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막 스무 살이 된 『아빠의 페미니즘』의 저자 유진은 J라는 인물을 소개한다. 저자 유진의 아빠이자 ‘과도기적 남성상’인 J는 딸을 “멋진 사람으로 키우겠다. ‘여자’로 키우지 않겠다.”(40쪽)고 선언하는가 하면, 딸에게“네가 성(姓)을 버렸으면 좋겠다. 나에게 속한 사람으로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47쪽)고 말하고, “섹스도 임신도 결혼도 네가 원해서 하는 것이어야 한다.”(143쪽)고 말한다. 이 사회, 불평등한 세계를 살아갈 딸을 둔 아빠로서 J는 세상이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에 끊임없이 질문하고 반대한다. 그리고 그는 자신을 49점이라고 말한다.
“J는 힘든 직업”이다. 맞는 말이다. 가부장제가 말하는 정상적인 가족형태를 딸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아서 J는 아내에게 “사랑한다, 이혼하자.”고 해야 했다. 바뀌지 않는 세상에 딸을 살게 해 미안하다고 거듭 말해야 했다. 그리고, “그렇지만 진아, 고통을 감수하며 살지는 마라. 숨이 모자라도록 달려가지는 마라. 너의 생명을 깎아 세상을 바꾸려고 하지는 마라.”(178쪽)라고 부탁해야 했던 것이다.
“페미니즘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의 책들이 더 많아지는 것이 옳다”는 생각으로 ‘엄마의 페미니즘’보다 ‘아빠의 페미니즘’을 먼저 이야기했다는 저자 유진. 당부하건대 『아빠의 페미니즘』은 ‘아빠가 허락한 페미니즘’이 아니다. 이것은 ‘딸이 명령하는 페미니즘’이다.
표지부터 수다를 멈출 수 없는
표지가 재미있어요. 거울을 표현한 것인데요. 저자가 표지 디자인도 직접 하셨죠?
기술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은박으로 후가공 처리를 한 거예요. 나중에 찍는 거죠. 보통은 이렇게 디자인하지 않는데요. ‘미러링’을 상징하고 싶었어요. 역지사지가 안 되는 사람들을 위해서 서비스처럼 해주는 게 미러링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미러링이 혐오표현을 널리 퍼트리기 위한 게 아니잖아요. 결국은 비춰봐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죠. 이 책이 일종의 거울이 되어서 딸들에게 그리고 딸을 둔 아버지들에게 자신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지금 우리 사회는 어떤 모습인지를 비춰 생각해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비춰본다는 것은 일차적으로 자기 자신을 말씀하시는 거죠?
네, 자신의 지금까지의 삶과 앞으로의 삶을 비춰봐야 한다는 거고요. 개인이 모여서 공동체가 되고 사회를 이루는 거니까요. 더 나아가서는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 되었으면 한다는 거창한(웃음) 의도도 조금 있어요.
전에 썼던 『책구경』 과 『지드래곤을 읽다』도 제가 본문과 표지 디자인을 다 했는데요. 저는 이미지가 들어간 디자인을 별로 선호하지 않아요. 이미지를 다루는 책이라면 굉장히 중요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텍스트에 집중할 수 있는 디자인이 더 좋다고 생각해요. 실은 표지부터 수다를 멈출 수 없는 컨셉이랄까(웃음), 그렇습니다.
세 번째 책인데요. 『아빠의 페미니즘』에서는 책에 관한 이야기를 했던 『책구경』과 지드래곤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지드래곤을 읽다』와는 또 다른 이야기를 하셨어요. 이 책의 이유가 궁금했어요.
