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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광 “소설가로 산 20년, 가족을 팔아먹고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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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종광이 첫 번째 산문집 『사람을 공부하고 너를 생각한다』를 발표했다. 4년여 동안 <월간 샘터>에 연재했던 글 가운데 43편을 엮은 것으로, ‘이웃’이라는 주제로 들여다 본 소시민의 삶이 담겨 있다. 소설 『경찰서여, 안녕』, 『모내기 블루스』, 『처음의 아해들』등에서 발견되던 작가 특유의 입담과 해학은 어김없이 빛을 발했다. 이리저리 치이고 흔들리면서도 변함없이 삶을 견인해가는 서민들의 이야기가 웃음과 함께 감동을 안겨준다. 어수룩한 모습과 엉뚱한 사건이 폭소를 유발하다가도, 서툰 한 마디에 꾹꾹 눌러 담은 진심이 코끝을 찡하게 만들기도 한다.

 

작가는 능청스러운 태도로 이야기를 전달하면서 무심한 듯 툭툭 삶의 진실들을 떨궈놓는다. “도대체 뭘 견디는 것인지 문득문득 허무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견디”는 순간들과 “모두가 목숨을 거니, 목숨을 걸어도 실패자는 필연적으로 나올 수밖에 없”는 현실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가 이끄는 대로 ‘웃픈’ 이웃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지금 우리 사는 모습은 어떠한가’ 되돌아보게 된다.

 

책의 후반부에는 작가의 자화상이라 할 만한 7편의 글이 실려 있다. 소설가로 살아온 20년의 세월, “가족을 팔아먹은 자”로 살아온 시간들을 반추한 것이다. 한평생 농부로 살아온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아이의 이야기는 종종 소설의 밑천이 되어주었다. 이 얄궂은 운명을 돌아보며 작가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20년 가까이 가족을 팔아먹은 자는, 어쩐지 부끄러워, 반성도 해보고 변명도 해보고 핑계도 대보고 억지도 부려보고 별짓을 다 했건만, 창피함은 사그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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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을 팔아먹는 자


“산문집을 욕망한 게 진심이다”라고 쓰셨어요. “산문집 한 권 없다는 것이 거시기했다”고요.

 

몇 번 산문집을 내려고 했는데 잘 안 됐어요. 남들은 다 있는데 나만 없는 것 같아서 조금 부끄러운 감정도 있었던 것 같은데요. 이렇게 산문집이 나오니까 큰일을 한 것 같기도 하고, 진짜 좋았어요. 소설책이 나온 것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에요. ‘이제 나도 산문집 있다’ 이런 느낌이라고 할까요(웃음). 소설가가 산문집이 없으면, 왠지 산문을 못 쓰는 것 같기도 하잖아요. 그래서 괴롭기도 했죠.

 

책이 총 3부로 이루어져 있잖아요. 1, 2부에는 <월간 샘터>에 연재하셨던 글이 실려 있는데요. 한 달에 한 번씩 소재를 찾으시는 일도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처음에는 한 달에 몇 편씩 써놓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렇게 안 되더라고요. 미리 써 놓은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것 같고요. 마감 열흘 전쯤부터 고민을 했던 것 같아요. 소재가 있어서 바로 썼던 적도 있지만 고통스러운 때도 있었죠. 그 이유 중에 하나는, 건전하고 감동적이고 좋은 글을 써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어요. <월간 샘터>에 실리는 글이다 보니까 그런 컨셉으로 써야 된다고 생각했는데, 제 글은 그렇지 못하거든요. 뭔가 아이러니하다거나, 컬트적이라거나, 그런 부분이 있어서 고민이 있었죠. 그리고 서민들 위주로 글을 쓰다 보니까 힘든 부분도 있더라고요. 제 주변 사람들하고 비슷한 이야기를 썼는데, 그 분들이 그냥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이지, 특별히 기쁜 일이 있거나 감동적인 일이 있는 사람들이 아니거든요. 이번에 책을 내는 과정에서 글을 다듬으면서 조금 진심이 아닌 것 같거나 가식적으로 느껴지거나, 꾸며낸 것처럼 느껴지는 부분들은 많이 덜어냈어요.

