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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했지만’ 작곡가 한동준, 라디오 DJ이기 전 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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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석의 '사랑했지만'의 작곡자 한동준, 그는 잊을 수 없는 1990년대 히트쌍포 '너를 사랑해'와 '사랑의 서약'을 내놓으며 한 시절을 풍미한 인기가수였다. 지금은 가수보다는 CBS 라디오(FM) 팝 프로 <FM 팝스>의 진행자로 이름이 더 자주 언급된다. 많은 팝 애청자를 확보하고 있는 이 프로가 막 방송 10년을 맞았다. 그는 “6개월만 하고 말 줄 알았다”며 '하고 싶은 걸 하게 해준' 청취자분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했다. 실제로 소문난 '팝 마니아'인 그는 방송 DJ를 하면서 취향의 벽이 사라져 일례로 이전에 별로였던 아바의 음악이 새삼 위대하다는 것을 알았다고 말했다.

 

지난 10월 17일 이즘과 인터뷰에서 이제 가수는 안 하는 거냐는 질문에 “가수로서 노래를 만들고 앨범을 내야겠다는 생각은 한 순간도 놓쳐본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사실 그는 촛불집회에 참여해 노래를 불렀고 김광석 추모공연에 빠지지 않고 임하고 있다. 모처럼의 대화시간을 맞아 한동준은 팝 DJ로서의 소회는 물론이고 절친이었던 고(故) 김광석과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선배음악가 조동진에 대한 이야기도 조금의 거리낌 없이 풀어냈다. 숨길 수 없는 라디오 퍼스낼리티, 뮤직 맨 그리고 조동진과 김광석 '팬'이었다.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 <FM 팝스>가 눈 깜빡할 새 10년이 됐네요. 10주년 축하드립니다. 반면 가수로서는 2003년에 정규 음반을 낸 이후로 14년 동안 소식이 뜸하신데요. 그 사이에 한동준은 거의 가수가 아니라 '라디오 DJ'로 전향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저는 항상 가수라고 생각하고 있는데요. DJ가 같은 음악을 다루지만 자세가 굉장히 달라요. DJ는 대중에게 낮은 자세로 다가가는 반면 뮤지션은 그렇지 않거든요. 듣든 말든 난 이런 음악을 한다는 이런 거만한 면이 있죠. 근데 DJ를 하다 보니 자세가 달라지네요. 일상적으로 노래가 안 만들어져요. DJ는 사람들과 계속해서 공감하고 소통하는 직업이잖아요. 같은 음악을 중심으로 하는 직업인데 굉장히 다른 거죠. 그러나 가수로서 노래를 만들고 앨범을 내야겠다는 생각은 한순간도 놓쳐 본 적이 없어요.

 

일단 10년을 맞게 된 인간적인 소감 한마디 부탁드려요. 팝을 듣는 사람들이 현저히 줄어든 요즘 상황에서 팝 프로그램을 갖고 10년을 했다는 기분이 남다를 것 같습니다.


기적 같아요. 젊었을 때는 인생을 긴 텀(term)으로 보지 못 하잖아요. 그런데 제가 50(살)이 넘어가면서 10년, 20년 이렇게 보니깐 저는 제가 하고 싶었던 걸 다 했던 거 같아요. 이런 것들이 기적처럼 이뤄져서 어쩔 때는 겁이 나기도 합니다.

 

<FM 팝스> 를 처음 시작할 때 10년까지 갈 거라고 생각했는지.


전 6개월만 하고 말 줄 알았어요. 그전에 제가 불교방송에서 <밤의 창가에서>를 했었는데 그걸로 시작해서 DJ를 띄엄띄엄하고 그랬죠. 항상 한 텀, 그러니까 6개월을 해본 적이 없어요. 2000년 이후로 제가 결혼해서 DJ라는 직업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죠. 결혼하니까 생활이 된 겁니다. 그 전과 마음가짐이 달라진 거죠. 그런데 김형준(한동준 이전에 <FM 팝스>를 진행한 CBS프로듀서)에게 연락이 와서 맡게 됐어요. 기회가 온 거죠. 저에게는 제가 선곡하는 그런 기회가 온 거잖아요. 제가 선곡하면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거든요. 처음 몇 년은 가수 할 때처럼 열심히 했어요.

