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어머니와 미국인 아버지 사이서 태어나 필라델피아에서 자란 미셸 조너(Michelle Zauner)는 2011년 사이키델릭-펑크 록 밴드 리틀 빅 리그(Little Big League)를 통해 음악 씬에 데뷔했다. 두 장의 정규 앨범을 내며 활동을 이어가던 그에게 청천벽력같은 엄마의 암 진단 소식이 들려왔다. 허무하게 너무나도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미셸은 필라델피아와 멀리 떨어진 오레곤에서 새로운 감정의 싱글을 발표하면서 새 프로젝트의 이름을 알린다. 재패니즈 브렉퍼스트(Japanese Breakfast)다.
개인적인 비애와 치유의 과정을 담은 데뷔작 <Psychopomp>는 평단의 호평과 대중의 주목을 동시에 획득하며 원 소속 밴드의 성과를 단숨에 뛰어넘었다. 보다 확장된 사운드를 들려준 차기작 <Soft Sounds From Another Planet>은 미셸에게 더 큰 세계를 선사했다. 팝 매거진 <롤링 스톤 (Rolling Stone)>이 선정한 '2017 최고의 앨범' 순위 39위에 오르는 등 평단의 일치된 호평을 받았고, 120회 월드 투어를 진행했으며, 내년에는 최대의 음악 페스티벌 중 하나인 코첼라(Coachella) 페스티벌 라인업에 이름을 올렸다. 월드 투어의 마지막을 지난 2017년 12월 14일 한국에서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후 고국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미셸을 홍대에서 직접 만났다.
한국에 온 지 2~3주쯤 되어간다. 즐거운 시간 보내고 있나.
즐겁다! 주마다 한국어 수업도 듣고, 친구들도 만나고, 맛있는 음식도 많이 먹고. 예지를 참 만나고 싶었는데 직접 만나게 되어 좋고, 무라 마사 공연도 봤다. 다른 한국 뮤지션들과 프로듀서들과도 많이 만나고 여러 가지를 공유해보고 싶었는데 다양한 분들과 재미있는 시간 보내고 있어 정말 좋다. 방이 좀 좁긴 하지만(웃음)
지난해 29일 예지의 첫 한국 무대를 함께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전부터 연락하던 사이였는지.
나도 그 사진 봤다 (웃음). 예지와는 한국에 와서 처음 연락했다. 미국에서는 알지 못했다. 굉장한 재능을 지닌 멋진 친구다.
▶출처 : Japanese Breakfast Instagram(@jbrekkie)
한국서 새소년, ADOY, 파라솔 등 신진 밴드들과의 만남도 활발하다. 한국 밴드들은 어떤가?
아주 인상적이었다. 새소년과 파라솔의 기타리스트들은 내가 본 사람들 중 최고의 기타리스트 중 한 명들이다. 파라솔의 음악을 틀어 놨더니 '얘네 누구야? 완전 짱인데!'하고 모두가 감탄했다. 새소년의 소윤 나이를 알고 나선 완전 쇼크, 1997년생이라니!(웃음) 이 두 팀의 기타리스트들은 정말 최고다. 오프닝 쇼를 장식한 아도이가 플레이할 때도 정말… '깜짝 놀랐어요'(한국어로 말했다.). 좋아하는 한국 음악은 많지만 좋아하는 팀을 물어보면 떠오르는 팀이 없었는데 이 팀들은 정말 인상 깊었다.
공연에도 직접 오셨던 '큰 이모'는 잘 계시나. 한국의 가족들과는 어떤 사이인지.
큰 이모는 항상 내게 '직장은 다니는지, 돈은 잘 벌고 있는지'를 걱정해준다. 할머니는 7년 전, 작은 이모도 5년 전 세상을 떠났고 3년 전에는 엄마도 돌아가셨다. 할아버지도 돌아가셨고. 사촌 오빠와 큰 이모가 남아있는 유일한 친척 분들인데, 함께 상실을 공유하고 나를 응원해주는 소중한 분들이다. 펄 시스터즈의 '커피 한 잔'도 큰 이모와 인연이 있는 노래다. 김밥레코즈의 존이 남편 피터에게 알려준 곡인데, 큰 이모에게 얘기했더니 엄마가 노래방에서 즐겨 부르던 노래라는 사실을 알려줬다. 엄마의 추억을 다시금 새긴, 뜻깊은 곡이다. 언젠가 커버도 할 생각이다.
어릴 때 내 주위엔 99% 백인 아이들밖에 없었고, 그들의 사회로 빨리 들어가고픈 마음에 한국어를 배우는 데 반항심이 있어서 '그런 거 안 배워도 상관없어!'했는데 큰 이모가 영어에 능숙지 않으셔서 후회가 된다. 늦게라도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서 '한글학교'도 다니고, 연세대학교에서 한 달 정도 수업도 들었다. 지금도 한국어 공부는 열심히 하고 있다.
120회 월드 투어의 마지막이 12월 14일의 한국 공연이었다. 마지막 공연은 어땠나?
