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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나 “말이라는 주제가 나를 뜨끔하게 만든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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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릇’이라는 말에는 ‘음식이나 물건 따위를 담는 기구를 통틀어 이르는 말’ 외에 ‘어떤 일을 해 나갈 만한 능력이나 도량 또는 그런 능력이나 도량을 가진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는 의미가 있다. 그렇다면 ‘말그릇’이라는 말도 가능해진다. 말을 해 나갈 만한 도량을 가진 사람, 정도가 될까. 이 말은 또한 말의 도량이 부족할 수 있다는 의미도 된다. 누구나 말을 한다. 하지만 누구나 말그릇이 크진 않다. 감정에 속아 지나치게 화를 내고, 상대와 자신을 상처 주며, 자신의 말을 쏟아내는 작은 말그릇의 소유자들을 떠올려본다. 


『말그릇』의 저자 김윤나는 말그릇이 큰 사람은 “말 이전에 사람”을 볼 줄 안다고 설명한다. 상대에 대한 관심, 경청의 자세, 꼭 필요한 말을 하는 용기가 말그릇이 큰 사람에게는 있다는 것이다. “기술 이전에 관심”이라는 말에 여러 번 힘을 준 김윤나는 특히 두 가지를 강조한다. “정적인 시간을 만들어서 감정을 알아채고, 이름 붙이고, 이름에 맞게 표현”하기(‘잠시 멈춤 질문’)와 사람들에게는 같은 사건을 두고도 서로 다른 반응을 보이는 각자의 ‘공식’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무엇보다, “말에 대한 이해는 사람에 대한 이해로부터 출발해야 하고요. 사람에 대한 이해는 나로부터 출발해야 해요. 나부터 잘 챙기셔야 해요. 저는 강연 마무리 할 때도 늘 “밥 든든히 드시고, 잠 충분히 주무시고, 대화 잘 하세요.”라고 말해요. 정말 중요한 일이에요.”라는 것이 저자의 당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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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말 ‘그릇’인가


새삼 말이라는 게 굉장히 무거운 습관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책이에요. ‘한 마디에는 평생의 경험이 담겨있다’고도 하셨죠.


강의든 책이든 계속해서 말하게 되는 주제가 있잖아요. 인생의 프로젝트(웃음)가 있는데요. 저는 가까운 관계에 있는 사람들과 주고받는 말에 대한 굉장한 동기와 목표가 있어요. 한 사람의 강력한 동기나 목표는 대개 어린 시절과 깊은 관련이 있잖아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일곱 살 때 부모님이 이혼을 하셨는데요. 형제자매가 없었고, 그 과정을 혼자 지켜봐야 했어요. 그때부터 왜 우리는 서로를 지키지 못하는가에 대해 관심을 뒀던 것 같아요. 그때는 언어로 이렇게 정리하지 못했지만요.

 

부모님의 이혼 경험이 말이라는 질문에 큰 영향을 줬군요.


예를 들어 부모님이 싸우는데 “너 때문이야!”라고 해요. 하지만 본심은 그게 아니잖아요. 우리는 본심을 너무 말하지 못하는 거죠. 말을 순간의 감정으로 툭툭 뱉어내고, 평생 그 말을 후회하며 사는 경험을 해요. 그걸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보며 느꼈어요. 이후 심리학, 교육학을 공부하면서,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이론적으로는 많이 알지만 저 역시 정작 가까운 관계에서는 말이 배운 대로 안 됐어요. 입에 배인 대로만 되고요. 머릿속은 꽉 차있는데 왜 변하지 않을까, 고민을 참 많이 했죠. 그 과정에서 말이 그 사람 자체를 이해하지 않고는 변화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너무 많이 깨달았어요. 그렇다면 나의 무엇을 이해해야 내가 변할 수 있을까, 부모가 겪은 시행착오를 똑같이 겪고 싶지 않은데, 이런 생각을 많이 했고요. 그래서 제 첫 책 『나공부』도 나를 이해하는 법에 관련된 책이죠. 『말그릇』은 그 연장에 있고요. 이런 감정과 공식, 말 습관 등에 대한 이야기는 치열한 고민 안에서 나온 거예요.

 

말에 대한 고민은 사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갖고 있는 것이잖아요.


