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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경실 “사람은 믿을 대상이 아니라, 사랑해줄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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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가까이 작가로 살아오면서 처음으로 산문집을 썼다. 반백 살을 한참 넘기고 나서야 어른이 되었다는 걸 알았다. 그녀는 말한다. “이제 겨우 알 것 같다. 삶과 죽음, 가난과 배부름, 행복과 통곡에 대해서” 그 고백의 끝에서 에세이 『사는 데 꼭 필요한 만큼의 힘』은 시작됐다. 책을 쓰는 동안 지나온 삶을 돌아보게 됐고, 자신을 관통했던 순간과 사람을 떠올렸다. 흔들리고 무너졌던 기억도 있었다. 그러나 삶을 지탱해주는 무언가가 늘 곁에 있었다. 태양과 별과 달이 그러했고, 책이 그러했다. ‘꼭 필요한 만큼의 힘’으로 생을 견디는 사람들도 함께였다. 덕분에 작가는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살아낼 수 있었다. “가진 것은 별로 없지만 부족한 것이 하나도 없는 삶”을 살았다는 깨달음이 찾아왔다.

 

 

버스 정류장 나무가 말해 주고 있다.

날 보세요, 춥다고 울고만 있지는 않았어요.

사무실 창 너머 새들이 알려 주고 있다.

날 보세요. 힘든 시간이었지만 날개를 접지 않았어요.
아이들도 전해 주고 있다.
우리를 보세요. 추운 겨울에도 이만큼 키가 컸어요. 매서운 바람에도 한 살 더 먹었어요. 어른들이 힘들다고 한숨 쉴 때에도 새 이가 났어요!
그래서 우리는 다시 일어선다.
(『사는 데 꼭 필요한 만큼의 힘』 25쪽)

 

 

노경실 작가는 1982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동화 『누나의 까만 십자가』로 등단했다. 이후 『상계동 아이들』, 『복실이네 가족사진』, 『할아버지는 여든 아기』, 『어린이 인문학 여행』등 동화와 청소년을 위한 소설 창작에 애써왔다. “힘들었던 시절 내가 찾은 희망의 빛은 책이었다”고 말하는 작가는 누구보다 왕성한 작품 활동을 이어왔다. 직접 번역한 외서들까지 포함하면 지은 책이 삼백여 종에 이른다. 전국 도서관을 무대로 독서 강연을 이어가면서 ‘책 전도사’로 활동하는 이유도 다르지 않다. 책을 쓰고 이야기하는 것이 가장 큰 즐거움이자 소명이라 생각하는 까닭이다. 199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소설 「오목렌즈」가 당선되었고, 어른들을 위한 소설을 집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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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을 말하게 한 건 죽음이었어요


첫 번째 수필집입니다. 작가로 살아오신 세월을 생각하면, 늦은 감도 있어요.

 

그렇죠. 오랫동안 동화와 청소년 소설에 천착하느라 그랬는데, 이제는 소설도 쓰려고 해요. 시는 20대에 소설은 70대에 쓰는 거라는 말도 있잖아요. 시는 천재가 있어요. 랭보처럼. 그런데 소설은 웬만해서는 천재가 나오기 힘들어요. 깊은 인생의 맛을 다 봤을 때 나오는 거거든요. 물론 젊은 천재도 있지만요. 그래서 이제 저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은사이신 최인호 선생님께서도 일흔이 넘으면 동화를 쓰겠다고 하셨었어요. 사람들이 동화를 가볍게 보는 경향이 있는데, 저는 ‘우리 어르신 작가들이 동화를 쓸 수 있을까’ 싶어요. 동화 작가는 소설을 쓸 수 있어요. 그런데 소설가는 동화 쓰기 힘듭니다. 그런 아이러니가 있어요.

 

어디에서 비롯되는 아이러니일까요?


