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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자혜 “‘집밥’이라는 순도 높은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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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지 에디터로 10년을 일했을 무렵, 불현듯 경상남도 하동으로 이주했다. 치열한 도시를 떠나 한적한 시골살이를 시작한 김자혜 저자는 치킨집과 16km, 편의점과 19km 떨어진 외딴집에 살면서 비로소 깨닫는다. 세끼 밥을 짓는 게 얼마나 고된 그림자 노동이었는지. 밥상을 차리는 건 누군가를 먹여 살리는 일. 지난 5년 사이 ‘스스로 음식을 만들어 먹을 줄 아는 사람’이 된 그가 부엌에서 얻은 가장 큰 배움은 사랑이다.



처음 겪은 무력감이었어요

하동 생활을 정리하고 2년 전 다시 서울에 오셨죠. 책을 쓸 때와 달리 밥상에 변화가 있겠어요. 

시골에서처럼 매일 밥을 차려 먹지는 못하고요. 사 먹거나 시켜 먹을 때도 많아요. 그래도 하나 바뀐 건, 영양소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는 거예요. 하동에 살기 전에는 식사 메뉴가 주로 라볶이 피자, 치킨, 햄버거 등이었거든요. 요즘은 사 먹더라도 되도록 건강한 음식을 선택하려고 노력하죠. 특히 아침을 챙겨 먹는 습관은 여전히 잘 지키고 있어요. 아무리 바빠도 사과 깎고, 베이커리 생지를 구워서 먹어요.

아침을 꼭 챙기는 이유가 있으세요?  

예전에는 커피 한 잔으로 아침을 때우곤 했는데, 하동에 살면서 느긋하게 일어나 아침 식사를 차려놓고 천천히 먹는 시간이 너무 좋았어요. 요즘은 아침에 먹을 메뉴가 정해져 있다는 사실이 왠지 위안을 주더라고요. ‘바빠서 잘 챙겨먹지 못하지만, 그래도 완전히 망가진 건 아니야!’ 이런 느낌이 든다고 할까요(웃음). 

“내가 부엌으로 내던져진 건 시골로 이사한 뒤의 일이었다.(9쪽)”고 했어요. 시골 생활에 적응하는 데 가장 높은 허들이 식사였다고요. 

도시에서는 생활의 사이클이 단순했어요. 매일 일하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하루를 보내며 살았어요. 그 속에서 식사는 누군가와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한 수단이자 도구로만 느껴졌죠. 그런데 시골에서는 끼니를 챙기는 게 정말 중요한 일과가 되더라고요. 살면서 그런 무력감을 느껴본 적이 없어요. 그동안은 무언가를 성취하며 살았고, 원하는 바가 좌절되어도 방향을 바꿀 수 있었는데 끼니를 챙기는 일은 그렇지 않더라고요. 하루에도 몇 번씩 찾아오는데 잘할 자신이 없고 도무지 피할 수도 없으니까요.

어떤 종류의 무력감이었나요? 

재난영화를 보면 사람들이 길가에 있는 차를 훔쳐 타고 도망가서 목숨을 구하잖아요. 운전면허가 없을 때는 그런 장면을 보고 ‘나는 저기서 죽을 수밖에 없겠구나’라고 생각했어요(웃음). 이와 비슷한 감정이었던 것 같아요. 스스로 밥을 해 먹는다는 게 생존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는 것을 하동에 내려가서 처음 깨달았죠. 그래도 자발적으로 이런 기회가 주어졌다는 게 좋았어요. 보통은 유학, 독립, 출산 같은 외부적인 요인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식사를 만들어 먹는 사람이 되는 경우가 많잖아요. 이 책을 계약하고 나서 밥을 더 열심히 해 먹었죠.



내가 부엌에서 배운 것

음식을 전혀 할 줄 모르는 아버지의 이야기로 시작해서, 매일 가족의 식사를 만들던 어머니의 이야기로 책이 마무리되는 것이 인상적이었어요.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던 것 같아요. 30대 중반이 되었는데도 혼자서 밥을 차려먹을 줄 모르는 나를 보며 맨 처음 아빠가 생각났고, 그렇게 끼니를 스스로 챙기기 시작하면서부터 엄마가 자주 떠올랐거든요. ‘밥 차려먹기 기능’의 부재가 사람을 얼마나 한심하고 무력하게 만드는지 알고 나니 주변의 수많은 아빠들이 보이더라고요. 책이 나오고 나서 아빠한테 “너무 한심한 사람으로 그려놔서 미안하다”고 했더니 “사실인데 뭐, 괜찮아.”라고 하시더라고요(웃음).

엄마가 차려주시던 밥상은 어떤 모습이었어요?

매 끼니 밑반찬을 일일이 접시에 담아서 밥을 차려주셨어요. 반찬통이 그대로 식탁에 올라온 적이 한 번도 없었죠. 냉장고는 늘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고, 반찬통마다 무엇이 담겼는지 적은 견출지가 붙어있었어요. 집에 모밀판, 돌솥 등이 식구 수만큼 있었고요. 정성스럽게 밥을 차려주시는 엄마였죠.

부엌일을 직접 해봐야 깨달을 수 있는 노하우들에 공감이 갔어요. ‘냉장고와 팬트리를 관리하기 위한 메모법’이나 ‘시금치는 끓는 물에 넣어 휘휘 젓고 바로 건질 것’같은 팁이요(웃음). 

여전히 능숙하게 잘하지는 못해요. 특히 식재료 관리는 너무 어렵죠. 어떤 식재료를 어떻게 활용할지 시간을 많이 들여서 생각하고, 꾸준히 해야 하는 일이니까요. 사실 출간을 앞두고 마음이 불편했어요. 책을 낸 이상 밥을 잘 해 먹어야 한다는 압박감이 드는데, 직장생활을 하면서는 쉽지 않은 일이니까요. 한편으로는 잘난 척하는 것처럼 보일까 봐 걱정도 되었고요. 사실 저는 그렇게 요리를 잘하는 사람이 아니거든요(웃음).

작가님이 제일 자신 있게 만들 수 있는 음식은 무엇인가요? 

음… 자주 만들어 먹는 건 닭볶음탕, 찜닭, 파스타예요. 제일 못하는 건 생선조림과 나물무침!  

혼자 살거나, 바쁜 맞벌이 부부의 경우에는 밥을 직접 만들어 먹는 게 일종의 낭비처럼 느껴지기도 할 거예요. 그럼에도 끼니를 스스로 챙기는 기쁨이 있다면요. 

내가 나와 내 식구를 먹일 때 느낄 수 있는 기쁨은 직접 체험하지 않고는 알 수 없는 것 같아요. 내가 지은 밥을 먹고 누군가가 힘을 낸다는 것. 이건 남의 손을 빌려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형태의 사랑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새로운 사랑인 거죠. 엄마들이 ‘내 새끼 밥 먹는 것만 봐도 배부르다’고 하잖아요. 저는 아이가 없지만 그게 어떤 의미인지 알아요. 이 마음은 밥을 사 먹으면서는 결코 알 수 없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그리고 나 자신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진한 색의 사랑 표현(185쪽)”인 거네요. 

맞아요. 예전에는 엄마가 밥 먹는 저를 왜 그렇게 빤히 쳐다보는지 몰랐거든요. 이제 그 눈빛의 의미를 알아요. 사랑하는 사람이 내가 만든 음식을 먹는 걸 볼 때 오는 충만한 기쁨이 있더라고요.



나를 위해 밥을 차리는 삶 

서울로 돌아온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하동이 너무 멀었어요. 부모님이 점점 나이 들어가는 게 눈에 보이고, 저희 부부를 무척 그리워하셨거든요. 어느 순간부터 불효하고 있다는 느낌, 나중에 후회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지역사회에 잘 어우러지지 못했어요.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긴 했지만, 지역에서 삶이 확장되지 않으니 생활을 지속하기가 어렵더라고요.

“미래의 트렌드를 예측하던 과거의 내가 오늘 먹은 과일의 씨앗을 틔워 미래의 나무로 가꾸는 사람이 된 것은 순전히 이 집의 공로다.(90쪽)”라고 하셨어요. 여전히 패션지를 만들지만, 일을 대하는 태도는 많이 달라졌을 것 같아요.

과거에는 ‘이거 아니면 안 돼’라는 생각이 있었어요. 정말 열심히 몰두해서 일했죠. 여전히 그렇긴 하지만, 전에 없던 자신감이 생겼어요. ‘그래, 이거 아니어도 괜찮아’라고 생각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고 할까요. 아마 가난해졌던 경험 때문인 것 같아요. 시골에 있으면서 ‘한 달에 100만 원만 가지고도 충분히 살 수 있구나’라는 걸 경험했거든요. 덕분에 외부의 타격에도 전처럼 큰 상처를 입지 않아요. 꼭 이 일이 아니어도, 이 방향이 아니어도 충분히 다른 길이 있을 수 있다는 걸 체감했으니까요.

처음 밥을 만들어 먹기 시작했을 때 도움을 받은 콘텐츠가 있나요? 책을 읽고 요리에 관심을 가지는 독자들을 위해 추천해 주세요.  

‘샤민 노스랏’의 『소금 지방 산 열』을 여러 번 읽었어요. 음식을 만들고, 먹는 걸 굉장히 사랑하는 저자가 쓴 책인데 단순한 레시피북이 아니라 요리에 대한 생각을 완전히 바꿔주죠. 식재료에 열을 가하고, 음식을 만들면서 재료의 물성이 변하는 메커니즘에 대해 쉽게 설명하고, 음식을 대하는 태도를 생각하게 해요. 꼭 요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읽어보면 좋을 거예요. 같은 제목의 넷플릭스 다큐멘터리도 있는데 저는 책이 훨씬 흥미로웠어요.

음식을 만들면서 “으스대지도 의기소침해지지도 않기 위해 세운 두 가지 원칙(180쪽)” 중 하나가 ‘SNS에 음식 사진 올리지 않기’였어요. 이유가 무엇인가요?

사진을 올리기 위해 음식을 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사진이 예쁘게 나올 메뉴를 선택하게 되고, 때로는 남편이 만든 것도 내가 만든 것처럼 올리게 되잖아요(웃음). 물론 잘 지키지 못하고 사진을 올리는 날도 있지만, 적어도 보여주기 위한 밥상을 차리지는 말자고 생각해요.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을까요? 

갓 결혼한 후배들이 종종 “선배, 매일 뭐 해 먹고 살아요? 저녁에 뭐 먹어요?” 같은 질문을 하더라고요. 요리는 가끔 이벤트로만 해봤지, 매 끼니를 직접 만들어 본 적은 별로 없는 분들이 분명 많으실 텐데요. 아무 것도 못하던 제가 밥을 차려 먹게 된 사람이 된 모습을 통해서 한번 용기를 내보셨으면 좋겠어요.

오늘 저녁은 뭘 먹을 예정이에요? 

냉동실에 대패삼겹살이랑 주꾸미가 있어요. 콩나물 데쳐서 주꾸미 삼겹살 해먹으려고요(웃음).




*김자혜

도시에서 나고 자랐다. 대학에서 의류학을 전공, 졸업 후 <엘르>, <코스모폴리탄> 등 패션 매거진의 패션 에디터로 일했다. 시골살이를 시작하며 『조금은 달라도 충분히 행복하게』를 썼고, 밥을 스스로 지어 먹기 시작하며 이 책을 썼다. 요즘은 남몰래 초보운전 일기를 쓰고 있으니, 어쩌면 시작하는 마음에 관해 쓰기를 좋아하는 것인지도. 도시로 돌아와 <W Korea> 콘텐츠 디렉터로 일하고 있다.




식탁 독립 : 부엌의 탄생
식탁 독립 : 부엌의 탄생
김자혜 저
세미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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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커버 스토리] 영화감독 윤가은, 좋아한다고 말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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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꿀한 기분에서 벗어나지 못할 때 필요한 극약 처방은 뭘까. 달콤한 케이크 한 조각? 황금빛 크레마로 내려진 에스프레소? 앉은 자리에서 단번에 정주행할 법한 드라마?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떠오르는 게 없다면 윤가은 영화감독에게 SOS를 쳐도 좋겠다. “영화를 정말 좋아하지만 영화 말고도 좋아하는 게 아주 많은”윤가은은 언제나 뭐든 좋아할 준비가 되어 있는, ‘호(好)’가 너무 많아 첫 산문집의 제목을 『호호호』라고 지은 사람이니까.



좋아하는 마음을 찾는 일

읽는 내내 기분 좋은 에세이는 오랜만이었어요. 제목부터 『호호호』.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반갑게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책을 내고 하는 인터뷰가 처음이라 엄청 긴장되고 떨리네요. 

“영화 밖으로 밀어낸 나의 수많은 사랑들을 다시 돌아보고 되찾고 싶었다.”(9쪽) 『호호호』는 감독님의 첫 산문집이면서 동시에 영화를 가장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만든 책입니다.

두 번째 영화를 마치고 번아웃이 찾아왔어요. 아무리 노력해도 회복되지 않았고 영화에 집중하느라 잠시 가장자리에 치워뒀던 좋아하는 것들을 써보기로 했어요. 지극히 개인적인 글쓰기였는데요. 글을 완성하고 보니 결국 그 많은 좋아하는 것들 중에 여전히 영화를 제일 좋아한다는 걸 깨달았어요. ‘이 마음들로부터 내가 영화를 하게 됐구나.’ 생각했죠.

좋아하는 것이 많은 사람, 그것을 자유롭게 말하는 사람. 저는 정말 부러워합니다. 그런데 감독님은 좋아하는 것을 이야기할 때 눈치를 많이 보셨다고요.

제가 한번 좋아하기 시작하면 냉정하게 거리를 두는게 잘 안 돼요. 게다가 좋아하는 건 또 되게 많고. 뭔가 뚜렷한 기준 없이 뭔가를 좋아하는 것에 대한 콤플렉스가 진짜 심했어요. 영화라는 게 어쨌든 자기 스타일을 만들어가야 하잖아요. 저는 정말로 얘는 이래서 좋고 쟤는 저래서 좋은 건데, 취향이 분명하지 못하다는 말도 많이 들었고요. 예리하지 못하고 분석적, 비판적인 것과 동떨어져 있는 성격이라 아예 책으로 다 오픈해버리자, 깨버리자는 생각도 있었어요. 영화 말고 다른 것, 그냥 개인적인 살풀이 같은 걸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책 계약은 한참 전에 하셨더라고요.

2017년에 〈씨네21〉에서 「윤가은의 디스토피아로부터」라는 칼럼을 연재했어요. 4주마다 쓰는 글이었는데 영화인의 시각으로 사회적인 이슈를 다루는 코너였어요. 주제가 분명한 글이었죠. 이 글을 보고 출판사에서 연락을 주셨는데 뭔가에 홀린 듯 책을 계약하고 있더라고요(웃음). 그런데 이후 몇 년 동안은 글이 안 써졌어요. 매년 부채감을 이기지 못하고 “저 아무래도 못 하겠습니다.”라고 했는데 2020년 말에 여러모로 심경의 변화가 생겼어요. 그때는 책을 내겠다는 생각보다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월간 채널예스』에 연재했을 때 칼럼명은 「윤가은의 나만 좋아할 수도 있지만」이었습니다. 하지만 많은 독자들이 좋아했죠.

연재 글은 정말 신나게 썼어요. 좋아하는 것들을 이야기하는 글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책은 또 다르더라고요. 정말 솔직히 “내 글이 책으로 나와도 되나?” 이런 질문을 진짜 많이 했어요. 출판사에 “창피하지 않겠느냐?”고 여쭙기도 했고요. 왜냐하면 일단 제가 유명 영화감독이 아닌 데다가 되게 사적인 취향에 관한 글이라서 이게 독자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어요. 주변의 작가 친구들이 책을 낼 때마다 “나무야, 미안해.”라고 말하는데, 저는 정말 나무에게 미안했어요.

와, 너무 솔직하세요. 

이상한 창피함, 부끄럽고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정말 컸는데요. 한편으로는 어설프고 서툴러도 처음이니까, 나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생각하려고 애쓰는 마음이 있었어요. 저에겐 되게 의미 있는 기록이라서요.

시나리오와 출판물, 어떻게 다르던가요? 

영화 시나리오는 가지치기를 많이 해야 하는 작업이에요. 시나리오가 최종적으로 완성되기까지 엄청난 객관화 작업이 필요하고 또 엄청난 피드백을 받아야 해요. 진심을 다해 글을 쓰지만 어떤 룰을 염두에 두어야 하고요. 그런데 책은 조금 다른 느낌이었어요. 제가 어떤 단어를 선택해서 문장을 완성하면 웬만해서는 이 단어가 바뀌지 않잖아요. 그러니까 좀 더 다른 차원의 고민을 하게 되고, 기승전결의 서사에서 조금 벗어나도 되는 자유로움, 다른 방식으로 머리를 쓰는 데서 오는 즐거움이 있었어요.

글쓰기 수업도 들으셨더라고요. 책 집필을 위한 과정이었을까요?

그때는 시나리오가 너무 안 써져서 약간 갈팡질팡하고 있을 때였어요. 주체할 수 없는 어떤 탈진 같은 것 때문에 글쓰기의 힘이 사라졌다고 생각했는데 친구가 김지승 작가님의 글쓰기 수업을 추천해줬어요. 말과활아카데미에서 진행한 과정이었는데요. 코로나19 때문에 거의 모든 수업을 온라인으로 하던 시절인데 운이 좋게도 저희 기수만 100% 오프라인 수업을 했어요. 작가님의 수업도 정말 좋았고 같이 참여한 동료들로부터 자극을 엄청 많이 받았어요. 각자의 내밀한 이야기를 글로 쓰는 분들이었거든요.

저도 그 수업을 추천받은 적이 있어요. 수강생들이 정해진 책을 함께 읽는 수업으로 기억해요.

맞아요. 매주 한 권의 책을 읽어야 했는데, 이런 수업이 아니었더라면 혼자 읽기는 어려웠을, 아주 좋은 책들이었어요. 사실 글을 쓰려고 간 것보다는 책을 읽고 싶었고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싶은 동기가 컸어요. 제 안을 채워야 했거든요. 진짜 빡센 수업이었어요. 매주 책 읽어야 하지, 내 글 써야 하지, 다른 사람들의 글을 읽고 피드백도 해야 하지, 이론 공부도 해야 하지. 그런데 수업을 들을수록 책을 더 많이 깊게 읽고 싶고, 뭔가 쓰고 나누고 싶은 마음이 점점 차올랐어요. 진짜 놀라운 경험이었어요. 너무 신기해서 저 재활원 다닌다고 여기저기 엄청 소개했어요. 지금도 가끔씩 김지승 작가님을 원장님이라고 불러요.

특별히 기억에 남는 책이 있나요?

정말 다 재밌어서 특별히 고를 수가 없는데요. 지금 생각나는 책은 샬롯 퍼킨스 길먼의 『누런 벽지』, 조이스 캐럴 오츠의 『흉가』, 앨리슨 벡델의 『당신 엄마 맞아?』예요. 『누런 벽지』는 묘사가 엄청 기괴한데 재밌어서 단숨에 빠져들었어요. 짧지만 기승전결이 완벽한 이야기였고요. 『흉가』는 저도 두려워서 잘 들여다보지 못하는 소녀들의 악몽을 직시하는 놀라움이 있었고 완전 반해버렸어요. 『당신 엄마 맞아?』는 울다 웃다 하면서 읽었는데, 선생님과 동기들과 함께 나누는 각자의 모녀 이야기가 정말 재밌었어요. K―도터란 무엇인가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는 자리였다고 할까. 그 이후에 모녀 서사 수업도 들었는데, 그것도 진짜 재밌었어요. 계속 커리큘럼이 조금씩 바뀌는 수업이라 나중에 또 들으러 갈 것 같아요.

산문집을 쓰면서 도움을 받은 책이 있나요?

이경미 감독님의 『잘돼가? 무엇이든』을 정말 좋아해서 진짜 많이 읽었어요. 이 책이 나왔을 때 큰 위로를 받았거든요. 솔직한 글이 주는 힘이 정말 세구나, 그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이번 책을 쓸 때도 이 책을 책상 옆에 놓고 썼어요. 제 책을 만들어주신 편집자님께“저 정말 이렇게 쓰고 싶은데 이렇게는 못 쓴다.”는 이야기를 진짜 많이 했어요.



빵집이랑 문방구에는 무조건 들어가야 해요

왠지 감독님은 코로나 블루를 크게 겪지 않았겠다 싶었어요. 물론 마감의 압박은 있었겠지만 『호호호』 글쓰기를 하셨으니까요. 

크게 느끼진 않았는데요. 자진해서 밖을 안 나가는 것과 나오지 말라고 해서 못 나가는 것의 차이가 굉장히 크다는 걸 실감했어요. 2019년 말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이 시작됐을 때는 다음 영화 시나리오를 쓰는 기간이어서 사람들을 거의 안 만나던 시기였거든요. 그런데 1년이 지나가는 시점에서는 힘들더라고요. 글 쓰는 일에도 지장이 생기고. 코로나19가 작가들에게는 더 직격탄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주변에 책을 쓰는 동료들이 많잖아요. 『호호호』의 추천사는 김소영 작가님이 쓰셨습니다.

김소영 작가님은 제가 정말 좋아하는 작가예요. 아직 얼굴 한 번 뵌 적이 없지만 진짜 오랜 팬이에요. 영화를 만들면서 김소영 작가님의 블로그를 시시때때로 염탐해왔던 터라 『어린이라는 세계』의 추천사 청탁이 들어왔을 때 엄청 놀랐어요. 그때 처음으로 연락하게 됐는데 『호호호』를 준비하면서 편집자님이 김소영 작가님께 추천사를 부탁하면 어떻겠느냐기에 여쭤봤는데 바로 해주겠다고 말씀하셔서 너무 감사했어요.

책을 읽으면서 의외인 부분이 있었어요. 좋아하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는 거의 없어요. 일부러 뺀 건가요?

그건 아니고요. 누군가, 그러니까 주변의 친한 사람들이 제 글에 들어올 때 엄청 겁나더라고요. 내 마음대로 판단해서 써도 될까? 상대방이 이걸 읽었을 때 어떻게 느낄지도 걱정이 돼서요. 『호호호』에 등장하는 지인들의 이야기는 작은 것도 다 허락을 받았어요. 이니셜로 할지 실명으로 할지도 다 물어보고요. 사람에 관한 이야기는 쉽게 쓸 수 없으니까, 눈치를 덜 보고 쓸 수 있는 소재를 쓴 것 같아요. 친구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는 빵 이야기를 하는 게 더 편하니까, 그런 식으로 정리가 된 것 같아요.

중요한 소재가 나왔네요. 바로 빵! 『호호호』에서 가장 재밌게 읽은 에피소드가 바로 「좋은 빵, 나쁜 빵, 이상한 빵」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영화사 아토의 김지혜 대표님이 긴히 할 말이 있다며 감독님을 불러 이야기하지요. 그건 바로 “감독님, 제발 빵 좀 그만 사 와요. 저것 봐, 많아서 다 먹지도 못해!”(78쪽) 글의 도입이 너무 심각했던 터라 저는 ‘빵’ 터지며 웃었습니다(웃음).

그때가 영화 〈우리집〉 프리프로덕션으로 한창 정신없는 시기였는데요. 매일 빵집에 들러 빵을 구경하고 사 오는 일이 저의 유일한 스트레스 해소법이었어요. 마침 영화 사무실 근처에는 맛난 빵집이 많았고요.

오늘도 빵을 사 오셨죠. 저도 촬영용으로 빵을 사 왔는데, 정작 감독님은 빵을 못 드신다고요. 

네. 안타깝게도. 저는 자타 공인 빵순이, 언제나 밥보다 빵인 사람이지만 사실 빵을 먹으면 안 되는 사람이에요. 빵을 먹으면 눈이 붓거나 시릴 때도 있고 피부가 가렵고 그래요. 정신 놓고 빵 먹다가 발견할 때도 있고. 요즘은 밀가루와 술을 완전히 끊었어요.

빵 이야기는 정말 재밌으니까 독자분들이 책에서 더 확인하셨으면 하고요. SNS 소개글을 보니 ‘야채파’, ‘초등학교 앞 문방구 습격자’라고 적혀 있습니다.

제가 고기를 먹지 않은 지 20년이 됐어요. 해산물은 먹는 페스코 베지테리언인데요. 처음에는 체질 때문에 고기를 먹지 않았어요. 지금도 고기를 안 먹는다고 하면 놀라는 분들이 있는데 20년 전에는 정말 놀라던 때였죠. 그런데 제가 또 〈콩나물〉 같은 영화를 찍으니까 영화 작업을 하시는 지인 한 분이 “야, 너는 앞으로 야채파 감독이야.”라고 하셔서(웃음) 그때부터 ‘나는 야채파’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아담문방구 아저씨 이야기가 책에 소개됐지요? 요즘도 문방구를 가세요?

가요. 그런데 코로나19 때문에 밖을 자주 나가진 못하니까 예전만큼은 아니에요. 하지만 새로운 동네에 갔는데 문방구가 보이면 일단 무조건 들어가요. 빵집이랑 문방구에는 무조건 들어가야 해요.



그대로 자연스러운 사람 

윤가은 감독님을 떠올리면 영화 〈우리집〉〈우리들〉 그리고 ‘하이텔 영화퀴즈방’이 생각납니다. 중학교 1학년 때 중고 비디오 플레이어가 생기면서 비디오를 빌려 보기 시작했고, 3학년 때는 영퀴방 정모에도 가셨죠. 그것도 어머니께서 정모를 데려다주셨다고요?

제 부모님의 최고 장점은 공부하라는 소리를 한 번도 안 하신 거예요. 물론 이게 단점이기도 해요. 너무 방임이라 제가 알아서 해야 하니까요.

그 결과 공부를 하셨고.

그러니까 그게 부모님의 방침이었던 거죠(웃음). 어렸을 때는 공부에 관한 이야기를 듣지 않는 게 되게 좋았는데 또 스트레스이기도 했어요. 어떤 것도 알려주시지 않으니 스스로 우당퉁탕 하면서 가야 했으니까요. 중고등학생 시절에는 혼자 고민을 많이 한 시기였는데요. 그래도 부모님께 감사한 건 제가 뭘 한다고 했을 때 반대하신 적이 한 번도 없어요.

본격적으로 영화를 한다고 하셨을 때도요?

네. 그냥 신기해하셨어요. 그래서 전 다른 집들도 저희 집 같은 줄 알았어요. 영화 일을 하는 친구들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는요. 어쩌면 제가 오랫동안 영화를 꿈꾼 건 어떤 강력한 허들이 없어서일지도 모르겠어요. 부모님이 모두 자신이 하고 싶은 걸 하려고 늦게까지 애쓰신 분들이라 어차피 자신이 좋아하는 길로 가게 돼 있다는 걸 일찍부터 아셨던 것 같아요.

2019년에 개봉한 영화 〈우리집〉 촬영 공지 글(‘어린이 배우들과 함께하는 성인분들께 드리는 당부의 말’)이 영화계에서 큰 화제를 모았죠. “〈우리집〉의 현장은 어린이와 성인이 서로를 믿고, 존중하고, 도와주고, 배려하는 것을 제1원칙으로 합니다. 어린이 배우들을 프로 배우로서 존중하며, 성인과 동등한 인격체이자 삶의 주체로서 바라봐주세요. 항상 어린이 배우들의 말에 귀 기울여주시고, 함께 영화를 만들어가는 동료이자 든든한 보호자가 되어주세요.” 이 글을 쓰실 때 어떤 마음이었나요?

영화가 개봉될 때 그 수칙이 마치 선언처럼 소개가 되었는데, 사실 제 입장에서는 ‘실수 방지용 대비책’ 같은 거였어요. 아무리 노력해도 어린이들에게 본의 아니게 실수와 잘못을 자꾸 하게 되더라고요. 현장이 워낙 정신없이 몰아치는 곳이다 보니까 예상치 못하게 어린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못할 때가 많아요. 지나고 잘못한 걸 알아차리고 나면 죄책감이 너무 컸고요. 저뿐만 아니라 스태프들이 모두 그랬어요. 그래서 다음엔 적어도 아는 실수는 하지 말자고 다짐하면서 적은 수칙이에요. 사실 너무 당연한 이야기를 적어놔서 좀 부끄럽기도 해요. 그렇게 당연한 것들이 지켜지지 않는다는 소리이기도 하니까요. 

아역 배우들의 오디션을 볼 때 5차까지 보신다고요. 더 눈길이 가는 배우들의 공통점이 있나요?

아무래도 아이들은 성인보다 꾸밈이 덜하니까요. 대화할 때 느껴지는 진심이 정말 좋고 또 다 재밌어요. 그런데 이야기할 때 정말로 자기 이야기를 하는 친구들이 있어요. 아이들이 성인을 만날 때 그러기가 쉽지 않은데 되게 용감한 친구들인 거죠. 그래서 더 궁금해지고요. 또 영화를 찍으려면 수십 명의 스태프 앞에서 연기를 해야 하잖아요. 내가 나인 것을 드러내는 일이 좀 더 자연스럽고 편안한 친구들이 눈에 들어와요. 즉흥극을 하다 보면 아이들의 성향이 그대로 드러나거든요. 이 상황을 진짜로 믿으면서 연기하는 모습을 보면 한두 시간이 그냥 가요. 안 끊으면 영원히 할 수 있는 살아 있는 연기가 나오죠. 

어떤 연기를 해도 자연스러운 배우들이 있잖아요. 연기력을 떠나서 그 자체로 자연스러운 느낌. 그런 배우들을 작품에서 만날 때 반가워요.

현장에서도 비슷한 것 같아요. 영화 〈우리들〉에서 ‘선’ 역을 맡은 최수인 배우는 리허설을 할 때 정말 조용하고 말수도 별로 없었어요. 보통 현장에서 대기할 때 워낙 끼가 많은 아이들이니까 자기네들끼리 노래를 틀고 춤을 추면서 놀곤 했거든요. 그런데 수인 배우는 가만히 앉아서 친구들을 보고 또 이야기를 시작하면 대화에 집중하고 그랬어요. 반응은 보이지만 자기의 말은 많지 않은. 그건 또 그 친구의 자연스러운 모습이거든요. 자기 자신을 자연스러워하는 게 참 중요하다는 걸, 아이들을 보면서 많이 느꼈어요.

지겹도록 자주 들으신 질문이겠지만 후속작에도 아이들이 나올까요?

말씀드리고 싶은데 아직 확정 단계가 아니라서요. 어쨌든 제가 해왔던 이야기에서 더 확장해서 나가는 영화예요. 갑자기 좀비 영화를 찍거나 그러진 않을 것 같아요.

아, 좀비 영화도 찍고 싶으세요? 

그럼요. 제 생에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웃음). 

저는 작은 이야기를 다루는 드라마가 좋아요. 너무 일상처럼 느껴져서 특별하게 기억에 안 남지만, 영화에서만큼은 중심이 되는 이야기. 감독님이 그런 작품을 많이 만들어주시면 좋겠습니다.

일상을 담아낸 작품은 계속계속 하고 싶어요. 그리고 가끔은 크리스마스 특별 영화 같은 것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옛날 제가 어렸을 때는 크리스마스가 되면 가족 영화가 꼭 나왔어요. 〈나홀로 집에〉 같은 건 아니어도 가족들이 막 어울려서 우당탕 놀다가 해피 엔딩으로 끝나는, 그런 영화를 언젠가 만들고 싶어요.

좋아하는 어른이 있나요?

특정인의 이름을 이야기해도 괜찮을까요? 저는 임순례 감독님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해요. 임순례 감독님 밑에서 스태프로 일한 경험은 없지만, 어렸을 때부터 우러러보던 분이거든요. 뵐 때마다 늘 격의 없이 대해주시는데요. 어떤 특별한 조언을 해주시는 게 아닌데도 항상 일대일로 대화한다는 느낌이 있어요. 상대가 유명하든 안 유명하든, 권위가 있든 없든, 경험이 있든 없든 누구를 만나도 일대일로 교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은데, 임순례 감독님을 만날 때 이런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60세, 70세, 80세 할머니가 돼도 9세 친구랑도 20세 젊은 친구와도 대화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그게 참 쉬운 일은 아니에요.

문득 유년 시절의 윤가은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뭘 하든 괜찮다.”라는 말을 해주고 싶어요. 저는 내성적인 아이였는데요. 생각해보면 겁이 많았던 것 같아요. 겁이 많은 것도 내성적인 것도 모두 자연스러운 일이니까 그렇게 행동해도 괜찮다는 말, 그 이야기를 가장 해주고 싶어요.

『호호호』를 읽고 나서 전 용기가 생겼어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거리낌없이 말하고 싶은 마음도 들었고요. 독자분들도 비슷한 마음을 가질 것 같아요. 

생각해보면 우리가 무언가를 좋아하게 될 때 쉽게 좋아하는 게 아니에요. 여러 선택지 중에 이걸 더 좋아하는 이유가 분명히 있거든요. 무엇을 좋아하는 마음, 그 마음을 우리가 좀 더 들여다보면 좋겠어요. 남의 시선, 사회적인 지위 때문에 말하지 못한 것들이 분명 있을 텐데요. 이보다 더 중요한 건 좋아하는 마음이니까요. 그 마음을 꼭 끌어안아주면 좋겠어요.



세상 어딘가에 혹시 나처럼 좋아하는 마음을 찾아 헤매는 누군가가 있다면, 부디 이 글이 작은 위로와 웃음이 되어 가닿으면 좋겠다. 그리고 무엇이든 얼마만큼이든 좋아하는 마음을 꼭 되찾을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윤가은

영화감독. 서울에서 나고 자랐다. 서강대학교 사학과와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예술전문사를 졸업했다. 첫 단편 〈사루비아의 맛〉 (2009) 을 시작으로 〈손님〉(2011), 〈콩나물〉 (2013) 등을 쓰고 연출했다. 〈손님〉은제34회 클레르몽페랑 국제단편영화제에서 국제경쟁부문 대상을, 〈콩나물〉은 제64회 베를린국제영화제 제너레이션 K플러스부문에서 수정곰상을 수상했다. 이후 장편영화 〈우리들〉 (2016)과 〈우리집〉 (2019)을 쓰고 연출했다. 제37회 청룡영화상 신인감독상, 제53회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시나리오상 등을 수상한 바있다. 영화를 정말 좋아하지만 영화 말고도 좋아하는 게 아주 많다.




호호호
호호호
윤가은 저
마음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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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짓궂은 인터뷰] 착한 척할 시간에 정말 착한 짓들을 했다면 - 『착한 척은 지겨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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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_타별 

뜨끔했다. 김한민 작가의 신작 제목을 읽고는! 대관절 무슨 내용이길래 ‘착한 척’은 지겹다고 말할까. 주인공의 결기 넘치는 표정을 오랫동안 응시한 뒤 책장을 펼쳤다. 『착한 척은 지겨워』는 NGO 바닥에서 15년째 잔뼈가 굵은 소심한 시민운동가가 거침없는 언행으로 공포의 시위꾼으로 소문난 기후 활동가 ‘마야’와 기후 정치를 하는 당 ‘불가능한당’을 창당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그래픽 노블이다. 내 안의 ‘쓰레기가슴’을 발견한 적이 있는 독자라면 책을 읽는 내내 콕콕 쑤실 것이다. 



5년 만에 신작이다. 2018년 『아무튼, 비건』 출간 후 페르난도 페소아의 작품을 번역했고 단독 저서는 오랜만이다. 5년간 어떻게 지냈나? 

책 작업을 소홀히 하고 환경운동에 매진했다. 『착한 척은 지겨워』도 기후 문제와 비거니즘에 관심 가지면서 구상했으니 꽤 오래됐다. 아무리 긴급하고 절실한 문제라도 해결하려면 대중의 지지 없인 불가능하다. 그런데 이 지지를 얻으려고 ‘착한’ 접근들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다. 그때쯤 그레타 툰베리처럼 전혀 ‘안 착한’, 가감 없는 목소리도 나타났는데, 이 책은 그런 흐름의 일종이다. 반면, 다른 한쪽에선 치유와 힐링, “괜찮아, 네 잘못 아냐” 류의 어깨를 토닥거려주는 메시지들이 여전히 지배적이었는데, 이 책은 그런 흐름에 역행한다.  

주인공 ‘나’와 기후 활동가 ‘마야’. 두 인물은 시각적으로도 굉장히 대비된다. 캐릭터를 만들면서 가장 고민했던 부분은 무엇인가?

화자인 ‘나’의 이름은 (책엔 안 나오지만) ‘신디’이다. 신디와 마야 둘다 실제 모델들이 있다. 나는 책 속 인물을 만들 때, 두 명 이상의 실존 인물을 섞어서 만들곤 한다. 그래야 모델과 거리를 둘 수 있으니까. 가장 큰 고민은, 그러면서도 인물이 얼마나 살아 있느냐는 것이다. 

기후 위기, 연민, 미투, 인류세, 동물해방, 기분만 띄우고 행동은 억제하는, 허영에 쉽게 자극되는 ‘쓰레기가슴’ 등 다양한 이야기가 나온다. 책을 쓰면서 ‘이 내용은 꼭 넣고 싶어’라고 생각했던 부분이 있었나?

