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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석 “빈 구멍을 찾아서 채우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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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곳』이 막을 내렸다. 2013년 네이버 웹툰에 연재를 시작한 후, 햇수로 5년 만에 본 결말이다. ‘마침내’라는 수식어가 어색하지 않은 긴 여정은 6권의 단행본에 다시 담겼다. 까르푸 파업을 모티프로 탄생한 『송곳』은 한국 사회에서 노동자가 맞닥뜨리는 문제들, 노동 운동의 현실을 세밀하게 그려냈다. ‘노동 교과서’라 일컬어진 이유다. 이수인과 구고신, 두 명의 주인공을 통해 우리는 “사회적 책임이라는 것을 삶의 중심에 두고 사는 사람”의 이야기를 보았다. 늘 곁에 있었지만 주목 받지 못했던 이들. 최규석 작가는 그들의 뜨겁고도 외로운 순간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어떤 이들은 만화가 최규석의 시선이 줄곧 ‘낮은 곳’을 향해있었다고 말한다. 그의 작품에는 주류로 올라서지 못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시대의 변화를 따라잡지 못한 가족이 있고(『대한민국 원주민』), 시대의 부름에 응답하며 투신한 이들이 있다(『100℃』). 돈 때문에 꿈을 포기해야 하는 아이들이 있고(『울기엔 좀 애매한』), 돈 때문에 “욕망 앞에 선 가치의 초라함”을 느껴야 하는 청춘이 있다(『습지생태보고서』). 이 모든 이야기가 ‘빈 구멍을 찾아서 채우는’ 일이었다고, 작가 최규석은 말한다. 엄연히 존재함에도 포착되지 못했던 사람과 사건이 ‘여기 있다’고 말했을 뿐이라고. 『송곳』도 다르지 않을 터다.

 

 

최규석-셀렉-(2).jpg



저는 사람에게 실망하지 않습니다

 

연재가 끝난 후에 독자들 댓글은 보셨나요?


끝나고 나서는 안 본 것 같아요.

 

결말에 대한 반응이 어떨지, 궁금하지 않으셨어요?


오래 돼서 기억은 잘 안 나는데 ‘이렇게 끝이냐’ 이런 반응들도 있었던 것 같고, 잘 봤다는 반응도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 댓글도 있더라고요. 이수인은 이렇다 할 성과를 얻지 못한 것 아니냐는.


성과를 얻기는 했죠. 어쨌든 해고는 막았으니까요.

 

결국 이수인은 다른 부서로 발령이 나잖아요. 그런 점에서 ‘남 좋은 일만 한 것 아니냐’라는 식의 안타까움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 정도면 이수인 입장에서는 초기에 목표한 건 나름대로 달성을 한 거죠.

 

처음부터 본인을 위해서 시작한 일은 아니라서 그런가요?


본인을 위해서 시작한 부분도 있죠. 직원들 다 보는 데서 갸스통한테 헤드락도 당했는데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게 없잖아요. 직원을 자를 수는 없고, 버티고 있으면 계속 헤드락을 당해야 되고, 그만두고 나가면 창피하고... 자존심을 지키려면 반격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죠. 그 반격이 어느 정도 효과를 거둔 거고요. 이수인 입장에서 돈은 조금 손해를 봤겠죠(웃음). 월급이 많이 깎여서 나왔을 테니까요. 그렇지만 심리적인 면에서는 손해 본 게 크지는 않을 것 같아요.

 

연재 기간이 굉장히 길었어요. 많이 힘드셨을 것 같은데요. 댓글을 보면서 힘을 얻기도 하셨나요?


저는 댓글을 잘 안 믿어요(웃음). 인터넷 상에서는 사람들이 거짓말을 하기도 하잖아요.

 

그렇죠. 또 다른 내가 될 수도 있고요.


없는 말을 만들어내도 아무런 문제가 안 생기잖아요. 그래서 기분 좋은 댓글을 봐도 그냥 ‘베댓(베스트 댓글)이 되려고 드라마틱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깔려 있는데요. 그나마 의도가 조금 덜 보이고 왠지 진심인 것 같다고 느껴지는 것들 중에는, 부모님이 노조 활동을 하시는데 뭘 하시는지 잘 몰랐다가 조금 이해하게 됐다는 댓글이 있었어요. 사실 그게 이 작품의 목표에 제일 가까웠던 것 같아요. 이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이고 어떻게 살고 있는지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 댓글들이 힘이 되죠.

