스템이 마련돼 있어요. 예를 들면 SAT 시험을 볼 때 시간을 더 주고요. 진단서를 제출하면 시험 볼 때 교실을 따로 배정해주기도 해요. 그리고 100명 중에 5명이 ADHD라면 치료 받는 환자 수가 5명 가까이 돼요. 보장이 다 되니까요. 일본의 경우도 ADHD는 특수교육을 받게 해주고, 여러 가지 혜택을 줘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아직 교육부에서 마련한 혜택은 없을 거예요. 그리고 일본은 성인 ADHD에 대한 책도 많고, 자신이 ADHD라는 사실을 알리라는 쪽이에요. 미국은 더할 나위 없죠. 우리나라는 아직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 ADHD의 속성 때문에 문제가 된다면 자신이 ADHD라는 걸 알리는 게 나을 것 같긴 해요. 내가 왜 이러는지 상대가 이해하지 못 하니까요. 그런데 우리 사회가 그런 분위기로 바뀔지는 잘 모르겠어요.

치료 과정에서 가장 큰 어려움이 되는 것은 무엇인가요? 

모티베이션(motivation, 동기 부여)이 중요한 것 같아요. 모티베이션이 있는 사람이라면 치료가 그렇게 어렵지 않아요. 자기가 진짜 (치료를) 원해서 온 거라면. 그런데 가족이 억지로 데리고 왔다든지, 그런 경우에는 일단 모티베이션이 없어서 치료가 잘 안 돼요. 저는 개인적으로 치료라는 말을 쓰기까지 오래 걸려요. 60일 가까이 걸리는데요. 섣불리 치료를 시작하면 병원에 대한 불신만 늘고 그러다가 병원에 안 오기 때문에, 처음에 많은 시간이 들더라도 계속 병원에 오는 게 낫다는 생각에서 그렇게 해요. 그런데 모티베이션이 좋은 사람은 그렇게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고 바로 치료가 시작돼요.

책의 내용에 따르면, 성인 ADHD가 유전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 같아요.

굉장히 많죠. 사이언스지에 유전자 지도에 대한 내용이 실렸는데, 유전 성향 중에서 가장 강력한 요인이 ‘키’라고 해요. 그 다음으로 유전이 강한 요소가 ADHD예요. 여기에는 여러 가지 생각할 거리가 있어요. 예를 들어서 유방암은 대개 유전되거든요. 그러면 유방암의 유전율이 더 높은 거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는데, 유전율을 계산할 때는 ‘그 유전자를 갖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느냐’를 따지는 거예요. 유방암 유전자를 갖고 있는 사람은 100% 유전이 되지만, 모든 여성이 그 유전자를 갖고 있는 건 아니거든요. 유전자를 갖고 있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지 않아요. 전체 집단이 작은 거죠. 그런데 일반적으로 ADHD는 전체 아이들의 7~8% 정도니까 풀(pool)이 높은 거예요.



성인 ADHD 부모가 소아 ADHD 자녀를 양육할 때,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대개 부모들은 자녀가 자기의 약점을 닮는 걸 싫어해요. 그래서 자꾸 그걸 없애려고 하는데요. 그러다 보면 좋은 점을 볼 시간이 없어요. 아이가 ADHD 속성을 갖고 있다면, 그것 때문에 부모 자신이 실패했다고 생각해서 없애려고 하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그 속성을 성공적으로 쓸 수 있는지 연구하시는 게 나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양육과 치료를 분리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예를 들어서, 소아 당뇨가 있으면 치료는 병원에서 하잖아요. 부모는 집에서 할 수 있는 치료 행위를 병원에서 배워 와서 하고, 양육은 양육대로 하고요. 그렇게 치료와 양육이 분리가 되는데, ADHD는 잘 안 돼요. 어디까지가 병이고 어디부터가 양육의 소관인지, 불분명한 거죠. 아마 그 부분이 어려우실 거예요. 자녀가 ADHD인데 치료를 받지 않으면서 양육을 하신다면 잘 안 되실 거예요. 치료해야 될 부분까지 양육의 영역으로 넣으려고 하면 잘 안 되는 거죠. 병원과 나눠서 해야 돼요. 

처음 성인 ADHD 진단을 받으면 대부분 어떤 반응을 보이나요? 

그것도 모티베이션에 따라 달라요. 모티베이션이 있어서 찾아온 사람은 ‘그렇죠? 나 ADHD 맞죠?’ 하는 반응이고요. 모티베이션이 없이 다른 사람에 의해서 불려온 사람은 잘 수긍하지 않아요. 그러면 왜 그 사람이 수긍하지 않는지, 그것부터 찾아내야 돼요.

성인 ADHD 진단을 받은 이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으세요? 

제가 진단을 한다면, 이 병을 받아들이든 아니든 우리는 언제든지 도와줄 거라고 말하겠죠. 원한다면 지금 당장 돕기 시작할 테고, 아니라면 나중에 생각이 바뀌면 그때 도와줄 수도 있다고요. 제 생각에는 ADHD는 어쨌든 병이거든요. 그런데 맹장 수술이나 결핵 같은 병과 달리 제가 적극적으로 끌고 갈 수 없어요. 예를 들어서 맹장이 터졌다거나 결핵균이 발견됐다면, 환자나 가족들이 바로 치료를 시작하는 데 동의하겠죠. 그런데 ADHD는 달라요. 왜 병인지 설명을 해야 되고 준비가 되면 치료를 시작하는 거예요. 환자가 도움을 받을 필요를 느끼고 준비가 되었을 때, 그때 시작하는 거죠.



*반건호

37년 동안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로 일했으며, 그중 20년 이상을 자폐스펙트럼장애와 ADHD 등 신경발달장애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1997년부터 현재까지 경희대학교 의과대학 소아정신과 교수로 있으며, ADHD 전문가로서 한국형 ADHD 검사, 평가, 교육 도구를 개발하였다. ADHD 영역이 아동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님을 현장에서 절실히 느끼면서 성인 ADHD로 ADHD의 개념을 확장시켰다. 2009년 국내 최초 '성인 ADHD 교과서'를 발행한 책임저자이며 2012년 '성인 ADHD 진료지침'을 발표하여 성인에게 맞는 치료 기준을 마련하였다. 세계 ADHD협의회 회원으로서 해외 학술지에 ADHD 관련 논문을 30편 이상 발표하였으며 풍부한 진료경험과 깊이 있는 연구를 바탕으로 국내외 학회에서 성인 ADHD 연구의 신뢰성을 인정받은 국내를 대표하는 ADHD 전문가이다.



나는 왜 집중하지 못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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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치규 소설가 “식물처럼 연애를 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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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을 적확하게 이해한다는 건 가능한 일일까? 2021년 조선일보와 서울신문 신춘문예에서 등단한 소설가 윤치규의 첫 단편집 『러브플랜트』에는 사랑하는 상대를 백 퍼센트 이해하는 ‘좋은 남자’가 되고 싶지만, 뜻하지 않게 자꾸 어긋나는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어딘지 낯설지 않은 이들의 어설픈 모습은 작가 자신의 단면이기도 하다. 스스로를 “낮에는 은행에서 일하고, 밤에는 소설 쓰는 30대 이성애자 남성”이라 칭한 그는 앞으로도 당사자성이 있는 소설을 쓰고 싶다고 말했다.



잘 쓰는 것보다 오래 쓰고 싶어 

은행에서 가계 대출 업무를 담당하신다고요. 오늘은 쉬는 날인가요?

네, 휴가를 냈어요. 직장 동료들은 인터뷰 가는 줄 모르고요. 그냥 쉬는 줄 알고 있어요(웃음).

신춘문예에 당선되기 전까지 직장과 합평 수업 양쪽에서 ‘독특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았을 것 같아요. 소설과 금융은 양극단의 일처럼 느껴지니까요.

직장에서는 은근한 무시가 있었어요. 자격증 따고 승진 시험 준비해야지, 무슨 소설이냐는 식이었죠. “대리님, 소설 쓴다면서요?”라는 질문을 받으면 이따금 부끄럽고, 때로는 모욕감이 들기도 했고요. 반대로 합평 모임을 가면 “상근직으로 근무하면서 소설까지 쓰다니 대단하다”는 반응이 많았어요. 종종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느낌이 들었던 것 같아요. 요즘은 독자와 작가 사이의 간극이 좁은 시대이다 보니 회사에 다니면서 등단을 준비하시는 분들이 많잖아요. 그분들께 좋은 롤모델이 되고 싶어요. 

지금은 어때요? 평가가 달라졌나요?(웃음)

직장에서 “너는 꿈이 있는 친구였구나, 예술가였구나”라면서 추켜세우실 때가 많아요(웃음). 특히 연세가 높으신 상사분들은 신춘문예를 마치 과거급제처럼 생각하시더라고요. 등단이 직장 생활에도 큰 도움이 되고 있죠.



신춘문예 2관왕에 올랐어요. 계속 낙방해서 마음을 내려놓던 차였다고요.

문학과지성사에서 합평 수업을 들으면서 처음 소설을 배웠어요. 5년 정도 준비했는데, 두 번째 해부터 최종심에 올라가다 보니 계속 기대가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계속 매달렸는데요. 매번 최종심에 낙방하면서 ‘내가 넘지 못하는 벽이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던 차였어요. 마음을 완전히 놓고 있을 때 당선이 되었죠.

사관학교를 나와 장교로 근무했고, 지금은 은행원으로 일하고 있죠. 이력이 독특한데, 소설은 언제부터 쓰기 시작했나요?

어릴 때부터 유일한 취미가 소설을 읽고 쓰는 거였어요. 인터넷에 추리소설을 연재하기도 했는데요. 부모님이 갑자기 돌아가시고 나서 추리소설 쓰는 걸 그만뒀어요. 원래 소설 속 인물을 굉장히 쉽게 죽였는데, 이제 누군가가 죽는 설정은 도저히 쓸 수가 없겠더라고요. 그러면서 한번 진지하게 소설을 써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고, 단편을 습작하면서 앞으로 소설 쓰는 삶을 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군대도 소설을 쓰려고 그만두었죠. 직업군인으로 일하면서 습작할 시간을 내기가 너무 힘들더라고요. 4시에 문을 닫는 은행에 취직하면 소설을 더 많이 쓸 수 있을 것 같아서 은행원이 됐어요. 은행원은 4시부터 개인 업무가 시작된다는 걸 몰랐죠(웃음).

등단을 준비하던 시간은 어땠어요?

합평 모임에서 만난 문우들이 다 좋은 사람이어서 즐거웠어요. 저는 소설가가 되는 데 제일 중요한 건 좋은 문우를 만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좋은 문우는 내 소설을 읽고 긍정적인 이야기를 해주는 사람이죠. 독설하는 사람은 최대한 멀리해야 해요. 글 쓰기는 괴롭고 힘든 일이잖아요. 습작생일 때는 자꾸 소설을 쓰고 싶게 만드는 게 중요한데, 소설을 나쁘게 평하는 사람을 만나면 점점 더 쓰기 싫어지거든요. 저는 문우들의 피드백을 통해서 정말 많이 배웠어요.

<조선일보>에 연재한 ‘일사일언’ 에세이에서 “직장생활을 병행해야 더 열심히 소설을 쓰는 부류”라고 했어요. 어떤 의미인가요?

내가 소설을 잘 쓰는지, 내 소설이 좋은지에 대해 자기확신이 부족한 사람에게는 도망칠 구석이 필요해요. 저는 방어기제가 있어야 더 즐겁게 소설을 쓸 수 있더라고요. ‘내가 부족한 건 전력투구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생각할 수 있으니까요. 만약 전업작가를 지향했다면 지쳤을지도 몰라요. 제 성격상, 어떤 작품이 독자의 호응을 얻는지 분석하고, 트렌드를 따라하려고 노력했을 테니까요. 아마추어리즘으로 즐겁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썼기 때문에 좋은 결과가 있었던 것 같아요. 잘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오래 쓰는 것도 중요하잖아요. 무대에서 내려오지만 않으면 누군가는 제 소설을 읽어줄 거라 생각해요.



사랑이지만, 결국 관계에 대한 이야기

「일인칭 컷」은 비혼식을 계획한 여자친구 ‘희주’와 ‘나’의 이야기입니다. 얼핏 평등한 것 같아 보이지만, 사실 미묘하게 다른 지점에 서 있는 남성과 여성의 위치가 선명하게 보이는 점이 인상깊었어요.

한창 미투 운동이 활발했고, 회사에서도 사내성폭력 이슈가 많았던 때에 처음 썼던 작품이에요. ‘남성으로서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호기롭게 소설을 쓰기 시작했는데 쓰면 쓸수록 나는 ‘아무 이야기도 할 수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처음 의도와는 완전히 다른 결말이 나왔죠. 사실 결말을 쓰면서 너무 아쉬웠어요. 어떤 사건을 겪고 남자 주인공이 변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결국은 변하지 않는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더라고요.

평소에도 그런 성찰을 할 계기가 있었나요?

저는 누나가 세 명 있는데요. 누나들에게 늘 부채감이 있었어요. 가부장적인 집안에서 차별받는 모습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면서 ‘나는 의식있는 남자야, 나 정도면 괜찮지’라고 생각했거든요. 분명 젠더 문제에 있어서 어느 정도 이해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일인칭 컷」을 쓰면서 비로소 이 문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의식이 있는 것과 실제로 이해하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는 걸 알게 된 거죠.

「완벽한 밀 플랜」은 우울증을 앓고 있는 ‘현영’을 자신이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결혼을 추진한 남성이 등장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불가능한 일이었다는 걸 깨닫죠.

사랑을 할 때 흔히 그런 착각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상대방의 마음이 내 마음과 같기를 바라고, 그게 디폴트로 받아들여질 거라고 생각하는 거죠. 하지만 결혼을 해도 상대와 닿을 수 없는 간격이 있고,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 있잖아요. 상대방이 나의 기대에 맞춰 행동해주길 바라는 건 욕심일 뿐인데 그걸 사랑이라고 착각하는 상태에 대해서 써보고 싶었어요.

「러브 플랜트」에는 이혼한 남녀가 등장합니다. 꽃집을 운영하는 남자 주인공 ‘백현준’이 ‘고백할 때 제발 꽃 사지마 공포증’을 앓고 있다는 설정이 재미있었어요.

제가 근무하는 은행 앞에 실제로 꽃집이 있었거든요. 그곳을 지날 때마다 한 번쯤 꽃집에서 일하는 남자를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을 써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요. 어느 날 트위터에서 “제발 고백할 때 꽃 선물하지 말라”는 트윗을 보게 된 거죠(웃음). 요즘 ‘고백으로 혼내주기’라는 말도 있잖아요. 저는 그 말을 맨 처음 들었을 때 충격을 받았어요. 이 소설은 좋아한다는 고백도 누군가에게는 폭력이 될 수 있다는 걸 깨닫고 시작하게 된 이야기였죠. 사실 제 소설에 나온 남자들은 모두 육식남이었던 것 같아요. 마초적이고 학습된 남성성이 있죠. 남자라면 으레 먼저 고백해야 하고, 완벽한 밀 플랜을 짜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요즘은 ‘초식남’이 대세라고 하는데 저는 그걸 뛰어넘어서 식물의 상태로 있는 게 제일 안전하고 맞는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어요(웃음). 

식물의 방식이요?

육식동물이 목표를 정하고, 사냥하는 방식이라면 식물은 다르잖아요. 묵묵히 기다리고, 한 자리에 머물러 있고 어디선가 날아오는 벌, 나비, 바람 같은 걸 통해서 번식하고요. 지금의 남성성은 식물과 같은 방식이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주인공을 꽃집 주인으로 설정했어요. 



세 개의 단편 모두 연애의 뒷면, 실패한 연애담을 다루고 있어요. 작가님의 지난 연애들은 어땠나요?

황지우 시인의 시 ‘뼈아픈 후회’ 중에 이런 구절이 있죠. “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웃음). 소설 속 주인공들처럼 저도 자기중심적이고 미숙한 연애를 많이 했어요. 나만의 연애 플롯을 설정해 놓고, 상대가 거기에 맞지 않으면 인연이 아니라고 단정하곤 했죠. 상대방을 사랑한 게 아니라, 연애를 하고 있는 나의 몰입 상태에 더 신경을 썼던 것 같아요.

책 말미에 실린 에세이에서 “쓰고 싶은 게 있다면 역시 연애뿐이다”라고 했어요. 이유가 무엇인가요?

저는 당사자성이 있는 소설만 쓰거든요. 『러브플랜트』에 실린 세 단편도 ‘30대 중반의 이성애자 남성’의 정체성을 가지고 무엇을 쓸 수 있을까 고민한 끝에 나온 발화였어요. 저는 역시 연애 이야기가 제일 재밌어요. 요즘은 이성애자 남성이 주인공인 연애 이야기가 드물기도 하고요. 연애라고 표현했지만 실은 ‘관계’죠. 저는 타인과의 관계가 늘 어려운 사람이라서 앞으로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해 더 쓰고 싶어요.

출간을 앞두고 버킷리스트를 쓰셨다고요. 어떤 것들이 있었나요?

첫 번째는 김연수 작가님, 황정은 작가님, 강경석 평론가님께 성덕의 느낌으로 책을 보내드리는 거였어요. 그래서 출간되자마자 세 분께 메일을 보냈는데 모두 흔쾌히 받아주셨어요. 다음으로 인터넷서점 판매지수 5천 달성하기, 2쇄 찍기, ‘문장의 소리’ 팟캐스트 출연하기, 마지막으로 <채널예스> 인터뷰가 있었습니다(웃음).

마지막 항목은 급조된 거 아닌가요?(웃음)

진심이고요. 사실 <채널예스> 인터뷰를 하게 될 줄 몰랐어요. 어느 정도 연륜이 있는 작가들만 나올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이번 책이 아니더라도 첫 정식 소설집이 나오면 꼭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일찍 이루어지다니, 영광입니다(웃음).

남은 버킷리스트 중 반드시 이루고 싶은 게 있다면요?

2쇄 찍기! 출간 전에는 몰랐는데, 2쇄 찍는 게 정말 어려워요. 여러분, 꽃피는 봄에 『러브플랜트』를 읽어주세요. 연애세포가 되살아날 거예요.

달달한 연애소설이라고 하기엔 뒷맛이 씁쓸한 걸요?

분명 초콜릿인데요. 카카오 100% 초콜릿입니다(웃음).



*윤치규

2021년 <서울신문> 및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동시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데뷔 후 현대문학, 악스트, 문장 웹진 등 문예지에 꾸준히 작품을 발표하고 있다. 낮에는 은행에서 일하고 밤에는 소설을 쓴다. 재능보다 열정으로 쓰는 편. 사회화된 INTP.




러브 플랜트
러브 플랜트
윤치규 저
자음과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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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개이빨 “먹는 얘기가 제일 재미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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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 <먹는 존재>의 작가 ‘들깨이빨’의 첫 에세이집 『나의 먹이』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는 ‘꿔보’일 것이다. 의미가 아리송하면서도 귀여운 이 단어는 ‘꿔다 놓은 보릿자루’의 준말. 작가는 자신의 정체성을 꿔보라고 규정하며 “멋짐을 뽐내는 사람들” 사이에서 마음을 다치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 첫 번째 전략은 바로 “좋은 먹이를 싸게 확보”하는 것. 음식을 주제로 이보다 더 웃긴 에세이를 쓸 수 있을까. 작가가 즐겨 먹는 12가지 식재료에 담긴 에피소드를 읽다 보면 저절로 꿔보의 매력에 사로잡히게 된다. 



오래 살아남으려면, 역시 꿔보다 

데뷔 후 처음으로 얼굴을 공개하시는 거죠? 출판사의 요청인가요, 작가님의 용기인가요?

둘 다예요(웃음). 책을 만드는 일은 굉장히 치열하고 어려운 작업이잖아요. 여기서 작가의 마지막 역할이 있다면 최전방에 나가 열심히 책을 홍보하는 거라고 생각하는데 얼굴을 공개하지 않으면 너무 많은 제약이 생기더라고요. 또 마흔 살이 넘으니 귓가에 저승사자 숨결이 들리는 것 같아요(웃음). 주변에 여러 친구, 지인들이 아프고 불시에 세상을 떠나는 일들을 여러 차례 겪다 보니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그동안 두려워했던 것들을 깨고,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보고 싶어요.

책을 받아본 소감이 어때요? 

머릿속에 있던 막연한 그림이 부피와 질감을 가진 물체로 탄생하는 감동은 만화 단행본과 비슷하지만, 에세이집이 훨씬 더 감격스러운 것 같아요. 책을 받자마자 그 자리에 선 채로 처음부터 끝까지 단숨에 읽었어요. ‘이게 내가 쓴 글이 맞나’ 싶을 만큼 몰입해서 읽게 되더라고요. 그렇게 퇴고를 많이 했는데도 여전히 고칠 게 보인다는 건 절망스러웠지만요(웃음).

꿔보라는 화자를 내세워 먹고 사는 이야기를 펼쳐나가는 게 재미있었어요. “셀 수 없이 많은 이들이 자신의 멋짐을 크게 떠드는 이 세상에서 죽지 않고 오래 살아남으려면, 역시 꿔보다(18쪽)”라는 문장이 기억에 남아요. 꿔보(꿔다놓은 보릿자루)라는 캐릭터는 어떻게 떠올렸나요? 

평생 함께한 자아였어요.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늘 말 한 마디 못하고 돌아오는 답답한 날이 많았거든요. 이 성격을 타개해보려고 없는 사교력을 짜내서 활발한 연기를 하거나, 개그를 치려고 노력하다가 처참한 결과를 얻었죠(웃음). 그러면서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는 생각을 갖게 됐고, 꿔보라는 정체성을 받아들이고 살았어요. 자연스럽게 그 자아가 글 속에서 ‘변사’ 혹은 ‘나레이터’의 역할을 하게된 것 같아요.



자신이 꿔보인지 알아보는 ‘꿔보 테스트’도 흥미로웠어요. 각 항목에 체크를 하다 보니, 꿔보가 되는 게 결코 쉽지 않더라고요. 작가님이 생각하시는 꿔보의 중요한 자질은 무엇인가요? 

요즘 유행하는 MBTI를 의식하고 만들었습니다(웃음). 아무래도 기본적인 욕구가 흐릿한 사람들이 꿔보에 적합하지 않을까 싶어요. 누가 뭘 강하게 하자고 해도 큰 불만 없이 따르는 사람이요. 그런데 꿔보가 쉽게 될 수 없는 이유는 욕구가 흐릿한 사람이라 해도, 그에 대한 불만을 가진 경우가 많기 때문인 것 같아요. ‘나도 주관이 있었으면 좋겠다’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싶다’는 것도 욕구잖아요. 사실 저도 꿔보 테스트에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작가님도 통과하지 못했다니, 반전인데요. 

저도 언젠가는 남들이 나를 알아봐 줄 거라는 욕망이 있으니까요. 그래서 이렇게 나와 인터뷰도 하는 거고요. 진정한 꿔보는 득도한 종교인쯤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얼굴 가득 평온함을 품고 계신 스님이나 수녀님들을 길가에서 보면 ‘저 분들이 꿔보가 아닐까’ 생각해요. 옷도 약간 보릿자루 느낌이 나고(웃음).

책을 읽으면서 어디까지가 픽션일지 궁금했어요. 매일 사람이 없는 무덤가에서 도시락을 먹거나, 채식주의자인 짝사랑남에게 거절당한 후 그가 좋아하는 반려동물의 그로테스크한 간식(양 뇌, 오리 혀, 캥거루 꼬리 등)을 주문해 먹으려는 이야기 등을 읽으면서요. 만화적인 요소일 거라 생각했는데요. 

다 사실입니다(웃음). 시간 순서나 이야기의 배치가 달라진 부분은 있지만, 기본적으로 책에 실린 모든 내용은 다 제 경험이에요. 오히려 더한 내용도 많았는데 편집자님이 ‘이건 너무 심하다’고 말씀해 주셔서 삭제되기도 했죠. 허구의 내용을 넣어볼까 생각하기도 했는데, 왠지 양심에 찔리더라고요. 에세이니까 진실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솔직한 만큼 재미있고 통쾌하게 읽었어요. 그 간식들은 어떻게 되었나요? 

궁금해서 맛을 보긴 했는데 못 먹겠더라고요(웃음). 나머지는 동물 친구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열등감은 자연스러운 감정이니까 

웹툰 작가로 사는 열등감, 불안감에 대한 문장이 많았어요. 어떤 심리적 어려움을 겪으셨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수입이 불안정하고, 심지어 점점 끊겨간다는 게 저를 옥죄는 가장 큰 요인이었던 것 같아요. 그 와중에 주변의 동료들은 찬란하게 살아가는 듯한 모습을 보면서 마음을 다스리기가 쉽지 않았어요. 그러다 보니 점점 재능에 대한 회의가 들더라고요. 저는 원래 제 작업물에 대한 자신감이 적은 편이었는데, 이게 날이 갈수록 심해지면서 언젠가부터 내 작업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까지 들더라고요. 

하지만 그걸 해결하기 위해 어떤 행동을 실천하지는 않았어요. 대신 재능을 회의하기만 하는 아주 게으른 방식으로 스스로를 소진시켰죠. 온종일 쓸모 없는 생각으로 정신력을 공회전시키다 보니 자존감이 점점 더 떨어졌어요. 제가 하는 일의 태생적인 조건 때문에 더 불안했던 것 같아요. 

웹툰은 대중의 평가가 실시간으로 보이고, 그게 곧장 생계와 연결되는 일이죠. 

그래서 일체의 반응을 보지 않았어요. 저처럼 비관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은 작품에 대한 칭찬을 받아도 불안하거든요. ‘저 관심이 언제 외면과 무관심으로 변할까’라는 두려움이 엄습하니까요. 오로지 비난만 나에 대한 진실된 평가라고 느껴졌죠. 이걸 마음에 담아두면 너무 힘드니까 어떤 반응도 보지 않으려고 외면했는데, 그렇게 하니 또 고립감이 심해지더라고요. 특히 저는 친한 작가 동료가 하나도 없었거든요. 작품에 대한 어떤 피드백도 받지 못한 상태에서 만화라는 노동집약적인 일을 계속 하니까 언젠가부터 ‘내가 이걸 왜 하고 있지? 일의 의미가 뭐지?’ 라는 생각이 들어서 괴로웠어요.

책의 헤드 카피가 ‘만화가가 제안하는 열등감을 치료하는 기적의 밥상’이었어요. 지금은 어떤가요? 견디는 방법을 찾으셨을지 궁금해요. 

임시적으로 결론을 내렸어요. 무인도로 들어가서 혼자 살지 않는 한, 열등감에서 도저히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로 했죠. 대신 그 감정이 오래 머무르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러기 위해서 제가 찾은 방법은 내 직업과 다른 방식으로 몸을 움직이는 거예요. 대표적인 게 ‘농사’죠. 농사일을 할 때는 정말 아무 생각이 안 들거든요. 또 몸은 고되고 힘들지만, 내가 움직인만큼 일의 성과가 그대로 보이는 데서 오는 심리적 안정감이 엄청나요. 며칠 전에도 농사 짓고 왔어요(웃음). 올해는 감자를 심었어요. 



대부분 ‘식재료 헌터’로 살아요 

작가님의 힐링푸드는 무엇인가요? 

역시 빵만한 게 없죠. 저는 빵이야말로 인간 기술의 정수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건강은 하나도 생각하지 않고 ‘이 음식을 입에 넣었을 때 어떻게 하면 사람의 쾌락을 최대치로 만들까’만 생각해서 나온 맛인 것 같아요. 특히 디저트는 모양이 너무 아름답죠. 형편없이 망가질 게 예정된 예술품이라는 점에서 정말 호화스럽게 느껴져요. 빵을 볼 때면 가끔 ‘사치품을 소비하는 게 이런 이유 때문인가?’라는 생각이 들어요.

음식을 주제로 한 작품이 많은데요. 평소 음식에 대해 자주 생각하는 편인가요? 

밥 먹으면서 다음 끼니를 생각하는 타입의 사람이에요(웃음). 폭식을 할 때는 다음 끼니를 기대했고, 절식을 할 때는 ‘이거 먹으면 안 되는데, 다음 끼니는 어떻게하면 적게 먹을 수 있을까’ 하고 고민했죠. 음식에 대한 생각을 매일, 매 순간 하는 것 같아요.

트위터의 소개글도 ‘식재료헌터’예요. 

저는 일하지 않는 시간의 대부분은 ‘식재료헌터’라는 정체성으로 사는 것 같아요(웃음). 아보카도 싸게 파는 곳 없는지 찾아다니고, 재래시장을 절대로 지나치지 못하죠. 도서관을 가는 길에 재래시장이나 농산물을 파는 마트가 보이면 반드시 그쪽으로 꺾어서 한참 구경을 해야 하고요. 동네에 새로운 중저가 마트가 생기면 얼른 달려가서 세일할 때 식재료를 잔뜩 사와요. 그게 가장 즐거운 시간이에요. 저는 먹는 얘기가 제일 재미있어요.

작가님께 음식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세 가지로 요약되는데, 저에게 음식은 ‘쾌락, 형벌, 죄악’이에요. 음식은 가만히 앉아서 입에 넣었을 뿐인데 확실한 행복이 느껴지잖아요. 혼자서도 얼마든지 먹을 수 있고요. 이만큼 편리한 쾌락은 없는 것 같아요. 반면 이게 무시무시한 형벌처럼 느껴질 때도 많아요. 맛있는 음식을 계속 먹으면 체중 증가나, 건강 악화 등의 대가가 반드시 따라오잖아요. 늘 노심초사하며 그 대가를 신경 써야 하는 게 굉장한 굴레죠. 

또 결국 우리가 먹는 모든 음식은 사실 다른 누군가를 죽여서 만든 거잖아요. 그런 점에서는 거대한 죄악이라고도 할 수 있죠. 요즘 대체육이 시장이 점점 커지고 있고 대체 계란, 우유 등이 나온다는 소식도 들리는데요. ‘드디어 인류가 과학기술로 이 카르마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건가?’ 라는 생각이 들어요.

작가님에게 가장 유용한 식재료가 있다면요. 

계란이요. 제일 싸고, 깔끔하게 먹을 수 있는 단백질이라서 좋아요. 고기를 조리하면 반드시 기름이나 핏물을 닦아야 하는 등 귀찮은 일거리가 생기는데, 계란은 삶아서 껍질만 까면 남김없이 먹을 수 있죠. 유제품 중에서는 치즈를 제일 좋아해요. 치즈는 한국인에게 제2의 김치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음식에 곁들이면 무엇이든 다 맛있어지잖아요. 지방 중에서는 견과류를 자주 먹는데, 집어먹기만 하면 된다는 미덕이 있죠. 특히 캐슈넛을 너무 좋아해서 만약 제가 나라를 만들면 법정 화폐는 무조건 캐슈넛으로 할 거예요(웃음). 물물교환을 할 때 사람들이 저에게 모두 캐슈넛을 줬으면 좋겠어요.

에필로그 마지막 문장이 “이만하면 엄청 복 받은 인생이네요(215쪽)”였습니다. 글을 쓰면서 달라진 생각이 있을까요? 

열등감이 많이 사라졌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글을 쓰다 보니 제가 열등감을 느낄 처지가 아니더라고요. 다음 끼니는 뭘 먹을까 고민하지, 굶주리는 게 아니잖아요. 이렇게 글을 쓰고 책을 낼 수 있는 기회도 있고요. 사실 글 쓰는 게 굉장히 고된 작업이었는데 중독성이 있는 것 같아요. 앞으로도 계속 글을 쓰고 싶어요.



*들개이빨

구석에서 글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 펴낸 책으로 『먹는 존재』 시리즈와 『족하』, 『홍녀』가 있습니다. "어릴 적부터 만화가가 되고 싶었지만 선뜻 용기를 내지 못하고 방황하다 어영부영 고시촌에 흘러들어 갔습니다. 큰 점수 차로 연거푸 시험에 낙방하고 고시촌을 떠나 방송국과 사교육 업계를 전전한 끝에 인터넷 폐인이 되었습니다. 블로그 및 익명게시판 곳곳에 뻘글과 낙서를 올리며 현실 도피를 하던 중 불현듯, 진지하게 만화를 그리고 싶어졌습니다. 언젠가는 정말로 진짜 멋진 만화를 그릴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고, 오늘도 어딘가의 구석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끊임없이 먹을 것을 생각하면서요."




나의 먹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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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은 영화감독 “ 20년 동안의 기록, 그리고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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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영화를 20년 간 사랑한다는 건 무엇일까? 아마 영화와 ‘내’가 함께한 시간을 기쁘게 겹쳐보는 일일 것이다. 그렇게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를 아끼는 마음이 모여, 아카이빙북이 발간됐다. 이번 책에는 원본 시나리오, 스토리보드, 스틸 컷 등 귀중한 자료와 함께, 권김현영, 강유가람, 복길 등 영화를 사랑한 필진들의 칼럼이 수록됐다. 태희, 혜주, 지영, 비류, 온조 그리고 고양이 티티의 안부를 물으며, 정재은 감독과 영화와 함께한 시간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20년의 기록이 모이다

<고양이를 부탁해>는 2021년 디지털 리마스터링을 거쳐 20년 만에 관객을 만났고, 올해 크라우드펀딩으로 아카이빙북이 발간됐습니다. 감독님에게도 각별한 일이었을 것 같아요.

