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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선해 “얼굴 있는 커피를 마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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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란 무엇인가?


한 과학자는 이 질문의 해답을 찾기 위해 커피나무와 커피콩의 특징, 커피의 역사와 커피의 향 성분을 분석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로스팅의 원리와 로스팅 과정에서의 미세한 변화까지 꼼꼼하게 공부한 이 과학자는 이러한 접근이 밝혀내지 못하는 미지의 영역이 커피에 있음을 깨닫는다. 『커피 과학』을 쓴 일본의 미생물학자 탄베 유키히로의 이야기다.


이 책을 번역한 후지로얄코리아의 윤선해 대표는 번역을 출판사에 먼저 제안하기도 했지만 책을 번역한 후 “저자가 더 좋아졌다”고 말한다. 커피는 무엇보다 ‘맛’이며 커피에는 ‘보이지 않는 세계’가 있다는 윤선해 대표. 그는 지금 국내의 커피 상황을 “과도기”라고 진단했다.

 

“지금 커피가 맛있어져 가는 단계인 것 같긴 하거든요. 워낙 붐이라 전 세계의 좋은 기계들이 다 한국에 들어와 있고, 써볼 기회도 많아요. 지금은 얕고 넓게 경험하는 시기라고 생각해요.”

 

일본에서 15년을 지내는 동안 전공 공부보다 커피 공부를 더 열심히 한 윤선해 대표는 2010년부터 일본 후지로얄의 커피 기계를 판매하고 있다. 역사가 깊은 일본의 커피를 오랫동안 마셔왔던 경험이 행운이라는 그는 『커피 교과서』의 저자 호리구치 토시히데, '카페 바흐'의 타구치 마모루로 같은 스승이자 지인들과 교류하며 일본 커피의 다양성을 체험했다. 자신의 소중한 커피 이야기를 많이 알리고 싶다는 윤선해 대표는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동네 로스터리샵의 단골이 되라며 이렇게 말했다. “지인들한테 추천할 카페가 없다는 건 슬픈 일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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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보이지 않는 세계


‘커피’와 ‘과학’, 의외의 매칭이죠. 커피의 맛과 향을 즐기는 것은 좀 더 감각적인 영역일 텐데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일도 의미가 있더라고요. 여기에 더해 “과학만 가지고는 결코 좋은 상품을 만들어낼 수 없다는 사실을, 저자가 몸소 실험한 결과로 반증해내는 과정이 내게는 특히 인상적이었다.”라고 역자 후기를 썼어요.

 

맛이니까요. 요리할 때도 그렇잖아요. 대부분 경험에서 와요. 햅쌀은 자체에 수분이 많으니 물을 조금 적게 넣고 묵은쌀은 수분이 적으니 물을 조금 더 넣는다, 이건 경험이죠. 커피콩을 봐도 그래요. 경험으로 구분이 되는데요. 기계, 프로그램에 의존한다고 과학이 아니거든요. 그건 단지 숫자인데 그것을 과학적인 로스팅, 과학적인 추출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또 커피를 내리면 맛을 봐야 하잖아요. 자기가 내린 커피를 손님이 어떻게 느끼는지 자기도 느껴야 하는데요. 모든 과학적 기준으로, 숫자에 맞췄기 때문에 이걸 맛있게 느끼지 않으면 당신이 이상한 거다, 라고 할 수는 없어요. 이 책은 커피에 대한 과학 이야기지만요. 장사하는 사람에게 커피는 서비스고요. 집에서 마시는 사람에게 커피는 기호예요. 보이지 않는 세계가 있는 건데 커피를 하는 사람도, 마시는 사람도 보이는 것에만 관심을 두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보이는 것에만 관심두면 안 된다는 말이 날카롭게 들려요.


