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째서 한국의 소설가나 시인은 옆으로만 사진을 찍을까’ 소설가 최민석은 궁금했다. 그는 몇 가지 가설을 세웠다. 나름의 사정으로 옆모습으로 찍을 수밖에 없었던 작가들이 있었고, 그게 작가들의 특성인 줄 알았던 사진가가 있었다는 것. 그리고 또 한 사람, 등단의 감격에 취해 있던 신인이 있었는데, 그는 ‘감히 내가 카메라를 똑바로 바라봐도 될까’라는 고민 끝에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결국 이런 식으로 30년이 흘러버린 것”이라는 게 최민석의 해석이고, 에세이 『꽈배기의 맛』에 실린 첫 번째 이야기다.
상상해 보건대, 그 신인이 최민석 소설가였다면 태연하게 정면을 응시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처럼 “B급 문학을 지향하는 자”를 표방하면서 “나는 작금의 경색되고 위축된 B급 막장소설의 부흥이라는 절체절명의 과제를 젊어지고 이 땅에 태어났”다고 선언한 이는 지금까지 없었기 때문이다. 최민석이라면, 기존의 관행을 답습하는 대신 ‘왜 안 돼?’라고 자문하면서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았을까.
물론 최민석의 문학이 B급이 아니라는 건 독자들도 알고 나도 안다. 다만 우리는 그의 경쾌한 행보를 지켜보는 일이 즐겁다. 젠체하지 않고, 심오함을 가장하지도 않으며, 담백하게 이야기를 담아내는 까닭이다. 그 맛과 멋을 고스란히 담은 에세이 두 권이 출간됐다. 그 이름도 『꽈배기의 맛』과 『꽈배기의 멋』이다. “지나치게 달달하거나 느끼하지 않게, 그러나 적당한 기름맛과 설탕 맛이 배게” 쓴 글들이 자꾸만 손길을 잡아끈다.
책 제목은 짧게, 기억하게 좋게!
『꽈배기의 맛』은 기존에 출간하셨던 『청춘, 방황, 좌절, 그리고 눈물의 대서사시』의 개정판인데요. 『꽈배기의 멋』과 함께 내실 계획을 갖고 계셨나요?
네. 『청춘, 방황, 좌절, 그리고 눈물의 대서사시』은 두 달 만에 절판을 했으니까, 기회가 되면 반드시 같이 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고요. 『꽈배기의 멋』은 원고가 쌓이면 출간하려고 했는데, 그때 개정판과 같이 내려고 처음부터 생각했어요. 그 생각을 한 4년 전쯤에 했는데, 예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네요.
제목 이야기를 해볼게요. 『청춘, 방황, 좌절, 그리고 눈물의 대서사시』는 아버님께서 아직도 제대로 기억을 못하신다고요(웃음).
아무도 몰라요. 애독자도 모르고 저만 알아요. 사실은 이번에도 제목을 그대로 살려서 내고 싶었어요. 그런데 출판사마다 원고를 검토하면서 제목을 바꿨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그러면 독자들이 옛날 책인 줄 모르고 살 수 있지 않느냐’고 했죠. 독자가 중요하니까요. 그래서 기존의 제목을 고집하려고 했는데요. 어떻게 하다가 행사 때 독자들을 만났어요. 제 애독자들이 몇 명 있어요. 정말 극소수의 팬들이 있는데, 그 극소수의 사람들은 제 모든 책을 다 소장하고 있거든요.
왜 굳이 ‘극소수’라고 하세요?(웃음)
한 열세 명 정도 돼요(웃음).
극소수라니요. 드러나지 않은 분들이 많습니다(웃음).
‘샤이 최민석’인가요(웃음). 이해는 됩니다. 내가 최민석의 독자라는 걸 드러낼 수 없는 그 심정(웃음). 아무튼 그 애독자들도 저 책의 제목을 기억 못하는 거예요. ‘청춘 방황 좌절’이라고 하고. 심지어 『능력자』도 아직까지 ‘능력자들’이라고 하는 분들도 되게 많거든요. 결론은, ‘저 제목에 대한 고집은 나 혼자 갖고 있었던 거였구나, 저 제목은 아무도 애착을 느끼지 않는구나’ 싶었다는 거죠. 그래서 결국 바꾸자는 출판사 제안에 동의했어요.
『청춘, 방황, 좌절, 그리고 눈물의 대서사시』이라는 제목에 유독 애착을 느끼시는 이유가 있나요?
