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어느 때보다 부유하다. 지금 가장 가난한 국가의 생활형편은 1800년 가장 부유했던 국가보다 낫다. 사람들의 기대수명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소수를 제외한 전 인류가 굶주렸던 시대를 지나, 소수를 제외한 대부분이 비만을 걱정한다. 젖과 꿀이 흐르고 내일 먹을 것을 걱정하지 않는 이상향이 이미 현실로 다가왔지만, 평등하고 행복한 세상이 도래할 거라는 예상은 틀렸다. 사람들은 서로 반목하고 계급 간 격차는 점점 심해진다.
독립언론 <코레스폰던트>를 이끌며 유럽 언론인상 후보에 오르는 등 유럽의 젊은 사상가로 새롭게 떠오른 뤼트허르 브레흐만은 이 시대야말로 정치로 돌아가 새 유토피아를 찾을 시간이라고 주장한다. 자본주의만으로는 풍요의 땅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뤼트허르 브레흐만이 꿈꾼 유토피아에서는 모든 국민에게 현금이 무상으로 지급되고, 사람들은 주당 15시간 노동으로 생활에 필요한 재화를 얻는다. 나아가 국경을 개방해 이민자들이 자유롭게 나라를 넘나들 수 있다. 공상에 불과하다는 반응이 먼저 나올 법 하다. 그러나 구체적인 자료와 쉬운 논증으로 재반박하는 의견을 따라 읽다 보면 제목처럼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 속으로는 불가능한 꿈을 품자”라는 누군가의 명언이 떠오른다.
『리얼리스트를 위한 유토피아 플랜』은 25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어 국제적으로 일어나는 기본소득 운동에 더욱 힘을 보탰다. <워싱턴 포스트> <가디언> 등에서 이 책을 특집 기사로 다루었고, 뤼트허르 브레흐만은 TED 강연에 출연하기도 했다.
사람들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원한다
『리얼리스트를 위한 유토피아 플랜』전에 세 권의 책을 냈다. 전작 반응은 어땠나.
기존 책은 모두 네덜란드 어로 나왔고, 네덜란드 독자들에게 더 익숙한 주제를 다뤘다. 번역한 책을 아마존에 올리고 어떻게 되나 싶었는데 번역 제안이 많이 들어왔다.
이번 책은 많은 나라에 소개되었다. 책을 집필하면서 이 정도로 알려질 거라 예상했나?
물론 놀라운 일이지만, 어떤 면에서는 전혀 놀랍지 않기도 한다. 당연히 이 책을 쓸 때까지만 해도 이렇게 반향을 일으킬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사람들이 이 책을 좋아하는 이유는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올해 2월부터 호주, 노르웨이, 한국, 미국 등지를 방문하면서 모두가 왜 부국도 빈곤 문제에 시달리는지, 왜 사람들이 아직도 의미 없는 일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했다. 많은 사람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갈망하고 있다는 사실이 명확해졌고, 모두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가고 싶어 한다.
물질적인 면만 본다면 유토피아가 도래했지만, 사람들에게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날 이유’는 없어졌다고 표현했다. 과거에 비해 풍요로워진 지금 세대 사람은 성장하려는 욕구가 없다고 보는 편인가?
풍요의 땅에 온 것을 환영한다.
멋진 삶을 누리고, 거의 모든 사람이 부유하고 안전하고 건강하게 생활하는 무릉도원에 발을 디딘 것을 환영한다. 이곳에서 유일하게 찾아볼 수 없는 것은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날 이유이다.
- 23쪽
나를 포함한 지금 젊은 세대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난 이후의 세대인데, 베를린 장벽은 자본주의가 이기고 공산주의가 무너졌다는 의미기도 하다. 이후 유토피아적인 생각을 가지면 안 된다는 분위기가 있었다. 우리는 경제 성장과 다음 아이폰 시리즈가 어떻게 생겼을지만 생각하면 됐다. 그러나 2008년 금융위기와 트럼프 당선 등으로 이제는 사람들이 경각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더는 현 상태에 머무를 수 없고 유토피아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나타난 것 같다.
유토피아를 구현하려는 조건을 크게 세 가지로 잡은 것 같다. 기본 소득, 국경 없는 세상, 주당 15시간 노동 등이다.
유토피아에 관한 생각은 항상 지금 무엇이 잘못되었는가에 따라 출발한다. 아까 말했듯 부국에서 아직도 수백만 명이 빈곤에 시달리는 문제가 있다. 이러한 문제에서 기본소득에 대한 생각이 출발했고, 아직도 사람들이 많은 일에서 가치 있다고 느끼는 데서 주당 15시간 근무가 나왔다. 특히 한국의 노동자들이 긴 노동시간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알고 있다.