 

같은 팝 프로그램으로 MBC <배철수의 음악캠프>가 있죠. 그런데 프로 진행자 배철수는 자신이 가수가 아니라고 못 박아요. 한동준은 그래도 '가수다'라고 얘기를 하잖아요. 이게 무슨 차이가 있는 건가요.


철수 형은 공식적으로 은퇴를 하셨어요. 은퇴를 하겠다고 하고 은퇴를 하신 거잖아요. 노래를 안 하시죠. 음악캠프 공개방송 하실 때나 가끔 하시는 거지. “가수가 한번 은퇴했으면 끝이지!”라는 태도를 가지신 분이죠. 저는 아직도 노래를 부르러 다니고, 가끔 노래를 만들기도 하거든요. 노무현 대통령 추모 공연이라던가, 세상이 엉망진창으로 돌아가는 것에 대한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또 냈거든요. 돌아가시고 나서 바로 추모 곡을 만들었는데 그건 저작권 등록도, 발표도 안 했죠. 2009년 '강물처럼'이 그 곡이고, 그 다음 해에 만든 '사람이 사람으로'는 공식 음원으로 발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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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 DJ들은 자신의 애정과 취향을 반영한 곡을 선곡 소개하는 편인데요. 한동준의 <FM 팝스>는 철저히 그것을 묻어버리고, 청취자 지향을 중시하는 대중노선을 취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소문난 록과 팝 마니아라는 점을 감안하면 서운함이나 아쉬움이 있었을 것 같은데요.


솔직히 안타깝고, 섭섭하고 그런 게 굉장한 스트레스였어요, 처음에는. 말도 못해요. 그런데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하면 방송 못해요. 유로댄스를 틀면서도 제가 좋아해야 해요. 음악은 자기가 좋아하지 않으면 진짜 꼴도 보기 싫고 그런 겁니다.

 

청취자들을 배려하면서 음악영토가 확대 되는 게 있죠. 예전에는 듣지도 않은 음악이었는데 재평가도 하게 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로댄스는 팝송을 듣는 사람에게 뭐랄까, 굉장히 뜨거운 감자 같은 '난제'에 속하지요.


사실 나쁜 음악은 세상에 없잖아요. 그런데 머릿속에는 나쁜 음악이라는 생각이 들어있어요. 그러니까 '유로댄스'라고 하면 바람직하지 못한 생각들이 머릿속에 들어있거든요.

 

청취자들이 좋아한다는 것을 알지만 하루 여덟, 아홉 곡이나 방송하는 경우가 많죠. '너무 나온다'라는 생각도 들더라구요. 일각에서는 너무 청취자를 의식한다, 상업적이다 하는 비판 의견도 있습니다.


싫어하는 사람은 못 듣죠. 근데 비율이 그쪽이 훨씬 많으니까요. 그리고 대부분의 청취자들이 팝송을 라디오를 통해서 듣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 않아요. 마니아들이 그러지 대부분은 롤러장이나 나이트클럽에서 들은 '귀에 익은 노래'를 틀어주면 좋아하는 거죠. 처음에는 이걸 음악이라 생각을 안 했는데, 틀어야 하니까요. 그래서 좋아하려고 노력했어요. 어쨌든 유로댄스를 틀지 않으면 방송 하지 않는 것 같은 기분까지 들었어요. (웃음) 그리고 유로댄스는 분위기를 맞춰서 틀기가 좋아요. 비슷비슷하니까요. 마치 한 곡을 틀은 것 같잖아요, 노래들이.

 

유로댄스가 아니더라도 호감을 갖지 않았던 음악인데 재평가하게 된 곡이 있나요?


사실 제가 아바(Abba)를 별로 안 좋아했거든요. 특히 'Dancing Queen', 'SOS' 같이 널리 알려진 히트 곡들이요. 히트되지 않은 다른 곡을 오히려 들었는데, 아바는 다시 듣게 되면서 연주력도 그렇고 모든 면에서 진짜 굉장히 유니크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노래마다 엄청난 개성들이 있죠. 어렸을 때는 레드 제플린(Led Zeppelin), 퀸(Queen),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 정도를 들어줘야 음악 듣는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아바는 다시 들으면서 위대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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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이들이 DJ로 아는데 한동준은 한 시점을 풍미한 인기가수입니다. 결정적으로 '너를 사랑해', '사랑의 서약' 이 두 곡만으로도 이름이 남죠. 그리고 김광석이 부른 '사랑했지만'의 원작자이기도 하고요. 그 곡을 (김광석에게) 주게 된 경위가 궁금합니다.


