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역 도착. 이병률은 오늘도 어김없이 목적지로 곧장 향하지 않았다. 카페를 기웃거리다 사진을 몇 장 찍은 뒤 인터뷰 장소로 왔다. 1박 2일 일정도 아닌데 큰 트렁크를 끌고 온 이병률은 “서점에서 인터뷰한다고 해서요. 책 좀 담아가려고 트렁크를 가져왔죠”라고 첫인사를 나눴다. 산문집 『끌림』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등을 펴내며 여행 작가로 더 유명하지만, 이병률이 언제라도 가장 바라는 건 오래 전하지 못한 안부를 시로 전하는 일이다.
첫 시집 『당신은 어딘가로 가려 한다』를 펴낸 지 올해로 14년. 이병률은 그간 책상의 속도에 맞춰 차곡차곡 쌓인 시들을 발표했다. 다섯 번째로 묶인 시집의 제목은 『바다는 잘 있습니다』. 40년 만에 통권 500호를 돌파한 문학과지성 시인선 503번째 작품이다. 이병률은 「시를 어떨 때 쓰느냐 물으시면」에서 “시는 쓰려고 앉아 있을 때만 써지지 않지”라며, “시는 나아가려 할 때만 들이치는게 아니어서 / 멀거니 멈출 때 / 흘린 것을 감아올릴 때 / 그것을 움푹한 처소에 담아둘 때 / 그 때”라고 썼다. “마음속 혼잣말을 그만두지 못해서 그 마음을 들으려고 가는 중”(시인의 말)이라며, “너무 많은 꽃을 피웠으니 / 다 됐다고 응석을 부려야 할까”(「착지」)라고 어색한 농을 던지는 이병률의 시들은 어쩐지 쉬이 읽히는 것 같지만, 좀체 마음속을 떠날 줄 모른다. “넘어야겠다는 마음이 있습니까 / 저절로 익어 떨어뜨려야겠다는 질문이 하나쯤은 있습니까?”(「청춘의 기습」) 때때로 단호한 이병률의 시심(詩心)은 사람에게 피어 사람에게 꽂힌다. “이제 감각도 없는 굳은살”(「사람의 재료」)을 파고들어 작은 균열을 내고야 만다. 올해가 지나기 전, 어쩌면 마지막일 수 있는 바다의 안부를 들으며 곰곰 생각했다. “오래 붙들고 산 풍경 같은 것”(「노년」)이 나에게 있는지.
책상의 속도에 맞춰 나온 시집
부산은 얼마 만에 오셨어요?
며칠 전에도 지인의 장례 때문에 왔었어요. 밤에 내려왔다가 바로 서울로 올라갔어요. 오늘은 그래도 여유로운 일정으로 왔어요. 부산은 언제 와도 좋아요. 지인들이 꽤 있는 편이라 보고 싶었던 얼굴도 보고 술도 한잔하고 그러죠. 낯선 기류를 희석시키려면 살짝 취하는 것도 좋잖아요. 부산은 바다가 있지만 도시 같은 느낌도 있어요. 센텀시티를 가면 도시 속의 도시에 있는 기분이랄까요? 이국적인 느낌도 들고요.
대형 서점은 좋아하지 않는다고요. 여긴 어떤가요?
중고 서점이니까 빈티지 느낌을 많이 기대했어요. 공장을 리모델링한 공간이라고 들어서요. 아마 세월이 좀 더 흐르면 새로운 분위기가 나겠죠? 시간이 가져다주는 멋이 생길 테니까요.
오랜만에 독자들을 만났잖아요. 『바다는 잘 있습니다』를 펴낸 후 첫 행사로 알아요.
정식으로 하는 시 행사는 참 오랜만이었어요. 제가 즐겁게 해드릴 게없어 걱정이었는데, 모두 따뜻하게 반겨주셨어요. 그리고 좀 놀랐죠. 이 많은 분이 제 산문집이 아닌 시집을 들고 계셔서요. 아무래도 시는 좀 어렵고 특이하기까지 한 장르이잖아요. 독자분들의 진지한 눈빛, 응원하는 눈빛을 보면서 굉장한 느낌을 받았어요. 특히 사인회 끝에 ‘파란 티셔츠 군단’이 등장해 큰 감동이었죠. 서점 직원분들이 퇴근 시간이 가까웠는데도 제게 사인을 받겠다고 줄을 서 계시는데, 큰 선물을 받은 느낌이었어요. 공간이나 책들도 구경할 겸, 스태프들의 선물을 사 들고 꼭 다시 가보려고요.