120번보다 훨씬 많이 한 느낌이랄까? 미국에 있는 내 친구는 공연 200번도 했는데 뭐. 월드 투어를 매조지한다는 의미도 있었지만 이번 한국 공연은 정말 내게 특별했다. 큰 이모와 이모부가 공연장에 왔는데, 내 장래에 대해 항상 궁금해하시고 백수는 아닌지 걱정하시던 분들이라 많은 관객들이 온 걸 보고는 놀라셨다. 한국 관객들은 더 호응도 많고, 감정적으로도 열려있다는 느낌이 들어 내 이야기들을 더 깊게 공유할 수 있어서 좋았다.
리틀 빅 리그 시절 길고 힘든 활동을 했지만 2장의 앨범도 그렇고 그리 성공적이진 않았다. 그 와중 엄마가 돌아가셨고, 아주 개인적인 작업물을 담고자 솔로 프로젝트 <Psychopomp>를 낸 것이다. 상실을 달래기 위해 만든 앨범이라 작은 레이블 데드 오션스(Dead Oceans)에서 발매했고, 아무도 안 들을 줄 알고 다른 분야에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놀라운 반응이 이어졌다. 재패니즈 브렉퍼스트 프로젝트로 10년 만에 다시 한국에 와서 공연도 하고, 코첼라(Coachella) 페스티벌에 초대도 받았다. 많은 의미가 담긴 마지막 공연이라 더욱 고맙고 행복했다.
상실을 담은 데뷔작과 달리 지난해 발매한 <Soft Sounds From Another Planet>을 '치유'의 과정이라고 소개한 바 있다. 두 작품의 차이가 있다면.
1집은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내 상실감과 혼란스러운 감정들을 다룬 앨범이고, 2집은 어느 정도 갈무리가 된 상태에서 만든 명상적인 레코드라 할 수 있겠다. 데뷔작이 성공하면서 좀 더 자신감이 붙기도 했다. 슬픈 감정이든 분노의 감정이든 남들에게 분출하는 대신 나 스스로 풀어내고, 소화하면서 더 좋은 사람으로 거듭나고자 하는 마음이랄까. <Soft Sounds From Another Planet>은 엄마의 죽음같이 슬픈 일이 일어나면 그걸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그 모든 것들을 기계적으로 잘 받아들일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담겨있는 작품이다.
'기계적인'이라는 표현이 인상적이다. 전작과 달리 전자음을 도입하고 1970년대 크라우트 록 풍이 느껴지는 것도 그 때문인지.
맞다. 'Diving woman'을 예로 들자면 그 곡은 제주도의 해녀들로부터 영감을 받은 곡이다. 노래 가사에도 제주도가 등장한다. 매일같이 일어나서 바닷속으로 뛰어들어 해물을 캐고, 다시 바다로 들어가고 또 들어가고… 그런 기계적인 일상을 이어가는 독특한 그들의 이야기가 매력적이었다. 오토튠을 쓴 'Mechanist'는 로봇과의 사랑을 상상해본 곡이고. 그런 느낌을 표현하고자 쓴 기법이다.
여전히 'The Body is a blade'처럼 트라우마가 느껴지는 곡들도 있다.
원래 나는 밝고 명랑한 사람이 아니다. 나쁜 일이 없어도 다크한 사람이었다. 스물다섯에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 다른 사람들이 엄마랑 같이 다니는 것만 봐도 화가 치밀고 세상은 불공평하다는 생각에 우울해지곤 했다. 나쁜 일이 생기면 그 나쁜 일대로, 어두운 감정으로 헤쳐나가고자 하는 내용을 담았다.
'Till death'는 밴드의 기타리스트이자 남편인 피터 알렉산더(Peter Alexander)에게 바치는 러브송이고, 앨범 크레딧에도 남편이 없었더라면 버틸 수 없었을 것'이라 적었다.
남편과 결혼하게 된 것도 엄마를 위한 마음이 컸다. 엄마가 병원에서 정말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결혼 소식을 들려드리면 기뻐하시면서 건강을 되찾지 않을까 싶었다. 원래 결혼 같은 건 생각도 안 해봤는데 남편에게 결혼하자고 내가 졸랐다. 엄마는 병원 밖으로 나오기도 힘든 상황에서 드레스, 장소 모든 걸 2주 만에 준비했다. 엄마는 결혼식에 오고 그다음 주에 코마 상태에 빠졌다. 피터는 그런 힘든 상황을 모두 곁에서 발맞춰주고, 가장 밑바닥에 있을 때 나와 함께 해준 사람이다. 항상 고맙다. 결혼할 때 '진심으로 사랑하자'는 약속을 했다.
개인적 경험으로부터 출발한 프로젝트인데 그 감정을 음악으로 풀어내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을 것 같다.
