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무성은 재즈를 말한다. 전문 잡지를 만들고, 책을 쓰고, 음반을 프로듀싱하고, 영화를 제작한 것은 모두 재즈를 이야기하기 위함이었다. 그가 남긴 자취는 재즈와 대중을 잇는 다리가 되었다. 가장 초입에 놓인 것은 『재즈 잇 업(jazz it up)』이라는 한 권의 책이다. 여느 만화처럼 술술 넘기다 보면 재즈 역사의 전반적인 흐름을 알 수 있다. 『재즈 잇 업』은 출간 후 꾸준히 사랑을 받아왔고, 절판 후 독자들의 애를 태워왔다. 그리고 출간 15년을 맞아, 드디어, 개정증보판으로 돌아왔다. 남무성은 다시 재즈를 말한다.
지난 3월 2일, 송파구 방이동에 자리한 재즈카페 ‘재즈잇업’에서 남무성 평론가를 만났다. “재즈는 변주의 음악”이라고 말한 그는 새로 출간된 『재즈 잇 업』또한 기존의 초판본을 변주한 것이라 말했다.
다시 읽는 『재즈 잇 업』
다시 쓴 책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아요. 개정판에서 많은 부분이 바뀌었어요.
15년 전에 책을 썼을 때는 많이 어렸던 것 같아요. 30대 초반이었으니까 그렇게 어린 나이는 아니었지만, 뭐랄까, 의욕이 더 앞섰다고 할까요. 제가 전문 만화가도 아닌데다가 『재즈 잇 업』에서 만화를 처음 그렸어요. 이렇게 반응이 좋을 거라는 예상도 못 했고요. 그러다 보니까 나이가 들면서 점점 부끄러워지더라고요. 성에 차지 않는 책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아쉬움이 많은 채로 냈던 책이고, 늘 빨리 개정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그런데 다른 일들을 하느라 뒤로 미뤄졌고, 아예 절판을 시킨 거예요.
절판의 이유를 여쭤 봐도 될까요?
작가 입장에서는 아쉬운 점이 보이더라고요. 전날 밤에 쓴 편지를 다음 날 아침에 봤을 때의 느낌 같은 거죠. 그런데 책은 계속 보여지고 있잖아요. 그래서 출판사와 계약기간이 끝날 때 이야기를 했어요. 일단 절판을 시키기로 한 거죠. 그게 3~4년 전의 일이에요. 이번에는 작심하고 미뤄왔던 개정을 한 거고요.
중고책이 굉장히 높은 가격에 거래됐다고 들었어요. 한 권 가격이 10만 원정도 됐다고요. 작가로서 기분이 좋았을 것 같아요(웃음).
저도 초판본을 갖고 있지 않아서 사려고 찾아봤어요. 그런데 너무 비싸더라고요(웃음). 조금 비싸도 기념으로 가지고 있어야 된다고 생각했는데, 너무 비싸서 안 샀어요(웃음). 2권에 15만 원정도 하더라고요. 더 낮은 가격으로 중고 장터에 나올 때도 있었어요. 그런데 가보면 이미 팔리고 없더라고요. 몇 번 기회를 놓쳤죠. 그러면서 생각한 게, 개정판이 나오면 가격 거품이 조금 빠질 것 같았어요. 요즘도 가끔 검색을 해요. 저한테는 초판본이 못난 자식이지만, 그래도 갖고는 있어야 될 것 같아서요. 개정판이 나오니까 중고거래가가 살짝 내려가기는 했더라고요. 조금 더 가격이 떨어지면 사려고 해요. 아마도 조만간에 사지 않을까 싶어요(웃음).
독자들이 책을 선물할 수도 있겠는데요?