다섯 번째 시집입니다. 『눈사람 여관』이후 딱 4년 만에 나왔어요.
시집을 내면서 참 고마웠던 게, 어느 한 편 몰아서 쓰지 않았거든요. 어떤 시들은 청탁의 밀도, 간격에 의해서 쓰이기도 하는데요. 2, 3달에 3, 4편씩. 1년에 12편씩 쓰게 되는 상황, 과정들이 감사했어요. 늘 시심을 갖고 살지만 결정적인 힘, 계기도 중요하니까요. 이번 시집을 묶으면서 내 책상의 속도를 생각해봤는데요. 책상의 위생은 어지럽지만, 꽤 균일한 속도가 있지 않았나 싶어요.
파란색 표지가 잘 어울려요.
테두리가 보라색이 될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렇다면 표지 색은 파란색이면 좋겠다 싶었죠. 이 시집을 만들 때, 김애란 작가의 『바깥은 여름』을 읽고 있었는데요. 작품도 무척 좋았고 표지도 인상적이었죠. 그래서 내 시집도 파란색 계열이면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고요. 평소에도 파란색을 좋아해요. 파란색 계열의 셔츠를 자주 입는 편인데, 제가 새 옷을 입고 출판사에 가면 스태프들이 “또 파란색이냐”는 말을 해요(웃음).
시집 제목을 지으면서는 어떤 생각을 하셨어요?
제목은 내 안부를 궁금해하지 않는 사람에게 던지는 나의 안부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해요. 바다는 그냥 등장한 것일 수도 있어요. 그냥 먹먹한 상태라고 할까요? 시집을 준비하면서의 제 마음 상태가 담겨 있겠죠. 저는 책을 낼 때마다 좋은 기분이 들지 않아요. 그리고 이런 기분이 드는 게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하죠.
좋지 않은 기분이라면 어떤 상태일까요?
내가 무슨 일을 저질러놓고 난 직후에는 선명한 감정을 만나기 쉽지 않잖아요.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객관적으로 느껴볼 수 있는데, 막상 그때가 되면 애써 모른 체하기 일쑤죠. 작가가 쓰는 일은, 작가가 책을 내는 일은 작가 개인에게는 일종의 범행의 영역이거든요. 내가 세상 위에 함부로 저질러놓은 난장판이기도 하고요.
간혹 제목을 먼저 읽고 시를 찾아 읽을 때가 있어요.
2장에 실린 시 「시를 어떨 때 쓰느냐 물으시면」을 읽을 때 그랬죠. 시라는 게 의식하고 쓰긴 어렵잖아요. 하지만 때때로 의식하고 쓴 시가 좋게 느껴질 때도 있어요. 정말 눈에 힘을 풀고 순하게 앉아 있잖아요? 굉장히 멍청한 느낌으로요. 그럴 때 걸리는 시들이 있고, 혼자서 무척 쓸쓸한 시간에 이렇게 저렇게 걸리는 문장들이 있어요. 굉장히 메마른 상태인데, 순간순간 스며드는 것들이 있어요. 꼭 메모하지 않아도 며칠 뒤에 또 떠오르는 문장들도 있고요. 증식이 된다고 할까요? 어떤 한 문장이 다른 문장을 채 가고, 또 어떤 순간들을 채 가곤 해요.
「왜 그렇게 말할까요」를 읽으면서는 문득 반성하는 마음이 생기더라고요.
내가 받는 상처, 혹은 우리가 상처받는 지점에 대한 시예요. 시간만 지나도 아무렇지도 않을 일들과 말들 앞에서 우린 당장 호흡 곤란이죠. 저 역시 제가 쏟아낸 많은 상처 되는 말들이 누군가의 무엇을 부셔버렸을 거예요. 어쩌면 저는, 내가 했던 말로도 돌아서서 아파하는 사람인지도 모르겠어요.
나라도 조금, 전달력에 있어 마음을 써보자.