영화와 관련하여 두 가지 큰 사건이 있었어요. 하나는 필름 영화를 디지털 리마스터링 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가 사적인 아카이브 자료를 관객들에게 전하는 일이었죠. 이번 아카이브북에는 영화 자료뿐만 아니라 영화를 본 사람들의 글도 폭넓게 실려 있어서 20주년에 걸맞은 책이 된 것 같아요. 제게도 굉장히 뜻깊은 작업이었죠.

20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관객도 변화했을 것 같아요. 어떤 차이를 실감하시나요?

개봉 당시에는 관객 집계가 디지털화되지 않아서, 주 관객층을 정확히 파악하기는 어려웠어요. 개별 관객의 반응을 보면서 체감한 정도였는데, 의외로 40대 남성들이 피드백을 보내왔어요. 남성 관객들은 직장에서 젊은 여성 사원들을 본 경험을 떠올린 것 같아요. 영화를 통해서 일터의 여성들에 대해 새로운 시선을 갖게 된 거죠. 지금 관객들은 굉장히 다른 시선으로 영화를 보는 것 같아요. 과거와 현재가 어떻게 변했는지 20년의 시간을 의식하면서요.

“왜 소녀들이 영화의 주인공이면 안 된다는 건가”(39쪽)라는 질문에서 시나리오를 시작하셨다고요. 

시나리오를 쓸 무렵만 해도, 젊은 세대가 주인공인 영화가 많지 않았고, 나오더라도 폭력과 타락에 빠진 모습만 부각됐어요. 그런 이미지가 어른의 시선 같아서, 당사자의 입장에서 현실의 젊은이를 그리겠다고 결심했어요. 단순히 소녀가 나온다는 것보다는 어떤 소녀를 다루느냐가 중요했죠. 현실에 직접 부딪치며 성실하게 미래를 고민하는 젊은 친구들의 모습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는 것. 그게 가장 큰 목표였어요.

배두나 배우가 직전에 출연한 작품이 영화 <청춘>이었죠. 파격성이 강조된 청춘 영화와 달리, 평범한 스무살의 모습을 보여준 <고양이를 부탁해>는 배우에게도 새로운 환경이었을 것 같아요. 

당시 배우들이 어려서, 영화를 정확히 파악하고 시나리오를 보기에는 어려웠을 거예요. 그렇지만 그동안 출연한 영화가 본인들과 멀리 떨어져 있었다는 생각은 했을 것 같아요. <고양이를 부탁해>는 주변 친구들의 이야기 같으니까 편안하게 다가가지 않았을까 싶네요.



시나리오에 살아있는 이야기

원본 시나리오가 실려 있어, 영화와 비교하는 재미가 있었어요. 영화에는 편집됐지만 시나리오에만 살아있는 디테일들이 있더라고요.

시나리오에 많은 정보가 있었지만, 전부 영화로 담아낼 수는 없었어요. 이건 러닝타임이 한정된 영화의 특성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해요. 그렇지만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새로운 디테일을 발견하는 건 굉장히 좋은 일 같아요. 영화에 드러나지 않은 미묘한 관계나 뉘앙스를 느낄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이번 아카이브북을 만들면서 원본 시나리오를 충실히 싣는 것에 중점을 뒀어요. 영화를 본 관객들이 시나리오를 어떻게 느낄지 궁금하기도 했고요.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 스무살 여성들의 우정을 이렇게 섬세하게 묘사한 것에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미묘하게 변하는 관계를 드러내기 위해 어떤 부분에 신경쓰셨나요?

이 영화는 관계 속에서 인물들이 지닌 여러 표정을 보여준다는 점이 중요했던 것 같아요. 혼자 있을 때, 가족과 있을 때, 친구들과 있을 때, 사회생활을 할 때 개인이 보이는 모습은 모두 다르잖아요. 친구들이라고 해서 고민을 다 털어놓는 것도 아니고, 혼자 있을 때만 보이는 모습도 있죠. 모든 인간이 그런 입체적인 면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요. 배두나 배우는 혼자 있는 장면에서는 굉장히 집중력 있는 모습을 보여주다가, 친구들과 있을 때는 편안한 느낌으로 연기했어요. 그게 태희라는 인물에 대한 배우의 해석이었죠.

가족의 틀에서 벗어나려는 태희(배두나 분)의 모습이 다시 보였어요. “때리는 것만이 폭력이 아니야!” 하는 태희의 대사가 인상적인데요. 여성이 일상적인 폭력을 예민하게 감각하는 지금, 이 말은 더욱 유효하게 들려요.

시나리오를 쓸 때, 제가 폭력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었는지는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시나리오에서 태희의 가족을 비가시적인 폭력의 세계로 설정한 건 맞아요. 태희의 집은 찜질방 사업에 성공해서 비교적 안정적인 환경이지만, 그럼에도 가부장적인 분위기에서 발생하는 문제가 있죠. 아버지가 태희에게 전통 한복을 입으라고 강요한다거나, 봉사활동을 한다고 하자 가족들이 비웃는 모습, 커다란 가게 간판을 올릴 때 아버지를 바라보는 태희의 회의적인 표정. 드러내 놓고 폭력적이지는 않아도, 그 안에서 태희는 문제의식을 느끼고 정체성을 형성한 것 같아요. 그런 캐릭터성이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메뉴를 강압적으로 결정하는 아버지에게 소심하게 반항하는 방식으로 표현된 거죠.

영화를 다시 보면서, 새롭게 와닿은 인물은 혜주(이요원 분)였어요. 혜주는 서울의 증권 회사에 취직하면서 사회생활을 시작하는데요. 사회가 기대하는 여성의 몸을 의식하고 자기계발의 욕망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공감이 되는 캐릭터였어요.

원래 혜주는 얄밉다는 평가를 받는 캐릭터였지만, 저는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우리 사회의 많은 사람들이 혜주의 모습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죠. 20년이 흐른 지금에야 혜주는 폭넓게 공감을 받는 캐릭터가 된 것 같아요. 사실 혜주는 다양한 면을 갖고 있는 친구예요. 사회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열심히 자기계발을 하기도 하고, 부모의 이혼을 겪고 친구와 멀어지면서 실존적인 자각을 하기도 하죠. 시나리오에는 언니의 낙태를 곁에서 지켜보고, 미용에 관심을 갖는 등 여성의 몸에 관한 이야기도 나오는데요. 당시에는 그 아이디어가 좀 빨랐던 것 같아요. 오히려 지금 더 보편적인 이야기가 됐죠.


플레인아카이브 제공

동물과 인간이 함께

현장을 찍은 스틸 컷을 보며, 영화에 다 담기지 않은 장면들을 되새길 수 있었습니다. 영화의 전 과정을 함께한 감독님도 스틸 컷이 공간과 인물에 대해 “나와는 또 다른 해석을 시각적으로 내놓고 있다”(219쪽)고 느끼셨다고요. 

영화의 스틸 컷은 포토그래퍼가 제3의 시선으로 현장을 찍은 결과물이라, 감독의 시선과는 다르다는 걸 전제로 해요. 물론 영화를 촬영한 다음 카메라가 있었던 위치에서 똑같이 스틸 컷을 남기는 경우도 많았지만요. 그런데 <고양이를 부탁해>는 영화와 스틸 컷 모두 필름으로 찍었기 때문에, 노출값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뉘앙스가 굉장히 달라졌죠. 이번에 디지털 리마스터링을 하면서 디테일이 선명하게 보이는 장점이 있었지만, 필름의 거친 입자가 주는 느낌이 사라지기도 했거든요. 그런데 스틸 컷에는 그런 질감이 남아 있었고, 저와는 다른 시선으로 인물이 담겨 있는 게 인상적이었어요.

20년 간 고양이가 감독님의 인생에 차지하는 의미도 커졌다고요. 당시만 해도 고양이가 등장하는 영화는 많지 않았는데, 촬영 현장에서 어떤 고민을 하셨나요?

스태프들의 최대 미션이 ‘고양이 찾기’였어요.(웃음) 보통 길고양이는 겨울을 넘기고 이른 봄에 새끼를 낳는데, 촬영을 한겨울에 시작해서 어린 고양이를 구하기가 어려웠죠. 고양이를 등장시킨 건, 아마 어린시절 고양이를 키웠던 경험도 있고, 무엇보다 고양이를 사랑하기 때문이에요. 그동안 꾸준히 스크린에 동물들을 끌어들이려고 노력해왔어요. 고양이뿐만 아니라 개가 등장할 때도 있었죠. 영화를 통해 인간 외의 존재가 공존하는 장면을 보여주는 건 관객에게도 중요한 일이라는 신념이 있어요.

도시에서의 인간관계도 20년 동안 많이 변한 것 같아요. 지금이라면 ‘단체 채팅’을 하겠지만, 영화의 인물들은 끊임없이 서로에게 전화를 걸더라고요. 다시 촬영한다면 영화의 모습이 많이 달라질까요?

그간 인간관계의 모습도 많은 변화를 겪었죠. 타인이 ‘나’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에 민감해졌고, 친구보다는 자신에게 집중하는 경향이 강해졌으니까요. 그게 영화를 해석하는 방식에도 영향을 미친 것 같아요. 작년 디지털 리마스터링 버전을 개봉했을 때, 한 관객의 리뷰를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어요. 태희가 지영의 집에 연락도 없이 불쑥 찾아가는 장면을 보고, 자신은 그렇게 해본 적이 한번도 없다는 거예요. 만약 지금 영화를 만든다면 분명 다른 방식으로 찍게 되겠죠. 문자메시지나 전화 대신, ‘단체 채팅방’ 같은 새로운 방식으로요. 오히려 저는 과거로 가서 아주 친밀한 친구 관계를 그려보고 싶기도 해요. 현재의 관계가 달라졌기 때문에 그 이전에는 어땠는지 살펴보고 싶은 거죠. 

<고양이들의 아파트>를 끝으로 도시 다큐멘터리 3부작이 마무리됐는데요. 차기작이 궁금합니다.

사극을 만들 계획이에요. 그간 현대의 도시에 관심이 많았는데, 문득 과거를 통해 새로운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지더라고요. 사극은 현대인의 주관을 거쳐 만들어지기에, 판타지가 될 수밖에 없거든요. 모든 디테일을 새롭게 설정해야 하죠. 옛 사람들의 관계와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을 상상하는 것. 요즘에는 그런 일들이 아름답게 느껴져요.


플레인아카이브 제공



*정재은

고양이, 도시, 건축에 관심 많은 영화 감독. 2001년 <고양이를 부탁해>로 장편 감독으로 데뷔했다. <고양이들의 아파트> 외 다큐멘터리와 극영화를 활발하게 만들고 있다.


 


고양이를 부탁해: 20주년 아카이브
고양이를 부탁해: 20주년 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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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작가] 소설가 김지연, 실컷 울고 나면 도움이 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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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삶의 많은 순간들을 태연한 표정으로 맞이한다. 하고 싶은 말을 다 꺼내놓는 일도, 슬픈 일 앞에서 드러내놓고 펑펑 울어버리는 일도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어쩌면 그 순간마다 많은 마음들이 층층이 쌓인 것일 수도 있겠다고, 김지연의 소설집 『마음에 없는 소리』를 읽으며 생각했다. 작가는 8편의 소설을 쓰며 인물들을 실컷 울게 해주고 싶었다고 했다. 작가의 바람과 달리 인물들은 쉽게 울지 않지만, 복잡하고 섬세한 마음의 결은 소설의 장면마다 살아있다. 



미세하게 달라지는 마음들

2021 젊은작가상 수상작이자 큐큐 퀴어 단편선에 실린 「사랑하는 일」을 기억하는 독자들이 많을 것 같아요. “이렇게 웃기고 발랄한 퀴어 소설이라니 좋다.”는 평이 많았죠. 

혹시라도 같은 분위기를 기대하고 이번 소설집을 보고 실망하실까 봐 걱정도 됐어요. 평소 스타일과 다르게 ‘웃기는 이야기를 써보자’ 하고 떠올린 소설이었거든요. 쓰는 내내 즐거웠어요. 

『마음에 없는 소리』는 복잡한 마음들을 떠올리게 되는 소설집이었어요. 인물들은 태연한 표정을 짓지만 마음에는 많은 말을 담고 있고요.

제가 좀 그래요. 우유부단해서 어제는 이게 좋았다가 다음 날엔 다른 것이 좋을 때가 많거든요. 거짓말이 아니라 그냥 마음이 변한 건데,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아니 그때는 그렇게 말해놓고 왜 딴소리해”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모든 사람들이 조금씩 그런 면이 있다고 생각해요. 좋아한다고 말해도 백프로는 아닐 수 있고, 살다 보면 달라지기도 하고요. 그렇게 변하는 마음에 대해서 써보고 싶었어요.

소설 속 인물들이 딱 저와 작가님 또래더라고요. ‘30대’라는 시기는 참 애매한 것 같아요. 미래는 여전히 불확실한데, 그렇다고 사회가 기대하는 ‘청년’의 이미지에 딱 맞는 것도 아니죠.

정확히 말하면 저보다 조금 어린 친구들인데요. 제가 소설을 본격적으로 써봐야겠다고 생각한 무렵의 나이예요. 당시에 회사를 다니고 있었는데, 경력도 애매하고 좋아하는 일을 찾은 것도 아니었어요. 그런데 주변을 둘러보면,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았거나 결혼해서 아이가 있는 친구들도 있더라고요. 그 친구들이라고 단단한 자리를 갖고 있는 건 아니겠지만 제 눈에는 확신을 갖고 삶을 꾸려가는 것처럼 보였죠. 당시의 심란한 마음이 많이 반영된 것 같아요.

소설들을 끝까지 읽으면 어떤 장면들이 또렷이 남는데요. 실제로 어떤 과정을 거쳐 쓰는지 궁금했어요. 

구조를 철저히 정해놓는 작가님도 있겠지만, 저는 처음, 중간, 끝 정도만 느슨하게 떠올리고는 그 안의 장면을 채워나가는 식으로 써요. 머릿속으로 계속 생각하기는 하지만, 쓸 때는 즉흥적으로 쓰는 편이고 갑자기 떠올린 장면을 집어넣기도 해요.


고향에서 시작되는 이야기

소설의 화자들은 서울에 살다가 다시 고향을 찾아요. 큰 뜻이 있어서가 아니라 서울의 삶에 지쳐서 무작정 고향으로 돌아가죠. 

질문에 답하다 보니 새삼 제 경험이 많이 녹아들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저도 고향인 거제에 살다가 대학에 입학하면서 서울로 왔거든요. 그러다 고향에 잠시 내려갔다가 소설을 공부하기로 결심하고 서울에 다시 올라왔어요. 저뿐만 아니라 주변에 타향살이를 하는 친구들이 많아요. 만나면 서울 생활이 녹록하지 않다는 이야기를 하죠.

서울과 고향을 오간 경험이 반영된 것이었군요. 

오히려 서울을 잘 모른다는 생각도 들어요. 다른 작가님들이 서울을 배경으로 하면 자연스러운데, 제가 쓰면 어쩐지 서울에 처음 온 사람이 유명한 장소를 돌아다니는 이야기 같거든요. 그래서 그냥 잘 아는 장소를 쓰게 돼요. 고향을 배경으로 할 때 재미있기도 하고요.

「굴 드라이브」는 “좋은 일자리가 있다.”는 삼촌의 말을 듣고 ‘내’가 고향에 가면서 시작되는 이야기예요. 고향은 한때 조선업으로 흥했지만 지금은 쇠락해가는 바닷가 마을이죠. ‘내’가 굴 양식장의 배달을 돕게 되면서, 학창시절 사이가 좋지 않았던 ‘반장’을 다시 만나는데요. 처음 쓴 버전은 지금과 많이 달랐다고요.

초고에서는 반장은 그냥 스쳐 지나가는 인물이었어요. 옛 남자친구를 만나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썼는데 전개가 뻔하다는 말을 들었죠. 그럼 반장과 ‘나’의 에피소드를 써보면 어떨까 싶었어요.

‘나’와 반장과의 관계가 재밌었어요. 반장이 고등학교 시절 ‘나’를 미워했던 일에 대해 두 번이나 사과하는데 ‘나’는 끝까지 용서해주지 않죠.

저도 마지막에는 용서할 줄 알았어요.(웃음) 그런데 가끔 제 의도와 달리 인물들의 대사가 나올 때가 있거든요. 이쯤 되면 용서해줘야지 했는데 “아니! 용서 못하겠는데.” 하는 대사가 나온 거예요. 그래, 그냥 용서를 안 하는 것으로 가자. 그렇게 마무리 지었죠.

대화 장면이 생생해요. 특히 말다툼하는 장면이 현실감 넘쳐서 웃음이 나오더라고요. “용서 안 해줄래. 그러니까 그냥 계속 싫어해.” “미친. 진짜” 친구랑 싸울 때 진심으로 나오는 반응 같아요.

쓰다 보면 인물의 대사들이 툭툭 튀어나올 때가 있어요. 그걸 받아서 쓰는 느낌이에요. 주변 친구들 말투를 가져오기도 하는데 본인들은 잘 모를 거예요. 말다툼 장면은 제 속에 쌓여 있는 말을 쓴 것 같아요. 입 밖에 내지는 않아도, 저녁에 누워서 ‘이 말을 했어야 하는데…’ 하는 말들이 있잖아요.

「우리가 해변에서 주운 쓸모없는 것들」은 결말에서 묘한 감정이 밀려오는 소설이었어요. 나체로 바다에 뛰어들어보고 싶은 ‘내’가 여자친구 진영과 함께 남해안의 마을로 떠나죠. 그런데 결말에서 이 일들은 과거의 추억이 돼요. 현재인 듯 미래인 듯 여운을 남기는 방식이 좋았어요. 

예전 여자친구와의 행복했던 순간을 마지막에 넣고 싶었어요. 헤어진 사이니까 너무 좋았다고 쓰는 것도 이상하죠. 그래도 헤어졌다고 해서 좋았던 기억이 없어지는 건 아니니까 좋았던 버전으로 써봤어요. 바닷가 마을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라 해변의 이미지를 살리고 싶었고, 파도가 밀려오고 떠나가는 것처럼 리듬감이 있었으면 했죠. 쓰고 나니까 왠지 자신이 없어져서 마지막까지 고민했는데, 마지막 장면이 좋다는 말을 들어서 안심했어요.

소설을 덮은 후 “들러붙어서 절대 떨어지지 않는 것들”(158쪽)의 이미지가 끝까지 남는 것 같아요. 「우리가 해변에서 주운 쓸모없는 것들」의 모래처럼요. 

과거에 일어난 일이 지금까지 영향을 미친다고 말하면 결과론적인 이야기 같지만, 그래도 그런 일이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다 잊은 것 같다가도, 선택을 내릴 때 나도 모르게 영향을 받는 타인의 말이나 행동들이요. 그런 생각이 소설에 들어온 것 같아요.



남김없이 잘 울고 싶다

「작정기」는 여행지가 배경으로 등장하는 소설이죠. “원래 다케오에 가려고 한 사람은 내가 아니었다. 원진이었다.”(99쪽)는 첫 문장으로 이야기가 시작돼요. 

실제로 친구와 일본여행을 가기로 했다가 사정상 혼자 가게 된 적이 있어요. 「작정기」에 나온 장소들은 다 가본 곳이에요. 소설에 나오는 ‘녹나무’도 직접 봤고요. 원래 제가 여행을 안 가는 편이고, 딱히 소설로 연결되지도 않거든요. 그런데 알고 보니 다케오 여행이 처음으로 혼자 간 여행이었더라고요. 혼자다 보니 생각이 많아지면서 소설이 된 게 아닐까 싶어요.

소설의 표면에 사연의 배경이나 들끓는 감정이 안 나온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친구 원진이 왜 세상을 떠나는지, 주차장에 세워진 차가 왜 갑자기 사라졌다가 돌아오는지 별로 해명하지 않죠.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아도 되나 고민이 됐어요. 친구가 죽은 건 큰 사건인데 짧게 언급하기만 하고 넘어가니까요. 그런데 그 내력을 자세히 쓰는 게 이 소설이 할 일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솔직히 차가 왜 없어졌는지 생각해보지도 않았어요. 그렇지만 이유를 채워 넣는 것도 이상한 일 같아서 안 쓰는 걸 선택했죠.

작가의 말에서 “글쓰기란 엉엉 우는 일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한다. 이왕이면 온 힘을 다해 남김없이 잘 울고 싶다”(315쪽)고 쓰셨죠. 가장 먼저 쓴 소설인 「내가 울기 시작할 때」에서 인물들이 우는 장면을 찾아봤어요. 전부 남 앞에서 드러내놓고 우는 성격은 아니라서 뒤늦게야 우는데, 그럼에도 누군가가 곁에 있어주더라고요.

울고 나면 속이 후련해질 때가 있잖아요. 제가 그리는 인물들에 대해 ‘다들 한번씩 크게 울게 해주고 싶다, 이렇게 힘든데 울게라도 해주자.’ 하는 기분으로 썼어요. 울어서 떨쳐버릴 수 있는 건 떨쳐버리자는 마음이었던 것 같아요.

작가님의 첫 소설인 「내가 울기 시작할 때」는 어쩐지 투명하게 하고 싶은 바가 드러나 있다는 느낌을 받았고, 그래서 애착이 가는 소설이었습니다. ‘삼’과 ‘내’가 사는 현실에는 폭력과 배제가 있는데,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삶에 대해 기대하는 것이 있었다”(221쪽)는 문장을 쓰실 때, 작가님은 어떤 마음이었을지 궁금해졌습니다. 

소설 속 두 사람이 암울한 커플이기는 하죠.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 생활을 이어가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내’가 자살을 한 것이라고 보는 독자분들도 많았어요. ‘자살은 아니다’라고 썼지만, 분명한 이유를 밝히진 않았으니까요. 그렇지만 저는 이 사람들이 굉장히 살고 싶은 마음이 크다고 생각하며 썼어요. ‘삼’은 이상한 취미를 가진 인물인데, 그 활동도 어떻게든 자신의 삶을 지속하는 방식이죠. ‘나’ 역시 잘하고 싶은 게 많고, 어떻게든 삶을 나아지게 하고 싶었던 인물이라고 생각했고요.

소설을 쓰기 전에는 시도 쓰셨다고요. 

대학교 때는 시를 많이 썼어요. 졸업 후 소설을 쓰기 시작했는데, 일 때문에 못 쓰는 시기도 있었죠. 본격적으로 소설을 써야겠다고 마음 먹은 건, 대학원에 가면서였어요. 당시 나이도 많았고, 한동안 고향에 있었기 때문에 쉽지 않은 결정이었죠. 근데 그 때는 고향에 있는 게 너무 싫었나 봐요.(웃음) 집에 미리 알리지 않고 대학원 시험에 합격한 후에 ‘다시 서울 가겠습니다’ 하고 무작정 상경했거든요.

『사쿠테이키(작정기)』나 『마음의 진화』 등 소설에 인용된 책의 분야가 다양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제로 다양한 분야의 책을 좋아하시나요?

한때 정원 디자인이라던가 과학책 같은, 전혀 다른 분야의 책을 읽는 걸 좋아했어요. 사람들이 스트레스 받을 때, 수학 문제를 푼다고 하잖아요. 이 책들도 명쾌한 설명을 해주니까 속 시원한 기분이 들었어요. 오히려 과학적인 문장이 시적이라고 느껴질 때도 있고요. 

책읽기 말고 다른 취미도 궁금했어요.

뜨개질을 좋아해요. 뜨개질이 봄, 여름, 가을에 열심히 떠서 겨울에 사용해야 하는 건데, 막상 겨울이 되어야 뜨개질을 하고 싶어지는 거예요. 그래서 떠놓고는 사용을 안 하죠. 그냥 그 과정이 즐거운 것 같아요. 게임도 좋아하는데요. 지금 쓰고 있는 소설에서 화자가 게임하는 장면이 나오거든요. 그렇게 소설에 조금 써먹기도 합니다.(웃음)

작가님의 첫 책은 스릴러 소설 『빨간 모자』였죠. 앞으로 어떤 소설을 쓰실 지 궁금해지는데요. 

지금도 스릴러 같은 소설을 쓰고 있어요. 스릴러 장르를 일부러 찾아볼 정도로 좋아해요. 너무 무서운 걸 보면 잠을 못 잘 때도 있지만요.(웃음) 앞으로도 『마음에 없는 소리』의 세계관과 크게 다른 소설을 쓸 것 같지는 않아요. 지금까지 고향과 서울을 왔다갔다 하는 인물의 이야기가 많이 나왔는데, 지방도시에서 사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써보고 싶네요.




*김지연

2018년 단편소설 「작정기」로 문학동네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제12회, 제13회 젊은작가상을 수상했다.




마음에 없는 소리
마음에 없는 소리
김지연 저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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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 "글을 매개로 사람을 만나는, 참 뭉클한 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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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 저자

『활활발발』의 부제에 담긴 ‘담대하고 총명한 여자들이 협동과 경쟁과 연대의 시간을 쌓는 곳’을곰곰이 읽어본다. 양다솔, 이길보라, 이다울, 이슬아, 하미나. 이 이름들과 저 ‘담대하고 총명한’이라는 수식은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 ‘협동과 경쟁과 연대’는 또 어떤가. 매주 수요일 저녁, 서로의 글을 “존경과 예의”를 담아 정직하게 비평하는 시간. ‘어딘글방’의 시간은 두껍게 쌓여서 지금 곳곳에 찬란한 빛을 내비치고 있다. 그리고 그곳의 중심이 되어주던 사람 ‘어딘’은 『활활발발』에 이렇게 썼다. 

“풍성하고 윤택하고 장렬하고 쪼잔하고 비겁하고 명랑하고 다정한 글들이 삶을 찬연하게 만들었다. 축복받은 글방이었다.”  _(121쪽) 

 

※ 이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됐습니다. 



어딘글방과 어딘 

책을 보고는 표지에 적힌 ‘어딘’이란 이름에 가장 먼저 눈길이 갔습니다. ‘김현아’가 아닌 어딘이라는 이름을 이 책의 지은이로 넣어야 했던 이유가 분명히 있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거든요. 

이번 책에 어딘이라는 이름을 사용한 건 위고출판사 조소정 편집자 님의 의견이었습니다. 작가가 글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편집자는 책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종종 작가보다 더 작가의 글을 사랑하기도 하고요. 어딘이라는 이름으로는 처음 내는 책이 되었습니다, 덕분에.

조금 더 궁금해지는데요. '어딘'이라는 이름에 담긴 작가님의 정체성은 어떤 것인가요? 

어딘은 ‘하자센터’에서 창의적글쓰기 프로젝트를 할 때부터 사용한 닉네임입니다. 다양한 연령대의 청년과 청소년이 모이는 글쓰기 모임에서 ‘언니’ ‘오빠’ ‘선배’ ‘후배’ ‘선생님’ 등 사회적 호칭을 쓰는 것이 글을 바라보는 데 혹은 피드백을 하는 데 선입견을 가지게 하지 않을까, 하는 맥락에서 나이와 상관없이 닉네임으로 서로를 부르기로 했습니다. 어떤 글이든 문자를 해독할 줄 안다면 나이와 상관없이 읽는 것이고, 그러고 보니 책에는 ‘청소년관람불가’가 거의 없지요. 영화라면 ‘영상물등급위원회’ 같은 것이 있는 반면 책의 경우 심의기관이 없는 걸로 알고 있는데 어떤지 모르겠네요. 나이가 어린 ‘독자’와 나이가 많은 ‘독자’, 어느 편의 감상이 옳고 그르다고 할 수 없는 문제니까요. 합평의 과정에서 모든 사람의 의견은 평등합니다. 어딘의 의견도 여러 명의 의견 가운데 하나고요. 그리고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순간 약간 뻗대고 반항하고 싶잖습니까, 청소년 시기에는. 저만 그랬을까요(웃음).

작가님은 10년 넘게 글방을 해온 이유를 “재미있어서”(9쪽)라고 하셨죠. ‘재미’라는 말이 함축하고 있는 다양한 감정, 기억과 깨달음을 상상해보았는데요. 글방지기 이전의 김현아와 글방지기 이후의 어딘은 어떻게 달라졌는지, 어떻게 다른 사람인지 궁금합니다.

‘어딘글방’을 하기 이전에도 사실 다양한 형태의 글방을 했습니다. 20대 때는 ‘청계피복노동조합’에서 ‘문학반’이라는 이름으로 일주일에 한 번 모여 글 쓰고, 책 읽고, 엠티 가고, 문집 만들고 했고요. 학원에서 논술을 가르치면서도 많은 청소년들과 글쓰기를 했지요. 20대 내내 어린이글방도 계속 했고요. 그러니까 어딘글방은 그 연장선상에 있는 활동이었고 저한테는 자연스런 일이기도 했습니다. ‘글’을 매개로 사람들을 계속 만났던 거지요. 글을 매개로 사람을 만난다는 것, 참 뭉클한 시간들입니다. 가장 정직한 모습을 마주할 수 있는 순간이고요. 

어딘글방이 배출(!)한 멋진 작가님들이 지금 출판계를 빛내고 있어요. 양다솔, 이길보라, 이다울, 이슬아, 하미나 등. 이분들의 시작과 성장을 지켜본 입장에서 동료 ‘글방러’들의 행보가 각별하게 느껴질 것 같습니다.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고 계세요? 

그러게요, 참 훌륭한 작가들입니다.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냐면, 음... 안쓰러운 마음이 가장 크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한 권의 책이 나오기까지의 분투를 잘 아니까요. 그럼에도 그들이 한국 사회에 던지는 질문은 참 중요하고 소중한 것이라 흥미진진하게 관전하고 있습니다. 『활활발발』 책이 나오고 한 매체의 기자분께서 글방 시절 사진을 보내 달라고 하셨는데요. 아이고야,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습니다(웃음). 이 말인즉슨 우리가 글방을 할 적에는 우리의 이야기가 책이 될 거라고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거죠.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다면 사진이라도 좀 찍어 둘 걸 그랬습니다(웃음). 


그럼에도 쓰고 싶은 사람

무엇보다 글방러들을 ‘동료’로 바라보는 작가님의 태도가 내내 인상적이었습니다. 스승-제자 관계가 아닌 “언젠가 이들이 나의 동지가 되리라는 믿음”(149쪽)을 갖고 있는 존재로서 글방러들을 바라보시잖아요. 이에 대한 작가님의 생각을 듣고 싶어요. 이는 곧 사회를 함께 살아가는 어른으로서 마땅히 가져야 할 마음이라고도 생각했거든요.

아마 어딘가에서 우리는 만났을 거다. 눈 내리는 만주벌판, 지리산 어느 골짜기, 광활한 시베리아 평원 그 어디쯤에서, 만났을 거다 이 생에 오기 전 어느 시절에. 밤을 새워 산을 넘고 식어버린 주먹밥을 함께 먹고 서로의 눈썹에 달린 고드름을 바라보며 깔깔 웃지만 눈두덩이 시큰거리던, 이 생에서 다시 보리라 생각지도 못했던 어느 시절에, 단단하고 유연하고 고운 네가 있어 비바람과 배고픔 따위 견디어내었으리라, 아직 이 생이 시작되기 전 어느 시절에.  

황지은은 잘 사는 청년인가, 

질문하지 않겠다 

동지는 판단하지 않는 거다 

믿을 뿐이다.

함께 일했던 청년들을 인터뷰한 ’잘 사는 청년’ 시리즈 중 ‘황지은’ 편에 썼던 글로 마음을 대신하겠습니다. 어린이글방을 하면서 늘 생각합니다. ‘이 양반들이 장차 세계를 구할 분들이다.’ 이들의 성장과정에 잠시 참여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지요. 영광의 시절을 만들어낼 분들이니까요. 

『활활발발』에는 어딘글방에서 만난 멋진 글방러들의 이야기뿐 아니라 쓰는 사람의 태도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이야기가 가득해요. 글을 쓰는 삶, 글을 통해 세상을 보고 해석하는 삶과 그렇지 않은 삶은 얼마나 다를까요? 쓴다는 것은 한 사람의 삶에 어떤 의미를 준다고 생각하세요? 