아마 이런 상황을 모르실 거예요. 당연히 제가 초판본을 갖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실 것 같아요. 이번에 『재즈 잇 업』이 나오고 나서 페이스북으로 출간소식을 알렸는데요. 많은 분들이 ‘좋아요’도 눌러주시고 자신이 갖고 있는 책을 사진 찍어서 올려주셨어요. 그런데 2003년에 출간된 버전을 갖고 계신 분들도 있더라고요. 갖고 싶은 마음은 들었지만 달라고 할 수는 없었죠(웃음). 2003년 초판본은 진짜 찾기 힘들거든요. 그 책은 ‘자라섬재즈페스티벌’을 만든 인재진 형이랑 같이 미니북으로 만든 거였어요. 1년 동안만 판매를 하고 그 뒤에는 출판사에서 책이 나왔는데요. 그 때 만든 책도 갖고 계신 분들이 있더라고요.
독자들이 책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거잖아요. 작가에게 더 기쁜 일은 없겠죠.
너무 송구스러워요(웃음). 『재즈 잇 업』 은 운이 좋은 책이에요. 재즈를 만화로 그린 책이 없다 보니까 많은 분들이 봐주신 거죠. 그리고 요즘에는 젊은 학생들이 실용음악에 관심이 많잖아요. 음악을 하려면 재즈를 배우고 들어야 한다는 인식도 많아졌고요. 그러면서 입소문이 난 거라고 생각해요.
『재즈 잇 업』이 출간되던 시기만 해도 대중에게 재즈는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것, 특별한 사람들의 고급문화 정도로만 인식되던 때였다”라고 적으셨어요. 지금은 달라졌다고 생각하세요?
재즈의 저변은 그때보다 훨씬 넓어졌죠. 공연장 입장료가 조금 비싸도 기꺼이 지불하고 즐기시는 분들도 많아졌고요. ‘자라섬재즈페스티벌’이나 ‘서울재즈페스티벌’을 봐도 티켓 가격이 만만치 않은데 많은 분들이 찾아오시잖아요. 사실 재즈 문화가 자리를 잡으려면 먹고 사는 일에도 여유가 생겨야 하거든요. 살기 힘든데 어려운 음악까지 듣는다는 게 쉽지 않죠. 이전에 비해서 비약적으로 발전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것 같아요. 재즈 문화를 향유하는 계층이 생긴 것 같고요. 재즈 음악을 하는 사람들도 훨씬 많아졌어요. 질적으로도 양적으로도 그래요. 수준 있는 젊은 친구들이 많아졌어요. 공급과 수요가 잘 맞고 있죠.
아쉬운 점도 있을 것 같아요.
편중된 측면이 있기는 해요. 잘 나가는 재즈 뮤지션은 정해져 있거든요. 뮤지션이 많아졌지만 방송에서 비춰주지도 않고 연주할 무대도 별로 없어요. 유럽은 재즈 뮤지션들이 클럽 활동만 해도 지원금이 나와요. 일본도 그렇고요. 그런데 우리의 경우는, 연주자가 늘어났고 대중적인 인식도 생겼고 즐기는 사람들도 많아졌는데, 그걸 수용할 만한 시스템이 마련돼 있지 않은 것 같아요. 다양한 장르가 골고루 발전하려면 무대도 많이 생겨야 하고 일단 매체에서 비춰줘야 하는데, 그런 부분들은 아직 많이 부족한 것 같아요.
“재즈는 아는 만큼 들리는 음악”이라고 말씀하셨는데요. 음악을 듣는 데 꼭 공부가 필요할까요? 그냥 들었을 때 좋으면 되는 거 아닌가요?
그건 맞는 말이에요. 음악(音樂)은 음학(音學)이 되면 안 돼요. 쉽게 말해서 음악의 궁극적인 목적은 행복이에요. 들었을 때 행복하면 되는 거죠. 음악을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추상화도 그릴 수 있고 무엇이든 자유롭게 할 수 있고요. 그런데 재즈는 조금 노력이 필요한 음악이에요. 만만한 음악은 결코 아니에요. 예전의 저는 이렇게 이야기하지 않았어요. ‘알고 보면 재즈 쉬워, 광고의 배경음악으로 나오는 음악 중에도 재즈가 많아’라고 말했어요. 그런데 그건 재즈의 입구만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냥 간판만 보여주는 거거든요. 아무리 달콤하고 무드가 있다고 해도, 그런 곡만 서너 곡 들으면 질려요. ‘이게 재즈의 전부인가’ 싶은 거죠. 사실 재즈라는 음악은 들으면서 사색도 할 수 있고, 그 골격을 들여다보면서 매력을 느끼게 돼요. 그 정도까지 가려면 조금 노력이 필요해요. 보통의 음악은 처음에는 쉬운데 좋아해서 파고들다 보면 어려워요. 재즈는 반대예요. 처음에는 어려워요. 그런데 그걸 참으면 점점 더 들리는 거죠.