 

칭찬을 받아도 ‘그게 사실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하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성격의 영향이 있는 건가요?


그런 것도 있는데요.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좋은 칭찬이면 바로 믿는데, 제 작품 같은 경우는 양이 적죠(웃음). 성격이 담담하기도 해요. 좋게 말하면 담담한 거고, 건조해요. 원래 그랬던 것 같지는 않은데, 제가 데뷔했던 때가 만화판이 망해가던 시기잖아요. 굉장히 척박한 시기였죠. 처음 상 받았을 때는 굉장히 기뻤고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는데, 만화판이 망해가던 시기이다 보니까 상 받은 게 인생의 전환점으로 작동하지 않았어요. 상만 받았지 연재처는 없었던 거죠. 그런 경험들을 몇 번 반복하다 보니까, 기쁜 일이 있어도 기뻐하는 게 허무하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웃음). 기뻐하면 그만큼 기대감을 갖게 되니까, 그걸 스스로 제어했던 면이 있는 것 같아요. 제가 조금 냉랭한 인간이다 보니까 그런 것도 있고요. 제가 볼 때 좋은 장면, 스스로에게 인정받은 장면이 나왔을 때가 제일 좋죠(웃음).

 

『송곳』에서는 어떤 장면이 그랬나요?


지금 생각나는 건... 3부 엔딩인 것 같아요. 이수인이 “저는 사람에게 실망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하는. 군대 회상 장면부터 시작되는 그 씬을 좋아해요.

 

회상 장면에서 군대 동기 ‘윤수’가 등장하잖아요. 빗속에서 한 시간 동안 동기들을 깨우는데, 이수인은 알면서도 늦게 일어나요. 그 경험을 통해서 배운 걸까요?


그 친구의 태도에서 배운 바도 있을 거고요. 본인도 누군가를 실망시킨 인간이었다는 걸 알고 있는 거겠죠. 자신도 어떤 순간에는 혼자 손해 보기 싫어서 일부러 게으름을 부린 사람이었잖아요. 모든 인간들이 지금의 자신과 똑같은 시기를 살고 있는 건 아니고, 어떤 사람은 자신이 텐트 속에서 자고 있었던 그 때를 살고 있을 수도 있죠. 이수인도 나중에는 그런 입장에 서 있을 수도 있는 거고요.

 

작가님의 작품에는 항상 블랙유머가 있어요. 사회가 모순적인 곳이라는 걸 잘 알고 계신 것 같은데요.『송곳』이나 『100℃』같은 작품을 보면 희망을 믿으시는 것 같기도 해요.


모르겠어요. 캐릭터가 희망을 아직 안 버리고 있는 사람이라서 그런 것도 있는데요. 저도 그리면서 ‘이 사람들은 왜 이런 상황에서 계속 희망을 안 버리지?’ 하는 생각을 해요. 제가 그리는 캐릭터가 저와 많이 다르다는 생각도 하고요. 제가 동경하는 사람들일 수도 있죠. 저는 그렇게 희망적인 스타일은 아니에요.

 

단적으로 여쭤보자면, 작가님은 염세주의자인지 이상주의자인지 궁금해요.


이상주의자가 염세주의자가 될 가능성이 높죠. 이상이 없는 사람이 염세주의를 택할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현실이 괜찮다고 생각하니까, 행복하겠죠. 저는 염세적인 면도 굉장히 큰데 일상적으로는 굉장히 밝은 사람이에요. 긍정적인 스타일이고. 보통 사회운동 하는 사람들을 봐도 표면적으로 밝은 사람들이 많아요. 우울증, 공황장애를 앓고 있는 경우도 있기는 한데, 천성이 밝은 사람들이 많아요. 그렇기 때문에 힘든 일을 나서서 할 수 있는 거죠. 그만한 에너지가 없는 사람들은 애초에 시작도 안 하겠죠. 운동하는 사람들은 타고난 에너지가 큰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만나보면 다 엄청 웃겨요. 끝없이 개그를 치는 사람들이 많죠.