주제가 달라서 많이 다르게 느껴지실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저는 기본적으로 유행에 굉장히 민감한 사람이에요. 지드래곤도 그 당시 가장 잘 나가고, 제 기준에서는 가장 멋졌던 가수와 저의 이야기를 엮은 거였고요. 『책구경』 도 책이 매개체가 되긴 했지만 촛불, 탄핵, 대선으로 이어지는 대한민국의 정치 흐름에 대해서 관찰하고 기록한 것이었어요. 페미니즘 역시 이야기하는 분들은 계속해서 있어 왔지만 대중적으로 이렇게 크게 이야기 되고, 대중서적이 많이 쏟아져 나온 건 최근의 일들이잖아요. 그런 시간이 제게도 많은 영향을 줬어요. 저는 오늘을 계속 사는 사람인 것 같아요.
특히 궁금한 것이 ‘엄마’보다 ‘아빠’를 먼저 쓰셨다는 점이거든요. ‘엄마의 페미니즘’을 쓸 계획에 대해서도 책에 여러 번 언급하셨는데요. 그럼에도 왜 아빠가 우선이었던 건가요?
최대한 낯설게 하고 싶었어요. 역설적이지만 가장 낯선 주제, 가장 낯선 등장인물이 나왔을 때 더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부분도 있어요. 전형적이지 않기 때문에요. 지금 페미니즘 책들이 많이 나오고 있는데요. 아직 주목하지 않은 지점이 무엇일까, 나오지 않은 시선이 무엇일까, 이런 생각을 했거든요. 엄마와 딸의 관계보다 아빠와 딸의 관계가 좀 더 낯선 부분이 있는 것 같고요. 그래서 ‘그 많던 ‘딸바보’는 다 어디로 갔을까’, ‘‘딸바보’는 과연 아름다운 관계일까’라는 질문을 한 거예요.
‘J’가 끝까지 저항 하면서 이 책을 쓰는 것에 반대했다고요. 책이 나온 후 반응은 어땠나요?
저는 아직 투표권도 없어요. 아직 독립을 못한 상태예요. 함께 지내는 시간이 많아서 아빠 모르게 책을 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에요. 그러고 싶지도 않고요.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끝까지 반대를 했던 건 이것을 굳이 책으로 내는 것은 위험하지 않겠니, 다치지 않겠니, 이런 걱정이었던 거죠. 기본적으로 그 모든 이야기가 다 응원과 지지를 전제로 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책이 나오고 난 반응은 딱 이런 거예요. “나 이제 밖에 나가서 어떻게 해야 해, 뭐라고 해야 해?”(웃음)
책이 주는 무게라는 게 있으니까요.
물론 J는 제가 만든 캐릭터고요. 굳이 이니셜을 쓴 이유도 그런 것이고요. J라는 사람, 저의 아빠라는 존재, 그 특정한 인물이 완벽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건 무의미한 논의라고 생각해요. 그럴 수도 없고요. 만약 그런 질문이 온다면 제 이야기로 받고 싶어요. 저도 완벽한 사람이 아니고요. 완벽해서 글을 쓰는 게 작가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제가 작가가 꿈인 건(지금 작가라고 말해도 되는 건지 모르겠어서 꿈이라고 표현하는 건데요.) 작가가 완벽한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읽고, 쓰고, 말하는 사람이기 때문이에요. J 역시 과도기적인 남성상이기 때문에요. 그런 정도에서 이해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J를 과도기적 남성상이라고 했는데요. 조금 더 설명을 해주세요.
솔직한 표현이라고 생각해요. 자신이 살아온 세상과 자신의 딸이 살아갈 세상이 많이 다르니까요. 부모들, 어른들이 그 괴리나 차이에 대해 실감하게 되는 순간이 있잖아요. 그 순간에 차이를 외면하고 회피하면 무심하고 무책임한 사람이 되는 경우가 많은데요. 그걸 직시하고 고민하는 순간 해줄 수 있는 말이 있다는 생각이 들 거예요. 사실은 해줄 수 있는 게 없구나, 하는 깨달음도 함께 찾아오긴 하지만요. 그 괴리감과 일종의 사명감이 동시에 들겠죠. 내가 지금껏 살아온 세상에 나의 딸을, 다음 세대를 머물게 해서는 안 된다는 사명감일 텐데요. J는 그 사이에 있는 존재라고 생각해요. 과도기적 남성상은 그런 의미예요. 궁극적으로 이상적인 세계에서는 페미니즘이 필요 없을 거라 생각해요. 그런 걸 배운 때도 있었지, 하는 식이 될 거라 상상하는데요. 그때가 되면 J라는 존재도 기록으로만 남겠죠.