 

주변 분들의 이야기를 토대로 각색한 글들이 많은데요. ‘전철의 기타맨’ 같은 경우는 어땠나요?


제가 실제로 겪은 일이에요. 5년 전쯤에 1호선에서 그 분을 봤는데, 진짜 무서웠어요(웃음). 가운데 앉아서 연주하고 있으니까요. 누구든 숨소리만 내도 째려보고 시비를 거는 분위기라, 쳐다보지도 못하겠고 따지지도 못하겠더라고요. 속으로 ‘뭐라고 해야 되나’ 고민하게 되고요. 저는 ‘전철의 기타맨’ 같은 형태의 소설을 좋아해요. 그래서 아주 쉽게 썼죠. 사실은 취재를 다니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어서 아내나 동생,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돼지저금통과 표창장’은 제 동생 이야기예요. 동생이 검찰에서 일하는 공무원인데, 제일 인상 깊은 사건을 하나 이야기해달라고 했더니 그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실제로는 이러지 않았을까’ 생각하면서 최대한 재현해서 썼어요.

 

삶의 고단함이 묻어나는 이야기들인데, 어둡고 축축하지 않아요.


제 시각이 원래 그래요. 늘 서민들과 어울렸는데, 서민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모르겠지만, 불우한 이웃과 서민의 사이쯤 계신 분들과 많이 만났던 것 같아요. 그런데 치명적인 사고나 슬픈 일을 겪었다거나 그런 상태에 있다고 하더라도, 웃는 분들을 많이 만났어요. 해학적인 상태죠. 눈물 흘리면서 슬픈 사연을 이야기하기보다 웃으면서 슬픈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그런 분들이 더 많아요. 그럴 수밖에 없죠. 골방이나 안 보이는 곳에서 지내면서 폐인 상태로 지내는 분들은 바깥으로 나오지 않잖아요. 바깥으로 나온 분들은 그걸 어떤 식으로든, 말로든 웃음으로든 풀어내는 거죠. 어떻게 보면, 김유정 선생님의 소설이 지금 한국 사람의 정서와 딱 맞는 것 같아요. 정말 황당해서 돌아버릴 것 같은 상황인데도, 그 일을 겪는 사람들은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열심히 살아야지’ 하고 살아가잖아요.

 

3부에는 개인적인 이야기들이 담겨 있습니다. “가족을 팔아먹는 자”는 표제작이 될 뻔 했다고요.


처음에는 제목을 그렇게 지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렸어요. 그런데 아내가 싫다고 하더라고요. 기분이 조금 거시기할 것 같다고요(웃음). 그러면서 지금의 제목을 추천해줬어요. 저희 아버지와 어머니는 이번 책을 읽으시고서 ‘우리는 가족을 팔아먹었다고 생각 안 해, 너무 마음 쓰지 마’ 그러시더라고요. 그런데 이번에 또 팔아먹을 일이 생겼어요(웃음). 추석에 어머니께서 재미난 일을 겪으셨더라고요. 소설로 쓸까 생각 중이에요(웃음).

 

소설가로 사실 수 있었던 건 부모님과 부인, 아이, 그리고 부모님 댁의 소 덕분인 것 같아요(웃음). “내가 이렇게나마 된 것은 소들 덕분이다”라고 하셨어요.


맞아요(웃음). 소에게 진짜 감사하고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소를 팔아 등록금과 생활비를 대주셨다고요. 소들에게 볏짚이라도 줘야 할 것 같아요(웃음).


옛날에 많이 줬어요. 한 10년 동안은 겨울만 되면 아버지 어머니랑 짚 묶으러 다녔죠. 등단한 후에는 ‘그래도 일국의 소설가가 됐는데, 이 겨울에 논바닥에서 뭐하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웃음). 그때는 짚 묶는 기계가 없었고, 기계를 부르려면 돈을 내야 하니까 아버지 어머니가 계속 짚을 묶으시는 거예요. 옛날에는 사람을 사서 묵었지만 이제는 사람들이 그런 일을 잘 안 해요. 품값에 비해서 일이 너무 힘드니까요. 추수할 때 벼를 거두는 방식이나 소에게 밥을 주는 형태도 계속 변해 왔죠. 소설을 쓸 때마다 그런 변화의 역사도 담아내려고 하고 있어요. <월간 샘터>에 연재할 때도 농촌 이야기가 많았어요. 그 중에 소설로 출간 예정인 것도 있어서 이번 책에는 싣지 않았는데요. 딱 하나 실려 있어요.