제 경우에 비춰보면, 동화는 결국 인생과 사람의 이야기거든요. 동화를 쓰면서 끊임없이 사람을 관찰해요. 동화 속에 아이만 등장하는 게 아니죠. 악인, 선인, 배신자, 어른도 다 나와요. 그런데 소설만 쓰게 되면 이 세계를 단절시켜 버려요. 자전적 작품이거나 특별하게 어린이가 등장하지 않는 이상, 대부분 어른들의 배신과 선과 슬픔을 다루는 거예요. 어쩔 수 없이 단절되는 거죠. 동화를 쓰는 작가는 어른과 아이를 같이 무대에 놓고 생각해요. 동화의 주제는 소설과 똑같아요. 거의 살인만 안 나올 뿐이지, 이혼 문제나 죽음 문제 같은 것도 다 나오죠.

 

유년 시절의 이야기도 있는데요. 막냇동생의 죽음이 작가님에게 많은 영향을 미친 것 같아요.


동생이 병원에서 앓다가 죽은 것도 아니고 제 품에서 죽었잖아요. 제가 안은 상태에서. 하필 집에 아무도 없을 때였어요. 아이가 마지막으로 부른 것도 저였고요. 그 일을 고1 때 겪었으니... 제 마음속에는 평생 아이가 있는 거예요. 그 아이 때문에 늘 가난하고 힘 없고 약한 아이들한테 시선이 갈 수밖에 없어요. 생명에 대해서 늘 생각하게 되고요. 죽음을 늘 의식하다 보니까, 그게 사람을 겸손하게 만들더라고요. 인간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알게 되는 거죠. 저한테 동생의 죽음은 역설적으로 생명의 아름다움, 고귀함, 소중함을 알게 해준 거예요. 그리고 어떤 경우에도 변절하지 않게끔 지켜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런 경험을 하게 되면 허무주의로 빠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렇죠. 악착같이 자신을 챙기고 부를 탐하게 될 수도 있겠죠. 그러니까 감사한 거예요. 제가 지금처럼 할 수 있다는 게. 그리고 저는 끊임없이 아이들을 만나잖아요. 그 아이들에게 동생의 죽음도 이야기해줘요. 제가 앞을 못 보는 아이들을 위해서 점자책과 소리책도 만들고 있는데, 그 아이들한테도 그렇고 비장애인 아이들한테도 이야기해주는 게 있어요. 일단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리고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라는 거예요. 그 눈으로 무엇을 볼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는 말도 해줘요. 당장 눈앞에 엄청난 변화가 보이지 않더라도, 분명히 많은 아이들에게 변화의 씨를 심어줬다고 생각해요. 위로와 변화의 씨앗이죠.

 

당시의 경험 때문에 동화와 청소년 소설을 쓰게 되셨을까요?


맞아요. 원래는 퀴리 부인 같은 과학자가 꿈이었는데, 그 아이 때문에 완전히 바뀌었죠. 그리고 어렸을 때부터 네 명의 동생들을 앉혀놓고 옛날이야기를 지어서 들려줬었어요. 어느 날부터는 그 중에 동생 한 명 없었던 거고요. 그런데 내가 큰 언니니까, 내가 울면 다 우니까, 울지도 못하고 또 이야기를 들려줬죠. 거듭 하는 이야기지만, 죽음이 오히려 생명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할 수 있게 만들어준 거예요.

 

「꼭 필요한 만큼의 힘」이라는 글을 보면, 두 차례나 수해를 겪으셨더라고요.


네. 1984년과 1987년에 망원동에서, 그 유명한 물난리를 겪었죠. 그때는 물에 휩쓸려 내려갈 뻔했어요. 그 일을 겪으면서 다시 한 번 삶에 대해서 생각했죠. 물이 빠지고 난 뒤에 집에 돌아오니까 천장까지 진흙이 다 찼었더라고요. 온통 진흙이 묻어있고 바닥에는 미꾸라지들이 있었어요. 그걸 두 번이나 겪은 거예요. 그런데 하늘이 괜히 겪게 한 것 같지는 않아요. 아픔과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좌절하지 않고 헤쳐 나왔잖아요. 이겨 나왔잖아요. 그런 자만이 말할 거리가 있는 거거든요. 어쨌든 산을 넘고 들을 건너고 계곡을 넘어야 마을에 도착할 수 있고, 그런 자만이 승전보를 울릴 수 있는 거예요. 지나온 길에서 있었던 일을, 그게 진실이든 거짓이든 말할 수 있는 거죠. 성공을 했든 안 했든 뚫고 나온 자만이 전해줄 말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어려움을 헤쳐 나오신 분 중 한 분이 어머님이신 것 같아요.