여러 가지 대안이나 주장이 있을 텐데, 이 세 가지를 중점적으로 주장한 이유는?
물론 유토피아를 전망하기 위한 다른 제안은 많다. 예를 들어 지금의 민주주의를 새롭게 발전시켜 참여민주주의로 변모해야 한다는 파격적인 아이디어도 가지고 있다. 용기를 내고 상상력을 발휘해서 예전에는 비현실적이라고 깎아내리던 주장을 극복하고 과거에서 벗어나는 게 중요하다.
빈곤은 게으름이 아닌 현금의 문제
기본 소득이라는 개념은 예전부터 있었고 요새 들어 활발하게 다시 일어나는 추세다. 특히 기본 소득에 주목한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가 가진 큰 문제들에 해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빈곤은 인격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돈이 부족해서 생겨난다. 이러한 빈곤의 문제를 가장 문명화된 방법으로 해결하는 것이 바로 기본소득이다. 급진적인 생각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어떤 면에서는 아주 실용적인 생각이기도 하다. 당장 내일부터라도 실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캐나다나 핀란드, 실리콘밸리 등지에서 실험하고 있다.
기본소득이 반대에 부딪히는 이유는 실질적인 재정의 문제가 아니라 인식의 문제라고 본다. 책에서 말했듯 일을 하지 않으면 돈을 줄 수 없다, 빈곤한 사람은 노동으로 빈곤을 벗어나야 한다는 인식 때문이라고 보는데, 그 인식을 타파할 만한 아이디어가 있나?
좋은 질문이다. 40년 전만 해도 미국의 리처드 닉슨이 기본소득을 도입할 뻔했다. 기본 소득을 실현하는 장애물은 물리적인 기술이나 금전이 부족해서가 아니고, 이데올로기적인 문제가 맞다. 이러한 시점에서는 ‘일이 무엇인가’에 대한 재정의 작업이 필요하다. 주로 사무실에 앉아 무의미한 서류 작업을 하며 페이스북을 들여다보는 유급 직업이 얼마나 많은가? 반면 자원봉사나 가사, 육아, 이런 무급 일은 가치를 생산하고 어떻게 보면 진정한 부를 창출하는 일이다. 생각의 전환으로 모든 것이 이루어질 수 있다.
주당 15시간 근무를 주장했는데, 본인은 하루에 몇 시간 일하는지 궁금하다.
일을 어떻게 정의하냐에 따라 다르다. 주 15시간 일해야 한다는 주장은 우리가 더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일을 할 시간을 늘려야 한다는 뜻이다. 어떤 사람들은 주 15시간 근무가 현실이 되더라도 그들이 하는 일을 사랑한다면 계속 자기가 하던 일을 할 것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면 주당 15시간 노동은 소파에 앉아 아무것도 하지 말자고 주장하는 게 아니다.
전통적인 회사나 직장에서는 왜 노동 시간을 못 줄이고 있을까?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개인의 노력만으로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서점에 가 보면 적게 일하고 행복해지라는 자기계발서는 많다. 하지만 쉽지 않다. 먼저 속한 집단의 법에 따라 달라진다. 어떤 나라에서는 시급 노동자를 고용하는 것보다 일부 사람들에게 월급을 주면서 일을 많이 시키는 게 더 이익이 될 때가 있다. 두 번째로 더 큰 이유로는 문화적 차이가 있다. 특히 한국이나 일본 같은 아시아에서는 일하는 척하면서 상사 눈치를 보는 관료주의 때문에 일하는 시간이 늘어난다. 물론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네덜란드나 어느 나라에서도 이런 일은 일어난다.
구체적인 방법을 제안한다면.
너무 오랫동안 일한다고 이야기하면 모든 사람이 고개를 끄덕인다. 모두 강력하게 동의하지만, 사람들은 항상 자기만 그렇게 느끼는 거라 생각한다. (웃음) 모든 사람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대화의 장을 늘려나가면서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고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또 하나로는 육아휴직 등의 정책적인 해결을 제안하고 싶다. 우리는 더 이상 가난하지 않은데 무의미한 일을 너무 많이 하고 있다.
부국은 이민자를 받아들여야 한다
국경이 세계 역사를 통틀어 최대 차별요인이라고도 주장했다.
60%의 소득이 태어난 나라에 따라 정해진다는 통계가 있다. 나는 네덜란드에서 태어나길 선택하지 않았다. 그건 그냥 운이다. 세계화 시대를 살면서 상품은 전세계를 돌아다니는데, 상품을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사람은 국경을 넘어가지 못한다. 만약 당신이 운이 나쁘게 빈국에서 태어났다면 더 나은 직업이 있어도 옮겨가지 못하는 셈이다.