글을 쓰는 삶과 빌딩 청소를 하는 삶과 농사를 짓는 삶은 동등합니다. 어떤 삶이든 스스로의 경험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해석하지요. 글을 쓰는 사람들은 ‘우연히’ 글쓰기를 하게 된 사람들입니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글을 쓰는 사람들, 쓰지 말라고 하는데도 쓰는 사람들. 그러니 그들은 글쓰기를 통해 세상을 해석하고 스스로의 삶을 조직하고 관계를 확장해 나가는 사람들이라 할 수 있겠지요. 글을 ‘통’하지 않고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고, 글을 ‘통’하지 않고 살았던 역사가 훨씬 더 길고, 글을 ‘통’하지 않고 살아가는 종種이 훨씬 더 많습니다. 코끼리도 개미도 천둥오리도 숭어도 느티나무도 글을 ‘통’하지 않고 생을 살아내지요. 쓴다는 것은 인류에게 큰 의미일 뿐 지구상의 다른 모든 생명들에게는 의미 없는 일이지요. 나무나 베는 일이라고나 할까요.(웃음) 다만 그럼에도 쓰고 싶은 사람은 쓰는 거지요.

한편 작가님은 우아한 독자로 남을 수 있으면, 웬만하면 쓰지 말라고도 하시잖아요.(웃음) ‘그럼에도 써야 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업, 이라고 생각합니다. 하하. 글에게 멱살 잡힌 사람들.

그렇다면 작가님에게 글쓰기는 어떤 의미인가요? 시를 쓰는 것이 부끄러웠던 시절로부터 청소년들과 글을 쓰고 그들과 동료가 된 지금에 이르기까지, 쓰는 일은 작가님께 얼마만큼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 듣고 싶습니다. 

그냥, 씁니다. 그러니까 제가 어떤 일을 하더라도 글은 계속 쓰는 거지요. ‘베트남전쟁 당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학살’ 일을 할 때도 그 이야기를 글로 썼습니다. 여행학교 로드스꼴라 이야기도 글로 썼습니다. 그 과정에서 만났던 근사한 사람들 이야기도 쓰려고 계획하고 있습니다. 하와이 여행을 하면 글로 씁니다. 왜냐, 너무 아름답고 매혹적이고 가슴 아프고 분노하게 되고, 사랑, 하게 되니까요. 그러다보니 쓸 이야기는 너무 많고 그에 비해 나는 아프거나 바쁘거나 합니다. 글쓰기는 그러므로 저한테 특별한 일이라기보다는 일상적인 일입니다.   


쓰기의 결기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느냐는 질문에 작가님은 “일주일에 한 편씩 한 번도 빠지지 않고 3년”(106쪽)이라고 답하곤 하신다고요. 꾸준한 수련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일 텐데요. 한편으로는 그 시간에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이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마음은 무엇일지도 생각하게 됩니다. 지금, 이러한 시간 앞에 서 있는 분들에게 어떤 말을 전해주고 싶으세요?  

내가 아주 좋아하는 일도 일주일에 한 번, 3년을 하기는 참 어렵습니다. 어떨 때는 맹장 수술을 할 때도 있고, 어떨 때는 이사를 해야 하고, 어떨 때는 엄마가 아프고, 어떨 때는 내 시간을 몽땅 털어 돈을 벌어야 하니까요.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글은 그 과정에서 나오는 겁니다. 흔들리고 망설이고 주춤거리면서도, 가는 거지요, 스승과 사형(師兄)과 동료들이 있는 곳으로. 집요하게 나를 흔들고 길들이려 하고 굴종하게 만들려는 것들, 에 종종 결연하게 맞서야 하는데 그 결기는 오랜 수련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내 몸을 펜으로 만드는 훈련, 은 쉽지는 않지요. 요즘은 펜이 아니라 손가락이라고 해야 하나요.(웃음) 

어딘글방에서 중요한 것 중 하나는 합평이 아닐까 싶어요. 혼자 쓰는 것과 합평을 해나가는 것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명징하고 깐깐하고 정직한 비평의 언어가 쌓이고 쌓일 때 자신의 글에도 엄정할 수 있다”(39쪽)는 말씀이 중요하게 들리는데요. “스스로를 담금질하는 말”로써의 합평의 의미를 설명해주신다면요? 

습작시절, 을 누구나 거친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날 갑자기 걸작을 쓸 수는 없으니까요. 대부분의 작가들도 아마 습작시절 합평의 경험이 있을 겁니다. 합평은 내 글이 어떻게 읽히는지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통로입니다. 글을 쓰는 사람들이 모이는 글방에서라면 사실 합평에 큰 상처를 받지 않아도 됩니다. 모두 쓰는 사람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글에 대해 말하는 것 같지만 동시에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니까요. 내 글도 변변치 못한데 남의 글을 비평하다니, 하는 생각 따위는 버리고 열심히 피드백을 하는 것이 밤을 새며 글을 써온 사람에게 보내는 존경과 예의입니다. 그리고 그 비평의 언어는 고스란히 쌓여 내 글에도 반영되니 합평을 즐기시길요.

글쓰기는 혼자 하는 행위지만 동료의 존재는 또한 각별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의미에서 어딘글방의 치열함, 솔직함, 연대가 정말 인상적이에요. 그런 의미에서 어딘글방의 합평 규칙을 듣고 싶습니다. 

‘나는 이 글의 최초의 독자다. 글쓴이는 이 글을 쓰기 위해 고군분투, 사생결단 치열한 시간을 보냈다. 그러므로 아주 정직하고 정확하게 내가 읽은 소감을 말하려고 최선을 다한다. 글과 작가는 분리해서 생각한다. ‘나’라고 말해지는 사람조차 글에 나오는 등장인물일 뿐이므로 작가와 글을 동일시하지 않는다. 합평의 과정에서 나오는 종종 개인적인 이야기는 글방 밖으로 옮기지 않는다. 인용은 반드시 허락을 받고 한다.’ 등등입니다.    

그런데 합평에는 왜 그러한 규칙이 필요한 걸까요? 어쩌면 이것은 글쓰기의 기본 자세, 쓰는 윤리와도 닿아 있는 이야기 같아요. 

‘작가는 어떤 이야기든 쓸 수 있다. 이 세상에 쓰지 못할 이야기, 란 없다. 독자는 자신이 읽은 글에 대하여 어떠한 이야기도 할 수 있다. 다만 작가는 자신이 쓴 글에 대해 독자는 자신이 한 말에 대한 무게를 지면 된다’라는 것이 글쓰기와 책읽기의 윤리, 라고 생각합니다. 작가라는 자 무릇 세상의 윤리를 의심하고 교란하고 넘어서려는 자, 이므로. 다만 어딘글방에서는 그 내용을 예의를 갖추어 하자는 정도, 라고 보시면 될 듯합니다.

언젠가 글방을 해보고 싶은 분들, 내게 맞는 글방을 찾고자 하는 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다양한 글방이 많이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경향과 지향도 아마 조금씩 다르겠지요. 나는 어떤 글쓰기를 원하는가, 에 대해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고 그에 맞는 글방을 찾아가는 노력을 해보면 어떨까요. 그러니까 글쓰기를 통해 위로와 위안을 얻고 싶은 분도 있을 거고, 글쓰기를 업으로 해보고 싶은 분도 있을 거고, 글쓰기를 통해 사람을 만나고 싶은 분도 계실 거예요. 내 욕망은 어디쯤인지 잘 들여다보고 그에 맞는 글방을 찾거나 혹은 스스로 조직해보시길요.

어딘글방은 지금 어디쯤에 와 있나요? 앞으로도 계속될까요? 

지난주에 새로운 글방을 시작했는데 오, 눈부시게 이쁜,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어떤 이야기를 품은 사람들인지 함께 긴 여행을 떠나볼 예정입니다. 이 봄을 그들과 함께 보낼 수 있어 다행입니다. 좋은 시절에도 험난한 시절에도 우리 모두 서로에게 다행인 사람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어딘글방에 놀러오세요, 여러분. 



*어딘

대학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했고, 1993년 전태일문학상을 받았다. 시민단체 ‘나와우리’를 설립해 베트남전쟁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문제를 풀기 위한 활동을 했고 청계피복 노동조합의 문화학교 일을 하기도 했다. 어린이 글쓰기교실, 입시논술, ‘고정희청소년문학상’ 등 글쓰기와 관련한 일을 지속적으로 하는 동안 학교 안과 밖의 청소년들이 경계를 넘나들며 서로를 지지하고 격려할 장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 이후 공교육과 대안교육, 로드스쿨러, 홈스쿨러 등 다양한 영역에 속해 있는 이들과 다양한 문화작업을 기획 진행해왔다. 하자센터에서 청소년들과 함께한 ‘창의적글쓰기’ 프로젝트가 이후 ‘어딘글방’으로 이어졌다.





활활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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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김현아) 저
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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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짓궂은 인터뷰] 번아웃과 갭이어 사이에서 - 『우리는 아직 무엇이든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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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나에게 갭이어(gap year)가 필요하겠어? 자문해본 적이 있는 독자라면 『우리는 아직 무엇이든 될 수 있다』를 쓴 김진영 작가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이 책은 ‘갭이어’를 반드시 갖자고 추천하는 책이 아니다. 일하는 마음이 어딘가 크게 변한 것 같을 때, 그 시그널을 무시하지 말자.



책 출간 후 각별한 축하를 받았다.  ‘우.아.무. 사랑 위원회’가 창단됐다고 하던데?

서로의 삶 깊숙이 서로의 일과 삶을 응원하는 친구들이 있다. 이들이 나보다 먼저 작년 3월, 7월 각각 첫 책을 냈다. 서로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기에, 그리고 우리 모두 이벤트와 축하와 기념을 좋아하는 본투비 기획자들이라 소박하지만 아주 유난스럽게 서로의 출간을 축하하기 시작했다. 이미 앞선 두 친구의 출간 기념회에서 웬만큼 할 수 있는 서프라이즈는 다했다고 생각했는데 (책 모양 케이크, 100쇄 기원 초대형 풍선 등) 역시나 이 기획자 둘은 상상도 못한 방식으로 '우아무'의 생일을 축하해주었다. '우아무 사랑 위원회'가 주는 크리스탈 감사패. (내 이름이 단독으로 박힌 상패는 난생 처음이다) 나도 아직 어색한 내 새끼를 '사랑'해주는 위원회가 있다니. 

요즘 근황은?

첫 책을 쓰고 작가가 되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심지어 출간 후 작가 소개란에 쓴 메일 주소로 단 한통의 메일만 왔다. 하지만 잔잔히, ‘우아무’의 안부가 전해진다. 정말로 책을 '읽은' 사람들의 공감과 토로, 반가움 등이 가득 담긴 안부를 전해 받을 때마다 쓰는 동안은 무척 고통스러웠지만 결국 쓰기 잘했다, 싶다. 요즘은 다큐멘터리에 대한 책을 쓰고 있는데, 여전히 고통스럽다. 두 번째는 처음보다 쉬울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다. 그럼에도 이 책 역시 쓰고 나면, 쓰기 잘했다, 이 고통을 잘 견뎠다 싶겠지.

<폴인 – 일하는 사람의 갭 이어> 연재를 계기로 책을 출간하게 됐다. 

연재를 하면서 19번의 전화 인터뷰와 6개의 정식 인터뷰를 했는데, 내 안에도 인터뷰어 이상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내가 번아웃을 겪기 전과 후를 모두 알고 있는 편집자님께 두 개의 원고와 기획안을 보냈다. 다행히 ‘자기만의 방’의 페르소나인 '김시영' 씨와 일하는 마음의 겨울을 맞은 '나'의 고민이 잘 맞았다.

책 제목을 읽는 것만으로도 힘이 생긴다. 희망적이다.

편집부가 원고에서 발견해준 문장이다. 사실 처음 들었을 때는 좋다고 생각했지만 곱씹을수록 '될 수 있다'가 마음에 걸렸다. 무엇이 돼도 안 돼도 괜찮다는, 지금의 나를 충분히 살피고 내 중심을 잡자는 책이라서. 또 내가 아직 번아웃에서 회복된 것 같지 않아서 이 제목을 결정하기까지 무척 고민했다. 결론적으로 편집부에게 무척 감사하다. 출간 후 감사하게도 제목이 좋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다큐 에세이(텍스트로 쓴 다큐멘터리)’라는 독특한 콘셉트가 책 표지부터 펼쳐진다.

갭이어를 주제로 다양한 사람들을 인터뷰할수록 '질문' 이상의 하고 싶은 이야기가 생겼다. 하지만 나는 늘 카메라 뒤에서 질문만 하던, 타인의 이야기를 담은 촬영본을 가지고 내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엮어가던 사람이었다. 막상 백지에 내 이야기를 쓰려니 텅 빈 화면에 커서만 꿈뻑꿈뻑 쳐다보기 일쑤였다. 그러던 차에 편집부에서 '다큐 에세이'라는 콘셉트이자 장르를 제안했다. 어떻게 하면 건강하고도 즐겁게 일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며 카메라를 들고 그 답을 찾아가는 저자의 로드무비같은 책을 만들자고. 그 덕에 쓸 수 있었다.

어떤 사람들에게 갭이어를 꼭 생각해보라고 추천하고 싶은가?

이 책은 갭이어를 가지시라고 추천하는 책이기보다 갭이어를 가져도 괜찮다에 가깝다. '나 정말 더이상은 이대로 못 살것 같다', '주말과 휴가로는 도저히 충전이 되지 않는다', '일하는 마음이 어딘가 크게 변한 것 같다' 하는 어떤 시그널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부디 그 시그널을 무시하지 않았으면 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커리어 중간에 갭이어를 가지는 것은 정말 쉽지 않다. 실제로 만난 인터뷰이들은 대부분 갭이어를 매우 적극적으로 선택했다기보다 갭이어가 '주어진' 것에 가깝다. 더이상은 일을 지속할 수 없을 정도로 몸이나 마음의 건강이 악화된 것. 그래도 이런 상황에서 갭이어를 '선택'하는 나름의 특단의 조치를 내렸기에 모두들 자신만의 속도와 방향을 재정비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인터뷰이들의 이야기 중에 꼭 하나의 문장을 소개한다면?

"20년 차가 되어도 진로 고민은 계속해요. 20대 땐 30대가 되면 더이상 고민이 없을 것 같고, 30대 땐 40대가 되면 일에 고민이 없을 것 같죠. 하지만 일을 하는 동안에는 평생 진로 고민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20년차 MD이자 브랜드기획자 허윤의 인터뷰 중 문장이다. 

그와의 인터뷰 전에는 나보다 5살, 10살, 20살씩 많은 언니나 선배들과 커리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그들 역시 나처럼 고민을 하고 있는 사실을 알게 될 때면 좌절했다. 5년 후, 10년 후, 20년  후에도 지금 이 혼란과 방황이 계속된다고?! 너무 끔찍하지 않은가. 그런데 허윤님과의 인터뷰 후에는 이런 고민이 고단하고 지리하다기 보다 좀 더 자랑스럽게 여겨진다. 일을 사랑하는 사람들, 일에 꽤나 많은 삶의 부분을 쏟고 있는 사람들, 일과 나를 분리하는 것이 어려운 사람들이라면 고민하는 것이 너무도 당연하니까.

책을 쓰고 달라진 점이 있나?

이전보다 아주 조금,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잔잔히 전해져 오는 ‘우아무’에 대한 공감의 메시지가 정말로 큰 힘이 된다. 일을 열렬히 사랑하면서도 번민하는 마음은, 당신뿐만이 아니라는 말을 하기 위해 쓴 책인데, 그 말을 오히려 내가 돌려 받는다. 그리고 나는 '팀'으로 일하는 것이 즐거운 사람이라는 데에 더 큰 확신을 갖게 되었다. 원고를 쓰는 시간은 외로웠지만, 책을 만드는 과정은 각 분야의 전문가와 함께였다. 나의 지분은 10%뿐이고. 내 책이면서 나만의 책이 아닌 것. 책이 나오고 퍼져가는 과정을 '함께' 경험하고 있는 이 시간이 정말 즐겁고 감사하다. 앞으로도 나는 팀으로 일하는 데서 행복을 느낄 것이다.

의외의 독자들을 상상해본다면?

아직 번아웃이 오지 않았고, 번아웃이 뭔지 잘 모르는, 그래서 번아웃이란 사실 조금은 꾀병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하는 독자분들에게 추천한다. 그리고 주변에 번아웃으로, 무기력으로, 일과 진로에 대해 고민하고 방황하는 친구나 동료, 가족들에게 선물하기를 강력히 권한다. ‘우아무’가 가장 가닿고 싶은 코어(core) 타깃은 사실 번아웃과 우울, 무기력의 터널 2/3 지점을 통과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독자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 

마음이 최소한의 건강을 유지하고 있을 때, 주변 사람들 혹은 여러 경험담을 토대로 몇 개의 '심리상담/정신과 119 리스트'를 갖고 있기를 정말로 강력히 추천한다. 마음에도 언제든 응급상황이 올 수 있다. 처음에는 내 마음과 정신의 응급상황을 어디에 호소해야 하는지, 어디를 찾아가면 나아지는지 알지 못해 무척 괴로웠다. 괴로움과 막막함이 무너진 마음에 공포심을 더했고.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다면 얼른 심리상담 선생님의 전화번호 최소 1개를 핸드폰에 저장하자. 그 번호가 언젠가 나를 구원할 것이다.



*김진영

이야기를 듣고, 쓰고, 찍는 다큐멘터리스트. 좋은 질문을 던져, 세상에 흩어져있는 이야기를 엮어내고 전달하는 일이 좋아 다큐멘터리 PD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미디어 환경의 변화를 온몸으로 겪으며 콘텐츠 기획자로, 때로는 브랜드 콘텐츠 전략가로 하는 일이 확장됐다. 일의 언어는 달라도, 결국 평생을 이어갈 내 일의 이야기는 하나라고 믿는다.




우리는 아직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우리는 아직 무엇이든 될 수 있다
김진영 저
휴머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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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작가 정진호 “책으로 건축을 하는 중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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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책으로 집을 짓고 있다, 고 말하는 건축가. 그리고 볼로냐 라가치상을 두 차례 수상한 그림책 작가. 정진호 작가가 4년 만의 신작 『심장 소리』로 돌아왔다. 이번 작품은 ‘심장 소리를 모아둔 공간’에서 태동했다. 이야기를 세상에 내어놓으며 작가는 알게 됐다. 이것은 한 아이의 기억과 탄생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을.

‘이야기가 담긴 집을 꿈꾸며 건축을 공부했고, 지금은 책 속에 이야기 집을 짓고 있는’ 정진호 작가는 첫 그림책 『위를 봐요!』로 ‘2015년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에서 라가치상을 수상했다. 이어서 2018년에 『벽』으로 두 번째 라가치상을 받았다. 또한 『부엉이』로 ‘한국안데르센상’ 미술 부문 우수상을 『벽』으로 ‘황금도깨비상’을 받았다. 이들 작품과 함께 『별과 나』, 『나랑 놀자』, 『여우 씨의 새 집 만들기』를 쓰고 그렸다. 그린 책으로 『노란 장화』, 『루루 사냥꾼』, 『투명 나무』, 『작은 연못』 등이 있다.



기억과 탄생

『심장 소리』의 이야기는 언제 시작됐나요? 

일본의 테시마라는 섬에 심장 소리를 모아둔 공간이 있어요. ‘심장 소리 아카이브’라고, 외국 작가가 만든 공간이에요. 그 작가가 모은 수많은 심장 소리들이 보관돼 있고, 그곳에 가면 직접 녹음을 할 수도 있고 들어볼 수도 있어요. 저도 직접 가본 건 아니고 친한 교수님이 다녀오셔서 저한테 얘기해주신 거예요. 그 공간이 너무 좋았다면서 경험을 섬세하게 묘사해주셔서 제가 직접 간 것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이후에 자료를 찾아보기도 했고요.

‘심장 소리 아카이브’에 대해 들으셨을 때, 어떤 생각이 드셨어요?

문득 ‘왜 심장 소리를 보관하고 싶어 할까’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리고 그 교수님이 그곳에서 만났던 관람객 얘기를 해주셨는데, 한 남자가 심장 소리를 들으면서 엄청 울고 있었대요. 무슨 일일까 해서 물어봤더니 자기 아버지의 심장 소리를 듣고 있었던 거예요.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같이 와서 심장 소리를 녹음해 둔 상태였는데 해마다 기일이 되면 그 심장 소리를 들으러 온다는 거예요. 그 사람은 심장 소리로 아버지를 추억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서 ‘이걸 그림책으로 그려보면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나온 책이 『심장 소리』예요.

이야기가 완성되기까지 긴 시간이 걸렸죠? 

그 아카이브에 대해 들은 게 7~8년 전이에요. 그리고 1~2년 지난 후에 처음 더미북 작업을 했어요. 그런데 뭔가 제 마음에 딱 와 닿지 않더라고요. 특히 마지막 부분이요. 그래서 아직은 완성되지 않았다, 라는 생각에 계속 넣어뒀었어요. 그러다 6년 만에 다시 꺼내서 출간하게 된 거예요. 

어떤 변화가 있었던 건가요? 

이 책이 의미하는 바를 제가 나중에 깨달았던 거죠. 처음에는 저도 (작품 속의) 아이가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기억하는 방식으로 심장 소리를 가지고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6년 만에 책을 꺼내서 읽다 보니까 다른 의미를 더 가지고 있다는 걸 알게 왰어요. 저는 이 아이가 태어나는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이 책을 썼던 거예요. 물론 심장 소리를 기억하기 위해서 뛰는 것이기도 한데, 결국 마지막 부분에서 자기만의 심장 소리로 다시 태어나는 이야기인 거죠. 그렇게 생각하고 책을 다시 봤더니 ‘나한테 이야기가 이렇게 다르게 보일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 정도 의미면 책을 내도 되겠다 싶었어요. 『심장 소리』는 누군가를 기억하기 위한 책으로 읽어도 되고 태어나는 한 아이의 이야기라고 읽으셔도 좋을 거라는 생각을 했어요. 




『심장 소리』의 ‘나’는 자신의 심장 소리를 들으면서 ‘다른 사람’을 기억해요. 

태아가 14주 정도부터 소리를 들을 수 있대요. 아마 우리 체내에 들어있는 가장 최초의 기억이 그 심장 박동음일 거라고 저는 생각했거든요. 이 아이 안에 남아 있는 태초의 기억도 몸 안에서 들었던 그 심장 소리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죠.

작품을 쓰시면서 작가님도 누군가를 떠올리셨나요?

특정인을 떠올리거나 그러지는 않았는데, 아무래도 제 어린 시절을 많이 생각하면서 썼죠. 다른 작가님들은 어떨지 모르겠는데, 저는 작가가 기본적으로 자기 안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리고 저는 특히 어렸을 때 경험한 것들을 가지고 많이 쓰는 것 같아요. 『위를 봐요!』도 그렇고 『3초 다이빙』도 그런데요. 『3초 다이빙』은 아주 어릴 때 이야기라면 『심장 소리』는 조금 더 크고 나서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사실 이번 책을 쓰면서 열두 살, 열세 살 무렵을 많이 생각했어요. 그때 육상 선수로 활동했었거든요. 중거리 달리기 선수였는데, 그때 제 심장 소리를 되게 많이 들었어요.






항상 간결한 색과 선을 사용하시는데요. 『심장 소리』에서는 하나의 색만 사용하셨어요. 

어떤 색을 썼다면 거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어야 된다고 믿는 편이에요. 예쁘게 보이려고 색을 쓴다는 건 스스로 좀 용납할 수 없어 하고, 분명한 의미와 콘셉트가 담겨 있는 색을 써야 된다고 생각하는 편이라, 그래서 좀 색깔을 가려 쓰는 편이긴 해요. 지금까지는 주로 노란색과 파란색을 많이 썼는데, 이 책에서는 빨간색을 썼어요. 심장을 상징하는 색깔이기도 하고, 뭔가 따뜻함을 주는 색깔이기도 하잖아요. 사실 작업을 하면서 고민을 했어요. 색깔을 다양하게 쓰려고 했던 건 아니지만, 여러 가지 베리에이션을 줬었죠. 그런데 저는 『심장 소리』가 한 아이가 태어나는 이야기라고 생각했고, 이 아이가 어머니 뱃속에서 심장 소리를 들으면서 태어나는 준비를 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러면 전체가 다 빨간색이 되는 게 맞겠다고 생각했어요. 그 아이에게는 심장 소리가 세상의 전부니까, 다 심장의 색깔로 가는 게 맞겠다는 결론을 내렸죠. 



책으로 집 짓는 건축가

건축을 전공하셨습니다. 『위를 봐요!』『별과 나』『벽』으로 ‘건축3부작’을 완성하셨고요. 

제가 처음에 만든 책 세 권인데, 사실 그 세 권은 어떻게 만들지 정해져 있었어요. 『위를 봐요!』는 평면도를 가지고 그림책을 만들어봐야겠다는 생각으로 만들었고요. 단면과 투시도로 한 권씩 더 만들어봐야겠다는 계획이 잡혀 있었어요.

처음 작가님이 등장하셨을 때 ‘건축을 공부한 작가로서 색다른 작품 세계를 보여준다’는 점에 주목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은데요. 작가님은 점점 더 넓고 다양한 영역의 작품을 보여주셨어요. 

사실 건축이라는 분야도 엄청 다양해요. 우리가 보통 건축이라고 하면 집 짓는 것만 생각하는데, 아티스트로서의 건축가들도 있거든요. 페이퍼 아키텍처(Paper Architecture)라고 하는데, 도면이 주는 아름다움이나 알맞게 맞춰져 있는 선들의 느낌을 가지고 아트를 하는 분야도 있어요. 정말 다양한 여러 가지 영역이 있고, 저는 ‘책으로 건축을 해나가야지’라는 생각으로 계속 임했던 거였어요. 초창기에는 가장 기본적인 평면, 단면, 투시도를 책으로 표현해보자고 생각했던 거고, 이후에는 ‘내가 건축에서 얻었던 영감이나 생각 같은 걸 반영해서 책에 한 부분은 들어가 있게 하자’라는 생각으로 작업한 거예요. 

『심장 소리』도 ‘심장 소리 아카이브’라는 건물에서 영감을 받아서 시작하게 된 거잖아요. 그것도 내 책에서 건축을 표현하는 한 가지 방식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죠. 그림책의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내 책에서 어떤 게 건축의 한 부분으로 녹아 들어갈 수 있을까’를 고민해요. 없으면 채워 넣으려 하기도 하고요. 처음에는 건축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것들을 가지고 작업했다면, 이후부터는 ‘난 이것도 건축이라고 생각해’ 하는 것들이 자꾸 들어가게 된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까 (영역이) 넓어진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가 프로필에 ‘이야기가 담긴 집을 꿈꾸며 건축을 공부했다. 지금은 책 속에 이야기 집을 지어 아이들에게 선물하고 있다’고 쓰여 있는 이유를 알 것 같아요. 

저는 책으로 건축을 하는 중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다양한 방식으로 건축을 할 수 있다는 걸 좀 보여주고 싶기도 하고 스스로 증명하고 싶기도 해요. 그래서 저는 건축하고 있다고 말하고, 간혹 건축 공부하는 친구들이랑 만나서 이야기할 때도 너희들은 집을 실제로 짓겠지만 나는 책으로 짓고 있다고 얘기를 하죠.

볼로냐 라가치상을 두 차례 수상하셨습니다. 늘 수식어로 따라붙는 이력이기도 한데요. 부담스럽지는 않으세요?

부담스러웠죠. 그런데 두 번째 상이 저한테 좀 더 특별했던 게, 첫 번째 상은 ‘오페라 프리마’라고 신인상 부문이었거든요. 그런데 두 번째 부문은 건축/예술 디자인 분야(아트, 아키텍처 앤드 디자인)였어요. 건축상을 받았다는 게, 나름 되게 뿌듯하더라고요. 학교 다닐 때 교수님들이 제 건축을 되게 싫어했거든요. (웃음) 항상 ‘건축스럽지 않다’는 말을 들었어요. 다른 학생들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건축을 하는데 저는 맨날 엉뚱한 거 한다고 생각하셨으니까요. 그런데 상을 받으니까 내가 건축을 하고 있다는 걸 누군가한테 인정받은 기분이었어요. 내가 꾸준히 건축 작업을 해가고 있다는 걸 이 사람들은 인정을 해주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서 기분이 좋았죠.

작가님의 작품을 볼 때마다 ‘시선’에 대해 생각하게 돼요. 작업하실 때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부분인가요? 

네, 저의 작품 세계 전체를 관통하는 말은 ‘시선’인 것 같아요. 뭔가를 바라보는 눈. 처음에 만든 책 세 권(『위를 봐요!』, 『별과 나』, 『벽』)이 평면 단면 투시도로, 어디에서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거였잖아요. 다음의 책들도 그걸 염두에 둔 것 같아요. 이제는 위치만 달라진 게 아니었죠. 『별과 나』는 우리가 지나치기 쉬운 작고 미약한 것들을 바라보는 방법에 대해서 얘기한 책이고 『3초 다이빙』은 내가 뭘 못하는지 스스로를 돌아보는 이야기였다면 『심장 소리』는 앞을 보는 이야기라고 말하고 싶어요. 이 책은 (작품 속의) 아이가 태어나러 가는 이야기라고 말씀드렸는데, 그래서 이 아이는 꾸준히 앞만 보고 달려가요. 주변을 보기도 하지만. 그래서 계속 건녀편으로 건녀편으로 이어지고 있고, 아이는 한 발짝씩 나아가는 이야기예요. 『3초 다이빙』이 자신의 약점을 고백하면서 시원하게 털어내는 이야기라면 『심장 소리』에서는 끈질기게 한 발짝씩 나아가는 아이의 이야기를 그리고 싶었어요. 



두 번 읽어주세요

곧 다른 작품들도 출간되죠?

올해는 책이 좀 많이 나올 예정이에요. 창작책도 한 권 나오고, 그래픽노블도 하나 준비하고 있는데요. 그래픽노블은 스케치는 거의 다 됐고 그림만 들어가면 되는 상태예요. 그리고 6월에는 에세이집이 나올 예정이거든요. 고정순 작가님과 편지 형식으로 글을 썼던 프로젝트가 있는데, 매주 한 편씩 1년 동안 메일링을 했어요. 그 글들이 책으로 묶여서 한 권씩 나올 예정이에요. 서로에게 보내는 편지라기보다는, 하나의 주제로 고정순 작가님과 제가 에세이를 한 편씩 써서 독자 분들한테 보내드리는 형식이었어요. 서간문보다 더 에세이 같은 느낌일 거예요. 그 책이 6월에 나오고, 그래픽노블은 9월이나 10월 말쯤 나올 것 같습니다.

그래픽노블은 어떤 이야기인가요? 

SF예요. 달토끼 이야기인데, 지구인 줄 알고 달에 잘못 착륙한 토끼 이야기입니다. 처음에는 그림책 콘티로 짰는데 출판사에서 보시고 이 주제에 더 많은 이야기가 들어가면 재밌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제가 지금까지 주제 위주의 책을 써왔잖아요. 『벽』도 그렇고, 강렬한 메시지를 전하거나 주제를 보여주는 거에 집중하다 보니까 이야기가 풍부해서 기승전결이 확실히 보이지는 않았는데, 이야기성이 강한 책도 한 번 써보고 싶었어요. 

이전보다 분량이 훨씬 많아졌겠어요. 

양이 거의 대여섯 배 늘었어요.(웃음) 그리고 그림책과 만화책 연출이 전혀 다르다 보니까, 그런 부분에서 고민이 있긴 했어요. 그래서 자료 조사를 핑계로 만화책을 되게 많이 읽고 있어요. (웃음) 새로운 시도를 하다 보니까 저도 재밌더라고요.

제목은 정하셨어요?

‘나의 달을 지켜줘’예요. 아마 그 제목으로 나올 거예요. 저는 모든 책을 제목부터 정해놓고 시작하거든요. 『나의 지구를 지켜줘』라는 순정만화가 있는데, 제가 어렸을 때 되게 좋아했던 만화예요. 그 만화에서 모티프를 받아서 만든 이야기라 제목을 ‘나의 달을 지켜줘’로 지었어요.

『심장 소리』의 독자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까요? 

제가 예전에 육상 선수였다는 말씀을 드렸는데, 그때 주로 800m 달리기를 했었어요. 400m 트랙을 두 번 도는 달리기인데, 단거리는 결승점이 보이고 그걸 향해서 달려가면 되잖아요. 중거리는 좀 달라요. 400m를 두 번 돌아야 하니까, 자기가 원래 서 있던 자리에 꼭 한 번은 돌아와야 되거든요. 그러니까 다음 바퀴부터는 이전 바퀴의 나와 같이 뛰는 거예요. 『심장 소리』를 쓰면서 그때의 기억을 많이 떠올렸어요. 이 책도 끝의 두 부분이 앞의 두 부분이랑 겹치도록 되어 있는데, 이 아이가 처음의 출발점으로 다시 돌아와서 태어나고 그 다음부터는 자기 삶을 살아가는 거예요. 책을 다시 읽으시면 두 번째 바퀴를 읽어보실 수 있을 거예요. 그래서 이 책은 최소 두 번은 보셨으면 좋겠어요.