어떤 콩인지, 콩이 어떤 맛을 내는지 평가하는 능력 없이 기계 놓고 하면 카페를 쉽게 할 수 있잖아요. 또 쉽게 관두고요. 고민하는 시간이 없는 거죠. 기술을 터득하기에는 너무 짧은 주기인 것 같아요. 2년 정도 해보고 할 만큼 했다고 하기엔 무리가 있죠. 이런 전반적인 것들이 안정되지 않으니까 커피도 성숙할 수가 없고, 기술도 성숙하지 못하죠. 게다가 원료가 되는 커피가 수입되는데요. 이것도 농산물이기 때문에 좋은 원료가 계속 들어오기 힘들거든요. 중국이 커피를 더 마시기 시작하면 지금의 조건으로 커피를 국내에 들여오기 힘들 거예요. 와인이 그랬어요. 좋은 와인 가격이 조금씩 비싸진 이유가 중국에서 마시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는데요. 커피가 그럴 거예요. 지금도 조금씩 그렇게 되고 있어요.

 

책의 저자 탄베 유키히로는 일본의 미생물학자예요. 동시에 커피 마니아로 유명하고요. 무엇보다 일본 커피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던데요.


일본은 전쟁 전에 이미 커피를 마셔왔고요. 전쟁을 겪으면서 커피가 부족한 시기를 극복하는 과정을 거쳤어요. 대용 커피라고 해서 대두를 볶아 커피의 쓴맛을 내는 노력을 한 적도 있거든요. 그러면서 기술이 발달했어요. 좋지 않은 재료를 가지고 커피의 맛을 내는 고민을 엄청 한 거죠. 지금 우리는 스페셜티가 일반화되어 있잖아요. 비싼데도 좋은 커피를 사는 사람들이 있어요. 버튼 하나만 누르면 되는 비싼 기계 사두고, 커피콩만 좋은 것 사다 넣으면 기본은 하거든요. 그러니까 기술이 발전하지 않아요. 자기가 볶는 게 어떤 건지도 모르고, 콩이 어떤 맛을 가지는지 평가하는 능력도 없고요. 일본은 책도 없고, 정보도 없던 시기에 잘 가르쳐주지도 않는 선생님 밑에서 계속 맛을 보고 스스로 맛 공부를 해야 했어요. 그렇게 기억한 맛이 있으니까 자기가 로스팅을 하거나 추출해서 먹을 때 맛 차이를 알죠. 저자도 지금 로스팅 공부를 하고 있는 것 같더라고요.

 

그게 자연스럽게 커피를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게 하기도 했고요.


앞서 중국 얘기를 했는데요. 커피를 들여오던 좋은 생산지를 중국에게 뺏기면 어떻게 되겠어요. 일본은 과거 커피가 없던 시절을 겪었고, 좋은 원두가 없어지더라도 좋은 커피를 만들 수 있는 기술이 있거든요. 고민을 많이 했기 때문에 일반 커피를 잘 볶는 기술이 있는데요. 우리는 고민했던 시간이 많지 않잖아요. 우리는 아직 시간이 더 걸릴 거라고 보고 있어요.

 

책의 번역을 먼저 제안하셨다고요.


저자는 20-30년 전부터 커피에 관한 글을 썼어요. 블로그라는 세계가 일본에 처음 태동했을 때부터 커피에 관한 글을 쓰기 시작한 거예요. 올리는 글이 보통이 아니니까 팬들이 생겼었나봐요. 제 지인들 중에도 저자를 아는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과학자니까 실험실에서 일과 시간 외에 커피 분석 연구를 해서 그 결과를 블로그에 공유했죠. 책에도 카페 바흐의 타구치 마모루 선생님이 나오는데요. 그분과 저자가 또 교류를 해요. 저자는 커피를 과학적으로 다 분석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데 못했거든요. 그렇지만 타구치 선생님은 하죠. 특히 로스팅에서 더 그랬어요. 찰나의 순간들을 과학적으로 분석하지 못하는데 로스터는 연기의 모양과 속도, 수증기의 모양, 콩 색깔의 변화, 로스팅 소리, 냄새 등으로 전에 로스팅 한 것과 똑같이 만들어 내는 거예요. 결국 이건 사람이 하는 거라고 저자는 얘기해요. 저자는 로스팅을 ‘작은 우주’라고 말했는데요. 그게 맞는 것 같아요. 알 수 없는 거죠.