일단 제목을 한 번 정해 놓으면 책으로 낸 이상 바꾸기 어렵잖아요. 이미 그 책은 하나의 생명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새 책인 줄 알고 잘못 사는 사람들도 있을 거고요. 원래 저는 『꽈배기의 맛』의 표지에 ‘『청춘, 방황, 좌절, 그리고 눈물의 대서사시』개정판’이라고 써야 된다고 했는데, 출판사에서 미관상의 이유로 책날개에 쓰자고 하더라고요. 인터넷에는 항상 표기를 해달라고 말하고 있어요. 서문의 첫 문장도 “이 책은 2012년에 발간한 에세이 『청춘, 방황, 좌절, 그리고 눈물의 대서사시』의 개정판이다”라는 건데요. 이런 게 마음에 많이 걸려요.
『꽈배기의 맛』, 『꽈배기의 멋』이라는 제목은 어떤 것 같으세요?
편집자가 제안한 제목인데요. 예전에 <채널예스>에 ‘최민석의 영사기’라는 칼럼을 3년 정도 연재했어요. 그때 영화 <끝까지 간다>를 보고 칼럼을 썼는데, 서사가 이리저리 가면서 계속 꼬이더라고요. 그래서 그 에피소드의 제목을 ‘꽈배기의 맛’이라고 붙였어요. 꼬아도 꼬아도 이야기의 맛이 산다고요. 편집자가 그 글 제목이 마음에 든다는 거예요. 뭔가 최민석 에세이 같다면서요. 그래서 제가 ‘왜 꽈배기의 맛이냐, 내 책은 꽈배기와 별 상관이 없다’고 하니까, 「꽈배기의 맛」이라는 꼭지를 하나 쓰라는 거예요. 그런데, 두 권이 동시에 출간되니까 제목을 ‘꽈배기의 ~’ 아니면 ‘~의 맛’ 이렇게 맞춰야 하잖아요. 결국 『꽈배기의 맛』으로 정하고 같은 제목의 꼭지를 쓰고, 2권은 『꽈배기의 멋』으로 하고 또 같은 제목으로 꼭지를 썼어요.
제목은 마음에 드세요?
편집자의 감을 믿었어요. 주변에서도 어울린다했고.
이제 제목에 대한 고집은 버리신 건가요(웃음).
네, 그냥 제목은 짧으면 좋다, 짧고 기억하기 좋으면 좋다고 생각해요.
편집자 분이 ‘최민석스럽다’고 말씀하신 게, 무슨 뜻인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아요.
저는 그게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몰랐어요. 근거가 없잖아요. 이게 왜 내 책의 제목 같냐고 하니까 그건 설명할 수 없대요. 설명할 수는 없는데 그런 것 같은 느낌이 있다는 거예요. 저는 직관, 느낌, 이런 걸 믿지 않고, 논리를 믿어요. 그래도 편집자가 일단 제안을 하니까 주변에 물어봤죠. 주변 사람들이 다들 나쁘지 않다는 거예요. 일각에서는 괜찮다고 하고요. 그러면 그렇게 가자고 했죠. 대신 「꽈배기의 맛」이라는 꼭지 글을 쓸 수 있는지 없는지에 따라서 제목을 결정하자고요. 못 쓰면 못하는 거니까요. 그런데 쓰다 보니까 써지더라고요(웃음).
이성적, 논리적으로 설명될 수 없는 것은 불신한다고 하셨는데요. 상당히 의외예요. 소설에서는 그렇게 허풍을 늘어놓으시면서...(웃음).
만나면 되게 배신감 느낀다고 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어요. 의외로 바른 생활 사나이라고, 심지어 실망했다고 하시는 분도 있어요.
오래 전 원고를 들춰보는 이유는...
『꽈배기의 맛』은 6년 전에, 『꽈배기의 멋』은 3년 전에 쓰신 글이잖아요. 오래전 원고를 다시 보시는 느낌은 어땠나요?
부끄럽죠. 그 사이에 제가 많이 변했으니까요. 6년 사이에 나이도 먹고, 경험도 쌓였으니까. 사람과 세상은 변하기 마련이잖아요. 시간이 지날수록 도덕적인 기준도 높아지고, 나도 그렇게 되고.... 이렇게 되니까, 원고가 옛날만큼 재미있지 않더라고요. 게다가 조금이나마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만하고 문제가 될 만한 내용은 빼다 보니까 더 재미가 없어지는 거예요. 원래 원고가 가지고 있던 투박하지만 날 것의 매력들이 점점 사라지는 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춘, 방황, 좌절, 그리고 눈물의 대서사시』는 시장에서 제대로 유통이 못 됐으니까, 다시 내야겠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도 독자들이 『꽈배기의 맛』을 보고 웃어주시고 즐겁게 읽었다고 말해주시니까, 부끄럽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그래요.
