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SBS의 <동상이몽>을 통해 이재명 성남시장 부부의 일상이 공개됐다. ‘정치인 최초 지상파 예능프로그램 출연’이라는 사실만으로도 큰 화제가 됐다. 거침없는 발언과 빠른 추진력으로 ‘사이다’라고 불리는 이재명 시장은 이 방송을 통해 색다른 면모를 드러냈다. 아내에게 수시로 애정표현을 하는 ‘사랑꾼’이었고, 삼시 세끼 집밥만 먹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집밥 애호가’였다. 이로써 이재명 시장에게는 ‘삼식이’라는 새로운 별명이 생겼다. 시청자들은 아내 김혜경 씨의 비결을 궁금해 했다. 얼마나 맛있고 정갈한 음식이기에 남편이 ‘아내표 밥상이 최고’라고 추켜세울까.
김혜경은 한 권의 책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제목은 『밥을 지어요』 . 남편과 아이를 위해 준비했던 66품의 집밥 레시피를 담았다. 천연 조미료를 만드는 방법부터 철따라 달라지는 밥상 풍경까지, 27년 경력의 전업주부가 들려주는 노하우를 만날 수 있다. 단순히 조리법만 소개한 책은 아니다. 주방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때로는 달달하고 때로는 쌉싸름한, 삶의 이야기를 기록했다. 김혜경은 말했다. “요리에는 그 집만의 사연이 담겨 있다”고. “똑같은 메뉴도 집집마다 맛이 다르듯 저마다의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고. 그런 까닭으로 『밥을 지어요』 에는 정치인의 아내로서, 두 아들의 엄마로서, 한 집안의 딸이자 며느리로서, 김혜경이 걸어온 시간들이 스며있다.
부부싸움 후에도 밥 찾는 남편 “이제는 밥 먹고 싸워요”
인터뷰를 위해 자택으로 찾아뵈었는데요. 이렇게 집으로 찾아오시는 분들이 많지 않다고 들었어요.
작년에 방송 촬영을 하면서 집이 공개가 됐지만, 그 전에는 찾아오시는 경우가 거의 없었어요. 특히 공무원들은 더 그렇고요. 시장 취임한 이후부터 저희 집에 드나드는 사람이 거의 없었어요.
이재명 시장님께서 싫어하시는 거죠? 일과 관계된 사람들이 집에 찾아오는 걸요.
네, 싫어하죠. 조금 병적이었어요. 전임 시장들 중 비리로 문제가 된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조금 과하다 싶을 정도로 특별히 신경을 썼던 것 같아요. 지금도 그렇고요.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나서 보니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겠더라고요.
한편으로는 안심이 되실 것 같아요. 그런 쪽으로는 문제가 안 생길 테니까요.
그렇죠. 그런 면에 있어서는 믿고 맡기죠.
정치인으로서의 행보, 시정 정책과 관련된 이야기도 나누세요?
같이 정책을 짜거나 심오한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니고요. 지방자치단체장이라는 위치가 살림을 하는 거잖아요. 아이들 키우는 일, 어르신 모시는 일, 청소나 시설 등 모든 부분을 포괄해야 되죠. 그렇다 보니까 특히 엄마들, 주부들, 어르신들의 의견을 많이 들어야 하는데요. 제가 아이들 키우면서 한 동네에 오래 살다 보니까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듣게 돼요. 그런 이야기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어지는 것 같아요. 그리고 남편이 염두에 둔 정책이 있으면 ‘이런 건 어떻게 생각해?’ 하고 툭 던져 봐요. 그러면 제가 생각하는 바를 이야기해주기도 하고, 그러면서 이야기를 하게 되죠.
이재명 시장님이 강하고 날카로운 이미지를 갖고 계시잖아요. 아내로서 조언을 하셨을 법도 해요. 조금 부드럽게 해보라고요.