요즘의 젊은 엄마들의 경우는 다르겠지만, 제 또래의 엄마들은 대부분 많이 배우지 못한 분들이 많아요.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엄마만큼만 살아보자’는 생각이 들어요. 엄마와 딸은 애증 관계이고 서로 부딪힐 때도 많잖아요. 그럴 때 저는 나이를 환산하는 법이 생겼어요. ‘우리 엄마가 스물셋에 날 낳았는데, 나는 그때 뭐했나’, ‘막냇동생을 낳았을 때 엄마가 40대였는데, 그때 나는 뭐했나’ 싶은 거예요. 그런 생각을 하면 아무 할 말이 없는 거죠. 나는 혼자 사는 집으로 돌아가서 잠드는 것도 쉽지 않은데 심지어 엄마는 많이 배우지도 못했고 잘 살지도 못했고 남편도 없었어요. 그런 걸 생각하면... 아무 말 못하죠.


 

사는 데 필요한 힘, 사람마다 달라요


홀로 빈집에 돌아갈 때마다 고독과 두려움을 느끼신다고요.


지금도 적응이 안돼요. 처음에는 가자마자 TV를 켰었어요. 소리도 크게 키워놓고. 공포도 있고 적막감도 있죠. 여전히 힘들어요.

 

작가에게는 혼자 있는 시간이 좋을 것 같기도 해요.


혼자 있는 시간을 이겨내지 못하면 작가가 될 수 없죠. 혼자 있는 걸 즐기고 그 시간을 마음껏 활용해야 돼요. 작가는 혼자잖아요. 뮤지컬도 그렇고 영화도 그렇고 연주도 독주가 아닌 이상은 다 같이 하는데, 글을 쓰든 그림을 그리든 작가는 혼자 해야 하는 일이니까요. 혼자 있는 걸 즐길 줄 모르면 안 되죠. 작가들 중에도 사람이 그리워서 계속 사람 찾아다니고 같이 어울리면서 술 마시는 사람들도 있잖아요. 그러면 주변에 사람은 많이 있는 것 같은데 작품은 없어요. 철저하게 혼자 있는 시간을 관리하는 사람들은 확실히 작품이 남아요.

 

혼자만의 시간은 어떻게 보내세요?


책 읽고, 글 쓰고, 음악 좋아하니까 음악 듣고요. 그거 외에는 없어요. 책, 글, 그리고 산책이죠. 『반 고흐, 영혼의 편지』에 보면 이런 대목이 나와요. 고흐가 걷는 걸 너무 좋아해서 나중에는 집에 돌아올 수가 없었다는 거예요. 얼마나 걸었는지, 돌아올 힘이 없었다는 거죠. 저도 산티아고까지는 못 가더라도 끊임없이 걸어요. 틈만 나면 걷는데요.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효과가 있어요. 눈도 정신도 맑아지거든요. 많은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하고, 버려야 될 생각들은 버리게 되기도 하고요.

 

매일 하시는 일 중에 하나가 일기를 쓰시는 건가요?


하루를 철저하게 반성하고 기록해요. 새벽 4시에 일어나자마자 오늘 해야 할 일들을 떠올리고 어떻게 잘 해낼 건지 쓰고요. 밤에 자기 전에 그 날 있었던 일에 대해서 쓰고, 잘하지 못한 일들은 반성하고 다음에는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도 적고요. 하루 동안 느낀 점이나 책을 읽고 정리한 내용 같은 걸 다 기록해요.

 

기록하시는 데 쓰시는 시간도 꽤 많겠어요.