J는 꽤 힘든 직업인 것 같아요
J는 스스로를 49점으로 평가해요. 또 J로 사는 것을 무척 힘들어하기도 하는데요. 충분히 짐작 가능하죠. 힘든 일이잖아요.
흔히 표현하는 사회생활이란 걸 하다 보면 비위가 뒤집히는 말과 상황, 사람들이 있잖아요. 거기에 휩쓸리지 않기가 어렵고요. 바깥에서 술자리를 한 후 J로 돌아오는 시간이 J에게는 에너지가 많이 드는 일일 거예요. 사회생활만 해도 힘든데, 술자리만 가도 힘든데 돌아오는 것까지 하려니 힘들죠. 그런 힘듦이 있었고요. 사실 최근 몇 년 동안은 J의 사회생활에도 약간 변화가 있어서요. 경력단절 남성이라고 보시면 되거든요. 딸의 교육에 힘쓴 시간이 몇 년 있었기 때문에 그런 일이 많이 없기는 했어요. 하지만 ‘사랑한다, 이혼하자’라는 글 경우처럼 이혼을 선언한다든지, 할 때는 힘들었겠죠. 실제 이혼을 하느냐와 상관없이 가족 안에서 그것을 선언하는 것도 실은 J가 주변의 모든 시선을 감당하고 있는 거잖아요. 모든 사람은 자신이 가장 힘들다고 생각하고, 저는 그게 사실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그렇게 생각해도 J는 꽤 힘든 직업인 것 같아요.
내 생일 전날 밤, J는 나의 엄마에게 속삭였다고 한다. “사랑한다, 이혼하자.”
J와 나의 엄마는 평범한 가족의 평범한 행복으로 포장된 가부장적 구조의 가족 형태를 내게 물려주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러나 이혼 자체가 목적은 아니므로, 이 그지 같은 세상의 질서에서 조금씩 벗어나려 한다고 덧붙였다.(163쪽)
저자가 평가를 하면 어때요? 저자가 보기에 J는 몇 점인가요?
굉장히 어려운 질문인데요.(웃음) 가족에게 어떻게 점수를 매기겠어요. 그렇지만 페미니즘의 관점으로 당신은 몇 점이냐고 물었을 때 J 스스로는 자신을 49점이라고 했잖아요. 제가 바라볼 때 J로서 그는 51점이라고 생각해요. 절반을 넘지 못하는 점수는 너무 짜다는 생각이 들고요. 그의 노력을 아니까요. 또 그 결과가 저라고 볼 수 있는데 저는 J의 말 덕에 페미니즘을 알았어요. 물론 J는 페미니즘 책을 저보다 더 읽은 사람도 결코 아니지만 어쨌든 시작을 하게 해준 사람이 J예요. 때문에 저는 J를 100점이라고 말할 수는 없으나 49점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가능하다는 의미에서 51점을 주고 싶어요.
J가 조금 다른 아빠라는 걸 언제 처음 느꼈나요?
학교를 안 가겠다고 선언했을 때 주변에서 많이 보인 반응이 “넌 부모를 잘못 만나서, 이상한 말을 많이 듣고 자라서 그렇다.”였어요. 그런 말을 실제로 해요, 사람들이. 선의로 그런 말을 하는데요. 저는 한 번도 이상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오히려 그런 말을 나누지 못하는 관계가 더 이상하다고 생각하고요. J쯤도 못 되는 어른들이 훨씬 더 이상해 보여요. 왜냐하면 J는 이상한 존재가 아니잖아요. 49점도 못한다면 그건 정말 이상한 게 아닌가, 생각하고요. 좀 다르다는 건 느끼는 순간들이 몇 번 있었지만 이상하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어요.