 

 

소비자는 맛있는 것만 골라 마시면 되죠


이미 국내에도 자신의 취향에 맞는 커피를 찾아다니는 사람들도 많아진 것 같은데요. 프랜차이즈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계속 확장이 될까요?


우리나라 인구가 많지 않으니까 프랜차이즈를 하지 않으면 타산이 안 맞아요. 자영업자들도 분점을 내잖아요. 그런데 전문가가 아니니까 경영 기술 등의 부족함 때문에 어렵죠. 커피와 사업은 별개거든요. 커피로 성공했다고 하지만 그것은 결국 프랜차이즈 사업을 해서 성공한 거예요. 지금 그런 혼돈이 많이 있는 것 같아요. 만약 커피만 하겠다고 하면 커피만 해도 시간이 부족해요. 또 앞으로는 프랜차이즈도 다양화 될 거예요. 카페에 웹툰이나 옷, 꽃 등이 같이 들어가는 형태도 생길 거고요. 지금도 작은 매장들 중에는 그런 곳들이 있거든요. 그게 점차 프랜차이즈로 번질 거라고 봐요.

 

현재 국내 프랜차이즈의 커피에 대한 대표님의 생각도 궁금합니다.


대기업 프랜차이즈, 소규모 프랜차이즈가 있는데요. 요즘은 대기업이 되게 잘해요. 돈을 많이 주니까 인재들도 몰리고요. 실제 공장 같은 곳의 설비도 훨씬 좋죠. 대기업 프랜차이즈가 마음먹고 투자하면 게임은 끝나요. 자영업자들이 해낼 수가 없어요. 일본은 가업으로 대를 잇거나 하잖아요. 반대로 우리는 자식들에게 대물림하기 싫다면서 안 가르쳐요. 특징을 살릴 수가 없고, 역사도 없죠. 그러니 대기업 프랜차이즈와 비교할 때 이길 만한 게 하나도 없어요. 쉬운 게임이 아닌데요. 물론 그럼에도 잘하는 사람들은 있겠죠.


얼마 전에 동대구에 갔는데요. 커피를 샀는데 오래된 냄새가 나서 버렸어요. 그래도 커피가 마시고 싶어서 대기업 프랜차이즈에 가서 마셨거든요. 너무 맛있는 거예요. 이렇게 커피 질이 꾸준히 유지되면 다른 자영업자들 커피는 경쟁이 안 되겠다, 생각했어요.

 

프랜차이즈 카페도 종종 가세요?


가긴 가요. 저희 고객 중에 대기업 프랜차이즈도 있고 하니까 안 갈 수는 없죠. 하지만 가서 가급적이면 커피를 안 마셔요.(웃음) 카페라떼나 계절 과일 주스 같은 것 마시고요.

 

출산지보다 원두의 크기나 함수율 같은 물리적 특징이 커피의 특징을 더 정확히 설명할 수 있다는 책의 내용도 있었는데요. 대표님은 어떤 커피를 좋아하세요?


지금 카페를 가보면 케냐AA, 탄자니아, 에티오피아처럼 단품만 쭉 적혀있어요. 그런데 커피를 오래 한 사람들한테 단품은 너무 밋밋하죠. 요리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블렌딩을 하는데요. 그것도 그냥 섞는 건 아마추어죠. 전에 ‘문블렌드’라고 해서 화제였잖아요.(웃음) 그건 하나의 마케팅으로 있을 수는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블렌딩은 요리의 소스처럼 소재를 아는 사람이 각각의 소재를 활용해서 원하는 맛을 만들어내는 거예요. 게다가 소스를 얹어 먹는 메인 요리에 따라 변주가 가능한 작업이잖아요. 그게 블렌딩이거든요. 그냥 이 커피만 마실 건지, 어떤 계절에 가장 즐겨 먹는 음식과 같이 마실 건지, 와인을 마신 다음 입가심으로 마실 건지, 이런 것들을 다 고려해야 해요. 저는 제 것을 고를 수는 있어요. 선택지를 많이 두고 있고, 그렇지만 질리지 않는 매일 마시는 커피도 하나 만들어두고요.

