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철은 프리랜서로 일한 지 20년, 카피를 쓴지는 30년이 넘었다. 계속해서 쓰는 일이 직업이었고, 쓰다 보니 생활이 되었다. 카피라이터 경험을 책으로 이어서 『카피책』 『내 머리 사용법』『한 글자』 등을 펴내 작가가 되었고, 문재인 대통령의 슬로건이었던 ‘사람이 먼저다’ ‘나라를 나라답게’를 쓰면서 ‘대통령을 만들어 낸 카피라이터’라는 수식어가 추가되었다.
『틈만 나면 딴생각』에서는 그가 어떻게 시선 옮기기, 파고들기, 잘라 보기, 가까이에서 찾기 등 열두 개의 그릇으로 생각을 찾는지 보여준다. 좋은 생각, 맞는 생각만 하려고 애쓰다 보면 오히려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다. 오히려 “글이 길을 벗어나는 것은 땅을 칠 일이 아니라 박수를 칠 일. 덩실덩실 춤을 출 일”이다. 30년 넘게 아이디어를 파낸 사람의 말이니 들어볼 가치가 있다.
아이디어는 샘솟는 게 아니에요
『틈만 나면 딴생각』에 담고자 했던 내용은 무엇인가요?
책을 낼 때마다 조금씩 다른 책, 다른 글을 내고 싶었고, 다음 책은 또 어떤 다른 색을 입힐지 늘 고민해요. 이번 책에서는 생각이 떠오르는 게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제까지 생각과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그걸로 광고 카피와 책을 만드는 걸 반복해왔다고 생각했는데, 가만히 보니 생각은 떠오르는 게 아니고 계속 찾아야 하는 거예요. 생각이 떠오르는 건 정말 기적 같은 일이고, 아이디어가 막 샘솟는 사람은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낙엽, 양말, 커피와 같이 일상적인 소재로 글을 쓰면서 ‘당신도 딴생각을 할 수 있다’라고 장려하는 책이에요.
낙엽에 대한 글, 안개에 대한 글 모두 그 글 자체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있어요.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글 하나하나는 기억이 안 나더라도 재밌다, 나도 이런 거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게 성공이죠. 꼭 글이 아닐 수도 있어요. 음악이나 조각,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이라면 자기가 지금까지 해온 방법 말고 자기만의 노하우를 만든다거나 하는 방식으로 응용할 수 있겠죠. 내가 옳은 생각, 바른 생각만 한 게 아닌지 툭 찌르는 힘만 있어도 의미가 있는 책일 거예요.
‘시선 옮기기’ 장에서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방식으로 글이 나와요.
처음에 ‘꼬리’가 책의 콘셉트였어요. 책 한 권을 꼬리에 꼬리를 무는 에세이, 하나하나가 독립적이면서도 그게 또 다음 글로 절묘하게 연결되게 써보고 싶었죠. 계속 가다 보니 지루해져서 아예 생각의 그릇을 여러 개 보여주는 방식으로 바꾸었어요. 제가 생각을 어떻게 찾는지 들여보니까 열두 개 정도의 그릇이 마련되더라고요. 이게 전부는 아니겠지만 이런 식으로도 글감이나 아이디어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을 던진 거죠.
형식도 조금씩 달라요. 에세이의 느낌이 강한 글이나, 우화처럼 쓴 글도 있고요.
우화나 단상, 담담한 에세이, 여러 가지를 모아서 브레인스토밍 에세이라는 이름을 붙여 본 건데, 굳이 브레인스토밍이라는 단어를 강조할 필요는 없어요. 브레인스토밍이라는 게 여러 사람이 모아가면서 추출해가는 과정이라면 제 머릿속 여러 생각이 싸우고 논쟁하고 기대면서 추출해가는 과정이 또 하나의 브레인스토밍이라고 본 거죠. 사람의 생각 자체의 결과가 아니라 생각의 과정을 조금 더 볼 수 있는 내용을 쓰고 싶었어요.