비 오는 날 지하 녹음실은 굉장히 밀폐되어서 습기도 있고 그렇거든요. 거기 앉아서 순식간에 '사랑했지만'을 만들었어요. 10분도 안 걸렸던 거 같아요. 나중에 코드는 편곡 과정에서 건들긴 했지만 코드가 중요한 노래가 아니니까요. 그때 '더 클래식'의 박용준이 SM에 같이 있었는데 녹음 좀 해보자 해서 1절만 데모를 만들었어요. 그리고 그 당시는 김광석뿐만 아니라 많이 놀러 왔어요. 이수만 씨가 프로덕션을 한다니까 녹음실 구경도 할 겸 많이 놀러 왔다가 이거 한 번 들어보라고 하게 된 거죠. 그때 김광석은 2집 녹음하기 전이었어요. 저는 1집 녹음이 다 끝난 상태였고, 언제 또 낼 수 있을지 모르니 줬죠.

 

참, 그리고 SM(SM엔터테인먼트) 1호 가수였잖아요.


이수만 형님(그렇게 호칭했다)은 저를 그냥 동생으로서 대했을 뿐 아니라 아마도 본인이 음악하시면서 아쉬웠던 걸 저를 통해 '해소'하고 싶어 했던 게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록(rock)적인 요소를 갖고 있었고 저를 좋게 본 포인트가 바로 그것이었죠. 저를 픽업하게 된 노래가 '잊을 수 없어'라는 노래인데요. 그걸 우연한 기회에 이수만 형님이 듣게 되어서 운명처럼 만났죠. '잊을 수 없어'가 록 적인게 있는 노래이니까. 자신에게는 조금 부족한 그런 부분을 저를 통해 채우고 싶으셨던 거죠.

 

다시 돌아가서, 김광석의 곡 해석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요.


김광석의 구태의연한 그런 창법을 주변에서 좋아하는 사람들이 없었어요. 특히 '서른 즈음에'는 박자까지 잘못 불렀어요. 하여튼 바이브레이션도 그렇고 아주 평범했죠. 그런데 저는 '사랑했지만'이 타이틀이 될 줄 몰랐어요. 그냥 깔리는 곡이 될 줄 알았죠. 그리고 김광석이 '사랑했지만'을 내고 나서 계몽문화센터에서 출근하듯이 공연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공연은 그럭저럭했는데 이건 아니다 싶었던 게, 밴드로 했기 때문에 손해를 보며 공연을 한 거죠. 이후 소극장인 '마당세실극장'에서 통기타로 공연을 시작했죠. 한 달 동안 68~69회를 했어요. 그게 결정타를 날린 거죠. 하루에 2회씩 하고 주말에 3회를 했으니까요. 당연히 '사랑했지만'이 널리 알려졌죠.

 

이상호 기자가 <김광석> 영화를 만들면서 다시 김광석이 국민적 화제가 됐죠. 이걸 보면서 같이 음악 했던 사람으로서 느끼는 소회가 있을 것 같은데요.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정말 힘들었죠. 술을 안 먹으면 밤에 잠을 잘 수가 없었죠. 그때 기억이 생생해요. 그때 당시 정황이 김광석의 죽음에 대해서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는데 이게 어떻게 하다 보니까 세월이 흘러버린 거죠. 이번에 그 영화가 개봉되어서 수면 위로 올라왔고…. 공소시효도 지나서 법적 상황으로는 끝난 일이지만, 적어도 생전에 광석이가 죽기 전 상당히 재정적으로 조급하다는 느낌이 강했고 솔직히 기분이 그랬어요. 그게 다 가정적 상황에서 비롯한 것으로 저는 판단했어요. 이제 서해순이 화면에 나와 얼굴이 알려졌으니 세계 어느 곳에 가서 살아도 쉽지는 않겠구나…. 그 생각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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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유명을 달리한 언더그라운드 포크의 대부 조동진 이야기도 듣고 싶네요. 사실 하나뮤직이라 하면 대표 상징인 조동진 중심으로 뭉친 이른바 '조동진 사단'이잖아요. 또한 후배들에게 음악적으로 무한 경배를 받았던 인물이기도 하지요.