 

대표님은 블렌딩을 요청하는 ‘프로’가 있다고요.


네, 저는 프로한테 요청할 때 원두 무엇과 무엇을 섞어달라고 하지는 않고요. 어떤 맛, 어떤 맛이 어떻게 나게 만들어주세요, 라고 해요. 그렇게 만들어주시면 맛을 보고 “여기에는 케냐를 조금만 더 볶아주세요”라는 식으로 조금씩 조절을 하죠. 그것이 저한테는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이 되는 거예요. 비율은 없어요. 가지고 있는 콩이 늘 똑같지 않으니까요. 지난 주 로스팅 원두와 이번 주 로스팅 원두의 함수율이 다르잖아요. 어떤 콩이 떨어지면 다른 콩으로 그 뉘앙스의 맛을 내도록 할 수도 있고요. 이게 커피 프로들이 하는 일이거든요. 그걸 누군가에게 비율로 얘기한다고 같은 맛이 나진 않아요. 제가 좋아하는 맛은 질리지 않고, 바디감 있으면서 깊이 있는 맛이에요. 그것은 가령 에티오피아일 수도 있고, 에티오피아와 브라질을 섞은 것일 수도 있죠.

 

책에서도 느낀 거지만 원두의 산지나 크기 같은 것 못지않게 로스팅 자체가 커피에 있어 굉장히 중요한 것 같거든요. 


그럼요. 하지만 그걸 소비자는 몰라도 돼요. 소비자는 맛있는 것만 골라 마시면 되죠. 어떻게 볶았는지, 그것까지 알면 로스터들 먹고 살기 힘들어져요.(웃음) 중요한 건 같은 콩을 가지고 어떤 로스터가 어떻게 볶았는지에 따라, 어떤 맛을 표현하고 싶어 했는지에 따라 엄청 다른 결과물이 나온다는 거예요. 로스터가 얼마나 맛의 경험을 많이 가졌느냐가 결과를 크게 좌우하죠. 그래서 맛의 경험을 많이 가진 로스터가 잘 볶는다고 생각해요. 다양한 맛을 볶아내는 거죠. 그렇지 않고 로스터가 특정 맛만 맛있다고 생각한다면 그 맛만 만들어내겠죠. 여러 맛을 낼 수 있는 로스터가 트렌드에 맞는 맛을 선택해서 하는 것과 그 맛만 할 줄 아는 사람이 그 맛을 하는 것은 천지차이잖아요. 그런데 아직 한국은 후자인 것 같아요. 지금은 그 맛이 인기가 있고, 트렌드고, 장사가 잘 되니까 그게 맞는 것 같거든요. 그래서 커피를 잘 모르는 분들이 그렇게만 쫓는 경향이 있어요.

 

맛의 취향, 선호하는 맛이라는 것도 계속 바뀌게 마련인데요.


그러니까요. 트렌드는 바뀌어요. 와인 비유를 종종 하는데요. 와인 잘 모른다는 분에게 주면 무조건 맛있다고 하는 와인들이 있거든요. 약간 달고, 산미는 적고, 탄닌도 약하고, 목 넘김이 좋은(웃음), 칠레 와인 같은 건데요. 그것만 먹다보면 질리죠. 그래서 다음 단계로 가요. 그렇게 도는 순서가 있어요. 식력(食歷)이라는 말이 참 와 닿았는데요. 식력이 어느 정도 쌓인 사람들이 음식을 잘 알아요. 그런데 우리는 충분한 식력을 가진 민족이기 때문에 커피에 대해서도 그럴 수 있어요. 커피도 발효음식이니까요. 또한 로스팅, 구워 먹는다는 것에 대한 이해도 이미 있고요. 다만 아직은 유행이라는 것 때문에 다소 휩쓸리는 경향이 있다고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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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조금 필요하지 않을까


좋은 커피란 어떤 것일까요?