처음에 공부해야 하는 건 뭔가요? 『재즈 잇 업』에 실려 있는 재즈의 탄생과 변화 과정, 대표적인 뮤지션과 음반, 그런 것들인가요?
일단은 그 말도 맞아요. 대개 그렇게 하죠. 그런데 누가 옆에서 팁을 주면 좋잖아요. 우주처럼 많은 음악 중에서 정말 좋은 걸 콕 집어주는 사람이 있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런 게 필요해요. 왜냐하면 명반과 감동이 비례하는 건 아니거든요. 본인이 들으려는 노력을 해야 하고 자료 조사도 많이 해야 돼요. 그러면서 신중하게 하나하나 컬렉션해가는 것도 필요해요. 보통 우리가 스탠다드라고 하는 곡들이 있는데, 그걸 먼저 듣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스탠다드라는 게 말하자면 올드팝이에요. ‘Over the Rainbow」, 「Moon River」, 「Fly Me to the Moon」 같은 곡들은 한 번쯤 들어봤던 멜로디잖아요. 흔히 재즈가 변주의 음악이라고 하는데, 어떤 악기로 연주하느냐에 따라서 느낌이 다르고 장르 스타일에 따라서도 맛이 바뀌어요. 스탠다드 곡이 그렇게 많지는 않아요. 제가 볼 때는 20곡정도 되는 것 같아요.
생각보다 적은 숫자예요.
그 정도만 알고 있어도 뮤지션이 어떤 곡을 변주하는지 알 수 있어요. 멜로디의 메인 테마는 나오거든요. 국내외를 막론하고 거의 대부분의 재즈 뮤지션들이 공연에서 스탠다드를 해요. 재즈는 작곡이 중요한 음악이 아니거든요. 쉽게 말하면 기존에 있던 테마를 가지고 새롭게 요리하는 거예요. 요리하는 부분의 앞뒤로는 테마를 하게 돼있어요. 일종의 룰 같은 거예요. 처음에는 밴드 전체나 솔로, 듀오가 똑같은 테마를 해요. 우리는 이런 음악을 한다고 제시하는 거죠. 그 다음에는 돌아가면서 솔로를 해요. 변주를 하는 거예요. 그리고 끝날 때는 다시 테마로 돌아가서 같이 연주를 해요. 다른 형식들도 있지만, 이 정도의 재즈 감상법만 알아도 지금 어떤 테마를 연주하고 있는지 알 수 있어요. 거기에서 더 나가면 즉흥 연주를 들으면서도 원래 곡의 어느 부분에 해당하는지 알 수 있고요. 그런 재미가 재즈에 있는 거죠.
쉬우면서도 가볍지 않아야 한다
재즈를 쉽게 알리기 위해서 만화라는 형식을 택하셨는데요. 실제로 많은 위트가 담겨 있는 책이고, 일부러 고상한 척하지 않으려고 하신 것 같아요.
네, 그렇게 하고 싶었고요. 처음 『재즈 잇 업』이 나왔을 때만 해도 재즈를 비틀어서 말하는 문화가 아니었어요. 재즈는 고상하고 멋있는 음악이라는 인식이 있었는데요. 저는 고우영 선생님의 『삼국지』를 너무 좋아했어요. 그 만화에 담긴 해학, 자유로운 비틀기, 풍자를 흉내 내고 싶었어요. 어렸을 때부터 그런 생각이 있었어요.
난이도 조절에 대한 고민도 하셨겠어요.