지난 원고를 다시 꺼내서 보시는 일이 있기는 한가요?
어쩌다 한 번씩 보기는 하는데요. 보통은 마감은 임박했는데 도저히 쓸 뭔가가 떠오르지 않을 때, 옛날에 버린 것 중에 쓸 만한 거 없나 다시 뒤지는 거죠(웃음). 실은 『능력자』가 그렇게 해서 나온 책이에요. 등단하고 첫 슬럼프가 왔을 때, 소설 그만 쓰고 재취업을 해야겠다고 결심하고 제주도로 내려갔어요. 일종의 이별여행이었죠. 소설과 나와의. 그런데 민박집 주인이, 왠지 모르겠는데 계속 김광석 노래를 틀어 놓는 거예요. 제주 생막걸리를 마시면서 있는데, 그때가 또 겨울이었어요. 쌀쌀하고 추운데 제주도는 바람도 세잖아요. 막걸리를 홀짝홀짝 마시는데 김광석 노래는 계속 나오고, 밖은 춥고...
삼박자가 딱 맞아떨어졌네요(웃음).
‘더 늦어지면 취직도 못해’ 이렇게 생각하고 자려고 방에 들어갔는데요. 그런데 뭔가 아쉬운 거예요. 그런 느낌 있잖아요. 헤어진 연인과의 연애편지를 들춰보면서 ‘얘랑 이런 일도 있었지’ 하는, 그런 심정으로 지나간 원고를 보게 되더라고요. 그때 노트북 폴더에 버린 원고가 하나 있었어요.
『능력자』의 초고가요?
(제목이) ‘너절한 자아’, 부제는 ‘느는 건 자학뿐’이라는 원고였어요. A4 30페이지 정도를 써놨더라고요. 그래서 쓱 보는데, 술이 취해서 그랬겠죠, 버린 것 치고는 약간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나쁘지 않은데?’ 하다가 ‘젠장, 오기다’, ‘이거 한 번 써보고 때려치우든지 말든지 하자’ 싶어서 다음 날 서울로 올라와서 『능력자』를 썼어요. 다 쓰고 뭐라도 결정해보자 했는데, 고맙게도 ‘오늘의작가상’ 수상작으로 선정됐어요. 그래서 작가 생명이 조금 연장된 거죠. 아, 옛날 원고를 들춰볼 때를 물어보셨는데, 결론은 ‘주로 마감이 임박했는데 소재가 없을 때’, ‘뭔가 술을 마시고 회한에 젖었을 때’ 정도가 되겠네요.
『능력자』는 필명으로 내고 싶으셨어요?
필명으로 지원을 했어요. 무슨 필명을 썼는지는 기억이 안 나요. 출판사에서 본명으로 내자고 해서 그러자고 했었죠.
이유가 있었나요?
아직도 『능력자』의 몇 장면 중, 마음에 안 드는 데가 있어요. 제가 쓰고 싶은 게 잘 안 나왔어요. 스스로 정한 기준에 못 미친다고 생각해서 필명으로도 지원했어요. 내가 생각하는 문학은 그 보다 좀 더 정교해야 한다고 여겨서, 종종 스스로를 ‘B급 소설가’라 부르기도 했어요
『꽈배기의 멋』에는 <대학내일>과 타 매체에 기고하셨던 글들이 실려 있죠?
기본적으로는 제 블로그에 썼던 글들이에요. 다시 에세이를 써야겠다고 생각하고서 혼자 매주 금요일 6시까지 써서 올리고 있었어요. 그때 <대학내일>에서 연재를 해 달라고 해서 블로그에 쓰던 글을 <대학내일>에 발표를 한 거죠. 발표 매체가 바뀌었을 뿐이지, 갑자기 대학생에게 맞는 글을 쓰거나 하지는 않았고요. 물론 그렇다고 해서 40, 50대를 위한 글을 쓰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아무튼 크게 바뀌지는 않고 매체만 바뀐 거예요. 그리고 중간에 월간지나 패션지 같은 데에서 한 번씩 청탁받아서 쓴 글 중에서 책에 실을 만하다고 생각되는 것도 실었고요.