좋은 커피는 식어도 맛있어요. 식어도 액체가 깨끗해요. 혹시 어떤 게 좋은 커피인지 잘 모르겠다면 커피를 식혀서 보세요. 위에 하얀 막이 끼어 있으면 절대 드시면 안 돼요. 몸에 나빠요. 커피에는 기름 성분이 있어서 산패가 되거든요. 맛도 없고요. 또 로스팅이 적절하게 잘 된 것이어야겠죠. 덜 볶이지 않고요. 로스팅을 할 때 불 조절을 잘못하면 겉은 타고 안은 안 볶일 수 있거든요. 그건 나쁜 커피인 거죠. 또 결점두는 그 자체로 나쁘고요. 그러니까 원래 커피가 가진 좋은 맛이 아닌 것들은 다 나쁜 거예요. 탄 것, 덜 볶인 것, 기름이 나온 채로 오래 돼서 산패된 것, 잘못 볶여서 풋내가 나는 것 등이 그런 것이죠.

 

말로 들어서 차이를 완전히 이해하긴 힘들 것 같고요. 결국 직접 마셔보고, 차이를 느껴야 알 것 같아요. 


커피에는 기름이 있어서 그 맛이 잘 표현되면 바디감 있는 좋은 커피라고 하거든요. 맛을 경험하면 딱 와 닿을 텐데요. 그걸 다 친절하게 알려주는 곳이 많지 않아요. 실은 커피도 배울 수가 있죠. 그런데 아직 그렇게 배울 만한 곳이 많지는 않은 것 같아요.


마셨는데 시고 못 먹겠다 싶으시면 버리시면 돼요. 우리는 된장, 김치 같은 발효의 세계에서 미각이 훈련되어 있거든요. 물론 둔한 분도 있지만 우유, 두부 같은 거 쉬었는지 아닌지 알잖아요. 이미 다양한 식문화를 체험한 사람들이라 프랜차이즈든 개인 카페든 자기 입맛에 맞는 커피가 있다면 그게 그 사람에게 맞는 커피인 거예요. 물론 더 좋은 커피를 경험하면 미각은 또 달라지는 거고요. 그게 미각의 재미있는 점이죠. 그렇게 미각에 자신이 생기면 덜 볶인 것, 탄 것들은 자연스럽게 도태된다고 봐요.

 

지금은 그것을 정교하게 구분하지는 못하는, 경험을 쌓는 단계라는 거군요.


아직은 안 탔는데도 탔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고요. 덜 볶였는데 신 커피가 트렌드라고 생각하고 참고 마시는 분들도 있어요. 잘 모르니까요. 또 아주 뜨거울 때는 산미가 덜 느껴지니까 괜찮게 마시다가 식으면 강하게 느껴지는 커피가 있거든요. 뒤가 당길 정도로 신 커피는 잘못된 거예요. 우선 잘 모르겠다 싶을 때는 커피를 식혀서 마셔보세요. 저도 가끔 유명하다는 곳의 원두를 사다가 하룻밤 커피를 식혀서 맛봐요. 그럼 알 수 있어요.

 

대표님은 국내에 안심하고 찾는 카페가 있나요?


아니요, 오늘은 맛있어도 내일 맛있으리란 보장이 없어요. 아직 한국이 과도기라고 생각하는 이유도 그거예요. 우리는 기술이 있고, 머리가 좋거든요. 금방 배우죠. 좋은 점을 잘 가져오잖아요. 현재 일본에서 유행하는 카페 스타일, 인테리어 같은 것도 그 모양새는 흉내를 잘 내요. 그런데 깊이는 아직 다 쫓아가지 못한 것 같아요. 역사가 짧으니까 다 알기도 힘들고요. 안다고 해도 우리는 속도가 중요하잖아요. 빨라야 되는데 이런 환경에 깊이를 더하려고 시간을 투자한다고 한들 누가 거기 돈을 더 내겠어요. 저희 기계가 주문 제작이거든요. 45일 걸려요. 그런데 못 기다리시죠. 주문 제작이 저희의 차별점인데 그걸 현재 한국에서는 활용할 수가 없어요. 키가 작은 사람에 맞는 높이, 눈이 나쁜 사람이나 귀가 잘 안 들리는 사람에 맞는 조건을 만드는 게 저희 특기거든요. 그런데 할 수가 없어요.