그건 조금 억울한 일인 것 같아요(웃음). 사실 이 사람은 저보다 눈물도 더 많고, 감수성이 굉장히 예민한 사람이거든요. 표현도 저보다 더 부드럽게 하는 편이에요. 그런데 촛불 정국에서 갑자기 부각이 되면서, 국민들이 센 면만을 접하신 것 같아요. 처음부터 그런 이미지로 다가오니까 오해를 조금 하시지 않았나 싶어요.
<동상이몽> 출연이 좋은 기회가 됐을지도 모르겠어요. 방송을 통해서 사랑꾼의 면모, ‘삼식이’로서의 모습이 드러났잖아요.
처음 출연 제의가 왔을 때는 절대 안 한다고 했어요. 살림하는 걸 다 공개해야 하는데, 절대 못한다고 했죠. 그런데 지난 경선 때 전국을 다니면서, 많은 분들이 이 사람에 대해서 오해를 하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솔직하게 보여드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런 마음이 조금 더 커서 출연을 하게 된 거죠.
남편의 감춰진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서 좋으셨나요?
촬영할 때는 정신이 없었죠(웃음). 관찰 카메라를 설치한 상태에서 생활한다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더라고요. 몇 번 하다 보니까 카메라가 있다는 걸 잊어버리게 되기는 하는데, 그래도 긴장 되죠. 끝나고 나서 후련했어요(웃음).
‘삼식이’ 이재명 시장님의 반응은 어땠나요?
남편이 평일에는 출근을 하니까 저희는 주말에만 촬영을 했어요. 그래서 남편이 집에서 밥 먹는 모습이 방송에 많이 나오게 된 건데, 본인은 세상 억울해하죠. 평소에는 집에서 하루 한 끼 먹으면 많이 먹는 건데, 자기가 집 밥만 찾는 ‘삼식이’로 보여졌으니까요.
책을 보면, 억울해 하실 수 없을 것 같던데요(웃음). 부부싸움 후에도 밥을 찾으신다면서요?
네. 처음에는 제가 이해를 못하겠더라고요. ‘싸우는데 밥이 넘어가나?’ 싶고(웃음). 그런데 밥을 안 주면 그것처럼 화내는 일이 없었어요. 전날 싸워도 아침은 꼭 줘야 되는 거예요. 처음에는 안 줬는데, 그러면 싸움이 너무 커지더라고요. 싸움의 이유가 사라지고 밥 안 주는 걸로 다투게 되니까요(웃음). 그래서 ‘안 되겠다, 밥은 주고 싸우자’ 생각해서 이제는 밥 먹고 싸워요(웃음).
용감한 남편이라는 생각도 들어요(웃음). 똑같이 선거 운동을 할 때도 집에서 밥을 먹고 싶다고 하셨잖아요. 그때는 정말 화가 나셨었죠?
화났죠. 아직도 그때가 생각나는데, 제가 화가 나서 다시 전화를 했어요. 나도 이렇게 힘든데 밥상을 차리란 말이냐고요. 그런데 본인이 너무 힘들었던 거예요. 라면을 먹더라도 집에서 저랑 편안하게 먹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사실 선거 때는 이동하는 차 안에서 김밥을 먹거나 행사장에 가서 대충 때우거든요. 그런 게 계속 이어지니까 너무 힘들었던 거죠. 집밥이 먹고 싶었다기보다도 심적으로 너무 힘들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집에 일찍 들어오겠다는 뜻으로 했던 말인 것 같아요.
선거운동 기간에는 대화하실 시간도 별로 없으시죠? 너무 힘드니까요.
그렇죠. 그리고 같이 다니면 시간이 아까우니까 서로 다른 일정으로 떨어져서 다니거든요. 말할 시간이 거의 없죠.
그런 면에서 정신적인 허기가 있으셨나 봐요. 가까운 사람과 대화하면서 밥을 먹고 싶은 마음이셨겠죠?
그렇죠. 편하게 같이 밥 먹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선거 때는 예민해요. 아니라고 해도, 저도 예민해지고 그 사람도 그래요. 올해도 선거가 있는데, 이럴 때는 희한하게 해가 바뀌면서부터 예민해지더라고요.