‘자기만의 방’ 에피소드가 인상적이었어요. 진짜 남들과는 다른 J의 면모를 엿봤어요. 안방을 딸에게 내줬잖아요. 본인은 가장 작은 방을 택하고요.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생각해요.
꽤 어렸을 때부터 제가 안방을 썼어요. 공간이란 게 눈에 보여요. 매일 감각하는 것이고요. 그러면서도 의식하기는 쉽지 않죠. 거실에 부여된 아버지의 권위와 안방에 부여된 정상적인 결혼 생활의 형태랄까 그것이 굉장히 견고해서 깨기가 쉽지 않잖아요. 그러니까 이건 혁명인 거죠. 아파트에서 이룰 수 있는 최고의 혁명이에요. 그 꼭지의 마지막 문장이 “가장 작은 방에서 J는 행복하다고 했다.”(72쪽)거든요. J는 그렇게 해서 마음이 편안했던 거예요. 저는 지금껏 한 번도 방문을 닫아 두는 것에 대해 부모님과 갈등 있었던 적이 없어요. 서로 존중을 하면 배려도 하게 되는 거죠. 지금도 제가 안방을 쓰고 있는데요. 조만간 월세를 내야 합니다.(웃음) 경제적으로도 독립해야 하니까요.
J는 딸이 독립적인 한 인간으로 사는 것을 무척 중요하게 생각하고, 대했어요. 실제 그런 삶을 사는 입장은 어땠을까요? 그것 역시도 힘든 일이잖아요. 때로는 어떤 선택을 누가 해줬으면, 할 때도 있으니까요.
큰 선택이라면 큰 선택이죠. 힘들 때도 있고요. 하지만 저는 제가 대단한 경우라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모든 사람들이 매 순간 큰 결정을 내리고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학교에 가지 않는 선택을 했다고 해서 이게 더 큰 결정이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대학을 간다고 결정하는 것도 굉장히 큰 결정이죠.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고 하는데요. 저는 그걸 즐기는 방법을 찾지 못하면 항상 괴로울 거라고 생각해요. 즐거워진 부분도 있고요. 좀 더 즐기려고 노력하는 부분도 있어요.
쓰면서 걱정한 건 없었나요? 오해하지 않았으면 하는 내용이 있는지 궁금해요.
책 얘기를 먼저 하면요. 페미니즘이 돈이 된다고 말들 하잖아요. 그건 굉장히 큰 오해예요. 돈이 안 됩니다. 이 책을 낼 때도 첫 번째 반응이 안 팔린다는 내용이었거든요. 도서관에 납품을 하잖아요. 『책구경』 은 굉장히 인기가 많았거든요. 그런데 이번 책은 같은 저자의 책인데도 ‘페미니즘’이 들어가니까 비교가 안 되는 수준으로 납품양이 줄더라고요. 또 제 애기를 하자면요. 한편에서 제게 ‘금수저’라는 이야기를 해요. 그것에 대한 얘기를 J와 나눈 적이 있는데요. J는 금수저 아니라서 미안하다(웃음)고 말했어요. 잘 닦은 놋수저쯤 아니겠느냐고요. 너무 반짝반짝 하니까 금수저로 보이나보다, 라면서 넘어갔는데요. 분명히 사랑 받고 자랐고, 부족함 없이 자랐지만 흔히 말하는 금수저라고 할 것은 없어요. 제 가장 큰 재산은 책이 멀리 있지 않았던 거고요. J의 말들, 엄마의 말들이 재산일 뿐이에요.
자발적 초졸 여성
“단지 읽고, 쓰고, 말하는 사람이고 싶다”(187쪽)고 하셨잖아요. 이 한 줄로 저자의 정체성을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앞서 ‘계속 오늘을 사는 사람’이라는 말도 하셨는데요. 그렇다면 어떤 것을 읽고, 쓰고, 말하고 싶으세요?