김소연 시인이 이번 시집의 발문에서 “이병률의 시는 대단한 결기로 포장되어 있지도 않고 냉소나 환멸로 손쉽게 치환되어 있지도 않으며, 그래도 그럭저럭 살 만하지 않느냐 눙치려 들지도 않는다. 낙담의 자리에서 ‘지탱하려고 지탱하려고’ ‘힘을 모으는’ 은은하고도 든든한 모습으로 서 있다”고 했어요. 이병률 시인은 자신의 글을 두고 “낮고 적막하고 물기가 배어 있다”고 말한 적이 있고요.
아무래도 혼자 있을 때와 누군가와 같이 있을 때의 모습이 조금은 다를 수밖에요. 지금 저는 혼자 있는 시간을 자주 내기 어려운 상황이라서요.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이 생기면 그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만끽하려고 해요. 먹는 걸 좀 덜 먹더라도요. 왜냐하면 그래야 이 시간들이 입체적으로 쓰이기 때문이에요. 저는 사람들과 술 마시는 걸 좋아하지만 혼자서는 마시지 않아요. 시간이 후딱 지나가버리는 게 싫기 때문이에요. 혼자 있을 때는 뭐라도 선명하게 하고 싶어 하죠. 맨 정신으로 시간을 빨아들인다고 할까요? 약간은 다르게 시간을 보내고 싶어요.
사람은 혼자 있을 때 비로소 진짜 모습이 나온다고 하잖아요.
표정을 볼 때도 그렇고요. 혼자 있으면 어떤 식으로든 이방인이 되는 순간이 생기죠. 그런 순간에 스멀스멀 문장들이 피어나고요. 작가라면 누구나 문장을 기다리고 좇을 텐데요. 저는 혼잡한 공간 속에 있는 것도 즐기는 편이에요. 제가 감각적으로 정체되지 않는 느낌이랄까요? 새로운 기류로 세척 받는 기분이 들어요. 여기 부산 F1963이 그런 곳 같아요.
「지구 서랍」에서는 ‘나의 궁리’라는 이야기가 나오죠. 저는 ‘궁리’라는 표현을 참 좋아해요. ‘생각’과는 좀 다른 느낌이라서요. 요즘 이병률 시인이 하는 궁리는 무엇일까, 궁금했어요.
한 장의 그림을 구하는 거예요. 길에서 만난 어떤 풍경, 모르는 사람의 인상 같은 게 며칠, 길게는 한 달도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을 때가 있는데요. 그런 그림을 찾고 있는 중이에요. 최근에 얻은 그림 한 점이 있어요. 말 못 하는 장애를 가진 어느 분이 전철에서 영상 통화를 하면서 수화를 하는 거예요. 수화를 하는데 그 목소리가 너무 크다는 생각까지 들었죠. 바깥에서 들어오는 빛이 교차하면서 그 사람이 이야기를 하는 모습이 굉장히 뭐랄까, ‘마음이 메이기’까지 했거든요. 그런 장면은 얼마 후, 시를 쓰는 순간에 불쑥 장면으로 묘사되곤 하죠.
문득 「사람의 재료」가 떠오르네요. 시의 화자는 자신이 약속한 장소가 아닌 곳에 도착합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상황은 아무렇지 않아요. 굉장히 매끄럽고 자연스럽죠.
지금은 누구든 만날 수 있고, 매일매일 약속을 꽉꽉 채울 수 있는 세상이 됐어요. SNS 때문이죠.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장점은 있어요. 하지만 내가 누구를 만나고 있는지 모를 때도 있죠. 저 역시 SNS를 통해 사람 구경을 많이 해요. 특히 인스타그램을 통해 많이 하죠. 재밌고 신기할 때도 있고, 내가 보는 타인의 모습이 맞나 헷갈릴 때도 있어요. 「사람의 재료」를 쓸 때는 여러 개의 방을 떠올렸어요. 이 방에 쓱 들어가도, 저 방에 쓱 들어가도 너무나 자연스러운 상황을 상상했죠. 내가 들어간 곳은 이 방인데, 정작 나를 기다리는 곳은 다른 방인 거죠. 미래의 조망이라고 할까요? 어쩌면 어떤 다짐일 수도 있겠고요.
‘시인의 재료’라는 제목으로 연작시를 쓴다면요. 어떤 이야기가 들어갈까요?