 

“낭만 삼겹살”인가요?


네, <월간 샘터>에 마지막으로 연재했던 글이기도 해요. 죽어가는 친구에게 찾아가서 (그 친구가) 먹으면 안 되는 소주와 삼겹살을 같이 먹으면서 노래를 부르는 이야기인데요. ‘이런 게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이다’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지금까지 연재했던 것 역시 그런 이야기라고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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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로 시를 쓰고 있는 것 같아요


이번 책은 어머님의 고희연에 맞춰 출간됐다고 들었어요. 어머니께서 굉장히 기뻐하셨겠어요.


어머니가 그러시더라고요. ‘이번 책은 정말 잘 썼다, 재밌고 깊고 넓어졌다’고요. 그래서 제가 ‘이전에 쓴 책은 안 그랬나요?’하고 여쭤봤죠(웃음). 예전 작품들은 별로 재미도 없고 욕도 너무 많고 이상한 이야기가 많았대요(웃음). 그래서 충격을 받았죠. 부끄럽기도 했고요. 그런데 작가들이 꿈꾸는 게 재밌고, 깊고, 넓어지는 거잖아요. 어머니가 그 세 가지를 정확하게 짚어서 말하셔서 놀라기도 했어요. 그런데 이번 책은 소설이 아니잖아요. 저는 산문을 못 쓴다고 생각했는데, 어머니 말씀을 듣고 보니까 ‘내가 소설보다는 산문이 나은가?’ 싶기도 하더라고요. 어쨌든 어머니가 좋다고 생각하시는 책을 한 권 내서 다행인 것 같아요.

 

소설작법을 찾아 헤매던 학창시절의 이야기도 실려 있어요. 당시 『나의 습작기』를 읽고 “가난해야, 상처가 많아야, 연애를 많이 해야, 책을 많이 읽어야, 방황을 많이 해야 소설가가 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리셨다고요(웃음). 실제로 소설가들이 그렇던가요? 연애도 많이 하고, 상처도 많이 받고요?


그럼요, 다 그래요(웃음). 『나의 습작기』는 1970년대 소설가 분들 이야기인데, 지금 봐도 그런 것 같아요. 저는 트라우마나 상처가 거의 없고 너무 괴팍한 편도 아니어서 ‘도저히 소설가가 될 수 없을 정도로 건전하고 평범한 마인드와 행동거지를 가지고 있는 것 아닌가’ 싶기도 했어요. 연애도, 작가들마다 다르지만, 저는 상당히 평범한 축에 속하는 것 같아요(웃음).

 

그때 “대학은 들어가고 봐야 한다는” 깨달음도 얻으셨죠?


지금은 다 대학에 가는 시대이지만 그때는 달랐거든요. 그런데 다 대학에 가셨더라고요. 그래서 정말 놀랐어요. 「까치방」의 이정환 선생님 한 분 빼놓고는 다 대학에 가셨더라고요. 그런데 고등학교 때 열심히 공부했다는 분은 한 분도 없거든요. 제일 건전하게 학창시절을 보낸 게 책을 읽은 거예요. 그렇게 공부를 안 했으면 대학에 못 가는 게 맞잖아요. 그런데 어떤 식으로든 다 갔어요. 그래서 진짜 깨달은 게 ‘다들 머리가 진짜 좋구나’라는 거였죠(웃음). 그러지 않고서야 잠깐 공부해서 대학에 갈 수는 없는 거잖아요. 그리고 제가 본 바로는 작가 중에 1/3은 문학 공부를 열심히 했지만, 1/3은 어중간하게 했어요. 1/3은 전혀 하지 않았고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책 많이 읽고 많이 써야 작가가 된다고 하지만, 그것도 억지로 맞춘 이야기일 수 있다는 거죠. 그렇게 따지면 문창과 나오면 다 작가가 돼야 하는데, 아직도 등단자를 배출하지 못한 문창과도 있는 것 같거든요.