『재즈 잇 업』은 일종의 딜레마를 가지고 있는 책이에요. 쉽게 읽을 수 있는 재즈 입문서로 알려져 있는데, 읽으면서 어렵다고 느끼실 수도 있어요. 완전히 입문기초자 분들에게는 쉽지만은 않다는 거죠. 대신에 오래 두고 볼 수는 있을 거예요. 한 방에 확 볼 수 있는 입문용은 아니라고 생각하고요. 책을 쓰면서 마니아들도 보게끔 그려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 균형감을 잘 지키는 게 힘든 부분인 것 같은데, 그게 좋은 책인 것 같아요. 감성적인 것과 이성적인 것이 함께 있어야 되고 쉬우면서 가볍지 않아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런 밸런스가 무척 중요하다고 봐요.
어렸을 때부터 음악을 좋아하셨는데, 대학에서는 디자인을 전공하셨어요. 졸업 후에는 음악과 관련된 일을 하셨고요. 독특한 이력이에요.
어렸을 때는 그림 낙서를 하는 정도였지만, 손재주는 있었던 것 같아요. 고등학교 때도 미술부 활동을 하면서 화실을 다녔고요. 음악은 어디까지나 취미였죠. 어릴 때부터 들었고요. 음악과 그림을 다 좋아했어요. 그런데 음대를 가겠다는 생각을 한 건 아니었어요. 저희 형도 음악을 했고 저도 마찬가지인데요. 음악을 너무 많이 들으면 수준만 높아져서, 자기가 직접 하다 보면 ‘이건 아니야, 난 안 돼’라고 생각하는 게 있어요(웃음). 그래서 저는 대학에서 디자인을 공부하면서 계속 그 길로 갈 줄 알았어요. 하지만 음악은 계속 들었죠. 음반도 모으고 뮤지션들과 교류도 하고요. 대학교 때 아르바이트도 재즈 클럽에서 했어요.
당시에 DJ를 하셨죠?
네, 방배동에 있던 클럽이었는데 그때는 거기가 명소였어요. 1988년 즈음이었는데, 가게에 재즈 원판이 만 장 정도 있었거든요. 벽을 다 채울 정도였다고 보시면 돼요. 그게 다 미국에서 수입한 오리지널 판이었어요. 거기에 무대도 있어서 뮤지션들의 아지트 같은 곳이었어요. 이정식 씨도 거기에서 데뷔를 하셨고, 신관웅 선생님 같은 우리나라 재즈 1세대 분들도 연주를 하셨어요. 가요계에서 재즈풍 음악을 하고 싶었던 사람들도 다 모여 있었죠. 빛과 소금, 봄여름가을겨울, 김현철, 한영애, 장필순 같은 분들이요. 저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돈을 버는 것보다 거기에서 음악을 듣는 게 너무 좋았어요. 정말 열심히 들었죠. 그때부터 재즈 뮤지션들과 교류가 있었어요. 그런 인연이 있었기 때문에 나중에 영화 <브라보! 재즈 라이프>도 만들 수 있었고요.
재즈 전문 잡지도 창간하셨어요.
대학에서 공부할 때 맥킨토시로 책을 편집하는 일에 빠져있었어요. 당시에 무가지가 유행했었는데, 후배들을 모아서 재즈 무가지를 만들자고 제안했어요. 작업실에 모인 사람들이 다 음악을 좋아하고 디자인과를 나온 사람들이었어요. 우리가 편집하고 우리가 쓰자고 이야기가 됐죠. 그렇게 만든 잡지가 지금의 <MM JAZZ>예요. 창간 당시의 이름은 <몽크뭉크>였어요. 화가 뭉크와 재즈 피아니스트 몽크의 이름을 따와서 지었어요. 그 잡지가 창간된 지 벌써 20주년이 됐어요.
재즈와 관련해서 아무도 하지 않는 일을 해 오신 것 같아요.