소설의 맛
예전에는 에세이를 쓰려고 소설가가 됐다고 하셨는데요. 시간이 흐르면서 생각이 달라지신 것 같아요.
어쨌든 소설로 등단을 했기 때문에 소설가잖아요. 공식적인 직업도 소설가고. 결국 소설가니까 소설을 써야죠. 처음에는 에세이를 쓰는 방편으로 소설가라는 직업을 택했는데, 쓰다 보니까 소설의 세계에서 재미를 조금 느꼈어요.
소설의 맛인가요(웃음)?
네, 소설의 맛(웃음). 소설 쓰는 재미도 느꼈고 읽을 때의 재미도 느꼈어요. 좋은 소설을 쓰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부담도 느껴지고요. 지금 작업 중인 원고를 끝내고 나면, 다음에는 장편 소설을 쓰려고 해요.
안 그래도 장편소설 소식이 궁금했어요. 이제 내주실 때가 됐는데, 싶더라고요.
낼 때가 됐죠. 지금 마음 같아서는 글로벌한 소설을 써보고 싶어요. 여러 나라를 배경으로 했으면 좋겠고, 순문학이면서도 장르문학 성격이 있는 작품이었으면 좋겠어요. 이종교배물 같은 소설이요.
어렸을 때 첩보원이 되고 싶으셨다고요. 지금도 첩보영화를 자주 보시죠?
좋아하죠. 그래서 약간 그런 느낌의 소설을 써보려고 해요. 추리와 스릴러에 순문학 성격을 더한 소설을 구상중이에요.
대부분 자신이 잘하는 일, 주위의 반응이 좋은 일을 밀고 나가잖아요. 그런데 작가님은 계속 방식을 바꾸시는 것 같아요.
코엔 형제를 좋아하는데요. 필모그래피를 보면 영화가 다 달라요. <인사이드 르윈>은 음악영화, <아리조나 유괴사건>은) 코미디, <파고>는 느와르예요. 이 형제는 똑같은 걸 하기 싫어하는 거예요. 새로운 걸 하면 재밌다는데, 저도 약간 그래요. 약간 다른 말이지만, 작가는 운동선수가 아니에요. 60대 이후에도 체력과 정신력만 받쳐준다면 집필을 계속 할 수 있어요. 이때껏 제가 책을 몇 권 내지도 않았는데, 사람들이 ‘최민석은 이러 이러한 글을 쓰는 작가가 아닌가’ 라고 평가한다고 해서, 그 평가에 기대 60대 이후까지 비슷한 작품을 쓰는 건 무리라고 생각해요. 물론, 좋은 평가에 고맙긴 하지만요.
길게 내다보신다는 생각이 드네요.
오해 없이 받아들여졌으면 좋겠어요. 사실대로만 말하자면, 두 번째로 쓴 단편 소설이 등단작이 됐어요. 사실상 제대로 습작을 못한 거죠. 그러니 등단 이후에 쓴 작품들에 제 부족한 점들이 그대로 담겨 있어요. 그래서, 저는 등단 이후부터 지금까지의 기간을 일종의 습작 기간이었다고 여겨요. 지금부터 시작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에라도 새로운 시도를 계속 해야 작가로서 지경이 넓어질 것 같아요. 향후 20년간 이런 저런 새로운 시도를 해서 지경을 넓히고 싶은 마음도 있고, 진짜 잘하는 게 무엇인지 발견하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이런 시도는 60대가 될 때까지는 계속 하고 싶어요. 그때 가서 잘하는 걸 모두 끌어 모으면 나름의 역작을 쓸 수 있지 않을까요? (웃음).
『쿨한 여자』, 『너의 눈에서 희망을 본다』, 『풍의 역사』모두 장르가 달랐다고 볼 수 있는데요. 말씀하신 ‘다양한 시도‘의 산물인 셈이네요.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준비되지 않은 초보였어요. 청탁을 받으면 마감에 쫓기면서 썼고, 쓰자마자 발표했어요. 여유하게 연구하고 구상해서 작품을 써본 적이 없어요. 항상 촉박했어요. 실전이 좋은 훈련이라고 여겼지만, 매번 방향성은 스스로 잡아야겠다고 생각 했어요. 그러다보니 단편보다는 장편에 방점을 둬야겠다고 느끼게 되더라고요. 그럼, 단편을 통해서 새로운 시도를 맘껏 해보고 장편을 쓰면서 그걸 활용해보자, 이렇게 여겼죠. 그런데 막상 장편을 쓰다보면 새로운 시도를 막 하고 싶은 거예요. 결국 모든 가능성을 다 열어뒀어요. 소설가로 산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내 스타일은 이거야, 독자들이 기대하는 게 이런 거야’라는 생각에 맞춰서 스타일을 고집할 때가 아니라고 여겨요. 아직도 공부해야 되고 계속 새로운 시도를 해야 돼요.