지금은 아주아주 초반 단계라 생각한다. 음악 듣고 책을 읽고, 사람들이 말하는 걸 듣고, 내 주위에 있는 모든 것을 스펀지처럼 흡수하며 노트에 기록했다. 그걸 토대로 가사를 썼고 기타를 치며 멜로디를 붙였다. 낙서하듯이 만들어놓고 나중에 완성하는 방식이라 엔지니어링 부분에서 맘에 차지 않는 부분도 있다. 이번 앨범 같은 경우는 굉장히 예전에 막 녹음해 놓은 데모에서 아이디어를 끌어 오기도 했다. 인생에 있었던 많은 것들을 압축해서 풀어놓는 방식이다.
추구하는 이상향의 아티스트가 있다면?
내가 하는 음악과 비슷하진 않지만 비요크를 제일 좋아한다. 이 세상의 음악이 아닌 것 같다! 항상 새로운 걸 추구하고, 비주얼적으로도 놀라운 광경을 선보인다. 내 뮤직비디오를 촬영할 때도 비요크처럼 혁신적인 것들을 추구하려 노력한다. 리틀 빅 리그 밴드 시절에는 멤버들이 있으니 의견 충돌도 없지 않았지만, 지금은 내가 주도권을 쥐고 있지 않나(웃음). 비요크처럼 하고 싶다.
매거진 <롤링 스톤(Rolling stone)> 등 다양한 매체가 <Soft Sounds From Another Planet>을 올 해의 앨범으로 꼽았다. 코첼라 페스티벌에서도 공연한다. 성공적인 2017년이 된 셈인데 기분이 어떤가?
<롤링 스톤>에서 35등 했는데 내년엔 10등은 해야 되지 않겠나(웃음). 당연히 너무 좋은데 사람 마음이 간사하다. 작년엔 650명 정도 들어가는 곳에서 공연을 해도 충분히 만족하고 즐거웠는데, 지금은 '좀 더 공연장에서 해도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2000명, 6000명! 근데 현실에서 잘 느껴지진 않는다. 좁은 버스를 타고 달려도 달려도 사막뿐이던 미국 투어 시절도 얼마 되지 않았고, 공연하고 호텔에서 죽치고 앉아있고 하다 보니 실감하지는 못했다.
<아이즈(Ize)>의 특집 기사에선 예지와 제이 솜(Jay som), 미츠키(Mitski)와 재패니즈 브렉퍼스트를 묶어 '아시안 팝이 미국 대중음악에 라틴 팝 같은 새로운 흐름을 제기한다'고 얘기하기도 했다. 어떻게 생각하나?
어릴 적 예 예 예스(Yeah Yeah Yeahs)의 카렌 오(Karen O)를 우상으로 삼으며 자랐다. 카렌 오도 한국 혼혈 아닌가. 그의 퍼포먼스를 보며 난 두 가지 생각을 느꼈다. 첫째로 카렌의 온갖 파괴적인 퍼포먼스를 보며 '우와! 한국 사람들은 저렇게 절대 못할 텐데'하는 경외였고, 둘째로는 '카렌 오도 저렇게 하는데, 나라고 못할게 뭐야?'라는 자신감이었다. '내가 아시아계 미국인이야'하고 매일매일 주입하는 건 절대 아니지만, 인터넷이 계속 발전하면서 그런 아티스트들이 많이 나타나고 다양한 취향과 흐름이 주류에도 영향을 주는 것 같아 뿌듯하다. 지난해 미츠키와 제이 솜과 같이 공연할 때 참 놀라웠다. 세 명의 아시아계 여자들이 미국에서 투어를 돌다니. 말이나 되나. 흥미롭고 어메이징 하다. 어렸을 땐 생각도 못해본 일이다.
최근엔 마마스 앤 파파스의 'California dreaming'을 커버하기도 했다. 향후의 음악 계획과도 관련이 있는지.
아버지가 제일 좋아하는 곡이다. 물론 향후의 작업과도 관련이 있고. 아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왕가위 감독의 열렬한 팬이다. <중경삼림>은 내 인생 영화다. 왕가위의 영화 같은, 그런 스타일의 음악을 만들어보고 싶다.
마지막으로, 트위터 프로필의 'I'm a Korean'이 인상 깊다.
프로필 소개는 재패니즈 브렉퍼스트라는 이름 때문이다. 한국과 일본 양국의 관계는 잘 알고 있지만 그거랑은 전혀 상관없고. 미국에 살고 있는 입장에서 재패니즈 브렉퍼스트가 코리안 브렉퍼스트보다 떠오르는 게 더 많지 않나. 그래서 택한 이름이다. 누구도 나를 일본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일본인도 아니고 일본식 아침도 안 먹는 사람이다 (웃음). 프로젝트 이름일 뿐이다. 뮤직비디오를 보고 나서 가끔 '한국인인데 왜 재패니즈 브렉퍼스트냐?' '일본인이 되고 싶나' 등등 문화적으로 딴지를 거는 사람들이 있다. 트위터 프로필은 그런 오해를 대하는 방법이다.
인터뷰 : 김도헌, 이택용, 박수진
통역 : 휴키이쓰(Hughkeice)
정리 : 김도헌
Live Photo Credit : 김도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