그럼요. 꽤 되죠. 그런데 그걸 잘 하니까 글 쓸 때 훨씬 부담이 없는 것 같아요. 발레리나가 아침 저녁으로 끊임없이 스트레칭을 해야 본 무대에서 잘하는 것과 똑같아요. 그러니까 저한테는 정신적인 스트레칭 같은 거죠. 이완 작용이고요.

 

제목이 『사는 데 꼭 필요한 만큼의 힘』 이에요. 살아가려면 얼마만큼의 힘이 필요한 걸까요?


사람마다 그 분량에 따라 다른 것 같아요. 어떤 사람은 간장 종지만큼 작은 양의 힘만 있어도 살 수 있고, 어떤 사람은 큰 고무 대야만큼 있어도 쩔쩔 매고요. 누군가에게는 물질의 힘일 수 있고, 또 누군가에게는 사랑의 힘일 수 있겠죠. 힘은 저마다의 환경, 위치,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른 것 같아요. 그런데 주어진 만큼에 대해서 감사하지 못하고 더 원하면, 그건 힘이 아니라 재앙이 되는 것 같아요. 일상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 또한 힘인 것 같고요.

 

꼭 큰 힘이 필요한 건 아니라는 말씀이시군요.


다섯 살 아이에게 5kg의 물건을 들으라고 했을 때, 아이가 못 든다고 해서 ‘너는 힘이 없니?’라고 말하지는 않잖아요. 작은 것만 들어도 ‘힘 세네!’하고 칭찬해주죠. 그 사람에게 맞는 분량이 있는 거죠.

 

말씀을 듣고 제목을 다시 보니까, 욕심 없는 마음이 느껴져요.


그렇죠. ‘꼭 필요한 만큼’의 힘이에요. 가지고 있는 것으로 자족하는 거죠. 그거라도 제대로 지키고, 거기에서 최선을 다하는 거예요. 제가 『유리 구두를 벗어 버린 신데렐라』라는 그림책에서 쇠똥구리 이야기를 쓴 적이 있어요. 쇠똥구리를 보면 열심히 먹이를 굴리면서 가잖아요. 그때 주변에서 얼마나 많은 일들이 일어나겠어요. 개미도 있고, 파리도 있고, 인간도 지나다니고, 바람도 불고, 아이가 빵을 먹다가 떨어뜨리기도 할 거예요. 그런데 쇠똥구리는 자기 먹이만 밀고 가는 거예요. 그리고 저장하는 거죠. 만약 길 위에서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쳐다보고 땅에 있는 것들을 계속 붙인다면, 결국 탈진해서 쓰러질 거예요. 쇠똥구리를 보면서 그걸 알았어요. 가지고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하고, 제대로 지키고, 자족해야 한다는 걸요.

 

“어른들 눈치 보느라 무게 잡는 글을 쓴다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입니다”라고 쓰셨어요. 글을 쓸 때, 힘을 들이는 것보다 빼는 게 더 어렵지 않을까 싶어요.


저는 비유나 은유 같은 걸 잘 쓰지 않고, 인용도 잘 안 해요. 톨스토이에게 영향 받은 바가 있는 건데요. 톨스토이가 러시아 우화집을 내게 된 배경이 있어요. 어떤 농민이 톨스토이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자신들도 읽을 수 있는 쉬운 글로 된 책을 써달라는 내용이었어요. 그 편지에서 톨스토이가 깊이 깨닫고 민중을 위한 책을 쓰게 된 거죠. 그걸 통해서 저도 ‘그래, 누구나 읽을 수 있으면서도 그것이 나의 문체가 될 수 있게 글을 쓰자’고 생각했어요. 그러다 보니까 비유나 상징, 은유는 되도록 빼게 됐고요. 인용을 하더라도 누구나 알 수 있는 글을 고르게 된 거예요. 그런 식으로 글을 쓰다 보니까 오히려 저는 편해요. 저만의 글과 목소리로 지면을 채워야 된다는 부담감도 있지만, 오랜 세월을 그렇게 써왔기 때문에 편해요.

