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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길 “말하지 못할 뿐, 너무 흔한 일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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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친구의 다섯 번째 폭행. 진아는 그를 신고했다. 결과는 벌금 300만원. 그녀는 스스로를 보호할 필요성을 느꼈고 인터넷에 자신의 이야기를 올렸다. 위로와 공분의 목소리 사이로 비난과 질책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유독 눈길을 붙드는 한 줄의 악플. 과거의 자신을 아는 이가 남긴 것이 분명했다. 그를 만나기 위해 고향으로 향한 진아는 대학 시절 지인들과 재회하게 되고, 성폭력 피해자였던 친구들의 이야기를 알게 된다. 그녀들은 ‘다른 사람’이었을까. “사랑하는 사람에게 맞을 것처럼 보이는 여자”이거나 “천박한 여자”였을까. 소설가 강화길은 그녀들의 이야기가 “너무 흔한 일”이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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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작가에게는 묻지 않는 것들


『다른 사람』으로 ‘제22회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하셨습니다. 당선 소식은 언제 들으셨나요?

 

정확히 언제인지 기억은 안 나는데, 퇴근하고 집에 가는 길이었어요.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었는데 전화가 온 거예요. 전화를 끊고 보니까 아이스크림이 다 녹았더라고요. 그래서 먹지 못했던 기억이 나요(웃음).

 

기분이 어떠셨어요? 믿기지 않던가요?


약간 그렇기도 했고요. 그냥 너무 좋았죠. 사실 등단했을 때도 조금 우여곡절이 있었거든요.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했는데, (주최측에서) 제 신상정보를 잃어버리신 거예요. 그래서 기자님이 인터넷 검색을 하셔서 제가 졸업한 학교를 찾으셨대요. 요즘은 학교 수업에 인터넷 카페를 활용하니까 ‘국문과 강화길’ 이런 식으로 쓴 글이 있었던 거예요. 결국 부모님께서 사시는 전주 집으로 먼저 연락이 갔어요. 부모님이 전화하셔서 물어보시더라고요. 혹시 신춘문예에 투고했냐고, 지금 <경향신문>에 전화해 보라고요(웃음). 그렇다 보니까 제가 당선 연락을 정식으로 받은 건 이번이 처음이었어요. ‘이번에는 무사히 전화를 받았구나’ 싶은 생각도 들었죠(웃음).

 

띠지에 적힌 ‘영페미의 최전선’이라는 표현이 강렬하게 다가와요.


이런 분위기와 시의성이 화제가 된다는 건 굉장히 고무적인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마치 영페미니스트의 대표 같은 느낌도 들잖아요. 제가 그렇게 대단한 사람도 아니고, 젠더 문제에 있어서 통찰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아요. 그래서 두려운 마음이 더 크죠. 여러 가지 고민도 하게 되고 책임감에 대해서도 더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등단 초기에는 여혐과 관련된 질문을 받으면 피하는 경향이 있으셨다고요.


여성 작가들은 그런 질문들을 많이 받아요. ‘여성으로서의 자의식을 갖고 있느냐’, ‘여성으로서의 글쓰기에 관심이 있느냐’ 같은 질문들이죠. 예전에는 그 질문들의 함의를 느꼈던 것 같아요. 어쩌면 시기와 상관없이 스스로의 검열이었을 수도 있고요. 왜냐하면 ‘여성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건 소품이 되고 쉽고, 지나치게 프레임적인 이야기이고, 선정적인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거든요. 학교를 다닐 때도 그랬고 합평을 할 때도 그랬어요. 실제로 증명된 적은 없는 이야기인데도 불구하고요. 조이스 캐롤 오츠, 마거릿 애트우드 같은 작가들을 보면서 공부하고 습작을 하면서도 그런 이야기를 듣는 거예요. 은연중에 ‘그런 걸 극복하는 게 예술가의 목표’라고 생각하게 되죠. 제 경우는 그랬던 것 같아요.

 

이제는 달라졌나요?


예전에는 ‘시작하는 단계니까 나를 이 프레임에 가두면 안 된다’는 무의식 같은 게 작동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질문을 피하거나 그것만 이야기하려고 하지는 않는다는 식의 대답들을 하게 됐죠. 등단 후에 그걸 극복하는 데에도 시간도 많이 걸렸어요. 

 

‘등단 이후 줄곧 여성문제를 이야기해온 작가’라는 수식어가 부담스럽지는 않으세요?


부담이 없지는 않죠. 그냥 이제까지 해왔던 이야기를 계속 했던 건데, 어느 순간 그런 작가가 되어 있는 거예요. 인터뷰에서 그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어요. ‘이런 이야기를 쓰면 프레임에 갇힐 수 있고 (창작 영역이) 축소된다는 말들이 있지 않느냐’고요. ‘그건 증명되지 않은 프레임’이라는 게 제 대답이었어요.