어떻게 먹고 어떻게 살았는지, 솔직하게 썼어요
말씀하신 것처럼,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는 시기인데요. 이때 출간을 하신다는 게 부담스러우셨을 것 같아요.
네. 사실 작년에 책을 쓰기로 마음먹었을 때는 그 생각을 못했어요. 해가 바뀌고 선거 국면으로 전환이 되면서 ‘괜한 일을 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이 책이 전문 요리책이라기보다는 그냥 살아온 이야기를 하는 책이잖아요. 솔직하게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쓰자고 생각하니까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더라고요.
책 뒤에 ‘남편의 레시피’가 실려 있어요. 이재명 시장님이 쓰신 글인데요. 처음 읽으셨을 때, 어떤 느낌이 드셨어요?
예전에 오색약수에 놀러간 적이 있었어요. 아이들이 아장아장 걸을 때였는데, 등산을 하면서 재미로 점을 한 번 봤었어요. 거기 고양이 할매라고, 점보는 할머니가 계셨거든요. 그런데 제가 밖에 나가서 활동을 해야 되는 사주라고 하시는 거예요. 그때 제가 연년생 남자아이 둘을 키우느라 지쳐 있었는지, 그 말이 너무 반가웠어요. 그래서 ‘이것 봐, 나는 밖에 나가야 돼’라고 했었거든요(웃음). 남편이 그 말을 기억하고 있더라고요. 고마웠죠. 조금 감동했어요.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거니까요.
평소에는 그런 마음을 표현하지 않으시나 봐요.
그렇죠. 부부가 살면서 그런 말을 잘 안 하게 되죠(웃음). 각자의 역할을 하면서, 그게 당연한 것처럼 여기면서 살죠.
글을 읽고 감동받았다는 이야기는 하셨어요?
안했죠(웃음). 저는 표현을 많이 안 해요(웃음).
이재명 시장님은 어떠세요? <동상이몽>에서는 애정표현을 많이 하시던데요.
많이 하죠. 그런데 ‘낄끼빠빠(낄 데 끼고 빠질 데 빠진다)’를 잘 못하죠(웃음).
일부 시청자들은 가부장적인 모습이 보인다고 했어요. 이후에 이재명 시장님도 인터뷰를 하시면서 자신에게 그런 모습이 있는 건 인정한다고 하셨고요. 그런 이유로 다툰 적은 없으세요?
남편이 경북 안동 출신이에요. 저희 어머님은 대구 분이시고요. 집안에 전통적인 분위기가 있는데, 이 사람은 노력을 많이 한 편이에요. 아이들 키울 때도 저는 주말에 친구들이랑 쇼핑을 가거나 공연을 보러 갔어요. 그때 남편은 변호사 일을 하면서 주말에는 시민 모임 활동을 했는데, 아이들을 데리고 행사를 갔거든요. 저한테는 친구들이랑 시간 보내라고 휴가를 주고요. 그때는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까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더라고요.
첫 책입니다. 받으셨을 때 느낌은 어떠셨어요?
처음에는 책을 못 보겠더라고요. 떨렸고 긴장됐어요. 책이 나오기 전에 수정 작업을 하면서 내용을 다 봤는데도, 펼쳐보기가 조금 두렵더라고요. 그래서 남편이 먼저 봤어요. 보고 나서 ‘괜찮아, 책 잘 나왔어’ 그러더라고요. 저는 그 말을 듣고 나서 책을 펼쳐봤는데, 보고 나서는 ‘참 예쁘게 나왔다’ 싶었어요(웃음). 사실 요리책은 전문가들이 주로 쓰잖아요. 저는 전문가가 아니라 조금 부끄럽기도 했고, 책을 준비하면서 걱정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생각해 보니까 제 책을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계신다면, 물론 레시피도 중요하지만, 제가 어떻게 먹고 어떻게 살았는지 그 이야기도 궁금해 하실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편안한 마음으로 솔직하게 쓰자고 생각했어요. 제 책을 보시면서 ‘김혜경이라는 사람이 이렇게 살았구나, 이럴 때는 이런 마음이었겠다’ 하고 공감해 주시면 너무 감사할 것 같아요.