 

다들 조금씩은 나쁜 놈 아닌가요?


『송곳』을 보면서 스스로가 작아지는 느낌이 들기도 했어요.


그러면 안 되는데(웃음).

 

‘이렇게 타인을 위해 투신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싶으면서 반성하게 되는 거죠. 작가님의 경우는 어떠셨어요? 취재 과정에서 이런 분들을 가까이에서 보셨는데,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셨나요?


나는 별로 훌륭하지 않구나, 싶었죠(웃음).

 

그게 제가 느꼈던 감정이에요(웃음).


그렇지만 저에 대한 가치 판단을 하는 데 크게 영향을 미치지는 않아요. 훌륭하지 않은 채로 사는 거죠, 뭐(웃음). 하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이라는 게 있으니까요. 제가 조직 활동을 할 수는 없지만 세상에 조금 더 알리는 역할을 할 수는 있잖아요. 독자들이 작품을 보면서 ‘나는 왜 이렇게 살지 못하는가’라고 느끼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걸 염두 해두고 한 작업도 아니고요. 이런 일들에 대해서 알고 있고,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들의 활동에 동의하는 면이 있다면, 활동을 지지해 주면 되는 거죠.

 

악플만 안 달아도 좋지 않을까 싶어요. 노조 활동과 관련해서 기사가 나오면 ‘그냥 밥그릇 싸움일 뿐이다, 귀족 노조 아니냐’ 이런 댓글들이 달리잖아요.


아뇨, 달아도 돼요. 그 사람들의 인식에서 그러하다면 당연히 달 수 있죠. 우리는 너희가 싫어, 라고 말하는 건데요.

 

욕을 하더라도 알고 욕하라는 건가요?


네. 당신들이 생각하는 나쁜 놈이 ‘그렇게’ 나쁜 놈이 아니고 ‘이렇게’ 나쁜 놈이라는 걸 제대로 알려주는 거죠(웃음). 나쁜 놈이 아니라고까지 강요할 수는 없는 것이고, ‘나쁜 놈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아닌 면도 많이 있고, 나쁜 면도 조금 있죠, 그건 사람이 다 그렇잖아요? 어느 한 면이 나쁘지 않은 인간이 어디 있습니까, 다들 조금씩은 나쁜 놈이지’라고 말하는 거예요. 그런 인간들끼리 모여 사는 게 세상인데, 어쨌든 침해되지 않을 선이라는 게 분명히 존재하잖아요. 나쁜 놈들이 모여 산다고 해서 아무나 죽이면 안 된다는 데에는 다 동의하는 것처럼요. 마찬가지로 ‘저는 여기까지도 침해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데, 여기에 동의할 수 있는 거 아닙니까?’라고 물어보는 거예요. 그리고 자세히 보여주는 거고요. 어쨌든 사람들이 접하는 건 제일 마지막 결과물이잖아요.

 

노동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거리에 나온 후에야 알게 되죠.


그 사람들이 길거리에 나왔을 때, 경찰과 싸움이 붙고 회사를 점거하는 상황이 됐을 때 보기 시작하잖아요. 그 전에 어떻게 해서 여기까지 왔는지는 보지 않고요. 문학이라는 것이 살인을 저지른 사람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고 해서 용서를 바라는 건 아니잖아요. 사람을 죽인 것도 맞고 나쁜 짓을 한 것도 맞지만 어떻게 하다가 사람을 죽이는 인간이 되었는지, 왜 사람을 죽이게 되었는지 보여주는 거죠. 보여주고 이해시키잖아요. 저도 그런 거죠. 영웅이든 악당이든 이해시키는 게 문학의 좋은 기능이라고 생각해요.

 

연재를 마치고 허탈한 느낌은 없었나요?


별로 없어요. 늙어서 그런 건지, 별로 안 생기더라고요. 어릴 때는 그런 게 심했거든요. 한 작품 끝내고 나면 잠도 잘 안 왔어요. 마지막 마감 앞두고 며칠 동안 잠을 못 잔 상황이라 바로 뻗어야 되는데, 그렇게 되지 않고 각성 상태로 있는 거예요.