“쓰레기가슴”과 “자위는 집에서”. 그 뜻은 책을 읽어봐야 알겠지만, 제발 다들 지금 작동하고 있는 것이 쓰레기가슴인지 아닌지 구분하고, 전자라면 과감히 집어치웠으면 좋겠다. 그리고 자위를 하려면 집에서 각자 했으면 좋겠다, 공개하지 말고. 너무 당연한 얘기 같지만, SNS 환경에 익숙해진 우리는 지금 하는게 자위라는 사실조차 자주 까먹는다.

제목을 지은 배경이 궁금하다. 『착한 척은 지겨워』라니! ‘착한 척은 괴로워’도 아니고!

착한 척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지만, 설마 착한 척이 그렇게까지 문제의 핵심이라곤 생각 안 한다. 착한 척의 폐해는 생각보다 어마어마하다. 개인만이 아니다. 기업도, 정부도 착한 척에 도가 텄다. 그 수많은 착한 척할 시간에 정말 착한 짓들을 했다면, 세상이 두 번 바뀌고도 남았을 것이다. 나 스스로도 착한 척에 찌들어 있는 면이 있어 다짐을 담은 제목이기도 하다. “착한 척은 괴로워”는 당연히 염두에 둔 적 없다. 그 또한 착한 척이기 때문에.

에필로그 마지막 장면, 주인공이 머리를 질끈 묶는 그림이 표지가 됐다. 어떤 결단, 결의일까? 안경을 쓰고 순한 표정을 했던 첫 장면과는 사뭇 다르다. 주인공은 이제 착한 척하지 않는 인생을 살게 될까?

맞다. 주인공은 조금씩 변한다. 그전까지 자기 의지대로 살았다곤 하지만, 추구하는 이상도 없이 현실적으로 열심히만 살아오다가, 의지에 반해 끌려다니다시피한 경험을 하고 나서 변화가 생겼다. 그렇다면 이중에서 진짜 의지는 뭘까? 나도 모르지만, 주인공이 자기 방식대로 ‘미투’를 해낸 경험이 앞으로의 인생에 자양분이 될 것 같다.

현재도 착한 척하느라 괴로워하는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괴로움은 도구다. 강을 건너기 위한 나룻배 같은. 행동을 위해 잠시 필요한 감각이다.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고, 괴로움 자체에 몰입하고, 몰입한 시간 동안 뭔가 했노라고 착각하면 변화는 싹부터 잘린다. 괴로움의 표현을 그치자. 아무도 (당신 자신조차) 그것에 관심 없다고 상정하자. 당장 분연히 일어나 뭐라도, 작은 뭐라도 해라. 물론 그런다고 세상이 바로 바뀔 리 없다. 하지만 내가 아는, 세상을 실제로 조금이라도 바꿔가는 사람들은 그 지점에서 징징거림이 아닌, 또다른 행동으로 넘어갔다. 물론 이건 내 말이고, 주인공 마야는 이렇게 친절하게 얘기해주지 않을 거다.

이 책을 읽고 마음이 찔리지 않을 사람은 없을 듯하다. 채식을 비롯한 환경운동을 작게나마 실천하고자 하는 독자에게 한 마디를 한다면?

하고 싶으면, 하면 된다. Just do it. 




*김한민 (글·그림)

1979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유리피데스에게』, 『혜성을 닮은 방』, 『공간의 요정』, 『그림 여행을 권함』, 『책섬』, 『카페 림보』, 『비수기의 전문가들』, 『사뿐사뿐 따삐르』, 『웅고와 분홍돌고래』 등의 책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 한국국제협력단(KOICA) 소속으로 페루에 파견되어 학생들을 가르쳤고, 독일에서 작가 활동을 하다가 귀국해 계간지 [엔분의 일(1/n)]편집장으로 일했다. 포르투갈 포르투 대학교에서 페르난두 페소아의 문학에 대한 연구로 석사 학위를 했고, 리스본 고등사회과학연구원(ISCTE) 박사과정에서 인류학을 공부했다. 페르난두 페소아의 산문집 『페소아와 페소아들』, 시선집 『시가집』을 엮고 옮겼으며, 페소아와 그의 문학, 그리고 그가 살았던 리스본에 관한 책 『페소아: 리스본에서 만난 복수의 화신』을 썼다.




착한 척은 지겨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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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민 글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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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진 “취향이 육아가 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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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유 빛 스웨터를 입은 아이와 쪽배처럼 봄길을 걷고 싶다. 함께 소네트를 읽어보는 것도 좋겠지.’

스물두 살의 봄날, 이연진 저자는 일기에 이렇게 썼다. 아이를 키우는 게 무엇인지 어렴풋이 짐작조차 못하던 시절이었다. 셰익스피어를 흠모하고 랭보의 시에 심취했던 사람. 책을 읽고, 미술관에 가고, 영화를 볼 때에야 생기가 돌던 그는 엄마가 되어 시 대신 밥을 짓는 삶을 살게 된다. 출산은 개인의 삶을 부지불식간에 흔들었지만, 그렇다고 껍데기뿐인 나로 살 수는 없었다. 

그는 아이를 보며 영화 <아멜리에>를 떠올리고, 문득 ‘빨간 머리 앤’이라면 육아를 어떻게  해냈을까 궁금해하는 엄마다. 엄마가 된 지 10년째.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랭보의 시와 고흐의 그림과 베토벤의 연주는 결코 육아에 무용한 것이 아니었다. 포기하지 않고 가꿔온 나의 취향이 육아를 얼마나 아름답게 만드는지 깨달았다는 이연진 저자는 말한다. “여기 잘 구워진 따끈따끈한 일상 나왔어요. 이게 우리의 시예요”라고.



엄마가 된 지 10년, 이제야 보이는 것들 

첫 책 『내향 육아』도 기존의 육아서와 결이 달랐는데, 『취향 육아』는 더욱 그랬어요. ‘육아’ 카테고리에 분류되어 있지만, 아이를 키우는 사람이 쓴 에세이에 가까워요. 

엄마로 10년을 살았으니, 이제 한 번쯤 숨을 고를 시점이 된 것 같아요. 사실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도 나의 일부이고, 삶의 한 자락인데 육아에 오롯이 빠져있을 때는 그걸 몰랐어요. 내가 완전히 사라져 버릴 것 같다는 두려움이 너무 컸거든요. 그런데 돌아보니 결코 그렇지 않더라고요. 지난 시간들을 거슬러 오르며 그동안 느낀 생각, 경험들을 글로 엮을 수 있어서 좋았어요. 

이 책이 좋았던 이유가 거기에 있어요.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인간의 성장을 지척에서 보는 경이로움, 육아의 행복이 구체적으로 담겨있었거든요. 

한동안 ‘엄마에게도 삶이 있다. 엄마로서만 살지 않겠다’는 목소리가 많아졌어요. 신선한 이야기였고, 그런 말을 통해 저도 힘을 얻을 때가 있었어요. 동시에 한편으로는 조금 외로웠죠. 저는 전업주부로 온전히 아이를 보는 삶을 살았으니까요. 개인의 삶이 중요한 것은 알지만 ‘나는 엄마로도 잘 살고 싶은데, 엄마인 나의 삶도 아름다운데… 세상은 왜 이 삶을 헬육아라고 부를까?’라는 생각이 종종 들었죠. 실제로 전업주부로 지내는 엄마들로부터 비슷한 토로를 들으며 힘이 되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어요. 평범하고 작은 삶이지만 그 안에서도 얼마든지 반짝이는 게 있거든요. 

그 반짝임에 빛을 더하는 게 취향이었던 거죠. 

엄마가 되면 벼락처럼 새로운 사람이 되고 싶어져요. 포부나 꿈도 바뀌죠. 저는 아이를 낳고 결연해졌던 것 같아요. 그런데 한 순간에 변하는 사람은 없잖아요. 내가 가진 에너지를 온통 아이와 가정을 돌보는 데 쓰다 보니 점점 힘들어졌어요. 저희 아이는 기관을 거부해서 7살까지 가정보육을 했기 때문에 새로운 활동으로 자기 성장을 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죠. 지금은 ‘삶이라는 강물의 중간쯤 와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나는 앞으로도 계속 흘러갈 테고, 이만큼 흘러왔다고 해서 예전의 내가 사라진 게 아니라는 걸 알죠. 무언가는 단절이 되고, 무언가는 여전히 남은 채 내 삶을 이루어갈 거예요. 저는 이걸 ‘취향’이라고 생각했어요. ‘엄마가 아니었던 시절의 나’와 ‘엄마인 나’ 사이에서 결코 놓치고 싶지 않은 최소한의 개연성이요. 

“깎여짐은 괴로웠지만 둥글어짐은 편안했다. 가열차게 투덕대던 ‘이전의 나로 남고 싶은 나’와 ‘주부이자 엄마인 나’가 그럭저럭 화해한 것도 같았다(83쪽)”는 문장에 공감했어요. 출산을 하면 저절로 엄마가 되는 줄 알았는데, 엄마의 정체성을 갖기까지는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더라고요. 

20대의 저는 하이힐을 신고, 시집을 들고, 향수를 뿌리고, 립스틱을 바르는 사람이었어요(웃음). 의식적으로 만들어 온 나의 모습, 말하자면 페르소나를 끊어내는 게 정말 힘들었죠. 온종일 추레한 옷을 입은 채 지친 얼굴을 하고, 밥 한 끼 차리는 것도 허둥지둥하는 스스로를 보면서 연이어 좌절을 했죠. 잠시 쉬어가야 할 시기에 웅크리지 않고, 나를 억지로 드러내려고 했던 게 결국 상처였고, 더 많은 에너지를 앗아갔던 것 같아요. 나만 알던 세계, 절대 놓치고 싶지 않은 단단한 그 세계에 금이 가는 순간은 정말 아파요. 그런데 실금 같은 틈새로 ‘아이’라는 빛이 들어오면 프리즘처럼 정말 아름다운 색채가 펼쳐지더라고요. 지난 10년은 이걸 깨닫는 시간이었어요. 



육아도 아름다울 수 있어요 

육아를 시작하고 생긴 취향도 있을 것 같아요. 아이 덕분에 새롭게 좋아진 것들이 있을까요? 

저희 아이는 과학을 정말 좋아해요. 반면 저는 과학에 대해 잘 모르고 관심도 없죠. 아이 덕분에 ‘뉴턴의 법칙’ 같은 걸 다시 보게 되었는데 정말 신기하고 재미있더라고요. 또 자연에 감응하게 되었어요. 계절의 오고 감을 아이의 감각으로 함께 겪다 보니 모든 풍경이 다르게 보여요. 사실 완전히 새로운 것을 좋아하게 되었다기보다는 이전에 가지고 있던 것들을 아이와 함께 새로운 시선으로 보게 되는 것 같아요. 덕분에 취향이 더욱 공고해지는 느낌이에요. 육아를 하며 어떤 취향은 흐려졌지만, 더욱 또렷하게 좋아지는 것들이 있더라고요. 

예를 들면요? 

저는 10대 때부터 랭보를 좋아했어요. 저의 평생을 함께한 작가라고 해도 무방하죠. 랭보는 결혼을 하지 않았고, 아이도 없었어요. 스무 살에 시 쓰기를 멈춘 시인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저와 같은 삶에 대해서는 시로 남기지 않았죠. 그럼에도 여전히 묘하게 위안을 받아요. 특히 부모님에 대해 쓴 구절을 볼 때 그렇죠. 저는 랭보의 삶을 보며 상처받고 함께 아파했던 사람인데요. 아이를 키우다 보니 랭보의 삶도 그리 어둡지만은 않았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요. 어쩌면 나의 일부가 되어버린 오랜 취향의 이면을 다시 보게 되는 거죠. 

아이와 지내며 중요하게 생각하는 하루의 루틴이 있나요? 

책에 썼듯이 오후 4시에 아이와 티타임을 꼭 가져요. 테이블에 둘러앉아 간단한 간식과 함께 차를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요. 오늘도 아이가 “엄마 티타임 하기 전에는 꼭 와야 돼”라고 말했을 정도로 우리 두 사람 모두가 기다리고 좋아하는 시간이 되었어요. 

“뭘 하든 좋은 기분이 먼저. 숙련은 그 다음이라 정했다(27쪽)”는 문장은 초보 엄마들이 반드시 새겨야 할 구절이었어요. 

아이가 서너 살쯤 되었을 무렵에 절실히 느꼈어요. 그때가 엄마의 파이팅이 넘칠 시기거든요. ‘나도 육아서에 나오는 엄마들처럼 해보리라!’는 의지가 충만해서 엄마표 놀이를 해주겠다고 밤새 준비하고 아침에 못 일어나곤 하잖아요(웃음). 그러다 보면 ‘나는 왜 이것밖에 못하나’ 싶은 생각이 들고, 아이가 놀이에 호응해주지 않으면 신세한탄이 나와요. 그럼 하루를 망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이 패턴을 아예 버렸어요. 무엇이든 조금 덜 해도 되니까 우리 둘의 기분이 좋은 상태로 시간을 보내는 게 중요하다는 걸 알았죠. 

작가님에게 가장 힘이 되었던 글은 무엇인가요? 

‘팬이에요’라는 제목의 글이요. 저에게는 취향이 너무 소중했어요. 꿈의 일부이기도 했고요. 문학을 연구하는 학자가 되고 싶었고, 전업작가가 되고 싶었던 시절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취향은 곧 나라고 믿었던 사람에게 그 세계가 와해되는 일이 생긴 거예요. 아이 하나가 태어났을 뿐인데, 내 삶에 일어난 어마어마한 균열에서 오는 좌절감이 정말 컸어요. 그동안 이 감정에서 헤어나오기 위해 치열했던 것 같은데요. 신기하게도 어느새 아이와 나 사이에 교집합이 생기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세계가 열리더라고요. 아이는 너무 예쁘지만 이렇게 살다가는 영영 나를 잃어버릴 것 같은 두려움을 느끼는 분들이 읽고 용기를 내셨으면 좋겠어요.



별만 바라보다가, 발아래 들꽃을 발견한 기분

“내 살림, 내 물건을 장만하는 일은 결국 아이 삶에 배경을 놓아주는 일”이라고요. 작가님의 어린 시절을 떠올릴 때 기억에 남는 부모님의 물건이 있나요? 

부모님이 골동품 마니아셨어요. 좋게 말하면 골동품이고, 나쁘게 말하면 구닥다리인 물건이 집에 많았죠. 어릴 때는 쓸모가 없는 물건들을 왜 모으시는지 이해할 수 없었는데 나이가 드니 저도 오래된 것들이 좋아져요. 또 부모님이 등산을 좋아하셔서 저를 끌고 다니셨거든요. 도감을 가지고 다니면서 “이건 무슨 꽃이고, 이건 무슨 새야”하며 알려주곤 하셨는데 어릴 때는 전혀 궁금하지 않고 집에서 쉬고만 싶었거든요(웃음). 그런데 어느새 제가 숲 속에 들어와 살고 있고 자연을 떠난 삶은 상상할 수가 없어요. 물론 부모님께서 취향을 강요하거나, 설명하신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어요. 그저 삶에서 보여주신 모습들이 제 안에 스며든 것 같아요. 

“부모의 사소한 취향이 아이 삶의 밑그림이 된다(8쪽)”는 거죠. 

부모님의 삶은 곧 나와 함께 공유했던 삶이기도 하잖아요. 누구나 삶의 도입부는 부모가 만들어놓은 세계에서 시작해요. 내가 삶의 주연이라면, 무대의 배경을 부모가 놓아주는 셈이죠. 실제로 유명한 예술가들에 대해 공부하다 보면 이 사실이 극명하게 드러나요. 예를 들면 <절규>를 그린 화가 ‘뭉크’는 아빠가 의사여서 어릴 때부터 죽음을 많이 보고 자랐어요. 엄마가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아빠가 아이를 병원에서 키우다시피 했다고 하더라고요. 어찌 보면 그에게는 아픔과 죽음이 삶의 기조였던 거죠. 이게 작품에서도 묻어 나오는 거예요. 물론 어린 시절의 어떤 요소가 한 사람의 전부가 될 순 없고 개인의 노력에 의해 삶은 변할 수 있지만, 분명 부모의 취향과 삶을 대하는 태도는 어떻게든 아이에게 영향을 준다고 생각해요. 

책을 읽고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아이를 향한 엄마의 다정한 태도였어요. 아이에게 불쑥 화내곤 했던 시간을 돌아보게 되더라고요. 

저희 집 앞에 조그만 마당이 있는데 며칠 전부터 잔디가 올라오기 시작했어요. 날씨가 이렇게 춥고, 며칠 전에는 눈까지 내렸는데 말이에요. 달라진 게 하나 있다면 햇살이에요. 대기는 여전히 차가운데, 해가 조금 길어졌고 햇살이 봄처럼 따뜻해졌죠. 잔디가 그걸 알아채는 거예요. 이 광경을 보면서 생명을 살리고 꽃을 피워내는 건 결국 ‘온기’구나 싶었어요. 때로는 엄마가 화를 내고 쌀쌀맞을 수도 있죠. 맑은 하늘에서도 갑자기 눈이 내리곤 하잖아요. 그런데 내 마음의 바탕이 따뜻하다면, 화가 나더라도 숨을 한번 참고 따뜻한 눈으로 바라봐준다면 아이는 그 온기를 크게 느낄 거예요.  

인스타그램 ‘그림에다(@grime.da)’ 작가의 계정에서 『취향 육아』 출간 기념으로 잊고 있던 나의 취향에 대해 댓글을 다는 이벤트를 했죠. 취향을 잊은 엄마들의 수많은 사연을 보며 울컥했어요. 

저는 답변이 정말 다양해서 놀랐어요. 밴드 보컬이었던 분, 스쿠버다이빙을 하시는 분 등 상상도 못했던 일을 했던 분들이 엄마로 살고 계시더라고요. 어떤 분께서는 ‘이런 질문을 해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라고 말씀해주셔서 마음이 찡했는데요. 육아를 하는 시기는 그동안의 내 삶을 돌아보고 정리하기에 무척 좋은 시간이에요. 지금 이 순간에 진심을 다하시되, 나의 정체성을 지탱해주는 것들은 꼭 간직하며 지내셨으면 좋겠어요. 이 책을 집 한편에 두었다가 가끔 들춰보며 위안을 얻으신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아요.  

반짝이는 취향을 이야기하던 작가가 책의 마지막에서는 취향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음을 깨달았다고 고백해요. 어떤 의미인가요? 

줄곧 칭송받는 예술가를 동경했어요. 그러다보니 평범함이 얼마나 소중한 가치인지 놓치고 살았는데 아이가 그걸 알려줬어요. 저는 사람이 태어나서 말하고 혼자 숟가락질을 하기까지 그토록 긴 시간이 걸리는 줄 몰랐어요. ‘나는 게 아니라 걷는 게 기적이구나’라는 깨달음이 매일 있었죠. 이러한 일상을 살면서 동아줄처럼 붙잡고 있던 나의 취향, 위대한 작가들이 아니어도 내 삶은 충분히 괜찮고, 아름답다는 걸 느꼈어요. 밤하늘의 별만 바라보고 살던 사람이 어느 날 발아래 들꽃을 발견한 기분이라고 할까요. 아이를 낳지 않았다면 이 소소한 행복을 결코 몰랐을 거예요. 아이라는 작품이 너무 아름답고, 아이가 열어주는 세계가 너무 좋아서 단 한순간도 놓치고 싶지 않아요.




*이연진

흘러가 버리는 모든 것을 귀하게 여깁니다. 마음을 아껴 기록합니다. 손 흔들며 학교 가는 아이 뒷모습을 오래 바라봅니다. 프랑스어·영어 문학과 교육을 전공했으며, 짧지 않은 시간 좋은 분들로부터 미술사학을 배웠습니다. 심미적 취향 생활자, 다정하고 느리게 살아가는 엄마로, 숲 곁에서 생활하며 에세이를 기고합니다. 내향인의 책육아를 담은 『내향 육아』를 썼습니다.




취향 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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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문경민 “세상이 알아야 하는 고통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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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희 씨의 죽음이 아니었다면 입양으로 시작되는 내 과거 따위 없는 셈 치고 잘 살아갔을 터였다.” 열여덟 유리는 생각했다. 딱 2년만 더 있으면 학교도 집도 떠날 수 있는데, 갑작스레 서정희 씨의 죽음을 통보받았다. 그는 “나를 입양했던 사람”이었고 “나를 버린 사람”이었다. 할아버지에게 나를 맡겨 두고 떠난 엄마였고, 동생 ‘연우’의 엄마이기도 했다. 서정희 씨의 죽음 이후 남겨진 세 사람, 유리와 연우와 할아버지는 한 집에서 살며 같은 공간과 시간을 나누게 된다. 그리고 점차 서로의 곁을 내어주고 지켜주는 ‘사이’가 된다. 

유리는 이들을 뒤로 하고 ‘훌훌’ 떠날 수 있을까. 여전히 그러기를 바랄까. 문경민 작가는 “깨어질 것 같았던 우리의 유리가 훌훌 털어 내고 훌훌 날아가기 시작한 것처럼, 이 소설을 읽은 당신께서도 훌훌 하시기를 바란다”고 했다.

『훌훌』로 ‘제12회 문학동네 청소년 문학상’ 대상을 수상한 문경민 작가는 2016년부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곰씨의 동굴」로 ‘중앙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등단했고, 지은 책으로 『딸기 우유 공약』, 『우리들이 개를 지키려는 이유』『용서할 수 있을까』 등이 있다. 우투리 설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우투리 하나린’ 시리즈를 썼고 『우투리 하나린』으로 ‘제2회 다새쓰 방정환 문학 공모전’ 대상을 수상했다. 



유리의 이미지가 투영된 작품을 쓰고 싶었어요

『훌훌』은 한 입양 가정의 어머니를 인터뷰하면서 시작됐다”고 작가의 말에 쓰셨습니다. 인터뷰하셨던 분께 초고 검토를 부탁하셨고 “그럼요! 당연히 해 드립니다. 그리고 꼭 검토해야 하고요”라는 답변을 받으셨다고요. 

네. 그 순간이 저한테는 굉장히 잊지 못할 순간이었고요. 저 자신도 중증 장애 아이를 키우는 부모예요. 그러니까 사람들은 잘 모르는 고통이 있다는 것도 잘 알고, 그 사람들의 마음이 어떤지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되게 조심스럽게 접근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만약 제가 장애에 관련된 소설을 쓴다면 제 경험도 있고 정보도 많기 때문에 그 안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이 사실, 진실, 현실에서 벗어날 위험이 없을 거예요. 그런데 입양 관련해서는 제가 아는 게 아니다 보니까, 함부로 소재로 사용해서 당사자들에게 언짢은 기분을 들게 한다든가 우울한 느낌을 갖게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고요. 이 이야기를 읽은 입양 가정에서 ‘우리 이야기를 써줘서 고맙다, 잘했다, 훌륭하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초고를 검토하셨던 입양 가정의 어머니는 어떤 말씀을 하셨어요? 

잘했다고 하셨어요. 잘 썼다, 좋다, 고맙다, 이렇게 말씀을 해주셔서 감사했죠. 

처음 생각하셨던 제목은 『훌훌』이 아니었다고요. 

네, 『훌훌』은 곽수빈 편집자님이 지어주신 제목이에요. 제 감각으로는 『훌훌』 같은 제목이 안 나옵니다. (웃음) 처음에 원고를 썼을 때 제가 지은 제목은 ‘유리’였어요. 유리의 이미지, 느낌 같은 것들이 투영된 작품을 완성해 보자고 생각하고 시작했었거든요. 지금의 제목을 짓기까지 여러 후보들이 있었는데 『훌훌』이라는 제목을 처음 들었을 때는 약간 띵 했습니다. (웃음) 걱정도 하고 고민도 했는데요. 결정을 할 때 제가 도서관에 있었어요. 거기 있는 수많은 장편 소설들의 제목을 쭉 훑어봤는데 ‘유리’ 같은 제목은 너무 많은 겁니다. (웃음) 그런데 아무리 봐도 『훌훌』이라는 제목은 없더라고요. 그래서 독특하다고 생각했고, 단어 자체의 느낌, 뉘앙스가 괜찮았습니다. 사실 이 소설의 내용이 무거운 이야기로 비출 수밖에 없는데, 제목이 그 모두를 잘 감싸 안아서 산뜻하게 만들어내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유리의 이미지, 느낌 같은 것들이 투영된 작품”을 완성하고 싶었다고 하셨는데요. 구체적으로 어떤 이미지를 갖고 계셨는지 궁금합니다. 

입양을 주제로 소설을 쓰겠다고 마음을 먹고 나서 SNS에서 어떤 글을 봤어요. 입양 가족의 아버지가 올리신 글이었는데, 외국의 입양인이 테드(TED) 강연에서 했던 말에 주목하셨더라고요. ‘나는 살아오는 내내 깨어질 위험이 늘 있었던 사람이었다, 나는 그런 마음으로 살아왔다’라는 말이었어요. 제가 입양에 관련된 소설을 한 편 써야 된다면 가장 중요한, 가장 깊이 들어 있는 것을 끄집어내서 쓰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는데요. 그 강연자가 말했던 ‘나는 깨어질 것 같은 사람이었다’라는 말을 잡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이미지를 갖고 작업을 시작해보자고 생각하게 됐죠.

주인공 ‘유리’는 어떤 인물로 그리고 싶으셨나요? 

일단 사람들에게 응원을 받을 법한 아이로 들어서기를 원했고요. 자기 힘, 자기 에너지로 헤쳐 나갈 수 있는 인물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소설 속에서 유리는 일상에서의 노동을 걱실걱실 잘 해내는데 그런 힘이 있는 아이로 만들고 싶었어요. 자기 노동을 잘할 수 있는 사람, 잘하는 능력을 갖고 있는 사람, 억셈도 있지만 이면에는 여전히 불안하고 깨질 것 같은 구석도 있는 사람으로 점점 만들어 가게 됐습니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

소설 초반에 유리를 입양한 엄마 서정희 씨가 사망합니다. 그리고 유리는 자신과 성씨는 같지만 아빠는 모르는 ‘연우’와 같이 살게 되는데요. 연우라는 인물을 등장시켜야겠다고 생각하신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유리가 현재 처한 어려운 상황들이 있잖아요. 답답하고 불안하고, 탈출하고 싶기도 하지만 그게 근본적인 해결은 아닌, 그런 상황을 헤쳐 나가야 되는데요. 그 문제가 자기 자신을 챙기거나, 대학 시험을 준비하거나, 할아버지가 짜놓은 계획대로 돈을 받고 집을 나가서 자립하는 것으로 해결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저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통해서, 자기 내부가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시선을 돌리는 것을 통해서, 자기 상처도 치유할 수 있고 현재의 어려운 것들도 극복해 나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 제 경험담이기도 하고요. 사실 많은 사람들이 그러면서 자기 삶을 끌고 나가요. 그래서 처음부터 유리가 자기의 상황을 헤쳐 나갈 수 있는 방법은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누군가를 받아들이고, 돌보는 노동을 하고, 그 존재와 부대끼면서 서로의 속도 까서 보여주고, 그러면서 가족을 이루고 그 연대를 통해서 자기의 상처라든가 어려움 같은 것을 딛고 일어서게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결말에 대한 고민은 없으셨어요?

파국으로 끝나는 소설도 있잖아요. 다 엉망진창이 되고 막 죽고 터지고 폐허가 되고, 그렇게 결말을 낼 수도 있죠. 그런데 『훌훌』은 청소년 소설이고, 소설 자체가 갖고 있는 경향이랄까요 미학이랄까요 정서랄까요, 그런 것들도 동시에 포함하는 결말을 맺어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무조건 이 이야기를 파국으로 끝낼 수는 없고, 청소년 소설로써 완성도 있는 작품으로 마무리돼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결말 지점에서는 유리가 서정희 씨를 이해하는 장면으로 마무리하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고향숙’ 선생님은 계속 유리에게 말을 걸어주는 느낌이었어요. 언제든 나한테 와서 이야기해도 돼, 나는 네 이야기를 듣고 싶어,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고 할까요. 

위악스러운 인물이 많으면 소설이 훨씬 더 다이내믹해지고 긴장감도 생기는데, 저는 그런 소설을 만들고 싶지는 않았어요. 세상에 좋은 사람들은 실제로 있거든요. 자기 역할을 잘 알고 하는 사람도 있고, 좋은 사람이지만 지난날에는 상처도 있고 어려운 일도 있었던 사람들이 실제로 우리 주변에 많이 있습니다. 저는 이 소설에 좋은 사람들, 좋은 어른들이 많이 등장하기를 바랐습니다. 자기 역할을 잘하는 어른들의 모습도 보여주고 싶었어요.

아이들 사이에 고향숙 선생님에 대한 ‘소문’이 퍼져요. 다른 인물들도 소문에 얽혀있고요. 왜 그런가요?

유리가 두려워하는 것도 ‘내가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비춰질까’에 대한 부분이에요. ‘세윤’은 성장기를 거치면서 어떻게든 그 어려움들을 뚫고 있는 사람이고요. 고향숙 선생님은 그걸 어느 정도 극복하고 자기 아래에 두고 있는 거죠. 자기가 관리하고 있는 상처인 겁니다. 인물들 다 다른 사람들의 말, 시선, 그것들이 가져오는 압박감 같은 것들을 극복해야 하는 과제를 갖고 있는데요. 유리도 ‘미희’도 세윤도 각자 대처하는 방식이 있어요. 저에게는 고향숙 선생님 갖고 있는 태도, 상처가 있고 찔리면 아프지만 그것에 넘어지지는 않는 어른의 태도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습니다.



고통은 하나의 맥락으로 이어져 있을 수 있다

“모든 고통은 사적이지만 세상이 알아야 하는 고통도 있다.” 작가의 말에 쓰신 문장입니다. 세상이 어떤 고통을 아야 할까요?

제 딸에게는 자폐장애가 있습니다. 처음에 사람들한테 내 딸이 장애가 있다는 걸 밝히고 스스로 그걸 인정하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시간이 흐른 뒤에 어느 날 가수 이상우 씨의 인터뷰를 봤는데요. 이상우 씨의 자녀도 발달장애가 있습니다. 아이의 장애를 끌어안고 잘 살아가려고 애써왔던 삶의 이야기를 들려준 거죠. 그 인터뷰를 봤을 때 너무 고마웠습니다. 되게 많이 위로가 됐어요. 그때 자기의 고통이라든가 어려움을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는 게 의미가 있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그 뒤부터 내 딸에게는 발달장애가 있다는 이야기나 현재 저의 마음 상태나 사정을 말하는 게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번 책의 작가의 말에서도 밝히셨죠. 

책의 후기에 제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놓기 시작한 것도 이상우 씨의 인터뷰와 약간 맥락이 닿아있는 생각이었던 것이죠. 저는 모든 사람들의 고통은 하나의 맥락으로 이어져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물론 모든 사람의 고통은 다 특별하죠. 장애가 있는 사람의 고통은 특별하고 나의 고통은 덜 특별하고, 어떻게 그럴 수 있겠습니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상대적으로 적은 사람들이 운명처럼 맞닥뜨리게 된 고통에 대한 부분, 그리고 사회적인 평등이 전제되어야 자기에게 주어져 있는 삶의 권리를 마땅히 누리면서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여러 사람들에게 알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사람들에게 권리가 있다, 이 사람들도 잘 살아야 된다’라고 같이 이야기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이상우 씨의 인터뷰를 보고 느꼈던 위로, 안도감, 연대감 같은 것들이 이 소설을 통해서 당사자들에게 느껴졌으면 좋겠습니다.

인터뷰를 마치며 더 하고 싶으신 이야기가 있을까요?

제가 어떤 소설가인가를 생각하면서 양팔 저울을 떠올리곤 합니다. 예술가와 기능공을 가늠하는 양팔 저울에서 저는 기능공 쪽에 조금 더 기울어 있는 소설가라고 생각해요. 저는 소설을 쓰는 게 좋습니다. 정말 잘 쓰는지는 모르겠어요. 좋아하는 일을 하는 건 분명합니다. 단어와 문장으로 탄탄한 단락을 완성하고 사건을 마주한 등장인물의 마음과 행동을 따라가는 일을 좋아합니다. 쓰는 일을 마치고 컴컴한 밤에 집으로 돌아가면서 '나는 아직 쓰지 못했다, 나는 아직 내가 써야 할 그 소설을 쓰지 않았다' 하고 되풀이해서 중얼거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제가 언젠가는 더 쓰지 못하는 때가 오리라는 것도 마음에 담고 살아요. 지금 계획하는 작품이 마지막이 될 수 있다는 마음으로 이 일에 임한다고 하면..... 너무 오글거리려나요? (웃음)




*문경민

1976년 경기도 양평에서 태어났다.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2016년 중앙신인문학상에서 단편 소설 「곰씨의 동굴」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우투리 하나린』으로 2019년 제2회 다새쓰 방정환 문학 공모전 대상을, 『훌훌』로 제12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다. 쓴 책으로 고학년 장편 동화인 『딸기 우유 공약』, 『우투리 하나린 1 : 다시 시작되는 전설』, 『우투리 하나린 2 : 멈춘 시간에 갇힌 몸』이 있고, 주니어 소설 『우리들이 개를 지키려는 이유』, 『용서할 수 있을까』, 그리고 『나는 언제나 말하고 있었어』 등이 있다. 장편소설 「화이트 타운」으로 2021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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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욱, 당신의 전화기 너머에서 일어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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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정말로 지고 싶지 않았다.” 콜센터에 대한 연구를 하면서, 김관욱 교수가 자주 떠올린 말이다. 그러나 가까이 들여다본 현장은 늘 지는 일의 연속이었다. 화장실에 갈 틈도 없이 밀려드는 전화와 비인간적인 실적 경쟁. 왜 우리는 일을 하며 몸과 마음을 다쳐야 할까? 『사람입니다, 고객님』은 콜센터 노동을 통해, 일하는 모든 이들의 질문에 답하려는 고군분투의 기록이다. 



코로나19가 드러낸 콜센터의 현실

아직도 기억나요. 코로나19 초기에 콜센터에서 대규모 감염이 발생했죠.

이미 “이러다 큰일나지” 하는 이야기가 오가고 있었어요. 결국 내부 환경은 개선되지 않는데 상담사분들만 집단 감염의 원인으로 낙인 찍혔죠. 사실 이전 메르스 사태 때 경험했거든요. 방역 정책이 발표되면 콜센터에 전화가 빗발치는데 상담사분들은 충분한 교육도 못 받고 투입돼요. 마스크도 제대로 지급받지 못하고요. 이런 상황을 알리기 위해서라도 빨리 콜센터 관련 책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당시에는 의사로 근무하셨죠. 이력이 독특했어요. 의사로 일하다가 인류학을 공부하게 되셨다고요.

병원 근무가 끝나면 콜센터 상담사분들을 찾아가서 밤늦게까지 인터뷰를 하는 게 일상이었죠. 인류학에 관심을 갖게 된 건 군의관 시절이었어요. 군 병원에서 금연 관련 교육과 상담을 했거든요. 부대 내에 흡연자가 굉장히 많아서 병사들이 왜 흡연을 많이 할 수밖에 없는지 늘 궁금했죠. 그런데 문제를 파헤치다 보니까 결국 문화에 원인이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마침 의사이자 인류학자인 폴 파머에 대해 쓴 『작은 변화를 위한 아름다운 선택』을 읽고는 큰 감동을 받았어요. 내가 하려는 연구가 바로 이거구나 싶어서 인류학 대학원에 가게 됐죠.

‘왜 유독 콜센터 상담사들은 담배를 많이 피울까’ 하는 질문에서 시작하셨다고요.

보통 여성 흡연율이 6~7% 정도인데, 콜센터 상담사분들은 40%에 이르거든요. 이 정도면 개인이 아니라 직업에 원인이 있는 거예요. 도대체 어떤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지 궁금했어요.

무작정 구로 서울디지털산업단지로 가서 콜센터 사무실을 찾아 헤매셨어요. 

진짜 막막했죠.(웃음) 의사 신분일 때는 쉬웠어요. 보건소를 통해서 금연 상담을 하면서 상담사분들을 만날 수 있었거든요. 그런데 연구자로서는 접근조차 어려운 거예요. 콜센터는 개인정보 유출 문제도 있어서 외부인을 최대한 막으려고 하거든요. 그래서 연구 대상자를 모집하는 전단지를 만들어서 붙이고 다녔어요. 콜센터 업체 리스트를 얻어서 무작정 찾아가기도 하고 온라인 사이트에 올리기도 하고요. 회사 담당자에게 혼도 많이 났죠. 그 작업만 3~4개월 걸렸어요.

상담사분들을 만나면서 사연도 많이 들으셨죠. 특히 ‘하은씨’를 통해 한 사람의 인생을 만나는 듯했다고요.