'물을 보며'라는 노래가 있어요. 변칙 튜닝으로 녹음을 했죠. 그 당시 그런 일이 없었죠. 원래 스탠더드 튜닝이 아니라 튜닝을 바꾼 변칙 튜닝으로 해서 프로그레시브한 느낌도 있고요. 원래 록 밴드를 하셨으니까. 그런 실험성도 있지만 만나서 이야기를 해보면 매료될 수밖에 없어요. 말씀을 무지하게 잘하시거든요. 그 안에 있는 철학, 문학적 표현 그런 게 정말 홀딱 빠질 수밖에 없는 거죠. 뛰어난 인간적 매력, 음악을 보는 시각, 능력도 그렇고. 그리고 그 형님의 장점은 나이 차이를 못 느끼게 만든다는 거죠. 그래서 젊은 사람들도 조동진 형님에게 빠져드는 거죠. 그리고 음악팬들에게 알려진 것과 다르게 말수도 많은 편이셨죠. 달변가였지만 절대 권위적이지 않았고요. 말 한마디 한마디가 다 주옥 같았죠.

 

조동진 선생님이 사실상 은둔, 그러니까 앨범도 거의 20년 가까이 내지를 않으셨죠.


대중이 볼 때는 은둔으로 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뮤지션이 의도하지 않은 그런 게 있죠. 김민기가 '아침이슬'이나 '친구'를 데모할 때 쓰라고 만든 게 아닌데도 저항적인 것으로 보여 지는 것처럼, 조동진 형님도 은둔하려고 한 건 아닌 거죠.

 

조동진의 노래 중에 후대 사람들이 들었으면 하는 곡들을 꼽는다면요.


'진눈깨비'도 좋고, '내가 좋아하는 너는 언제나'라는 곡도 제가 개인적으로 좋았던 거고, '다시 부르는 노래'도 굉장히 단순하지만 들어봐도 좋을 것 같고, '당신은 기억하는지'는 제가 이번 추모 공연 때 불렀던 노래입니다. '물을 보며'는 아까 말씀 드렸던 변칙 튜닝 곡이고, '항해'라는 곡도요.

 

DJ를 하시면서도 공연은 계속해왔습니다.


공연까지는 아니고요, 노래를 부르러 계속해서 무대에 섰죠. 촛불(집회) 때도, 김광석 추모공연도 그렇고요.

 

가장 가까이에 예정된 공연이 있는지요.


지금은 없죠. 조동진 추모공연은 지난 9월에 했었죠.

 

내 인생의 팝 아티스트는 누군가요


딥 퍼플(Deep Purple), 빌리 조엘(Billy Joel)이 제일 크게 영향을 줬어요. 딥 퍼플은 대부분의 곡을 다 따라 부를 정도였어요. 사실 곡 쓰는데 있어서 영감을 준 사람들은 가요에 있어요. 이주호 씨가 있는 듀엣 '해바라기'인데요. 그 전까지는 팝송을 주로 들었으니 내가 저만큼의 경지는 못 갈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가요는 '들국화'까지도 힘들겠다 싶었는데, 해바라기는 괜찮았던 거죠. 쉽게 코드를 칠 수 있는 그런 노래인 거죠. 그래서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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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FM 팝스>와 관련해서 마지막으로 질문 드리겠습니다. 향후 프로를 이렇게 꾸미고 싶다는 나름의 소망이 있나요.


별다른 변화가 없는 게 장점이자 단점이 아닐까요. 별다른 변화를 안주는 게 필요하기도 하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송이라는 게 여지는 있는 거죠. 음악은 자기 고집대로 할 수 있지만, 방송은 방송 여건에 맞게 해야 하는 거라 생각해요.

 

아까 말한 것처럼 '하고 싶은 걸 하게 해준' 청취자 분들께도 인사 부탁드립니다.


임진모 선생님께서 공연 때 이런 축사를 적어 주셨어요. 한동준은 “스스로 빛을 내는 가수는 아니지만, 많은 이들과 협업, 소통하면서 비로소 빛을 내는 사람이다!”라고 하셨죠. 저의 성격을 잘 파악하고 쓰신 거 같아요. 방송이라는 게 결국 혼자 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제일 중요한 게 대중이 원하는 방송을 하자, 즉 소통을 하자는 겁니다.

 

인터뷰 :소승근, 정효범
정리 :정효범
사진 :김도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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