 

왜 그러셨던 거예요?


연애 하다가 헤어진 거랑 비슷한 거겠죠?

 

자꾸 곱씹게 되는 건가요?


그런 것도 있죠. 거의 모든 장면이 다 기억나고, 잘못했던 장면도 기억나고,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거였는데’ 싶기도 하고요. 모르겠어요. 나름 힘든 과정이다 보니까, 몸도 그렇지만 정신도 익숙하지 않은 거죠. 그러니까 특별한 경험이 되는 거고요. 그런데 나이가 들고 보니까 이미 해본 거잖아요(웃음). 힘든 경험도 한두 번 할 때나 힘든 거죠. 물론 여러 번 한다고 해서 힘들지 않은 건 아니지만, 몸이 그 루틴을 기억하고 있으니까요. ‘끝났으니까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야지’라는 생각을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감각이 둔해진 거죠. 원래 둔한데(웃음).

 

웹툰 연재는 8월에 끝났고, 단행본은 11월에 4~6권이 출간됐는데요. 작품을 웹에서 책으로 옮겨 오는 데 별도의 과정이 필요한가요?


그렇게 많이는 필요 없어요. 저 같은 경우는 말 칸을 새로 그려요. 웹툰은 글자가 조금 크기 때문에 그림에 비해서 말 칸이 커지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칸 밖으로 말 칸을 꺼내게 되죠. 단행본은 칸 안으로 말 칸이 들어가니까 새로 다 그려야 돼요. 그래서 있던 그림을 말 칸으로 가리는 과정이 필요합니다(웃음).

 

작업량이 은근히 많겠는데요? 한 컷 한 컷 다 보면서 수정해야 되잖아요.


네, 뚝딱 할 수 있는 작업은 아니죠. 긴 단순노동이죠. 아까운 부분을 가려야 되는 고통이 있고 ‘어차피 가려질 거 왜 그렸나’ 싶기도 하고(웃음). 아깝죠. 그런데 이것도 성격 문제예요. 윤태호 작가님 같은 경우는 애초에 그려져 있는 말 칸을 그대로 쓰시거든요. 그런데 웹툰으로 볼 때는 꽉 차 보이던 말 칸이 단행본으로 보면 텅텅 비어 있으니까, 저는 그걸 신경 쓰는 편이라 사서 고생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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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이 길어지면 지겨워하는 단계가 오죠


연재 중에 드라마가 제작되어 방영됐습니다. 당시 제작진과 시놉시스를 공유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 이미 결말은 정해 놓으셨던 건가요?


사건의 흐름 정도는 다 정해져 있었죠.

 

‘드라마와는 전혀 다른 결말을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감은 없으셨어요?


드라마로 만드는 결정을 내릴 때는 그 정도 부담감이 없었어요. 그런데 사람이 지옥 맛을 봐야 지옥인 줄 아는 거죠(웃음).

 

뒤늦게 고민이 되셨나요(웃음)?


네. 나중에 ‘이러면 안 되는 거였구나’ 싶었죠. 처음에 결정할 때는 조금 고민이 됐어요. 그래서 친한 친구한테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봤더니 ‘<왕좌의 게임> 원작 소설도 아직 완결 안 났어’ 그러는 거예요.  드라마가 앞서가기 시작했다고요. 그래서 ‘아, 그래? 별 거 아닌 거구나’ 했는데, 별 거 아닌 게 아니더라고요(웃음). 뒤에는 부담이 됐죠.

 

하지만 처음에 생각했던 대로 가자고 생각하셨어요?


일단은 독자들이 신선도를 잃은 거죠. 드라마가 끝나고 나서 독자들이 조금 많이 줄었고요.

 

그런 영향이 있었나요?