처음 하은씨를 만났을 때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아서 카페를 여러 번 바꿔가며 종일 이야기했던 기억이 나요. “오랜만에 사람을 만난 것 같다.”고 하면서 인생을 다 말해주셨죠. 출근길을 함께 걸으면서 하루를 어떻게 보내는지, 콜센터에서 어떤 일을 겪었는지 보여주셨어요. 그 분은 정말 상담 일에서 보람을 얻다 보니 실적이 좋을 수밖에 없었어요. 그런데도 서로를 경쟁시키는 환경 안에서 상처를 많이 받으셨죠. 그나마 규칙적인 생활을 철저히 지키고, 특정 시간과 금요일 밤에 술과 담배를 허락하면서 버텨온 거예요.

그 앞에서 차마 금연을 권하지 못했다고 하셨어요.

의사로서는 담배를 끊으라고 해야 하겠지만, 사연을 들으니 쉽게 말할 수 없겠더라고요. 하은씨는 하루 일과를 정해놓고 특정 시간에만 담배를 피웠어요. 맥주와 담배가 금요일 밤의 루틴이었던 거죠. 규칙적인 스케줄을 따르는 게 곧 자신을 지키는 방법이고, 그게 깨지면 자신의 삶이 무너질 것 같다고 했어요. 담배 자체가 아니라, 정해진 일상의 규칙이 중요했던 거예요. 하은씨를 만나고 흡연에 대한 생각이 많이 깨졌어요. 중독 문제를 개인의 삶에서 이해하게 된 거죠. 흡연이 그분에게는 중요한 삶의 이정표였으니까요.



감정노동 그 이상의 이야기

보통 콜센터 하면 ‘감정노동’을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감정노동’으로 다 표현할 수 없는 현실이 있다고요.

‘감정노동’이라고 하면, 단순히 고객만 폭언을 멈추면 해결될 문제처럼 보이잖아요. 그런데 실제로 상담사분들은 친절한 응대뿐만 아니라, 정보를 빠르게 숙지해서 고객에게 제공하고 그것을 정리하는 일까지 상당히 숙련된 노동을 해요. 그런데도 낮은 임금을 받고 끊임없이 실적을 경쟁시키는 구조에서 하루에 수백 통의 전화를 받아요. 아파도 쉬지 못하는 시스템 속에서 일하는 거죠. 결국 고객과 상담사가 아니라, 산업 구조에 문제가 있는 거예요.

끊임없이 실적을 강요하는 문화. 낯설지 않네요.

한국이 유독 성장주의가 강하잖아요. 저도 의사로 근무할 때, 끊임없이 수술과 논문 실적을 증명해야 했거든요. 플랫폼 노동자도 콜 수와 별점으로 평가받고요. 그런 경쟁과 통제를 가장 앞장서서 하는 곳이 콜센터예요. 전자 모니터링으로 화장실 가는 것도 초 단위로 통제하고, 상담사간 실적을 비교하고 순위를 매겨요. 이런 분위기 속에서는, 앞으로 모든 영역에서 콜센터 같은 환경이 나타날 수 있어요.

일하는 환경이 상담사의 몸에도 드러난다고요.

한 상담사분의 표현이 잊히지 않아요. 자기 몸이 꼭 ‘불판 위의 마른 오징어’ 같다고 하더라고요. 불판에 오징어를 구우면 딱딱하게 말려서 안 펴지잖아요. 상담사분들의 몸도 그렇게 굳어지는 거예요. 본인 잘못이 아니어도 항변을 못하고 계속 고개를 숙여야 하고, 화장실에 가고 싶어도 마음대로 못 가고요. 그게 반복되면 스스로 몸에 대한 통제력을 잃어버리게 돼요. 실제로 상담사분들이 다 허리 디스크를 앓고, 우울증 같은 정신질환을 갖고 있어요. 해로운 것을 거부하는 게 인간의 본능인데 그 능력을 잃어버리는 거죠.

일이 정말 건강에 큰 영향을 미치네요.

영국의 한 사회학자가 ‘건강’을 신체가 새로운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능력이라고 정의했어요. 하지만 우리가 일하는 환경을 보면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잖아요.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출근하는 것이 죽기보다 싫어도 갈 수밖에 없죠. 결국 그게 차곡차곡 쌓이면 병이 되고 책임은 개인이 오롯이 지게 되는 거예요.

일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몸을 바꿀 수 있을까요? 상담사분들의 ‘몸펴기 운동’에서 가능성을 보셨다고요.

노동조합에 갔는데, 상담사분들이 모여서 운동을 하고 계시더라고요. 솔직히 처음에는 반신반의했어요. 그런데 몸을 펴는 행위가 상담사분들한테는 큰 변화였던 거예요. 몸이 굽으면 자신감도 없어지고 관계도 두려워지는데, 당당하게 몸을 펴니 마음도 달라지는 거죠. 실제로 운동을 하면서 상담사분들이 마음을 열고 자신감을 회복하는 경우를 많이 봤어요.



저항하는 몸을 상상하다

상담사분들이 몸을 변화시키고 저항을 시작하는 장면이 감동적이었어요.

노동조합을 만드는 과정은 정말 쉽지 않았어요. 당장 실적을 못 채우면 밀려나는데 선뜻 나서기 어려웠던 거죠. 그런데 상담사 한 분이 나서서 주변을 설득하기 시작한 거예요. 아직도 기억나는 장면은 상담사분들이 ‘적정 콜 받기’에 성공한 일이에요. 상담사끼리 경쟁을 시키니까 모두가 오늘 하루 몇 통만 받자고 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거든요. 한 명만 빠져도 실패하는 거니까요. 그런데 결국 성공했어요. 그렇게 집단행동을 통해서 상담사분들이 누가 우리 편인지 서로 눈으로 알아보게 된 거예요. 우리도 당당하게 무언가를 요구할 수 있는 존재라는 걸 경험하면서 자신감을 회복해나간 거죠.

동시에 그런 연대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 느껴졌어요.

사실 꿈 같은 이야기예요. 대부분의 상담사분들에게는 아직 남의 일처럼 들릴 수 있거든요. 정말어렵다는 걸 알기 때문에 어떻게든 기록을 남기고 싶었어요.

앞으로 우리 사회에 콜센터 노동이 어떻게 받아들여져야 할까요?

저는 콜센터 노동이 감정노동자가 아니라 디지털 정보를 다루는 ‘필수 노동자’라고 생각해요. 특히 지금처럼 국가적인 재난이 일어났을 때, 이 역할은 더 중요해지죠.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그에 맞는 보상이 전혀 없어요. 특별한 기술이 필요 없다는 생각으로, 여성들을 저임금 고강도 노동으로 몰아넣는 거죠.

이제 감정노동자가 아니라 ‘콜키퍼’라고 부르자고 제안하셨어요.

콜센터 상담사가 중요한 정보를 최전선에서 제공하는 일을 하는 사람임을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콜키퍼’라는 말에는 상담사의 현실도 담겨 있어요. 정작 진짜 담당자는 따로 있는데 중간에서 상담사만 고객의 불만을 막아왔잖아요. 이제는 가치를 인정해줄 때가 됐어요. 일하는 사람들이 더는 아프지 않도록 말이죠.




*김관욱

덕성여자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이자 가정의학과 전문의. 의료인류학 전공으로 서울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영국 더럼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비교문화연구소 연구원을 지내고 서울대, 한양대,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강의했다. 오랫동안 흡연과 중독, 감정노동과 건강에 대해 연구해왔으며 최근 몸, 수행성, 정동, 배치, 리미널리티, 의례 등의 개념을 중심으로 과학적 입증 가능성 너머의 피해자들(콜센터 상담사, 이주노동자, 흡연자, 부랑인 시설 입소자 등)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폴 파머, 세상을 고치는 의사가 되어 줘』 『흡연자가 가장 궁금한 것들』 『굿바이 니코틴홀릭』 『아프면 보이는 것들』(공저) 『코로나 팬데믹과 한국의 길』(공저) 『의료, 아시아의 근대성을 읽는 창』(공저)이 있고, 옮긴 책으로 『자본주의의 병적 징후들』(공역) 『보건과 문명』(공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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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작가] 소설가 서장원, 문득 삶을 되돌아보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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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서 한강 작가의 소설집을 펼친 것이 계기였다. 집으로 달려와 단숨에 책을 읽어 내려갔고 그 때부터 소설에 빠졌다. 서장원의 『당신이 모르는 이야기』는 그의 첫 소설집이지만, 7년 넘게 소설에 대한 사랑을 지속해온 흔적이기도 하다. 한 사람으로 시작했지만, 이야기는 주인공이 아닌 주변 인물의 인생에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되곤 했다. 문득 무언가를 놓친 것 같아 지나온 인생을 돌아보는 순간, 서장원의 이야기는 늘 그곳에 있다.



누구도 쉽게 미워하지 않도록

스물세 살부터 꾸준히 소설을 써왔다고요. 

한강 작가님의 책을 읽고, 처음으로 소설이 이렇게 멋진 거구나 느꼈어요. 그즈음 소설 쓰기 수업을 들으면서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게 됐죠. 등단을 거의 포기하고 있을 무렵, 수상 소식을 들었어요. 원래 등단 날짜를 타투로 새겨야지 했거든요. 근데 나중에 잊히면 타투를 볼 때마다 슬플 것 같아서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어요.(웃음)

첫 책이 나왔어요. 각별한 기분이었을 것 같은데요.

사실 매일 독자들의 후기를 찾아봐요. 다음 작품을 빨리 읽고 싶다는 반응을 들으면 행복하죠. 정말 열심히 써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작가의 말’에 쓴 두 가지 원칙이 인상적이었어요. 소설 속에서 누구도 미워하고 정죄하지 말자, 인물들이 불행한 상황에 있다면 힘이 될 누군가를 곁에 있게 해주자. 

『무진기행』 ‘작가의 말’에서 김승옥 소설가가 한 말이 기억나는데요. “나는 판단하지도 분노하지도 않겠다. 그것은 하느님이 하실 일.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 의미 없는 삶에 의미의 조명을 비춰 보는 일일 뿐.” 소설가는 소설 안에서 뭐든지 다 할 수 있잖아요. 잘못을 저지른 인물이 있으면 벌을 줄 수 있고요. 그렇다고 소설가가 자신이 만든 인물들을 마음대로 하면 직업 윤리에 어긋나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함부로 판단하고 정죄하지 말자고 생각했고요.

그래서인지 소설의 등장인물들이 다 이해할 만한 구석이 있는 것 같아요. 실제 소설은 어떻게 쓰는지 궁금했어요. 

하나의 이야기에서 출발해도 주변 인물이 눈에 들어와서 처음부터 다시 쓰는 경우가 많아요. 이번 책에 실린 대부분의 소설이 다시 쓰인 이야기예요. 「주례」는 정년 퇴임한 교사 경목이 주인공이지만, 원래는 제자 용주의 이야기에서 시작했고요. 「당신이 모르는 이야기」는 죽은 연인에 대한 사연을 지닌 레즈비언 동창 민주가 주인공이었는데, 그 이야기를 전해 듣고 소설을 쓰는 작가가 새로 등장하게 됐어요.

「이인용 게임」은 읽을 때마다 다른 인물이 눈에 밟히는 소설이었어요. 처음에는 복수를 하는 노영과 ‘나’의 마음을 생각하며 읽었지만, 이들에게 상처를 준 인물들도 아들을 잃은 사람들이죠. 그렇게 보면, 여기에 온전한 ‘2인용 게임’을 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아요. 

이 소설에는 악인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노영과 ‘나’, 그리고 노영의 어머니와 줄리아 모두 이해 가능한 인물로 그리고 싶었거든요. 2인용 게임 자체가 불안이 생길 수밖에 없는 상황 같아요. 둘이 있어야 게임이 가능하니까 한 명이라도 빠지면 흔들리게 되죠. 거기에서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살면서 누구나 한번쯤은

「당신이 모르는 이야기」는 타인의 이야기를 듣고 소설을 쓰는 작가가 주인공이에요. 쓰면서 작가로서 성장한 것 같다고 했어요. 

자연스럽게 ‘내가 왜 소설을 계속 쓰고 있을까’ 묻게 됐어요. 누구나 자신이 겪은 일이 다 이해되지는 않잖아요. 지나온 일이지만 왜 이렇게 됐는지 알 수 없고, 과거의 사람이 그 순간에 어떻게 나를 생각했는지 끝까지 모르는 경우도 많고요. 소설 쓰기는 그 일들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만한 것으로 만드는 작업이 아닐까 싶어요.

소설에서 돌이킬 수 없는 사건들이 인물들의 현재에 영향을 미치죠. 그렇지만 그 사건이 폭발하거나 수면 위로 떠오르지는 않아요. 

사실 저는 결말이 뚜렷한 스릴러 장르를 좋아하기도 하거든요. 그런데 막상 소설을 쓰면 표면적으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듯한 소설을 쓰게 되더라고요.(웃음) 제 소설의 인물들은 트라우마가 될 만큼 충격적인 일을 겪지는 않는 것 같아요. 그냥 살면서 누구나 마주칠 수 있는 소소한 상처를 가진 사람들이죠. 그런데 문득 과거의 한 순간을 돌아보다가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질 때가 있잖아요. 그런 걸 소설로 보여주고 싶었어요.

대부분의 등장인물들은 중장년의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인생의 절반 이상을 지나온 사람들은 큰 문제에 부딪칠 때 쉽게 돌이킬 수 없는 지점에 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할머니 손에서 자라서 그 영향도 있는 것 같고요.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인물을 잘 쓸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은 사실 잘 안 해요. 인물들이 이 풍경을 어떻게 바라볼까, 과거에는 뭘 했을까 자주 떠올려보는 편이죠. 

「프랑스 영화처럼」은 산뜻하게 읽힌 소설이에요. ‘나’와 유재 앞에는 차별적인 현실이 있지만, 소설은 두 사람을 “솜과 천으로 만들어진 한없이 푹신한 세계”로 데려 놓아요. ‘바라는 세계’를 쓴 것 같다는 느낌도 들었는데요.

다른 소설들은 처음부터 다시 쓰기도 하고 오랜 시간을 들여서 썼는데, 「프랑스 영화처럼」은 한번에 빠르게 써 내려갔어요. 당시 실제로 일어났던 일에 영향을 많이 받았던 것 같아요. 사건이 입력돼서 출력하는 것처럼 바로 썼는데, 쓰고 나니 마음이 나아졌던 기억이 나요. 

작가님의 소설에서는 등장인물이 서로에게 지닌 편견과 관계의 균열도 감지돼요. 특히 「해피 투게더」는 등장인물 간의 관계 때문에 쓰는 동안 결말이 바뀌기도 했다고요. 

「해피 투게더」는 원래 화자가 게이였는데, 나중에 트랜스젠더로 바뀌었어요. 성 정체성이 변화하면서 친구 해주와의 관계도 달라졌죠. 처음에는 제목에 더 어울리게, 주인공과 친구 부부가 함께 영화를 보면서 끝나는 결말이었거든요. 그런데 설정이 바뀌면서 둘 사이에 작용하는 권력의 차이를 생각하게 됐어요. ‘나’와 해주는 긴 시간 함께한 친구지만 그만큼 서운함도 쌓이는 관계죠. 해주가 아무리 악의 없이 행동하더라도 ‘나’의 입장에서는 불편한 일이 되니까요. 트랜스젠더인 주인공과 기혼자 시스젠더 여성인 해주가 마냥 웃으면서 마무리할 수 없는 관계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자연히 결말도 바뀌었죠. 


자신이 모르는 이야기를 쓰는 사람

어떤 욕망에서 글쓰기를 시작했는지 알고 싶어요. 처음으로 쓴 소설은 어떤 주제였나요?

노년의 여성이 주인공인 소설이었어요.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잘못 내려서 길을 물어보는데, 낯선 남자가 다가와서 엄마라고 부르면서 집에 데려가 감금을 해요. 그리고 어머니 대접을 하는 거죠. 왜 이 소설을 썼는지 생각해봤는데, 결국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 같아요. 외부에서 다 내가 이런 사람이라고 말할 때, 스스로 생각하는 정체성을 끝까지 믿을 수 있을까. 지금의 소설과 다른 형태지만, 처음에는 그런 주제를 쓰고 싶었던 것 같아요.

평소에 좋아하는 책이나 영화가 궁금했어요.

공포 영화를 좋아해요. 스스로도 왜 그렇게 자극적인 콘텐츠를 좋아하지 싶은 면이 있는데(웃음) 특히 영화 <미드소마>를 만든 아리 에스터 감독을 좋아합니다. 필립 로스의 소설도 좋아해요. 항상 자신이 잘 모르는 화자에 대해 쓰는 게 멋있다고 생각해요. 본인은 유대계 미국인이지만, 흑인 가정에서 자라나 백인으로 패싱될 수 있는 사람이나, 딸이 폭탄 테러를 일으킨 아버지의 이야기를 써요. 그런데도 늘 직접 겪어본 일처럼 생생하거든요. 저는 작가가 자신이 겪지 않은 일에 대해서도 쓸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자신이 모르는 이야기를 쓰겠다고 마음 먹는 것 자체가 큰 도전 같고요.

앤드류 포터의 소설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을 좋아해서 여러 번 읽었다고요. 

앤드류 포터의 소설도 과거를 회상하며 당시에는 몰랐지만 지금은 알 수 있는 걸 떠올리는 이야기가 많더라고요. 특히 「코네티컷」을 인상깊게 읽었는데요. 주인공이 어머니가 젊은 시절 레즈비언 연인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돼요. 당시에는 그걸 받아들이지 못하다가, 시간이 흐른 후에야 어머니를 이해하고 인정하게 되죠. 그렇게 과거의 일이나 사람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고, 현재에 영향을 미치는 이야기가 재밌어요. 제 소설에도 그런 구조가 많이 등장하는 것 같고요. 

앞으로의 계획을 알려주신다면요?

태어나서 처음으로 장편소설을 쓰고 있어요. 보육원에서 함께 청소년기를 보낸 두 여자의 이야기인데요. 한 인물이 장애가 있어서 시설에서 생활해야 했던 인물이라, 요즘 장애와 몸에 대한 책을 많이 읽고 있어요. 공포와 스릴러를 워낙 좋아하니 장르물도 써보고 싶지만 너무 좋아해서 오히려 쓸 수 있을까 싶기도 해요.(웃음)




*서장원

1990년에 태어나 서울예대 문예창작학과와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사창작전공 전문사를 졸업했다. 202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해가 지기 전에」가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K-픽션 스물아홉 번째 작품 『해피 투게더』 등의 앤솔러지에 참여했고, 소설집 『당신이 모르는 이야기』를 썼다.




당신이 모르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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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심리학자 임민경 "자해를 이야기하되, 자해가 중심이 되지는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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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들은 자해를 한다. 2010년 중반 이후에는 자해에 관한 학술적, 사회적 관심도 늘었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자해의 이유, 자해의 매커니즘과 자해라는 행위에 깔려 있는 복잡한 문제를 이해하지 못한다. 자해를 한때의 유행으로 보기도 하고, 관심을 끌기 위한 행동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이런 편견들이 자해 당사자를 고립시킨다. 더 많은 사람들이 주변에 있을 자해 당사자들에게 손을 내밀기 위해서는 자해가 무엇인지, 왜 자해를 하는지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임상심리전문가 임민경은 “백신”과 같은 책 『자해를 하는 마음』으로 자해를 둘러싼 편견을 깨고자 했다. “자해 당사자를 이해하고 곁에서 도와주고 싶은 사람과 자해 당사자 사이에 조금이라도 다리를 놓아주기 위해”(7쪽) 책을 쓰기 시작한 것. 임민경은 이를 위해 자해 당사자 10명을 인터뷰하고, 자신에게도 자해의 경험이 있음을 조심스레 고백하며 당사자의 목소리를 폭 넓게 담았다. 동시에 자해에 관한 국내외 논문을 꼼꼼하게 살펴 이해를 높였다. 물론 이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 “막연히 ‘이 정도겠지’라고 생각했던 것보다 더 흔하게 자해를 하”는 현실에 마음이 무거웠다. 그럼에도 책을 써야 했던 것은 “도움을 주고 싶은 입장에서도 좌절을 경험하기가 쉽다. 혹시 그런 분이 있다면 이 과정이 씨뿌리기 같은 과정이라는 것을 알아주면 좋겠다. 내가 주는 도움이 그냥 사라지는 것 같아도 언제 의미를 가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곁에 있어달라.”는 말을 하기 위해서였다. 



자해를 얘기할 기회가 생긴다면

책에 동봉된 편집자 레터를 보면 이 책이 “자해 관련 논의를 수면 위로 올리는 작은 짱돌 혹은 포문이 된다면” 좋겠다고 적혀 있어요. 작가님이 책을 쓰셨던 마음도 같았을 것 같아요. 어땠나요? 

자해 당사자와 당사자 주변 사람들이 ‘자해’라는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면서도 그것을 터놓고 얘기하지는 못하는 것 같아요. 여러 이유가 있겠죠. 자해에 대한 얘기를 꺼내는 것 자체가 어렵기도 하고요. 자해 얘기를 하면 논의가 부정적으로 끝나기도 하니까요. 실은 워낙 무거운 주제예요. 당사자, 주변인뿐 아니라 전반적으로 이 문제를 얘기할 수 있는 기회 자체가 너무 적은 것 같은데요. 그래서 책과는 무관하게 자해라는 것을 얘기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왔어요. 책에는 자해라는 것이 살다 보면 할 수도 있는, 그렇게 이상한 것은 아니라는 내용을 담고 싶었거든요. 한편으로 주변인의 입장에서, 당사자를 도와주고 싶어도 자해라는 것이 적절하게 도움주기가 얼마나 힘든지도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각자의 입장에 서 있는 분들께 조금이라도 참고가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썼어요.

자해 논의를 수면 위로 올리는 데 걸림돌이 되는 것 중 하나가 편견 같아요. 책에 참여한 인터뷰이들은 가장 신경 쓰이는 편견 중 하나로 ‘자해를 통해 관심 받으려고 한다’는 말을 꼽기도 했죠. 

하도 그런 편견이 강하고, 심지어 그런 편견을 말로 표현하는 분도 많아서 당사자는 방어적인 마음을 갖기가 쉬워요. 누군가가 좋은 의도로 이야기를 꺼내더라도 말이에요. 저 사람에게 이런 편견이 있겠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거야, 라고 생각하게 되는 거죠. 일단은 날을 세운 상태로 얘기를 시작하기 쉬운 것이 현실인데요. 주변인도 어느 정도 자해의 이유를 짐작해볼 수 있겠지만 그것들이 맞을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거든요. 따라서 당사자로 하여금 상대가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자해라는 것 자체를 나쁘게 보는 게 아니라 당신을 도와주고 싶다는 마음을 잘 전달하는 게 중요해요. 편견은 그 맥락에서 크게 방해를 하는 것 같고요.

소수의 사례지만 설령 관심을 받고 싶어서 자해하는 경우가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비난할 것이 아니라, 다른 관계가 필요하다는 신호로 보라는 말씀도 하셨잖아요. 이 말도 무척 중요하게 느껴져요. 

그 부분을 강조했던 이유가 있는데요. 2018년에 있던 자해 특별 심포지엄에서 과거 자해를 했다가 지금은 자해를 그만둔 당사자 분이 발표를 하신 적이 있어요. 그분은 자해는 무조건 ‘리스트컷(손목자해)’이 아니다, 또 관심 받고 싶어서 하는 것도 아니다, 라는 내용을 강조하셨어요. 그 말씀에 큰 인상을 받았어요. 그 말이 맞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니기도 해서요. 물론 그 당사자 분이 어떤 편견 때문에 그런 반박을 하고 싶었는지 너무 잘 알아요. 그렇지만 이런 강한 반박은 관심 받고 싶어서 자해를 하는 분들에게는 이중의 족쇄로 느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소수이기는 하지만 분명히 있는 그 사람들이 더더욱 말하지 못하게 할 수도 있겠다, 싶어서 마음이 되게 복잡했어요. 그래서 책에 소수이긴 하지만 분명히 있다, 그럼에도 그것을 부정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도움이 필요하다는 신호이기도 하다는 걸 사람들이 좀 이해해 줬으면 좋겠다, 라는 내용으로 썼던 거예요.

사실 책에서는 다루고 있는 모든 상황에 대해 ‘기저에 깔린 복잡다단한 각자의 사정이 있고, 따라서 그런 것들을 주의 깊게 파악해야 된다’는 얘기를 일관되게 하고 계시죠. 

자해라는 말을 들으면 일차적으로 보이는 반응이 있죠. 자해가 누군가에게는 본능적으로 되게 두려운, 혐오적인 자극이 될 수도 있고요. 내 주변 사람의 일이라면 당연히 놀라고, 걱정이 될 거예요. 안타까운 것은 이런 여러 이유로 ‘놀라서’ 나오는 반응 때문에 갈등이 일어나는 걸 너무 많이 봤다는 거예요. 책을 쓰며 인터뷰 한 당사자 분들 대부분은 자해를 숨기려고 많이 노력했는데요. 일부는 자해 사실을 부모님한테 얘기하거나 들킨 경우였거든요. 그때 부모님들이 너무 놀라서 우시거나 욕을 하는 등의 반응을 보였다고 해요. 혼내고, 자해 못 하게 감시하고요. 사실 그 마음은 이해가 돼요. 위험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 즉각적인 반응 때문에 조금 더 얘기할 수 있는 기회를 한 차례 정도는 놓치고 지나갈 수도 있거든요. 그러니까 초반에 있을 수 있는 정서 반응들을 미리 알고 있으면 일종의 어떤 백신처럼 기능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그렇다면 당사자가 자해 사실을 고백할 때, 혹은 주변 사람들이 자신의 자해 사실을 알았을 때 주변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 것이 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방법이 될까요? 

“가장 힘들었을 때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해주면 도움이 될까요?”라고 물으면 대부분은 “저만 그렇게 생각했을 수도 있지만”이라고 말문을 열면서 다 비슷한 얘기를 하세요. 너무 자해에 대해서만 얘기하면 부담스러우니까 그 얘기는 잠깐 치우고 그냥 옆에 있어주는 것, “맛있는 거 먹으러 갈까?”라면서 배려해주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다고요. 그후에 물론 자해를 터놓고 이야기해야겠지만요. 시작하는 단계에서는 너무 꼬치꼬치 캐묻지 않고, 하지만 내가 너를 주시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자해와 자살의 의도 

‘자살 의도가 없는 자해’라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분들도 많을 것 같아요. 자해와 자살은 구분된다고 하셨는데, 어떤 것인지 구체적으로 설명 부탁드려요. 

자살 의도 없는 자해란 문자 그대로 자살을 하고자 하는, 스스로를 죽음에 이르게 하고자 하는 어떤 의도 없이 자신의 신체에 손상을 가하는 반복적인 행동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은데요. 사망에 이르게 됐든 아니든 자살 행동은 ‘죽을 것이다’라는 마음이 항상 기저에 있는 것 같아요. 한편 자해 행동은 지금 일어난 너무 고통스러운 감정을 어떻게든 조절해보고, 이 감정을 가라앉히고 싶은 마음에 일어나는 거거든요. 혹은 아무것도 안 느껴지고, 공허함을 느낄 때 무엇이라도 느끼고 싶은 마음이 기저에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인터뷰 한 어떤 분은 “겉으로 보기에는 아닐지 몰라도 나는 진짜 살고 싶어서 자해했다”고 표현하시기도 했어요. 그런 차이가 있죠. 

살고 싶어서 자해한다고요. 그건 어떤 의미일까요. 

약간 예민한 주제이기는 한데요. 자해의 기능 중에 ‘자살방지기능(Anti-Suicide Function)’이라는 게 있어요. 자살하고 싶은 충동이 생길 때 오히려 그걸 조절하기 위해 자해를 하는 기능인데요. 사실 이런 목적으로 자해를 한다고 하시는 분들 대부분은 자살 위험도 실제로 높고요. 어쨌든 자살을 하고자 하는 마음, 이대로 죽는 게 낫겠다고 생각하는 마음이 엄청 고통스러운 마음인 거잖아요. 그 마음을, 그 순간을 어떻게든 흘려 보내고 싶은 마음 때문에 자해를 하시게 되는 게 아닐까 싶어요. 

방금도 말씀하셨듯 자살과 자해는 구분되지만 상관관계는 있다고도 분명히 설명하시죠. 책에 등장하는 인터뷰이 ‘르비’님의 사례가 떠올라요. 

네, 자살 의도가 없는 자해와 자살이 개념적으로는 구분이 되지만 실제로는 완전히 구분되지만은 않는 지점이 분명히 있어요. ‘르비’님은 아주 심한 자해를 하시는 분이었는데요. 자해를 하다가 “운이 좋으면 죽는 것”이라고 말씀하실 정도였어요. 그런데 그 자살 의도라는 것도 자세히 봐야 해요. 죽고 싶은 마음이 24시간 계속 지속되는 건 아니잖아요. 매 순간 생각이 변하고, 기분도 바뀌죠. 그러니까 어떤 순간에는 자살 시도처럼 하시는 분들이 다음 날에는 자해를 하는 식으로 겹치는 부분들이 분명히 있는 거예요. 

“자기상해에 자살 의도가 포함되어 있었는지 아닌지를 밝히려면 행위 당시 자신의 동기를 정확히 통찰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것이 언제나 가능하지는 않다.”(81쪽)고도 하셨어요. 

어쨌든 많은 연구에서 자해 행동이 위험하다고 얘기하는 건 자해가 그 자체로 부작용을 가져오기 때문이에요. 처음에는 가벼운 손상으로도 마음이 가라앉는 효과를 느꼈어도 자해가 거듭되면 점점 더 많이, 더 심하게 상처를 내게 돼요. 이렇듯 자해 행동이 점점 심해진다는 위험이 첫 번째고요. 두 번째는 자신의 몸에 치명적인 위해를 가할 수 있는 ‘능력’이 커진다는 점이에요. 본인이 원든 원치 않든 자신의 몸에 치명적인 손상을 내는 방법을 습득해가게 되는 거죠. 또 이런 문제도 있어요. 자해 하시는 분들은 자해를 하면 진정되는 것 같고 머릿속이 깨끗해지는 것 같다는 주관적인 느낌들을 얘기하시는데요. 많은 연구가 그 순간이 지나면 오히려 더 우울한, 부정적인 감정이 찾아온다고 말해요. 몇 시간 내에 그럴 뿐 아니라 장기적으로도 자해라는 방법을 반복적으로 사용하면 후에 우울증이 재발한다거나 정서 조절에 더 어려움을 겪는 등의 위험이 높아진다고 말이죠. 자해는 정말 목 말라서 바닷물 마시는 것과 같은 방법이에요.



자해보다 중요한 것은

그밖에 자해 당사자 분들을 인터뷰하시면서, 혹은 책을 쓰시면서 새롭게 생각하게 된 것들도 있으실 것 같아요. 

가장 고민했던 건 온라인 자해 커뮤니티 부분이었어요. 요즘은 굳이 어떤 커뮤니티에 가입하지 않고, 그냥 소셜미디어에서 자해 얘기를 하고 사진을 올리기도 하거든요. 이곳이 마음 놓고 얘기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창구라고 느끼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그런 얘기를 할 수 있는 데가 워낙 없고, 커뮤니티 안에서는 서로에게 있는 공통점 덕분에 유대감도 분명히 느낄 거고요. 그게 위안이 될 수 있다는 걸 너무 잘 아니까 커뮤니티에 대해서 말하는 게 정말 조심스러웠어요. 하지만 커뮤니티를 통해서 자해를 습득하거나 자해를 더 심한 강도로 하게 되는 등 안 좋은 면도 있거든요. 어떻게 하면 이런 부작용을 분명하게 이야기하는 동시에 자해 당사자들을 향한 편견에 일조하지 않을 수 있을까, 많이 고민했어요. 워낙 편견에 취약한 위치에 계신 분들이니까요.

결국 자해는 현상이라는 것, 자해 자체보다 자해의 기저에 깔린 복잡한 마음에 집중하는 것이 당사자에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거듭해서 강조해야 할 것 같아요. 

자해 행동 중심으로 이야기를 하면 거기에만 매달리게 되는 것 같아요. 병원이나 상담센터에서도 이렇게 되기 쉬워요. 예를 들어 “이번 주는 자해했어요, 안 했어요?” 하는 식으로 되기가 쉽거든요. 물론 자해를 안 하게 되는 건 아주 큰 의미가 있죠. 그렇지만 자해 중심으로 얘기를 하면 기저에 어떤 변화가 있는지를 놓치기가 쉬운 것 같아요. 따라서 자해 자체도 중요하지만 그게 중심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게 정말 중요해요. 사실 기저에 있는 문제들은 정말 각양각색이거든요. 자해 충동이 들 때의 마음을 거슬러 올라가면 무능감이 핵심 이슈인 분도 있고요. 자괴감이 자해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어요. 나는 사랑받지 못하는 존재인 것 같다는 마음이 자극이 돼서 자해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고요. 어떻게 보면 이런 각자의 마음이 도달해야 할 핵심일 거예요.

책 후반부에는 회복을 다루고 있어요. 작가님은 회복 과정이 지루한 연습의 연속이라고 하셨는데요. 시작과 끝이 없는 모호한 과정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도 중요한 거겠죠?  

자해뿐 아니라 거의 대부분의 정신과적 질환들, 심리적인 문제들이 단번에 확 좋아지는 경우는 많지 않은 것 같아요. 간혹 드라마틱한 효과가 있는 분들도 있지만요. 정서 조절의 문제, 기질적인 문제는 하루아침에 좋아지지는 않는 것 같고요. 특히 아동기의 부정적 경험, 학대 경험 등이 축적된 분들은 정말 장기적으로 봐야 해요. 그래서 어느 순간 반짝 좋아지다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는 것 같아서 좌절하는 경우도 많죠. 분명히 노력했는데 왜 또 이 자리일까, 하는 마음이 들 수 있거든요. 그 순간에 이런 말을 기억하기는 당연히 어렵겠지만, 회복이라는 게 우상향 직선이 아니라 구불구불한 곡선이라는 것을 기억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후퇴한 것 하나 하나에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전반적인 과정을 보되 예전과 비교해서 조금이라도 달라진 게 있으면 되는 거거든요. 이만큼 달라진 것도 사실 엄청난 노력이 필요했던 거잖아요. 그것을 볼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조심스러운 질문이긴 한데요. 자해 행동을 완전히 없애지 않고, 그러니까 위험하지 않은 정도로 자해하는 것을 유지하는 방법으로써의 치료 목표도 가능한 건가요? 

자해를 계속 가지고 간다는 건 너무 위험한 선택지예요. 궁극적으로는 자해 행동을 하지 않는 게 목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이 목표에 매달리기보다는 자해를 하게 만드는 그 힘든 마음을 조절하는 것, 그래서 결국에는 자해 외에 더 자신에게 잘 맞고 좋은 방법을 찾아서 더 이상 자해가 필요하지 않게 만드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겠죠. 사실 자해를 그만둔 사람도 자해 하고 싶은 충동을 가끔씩 느껴요. 자해를 안 하는 상태라는 것이 자해를 원하지도 않고, 완전히 생각마저 없어진 상태는 아니거든요. 이렇듯 마음은 왔다 갔다 할 수 있다는 것도 함께 이해를 해주시면 좋겠어요.

어떤 분의 손에 이 책을 건네고 싶으세요? 

지금 자해를 하고 계신 당사자 분들이 읽어주시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쓰면서 친구가 생각이 많이 났는데요. 제 주변에 있던, 자해 하던 친구 중에 자살로 사망한 친구가 있었어요. 저도 20대 초반이었고, 당시에는 연구로도 많이 밝혀진 게 없어서 그게 그렇게 위험해질 수 있는 행동인지 잘 모르기도 했고요. 자해라는 것이 발견조차 잘 안 될 때였기 때문에 심각성을 인지 못했던 것 같아요. 책을 쓰는 내내 그 당시에 이런 것을 알았다면 어땠을까, 하고 많이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그러면서 사회 전반적으로 이런 자해의 양상을 인식할 수 있는 세상이면 좋겠다는 마음이 컸어요.

 



*임민경

임상심리전문가이자 정신건강임상심리사. 고려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한 뒤 동 대학교 대학원에서 임상 및 상담심리 석사학위를 받고, 정신건강의학과에서 3년간 임상심리 레지던트 과정을 마쳤다. 범죄 피해 트라우마 통합지원기관 인천스마일센터에서 내담자들을 만났으며, 지금은 심리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언제나 누군가의 애독자이자 무언가의 애호가다. 지은 책으로 『우리는 자살을 모른다』가 있다.