책에서 소개한 열두 가지 그릇의 공통점은 뭘까요?
다 관찰이라고 보면 될 것 같아요. 열두 가지가 다 관찰이고, 어떤 사물을 손바닥에 올려놓고 뚫어지게 보는 거죠. 뚫어지게 보다 보면 정말로 구멍이 뚫릴 때가 있어요. 그때 본 것, 내가 구멍을 뚫은 것이 아주 좋은 발견일 수도 있고 허접스러운 발견일 수도 있는데, 무엇이든 해봐야 어떤 발견인지 알 수 있어요.
누구나 다 딴생각을 하니까요
책을 읽으면서 생각을 뽑아내는 과정이 집요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창의성 있는 사람, 혹은 크리에이티브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패턴이 과장돼서 알려졌다고 생각해요. 세월이 쌓이고 경륜이 쌓이면 남들보다 요령 있게 생각을 파는 방법을 아는 거지, 누구도 파지 않고 쑥쑥 나오는 생각은 없어요. 일하면서 계속 파다 보면 뭔가를 만난다는 확신은 있죠. 그런 경험을 자주 했으니까요. 항상 완벽하게 만족할 만한 금덩이를 발견하지는 못해요. 모든 글을 그렇게 쓰기 원하면 그 사람은 파기만 하다 죽을 거예요. 어떨 때는 구리 정도로도 나름 쓸만한 발견이라고 만족하고 양도 채우는 건데, 어찌 됐든 끌로 파고 돋보기와 쌍안경 들고 생각을 찾아 헤매야 한다는 거죠. 보다 보면 남들이 보지 못한 뭔가가 눈에 걸려드는 순간이 와요.
뭔가 보였을 때의 희열이 재밌죠.
크리에이티브한 일을 하는 사람이 그 힘든 일을 포기하지 않는 힘이 거기에 있어요. 앉아서 계속 파다가 뭔가를 보는 희열을 발전하고 확장시키는 거죠. 평가가 안 좋을 수도 있어요. 책을 쓰고 글을 써서 그게 상을 받고 베스트셀러가 되는 건 다음 문제고요. 계속 파다 발견하는 희열을 몇십 년 느껴 보니 결과와 상관 없이 이제는 안 하면 심심한 습관이 된 것 같아요.
딴생각을 장려하지 않는 세상이에요. 창의성은 중요하다고 말하면서 창의적인 생각을 발견할 때까지의 시간은 주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직업적으로 창의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은 어떻게든 딴생각을 하게 되어 있는데, 직업이 아닌 사람이 딴생각을 하기에는 힘들죠. 시간적으로 여유도 없고, 딴생각이라는 단어가 가진 불순함 때문에 사회적으로 환영 받지 못하는 단어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창의성과 발상 전환은 또 중요하다고 강조해요. 딴생각이 결국 창의성과 발상 전환이거든요. 딴생각은 ‘아니오’라고 말하는 거예요. 정답에 대해 자꾸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게 딴생각을 불러내요. 창의성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정답에게 자꾸 아니라고 이야기하면서 의심하고 부정하고 오답을 만들어내는 과정이에요. 창의성과 발상전환은 개념어라 어려워요. 딴생각은 쉽죠.누구나 다 딴생각을 하니까요. 조금 쉽게 실천할 여지가 있지 않을까요?
작가와 카피라이터라는 두 가지 소개가 따라다녀요. 두 직업 모두 크리에이터라는 명칭으로 묶일 수 있지 않을까요?
작가는 크리에이터보다 좀더 묵직한 뭔가가 있는데, 저는 다른 작가들의 깊이감은 못 따라가요. 그 정도의 작가도 못 되고요. 작가에 여러 종류가 있다면 약간 가벼운 카테고리도 있을 수 있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정도의 자리를 차지하려면 제 색깔을 계속 그쪽으로 만들어나가기 위해서라도 생각을 파는 작업을 계속 해야죠.