 

“마치 존재하지 않는 바이러스를 말하는 것”과 같다고 하셨죠.


그렇죠. 그게 저의 깨달음이었던 거예요. 정신을 차려 보니까 그런 작품들이 프레임에 갇힌 적은 없더라고요. 조이스 캐롤 오츠, 마거릿 애트우드, 박완서 선생님은 말할 것도 없고요. 항상 이 이야기를 해오던 사람들은 주제가 달라진다 해도 좋은 작품을 썼어요. 그러니까 그 말이 문제인 거죠. 이런 작품을 쓰는 게 (창작 영역을) 축소시킨다는 말이요. 이제 ‘누가, 왜’ 그런 말을 하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등단 이후 줄곧 여성문제를 이야기하고 있다는 건 맞는 말이기도 하고 틀린 이야기이기도 해요. 여성작가이고 직면하고 있는 이야기를 했기 때문에 당연히 녹아 들어가 있죠. 그게 마치 목적성을 가진 것처럼 이야기하는 건, 결국 ‘그런 작품을 쓰면 (창작 영역이) 축소된다’는 말을 하는 것과 똑같다고 생각해요.

 

주제가 ‘페미니즘’이 아닌 다른 것이었다면 어땠을까요?


이런 질문을 받지 않았겠죠. 제가 페미니즘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건 맞아요. 다른 작품에서 더 중요하고 깊이 있게 다루고 싶기도 해요. 만일 다른 주제를 이야기했더라도 분명히 페미니즘은 들어갔을 거예요. 그랬다면 페미니즘에 대한 질문은 나오지 않을 확률이 높겠죠. 제가 페미니즘에 집중하고 있는 이유는 그만큼 금기시되던 이야기이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고, 이 이야기가 나왔다는 게 우리에게 불편하기 때문일 수도 있어요.

 

작가들에게 ‘여자나 엄마 얘기는 쓰지 말라’는 말을 듣기도 하셨다고요.


직접적으로 이야기하지는 않아요. 돌려서 말하는 거죠. 어느 정도는 걱정인 거예요. ‘너는 그런 거 쓰면 안 돼’라고 무시하려는 게 아니고 ‘이런 이야기보다는 다른 이야기를 더 잘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말이 은연중에 나오는 거예요. 그걸 긍정하고 받아들이려면 내면을 깎아내야 되죠. 나를 죽이거나 버려야 되는 건데, 그런 면에서 저는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요. 주변에 조언을 해주는 친구들도 있었고, 휘둘리기 쉬운 심정적인 상태도 아니었어요. ‘나는 이걸 하고 싶은데?’라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극복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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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년생 강화길


『다른 사람』은 기존의 페미니즘 소설과 구별되는 지점이 있는 것 같아요. 여성 인물들의 캐릭터가 다르다고 할까요.


그만큼 여자 캐릭터가 입체적으로 이야기되는 게 허락되지 않는 상황이었던 것 같아요. 선배들의 작품 속에 그런 인물이 없었다는 게 아니고요. 굉장히 많은 여성 캐릭터를 보여줬지만 그걸 단선적으로 해석하는 데만 집중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우리가 너무 많은 것들을 놓쳤다고 생각해요. 제 경우에는 주제에 맞춰서 이야기를 하다 보니까 조금 다르게 보이는 것 같고, 크게 달라진 건 없다고 생각해요.

 

‘강한 페미니스트로 거듭나는 여성’이 전형적인 인물상이었다면, 이 소설의 인물들은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여줘요. 무엇이 정답인지 몰라 혼란스러워하는 거죠.


저한테는 그게 현실이라서 그랬던 것 같아요. 만화나 영화 속의 주인공처럼 어느 순간 각성을 한다면 좋겠지만, 각성을 한 후에도 고민과 상황은 이어지잖아요. 다시는 이렇게 행동하지 않겠다고 생각해도 똑같은 상황을 만나면 위축되고 고통을 겪기 마련이죠. 스스로에게 더 실망하고요. 그 모습을 많이 보여주고 싶었어요. 제가 많이 보고 느꼈던 복합적인 상황도 쓰고 싶었고요. 똑같은 사건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들 사이에 의견이 다르잖아요. 서로 반목할 수밖에 없고 연대할 수 없고요. 그런 데에서 오는 충돌 같은 걸 느꼈어요. 저에게는 생동감 있었던 이야기인 거죠.