강의나 코칭을 할 때 확인을 했어요. 많은 사람들이 툭 내뱉은 말 때문에 후회하고, 아파해요. 부모가 자식한테, 상사가 부하 직원한테, 부부 간에 그런 일이 일어나요. 그런 것들을 지켜보면서 나만 그런 것이 아니구나, 작동하는 방식은 다 비슷하구나, 하는 것들을 알게 됐어요. 결국 말이라는 것은 제 인생의 경험이자, 앞으로도 세상에 말할 수 있는 기회가 온다면 하게 될 이야기의 주제이기도 해요.

 

제목이 재미있어요. ‘말그릇’은 어떻게 만든 말인가요?


말 ‘기술’이 아니라 왜 말 ‘그릇’인가를 생각하면 좋을 것 같아요. 대화에는 기술이 필요하죠. 사람들이 말을 너무 못하거든요.(웃음) 원하는 것들을 표현할 줄 몰라요. 사람들이 만나면 저한테 기술을 알려달라고 해요. 경청하는 기술, 아이와 대화하는 기술 말이에요. 시간이 부족할 때는 기술만 알려드리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다고 바뀌지 않죠. 제가 만난 리더 중에 ‘까까리더십’을 갖고 있는 분이 계셨어요. ‘까라면 까’리더십이요. 그분에게 칭찬하는 기술을 가르치라는 미션을 받았는데요. 아무리 기술을 가르친다 한들 직원들에게 칭찬을 하지도 않고, 칭찬을 해도 직원이 ‘저 분이 변했구나’라고 봐주지 않는 거겠죠. 결국 기술 전에 나는 그 말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 되는가를 생각해야 한다는 거고요. 그 은유로써 ‘말그릇’이라는 말을 제목으로 삼았어요. 

 

말그릇이 작은 사람들의 특징은 뭘까요? 특징을 설명해주시면 이해가 더 쉬울 것 같아요.


핵심은 말그릇이 작은 사람은 사람을 보지 못한다는 거예요. 말로만 다 채우려고 해요. 그럴수록 불안하니까 자꾸만 말을 하죠. 말이 쏟아져 나오고, 불필요한 말을 계속 하게 돼요. 남을 가르치고, 비난하죠. ‘나니까 너한테 이런 말 해주는 거야’(웃음) 같은 말을 해요. 말이 넘치죠. 이런 사람들은 내 말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상대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살피지 못해요. 사람의 말 중에는 말줄임표, 괄호 안의 말이 있거든요. 진짜 하고 싶은 말인데요. 말그릇이 작은 사람들은 사람을 볼 줄 모르기 때문에 괄호 안의 말을 찾으려고 하지 않아요.

 

반대로 말그릇이 큰 사람은요?


말그릇이 큰 사람은 말 이전에 사람을 볼 줄 알아요. ‘그렇게 말하는 이유가 있을 거야, 사정이 있겠지’ 하는 거예요. 상대에 대한 관심이 있기 때문에 말을 자르지 않아요. 거기에 내 말을 욱여넣지 않고 끝까지 들을 줄 알죠. 설령 내 뜻과 다르더라도 그건 상대의 맥락에서 있을 수 있는 이야기라고 여기고 호기심을 갖고요. 그러면 질문하게 되어 있어요. 듣고, 받아들일 줄 아는 거죠. 그렇게 채우는 연습을 많이 하다보면 필요한 순간에 정확하게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할 줄 알게 돼요. 말그릇이 작은 사람은 너무 많은 말을 꺼내기 때문에 진심과 본심을 상대가 헷갈려하거든요. 말만 번지르르 한 건 금방 들통이 나게 되어 있어요.

사실 대화를 조금 해보면 상대가 말만 번지르르하다는 건 금방 눈치 채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거의 본능적으로 말이에요.


우리에게 그런 직관이 있어요. 타고난 본능 같은 게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말그릇이 큰 사람들은 말을 아낄 줄 아는 동시에 필요할 때 말을 하는데요. 그러려면 용기가 필요하거든요. 내 마음을 정확하게 읽고, 필요한 말을 정확하게 할 수 있기 때문에 물러서지 않아요. 비겁하지 않죠. 도움이 필요하거나 조언을 구하고 싶고, 외롭고, 힘들 때 말그릇이 큰 사람을 찾아가면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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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이 아니라 관심


저자 역시 말그릇이 큰 사람을 만나 치유되는 경험을 한 적이 있죠?