단순히 레시피만 실려 있는 게 아니라, 음식과 관련된 여러 이야기들이 담겨 있어요. 주방 도구에 대해서도 쓰셨는데, 한 번 사시면 굉장히 오래 쓰시더라고요.
저만 그런 건 아닌 것 같고 살림하는 주부님들이 다 비슷하지 않을까 싶어요. 특별하게 기회가 되지 않는 한 살림을 다 바꾸는 일이 드물 것 같은데요. 이제는 냄비 바닥이 다 떨어져서 ‘바꿀 때가 됐나 보다, 한 번쯤 바꿔볼까’ 생각하는 중이에요.
주방뿐만 아니라 집 전체가 단출한 느낌이에요. ‘혹시 검소한 이미지를 연출하는 거 아닌가’ 하고 의심하는 분들도 계시겠어요.
이 정도면 꽤 잘 사는 거 아닌가요? 아닌가(웃음). 저는 그냥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만약에 저희가 이사를 갔거나 어떤 변화가 있었으면 모르겠는데요. 이 집에서 21년째 살고 있으니까요. 바꿀 필요성을 크게 못 느끼고,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정치인의 아내로 산다는 것
간혹 남편들이 ‘우리 엄마 음식’을 찾을 때가 있잖아요. 시어머님의 음식 중에서 가장 비슷하게 만드실 수 있는 건 뭔가요?
저는 자라면서 한 번도 콩가루를 먹어보거나 구경한 적이 없었는데요. 어머님께서 콩가루로 국을 끓이시더라고요. 그게 생각보다 만들기 까다로워서, 처음에 끓일 때는 콩죽처럼 돼요. 그런데 이제는 거의 비슷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지난번에 끓였을 때 남편 반응이 좋더라고요(웃음). 조금 몽골 몽골하게, 냉이에 콩가루가 붙어 있게 끓여야 되는데, 거의 30년이 다 되어가니까 흉내는 조금 내는 것 같아요(웃음).
다식은 어떠세요? 시어머님의 다식판을 갖고 계신다면서요?
만들어 봤는데, 모양을 내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사실은 사진을 찍어서 인스타그램에 올리려고 했어요. 자랑하려고요. 그런데 남편이 보더니 ‘안 되겠다’ 그러더라고요(웃음). 다식을 만드는 게, 송홧가루에 꿀을 개어서 반죽하는 것도 힘들지만, 모양을 예쁘게 내는 게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어머님의 손맛과 추억 거리를 소환하는 데는 실패했어요.
이재명 시장님께서 아내의 요리를 냉정하게 평가하시는 편인가요?
그러면 밥을 못 얻어먹지 않을까요(웃음)?
다식을 보고 이건 아니라고 말씀하셨고, 콩가루국도 ‘이제 제법 만드네?’라는 반응을 보이셨잖아요(웃음).
그러네요(웃음). 그래도 반찬 투정을 한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똑같은 반찬을 계속 상에 올려도 투정을 안 해요. 어떤 사람은 갓 지은 밥만 좋아하기도 하는데, 이 사람은 냉장고에 있던 밥도 데워서 잘 먹어요. 그런 건 너무 좋아요. 그리고 여러 가지 차리는 걸 싫어해요. 가짓수 많은 거 싫어하고요. 딱 먹을 것만 차리는 걸 좋아해요. 트레이 하나에 다 담을 수 있는 정도면 되고요. 그 이상 되면 왜 이렇게 많이 했냐고, 먹을 게 너무 많다고 해요.
까다로운 ‘삼식이’는 아니시군요(웃음).
까다롭지는 않아요(웃음).
가장 좋아하시는 메뉴는 뭔가요?
제가 만든 건 다 잘 먹어요. 심지어 제가 사다주는 것도 잘 먹어요. 저도 바쁘니까 매일 집에서 준비한 음식만 먹지는 않거든요. 사서 먹기도 해요.
반찬가게를 이용하실 때도 있으세요?