재즈 분야에 있어서는 젠체하고 싶은 마음이 있나 봐요(웃음). 고등학교 때는 같은 지역에서 음악 좀 듣는다고 하는 아이들끼리 어울리잖아요. 서로 음반을 빌려주기도 하고 잘난 척도 하고요. 그때 제가 재즈 이야기를 하면 다른 아이들이 갑자기 조용해지곤 했어요. 당시에는 재즈를 열심히 들었던 이유가, 솔직히 말하면 잘난 척하려고 그랬던 것 같아요(웃음). 다른 아이들은 모르니까 ‘재즈는 내 분야다’라는 생각으로 더 열심히 들었어요. 일본어를 모르면서도 <스윙저널>을 사서 모으기도 했어요. 읽지는 못하니까 사진만 보는 거죠. 나중에는 제가 『재즈 잇 업』을 <스윙저널>에 연재하게 됐는데, 정말 영광이었어요.
처음으로 재즈의 매력을 느꼈던 음반, 뮤지션이 있다면요?
‘스틸리 댄’이라는 인기 많은 팀이 있어요. 저는 록을 듣다가 재즈로 넘어와서 그런지, 어릴 때는 올디즈(oldies)한 메인 스트림 재즈를 좋아하지 않았어요. 조금이라도 록킹한 것, 퓨전, 재즈락을 들었어요. ‘스틸리 댄’이라는 팀을 너무 좋아했고요. 지금 돌이켜 봐도 퓨전이라는 단어를 쓰려면 그렇게 해야 된다는 생각이 들어요. 재즈와 블루스와 록을 황금비율로 완벽하게 조합했거든요.
재즈 평론가, 감독, 작가, 편집자로서 활동해 오셨는데요. 가장 재밌었던 일은 뭔가요?
지금은 작가라고 불러주는 게 제일 편하고요. 녹음실에서 프로듀싱을 할 때 가장 재밌어요. 음악 프로듀서라고 하면 제작자라고 생각하시기도 하는데, 재즈는 그렇지 않아요. 영화로 치면 감독이에요. 곡 선정, 뮤지션 섭외도 하고요. 이 부분에서 어떤 악기를 어떤 사람이 연주하도록 하는 게 좋을지, 곡 디자인도 해요. 뮤지션들과 같이 의논을 하면서, 한 곡을 음원으로 만들어내기 위해서 각본부터 감독까지 맡는 거예요. 재밌는 건,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말이 있는데, 그런 걸 볼 때가 많아요. 훌륭한 연주자들도 모두가 스타일리스트는 아니에요. 자기 음악의 매너리즘에 빠져 있을 수도 있거든요. 음반 프로듀서는 같이 의논하면서 방향을 바꿔주기도 하고 스타일을 만들어주기도 하는데요. 그런 작업들이 재밌어요. 어릴 때 조금씩 취미로 악기를 연주했던 게 프로듀싱을 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입문자라면 현대 재즈부터 감상하세요
『재즈 잇 업』에서는 재즈를, 『페인트 잇 록(paint it rock)』 에서는 록을, 『만화로 보는 영화의 역사』에서는 영화를 만화로 그리셨어요. 항상 이야기를 ‘쉽게’ 전달하는데 초점을 맞추시는 것 같은데요. 이유가 있나요?
평소에도 후배들을 가르쳐주는 걸 좋아하는데요. 어떤 책들은 자기 잘난 척만 하다가 끝나는 것 같아요. 저는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책을 쓰는 목적이, 이걸 필요로 하는 사람들한테 도움을 주고자 하는 거잖아요. 저도 어릴 때 봤던 재즈에 관한 책들을 생각해 보면, 무슨 소린지 모르겠는 부분들이 너무 많았어요. 지금 다시 보면 틀린 내용들도 많아요. 번역의 오류죠. 자신도 모르는 말을 써놓은 거예요. 진정으로 많이 아는 사람이라면 자기가 망가지더라도, 그래서 일부 비난을 받더라도, 그걸 감수하면서까지 더 많은 독자에게 알려주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된다고 봐요.
어려운 걸 쉽게 말하려면 많은 고민이 필요하잖아요.