둘째를 낳은 지 6개월 됐는데요. 둘째를 낳는 인생 경험이 저도 처음이죠. 나이도 있고, 커리어도 있고, 여러 어려움이 있잖아요. 급한 마음에 주변에 도움을 구했어요. 둘째 낳아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고요. 이때 많은 사람들이 자기네 인생만큼 조언을 해주셨죠. 낳지 마, 고생이야, 하고 싶은 거 해, 라든지 경력이 다가 아니다, 키우게 되어 있다, 라든지 말이에요. 이 조언은 모두 진심이에요. 저를 다 걱정해주시는 마음이죠. 그런데 정말 마음이 흔들렸던 조언은 친한 선배 언니의 말이었어요. 언니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가 둘째를 갖고 싶어 한 이유가 뭐야? 상황을 아는 것 같은데 포기하지 못하는 너의 마음이 궁금해.” 이 말을 들은 순간 그동안의 고민을 풀어놓게 되고, 언니와 제가 연결되는 걸 느꼈어요. 정말 해소가 되더라고요. 그러면서 이 사람이 정말 나의 인생에 관심이 있구나, 느낀 거죠.

 

결국 상대에 대한 진심 어린 관심이네요.


네, 상대에게 관심이 없으면 말을 내 인생으로 자꾸 채워요. 저는 비유하기를 무대 핀 조명으로 하거든요. “고민이 있어”라고 할 때 핀 조명이 그 사람에게 딱 떨어져 있는 거잖아요. 그런데 들어주는 척 하다가 핀 조명을 자기가 탁 꿰차는 거죠. 계속 스포트라이트를 자기만 받는 거예요. 그런 사람을 만나면 헤어질 때 왠지 마음이 씁쓸했던 경험 누구나 있잖아요.

 

젊은 사람들이 어른들과 얘기하기 싫다고 하는 가장 큰 이유가 그런 거잖아요.


정확해요. 조직 리더들을 많이 만났잖아요. 팀장, 임원 같은 분들인데요. 먼저 그 구성원들 인터뷰를 많이 해요. 꼭 얘기하는 게 “나 때는 말이야”라는 말 좀 안 했으면 좋겠다고 하죠.(웃음) 듣고는 있지만 속으로는 안 그렇다는 거예요. 하지만 그 어른들은 얼마나 진심이겠어요. 나 같은 시행착오 겪지 말라고 하는 말인데요. 그건 진짜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아요. 큰 도움이 되는 경우는 열에 하나 정도 될까요.

 

앞서 말그릇이 큰 사람은 상대에 관심을 갖고 질문을 한다고 하셨는데요. 필요한 질문을 제대로 던지는 것, 정말 중요한 일이지만 쉽지 않아요. 어떤 질문을 해야 할까요?
 
좋은 질문에는 깊이가 있다. 아주 깊은 곳에 숨겨져 있던 풍성한 스토리를 끌어올린다. 좋은 질문은 예리하다. 상대방이 놓치고 있던 것을 정확하게 상기시킨다. 강력한 질문들은 간결하다. 불필요한 생각을 덧붙이지 않기 때문에 군더더기가 없고, 균형이 잡혀 있다.(중략) 가장 좋은 질문은 자신의 머릿속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상대방의 이야기 속에서 나온다.(271쪽)

 

질문 정말 중요하죠. 그런데 저는 워크샵에서 질문 강의를 한 후, 제발 돌아가서 질문 좀 하지 마시라고 해요.(웃음) 부작용이 너무 크거든요. 사람에 대한 관심은 쏙 빼고 기술만, 괜찮아 보이는 질문만 던지는 거예요. 그럼 잘 안 되죠. 특히 가까운 사람에게 하는 질문은 기술 이전에 이 두 가지를 기억하라고 늘 강조하거든요. 첫째, 유도질문 하지 말자. 답정너(웃음)죠. 질문해놓고 듣지 않으면 유도질문이거든요. 그러면 유도질문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답하지 않아요. 둘째는 상대가 신날 수 있는 질문을 찾으면 돼요. 여기에는 기술이 아니라 관심이 필요하죠. 예를 들면 아이 키우는 전업주부에게 “아이 키우기 힘들지. 그래도 내 새끼 정말 잘 낳았다, 이럴 때는 언제야?”라고 물어보는 거죠. 얼마나 그 마음에 불이 지펴지겠어요.