그럼요. 집 앞 시장이 얼마나 잘 되어 있는데요(웃음).
재래시장을 자주 이용하신다고요. 사람들이 다 알아볼 텐데, 불편하지 않으세요?
집 바로 앞에 시장이 있어서 장보러 가는데요. 사실 이 동네는 저희 아이들 아주 어릴 때부터, 유모차에 태워서 다닐 때부터 살던 데예요. 남편이 시장이 된 후에 만난 사람들이 아니에요. 그래서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아요. 시장에 가면 ‘동호 엄마’, ‘언니’ 이렇게 불러요.
그래도 제약이 있을 것 같아요. 하고 싶은 말을 못 하실 때도 있을 거고요.
아무래도 신경 써야 되겠죠. 그리고 방송이 나간 뒤로는 알아보시는 분들이 너무 많아요. 공영 방송의 힘이라는 게 대단하더라고요. 밤에 집 앞 공원에 나갈 때도, 모자 쓰고 둘이 손잡고 지나가는데 알아보시고 인사해 주세요(웃음). 깜짝 놀랐어요. 많이들 알아보세요.
정치인의 아내로 사시면서 가장 힘드신 건 뭐예요?
가장 힘든 건.... 가족들이 피해 받는 거죠. 사실 남편은 직업 정치인이고, 저는 그 아내니까 당연한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주변 가족들이 신경 쓰게 되고 오해 받게 되는 부분들이 있으니까 죄송하죠. 그런 게 제일 힘든 것 같아요.
남편이 처음 시장선거에 출마했을 때, 이혼을 생각하셨다고 들었어요.
네, 이혼 서류에 제 도장 찍고서 남편한테도 도장 찍으라고 그랬어요.
정치를 시작도 하기 전이었는데요. 왜 그러셨어요?
정치를 하다가 잘못되면 집안이 풍비박산 난다는 이야기가 있잖아요. 정치를 한다는 게 돈 문제도 얽혀있는 거고, 개인 생활이라는 것도 없고요. 그리고 남편이 정치를 하리라는 건 예상도 못했던 일이었어요. 그런데 해보니까, 힘들기는 하지만 ‘이 사람처럼 정치하는 것도 가능하구나’ 싶더라고요. 무지 힘들지만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재명 시장님처럼 정치를 한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음... 금전적으로 투명하고, 주변에 떳떳해야 되고, 어디에 줄을 서지 않아야 되고, 소신을 지켜야 되고, 처음 생각이 변하지 않고 끝까지 가야 되죠. 누구나 다 그렇게 말은 하지만, 참 쉽지 않은 일이잖아요. 그런데 제가 옆에서 보기에 남편은 ‘아, 정말 대단하다’ 할 정도로 잘 지켜가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이 정도면 뭐, 조금 힘들기는 하지만 괜찮아’ 싶은 마음이 들면서 이해하게 됐어요.
남편 이재명은 ‘솔직한 사람’, ‘그림자가 느껴지지 않는 사람’
모든 전업주부가 요리를 좋아하는 건 아니잖아요. ‘안 할 수 있다면 안 하고 싶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요. 요리가 즐거우세요?
저도 안 할 수 있으면 안 하고 싶죠(웃음). 제일 맛있는 건 남이 해주는 밥이에요(웃음). 그런데 음식도 하다 보면 계속 하게 되는 것 같아요. 하기 싫어서 안 하게 되면 점점 더 안 하게 되는 것 같고요. 한 번 장을 봐와서 요리를 하면 계속 만들 게 생기더라고요. 똑같은 재료를 가지고 만들어도 다 다른 맛이 난다는 게 요리의 재미인 것 같아요. 이 집 음식과 저 집 음식의 맛이 다르고, 소스나 조리 시간만 바꿔도 다른 맛이 나잖아요. 저는 음악을 공부했는데, 요리에도 음악처럼 변주가 있는 것 같아요. 요즘 TV나 인터넷을 보면, 예전에 배웠던 음식인데도 변형시켜서 새롭게 만들더라고요. 그런 걸 보면 재밌어요. 계속 배울 게 생기고요.