‘소설가로서 이런 발언을 하려면 조금 용기가 필요했을 것 같다’고 생각되는 지점들이 있었어요.
첫 번째는 뭔가요?
“소설가가 되기 전까지 읽은 소설은 총 두권”이라는 고백입니다. 굳이 말하고 싶지 않을 수도 있고, 많이 읽은 척 하고 싶을 수도 있잖아요?
눈치가 없어서 그런 거예요(웃음).
(웃음) “가진 서적 중에 완독에 성공한 책은 5%도 되지 않”는다는 말은 어떤가요?
그건 지나치게 솔직해서 그런 거고요(웃음).
근사한 집을 지으면 “최소한의 서재만 유지하며 살 것”이고 “서재는 작고, 부엌은 크게” 짓겠다고도 하셨는데요.
제가 자취를 오래 해보니까 부엌은 크면 클수록 좋더라고요. 여행을 다니고 인간의 경험이 쌓일수록 식문화에 대한 지경이 넓어지잖아요. 음식에 대한 정서는 기억에 의한 거니까. 고향 음식, 엄마 밥을 그리워하는 것도 정서 때문에 그런 게 크잖아요. 『베를린 일기』를 예로 들어서 이야기하자면, 독일에서 석 달 동안 우울하게 지낼 때 먹었던 따뜻한 수프가 있어요. 저에게 그건 그냥 수프가 아니라 그때의 생활까지 소환시키는 음식인 거죠. 이런 경험들이 쌓이면 점점 먹고 싶은 음식 종류가 다양해져요. 그런데 요리 마다 조리 기구가 다르잖아요. 게다가 소스랑 기름도 다르고. 결국, 확장된 취향에 응하려면 부엌도 커져야겠더라고요.
서재는요?
서재가 작아도 책이라는 건 어차피 머릿속에 들어가는 거잖아요. 잊어버리는 건 결국 내가 못 써먹는 거거든요. 그리고 요즘은 인터넷으로 기본적인 정보는 찾을 수 있어요. 필요한 건 고급정보죠. 그러니까 두꺼운 책, 깊이 있고 훌륭한 책, 읽었지만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없는 것들, 예컨대 백과사전 류의 책들을 모아두는 공간만 있으면 되죠. 래퍼런스용으로 언젠가 글을 쓸 때 필요한 것들을 보관하는 거예요. 그리고 평생에 감동의 여진이 남아있는 작품이라면 버리지 못하죠. 그런 것만 추리면 서재가 그렇게 클 필요가 없어요.
작가, 자학과 자만 사이를 오가는 존재
‘그래도 내가 작가인데, 웬만한 규모의 서재는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은 해본 적 없으세요?
혼자 살 때 책으로 집을 다 채워 넣은 적이 있어요. 지금 집의 거실에 책을 배치하기도 했었는데요. 결국은 책 먼지가 많아서 알러지 때문에 콧물만 나고, 자꾸 기침 나고, 1년 내내 감기 안 떨어지고, 책벌레 생기고(웃음). 시간 지나니까 ‘내가 저걸 다 읽을 것도 아닌데... 다 허영이다’ 싶더라고요. 결국은 생활의 핵심만 남기게 되더라고요. 결과적으론 소장하던 책의 대부분을 기부하고, 팔고, 버렸어요. 그래도 남은 건 집에서 제일 작은 방에 다 넣어놨어요. 이제 책이 중심이 아니에요. 생활의 중심에는 아이의 미끄럼틀이 있죠(웃음).
“한 명의 평범한 문필업 종사자에 지나지 않는 사람 역시 재능이 조금씩 증발되는 운명을 거부할 수 없다”고 쓰셨습니다. 소진된다는 불안감이나 두려움이 들 때도 있으세요?