 

이런 문장도 있어요. “나에게 글 쓰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우쭐대거나 남을 무시하는 힘으로 사용하지 마십시오” 스스로를 경계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쉽지 않죠. 각을 세우는 경우도 있고요. 그런 사람들을 비난하고 싶지는 않아요. 그건 그 사람 인생이죠. 저는 ‘절대 겸손’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글을 쓴다는 이유 하나로 선생님 소리를 듣고 대우를 받잖아요. 강연이 끝나면 저보다 훨씬 많은 재원과 경력을 가진 사람들도 찾아와서 고민을 털어놔요. 그런 걸 생각하면 겸손할 수밖에 없죠. 보통 예쁜 사람들을 보고 전생에 나라를 구한 것 같다고 하잖아요. 제가 생각하기에 예쁜 건 나라를 한 번 구한 거고, 제가 글 쓰는 건 열두 번은 구한 것 같아요(웃음). 게다가 어린이도 읽을 수 있는 글, 엄마도 읽을 수 있는 글을 쓰고 있으니까 축복을 받은 것 같아요. 그런데 어떻게 거만하고 우쭐댈 수 있겠어요. 절대 그럴 수 없죠.

 

스스로 엄격한 도덕적 기준을 갖고 계신 것 같아요.


엄격한 게 아니고요. 그래도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교양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리고 남에게 뭔가 가르치려고 한다는 사람이라면 스스로 그래야 한다고 생각해요. 세수도 매일 두 번씩은 하잖아요. 그런데 왜 얼굴만 세수해요? 마음도 생각도 똑같아요. 음식을 썩게 하는 방법은 그냥 놔두는 거잖아요. 사람의 마음도 그래요. 닦지 않고 놔두면 다 부패해요. 그래서 교육이 필요한 거예요. 인간의 마음은 부패하고 욕심으로 물들게 되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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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믿을 대상이 아니라 사랑해줄 대상이에요


작가님을 설명하는 수식어가 정말 많아요. 작가, 번역자, 강연자, 점자책 편집자, 소리책 나눔터 운영위원회 부위원장 등 책과 관련해서 많은 일들을 하고 계세요.


말씀하신 일들도 하고 있고, 노숙인 대상으로 글쓰기와 인문학 지도와 강연도 하고 있어요. ‘거리의 아빠들’이라는 이름으로 매년 합창제, 문화제를 하고요. 그렇다 보니 노숙인 제자들이 정말 많아요. 또 이주 여성들과 그림책을 만들고 있는데요. 1월 중에 책도 나올 거예요. 또 고양시 도서관 정책위원장이라서 도서관 일도 하고 있고요. 연애만 빼고 다 하고 있어요(웃음).

 

지금까지 내신 책이 300여 권이에요.


37년째니까요.

 

긴 세월이기는 하지만 정말 왕성하게 활동하시면서 다작하시는 작가로 유명하시잖아요.


그 중에 번역된 책, 유아책 같은 것들을 빼고 나면 실제로는 그렇게 많지 않아요. 십 수 년 만에 한 편씩 작품을 쓰는 작가도 있는 거고, 저처럼 부지런히 계속하는 사람도 있는 거죠. 저는 직장인과 비교하곤 해요. 직장인이 힘들다고 출근 안 하는 거 아니잖아요. 매일 출근하잖아요. 심지어는 휴일에도 근무하고 야근도 하죠. 그 삶의 기록이 작가의 책의 기록과 똑같은 것 같고요. 저는 이 시대의 진정한 순교자는 샐러리맨이라고 생각해요. 매일 만원 전철을 타고 출퇴근을 하고, 때로는 가족 안에서 문제가 생기기도 하고, 직장에서 겪는 갈등도 있잖아요. 그걸 이겨내고 자식 때문에 참고 또 하루를 보내고 또 웃고... 진정한 순교자는 샐러리맨이라고 생각해요. 특히 정규직이 아닌 사람은 더하죠. 정말 육체의 숨이 끊어지는 것 같은 괴로움이라고 하잖아요.

 

내 안의 이야기가 소진되는 것 같다는 불안감, 느끼실 때 없나요?