 

소설가가 되기엔 너무 평범했다고 하셨는데요. 대학에서 ‘평범하지 않은 20대를 보내야 될 것 같다’는 생각도 하셨어요?


그런 생각도 많이 했어요. 고등학교 때는 일부러 기행을 해보기도 했고요(웃음). 그런데 대학을 가보니까, 일부러 기행을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냥 그런 경우도 많더라고요. 제가 나온 문창과에도, 다른 문창과도 마찬가지이겠지만, 그런 애들만 와 있었어요. 그래서 평범한 사람이 더 특이하게 보였죠. 대학을 다니는 동안 사람들이 정말 천차만별로 다르다는 걸 제대로 깨달았던 것 같아요.

 

한 때는 시를 쓰려고 하셨던 것 같아요.


정확히 말하면 시도 쓰고 소설도 쓰려고 했죠(웃음).

 

“내가 쓴 모든 시와 그 시가 담긴 디스켓까지 불태우”는 일도 있었다고 하셨는데요. 그때 20대 후반이셨죠? 이후로는 시를 안 쓰셨어요?


사실은 썼습니다(웃음). 스물아홉인지, 서른인지, 그때쯤 신춘문예 몇 번 써서 보내본 적이 있었어요. 등단하고 한 3년차까지 신춘문예에 시를 냈던 거죠. 

 

이제 시 쓰기는 그만두셨어요?


시는 이제 못 쓰겠더라고요. 시를 모르겠어요. 소설도 모르겠지만(웃음).

 

책에서 쓰시길 “소설은 노동과 같다”고 하셨는데요.


노가다라는 거죠, 뭐(웃음).

 

‘엉덩이로 쓴다’는 말과 같은 건가요?


그렇죠. 별다른 말은 아니고요.

 

시는 다른 것 같으세요?


다른 것 같아요. 분량으로 승부하는 게 아니고, 분량 채워봐야 의미가 없잖아요. 영혼을 담아야 되는 일 같은데요. 저도 영혼을 담았다고 생각했지만, 제가 볼 때는 저한테 비유 감각이 없는 것 같아요. 신춘문예나 제도권에서 원하는 시는 비유의 시를 원하는 것 같은데, 제가 생각하는 시는 그런 식이 아니고 「노동의 새벽」 같은 시였다는 거죠. 그러고 보면, 결국은 제가 쓰려고 했던 시를 소설로 쓰고 있는 것 같기도 해요. 옛날에는 희곡 소설을 쓴다고 생각했는데, 소설 시를 쓰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올해로 등단 20주년을 맞으셨어요. 소설가로 살아온 20년을 되돌아보신 소감은 어떠세요?


20년 만에 첫 번째 산문집을 내니까 좋아요. 지난 5년 동안은 여러 가지로 정신을 못 차렸던 것 같은데요. 꾸준히 책을 내고 소설을 쓰고 있기는 했지만 ‘내가 뭘 쓰려고 하는 거지’ 싶기도 했는데, 작년 가을부터는 쓸 방향이 잡힌 것 같아요. 이를테면 책이 나오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한다든가, 출간이 되든 안 되든 계속 써야 한다거나, 그런 거죠. 이제 방황을 끝내고 단편은 한 달에 하나, 장편은 1년에 하나를 쓰자고 자연스럽게 결심하게 됐어요. 마음을 조금 넉넉하게 먹게 된 것 같기도 하고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산문집을 내게 됐어요. 조금 있으면 소설집도 나올 예정이고요. 2년 전에 ‘조선통신사’라는 소설을 열심히 썼는데, 11월에 출간 예정이에요. 그렇게 하나씩 결실이 생기는 것 같아요(웃음).


 

 

사람을 공부하고 너를 생각한다김종광 저 | 교유서가
짧은 글 속에 우리네 이야기를 능청스럽고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읽고 나면 마음이 짠해지게 만드는 저자의 주특기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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