 

주문 제작이 되레 단점이 되어 버리는 상황이네요.


커피도 마찬가지거든요. 우리는 보통 기계를 산 후 커피를 배우잖아요. 일본은 그렇지 않아요. 우선 책부터 사죠. 강연 같은 곳에 가서 먼저 한 사람들의 경험을 듣고요. 그렇게 해보고 한 2년 뒤에 기계를 사요. 우리도 시간이 조금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지금 커피가 맛있어져 가는 단계인 것 같긴 하거든요. 생두 관련해서는 직접 무역도 하고요. 워낙 붐이라 전 세계의 좋은 기계들이 다 한국에 들어와 있고, 써볼 기회도 많아요. 지금은 얕고 넓게 경험하는 시기라고 생각하고요. 일단 마시기는 하는데 잘 모르지만 맛없는 것 같아, 정도 수준에서 멈추거나 조금 듣기는 해서 어디 커피 요즘 유명하더라, 라고 해요. 하지만 그 커피도 매일 맛있진 않아요. 매일 잘 볶지도 않고요. 그렇다고 매일 맛없지도 않거든요. 아직 그렇게 브랜드에 좌우될 만한 수준은 아닌 것 같아요.

 

책에서도 맛있는 커피는 주관적인 영역이지만 좋은 커피냐 나쁜 커피냐는 객관적,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하고 있어요.


제가 제일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거예요. 사람들이 커피는 취향이라고 많이 얘기하잖아요. 다른 사람은 맛없다지만 나는 맛있다고 할 수 있잖아요, 라고 반문할 수 있는데요. 취향을 논하는 건 어느 정도 기본 퀄리티가 갖춰진 이후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퀄리티가 안 갖춰진 곳도 있어요. 좋은 커피인데도 맛없게 느끼는 사람이 있을 수는 있어요. 그런데 나쁜 커피, 질이 나쁜 커피는 맛없을 확률이 100%예요.

 

 

동네 로스터리샵의 단골이 되세요


여전히 밝혀지지 않은 영역, 감각으로만 느끼는 면이 커피의 매력이자 어려운 점이기도 할 거예요. 25년 커피 덕후로(웃음) 살아온 입장에서 커피에 대해 아직도 어렵다고 느끼는 점은 뭔가요?


어떻게 이렇게 볶았을까.(웃음) 똑같은 커피인데 어쩜 이렇게 잘 볶았을까 싶을 때가 있어요. 절대 따라할 수가 없거든요. 그리고 일기일회(一期一會)라고 하죠. 딱 한 번밖에 만날 수 없는 게 커피 맛에 있어요. 그 맛을 저장할 수가 없는 거예요. 이런 게 커피의 신비함이죠. 서랍에 담을 수 없는 맛이 있거든요. 맛은 경험한 사람만이 기억할 수 있고, 기억한 사람만이 만들어낼 수 있어요. 책에서도 저자가 커피의 쓴맛, 신맛 등을 내는 성분을 다 조사했잖아요. 그리고 그 성분을 다 섞어봤어요. 똑같이 했는데도 그 맛이 안 나는 거죠. 지나치게 쓰거나 했대요. 과학적으로 분석은 되지만 그 수치대로 해도 맛을 낼 수는 없어요. 하지만 그 맛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로스팅으로 그 맛을 만들어내요. 로스터는 성분을 몰라도 만들어 낸다는, 그 감각과 예술의 세계가 커피에 있죠. 과학은 절대 할 수 없죠. 그래서 사람이 필요하고요. 저는 번역을 하고 이 저자가 너무너무 좋아졌어요.

 

로스팅이 커피 맛에 그토록 큰 영향을 미치는데 정작 주문 제작 기계는 기다리지 못하는 지금의 국내 상황에 대한 고민도 많으시겠어요.