자해를 하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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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민경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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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정 교수 "일상과 밀착되어 있던 동양미술의 미(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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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정 교수는 혁신을 일으킨 작품들을 중심으로 보아온 미술사를 서양 관점이라고 말한다. 금귀걸이, 도자기, 나전칠기 등 서양미술에서는 미술로 보지 않았던 공예 작품들까지 모두 미술로 다루며 “동양미술이라는 세계를 바르게 보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익숙한 서양의 기준을 내려놓고 우리 주변을 새롭게 돌아보려는 마음이 필요”(1권, 23쪽)하다고 강조한다. 『난처한 동양미술 이야기 1』『난처한 동양미술 이야기 2』는 불교가 시작된 인도부터 동양미술에 다방면의 영향을 미친 중국까지, 동양미술의 시원을 찾고 의미 찾기를 시도한다. “미술은 우리의 정신 세계를 풍성하고 다양하게 만든다”는 강희정 교수는 이 책을 통해 “읽어 나가는 미술”의 즐거움을 찾게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동양미술의 다른 점

“서양미술이 스스로 발전을 거듭한 끝에 일상에서 먼 곳까지 달려나갔다면 동양미술은 생활에 밀착해 있습니다.”(1권, 20쪽)고 하셨죠. 어떤 면들이 동양미술과 서양미술 사이에 이런 차이를 만든 걸까요? 

서양미술의 경우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처럼 큰 신과 신전, 조각이 하나의 흐름을 형성하면서 중세로 넘어갔다고 볼 수 있어요. 중세의 가장 큰 줄기는 기독교미술이었고요. 이후 르네상스 전까지 기독교미술은 우리가 알고 있는 서양의 거의 모든 지역을 총망라하고, 대표할 수 있는 것이었어요. 한편 동양에서 기독교미술에 상응하는 것이 불교미술일 텐데요. 불교는 기독교만큼 빠르게 지배적인 종교가 되지 않았죠. 예를 들어 인도의 경우 1-2세기부터 힌두교가 불교와 발 맞춰 발달하기 시작했고, 5-6세기가 넘으면 완전히 힌두교 중심이 되거든요. 동양에서 불교가 힘을 발휘하게 된 것은 중국, 중앙아시아, 한국, 일본으로 전파가 되면서였어요. 중국에서도 오랫동안 불교가 융성하기는 했지만 중국 역시 유교, 도교 등의 전통이 있었기 때문에 전통을 고수하려는 사람들에 의한 반발이 컸죠. 서양에서 기독교미술이 폭넓고 뿌리 깊게 발달한 것과는 다른 양상이 있었던 거예요.

세속적이든 종교적이든, 지배적인 권력이 크게 영향을 끼쳤는가 아닌가의 차이가 크겠군요. 

만일 중국에 유일신이 있었다면 당연히 아부심벨 못지않게 큰 신전을 지었을 거예요. 하지만 신전 자체가 별로 나오지 않거든요. 제사는 지냈지만 유일신처럼 힘이 센 신의 개념이 없어요. 불교가 들어가서 비로소 큰 사원을 짓기 시작하죠. 한편 서양에서는 지배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굳이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릴 일이 없잖아요. 그럴 필요도 없었고요. 서기라는 직업이 이집트 때부터 계속 있었는데 동양은 그게 없어요. 동양은 무식한 사람들도 권력을 잡을 수는 있지만 기본적인 소양이 있어야 되거든요. 일본의 무사 정권 같은 경우 글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다고 하지만 기본적으로 글씨를 쓰건 그림을 그리건 붓을 잡는 걸 좋아하는 전통이 비교적 더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동양의 전통은 서양의 전통과는 다른 방식으로 표출이 될 수밖에 없었고요. 그러다 보니 조금 더 일상생활과 밀착이 되어 있었다고 판단하는 겁니다.

상대적으로 동양미술이 특정한 권력이 향유하는 미술이 아닌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미술이었던 데에는 그런 문화적인 측면도 있었네요. 

문화적인 소양을 중요하게 여겼죠. 아시다시피 중국이나 한국이나 과거 제도가 있었죠. 과거 제도가 미술을 만드는 데 기여하지는 못하지만 정신적인 문화를 존중할 수 있는 토대를 갖추게 하기에는 충분한 밑받침이 됐다고 말씀드릴 수 있어요. 서양은 신분이 중요했잖아요. 싸움을 통해 권력을 쟁취하고, 아들들이 계속 왕위에 오르는 혈연이 중요했는데요. 동양도 물론 그런 게 있었지만 동양은 귀족만으로 정치를 하는 것이 거의 당대 쯤에 끝이 나요. 과거를 통해 인재를 등용하겠다는 게 동양적인 정신이고요. 확실하게 어떤 정신적 가치를 표현할 수 있는 미술이 발달할 수 있는 토양 자체가 달랐다고 생각합니다. 



통일성보다는 다양성을

1권은 인도, 2권이 중국이에요. 같은 동양미술의 자장 안에서도 굉장히 다른 흐름들이 있더라고요. 

서양도 이집트 다르고 그리스, 로마 다르듯이 엄청나게 다른 문화와 전통이 미술로 표현된 거거든요. 동양도 마찬가지죠. 인도와 중국은 그 자체로도 워낙 넓다 보니 그 안에서도 엄청 달라요. 이 책은 아주 핵심만 다루어서 일관성 있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그 안에서도 지역마다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죠. 인도의 경우 사실 한 번도 통일된 적이 없어요. 지금과 같은 식으로 통일된 것은 식민지가 되면서예요. 지금도 인도를 가시면 지폐에 15개 언어로 내용이 새겨져 있거든요. 문화, 역사, 전통, 종교가 다 달라요. 인도나 중국이나 전부 다른 맥락에서 자신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미술을 만들고 원하는 방식으로 즐겼죠. 때문에 저는 통일성보다는 그러한 다양성을 강조하고 싶어요. 다양성을 인정을 해야만 각기 다른 미감과 미의식을 표출하는 미술을 만들어왔다는 걸 인정할 수 있어요. 

그 중, 인도를 1권에서 다룬 이유로 “불교가 시작된 곳이기 때문”(1권, 496쪽)이라고 하셨어요. 결국 불교를 알아야 우리 자신을, 아시아라는 곳의 문화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고 말이죠. 

이 점을 제일 먼저 주목한 건 일본이었어요. 일본 사람들이 근대에 들어 서양의 기독교에 대응할 만한 동양 정신의 핵심이 불교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면서 19세기 후반에 인도를 굉장히 열심히 공부해요. 모든 시작이 인도에서 왔다고 말이죠. 왜냐하면 불교가 인도에서 왔으니까요. 불교를 강조하다 보니 인도에서부터 시작해 다음으로 넘어가는 하나의 흐름을 만들게 되었던 거고요. 사실 인도와 중국은 독자적으로 발달한 게 맞아요. 비슷한 시기에 인류가 모여서 집단으로 거주하면서 문명을 만들기 시작했죠. 다만 읽을 때 부담스럽지 않을까 싶어서 인도와 중국 순서로 책을 구성한 거였어요.

서양미술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이러한 연구가 진행됐다는 점이 묘하게 느껴지네요. 

일본은 이미 1870년대에 유럽에 많이 가요. 일본이 빨리 문을 열었잖아요. 1876년, 일본에서 메이지 유신이라는 게 일어나면서 정치 체제가 확 바뀌는데요. 그때 서양을 굉장히 많이 열심히 찾아가고 배우려고 합니다. 그러면서 저들은 기술이 있고, 우리는 정신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담론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불교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고요. 그렇게 19세기 말이면 이미 인도를 가요. 20세기 초에는 간다라 미술을 공부한 프랑스 학자 ‘알프레드 푸세’를 도쿄에 초빙해 강의도 시키고요. 그런 정도니까 모든 것이 굉장히 빨랐죠. 

책에서 소개한 많은 작품들 가운데 동양미술의 특징을 잘 반영했다고 생각하는, 독자들이 주목해서 지켜봤으면 하는 작품을 꼽는다면 무엇인가요? 

일단 중국은 ‘마왕퇴’에서 나온 ‘T형 비단’을 꼽고 싶어요. 그것이 매우 중국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표현 방식이나 당시 사람들의 세계에 대한 인식, 사후 세계에 대한 것도 표현이 되어 있고요. 신화적인 세계도 표현되어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인도의 경우, 지금까지 다룬 것 중에서는 역시 ‘산치 스투파’예요. 그것이 정말로 큰 영향을 미쳤으니까요. 정확히 산치 스투파가 영향을 줬다는 증거가 있는 건 아니지만요. 그 유형의 탑이 중앙아시아, 중국, 한국은 물론 일본까지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요. 저는 그것이 어떻게 보면 탑의 기원에 해당한다고 생각해요. 


산치 제1스투파 ⓒarun sambhu mishra / Shutterstock.com 


기원 전후의 산치 사원 상상도 ⓒ사회평론 


마왕퇴 1호묘의 T형 비단 

목적과 필요에 의해 만든 미술들

고고미술의 특징이라면 아직도 해석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는 점이 아닐까 싶어요. 용도가 밝혀지지 않은 작품들도 있고, 그 작품이 어떤 의미인지 지금도 해석하는 것들도 많죠. 이것은 고고미술의 가능성이기도 하고 어려운 점이기도 할 것 같거든요. 

일장일단이 있는데요. 옛날 것들은 텍스트가 없잖아요. 글이 없어요. 그러다 보니 누가 만들었고, 어떤 용도로 썼는지 추정할 수밖에 없거든요. 그건 아쉬운 점지만 거꾸로 생각할 부분도 있어요. 아무리 텍스트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 당시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여겨졌던 것들은 쓰지 않는다는 거예요. 아침에 세수하고 학교에 갔다는 건 누구나 하는 얘기니까 남기지 않잖아요. 그러니 추정이 가능하도록 하는 것들이 고고미술사에서 다루는 유물과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거예요.

때문에 그 작품이 만들어진 역사와 문화, 이를테면 지배자들의 의도 같은 것들까지 함께 이해하는 것이 작품을 보는 데 중요한 요소겠죠. 

미술이라고 말할 때 흔히 갖는 생각은 순수미술이거든요. 오로지 감상만을 위한 미술 말이에요. 그것이 우리의 기본적인 선입견이에요. 그런데 사실 미술이 그랬던 시기는 굉장히 짧습니다. 서양에서도 미술을 위한 미술, 예술을 위한 예술이라고 하는 것들은 기껏해야 르네상스 중후반에 이르러야 싹이 나오기 시작하고요. 동양에서는 모든 미술이 어떤 의도로든 목적이 있고 필요가 있어서 만드는 것이 기본적이었어요. 다만 개인의 개성을 중시하는 것은 동양이 빨랐죠. 회화, 산수화 이쪽에서는 개인의 개성을 충분히 인정을 했거든요. 그런 면에서 동양이 좀 더 표현주의적인 태도를 빨리 가졌다고 봐요.

그 중, 동양미술에서 도자기의 발전은 중요한 것 같아요. 인도는 토기에서 멈췄지만 중국이나 한국, 일본에서는 도자기가 엄청나게 발달했어요. 

서양과 동양미술의 결정적인 차이점은 도자기 제작 여부에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중국이나 한국도 도자기를 일반인이 쓰지는 못했을 거예요. 일반 사람들은 다소 질이 낮은 토기나 나무로 만든 목기를 주로 썼겠죠. 그럼에도 지배자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취향이라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에 그들의 취향에 맞춰서 도자기들을 만들게 된 거고요. 만들다 보니 예쁘잖아요.(웃음) 그러니까 점점 더 기술이 발전하고, 계속 새로운 것을 만들어냈죠. 요즘 IT 쪽에서 계속 이야기하는 게 혁신인데요. 어떤 의미에서 도자기야말로 혁신의 혁신을 거듭한 것이라고 볼 수 있고요. 당시에는 최신 기술이었다고 볼 수 있어요. 



읽어 나가는 미술을

이렇듯 일상생활에 사용했던, 실용적인 목적을 가진 것들을 모두 미술 작품으로 다룬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어요. 흔히 ‘미술’이라고 하면 일상과 동떨어져 있는 것들을 생각하잖아요. 이에 대해 “서양의 기준을 내려놓고 우리 주변을 새롭게 돌아보려는 마음이 필요”(1권 23쪽)하다고 하셨어요.

마음이 열리면 눈도 열릴 수 있다고 생각해요. 예전에는 보자기 같은 것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거든요. 그러다 우리 것을 잘 알자는 분위기가 생기면서 자수로 만든 안경집 같은 것들이 새롭게 눈에 띄게 되었어요. 조각보를 이어서 만든 보자기 보신 기억이 있을 거예요. 그건 심지어 몬드리안의 그림과도 비교될 만한 느낌을 주거든요. 이렇게 다시 주목을 하게 되면서 새롭게 우리의 미(美)를 찾아가는 중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이 과정이 우리의 변화된 인식이고요. 새롭게 그 가치를 인정하게 된 것들인데 그동안 아무도 그 점을 말하지 않았어요. 그냥 단편적으로 보고 넘어갔던 것들이죠. 저는 그런 것들을 다 모아서 우리가 볼 수 있고 감상할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동양의 미의식, 동양의 미적인 가치를 재발견할 수 있기를 바랐어요.

지금 동양미술의 맥락을 이해하는 게 왜 중요할까, 라는 질문에는 어떤 답을 하시겠어요?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동양미술의 매력은 뭔가요? 

동양미술의 매력을 말하는 건 옳지 않은 것 같아요. 왜냐하면 미는 느끼는 것이고, 스스로 감상하는 것이기 때문이에요. 글로 아는 것은 일종의 교과서적인 지식인데요. 예를 들어 석굴암에 들어가서 사람들은 그냥 쓱 보고 나와요. 저는 과감하게 그곳을 막은 유리창도 없애야 한다고 생각해요. 석굴암 같은 경우 예배하고 절하면서 사람들이 아래에서 올려다보게끔 고안된 조각이거든요. 그런 것을 멀리 떨어진 곳, 유리창 밖에서 성인의 남자 눈높이로 보게 했잖아요. 그건 제대로 된 감상이 아니죠. 저는 이 책을 통해 과거에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동양미술에 대한 독자들의 선입견을 버리도록 하고 싶었어요. 작품 하나에서 무엇을 보고 어떻게 느낄 수 있는가를 강조하려고 했어요. 그래서 책에도 지시선이나 작품 보는 순서 등을 표기한 거예요. 그냥 한꺼번에 보는 게 아니라 읽어 나가는 미술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요.

읽어 나가는 미술이라는 건, 미술 작품을 보는 태도에 대한 이야기 같기도 해요. 어쩔 수 없이 다른 문화권, 다른 나라의 미술과 비교하게 되는 장면들이 있는데 그때도 선생님은 우열을 따질 수는 없다는 것을 강조하시죠. 

어느 것이 더 훌륭하다, 덜 훌륭하다는 말을 삼가면 좋겠다는 제 의사가 많이 들어가 있어요. 제가 공부하는 과정에서도 그런 일이 많았거든요. 예를 들면 일본 사람과 한국 사람, 영국 사람과 인도 사람처럼 제국과 식민지 관계에 있어 제국의 미술이 우월하고 식민지의 미술은 열등하다는 인식을 종종 목격했어요. 그런 것이 저에게는 약간의 트라우마처럼 남았고요. 그것은 옳지 않다는 반발심이 계속 있었어요. 적어도 이 책에서는 그런 개념들을 버리고자 했죠. 그저 이들은 이런 걸 좋아했고 저들은 저런 걸 좋아했다, 그래서 이들은 이런 식으로 표현했고 저들은 저렇게 표현했다는 정도로 봐주셨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어가 있어요. 객관적으로 볼 수 있도록 말이에요.

예를 들면 ‘백제 향로’의 경우를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경우 중국의 영향은 받았지만 한국만의 발전이 있었다고 명확하게 구분을 하시죠. 같은 맥락에서 의미가 크더라고요. 

역시 저의 반발심입니다.(웃음) 최근에도 미국 일부 학자들 가운데 한국의 미술작품이 중국에서 수입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같은 시기에 중국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데 우리나라에서만 나왔으면 당연히 한국미술로 보는 게 상식적이잖아요. 그것을 무시하고 중국에서 수입한 것이지 너네가 어떻게 저런 걸 만들었겠느냐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미 선입견에 찌들어 있는 거예요.



한국미술의 위치는

이어 나오게 될 다음 시리즈에서는 어떤 내용들을 다루게 될까요? 소개를 부탁드려요. 

1권에서는 인도의 쿠샨 시대 초기까지만 다뤘어요. 불상의 발생을 이야기하지 못했거든요. 이제는 잘 알고 계시지만 불상은 간다라와 마투라부터 시작해요. 간다라는 인도 서북부, 그러니까 인더스 문명 발생지보다 더 아프가니스탄 쪽이거든요. 그래서 그리스, 로마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이야기를 하고요. 마투라는 인도 내륙이고, 힌두교상이 많아요. 석가모니 탄생지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곳인데 오늘날도 인도의 중요 지역인만큼 교통의 요지죠. 여기서 만든 불상이나 힌두교 상들을 다른 데로 보내기가 쉬웠을 거예요. 그래서 마투라에서 만든 힌두상과 불상들이 꽤 먼 지역에서도 나옵니다. 또 굽타 시대의 조각들도 다룰 거예요. 그 다음 아잔타 석굴이 등장하는데요. 아잔타는 인도에서 보기 드물게 회화가 남아 있는 곳이거든요. 벽화 말이에요. 그것들이 중앙아시아를 거쳐서 중국으로 가는 과정, 그야말로 실크로드에 해당하는 내용이 될 예정이에요. 

중국은 어떤가요? 

중국에서는 초기의 석굴 사원을 다뤄야 할 거예요. 2권에서 중국 한나라까지밖에 못 다뤘잖아요. 그 뒤가 남북조 시대인데요. 남북조 시대에 나타나는 다양한 불교 사원과 불상이 있거든요. 남북조 시대는 중국의 황하 문명을 만들었던 한족들이 꾸려나간 것이 아니라 북방에서 내려온 이민족들이 중국 북부를 점령을 하면서 지배하려다 보니 생성된 것들이 있어요. 불교를 이용하는 측면이 있거든요. 한편 남쪽은 황하 지역에 살던 한족들이 쫓겨 내려가죠. 그래서 이 사람들 약간 한량처럼(웃음) 살아요. 그렇게 나오는 게 도교예요. ‘죽림칠현’을 실제로 미술로 표현한 것들도 중국의 남경에서 나왔고요. 그럼에도 문화를 유지하기 위해서 회화 이론 같은 것들이 많이 나오거든요. 그런 것들을 중심으로 다룬 후에 소그드의 유물들이 등장하는 데까지 가게 될 거예요.

동양미술에서 한국의 위치라는 것도 궁금해요. 주변에 꾸준히 영향받고 그 안에서도 뭔가를 키워내고 했잖아요. 

느끼는 게 한국미술사를 할 때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 미술만 다룬다는 거예요. 하지만 뭔가를 확실하게 알기 위해서는 남을 알아야 하거든요. 어떤 작품을 보고 그냥 ‘이게 한국미술이구나’ 하고 넘어가게 되던가요. 청바지는 미국 문화인데 한국에서 청바지를 만들었다고 할 때 이게 미국 청바지와 어떻게 다른지는 미국 청바지를 봐야 알잖아요. 그런 면에서 한국미술사가 다소 자기 중심적으로 진행되어 왔다고 생각하고요. 저는 동양미술에서도 틈틈이 가까운 사례를 한국에서 찾아 보여드리는 식으로 가려고 합니다. 이 시리즈는 동양미술이 중심이 되지만 그때그때 한국과 비교가 되는 것들을 다루려고 해요. 예를 들어 중국에는 석굴 사원을 파지만 한국은 석굴 사원이 없습니다, 이렇게만 설명하면 심심하잖아요. 그러면 석굴암은 뭐냐는 질문이 나올 수가 있고, 그럼 석굴암은 석굴을 판 것이 아니라 축조한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건축이라고 대답을 드릴 수가 있죠. 그런 식의 비교하는 관점이 들어가게 될 것 같아요.



*강희정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서강대 동남아학 교수이자 동아연구소 소장이다. 중국과 한국 미술을 가르치고 연구하다가 한국에서는 좀처럼 발 딛지 않는 인도와 동남아시아 미술로도 영역을 넓혔다. 한·중·일을 넘어 아시아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드문 미술사학자 중 한 명으로 손꼽힌다. 동양미술의 문턱을 낮추고 대중과 소통하는 데 관심이 많아 꾸준히 강연과 저술 활동에 힘쓰고 있다. 서울신문 등 다양한 매체에 아시아의 아름다움을 전하는 글을 연재 중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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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미성 "새로 시작하는 사람을 향한 동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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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어진 삶의 조건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곽미성 작가는 십대 후반에 불현듯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다. 태어난 환경은 선택할 수 없었지만 남은 삶은 뜻대로 살아보겠다는 의지였다. 낯선 나라에 정착해 20년 넘게 이방인으로 살아온 그는 언젠가부터 새로 시작하는 사람들의 모습에 자주 매료되었다고 한다. 곽미성 작가의 세번째 책 『다른 삶』 ‘이대로 삶을 지속할 수 없다’는 확신을 외면하지 않은 용기에 대한 이야기다. 



인생의 조건을 바꾸겠다는 결심 

3년 반만의 귀국이시라고요. 오랜만에 찾은 한국에서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나요? 

아무래도 코로나로 인한 변화가 가장 인상적으로 남을 것 같아요.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이전과는 다른 풍경이 펼쳐졌거든요. 마치 물류창고에서 어딘가로 배송되듯이 방역복을 입은 직원들을 따라 밖으로 나가면서  ‘정말 많은 분들이 밤낮없이 고생하시는구나’ 생각했어요. 또 제 조카가 2018년에 태어났거든요. 3년 반만에 처음 봤는데, 벌써 다섯살이라는 거예요. 프랑스였다면 생일이 지나지 않았으니 이제 세 살이 갓 넘었을 텐데(웃음). 다시 한번 한국식 나이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였어요. 

이번 책에는 ‘새로운 삶을 시작한 나와 타인’의 이야기가 담겼어요.

오래 전부터 ‘새로 시작하는 사람들’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 이유가 뭘까 생각해보면, 저 또한 인생의 조건을 바꾸기로 결심하고 프랑스 유학을 떠나온 경험이 있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때부터 무슨 일이든 두려움을 떨치고 저질러야 성장한다고 믿게 되었거든요. 앞으로도 삶의 전환점이 되는 결심이 또 있었으면 좋겠고요. 

저는 익숙한 환경을 버리고 새로 시작하는 사람들에 대한 동경이 있어요. 제가 유학을 결심한 스무 살 무렵은 스스로의 힘으로 이룬 게 많지 않고, 크게 잃을 것도 없는 나이이기 때문에 실행이 어렵지 않을 수 있지만 나이가 들면 그렇지 않잖아요. 저는 소심하고 겁이 많아서 그런지 익숙한 환경을 버리고 새 삶을 시작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부럽고 존경스러워요. 그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어요. 

인생의 조건을 바꾸겠다는 결심이 어떻게 프랑스 유학으로 이어졌나요?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해서 방황하던 시기였어요. 영화를 공부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던 시기이기도 했고요. 우연히 미술사 책을 읽고 미술사 공부에 빠져들었던 시기이기도 했죠. 서양미술사 책에 나오는 작품들을 직접 보고 싶어서 프랑스 여행을 갔다가 퐁피두 센터 안에 있는 도서관을 들르게 되었는데, 거기서 충격을 받았어요. 한국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많은 영화 서적이 있었거든요. 그때 결심했어요. 영화든 미술사든 공부를 하려면 프랑스에 와야겠다고요. 그날부터 모든 여행 계획을 접고, 파리에 있는 한국 유학생들을 수소문했어요. 유학 생활과 영화학교에 대한 정보를 수집한 뒤, 한국으로 돌아오자마자 유학 준비를 해서 5개월 후에 떠났죠. 

작가후기에 이렇게 쓰셨어요. “3년이 넘는 시간동안 매일 같이 생각했다. 내가 이 책을 과연 쓸 수 있을까, 하고.(258쪽)” 책을 완성하기까지 고민이 많으셨던 것 같아요. 

제가 프랑스로 날아와 완전히 다른 문화권에서 삶을 시작했던 사연, 그리고 그 이후의 인생에 대해 쓰는 내내 ‘이게 사람들이 읽을 가치가 있는 이야기인가’라는 의문이 들었어요. 글의 진실성도 계속 의심하게 되었죠. 그러면서 글쓰기의 의미에 회의가 생기더라고요. 이 과정이 오래 이어지면서 어느 순간부터 제가 쓴 글을 보는 게 너무 괴로웠어요. 몇 달씩 글을 외면한 채 지내기도 했죠. 이번 책은 전작과 달리 제가 살아온 이야기가 중요하게 다뤄졌기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다시 글을 쓸 수 있게 된 원동력은요?

이사를 하고 새로운 환경에서 지내면서 제가 그동안 잘 지내지 못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13년 만의 이사를 계기로 저를 돌아볼 수 있었고, 많은 것을 내려놓으며 편안해졌어요. 글은 쓰는 사람의 상태를 너무나 투명하게 반영해요. 그 사실이 자주 두렵습니다.

 


이방인이라는 정체성을 안고 

이사한 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공간은 어디인가요? 

오랫동안 햇빛이 잘 드는 큰 창과 커다란 테이블이 놓인 거실을 꿈꿨는데, 새 집에서 그런 공간을 갖게 됐어요. 거실에서는 매 시간마다 반짝이는 에펠탑을 볼 수 있죠. 그보다 더 마음에 드는 공간은 서재예요. 저는 보통 새벽에 글을 쓰는데, 책상 너머 창이 정확히 동쪽이라서 해가 뜨는 모습을 볼 수 있어요. 서재만큼은 최대한 내밀하고 창의적인 공간을 만들기 위해 신경을 썼어요. 안에 들어서기만 해도 집 밖에서 쌓인 소소한 스트레스와 잡념을 잊고 자유로워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었죠. 

파리의 부동산 시장은 서울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우여곡절 끝에 집을 매매하게 된 스토리가 책에 담겼는데, 집을 소유한 이후의 마음은 어떤가요?

단순히 ‘소유’에서 오는 만족감은 예상보다 크지 않았어요. 그보다 당분간은 집을 사느냐, 마느냐에 대해 남편과 백분토론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마음이 편해졌죠(웃음). 둘이 함께 어떤 큰 일을 한 가지 해냈다는 뿌듯함도 있고요. 

“20년을 이방인으로 살다 보면, 이방인이 정체성이 된다(139쪽)”고요. 이방인의 정체성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요? 

저에게 이방인은 낯선 존재, 본래 그곳에 속하지 않았던 사람이라는 의미예요. 스무 살 이후부터 늘 ‘먼 곳에서 온 다른 존재’로 여겨지며 살다보니 이제 저를 다르게 보는 시선에 익숙하고 때로는 편안하기까지 하다는 걸 깨달았어요. 파리에서 새 집을 구하러 다니면서 차이나타운의 아파트를 고민하기도 했는데요. 그때 ‘프랑스인들 사이에서 나 홀로 동양인’으로 존재하는 게 더 익숙한 저의 마음을 확인하고 당황하기도 했죠. 저는 ‘다른 사람’으로 여겨지는 일이 쓸쓸하고 외롭다고 하면서도 매번 이방인이 되는 상황을 선택하고 있더라고요. 나를 아는 사람이 없는 곳에서 낯선 존재가 될 때 느낄 수 있는 해방감과 자유를 놓지 못하는 것 같아요. 

한편 아시아 여성으로 차별받는 일에는 참지 않는 모습에 뭉클했어요. “나만의 일로 여기고 조용히 넘어가는 건 일종의 직무유기라는 생각이 외국생활의 해를 거듭할수록 묵직하게 마음을 누른다(69쪽)”고요. 일종의 사명감일까요? 

파리에 살다 보면 프랑스어를 못하는 한국인들을 만나는 일이 많아요. 거리에서 관광객을 마주치기도 하고, 아직 프랑스어에 능숙하지 못한 유학생이나 주재원들도 많죠. 그런 분들을 돕고 때로는 지켜야 할 것 같은 이상한 사명감이 들어요(웃음). 저는 원래 남의 일에 관심이 많은 편이 아닌데, 그런 감정이 생기는 게 신기하더라고요. 그동안 동양에서 온 이방인으로 살며 겪은 억울한 경험이 많기 때문인가 봐요.



작은 선택들이 만든 ‘다른 삶’ 

오랜 기간 영화감독을 꿈꾸셨다고요. 낯선 나라로 불쑥 유학을 떠났을 정도로 영화가 좋았던 이유가 무엇인가요? 

결국 ‘다른 삶’에 대한 관심이었던 것 같아요. 어두운 공간에서 스크린에 빛이 영사될 때 그 흡입력이 엄청났어요. 두세 시간 동안은 영화에 몰입해 타인의 삶을 함께 살아보고, 고민하는 경험이 너무 매력적이었죠. 내가 처한 현실은 비루하고 생활은 단순하게 흘러가지만 영화를 통해 세상의 다양한 삶을 만날 수 있는 게 좋았어요. 그렇게 내 삶도 더 멀리에서 조망할 수 있게 되고요. 

“진짜 버티기는 생계의 문제다. 생계가 문제가 되지 않으면, 진짜 버티기가 아니다(176쪽)”라는 문장에 밑줄을 그었어요. 현실적인 이유로 꿈을 포기한 것에 대한 후회는 없으세요? 

지금도 영화하는 친구들을 만나 이야기할 때 가장 즐거워요. 그들의 삶이 제일 부럽고요. 하지만 후회는 없어요. 제가 영화를 계속했다면 그들처럼 의연하게 버티지 못했을 거예요. 사람마다 각자 타고난 그릇과 재능이 있는데, 저에게는 현대 사회에서 영화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재능이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다만 ‘언젠가 기회를 만들어 볼 수도 있겠지’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마다 각자의 때가 있고, 영화를 만드는 일에 나이 제한은 없으니까요.

작가님의 삶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던 ‘영화’가 지금은 ‘글’로 치환되었다는 느낌이 들어요. 2013년 1월, 파리로 가는 밤 비행기 안에서 ‘목적을 가지고 글을 써보자’는 생각을 하셨다고요. 

영화를 접고 직장생활을 시작한 지 3년쯤 됐을 무렵이었어요. 영화를 만들고 시나리오를 쓰는 일을 하며 10년여를 보내다가, 저의 생각과 개성을 내놓을 수 없는 상황이 오니 지쳤던 것 같아요. 이대로 지속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직관적으로 들더라고요. 이전부터 글을 써왔지만 보통 시나리오나 생각을 길게 정리하는 수준이었거든요. 문득 ‘영화를 위한 글을 쓸 수 없다면 책을 위한 글을 써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작가가 되는 건 평생 한 번도 꿈꿔보지 않은 일이라 막막했는데요. 당시에 쓴 일기를 보니 ‘너무 늦은 나이지만, 그래도 시작해 보자’ 같은 말들이 써있더라고요. 그때 겨우 서른 세 살 즈음이었는데 말이에요(웃음). 그  작은 결심이 여태껏 이어져 다른 삶이 만들어졌어요. 지금은 글쓰기가 제 삶을 지탱하는 힘이에요.

책을 쓰고 난 뒤 비로소 깨달은 생각이 있나요? 

원고를 완성할 무렵에 불현듯 깨달았어요. 자신의 의지로 선택해 새로 시작하는 삶은 ‘이전과 다른 삶’이기도 하지만, ‘다수의 삶’과도 다르기 쉽다는 걸요. 그러니 보편적이지 않은 삶이란 누구에게나 쉽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에요. 이건 누구든 사회의 소수자가 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죠. 자신의 의지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이 많은 사회에서는 삶의 모양도 그만큼 다양해질 수 있어요. 현재의 상태에 마침표를 찍고,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분들이 계실 텐데요. 그분들께 이 책이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곽미성

파리 1대학과 7대학에서 영화학 학사, 석사, 박사준비과정(DEA)을 마쳤다. 몇 편의 영화작업 후 우리나라 방송사의 파리지사에서 7년간 근무했다. 지은 책으로 『그녀들의, 프랑스식, 연애』, 옮긴 책으로 『파리지엔은 사랑하기를 포기하지 않는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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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 "글을 매개로 사람을 만나는, 참 뭉클한 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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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 저자

『활활발발』의 부제에 담긴 ‘담대하고 총명한 여자들이 협동과 경쟁과 연대의 시간을 쌓는 곳’을곰곰이 읽어본다. 양다솔, 이길보라, 이다울, 이슬아, 하미나. 이 이름들과 저 ‘담대하고 총명한’이라는 수식은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 ‘협동과 경쟁과 연대’는 또 어떤가. 매주 수요일 저녁, 서로의 글을 “존경과 예의”를 담아 정직하게 비평하는 시간. ‘어딘글방’의 시간은 두껍게 쌓여서 지금 곳곳에 찬란한 빛을 내비치고 있다. 그리고 그곳의 중심이 되어주던 사람 ‘어딘’은 『활활발발』에 이렇게 썼다. 

“풍성하고 윤택하고 장렬하고 쪼잔하고 비겁하고 명랑하고 다정한 글들이 삶을 찬연하게 만들었다. 축복받은 글방이었다.”  _(121쪽) 

 

※ 이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됐습니다. 



어딘글방과 어딘 

책을 보고는 표지에 적힌 ‘어딘’이란 이름에 가장 먼저 눈길이 갔습니다. ‘김현아’가 아닌 어딘이라는 이름을 이 책의 지은이로 넣어야 했던 이유가 분명히 있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거든요. 

이번 책에 어딘이라는 이름을 사용한 건 위고출판사 조소정 편집자 님의 의견이었습니다. 작가가 글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편집자는 책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종종 작가보다 더 작가의 글을 사랑하기도 하고요. 어딘이라는 이름으로는 처음 내는 책이 되었습니다, 덕분에.

조금 더 궁금해지는데요. '어딘'이라는 이름에 담긴 작가님의 정체성은 어떤 것인가요? 

어딘은 ‘하자센터’에서 창의적글쓰기 프로젝트를 할 때부터 사용한 닉네임입니다. 다양한 연령대의 청년과 청소년이 모이는 글쓰기 모임에서 ‘언니’ ‘오빠’ ‘선배’ ‘후배’ ‘선생님’ 등 사회적 호칭을 쓰는 것이 글을 바라보는 데 혹은 피드백을 하는 데 선입견을 가지게 하지 않을까, 하는 맥락에서 나이와 상관없이 닉네임으로 서로를 부르기로 했습니다. 어떤 글이든 문자를 해독할 줄 안다면 나이와 상관없이 읽는 것이고, 그러고 보니 책에는 ‘청소년관람불가’가 거의 없지요. 영화라면 ‘영상물등급위원회’ 같은 것이 있는 반면 책의 경우 심의기관이 없는 걸로 알고 있는데 어떤지 모르겠네요. 나이가 어린 ‘독자’와 나이가 많은 ‘독자’, 어느 편의 감상이 옳고 그르다고 할 수 없는 문제니까요. 합평의 과정에서 모든 사람의 의견은 평등합니다. 어딘의 의견도 여러 명의 의견 가운데 하나고요. 그리고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순간 약간 뻗대고 반항하고 싶잖습니까, 청소년 시기에는. 저만 그랬을까요(웃음).

작가님은 10년 넘게 글방을 해온 이유를 “재미있어서”(9쪽)라고 하셨죠. ‘재미’라는 말이 함축하고 있는 다양한 감정, 기억과 깨달음을 상상해보았는데요. 글방지기 이전의 김현아와 글방지기 이후의 어딘은 어떻게 달라졌는지, 어떻게 다른 사람인지 궁금합니다.

‘어딘글방’을 하기 이전에도 사실 다양한 형태의 글방을 했습니다. 20대 때는 ‘청계피복노동조합’에서 ‘문학반’이라는 이름으로 일주일에 한 번 모여 글 쓰고, 책 읽고, 엠티 가고, 문집 만들고 했고요. 학원에서 논술을 가르치면서도 많은 청소년들과 글쓰기를 했지요. 20대 내내 어린이글방도 계속 했고요. 그러니까 어딘글방은 그 연장선상에 있는 활동이었고 저한테는 자연스런 일이기도 했습니다. ‘글’을 매개로 사람들을 계속 만났던 거지요. 글을 매개로 사람을 만난다는 것, 참 뭉클한 시간들입니다. 가장 정직한 모습을 마주할 수 있는 순간이고요. 

어딘글방이 배출(!)한 멋진 작가님들이 지금 출판계를 빛내고 있어요. 양다솔, 이길보라, 이다울, 이슬아, 하미나 등. 이분들의 시작과 성장을 지켜본 입장에서 동료 ‘글방러’들의 행보가 각별하게 느껴질 것 같습니다.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고 계세요? 

그러게요, 참 훌륭한 작가들입니다.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냐면, 음... 안쓰러운 마음이 가장 크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한 권의 책이 나오기까지의 분투를 잘 아니까요. 그럼에도 그들이 한국 사회에 던지는 질문은 참 중요하고 소중한 것이라 흥미진진하게 관전하고 있습니다. 『활활발발』 책이 나오고 한 매체의 기자분께서 글방 시절 사진을 보내 달라고 하셨는데요. 아이고야,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습니다(웃음). 이 말인즉슨 우리가 글방을 할 적에는 우리의 이야기가 책이 될 거라고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거죠.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다면 사진이라도 좀 찍어 둘 걸 그랬습니다(웃음). 