이미 새로운 이야기가 잘 안 나오는 시기예요. 짧은 글 한편이라도 쓰는 게 너무 어려워요. 그래서 불안감을 느끼는 시기는 이미 지났어요. 쓰기 어려운 게 현실이에요. 새로운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보는 것도, 결국은 ‘영감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겸허한 자세로 하고 있는 거예요. 글은 쓰면 쓸수록 더 어려워지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내 기대치는 자꾸 올라가니까요. 그리고 독자들도 새로운 작품이 나오면 발전된 모습을 원하지 퇴보된 모습을 원하지는 않을 거잖아요. 저 역시도 그렇고요. 그래서 쓰면 쓸수록 더 어려워지고, 불안해지는 것 같아요.
앞서 저희가 이야기했던 것처럼, 작가님은 계속 색다른 시도를 하시잖아요. 그래서 더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시는 것 아닐까요?
역으로 얻는 에너지도 있어요. 물론, 새로운 걸 배울 때 소진되는 에너지는 있죠. 훈련할 때 흘리는 땀처럼 말이에요. 그런데 운동선수가 훈련할 때 땀을 흘리지만 결과적으로는 근육을 얻잖아요. 새로운 걸 하면, 그걸 연구하고 파악하는 데 훈련 에너지는 들어가지만 그 세계의 정서와 흐름을 파악하게 돼요. 예컨대 스릴러나 로맨스 작품의 경향을 파악하게 되고 이야기 공식을 얻게 되는 거죠. 그게 결국은 저의 에너지로 쓰이는 거예요. 거기에서 매력적인 부분을 발견하면 또 새로운 자극을 받고, 그게 동력이 돼서 또 소설을 쓰는 거고요. 잘하는 것만 계속 하는 것도 상당히 좋은 일인데, 이것저것 하면서 얻는 에너지도 있어서 저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꽈배기의 맛』에 6년 전에 쓰신 유서가 있어요. “써야 할 것을 꾸준히 써냈던 글쟁이로 기억해주길 바란다”고 쓰셨는데요. 소설가 최민석이 ‘써야 할 것’은 어떤 이야기라고 생각하세요?
마감?(웃음)
마감이 닥친 글인가요(웃음)?
네, 급한 마감이 있는 글(웃음). 농담이고, 써야할 글이라는 건 내가 쓰고 싶은 글이에요. 누가 ‘너 이거 써라’라고 말하는지는 않으니까요. 저에게는 ‘스스로 쓰고 싶어서 정한 목표를 달성했는지’가 중요해요. 예컨대 제가 지금 쓰고 싶은 장편이 있잖아요. 저한테는 써야할 글인데요. 그걸 잘 써내면 매우 기뻐져요. 그게 작가로서 저의 가장 큰 기쁨이죠. 그걸 못 써내면 깊은 좌절감에 빠져 술에 취한 채 밤거리를 배회하고 있겠죠(웃음). ‘난 틀렸어, 이제 도저히 쓸 수 없어’ 이러면서(웃음).
그런 생각, 종종 하세요?
작가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자만과 자학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존재예요. 잘 써질 때에는 좋다 못해 자만하기도 하고, 안 써질 때는 의기소침하다 못해 자학하기도 해요. 그건 여러 번 경험하는 거죠.
자학의 순간 뒤에도 다시 쓸 수 있는 건, 자만의 순간이 오기 때문인가요? 어떻게 다시 글을 쓰세요?
마감이 있으니까...(웃음).
뒤에서 나를 밀어 주는 힘이네요(웃음).
그런 감상에 빠질 여유가 없습니다. 무조건 써야 돼요.
“써야 할 것을 꾸준히 써냈던 글쟁이로 기억해주길 바란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으세요?
6년 전에 쓴 거라, 제가 그 말을 썼다는 것도 기억을 못하고 있어요(웃음). 지금은 그냥 모든 마감에 감사하면서 쓸 뿐이에요. 나에게 청탁을 한 사람과 내 글을 읽은 사람들이 실망 안 하기를 바랄 뿐이에요. 한 편 한 편 쓰는 게 쉽지가 않아요.
꽈배기의 맛 멋 세트최민석 저 | 북스톤
읽던 자리 아무데서나 쿡쿡거리거나 빵 터지게 하는 그만의 유머가 이번에도 빛을 발한다. 1편 『꽈배기의 맛』에서 이제 막 발을 내딛는 작가의 열기와 다짐이 읽힌다면, 2편 『꽈배기의 멋』에서는 어느덧 등단 7년차를 맞은 작가로서의 일상이 묻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