 

누군가는 소설 속 여성들을 답답하게 여길지도 모르겠어요. ‘왜 자신을 적극적으로 지키지 못했어? 왜 저러고 살아?’라고 말하는 거죠. 그녀들은 왜 스스로를 탓하면서 참았을까요?


사회적인 무엇이 이유일 수도 있고, 개인적인 문제가 있을 수도 있죠. 인물들에 대해서 그렇게 말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해요. 여성이라고 해서 모든 여성에게 감정을 이입할 수도 없는 거고, 사실 그것 자체가 프레임이죠. 페미니즘은 ‘한 인간이 개별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주어진 캐릭터대로 행동하지 않는다는 거죠. 당연히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 거고, 그것이 지지 받을 수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마찬가지로 이 소설의 인물들을 보고 싫어할 수도 있고 좋아할 수도 있어요. 저는 그게 더 건강하다고 생각해요. ‘이 소설을 읽고 동감하지 못했어? 왜 그래?’라고 말하는 게 더 좋지 않은 상황이라는 거죠.

 

주인공 진아와 친구들은 작가님과 동갑이에요. 1986년생인데요. 그녀들이 겪는 현실과 감정이 이전 세대와는 다르다고 느끼세요?


어떤 지점에서 구별된다고 단언할 수는 없는 것 같아요. 제가 이전 세대 여성들의 생활을 아는 게 아니니까요. 제 세대에 관한 이야기만 하자면, 어렸을 때부터 남녀는 평등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자라면서 그게 아니라는 걸 미묘하게 깨닫게 되는 거예요. 당연히 분노가 쌓이게 되고요. 저는 지방출신인데요. 예를 들면, 지방에서는 공부 잘하는 여자 아이들도 굉장히 좋은 대학이 아니면 서울로 진학하지 않는 경우가 있어요. 명문대도 아닌데 굳이 서울까지 갈 필요가 있냐는 무언의 압박이 있는 거죠. 그보다는 안정적인 직장이 보장되는 학교를 선택하는 식으로 타협을 해야 될 때가 있어요. 만약 오빠가 있으면 더 극명하게 느끼죠. 여동생이 양보를 해야 되는 거예요. 옛날에는 여자 아이를 아예 대학에 안 보냈잖아요. 저희는 대학은 갔지만 차이를 느끼기는 한 거죠.

 

연애를 할 때는 어떤가요?


요즘 가스라이팅이나 맨스플레인이라는 용어도 많이 쓰잖아요. 연애할 때 문제가 생기면 상대가 나를 압박할 때도 있고, 그러면 ‘내가 잘못한 건가? 내가 이해해야지’ 하고 받아들이기도 하죠. 여자들이 연애 상담하면서 이해하라는 말을 많이 듣잖아요. 사실 연애에서 발생한 권력관계인데, 그걸 자각하기보다 ‘내가 이해를 하고 넘어가 줘야지’ 하고 생각하는 상황에 놓이게 돼요. 심해지면 데이트 폭력이 되고 성폭력이 되는 건데도 불구하고요. 뭔가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은 드는데 명확하게 말할 수는 없고, 지금 당장 어떻게 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고, 그래서 더 힘이 드는 것 같아요. 그런 과도기적 상황을 20대 때 많이 보고 느끼면서 ‘어쩌면 이건 세대 문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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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너무 흔한 일이에요


성폭력 피해 여성을 비난하는 여성들도 있어요. 소설에도 그런 모습이 나타나 있는데요. 이런 상황이 생기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성들이 가지고 있는 여성혐오가 가장 비극적인 일이라고 생각해요. 저도 페미니즘에 직면하는 순간 제 안에 여성혐오가 있다는 걸 느꼈어요. 나의 젠더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부정했던 거죠. 사회에서 이야기하는 것들에 반응하기만 하고요. 그게 굉장히 놀랍고 힘들었어요. 내가 했던 실수들을 다 돌이켜 보게 됐으니까요. 여성들이 페미니즘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자기혐오를 했던 시간을 되짚게 돼요. 그게 너무 고통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다른 사람』이라는 제목 안에 선 긋기, 단절의 의미가 담겨있는 것 같아요.


그렇죠. 다른 사람이 되고 싶기도 하고, 다른 사람으로 보이고 싶기도 하고, 어떤 군집에서 구분되고 싶기도 한 거죠. 누구나 자신이 특별해지고 행복해지기를 바라잖아요. 그러니까 사회에서 별로 좋지 않은 사람이라고 이야기되는 상대가 있다면, 그 상대가 나랑 같은 젠더를 가졌다면, 구분되고 싶어 하는 거예요. 결국 여성들이 가지고 있는 여성혐오라는 건 ‘나는 여자지만 저 여자와는 다르다’는 거죠.