*정진호 (글·그림)

이야기가 담긴 집을 꿈꾸며 한양대학교에서 건축을 공부했다. 지금은 책 속에 이야기 집을 지어 아이들에게 선물하고 있다. 첫 그림책 『위를 봐요!』와 『벽』으로 2015년, 2018년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에서 라가치상을 두 차례 수상했다. 또한 『부엉이』로 한국 안데르센상 미술 부문 우수상을, 『벽』으로 황금도깨비상을 받았다.쓰고 그린 책으로 『위를 봐요!』, 『벽』, 『별과 나』, 『나랑 놀자』, 『여우 씨의 새 집 만들기』가 있고, 그린 책으로 『노란 장화』, 『루루 사냥꾼』, 『투명 나무』, 『작은 연못』 등이 있다.



심장 소리
심장 소리
정진호 글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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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스토리] 그림책 작가 이수지 “벽 없는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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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SNS에 이수지 작가의『여름이 온다』사진이 올라왔다. 오랜만에 그림책을 펼쳤다는 한 독자는 “아, 이게 그림책이지.”라고 짧은 한 문장을 남겼다. 작가는 울컥했다. 어떻게 내가 각별히 생각했던 지점을 분명하게 짚었지? 좋은 독자들이 있다는 사실 자체에 고마운 감정이 들었다. 지난 3월, 이수지 작가는 2022년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 일러스트레이터 부문을 수상했다. 한국 작가가 ‘아동 문학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안데르센상을 받은 것은 처음이다. 수상 소식을 듣기 일주일 전, 이수지 작가를 서울 광장동 작업실에서 만났다.



적극적인 독자를 원한다

작업실 아래에 미술학원이 있네요. 왠지 학원에서 대가가 탄생할 것 같네요.

미술학원 선생님은 제가 누군지 몰라요(웃음). 

월요일 아침이에요. 직장인들은 가장 싫어하는 요일. 작가님은 좋아하는 요일이 있나요?

특별히 없어요. 작업을 해야 하면 일단 작업실에 오기 때문에. 아침에 출근하면 폭풍 이메일에 답장을 해야 하기 때문에요. 제가 잘 쉬는 성격이 아니라서요. 올해부터는 좀 운동도 하고 시간 관리도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중이에요. 

작년 여름에 『여름이 온다』가 출간되고 첫 개인전 〈이수지: 여름 협주곡〉을 여셨죠. 무척 흥행했고요. 와, 우리나라에 그림책 작가 독자들이 이렇게 많았나?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어떠셨어요?

제 작품을 집약적으로 전시한 개인전은 처음이었거든요. 어린이 친화적인 전시도 아니었고 오히려 작가성을 조금 강조한 전시였는데도 불구하고 많은 분이 찾아와주셔서 놀랐고 감사했어요. 전시를 연 공간이 찾아오기 쉬운 위치가 아니었어요. 그런데 막 아이들 손잡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언덕을 올라오시는 거예요. 그런데 갤러리가 너무 시원하니까 막 기뻐하시고(웃음). 그 모습을 보는데 되게 기분이 좋았어요.

『여름이 온다』는 비발디 <사계> 중 ‘여름’을 모티프로 한 작품입니다. 작품을 그리는 내내 <사계>를 들으셨다고요. 

집에서는 CD로 듣고 작업실에서는 스트리밍으로 듣고 정말 많이 들었어요. 작업실에 오면 일단 바로 음악을 틀고 시작했으니까요. 중학교 3학년 아들이 음악을 정말 많이 듣는데 앱에 들어가면 랭킹이 보이나 봐요. 이번 달에 제일 많이 들은 노래가 나오는데, 도저히 엄마를 이길 수 없었다며(웃음). 

그림책치고도 판형이 큰 편이죠. 148쪽의 방대한 그림책이고요.

원래 ‘여름’의 1, 2, 3악장 중에 한 악장만 할 생각이었어요. 그러다 어느 것도 놓칠 수 없다, 욕심이 생겼고요. 그렇다면 1, 2, 3악장을 각각 다른 책으로 만들어서 하나의 케이스에 넣어보자고 생각했다가 다시 하나로 묶는 방향으로 결정했어요. 책은 작가가 읽는 순서를 정해주잖아요. 사실 그림책도 그림을 보는 순서를 정해주는 건데 하나로 묶여 있을 때 주는 느낌이 더 좋을 것 같았어요.

새 악장이 시작될 때 종이가 바뀝니다.

새로운 악장이 시작될 때마다 다른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콘서트에 가면 악장이 바뀔 때 박수는 못 치지만 뭔가 변화한다는 기대감이 생기잖아요. 종이를 만지고 넘길 때, 그런 마음을 느꼈으면 했어요.

작업하시면서 각별히 좋았던 장면이 있나요?

색종이 콜라주 작업을 할 때 좋았어요. 원하는 느낌이 한 번에 나왔거든요. 아이들이 물풍선을 던지면서 노는 장면은 실제로 저희 가족이 시골에 살 때 친구들이 놀러 왔을 때 기억으로부터 시작됐어요. 예전에 문승연 작가님의 『우리는 벌거숭이 화가』의 그림 작업을 하면서 종이에 물감을 칠한 다음 물감 자국이 있는 종이를 콜라주 하듯 오려서 작업한 적이 있었는데요. 예상치 못한 느낌이 나오니까 재밌더라고요. 그때는 색종이를 쓸 생각은 못 했는데 이번에는 작정하고 했죠. 물감으로는 표현하지 못한 색감이 있고, 종이를 오리는 순간 제가 모르는 우연이 계속 개입되니까 재밌었어요.

겉 표지를 펼치면 한 장의 멋진 포스터를 만날 수 있어요. 포장된 선물을 받는 느낌이 들어요.

큰 공간을 이용해서 크게 펼쳐지는 그림을 선물하고 싶었어요. 『여름이 온다』는 그래도 큰 판형이지만 항상 그림책들이 너무 작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뭔가 확장되는 느낌을 주고 싶었죠.

『여름이 온다』도 글 없는 그림책이에요. 그동안 작가님의 인터뷰를 찾아보니 꼭 빠지지 않는 질문 중 하나가 “글 없는 그림책은 어떻게 읽어야 하나?” 더라고요.

글 없는 그림책은 마이너 장르예요.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그림책은 아니죠. 글에 익숙한 독자들이 대부분이니까 글 없는 그림책을 만났을 때 많이 당황해요. 그런데 이때 이 당황스러움을 어떻게 핸들링하느냐에 따라 독서가 확장될 수 있어요. 도전 의식이 생기는 거죠. 이 그림이 나한테 무슨 이야기를 해줄까? 내 마음속에 들어온 이야기가 뭘까? 생각하면서 일단 끝까지 읽어보는 거예요. 그림책도 그렇고 어떤 낯선 예술 장르를 만났을 때 처음엔 다 당혹스럽잖아요. 하지만 아! 이거 나는 몰라, 하고 덮어버리면 거기서 끝나고요. 반면에 모르지만 알고 싶다, 궁금해하는 순간들을 놓지 않으면 다음 단계로 가는 예술의 향유자가 될 수 있죠. 글 없는 그림책은 항상 이런 도전을 주죠. 되게 적극적인 독자를 원하는 거예요.

글 없는 그림책은 오히려 더 천천히 읽어야 할 것 같아요.

그럴 수 있죠. 어떤 단서를 찾아내서 앞으로 나가야 하는 건 독자의 몫이니까요. 느긋하게 모호한 의미를 즐기고 질문을 던지면서 자신의 답변을 마련해 온전히 자기 것으로 가져가는 것, 글 없는 그림책을 즐기는 방법이죠.



생각해보지 못한 영역으로 가는 즐거움

책 첫 장에 “내가 어릴 적, 항상 음악을 켜두신 엄마께”라고 적으셨어요. 어머니께서 클래식을 많이 들으셨나요?

클래식뿐 아니라 온갖 음악을 다 들으시고 좋아하셨어요. 우리가 흔히 라디오를 배경 음악처럼 틀어놓곤 하잖아요. 그런데 엄마는 이 음악을 감상하려고 부러 선곡해서 틀어놓으신 느낌이었어요. 집에 LP판도 많았는데요. 덕분에 어렸을 때부터 음악은 ‘듣는 것’이라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아요. 뭔가를 일부러 찾아서 듣는 일, 되게 적극적인 독자이면서 청자인 거잖아요. 이 태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여름이 온다』를 통해서 어린이 독자가 비발디의 <사계>를 알게 되고, 언젠가 우연히 이 음악을 듣게 된다면 ‘어, 나 이거 알아.’라며 반가움이 피어날 수 있잖아요. 

음악을 들으면서 그림책을 보는 것, 확실히 다를 것 같아요.

얼마 전 한 초등학교 선생님이 그림책 강연을 하면서 QR코드로 음악을 재생해줬대요. 그리고 교실 앞에 그림책을 갖다 놓았는데 몇몇 아이들이 책을 들고 자기 자리에 가서 정말 자세하게 책을 보고 있더래요. 음악과 책, 순서가 바뀔 수도 있지만 이 음악으로부터 책이 궁금해진 것에 대해 너무 고마웠다는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2020년에 출간된 『물이 되는 꿈』도 음악으로부터 출발한 책이죠. 루시드 폴의 동명의 노래를 수채화로 표현하셨어요. 어떻게 두 분이 함께 작업하게 되셨나요? 

책을 출간한 출판사 대표님이 ‘물이 되는 꿈’이라는 노래로 책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대요. 그림책을 전문으로 만드는 출판사는 아닌데요. 루시드폴에게 연락을 했더니 흔쾌히 좋다고 했대요. 그림 작가를 누구로 할지 이야기하다 저에게 연락을 주셨고요. 저는 워낙 루시드 폴 노래를 오랫동안 좋아했는데요. 어떤 분위기의 음악을 하는지 알고 있으니까 제안을 받았을 때 뭐랄까 그냥 너무 자연스럽게 느껴졌어요. 최근에 노랫말로 만든 그림책이 많이 나오고 있잖아요. 아마 그런 분위기도 한몫하지 않았을까요?

작품을 보면 작가의 성격이 드러나잖아요. 작가님 스스로 “그림을 공들여서 그리는 스타일이 아니다. 순간의 느낌을 빠르게 그리는 걸 선호한다.”고 하셨어요.

네. 약간 즉흥성을 좋아하는 것 같고요. 이때 아니면 안 될 마음에 관심이 많아요. 아까 제가 화방이나 문구점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뭔가 영감이 떨어지길 기다린다고 했잖아요. 의외의 것에서 촉발돼서 내가 생각해보지 못한 영역으로 가는 걸 기대하고 약간 즐기는 기분도 있는 것 같아요.

최근 M. B. 고프스타인의 『할머니의 저녁 식사』 번역도 하고 글 작가와 협업도 꾸준히 하세요. 어떤 기준으로 일을 선택하시나요?

시간은 정해져 있는데 제안은 계속 오거든요. 그런데 출판사에서 제안을 주실 때, 제 작업의 어떤 면이 잘 나타날 것 같아서 이 원고를 의뢰한다고 말씀해주세요. 일단 설명을 읽고 정말 그런가?  생각해보고요. 그동안 해보고 싶었던 주제였는데 혼자서는 안 나올 것 같은 작업, 뭔가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 싶을 때 수락하는 것 같아요. 뭔가 흥분이 되는 작업을 주로 하게 되는데 이건 개인 작업을 할 때와 같은 기분이에요.



내놓는 게 전부인 사람들

경계 삼부작 작업 노트인 『이수지의 그림책』에서 “그림책으로 인해 수혜를 받는 이가 오히려 작가 자신.”(154쪽)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림책 작가들을 만나면 이 책이 잘 팔리든 팔리지 않든, 작업 자체에 대한 만족도가 대단히 높다고 느꼈어요. 물론 작업의 어려움이 크지만 그림책을 만드는 일이 직업이라는 것, 그림책 장르에 관한 애정이 정말 각별하다고 여겨집니다. 작가님은 슬럼프가 없었다는 이야기도 하셨었죠?

(웃음) 그 이야기를 했다가 엄청나게 폭격을 받았는데요. 없어요. 없죠. 그런데 슬럼프가 없다는 말의 맥락을 살펴보면, 슬럼프를 말하기엔 이 분야가 너무 발랄한 경향이 있어요. 내가 하는 이야기와 하고 싶은 이야기, 그리고 이 이야기를 듣는 대상을 보면 정말 어린아이 같은 사람들이 많아요. 그래서 고민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 고민을 조금 가볍게 만드는 능력이 탁월하다고 해야 할까요?

그림책 작가님들은 대화를 나누다 보면 명료한 지점이 있어요. 보통 말씀도 길게 하지 않으시고 간결하죠.

아마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이거면 됐지.’ 하는 생각이 있는 것 같아요. 말하는 게 그냥 액면가 그대로인 사람들이 많은데요. 저는 그런 면이 되게 좋아요. ‘나는 뒤에 뭔가가 더 있어.’라고 말하지 않고 그냥 앞에서 내놓는 게 전부인 사람들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잖아요. 그림책이 저에게는 그런 느낌이에요. 만약 어떤 그림책이 계속 뭔가를 숨겨 두고 이야기해주지 않으면 오히려 매력이 떨어지는 것 같아요. 이게 아이들의 본성에 맞닿아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아이들로부터 출발한 장르이기 때문에 창작자도 같은 마음으로 작품을 만들고 또다시 아이 같은 마음으로 순환하는 게 아닐까 생각해요.

미술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하고 영국 캠버웰 칼리지 오브 아트에서 북아트를 공부하셨어요. 북아트를 공부한 경험이 그림책 작업을 하는데 어떤 도움이 됐는지 궁금합니다.

책이라는 매체를 정말 진지하게 볼 수 있는 기회가 됐던 것 같아요. 그 전까지는 언제나 메시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치기 어린 마음이 늘 그렇지만 내가 세상을 향해서 무슨 말을 하느냐가 중요하지, 그 외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북아트를 공부하면서 책이라는 매체를 깊숙하게 들여다볼 수 있었고 관점이 바뀌었다고 할까요? 이렇게 상자 밖으로 한 번 나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제 첫 책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인데요. 이 그림책을 보면 무대가 펼쳐지다가 한 발자국 물러나보면 그게 벽난로라는 걸 알게 되고, 또 한 발자국 물러나면 그냥 책의 한 페이지에 있는 그것조차도 하나의 일루전이었다는 걸 깨닫게 돼요. 나중에 생각해보니 당시 제 상태가 그랬던 것 같아요. 내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이 이 세계의 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고, 갑자기 중요도가 바뀌는 순간을 느꼈어요. 책을 만드는 일이 하나의 놀이처럼 인식되면서 책이라는 매체가 갖고 있는 물성의 형식으로 이야기를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 기가 막히게 멋지다고 느꼈죠. 그리고 이 느낌을 누군가에게 줄 수 있는 게 그림책이라면 이거 정말 하고 싶다는 생각이 활활 타올랐어요.

지금도 타오르는 중이시죠?

네, 그 느낌이 여전히 지속되는 걸 보면 그림책이 정말 대단하긴 한 것 같아요(웃음).

작가님의 대표작 『파도야 놀자』는 20개국 이상의 나라에서 번역됐는데 영문판이 먼저 출간됐죠. 첫 책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도 이탈리아 출판사에서 가장 먼저 출간됐고요. 북아트를 공부하는 유학생이었던 2001년, 볼로냐국제아동도서전에 더미북을 갖고 가는 용기는 어떻게 생겼나요?

저도 무슨 용기였는지 알 수 없는데요. 그때는 그냥 남들도 다 하는데 나라고 뭐가 달라? 어떻게 되나 해보자, 하는 마음이었던 것 같아요. 당시 영국에 있었으니까 이탈리아에 가기 쉽잖아요. 볼로냐에 북페어가 있는데 되게 재밌고 유명하다는 말을 듣고 프랑스에 사는 친구랑 같이 갔어요. 가보니까 제 또래 아이들이 큰 가방을 들고 다니면서 출판사랑 약속을 잡고 자기 작품을 보여주고 피드백을 받는 거예요. 그 모습이 되게 좋아 보였어요. 내 작업을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데 그 상대가 필드에 있는 사람이고 또 돈이 드는 일도 아니니까요. 놀라웠죠. 그래서 이듬해 포트폴리오도 만들고 그림책도 두 권 만들어서 이걸 팔아봐야지 하는 일념으로 갔던 거예요. 당시 유럽 쪽 출판사들이 많이 열려 있었던 것 같은데요. 이탈리아 코라이니 출판사도 이렇게 어린 외국 작가랑 창작 그림책을 만든 건 처음이었다고 해요. 자기들도 실험을 해본 거죠. 묘하게 인연이 돼서 미국에서 『파도야 놀자』가 나왔을 때 이 출판사가 이탈리아 저작권을 사가면서 『파도야 놀자』가 이탈리아에서 많이 팔렸어요. 이번 『여름이 온다』도 계약했고요.



굉장한 비밀은 없다

며칠 전 작가님의 SNS에 올라온 작업 노트를 봤어요. 수년 전인 것 같은데 아이들의 낙서가 보이더라고요. 두 아이를 양육하면서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는 일이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그렇죠. 지금은 두 아이가 중학생이 돼서 좀 나은데요. 아이가 어렸을 때는 말이 통하지 않으니까 힘들었어요. 아이들에게 지금 뭐가 필요한지 눈에 다 보이니까 모든 시간을 할애할 수밖에 없는데 뭔가를 만들고 싶은 마음이 계속 생기니까요. 아이들이 너무 예쁜 것과는 별개로 매 순간 분통이 터지면서 왜 이렇게밖에 할 수 없나, 왜 나는 항상 최선이 아니라 차선을 선택해야 하는가, 그런 생각이 들면서 억울했어요. 물론 왜 그래야 하는지 모르진 않죠. 제가 이렇게 사는 걸 선택했으니까. 책임을 져야 하니 어쩔 수 없는데, 내가 원하는 퀄리티를 뽑아내지 못했을 때 이걸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하나?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어요. 하지만 상황이 달랐다면 제가 더 잘했을까요? 글쎄 또 그럴 것 같지도 않고요. 생각이 계속 엎치락뒤치락 변했던 것 같은데 물리적인 시간이 부족한 게 가장 힘들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로부터 얻는 에너지가 굉장히 컸을 테고요.

그럼요. 아이들만이 줄 수 있는 사랑스러움, 정확히 표현할 수 없는 보람과 여러 짜릿한 감정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 시기를 견뎠던 것 같아요.

동료 그림책 작가들과 ‘바캉스 프로젝트’ 활동을 하고 ‘흰토끼프레스’라는 이름으로 독립 출판물도 만들고 판매하시죠. 어떻게 기획된 프로젝트인가요?

짧고 굵게, 평소 해보고 싶었지만 출판은 안 될 것 같은 종류의 책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으로 기획했어요. ‘바캉스’란 본업으로 하는 작품 외에 휴가처럼, 놀이처럼 만들어보자는 뜻이고요. 

보통 작가들이 출판사와 책을 만들잖아요. 누가 막 검열하진 않지만 이미 많은 자기 검열을 통해 나오는 정제된 작품이죠. 이를테면 옛이야기를 소재로 책을 만들어보자는 기획을 갖고 하나의 작품을 함께 만들고 또 별개로 각자 작품을 만들어요. 독립 서점에서도 구입할 수 있고 저희가 직접 온라인으로 판매도 해요. 올해도 마감이 얼마 안 남았어요. 제가 막 마감을 쪼고 있어요(웃음).

그림책을 좋아하다 보면 또 만들어보고 싶기도 합니다. 누구나 그림책을 만들 수 있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요. 좋은 그림책을 만들고 싶은 독자가 힌트를 하나 달라고 요청한다면,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싶으세요?

누구나 할 수 있고 하면 된다는 말을 제가 무책임하게 한 것 같은데요.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라는 의미였어요. 왜냐하면 저도 ‘그림책 작가가 되려면 이렇게 하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시작했기 때문이에요. 제가 드릴 수 있는 조언은 내가 알고 있는 상식 내에서 필요한 것들을 피하지 않고 하면 될 것 같아요. 어떤 그림을 그리고 싶으면 잘 그릴 수 있는 스킬을 키워야 하는 것처럼요. 그런데 대개 이런 질문을 하시는 분들을 보면 ‘내가 이게 부족한데 이걸 안 해도 할 수 있을까요?’라는 의도성 질문이 많아요. 그분들께 해줄 수 있는 말은 “피해 갈 수 없어요. 결국 그거 해야지 당신이 원하는 걸 얻을 수 있어요.”예요. 즉 굉장한 비밀은 없다는 말이에요. 

올해 신작이 나오나요?

한국 제목이 아직 정해지지 않았는데요. 미국 작가 팻 지틀로 밀러의 『See you someday soon』이라는 작품에 그림을 그리고 있어요. 할머니와 손주가 서로를 그리워하는 내용인데요. 다이컷이라고 하죠. 종이에 구멍을 뚫어서 아래쪽이 들여다보이는 형식으로 구성되는 작품이에요.





"『여름이 온다』를 잘 들여다보면 『이렇게 멋진 날』도 있고 『우리는 벌거숭이 화가』『강이』『선』『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도 있어요. 그림책 속 아이들은 무대의 주인공이기도 하지만 음악을 듣는 관객이기도 해요. 혹시 관객석 끝에 앉아 있는 사람을 보셨나요? 이게 제 모습이에요.



*이수지

그림책 작가. 회화와 북아트를 공부했고, 여러 나라에서 책을 펴냈다. 경계 그림책 삼부작인 『파도야 놀자』, 『거울 속으로』, 『그림자놀이』는 여러 나라에서 출간되어 사랑을 받고 있다. 『여름이 온다』로 2022 안데르센상 일러스트레이터 부문을 수상했다.




여름이 온다
여름이 온다
이수지 글그림
비룡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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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작가] 권누리 시인, 좋아하는 마음으로 가득했던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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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손잡기』를 읽으며 투명한 햇살 아래 선 소녀를 떠올렸다. 강한 빛에도 지지 않고 한여름의 감정을 손에 쥔 소녀. “사랑에는 제법 재능이 있습니다”하고 고백하는 시적 화자처럼, 권누리 시인은 인터뷰 내내 ‘너무 좋아하는 마음’에 대해 말했다. 좋아하기 때문에 더는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으로 권누리의 시는 기꺼이 희미해지는 이들의 손을 잡는다.



사랑에는 제법 재능이 있습니다

투명한 빛과 초록의 이미지가 선명한 시집이었어요. 표지의 그림처럼요.

그림은 직접 고른 거예요. 제목 없이 표지에 그림을 가득 채우는 건, 봄날의책 시집의 특징인데요. 평소에도 봄날의책 출판사를 좋아해서 꼭 여기서 시집을 내고 싶었어요. 디자인도 아름답고, 제가 좋아하는 배수아 작가님의 번역서가 나오기도 했고요.

첫 시집이잖아요. 어떤 고민을 많이 했어요?

시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도 끝까지 읽을 수 있는 시집을 만들고 싶었어요. 어떻게 다양한 감정을 독자에게 잘 전할 수 있을까 고민했죠.

「하트*어택」에는 ‘사랑에는 제법 재능이 있습니다’라는 구절이 나오죠. 시를 쓴 사람도 다정한 사람이 아닐까 싶었어요. 

친구들이 “넌 정말 사랑을 잘 한다”는 말을 많이 해줘요.(웃음) 최근에 “얘들아, 어떡하지 나 지금 마음에 사랑이 없어.”라고 했더니, 다들 진심으로 걱정하는 거예요. 그 정도로 원래 다양한 감정을 멈추지 않는 편이에요. 쉽게 사랑을 시작해서일 수도 있고, 좋아하는 마음을 쏟아붓고 후회하지 않아서일 수 있겠죠. 어떤 형태로든 사랑은 늘 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시인의 말’이 인상적이었어요. “그러니까 이제 더는 아무도 죽지 마.”라고 썼죠. 

시에 등장하는 시적 화자와 ‘시인의 말’을 쓰는 시인은 아무래도 다르고 분리되어 있잖아요. 그래서 ‘시인의 말’만큼은 ‘저는 이 말을 전하고 싶었어요’하고 고백하는 느낌으로 최대한 솔직하게 쓰려고 했어요.

시집에서 ‘여름’이라는 단어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아요. 이 계절을 특히 좋아하나요?

무언가를 너무 싫어해서 오히려 좋아하는 마음이 들 때가 있잖아요. 여름이 딱 그래요. 너무 싫고 너무 좋아서 자주 쓰게 돼요. 제가 여름에 태어나기도 했고요. 글을 쓸 때, 저의 출생이나 고향에 대한 이야기에서 시작할 때가 많아요. 그렇다 보니 여름 이야기가 자주 나온 것 같아요.

시 곳곳에 머무는 환한 ‘빛’의 존재도 인상적이었어요.

제 시에서 ‘빛’은 중요한 단어예요. 이 시집에 묶인 시들 대부분을 2019년과 2020년에 썼는데, 최근에 청소를 하다가 당시에 남겨둔 메모를 발견했어요. 제가 이렇게 썼더라고요. “지금까지 사람들이 어둠과 밤의 막막함에 대해서 많이 말해왔다. 그래서 요즘 빛이 일종의 대체재가 되기 시작한 건 아닐까? 그럼 나는 빛을 어떻게 봐야 할까?” 그런 의문에서 출발했던 것 같아요. 「사람들이 사랑하는」에서 빛에 대해 직접적으로 쓴 대목이 있어요. ‘모든 빛을 사랑하는 것 같지는 않다/모든 빛이 사랑하는 것 같지는 않다’ 빛은 어디에나 있지만, 사람들이 빛을 싫어할 때도 있는 것 같아요. 자신들이 보고 싶은 빛을 좋은 것이라 믿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요. 그게 이상하고 무섭게 느껴질 때가 있어요. 그런 마음을 정리하면서 썼어요.

사람, 인간, 인류, 신이 등장하는 시들도 눈에 들어왔어요. 모든 것을 원점으로 돌려놓고 싶은 상상력 같기도 했고, 종말을 떠올리는 아포칼립스적 세계관처럼 느껴지기도 했어요. 

청소년기에 그런 고민을 자주 떠올렸어요. ‘나만 살고 다 죽는 것, 나만 죽고 다 사는 것. 둘 중 뭐가 나을까? 어떤 것이 덜 슬플까?’ 거기에서 시작된 것 같아요. 제 안에서 인간과 사람이라는 단어가 다른 뉘앙스를 가지는데요. 무심코 “저 사람 좋다”와 “저 인간 왜 저러지”라고 말할 때 각각의 어감이 다르잖아요. 그렇게 인간과 사람이 쓰인 문장을 각각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쓰고 싶었어요.

신이 나와서 종교적인 느낌도 들더라고요.

종교를 가져본 적은 없지만, 신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쪽에 가까워요. 믿음이 가는 확실한 존재가 있으면 좋겠어요. 사람들이 어떤 잘못이나 문제를 모두 자신의 책임으로 돌리기보다 차라리 신의 탓을 하는 식으로라도 덜 힘들면 좋겠다 하는 마음이에요. 제 시에 나오는 신이 유능한 존재는 아니에요. 불완전하고 대책없고 슬프고 이상하고, 사람처럼 느껴지죠. 어디에서든 발견할 수 있는 신을 많이 떠올리는 것 같아요.


무엇도 될 수 있는 존재들

‘우리’라는 단어가 나올 때마다, 두 사람이 손을 잡으면서 만들어지는 공동체를 떠올리게 됐어요.

‘우리’라는 단어를 쓸 때마다 고민하는데, 그런 것치고는 많이 쓰는 편이에요.(웃음) 누구도 빼놓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크지만, 그러기는 쉽지 않으니까 작은 단위의 공동체를 향해 편지를 보내는 마음으로 쓰는 것 같아요. 실제로 주변 사람들을 떠올리면서 ‘얘들아, 너희들이 있어서 정말 좋다’하는 마음으로 쓴 시도 있고요.

‘우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세계 안에서, 서로를 이해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장면이 그려지더라고요.

제가 ‘우리’라고 부르고 싶은 사람들에게 보여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쓴 시들이 많아요. 특히 퀴어 공동체나 퀴어 문학을 읽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우리’에 속할 수 있다는 걸 강조하고 싶었어요.

트위터에 “내 시가 퀴어하게 읽히지 않는다면, 퀴어하게 읽힌다면 이유가 뭘까 종종 생각한다”고 남긴 것을 봤어요.

등단작 「내비게이션 미래」를 발표하고 재미있는 감상을 많이 들었어요. 여성들의 연대로 보는 분도 있고, 동거하는 커플 이야기로 읽는 분도 있더라고요.

‘언니’가 등장하니까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겠네요. ‘도로시’라는 캐릭터도 등장하고요.

도로시는 제게 굉장히 좋은 주인공 같은 느낌이죠. 도로시를 발견한 과정에 대해 글을 쓴 적도 있는데요. 제가 좋아하는 수목원 같은 풍경에서 갑자기 누군가를 발견한 거예요. 귀엽게 옷을 입고 있는 여자아이 같은 사람인데, 좋아하는 마음이 드는 거죠. 그때 문득 ‘아, 쟤가 도로시구나.’ 깨닫게 됐어요. 도로시는 너무 사랑해서, 함께 미래를 보고 싶은 사람들인 것 같아요. 그런 존재들이 오래 살아갈 수 있는 세계에 대해 써야겠다고 생각했죠.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함께

작가님은 소설도 창작하고 있는데요. 테테, 낸내, 요한나 등 한번도 들어본 적 없지만 친근한 인물들이 등장하는데요. “이것도 되고 저것도 되는” 이름들에 대해 오래 생각해왔다고요.

시와 소설에서 이름을 짓는 일이 조금 다른데요. ‘퀴어소설’ 하면 떠오르는 작품들이 있는데, ‘퀴어시’로 묶이는 작품은 뭐가 있을까 아직까지는 고민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시를 쓸 때는 ‘도로시', ‘리타'처럼 독자들로 하여금 쉽게 ‘여성’으로 느껴지는 인물을 연상할 수 있게끔 짓고 있어요. 물론 그 화자들은 ‘여성’일 수도 아닐 수도 있겠죠. 한편, 소설에서는 인물의 성별에 대한 이해나 판단을 교란하거나 전복하는 데에 집중해요. 어느 쪽이든 독자들이 다양하게 읽을 수 있도록 가능성을 열어두고 싶어요.

한 인터뷰에서 취미가 ‘아이돌 덕질’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어요. 시인님에게 아이돌은 어떤 존재인가요?

아이돌은 제가 실컷 사랑할 수 있는 존재예요. 물론 아이돌 엔터테인먼트를 둘러싼 논의나 노동, 젠더 이슈, 청소년 인권 등의 문제도 함께 떠오르죠. 그렇지만 분명한 건, 성장 과정에서 아이돌로부터 좋은 영향을 받아왔다는 거예요. 가끔 아무 이유 없이 누구든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는데, 아이돌을 향한 사랑은 마음껏 표현할 수 있잖아요. 그렇게 사랑을 쏟고 그 에너지로 또 다른 사랑을 이어가는, 건강한 사랑의 선순환이 만들어지는 것 같아요. 아이돌을 오래 좋아하다 보니, 팬덤 커뮤니티에서 좋은 친구들도 많이 만났어요. 취미 커뮤니티에서 만난 사람들은 나이 차이에 상관없이 친구가 되거든요. 같은 대상을 사랑하고 표현하면서 새로운 관계가 형성되는 것 같아요. 

몇 편의 시는 좋아하는 아이돌에 영향을 받아 썼다고요. 

「주정」에 ‘우리의 초록빛 비 내리는 한낮의 길’이라는 구절이 있는데, 제가 좋아하는 아이돌의 노래인 ‘초록비’에서 영감을 받았어요. 가끔 지치고 힘들 때, 혼자 노래방에서 부르곤 하거든요. 또, 「소유」에서 ‘끝에서부터 쓰러지고 있는 나의 중간을 재빠르게 쳐내는 일’이라는 구절은 좋아하는 아이돌 멤버들이 도미노를 만드는 장면에서 영감을 얻었어요. 도미노 조각을 열심히 세우고 있는데 거의 완성할 때쯤 전부 쓰러뜨릴 위기가 찾아온 거예요. 그런데 한 멤버가 넘어지는 도미노 부분을 손으로 날려서 남은 것을 무사히 살려 내요. 당시 제가 시간을 들여 쌓아온 관계와 취향이 한꺼번에 무너지면 어떡하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누군가 이걸 끊어준다면 난 다시 시작할 수 있겠구나 용기를 얻었어요.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요?

사람을 웃기고 싶어 하는 사람, 광대의 삶을 자처하는 사람에 대한 에세이를 쓰고 싶어요. 내성적인 성향이지만, 사람을 웃기고는 뿌듯해하는 사람들. 그런 주제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독자들이 시를 어떻게 읽어주었으면 하나요?