계속 ‘이슈파이팅’하는 글을 쓰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서 빨리 쓰는 게 저한테는 굉장히 중요하죠. 나한테는 중요한 이슈인데 이미 지나가버린 경우도 있으니까요.
책을 직접 만들겠다고 생각하신 것도 그런 이유인가요?
그런 영향도 있어요. 거치는 곳이 많으면 시간도 더 많이 들고, 비용도 더 많이 들잖아요. 어차피 국내에서는 아주 큰 출판사에서 프로젝트로 미는 경우가 아니면 안 팔리는 것은 거의 비슷하기 때문에 차라리 조금 덜 팔아도 이런 형태가 낫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읽고, 쓰고, 말하기가 쉽지 않은데요. 그것은 셋 다 잘하기 쉽지 않다, 라기 보다 셋 중 하나라도 잘하기 쉽지 않다, 에 더 가까운 것 같아요. 제 경우 책을 읽는 나이에 가깝지 쓰는 나이라고는 보통 생각하지 않잖아요. 첫 번째 책을 17살에 썼으니까요. 어린 나이죠. 그때도 그걸 알았어요. 내가 너무 빨리 쓰고 있다는 걸요.(웃음) 하지만 그때도 제대로 읽으려면 써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또 제대로 말하려면 써야 하지 않나, 생각했죠. 이 세 가지는 연결되어 있고요. 그 중 하나라도 빠지면 완전하지 않은 구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 세 가지의 페달을 계속해서 밟는 게 되게 즐거워요.
읽는 게 끝나야 쓴다, 고 생각하기 쉽죠.
다음 단계라고 생각하잖아요. 그런 생각 때문에 저처럼 나이가 어린 사람들은 받아들이는 것에만 집중하게 되고, 나이가 든 사람들은 공부를 하지 않게 되는 것 같아요. 단계가 있다는 생각에서 발생하는 문제라고 봐요.
굳이 따지자면 조금 다른 길을 가는 것에 불안감이 덜하신 편 같아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불안감이 없다기보다 불안을 느끼는 지점이 약간 다른 것 같아요. 불안감은 굉장히 커요. 제가 학교를 안 다녔어요. ‘자발적 초졸 여성’이라고 적었는데요. 그 선택도 사실은 사람들이 이해하는 보통의 선택은 아니죠. 하지만 그럴 때마다 자주 하는 이야기가 “솔직히 말해봅시다, 시키는 대로 공부하고 대학 가면 취업이 잘 되나요, 창업을 할 수 있나요, 과연 그렇게 하면 삶이 평탄한가요?”예요. 어떤 길을 가도 험난하다면 내 마음 가는대로 가는 게 낫다고 생각해요.
반대로도 말할 수 있잖아요. 어차피 똑같이 망할 거면(웃음) 남들 다 하는 선택을 하는 게 조금 더 안정감을 느낄 수도 있을 텐데요.
제가 주로 그래요. 같은 생각에서 다른 결과가 나와요.(웃음) 이야기를 나누다가 사람들이 끝에 가서 “음?” 하는 게 있어요. 그런데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저는 제가 특별하거나 대단한 사람이라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아요. 그렇게 보이는 것도 싫고요. 그건 오해를 받는 거니까요. 그게 아니라 그냥 제 자신한테 솔직하고 싶은 마음이에요.
남들한테 어떻게 보이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닌 거죠.
표지의 거울은 남들의 눈에 어떻게 보이느냐 보다 먼저 내 눈에 내가 어떻게 보이는지, 내 눈에 다른 사람이, 이 사회가 어떤 모습으로 보이는지를 비추어보고 바라보는 게 먼저 아닐까, 하는 생각을 담은 것이기도 한데요. 저는 악플, 더 나아가서는 좋은 말도 많이 신경 쓰지 않으려고 해요. 상처를 받는다면 남이 내게 어떤 말을 하고 어떻게 보는지, 하는 사실에 상처 받는 게 아니라 내가 아직도 이 모양이라는 사실에 상처 받는 게 더 맞지 않나 싶고요. 저도 제 거울을 그런 데에 쓰고 싶어요.