네, 드라마가 끝나니까 연재가 끝난 줄 아는 분들도 많았어요. 친구들도 끝난 줄 착각하고 ‘아, 그건 드라마였지’ 하는 식이었으니까요. 광팬만 있는 건 아니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독자 수가 조금 줄은 부분도 있는데요. 어차피 뒷부분은 너무 우울해서, 많은 사람에게 보여주기도 조금 미안했어요(웃음). 후반부에 독자 분들이 조금 떨어져 나갈 거라는 예상도 했었고요. 왜냐하면 한 캐릭터에게 감정 이입을 하게끔 하는 부분은 줄어들고 속도도 조금 빨라지거든요. 그리고 파업 시작할 때 이수인이 송 부장한테 욕하면서, 그때 이수인의 시각으로 따라오던 사람들은 많이 빠져나갔을 거거든요. 더 이상 이수인을 자신과 동일시해서 따라갈 수 없는 상황이 된 거죠. 동의할 수 없는 행동을 했으니까요. 그 지점부터는 건조하게 사건 중심으로 짧게짧게 배치했어요.

 

독자들이 떨어져 나갈 걸 알면서도 그런 전개를 택하신 이유가 있나요?


노동 문제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회 문제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패턴을 만화에서 재현해 보고 싶은 생각이 있었어요. 처음에는 관심을 갖다가 싸움이 길어지면 디테일은 더 이상 보지 않고 ‘아직도 저러고 있냐’고 하고, 그 다음에는 지겨워하는 단계가 오거든요. 나중에는 미워하게 되기도 하죠. ‘뭘 저렇게까지 징징대냐, 그만 좀 하지’ 그런 말을 하게 되는 거예요. 만화를 보면서도 그런 패턴을 똑같이 느껴보면 재밌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스스로 무덤을 파는 방법이었죠. 알면서도 그냥 해봤어요(웃음). 원래의 목표는 사람들이 이수인을 보면서 ‘그만 좀 해라’라는 소리를 할 정도로 만드는 거였는데요. 그렇게까지 하기는 캐릭터한테 미안하더라고요.

 

뒤로 갈수록 노조 안에서의 갈등, 회사에 남았던 이들과 노조 조합원 사이의 갈등이 세세하고 비중 있게 다뤄지잖아요. 독자 입장에서는 ‘재미는 덜하다’고 느꼈을 수 있어요. 작가님은 꼭 보여주고 싶으셨던 모습인 것 같고, 양측의 입장을 균형감 있게 전달하려고 애쓰신 것 같아요.


그냥 자연스러운 전개라고 봐요.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고요. 저는 끝까지 한 캐릭터를 따라가게 하는 종류의 이야기는 별로 안 좋아하는 것 같아요. 어느 순간부터는 ‘이 사람 뭐하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고, 시선이 다른 데로 돌아가기도 하고, 그런 방식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노동 운동을 하는 사람에 대해서도 ‘당신이 생각하는 것과 다른 모습이 있어요’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처럼, 반대쪽 입장에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저 사람들이 그냥 회사의 개라서 저렇게 하는 것만은 아니다’라는 걸 말하고 싶었어요. 저는 그게 궁금했거든요. ‘왜 자기 회사도 아닌데 저렇게까지 할까, 기계적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감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걸까’ 아마 그런 종류의 사람들 중에는 송 부장처럼 중간에 위치했던 사람들이 많겠죠. 그런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작가로서의 욕심이기도 한가요? 각각의 캐릭터를 이해하려는.


그렇죠. 작가는 어떤 캐릭터를 그리고 어떤 행동을 하게 만드는 건데 ‘이 아이는 그냥 회사에 충성하게 타고났나 보다’라고 하면 그 캐릭터에 대한 이해가 없는 거잖아요. ‘원래 인간들이 이렇게 나쁜 거지’라고만 이해하고 넘어가면 작가로서도 불만족스럽죠. 정말 독특한 몇몇 종류의 인간들을 빼놓고는, 대부분은 보통 사람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하거든요. 행위 자체는 엄청 벗어나 보이지만, 그 행위를 하기까지의 과정은 보통 사람들도 선택했을 법한 일들이 쌓인 거라고 봐요. 그러면 도대체 어떤 선택들이 있었을까, 그런 걸 추적해 보고 싶은 거죠.


빈 구멍을 찾아서 채운다


푸르미 투쟁의 후반부에는 구고신이 개입하지 않아요. 그때부터 이수인이 싸우는 방식은 구고신과 달라진 걸까요?