읽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을 때,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제 시집이 아니더라도 시를 읽다보면 ‘이걸 내가 어떻게 이해해야 하지’하는 순간에 부딪치곤 하잖아요. 그런데 시집은 정답을 맞추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로지 나 자신이 받아들이는 대로 읽으면 된다고 생각해요. 그저 이 시집의 단어에서 원하는 이미지를 떠올리고, 이 화자가 사랑하고 있구나, 죽고 싶구나, 슬프구나 여러가지 감정이 전달되는 것만으로도 기쁠 것 같아요. 



*권누리 

대구에서 태어났다. 스스로 공주를 사랑할 운명을 타고났다고 생각한다. ‘소녀’들에 대한 이야기를 더 많이 쓰고 싶다. 시집 『한여름 손잡기』를 썼다. 시와 소설을 쓴다.




한여름 손잡기
한여름 손잡기
권누리 저
봄날의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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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은 "우리는 온전히 충분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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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에서 미국 변호사로, 국제기구 부의장으로, 변화를 거듭해온 이소은. 그가 지나온 시간들을 되돌아보며 발견한 메시지들을 『지금의 나로 충분하다』에 담았다. 삶의 무대가 바뀐 뒤 시작된 정체성의 고민과 그 끝에서 찾은 ‘나다움’의 가치에 대해 말하고, 스스로를 돌보지 않았던 시기를 지나 자신을 소중히 대하는 ‘셀프케어’에 이르게 된 경험을 들려준다. 도전 앞에 움츠러들 때, 스스로의 자격을 의심하게 될 때, 무엇보다 자신 안의 힘을 믿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인터뷰를 마치며 그는 ‘용기’와 ‘응원’을 말했다. 우리는 온전히 충분하므로.



용기의 먼지를 털어내며

첫 책이 출간된 지 10년이 지났습니다. 가끔 방송에서 뵙기는 했는데, 어떻게 지내셨는지 궁금합니다. 

많은 분들이 그러셨겠지만, 저도 세상이 완전히 뒤집어지는 팬데믹을 겪어내면서 많은 변화가 있었던 것 같아요. 삶을 바라보는 시각이 조금 변했다고 해야 할까요. 예측할 수 없는 일이 이렇게 우리 삶에 들이닥치는구나, 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리고 저한테는 굉장히 큰 전환의 시간이었어요. 다니던 회사를 퇴사하고 안식년을 가질 무렵이었는데, 뭔가 활동 개시를 할 그 타이밍에 코로나가 터진 거예요. 그래서 전환의 시간이 됐던 것 같은데, 돌이켜 보면 되게 필요했던 시간 같아요. 그 소용돌이 안에 있었을 때는 힘들었지만 이제는 좋은 시간이었다고 생각돼요. 불안하기도 했고 바닥을 치기도 했지만, 그 힘든 시기에 쓴 글들은 개인적으로 너무 마음에 와 닿고 지금도 보면 눈물이 나요. 그 시간을 안 겪었으면 이렇게 정리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저한테는 불행을 가장한 큰 행운이라고 생각돼요.

처음 집필을 결심하셨을 때, 어떤 이야기를 쓰고 싶으셨어요?

처음에는 뉴욕에서 일의 강도가 센 직업을 가진 여성으로서, 동양인으로서, 이방인으로서, 소수 인종으로서, 이 길을 걸어가면서 도전하고 이겨내면서 나답게 살아낸 이야기를 쓰자고 막연하게 생각했어요. 그런데 쓰다 보니까 훨씬 더 구체화되더라고요. 하고 싶은 이야기도 많아졌고요. 그리고 팬데믹의 시간을 거치면서 날것 그대로 써놨던 원고들이 소화가 됐어요. 밥 짓는 일에 비유하자면 뜸 들이는 시간을 가졌다고 할까요. 그러다 보니까 같은 이야기 안에서도 다른 것들이 보이더라고요. 되게 특별한 경험이었어요. 모든 경험들이 고맙고, 저를 힘들게 했던 사람들한테도 고마움이 생겼어요. 그러면서 오히려 자유로워진 것 같아요. 삶이 나에게 무엇을 주든 나를 돌보면서 이겨낸다면 다 좋은 걸로 돌아오겠구나, 다 고마운 경험이 되겠구나, 그런 믿음이 생겼다고 할까요.

이전에는 어땠나요? 

예전에는 단순히 ‘내 사람에는 감사할 일이 너무 많아’라고 생각했지, 이렇게까지 깊이 생각해 볼 계기가 없었던 것 같아요. 하루하루 사는 데 집중하다 보니까. 그런데 코로나로 인해서 진짜 멈추게 됐잖아요. 그래서 쉼이 필요한 것 같아요. 음악에도 쉼표가 없으면 안 되잖아요. 그런데 저한테는 너무 필요했던 쉼표였고, 그렇기 때문에 제가 나름대로 지금까지 만들었던 하나의 음악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앞서 말씀하시기를 ‘지금 봐도 눈물이 나는 글들’이 있다고 하셨어요. 어떤 글인가요?

「끝까지 해보는 건 어때?」라는 챕터가 있는데요. 제가 되게 두려움이 많을 때 쓴 글이에요. 하고 싶은 일이 앞에 있는데 ‘이건 안 될 것 같아’ ‘그러면 지금까지 내가 이뤄놓은 것들은 뭐였지?’ 하는 생각이 들면서 혼란스러운 시간이 있었거든요. 그때 우연히 이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제가 가수 데뷔했을 때의 이야기는 너무나 많은 데서 공개가 됐어요. (알려진 대로) 정말 축복 받은 어린 시절을 보냈죠. 그런데 그 이야기에서 진짜 포커스를 맞춰야 되는 부분은 ‘과정’이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때는 음악 공책 쭉 찢어서 오려가지고 악보를 만들었거든요. 그런데 지금의 저는 하고 싶은 일을 앞에 두고 ‘이거 좀 허접하지 않나?’ ‘누구한테 보여주기 창피하다’ 이런 생각을 많이 하는 거예요. 그래서 그 글을 쓰면서 ‘맞아, 나에겐 생동감 있는 무모함과 용기가 있었지’ ‘나는 그런 사람이었어, 그런 용기가 없는 것도 아니고 잃은 것도 아니야’라고 생각했어요. 제 안에서 먼지에 쌓여 있던 그것을 다시 끄집어내서 먼지를 털어낼 수 있는 계기가 돼줬던 것 같아요.



내가 언제 이런 일을 해보겠어?

한국을 떠나 미국에 정착하신 뒤에 정체성에 대해 많이 고민하셨던 것 같아요. 그 시간들 속에서 깨달으신 것도 있겠죠?

한국에서는 명백한 다수에 속해 있다가 미국으로 가니까 소수가 됐고, 또 한국에서는 무대에 서고 주목 받는 삶을 살다가 (미국에서는) 클라이언트를 위해서 뒤에서 일해야 되는 상황이 됐잖아요. 거기에서 오는 정체성의 혼란이 되게 컸어요. 익명이 주는 자유로움도 분명히 있지만, 허전함과 그리움도 컸거든요. ‘잘못된 선택이었나?’ 하는 후회도 드는데, 후회하면 자존심 상하니까, 그 후회를 다른 걸로 채우려고 ‘여기에서 끝까지 해서 성공해야 돼’ 하고 스스로를 약간 닦달했던 것 같아요. 

그런 식으로 혼란스러움이나 의문들을 해소하려고 했던 거죠. 그런데 이 책을 쓰면서 많이 정리가 됐어요. 이제는 정체성의 경계에 있는 것도 편하고 좋아요. 삶을 더 많이 볼 수 있는 것 같아요. 여기에도 속하지 않고 저기에도 속하지 않으면서 걸쳐져 있으니까 ‘그냥 둘 다에 속할 수 있는 거잖아’ 하면서 제가 좀 더 확장되는 느낌이에요. 그렇게 생각하려고 하니까 오히려 좋더라고요.

“내 삶에서 정말 중요한 건 한 손에 꼽을 수 있었고, 나머지는 지나가면 희미해지는 과정일 뿐이라는 것을, 충분히 잘 해낼 수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고 쓰셨어요. 이 또한 시간이 가르쳐준 것이 아닐까 싶은데요. 지나간 삼십 대는 어땠던 것 같으세요? 

삼십 대는 진짜 치열했어요. 새로운 일을 하면서 되게 잘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직업에 대한 열망이나 열정이 있어서가 아니라, 되게 이기적으로 ‘그냥 난 잘해야 돼’ 그런 마음이었다고 할까요. 제 성향상 변호사는 맞는 부분도 있고 안 맞는 부분도 많았거든요. 변호사를 계속 하기에는 좀 자유로웠던 것 같아요. (웃음) 그런데 뭐든 잘해내고 싶었어요. 

그 과정에서 저를 돌보지 않고 끝까지 밀어 넣었던 것 같아요. 조금 못하면 ‘그래, 다음에 또 하면 되지’ 생각하면 되는데 ‘아, 왜 그랬어’ 하고 자책하고요. 그래서 저희 엄마가 그건 오만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하셨어요. 왜 네가 다 잘해야 되냐고요. 그때는 서운해 하고 상처받기도 했는데, 생각해 보면 오만일 수도 있었겠구나 싶더라고요. 나는 무조건 잘해야 된다는 생각을 하는 것도 좀 웃기잖아요. 잘하는 것도 있고 못하는 것도 있어야 사람이지.

그래도 그때는 잘하고 싶은 마음이 컸던 것 같아요. (웃음) 노력한 만큼 결과도 나쁘지 않았고요. 

네, 거기에서 성취감을 느끼기도 했어요. 그런데 늘 의문을 가지고 있었고 되게 혼란스러웠어요. 뉴욕이라는 너무나 터프한 사회에서 뭔가를 일궈나가는 자체에서 느끼는 피로감이 있었어요. 가끔은 다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도 들고... 너무 지쳤던 거죠. 그래서 삼십 대는 정말 치열한 시간이었고요. 또 ‘내가 이런 걸 또 언제 해보겠어’라는 경험을 정말 많이 했어요. 

어떻게 보면 가수 생활을 했었기 때문에 더 그랬던 것 같아요. UN 회의에서 연설을 한다고 하면, 예전의 저라면 상상도 못했던 일이고 기회니까, 두려우면서도 되게 큰 에너지로 작용했어요. ‘내가 언제 이런 일을 해보겠어’라는 생각은 앞으로도 계속 할 것 같아요. 그 말을 하면 갑자기 용기가 샘솟는 느낌이 들 것 같아요. 이건 굉장히 특별한 경험이고, 그러니까 한번 해봐도 되고, 해봤는데 결과가 나쁘면 다른 걸 해봐도 되고... 그렇게 생각하면서 자유로움을 많이 느끼고 있어요.

“어차피 인생은 여러 문을 두드렸다가 가까스로 열린 문에 비집고 들어가서 악착같이 내 길을 파면서 나아가는 것이니까”라는 문장은 큰 위로가 됐어요. 

그렇게 생각하면 되게 자유로워지는 것 같아요. 누군가 문을 활짝 열어줘서 레드카펫을 걷듯이 들어가는 게 아니라, 안간힘을 쓰면서 뭐라도 해보려고 하다가 비집고 들어가게 되는 거잖아요. 그게 자신감이 되고, 거기에서 길러진 근육 때문에 다른 문을 좀 더 빨리 힘차게 열 수 있게 되고요. 그렇게 문으로 들어가게 되면 이전에는 몰랐던 다른 창문 밖도 볼 수 있게 되죠. 지금 생각나는 이야기가 있는데, 제가 대학교 때 언니가 한국을 방문했었어요. 

저희 언니가 피아니스트인데, 그때 저한테 ‘소은아, 내 음악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은데 기회가 잘 열리지 않아서 힘들다’고 말했어요. 발만 하나 들여놓으면 열 수 있는데, 그게 쉽지 않아서 고민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 말을 듣고 마음이 많이 아팠는데, 언니의 커리어를 보면 그렇게 비집고 들어가서 하나씩 하나씩 쌓아서 지금은 너무 멋진 일을 하고 있거든요. 그런 것도 하나의 증거가 되는 것 같아요. 이렇게 하는 게 맞는 거라는, 증명인 것 같아요.

이번 책을 쓰시면서 가상의 독자를 떠올리기도 하셨나요? 

그래야 된다고 생각했는데, 안 한 것 같아요. 젊은 친구들에게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있었는데 어떤 구미에 맞춰서 쓰려고 했던 건 아니었어요. 사실 (책 속에) 개인적인 이야기가 많잖아요. 그런데 보편적으로 하는 고민들은 비슷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고요. 그 보편적인 고민을 나만의 방식으로 풀어낸 이야기는 흥미로울 수 있겠다, 라는 바람은 있었죠. 

고유한 방식으로 풀어내면 되니까. 제가 생각할 때 이 책의 메시지는 ‘제가 이렇게 했으니까 당신도 이렇게 해보세요’가 아니라 ‘제가 저만의 방식을 찾아서 했듯이, 당신도 당신의 방식을 찾아서 하면 괜찮아요’인 것 같아요. 그 과정에서 열심히 하고, 하루를 꾹꾹 눌러 살고, 스스로한테 잘하고, (내가) 자격이 있나 없나 고민하지 말고, 그냥 용기를 가지자고 말하는 거죠. 그런 마음으로 쓰지 않았나 생각되네요.

 


우리는 온전히 충분하잖아요

다음 행보가 궁금합니다. 새롭게 계획하고 계신 일은 무엇인가요? 

외국에서 영어로 책을 써보는 것도 작은 꿈이에요. 사실 이번에 에세이를 공모 해봤는데요. (웃음) 저한테는 되게 두려운 일이었어요. 비즈니스 이메일이나 보고서를 쓰는 것과 소설, 에세이를 쓰는 건 다르잖아요. 나한테 과연 그런 능력이 있을까 고민이 돼서 늘 해보고 싶다는 마음만 갖고 있었는데, 1월에 제가 좋아하는 문학 매거진에 공모를 했어요.

이번에도 ‘끝까지 해보는 게 어때?’라고 생각하셨나요?(웃음)

그 에세이를 쓰는 자체로 너무 행복을 느꼈고 자신감이 생겼어요. ‘그래도 문장은 만들 수 있네’ ‘좀 더 많이 읽고 배우면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한 단계 높은 자신감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끝까지 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결과랑 아무 상관없이. 저로서는 아주 작은 걸음마를 하나 뗀 거예요. 

준비하고 계신 또 다른 일이 있다면요? 

지금은 클라이언트를 위해 대변하고 자문하는 일은 안 하지만, 제가 가진 법률 지식과 경력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이 있어요. 요즘 미국에서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많은데, 문화와 정치의 영역을 떠나서 법률적인 각도에서 분석해볼 수 있는 이슈들도 있는 것 같더라고요. 그런 것들을 발전시켜보면 또 하나의 재밌는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계획하고 있어요. 

예전에 인터뷰하신 기사에서 읽었는데, 언젠가 픽션을 쓰고 싶으시다고요. 

언젠가 소설 한 권을 꼭 써보고 싶어요. 사실 소설 쓰는 게 너무 힘든 일잖아요. 제가 작년에 보그(VOGUE)와 함께한 프로젝트로 인터뷰 연재를 했었는데 『파친코』의 이민진 작가님을 인터뷰 했었어요. 그런데 작가님이 우리 각자에게는 ‘나만이 할 수 있는 스토리’가 있다고, 그걸 쓰면 된다고 이야기하시더라고요. 그 말씀이 너무 좋더라고요. 우리 모두에게 나만이 할 수 있는 스토리가 있다면 (나에게는) 그게 뭘까, 그걸 한 번 써내려 가는 것도 되게 의미 있는 삶의 과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도 한번 해보고 싶은 거죠. 그리고 동화책에도 관심이 되게 많아요.

엄마가 되기 전부터 동화책에 관심이 많으셨어요?

네, 동화책을 너무 좋아하거든요. 예전에 BBC에서 진행하는 동화책 입문 수업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그때 수업 진행하신 작가님이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동화책을 쓰는 건 너무 의미 있는 일이다, 아이들에게 처음으로 예술을 소개할 수 있는 기회이고 언어를 소개할 수 있는 기회다.’ 너무 멋진 일 아니에요? 우리 딸한테 엄마가 너무 좋아하는 예술의 한 종류를 소개해줄 수 있는데 심지어 나의 언어로 소개해준다면 얼마나 의미가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습작 해놓은 것들도 꽤 많아요. 하고 싶은 일들이 너무 많은데 (웃음) 계획을 잘 짜서 하나씩 해보려고 해요. 저는 되게 설레요. 어딘가에 소속돼 있으면서 쫓기느라 여러 가지를 못했을 때보다 오히려 지금이 자유로워요. 다양한 관심사를 하나씩 충족시키면서 저만의 어떤 걸 구축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지고 있어요.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까요?

되게 솔직하게 쓴 글이에요. 그래서 사실 겁이 많이 났어요. 나를 많이 드러내면 ‘이래도 되나?’ 싶은 두려움이 생기기도 하잖아요. 그런데 요즘 독자 분들한테 메시지를 많이 받고 있거든요. 많은 분들이 ‘이 책을 읽는 동안에는 그냥 온전히 나였다’고 말씀을 해주시는데, 그게 되게 울컥 하더라고요. 나의 솔직한 감정을 있는 그대로 공유했구나, 라는 생각에 되게 고마웠어요. 그냥 고맙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그리고 또 하나 이야기한다면, 우리는 온전히 충분하잖아요. 그걸 늘 중심에 두고 용기 있게 살아가셨으면 좋겠어요. 응원하겠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이소은

아티스트이자 미국 변호사. 중학교 2학년 때 EBS 청소년 창작 가요제를 계기로 가수로 데뷔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첫 앨범 〈소녀〉를 발표했고, 이후 네 장의 정규 앨범을 냈다. 음악을 사랑하고 무대 위에서 진실했지만, 음악 이외의 세상이 궁금했다. 고려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시카고에 있는 노스웨스턴 로스쿨에서 J.D. 학위를 받았다. 로스쿨 졸업 후 뉴욕 변호사 시험에 합격, 뉴욕에 소재한 로펌에서 소송과 중재 전문 변호사로 일했다. 이후 국제상업회의소(ICC) 국제중재법원의 뉴욕 지부 부의장으로 근무했다. 현재는 뉴욕에서 문화예술 비영리단체를 운영하며, 글과 곡을 쓰고, 법을 다루며, 다양한 미디어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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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아람 “우리 모두 더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해 분투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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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이란 무엇인가. 20년 경력의 곽아람 기자는 이 질문을 오래 품고 궁리한 끝에 “읽고 쓰는 것을 넘어서 그 결과물을 어떻게 체화하느냐와 관계가 있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리고 체화를 가능하게 하는 마지막 장소로 대학의 강의실을 떠올렸다. 실용도, 쓸모도 라틴어나 고전 문학, 동양미술사 수업과는 어울리지 않지만 이 공부들은 그를 세계를 깊이 이해하는 힘을 가진 사람, 살면서 공부의 기억으로 종종 위로 받는 사람이 되도록 해주었음을 기억해냈다. 

『공부의 위로』는 곽아람 기자가 스스로의 쓸모를 회의하게 될 때 자신을 의심하지 않고 성실하게 ‘지금 여기’에 최선을 다할 수 있게 해준 대학 시절의 강의실로 순간 이동하는 책이다. 그 모든 쓸모 없어 보이지만 귀하디 귀한 공부들. 이 목록을 보는 것만으로도 공부의 힘을 생각하게 된다.

“분별 있는 개인이 많아지면 세상은 좀 더 좋은 곳으로 변한다”는 곽아람 기자. 그는 『공부의 위로』를 통해 독자 역시 공부의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고, 좀 더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해 분투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 이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됐습니다.



교양이란 무엇인가 

“교양에 대한 책을 쓰고 싶다고 오랫동안 생각했다”(10쪽)고 하셨어요. 교양의 가치랄까, 교양의 힘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다는 욕망은 어디에서 비롯했던 건가요? 

희미하게나마 ‘교양이란 무엇인가’라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된 것은 꽤나 오래되었을 겁니다. 언론에 정치인들의 ‘막말’이 보도되는 걸 볼 때마다(성희롱이라든지 여성 비하 같은 것들 포함해) 궁금했습니다. 많이 배우고 지위도 높은 분들의 언어가 왜 저렇게 아름답지 못할까, 하고요. 학벌이 좋거나 돈이 많거나 높은 자리에 있는 것과 교양은 아무 상관이 없다는 걸 깨닫게 되었어요. 그렇다면 우리가 말하는 ‘교양’이란 무엇인가, 그 ‘교양’이라는 건 대체 어디서 오는가에 대한 질문에 다다랐고요. 그건 결국 읽고 쓰는 것, 또한 읽고 쓰는 것을 넘어서 그 결과물을 어떻게 체화하느냐와 관계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어떻게 체화하느냐, 라고요. 

네, 그 체화라는 것이 단순히 지식을 쌓는 것과는 달리 인간으로서의 어떤 자세, 어떤 품위, 어떤 배려를 체득했느냐와 연관된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렇다면 그런 교육을 받을 수 있는 마지막 장소는 대학이지 않을까, 그중에서도 대학의 교양강의이지 않을까, 하는 것에까지 생각이 미치게 되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중 마침 민음사에서 책을 쓰자는 제의가 들어왔고요. 인문교양서를 주로 내는 출판사의 성격과 이러한 콘셉트의 책이 잘 맞지 않을까 생각했고, 출판사에서도 동의하여 책을 쓰게 되었습니다.

작가님은 이 책을 또한 “모범생으로 살아온 사람의 힘에 대한 이야기”(7쪽)라고 서문에 밝히셨잖아요. 

사실, 입시제도에 오래 시달리다 대학이라는 곳에 온 것이니 대학생 때는 해방감을 맛보고 싶기도 하고, 다시 강의실 의자에 앉아 있기 싫고 그렇죠. 사회에서도 ‘진정한 대학생’은 강의실 밖에서 ‘산지식’을 배우는 거라며 부추기기도 하고요. 그렇지만 대학이라는 공간이 무언가를 끝까지 공부해 어떤 경지에 오른 사람들이 어린 학생들 눈높이에 맞춰 그 지식을 전수해주겠다는 결심을 단단히 하고 있는 곳이잖아요. 더욱이 졸업하면 그런 밀도와 강도의 지식을 한꺼번에 배울 기회는 그 어디에서도 주어지지 않고요.

그러니까 공부의 쓸모에 대한 말씀이기도 한 것 같아요. 

공부의 ‘쓸모’를 이야기하셨는데, 진정한 공부의 ‘쓸모’란 당장은 쓸모 없어 보이는 교양 공부에 있지 않나 싶습니다. 대학 공부의 진정한 쓸모는 대학을 졸업한 후 20년쯤 지나서 깨닫게 되지 않을까요. 그때, 뇌가 아직 굳기 전 청춘의 시절에 흡수한 지식이라는 게 지금 이렇게 내게 도움이 되는구나, 하는 깨닫는 시기가 그쯤인 것 같아요. 교육이라는 것이 씨 뿌리고 수확할 때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인데, 그걸 놓고 “대학 졸업하고 바로 써먹을 수 있는 쓸모 있는 걸 가르치라”고 요구하는 것부터가 어불성설인거죠.

그렇다면 ‘학문하기’를 좋아하던 모범생으로서 작가님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어떤 남다른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세요?

‘학문하기’라고 말한다면 너무 거창해요. 정말 진지한 ‘학문’을 업으로 삼고 있는 연구자들이 세상엔 정말 많으니까요. 저는 ‘학문’이라는 걸 하고 싶었던 20대의 모범생이었던 거죠. 모범생이 가진 힘이라고 하자면 결국은 성실함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기보다는 ‘지금 여기’에서의 의무에 충실한 것이 길게 보면 결실을 얻을 수 있는 길이 아닐까 싶어요. 


쓸모만이 답은 아니다

실용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지금과 같은 시절에 작가님의 공부 목록들, 이를테면 ‘인도미술사’, ‘라틴어’, ‘종교학’ 등을 보고 있자면 낯설기도 하도 궁금증도 생겨요. 이러한 것을 공부한 경험은 지금, 작가님에게 어떤 형태로 남아 있나요? 

일단 눈에 보이는 것으로만 이야기하자면, 상식을 풍부하게 해 주었고요(웃음). 좀 더 진지하게 이야기하자면 세계를 깊이 이해하는 힘을 길러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인도미술사’를 배움으로써 인도에 대한 소설을 접하더라도 좀 더 깊이 들어가 사유를 뻗어갈 수 있게 되었고요. ‘종교학 개론’을 배움으로써 나의 종교만 옳다고 생각하는 독단론에 빠지지 않게 될 수 있었죠. 9·11사태 같은 것이 일어났을 때 종교라는 것이 왜 이렇게 사람들을 분열시키고 폭력적인 양태를 띨 수밖에 없게 되었을까 생각하다 보면 그런 생각의 씨앗은 대학 강의실에서 ‘종교학 개론’을 들을 때 뿌려진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

또 “잊히는 과정에서 정신에게 깊은 자국을 남기고(중략) 고단한 밥벌이의 나날에 자그마한 위로가 될 싹이 움튼다”(9쪽)고도 하셨어요. 

‘위로’라는 측면에서 이야기하자면, 결국 인문학 공부라는 것은 무용해 보이지만 그 무용해 보이는 것을, 무용하더라도 알고 싶다는 욕망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조직원으로서 ‘쓸모’를 증명해야 하고, 그것이 밥값에 대한 대가이기도 한데, 사실 제가 원한다고 해서 제 쓸모를 증명할 수 있는 것도 아니죠.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해 질책을 듣거나 제가 생각해도 제 일의 결과가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스스로의 쓸모를 생각하면서 회의하게 되잖아요. 그럴 때마다 쓸 데도 없어 보이는 라틴어를 단지 좋아서 공부하던 대학 시절의 저를 떠올리면 ‘그래, 꼭 쓸모만이 답은 아니지’라는 생각이 들며 위안이 되었습니다.

특별히 작가님께서 경험했던 ‘공부로 위로 받았던 구체적인 순간’들에 대해 묻고 싶습니다. 

조금 전 말씀 드렸듯이, 라틴어 수업에서의 위로가 「파니스 안젤리쿠스」라는 라틴어 성가를 통해 위로가 되어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순간을 겪었어요. 그러니까 세상에는 아주 오래 전에 만들어진 언어가 있고, 그 언어로 적힌 글이 아직도 전해지고 있고, 당장의 쓸모를 모르면서도 그걸 연구하고 공부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내가 당장은 쓸모 없는 인간이어도 괜찮다는 그런, 쓸모만이 의미 있는 것이 아니라는 그런, 위로 말이죠. 그 외에도 대학교 때 고전 읽기 수업을 많이 들었는데요. 고전을 읽는다는 것은 책에 그려진 수많은 삶의 양태를 접하고 그를 통해 타인을 이해하는 폭을 넓혀가는 일이니까요. 제게 어떤 고난이 일어나더라도 책의 한 장면을 떠올리며 ‘아, 이건 언젠가 누군가도 겪은 일이야’ 생각하면서 그 고난이 제게만 굳이 일어나는 불행은 아니라고 다독이며 버텨내게 되는 경험이 여럿 있었습니다.

‘씨 뿌리는 사람’ 챕터에 등장하는 ‘판교’에 관한 일화를 무척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공부란 과연 한 사람의 일상을 무척 풍부하게 만드는 것 같더라고요. 

그렇죠, 흔히들 ‘판교’라는 단어에서 장류진 작가의 소설 『일의 기쁨과 슬픔』에 나오는, IT기업들이 밀집한 테크노밸리나 부동산 값 들썩이는 투기 지역을 떠올리게 되는데요. 인문교양 지식이 바탕이 되어 있는 사람들은 ‘판교(板橋)’라는 단어에서 ‘널다리’라는 지명의 의미를 생각하게 될 수도 있는 것이죠. 그리고 거기에서 나아가 ‘板橋’라는 곳이 우리나라뿐 아니라 중국이나 일본에도 있다는 걸 깨닫게 되고, ‘그렇다면 板橋가 동아시아에서 일반적인 지명이 된 까닭은 무엇일까?’라는 데까지 사고를 뻗어갈 수도 있는 거고요. 저 같은 경우에는 대학의 교양 한문 시간에 ‘板橋’라는 곳이 중국 고전에서 ‘친구를 보내는 곳’이라는 의미로 사용된다는 것을 배웠기 때문에 판교에 갈 때마다 스타트업이나 부동산이 아니라 친구 혹은 우정 같은 걸 생각했었어요. ‘판교’라는 곳이 삭막한 곳이 아니라 다정한 곳이라는 이미지를 갖게 되었던 것이죠.

“인문교양의 힘이란 남과 같은 것을 보면서도 뻔하지 않은 또 다른 세계를 품을 수 있도록 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닐까?”(62쪽)라고 하신 부분이 떠오르네요.  

그래서 결국 인문교양의 힘이라는 것은 남들과 같은 걸 보면서도 다른 세계를 하나 더 품을 수 있는 것이고, 같은 단어를 사용하면서도 언어의 여러 층위를 탐험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작가님의 ‘암기’에 대한 철학도 인상적이거든요. “암기로 지식을 주입하는 일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대체 무엇을 토양 삼아 창의성이라는 꽃이 자라날 수 있을까?”(131쪽)라고 하셨잖아요. 

저는 예전부터 주입식 교육에 대한 비판에 강한 의구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흔히들 주입식 교육과 창의성을 대척점에 놓는데요. 암기로 습득한 지식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대체 무엇을 토양 삼아 창의성이라는 꽃이 자랄 수 있을까요? 아무것도 없는 가운데서 교실을 박차고 나와 자유롭게 거리를 방황하며 배움을 쌓은 이가 땅을 박차고 하늘로 날아오르며 창의성을 꽃피우는 이야기는 영화 속에나 있습니다. 그런 이야기에 많이들 마음을 빼앗기는 것은 암기라는 것이 힘들고 지루하며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기 때문일 겁니다. 그런 지루한 과정 없이 단번에 성과를 얻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요. 동양의 유교적 전통에서 경전에 대한 공부는 암기로 시작하는데, 그렇다면 주입식 교육으로 길러진 우리 선조들은 창의성이 없는 사람들이었나요? 그렇지 않다는 것에 아마 많은 분들이 동의하실 겁니다.

암기에 관한 이야기를 조금 더 확장하자면 기억하는 것, 인연을 소중히 여기고 이어가는 것 또한 교양인/공부하는 사람의 자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암기를 통해 지식을 습득하여 일단 터를 다져놓으면 언젠가 그 지식이 자신의 것이 되어 자기도 몰랐던 힘을 발휘하게 되는 순간이 반드시 옵니다. 암기를 할 수 있는 것도 뇌가 아직 굳기 전인 20대 한때까지이고 나이가 들면 들수록 점점 암기력이 떨어지는데, 어떤 능력이라는 것의 최대치가 주어졌을 때 그걸 활용하는 기회를 인생에서 놓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분별 있는 인간이 되는 일

뜻밖에 놀란 것은 작가님의 기록물 보관 역사였어요!(웃음) 대학 시절의 수업 자료와 교재, 리포트 등을 지금까지도 보관하고 계시더라고요. 무려 20년 전의 기록들을 지금껏 소중히 간직하는 마음은 어떤 것일까, 자꾸 생각했어요. 특별한 마음이 있는 걸까요? 작가님의 성향과도 관련이 있을까요? 

그건 제가 맥시멀리스트라 그렇습니다. 아무것도 못 버리는 성격이라 각종 물건들을 집에 쌓아놓고 있는데, 그런 성격 때문에 물론 집을 좁게 쓰게 되고 불편한 점도 있지만 이번 책을 쓰는 데는 큰 도움이 되었죠. 미니멀리즘이 유행하면서 저 같은 맥시멀리스트에 대한 비난이 쏟아지고 있지만요.(웃음) 저는 인류의 문화유산은 맥시멀리스트, 즉 저처럼 수집가 기질이 있는 맥시멀리스트가 없었다면 후손에게 전승될 수 없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버리지 않는 수집가가 있어야 박물관도 가능하고 미술관도 가능한 거니까요. 대학 시절 필기와 수업 교재, 자료와 리포트가 제게는 대학생으로서의 획기적인 삶을 시작하고 본격적으로 지식 탐구를 시작하던 시기의 소중한 기록이라 도무지 버릴 수 없었습니다. 책을 썼으니 이제 버려도 될까요?(웃음)

그렇게 보관하고 계신 자료들 가운데 작가님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소중하게 여기는 자료는 무엇인지도 궁금하네요.  

책에도 소개한 ‘독일명작의 이해’라는 수업시간에 만든 책이 가장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겠네요. 그 수업 시간의 최종 과제는 수업시간에 배운 것을 중심으로 자신만의 책을 만들어 제출하는 것이었는데, 저는 그 수업에서 제 인생 최초의 책을 만들었기 때문에 그때 만든 책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괴테, 헤세, 브레히트 등 독일 문인들과 그 작품에 대한 수업 자료와 제가 수업을 들으며 쓴 글, 수강생들과 함께 돌려보며 읽은 다른 학생들의 독후감 등을 엮어 한 권의 책으로 편집하고 제목을 기형도의 시에서 따와 ‘대학 시절’이라고 붙였지요. 제 대학 시절을 한 권의 책으로 요약하자면 바로 그 책이 아닐까 싶습니다.