글쎄요. 저는 시의 미래가 밝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문학의 미래도 그렇고요. 좋은 빛이 비치고 있진 않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는 쓸 수밖에 없지 않을까 생각해요. 시인은 태어날 때부터 타고난다고들 하잖아요. 이 말을 좋아하진 않지만 어느 정도 동의해요. 그러니까 지금도 어디에선가 시인은 태어나고 있겠죠. 시인은 시를 쓰지 않으면 피가 통하지 않으니까요. 독백 속에, 방백 속에 내 목청에 있는 것들을 토해낼 수밖에 없어요. 잔인한 표현이지만 어떤 식으로든 갈아내서 즙을 만든다고 할까요. 콩나물시루처럼 키워낸다고 할까요.
쓰면서 가장 아팠던, 힘들었던 시가 있나요?
「무엇을 제일로」라는 시가 그런 시 중 하나죠. 「몇 번째 봄」 「있지」도요. 「무엇을 제일로」는 되도록 담담히 쓰려고 한 사랑시예요. 사랑이 끝나고 난 후의 누구나 느낄 수 있는 막막함이 고스란히 담긴 시죠. 끊으려고 하지만 여전히 살아 꿈틀거리는, 내 몸 안에 각인된 세포들, 화석들. 인간은 그 앞에서 약해질 수밖에 없겠죠. 어떤 사람의 한 부분을 오래 기억하고 싶지만 살다 보면 그 부분에 감싸인 여러 온도, 여러 순간이 폭풍이 되어 돌아오는 순간이 있어요 막아낼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태풍이겠죠.
마지막으로 쓴 시는 「착지」이겠죠?
맞아요. 원고를 정리하면서 마지막으로 쓴 시예요. 쓰고 나니 조금 재밌더라고요. 나도 이제 이런 시를 쓰네? 나도 능 청스러워진 건가? 큭 웃기도 했고요.
겨우 종이 한 장으로 자리 차지를 하고는
벚꽃 사과꽃 날리는 길가에 겁 없이 드러누워
너무 많은 꽃을 피웠으니
다 됐다고 응석을 부려야 할까
- 「착지」 부분
시인은 어떤 말도 쉽게 놓아주지 않는 것 같아요. 「지구 서랍」의 화자는 “내 옆을 흘러가는 사람의 귀한 말들을” 모아요. 그리고 각각의 말들을 마음의 1층, 2층에 담아요. 더 깊이 새겨야 할 말들은 1층에, 조금 쉬이 놓아줘야 할 말은 2층에 담죠.
우연히 한 노인의 말을 엿듣게 됐어요. 순간 제가 동일시되면서 찌릿찌릿하게 아프더라고요. 사람이 나이가 들면 의연해지고 둔감해질 것 같은데, 생각보다 쉽지 않아요. 만약 잘된다고 하더라도 그건 내 모습 같지가 않고요. 어떻게든 내 마음에 녹아들죠. 최근에 오랫동안 인연을 쌓아온, 제가 되게 좋아했던 후배와 거리를 두게 됐어요. 제가 후배를 어떤 일 때문에 꾸짖었는데 서운했나 봐요. 용서해달라고 미안하다고 메일을 썼는데 받아주지 않더라고요. 좋았던 시기가 길었던 친구라 애정이 깊었는데 마음이 너무 아팠어요. 중국 여행을 갔는데도 계속 생각나는 거예요.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정도로요. 세상에는 어찌하기 어려운 일들도 있으니까, 제가 잘 털어버리면 되는데 너무 힘들었어요. 미안한 마음이 들면서 또 서운하기도 하고. 인간의 숲을 못 떠난 것 같아요. 못 떠날 것 같아요.
떠날 수 없겠죠. 인간의 숲을 떠나면 시를 쓰기 어려울지도 모르고요.
아마 그럴 거예요.
시집은 한 번만 읽기 어려운 책이에요. 만약 한 번에 휙 읽히는 시집이라면 그건 시가 아닐지도 몰라요. 부산으로 오면서 시집을 읽고 또 읽었어요. 눈길이 오래 머물게 되는 시들이 있어 반가웠어요.