두 사람이 헤어지게 된 과정을 보면, 이수인이 구고신보다 조금 더 강경한 입장이었기 때문에 헤어진 거죠. 구고신은 더 기다리라는 거였고, 이수인은 지금 파업을 할 수밖에 없다고 했잖아요. 그렇게 헤어지고 나서는 오히려 이수인이 온건파가 됐죠. 구고신과 계속 같이 있었다면 아직 파업을 안 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을 텐데, 그게 더 성공적일지 아닐지는 알 수 없죠.

 

자신만의 방식으로 싸운 것 같기는 하네요.


‘될 대로 되라’ 하고 뛰쳐나갔는데, 나가고 보니까 자기보다 더 ‘될 대로 되라’라는 사람들을 만나서 정신을 차린 거라고 해야 되나요(웃음). 이수인이 구고신과 헤어질 때는, 이미 구고신 자체가 심리적으로 많이 흔들리고 있던 상황이었잖아요. 그래서 이수인이 구고신에 대한 신뢰를 많이 잃었던 거고요. 그렇다고 해서 독자적으로 뭔가를 할 수 있는 상황은 또 아니었죠. 독자 입장에서는 누가 옳았고 누가 틀렸는지 중요할 수 있는데, 작가는 ‘이런 순간에 이 인간들은 왜 이렇게 가는가’를 중심으로 사고하게 되죠. 이수인은 옳은가 그른가, 합법이냐 불법이냐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인간이고, 작가도 이수인을 생각할 때는 그걸 중요하게 생각하는데요. 결국에는 ‘이 순간에 서로 다른 성격을 가진 인간들이 각자 어떻게 행동하는가’를  중요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죠. 작가가 원래 그런 직업 아닙니까(웃음).

 

현실의 불편한 점들에 주목하실 때가 많은 것 같아요. 이런 이야기를 계속 하시는 이유가 있나요?


취향이 그렇게 발달한 부분이 있고, 반골 정서가 같이 있는 것이기도 한데요. 취향은, 제가 굉장히 체제 순응적인 편이라서 그렇게 발달한 것 같아요. 어린 사람들이 즐기는 문화에 대한 폄하는 항상 존재하잖아요. 저희 때는 일본 문화가 개방이 안 됐었기 때문에 왜색에 젖어있다는 비난도 있었고, 아이들이 즐기는 문화는 폭력적이고, 가볍고, 어떤 의식도 없는 쓰레기 문화라는 식으로 주입을 했었어요. 보통의 애들이라면 그냥 무시할 텐데, 저는 굉장히 범생이 스타일이었기 때문에 그대로 받아들였어요. ‘선생님 말씀이 옳다, 내가 나쁜 쓰레기 문화에 젖어있었구나’ 하고요. 실제로 제 작품들은, 굉장히 반골 정서를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한국 사회가 요구하는 작품에 가까운 거예요. 만화라고 해서 환상적이고 가벼운 것만 다루는 게 아니라 현실 비판적이고, 삶의 철학적 의미를 담으려고 애쓰는 거죠.

 

기존의 대중문화와는 다른 걸 해보고 싶으셨던 거예요?


그런 꿈을 꾸게 만든 계기가 된 거죠. 사회 문제에 대한 반골 정서보다는, 내가 몸담고 있고 내가 하고 싶어 하는 장르에 대한 반골 정서라고 할까요. 메인 스트림이 놓치고 있는 지점들, 그 구멍을 제가 채우고 확인 받고 싶은 욕망이 있는 거죠.

 

어떤 확인을 받고 싶으신 건가요?


‘여기가 비어있다는 걸 당신들은 모르지 않았습니까?’라는 거죠. ‘여기 이런 종류의 재미가 존재한다, 그런데 당신들은 마치 없는 것처럼 이야기하지 않느냐, 내가 증명해 보이겠다’라는 반골 정신인 거죠. 제일 잘 나가는 작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으면 메인 스트림이 될 텐데, 그런 마음이 별로 안 드는 거죠. 저기 비어 있는 걸 내가 채워야겠다, 라는 생각이 먼저 드는 거예요. 또 사회 문제에 있어서는, 제가 진보적인 정치 성향을 가진 사람이라서 그게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기는 했을 텐데... 작품을 보면 그런가요(웃음)? 『습지생태보고서』에는 그런 부분이 없고 『대한민국 원주민』에도 딱히 없고요. 『울기엔 좀 애매한』은 힘들게 사는 고등학생들 이야기인데, 그건 정치적인 성향을 떠나서 다들 관심을 가질 만한 문제잖아요.