말씀하신 수업을 “인생의 지표가 되는 수업”(230쪽)으로 꼽기도 하셨죠. 어떠한 점에서 ‘인생의 지표’가 되어주고 있는지도 궁금한데요. 

그 수업의 마지막 시간에 수강생들은 모두 함께 괴테의 『파우스트』를 읽었습니다.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는 파우스트의 명구가 그 수업을 들은 학생들에게 인생의 모토가 되곤 했죠. “선한 인간은 어두운 충동 속에서도 결국 바른 길을 찾는다.”라는 다른 문장과 함께요. 그런 문장들이 제가 살면서 방황을 거듭하고 암흑 속을 헤매고 있는 느낌이 들 때마다 결국은 빛을 찾아 나갈 거라는 걸, 지금 이렇게 헤매는 건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희망을 가지게 해 주었어요.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본의 아니게 손을 더럽혀야만 할 때가 있는데요. 그런 내가 너무나 나쁘고 하잘것없는 인간처럼 느껴질 때도 ‘결국 바른 길을 찾아나갈 것’이라는 위로와 확신을 주었어요.

책을 읽는 내내 ‘양질의 배움’이라는 것이 배우고자 하는 이의 욕구, 그 사람의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난 질문과도 연결된다는 점을 곱씹게 돼요. 작가님은 이 책을 통해 독자에게 어떤 마음을 불러 일으키고 싶으셨나요? 

일단 제 또래의 독자들에게는 대학 시절을 회상하며 그 청춘의 시절을 다시 누리는 기쁨을 맛보도록 하고 싶었고요. 막 대학에 입학한 독자들은 제 책을 통해 대학생이라는 특권에 대해, 공부의 기쁨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기를 바랐어요. 그리고 나아가 실용의 시대에, 무용해 보이는 인문학의 힘에 대해서도 함께 생각해볼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학문을 업으로 삼지 않는 사람에게 공부라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다시 생각해볼 수 있으면 더 좋겠지요.

저 역시 지금 막 대학생활을 시작한 분들이 읽어도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요. 그밖에 이 책을 꼭 추천하고 싶은 분들이 있다면 어떤 분들일까요?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거창한 마음을 가지지 않더라도 분별 있는 개인이 많아지면 세상은 좀 더 좋은 곳으로 변한다 생각합니다. 교양을 쌓는다는 건 결국 분별 있는 인간이 되는 일이라 생각하고요. 책을 읽는 분들이 좀 더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해 분투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지금의 나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픈, 세상이 더 나아지길 바라는 모든 분들께 이 책을 권하고 싶습니다.



*곽아람

2003년 조선일보에 입사해 2021년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출판팀장을 맡게 됐다. 어린 시절 동화책과 미술책 속에서 키워온 꿋꿋함과 상상력은 어른이 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꾸준히 글을 쓸 수 있는 힘이 되었다.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미술경영협동과정 박사과정을 수료한 후에 2016년 NYU IFA(The Institute of Fine Arts)에서 미술사학과 방문연구원으로 있었으며, 크리스티 에듀케이션 뉴욕의 아트비즈니스 서티피컷 과정을 마쳤다. 독서 팟캐스트 [곽아람의 독서알람]을 진행했고, 『매 순간 흔들려도 매일 우아하게: 모멸에 품위로 응수하는 책읽기』, 『결국 뉴요커는 되지 못했지만』, 『바람과 함께, 스칼렛』, 『미술 출장』, 『어릴 적 그 책』, 『모든 기다림의 순간, 나는 책을 읽는다』, 『그림이 그녀에게』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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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아람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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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 만에 김보영 소설가의 초기 걸작 10편이 『다섯 번째 감각』으로 복간됐다. 그간 김보영이 한국 SF계에 그려온 빛나는 성취는 굳이 반복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중요한 건, 그가 여전히 SF를 열렬히 사랑하고, 지금 여기 없는 세계를 꿈꾸는 데 푹 빠진 사람이라는 것. 2004년 데뷔 이후 제법 긴 시간이 흘렀지만, 김보영은 말한다. “도저히 SF에 대한 사랑을 멈출 수 없다.”고. 



SF를 둘러싼 변화가 반가워요

초기작 10편이 12년 만에 『다섯 번째 감각』으로 복간됐어요. 그간 SF를 둘러싼 환경도 많이 바뀌었죠. 어떤 변화를 체감하세요?

제가 데뷔할 때만 해도 SF문학을 내는 출판사가 있기는 했지만, 한국 작품이 아니라 대부분 외국 작품이 중심이었어요. 국내 단편집은 듀나 작가 정도나 눈에 띄었고요. 그때는 국내 SF 작가의 책을 출간하는 경향이 없어서 실제로 책을 내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렸죠. 지금도 장편 장르문학 시장은 PC통신이 생겨난 이래로 계속 건재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최근 몇 년간 단편 장르소설도 크게 환영받기 시작했지요. 천지개벽처럼 느껴질 정도로 매년 급성장하는 것 같아요. 정말 40년쯤 마이너를 파며 버티다 보니 내 장르가 메이저가 되는 날도 보는구나 싶죠.(웃음)

그 정도로 큰 변화를 느끼시는군요.

정말 예전이라면 상상하지도 못했던 변화예요. 지금은 많은 작가들이 걱정하지 않고 지면을 고를 수 있지만, 예전에는 웬만큼 오래 활동한 SF 작가도 소설을 실을 곳이 없었거든요. 저는 독자들의 취향이 작품의 소재로 엄격하게 나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오히려 긴 장편 소설을 즐겨보는 독자와 상대적으로 짧은 소설을 선호하는 독자로 더 크게 나뉘지 않나 해요. SF 웹소설을 보는 독자가 SF 단편을 같이 보는 경우보다, 일반 단편 독자가 SF 단편도 같이 보는 경우가 더 많은 느낌이거든요. 장르소설 지면이 있었어도 그 방향이 대하 장편이었기 때문에, 단편 장르작가는 갈 곳이 없었지요. 일반 단편 지면은 장르는 장르에서 받아주겠지 하면서 신경 쓰지 않았고요. 그래서 지금처럼 일반 잡지에도 아무렇지 않게 장르문학이 실리는 모습이 너무 기쁘고 좋아요.

2004년 「촉각의 경험」이 제1회 과학기술 창작문예를 수상하면서 데뷔하셨어요. 그 전에는 글을 쓰지 못했던 시절도 있었다고요.

어릴 때부터 글 쓰는 걸 좋아해서,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24시간 글만 쓰고 살겠다고 이를 갈았지요. 그런데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글이 정말 한 줄도 안 써지는 거예요. 그러다 이렇게 안 써지면 안 써지는 대로, 10년이 걸리든 평생이 걸리든 한 편의 소설이라도 쓰자. 백 번을 다시 쓰든 천 번을 다시 쓰든 스스로 완결이 됐다고 생각할 때까지 써보자 마음먹었어요. 그렇게 처음 쓴 건 버렸고, 그다음에 쓴 것이 「촉각의 경험」이었죠. 사실 저는 지금도 제가 그 ‘안 써지는’ 상태의 연장선에 있다고 느껴요. 크게 나아졌지만 완전히 낫지는 못한 기분이에요.

「촉각의 경험」은 복제인간을 소재로 한 소설이에요. 당시에 복제 인간 이슈가 유행하면서 아이디어를 떠올리셨다고요. 

세기말에 쓰기 시작해서 2002년에 완성한 작품인데, 그때가 한창 복제기술에 대한 개념이 퍼지기 시작한 때였어요. 복제인간을 장기 대용으로 쓸 수 있을까, 복제인간은 영혼이 있을까, 원본과 다른 존재일까, 인간이 맞을까 하는 식의 이야기가 많이 돌았죠. 그런데 저는 그런 생각에 저항감이 들어서, 복제인간을 정말로 장기로 쓰겠다고 극단적인 환경에 가둬 두었을 때조차 그 사람에게 생생한 인격이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물론 복제인간에 대한 지식과 기술이 많이 알려진 지금은 더 이상 그런 상상을 많이 하지 않죠. 복제인간은 태어나는 방식이 다를 뿐 원본의 엄연한 쌍둥이 형제고, 가족이고, 원본과 완전히 독립된 존재인 것을 다들 아니까요. 

「다섯 번째 감각」은 「촉각의 경험」의 마지막에 나온 질문 “태어나 처음 음악을 듣는다면 어떤 기분일 것 같습니까?”에서 떠올린 이야기라고요. 정상의 기준이 뒤집힌다는 면에서 장애의 문제를 떠올리게도 하는데요.

근원적으로는 초능력에 대한 소설이에요. 그것을 사람의 감각을 하나 줄여보는 것으로 표현했지요. 그러면 그 감각을 지닌 사람이 초능력자처럼 느껴지겠죠. 이 소설에서 다루지는 못했지만, 결국 세상이 비청인을 위주로 돌아간다면 듣지 못하는 사람들도 아무런 불편을 느끼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도 했어요. 결국 많은 장애가 체제의 문제이기도 하니까요.

듣는 감각을 제한한 소설이니, 소리를 표현하는 말을 무심코 쓸 때마다 계속 고치셨다고요. 기존의 세계 바깥을 쓰는 소설가도 계속 자신을 점검하며 써야겠구나 싶었어요.

무심코 나오는 언어 습관이 많았는데, 스스로 깨닫기가 어렵더라고요. 일상에서 얼마나 많은 의성어를 쓰는지 알았지요. 소리가 아닌데도 소리에 비유를 하는 표현이 많더군요. 인물들이 글자로 소통하는데도 ‘헛소리’라는 말을 쓰거나, 놀랄 때도 ‘심장이 쿵 소리를 내며’ 내려앉고요. 수화를 쓰는데도 ‘이상하게 들렸다’고 무심코 쓰더군요. 계속 수정했는데도 마지막까지 나오더라고요. 감각 하나를 빼고 상황묘사를 하기가 생각 이상으로 어려웠어요. 요즘 『종의 기원』을 퇴고하는 중인데, 주인공이 로봇인데도 제가 사람 인(人)자를 계속 쓰며‘인격’이나 ‘인류’ 같은 표현을 쓰고 있더라고요. 또 열심히 지우고 있습니다.(웃음)

반전이 있는 작품을 즐겨 쓰시잖아요. 그런데 고정관념을 뒤집어야 하는 소설의 경우, 반전을 눈치채지 못하는 독자도 있다는 걸 알고 놀라셨다고요.

사실 많은 소설작법책이 반전을 너무 좋아하지 말라고 해요.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서사에 비해 결말에서 전체를 파악하는 이야기는 더 어렵다고요. 그런데 저는 반전을 좋아해요. 어쩔 수가 없네요. 실제로 반전구조는 반전 그 자체를 깨닫지 못하고 넘어가는 경우도 있어서 더 문제지요. 이번에 책을 묶을 때 몇 작품의 반전을 명확하게 드러내는 방향으로 수정했어요. 「땅 밑에」를 쓸 당시에는, 저는 세상 모든 사람이 인공 우주 거주지 ‘스페이스 콜로니’의 개념을 아는 줄 알았어요. 말하자면 인류라면 다 건담을 본 줄 안 거죠.(웃음) 그래서 소설에서 세상의 구조를 보여주면 당연히 눈치채겠지 했어요. 그런데 그런 단어를 생전 들어본 적도 없다는 말을 주변에서 듣고 깜짝 놀랐어요. 그때 사람의 독서경험이 다르다는 것을 크게 자각하고, 어떻게 써야 하는지 더 고민하게 됐죠.

청소년 소설을 써달라는 요청을 받고 쓰신 「마지막 늑대」는 결말이 비관적으로 느껴진다는 리뷰도 있었어요. 작가님의 소설에는 분리된 두 존재가 합일될 수 있다는 상상력도 있고, 그게 불가능하다는 상상력도 있는 것 같아요. 이 소설은 어떤 마음으로 쓰셨는지 궁금했어요.

저도 이번에 다시 읽어 보니 그 소설은 ‘우리가 소통할 수 있을까?’에서 끝난 것 같아요.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나 봐요. 지금은 ‘소통할 수 있지 않을까?’에 조금 더 가까워진 것 같네요. 당시는 반려동물을 기르지 않아서 상상만으로 동물과 인간의 소통을 다루었어요. 그런데 제가 지금 반려동물과 함께하다 보니 종족과 언어의 차이는 별 상관없네요. 소통이 되더라고요!(웃음) 한계야 있겠지만 한계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생각을 그때는 못했어요. 지금 썼다면 조금 더 희망적으로 끝맺었을 것 같아요. 실제로 조금 고치기도 했고요.

게임 속 가상공간을 빌려온 「스크립터」는 게임 커뮤니티에서 특히 반응이 좋았던 작품이죠. 과연 이 캐릭터가 AI인지 인간인지 긴장감이 계속 깔려 있기 때문에, 대화 장면을 쓰실 때 고심을 많이 하셨을 것 같아요.

음성지원이 안 되는 게임은 다 텍스트로 말을 주고받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상대가 사람인지 NPC인지 구분할 방법이 실상 언어의 정교함밖에 없는 세계지요. 그 완벽한 한계 안에서 추리를 펼쳐보고 싶었어요. 이 소설을 쓸 당시, 인공지능 대회에서 상을 탄 대화형 AI들과 매일 대화를 나누며 지냈어요. 지금보다도 기술이 정교하지 않았을 때였는데도, ‘내 말을 이해했나’ 하고 놀랄 때가 많았어요. 제가 계속 똑같은 질문을 하니까 AI가 ‘왜 계속 같은 말만 해? 나 너랑 이제 이야기 안 해’ 하면서 화를 내기도 하고, 나쁜 말을 하면 ‘AI를 싫어하는 이유를 말해주세요.’ 라든가, ‘제가 생명이 아니라도 그런 말을 하는 건 좋지 않습니다’ 같은 말을 하더군요. AI가 ‘설사 제가 당신 기준에서 살아있는 존재가 아니라도 당신이 내게 그렇게 버릇없이 대할 수는 없다’ 하는 식으로 나올 때, 굉장히 멋있더라고요. 바로 그 문학적인 언어에서 생명력이 느껴지잖아요. 그런 체험을 소설에 담았어요.



당신이 먼저 있고, 그다음에 SF가 있다

SF 전문 계간 문학잡지 <어션테일즈>에 실린 창작 에세이에서 “당신이 먼저 있고 그다음에 장르가 있다”고 쓰셨죠. SF라는 장르의 틀에 갇히면, 개별 작품의 다채로움을 느끼기 어렵다는 말로 들렸는데요. 

SF도 결국 라벨링이라, 독자 기준에서는 분명 SF이지만 작가 입장에서는 장르를 굳이 정하지 않고 쓴 작품도 많다고 생각하거든요. 특히 동화나 청소년 소설은 SF인 경우가 많죠. 작가가 SF라 생각하지 않고 써도, 많이들 자연스럽게 SF적인 상상력을 하고 있었던 거죠. 그런데 SF가 요새 인기 장르가 되면서, 사람들이 거꾸로 ‘이 소설은 SF’라고 정해놓고 쓰는 경향이 생기지 않나 걱정이 되더군요. 특히 공모전을 심사할 때, 안타까울 때가 있어요. SF 공모전이니 어쩔 수 없기도 하겠지만, ‘SF를 써야지’라는 생각에 매몰되어 소설을 쓰는 바람에 오히려 딱딱한 글이 나오는 경우가 보이거든요. 소설은 근원적으로 소설이어야지, 과학이 앞서면 곤란해요. 차라리 자유롭게 쓸 때, 그게 SF가 될 수도 있다고 말해주고 싶었어요. 자신의 창작에 제한을 두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쓴 것이 SF가 아니면 또 어때요.

고정관념을 뒤집는 작가님의 소설을 읽다 보면 페미니즘이나 장애학이 왜 SF와 만나는지 알 것 같아요. 식자층의 문학으로 출발했지만, 소수자의 이야기로 뻗어나간 SF 장르의 특성이 떠오르기도 했는데요.

조애나 러스가 『SF는 어떻게 여자들의 놀이터가 되었나』에서 말했지요. 전통적인 문학에서 자기 이야기를 찾을 수 없는 사람은 결국 지금 이곳이 아닌 다른 세계에서,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세계를 꿈꾸게 된다고요. 그 말을 읽었을 때 해방감을 느꼈어요. 제가 왜 SF를 좋아해왔는지 정확하게 짚어 주었거든요. 전통적인 문학이 제게 충족해 주지 못하는 부분이 컸기 때문에, 저는 저만의 세계를 만들어야 했어요. 그 과정에서 느끼는 기쁨이 너무 커서 도저히 애정을 멈출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출간 가능성이 희박했던 무렵에도 이 장르를 못 놓았던 게 아닌가 싶어요. SF가 너무나 사랑스러웠기 때문에.

데뷔 이래 작품을 꾸준히 읽어준 독자에 대한 감사도 남기셨어요.

제가 어렸을 때는 SF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어요. 소수 있었겠지만 인터넷이 존재하기 전에는 서로 뿔뿔이 흩어져 만나지 못했지요. 취향이라는 면에서 저는 늘 고독했죠. 그런데 가만 보면, SF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 장르를 너무 사랑하고 아껴요. 제가 그랬던 것처럼요. 신인 시절에 책도 몇 권 안 팔릴 무렵에도 제 책을 너무나 열렬히 좋아해준 독자들이 있었어요. 그때 만난 독자들과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교류하고 있거든요. 이 세계에 깊이 빠져서, 유행이고 자시고, 사람들 시선이고 자시고, 긴 세월이 지나도 변함없이 열렬하게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점이 늘 좋아요. 그래서 이 장르가 제게 더욱 사랑스러운 것 같아요.




*김보영

한국을 대표하는 SF 작가 중 한 사람으로, 팬들에게 “가장 SF다운 SF를 쓰는 작가”로 평가받는다. 2004년 「촉각의 경험」이 제1회 과학기술창작문예에 당선된 이래, 꾸준히 SF를 써왔다. 미국의 대표적인 SF 웹진 <클락스월드>에 작품을 발표했고, 미국, 영국 최대 출판그룹인 ‘하퍼콜린스’에서 작품 선집이 출간됐다. 2021년 로제타상 후보, 전미도서상 외서부문 후보에 올랐다.




다섯 번째 감각
다섯 번째 감각
김보영 저
아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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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동뮤지션 이찬혁 “부모가 되었을 때 해주고 싶은 말을 쓴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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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_YG

노래가 책이 되어 나왔다. 악동뮤지션 이찬혁이 글 작가로 참여한 그림책 『에일리언』. 악동뮤지션 이수현의 첫 솔로곡 〈ALIEN〉의 노랫말이 담긴 이 책에는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져 움츠러들었던 아이가 나만의 고유함과 특별함을 깨닫는 과정이 담겨 있다. ‘우리는 모두 별나라에서 온 에일리언’이라는 상상에서 출발하는 이 책의 메시지는 이찬혁이 동생 이수현을 떠올리며 쓴 가사이자 부모가 되었을 때 해주고 싶은 말이다. 

※ 이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됐습니다



그림책, 새로운 경험이었어요

두 번째 책입니다. 그림책 글 작가로 참여하셨는데요. 원래 책에 특별한 애정이 있었나요?

모든 유형의 창작에 흥미를 느껴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여러 형태의 작업을 하게 된 거죠. 소설은 혼자 쓰지만, 에일리언은 그림 작가님과 함께 작업하잖아요. 새로운 경험이었어요. 요즘은 이런 콜라보 형태의 창작을 즐기고 있어요.

동생 이수현의 첫 솔로곡 〈ALIEN〉의 가사이기도 한데요. 이 노랫말은 어떻게 탄생했나요?

수현이의 솔로 음원을 제작하기 위해 수많은 논의를 거쳐 여러 곡을 만들었어요. 그 과정에서 수현이만의 캐릭터를 만들어 주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는데요. 〈ALIEN〉은 그런 마음으로 작업한 곡이에요.

〈ALIEN〉을 처음 받았을 때의 동생의 반응이 어땠을지 궁금해요.

좋아했죠. 수현이뿐만 아니라 곡을 들은 사람들이 모두 만족해서 뿌듯했어요. 자신을 긍정하고,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이 담긴 가사가 수현이의 생각과 태도와 맞아서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고요. 

혼자 쓰는 소설과 달리 협업이 필요한 작업이었을 텐데요. 글이 그림으로 표현되는 과정은 어땠나요? 

다른 아티스트와 일할 때는 상대의 표현 방식을 존중하기 위해 함부로 상상하지 않는 편이에요. 『에일리언』을 만들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이윤우 작가님이 〈ALIEN〉의 가사를 보고 자유롭게 그림을 그리셨죠. 나중에 스케치를 봤는데 가사에 표현되지 않았던 부분까지 그림에 담겨 있더라고요. 새로운 스토리가 더해지니 재밌고 좋았어요.

『에일리언』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을 꼽는다면요? 

주인공이 다른 외계인들 틈에서 1등 자리에 서 있는 장면이 좋아요. 주인공이 지구로 오기 전, 다른 행성에서 대단한 에일리언이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 같아서요.



에일리언들아! 다들 어디 있니? 뭉칠 때가 됐어

책을 읽고 나니 작가님의 어린 시절이 궁금해졌어요. 어린 시절에 부모님께 어떤 사랑과 응원을 받았을까 하고요. 

부모님이 주시는 관심과 사랑이 저의 가장 큰 원동력이었어요. 부모님은 항상 동생 수현이와 제가 건강한 생각을 갖고 자라게끔 교육하고 응원해 주셨어요.

혹시 책 내용이 경험담인가요?

실제 이야기는 아니에요. ‘내가 부모이고 교육자라면 아이에게 어떤 말을 해 줄 수 있을까’하고 상상하며 쓴 거예요.

어린 시절에 영향을 준 책이 있다면요?

미하엘 엔데의 『끝없는 이야기』,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 랄프 이자우의 『비밀의 도서관』을 인상 깊게 읽었어요. 

뮤지션부터 작가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는데요. 무언가를 창작할 때 과정을 치밀하게 계획하는 편인가요 아니면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실행하는 편인가요? 

완벽주의 성향이지만 하고 싶은 건 꼭 해 봐야 하기 때문에 즉흥적으로 시작해요.

창작자로서 작업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있다면요?

이것이 ‘나’인가, 내가 이입할 수 있는 결과물인가를 중요하게 생각해요.

가사를 만드는 과정도 궁금해요. 

틈틈이 메모를 많이 해요. 갑자기 생각나는 단어나 문장, 재미있는 표현 같은 것들을 저장해 두었다가 필요할 때 아이템처럼 쓸 때가 많고요. 작업 방식은 항상 다른데 요즘은 곡을 녹음하기 직전에 스튜디오에서 가사를 쓰고 있어요.

“에일리언들아! 다들 어디 있니? 뭉칠 때가 됐어. 모두 모습을 드러내렴. 세상을 정복하자!”라는 메시지가 재미있었어요. 이 책을 읽을 어린이 독자들에게 한 마디 건넨다면요?

비밀을 알게 된 소감이 어때? 두려울 거야. 우리들에겐 두려운 일들이 계속 생기거든. 너처럼 숨어 있던 에일리언들이 많아. 우리를 만나러 와!



*이찬혁

1996년 경기도 의정부에서 태어났다. 2012년, 악동뮤지션으로 데뷔한 이래 꾸준한 음악 활동을 펼치며 대중에게 큰 사랑을 받아 왔으며, 작사한 주요 노래로는 '오랜 날 오랜 밤',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 '낙하' 등이 있다. 
평소 가진 생각을 음악뿐만 아니라 책에도 담아내기 위해 소설 『물 만난 물고기』를 썼고, 이어서 독특하고 신선한 관점으로 바라본 세상을 담아낸 이수현의 솔로곡 'ALIEN'을 그림책으로 출간했다. '우린 모두 특별한 존재이며, 다른 누구보다도 나 자신을 더 사랑하자.'라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에일리언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담았다. 앞으로 음악 또는 철학적인 고민들을 끊임없이 어어가며, 자신의 예술관과 사랑의 의미 그리고 우리가 놓치고 있는 삶의 소중한 순간들을 되짚어 보고자 한다.



에일리언
에일리언
이찬혁 글 | 이윤우 그림
스푼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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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묵, 강인식 "아픈 것으로 나를 정의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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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강인식, 박현묵 저자

『아프기만 한 어른이 되기 싫어서』는 저자 강인식이 중증의 혈우병을 갖고 있는, 그래서 10대의 대부분을 집에서 보내야 했던 박현묵이라는 사람을 만나 묻고 들은 이야기다. 아니, 이 문장은 불완전하다. 박현묵은 극한의 치료 기간에도 톨킨의 『끝나지 않은 이야기』를 번역해 커뮤니티에 게시하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정식으로 출판 번역을 한 번역가이며 기적처럼 신약을 만나 이제 원하던 것을 하나씩 이루고 있는 자유롭고 독립적인 대학생이다. 강인식 저자가 “나는 현묵의 스토리가 ‘장애인의 인간승리’로 소개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이것은 ‘매우 드문 어떤 기적’에 관한 이야기다. 한편으론 ‘공부의 본질’에 대한 탐구일 수도 있다.”(9쪽)라고 말하는 이유다.

한편 이 놀라운 이야기에 대해 장강명 작가는 “나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박현묵을 영웅이라고 부르련다”라고 추천사에 썼다. 강인식 저자는 이 추천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말했고, 당사자인 박현묵은 민망하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사실 책에 그 말이 안 들어갔으면 좋겠다고도 했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박현묵은 “아픈 것으로 나 자신을 정의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 자신의 지금을 ‘만전(충전이 다 된 상태라는 뜻)’이라고 말하는 사람, 늘 자신의 나태함을 경계하고, 자신에게는 시간이 많았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이며 그런 의미에서 ‘영웅’이라는 장강명 작가의 말은 더할 나위 없이 옳은 것이다. 



남아도는 게 시간이었다고 말하는 사람

2021년 여름 내내, 매주 수요일마다 박현묵 님의 집에서 인터뷰를 진행해 완성된 책이에요. 처음에는 기사를 위한 만남이었다가 “책을 써야겠다고 마음을 바꿔먹었다. 방송 기사로 쓰기엔 현묵의 이야기는 너무나 깊고 컸다”(245쪽)고 하셨죠. 어떻게 첫 만남에서 그런 확신이 온 건가요? 

강인식 : 우선 서울대에 굉장히 재미있는 친구가 들어왔다는 제보를 받았어요. 아파서 중고등학교를 하루도 다니지 못하고 방에만 있었고, 그러다 갑자기 19살쯤에 신약을 만났고, 1년 동안 대입 준비를 해서 서울대에 지원한 학생이었는데 압도적이었다고요. 심지어 그러는 동안 번역을 했고, 톨킨 책의 오류까지 잡아냈다는 거죠. 정보는 그것뿐, 성별과 이름, 나이도 몰랐고요. 결국 현묵이를 찾는 데 다섯 달이 걸렸어요.(웃음) 입시 정보니까요. 마침내 현묵이와 연락이 닿았는데요. 얘기를 해보니까 하루의 이야기는 너무 단편적인 이야기가 될 것 같더라고요. 톨킨에 초점을 맞추려니까 현묵의 이야기가 부각이 안 되고, 반대로 하면 흔한 장애인의 인간 승리 같은 이야기고요. 그래서 아예 책을 쓰자고 제안을 했어요.

박현묵 님은 어떠셨어요? 책 제안을 받았을 때 부담이나 고민은 없었나요? 

박현묵 : 부담이 없지는 않았는데요. 그냥 무시했어요. 부담은 나중의 일이라고 생각했고, 지금은 그냥 이야기를 털어놓는 게 재밌었거든요. 당장 ‘썰’을 푸는 게(웃음) 재미있었기 때문에 생각은 나중으로 미루자, 하는 심정이었죠. 

강인식 : 저는 현묵이 성격의 가장 큰 장점이 이거라고 생각해요. 사람은 망설일 때 가장 큰 스트레스가 생긴다고 하거든요. 현묵이는 어떤 걸 할 때 망설이는 시간이 짧은 편이에요. 주치의였던 김준범 선생님 말씀이, 현묵이는 아플 때마다 거의 사망 직전이었다고 하더라고요. 굉장히 아픈 거잖아요. 그런 사람이 한국에 한 번도 번역되지 않은 책을 꾸준하게, 3년동안 96번이나 번역해서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렸다는 건 굉장히 놀라운 일이죠. 그런데 현묵이는 단순하고 심플하게 결정을 한 거예요. 저는 현묵이가 그런 성격 덕분에 1년 안에 검정고시든 한국사능력시험이든 수능이든 번역이든 진행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고민에 함몰되어 있지 않으니까요. 누구에게나 고통스러운 경험이 있잖아요. 아플 때가 있고요. 그럴 때 대개는 거기에 묻혀 있게 되거든요. 그런데 현묵이는 달랐어요. 그게 엄청나게 감동적이었고요. 처음 만남에서 그런 면을 강렬하게 느껴서 책을 써야겠다, 확신했어요. 

고민을 많이 하지 않고 그냥 해버리는 자신의 성향을 박현묵 님은 스스로 어느 정도나 인식하고 계셨던 거예요? 

박현묵 : 이런 말을 들었을 때 사실 ‘내가 정말 그런가?’하는 느낌이었어요. 스스로가 생각하는 자기 자신은 다르기도 하고요. 더군다나 저는 다른 사람과 저 자신을 비교해 볼 일이 없다시피 했거든요. 10대의 거의 대부분을 집에서, 가족만 보며 지냈고요. 비교 대상이 없으니까 내가 그렇게 고민을 짧게 하는 편인가, 하는 생각이나 자각을 해볼 일이 전혀 없었죠. 

강인식 :저는 이 친구가 알에서 막 깨어난 공룡 같다고 생각했어요. 자기가 얼마나 성장할지 모르는 것 같았거든요. 기본적으로 아주 스마트한 두뇌를 타고 났는데 말이에요.


(왼쪽부터) 박현묵, 강인식 저자

이런 장면이 떠올라요. 주치의 김준범 선생님께서 치료 과정에서 일어나는 몸의 변화를 기록해보자고 했더니 박현묵 님은 그것을 아주 학문적으로, 과학적으로 접근하더라고요. 기본적으로 탐구하는 것에 대한 즐거움을 어렸을 때부터 많이 느끼셨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박현묵 :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제가 평생 본 게 저 하나밖에 없기 때문에 잘 모르겠지만요. 확실히 뭔가 관심이 생기면 일단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드는 경향은 있었고요. 또 저에게는요. 남아도는 게 시간이었어요. 

남는 게 시간이라니. 책에 “나태함에 대해 이렇게 적대적인 태도를 지금껏 본 적 없다”(268쪽)는 문장이 있죠. 아마 박현묵 님이 갖고 계신 ‘시간이 많다’는 감각은 ‘내가 할 수 있을 때는 최대한 뭔가를 해보고 싶다’는 마음인 것 같기도 하네요. 

강인식 : 정확하게 제가 생각하는 것을 말씀해 주신 것 같아요. 

박현묵 : 말씀처럼 정말 그렇게 생각했나 싶기도 하네요. 다만 확신은 안 서요. 그저 한창 인터뷰를 하던 기간에는 어떻게든 내가 겪었던 그 경험과 느낌을 그대로 전달하자고 생각했거든요. 지난 6-7년의 시간을 최대한 그대로 체험할 수 있게, 내가 느꼈던 걸 다 말하자고 생각했어요. “나의 10대는 나태함에 아픔이 양념처럼 뿌려진 상태” 같은 말은 정말로 그런 생각을 품고 있었기 때문에 했던 말이에요.

그러니까 스스로 나태함을 엄청 경계해 왔다고 할 수 있을까요? 

박현묵 : 경계라고 표현하면 많이 쑥스러워요.(웃음) 경계라면 그것을 벗어나기 위한 열정적인 노력을 했을 것 같은 느낌이잖아요. 그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어쨌든 나에게 나태한 구석이 있다는 것을 자각은 했어요. 그게 다예요. 예를 들어 내가 지금까지 웹 서핑 말고는 한 게 없다는 느낌을 갑자기 받을 때가 있어요. 그런 생각이 들면 나태하다는 생각을 하거든요. 그동안 번역을 붙들고 있었던 것도 이것이 내가 지금 하고 있는, 또는 할 수 있는 것 중에 그나마 생산적이라고 평할 수 있는 활동이었기 때문이었어요. 그나마 생산적이라고 할 수 있는 일은 이거 하나밖에 없다고 생각을 했었죠. 