 

직장 안에서는 어떻게 해볼 수 있나요?


팀장님들을 만나보면 키워놓으면 나간다는 말씀을 많이 해요. 육성할 필요 없다고요. 그럴 때 “여태까지 후배들 키우면서 그래도 이 맛에 사람을 키우지, 했던 순간은 언제예요?”라는 질문 하나면 완전히 달라져요. 말은 이렇게 하지만,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지만 그래도 내가 해야지, 이런 마음을 스스로 갖는 거예요. 그걸 반드시 “선배가 그러면 되겠어요?”라고 말할 필요가 없어요. 에너지가 솟을 수 있는 질문은 상대를 보면 다 알아요. 이 두 가지만 기억하고 해보시면 좋을 거예요. 그렇게 정말 질문이 사람을 힘나게 한다는 사실을 스스로 느낀 후에는 기술을 배워서 사용하시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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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단어를 찾아야


특히 ‘잠시 멈춤 질문’은 정말 도움이 많이 되는 기술이거든요. 현재 자신의 감정을 잠깐 멈춰 생각해보는 게 대화를 훨씬 좋게 할 수 있다는 건데요.


강연에서 지금의 감정을 표현해보라고 하면 많은 분들, 특히 남자 분들은 좋다, 나쁘다만 말해요.(웃음) 열 받는다, 짜증난다, 우울하다, 이게 전부거든요. 이것도 굉장히 중요한 감정이죠. 분노도 꼭 필요한 감정이고요. 우울도 그래요. 사람들에게 도움을 이끌어낼 수 있는 기능이 있는 감정이에요. 그런데 한국은 지금 분노 중독 아니면 우울 공화국이잖아요. 이 두 가지 감정만 느껴요. 이 감정은 매우 강렬해서 색깔로 치면 원색에 가깝거든요. 한편 많은 감정들은 파스텔색이에요. 누드 베이지 같이 미세한 감정이 있는데 이런 감정은 관찰하고 발견해야 하는 감정이에요. 생각하거나 음악을 듣거나 잔잔한 파도를 볼 때 스미는 게 있잖아요. 언어로 표현은 안 되지만 말이에요. 그런 순간의 감정을 잘 발견해서 언어를 붙여주는 게 정말 중요해요.

 

굳이 예를 들자면 지금 내가 우울한 건지, 서운한 건지, 외로운 건지 따져볼 일인 거잖아요. 비슷한 것 같지만 다른 감정들이고요.


그런데 우선 정적인 시간이 별로 없어요. 너무 바빠요. 그나마 정적인 시간이라면 화장실 갈 때 정도일까요? 그때도 휴대전화부터 찾으시죠. SNS 검색하고, 좋아요 누르고요. 이때 느끼는 감정은 파스텔톤일 수가 없어요. 질투처럼 강렬한 감정에만 계속 노출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정적인 시간을 만들어서 감정을 알아채고, 이름 붙이고, 이름에 맞게 표현하는 삼박자를 맞춰야 해요. 너무나 중요해요.

 

감정에 이름 붙이는 것도 연습이 필요할 것 같아요. 일상에서 어떻게 해보면 좋을까요?


재테크할 때 자산을 챙기는 것처럼 감정 단어에도 자산이 조금 있어야 해요. 불편한 감정이 올라왔을 때 이게 서운함인지 실망감인지 걱정인지 두려움인지 분노인지 찾아야죠. 단어가 일단 있어야 하고요. 또 불편한 감정은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잖아요. 어떤 사람은 심장이 막 뛰고요. 얼굴이 빨개지거나 손에 땀이 나기도 해요. 모두 불편하다는 신호죠. 그걸 알아차렸다면 잠깐 멈추고 빨리 내 안에서 감정 단어를 찾아야 해요. 그러면 폭발하지 않아요. 분노가 아니라 실망이구나, 하고 이름을 붙이는 순간 감정이 10점에서 3점에서 뚝 떨어져요. 그걸 느껴야 원하는 대화를 할 수 있어요. 그저 실망감인데 그걸 10점으로 표현해버리면 상대는 그 3점의 마음을 모르잖아요. 10점만 보고 그 사람을 판단하기 때문에 점점 더 대화가 어려워지는 거예요.