 

『대한민국 원주민』의 경우는, 사회에서 주류로 인정받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아니잖아요. 작가님께서 항상 관심을 가지시는 건 어느 한 구석에 있는 것들, 사회의 모순이 낳은 사람과 사건들인 것 같아요.


그렇죠, 빈 구멍. 빈 구멍을 찾아서 채운다는 게 제일 일관된 것 같네요. 『대한민국 원주민』같은 경우는 잘 안 다루는 이야기죠. 도시로 이주한 전형적인 농촌 사람들이 아닌 거죠. 시대의 상황이 조금 어긋나 있는 사람들이에요. 그러다 보니까 거대 서사에서 주목하지 않죠. 의미가 없으니까. 그런데 저는 봤고, 그걸 ‘있다’고 말한 거예요.

 

‘당신들이 잘 보지 않았지만, 분명히 있다’는 건가요?


‘이런 게 있습니다’라고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아요. 『송곳』도 그렇죠. 어쨌든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노동자로 살아가야 되는 사람들의 비율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잖아요. 그 사람들의 권익을 위한 제도가 있고 그걸 위한 활동이 존재하고요. 그렇게 크게 존재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한국의 노조 가입률이 10%란 말이에요. 전체 인구로 보면 굉장히 큰 덩어리거든요. 그런데 대중문화에서는 안 다루죠. 꼭 이걸 주제로 다루자는 이야기는 아니고요. 당연한 세상의 그림으로써 존재할 부분이라는 거죠. 그런데 그게 빠져 있으니까, 대중문화 전체로 볼 때 균형이 안 맞는다는 거죠.

 

균형을 맞추시려는 거군요.


그렇죠. 제가 이걸로 트렌디한 작품을 만들 수는 없는 사람인데, 이해시켜줄 수 있는 능력은 어느 정도 있으니까요. 이런 종류의 사건이나 캐릭터를 사람들한테 어느 정도 이해시켜 놓으면 다른 창작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요소 중에 하나로 자리 잡을 수 있게 되겠죠. 저는 대중문화를 보면서 접하는 세계와 실제 존재하는 세계가 어느 정도는 균형이 맞는 게 좋다고 봐요. 문화를 통해서 대리 경험을 하는 거니까요. 그런 점에서 실제로는 큰 비중을 차지하지만 대중문화에서는 아예 비어 있는 부분이니까, 이걸 메워야 된다고 생각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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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질식시키지 않기를 바랍니다


다음 작품도 웹툰으로 연재하실 계획인가요?


장편을 하면 어쨌든 연재를 할 수밖에 없죠. 지금 연재를 한다면 사실상 웹툰이 아니면 없고요. 만화 잡지가 많이 죽었고, 그래서 독자가 거의 없잖아요. 잡지도 거의 다 웹으로 옮겨갔고, 지금 오프라인으로 나오는 잡지가 거의 없을 거예요. 그러니까 장편을 한다면 웹에 연재를 해야죠.

 

차기작은 장편이 될 것 같으세요?


『송곳』만큼은 아니고요. 웬만하면 앞으로는 1년 연재할 정도의 분량으로 맞출 생각이에요.

 

준비 중이신 작품에는 판타지, 액션 요소가 가미될 거라고 들었는데요.


연상호 감독이 시나리오를 써요. 그 친구 스타일이 원래 환상적인 요소가 많이 들어가잖아요. 배경은 현실 기반인데, 거기에 판타지 요소가 조금 섞여 있는 작품이에요.

 

왜 이번에는 스토리를 직접 쓰지 않으세요?


시나리오를 쓰기 싫어가지고요(웃음). 그림 작가를 한 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송곳』만드시면서 너무 지치신 거 아니에요?