‘오늘은 정말 요리하기 싫다’ 싶은 날도 있잖아요. 그럴 때는 어떻게 하세요? 밖에 나가서 먹자고 하세요?
사실 퇴근하고 집에 들어온 사람을 데리고 나가서 밥 먹기가 쉽지 않아요. 저희 남편뿐만 아니라 사회에서 일하는 분들이 정말 힘들잖아요. 지쳐서 집에 들어온 사람한테 따뜻한 밥을 해서 주고 싶죠. 그럴 때 저는 솥밥을 만들어줘요. 무밥, 톳밥, 연근밥, 우엉밥 등 계절에 맞춰서 조금씩 달라지는데요. 재료가 없을 때는 그냥 콩나물밥을 해요. 따뜻하게 지어서 양념장이랑 김치랑 차려주면 밥 맛있게 먹었다고 해요. 무쇠솥이나 돌솥, 냄비에 끓여주고요. 휴일 같은 때 그마저도 하기 싫으면 그냥 양푼에 밥 푸고 소금, 참기름 쳐서 짠지 같은 거 넣고 주먹밥을 만들어서 손으로 입에 넣어줘요(웃음). 한 상 차려서 먹을 때도 있지만 귀찮으면 그렇게도 해요.
조미료나 육수도 직접 만들어 쓰시잖아요. 항상 떨어지지 않게 준비해 두시나요?
가끔은 떨어질 때도 있는데요. 새우가루나 멸치가루, 다시마가루 같은 건 만들기 쉽잖아요. 그런 건 넉넉하게 만들어서 냉동실에 넣어놔요. 조금씩 꺼내두고 먹어요. 맛간장, 엿간장 같은 것도 냉장고에 몇 달씩 보관할 수 있으니까 넉넉히 만들어 놓고요. 조림 같은 걸 만들 때 그냥 진간장을 쓰는 것보다 훨씬 맛이 좋거든요. 멸치육수도 냉동실에 소분해서 보관해요. 그때그때 금방 해동해서 쓸 수 있으니까요.
이재명 시장님이 프로포즈 하실 때 어릴 때 쓴 일기를 주셨다면서요? 굉장히 의외예요.
저도 의외였어요. 저라면 안 줄 것 같거든요. 잠결에 쓴 부분은 글씨를 알아보기도 힘들어요. 민망한 이야기, 누구한테 보여줄 수 없는 내용도 있고요. 그래서 처음에는 ‘이런 걸 왜 주지?’ 싶었어요. 그런데 최근에 다시 읽어보니까, 의미가 있다는 걸 알겠더라고요. 그때는 어떤 의미인지 잘 모르고 읽었던 것 같아요.
어떤 의미가 있는 것 같으세요?
본인의 인생을 솔직하게 다 보여준 거잖아요. 저라면 숨길 것 같아요. 사실 저는 고등학교 때 사진도 안 보여줬거든요(웃음). 그런 면에서 보면 너무 솔직하지 않아요? 지금도 그래요. SNS에서도 그렇고 인터뷰에서도 그렇고, 굳이 안 해도 될 말을 할 때가 있어요. 어떤 때는 제가 ‘그 말을 왜 해? 굳이 할 필요가 뭐 있어?’라고 말하기도 해요. 그러면 ‘어차피 알게 된다, 누군가에 의해서 공개가 될 거면 내 입으로 내가 밝히는 게 낫다’고 해요. 그런 주의예요. 저는 조금 조마조마한데, 이제는 믿는 마음이 더 커요. 국민들도 그런 면을 많이 인정해 주시는 것 같아요.
솔직하고 시원하게 말씀하시는 모습이 시장님 못지않으세요(웃음).
인터뷰가 있을 때 남편한테 물어봐요. 무슨 말을 해야 되냐고, 어떻게 이야기해야 되냐고. 그러면 솔직히 말하라고 해요. 거짓말하면 절대 안 된다고요.
거짓말 때문에 부부싸움을 하신 적은 없나요?