그럼에도 쓰고 싶은 사람

무엇보다 글방러들을 ‘동료’로 바라보는 작가님의 태도가 내내 인상적이었습니다. 스승-제자 관계가 아닌 “언젠가 이들이 나의 동지가 되리라는 믿음”(149쪽)을 갖고 있는 존재로서 글방러들을 바라보시잖아요. 이에 대한 작가님의 생각을 듣고 싶어요. 이는 곧 사회를 함께 살아가는 어른으로서 마땅히 가져야 할 마음이라고도 생각했거든요.

아마 어딘가에서 우리는 만났을 거다. 눈 내리는 만주벌판, 지리산 어느 골짜기, 광활한 시베리아 평원 그 어디쯤에서, 만났을 거다 이 생에 오기 전 어느 시절에. 밤을 새워 산을 넘고 식어버린 주먹밥을 함께 먹고 서로의 눈썹에 달린 고드름을 바라보며 깔깔 웃지만 눈두덩이 시큰거리던, 이 생에서 다시 보리라 생각지도 못했던 어느 시절에, 단단하고 유연하고 고운 네가 있어 비바람과 배고픔 따위 견디어내었으리라, 아직 이 생이 시작되기 전 어느 시절에.  

황지은은 잘 사는 청년인가, 

질문하지 않겠다 

동지는 판단하지 않는 거다 

믿을 뿐이다.

함께 일했던 청년들을 인터뷰한 ’잘 사는 청년’ 시리즈 중 ‘황지은’ 편에 썼던 글로 마음을 대신하겠습니다. 어린이글방을 하면서 늘 생각합니다. ‘이 양반들이 장차 세계를 구할 분들이다.’ 이들의 성장과정에 잠시 참여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지요. 영광의 시절을 만들어낼 분들이니까요. 

『활활발발』에는 어딘글방에서 만난 멋진 글방러들의 이야기뿐 아니라 쓰는 사람의 태도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이야기가 가득해요. 글을 쓰는 삶, 글을 통해 세상을 보고 해석하는 삶과 그렇지 않은 삶은 얼마나 다를까요? 쓴다는 것은 한 사람의 삶에 어떤 의미를 준다고 생각하세요? 

글을 쓰는 삶과 빌딩 청소를 하는 삶과 농사를 짓는 삶은 동등합니다. 어떤 삶이든 스스로의 경험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해석하지요. 글을 쓰는 사람들은 ‘우연히’ 글쓰기를 하게 된 사람들입니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글을 쓰는 사람들, 쓰지 말라고 하는데도 쓰는 사람들. 그러니 그들은 글쓰기를 통해 세상을 해석하고 스스로의 삶을 조직하고 관계를 확장해 나가는 사람들이라 할 수 있겠지요. 글을 ‘통’하지 않고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고, 글을 ‘통’하지 않고 살았던 역사가 훨씬 더 길고, 글을 ‘통’하지 않고 살아가는 종種이 훨씬 더 많습니다. 코끼리도 개미도 천둥오리도 숭어도 느티나무도 글을 ‘통’하지 않고 생을 살아내지요. 쓴다는 것은 인류에게 큰 의미일 뿐 지구상의 다른 모든 생명들에게는 의미 없는 일이지요. 나무나 베는 일이라고나 할까요.(웃음) 다만 그럼에도 쓰고 싶은 사람은 쓰는 거지요.

한편 작가님은 우아한 독자로 남을 수 있으면, 웬만하면 쓰지 말라고도 하시잖아요.(웃음) ‘그럼에도 써야 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업, 이라고 생각합니다. 하하. 글에게 멱살 잡힌 사람들.

그렇다면 작가님에게 글쓰기는 어떤 의미인가요? 시를 쓰는 것이 부끄러웠던 시절로부터 청소년들과 글을 쓰고 그들과 동료가 된 지금에 이르기까지, 쓰는 일은 작가님께 얼마만큼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 듣고 싶습니다. 

그냥, 씁니다. 그러니까 제가 어떤 일을 하더라도 글은 계속 쓰는 거지요. ‘베트남전쟁 당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학살’ 일을 할 때도 그 이야기를 글로 썼습니다. 여행학교 로드스꼴라 이야기도 글로 썼습니다. 그 과정에서 만났던 근사한 사람들 이야기도 쓰려고 계획하고 있습니다. 하와이 여행을 하면 글로 씁니다. 왜냐, 너무 아름답고 매혹적이고 가슴 아프고 분노하게 되고, 사랑, 하게 되니까요. 그러다보니 쓸 이야기는 너무 많고 그에 비해 나는 아프거나 바쁘거나 합니다. 글쓰기는 그러므로 저한테 특별한 일이라기보다는 일상적인 일입니다.   


쓰기의 결기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느냐는 질문에 작가님은 “일주일에 한 편씩 한 번도 빠지지 않고 3년”(106쪽)이라고 답하곤 하신다고요. 꾸준한 수련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일 텐데요. 한편으로는 그 시간에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이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마음은 무엇일지도 생각하게 됩니다. 지금, 이러한 시간 앞에 서 있는 분들에게 어떤 말을 전해주고 싶으세요?  

내가 아주 좋아하는 일도 일주일에 한 번, 3년을 하기는 참 어렵습니다. 어떨 때는 맹장 수술을 할 때도 있고, 어떨 때는 이사를 해야 하고, 어떨 때는 엄마가 아프고, 어떨 때는 내 시간을 몽땅 털어 돈을 벌어야 하니까요.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글은 그 과정에서 나오는 겁니다. 흔들리고 망설이고 주춤거리면서도, 가는 거지요, 스승과 사형(師兄)과 동료들이 있는 곳으로. 집요하게 나를 흔들고 길들이려 하고 굴종하게 만들려는 것들, 에 종종 결연하게 맞서야 하는데 그 결기는 오랜 수련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내 몸을 펜으로 만드는 훈련, 은 쉽지는 않지요. 요즘은 펜이 아니라 손가락이라고 해야 하나요.(웃음) 

어딘글방에서 중요한 것 중 하나는 합평이 아닐까 싶어요. 혼자 쓰는 것과 합평을 해나가는 것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명징하고 깐깐하고 정직한 비평의 언어가 쌓이고 쌓일 때 자신의 글에도 엄정할 수 있다”(39쪽)는 말씀이 중요하게 들리는데요. “스스로를 담금질하는 말”로써의 합평의 의미를 설명해주신다면요? 

습작시절, 을 누구나 거친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날 갑자기 걸작을 쓸 수는 없으니까요. 대부분의 작가들도 아마 습작시절 합평의 경험이 있을 겁니다. 합평은 내 글이 어떻게 읽히는지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통로입니다. 글을 쓰는 사람들이 모이는 글방에서라면 사실 합평에 큰 상처를 받지 않아도 됩니다. 모두 쓰는 사람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글에 대해 말하는 것 같지만 동시에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니까요. 내 글도 변변치 못한데 남의 글을 비평하다니, 하는 생각 따위는 버리고 열심히 피드백을 하는 것이 밤을 새며 글을 써온 사람에게 보내는 존경과 예의입니다. 그리고 그 비평의 언어는 고스란히 쌓여 내 글에도 반영되니 합평을 즐기시길요.

글쓰기는 혼자 하는 행위지만 동료의 존재는 또한 각별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의미에서 어딘글방의 치열함, 솔직함, 연대가 정말 인상적이에요. 그런 의미에서 어딘글방의 합평 규칙을 듣고 싶습니다. 

‘나는 이 글의 최초의 독자다. 글쓴이는 이 글을 쓰기 위해 고군분투, 사생결단 치열한 시간을 보냈다. 그러므로 아주 정직하고 정확하게 내가 읽은 소감을 말하려고 최선을 다한다. 글과 작가는 분리해서 생각한다. ‘나’라고 말해지는 사람조차 글에 나오는 등장인물일 뿐이므로 작가와 글을 동일시하지 않는다. 합평의 과정에서 나오는 종종 개인적인 이야기는 글방 밖으로 옮기지 않는다. 인용은 반드시 허락을 받고 한다.’ 등등입니다.    

그런데 합평에는 왜 그러한 규칙이 필요한 걸까요? 어쩌면 이것은 글쓰기의 기본 자세, 쓰는 윤리와도 닿아 있는 이야기 같아요. 

‘작가는 어떤 이야기든 쓸 수 있다. 이 세상에 쓰지 못할 이야기, 란 없다. 독자는 자신이 읽은 글에 대하여 어떠한 이야기도 할 수 있다. 다만 작가는 자신이 쓴 글에 대해 독자는 자신이 한 말에 대한 무게를 지면 된다’라는 것이 글쓰기와 책읽기의 윤리, 라고 생각합니다. 작가라는 자 무릇 세상의 윤리를 의심하고 교란하고 넘어서려는 자, 이므로. 다만 어딘글방에서는 그 내용을 예의를 갖추어 하자는 정도, 라고 보시면 될 듯합니다.

언젠가 글방을 해보고 싶은 분들, 내게 맞는 글방을 찾고자 하는 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다양한 글방이 많이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경향과 지향도 아마 조금씩 다르겠지요. 나는 어떤 글쓰기를 원하는가, 에 대해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고 그에 맞는 글방을 찾아가는 노력을 해보면 어떨까요. 그러니까 글쓰기를 통해 위로와 위안을 얻고 싶은 분도 있을 거고, 글쓰기를 업으로 해보고 싶은 분도 있을 거고, 글쓰기를 통해 사람을 만나고 싶은 분도 계실 거예요. 내 욕망은 어디쯤인지 잘 들여다보고 그에 맞는 글방을 찾거나 혹은 스스로 조직해보시길요.

어딘글방은 지금 어디쯤에 와 있나요? 앞으로도 계속될까요? 

지난주에 새로운 글방을 시작했는데 오, 눈부시게 이쁜,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어떤 이야기를 품은 사람들인지 함께 긴 여행을 떠나볼 예정입니다. 이 봄을 그들과 함께 보낼 수 있어 다행입니다. 좋은 시절에도 험난한 시절에도 우리 모두 서로에게 다행인 사람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어딘글방에 놀러오세요, 여러분. 



*어딘

대학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했고, 1993년 전태일문학상을 받았다. 시민단체 ‘나와우리’를 설립해 베트남전쟁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문제를 풀기 위한 활동을 했고 청계피복 노동조합의 문화학교 일을 하기도 했다. 어린이 글쓰기교실, 입시논술, ‘고정희청소년문학상’ 등 글쓰기와 관련한 일을 지속적으로 하는 동안 학교 안과 밖의 청소년들이 경계를 넘나들며 서로를 지지하고 격려할 장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 이후 공교육과 대안교육, 로드스쿨러, 홈스쿨러 등 다양한 영역에 속해 있는 이들과 다양한 문화작업을 기획 진행해왔다. 하자센터에서 청소년들과 함께한 ‘창의적글쓰기’ 프로젝트가 이후 ‘어딘글방’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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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나에게 갭이어(gap year)가 필요하겠어? 자문해본 적이 있는 독자라면 『우리는 아직 무엇이든 될 수 있다』를 쓴 김진영 작가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이 책은 ‘갭이어’를 반드시 가지라고 추천하는 책이 아니다. 일하는 마음이 어딘가 크게 변한 것 같을 때, 그 시그널을 무시하자 말자.


책 출간 후 각별한 축하를 받았다.  ‘우아무 사랑 위원회’가 창단됐다고 하던데?

서로의 삶 깊숙이 서로의 일과 삶을 응원하는 친구들이 있다. 이들이 나보다 먼저 작년 3월, 7월 각각 첫 책을 냈다. 서로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기에, 그리고 우리 모두 이벤트와 축하와 기념을 좋아하는 본투비 기획자들이라 소박하지만 아주 유난스럽게 서로의 출간을 축하하기 시작했다. 이미 앞선 두 친구의 출간기념회에서 웬만큼 할 수 있는 서프라이즈는 다했다고 생각했는데 (책 모양 케이크, 100쇄 기원 초대형 풍선 등) 역시나 이 기획자 둘은 상상도 못한 방식으로 '우아무'의 생일을 축하해주었다. '우아무 사랑 위원회'가 주는 크리스탈 감사패. (내 이름이 단독으로 박힌 상패는 난생 처음이다) 나도 아직 어색한 내 새끼를 '사랑'해주는 위원회가 있다니.

요즘 근황은?

첫 책을 쓰고 작가가 되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심지어 출간 후 작가 소개란에 쓴 메일 주소로 단 한통의 메일만 왔다. 하지만 잔잔히, ‘우아무’의 안부가 전해진다. 정말로 책을 '읽은' 사람들의 공감과 토로, 반가움 등이 가득 담긴 안부를 전해 받을 때마다 쓰는 동안은 무척 고통스러웠지만 결국 쓰기 잘 했다, 싶다. 요즘은 다큐멘터리에 대한 책을 쓰고 있는데, 여전히 고통스럽다. 두번째는 처음보다 쉬울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다. 그럼에도 이 책 역시 쓰고 나면, 쓰기 잘했다, 이 고통을 잘 견뎠다 싶겠지.

<폴인 – 일하는 사람의 갭 이어> 연재를 계기로 책을 출간하게 됐다. 

연재를 하면서 19번의 전화 인터뷰와 6개의 정식 인터뷰를 했는데 내 안에도 인터뷰어 이상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내가 번아웃을 겪기 전과 후를 모두 알고 있는 편집자님께 두 개의 원고와 기획안을 보냈다. 다행히 ‘자기만의 방’의 페르소나인 '김시영' 씨와 일하는 마음의 겨울을 맞은 '나'의 고민이 잘 맞았다.

책 제목을 읽는 것만으로도 힘이 생긴다. 희망적이다.

편집부가 원고에서 발견해준 문장이다. 사실 처음 들었을 때는 좋다고 생각했지만 곱씹을수록 '될 수 있다'가 마음에 걸렸다. 무엇이 돼도 안 돼도 괜찮다는, 지금의 나를 충분히 살피고 내 중심을 잡자는 책이라서. 또 내가 아직 번아웃에서 회복된 것 같지 않아서 이 제목을 결정하기까지 무척 고민했다. 결론적으로 편집부에게 무척 감사하다. 출간 후 감사하게도 제목이 좋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다큐 에세이(텍스트로 쓴 다큐멘터리)’라는 독특한 콘셉트가 책 디자인부터 펼쳐진다.

‘갭 이어’를 주제로 다양한 사람들을 인터뷰할수록 '질문' 이상의 하고 싶은 이야기가 생겼다. 하지만 나는 늘 카메라 뒤에서 질문만 하던, 타인의 이야기를 담은 촬영본을 가지고 내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엮어가던 사람이었다. 막상 백지에 내 이야기를 쓰려니 텅 빈 화면에 커서만 꿈뻑꿈뻑 쳐다보기 일쑤였다. 그러던 차에 편집부에서 '다큐 에세이'라는 콘셉트이자 장르를 제안했다. 어떻게 하면 건강하고도 즐겁게 일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며 카메라를 들고 그 답을 찾아가는 저자의 로드무비같은 책을 만들자고. 그 덕에 쓸 수 있었다.

어떤 독자들에게 갭이어를 꼭 생각해보라고 추천하고 싶은가?

이 책은 갭이어를 가지시라고 추천하는 책이기보다 갭이어를 가져도 괜찮다에 가깝다. '나 정말 더이상은 이대로 못 살것 같다', '주말과 휴가로는 도저히 충전이 되지 않는다', '일하는 마음이 어딘가 크게 변한 것 같다' 하는 어떤 시그널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부디 그 시그널을 무시하지 않았으면 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커리어 중간에 갭이어를 가지는 것은 정말 쉽지 않다. 실제로 만난 인터뷰이들은 대부분 갭이어를 매우 적극적으로 선택했다기보다 갭이어가 '주어진' 것에 가깝다. 더이상은 일을 지속할 수 없을 정도로 몸이나 마음의 건강이 악화된 것. 그래도 이런 상황에서 갭이어를 '선택'하는 나름의 특단의 조치를 내렸기에 모두들 자신만의 속도와 방향을 재정비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인터뷰이들의 이야기 중에 꼭 하나의 문장을 소개한다면?

"20년 차가 되어도 진로 고민은 계속해요. 20대 땐 30대가 되면 더이상 고민이 없을 것 같고, 30대 땐 40대가 되면 일에 고민이 없을 것 같죠. 하지만 일을 하는 동안에는 평생 진로 고민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20년차 MD이자 브랜드기획자 허윤의 인터뷰 중 문장이다. 그와의 인터뷰 전에는 나보다 5살, 10살, 20살씩 많은 언니나 선배들과 커리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그들 역시 나처럼 고민을 하고 있는 사실을 알게 될 때면 좌절했다. 5년후, 10년후, 20년 후에도 지금 이 혼란과 방황이 계속된다고?! 너무 끔찍하지 않은가. 그런데 허윤님과의 인터뷰 후에는 이런 고민이 고단하고 지리하다기 보다 좀 더 자랑스럽게 여겨진다. 일을 사랑하는 사람들, 일에 꽤나 많은 삶의 부분을 쏟고 있는 사람들, 일과 나를 분리하는 것이 어려운 사람들이라면 고민하는 것이 너무도 당연하니까.

책을 쓰고 달라진 점이 있나?

이전보다 아주 조금,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잔잔히 전해져 오는 ‘우아무’에 대한 공감의 메시지가 정말로 큰 힘이 된다. 일을 열렬히 사랑하면서도 번민하는 마음은, 당신뿐만이 아니라는 말을 하기 위해 쓴 책인데, 그 말을 오히려 내가 돌려 받는다. 그리고 나는 '팀'으로 일하는 것이 즐거운 사람이라는 데에 더 큰 확신을 갖게 되었다. 원고를 쓰는 시간은 외로웠지만, 책을 만드는 과정은 각 분야의 전문가와 함께였다. 나의 지분은 10%뿐이고. 내 책이면서 나만의 책이 아닌 것. 책이 나오고 퍼져가는 과정을 '함께' 경험하고 있는 이 시간이 정말 즐겁고 감사하다. 앞으로도 나는 팀으로 일하는 데서 행복을 느낄 것이다.

의외의 독자들을 상상해본다면?

아직 번아웃이 오지 않았고, 번아웃이 뭔지 잘 모르는, 그래서 번아웃이란 사실 조금은 꾀병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하는 독자분들에게 추천한다. 그리고 주변에 번아웃으로, 무기력으로, 일과 진로에 대해 고민하고 방황하는 친구나 동료, 가족들에게 선물하기를 강력히 권한다. ‘우아무’가 가장 가닿고 싶은 코어(core) 타깃은 사실 번아웃과 우울, 무기력의 터널 2/3 지점을 통과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독자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

책에도 각주로 썼지만, 마음이 최소한의 건강을 유지하고 있을 때, 주변 사람들 혹은 여러 경험담을 토대로 몇 개의 '심리상담/정신과 119 리스트'를 갖고 있기를 정말로 강력히 추천한다. 마음에도 언제든 응급상황이 올 수 있다. 처음에는 내 마음과 정신의 응급상황을 어디에 호소해야 하는지, 어디를 찾아가면 나아지는지 알지 못해 무척 괴로웠다. 괴로움과 막막함이 무너진 마음에 공포심을 더했고.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다면 얼른 심리상담 선생님의 전화번호 최소 1개를 핸드폰에 저장하자. 그 번호가 언젠가 나를 구원할 것이다.



*김진영

이야기를 듣고, 쓰고, 찍는 다큐멘터리스트. 좋은 질문을 던져, 세상에 흩어져있는 이야기를 엮어내고 전달하는 일이 좋아 다큐멘터리 PD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미디어 환경의 변화를 온몸으로 겪으며 콘텐츠 기획자로, 때로는 브랜드 콘텐츠 전략가로 하는 일이 확장됐다. 일의 언어는 달라도, 결국 평생을 이어갈 내 일의 이야기는 하나라고 믿는다.




우리는 아직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우리는 아직 무엇이든 될 수 있다
김진영 저
휴머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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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그림책작가 정진호 “책으로 건축을 하는 중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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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책으로 집을 짓고 있다, 고 말하는 건축가. 그리고 볼로냐 라가치상을 두 차례 수상한 그림책 작가. 정진호 작가가 4년 만의 신작 『심장 소리』로 돌아왔다. 이번 작품은 ‘심장 소리를 모아둔 공간’에서 태동했다. 이야기를 세상에 내어놓으며 작가는 알게 됐다. 이것은 한 아이의 기억과 탄생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을.

‘이야기가 담긴 집을 꿈꾸며 건축을 공부했고, 지금은 책 속에 이야기 집을 짓고 있는’ 정진호 작가는 첫 그림책 『위를 봐요!』로 ‘2015년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에서 라가치상을 수상했다. 이어서 2018년에 『벽』으로 두 번째 라가치상을 받았다. 또한 『부엉이』로 ‘한국안데르센상’ 미술 부문 우수상을 『벽』으로 ‘황금도깨비상’을 받았다. 이들 작품과 함께 『별과 나』, 『나랑 놀자』, 『여우 씨의 새 집 만들기』를 쓰고 그렸다. 그린 책으로 『노란 장화』, 『루루 사냥꾼』, 『투명 나무』, 『작은 연못』 등이 있다.



기억과 탄생

『심장 소리』의 이야기는 언제 시작됐나요? 

일본의 테시마라는 섬에 심장 소리를 모아둔 공간이 있어요. ‘심장 소리 아카이브’라고, 외국 작가가 만든 공간이에요. 그 작가가 모은 수많은 심장 소리들이 보관돼 있고, 그곳에 가면 직접 녹음을 할 수도 있고 들어볼 수도 있어요. 저도 직접 가본 건 아니고 친한 교수님이 다녀오셔서 저한테 얘기해주신 거예요. 그 공간이 너무 좋았다면서 경험을 섬세하게 묘사해주셔서 제가 직접 간 것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이후에 자료를 찾아보기도 했고요.

‘심장 소리 아카이브’에 대해 들으셨을 때, 어떤 생각이 드셨어요?

문득 ‘왜 심장 소리를 보관하고 싶어 할까’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리고 그 교수님이 그곳에서 만났던 관람객 얘기를 해주셨는데, 한 남자가 심장 소리를 들으면서 엄청 울고 있었대요. 무슨 일일까 해서 물어봤더니 자기 아버지의 심장 소리를 듣고 있었던 거예요.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같이 와서 심장 소리를 녹음해 둔 상태였는데 해마다 기일이 되면 그 심장 소리를 들으러 온다는 거예요. 그 사람은 심장 소리로 아버지를 추억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서 ‘이걸 그림책으로 그려보면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나온 책이 『심장 소리』예요.

이야기가 완성되기까지 긴 시간이 걸렸죠? 

그 아카이브에 대해 들은 게 7~8년 전이에요. 그리고 1~2년 지난 후에 처음 더미북 작업을 했어요. 그런데 뭔가 제 마음에 딱 와 닿지 않더라고요. 특히 마지막 부분이요. 그래서 아직은 완성되지 않았다, 라는 생각에 계속 넣어뒀었어요. 그러다 6년 만에 다시 꺼내서 출간하게 된 거예요. 

어떤 변화가 있었던 건가요? 

이 책이 의미하는 바를 제가 나중에 깨달았던 거죠. 처음에는 저도 (작품 속의) 아이가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기억하는 방식으로 심장 소리를 가지고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6년 만에 책을 꺼내서 읽다 보니까 다른 의미를 더 가지고 있다는 걸 알게 왰어요. 저는 이 아이가 태어나는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이 책을 썼던 거예요. 물론 심장 소리를 기억하기 위해서 뛰는 것이기도 한데, 결국 마지막 부분에서 자기만의 심장 소리로 다시 태어나는 이야기인 거죠. 그렇게 생각하고 책을 다시 봤더니 ‘나한테 이야기가 이렇게 다르게 보일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 정도 의미면 책을 내도 되겠다 싶었어요. 『심장 소리』는 누군가를 기억하기 위한 책으로 읽어도 되고 태어나는 한 아이의 이야기라고 읽으셔도 좋을 거라는 생각을 했어요. 




『심장 소리』의 ‘나’는 자신의 심장 소리를 들으면서 ‘다른 사람’을 기억해요. 

태아가 14주 정도부터 소리를 들을 수 있대요. 아마 우리 체내에 들어있는 가장 최초의 기억이 그 심장 박동음일 거라고 저는 생각했거든요. 이 아이 안에 남아 있는 태초의 기억도 몸 안에서 들었던 그 심장 소리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죠.

작품을 쓰시면서 작가님도 누군가를 떠올리셨나요?

특정인을 떠올리거나 그러지는 않았는데, 아무래도 제 어린 시절을 많이 생각하면서 썼죠. 다른 작가님들은 어떨지 모르겠는데, 저는 작가가 기본적으로 자기 안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리고 저는 특히 어렸을 때 경험한 것들을 가지고 많이 쓰는 것 같아요. 『위를 봐요!』도 그렇고 『3초 다이빙』도 그런데요. 『3초 다이빙』은 아주 어릴 때 이야기라면 『심장 소리』는 조금 더 크고 나서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사실 이번 책을 쓰면서 열두 살, 열세 살 무렵을 많이 생각했어요. 그때 육상 선수로 활동했었거든요. 중거리 달리기 선수였는데, 그때 제 심장 소리를 되게 많이 들었어요.






항상 간결한 색과 선을 사용하시는데요. 『심장 소리』에서는 하나의 색만 사용하셨어요. 

어떤 색을 썼다면 거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어야 된다고 믿는 편이에요. 예쁘게 보이려고 색을 쓴다는 건 스스로 좀 용납할 수 없어 하고, 분명한 의미와 콘셉트가 담겨 있는 색을 써야 된다고 생각하는 편이라, 그래서 좀 색깔을 가려 쓰는 편이긴 해요. 지금까지는 주로 노란색과 파란색을 많이 썼는데, 이 책에서는 빨간색을 썼어요. 심장을 상징하는 색깔이기도 하고, 뭔가 따뜻함을 주는 색깔이기도 하잖아요. 사실 작업을 하면서 고민을 했어요. 색깔을 다양하게 쓰려고 했던 건 아니지만, 여러 가지 베리에이션을 줬었죠. 그런데 저는 『심장 소리』가 한 아이가 태어나는 이야기라고 생각했고, 이 아이가 어머니 뱃속에서 심장 소리를 들으면서 태어나는 준비를 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러면 전체가 다 빨간색이 되는 게 맞겠다고 생각했어요. 그 아이에게는 심장 소리가 세상의 전부니까, 다 심장의 색깔로 가는 게 맞겠다는 결론을 내렸죠. 



책으로 집 짓는 건축가

건축을 전공하셨습니다. 『위를 봐요!』『별과 나』『벽』으로 ‘건축3부작’을 완성하셨고요. 

제가 처음에 만든 책 세 권인데, 사실 그 세 권은 어떻게 만들지 정해져 있었어요. 『위를 봐요!』는 평면도를 가지고 그림책을 만들어봐야겠다는 생각으로 만들었고요. 단면과 투시도로 한 권씩 더 만들어봐야겠다는 계획이 잡혀 있었어요.

처음 작가님이 등장하셨을 때 ‘건축을 공부한 작가로서 색다른 작품 세계를 보여준다’는 점에 주목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은데요. 작가님은 점점 더 넓고 다양한 영역의 작품을 보여주셨어요. 

사실 건축이라는 분야도 엄청 다양해요. 우리가 보통 건축이라고 하면 집 짓는 것만 생각하는데, 아티스트로서의 건축가들도 있거든요. 페이퍼 아키텍처(Paper Architecture)라고 하는데, 도면이 주는 아름다움이나 알맞게 맞춰져 있는 선들의 느낌을 가지고 아트를 하는 분야도 있어요. 정말 다양한 여러 가지 영역이 있고, 저는 ‘책으로 건축을 해나가야지’라는 생각으로 계속 임했던 거였어요. 초창기에는 가장 기본적인 평면, 단면, 투시도를 책으로 표현해보자고 생각했던 거고, 이후에는 ‘내가 건축에서 얻었던 영감이나 생각 같은 걸 반영해서 책에 한 부분은 들어가 있게 하자’라는 생각으로 작업한 거예요. 

『심장 소리』도 ‘심장 소리 아카이브’라는 건물에서 영감을 받아서 시작하게 된 거잖아요. 그것도 내 책에서 건축을 표현하는 한 가지 방식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죠. 그림책의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내 책에서 어떤 게 건축의 한 부분으로 녹아 들어갈 수 있을까’를 고민해요. 없으면 채워 넣으려 하기도 하고요. 처음에는 건축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것들을 가지고 작업했다면, 이후부터는 ‘난 이것도 건축이라고 생각해’ 하는 것들이 자꾸 들어가게 된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까 (영역이) 넓어진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가 프로필에 ‘이야기가 담긴 집을 꿈꾸며 건축을 공부했다. 지금은 책 속에 이야기 집을 지어 아이들에게 선물하고 있다’고 쓰여 있는 이유를 알 것 같아요. 

저는 책으로 건축을 하는 중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다양한 방식으로 건축을 할 수 있다는 걸 좀 보여주고 싶기도 하고 스스로 증명하고 싶기도 해요. 그래서 저는 건축하고 있다고 말하고, 간혹 건축 공부하는 친구들이랑 만나서 이야기할 때도 너희들은 집을 실제로 짓겠지만 나는 책으로 짓고 있다고 얘기를 하죠.

볼로냐 라가치상을 두 차례 수상하셨습니다. 늘 수식어로 따라붙는 이력이기도 한데요. 부담스럽지는 않으세요?

부담스러웠죠. 그런데 두 번째 상이 저한테 좀 더 특별했던 게, 첫 번째 상은 ‘오페라 프리마’라고 신인상 부문이었거든요. 그런데 두 번째 부문은 건축?예술 디자인 분야(아트, 아키텍처 앤드 디자인)였어요. 건축상을 받았다는 게, 나름 되게 뿌듯하더라고요. 학교 다닐 때 교수님들이 제 건축을 되게 싫어했거든요. (웃음) 항상 ‘건축스럽지 않다’는 말을 들었어요. 다른 학생들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건축을 하는데 저는 맨날 엉뚱한 거 한다고 생각하셨으니까요. 그런데 상을 받으니까 내가 건축을 하고 있다는 걸 누군가한테 인정받은 기분이었어요. 내가 꾸준히 건축 작업을 해가고 있다는 걸 이 사람들은 인정을 해주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서 기분이 좋았죠.

작가님의 작품을 볼 때마다 ‘시선’에 대해 생각하게 돼요. 작업하실 때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부분인가요? 

네, 저의 작품 세계 전체를 관통하는 말은 ‘시선’인 것 같아요. 뭔가를 바라보는 눈. 처음에 만든 책 세 권(『위를 봐요!』, 『별과 나』, 『벽』)이 평면 단면 투시도로, 어디에서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거였잖아요. 다음의 책들도 그걸 염두에 둔 것 같아요. 이제는 위치만 달라진 게 아니었죠. 『별과 나』는 우리가 지나치기 쉬운 작고 미약한 것들을 바라보는 방법에 대해서 얘기한 책이고 『3초 다이빙』은 내가 뭘 못하는지 스스로를 돌아보는 이야기였다면 『심장 소리』는 앞을 보는 이야기라고 말하고 싶어요. 이 책은 (작품 속의) 아이가 태어나러 가는 이야기라고 말씀드렸는데, 그래서 이 아이는 꾸준히 앞만 보고 달려가요. 주변을 보기도 하지만. 그래서 계속 건녀편으로 건녀편으로 이어지고 있고, 아이는 한 발짝씩 나아가는 이야기예요. 『3초 다이빙』이 자신의 약점을 고백하면서 시원하게 털어내는 이야기라면 『심장 소리』에서는 끈질기게 한 발짝씩 나아가는 아이의 이야기를 그리고 싶었어요. 



두 번 읽어주세요

곧 다른 작품들도 출간되죠?

올해는 책이 좀 많이 나올 예정이에요. 창작책도 한 권 나오고, 그래픽노블도 하나 준비하고 있는데요. 그래픽노블은 스케치는 거의 다 됐고 그림만 들어가면 되는 상태예요. 그리고 6월에는 에세이집이 나올 예정이거든요. 고정순 작가님과 편지 형식으로 글을 썼던 프로젝트가 있는데, 매주 한 편씩 1년 동안 메일링을 했어요. 그 글들이 책으로 묶여서 한 권씩 나올 예정이에요. 서로에게 보내는 편지라기보다는, 하나의 주제로 고정순 작가님과 제가 에세이를 한 편씩 써서 독자 분들한테 보내드리는 형식이었어요. 서간문보다 더 에세이 같은 느낌일 거예요. 그 책이 6월에 나오고, 그래픽노블은 9월이나 10월 말쯤 나올 것 같습니다.

그래픽노블은 어떤 이야기인가요? 

SF예요. 달토끼 이야기인데, 지구인 줄 알고 달에 잘못 착륙한 토끼 이야기입니다. 처음에는 그림책 콘티로 짰는데 출판사에서 보시고 이 주제에 더 많은 이야기가 들어가면 재밌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제가 지금까지 주제 위주의 책을 써왔잖아요. 『벽』도 그렇고, 강렬한 메시지를 전하거나 주제를 보여주는 거에 집중하다 보니까 이야기가 풍부해서 기승전결이 확실히 보이지는 않았는데, 이야기성이 강한 책도 한 번 써보고 싶었어요. 

이전보다 분량이 훨씬 많아졌겠어요. 

양이 거의 대여섯 배 늘었어요.(웃음) 그리고 그림책과 만화책 연출이 전혀 다르다 보니까, 그런 부분에서 고민이 있긴 했어요. 그래서 자료 조사를 핑계로 만화책을 되게 많이 읽고 있어요. (웃음) 새로운 시도를 하다 보니까 저도 재밌더라고요.

제목은 정하셨어요?

‘나의 달을 지켜줘’예요. 아마 그 제목으로 나올 거예요. 저는 모든 책을 제목부터 정해놓고 시작하거든요. 『나의 지구를 지켜줘』라는 순정만화가 있는데, 제가 어렸을 때 되게 좋아했던 만화예요. 그 만화에서 모티프를 받아서 만든 이야기라 제목을 ‘나의 달을 지켜줘’로 지었어요.

『심장 소리』의 독자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까요? 

제가 예전에 육상 선수였다는 말씀을 드렸는데, 그때 주로 800m 달리기를 했었어요. 400m 트랙을 두 번 도는 달리기인데, 단거리는 결승점이 보이고 그걸 향해서 달려가면 되잖아요. 중거리는 좀 달라요. 400m를 두 번 돌아야 하니까, 자기가 원래 서 있던 자리에 꼭 한 번은 돌아와야 되거든요. 그러니까 다음 바퀴부터는 이전 바퀴의 나와 같이 뛰는 거예요. 『심장 소리』를 쓰면서 그때의 기억을 많이 떠올렸어요. 이 책도 끝의 두 부분이 앞의 두 부분이랑 겹치도록 되어 있는데, 이 아이가 처음의 출발점으로 다시 돌아와서 태어나고 그 다음부터는 자기 삶을 살아가는 거예요. 책을 다시 읽으시면 두 번째 바퀴를 읽어보실 수 있을 거예요. 그래서 이 책은 최소 두 번은 보셨으면 좋겠어요.




*정진호 (글·그림)

이야기가 담긴 집을 꿈꾸며 한양대학교에서 건축을 공부했다. 지금은 책 속에 이야기 집을 지어 아이들에게 선물하고 있다. 첫 그림책 『위를 봐요!』와 『벽』으로 2015년, 2018년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에서 라가치상을 두 차례 수상했다. 또한 『부엉이』로 한국 안데르센상 미술 부문 우수상을, 『벽』으로 황금도깨비상을 받았다.쓰고 그린 책으로 『위를 봐요!』, 『벽』, 『별과 나』, 『나랑 놀자』, 『여우 씨의 새 집 만들기』가 있고, 그린 책으로 『노란 장화』, 『루루 사냥꾼』, 『투명 나무』, 『작은 연못』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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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스토리] 그림책작가 이수지 “벽 없는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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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SNS에 이수지 작가의 작품 사진이 올라왔다. 오랜만에 그림책을 펼쳤다는 한 독자는 “아, 이게 그림책이지.”라고 짧은 한 문장을 남겼다. 작가는 울컥했다. 어떻게 내가 각별히 생각했던 지점을 분명하게 짚었지? 좋은 독자들이 있다는 사실 자체에 고마운 감정이 들었다. 지난 3월, 이수지 작가는 『여름이 온다』로 2022년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 일러스트레이터 부문을 수상했다. 한국 작가가 ‘아동 문학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안데르센상을 받은 것은 처음이다. 수상 소식을 듣기 일주일 전, 이수지 작가를 서울 광장동 작업실에서 만났다.



적극적인 독자를 원한다

작업실 아래에 미술학원이 있네요. 왠지 학원에서 대가가 탄생할 것 같네요.

미술학원 선생님은 제가 누군지 몰라요(웃음). 

월요일 아침이에요. 직장인들은 가장 싫어하는 요일. 작가님은 좋아하는 요일이 있나요?