그런 것도 있고요. 한계가 많이 주어진 상황에서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어요. 『100℃』를 할 때도 그랬고요. 『습지생태보고서』도 짧고 웃겨야 된다는 한계가 있었죠. 『송곳』의 경우에도, 실제 취재한 이야기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 움직이다 보니까, 그게 나름의 울타리가 됐어요. 현실에서 실제로 이렇게 움직이는 인간이 있는 거니까, 제가 ‘이 인물은 이렇게 움직여야지’ 하는 게 아니라 ‘이 인간은 왜 이렇게 움직였을까’를 역추적 해가는 거예요. 그런 과정에서 발견하게 되는 스스로의 재능이 있고, 그게 재밌죠. 다음 작품에서는 다른 사람의 스토리 자체를 해석하는 재미, 내 머릿속에서 나오지 않은 것을 새로 상상하는 재미를 느껴보고 싶어요. 그런데 전혀 모르는 사람과 작업하기는 조금 두려움이 있고, 연상호 감독은 어렸을 때부터 계속 아이디어를 공유해 오던 사이니까요. 남의 작품인 듯 내 작품인 느낌이 나오지 않을까 싶어요.

 

『송곳』안에서 ‘독자들이 오래 기억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시는 장면이 있나요?


유명한 장면들 외에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중요한 장면들이 있어요. 그런 걸 찾아 읽어 보시면 좋겠어요. 가령 소진이가 처음 구고신을 만났을 때 속으로 반발을 하죠. “이렇게 살아보지도 않았으면서”라고. 물론 나중에 변하기는 하는데요. 구고신 같은 인간을 처음 만나는 일반인의 시선이 그 짧은 말에 담겨 있다고 생각해요. 자세히 찾아보시면 그런 걸 발견하는 재미들이 여기저기 많이 있어요(웃음). 6권의 마지막 부분에 등장하는 장면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하지만 내 선택이 ‘나’를 지옥으로 만들게 놔둬서는 안 되잖아요”라고 하잖아요.

 

푸르미의 한 지점에서 근무하는 캐셔의 이야기죠? 유일한 조합원으로 로커룸에 남겨지는데, 혼자 청소를 하면서 그 시간을 버텨내잖아요.


네, 그 사람이 하는 말이에요. 사회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취하게 됐을 때, 그동안은 문제가 아니었던 것들이 다 문제가 되는 상황이 생겨요. 새로운 관점을 가졌다는 것은 그 사람이 발전했다는 이야기인데, 개인의 관점에서 볼 때는 그 발전이 손해가 돼버리는 거죠. 인생이 갑자기 불행해지는 거고, 지금까지 잘 지냈던 친구가 나쁜 놈이 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 부분을 굉장히 조심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지금까지 괜찮았다면 사실 지금도 괜찮은 거예요. 내가 가진 새로운 관점을 통해서 이 괜찮음을 더 괜찮은 걸로 만들어야 되는 거죠. 내가 보지 못했던 사회 곳곳의 모순, 권리 침해 같은 문제를 더 낫게 만드는 도구가 돼야 되고요. 그렇지 않으면 스스로를 질식시키거나 거기에 잡아먹히는 상황에 처하게 될 수 있어요.

 

『송곳』의 독자들이 같은 경험을 할 수도 있겠네요.


네, 이 책을 읽고 그런 상황에 처하게 될 사람이 있을지도 몰라요. ‘지금까지 이런 게 있는 줄 몰랐어요, 관심을 갖기 시작했더니 괴로워요’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거예요. 괴로우니까 보지 말라는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고요. 스스로를 괴롭히는 방식으로 새로운 관점을 받아들이는 건 당신한테도 안 좋고 세상에도 썩 좋지는 않다는 거예요. 아무튼 사람들이 행복해졌으면 좋겠어요(웃음). 제 작품 때문에 불행해졌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슬플 것 같아요.


 

 

송곳 1-6 세트 최규석 글그림 | 창비
평범한 직장인 이수인과 냉철한 노동 운동가 구고신이 대형 마트에서 벌어지는 부당해고에 맞서 노동조합을 조직하고 파업까지 이끌어가는 과정을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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