현재는 커피를 하는 사람과 사먹는 사람의 수준 차이가 크지 않다고 봐요. 이렇게 말하면 오랫동안 커피 하던 분들은 기분 나빠하실 수 있어요. 하지만 지금은 문화라고 하기에는 기반이 약한 것 같아요. 유행이라고 볼 수 있고요. 이 붐이 한 번 꺼져야 거기서 살아남은 싹들이 서서히 꽃을 피울 거라고 생각해요. 저는 운 좋게 그 과정을 볼 수 있는 시기에 이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죠. 지금은 엄청 과도기라고 봐요. 처음엔 화도 났어요. 맛이 이상한 걸 모르나,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모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저도 기껏해야 25년 마셨는데, 생각했죠. 나도 5년 마셨을 때 다 안다고 생각했어(웃음) 라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된 것 같아요. 커피가 상한 줄도 모르고, 덜 볶인 것도 모르고 집에 과테말라, 케냐AA, 이런 것 다 갖춰놓고, 딱 그 맛이 과테말라인 줄 알고 그런 과정을 다 지나는 것 같아요. 지금은 전반적으로 커피에 대한 이해 정도가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좋은 커피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하실 계획이시죠?


좋은 커피는 장사를 하는 사람의 기본이죠. 그런데 이걸 못 지켰지만 엄청 정성스럽게 한다면 그 정성이 마음에 들어서 단골이 될 수도 있어요. 정말 정성스럽게 한다면 좋은 커피를 가르쳐줄 수도 있을 거고요. 제가 그냥 소비자라면 맛있는 커피만 사서 마시면 될 텐데 이제 저는 이런 책도 번역하고 그랬잖아요. 번역한 책이 네 번째인데요. 책을 낼 때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저의 커피 안에서의 역할을 느껴요. 자기만족의 영역이 있긴 하지만 내가 아는 정보를 잘, 좋은 방향으로 필요한 사람들한테 전달할 수 있고 경험하게 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저희 회사에서 하는 세미나도 있거든요. 이런 책을 쓴 분들이나 책에 등장하는 선생님들을 초대해서 이야기도 듣고 해요. 한국에서 고민하는 로스터들의 의문점을 듣고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어요. 그게 제 역할처럼 느껴져요. 지인들한테 추천할 카페가 없다는 건 슬픈 일이잖아요. 이제는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하죠.

 

커피를 좋아하는 분들이 커피를 좀 더 잘 즐길 수 있도록, 마지막으로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먼저 자신의 입맛에 자신을 가져야 해요. 유행에 끌려 다닐 필요 없어요. 맛없는 건 마시면 안 돼요. 그리고 프랜차이즈보다는 동네에 있는 카페를 가보시면 좋겠어요. 정말 정성을 다해 볶는 분들이 있을 거거든요. 동네 로스터리샵이 있다면 그곳의 단골이 되시면 좋아요. 필요할 때 바로 걸어가서 사올 수 있는 곳을 찾아두세요.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취향을 설명해주면 실패하지 않죠. 절대 얼굴을 알고는 사기 못 쳐요.(웃음) 좋은 커피를 얻을 확률이 높아집니다. 인터넷보다는 동네에서 사시면 좋겠어요. 공생이잖아요. 커피를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매개체로 생각한다면 관계가 중요해지죠. 조금 커피 맛이 떨어지더라도 얘기 나누고, 다음에는 좋은 커피 더 얻기도 하고요. 이것도 커피라서 가능한 것 같아요. 단골이 50%만 되면 절대 망하지 않거든요. 저는 동네 카페들이 망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얼굴 있는 커피를 마셨으면 좋겠습니다.

 


 

 

커피 과학탄베 유키히로 저/윤선해 역 | 황소자리
나처럼 커피에 대해 깊이 알고 싶어하는 사람, 이과가 좋은 사람, 지적 모험을 즐기는 사람, 그리고 무엇보다 커피가 좋은 사람들이 던지는 ‘왜?’라는 질문에 친절히 대답해주는 한 권의 책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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