사람 사는 세상에 보탬이 되는 일
최근 TV프로그램 <인문학 살롱>에 출연하시기도 했죠. 쓰는 삶을 살면서 동시에 말하는 기회가 늘어났어요. 글과 말 사이에 차이점이 있을까요?
무대에서 마이크 잡고 이야기하는 게 4,5년밖에 안 됐는데요. 이전에는 많은 사람 앞에서 무언가 이야기하고 설명하는 게 제 인생과는 전혀 상관 없다고 생각했어요. 책을 자꾸 쓰니까 출판사의 권유도 있고 해서 강연을 처음 했었죠. 정말 힘들다, 다신 안 해야지 했는데 강연 끝나고 들은 사람 중에서 다시 하자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말을 잘 못 해도 어떤 진심이 보일 수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재밌게 잘 이야기하는 사람만 강연을 하는 게 아니구나, 그래서 준비한 걸 한두 번 하다 보니까 또 들어오고 또 들어오고 해서…
꼬리에 꼬리를 물었네요. (웃음)
지금은 카피라이터인지 작가인지 강사인지 모를 정도로 요청이 늘더라고요. (웃음) 그런데 두 개 삶이 크게 다르지는 않다고 생각해요. 책은 조금 더 정밀하게 많은 사람과 대화하는 거고, 강연은 책보다는 덜 정교하지만 적은 숫자들의 사람을 만나니까 가깝고 친밀하게 금방 피드백이 오더라고요. 이런 만남이 작가에게는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 사람의 표정을 직접 느껴보면서 내 이야기나 글에 대해서 확신을 가지기도 하고, 길이나 답을 얻는데 도움이 돼요.
주로 무슨 내용으로 강연하시나요?
첫 번째가 발상 전환. 기업체에서 많이 요구하고, 두 번째로 글쓰기. 글쓰기는 여러 곳에서 요청이 와요. 처음에는 카피라이터가 자꾸 일 년에 한 권씩 책을 내니까 인터뷰하면서 대부분 ‘이런 생각은 어떻게 하냐’를 물어보더라고요. 그때마다 요령껏 답을 했는데 몇 번 하다 보니 정리가 되고, 그걸로 발상 전환 강의가 나온 거죠.
지방 선거가 다가오고 있어요. 정치 카피 요청을 많이 받으셨죠?
어쩌다 보니까 그쪽으로 하려던 건 아닌데 많이 하게 됐어요. 개인적인 이유는 부채감이죠. 광고판은 내가 살기 위해서는 남을 죽여야 하는 정글 같은 세상이잖아요. 남을 자르고 내가 올라서면 좋아서 밤새 술먹는 생활을 해왔어요. 그러다 노무현이라는 사람을 알게 되면서 과연 잘 살고 있는 건지 의구심이 들고, 사람이라는 단어를 생각하면서 이 세상에게 배운 능력을 조금 더 사람 사는 세상으로 보탬이 될 수 있겠다 싶었어요. 나중에 나이가 들면 해야지 했는데 이제 할 수 있는 나이가 됐고, 어느 정도 영향력 있는 광고쟁이가 됐죠. 프리랜서여서 자유롭게 일감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있고요.
프리랜서가 아니었을 때는 광고 카피를 만들면서 부대낌이 있었을 것 같아요. 광고 카피는 결국 물건과 상품을 포장하는 건데, 인간성과 괴리된 상품을 팔 때도 카피를 써야 하는 순간이 있었을 거고요.
많았죠. 월급 받고 일할 때는 원하는 상품만 할 수 없고, 그러려면 사표 내고 나가야죠. 악성 광고주도 많았어요. 주로 돈을 많이 주고 전문가에게 광고를 맡긴 다음 그 사람의 말을 쓰지 않고 자기 말을 섞어놔요. 그래서 아무 것도 아닌 광고, 이상한 광고를 만들 때가 많죠. 그럴 때면 하자는 대로 해줬어요. 그저 제가 한 광고라고 떠벌이고 다니지 않았을 뿐이에요.