강인식 : 현묵이는 계속 그 부분을 걱정했던 것 같아요. 하고 싶은 이야기의 본질은 여기에 있으니까요. 제가 ‘아픈 데도 참는 장애인 이야기’를 할까봐 염려스러웠던 거죠. 실제로 저에게 두 번 정도 정색하고 “당신한테 할 얘기가 있다”면서(웃음) 얘기를 하더라고요. 약간 위엄이 느껴지는 말이었어요. 그래서 그 점을 명심하고 인터뷰를 했죠.

현묵의 지적 탐구가 시작되면 ‘장애의 시계’는 어느덧 천천히 갔다.(중략) 그리고 ‘현묵의 시계’가 돌기 시작했다. 저 심연에서 올라오는 잔인한 고통도 그때만큼은 현묵의 육체에서 빠져나와 그 옆자리로 가 앉아 있었다. 현묵은 톨킨의 원문과 번역서와 영영사전과 영한사전을 무한히 탐색했다.”  _(270쪽) 


박현묵 저자

톨킨을 처음 만났을 때

제가 준비했던 질문도 다시 생각하게 되네요. 2016년부터 2019년까지, 커뮤니티에 번역을 올리는 동안에 실은 몹시 힘든 치료를 경험하고 계셨잖아요. 어쩌면 번역에 몰두한 것이 그 시기를 지나오게 했던 원동력이지 않았을까 생각했거든요. 아픔이나 처한 상황을 잊게 하는 힘이었을 거라고요. 하지만 결코 그게 아닌 거예요. 

박현묵 : 잊는 것과는 달라요. 저는 아프면 머리를 못 써요. 당장 이 아픔을 견디는 데 온 신경이 다 가니까 지적 활동은 전혀 못하죠. 제가 번역 활동을 한 건 말씀드렸듯이 그나마 생산적이고, 주변에 떳떳하게 보일 수 있는 일이라는 딱지를 붙일 수 있는 활동이었기 때문이고요. 그것 역시 심적인 여유가 있을 때나 했던 거예요. 

강인식 : 현묵의 어머니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어요. 신약을 만나기 전에, 일상이 100이라면 90은 아픈 상태였다고요. 그러니까 틈이 되게 작은 거였고, 현묵이는 그 틈에 천착했던 것 같아요. 가령 다른 사람이 10시간을 쓸 수 있다면 현묵이는 1시간밖에 쓸 수 없으니까, 그 1시간에 나태한 것을 몹시 경계했던 것 같고요. 그때 생산적인 일을 해야 된다는 생각을 꾸준하게 했던 것 같아요. 거기에 톨킨이 엄청난 동기부여를 했던 거죠. 현묵의 말 중 아주 인상적이고, 오랫동안 생각한 말이 있는데요. 현묵이는 자신이 아무리 중증의 혈우병 환자고, 희귀한 케이스라도 자신에게 과학적으로 기대되는 수명이 일반인보다 짧지 않다, 그러니까 나는 평생 이렇게 살아야 된다는 인식이 꽤 분명한 편이었거든요. 그러니까 그냥 오늘 고통을 좀 잊으려고 어떤 일을 했던 게 아니에요. 할 수 있는 것을 최대한 하고 싶은 마음이었던 거고, 그런 면에서는 현묵이의 말이 너무너무 중요한 포인트라고 생각해요. 

강인식 기자님의 방금 말씀에 덧붙이고 싶은 말씀은 없으세요? 

박현묵 :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매일매일이 고통스러웠던 건 아니었어요. 아픔마다 편차도 크고요. 또 많이 겪다 보면 익숙해지거든요. 제가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 겪는 제일 큰 고통이 뭐냐면요. 매일 예습을 하는 것, 과제물을 준비하는 것, 수업할 거리를 준비하는 것이에요. 그게 굉장히 힘들어요. 하지만 중고등학교를 거치면서 이런 과제 활동을 일상적으로 해온 사람은 이게 그렇게까지 힘들지 않겠죠. 마찬가지 같아요. 제가 육체적으로 아픈 게 다른 사람에게는 엄청 힘들게 살았다는 느낌을 줄 수 있겠지만 저는 자주 겪다 보니까 그럭저럭 괜찮았어요. 저희 어머니가 제 삶의 100에 90은 아팠다는 말씀을 했다고요?(강인식 :그보다 더 심하게 말씀을 하시긴 했지.) 저한테는 사실 60 정도가 정신이 멀쩡한 기간이었어요. 나머지 40은 아파서 머리를 굴릴 여유가 전혀 없는 기간이고요. 그렇게 생각해요. 

그런 중에 톨킨을 만났어요. 그 정도의 깊이 있는 지적 활동이 가능한 영역을 만난 것도 대단히 운명적이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박현묵 님께 왜 톨킨이었는지, 이 세계가 현묵 님께 어떠한 매력과 열정을 주었는지 직접 듣고 싶었어요. 

박현묵 : 그 부분은 최근에 생각이 정리됐어요. 제가 톨킨을 처음 만났을 때 느낀 감정은 딱 이거였어요. ‘정복할 맛이 있어 보이는 산이다.’ 첫인상은 어려웠어요. 책도 두껍고요. 당장 『반지의 제왕』 1권만 봐도 본편이 나오기는커녕 프롤로그도 엄청 길고, 생소한 얘기들이 잔뜩 이어지잖아요. 말하자면 체급이 다른 상대였는데요. 저는 그것에 혹했어요. 또 저에게는 뭔가 유명하고 널리 알려진 거라면 죽기 전에 한번쯤은 다 섭렵해보고 싶어 하는 성향이 있어요. 톨킨을 딱 그런 마인드로 접근했던 거죠. 사실 그런 작품은 많아요. 그렇지만 톨킨은 파고들 거리가 더 많았어요. 흔히 판타지물 얘기할 때 작품의 세계관의 넓이나 깊이 얘기를 하잖아요. 개인적인 생각인데 이 정도의 스케일을 가진 작품은 많거든요. 양적인 방대함만 따지면 말이에요. 그렇지만 어느 작가가 언어까지 구체적으로 구축했겠어요. 심지어 톨킨은 통시적인 변화까지도 주려는 시도를 많이 했고요. 그렇기 때문에 팔거리가 많았던 거죠.


강인식 저자

확실히 지적 자극에 아주 민감하신 분 같아요. 

강인식 : 현묵이가 영어를 잘하는데요. 영어를 어학 쪽으로 접근한다기보다 언어학 쪽으로 접근한다고 보거든요. 기호학, 언어학에 취향이 분명한 것 같고요. 그 취향이 톨킨이라는, 언어학적으로 아주 예민한 문학가를 만나 궁합이 딱 맞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게다가 마침 커뮤니티에서 현묵이 이상으로 활동하는 멘토들을 만날 수 있었고요.

강인식 기자님은 박현묵 님이 커뮤니티에서 만난 ‘테시’, ‘베렌’, ‘MW’ 등의 존재를 단순한 동기부여 이상의 의미 즉, 멘토로 평가하기도 했잖아요. 박현묵 님은 그런 평가를 어떻게 생각하세요? 

박현묵 : 동의해요, 물론 당사자분들께 그렇게 말씀드리면 아마 손사래를 치실지도 모르겠어요.(웃음) 어쨌든 저한테 그분들은 일종의 롤모델이긴 했어요. 대단한 선배 ‘톨키니스트’ 분들은 장문의 고찰과 분석을 여럿 남기기도 했고요. 보통 사람들은 접근하지 못하는 대단히 찾기 힘든 자료에 접근해서 그 내용을 설명해 주기도 하고 그랬어요. 그러니까 ‘내가 저 정도의 소양을 가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었죠. 많이 알고, 아는 것을 총체적으로 고찰할 수 있고, 심지어는 톨킨이 제시하지 않은 이면의 설정까지 추론할 수 있는 그런 사람들에 끌렸어요. 

강인식 : 저는 이 대목에서 삶의 에너지가 제일 강하게 느껴졌어요. 현묵이는 전부 동의하지는 않았는데요. 저는 좀 더 솔직하게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10대 후반의 눈에는 사회적으로도 번듯한 직업을 가진 ‘성덕’의 존재는 틀림없이 엄청난 가슴의 울림이 됐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게 10대의 박현묵을 움직여줬던 아주 강력한 힘이었다고 저는 생각했어요.  

인터넷 커뮤니티에 자발적으로 번역을 올리던 데서 시작해 이제 『끝나지 않은 이야기』 번역본을 출판한 프로 번역가가 되셨어요. 그렇다면 선배 톨키니스트들에게 어느 정도 다가갔다고 느끼시나요? 성취감도 있을 것 같은데요. 

박현묵 : 사실 제가 느꼈던 건 성취감과는 정반대였어요. 번역 제의를 받았을 당시에 제 머릿속에는 ‘과연 내가 공식적으로 대중에게 보일 번역을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뿐이었죠. 그동안처럼 저 혼자 아마추어로 번역을 하는 것도 아니니까요.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이 타이틀을 내가 가지면 되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했었죠.(웃음) 그런 고민이 있긴 했어도 번역을 하면서는 당장 이 이야기를 한국어로 옮기는 작업이 재미있었어요. 그러니까 역시 이번에도 다른 고민은 잠깐 미뤄두고 눈앞의 당장 재밌는 일에만 집중을 했고요. 새벽에 방에서 컴퓨터 켜 놓고 활자를 보면서 사전 찾고, 고민하고, 번역을 하면 다른 생각 없이 모니터에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어요. 덕분에 공식적인 역자 타이틀을 다는 것에 대한 부담은 잊을 수 있었던 거죠. 

강인식 :그렇게 말하니까 더 대단해 보이네요.(웃음) 즐기는 자를 당할 수 없는 것 같아요. 지금 모니터에 들어가는 것 같았다는 표현을 하잖아요. 그렇게 딱 붙어 있을 수 있는 힘이 현묵이한테 있어요. 



놀라울 정도의 단순함

그밖에 강인식 기자님이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알면 알수록 놀라웠던, 특별히 인상적이었던 박현묵 님의 태도는 무엇이었어요? 

강인식 : 가령 ‘밀사’에 관한 단어들이 있어요. 현묵은 그것에 참조가 될 만한 단어, 참고가 될 만한 단어들을 쭉 정리하고 그것들을 하나 하나 따져가며 자신의 번역에 일관된 가치로 설정을 해서 번역했거든요. 자신의 번역이 다른 번역가보다 대단한 번역은 아닐지 모르지만 적어도 이 부분에 있어서는 틀림없게 하겠다고 한 그 부분이 저는 제일 놀라웠어요. 현묵이 말한 게 ‘레퍼런스’거든요. 기본적으로 어떤 단어의 번역에 있어서도 톨킨의 아들인 톨킨 크리스토퍼부터 한국 번역가로 이어져온 그 레퍼런스를 모두 신경 쓰면서 자기 번역에 적용한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잖아요. 사실 논문을 그렇게 쓰려고 해도 정말 힘들거든요. 심지어는 긴 기사를 그렇게 쓰는 것도 아주 어려워요. 근데 그런 개념을 스스로 구축해서 번역을 했다는 건 정말 대단한 거죠. 

박현묵 님도 책 작업을 하면서 새롭게 생각하게 되었거나 확신을 갖게 된 자신의 면모가 있었을까요? 

박현묵 : 저도 어렴풋이 품고 있던 생각이라 동감한 것이 한 가지 있어요. 긍정적이라고 한 부분이에요. 

"나와 김 교수가 똑같이 감탄한 것이 있다. 그것은 현묵의 긍정적 사고 그리고 놀라울 정도의 단순함, 바로 낙천성이었다.”(49쪽)는 문장이 있죠. 박현묵 님은 비교군이 없었기 때문에 몰랐다고 하시지만요. 상황을 낙관적으로 보는 성향이나 성격은 분명해요. 이런 면은 어디서 영향 받았다고 생각하세요? 

박현묵 : 어려운데요.(웃음) 일단 낙천적으로 생각하면 어쨌든 멘탈에 유익하잖아요. 그래서 저 나름대로 그렇게 생각하려고 노력하는 것도 있고요. 어머니께서 저한테 “내가 옛날에는 네가 아프게 태어나서 되게 슬프고 힘들었는데 초등학교 3학년 정도부터 긍정적으로 생각하자고 마음가짐을 바꿨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어요. 그런 얘기를 꽤 여러 번 하셨는데요. 잘은 몰라도 그 얘기가 좋더라고요. 그때부터는 확실히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게 좋다는 가치관이 정립된 것 같아요. 

강인식 :한번은 현묵이가 너무 아파서 구급차를 불러 응급실을 가야 했대요. 거의 정신을 놓을 정도로 아픈 날이었는데 현묵이 엄마를 올려다 보면서 “엄마 걱정하지 마라, 나 안 죽는다” 이런 얘기를 했대요. 그래서 어머니가 되게 놀라셨다고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현묵의 병이 사실은 모계유전인 병이거든요. 모계 유전이라는 게 기본적으로 한국 사회에서는 가정의 파괴 혹은 비극의 시작이 되는 경우가 아주 많아요. 그래서 처음에 그 얘기를 할 때 너무 겁나고, 어려웠는데요. 놀랍게도 어머니는 거기에 대해서 아무렇지도 않게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그것이 크게 가족을 지배하지 않는 거죠. 그때 이런 낙천성이야말로 진짜 모계유전이다, 생각했었어요.

최근 일간지 인터뷰에서 “흥미가 동하는 건 언어학, 음성학, 역사언어학”이라고도 하셨더라고요. 번역도 계속 할 계획이신가요? 앞으로의 일도 궁금합니다. 

박현묵 : 궁극적으로는 그렇게 생각하는데요. 당장 구체적으로는 생각을 안 해요. 사실 그것 외에 하고 싶은 일이 있느냐 하면 또 고민이긴 하죠. 저는 미래를 생각해 둔 게 없어요. 다만 하고 싶다고 생각해둔 것을 못하고 죽지는 않는 것 정도가 바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얼마 전에 중앙도서관에서 마침 제가 보려고 하고 있던 톨킨 책 몇 권을 발견했어요. 그래서 일단은 그거를 꼭 정주행 해보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고요. 장차 톨킨이라는 사람에 대해서도, 그러니까 작품 외적으로 좀 알아보고 싶어요. 아마 그런 게 모여서 좁은 의미의 꿈들이 생기지 않을까요. 그렇지만 아직은 미래에 무엇을 하겠다, 그런 식의 것들은 생각하고 싶지 않아요.



*박현묵

톨킨 팬카페 '중간계로의 여행'에서 '팩맨'이라는 닉네임으로 활동 중이다. 2016년 ‘중간계로의 여행’에서 시작된 『끝나지 않은 이야기』 번역 프로젝트에 초창기부터 참여하여 「투오르와 그의 곤돌린 도달에 대하여」 장과 「창포벌판의 재앙」 장을 완역했다. 현재 서울대학교 인문학부에 재학 중이다.



*강인식

기자로 일하고 있으며, 『0.1그램의 희망』과 『꿈보다 열정』을 썼다.



아프기만 한 어른이 되기 싫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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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인식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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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지양·홍한별 "'번역가'라는 투명한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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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지양 저자

“작가는 아니지만 글 쓰는 사람입니다” 

출판 번역가 노지양, 홍한별 저자의 책 『우리는 아름답게 어긋나지』에 실린 첫 번째 글의 제목이다. 흔히 번역가는 원문을 우리말로 옮길 뿐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이국의 언어로 된 작품을 모국의 언어로 다시 쓰는 일을 한다. 일반적인 글쓰기와 차이가 있다면 번역은 “보이지 않으려고 분투하는 글쓰기”라는 점. 필연적으로 투명해질 수밖에 없는 일을 사랑하는 두 사람이 2주에 한 번씩 나눈 편지가 책으로 묶였다.

“오늘도 나는 언어의 매개자, 조용한 그림자로서의 의무를 다하자 싶어”  _(116쪽)  

* 이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원문의 ‘쨍그랑 울림’을 전하는 사람 

‘우리는 아름답게 어긋나지’라는 제목이 참 좋았어요. 번역가의 일을 한 문장으로 압축할 때, 이보다 더 적절한 말을 찾기란 어려울 것 같아요.

홍한별 : 사실 제 입으로 우리를 아름답다고 말하는 게 쑥스러워서 소심한 반대 의사를 밝혔어요(웃음). 그리고 저희 어머니께 보여드렸는데 “너희가 아름답다는 게 아니라 글이 아름답다는 거니까 괜찮다”고 지지해 주셔서 생각을 바꾸었죠. 출간 후 제목이 좋다는 칭찬을 무척 많이 들었어요. 역시 편집자님의 감각은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노지양 : 줄곧 ‘우리는 아름답게 어긋나지’라는 가제가 적힌 교정지를 주고받았는데 결국 제목으로 확정되었네요. 몇 가지 대안을 생각해봤지만, 마지막에는 가장 적합하고 시선을 끄는 제목이라는 데 동의했죠. 편집자님이 한별의 글에 있던 문장에서 영감을 받아 붙여주신 제목이었어요.

“아름답게 어긋난 상태로 남기려면 번역가가 용기를 발휘해야 했겠지(100쪽)”라는 문장이었죠. 일을 하면서 특히 용기가 필요한 순간은 언제인가요?

홍한별 : 커다란 용기는 아니지만, 작은 용기들이 소소하게 필요해요. 책에 쓴 일화 중 하나인데, 소설 『클라라와 태양』을 번역했을 때의 일이에요. 소설의 서술자 클라라는 인공지능을 지닌 안드로이고, 어린아이 같은 상태로 세상에 나와 일반 사람들과 생각하는 방식이나 말투가 조금 달라요. 독특한 개인어를 사용하기도 하고요. 특히 클라라가 자주 하는 말 중 ‘high-rank clothes’라는 말이 있어요. 일반적으로는 잘 사용하지 않는 어색한 표현인데, 이걸 그냥 ‘고급스러운 옷’으로 옮기면 클라라의 특징이 잘 살지 않아서 ‘등급이 높은 옷’이라고 옮겼어요. 그런데 독자 서평에 어색한 표현이라면서 번역이 좋지 않다는 내용이 있더라고요. 이렇게 원문의 독특한 느낌을 ‘쨍그랑 하는 울림’이 남도록 번역할 때마다 작은 용기를 내야 해요. 때로는 편집 과정에서 잘려 나가기도 하고, 살아남더라도 ‘직역투’라는 비판을 피할 수가 없거든요.

서로에게 받은 메일 중, 가장 기억에 남거나 개인적으로 의미가 있었던 메일은 무엇이었나요?

노지양 : 한별에게 받은 첫 번째 편지였어요. 손으로 썼다고 했었죠. 글이 좋을 거라고 당연히 예상했는데, 편지를 직접 읽어보니 생각보다 더 좋아서 놀랍더라고요.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이 가장 많이 인용해주시는 번역에 관한 문장도 첫 편지 안에 있어요. “원문에서 느껴지는 아름다움, 스산함, 슬픔, 따뜻함, 고요함, 충격, 통렬함을 조심스럽게 내 언어로 어루만져 이루어내는 일(24쪽).” 번역을 정말 아름답고 품격있게 표현한 문장 아닌가요? 첫 편지를 읽자마자 같이 하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했어요(웃음).

홍한별 : 모든 편지가 의미 있었지만, 우리와 같은 일을 하다가 이른 나이에 세상을 뜬 친구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던 지양의 편지를 읽은 순간을 수가 없어요.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이렇게 아픈 이야기도 할 수 있을만큼 우리 사이가 더 단단해졌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홍한별 저자

겸손은 번역가의 숙명

번역가에 대한 오해 중, 가장 억울한 것이 있을까요? 

노지양 : 혼자 일하기 때문에 고고하고 우아한 직업으로 보일 수 있지만, 감정 노동을 해야 할 때가 많아요. 특히 교정 과정에서도 편집자와 의견이 달라 속상하곤 하죠. 그럼에도 현명하게 타협하고, 양보하고, 소통하려고 노력해야 하고요. 번역을 하려면 오만하거나 고집스럽지 않고, 유하고 겸손해야 해요. 아마 주변에 번역가 친구를 두시면 나쁘지 않을 거예요(웃음). 신간 도서를 선물로 받으실 수도 있고요!

홍한별 :흔히 번역을 거치면 글이 원문에서 멀어지고, 그 과정에서 빈틈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해요. 번역이 불가능해서 사라지는 부분이 있는가 하면, 번역 과정에서 새롭게 생겨나는 것들도 있거든요. 번역문을 원문과 별개의 성취로 바라볼 필요가 있는 거죠. 사실 원문에 가장 가까운(가깝다는 것 또한 정의가 불가능한 개념이지만) 번역이 가장 좋은 번역은 아니거든요.

그럼 ‘좋은 번역’이란 무엇인가요?

홍한별: 어려운 질문이네요.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히 파악하고, 독자에게 그 의미를 전하기 위해서 택한 형식을 존중해야 하고요. 그러면서 최대한 원문과 비슷한 효과를 내도록 적절한 우리말로 표현하는 번역이 좋은 번역이라고 생각해요. 

노지양 : 한별이 책에서 말했듯이 “최대한 한국어처럼 읽히도록 자연스럽게 옮기면 지나치게 길들여 동글동글한 자갈돌 같은 번역”이 될까 조심스럽다고 하잖아요. 저도 기본적으로 독자 입장에서 술술 읽히는 번역문을 만드는 게 1차 목표이지만, 이국 문화의 낯선 느낌이 살아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어요. 또 제가 생각하는 좋은 번역은 작가의 의도를 잘 살린 번역이에요. 단어의 위치, 문장의 길이, 리듬감을 조절해서 원문이 강조하고 싶었던 내용을 살린 번역이 좋죠. 가끔 번역에서 잘 보이지 않았던, 순수한 우리말이 들어간 번역문을 봐도 신선한 느낌이고요. 

책에는 번역하기 까다로운 단어에 대한 이야기가 여럿 실렸는데요. 반대로 좋아하는 단어, 혹은 번역 작업을 하다가 만나면 반가운 단어 등이 있나요? 

노지양 : 저는 'smart'라는 단어가 은근히 좋아요. 영민한, 똑똑한, 현명한, 영특한, 우수한 등 문맥에 맞게 다르게 번역하는 재미가 있거든요. 또 페미니즘이나 젠더 인종 관련 어휘는 많이 접한 편이라 익숙하기 때문에 검색을 덜 할 수 있어서 좋아요. 참정권 운동가인 ‘수잔 B. 앤서니’, ‘아이다 웰스’, 교차성 이론의 ‘킴벌리 크렌쇼’, 미투의 기원이 된 ‘타라나 버크’ 등의 이야기도 이미 배경을 잘 알고 있으니 원문에서 우연히 만나면 반갑죠. 

홍한별 : 저는 'boring(지루한)'이라는 단어를 좋아해요. 특별한 이유는 없고요. 뜻은 심드렁한데, 생긴 모양이나 소리가 귀여워서요. 사실 영어의 특별한 재미는 단어의 품사를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다는 점인 것 같아요. 예를 들어 ‘ring(반지)’은 보통 명사라고 생각하지만 ‘ringed finger(반지 낀 손가락)’라는 말도 하거든요. 얼마 전에 번역한 글에서는 ‘bright sting(빛나는 자극)’이라는 표현이 있었어요. 이렇게 아름답게 어긋나는 것들이 재미있어요.

번역에 대한 편견과 처우 등 어두운 면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셨어요. 특히 합당한 보수를 받지 못하는 문제는 비단 번역가뿐 아니라 집필 노동자라면 대부분 공감할만한 지점이었죠. 출판 번역가의 처우가 개선되기 위해서는 궁극적으로 어떤 변화가 있어야 할까요? 

홍한별 : ‘출판’이라는 산업은 사실 노동집약적이고 부가가치가 크지 않잖아요. 여러 제작단계에 있는 사람들이 파이를 나누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무조건 번역료를 올려달라고 주장하기가 쉽지는 않아요. 하지만 번역 품질이 높으면 교정 등에 들어가는 비용을 줄일 수 있거든요. 그 부분을 고려하면 출판사에서 좋은 번역가에게 조금 더 투자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노지양 : 외서의 경우, 번역이 독서 체험을 결정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주셨으면 좋겠어요. 독자 분들이 마지막 장까지 재미나게 읽은 외서가 있다면, 번역이 잘 된 책이었던 게 분명하거든요. 번역가의 수입이 어느 정도 보장되면 독자들이 더 질 높은 번역물을 즐길 수 있을 거예요. 더불어 각 출판사, 문화부 등에서 주최하는 번역상이 더 생기고 청년 지원 사업처럼 번역가도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창구가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일반적인 조건 외에, 일의 수락 여부를 결정할 때 중요하게 작용하는 기준은 무엇인가요?

홍한별 : 첫 번째 조건은 ‘재미’예요. 내가 좋아하는 책, 글이나 내용이 재미있는 책, 번역 과정이 흥미로운 책, 흥미로운 사실을 알려주는 책 등이 모두 ‘재미있다’의 범주에 들어가죠. 

노지양 : 저는 말맛을 살릴 수 있는 일러스트 도서나 감성적이고 유머러스한 에세이를 선호해요. 진지한 순수문학, 사회과학 책 등은 다른 번역가가 훨씬 더 훌륭하게 번역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고사하기도 하죠. ‘내가 하면 잘할 수 있겠다, 자신감을 갖고 할 수 있겠다’ 싶은 책에 끌립니다. 


번역, 나를 사랑하게 하는 일

노지양 번역가님은 출간 제의를 받고 ‘만약 이 프로젝트를 한다면 반드시 홍한별 번역가와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셨다고요. 

노지양 : 편한 친구이자, 제가 좋아하는 번역가였으니까요. 작업 과정이나 번역에 대한 한별의 생각이 궁금했고, 뭔가 함께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늘 가지고 있었어요. 예전에도 우리가 좋아하는 책을 소개하는 팟캐스트를 해보자는 말을 건넨 적 있었거든요. 물론 당시 한별에게 “그 재미없는 걸 누가 듣겠냐”는 말을 듣고 1초만에 계획을 접었지만요(웃음). 

두 분의 첫 만남이 궁금해요. 

홍한별 : 같은 대학, 같은 과를 다녔지만 함께 수업을 들은 적은 거의 없었어요. 전공 수업에서는 학번순으로 반을 나누는데, 학번이 가나다순이거든요. 지양이는 늘 앞반, 저는 언제나 뒷반이었죠(웃음). 졸업 후 한참 뒤에 지양이도 번역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십 년이 훨씬 지나서야 다시 만났는데 대화가 끊이지 않았어요. 

노지양 :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아마 제가 먼저 만나자고 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같은 업계에 있는 동창생이고, 멀리서 봐도 호감이 생기는 친구라서 만났는데 너무 잘 통했어요. 그 뒤로 다른 친구들한테는 못하는 번역으로 울고 웃었던 이야기들을 나누는 사이가 되었죠. 사실 한별은 상대를 함부로 판단하지 않고,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라 한번 친해지면 누구든 관계를 오래 유지되는 편이에요. 저도 한별과의 관계를 놓치고 싶지 않아 하는 여러 친구 중 한 명이고요. 

홍한별 번역가님은 책에서 “내가 찾아낸 책을 내가 한국어로 옮기고 그 책을 좋아하는 독자들을 만난다는 것(171쪽)”이 궁극의 소망이라고 하셨어요. 노지양 번역가님도 ‘궁극의 소망’이 있으신가요? 

노지양 : 다음 페이지에 무슨 내용이 나올지 궁금하고 기대되고, 매일 아침 번역하고 싶다고 생각되는 책을 번역하는 일이요. 모든 번역은 어렵지만, 그래도 내 문체와 궁합이 잘 맞는 책이 있거든요. 인세로 계약한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꿈을 꾼 적도 있지만 큰 가능성은 없어 보입니다(웃음). 

서로의 번역서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책을 소개해주신다면요? 

노지양 : ‘세라 스마시’의 『하틀랜드』를 밑줄을 그어가면서 두 번 읽었어요. 쉽지 않은 내용인데도 매끄럽게 술술 넘어가서 ‘이런 책을 만나 기쁘다, 행복하다’는 느낌이 들었죠. 최근 읽은 ‘샤샤 세이건’의 『우리, 이토록 작은 존재들을 위하여』도 섬세하고 미려한 문체에 대한 이야기가 많은데요. 아마 한별의 번역이 큰 몫을 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홍한별 :지양이 번역한 것 중, 좋은 책 진짜 많은데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책은 록산 게이의 『헝거』예요.

오랫동안 번역가로 일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해 두분 모두 “결국에는, 내 일을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하셨어요. 번역의 어떤 면을 특히 사랑하시나요?

홍한별 : 번역의 결과물이 책이기 때문이에요. 영화, 게임, 유튜브, 소셜미디어 등 세상에는 재미있는 게 너무나 많지만 아직도 제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책이니까요. 

노지양 : 저는 여러 면에서 부족한 사람이지만 번역만큼은 제 강점이 발휘되는 일인 것 같아요. 인내심, 성실성, 센스, 감성, 유머, 문장력 등이 있으면 살아남을 수 있는 일이거든요. 일상 생활에서는 한심하고 서투르지만, 번역을 하고 있는 저는 꽤 괜찮은 사람인 듯이 느껴질 때가 있어요. 나를 사랑할 수 있게 하는 일이기 때문에 번역을 더 사랑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노지양

번역가이자 작가. 달리기와 자전거를 사랑하고 각종 스포츠 중계와 미드, 스탠드업 코미디까지 챙겨 보며, 틈틈이 그림도 그리고 피아노도 배우는, 좋아하는 것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은 ‘건강한 자기중심주의자’다. 연세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한 후 단순히 ‘라디오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라디오 작가가 됐다. 겨우 메인 작가가 될 무렵 아이를 가지면서 방송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 이후 번역을 시작해 10년이 넘어가면서 점차 인정받는 번역가가 되었지만, 마음 한편에는 늘 자신만의 글을 쓰고 싶은 갈망이 있었다. 번역가로서 만나온 단어들과 그에 관한 단상들을 쓴 책 『먹고사는 게 전부가 아닌 날도 있어서』로 처음 ‘지은이’로서 독자들을 만났다. 두 번째 책 『오늘의 리듬』은 나이가 들어간다는 현실을 필사적으로 부정했으나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게 그것을 받아들이고, 여전히 서툰 어른 생활을 헤쳐나가기 위해 분투하는 일상을 그려내고 있다. 옮긴 책으로 『나쁜 페미니스트』 『헝거』 『케어』 『다만 죽음을 곁에 두고 씁니다』 『센 언니, 못된 여자, 잘난 사람』 『트릭 미러』 『믿을 수 없는 강간 이야기』 『인종 토크』 등이 있다.



*홍한별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와 같은 학교 대학원을 졸업하고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글을 읽고 쓰고 옮기면서 살려고 한다. 옮긴 책으로 『도시를 걷는 여자들』, 『하틀랜드』, 『우먼 월드』, 『먹보 여왕』, 『밀크맨』, 『온 컬러』, 『권력과 테러』, 『자라지 않는 아이』, 『위대한 생존』, 『오카방고 숲속의 학교』, 『나는 그림으로 생각한다』, 『두 살에서 다섯 살까지』, 『나무소녀』, 『네모난 못』, 『자유 방목 아이들』, 『밴버드의 어리석음』, 『식스펜스 하우스,』 『토머스 페인 유골 분실 사건』, 『히치콕 미스터리 매거진 걸작선,』 『사악한 책, 모비 딕』, 『이 문장은, 내 삶을 완전히 바꾸어놓았다』, 『아웃런』, 『바다 사이 등대』, 『달빛 마신 소녀』, 『나는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페이퍼 엘레지』, 『몬스터 콜스』, 『가든 파티』 등이 있다. 『다시 동화를 읽는다면』과 『미스테리아』 등에 글을 실었다. 『밀크맨』으로 제14회 유영번역상을 수상했다.




우리는 아름답게 어긋나지
우리는 아름답게 어긋나지
노지양,홍한별 공저
동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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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정세운 "책을 쓰는 모든 순간이 좋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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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싱어송라이돌’ 정세운은 자신의 첫 책 『아끼고 아낀 말』에 대해 “책을 낼 거라는 건 상상치도 못했기 때문에 앨범 내는 것 이상으로 뿌듯하다”고 말했다. 갑작스러운 책 제안에 고민도 많았지만 “그래도 일단 해보자는 마음으로”썼다. “몇 안 되는 경험이긴 하지만 일단 해보자, 했을 때 얻었던 게 많았”기 때문이다. TV 오디션 프로그램을, 뮤지컬을, MC를 ‘일단’ 해본 것은 그를 다양한 곳으로 이동시켜주었다. 해보지 않으면 몰랐을 자신의 새로운 면도 발견했다. 그리고 책 역시 마찬가지였다. 뜻밖에 책을 쓰는 일에 큰 흥미를 느꼈다는 정세운은 “책을 안 내더라도 앞으로 그냥 조금씩 이렇게 기록해 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밝히기도 했다. 