특별히 없어요. 작업을 해야 하면 일단 작업실에 오기 때문에. 아침에 출근하면 폭풍 이메일에 답장을 해야 하기 때문에요. 제가 잘 쉬는 성격이 아니라서요. 올해부터는 좀 운동도 하고 시간 관리도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중이에요. 

작년 여름에 『여름이 온다』가 출간되고 첫 개인전 〈이수지: 여름 협주곡〉을 여셨죠. 무척 흥행했고요. 와, 우리나라에 그림책 작가 독자들이 이렇게 많았나?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어떠셨어요?

제 작품을 집약적으로 전시한 개인전은 처음이었거든요. 어린이 친화적인 전시도 아니었고 오히려 작가성을 조금 강조한 전시였는데도 불구하고 많은 분이 찾아와주셔서 놀랐고 감사했어요. 전시를 연 공간이 찾아오기 쉬운 위치가 아니었어요. 그런데 막 아이들 손잡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언덕을 올라오시는 거예요. 그런데 갤러리가 너무 시원하니까 막 기뻐하시고(웃음). 그 모습을 보는데 되게 기분이 좋았어요.

『여름이 온다』는 비발디 <사계> 중 ‘여름’을 모티프로 한 작품입니다. 작품을 그리는 내내 <사계>를 들으셨다고요. 

집에서는 CD로 듣고 작업실에서는 스트리밍으로 듣고 정말 많이 들었어요. 작업실에 오면 일단 바로 음악을 틀고 시작했으니까요. 중학교 3학년 아들이 음악을 정말 많이 듣는데 앱에 들어가면 랭킹이 보이나 봐요. 이번 달에 제일 많이 들은 노래가 나오는데, 도저히 엄마를 이길 수 없었다며(웃음). 

그림책치고도 판형이 큰 편이죠. 148쪽의 방대한 그림책이고요.

원래 ‘여름’의 1, 2, 3악장 중에 한 악장만 할 생각이었어요. 그러다 어느 것도 놓칠 수 없다, 욕심이 생겼고요. 그렇다면 1, 2, 3악장을 각각 다른 책으로 만들어서 하나의 케이스에 넣어보자고 생각했다가 다시 하나로 묶는 방향으로 결정했어요. 책은 작가가 읽는 순서를 정해주잖아요. 사실 그림책도 그림을 보는 순서를 정해주는 건데 하나로 묶여 있을 때 주는 느낌이 더 좋을 것 같았어요.

새 악장이 시작될 때 종이가 바뀝니다.

새로운 악장이 시작될 때마다 다른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콘서트에 가면 악장이 바뀔 때 박수는 못 치지만 뭔가 변화한다는 기대감이 생기잖아요. 종이를 만지고 넘길 때, 그런 마음을 느꼈으면 했어요.

작업하시면서 각별히 좋았던 장면이 있나요?

색종이 콜라주 작업을 할 때 좋았어요. 원하는 느낌이 한 번에 나왔거든요. 아이들이 물풍선을 던지면서 노는 장면은 실제로 저희 가족이 시골에 살 때 친구들이 놀러 왔을 때 기억으로부터 시작됐어요. 예전에 문승연 작가님의 『우리는 벌거숭이 화가』의 그림 작업을 하면서 종이에 물감을 칠한 다음 물감 자국이 있는 종이를 콜라주 하듯 오려서 작업한 적이 있었는데요. 예상치 못한 느낌이 나오니까 재밌더라고요. 그때는 색종이를 쓸 생각은 못 했는데 이번에는 작정하고 했죠. 물감으로는 표현하지 못한 색감이 있고, 종이를 오리는 순간 제가 모르는 우연이 계속 개입되니까 재밌었어요.

겉 표지를 펼치면 한 장의 멋진 포스터를 만날 수 있어요. 포장된 선물을 받는 느낌이 들어요.

큰 공간을 이용해서 크게 펼쳐지는 그림을 선물하고 싶었어요. 『여름이 온다』는 그래도 큰 판형이지만 항상 그림책들이 너무 작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뭔가 확장되는 느낌을 주고 싶었죠.

『여름이 온다』도 글 없는 그림책이에요. 그동안 작가님의 인터뷰를 찾아보니 꼭 빠지지 않는 질문 중 하나가 “글 없는 그림책은 어떻게 읽어야 하나?” 더라고요.

글 없는 그림책은 마이너 장르예요.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그림책은 아니죠. 글에 익숙한 독자들이 대부분이니까 글 없는 그림책을 만났을 때 많이 당황해요. 그런데 이때 이 당황스러움을 어떻게 핸들링하느냐에 따라 독서가 확장될 수 있어요. 도전 의식이 생기는 거죠. 이 그림이 나한테 무슨 이야기를 해줄까? 내 마음속에 들어온 이야기가 뭘까? 생각하면서 일단 끝까지 읽어보는 거예요. 그림책도 그렇고 어떤 낯선 예술 장르를 만났을 때 처음엔 다 당혹스럽잖아요. 하지만 아! 이거 나는 몰라, 하고 덮어버리면 거기서 끝나고요. 반면에 모르지만 알고 싶다, 궁금해하는 순간들을 놓지 않으면 다음 단계로 가는 예술의 향유자가 될 수 있죠. 글 없는 그림책은 항상 이런 도전을 주죠. 되게 적극적인 독자를 원하는 거예요.

글 없는 그림책은 오히려 더 천천히 읽어야 할 것 같아요.

그럴 수 있죠. 어떤 단서를 찾아내서 앞으로 나가야 하는 건 독자의 몫이니까요. 느긋하게 모호한 의미를 즐기고 질문을 던지면서 자신의 답변을 마련해 온전히 자기 것으로 가져가는 것, 글 없는 그림책을 즐기는 방법이죠.



생각해보지 못한 영역으로 가는 즐거움

책 첫 장에 “내가 어릴 적, 항상 음악을 켜두신 엄마께”라고 적으셨어요. 어머니께서 클래식을 많이 들으셨나요?

클래식뿐 아니라 온갖 음악을 다 들으시고 좋아하셨어요. 우리가 흔히 라디오를 배경 음악처럼 틀어놓곤 하잖아요. 그런데 엄마는 이 음악을 감상하려고 부러 선곡해서 틀어놓으신 느낌이었어요. 집에 LP판도 많았는데요. 덕분에 어렸을 때부터 음악은 ‘듣는 것’이라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아요. 뭔가를 일부러 찾아서 듣는 일, 되게 적극적인 독자이면서 청자인 거잖아요. 이 태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여름이 온다』를 통해서 어린이 독자가 비발디의 <사계>를 알게 되고, 언젠가 우연히 이 음악을 듣게 된다면 ‘어, 나 이거 알아.’라며 반가움이 피어날 수 있잖아요. 

음악을 들으면서 그림책을 보는 것, 확실히 다를 것 같아요.

얼마 전 한 초등학교 선생님이 그림책 강연을 하면서 QR코드로 음악을 재생해줬대요. 그리고 교실 앞에 그림책을 갖다 놓았는데 몇몇 아이들이 책을 들고 자기 자리에 가서 정말 자세하게 책을 보고 있더래요. 음악과 책, 순서가 바뀔 수도 있지만 이 음악으로부터 책이 궁금해진 것에 대해 너무 고마웠다는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2020년에 출간된 『물이 되는 꿈』도 음악으로부터 출발한 책이죠. 루시드 폴의 동명의 노래를 수채화로 표현하셨어요. 어떻게 두 분이 함께 작업하게 되셨나요? 

책을 출간한 출판사 대표님이 ‘물이 되는 꿈’이라는 노래로 책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대요. 그림책을 전문으로 만드는 출판사는 아닌데요. 루시드폴에게 연락을 했더니 흔쾌히 좋다고 했대요. 그림 작가를 누구로 할지 이야기하다 저에게 연락을 주셨고요. 저는 워낙 루시드 폴 노래를 오랫동안 좋아했는데요. 어떤 분위기의 음악을 하는지 알고 있으니까 제안을 받았을 때 뭐랄까 그냥 너무 자연스럽게 느껴졌어요. 최근에 노랫말로 만든 그림책이 많이 나오고 있잖아요. 아마 그런 분위기도 한몫하지 않았을까요?

작품을 보면 작가의 성격이 드러나잖아요. 작가님 스스로 “그림을 공들여서 그리는 스타일이 아니다. 순간의 느낌을 빠르게 그리는 걸 선호한다.”고 하셨어요.

네. 약간 즉흥성을 좋아하는 것 같고요. 이때 아니면 안 될 마음에 관심이 많아요. 아까 제가 화방이나 문구점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뭔가 영감이 떨어지길 기다린다고 했잖아요. 의외의 것에서 촉발돼서 내가 생각해보지 못한 영역으로 가는 걸 기대하고 약간 즐기는 기분도 있는 것 같아요.

최근 M. B. 고프스타인의 『할머니의 저녁 식사』 번역도 하고 글 작가와 협업도 꾸준히 하세요. 어떤 기준으로 일을 선택하시나요?

시간은 정해져 있는데 제안은 계속 오거든요. 그런데 출판사에서 제안을 주실 때, 제 작업의 어떤 면이 잘 나타날 것 같아서 이 원고를 의뢰한다고 말씀해주세요. 일단 설명을 읽고 정말 그런가?  생각해보고요. 그동안 해보고 싶었던 주제였는데 혼자서는 안 나올 것 같은 작업, 뭔가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 싶을 때 수락하는 것 같아요. 뭔가 흥분이 되는 작업을 주로 하게 되는데 이건 개인 작업을 할 때와 같은 기분이에요.



내놓는 게 전부인 사람들

경계 삼부작 작업 노트인 『이수지의 그림책』에서 “그림책으로 인해 수혜를 받는 이가 오히려 작가 자신.”(154쪽)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림책 작가들을 만나면 이 책이 잘 팔리든 팔리지 않든, 작업 자체에 대한 만족도가 대단히 높다고 느꼈어요. 물론 작업의 어려움이 크지만 그림책을 만드는 일이 직업이라는 것, 그림책 장르에 관한 애정이 정말 각별하다고 여겨집니다. 작가님은 슬럼프가 없었다는 이야기도 하셨었죠?

(웃음) 그 이야기를 했다가 엄청나게 폭격을 받았는데요. 없어요. 없죠. 그런데 슬럼프가 없다는 말의 맥락을 살펴보면, 슬럼프를 말하기엔 이 분야가 너무 발랄한 경향이 있어요. 내가 하는 이야기와 하고 싶은 이야기, 그리고 이 이야기를 듣는 대상을 보면 정말 어린아이 같은 사람들이 많아요. 그래서 고민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 고민을 조금 가볍게 만드는 능력이 탁월하다고 해야 할까요?

그림책 작가님들은 대화를 나누다 보면 명료한 지점이 있어요. 보통 말씀도 길게 하지 않으시고 간결하죠.

아마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이거면 됐지.’ 하는 생각이 있는 것 같아요. 말하는 게 그냥 액면가 그대로인 사람들이 많은데요. 저는 그런 면이 되게 좋아요. ‘나는 뒤에 뭔가가 더 있어.’라고 말하지 않고 그냥 앞에서 내놓는 게 전부인 사람들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잖아요. 그림책이 저에게는 그런 느낌이에요. 만약 어떤 그림책이 계속 뭔가를 숨겨 두고 이야기해주지 않으면 오히려 매력이 떨어지는 것 같아요. 이게 아이들의 본성에 맞닿아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아이들로부터 출발한 장르이기 때문에 창작자도 같은 마음으로 작품을 만들고 또다시 아이 같은 마음으로 순환하는 게 아닐까 생각해요.

미술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하고 영국 캠버웰 칼리지 오브 아트에서 북아트를 공부하셨어요. 북아트를 공부한 경험이 그림책 작업을 하는데 어떤 도움이 됐는지 궁금합니다.

책이라는 매체를 정말 진지하게 볼 수 있는 기회가 됐던 것 같아요. 그 전까지는 언제나 메시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치기 어린 마음이 늘 그렇지만 내가 세상을 향해서 무슨 말을 하느냐가 중요하지, 그 외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북아트를 공부하면서 책이라는 매체를 깊숙하게 들여다볼 수 있었고 관점이 바뀌었다고 할까요? 이렇게 상자 밖으로 한 번 나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제 첫 책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인데요. 이 그림책을 보면 무대가 펼쳐지다가 한 발자국 물러나보면 그게 벽난로라는 걸 알게 되고, 또 한 발자국 물러나면 그냥 책의 한 페이지에 있는 그것조차도 하나의 일루전이었다는 걸 깨닫게 돼요. 나중에 생각해보니 당시 제 상태가 그랬던 것 같아요. 내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이 이 세계의 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고, 갑자기 중요도가 바뀌는 순간을 느꼈어요. 책을 만드는 일이 하나의 놀이처럼 인식되면서 책이라는 매체가 갖고 있는 물성의 형식으로 이야기를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 기가 막히게 멋지다고 느꼈죠. 그리고 이 느낌을 누군가에게 줄 수 있는 게 그림책이라면 이거 정말 하고 싶다는 생각이 활활 타올랐어요.

지금도 타오르는 중이시죠?

네, 그 느낌이 여전히 지속되는 걸 보면 그림책이 정말 대단하긴 한 것 같아요(웃음).

작가님의 대표작 『파도야 놀자』는 20개국 이상의 나라에서 번역됐는데 영문판이 먼저 출간됐죠. 첫 책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도 이탈리아 출판사에서 가장 먼저 출간됐고요. 북아트를 공부하는 유학생이었던 2001년, 볼로냐국제아동도서전에 더미북을 갖고 가는 용기는 어떻게 생겼나요?

저도 무슨 용기였는지 알 수 없는데요. 그때는 그냥 남들도 다 하는데 나라고 뭐가 달라? 어떻게 되나 해보자, 하는 마음이었던 것 같아요. 당시 영국에 있었으니까 이탈리아에 가기 쉽잖아요. 볼로냐에 북페어가 있는데 되게 재밌고 유명하다는 말을 듣고 프랑스에 사는 친구랑 같이 갔어요. 가보니까 제 또래 아이들이 큰 가방을 들고 다니면서 출판사랑 약속을 잡고 자기 작품을 보여주고 피드백을 받는 거예요. 그 모습이 되게 좋아 보였어요. 내 작업을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데 그 상대가 필드에 있는 사람이고 또 돈이 드는 일도 아니니까요. 놀라웠죠. 그래서 이듬해 포트폴리오도 만들고 그림책도 두 권 만들어서 이걸 팔아봐야지 하는 일념으로 갔던 거예요. 당시 유럽 쪽 출판사들이 많이 열려 있었던 것 같은데요. 이탈리아 코라이니 출판사도 이렇게 어린 외국 작가랑 창작 그림책을 만든 건 처음이었다고 해요. 자기들도 실험을 해본 거죠. 묘하게 인연이 돼서 미국에서 『파도야 놀자』가 나왔을 때 이 출판사가 이탈리아 저작권을 사가면서 『파도야 놀자』가 이탈리아에서 많이 팔렸어요. 이번 『여름이 온다』도 계약했고요.



굉장한 비밀은 없다

며칠 전 작가님의 SNS에 올라온 작업 노트를 봤어요. 수년 전인 것 같은데 아이들의 낙서가 보이더라고요. 두 아이를 양육하면서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는 일이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그렇죠. 지금은 두 아이가 중학생이 돼서 좀 나은데요. 아이가 어렸을 때는 말이 통하지 않으니까 힘들었어요. 아이들에게 지금 뭐가 필요한지 눈에 다 보이니까 모든 시간을 할애할 수밖에 없는데 뭔가를 만들고 싶은 마음이 계속 생기니까요. 아이들이 너무 예쁜 것과는 별개로 매 순간 분통이 터지면서 왜 이렇게밖에 할 수 없나, 왜 나는 항상 최선이 아니라 차선을 선택해야 하는가, 그런 생각이 들면서 억울했어요. 물론 왜 그래야 하는지 모르진 않죠. 제가 이렇게 사는 걸 선택했으니까. 책임을 져야 하니 어쩔 수 없는데, 내가 원하는 퀄리티를 뽑아내지 못했을 때 이걸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하나?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어요. 하지만 상황이 달랐다면 제가 더 잘했을까요? 글쎄 또 그럴 것 같지도 않고요. 생각이 계속 엎치락뒤치락 변했던 것 같은데 물리적인 시간이 부족한 게 가장 힘들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로부터 얻는 에너지가 굉장히 컸을 테고요.

그럼요. 아이들만이 줄 수 있는 사랑스러움, 정확히 표현할 수 없는 보람과 여러 짜릿한 감정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 시기를 견뎠던 것 같아요.

동료 그림책 작가들과 ‘바캉스 프로젝트’ 활동을 하고 ‘흰토끼프레스’라는 이름으로 독립 출판물도 만들고 판매하시죠. 어떻게 기획된 프로젝트인가요?

짧고 굵게, 평소 해보고 싶었지만 출판은 안 될 것 같은 종류의 책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으로 기획했어요. ‘바캉스’란 본업으로 하는 작품 외에 휴가처럼, 놀이처럼 만들어보자는 뜻이고요. 

보통 작가들이 출판사와 책을 만들잖아요. 누가 막 검열하진 않지만 이미 많은 자기 검열을 통해 나오는 정제된 작품이죠. 이를테면 옛이야기를 소재로 책을 만들어보자는 기획을 갖고 하나의 작품을 함께 만들고 또 별개로 각자 작품을 만들어요. 독립 서점에서도 구입할 수 있고 저희가 직접 온라인으로 판매도 해요. 올해도 마감이 얼마 안 남았어요. 제가 막 마감을 쪼고 있어요(웃음).

그림책을 좋아하다 보면 또 만들어보고 싶기도 합니다. 누구나 그림책을 만들 수 있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요. 좋은 그림책을 만들고 싶은 독자가 힌트를 하나 달라고 요청한다면,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싶으세요?

누구나 할 수 있고 하면 된다는 말을 제가 무책임하게 한 것 같은데요.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라는 의미였어요. 왜냐하면 저도 ‘그림책 작가가 되려면 이렇게 하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시작했기 때문이에요. 제가 드릴 수 있는 조언은 내가 알고 있는 상식 내에서 필요한 것들을 피하지 않고 하면 될 것 같아요. 어떤 그림을 그리고 싶으면 잘 그릴 수 있는 스킬을 키워야 하는 것처럼요. 그런데 대개 이런 질문을 하시는 분들을 보면 ‘내가 이게 부족한데 이걸 안 해도 할 수 있을까요?’라는 의도성 질문이 많아요. 그분들께 해줄 수 있는 말은 “피해 갈 수 없어요. 결국 그거 해야지 당신이 원하는 걸 얻을 수 있어요.”예요. 즉 굉장한 비밀은 없다는 말이에요. 

올해 신작이 나오나요?

한국 제목이 아직 정해지지 않았는데요. 미국 작가 팻 지틀로 밀러의 『See you someday soon』이라는 작품에 그림을 그리고 있어요. 할머니와 손주가 서로를 그리워하는 내용인데요. 다이컷이라고 하죠. 종이에 구멍을 뚫어서 아래쪽이 들여다보이는 형식으로 구성되는 작품이에요.





"『여름이 온다』를 잘 들여다보면 『이렇게 멋진 날』도 있고 『우리는 벌거숭이 화가』『강이』『선』『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도 있어요. 그림책 속 아이들은 무대의 주인공이기도 하지만 음악을 듣는 관객이기도 해요. 혹시 관객석 끝에 앉아 있는 사람을 보셨나요? 이게 제 모습이에요." 



*이수지

그림책 작가. 회화와 북아트를 공부했고, 여러 나라에서 책을 펴냈다. 경계 그림책 삼부작인 『파도야 놀자』, 『거울 속으로』, 『그림자놀이』는 여러 나라에서 출간되어 사랑을 받고 있다. 『여름이 온다』로 2022 안데르센상 일러스트레이터 부문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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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작가] 권누리 시인, 좋아하는 마음으로 가득했던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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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손잡기』를 읽으며 투명한 햇살 아래 선 소녀를 떠올렸다. 강한 빛에도 지지 않고 한여름의 감정을 손에 쥔 소녀. “사랑에는 제법 재능이 있습니다”하고 고백하는 시적 화자처럼, 권누리 시인은 인터뷰 내내 ‘너무 좋아하는 마음’에 대해 말했다. 좋아하기 때문에 더는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으로 권누리의 시는 기꺼이 희미해지는 이들의 손을 잡는다.



사랑에는 제법 재능이 있습니다

투명한 빛과 초록의 이미지가 선명한 시집이었어요. 표지의 그림처럼요.

그림은 직접 고른 거예요. 제목 없이 표지에 그림을 가득 채우는 건, 봄날의책 시집의 특징인데요. 평소에도 봄날의책 출판사를 좋아해서 꼭 여기서 시집을 내고 싶었어요. 디자인도 아름답고, 제가 좋아하는 배수아 작가님의 번역서가 나오기도 했고요.

첫 시집이잖아요. 어떤 고민을 많이 했어요?

시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도 끝까지 읽을 수 있는 시집을 만들고 싶었어요. 어떻게 다양한 감정을 독자에게 잘 전할 수 있을까 고민했죠.

「하트*어택」에는 ‘사랑에는 제법 재능이 있습니다’라는 구절이 나오죠. 시를 쓴 사람도 다정한 사람이 아닐까 싶었어요. 

친구들이 “넌 정말 사랑을 잘 한다”는 말을 많이 해줘요.(웃음) 최근에 “얘들아, 어떡하지 나 지금 마음에 사랑이 없어.”라고 했더니, 다들 진심으로 걱정하는 거예요. 그 정도로 원래 다양한 감정을 멈추지 않는 편이에요. 쉽게 사랑을 시작해서일 수도 있고, 좋아하는 마음을 쏟아붓고 후회하지 않아서일 수 있겠죠. 어떤 형태로든 사랑은 늘 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시인의 말’이 인상적이었어요. “그러니까 이제 더는 아무도 죽지 마.”라고 썼죠. 

시에 등장하는 시적 화자와 ‘시인의 말’을 쓰는 시인은 아무래도 다르고 분리되어 있잖아요. 그래서 ‘시인의 말’만큼은 ‘저는 이 말을 전하고 싶었어요’하고 고백하는 느낌으로 최대한 솔직하게 쓰려고 했어요.

시집에서 ‘여름’이라는 단어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아요. 이 계절을 특히 좋아하나요?

무언가를 너무 싫어해서 오히려 좋아하는 마음이 들 때가 있잖아요. 여름이 딱 그래요. 너무 싫고 너무 좋아서 자주 쓰게 돼요. 제가 여름에 태어나기도 했고요. 글을 쓸 때, 저의 출생이나 고향에 대한 이야기에서 시작할 때가 많아요. 그렇다 보니 여름 이야기가 자주 나온 것 같아요.

시 곳곳에 머무는 환한 ‘빛’의 존재도 인상적이었어요.

제 시에서 ‘빛’은 중요한 단어예요. 이 시집에 묶인 시들 대부분을 2019년과 2020년에 썼는데, 최근에 청소를 하다가 당시에 남겨둔 메모를 발견했어요. 제가 이렇게 썼더라고요. “지금까지 사람들이 어둠과 밤의 막막함에 대해서 많이 말해왔다. 그래서 요즘 빛이 일종의 대체재가 되기 시작한 건 아닐까? 그럼 나는 빛을 어떻게 봐야 할까?” 그런 의문에서 출발했던 것 같아요. 「사람들이 사랑하는」에서 빛에 대해 직접적으로 쓴 대목이 있어요. ‘모든 빛을 사랑하는 것 같지는 않다/모든 빛이 사랑하는 것 같지는 않다’ 빛은 어디에나 있지만, 사람들이 빛을 싫어할 때도 있는 것 같아요. 자신들이 보고 싶은 빛을 좋은 것이라 믿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요. 그게 이상하고 무섭게 느껴질 때가 있어요. 그런 마음을 정리하면서 썼어요.

사람, 인간, 인류, 신이 등장하는 시들도 눈에 들어왔어요. 모든 것을 원점으로 돌려놓고 싶은 상상력 같기도 했고, 종말을 떠올리는 아포칼립스적 세계관처럼 느껴지기도 했어요. 

청소년기에 그런 고민을 자주 떠올렸어요. ‘나만 살고 다 죽는 것, 나만 죽고 다 사는 것. 둘 중 뭐가 나을까? 어떤 것이 덜 슬플까?’ 거기에서 시작된 것 같아요. 제 안에서 인간과 사람이라는 단어가 다른 뉘앙스를 가지는데요. 무심코 “저 사람 좋다”와 “저 인간 왜 저러지”라고 말할 때 각각의 어감이 다르잖아요. 그렇게 인간과 사람이 쓰인 문장을 각각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쓰고 싶었어요.

신이 나와서 종교적인 느낌도 들더라고요.

종교를 가져본 적은 없지만, 신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쪽에 가까워요. 믿음이 가는 확실한 존재가 있으면 좋겠어요. 사람들이 어떤 잘못이나 문제를 모두 자신의 책임으로 돌리기보다 차라리 신의 탓을 하는 식으로라도 덜 힘들면 좋겠다 하는 마음이에요. 제 시에 나오는 신이 유능한 존재는 아니에요. 불완전하고 대책없고 슬프고 이상하고, 사람처럼 느껴지죠. 어디에서든 발견할 수 있는 신을 많이 떠올리는 것 같아요.


무엇도 될 수 있는 존재들

‘우리’라는 단어가 나올 때마다, 두 사람이 손을 잡으면서 만들어지는 공동체를 떠올리게 됐어요.

‘우리’라는 단어를 쓸 때마다 고민하는데, 그런 것치고는 많이 쓰는 편이에요.(웃음) 누구도 빼놓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크지만, 그러기는 쉽지 않으니까 작은 단위의 공동체를 향해 편지를 보내는 마음으로 쓰는 것 같아요. 실제로 주변 사람들을 떠올리면서 ‘얘들아, 너희들이 있어서 정말 좋다’하는 마음으로 쓴 시도 있고요.

‘우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세계 안에서, 서로를 이해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장면이 그려지더라고요.

제가 ‘우리’라고 부르고 싶은 사람들에게 보여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쓴 시들이 많아요. 특히 퀴어 공동체나 퀴어 문학을 읽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우리’에 속할 수 있다는 걸 강조하고 싶었어요.

트위터에 “내 시가 퀴어하게 읽히지 않는다면, 퀴어하게 읽힌다면 이유가 뭘까 종종 생각한다”고 남긴 것을 봤어요.

등단작 「내비게이션 미래」를 발표하고 재미있는 감상을 많이 들었어요. 여성들의 연대로 보는 분도 있고, 동거하는 커플 이야기로 읽는 분도 있더라고요.

‘언니’가 등장하니까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겠네요. ‘도로시’라는 캐릭터도 등장하고요.

도로시는 제게 굉장히 좋은 주인공 같은 느낌이죠. 도로시를 발견한 과정에 대해 글을 쓴 적도 있는데요. 제가 좋아하는 수목원 같은 풍경에서 갑자기 누군가를 발견한 거예요. 귀엽게 옷을 입고 있는 여자아이 같은 사람인데, 좋아하는 마음이 드는 거죠. 그때 문득 ‘아, 쟤가 도로시구나.’ 깨닫게 됐어요. 도로시는 너무 사랑해서, 함께 미래를 보고 싶은 사람들인 것 같아요. 그런 존재들이 오래 살아갈 수 있는 세계에 대해 써야겠다고 생각했죠.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함께

작가님은 소설도 창작하고 있는데요. 테테, 낸내, 요한나 등 한번도 들어본 적 없지만 친근한 인물들이 등장하는데요. “이것도 되고 저것도 되는” 이름들에 대해 오래 생각해왔다고요.

시와 소설에서 이름을 짓는 일이 조금 다른데요. ‘퀴어소설’ 하면 떠오르는 작품들이 있는데, ‘퀴어시’로 묶이는 작품은 뭐가 있을까 아직까지는 고민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시를 쓸 때는 ‘도로시', ‘리타'처럼 독자들로 하여금 쉽게 ‘여성’으로 느껴지는 인물을 연상할 수 있게끔 짓고 있어요. 물론 그 화자들은 ‘여성’일 수도 아닐 수도 있겠죠. 한편, 소설에서는 인물의 성별에 대한 이해나 판단을 교란하거나 전복하는 데에 집중해요. 어느 쪽이든 독자들이 다양하게 읽을 수 있도록 가능성을 열어두고 싶어요.

한 인터뷰에서 취미가 ‘아이돌 덕질’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어요. 시인님에게 아이돌은 어떤 존재인가요?

아이돌은 제가 실컷 사랑할 수 있는 존재예요. 물론 아이돌 엔터테인먼트를 둘러싼 논의나 노동, 젠더 이슈, 청소년 인권 등의 문제도 함께 떠오르죠. 그렇지만 분명한 건, 성장 과정에서 아이돌로부터 좋은 영향을 받아왔다는 거예요. 가끔 아무 이유 없이 누구든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는데, 아이돌을 향한 사랑은 마음껏 표현할 수 있잖아요. 그렇게 사랑을 쏟고 그 에너지로 또 다른 사랑을 이어가는, 건강한 사랑의 선순환이 만들어지는 것 같아요. 아이돌을 오래 좋아하다 보니, 팬덤 커뮤니티에서 좋은 친구들도 많이 만났어요. 취미 커뮤니티에서 만난 사람들은 나이 차이에 상관없이 친구가 되거든요. 같은 대상을 사랑하고 표현하면서 새로운 관계가 형성되는 것 같아요. 

몇 편의 시는 좋아하는 아이돌에 영향을 받아 썼다고요. 

「주정」에 ‘우리의 초록빛 비 내리는 한낮의 길’이라는 구절이 있는데, 제가 좋아하는 아이돌의 노래인 ‘초록비’에서 영감을 받았어요. 가끔 지치고 힘들 때, 혼자 노래방에서 부르곤 하거든요. 또, 「소유」에서 ‘끝에서부터 쓰러지고 있는 나의 중간을 재빠르게 쳐내는 일’이라는 구절은 좋아하는 아이돌 멤버들이 도미노를 만드는 장면에서 영감을 얻었어요. 도미노 조각을 열심히 세우고 있는데 거의 완성할 때쯤 전부 쓰러뜨릴 위기가 찾아온 거예요. 그런데 한 멤버가 넘어지는 도미노 부분을 손으로 날려서 남은 것을 무사히 살려 내요. 당시 제가 시간을 들여 쌓아온 관계와 취향이 한꺼번에 무너지면 어떡하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누군가 이걸 끊어준다면 난 다시 시작할 수 있겠구나 용기를 얻었어요.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요?

사람을 웃기고 싶어 하는 사람, 광대의 삶을 자처하는 사람에 대한 에세이를 쓰고 싶어요. 내성적인 성향이지만, 사람을 웃기고는 뿌듯해하는 사람들. 그런 주제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독자들이 시를 어떻게 읽어주었으면 하나요?

읽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을 때,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제 시집이 아니더라도 시를 읽다보면 ‘이걸 내가 어떻게 이해해야 하지’하는 순간에 부딪치곤 하잖아요. 그런데 시집은 정답을 맞추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로지 나 자신이 받아들이는 대로 읽으면 된다고 생각해요. 그저 이 시집의 단어에서 원하는 이미지를 떠올리고, 이 화자가 사랑하고 있구나, 죽고 싶구나, 슬프구나 여러가지 감정이 전달되는 것만으로도 기쁠 것 같아요. 



*권누리 

대구에서 태어났다. 스스로 공주를 사랑할 운명을 타고났다고 생각한다. ‘소녀’들에 대한 이야기를 더 많이 쓰고 싶다. 시집 『한여름 손잡기』를 썼다. 시와 소설을 쓴다.




한여름 손잡기
한여름 손잡기
권누리 저
봄날의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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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소은 "우리는 온전히 충분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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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에서 미국 변호사로, 국제기구 부의장으로, 변화를 거듭해온 이소은. 그가 지나온 시간들을 되돌아보며 발견한 메시지들을 『지금의 나로 충분하다』에 담았다. 삶의 무대가 바뀐 뒤 시작된 정체성의 고민과 그 끝에서 찾은 ‘나다움’의 가치에 대해 말하고, 스스로를 돌보지 않았던 시기를 지나 자신을 소중히 대하는 ‘셀프케어’에 이르게 된 경험을 들려준다. 도전 앞에 움츠러들 때, 스스로의 자격을 의심하게 될 때, 무엇보다 자신 안의 힘을 믿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인터뷰를 마치며 그는 ‘용기’와 ‘응원’을 말했다. 우리는 온전히 충분하므로.



용기의 먼지를 털어내며

첫 책이 출간된 지 10년이 지났습니다. 가끔 방송에서 뵙기는 했는데, 어떻게 지내셨는지 궁금합니다. 

많은 분들이 그러셨겠지만, 저도 세상이 완전히 뒤집어지는 팬데믹을 겪어내면서 많은 변화가 있었던 것 같아요. 삶을 바라보는 시각이 조금 변했다고 해야 할까요. 예측할 수 없는 일이 이렇게 우리 삶에 들이닥치는구나, 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리고 저한테는 굉장히 큰 전환의 시간이었어요. 다니던 회사를 퇴사하고 안식년을 가질 무렵이었는데, 뭔가 활동 개시를 할 그 타이밍에 코로나가 터진 거예요. 그래서 전환의 시간이 됐던 것 같은데, 돌이켜 보면 되게 필요했던 시간 같아요. 그 소용돌이 안에 있었을 때는 힘들었지만 이제는 좋은 시간이었다고 생각돼요. 불안하기도 했고 바닥을 치기도 했지만, 그 힘든 시기에 쓴 글들은 개인적으로 너무 마음에 와 닿고 지금도 보면 눈물이 나요. 그 시간을 안 겪었으면 이렇게 정리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저한테는 불행을 가장한 큰 행운이라고 생각돼요.

처음 집필을 결심하셨을 때, 어떤 이야기를 쓰고 싶으셨어요?

처음에는 뉴욕에서 일의 강도가 센 직업을 가진 여성으로서, 동양인으로서, 이방인으로서, 소수 인종으로서, 이 길을 걸어가면서 도전하고 이겨내면서 나답게 살아낸 이야기를 쓰자고 막연하게 생각했어요. 그런데 쓰다 보니까 훨씬 더 구체화되더라고요. 하고 싶은 이야기도 많아졌고요. 그리고 팬데믹의 시간을 거치면서 날것 그대로 써놨던 원고들이 소화가 됐어요. 밥 짓는 일에 비유하자면 뜸 들이는 시간을 가졌다고 할까요. 그러다 보니까 같은 이야기 안에서도 다른 것들이 보이더라고요. 되게 특별한 경험이었어요. 모든 경험들이 고맙고, 저를 힘들게 했던 사람들한테도 고마움이 생겼어요. 그러면서 오히려 자유로워진 것 같아요. 삶이 나에게 무엇을 주든 나를 돌보면서 이겨낸다면 다 좋은 걸로 돌아오겠구나, 다 고마운 경험이 되겠구나, 그런 믿음이 생겼다고 할까요.

이전에는 어땠나요? 

예전에는 단순히 ‘내 사람에는 감사할 일이 너무 많아’라고 생각했지, 이렇게까지 깊이 생각해 볼 계기가 없었던 것 같아요. 하루하루 사는 데 집중하다 보니까. 그런데 코로나로 인해서 진짜 멈추게 됐잖아요. 그래서 쉼이 필요한 것 같아요. 음악에도 쉼표가 없으면 안 되잖아요. 그런데 저한테는 너무 필요했던 쉼표였고, 그렇기 때문에 제가 나름대로 지금까지 만들었던 하나의 음악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앞서 말씀하시기를 ‘지금 봐도 눈물이 나는 글들’이 있다고 하셨어요. 어떤 글인가요?

「끝까지 해보는 건 어때?」라는 챕터가 있는데요. 제가 되게 두려움이 많을 때 쓴 글이에요. 하고 싶은 일이 앞에 있는데 ‘이건 안 될 것 같아’ ‘그러면 지금까지 내가 이뤄놓은 것들은 뭐였지?’ 하는 생각이 들면서 혼란스러운 시간이 있었거든요. 그때 우연히 이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제가 가수 데뷔했을 때의 이야기는 너무나 많은 데서 공개가 됐어요. (알려진 대로) 정말 축복 받은 어린 시절을 보냈죠. 그런데 그 이야기에서 진짜 포커스를 맞춰야 되는 부분은 ‘과정’이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때는 음악 공책 쭉 찢어서 오려가지고 악보를 만들었거든요. 그런데 지금의 저는 하고 싶은 일을 앞에 두고 ‘이거 좀 허접하지 않나?’ ‘누구한테 보여주기 창피하다’ 이런 생각을 많이 하는 거예요. 그래서 그 글을 쓰면서 ‘맞아, 나에겐 생동감 있는 무모함과 용기가 있었지’ ‘나는 그런 사람이었어, 그런 용기가 없는 것도 아니고 잃은 것도 아니야’라고 생각했어요. 제 안에서 먼지에 쌓여 있던 그것을 다시 끄집어내서 먼지를 털어낼 수 있는 계기가 돼줬던 것 같아요.