거짓말을 해서 싸운 적은 없는 것 같아요. 제가 거짓말하는 걸 정말 싫어하는데, 그래서 넘어갔나 봐요. 너무 솔직해서. 첫 날 만나서 밥을 먹는데 그런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자기는 있는 상황을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요. 그리고 형제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 다 이야기해줬어요. 그때 누님은 식당에서 일하셨고 큰 형님은 탄광에서 일하실 때였어요. 작은 형님은 씽크대 도색을 하셨고요. 그런 걸 다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거예요. 사실 저도 깜짝 놀랐는데, 그런 솔직함이 좋았나 봐요. 반대로 숨겼다면, 제가 안 만났을 것 같아요.
정치인으로서 순탄치 않은 길을 걸어오셨어요. 곁에서 지켜보시면서 안쓰러운 마음이 드셨을 것 같아요.
그렇죠. 대충 눈 감고 넘어가도 될 일을 굳이 들춰서 말하고, 꼬집어 말하지 않아도 될 일을 앞장서서 이야기하고, 그런 것들이 안타깝기도 하죠. 그런데 누군가는 해야 될 일이잖아요. 처음에는 그런 게 싫었는데 세상이 조금씩 바뀌어가는 걸 보니까 생각이 달라졌어요. 특히 촛불 정국을 지나면서 많은 것들이 바뀌었잖아요. 지난 대선 경선을 같이 겪으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대통령 후보가 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때 이 사람만의 역할이 있었다고요. ‘세상에 태어나서 이 정도 역할을 해줄 수 있다면, 그것도 대단한 일이구나’ 싶었어요. 그래서 이제는 이혼한다고 협박하지 말고(웃음), 응원도 해줘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성장과정에서 우여곡절도 많으셨잖아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학교도 제대로 못 다니시고, 공장에서 일하다 상해를 입기도 하셨어요. 돌이켜 보면 짠한 마음이 드시죠?
지금처럼 인터뷰를 하거나 다른 사람들한테서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는 그렇죠. 안쓰러운 마음이 들어요. 그런데 생활하다 보면 그런 게 전혀 안 느껴지거든요.
전혀 그림자가 안 느껴지세요?
네. 그런 면이 제가 이 사람을 선택한 이유이기도 해요. 사실 개천에서 난 용인데, 그런 사람들 중에는 그쪽을 돌아보지 않거나 아예 외면하는 경우도 있잖아요. 그게 콤플렉스인 사람도 있고요. 그런데 이 사람은 그런 게 없어서 참 좋았던 것 같아요. 그때를 잊지도 않고, 나와 내 가족만 챙기는 것도 아니고, 그런 면이 되게 좋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보면서 짠하다는 생각을 할 때는 없어요(웃음). 이렇게 인터뷰를 하거나 찬찬히 생각을 해보면 ‘그런 면도 있었구나’ 싶은 거죠.
정치를 그만두길 바란 적도 있어요
이재명 시장님은 늘 에너지가 넘치고 강한 분처럼 보여요. 힘들 때 아내에게 기대는 일도 없으실 것 같은데요. 어떤가요?
음... 힘들어할 때도 있죠. 그런데 본인이 해야 되는 일에 대해서 ‘힘들어, 안 할래’라고 한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제가 그렇게 말한 적은 있어요. 이제 그만하라고. ‘그 정도 했으면 됐어, 그만해’ 하면서 꼬신 적은 있죠. 남편이 ‘이제 그만 할까?’라고 말한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가장 강하게 말리신 적은 언제였어요?
우리 시누이가 안타깝게 세상을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가족들의 비화가 공개되었을 때였어요. 당사자들뿐 아니라 가족과 친척들까지 언급돼 오해를 받는데, 나서서 자세히 해명할 수도 없고... 그때는 정말 정치를 그만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시장님은 어땠나요?
자기가 넘어야 될 산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업’이라고 표현하더라고요.
‘있는 걸 없다고 할 수는 없다’고 하신 말씀이 생각나네요.