흘러가버리고 말 20대를 붙잡아 두고 싶은 마음으로 기록한 정세운의 에세이 『아끼고 아낀 말』에는 문득 솟아난 하루의 생각들이 모여 한 시절의 단단한 생각이 되는 과정이 담긴 듯하다. 그 여정에 선 정세운이라는 사람은 자신이 혼자인 것 같고, 이야기가 통하지 않아 답답함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손 내민다. 해결책도, 정답도 이 책에는 없지만 책으로 만나 작은 공감을 나누고 싶은 반짝이는 마음으로. 



20대의 나를 기억하고 싶었어요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아 기억하기 위한 기록’이라는 작가 소개글에 눈길이 가요. 또 책의 첫 문장은 “이상할 만큼 10대 시절의 기억이 희미하다”(5쪽)죠. 연결해보면 이 책은 20대의 정세운이라는 사람을 잡아 두고 싶은, 기억하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된 것이 아닐까 싶어요. 

10대의 기억이 왜 이렇게 없을까 생각해봤어요. 별다른 생각 없이 살았던 것 같아요. 물론 몇 가지 기억나는 것이 있지만 대부분은 하루하루가 빠르게 지나간 느낌이에요. 그건 20대도 비슷하거든요. 데뷔한 지 이제 5년 정도 됐는데요. 시간이 너무 빨라요. 말이 안 되게 빠른 느낌이고, 의식을 하고 보니 어느덧 데뷔 6년 차가 된 거죠. 사실 이 하루는 다시 돌아오지 않잖아요. 너무 아쉬운 마음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좀 더 특별하게 이 순간들을 기억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오늘이 내일을 만들고, 내일의 내가 어떤 모습일지는 결국 오늘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러니까 책을 통해 20대 중반의 나라는 사람이 어떤 생각을 했고, 어떤 하루를 살았으며,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기억하고 싶었던 거예요. 시간이 지나서 볼 수 있도록 기록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출발했어요.

그 중, 특별히 꼭 기억하고 싶다는 생각에 기록한, 쓰면서 즐거웠던 장면을 고른다면요?  

특별한 한 편에 대한 것보다는요. 책을 쓰려니까 저의 감정이나 하루의 생각을 훨씬 더 예의주시하게 되더라고요. 쓰는 내내 내가 어떤 기분인지, 어떤 상태인지를 더 돌아보게 되는 느낌이 있었어요. 평소 그저 해야 할 일들을 하기 바빴다면 책을 쓰면서는 하루의 끝에 오늘 있었던 일, 오늘 느꼈던 기분 같은 것들을 한 번 더 생각하게 됐어요. 그 과정이 정말 즐거웠어요. 왜 진작에 이렇게 안 했을까 싶을 정도로 말이에요. 더구나 음악을 하는 사람으로서 이런 기록, 메모들이 다양하게 쓰일 수 있잖아요. 새삼 그런 생각도 하게 됐고요. 책을 쓰는 모든 순간이 저에 대해 더 깊게 들여다보는 시간이어서 참 좋았어요.

한편으로 책 제안을 받고 고민을 많이 하셨다고 들었어요. 

제가 작사도 해서, 이런 일이 글쓰기와 아예 관련이 없지는 않았기 때문에 그나마 책을 쓰겠다는 결심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은데요. 막상 글을 써보니까 작사와는 아예 다른 근육이 필요하더라고요. 작사의 경우, 주어진 멜로디가 있고 3-4분 되는 시간 안에 최대한 이야기를 함축해서 표현을 해야 하죠. 또 멜로디랑 잘 안 붙으면 가사를 다시 써야 해요. 반면에 글은 정말 자유로워요. 어떻게 시작하고 끝낼지 제 마음대로 해도 되고요. 그런 것들이 다르기는 했어요. 그래도 작사하는 기술을 글 쓰는 데 많이 반영한 편이거든요. 함축적으로 이야기를 한 것이나 최대한 심플하게 주제를 전달하고자 한 것은 작사 덕분이었어요. 그렇게 쓰다 보니까 지금과 같은, 장황하게 설명하지 않으면서 하고 싶은 말을 담아내는 글이 스타일처럼 책에 묻어난 것 같아요.

재미있는 부분이, 각 챕터 하단에 노래가 한 곡씩 함께 소개되어 있는 것이었어요. 어떤 과정이 있었는지 궁금해요.

우선 글을 제일 먼저 썼고요. 글을 마무리하면서 사진을 준비했어요. 음악은 가장 마지막으로 선곡한 건데요. 음악은 글과 잘 어울리는 것이었으면 해서 제가 좋아하는 곡들 중에서 찾았어요. 독자 분들은 그냥 음악 없이 책을 쭉 읽으셔도 좋고, 제가 소개한 음악을 들으면서 글을 읽으셔도 좋아요. 또 그 음악이 끝날 때까지 글에 대해 생각하셔도 좋고요. 그것도 아니면 그냥 자연스럽게 음악을 들으면서 떠오르는 생각들을 마주해보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해요. 이런 생각으로 제가 전달하고자 하는 그 글의 이야기를 뒷받침해 줄 수 있는 분위기가 담긴 곡들을 선정했습니다.

선곡 아이디어는 직접 내신 건가요? 

편집자 님께서 먼저 제안을 해주신 건데요. 사실 즐겁지는 않았어요.(웃음) 일단 잘 선택해야 한다는 마음이 있었으니까요. 그렇지만 생각보다 오래 걸리진 않더라고요. 독자 분들은 저의 선곡을 듣는 재미가 쏠쏠할 거라고 생각해요. 초반에는 약간 잔잔한 음악이다가 신나는 곡도 나오다가 감성적인 곡도 나오고 조금 덜 잔잔한 곡들도 나오고, 하는 식이거든요. 이런 것들을 다 생각하면서 곡의 순서까지 배치한 거니까요. 글과 사진만 보는 것도 좋겠지만 음악을 들으면서 글을 읽으면 색다른 감정이나 생각을 얻으실 수 있을 거예요. 



보이지 않는 마음을 보려는 사람

『아끼고 아낀 말』은 무엇보다 작가님이 스스로 많이 질문하고, 내게 일어난 상황을 이해하려고 애쓰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글들이었어요. 실제로 정세운이라는 사람은 어떤가요? 

저는 객관적으로 생각하려고 많이 노력해요. 스스로를 생각할 때, 가지고 있는 것보다 더 크게 생각하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거든요. 예를 들면 1km도 못 달리는 체력인데 3km를 달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든지, 그런 면이 있어요. 그래서 어떤 것이든 객관적으로, 솔직하게 나를 바라보려고 하는 스타일이에요. 이것은 상황에 대해서도 같아요. 벌어지는 일들을 정확하게 바라보려는 노력을 하는 편인데요. 어떤 일이 벌어졌을 때 감정이 먼저 반응하는 경우가 있잖아요. 저는 그럴 때, 일단은 최대한 정확하게 상황을 파악하는 걸 중요하게 생각하는 스타일이에요.

글을 쓰고 곡을 쓰는 일은 어쩌면 자신에게 매우 집중해야 하는 일 같은데요. 스스로를 최대한 객관적으로 생각하려고 한다는 말씀이 묘하게 어긋나는 것 같으면서도 이해되기도 해요. 내게 집중하는 일과 객관성을 유지하는 일, 서로 어떻게 영향을 주고 받을까요? 

나에게 집중하는 것, 되게 좋은 말이에요. 근데 제 생각에는 너무 본인에게만 몰두하다 보면 놓치게 되는 가치도 많은 것 같더라고요. 상대방과 교류하고, 소통할 때 얻을 수 있는 가치도 많다고 생각하고요. 특히나 제 직업상 저는 그런 면에서 아주 조심해야 된다는 생각이 있어요. 연예인이라는 직업이 자칫 수동적이게 되기 쉽거든요. 이동이나 메이크업, 무대 세팅까지 다 도움을 받잖아요. 많은 스태프 분들이 고생해주시는 덕분인데요. 이때 객관적으로 생각을 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자칫 필요한 말을 듣기가 어렵게 되는 것 같기도 해요. 때문에 저는 연습생부터도 그런 부분에 있어 잘 깨어 있어야겠다고 많이 생각했던 것 같아요.

‘포기도 습관이라서’라는 챕터에 자꾸 포기하고 싶어지는 마음을 다잡는 이야기가 나오죠. 그밖에 바꾸고 싶어서 노력하는 것들은 무엇이 있나요? 

저는 되게 게으른 스타일이에요. 누구에게나 하기 싫은 것들이 너무 많잖아요. 이 얘기는 좀 가벼운데요. 제가 아침에 찬물 샤워를 해요.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한 뒤에 마지막으로 하는 건데요. 찬물 샤워 너무 하기 싫어요.(웃음) 그렇지만 계속 나한테 도전을 거는 거죠. 진짜 찬물을 틀기 직전까지도 너무 하기 싫고, 오늘은 따뜻하게만 샤워하고 마무리 끝내고 싶은 충동이 계속 일어나요. 그런데 에라 모르겠다, 하고 찬물을 틀면 성취감도 있고, 30초라도 찬물 샤워를 했다는 것이 하루에 좋은 영향을 많이 주더라고요. 기분도 좋아지고요. 책 쓰는 것도 그랬어요. 책 쓰는 게 큰 도전이었고, 글 쓰는 습관을 만드는 게 힘들었거든요. 쓰기를 시작하는 게 쉽지 않잖아요. 하지만 일단 앉아서 쓰려고 했죠. 그러면 뭔가를 끄적이게 되더라고요. 저는 그런 식으로 좋은 기운들을 찾으려고 애를 써요. 그런 것들이 제 하루에 좋은 영향을 준다고 생각해요.

되고 싶은 사람에 대해서는 “보이는 것에 속지 않는 사람. 보이지 않는 마음을 보려는 사람”(109쪽)이라고도 했어요. 

그렇게 되기가 쉽지 않아서 쓴 거예요. 눈에 보이는 게 힘이 크잖아요. 확 와 닿기도 하고요. 보이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너무 그것만 보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하는 거죠. 보이지 않는 부분에도 중요한 가치들이 많이 있는 것 같거든요. 저는 결국 뭔가 보이지 않는 부분에서 많이 감동을 받아요. 그래서 보이는 걸 보는 와중에 보이지 않는 것도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꿈에 대해 쓴 ‘나의 작은 꿈’도 참 좋았어요. 꿈을 특정 직업이나 명사로 쓰지 않고 “하루하루 평안한 시간을 누리며 내 그릇을 넓힐 수 있는 준비와 공부를 하는 것”(215쪽)처럼 문장으로 쓰신 부분이 좋더라고요. 

꿈에 대한 생각을 하다가 쓴 글이에요. 초등학교 때 꿈은 뭐였지, 생각하다보니 대통령(웃음)이라고 얘기하고 다녔던 기억이 나더라고요. 그러면 나는 왜 대통령이라고 말하고 다녔을까, 하고 계속 되물으면서 글을 썼어요. 어떤 꿈을 세우고, 그 꿈을 언젠가 이룬다고 했을 때를 생각하면요. 이루고 나서도 ‘이제 뭐 하지’ 이런 생각이 들 수 있잖아요. 그걸 이루고 난 다음에는 많이 허무할 것도 같아요. 그렇게 생각하니까 뭔가를 이루거나 실패하는 것을 떠나서 그저 매일 좋은 기분으로, 즐거운 기분으로 보낼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던 거예요.



음악이 너무 재미있어요

10대에 TV 오디션을 봤고, 세상에 알려졌죠. 이를테면 누군가가 꿈이라고 말하는 과정을 앞서 걸은 건데요. 그런 경험이 앞서 말한 것과 같이 꿈에 대한 생각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거든요. 

어쨌든 저는 좋든 나쁘든 제가 했던 모든 경험이 다 저의 생각에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는데요. 예를 들어 연습생들의 꿈은 데뷔예요. 그런데 저는 연습생 때부터 나는 데뷔가 꿈이 아니라고 생각했었어요. 오래 음악 하는 게 꿈이었기 때문이에요. 연습생을 하면서도 데뷔하고 나면 허무함을 느끼는 친구들, 다른 동기부여를 얻지 못하는 친구들도 많이 봤고요. 아마 그래서 그때부터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데뷔는 꿈을 이루는 게 아니라 시작되는 것이라고요. 이런 식으로 하나 딱 이룰 수 있는 꿈을 세우는 것보다 지속적인, 가치를 가져갈 수 있는 바람을 그때부터 생각하게 되지 않았을까 싶어요.

음악에 대한 깊은 애정도 느껴져요. 뮤지션으로서는 어떤 꿈을 갖고 있나요? 

사실 무엇을 보여드리려는 것보다 제가 음악이 너무 재미있어요. 공부를 하고, 그걸 음악으로 만들어보고, 또 새로운 도전을 해보는 게 엄청 재미있거든요. 더구나 오래 음악을 하려면 계속해서 공부를 해야 돼요. 그게 진짜 음악이 힘든 이유이기도 한 것 같은데요. 계속 무언가가 바뀌니까요. 어렸을 때 선망했던 뮤지션들, ‘존 메이어’처럼 영향을 많이 받은 가수들을 보면 무대 위에서 정말 자유로워요. 기타는 보지도 않고 치고, 그냥 몸으로 자유롭게 한단 말이에요. 그래서 초반에는 무작정 ‘저렇게 자유롭고 재미있게 음악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요. 자유롭고 재미있게 하려면 엄청나게 공부하고 연습해야 하더라고요. 그런 생각에서 해가 바뀌고 시간이 갈수록 경험치를 계속 획득하면서 나만의 독특한 음악들을 만들어내고, 그걸로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책을 안 쓰더라도 기록하는 일을 계속 하고 싶다고 하셨잖아요. 조금 더 본격적인 내 이야기, 또는 조금 더 긴 호흡의 글을 써볼 생각도 있으세요? 

당연히 뭐든 저는 열려 있고요. 이번에는 그냥 그때의 생각들이나 공감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간략하게 써 내려갔지만 길게도 충분히 할 수 있는 거니까요. 어쨌든 연습을 많이 해야 되지 않을까 싶어요. 그렇지만 저는 저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고 싶은 욕구를 가진 사람은 아니에요. 



지금 마음속에 가득 차 있는 것

이 책이 “언제든 들러 편히 쉴 수 있는 정원 같은 책이 되면 좋겠다”(6쪽)고 쓰셨잖아요. 어떤 마음을 담은 건가요?  

제가 지금 20대 중반인데요. 생활하면서 필요했던 게 정원이기도 하고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게 비슷할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깊은 이야기들을 편안하게 터놓고 싶을 때 이 책이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좋겠지만 그런 사람이 없을 수도 있고, 그럴 수 없는 상황도 있을 수 있잖아요. 책을 쓰면서 이 책에 담은 저의 생각에 공감을 해주는 분들이 얼마나 있을까 궁금했는데요. 공감하는 분들이 있다면 그 분들이 이 책에서 위안을 얻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근데 또 그냥 가볍게 “괜찮다”고 얘기하지 않고, 약간의 객관적인 시선에서 “괜찮지 않은 건 괜찮지 않은 거야, 근데 괜찮은 건 또 괜찮아”라고 말하는, 객관적으로 스스로를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그런 책이었으면 했어요.

요즘 생활하면서 정원이 필요했다는 말이 의미심장하게 들려요. 

저는 쉼의 공간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성격이 그렇기도 한데요. 생활하면서도 잘 충전을 하면서 생활해야 하는데 그런 걸 놓치게 되는 상황들이 많아요. 그래서 정원이 필요하다고 종종 생각해요.

마지막 부분에 독자 분들에게 질문을 하셨죠. 그 질문을 작가님께 드리고 싶거든요. 지금 이 순간에 마음속에 가득 담겨 있는 것, 무엇인가요? 

지금은 치킨이 너무 먹고 싶어요.(웃음) 저는 가볍게 생각하는 것도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굳이 매일 힘을 주면서 최고의 삶, 후회하지 않을 삶을 살아야 된다는 생각에 집중하면 그게 잘 안 되거나 무너졌을 때 더 힘들잖아요. 실패하더라도 그냥 ‘내일 다시 도전해보자’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요. 뭐, 일단 오늘은 치킨 너무 먹고 싶네요.(웃음) 요즘 하루하루가 되게 좋아요. 저는 타인과 소통하고 주변 사람들과 대화하는 데에서도 큰 즐거움을 느끼는데요. 요즘은 그런 하루하루라 너무 좋아요. 지금은 서로에 대한 정보를 너무 확인하기 쉬운 시대잖아요. 비교도 많이 하게 되고요. 지금 제 마음속에 가득 차 있는 건 그런 건 필요 없다는 생각이에요. 뭘 쟁취하려고, 돈을 더 많이 벌려고, 명예를 더 많이 얻으려고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요. 그보다는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서 저를 충전하고, 저를 잘 대하는 것, 건강한 생각들과 공부에 대한 관심이 지금은 가득해요.

이 인터뷰를 읽고 『아끼고 아낀 말』이 궁금해졌을 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제 인생 영화 중 하나가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거든요. 그 영화를 지인한테 추천을 받았었는데요. 보지 않고 있다가 3년 뒤에 갑자기 생각이 나서 봤어요. 그런데 한 10분 봤는데 별로 재미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껐죠.(웃음) 그리고 몇 달 뒤에 다시 생각이 나서 봤는데요. 너무 좋은 거예요. 그때 비로소 인생 영화가 된 거죠.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언젠가 살다가 이 책 생각이 번뜩 스친다면 그때 책을 보셔도 좋다는 거예요. 지금 안 읽고 싶은데 억지로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고요. 그냥 이런 책이 있음을 알고 계시다가 문득 찾아보셔도 좋을 것 같아요. 



*정세운

뮤지션. 음악을 만들고 연주하고 노래한다. 음악을 통해 행복을 찾고 음악을 통해 행복을 주는 사람. 10대 시절 TV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처음 대중 앞에 등장한 이후 2017년 첫 번째 앨범 <EVER>로 데뷔했다. 부드러운 목소리와 가창력은 물론 자작곡 능력까지 겸비하여 ‘싱어송라이돌’이란 수식어가 붙었다. 담백하고 진솔한 이야기를 담은 노래로 듣는 이들에게 공감과 위로의 순간을 선물하는 가수이자 계속해서 자신의 세계를 확장하고 성장하는 아티스트이다.




아끼고 아낀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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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운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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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의학 전문의 반건호 “성인 ADHD는 양파 같은 질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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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시간 동안 ADHD는 아동의 영역으로 여겨졌다. 최근 ‘성인 ADHD’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면서 많은 정보를 접할 수 있게 됐지만, 확인되지 않은 사실과 오해도 혼재되어 있다. 성인 ADHD의 증상과 진단, 치료 방법과 사례 등 믿을 수 있는 정보가 필요한 시점이다. 『나는 왜 집중하지 못하는가』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오랜 진료, 연구 경험을 바탕으로 “성인 ADHD이 모든 것”을 이야기한다. 

반건호 저자는 37년 동안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로 일했으며, ADHD 전문가로서 한국형 ADHD 검사, 평가, 교육 도구를 개발했다. 국내 최초로 ‘성인 ADHD 교과서’를 발행했고, 2012년 ‘성인 ADHD 진료지침’을 발표했다. 현재 경희대학교 의과대학 소아정신과 교수로 일하고 있다.



주의력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최근 성인 ADHD에 대한 이해가 높아진 것 같은데요. 아직 부족하다는 생각도 드시나요? 

그렇죠. 이론적으로는 성인 ADHD가 국내 전체 인구의 3~5% 정도거든요. 우리나라 성인 인구를 4천만 명이라고 가정하면 3%는 100만 명이 넘죠. 이론상 100만 명이 넘는 사람이 있는 거예요. 그러면 실제로 진료 받는 인구는 얼마나 되느냐 하면, 2020년에 성인 ADHD 진단 받은 사람이 6500명 정도였어요. 그나마 10년 전하고 비교하면 6배가 늘어난 거예요. 10년 전에는 1000명 정도 됐어요. 2016년에 성인 ADHD도 국민건강보험이 적용되기 시작했는데, 보험 처리가 되니까 사람들이 진단을 받기 시작한 거죠. 그래서 진단 받은 사람의 숫자가 늘어난 건데, 어떻게 보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거예요. 그런데 폭발적인 게 아니라 그동안은 몰랐다가 찾아내는 것뿐이죠.

처음 성인 ADHD 환자를 만나셨을 때의 이야기도 쓰셨어요. 30여년 전의 경험인데, 그때는 성인 ADHD에 대한 인식이 거의 없을 때였죠? 

그렇죠. 이론들이 막 나올 때였고 구체적인 데이터가 없었거든요. 그리고 책에 쓴 것처럼, 그때 만났던 환자는 겉으로 드러나는 증상이 너무 많았어요. 고등학교 때는 학교에 안 가고 술 마시고 싸우고, 그게 문제가 돼서 입원했었고요. 성인이 되고 나서는 조현병 같은 증상이 나타나서 그걸 치료했었어요. 조현병이 그렇게 빨리 증상이 좋아지지 않는 병인데 많이 좋아졌어요. 그래서 이상하다고 생각했었죠. 조현병 치료하고, 알코올 중독 치료하고, 품행장애 치료하고, 우울증 치료하고, 그래도 문제가 계속 남으니까 그때 ADHD를 생각하게 됐어요.

환자의 학교생활기록부도 살펴보셨더라고요. 

어릴 때부터 쌓인 정보가 있어야 되는데 확인할 방법이 생활기록부 말고는 없었어요. 환자의 ‘궤적’을 보니까 초등학교에서 중학교, 고등학교로 갈수록 성적이 계속 떨어졌어요. 그런데 나중에 군대에 다녀와서 지방에 있는 2년제 대학을 갔다가 서울에 있는 좋은 4년제 대학으로 편입을 했거든요. 사람들이 처음에는 의심을 했어요. 이전에 거짓말도 하고 나쁜 짓도 했었으니까, 대학도 편법으로 간 거 아니냐고 생각한 거죠. 그런데 그 환자가 어렸을 때 지능 검사 했던 자료를 우리가 봤거든요. 지능이 굉장히 좋았어요. 그런데 왜 성적이 안 좋을까, 의아했죠. 그때는 성인 ADHD를 생각하지 않을 때라서 혹시 심한 우울증 때문에 그런 것 아닐까, 알코올 중독 때문일까, 어릴 때부터 술 담배를 해서 그런 걸까 생각했던 거예요. 그때 좋은 의사를 빨리 만났으면 조금 더 달라졌을지도 모르죠.



『나는 왜 집중하지 못하는가』에서 성인 ADHD에 대한 오해, 편견, 거짓 정보들을 하나하나 짚어주셨는데요. 그 중에서 가장 심각하게 생각하시는 건 무엇인가요? 

‘ADHD는 평생 지속되는 병’이라고 생각하잖아요. 일부는 맞는 이야기예요. 환자의 절반 정도는 좋아져요. 그런데 책에서 소개한 ‘제이콥 클롬스트라’처럼 평생 지속되는 경우도 있어요. 제이콥은 58세에 ADHD 진단을 받았거든요. 그러니까 평생 지속되는 경우도 있는 게 사실인데, 솔직히 말씀드리면 환자와 가족 분들이 받아들이기 힘드시니까, 우리(의료진)가 하는 일에 방해가 되기도 해요. 제대로 일을 하기 어려워지거든요. 또 다른 걸로는 ‘ADHD가 있으면 매사 집중하기가 힘들다’고 하는 오해가 있어요. 우리말로 ADHD가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잖아요. 주의력결핍이라고 하니까 주의력이 없다고 오해하는 것 같아요. 사실은 주의력에는 문제가 없고, 주의력을 활용해야 될 때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거거든요. 실제로 집중을 잘해요. 자신한테 필요한 일에는 집중을 잘하죠.

ADHD의 약물 치료 효과는 상당히 좋은 것 같아요. 

좋죠, 효과가 뛰어납니다. 소아의 경우에는 이 말이 모든 환자한테 맞고, 성인은 그렇지 않은데요. 제가 책에서 ADHD는 ‘양파’ 같은 질병이라고 했잖아요. 그래서 치료가 잘 안 돼요. 알코올 중독이 있을 수도 있고, 우울증이 있을 수도 있고, 심한 경우는 조현병처럼 보이기도 하거든요. 소아는 양파 같지 않고 꺼풀이 하나밖에 없어서 약을 썼을 때 효과가 좋아요. 어른은 그게 안 되죠. 만약 우울증이 있으면 우울증 치료가 우선이에요. 그렇게 다른 문제가 있거나, 아니면 성격적으로 굉장히 위축돼 있으면 치료가 어려운 것 같아요. (약물) 치료 효과가 좋은 건 틀림없어요.

63세에 성인 ADHD 진단을 받은 사례도 실려 있는데요. 이 분이 치료를 시작하신 뒤에 하신 말씀이 인상적이었어요.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다른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가 들리더라고요. 너무 놀라웠어요.”

정말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환자들이 약물 치료에 대한 경험을 여러 가지로 이야기하는데, 흔히 아이들이 말하는 건 ‘학교에서 선생님한테 칭찬 받았어요’라는 거예요. ADHD 환자는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데, 공감이라는 건 말 그대로 뭔가를 공유한다는 거거든요. 엘리베이터를 탔다면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가지 않게 떠들지 말아야 하고, 아는 사람이면 인사를 해야 하고, 혹시 저 사람이 나를 해치지는 않을까 경계도 해야 되는 거예요. 

그런데 그 63세의 환자 분의 경우에는, 엘리베이터를 탔을 때부터 ‘내리면 무엇을 할지’ 쫙 생각하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전혀 공감이 될 수가 없죠. 옆 사람이 인사를 해도 못 알아들을 거예요. 그 상황에서의 주의력이 부족한 거죠. 자기 머릿속에 있는 것에만 집중하면서 평생을 살아오신 거예요. 앞에서 제이콥 클롬스트라 이야기를 했는데, 그 사람이 쓴 책의 이름이 『불꽃놀이』예요. 계속 (머릿속에서) 불꽃이 터지는 거죠. 하고 싶은 거, 해야 되는 거, 그런 것들이 계속 생각나는 거예요. 다른 사람한테 전혀 집중이 안 되고요. 특히 공부할 때는 더 하겠죠. 



동기 부여가 중요해요

책에 실린 다양한 사례들을 보면, 나의 자녀나 배우자가 ADHD라는 사실을 몰라서 오해가 깊어지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왜 저렇게 행동하는지’ 모르니까 이해해 주지도 못하는데요. 그렇다면, 자신이 ADHD라는 것을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는 게 좋은 걸까요? 

그건 사회의 분위기에 따라 다를 것 같은데요. 미국의 경우에는 ADHD 환자를 지원해주는 시스템이 마련돼 있어요. 예를 들면 SAT 시험을 볼 때 시간을 더 주고요. 진단서를 제출하면 시험 볼 때 교실을 따로 배정해주기도 해요. 그리고 100명 중에 5명이 ADHD라면 치료 받는 환자 수가 5명 가까이 돼요. 보장이 다 되니까요. 일본의 경우도 ADHD는 특수교육을 받게 해주고, 여러 가지 혜택을 줘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아직 교육부에서 마련한 혜택은 없을 거예요. 그리고 일본은 성인 ADHD에 대한 책도 많고, 자신이 ADHD라는 사실을 알리라는 쪽이에요. 미국은 더할 나위 없죠. 우리나라는 아직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 ADHD의 속성 때문에 문제가 된다면 자신이 ADHD라는 걸 알리는 게 나을 것 같긴 해요. 내가 왜 이러는지 상대가 이해하지 못 하니까요. 그런데 우리 사회가 그런 분위기로 바뀔지는 잘 모르겠어요.

치료 과정에서 가장 큰 어려움이 되는 것은 무엇인가요? 

모티베이션(motivation, 동기 부여)이 중요한 것 같아요. 모티베이션이 있는 사람이라면 치료가 그렇게 어렵지 않아요. 자기가 진짜 (치료를) 원해서 온 거라면. 그런데 가족이 억지로 데리고 왔다든지, 그런 경우에는 일단 모티베이션이 없어서 치료가 잘 안 돼요. 저는 개인적으로 치료라는 말을 쓰기까지 오래 걸려요. 60일 가까이 걸리는데요. 섣불리 치료를 시작하면 병원에 대한 불신만 늘고 그러다가 병원에 안 오기 때문에, 처음에 많은 시간이 들더라도 계속 병원에 오는 게 낫다는 생각에서 그렇게 해요. 그런데 모티베이션이 좋은 사람은 그렇게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고 바로 치료가 시작돼요.

책의 내용에 따르면, 성인 ADHD가 유전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 같아요.

굉장히 많죠. 사이언스지에 유전자 지도에 대한 내용이 실렸는데, 유전 성향 중에서 가장 강력한 요인이 ‘키’라고 해요. 그 다음으로 유전이 강한 요소가 ADHD예요. 여기에는 여러 가지 생각할 거리가 있어요. 예를 들어서 유방암은 대개 유전되거든요. 그러면 유방암의 유전율이 더 높은 거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는데, 유전율을 계산할 때는 ‘그 유전자를 갖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느냐’를 따지는 거예요. 유방암 유전자를 갖고 있는 사람은 100% 유전이 되지만, 모든 여성이 그 유전자를 갖고 있는 건 아니거든요. 유전자를 갖고 있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지 않아요. 전체 집단이 작은 거죠. 그런데 일반적으로 ADHD는 전체 아이들의 7~8% 정도니까 풀(pool)이 높은 거예요.



성인 ADHD 부모가 소아 ADHD 자녀를 양육할 때,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대개 부모들은 자녀가 자기의 약점을 닮는 걸 싫어해요. 그래서 자꾸 그걸 없애려고 하는데요. 그러다 보면 좋은 점을 볼 시간이 없어요. 아이가 ADHD 속성을 갖고 있다면, 그것 때문에 부모 자신이 실패했다고 생각해서 없애려고 하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그 속성을 성공적으로 쓸 수 있는지 연구하시는 게 나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양육과 치료를 분리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예를 들어서, 소아 당뇨가 있으면 치료는 병원에서 하잖아요. 부모는 집에서 할 수 있는 치료 행위를 병원에서 배워 와서 하고, 양육은 양육대로 하고요. 그렇게 치료와 양육이 분리가 되는데, ADHD는 잘 안 돼요. 어디까지가 병이고 어디부터가 양육의 소관인지, 불분명한 거죠. 아마 그 부분이 어려우실 거예요. 자녀가 ADHD인데 치료를 받지 않으면서 양육을 하신다면 잘 안 되실 거예요. 치료해야 될 부분까지 양육의 영역으로 넣으려고 하면 잘 안 되는 거죠. 병원과 나눠서 해야 돼요. 

처음 성인 ADHD 진단을 받으면 대부분 어떤 반응을 보이나요? 

그것도 모티베이션에 따라 달라요. 모티베이션이 있어서 찾아온 사람은 ‘그렇죠? 나 ADHD 맞죠?’ 하는 반응이고요. 모티베이션이 없이 다른 사람에 의해서 불려온 사람은 잘 수긍하지 않아요. 그러면 왜 그 사람이 수긍하지 않는지, 그것부터 찾아내야 돼요.

성인 ADHD 진단을 받은 이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으세요? 

제가 진단을 한다면, 이 병을 받아들이든 아니든 우리는 언제든지 도와줄 거라고 말하겠죠. 원한다면 지금 당장 돕기 시작할 테고, 아니라면 나중에 생각이 바뀌면 그때 도와줄 수도 있다고요. 제 생각에는 ADHD는 어쨌든 병이거든요. 그런데 맹장 수술이나 결핵 같은 병과 달리 제가 적극적으로 끌고 갈 수 없어요. 예를 들어서 맹장이 터졌다거나 결핵균이 발견됐다면, 환자나 가족들이 바로 치료를 시작하는 데 동의하겠죠. 그런데 ADHD는 달라요. 왜 병인지 설명을 해야 되고 준비가 되면 치료를 시작하는 거예요. 환자가 도움을 받을 필요를 느끼고 준비가 되었을 때, 그때 시작하는 거죠.



*반건호

37년 동안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로 일했으며, 그중 20년 이상을 자폐스펙트럼장애와 ADHD 등 신경발달장애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1997년부터 현재까지 경희대학교 의과대학 소아정신과 교수로 있으며, ADHD 전문가로서 한국형 ADHD 검사, 평가, 교육 도구를 개발하였다. ADHD 영역이 아동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님을 현장에서 절실히 느끼면서 성인 ADHD로 ADHD의 개념을 확장시켰다. 2009년 국내 최초 '성인 ADHD 교과서'를 발행한 책임저자이며 2012년 '성인 ADHD 진료지침'을 발표하여 성인에게 맞는 치료 기준을 마련하였다. 세계 ADHD협의회 회원으로서 해외 학술지에 ADHD 관련 논문을 30편 이상 발표하였으며 풍부한 진료경험과 깊이 있는 연구를 바탕으로 국내외 학회에서 성인 ADHD 연구의 신뢰성을 인정받은 국내를 대표하는 ADHD 전문가이다.



나는 왜 집중하지 못하는가
나는 왜 집중하지 못하는가
반건호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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