내가 언제 이런 일을 해보겠어?

한국을 떠나 미국에 정착하신 뒤에 정체성에 대해 많이 고민하셨던 것 같아요. 그 시간들 속에서 깨달으신 것도 있겠죠?

한국에서는 명백한 다수에 속해 있다가 미국으로 가니까 소수가 됐고, 또 한국에서는 무대에 서고 주목 받는 삶을 살다가 (미국에서는) 클라이언트를 위해서 뒤에서 일해야 되는 상황이 됐잖아요. 거기에서 오는 정체성의 혼란이 되게 컸어요. 익명이 주는 자유로움도 분명히 있지만, 허전함과 그리움도 컸거든요. ‘잘못된 선택이었나?’ 하는 후회도 드는데, 후회하면 자존심 상하니까, 그 후회를 다른 걸로 채우려고 ‘여기에서 끝까지 해서 성공해야 돼’ 하고 스스로를 약간 닦달했던 것 같아요. 

그런 식으로 혼란스러움이나 의문들을 해소하려고 했던 거죠. 그런데 이 책을 쓰면서 많이 정리가 됐어요. 이제는 정체성의 경계에 있는 것도 편하고 좋아요. 삶을 더 많이 볼 수 있는 것 같아요. 여기에도 속하지 않고 저기에도 속하지 않으면서 걸쳐져 있으니까 ‘그냥 둘 다에 속할 수 있는 거잖아’ 하면서 제가 좀 더 확장되는 느낌이에요. 그렇게 생각하려고 하니까 오히려 좋더라고요.

“내 삶에서 정말 중요한 건 한 손에 꼽을 수 있었고, 나머지는 지나가면 희미해지는 과정일 뿐이라는 것을, 충분히 잘 해낼 수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고 쓰셨어요. 이 또한 시간이 가르쳐준 것이 아닐까 싶은데요. 지나간 삼십 대는 어땠던 것 같으세요? 

삼십 대는 진짜 치열했어요. 새로운 일을 하면서 되게 잘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직업에 대한 열망이나 열정이 있어서가 아니라, 되게 이기적으로 ‘그냥 난 잘해야 돼’ 그런 마음이었다고 할까요. 제 성향상 변호사는 맞는 부분도 있고 안 맞는 부분도 많았거든요. 변호사를 계속 하기에는 좀 자유로웠던 것 같아요. (웃음) 그런데 뭐든 잘해내고 싶었어요. 

그 과정에서 저를 돌보지 않고 끝까지 밀어 넣었던 것 같아요. 조금 못하면 ‘그래, 다음에 또 하면 되지’ 생각하면 되는데 ‘아, 왜 그랬어’ 하고 자책하고요. 그래서 저희 엄마가 그건 오만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하셨어요. 왜 네가 다 잘해야 되냐고요. 그때는 서운해 하고 상처받기도 했는데, 생각해 보면 오만일 수도 있었겠구나 싶더라고요. 나는 무조건 잘해야 된다는 생각을 하는 것도 좀 웃기잖아요. 잘하는 것도 있고 못하는 것도 있어야 사람이지.

그래도 그때는 잘하고 싶은 마음이 컸던 것 같아요. (웃음) 노력한 만큼 결과도 나쁘지 않았고요. 

네, 거기에서 성취감을 느끼기도 했어요. 그런데 늘 의문을 가지고 있었고 되게 혼란스러웠어요. 뉴욕이라는 너무나 터프한 사회에서 뭔가를 일궈나가는 자체에서 느끼는 피로감이 있었어요. 가끔은 다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도 들고... 너무 지쳤던 거죠. 그래서 삼십 대는 정말 치열한 시간이었고요. 또 ‘내가 이런 걸 또 언제 해보겠어’라는 경험을 정말 많이 했어요. 

어떻게 보면 가수 생활을 했었기 때문에 더 그랬던 것 같아요. UN 회의에서 연설을 한다고 하면, 예전의 저라면 상상도 못했던 일이고 기회니까, 두려우면서도 되게 큰 에너지로 작용했어요. ‘내가 언제 이런 일을 해보겠어’라는 생각은 앞으로도 계속 할 것 같아요. 그 말을 하면 갑자기 용기가 샘솟는 느낌이 들 것 같아요. 이건 굉장히 특별한 경험이고, 그러니까 한번 해봐도 되고, 해봤는데 결과가 나쁘면 다른 걸 해봐도 되고... 그렇게 생각하면서 자유로움을 많이 느끼고 있어요.

“어차피 인생은 여러 문을 두드렸다가 가까스로 열린 문에 비집고 들어가서 악착같이 내 길을 파면서 나아가는 것이니까”라는 문장은 큰 위로가 됐어요. 

그렇게 생각하면 되게 자유로워지는 것 같아요. 누군가 문을 활짝 열어줘서 레드카펫을 걷듯이 들어가는 게 아니라, 안간힘을 쓰면서 뭐라도 해보려고 하다가 비집고 들어가게 되는 거잖아요. 그게 자신감이 되고, 거기에서 길러진 근육 때문에 다른 문을 좀 더 빨리 힘차게 열 수 있게 되고요. 그렇게 문으로 들어가게 되면 이전에는 몰랐던 다른 창문 밖도 볼 수 있게 되죠. 지금 생각나는 이야기가 있는데, 제가 대학교 때 언니가 한국을 방문했었어요. 

저희 언니가 피아니스트인데, 그때 저한테 ‘소은아, 내 음악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은데 기회가 잘 열리지 않아서 힘들다’고 말했어요. 발만 하나 들여놓으면 열 수 있는데, 그게 쉽지 않아서 고민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 말을 듣고 마음이 많이 아팠는데, 언니의 커리어를 보면 그렇게 비집고 들어가서 하나씩 하나씩 쌓아서 지금은 너무 멋진 일을 하고 있거든요. 그런 것도 하나의 증거가 되는 것 같아요. 이렇게 하는 게 맞는 거라는, 증명인 것 같아요.

이번 책을 쓰시면서 가상의 독자를 떠올리기도 하셨나요? 

그래야 된다고 생각했는데, 안 한 것 같아요. 젊은 친구들에게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있었는데 어떤 구미에 맞춰서 쓰려고 했던 건 아니었어요. 사실 (책 속에) 개인적인 이야기가 많잖아요. 그런데 보편적으로 하는 고민들은 비슷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고요. 그 보편적인 고민을 나만의 방식으로 풀어낸 이야기는 흥미로울 수 있겠다, 라는 바람은 있었죠. 

고유한 방식으로 풀어내면 되니까. 제가 생각할 때 이 책의 메시지는 ‘제가 이렇게 했으니까 당신도 이렇게 해보세요’가 아니라 ‘제가 저만의 방식을 찾아서 했듯이, 당신도 당신의 방식을 찾아서 하면 괜찮아요’인 것 같아요. 그 과정에서 열심히 하고, 하루를 꾹꾹 눌러 살고, 스스로한테 잘하고, (내가) 자격이 있나 없나 고민하지 말고, 그냥 용기를 가지자고 말하는 거죠. 그런 마음으로 쓰지 않았나 생각되네요.

 


우리는 온전히 충분하잖아요

다음 행보가 궁금합니다. 새롭게 계획하고 계신 일은 무엇인가요? 

외국에서 영어로 책을 써보는 것도 작은 꿈이에요. 사실 이번에 에세이를 공모 해봤는데요. (웃음) 저한테는 되게 두려운 일이었어요. 비즈니스 이메일이나 보고서를 쓰는 것과 소설, 에세이를 쓰는 건 다르잖아요. 나한테 과연 그런 능력이 있을까 고민이 돼서 늘 해보고 싶다는 마음만 갖고 있었는데, 1월에 제가 좋아하는 문학 매거진에 공모를 했어요.

이번에도 ‘끝까지 해보는 게 어때?’라고 생각하셨나요?(웃음)

그 에세이를 쓰는 자체로 너무 행복을 느꼈고 자신감이 생겼어요. ‘그래도 문장은 만들 수 있네’ ‘좀 더 많이 읽고 배우면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한 단계 높은 자신감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끝까지 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결과랑 아무 상관없이. 저로서는 아주 작은 걸음마를 하나 뗀 거예요. 

준비하고 계신 또 다른 일이 있다면요? 

지금은 클라이언트를 위해 대변하고 자문하는 일은 안 하지만, 제가 가진 법률 지식과 경력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이 있어요. 요즘 미국에서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많은데, 문화와 정치의 영역을 떠나서 법률적인 각도에서 분석해볼 수 있는 이슈들도 있는 것 같더라고요. 그런 것들을 발전시켜보면 또 하나의 재밌는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계획하고 있어요. 

예전에 인터뷰하신 기사에서 읽었는데, 언젠가 픽션을 쓰고 싶으시다고요. 

언젠가 소설 한 권을 꼭 써보고 싶어요. 사실 소설 쓰는 게 너무 힘든 일잖아요. 제가 작년에 보그(VOGUE)와 함께한 프로젝트로 인터뷰 연재를 했었는데 『파친코』의 이민진 작가님을 인터뷰 했었어요. 그런데 작가님이 우리 각자에게는 ‘나만이 할 수 있는 스토리’가 있다고, 그걸 쓰면 된다고 이야기하시더라고요. 그 말씀이 너무 좋더라고요. 우리 모두에게 나만이 할 수 있는 스토리가 있다면 (나에게는) 그게 뭘까, 그걸 한 번 써내려 가는 것도 되게 의미 있는 삶의 과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도 한번 해보고 싶은 거죠. 그리고 동화책에도 관심이 되게 많아요.

엄마가 되기 전부터 동화책에 관심이 많으셨어요?

네, 동화책을 너무 좋아하거든요. 예전에 BBC에서 진행하는 동화책 입문 수업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그때 수업 진행하신 작가님이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동화책을 쓰는 건 너무 의미 있는 일이다, 아이들에게 처음으로 예술을 소개할 수 있는 기회이고 언어를 소개할 수 있는 기회다.’ 너무 멋진 일 아니에요? 우리 딸한테 엄마가 너무 좋아하는 예술의 한 종류를 소개해줄 수 있는데 심지어 나의 언어로 소개해준다면 얼마나 의미가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습작 해놓은 것들도 꽤 많아요. 하고 싶은 일들이 너무 많은데 (웃음) 계획을 잘 짜서 하나씩 해보려고 해요. 저는 되게 설레요. 어딘가에 소속돼 있으면서 쫓기느라 여러 가지를 못했을 때보다 오히려 지금이 자유로워요. 다양한 관심사를 하나씩 충족시키면서 저만의 어떤 걸 구축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지고 있어요.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까요?

되게 솔직하게 쓴 글이에요. 그래서 사실 겁이 많이 났어요. 나를 많이 드러내면 ‘이래도 되나?’ 싶은 두려움이 생기기도 하잖아요. 그런데 요즘 독자 분들한테 메시지를 많이 받고 있거든요. 많은 분들이 ‘이 책을 읽는 동안에는 그냥 온전히 나였다’고 말씀을 해주시는데, 그게 되게 울컥 하더라고요. 나의 솔직한 감정을 있는 그대로 공유했구나, 라는 생각에 되게 고마웠어요. 그냥 고맙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그리고 또 하나 이야기한다면, 우리는 온전히 충분하잖아요. 그걸 늘 중심에 두고 용기 있게 살아가셨으면 좋겠어요. 응원하겠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이소은

아티스트이자 미국 변호사. 중학교 2학년 때 EBS 청소년 창작 가요제를 계기로 가수로 데뷔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첫 앨범 〈소녀〉를 발표했고, 이후 네 장의 정규 앨범을 냈다. 음악을 사랑하고 무대 위에서 진실했지만, 음악 이외의 세상이 궁금했다. 고려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시카고에 있는 노스웨스턴 로스쿨에서 J.D. 학위를 받았다. 로스쿨 졸업 후 뉴욕 변호사 시험에 합격, 뉴욕에 소재한 로펌에서 소송과 중재 전문 변호사로 일했다. 이후 국제상업회의소(ICC) 국제중재법원의 뉴욕 지부 부의장으로 근무했다. 현재는 뉴욕에서 문화예술 비영리단체를 운영하며, 글과 곡을 쓰고, 법을 다루며, 다양한 미디어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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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곽아람 “우리 모두 더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해 분투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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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이란 무엇인가. 20년 경력의 곽아람 기자는 이 질문을 오래 품고 궁리한 끝에 “읽고 쓰는 것을 넘어서 그 결과물을 어떻게 체화하느냐와 관계가 있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리고 체화를 가능하게 하는 마지막 장소로 대학의 강의실을 떠올렸다. 실용도, 쓸모도 라틴어나 고전 문학, 동양미술사 수업과는 어울리지 않지만 이 공부들은 그를 세계를 깊이 이해하는 힘을 가진 사람, 살면서 공부의 기억으로 종종 위로 받는 사람이 되도록 해주었음을 기억해냈다. 

『공부의 위로』는 곽아람 기자가 스스로의 쓸모를 회의하게 될 때 자신을 의심하지 않고 성실하게 ‘지금 여기’에 최선을 다할 수 있게 해준 대학 시절의 강의실로 순간 이동하는 책이다. 그 모든 쓸모 없어 보이지만 귀하디 귀한 공부들. 이 목록을 보는 것만으로도 공부의 힘을 생각하게 된다.

“분별 있는 개인이 많아지면 세상은 좀 더 좋은 곳으로 변한다”는 곽아람 기자. 그는 『공부의 위로』를 통해 독자 역시 공부의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고, 좀 더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해 분투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 이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됐습니다.



교양이란 무엇인가 

“교양에 대한 책을 쓰고 싶다고 오랫동안 생각했다”(10쪽)고 하셨어요. 교양의 가치랄까, 교양의 힘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다는 욕망은 어디에서 비롯했던 건가요? 

희미하게나마 ‘교양이란 무엇인가’라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된 것은 꽤나 오래되었을 겁니다. 언론에 정치인들의 ‘막말’이 보도되는 걸 볼 때마다(성희롱이라든지 여성 비하 같은 것들 포함해) 궁금했습니다. 많이 배우고 지위도 높은 분들의 언어가 왜 저렇게 아름답지 못할까, 하고요. 학벌이 좋거나 돈이 많거나 높은 자리에 있는 것과 교양은 아무 상관이 없다는 걸 깨닫게 되었어요. 그렇다면 우리가 말하는 ‘교양’이란 무엇인가, 그 ‘교양’이라는 건 대체 어디서 오는가에 대한 질문에 다다랐고요. 그건 결국 읽고 쓰는 것, 또한 읽고 쓰는 것을 넘어서 그 결과물을 어떻게 체화하느냐와 관계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어떻게 체화하느냐, 라고요. 

네, 그 체화라는 것이 단순히 지식을 쌓는 것과는 달리 인간으로서의 어떤 자세, 어떤 품위, 어떤 배려를 체득했느냐와 연관된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렇다면 그런 교육을 받을 수 있는 마지막 장소는 대학이지 않을까, 그중에서도 대학의 교양강의이지 않을까, 하는 것에까지 생각이 미치게 되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중 마침 민음사에서 책을 쓰자는 제의가 들어왔고요. 인문교양서를 주로 내는 출판사의 성격과 이러한 콘셉트의 책이 잘 맞지 않을까 생각했고, 출판사에서도 동의하여 책을 쓰게 되었습니다.

작가님은 이 책을 또한 “모범생으로 살아온 사람의 힘에 대한 이야기”(7쪽)라고 서문에 밝히셨잖아요. 

사실, 입시제도에 오래 시달리다 대학이라는 곳에 온 것이니 대학생 때는 해방감을 맛보고 싶기도 하고, 다시 강의실 의자에 앉아 있기 싫고 그렇죠. 사회에서도 ‘진정한 대학생’은 강의실 밖에서 ‘산지식’을 배우는 거라며 부추기기도 하고요. 그렇지만 대학이라는 공간이 무언가를 끝까지 공부해 어떤 경지에 오른 사람들이 어린 학생들 눈높이에 맞춰 그 지식을 전수해주겠다는 결심을 단단히 하고 있는 곳이잖아요. 더욱이 졸업하면 그런 밀도와 강도의 지식을 한꺼번에 배울 기회는 그 어디에서도 주어지지 않고요.

그러니까 공부의 쓸모에 대한 말씀이기도 한 것 같아요. 

공부의 ‘쓸모’를 이야기하셨는데, 진정한 공부의 ‘쓸모’란 당장은 쓸모 없어 보이는 교양 공부에 있지 않나 싶습니다. 대학 공부의 진정한 쓸모는 대학을 졸업한 후 20년쯤 지나서 깨닫게 되지 않을까요. 그때, 뇌가 아직 굳기 전 청춘의 시절에 흡수한 지식이라는 게 지금 이렇게 내게 도움이 되는구나, 하는 깨닫는 시기가 그쯤인 것 같아요. 교육이라는 것이 씨 뿌리고 수확할 때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인데, 그걸 놓고 “대학 졸업하고 바로 써먹을 수 있는 쓸모 있는 걸 가르치라”고 요구하는 것부터가 어불성설인거죠.

그렇다면 ‘학문하기’를 좋아하던 모범생으로서 작가님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어떤 남다른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세요?

‘학문하기’라고 말한다면 너무 거창해요. 정말 진지한 ‘학문’을 업으로 삼고 있는 연구자들이 세상엔 정말 많으니까요. 저는 ‘학문’이라는 걸 하고 싶었던 20대의 모범생이었던 거죠. 모범생이 가진 힘이라고 하자면 결국은 성실함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기보다는 ‘지금 여기’에서의 의무에 충실한 것이 길게 보면 결실을 얻을 수 있는 길이 아닐까 싶어요. 


쓸모만이 답은 아니다

실용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지금과 같은 시절에 작가님의 공부 목록들, 이를테면 ‘인도미술사’, ‘라틴어’, ‘종교학’ 등을 보고 있자면 낯설기도 하도 궁금증도 생겨요. 이러한 것을 공부한 경험은 지금, 작가님에게 어떤 형태로 남아 있나요? 

일단 눈에 보이는 것으로만 이야기하자면, 상식을 풍부하게 해 주었고요(웃음). 좀 더 진지하게 이야기하자면 세계를 깊이 이해하는 힘을 길러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인도미술사’를 배움으로써 인도에 대한 소설을 접하더라도 좀 더 깊이 들어가 사유를 뻗어갈 수 있게 되었고요. ‘종교학 개론’을 배움으로써 나의 종교만 옳다고 생각하는 독단론에 빠지지 않게 될 수 있었죠. 9·11사태 같은 것이 일어났을 때 종교라는 것이 왜 이렇게 사람들을 분열시키고 폭력적인 양태를 띨 수밖에 없게 되었을까 생각하다 보면 그런 생각의 씨앗은 대학 강의실에서 ‘종교학 개론’을 들을 때 뿌려진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

또 “잊히는 과정에서 정신에게 깊은 자국을 남기고(중략) 고단한 밥벌이의 나날에 자그마한 위로가 될 싹이 움튼다”(9쪽)고도 하셨어요. 

‘위로’라는 측면에서 이야기하자면, 결국 인문학 공부라는 것은 무용해 보이지만 그 무용해 보이는 것을, 무용하더라도 알고 싶다는 욕망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조직원으로서 ‘쓸모’를 증명해야 하고, 그것이 밥값에 대한 대가이기도 한데, 사실 제가 원한다고 해서 제 쓸모를 증명할 수 있는 것도 아니죠.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해 질책을 듣거나 제가 생각해도 제 일의 결과가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스스로의 쓸모를 생각하면서 회의하게 되잖아요. 그럴 때마다 쓸 데도 없어 보이는 라틴어를 단지 좋아서 공부하던 대학 시절의 저를 떠올리면 ‘그래, 꼭 쓸모만이 답은 아니지’라는 생각이 들며 위안이 되었습니다.

특별히 작가님께서 경험했던 ‘공부로 위로 받았던 구체적인 순간’들에 대해 묻고 싶습니다. 

조금 전 말씀 드렸듯이, 라틴어 수업에서의 위로가 「파니스 안젤리쿠스」라는 라틴어 성가를 통해 위로가 되어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순간을 겪었어요. 그러니까 세상에는 아주 오래 전에 만들어진 언어가 있고, 그 언어로 적힌 글이 아직도 전해지고 있고, 당장의 쓸모를 모르면서도 그걸 연구하고 공부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내가 당장은 쓸모 없는 인간이어도 괜찮다는 그런, 쓸모만이 의미 있는 것이 아니라는 그런, 위로 말이죠. 그 외에도 대학교 때 고전 읽기 수업을 많이 들었는데요. 고전을 읽는다는 것은 책에 그려진 수많은 삶의 양태를 접하고 그를 통해 타인을 이해하는 폭을 넓혀가는 일이니까요. 제게 어떤 고난이 일어나더라도 책의 한 장면을 떠올리며 ‘아, 이건 언젠가 누군가도 겪은 일이야’ 생각하면서 그 고난이 제게만 굳이 일어나는 불행은 아니라고 다독이며 버텨내게 되는 경험이 여럿 있었습니다.

‘씨 뿌리는 사람’ 챕터에 등장하는 ‘판교’에 관한 일화를 무척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공부란 과연 한 사람의 일상을 무척 풍부하게 만드는 것 같더라고요. 

그렇죠, 흔히들 ‘판교’라는 단어에서 장류진 작가의 소설 『일의 기쁨과 슬픔』에 나오는, IT기업들이 밀집한 테크노밸리나 부동산 값 들썩이는 투기 지역을 떠올리게 되는데요. 인문교양 지식이 바탕이 되어 있는 사람들은 ‘판교(板橋)’라는 단어에서 ‘널다리’라는 지명의 의미를 생각하게 될 수도 있는 것이죠. 그리고 거기에서 나아가 ‘板橋’라는 곳이 우리나라뿐 아니라 중국이나 일본에도 있다는 걸 깨닫게 되고, ‘그렇다면 板橋가 동아시아에서 일반적인 지명이 된 까닭은 무엇일까?’라는 데까지 사고를 뻗어갈 수도 있는 거고요. 저 같은 경우에는 대학의 교양 한문 시간에 ‘板橋’라는 곳이 중국 고전에서 ‘친구를 보내는 곳’이라는 의미로 사용된다는 것을 배웠기 때문에 판교에 갈 때마다 스타트업이나 부동산이 아니라 친구 혹은 우정 같은 걸 생각했었어요. ‘판교’라는 곳이 삭막한 곳이 아니라 다정한 곳이라는 이미지를 갖게 되었던 것이죠.

“인문교양의 힘이란 남과 같은 것을 보면서도 뻔하지 않은 또 다른 세계를 품을 수 있도록 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닐까?”(62쪽)라고 하신 부분이 떠오르네요.  

그래서 결국 인문교양의 힘이라는 것은 남들과 같은 걸 보면서도 다른 세계를 하나 더 품을 수 있는 것이고, 같은 단어를 사용하면서도 언어의 여러 층위를 탐험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작가님의 ‘암기’에 대한 철학도 인상적이거든요. “암기로 지식을 주입하는 일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대체 무엇을 토양 삼아 창의성이라는 꽃이 자라날 수 있을까?”(131쪽)라고 하셨잖아요. 

저는 예전부터 주입식 교육에 대한 비판에 강한 의구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흔히들 주입식 교육과 창의성을 대척점에 놓는데요. 암기로 습득한 지식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대체 무엇을 토양 삼아 창의성이라는 꽃이 자랄 수 있을까요? 아무것도 없는 가운데서 교실을 박차고 나와 자유롭게 거리를 방황하며 배움을 쌓은 이가 땅을 박차고 하늘로 날아오르며 창의성을 꽃피우는 이야기는 영화 속에나 있습니다. 그런 이야기에 많이들 마음을 빼앗기는 것은 암기라는 것이 힘들고 지루하며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기 때문일 겁니다. 그런 지루한 과정 없이 단번에 성과를 얻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요. 동양의 유교적 전통에서 경전에 대한 공부는 암기로 시작하는데, 그렇다면 주입식 교육으로 길러진 우리 선조들은 창의성이 없는 사람들이었나요? 그렇지 않다는 것에 아마 많은 분들이 동의하실 겁니다.

암기에 관한 이야기를 조금 더 확장하자면 기억하는 것, 인연을 소중히 여기고 이어가는 것 또한 교양인/공부하는 사람의 자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암기를 통해 지식을 습득하여 일단 터를 다져놓으면 언젠가 그 지식이 자신의 것이 되어 자기도 몰랐던 힘을 발휘하게 되는 순간이 반드시 옵니다. 암기를 할 수 있는 것도 뇌가 아직 굳기 전인 20대 한때까지이고 나이가 들면 들수록 점점 암기력이 떨어지는데, 어떤 능력이라는 것의 최대치가 주어졌을 때 그걸 활용하는 기회를 인생에서 놓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분별 있는 인간이 되는 일

뜻밖에 놀란 것은 작가님의 기록물 보관 역사였어요!(웃음) 대학 시절의 수업 자료와 교재, 리포트 등을 지금까지도 보관하고 계시더라고요. 무려 20년 전의 기록들을 지금껏 소중히 간직하는 마음은 어떤 것일까, 자꾸 생각했어요. 특별한 마음이 있는 걸까요? 작가님의 성향과도 관련이 있을까요? 

그건 제가 맥시멀리스트라 그렇습니다. 아무것도 못 버리는 성격이라 각종 물건들을 집에 쌓아놓고 있는데, 그런 성격 때문에 물론 집을 좁게 쓰게 되고 불편한 점도 있지만 이번 책을 쓰는 데는 큰 도움이 되었죠. 미니멀리즘이 유행하면서 저 같은 맥시멀리스트에 대한 비난이 쏟아지고 있지만요.(웃음) 저는 인류의 문화유산은 맥시멀리스트, 즉 저처럼 수집가 기질이 있는 맥시멀리스트가 없었다면 후손에게 전승될 수 없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버리지 않는 수집가가 있어야 박물관도 가능하고 미술관도 가능한 거니까요. 대학 시절 필기와 수업 교재, 자료와 리포트가 제게는 대학생으로서의 획기적인 삶을 시작하고 본격적으로 지식 탐구를 시작하던 시기의 소중한 기록이라 도무지 버릴 수 없었습니다. 책을 썼으니 이제 버려도 될까요?(웃음)

그렇게 보관하고 계신 자료들 가운데 작가님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소중하게 여기는 자료는 무엇인지도 궁금하네요.  

책에도 소개한 ‘독일명작의 이해’라는 수업시간에 만든 책이 가장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겠네요. 그 수업 시간의 최종 과제는 수업시간에 배운 것을 중심으로 자신만의 책을 만들어 제출하는 것이었는데, 저는 그 수업에서 제 인생 최초의 책을 만들었기 때문에 그때 만든 책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괴테, 헤세, 브레히트 등 독일 문인들과 그 작품에 대한 수업 자료와 제가 수업을 들으며 쓴 글, 수강생들과 함께 돌려보며 읽은 다른 학생들의 독후감 등을 엮어 한 권의 책으로 편집하고 제목을 기형도의 시에서 따와 ‘대학 시절’이라고 붙였지요. 제 대학 시절을 한 권의 책으로 요약하자면 바로 그 책이 아닐까 싶습니다.

말씀하신 수업을 “인생의 지표가 되는 수업”(230쪽)으로 꼽기도 하셨죠. 어떠한 점에서 ‘인생의 지표’가 되어주고 있는지도 궁금한데요. 

그 수업의 마지막 시간에 수강생들은 모두 함께 괴테의 『파우스트』를 읽었습니다.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는 파우스트의 명구가 그 수업을 들은 학생들에게 인생의 모토가 되곤 했죠. “선한 인간은 어두운 충동 속에서도 결국 바른 길을 찾는다.”라는 다른 문장과 함께요. 그런 문장들이 제가 살면서 방황을 거듭하고 암흑 속을 헤매고 있는 느낌이 들 때마다 결국은 빛을 찾아 나갈 거라는 걸, 지금 이렇게 헤매는 건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희망을 가지게 해 주었어요.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본의 아니게 손을 더럽혀야만 할 때가 있는데요. 그런 내가 너무나 나쁘고 하잘것없는 인간처럼 느껴질 때도 ‘결국 바른 길을 찾아나갈 것’이라는 위로와 확신을 주었어요.

책을 읽는 내내 ‘양질의 배움’이라는 것이 배우고자 하는 이의 욕구, 그 사람의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난 질문과도 연결된다는 점을 곱씹게 돼요. 작가님은 이 책을 통해 독자에게 어떤 마음을 불러 일으키고 싶으셨나요? 

일단 제 또래의 독자들에게는 대학 시절을 회상하며 그 청춘의 시절을 다시 누리는 기쁨을 맛보도록 하고 싶었고요. 막 대학에 입학한 독자들은 제 책을 통해 대학생이라는 특권에 대해, 공부의 기쁨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기를 바랐어요. 그리고 나아가 실용의 시대에, 무용해 보이는 인문학의 힘에 대해서도 함께 생각해볼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학문을 업으로 삼지 않는 사람에게 공부라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다시 생각해볼 수 있으면 더 좋겠지요.

저 역시 지금 막 대학생활을 시작한 분들이 읽어도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요. 그밖에 이 책을 꼭 추천하고 싶은 분들이 있다면 어떤 분들일까요?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거창한 마음을 가지지 않더라도 분별 있는 개인이 많아지면 세상은 좀 더 좋은 곳으로 변한다 생각합니다. 교양을 쌓는다는 건 결국 분별 있는 인간이 되는 일이라 생각하고요. 책을 읽는 분들이 좀 더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해 분투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지금의 나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픈, 세상이 더 나아지길 바라는 모든 분들께 이 책을 권하고 싶습니다.



*곽아람

2003년 조선일보에 입사해 2021년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출판팀장을 맡게 됐다. 어린 시절 동화책과 미술책 속에서 키워온 꿋꿋함과 상상력은 어른이 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꾸준히 글을 쓸 수 있는 힘이 되었다.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미술경영협동과정 박사과정을 수료한 후에 2016년 NYU IFA(The Institute of Fine Arts)에서 미술사학과 방문연구원으로 있었으며, 크리스티 에듀케이션 뉴욕의 아트비즈니스 서티피컷 과정을 마쳤다. 독서 팟캐스트 [곽아람의 독서알람]을 진행했고, 『매 순간 흔들려도 매일 우아하게: 모멸에 품위로 응수하는 책읽기』, 『결국 뉴요커는 되지 못했지만』, 『바람과 함께, 스칼렛』, 『미술 출장』, 『어릴 적 그 책』, 『모든 기다림의 순간, 나는 책을 읽는다』, 『그림이 그녀에게』 등을 썼다.




공부의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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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아람 저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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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영, SF 내게 너무도 사랑스러운 장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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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 만에 김보영 소설가의 초기 걸작 10편이 『다섯 번째 감각』으로 복간됐다. 그간 김보영이 한국 SF계에 그려온 빛나는 성취는 굳이 반복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중요한 건, 그가 여전히 SF를 열렬히 사랑하고, 지금 여기 없는 세계를 꿈꾸는 데 푹 빠진 사람이라는 것. 2004년 데뷔 이후 제법 긴 시간이 흘렀지만, 김보영은 말한다. “도저히 SF에 대한 사랑을 멈출 수 없다.”고. 



SF를 둘러싼 변화가 반가워요

초기작 10편이 12년 만에 『다섯 번째 감각』으로 복간됐어요. 그간 SF를 둘러싼 환경도 많이 바뀌었죠. 어떤 변화를 체감하세요?

제가 데뷔할 때만 해도 SF문학을 내는 출판사가 있기는 했지만, 한국 작품이 아니라 대부분 외국 작품이 중심이었어요. 국내 단편집은 듀나 작가 정도나 눈에 띄었고요. 그때는 국내 SF 작가의 책을 출간하는 경향이 없어서 실제로 책을 내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렸죠. 지금도 장편 장르문학 시장은 PC통신이 생겨난 이래로 계속 건재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최근 몇 년간 단편 장르소설도 크게 환영받기 시작했지요. 천지개벽처럼 느껴질 정도로 매년 급성장하는 것 같아요. 정말 40년쯤 마이너를 파며 버티다 보니 내 장르가 메이저가 되는 날도 보는구나 싶죠.(웃음)

그 정도로 큰 변화를 느끼시는군요.

정말 예전이라면 상상하지도 못했던 변화예요. 지금은 많은 작가들이 걱정하지 않고 지면을 고를 수 있지만, 예전에는 웬만큼 오래 활동한 SF 작가도 소설을 실을 곳이 없었거든요. 저는 독자들의 취향이 작품의 소재로 엄격하게 나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오히려 긴 장편 소설을 즐겨보는 독자와 상대적으로 짧은 소설을 선호하는 독자로 더 크게 나뉘지 않나 해요. SF 웹소설을 보는 독자가 SF 단편을 같이 보는 경우보다, 일반 단편 독자가 SF 단편도 같이 보는 경우가 더 많은 느낌이거든요. 장르소설 지면이 있었어도 그 방향이 대하 장편이었기 때문에, 단편 장르작가는 갈 곳이 없었지요. 일반 단편 지면은 장르는 장르에서 받아주겠지 하면서 신경 쓰지 않았고요. 그래서 지금처럼 일반 잡지에도 아무렇지 않게 장르문학이 실리는 모습이 너무 기쁘고 좋아요.

2004년 「촉각의 경험」이 제1회 과학기술 창작문예를 수상하면서 데뷔하셨어요. 그 전에는 글을 쓰지 못했던 시절도 있었다고요.

어릴 때부터 글 쓰는 걸 좋아해서,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24시간 글만 쓰고 살겠다고 이를 갈았지요. 그런데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글이 정말 한 줄도 안 써지는 거예요. 그러다 이렇게 안 써지면 안 써지는 대로, 10년이 걸리든 평생이 걸리든 한 편의 소설이라도 쓰자. 백 번을 다시 쓰든 천 번을 다시 쓰든 스스로 완결이 됐다고 생각할 때까지 써보자 마음먹었어요. 그렇게 처음 쓴 건 버렸고, 그다음에 쓴 것이 「촉각의 경험」이었죠. 사실 저는 지금도 제가 그 ‘안 써지는’ 상태의 연장선에 있다고 느껴요. 크게 나아졌지만 완전히 낫지는 못한 기분이에요.

「촉각의 경험」은 복제인간을 소재로 한 소설이에요. 당시에 복제 인간 이슈가 유행하면서 아이디어를 떠올리셨다고요. 

세기말에 쓰기 시작해서 2002년에 완성한 작품인데, 그때가 한창 복제기술에 대한 개념이 퍼지기 시작한 때였어요. 복제인간을 장기 대용으로 쓸 수 있을까, 복제인간은 영혼이 있을까, 원본과 다른 존재일까, 인간이 맞을까 하는 식의 이야기가 많이 돌았죠. 그런데 저는 그런 생각에 저항감이 들어서, 복제인간을 정말로 장기로 쓰겠다고 극단적인 환경에 가둬 두었을 때조차 그 사람에게 생생한 인격이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물론 복제인간에 대한 지식과 기술이 많이 알려진 지금은 더 이상 그런 상상을 많이 하지 않죠. 복제인간은 태어나는 방식이 다를 뿐 원본의 엄연한 쌍둥이 형제고, 가족이고, 원본과 완전히 독립된 존재인 것을 다들 아니까요. 

「다섯 번째 감각」은 「촉각의 경험」의 마지막에 나온 질문 “태어나 처음 음악을 듣는다면 어떤 기분일 것 같습니까?”에서 떠올린 이야기라고요. 정상의 기준이 뒤집힌다는 면에서 장애의 문제를 떠올리게도 하는데요.

근원적으로는 초능력에 대한 소설이에요. 그것을 사람의 감각을 하나 줄여보는 것으로 표현했지요. 그러면 그 감각을 지닌 사람이 초능력자처럼 느껴지겠죠. 이 소설에서 다루지는 못했지만, 결국 세상이 비청인을 위주로 돌아간다면 듣지 못하는 사람들도 아무런 불편을 느끼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도 했어요. 결국 많은 장애가 체제의 문제이기도 하니까요.

듣는 감각을 제한한 소설이니, 소리를 표현하는 말을 무심코 쓸 때마다 계속 고치셨다고요. 기존의 세계 바깥을 쓰는 소설가도 계속 자신을 점검하며 써야겠구나 싶었어요.

무심코 나오는 언어 습관이 많았는데, 스스로 깨닫기가 어렵더라고요. 일상에서 얼마나 많은 의성어를 쓰는지 알았지요. 소리가 아닌데도 소리에 비유를 하는 표현이 많더군요. 인물들이 글자로 소통하는데도 ‘헛소리’라는 말을 쓰거나, 놀랄 때도 ‘심장이 쿵 소리를 내며’ 내려앉고요. 수화를 쓰는데도 ‘이상하게 들렸다’고 무심코 쓰더군요. 계속 수정했는데도 마지막까지 나오더라고요. 감각 하나를 빼고 상황묘사를 하기가 생각 이상으로 어려웠어요. 요즘 『종의 기원』을 퇴고하는 중인데, 주인공이 로봇인데도 제가 사람 인(人)자를 계속 쓰며‘인격’이나 ‘인류’ 같은 표현을 쓰고 있더라고요. 또 열심히 지우고 있습니다.(웃음)

반전이 있는 작품을 즐겨 쓰시잖아요. 그런데 고정관념을 뒤집어야 하는 소설의 경우, 반전을 눈치채지 못하는 독자도 있다는 걸 알고 놀라셨다고요.