『눈사람 여관』까지는 제 세계에 갇혀서 시를 쓴 부분이 많았어요. 그런데 이번 시집을 묶으면서는 누군가에게 전달하는 역할도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예를 들면 배우나 시를 낭송하는 사람도 원래의 오리지널을 잘 전달해야 하는 역할이 있잖아요. 요즘은 세상 잘 모르겠는 시들이 워낙 많으니까 이번 시집에는 나라도 조금 전달력에 있어 마음을 써보자, 이런 의식이 있었어요. 그리고 또 다른 변화라면, 1시집부터 5시집 지금까지 연결성을 갖는 작업을 ‘시간’이라는 바탕 위에 한 것 같은데요. 6시집은 달라질 거라는 것, 그런 예감이 있어요.
사랑받을 의무가 아닌 권리를 말하죠
시심(詩心)을 갖고 산다는 일은 어떤 걸까요?
시심은 모든 것을 평화롭게 하지요. 끊어진 것들을 연결하고 흩어진 것들을 모으죠. 실제로 시심은 뭐라 정의할 수 없고 말할 수 없는 것일 텐데요. 그렇기에 더 영혼에 관여하는 것일지 도 몰라요. 내 영혼의 중심에 시심이 들어 있다는 건 분명 행운이에요. 누구에게든 시심이 있다면 그럴 거고요.
누군가 그러더라고요. “시인은 어떤 이상한 행동을 해도 용서해줘야 한다.” 이해가 가면서도 또 조금도 수긍할 수 없는 이야기였어요. (웃음)
아마 시인들에게는 모두 ‘취급주의’ 스티커를 붙여야 할 거예요. 그런데 이 스티커는 개개인마다 다 달라요. 이병률 것, 박준 것, 이문재 것, 안도현 것. 다 달라야 해요. 예술가는 자기 자신에게 농밀하게 젖어 들어 있는 사람이잖아요. 소설가, 에세이스트보다는 조금 수위가 높을지 몰라요.
이병률을 취급할 때 주의 사항이 있다면요. 어떤 내용이 들어가야 할까요?
저는 혼자 감정을 쌓아가는 걸 좋아해요. 혼자 감정을 만드는 게 전공인 사람이니까요. 그런데 그걸 저에게 일일이 알리고 자신의 감정을 강요하는 사람은 숨이 막히죠. 공기가 안 통하고요. 저는 식물 같은 사람이 맞는 듯해요. 어쩌면 나무? 어떤 면에서든 과한 것은, 글쎄요(웃음).
인터뷰집 『안으로 멀리 뛰기』에서 ‘디테일이 주는 여운’을 이야기한 적이 있어요.
제가 디테일이 있으니까 디테일이 있는 사람이 좋아요. 사랑스러워요. 하지만 무턱대고 바랄 건 아닌 세상이 됐죠.
불러주는 곳이 많잖아요. 시인으로서 출판사 대표로서 여행 작가로서. 혼자 있는 시간은 어떻게 챙기나요?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을 꽤 좋아하지만요. 결국 혼자 하는 것이 더 멀리 갈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틈틈이 혼자 있는 시간을 만들어요. 오늘 부산에 오면서도 기차를 탔는데, 기차를 탈 일이 많아진 게 참 좋다고 생각해요. 기차를 타면 밀린 잠을 자도 되고 전화기를 꺼놔도 괜찮으니까요. 좋아하는 후배들의 책도 챙겨 읽고 참 편안해요. 시집을 읽기 가장 좋은 공간 중 하나이기도 하고요.
편집자로서 책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사람에게 열려 있는지,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쓸 수 있는지”라고 했는데, 어떻게 발견하시나요?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은 눈빛이 많이 다르다는 생각이에요. 이런저런 관계를 통해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실험한 듯한 태도를 보인다고 생각해요. 자기 안에 갇힌 부분이 덜한, 유연한 사람인지를 보려고 해요. 사람에 대한 애정 없이는 좋은 작가가 되기도 어렵지만 좋은 편집자가 되기도 어려워요.
시 또는 산문을 잘 쓰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이 마음은 꼭 갖자’고 한 마디를 해주신다면요?
자기를 가장 닮은 작가가 누구인지, 그 작가와 나의 거리는 어느 정도인지 자주 생각해보는 게 중요할 것 같아요. 또 ‘사람들은 무엇으로 살지?’ ‘무엇에 관심이 많지?’ 등 인간에 대해 열려 있는 마음이 글을 잘 쓰게 하지 않을까 싶어요.