 

모두들 꼭 해보시면 좋겠어요. 효과도 즉각적이고 좋더라고요. 해보고 느꼈어요.(웃음)


직장에서 상사가 “이따위로 할 거면 때려 치워!”라고 하면 진짜 성질나잖아요. 그런데 이 연습이 잘 된 사람들은 ‘저 사람의 감정은 불안이구나, 진짜 나를 나가라고 하는 게 아니야’라는 걸 알아요. 그걸 알면 훨씬 덜 열 받고요.(웃음) 본래 자기 업무에 빨리 집중할 수 있어요. 그렇게 해서 누군가를 자꾸 이해하고 저 사람과 잘해보려고 하는 게 중요하다기보다 내가 잘 되면 자연스레 상대의 감정도 보이게 되어 있다는 의미예요.

 

도대체 왜 이렇게 감정 단어가 많지 않고, 특정한 감정에만 휘둘리는지 따져보면 사회적으로 감정 표현을 경시하는, 도외시하는 분위기가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가령 친구들한테 남자친구와 헤어졌다고 말을 해요. 그러면 실은 그 친구가 느꼈을 감정을 서로 나눠야하거든요. 친구가 느꼈을 두려움, 절망감을 먼저 나눠야 하는데 우리는 “야, 소개팅 날짜 잡아”라고 하죠. 감정을 나누지 않아요. 더구나 남성 문화에서는 감정을 표현하면 진다고 생각하고요. 그런 면에서 사회적으로 감정을 빨리 해결하려고 하고, 감정 드러내지 않는 걸 전략적인 우세라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던 것 같아요. 더 큰 문제는 가정 안에서부터 시작됐죠. 자녀가 느끼는 수많은 부정적인 감정이 있는데요. 부모는 아이가 감정을 표현하면 훈육을 해요. 저희 세대는 더 심했죠. 감정을 표현하도록 길러지지 않은 거예요. 감정의 보따리가 많았을 텐데 말이에요. 실은 보호자가 이 아이가 불안한 걸까, 걱정이 되는 걸까, 정말 화가 난 걸까, 잘 분리하도록 연습을 시켜줘야 해요. 이것이 그대로 사회로 이동한 거죠. 확장판일 거예요.

 

가정 안에서부터라도 좀 더 편안하게 감정을 말할 수 있으면 좋겠네요.


요즘 저희 아이가 간식을 많이 먹으려고 해요. 그래서 먹을 때를 정했거든요. 어느 날 먹고는 또 먹겠다는 거예요. 굉장히 소리를 지르면서 말이에요. 그러면 저도 갈등을 하죠. 성질대로 할까(웃음) 배운 대로 할까 하는데요. 제가 물었어요. “지금 ‘앵그리’가 10만큼이야? 이 정도로 화가 난 거야? 네 마음이 궁금해.”라고요. 가만히 생각하더니 “그 정도는 아니고요. 내가 아쉬워요.”하는 거죠. 그 다음부터는 “엄마, 아쉬워요.”라고 말을 하게 됐어요. 아이들은 조금만 애를 쓰면 되더라고요. 어릴 때부터 그 교육이 가능해지면 감정 표현이 자연스러워지고, 어른이 되어서도 화를 내는 게 아니라 아쉽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될 거예요. 또 다른 사람이 화를 낼 때 저 사람이 아쉬운 걸까, 화난 걸까가 똑같이 궁금해질 거예요. 그게 중요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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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안테나의 출발은 나 자신


13년 동안 기업 등을 대상으로 강의를 해오셨잖아요. 이때 변화를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건 무엇이던가요?


감정을 모른다는 게 제일 큰 장애물이고요. 못지않게 큰 장애물은 ‘공식’이에요. 각자의 삶은 너무 다르고, 각자가 자신의 공식이 가장 자연스럽고 옳다고 생각해요. 자신의 공식을 의심하지 않죠. 이 두 가지가 가장 고치기 어려워요.

 

같은 사건을 두고도 사람들은 각자의 공식이 있어서 서로 다른 반응을 보인다는 거죠. 자신의 경험에서 내린 결론들이 있기 때문에 말이에요.