전 세계적으로 이민을 막는 이유는 여러 가지라고 생각한다. 언어라든지, 문화적으로 어쩔 수 없이 남는 사람들은 국경을 개방했을 때 빈국에 남게 되면서 더 악화된 상황을 맞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의견을 듣고 싶다.
많은 조사 결과를 봤을 때 부국으로 이민하면 가장 크게 혜택을 보는 사람들은 이민자들 자신이다. 그들의 임금은 8배에서 10배까지 오른다. 사람들은 게으르고 오염된 존재로 보기 쉬운데, 이민자들은 이민자는 창의적이고 기업가 정신으로 무장한 존재들이다. 그리고 이민자들이 이민 간 국가의 혜택을 덜 받는 편이기도 하다. 그들이 본국에 보내는 돈과 나중에 고국으로 돌아가는 비율을 봤을 때 고국에 남아있는 사람도 혜택을 보게 된다. 원조 기구에서 돈을 받는 것보다 이민을 간 사람들이 보내는 돈이 3배 정도다. 이민한 나라, 본국, 이민자와 그 가족 모두가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국경을 열라는 말은 부국이 이민자들에게 더 관용적이어야 한다는 뜻인가?
물론이다. 그게 가장 중요하다. 국경 개방은 주 15시간 노동과 기본 소득보다 훨씬 급진적인 주장이다. 하루아침에 일어날 수는 없고 단계적으로 일어나야 한다. 하지만 지금 사회의 부정의와 불평등을 봤을 때 가장 중요한 계획이기도 하다.
네덜란드가 이민자를 보는 분위기는 어떤가?
90년대에는 관용이 넘쳐나는 사회였다. 그런데 지난 1, 2년간 사회가 많이 변하면서 이민자에 대해 두려움이 커졌다. 사실 이러한 공포는 우파 정치인이 부추긴 면도 있다. 국민들 입장에서는 현상을 완전히 바꿀 대안이 없다면 우파가 내놓는 포퓰리즘 정책에 동조할 수밖에 없다.
책임을 묻기보다 대화의 장을
이제까지의 상황을 만들어 낸 것에 대한 책임이 부자 계급에게 있다고 보는 편인가?
특정한 개인이나 집단에 손가락을 겨누고 싶지 않다. 물론 정치인을 비난하기는 쉽다. 하지만 중요한 건 같이 협력해서 우리 모두 함께 어떻게 잘 풀지 논의하는 게 더 나을 것 같다. 그런 측면으로 보면 언론인이나 학자, 작가 할 것 없이 다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 책임이 있다. 학계에서는 미시적인 분야로 파고들기만 하면서 결과를 내놓고, 저널리스트도 과장된 사실만을 보도한다. 권력이 있는 중, 노년의 사람들은 비관적인 관점을 내놓을 뿐이다. 이 사람들을 모두 비난한다면 다 할 수야 있겠지만, 어떻게 보면 누구도 비난할 수 없다.
좌파에 대해서도 전문 용어를 구사하면서 단순한 문제를 복잡하게 만든다고 비판했다. 좌파 지식인도 책임이 있을까?
일반적으로 좌파는 대립하는 반대쪽만 알고 있어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고정 관념, 혐오, 미디어, 인종 차별, 경제 성장 등 모든 것에 반대한다. 최근에는 한 뉴욕의 지식인이 ‘모든 것에 반대한다’는 제목으로 책을 쓰기도 했다. (웃음) 무엇에 반대하는지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궁극적으로 무엇을 원하느냐가 중요하다. 마틴 루터 킹이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라고 했지 ‘나에게는 악몽이 있습니다’라고 말하진 않았다. 모든 좌파를 일반화시키려는 건 아니지만, 비전이 없이 반대만 하려는 점은 문제라고 생각한다.
실제 정치인이나 은행가 등 책을 읽어야 할 사람이 읽지 않고 노동자 계급만 이 책을 읽을까 걱정된다.
사실 2주 뒤에 런던의 큰 은행에서 강의할 예정이다. 은행가, 우파, 비즈니스 리더들도 이대로는 안 된다는 점에는 동의하는 것 같다. ‘무의미한 일’ 장을 쓰고 나서 IT업체나 은행, 로펌에 근무하는 사람들이 나에게 이메일을 보내며 자기가 많은 돈을 벌고 있지만 사실 가치 있는 일, 세상에 기여하는 일은 하지 않고 있다고 고백하듯 말했다. 돈과 권력이 있는 사람조차도 이 아이디어에 동감한다. 좌우할 것 없이 모든 사람을 통합하는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물론 이런 아이디어를 불편해하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역사를 통틀어 비추어 봤을 때 이러한 불편함도 싸워 이겨내야 할 것들이다.