맞아요, 말씀하신 것처럼 어려운 일이에요. 그래서 항상 고민하는 거죠. 이 부분을 어떻게 풀어야 독자들이 이해할까. 계속 독자의 입장이 되어보는 거예요. ‘이건 독자가 알아서 공부해야 돼, 어쩔 수 없어’라는 태도로 넘어가고 싶지 않은 거죠. 그럼에도 『재즈 잇 업』 안에는 독자들이 알아서 해야 될 것들이 있기는 해요(웃음). 중간에 어려운 대목이 있어요.
재즈의 본고장인 미국에서도 『재즈 잇 업』같은 책이 나온 적 없다면서요?
월간지 편집장을 오래 했던 경험이 이 책을 쓰는 데 도움이 됐어요. 그 경력이 없었다면 아마 저도 쓸 수 없었을지 몰라요. 이렇게 방대한 역사를 단행본으로 낼 때는 ‘무엇을 가져가고 무엇을 버려야 되는지’, ‘이 시기에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인지’ 고민을 많이 해야 하거든요. 그러려면 통사를 다 알고 있어야 되잖아요. 음악도 많이 들어야 되고요. 그림만 잘 그려서는 안 되는 거죠. 아무래도 그런 문제들 때문에 미국이나 일본에서 이런 책이 안 나왔던 것 같아요. 어설프게 내고 싶지 않았다고 할까요. 그런데 『재즈 잇 업』을 내놓고 보니까, 일본의 반응을 보면, 빠진 부분들도 많지만 가져가야 할 건 다 가져갔다고 하더라고요.
초판의 1~2권 내용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3권은 따로 봐야 할 텐데, 구하기 어려울 것 같아요.
3권은 지금도 판매가 되고 있어요. 그 책은 걸작선인데 내용이 좋아요. 이번에 출간된 책에도 2권의 모든 내용이 실려 있지는 않아요. 60% 정도 포함된 것 같아요. 나머지 부분 중에 한국 재즈 뮤지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건 나중에 따로 다루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그냥 놔뒀어요. 다른 에피소드들도 있기는 한데, 한 권에 다 담기에는 흐름이 산만해질까 봐 포함시키지 않았어요.
영화 <브라보! 재즈 라이프>의 제작비용을 『재즈 잇 업』의 인세로 충당하실 계획이셨다고요. 예상대로 진행됐나요(웃음)?
네. 저는 영화를 해본 적이 없어서 제작비용이 얼마나 드는지 몰랐어요. 그런데 당시에 한 인디영화가 2~3천만 원의 제작비로 만들어졌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래서 ‘그 비용으로 영화가 만들어질 수 있나?’ 하면서 멋모르고 시작을 했어요. 실제로는 그보다 더 많은 비용이 들었죠. <브라보! 재즈 라이프>는 제가 감독뿐만 아니라 제작도 같이 했는데, 영화 찍다가 비용이 부족하면 출판사에 전화를 했어요. 그렇게 제작비용의 일부를 인세로 충당했고요. 나머지는 제가 그때 운영하던 재즈카페에서 얻은 수익을 가져다 썼어요. 그 영화의 출연진이 천 명쯤 돼요. 우리나라 재즈 뮤지션들이 거의 다 나왔는데, 다 무료로 출연을 해줬어요. 여기에도 감춰진 이야기가 하나 있는데....
뭔가요? 궁금한데요(웃음).
그때 박성연 선생님께서 건강이 안 좋으셨고, 여러 가지 상황상 출연료를 드려야 했어요.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입장에서는 부담이 되는 게 사실이었고, 제작비용이 부족했어요. 그래서 박성연 선생님을 촬영할 수 없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런데 ‘재즈파크’의 신흥순 고문님께서 몰래 저를 부르셨어요. ‘그래도 박성연 선생님께서 우리나라 재즈 1세대 중에 유일한 여자 보컬이신데...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고 선생님께 출연료 드릴 때 보태라’ 하시면서 돈을 주셨어요. 그 사실을 박성연 선생님도 아직까지 모르세요. 신흥순 고문님은 정말 한국 재즈계의 오아시스 같은 분이에요. 매월 섬유센터에서 ‘재즈파크’라는 무료 공연을 여시는데, 뮤지션들에게는 출연료를 다 주세요. 기업의 협찬을 끌어와서 공연을 이어가고 계신 거예요. 정말 대단하신 분이에요.