없어요. 매일 나를 채우니까요. 강연도 낭비라고 생각 안 해요. 수많은 생명과 사연을 만나는 거예요. 누가 저한테 그 많은 이야기를 가져다주겠어요. 그리고 저는 술을 마시지 않고 사람들도 많이 만나지 않기 때문에, 책을 읽고 여러 가지를 보면서 충분히 채워요. 나에 대한 기록도 결국은 나를 채우는 거거든요. 비우면서 채우는 거죠. 그래서 고갈이나 방전 같은 건 한 번도 느낀 적 없어요. 오히려 더 좋은 글을 쓰고 싶으니까, 홀로 있는 시간이 더 많아야겠다고 생각하죠. 그러다 보니까 삶이 점점 단순해지고 절제가 되는 거예요. 열 사람 만날 거 두 사람 만나니까 삶이 단순해지죠. 저절로 절제가 되는 거예요. 제가 잘나서가 아니고요.

 

이번 수필집을 보면 태양, 별, 달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와요. 그것들을 보면서 힘을 내시는 것 같은데요. 항상 그 자리에 변함없이 있기 때문인가요?


그렇죠. 그리고 그것들이 위에 있잖아요. 우리가 하늘을 보고 우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도 보면 다 고개를 숙이고 있어요. 요즘은 다들 스마트폰 보느라 고개 숙이고 있고요. 어떻게 보면 요즘은 다 고개 숙이는 사회예요. 그런데 저는 하늘을 보는 순간, 지상의 문제들에서 조금 벗어나는 느낌이 들어요. 말씀하신 것처럼, 달과 별과 태양 같은 것들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죠. 내가 눈을 들어서 바라보면 늘 나를 보고 있어요. 내가 못났다고 해서, 아니면 못생겼다고 해서, 그 어떤 이유로든 고개를 돌리거나 나를 떠나거나 잊은 적이 없어요. 인간은 늘 변하잖아요. 사람은 믿을 대상이 아니라 그냥 사랑해줄 대상이잖아요. 믿은 사람이 바보죠. 사람은 그냥 사랑해줘야만 되는 대상이에요.

 

“이 책은 누군가의 그늘이 되고 싶은 나의 작은 바람이다”라고 쓰셨어요. 그늘이 필요할 때 떠올리는 책이 있나요?


그럼요. 일단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이 있어요. 이번에 라틴어 완역판이 나와서 세 번째 읽고 있고요. 그리고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이에요. 지금은 그런 소설이 없어요. 쓰지도 않고요. 반 고흐에 관한 책들은 다섯 번째 읽고 있어요. 편지 모음집 같은 책들이고요. 또 하나는 성경책이에요.

 

어른들을 위한 소설도 쓰실 계획이세요?


네, 이제 쓸 거예요.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짤막짤막한 글들이 되지 않을까 싶고요. 정말 위로가 되고 힘이 되는 글을 쓰고 싶어요. 현대인들의 불행의 원인은 자신이 가진 게 너무 없다고 생각하는 데에 있는 것 같아요. 미디어는 계속 세련되고 새로 나온 물질과 삶의 위장된 모습들을 보여주잖아요. 그런데 정작 내 삶은 대학 때부터 학자금 융자를 받아야 하고, 모든 게 빚 없이는 안 되는 거죠. 결혼도, 출산도, 주택 마련도, 모든 게 그래요. 심지어 장례비용까지도요. 마지막 순간까지 그런 거죠. 그런데도 끊임없이 구입을 하잖아요. 그런데 생각을 바꾸면 훨씬 간결해져요. 저는 늘 이렇게 생각해요. ‘나는 가진 건 별로 없는데 부족한 게 하나도 없다’고요. 그런 삶을 살 수 있는 게 자족하는 마음이라는 것, 그리고 어떻게 하면 자족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는지, 그런 내용을 스토리에 담아서 쓰고 싶어요.

 


 

 

사는 데 꼭 필요한 만큼의 힘노경실 저 | 다우
지나온 시간과 되돌릴 수 없는 일들을 애석해하고 상처 입은 마음을 추슬러 생의 한가운데를 우직하게 통과하려는 저자의 모습에서 나약하지만 생명력 강한 한 인간의 초상이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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