공식은 버리기가 어려워요. 심지어 내 공식을 수정하면 마치 내가 잘못 살아온 것처럼, 내 생각이 잘못된 것처럼 느끼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고집을 피우고,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고 하는 건데요. 동의와 공감-인정은 다른 거잖아요. 동의는 ‘네 말이 맞아’고, 인정은 ‘너는 그럴 수 있겠구나’잖아요. 이걸 구별하는 게 중요하고요. 무엇보다 직장 생활에서는 어느 한쪽의 공식이 버려져야 하잖아요. 협업이 중요하다는 공식A가 있고요. 속도가 중요하다는 공식B가 있다고 할 때, 프로젝트를 진행하려면 한쪽이 선택돼요. 그런데 이때도 공식을 인정하는 건 아주 중요해요. 사람과 공식을 분리해야죠. 우리가 A공식을 따를 수밖에 없지만 네 생각은 존중해, 네가 보기에는 이해 안 되는 면이 있겠지만 어떤 부분을 더 설명하면 이해에 도움이 될까, 이 자세는 완전히 다른 거예요.

 

무엇보다 직장인들에게 도움이 될 조언들이 많은데요. 저자가 생각한 이 책의 독자는 누구였나요?


아주 간단해요. 말 때문에 한 번 쯤 고민해보신 분이라면 누구나 읽어보셨으면 좋겠어요. 다 읽으란 얘기네요.(웃음) 그러니까 말에 많이 상처 받은 사람이요. 내가 누군가에게 상처를 줬는지 걱정이 되는 사람들도 물론이고요. 말이라는 주제가 나를 뜨끔하게 만든다면 이 책을 읽어보시면 좋겠죠. 특히 제가 강조하고 싶은 건 가까운 사람과의 관계예요. 조직의 사례도 많지만요. 우리 모두가 대인이 될 필요는 없거든요. 모든 사람을 다 포용하고 모든 장면에서 감정을 읽어주는 것, 저도 안 돼요. 하루는 아이를 혼내기도 하고, 똑같아요. 하지만 그냥 흘려보내면 안 되는 장면은 있다고 봐요. 부부싸움을 자주 하다가도 유난히 배우자의 어깨가 처진 날, 아이가 유난히 치대는 날, 흘려보내면 안 되죠. 이때는 나를 조금 추슬러서 말을 건넬 필요가 있어요. 수고롭더라도 그런 장면은 놓치지 않으면 좋겠어요.

 

앞서 이야기 나눴지만 그런 장면은 외면할 뿐이지 실은 용하게 다 알아챌 수 있잖아요.


맞아요, 게다가 요즘 느끼는 건 말 실력은 체력과 관련이 있다는 건데요.(웃음) 아이를 키우면서도 많이 느껴요. 넘길 때는 넘길 수도 있죠. 하지만 저는 이런 생각을 해요. 사람 사이의 관계에는 계좌 같은 게 있다고 봐요. 어떨 때는 잔고가 플러스일 때가 있고요. 마이너스일 때도 있죠. 그걸 잘 살펴서 아직 잔고가 넉넉하다 싶을 때는 그냥 넘어가는 것, 괜찮다고 봐요. 근데 잔고가 아슬아슬할 때 힘들어하면 입금을 해야죠.(웃음) 조금 힘들더라도 가끔은 나를 희생하는 사랑, 용기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내가 힘들 때는 그냥 넘어가도 괜찮다는 말이 위로가 되네요.


이 책을 잘못 읽으시면 남들만 채우시다가 내 그릇이 깨져버릴 수 있어요. 느끼셨겠지만 모든 안테나의 출발은 나 자신이거든요. 말에 대한 이해는 사람에 대한 이해로부터 출발해야 하고요. 사람에 대한 이해는 나로부터 출발해야 해요. 나부터 잘 챙기셔야 해요. 저는 강연 마무리 할 때도 늘 “밥 든든히 드시고, 잠 충분히 주무시고, 대화 잘 하세요.”라고 말해요. 정말 중요한 일이에요.


 


 

 

말 그릇김윤나 저 | 카시오페아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고, ‘나는 과연 말의 책임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인가’ 성찰해보고, 관계에서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무엇을 더 고려해야 하는지 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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