“혼이 있는 작가, 다른 사람의 행복에 관여하는 작가가 되고 싶다”는 말이 기억납니다. 행복에 관여한다는 것은 글로써 행복을 전달하고 싶다는 의미일까요?
그렇습니다. 책이 하고 있는 역할이기도 하니까요. 책을 읽으면서 사는 사람은 분명 그림자도 다를 거라는 생각인데, 자기 취향을 정리 정돈하는 데 있어 책은 좋은 기능을 하죠. 그리고 막막한 미래에도 선명하게 관여하니까요. 책은 우리한테 ‘사랑받을 권리’가 있노라고 계속 힘찬 메시지를 던져주면서 우리 내면을 풍부하게 가꿔줘요. 사랑받을 의무가 아닌 권리를 말하죠.
잘 사는 방법으로 “나보다 20세 많은 친구, 나보다 20세 적은 친구를 만들라”는 말씀도 하셨죠?
너무 멋진 말인데 너무 어려운 일인 것 같아요. 우선 나부터 열려 있어야 하니까요. 때때로 저도 지쳐요. 제가 못 따라가니까요(웃음). 하지만 오래 길게 보자는 마음이 늘 있어요. 다른 세계를 들여다보게 해준다는 면에서는 좋은 친구이면서도 동시에 무척 훌륭한 책이니까 늘 그렇게 만들려고 하는 편이에요.
따뜻한 말을 주로 하는 작가들은 때때로 오해를 받아요. 현실에서 마주친 모습이 따뜻하지 않을 때 독자들은 실망하고요. 인터뷰집을 읽다가 훅 들어온 문장이 있었어요. “까칠함 같은 건 사람을 좋아하는 제가 사람을 밀어내기 위한 도구가 되었어요. 그 많은 사람을 다 만나고 살 수는 없을 테니까요. 내 까칠함으로 물러나는 사람이 있다면 어느 정도 성공인 거죠.”(『안으로 멀리 뛰기』 67쪽) 묘한 위로가 됐어요.
사인회를 하는데 갑자기 긴 질문을 하는 독자가 있어요. 질문은 안 하고 우는 분도 계시고요. 양해를 구하면 “어머, 글이 가짜야” 하면서 울며 가세요. 저는 생각하죠. ‘무엇이 가짜인가?’ 어떤 사람이든 싫어하고 미워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도 물론 상처를 받으면 아프죠. 하지만 상처 없이는 좋은 사람이 될 수 없어요. 까칠함이 저의 방패막이 된다면 까칠함은 필요해요. 제 자신도 지켜야 하니까요.
언제 가장 행복하고, 언제 가장 슬픈 감정을 느끼나요?
무엇 때문에 행복하고, 무엇 때문에 언제 슬픈가보다는요. 아무 이유도 없이 불쑥불쑥 찾아와요, 그런 감정은. 저는 맘대로 시간을 쓰는 사람이니까요. 작가가 그런 사람이기도하고요. 불쑥 그런 감정에 휩싸일 때 제가 인간적인 상태에 놓인 것 같아 좋아요. 그게 행복이건 슬픔이건.
지금 이병률에게 『바다는 잘 있습니다』가 딱 한 권 있어요. 앞에는 사춘기를 막 지나고 있는 중학생부터 막 정년 퇴직한 가장, 아르바이트생, 전업주부, 백수까지 다양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이 있어요. 한 사람에게만 시집을 선물해야 한다면 누구에게 주실 건가요?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 모르는 20, 30대 젊은 독자가 있다면 그분에게 선물하고 싶어요. 세상 속에서 갇혀 있는 군인에게 줘도 좋을 것 같고요. 다들 너무 어렵잖아요, 힘들잖아요. 청춘이 가장 안쓰러워요. 불안으로 가득 찬 시기니까요. 저 역시 그 시기를 너무나 불충분하게 즐겼고요. 시를 읽는다고 해답을 찾긴 어려울지 몰라요. 하지만 우리는 어떻게든 사람이 될 테니까요. 각자의 궁리를 통해 사람의 집을 지을 테니까요.
바다는 잘 있습니다이병률 저 | 문학과지성사
온전히 혼자가 되는 일에 골몰하며, 자신을 확인하고 동시에 타인을 발견해가는 뜨겁고도 명확한 인식의 순간들로 주목받았던 『눈사람 여관』(2013) 이후 쓰고 발표한 시 60편을 묶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