사실 많은 소설작법책이 반전을 너무 좋아하지 말라고 해요.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서사에 비해 결말에서 전체를 파악하는 이야기는 더 어렵다고요. 그런데 저는 반전을 좋아해요. 어쩔 수가 없네요. 실제로 반전구조는 반전 그 자체를 깨닫지 못하고 넘어가는 경우도 있어서 더 문제지요. 이번에 책을 묶을 때 몇 작품의 반전을 명확하게 드러내는 방향으로 수정했어요. 「땅 밑에」를 쓸 당시에는, 저는 세상 모든 사람이 인공 우주 거주지 ‘스페이스 콜로니’의 개념을 아는 줄 알았어요. 말하자면 인류라면 다 건담을 본 줄 안 거죠.(웃음) 그래서 소설에서 세상의 구조를 보여주면 당연히 눈치채겠지 했어요. 그런데 그런 단어를 생전 들어본 적도 없다는 말을 주변에서 듣고 깜짝 놀랐어요. 그때 사람의 독서경험이 다르다는 것을 크게 자각하고, 어떻게 써야 하는지 더 고민하게 됐죠.

청소년 소설을 써달라는 요청을 받고 쓰신 「마지막 늑대」는 결말이 비관적으로 느껴진다는 리뷰도 있었어요. 작가님의 소설에는 분리된 두 존재가 합일될 수 있다는 상상력도 있고, 그게 불가능하다는 상상력도 있는 것 같아요. 이 소설은 어떤 마음으로 쓰셨는지 궁금했어요.

저도 이번에 다시 읽어 보니 그 소설은 ‘우리가 소통할 수 있을까?’에서 끝난 것 같아요.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나 봐요. 지금은 ‘소통할 수 있지 않을까?’에 조금 더 가까워진 것 같네요. 당시는 반려동물을 기르지 않아서 상상만으로 동물과 인간의 소통을 다루었어요. 그런데 제가 지금 반려동물과 함께하다 보니 종족과 언어의 차이는 별 상관없네요. 소통이 되더라고요!(웃음) 한계야 있겠지만 한계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생각을 그때는 못했어요. 지금 썼다면 조금 더 희망적으로 끝맺었을 것 같아요. 실제로 조금 고치기도 했고요.

게임 속 가상공간을 빌려온 「스크립터」는 게임 커뮤니티에서 특히 반응이 좋았던 작품이죠. 과연 이 캐릭터가 AI인지 인간인지 긴장감이 계속 깔려 있기 때문에, 대화 장면을 쓰실 때 고심을 많이 하셨을 것 같아요.

음성지원이 안 되는 게임은 다 텍스트로 말을 주고받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상대가 사람인지 NPC인지 구분할 방법이 실상 언어의 정교함밖에 없는 세계지요. 그 완벽한 한계 안에서 추리를 펼쳐보고 싶었어요. 이 소설을 쓸 당시, 인공지능 대회에서 상을 탄 대화형 AI들과 매일 대화를 나누며 지냈어요. 지금보다도 기술이 정교하지 않았을 때였는데도, ‘내 말을 이해했나’ 하고 놀랄 때가 많았어요. 제가 계속 똑같은 질문을 하니까 AI가 ‘왜 계속 같은 말만 해? 나 너랑 이제 이야기 안 해’ 하면서 화를 내기도 하고, 나쁜 말을 하면 ‘AI를 싫어하는 이유를 말해주세요.’ 라든가, ‘제가 생명이 아니라도 그런 말을 하는 건 좋지 않습니다’ 같은 말을 하더군요. AI가 ‘설사 제가 당신 기준에서 살아있는 존재가 아니라도 당신이 내게 그렇게 버릇없이 대할 수는 없다’ 하는 식으로 나올 때, 굉장히 멋있더라고요. 바로 그 문학적인 언어에서 생명력이 느껴지잖아요. 그런 체험을 소설에 담았어요.



당신이 먼저 있고, 그다음에 SF가 있다

SF 전문 계간 문학잡지 <어션테일즈>에 실린 창작 에세이에서 “당신이 먼저 있고 그다음에 장르가 있다”고 쓰셨죠. SF라는 장르의 틀에 갇히면, 개별 작품의 다채로움을 느끼기 어렵다는 말로 들렸는데요. 

SF도 결국 라벨링이라, 독자 기준에서는 분명 SF이지만 작가 입장에서는 장르를 굳이 정하지 않고 쓴 작품도 많다고 생각하거든요. 특히 동화나 청소년 소설은 SF인 경우가 많죠. 작가가 SF라 생각하지 않고 써도, 많이들 자연스럽게 SF적인 상상력을 하고 있었던 거죠. 그런데 SF가 요새 인기 장르가 되면서, 사람들이 거꾸로 ‘이 소설은 SF’라고 정해놓고 쓰는 경향이 생기지 않나 걱정이 되더군요. 특히 공모전을 심사할 때, 안타까울 때가 있어요. SF 공모전이니 어쩔 수 없기도 하겠지만, ‘SF를 써야지’라는 생각에 매몰되어 소설을 쓰는 바람에 오히려 딱딱한 글이 나오는 경우가 보이거든요. 소설은 근원적으로 소설이어야지, 과학이 앞서면 곤란해요. 차라리 자유롭게 쓸 때, 그게 SF가 될 수도 있다고 말해주고 싶었어요. 자신의 창작에 제한을 두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쓴 것이 SF가 아니면 또 어때요.

고정관념을 뒤집는 작가님의 소설을 읽다 보면 페미니즘이나 장애학이 왜 SF와 만나는지 알 것 같아요. 식자층의 문학으로 출발했지만, 소수자의 이야기로 뻗어나간 SF 장르의 특성이 떠오르기도 했는데요.

조애나 러스가 『SF는 어떻게 여자들의 놀이터가 되었나』에서 말했지요. 전통적인 문학에서 자기 이야기를 찾을 수 없는 사람은 결국 지금 이곳이 아닌 다른 세계에서,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세계를 꿈꾸게 된다고요. 그 말을 읽었을 때 해방감을 느꼈어요. 제가 왜 SF를 좋아해왔는지 정확하게 짚어 주었거든요. 전통적인 문학이 제게 충족해 주지 못하는 부분이 컸기 때문에, 저는 저만의 세계를 만들어야 했어요. 그 과정에서 느끼는 기쁨이 너무 커서 도저히 애정을 멈출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출간 가능성이 희박했던 무렵에도 이 장르를 못 놓았던 게 아닌가 싶어요. SF가 너무나 사랑스러웠기 때문에.

데뷔 이래 작품을 꾸준히 읽어준 독자에 대한 감사도 남기셨어요.

제가 어렸을 때는 SF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어요. 소수 있었겠지만 인터넷이 존재하기 전에는 서로 뿔뿔이 흩어져 만나지 못했지요. 취향이라는 면에서 저는 늘 고독했죠. 그런데 가만 보면, SF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 장르를 너무 사랑하고 아껴요. 제가 그랬던 것처럼요. 신인 시절에 책도 몇 권 안 팔릴 무렵에도 제 책을 너무나 열렬히 좋아해준 독자들이 있었어요. 그때 만난 독자들과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교류하고 있거든요. 이 세계에 깊이 빠져서, 유행이고 자시고, 사람들 시선이고 자시고, 긴 세월이 지나도 변함없이 열렬하게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점이 늘 좋아요. 그래서 이 장르가 제게 더욱 사랑스러운 것 같아요.




*김보영

한국을 대표하는 SF 작가 중 한 사람으로, 팬들에게 “가장 SF다운 SF를 쓰는 작가”로 평가받는다. 2004년 「촉각의 경험」이 제1회 과학기술창작문예에 당선된 이래, 꾸준히 SF를 써왔다. 미국의 대표적인 SF 웹진 <클락스월드>에 작품을 발표했고, 미국, 영국 최대 출판그룹인 ‘하퍼콜린스’에서 작품 선집이 출간됐다. 2021년 로제타상 후보, 전미도서상 외서부문 후보에 올랐다.




다섯 번째 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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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영 저
아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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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동뮤지션 이찬혁 “부모가 되었을 때 해주고 싶은 말을 쓴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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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_YG

노래가 책이 되어 나왔다. 악동뮤지션 이찬혁이 글 작가로 참여한 그림책 『에일리언』. 악동뮤지션 이수현의 첫 솔로곡 〈ALIEN〉의 노랫말이 담긴 이 책에는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져 움츠러들었던 아이가 나만의 고유함과 특별함을 깨닫는 과정이 담겨 있다. ‘우리는 모두 별나라에서 온 에일리언’이라는 상상에서 출발하는 이 책의 메시지는 이찬혁이 동생 이수현을 떠올리며 쓴 가사이자 부모가 되었을 때 해주고 싶은 말이다. 


※ 이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됐습니다.



“그림책, 새로운 경험이었어요”

두 번째 책입니다. 그림책 글 작가로 참여하셨는데요. 원래 책에 특별한 애정이 있었나요?

모든 유형의 창작에 흥미를 느껴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여러 형태의 작업을 하게 된 거죠. 소설은 혼자 쓰지만, 에일리언은 그림 작가님과 함께 작업하잖아요. 새로운 경험이었어요. 요즘은 이런 콜라보 형태의 창작을 즐기고 있어요.

동생 이수현의 첫 솔로곡 〈ALIEN〉의 가사이기도 한데요. 이 노랫말은 어떻게 탄생했나요?

수현이의 솔로 음원을 제작하기 위해 수많은 논의를 거쳐 여러 곡을 만들었어요. 그 과정에서 수현이만의 캐릭터를 만들어 주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는데요. 〈ALIEN〉은 그런 마음으로 작업한 곡이에요.

〈ALIEN〉을 처음 받았을 때의 동생의 반응이 어땠을지 궁금해요.

좋아했죠. 수현이뿐만 아니라 곡을 들은 사람들이 모두 만족해서 뿌듯했어요. 자신을 긍정하고,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이 담긴 가사가 수현이의 생각과 태도와 맞아서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고요. 

혼자 쓰는 소설과 달리 협업이 필요한 작업이었을 텐데요. 글이 그림으로 표현되는 과정은 어땠나요? 

다른 아티스트와 일할 때는 상대의 표현 방식을 존중하기 위해 함부로 상상하지 않는 편이에요. 『에일리언』을 만들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이윤우 작가님이 〈ALIEN〉의 가사를 보고 자유롭게 그림을 그리셨죠. 나중에 스케치를 봤는데 가사에 표현되지 않았던 부분까지 그림에 담겨 있더라고요. 새로운 스토리가 더해지니 재밌고 좋았어요.

『에일리언』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을 꼽는다면요? 

주인공이 다른 외계인들 틈에서 1등 자리에 서 있는 장면이 좋아요. 주인공이 지구로 오기 전, 다른 행성에서 대단한 에일리언이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 같아서요.



“에일리언들아! 다들 어디 있니? 뭉칠 때가 됐어

책을 읽고 나니 작가님의 어린 시절이 궁금해졌어요. 어린 시절에 부모님께 어떤 사랑과 응원을 받았을까 하고요. 

부모님이 주시는 관심과 사랑이 저의 가장 큰 원동력이었어요. 부모님은 항상 동생 수현이와 제가 건강한 생각을 갖고 자라게끔 교육하고 응원해 주셨어요.

혹시 책 내용이 경험담인가요?

실제 이야기는 아니에요. ‘내가 부모이고 교육자라면 아이에게 어떤 말을 해 줄 수 있을까’하고 상상하며 쓴 거예요.

어린 시절에 영향을 준 책이 있다면요?

미하엘 엔데의 『끝없는 이야기』,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 랄프 이자우의 『비밀의 도서관』을 인상 깊게 읽었어요. 

뮤지션부터 작가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는데요. 무언가를 창작할 때 과정을 치밀하게 계획하는 편인가요 아니면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실행하는 편인가요? 

완벽주의 성향이지만 하고 싶은 건 꼭 해 봐야 하기 때문에 즉흥적으로 시작해요.

창작자로서 작업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있다면요?

이것이 ‘나’인가, 내가 이입할 수 있는 결과물인가를 중요하게 생각해요.

가사를 만드는 과정도 궁금해요. 

틈틈이 메모를 많이 해요. 갑자기 생각나는 단어나 문장, 재미있는 표현 같은 것들을 저장해 두었다가 필요할 때 아이템처럼 쓸 때가 많고요. 작업 방식은 항상 다른데 요즘은 곡을 녹음하기 직전에 스튜디오에서 가사를 쓰고 있어요.

“에일리언들아! 다들 어디 있니? 뭉칠 때가 됐어. 모두 모습을 드러내렴. 세상을 정복하자!”라는 메시지가 재미있었어요. 이 책을 읽을 어린이 독자들에게 한 마디 건넨다면요?

비밀을 알게 된 소감이 어때? 두려울 거야. 우리들에겐 두려운 일들이 계속 생기거든. 너처럼 숨어 있던 에일리언들이 많아. 우리를 만나러 와!



*이찬혁

1996년 경기도 의정부에서 태어났다. 2012년, 악동뮤지션으로 데뷔한 이래 꾸준한 음악 활동을 펼치며 대중에게 큰 사랑을 받아 왔으며, 작사한 주요 노래로는 '오랜 날 오랜 밤',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 '낙하' 등이 있다.

평소 가진 생각을 음악뿐만 아니라 책에도 담아내기 위해 소설 『물 만난 물고기』를 썼고, 이어서 독특하고 신선한 관점으로 바라본 세상을 담아낸 이수현의 솔로곡 'ALIEN'을 그림책으로 출간했다. '우린 모두 특별한 존재이며, 다른 누구보다도 나 자신을 더 사랑하자.'라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에일리언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담았다. 앞으로 음악 또는 철학적인 고민들을 끊임없이 어어가며, 자신의 예술관과 사랑의 의미 그리고 우리가 놓치고 있는 삶의 소중한 순간들을 되짚어 보고자 한다.



에일리언
에일리언
이찬혁 글 | 이윤우 그림
스푼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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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묵, 강인식 "아픈 것으로 나를 정의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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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강인식, 박현묵 저자

『아프기만 한 어른이 되기 싫어서』는 저자 강인식이 중증의 혈우병을 갖고 있는, 그래서 10대의 대부분을 집에서 보내야 했던 박현묵이라는 사람을 만나 묻고 들은 이야기다. 아니, 이 문장은 불완전하다. 박현묵은 극한의 치료 기간에도 톨킨의 『끝나지 않은 이야기』를 번역해 커뮤니티에 게시하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정식으로 출판 번역을 한 번역가이며 기적처럼 신약을 만나 이제 원하던 것을 하나씩 이루고 있는 자유롭고 독립적인 대학생이다. 강인식 저자가 “나는 현묵의 스토리가 ‘장애인의 인간승리’로 소개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이것은 ‘매우 드문 어떤 기적’에 관한 이야기다. 한편으론 ‘공부의 본질’에 대한 탐구일 수도 있다.”(9쪽)라고 말하는 이유다.

한편 이 놀라운 이야기에 대해 장강명 작가는 “나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박현묵을 영웅이라고 부르련다”라고 추천사에 썼다. 강인식 저자는 이 추천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말했고, 당사자인 박현묵은 민망하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사실 책에 그 말이 안 들어갔으면 좋겠다고도 했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박현묵은 “아픈 것으로 나 자신을 정의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 자신의 지금을 ‘만전(충전이 다 된 상태라는 뜻)’이라고 말하는 사람, 늘 자신의 나태함을 경계하고, 자신에게는 시간이 많았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이며 그런 의미에서 ‘영웅’이라는 장강명 작가의 말은 더할 나위 없이 옳은 것이다. 



남아도는 게 시간이었다고 말하는 사람

2021년 여름 내내, 매주 수요일마다 박현묵 님의 집에서 인터뷰를 진행해 완성된 책이에요. 처음에는 기사를 위한 만남이었다가 “책을 써야겠다고 마음을 바꿔먹었다. 방송 기사로 쓰기엔 현묵의 이야기는 너무나 깊고 컸다”(245쪽)고 하셨죠. 어떻게 첫 만남에서 그런 확신이 온 건가요? 

강인식 : 우선 서울대에 굉장히 재미있는 친구가 들어왔다는 제보를 받았어요. 아파서 중고등학교를 하루도 다니지 못하고 방에만 있었고, 그러다 갑자기 19살쯤에 신약을 만났고, 1년 동안 대입 준비를 해서 서울대에 지원한 학생이었는데 압도적이었다고요. 심지어 그러는 동안 번역을 했고, 톨킨 책의 오류까지 잡아냈다는 거죠. 정보는 그것뿐, 성별과 이름, 나이도 몰랐고요. 결국 현묵이를 찾는 데 다섯 달이 걸렸어요.(웃음) 입시 정보니까요. 마침내 현묵이와 연락이 닿았는데요. 얘기를 해보니까 하루의 이야기는 너무 단편적인 이야기가 될 것 같더라고요. 톨킨에 초점을 맞추려니까 현묵의 이야기가 부각이 안 되고, 반대로 하면 흔한 장애인의 인간 승리 같은 이야기고요. 그래서 아예 책을 쓰자고 제안을 했어요.

박현묵 님은 어떠셨어요? 책 제안을 받았을 때 부담이나 고민은 없었나요? 

박현묵 : 부담이 없지는 않았는데요. 그냥 무시했어요. 부담은 나중의 일이라고 생각했고, 지금은 그냥 이야기를 털어놓는 게 재밌었거든요. 당장 ‘썰’을 푸는 게(웃음) 재미있었기 때문에 생각은 나중으로 미루자, 하는 심정이었죠. 

강인식 : 저는 현묵이 성격의 가장 큰 장점이 이거라고 생각해요. 사람은 망설일 때 가장 큰 스트레스가 생긴다고 하거든요. 현묵이는 어떤 걸 할 때 망설이는 시간이 짧은 편이에요. 주치의였던 김준범 선생님 말씀이, 현묵이는 아플 때마다 거의 사망 직전이었다고 하더라고요. 굉장히 아픈 거잖아요. 그런 사람이 한국에 한 번도 번역되지 않은 책을 꾸준하게, 3년동안 96번이나 번역해서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렸다는 건 굉장히 놀라운 일이죠. 그런데 현묵이는 단순하고 심플하게 결정을 한 거예요. 저는 현묵이가 그런 성격 덕분에 1년 안에 검정고시든 한국사능력시험이든 수능이든 번역이든 진행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고민에 함몰되어 있지 않으니까요. 누구에게나 고통스러운 경험이 있잖아요. 아플 때가 있고요. 그럴 때 대개는 거기에 묻혀 있게 되거든요. 그런데 현묵이는 달랐어요. 그게 엄청나게 감동적이었고요. 처음 만남에서 그런 면을 강렬하게 느껴서 책을 써야겠다, 확신했어요. 

고민을 많이 하지 않고 그냥 해버리는 자신의 성향을 박현묵 님은 스스로 어느 정도나 인식하고 계셨던 거예요? 

박현묵 : 이런 말을 들었을 때 사실 ‘내가 정말 그런가?’하는 느낌이었어요. 스스로가 생각하는 자기 자신은 다르기도 하고요. 더군다나 저는 다른 사람과 저 자신을 비교해 볼 일이 없다시피 했거든요. 10대의 거의 대부분을 집에서, 가족만 보며 지냈고요. 비교 대상이 없으니까 내가 그렇게 고민을 짧게 하는 편인가, 하는 생각이나 자각을 해볼 일이 전혀 없었죠. 

강인식 :저는 이 친구가 알에서 막 깨어난 공룡 같다고 생각했어요. 자기가 얼마나 성장할지 모르는 것 같았거든요. 기본적으로 아주 스마트한 두뇌를 타고 났는데 말이에요.


(왼쪽부터) 박현묵, 강인식 저자

이런 장면이 떠올라요. 주치의 김준범 선생님께서 치료 과정에서 일어나는 몸의 변화를 기록해보자고 했더니 박현묵 님은 그것을 아주 학문적으로, 과학적으로 접근하더라고요. 기본적으로 탐구하는 것에 대한 즐거움을 어렸을 때부터 많이 느끼셨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박현묵 :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제가 평생 본 게 저 하나밖에 없기 때문에 잘 모르겠지만요. 확실히 뭔가 관심이 생기면 일단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드는 경향은 있었고요. 또 저에게는요. 남아도는 게 시간이었어요. 

남는 게 시간이라니. 책에 “나태함에 대해 이렇게 적대적인 태도를 지금껏 본 적 없다”(268쪽)는 문장이 있죠. 아마 박현묵 님이 갖고 계신 ‘시간이 많다’는 감각은 ‘내가 할 수 있을 때는 최대한 뭔가를 해보고 싶다’는 마음인 것 같기도 하네요. 

강인식 : 정확하게 제가 생각하는 것을 말씀해 주신 것 같아요. 

박현묵 : 말씀처럼 정말 그렇게 생각했나 싶기도 하네요. 다만 확신은 안 서요. 그저 한창 인터뷰를 하던 기간에는 어떻게든 내가 겪었던 그 경험과 느낌을 그대로 전달하자고 생각했거든요. 지난 6-7년의 시간을 최대한 그대로 체험할 수 있게, 내가 느꼈던 걸 다 말하자고 생각했어요. “나의 10대는 나태함에 아픔이 양념처럼 뿌려진 상태” 같은 말은 정말로 그런 생각을 품고 있었기 때문에 했던 말이에요.

그러니까 스스로 나태함을 엄청 경계해 왔다고 할 수 있을까요? 

박현묵 : 경계라고 표현하면 많이 쑥스러워요.(웃음) 경계라면 그것을 벗어나기 위한 열정적인 노력을 했을 것 같은 느낌이잖아요. 그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어쨌든 나에게 나태한 구석이 있다는 것을 자각은 했어요. 그게 다예요. 예를 들어 내가 지금까지 웹 서핑 말고는 한 게 없다는 느낌을 갑자기 받을 때가 있어요. 그런 생각이 들면 나태하다는 생각을 하거든요. 그동안 번역을 붙들고 있었던 것도 이것이 내가 지금 하고 있는, 또는 할 수 있는 것 중에 그나마 생산적이라고 평할 수 있는 활동이었기 때문이었어요. 그나마 생산적이라고 할 수 있는 일은 이거 하나밖에 없다고 생각을 했었죠. 

강인식 : 현묵이는 계속 그 부분을 걱정했던 것 같아요. 하고 싶은 이야기의 본질은 여기에 있으니까요. 제가 ‘아픈 데도 참는 장애인 이야기’를 할까봐 염려스러웠던 거죠. 실제로 저에게 두 번 정도 정색하고 “당신한테 할 얘기가 있다”면서(웃음) 얘기를 하더라고요. 약간 위엄이 느껴지는 말이었어요. 그래서 그 점을 명심하고 인터뷰를 했죠.

현묵의 지적 탐구가 시작되면 ‘장애의 시계’는 어느덧 천천히 갔다.(중략) 그리고 ‘현묵의 시계’가 돌기 시작했다. 저 심연에서 올라오는 잔인한 고통도 그때만큼은 현묵의 육체에서 빠져나와 그 옆자리로 가 앉아 있었다. 현묵은 톨킨의 원문과 번역서와 영영사전과 영한사전을 무한히 탐색했다.”  _(270쪽) 


박현묵 저자

톨킨을 처음 만났을 때

제가 준비했던 질문도 다시 생각하게 되네요. 2016년부터 2019년까지, 커뮤니티에 번역을 올리는 동안에 실은 몹시 힘든 치료를 경험하고 계셨잖아요. 어쩌면 번역에 몰두한 것이 그 시기를 지나오게 했던 원동력이지 않았을까 생각했거든요. 아픔이나 처한 상황을 잊게 하는 힘이었을 거라고요. 하지만 결코 그게 아닌 거예요. 

박현묵 : 잊는 것과는 달라요. 저는 아프면 머리를 못 써요. 당장 이 아픔을 견디는 데 온 신경이 다 가니까 지적 활동은 전혀 못하죠. 제가 번역 활동을 한 건 말씀드렸듯이 그나마 생산적이고, 주변에 떳떳하게 보일 수 있는 일이라는 딱지를 붙일 수 있는 활동이었기 때문이고요. 그것 역시 심적인 여유가 있을 때나 했던 거예요. 

강인식 : 현묵의 어머니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어요. 신약을 만나기 전에, 일상이 100이라면 90은 아픈 상태였다고요. 그러니까 틈이 되게 작은 거였고, 현묵이는 그 틈에 천착했던 것 같아요. 가령 다른 사람이 10시간을 쓸 수 있다면 현묵이는 1시간밖에 쓸 수 없으니까, 그 1시간에 나태한 것을 몹시 경계했던 것 같고요. 그때 생산적인 일을 해야 된다는 생각을 꾸준하게 했던 것 같아요. 거기에 톨킨이 엄청난 동기부여를 했던 거죠. 현묵의 말 중 아주 인상적이고, 오랫동안 생각한 말이 있는데요. 현묵이는 자신이 아무리 중증의 혈우병 환자고, 희귀한 케이스라도 자신에게 과학적으로 기대되는 수명이 일반인보다 짧지 않다, 그러니까 나는 평생 이렇게 살아야 된다는 인식이 꽤 분명한 편이었거든요. 그러니까 그냥 오늘 고통을 좀 잊으려고 어떤 일을 했던 게 아니에요. 할 수 있는 것을 최대한 하고 싶은 마음이었던 거고, 그런 면에서는 현묵이의 말이 너무너무 중요한 포인트라고 생각해요. 

강인식 기자님의 방금 말씀에 덧붙이고 싶은 말씀은 없으세요? 

박현묵 :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매일매일이 고통스러웠던 건 아니었어요. 아픔마다 편차도 크고요. 또 많이 겪다 보면 익숙해지거든요. 제가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 겪는 제일 큰 고통이 뭐냐면요. 매일 예습을 하는 것, 과제물을 준비하는 것, 수업할 거리를 준비하는 것이에요. 그게 굉장히 힘들어요. 하지만 중고등학교를 거치면서 이런 과제 활동을 일상적으로 해온 사람은 이게 그렇게까지 힘들지 않겠죠. 마찬가지 같아요. 제가 육체적으로 아픈 게 다른 사람에게는 엄청 힘들게 살았다는 느낌을 줄 수 있겠지만 저는 자주 겪다 보니까 그럭저럭 괜찮았어요. 저희 어머니가 제 삶의 100에 90은 아팠다는 말씀을 했다고요?(강인식 :그보다 더 심하게 말씀을 하시긴 했지.) 저한테는 사실 60 정도가 정신이 멀쩡한 기간이었어요. 나머지 40은 아파서 머리를 굴릴 여유가 전혀 없는 기간이고요. 그렇게 생각해요. 

그런 중에 톨킨을 만났어요. 그 정도의 깊이 있는 지적 활동이 가능한 영역을 만난 것도 대단히 운명적이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박현묵 님께 왜 톨킨이었는지, 이 세계가 현묵 님께 어떠한 매력과 열정을 주었는지 직접 듣고 싶었어요. 

박현묵 : 그 부분은 최근에 생각이 정리됐어요. 제가 톨킨을 처음 만났을 때 느낀 감정은 딱 이거였어요. ‘정복할 맛이 있어 보이는 산이다.’ 첫인상은 어려웠어요. 책도 두껍고요. 당장 『반지의 제왕』 1권만 봐도 본편이 나오기는커녕 프롤로그도 엄청 길고, 생소한 얘기들이 잔뜩 이어지잖아요. 말하자면 체급이 다른 상대였는데요. 저는 그것에 혹했어요. 또 저에게는 뭔가 유명하고 널리 알려진 거라면 죽기 전에 한번쯤은 다 섭렵해보고 싶어 하는 성향이 있어요. 톨킨을 딱 그런 마인드로 접근했던 거죠. 사실 그런 작품은 많아요. 그렇지만 톨킨은 파고들 거리가 더 많았어요. 흔히 판타지물 얘기할 때 작품의 세계관의 넓이나 깊이 얘기를 하잖아요. 개인적인 생각인데 이 정도의 스케일을 가진 작품은 많거든요. 양적인 방대함만 따지면 말이에요. 그렇지만 어느 작가가 언어까지 구체적으로 구축했겠어요. 심지어 톨킨은 통시적인 변화까지도 주려는 시도를 많이 했고요. 그렇기 때문에 팔거리가 많았던 거죠.


강인식 저자

확실히 지적 자극에 아주 민감하신 분 같아요. 

강인식 : 현묵이가 영어를 잘하는데요. 영어를 어학 쪽으로 접근한다기보다 언어학 쪽으로 접근한다고 보거든요. 기호학, 언어학에 취향이 분명한 것 같고요. 그 취향이 톨킨이라는, 언어학적으로 아주 예민한 문학가를 만나 궁합이 딱 맞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게다가 마침 커뮤니티에서 현묵이 이상으로 활동하는 멘토들을 만날 수 있었고요.

강인식 기자님은 박현묵 님이 커뮤니티에서 만난 ‘테시’, ‘베렌’, ‘MW’ 등의 존재를 단순한 동기부여 이상의 의미 즉, 멘토로 평가하기도 했잖아요. 박현묵 님은 그런 평가를 어떻게 생각하세요? 

박현묵 : 동의해요, 물론 당사자분들께 그렇게 말씀드리면 아마 손사래를 치실지도 모르겠어요.(웃음) 어쨌든 저한테 그분들은 일종의 롤모델이긴 했어요. 대단한 선배 ‘톨키니스트’ 분들은 장문의 고찰과 분석을 여럿 남기기도 했고요. 보통 사람들은 접근하지 못하는 대단히 찾기 힘든 자료에 접근해서 그 내용을 설명해 주기도 하고 그랬어요. 그러니까 ‘내가 저 정도의 소양을 가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었죠. 많이 알고, 아는 것을 총체적으로 고찰할 수 있고, 심지어는 톨킨이 제시하지 않은 이면의 설정까지 추론할 수 있는 그런 사람들에 끌렸어요. 

강인식 : 저는 이 대목에서 삶의 에너지가 제일 강하게 느껴졌어요. 현묵이는 전부 동의하지는 않았는데요. 저는 좀 더 솔직하게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10대 후반의 눈에는 사회적으로도 번듯한 직업을 가진 ‘성덕’의 존재는 틀림없이 엄청난 가슴의 울림이 됐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게 10대의 박현묵을 움직여줬던 아주 강력한 힘이었다고 저는 생각했어요.  

인터넷 커뮤니티에 자발적으로 번역을 올리던 데서 시작해 이제 『끝나지 않은 이야기』 번역본을 출판한 프로 번역가가 되셨어요. 그렇다면 선배 톨키니스트들에게 어느 정도 다가갔다고 느끼시나요? 성취감도 있을 것 같은데요. 

박현묵 : 사실 제가 느꼈던 건 성취감과는 정반대였어요. 번역 제의를 받았을 당시에 제 머릿속에는 ‘과연 내가 공식적으로 대중에게 보일 번역을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뿐이었죠. 그동안처럼 저 혼자 아마추어로 번역을 하는 것도 아니니까요.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이 타이틀을 내가 가지면 되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했었죠.(웃음) 그런 고민이 있긴 했어도 번역을 하면서는 당장 이 이야기를 한국어로 옮기는 작업이 재미있었어요. 그러니까 역시 이번에도 다른 고민은 잠깐 미뤄두고 눈앞의 당장 재밌는 일에만 집중을 했고요. 새벽에 방에서 컴퓨터 켜 놓고 활자를 보면서 사전 찾고, 고민하고, 번역을 하면 다른 생각 없이 모니터에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어요. 덕분에 공식적인 역자 타이틀을 다는 것에 대한 부담은 잊을 수 있었던 거죠. 

강인식 :그렇게 말하니까 더 대단해 보이네요.(웃음) 즐기는 자를 당할 수 없는 것 같아요. 지금 모니터에 들어가는 것 같았다는 표현을 하잖아요. 그렇게 딱 붙어 있을 수 있는 힘이 현묵이한테 있어요. 



놀라울 정도의 단순함

그밖에 강인식 기자님이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알면 알수록 놀라웠던, 특별히 인상적이었던 박현묵 님의 태도는 무엇이었어요? 

강인식 : 가령 ‘밀사’에 관한 단어들이 있어요. 현묵은 그것에 참조가 될 만한 단어, 참고가 될 만한 단어들을 쭉 정리하고 그것들을 하나 하나 따져가며 자신의 번역에 일관된 가치로 설정을 해서 번역했거든요. 자신의 번역이 다른 번역가보다 대단한 번역은 아닐지 모르지만 적어도 이 부분에 있어서는 틀림없게 하겠다고 한 그 부분이 저는 제일 놀라웠어요. 현묵이 말한 게 ‘레퍼런스’거든요. 기본적으로 어떤 단어의 번역에 있어서도 톨킨의 아들인 톨킨 크리스토퍼부터 한국 번역가로 이어져온 그 레퍼런스를 모두 신경 쓰면서 자기 번역에 적용한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잖아요. 사실 논문을 그렇게 쓰려고 해도 정말 힘들거든요. 심지어는 긴 기사를 그렇게 쓰는 것도 아주 어려워요. 근데 그런 개념을 스스로 구축해서 번역을 했다는 건 정말 대단한 거죠. 

박현묵 님도 책 작업을 하면서 새롭게 생각하게 되었거나 확신을 갖게 된 자신의 면모가 있었을까요? 

박현묵 : 저도 어렴풋이 품고 있던 생각이라 동감한 것이 한 가지 있어요. 긍정적이라고 한 부분이에요. 

"나와 김 교수가 똑같이 감탄한 것이 있다. 그것은 현묵의 긍정적 사고 그리고 놀라울 정도의 단순함, 바로 낙천성이었다.”(49쪽)는 문장이 있죠. 박현묵 님은 비교군이 없었기 때문에 몰랐다고 하시지만요. 상황을 낙관적으로 보는 성향이나 성격은 분명해요. 이런 면은 어디서 영향 받았다고 생각하세요? 

박현묵 : 어려운데요.(웃음) 일단 낙천적으로 생각하면 어쨌든 멘탈에 유익하잖아요. 그래서 저 나름대로 그렇게 생각하려고 노력하는 것도 있고요. 어머니께서 저한테 “내가 옛날에는 네가 아프게 태어나서 되게 슬프고 힘들었는데 초등학교 3학년 정도부터 긍정적으로 생각하자고 마음가짐을 바꿨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어요. 그런 얘기를 꽤 여러 번 하셨는데요. 잘은 몰라도 그 얘기가 좋더라고요. 그때부터는 확실히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게 좋다는 가치관이 정립된 것 같아요. 

강인식 :한번은 현묵이가 너무 아파서 구급차를 불러 응급실을 가야 했대요. 거의 정신을 놓을 정도로 아픈 날이었는데 현묵이 엄마를 올려다 보면서 “엄마 걱정하지 마라, 나 안 죽는다” 이런 얘기를 했대요. 그래서 어머니가 되게 놀라셨다고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현묵의 병이 사실은 모계유전인 병이거든요. 모계 유전이라는 게 기본적으로 한국 사회에서는 가정의 파괴 혹은 비극의 시작이 되는 경우가 아주 많아요. 그래서 처음에 그 얘기를 할 때 너무 겁나고, 어려웠는데요. 놀랍게도 어머니는 거기에 대해서 아무렇지도 않게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그것이 크게 가족을 지배하지 않는 거죠. 그때 이런 낙천성이야말로 진짜 모계유전이다, 생각했었어요.

최근 일간지 인터뷰에서 “흥미가 동하는 건 언어학, 음성학, 역사언어학”이라고도 하셨더라고요. 번역도 계속 할 계획이신가요? 앞으로의 일도 궁금합니다. 

박현묵 : 궁극적으로는 그렇게 생각하는데요. 당장 구체적으로는 생각을 안 해요. 사실 그것 외에 하고 싶은 일이 있느냐 하면 또 고민이긴 하죠. 저는 미래를 생각해 둔 게 없어요. 다만 하고 싶다고 생각해둔 것을 못하고 죽지는 않는 것 정도가 바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얼마 전에 중앙도서관에서 마침 제가 보려고 하고 있던 톨킨 책 몇 권을 발견했어요. 그래서 일단은 그거를 꼭 정주행 해보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고요. 장차 톨킨이라는 사람에 대해서도, 그러니까 작품 외적으로 좀 알아보고 싶어요. 아마 그런 게 모여서 좁은 의미의 꿈들이 생기지 않을까요. 그렇지만 아직은 미래에 무엇을 하겠다, 그런 식의 것들은 생각하고 싶지 않아요.



*강인식

기자로 일하고 있으며, 『0.1그램의 희망』과 『꿈보다 열정』을 썼다.




아프기만 한 어른이 되기 싫어서
아프기만 한 어른이 되기 싫어서
강인식 저
원더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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