4,5 년 전부터 ‘내 이야기가 마렵다’는 표현을 자주 썼어요. 책이 계속 나왔는데, 여전히 ‘마려운 이야기’가 있나요?
광고장이는 남의 이야기를 대신해주는 사람이니까, 못했던 이야기를 분출하려는 듯이 글을 쓸 때가 있었어요. 그게 10년 정도 됐거든요. 지금은 마려워서 막 나오려는 글을 담기보다 마려움 자체가 습관이 된 것 같아요. 글을 쓰는 것 자체가 살아가는 이유가 됐어요. 그래서 계속 써야 하죠.
어떻게 쓰세요?
앉아서 연필 들고, 종이 깔아놓고요. 커피에 대해 쓴다면 계속 커피를 들여다보고 관찰하고요. 잘 안 풀리면 ‘커피는 바쁘다’ ‘커피는 노랗다’라고 아무 생각 없이 쓰는 거예요. 계속 쓰다가 뭔가 있을 것 같으면 거기를 파고 들어가서 찾아내요. 어느 정도 이야기가 나올 것 같아, 그럼 그걸 또 수정해요. 그 다음날 또 고치고요. 종일 하는 일이 책상에 앉아 있는 일이에요.
시쓰기랑 통하는 면이 있네요.
다 똑같을 걸요. 시뿐만 아니라 음악도 그럴 거고, 모든 예술이나 뭔가를 만드는 분야는 똑같을 거예요. 특히 글자 형태로 무언가를 표현하는 사람은 사물이나 현상이 하는 이야기를 더 많이 들어야겠죠. 이야기를 그대로 옮기는 거니까요.
술자리를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셨어요. 요새도 술 자주 드시나요?
술 이야기를 자주 하니까 엄청 마시는 줄 아는데 그건 아니고요. 강의 때 많이 하는 이야기지만 술맛의 10%는 그 술을 빚은 사람이고 나머지 90%는 마주앉은 사람이에요. 술이 맛있는 게 아니라 그 사람과의 대화, 눈빛, 사람에 취해가는 게 술자리라고 생각하는데, 결국 다 핑계겠죠. 또 하나의 이유는 하루에 집중해서 뭔가 발견하고 확장시키는 시간은 6시간이 끝이라고 생각해요. 빠르면 아침 여섯 시 출근해서 열두 시 되면 오늘 할 일을 다 한 거예요. 오후에 계속 앉아 있어봤자 뇌가 활발하게 일을 못해요. 앉아있으면 스트레스만 쌓이고 오히려 슬럼프를 불러오는 요인이라고 생각해서 풀어놓는 거죠. 그렇다고 완전히 풀어주진 않아요. 어떤 고민거리를 가진 채로 술자리에서 느슨하게 풀어놓으면 생각이 발효가 잘 돼서 뭔가 던져줄 때가 있어요.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에는 핑계죠. (웃음)
다음 책으로 생각해 놓은 주제가 있으시다면.
늘 다음 계획이 없어요. 막 살아도 잘 살 수 있는 걸 자꾸 보여주는 게 목표라면 목표일 거예요. 『틈만 나면 딴생각』에 들어있는 메시지나 주제도 다 아는 이야기지만 어떻게 담느냐의 문제고, 알고 있었던 걸 다시 확인시켜주는 과정을 담았어요. 다음 책을 쓴다면 남들이 쓰지 않았던 그릇을 찾아서 써볼 것 같아요.
틈만 나면 딴생각정철 저 | 인플루엔셜
시선 옮기기, 국어사전 펼치기, 발걸음 옮기기, 온도 높이기 등 12가지 꼬리를 물고 펼쳐지는 딴생각들이 무려 184개나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