<배철수의 음악캠프>의 배순탁 작가님이 추천사를 쓰셨어요. “이미 완독한 나 역시 다시 책을 펼쳐봐야 했다”고 적으셨는데요. 기존의 『재즈 잇 업』을 읽은 독자들도 개정판을 볼 필요가 있을까요?
다시 읽어주시면 감사하죠. 그때 책을 읽으셨던 분들은 지금 어느 정도 재즈를 들으셨을 테고 다시 공부하실 필요는 없을 거예요. 그런데 이번에 개정판을 준비하면서 정성들여 많은 부분을 바꿨거든요. 조금 거칠고 어색한 부분들도 많이 다듬었고요. 새로 나온 『재즈 잇 업』을 사셨다면, 그냥 소장용으로 간직하지 마시고, 오랜만에 다시 읽어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그럴 정도의 내용이 들어갔다고 생각해요. 구성을 체계적으로 바꿨거든요. 재즈의 변주처럼, 『재즈 잇 업』도 같은 책이지만 다르게 변주했다고 볼 수 있어요. 어떻게 변주했는지 찾아보시는 즐거움도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요. 그런 점에서, 다시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재즈 잇 업』과 처음 만나는 독자들도 있을 텐데, 이 책을 즐기는 방법을 알려주세요.
일단은 만화처럼 보시는 게 좋아요. 조금 어려운 대목이 중간 중간 있는데, 이해가 안 될 때는 그냥 넘어가면서 스토리 위주로 보시면 돼요. 그리고 한 번씩 생각날 때, 두고두고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한 가지 더 말씀을 드린다면, 이 책을 읽으시면서 유튜브로 음악을 찾아서 들으시는 분들도 계신데요. 초기의 재즈들은 오히려 듣지 마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1900년대 초기부터 1940년대까지 나온 음반들은 녹음 상태가 너무 안 좋거든요. 그걸 먼저 듣게 되면 재즈를 싫어하게 되실 수도 있어요.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거죠. 지금 시대의 우리에게는 청각적으로 만족을 못 주는 거예요. 재즈의 역사는 흐름대로 이해하는 게 필요하지만 음악까지 그렇게 들을 필요는 없어요.
어떤 것부터 듣는 게 좋을까요?
시대에 관계없이 현대적인 재즈를 듣는 게 좋다고 봐요. 굳이 시대별로 들어보겠다고 하신다면, 물론 그럴 수도 있고 그걸 말리는 건 아니에요. 가급적이면 피하는 게 좋다는 거죠. 『재즈 잇 업』은 책이지만, 재즈는 결국 음악이잖아요. 이 책을 통해서 음악을 좋아하게 돼야죠. 그런 점에서 말씀드리면, 너무 초창기의 재즈를 먼저 듣는 건 피하시는 게 좋아요.
다음 책도 준비 중이세요?
3월 중에 출간될 예정이고, 지금 교정을 보고 있는데요. 『팝 잇 업(pop it up)』이라고 화성에 관한 책이에요. 도레미파솔라시도부터 시작해서 작곡까지 이어지는 내용을 만화로 그렸어요. 강아지도 이 책을 보면 코드를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쓰려고 노력했어요(웃음). 저로서는 굉장히 오랜만에 나오는 신간인데요. 혼자 쓴 건 아니고 ‘빛과 소금’의 장기호 씨와 함께 준비했어요.
재즈 잇 업 jazz it up남무성 저 | 서해문집
뮤지션들만의 개성, 예상을 깨는 빵 터지는 대사 등 저자의 위트가 빛을 발하는 부분들은 재즈에 다가서면서 느낄 수 있는 부담감을 한방에 날려버릴 수 있을 만큼 시원하고 통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