 

‘너 같은 여자는 아니야, 너처럼 하지는 않아’라고 생각하겠죠.


여성혐오로 분류되는 군집에 자신이 포함되지 않는다는 걸 드러내려고 하는 건데요. 그 여성들이 잘못된 것도 아니라고 생각해요. 자연스러운 거예요. (여성혐오를 하는 사람들과) 싸우는 건 너무 고통스럽잖아요. 또 지금까지 주입 받은 게 있기 때문에 (혐오의 대상이 된 여성들이) 옳지 않다는 생각도 당연히 하게 되고요. 그러니까 (혐오 대상인) 몇몇의 사람들은 계속 고립될 수밖에 없는 거예요. 어떤 때에는 여성들이 더 공격적인 단어들을 쓰기도 해요. 성적으로 문란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말들 있잖아요. 그런 걸 더 쉽게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어요. 사실 자기혐오에 가까워질 수 있는 거죠. 그런데도 계속 구분을 짓는 거예요. 나는 조금 다르다고요.

 

성적인 문제에만 국한되는 건 아닐 거예요.


모든 분야에서 발생한다고 생각해요. 글을 쓰는 데 있어서도 ‘다른 여학생들과는 다른 작품을 써야 돼’라는 압박을 받을 때가 있어요. 여성적인 작품 말고 다른 걸 써야 된다는 거죠. 사실 여성성이라는 게 얼마나 흥미로운 주제예요?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 훨씬 확장될 수 있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중성적이거나 완전히 성별을 알 수 없는 걸 쓰게 되는 거예요. 저도 습작기에 했었던 시도예요. 그건 달라지기 위해서 하는 건데, 비슷한 일이 도처에서 발생하죠. 직장에서 일할 때도 여성성이라고 생각되는 것들을 부정하고 다른 걸 선택하기도 하잖아요.

 

소설 속 여성들은 성폭력을 당했던 경험을 갖고 있어요. 이들의 이야기에 영향을 미친 실제 사건도 있었나요?


많이 받는 질문인데요. 굉장히 특별한 사건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그런데 사실 너무 흔해요. 대한민국에서 80년대 중반 이후에 태어나서 대학을 다닌 여학생들은 이런 경험이 정말 많아요. 그 학생들이 어떻게 됐는지도 알고, 대학 안에서 끝나는 일도 아니에요. 이건 너무 흔히 일어나는 일이고 말하지 않을 뿐이에요. 사회적인 시선이나 여러 가지 문제 때문에 말하지 못하고 신고하지 못하고 그냥 넘어갈 뿐이죠.

 

페미니즘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는 소설이에요. 그렇지만 너무 페미니즘에만 초점이 맞춰져서 아쉬우실 것 같아요.


아쉬움도 있죠. 그런데 제가 선택한 건 명확하니까요. 한 소설을 쓰면서 하나의 소재에 대해서만 이야기할 수는 없는 거잖아요. 세계관이라는 건 굉장히 다양하게 얽혀 있기 마련이고요. 이건 덫이기도 해요. 이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었으면서도, 이 주제만 두드러지는 것 같다는 두려움을 갖는 건데요. 제가 여전히 그런 프레임을 의식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죠. 이런 복합적인 감정이 소설에 드러난 것들과 맞닿아 있는 것 같기도 해요. 앞으로 이 부분에 대해서 조금 더 깊이 있게 생각하게 될 것 같고, 저에게 과제가 될 것 같아요. 페미니즘에 목적성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지만 쓰다 보면 당연히 나올 수밖에 없는 문제들이기 때문에, (페미니즘이) 중요하게 이야기되는 건 감사하게 생각해요.

 

다른 부분도 주목해줬으면, 하는 바람은 없으세요?


그냥 재밌게 읽어주셨으면 좋겠어요(웃음). 이 작품은 페미니즘 소설이기도 하고 사회적인 문제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니까 여러 가지로 말할 수 있을 텐데요. 저는 끝까지 잘 읽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쓰기 시작했어요. 한 권의 소설이라는 건 어쨌든 끝까지 다 읽을 수 있어야 되는 거잖아요. 저널이나 이론서 같은 게 아니기 때문에, 그냥 소설로써 받아들여졌으면 좋겠어요. 독자에게 다가가는 한 권의 작품으로 기억되고요. 가장 우선적으로 듣고 싶은 건 재밌었다는 말과 함께 소설이 참 좋았다는 이야기예요.


 

 

다른 사람강화길 저 | 한겨레출판
전혀 다르게 보이는 단어들이 어떻게 한 부모 아래에서 태어났는지, 한 단어가 어떤 역사의 풍파를 맞아 지금의 모습으로 변했는지를 알면 세계사의 흐름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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