그렇죠. 그리고 그런 믿음이 있는 것 같아요. ‘진실이 있고, 내가 바르게 생각하고, 성실하게 하면, 언젠가 사람들이 다 알게 된다’는 믿음. 너무 진부한 표현이지만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인 거죠. 또 대중을 속일 수는 없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몇몇 댓글이나 영상, 방송 한두 개 가지고 대중을 속일 수는 없다고 믿는 것 같아요.
그런 생각에 동의하시나요?
처음에는 조금 걱정됐어요. 종북으로 몰릴 때는 이러다가 무슨 일이 생기는 거 아닌가 싶었죠. 그런데 한 고비, 한 고비 넘어가면서 ‘안 되면 그만두면 되지 뭐’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렇게 생각하니까 편해졌어요. 한창 시장 재선 선거할 때는 ‘잘 돼서 당선되면 당신 소원 이루는 거고, 당선 안 돼서 정치를 안 하게 되면 내 소원 이루는 거야. 안 되면 나는 더 좋지’라는 생각이었어요. 그렇게 생각하면 걱정할 필요가 없는 거잖아요.
원래 성격이 대범하신 거예요? 아니면 선거를 같이 치르시면서 달라지신 거예요?
그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었던 것 같아요(웃음). 달리 어떻게 하겠어요(웃음).
‘김혜경’이라는 한 사람보다 ‘이재명의 아내’로서 이야기하실 때가 더 많잖아요. 아쉽거나 속상하실 때는 없으세요?
젊었을 때는 오로지 나 자신으로 보이고 싶었죠. 내 이름으로 무대에 서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요.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김혜경’보다 ‘이재명의 아내 김혜경’으로 좋은 일을 더 많이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 편이 더 효과적이잖아요. 그래서 내 이름이나 얼굴을 내세우는 거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을 안 써요.
책에서 이재명 시장님은 “내 아내도 대명천지에 “나 이런 사람이오”하고 얼굴 내밀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왔다”고 쓰셨어요. 남편으로서 미안한 마음이 있으셨나 봐요. 항상 ‘이재명의 아내’로만 소개되니까요.
그랬었나 봐요.
시장님의 바람처럼 ‘나 이런 사람이오’라고 말씀하신다면, 김혜경이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 것 같으세요?
‘이재명의 아내’, ‘이동호, 이윤호의 엄마’인 김혜경이겠죠.
세 사람을 빼고 이야기한다면요?
저희 큰 아들이 사춘기를 심하게 앓아서 제가 많이 속상했었어요. 자기 인생은 자기 거라고 주장하더라고요. 그때 제가 ‘네 인생까지 포함해서 내 인생이야’라고 말했었는데, 마찬가지 아닐까 싶어요(웃음).
우문현답입니다(웃음). 책에 보면 이른바 ‘재명표 메뉴’가 실려 있어요. 시장님이 직접 만드시는 국수, 배추전의 레시피인데요. 실제로 맛이 있나요?
국수는 꽤 그럴 듯해요. 책에 실린 사진을 보시면 국수 위에 달걀 지단이 올라가 있는데, 사실 그것 때문에 촬영 중에 조금 다툼이 있었어요(웃음). 이 사람이 지단을 빼야 된다고 그러는 거예요. 자기가 언제 지단을 부쳐 넣었느냐고요, 이건 리얼이 아니라면서 굳이 빼야 된다고 하더라고요(웃음).
‘재명표 메뉴’에 점수를 매기신다면, 몇 점을 주시겠어요?
음... 90점? 생각보다 만들기가 어렵지 않은데 희한하게 맛이 나요. 특히 배추전은 묘한 맛이 있어요.
이재명 시장님이 요리에 소질이 있으신 걸까요?
요리보다는 행정이나 정치가 나은 것 같아요(웃음). 그래서 그 사람은 정치를 하고 저는 요리를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웃음).
밥을 지어요김혜경 저 | 김영사
오래된 손때 묻은 물건에는 요리에 얽힌 추억과 사연들이 소록소록 묻어있고, 도구나 그릇을 활용해 센스를 더하는 살림 노하우는 감각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