GDP 나 GNP 등 성장을 재는 지표에 회의를 품고 있다고 했다. 이에 문제를 제기하고 나온 ‘지구 행복 지수’나 ‘인간 계발 지수’ 등도 긍정적으로 보진 않았는데, 어떤 방식으로 우리가 지금 상황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을까?
GDP만큼 멍청한 수치는 없다. GDP가 올라가면 모든 게 나빠진다. 가장 높은 임금을 받는 변호사는 실제 GDP에 기여하는 바가 없다. 나는 성장을 한 숫자로 표현하는 것에 회의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을 다 포괄하는 단 하나의 숫자보다 여러 가지의 지표가 있는 대시 보드를 활용해 활발한 정치토론을 하고 어떤 숫자를 포함할지 같이 이야기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아시다시피 많은 통계와 수치에는 항상 정치적인 가정과 판단이 들어간다. 숫자 이면에 무엇이 있는지 보는 게 숫자 자체보다 중요하다.
언론인으로서 수치를 어떻게 다뤘으면 하는 방향이 있나?
어떤 수치를 쓰든 자신의 가정을 투명하게 독자들에게 밝히는 게 중요하다. GDP만 하더라도 신문을 보면 GDP가 올라갔다든지 떨어졌다는 것만 이야기하지 그 성장 이면에 왜 이 수치를 쓰고 있는지는 설명하지 않는다.
구체적인 자료를 쓰면서 혹시나 틀린 자료가 아닐지, 자료를 적절치 못하게 쓰고 있는지 우려가 들기도 할 것 같다. 책을 쓸 때 의견에 다른 자료를 찾았거나 했을 때는 어떻게 하나?
먼저 자료를 고를 때 변호사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기 고객을 변호하는 것처럼 내 의견을 변호하기 위한 자료를 많이 준비한다. 내 의견에 반하는 기사를 쓴 동료 언론인에게 자문을 구하기도 한다. 내 의견에 회의적인 시각을 보이는 동료나 독자가 오히려 내 의견을 증진시키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지적으로 통일된 의견을 내놓겠다는 마음과 세상을 바꾸겠다는 열정 사이에서 균형을 잘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버트런드 러셀도 “바보와 현자의 차이점은 바보는 자기 확신이 가득하고 현자는 의심이 많다는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듯이, 자기 의견이 항상 나쁘다거나 미쳤다고 할 필요는 없지만, 자기 의견을 의심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옆에서 구경만 하는 똑똑한 사람도 되지 않아야 한다.
기자로 활동하는 <코레스폰던트>는 광고 없이 유료 회원만으로 운영한다고 들었다.
광고를 붙이는 순간 광고주에게 독자를 파는 거다. 우리는 훌륭한 기사를 독자들에게 팔고 싶었지 독자를 팔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기사를 사는 사람들을 고객이라고 부르지 않고 멤버라고 부른다. 책을 발간하기 전에도 몇 개 에세이를 미리 올렸는데 독자들이 많은 피드백을 주면서 책의 결과물이 더 좋아졌다. 저널리즘을 하는 훌륭한 새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오만한 주류 언론인들은 ‘나는 모든 걸 알고 있어, 내가 독자에게 설명하겠어’ 라며 기사를 쓰지만 독자들이 언론인보다 더 많이 알고 있을 수도 있다. 교육에 대해 기사를 쓴다면 수천 명의 교사가 기자보다 더 많이 알고 있다. 그들의 지식을 활용하고 배울 수 있다. 그게 <코레스폰던트>에서 하고자 하는 ‘일’이다.
‘새롭게 떠오르는 유럽의 젊은 사상가’라는 표현이 있다. 나이가 급진적인 생각을 하는 데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하나?
(웃음) 그럴지도. 어떤 사람은 매우 젊지만, 상식적으로 매우 완고하고 지루할 수도 있다. 반대 사례도 있고. 나이와 사상은 비례하지 않는 것 같다. 젊다는 게 어떤 가치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중요한 건 비현실적인 생각을 가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다.
마지막으로 한국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변화가 필요하다면 상대방을 기분 나쁘게 하는 것도 감수해야 한다. 내 책을 읽거나 기사를 보는 사람들이라면 사람들과 대립하는 상황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물론 쉽지 않다. 사람들이 연대해서 함께 일어나는 게 필요하다. 가만히 앉아 있다면 편하겠지만 매력적인 삶은 아닐 것이다.
리얼리스트를 위한 유토피아 플랜뤼트허르 브레흐만 저/안기순 역 | 김영사
남성의 육아휴직과 보육을 뒷받침하는 방향으로 주당 근로시간을 단계적으로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생동감 넘치는 일화들과 성공 스토리를 통해 철저하게 검증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