책 더미에서 태어난
많은 도구들이 있는데요. 그 가운데 읽고, 쓰고, 말하는 것, 책이라는 도구를 선택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숨길 수도 없고, 숨길 마음도 없는데요. J가 출판을 하던 사람이에요. 지금은 책을 거의 내지 않지만 지금까지 계속 출판사를 운영하던 분이고요. 엄마는 작가 일을 하시는 분이에요. 저는 책 더미에서 태어났다고 표현하는데요. 책 더미에서 자라왔고, 그 영향이 컸을 거라고 생각해요. 예전에는 그렇기 때문에 일부러 다른 걸 선택하는 게 낫지 않을까, 해서 다른 분야에 관심을 쏟아보려고 했었는데요. 문득 왜 그래야 하지, 싶더라고요.(웃음) 지금까지 그런 환경에서 살았고, 한 축이 될 만한 나의 재산인데 말이에요.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해지네요.
구체적인 이야기는 할 수 없는 게 미래를 알 수 있는 사람은 없잖아요. 제가 많이 받아온 압력 중 하나가 “그러면 너는 커서 뭐하고 살래?”, “중학교 안 가면 대학은 어디 갈 거야?” 같은 거였거든요. 그때마다 의아했어요. 미래를 모르기는 모두 마찬가지일 거라 생각하고요. 저는 별로 내일을 뒤쫓으면서 살고 싶지 않아요.
지금 관심이 있는 것은 뭔가요?
아직 온 신경은 이번 책에 있어요. 여전히 페미니즘이 제게 가장 큰 이슈이고요. 이 책이 저한테는 가장 중요한 프로젝트예요. 다만 조금 더 크게, 한 발짝 뒤로 가면 페미니즘에 관심을 갖게 된 것 역시 앞으로 난 어떻게 살아야 하지, 라는 물음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요. 사회가 어떻게 흘러가는가에 대해 계속 관심을 가지고 있죠.
『지드래곤을 읽다』가 제 첫 책인데요. 거기에 두 가지 축이 있어요. 하나는 지드래곤이라는 인물이고요. 하나는 한국고전이에요. 조선시대의 사람들, 정약용, 박지원, 이런 사람들의 글인데요. 그들의 글에도 관심이 많아요. 한국고전을 계속 공부하고, 관련 책을 계속 내고 싶은 욕심도 있어요.
이 책을 읽지 않은 독자 분들에게 어떤 말을 하고 싶으세요?
이 책은 ‘아빠가 허락한 페미니즘’이 아니에요. ‘딸이 명령하는 페미니즘’이죠. 딸이 주체고요. 딸이 쓴, 딸에 관한 책이에요. 딸을 위한 책이죠. 아빠도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고요. 아빠는 페미니즘을 공부해야 한다는 이야기예요. 그것은 가능의 영역이 아니라 당위의 영역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야만 하죠. 그럴 수 있느냐 하면 잘 모르겠지만 그래야 하는 건 맞아요. 미심쩍은 부분이 있다면 책을 읽어봐 주셨으면 좋겠어요. 딸들이 먼저 읽고, J를 통한 제 말을 같이 공유하고, 그 다음에 자신의 아빠에게 건네면서 이 거울을 통해 서로를 비추고 대화 나눌 수 있는 계기가 되면 더 바랄게 없을 거예요.
아빠의 페미니즘유진 저 | 책구경
딸을 아끼고 사랑하며 염려하는 마음이 페미니즘이라는 것을 ‘아는 아빠’들이 스스로 페미니스트임을 선언하며, 목숨 걸고 페미니스트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빠미니즘 ; 아빠의 페미니즘’이라고 설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