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탐험가 이석원을 만났다. 록밴드 언니네이발관 리더가 아닌, 『실내인간』의 작가 이석원의 모습으로. ‘가수 출신 작가’라는 타이틀을 유난스럽게 싫어하는 이석원이지만 언니네이발관의 곡(가사)을 들어본 사람이라면 필시 그의 문장을 기대할 수밖에 없다. 이석원은 최근 소수의 독자들과 빵집에서 작가와의 만남 행사를 가졌다. 『실내인간』의 주인공 용휘처럼 이석원은 빵을 좋아한다. 독자들에게 많이 들은 이야기 중 하나는 “소설 주인공의 모습에 작가가 많이 들어있는 것 같아요”. 이석원의 대답은 “저를 아는 분들이 생각보다 그렇게 많지 않아요. 빵을 좋아한다는 사실도요. 그래서 굳이 주인공의 설정을 바꾸려고 하지 않았어요. 피할 수 있었지만 피하지 않았어요.”다. 언니네이발관을 결성하기 전까지 팝칼럼니스트로 활동했던 이석원, 2006년부터는 3년간 인사동 쌈지길에서 카페 ‘살롱 드 언니네이발관’을 운영했다. 작은 공간이었지만 인테리어만 1년을 공을 들이고, 직원 매뉴얼이 작은 사전 한 권 분량일 정도로 열심을 다했다. 이석원은 어떤 일도 두루뭉수리로 넘어가는 법이 없는 사람이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4년 만에 이석원이 펴낸 첫 장편소설 『실내인간』은 자기가 정해놓은 틀 밖으로는 한 발자국도 나가려 하지 않는 소설가 김용휘와 그와 친구가 된 용우의 이야기다. 이석원의 두 번째 작품을 기다린 독자들은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른다는 표정으로 소설을 읽고 있다. 빠른 속도로 가뿐히 읽을 수 있는 소설. 이석원은 의도했고 독자들은 반색했다. 스스로 결과지상주의자라고 말하는 이석원은 숱하게 고치고 또 고친 작품을 내놓으면서 편집자를 들들 볶았다. “나오자 마자 묻혀 버릴 거야.” “망할 거야.” 출간 한 달이 지난 지금, 그의 응석은 사라졌다. 이제 이석원은 팬보다 독자가 더 많은 작가가 됐다. 때론 “이석원 작품은 다 팬들이 사주는 거 아냐?”라는 힐난을 듣곤 했다. 사실인즉, 그만큼 많은 팬들이 존재하지도 않거니와 다행인 것은 그의 팬들은 “맹목적으로 좋다”고 평가해주는 사람들이 아닌, “실망하면 어떡하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라서 작품을 좋게 본 거겠지”라며 복잡하게 고민하고 그를 걱정해주는 팬들이라는 것이다. 이석원은 “항상 나를 긴장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고맙다”고 말한다. 인터뷰 내내, 이석원은 자신의 글처럼 화려한 수사 없이 대화를 이어갔다. 이따금 골똘히 생각에 잠겼지만 매우 차분하게 스스로를 객관화했다. 이석원은 ‘보통의 존재’였지만 일상을 많이 의식한다는 점에서는 분명 남다른 모습이 있었다. 자기연민에 빠질라치면 기어코 감정을 추슬러 한 문장 한 문장을 써내려 갔을 작가 이석원의 모습이 그려졌다.
소설을 쓰면서 인생공부 정말 많이 했어요
산문집 『보통의 존재』반응이 대단했잖아요. 독자들이 오랫동안 후속작을 기다렸는데, 뜻밖에도 단편이 아닌 장편소설을 썼어요.
처음에는 단편을 쓸까, 장편을 쓸까 고민을 했는데 여러 사람들의 조언을 듣고 장편으로 결정했어요. 이왕 공들여서 쓰는 거니까 장편을 써야겠다 싶었죠.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했어요. 에세이는 음악으로 치면 3분짜리 노래를 10곡 만드는 느낌인데, 장편은 100분짜리 한 곡을 만드는 기분이었어요. 산문집은 내 이야기니까 내 경험을 쓰면 되는 건데, 소설은 지어서 써야 하니 힘든 과정이었어요.
한 독자 분이 그러시더라고요. ‘4년 동안 쓴 작품을 하루 만에 읽어서 미안하다고. 그런데, 칭찬 아닌가요? 단숨에 읽었다는 건 그만큼 금세 빠져들었다는 건데요.
(웃음). 미안하대요? 제가 미안하죠. 사실 감상이라고 하는 건 읽는 사람 자유잖아요. 작가가 무엇을 바란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 것 같고요. 『보통의 존재』는 필체는 담담해도 주제가 가볍지 않아서 무거운 느낌이 있었잖아요. 이번에는 독자들이 두 세시간이면 휘리릭 읽을 수 있는, 턱에 걸리지 않는 책을 쓰고 싶었어요. “재밌다” “휙 읽었어” 이런 반응을 원했는데 너무 빨리 읽었다고들 하셔서, 제가 좀 죄송해서 책에 수록하지 않은 미발표 텍스트를 온라인 카페를 통해서 올리려고 해요. 소설을 읽으신 분들이 찾아오는 공간으로요.
4년간 한 작품을 쓴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잖아요. 언니네이발관 앨범이 먼저 나오려나? 기대도 했어요.
소설을 쓰면서 인생공부를 정말 많이 했어요. 집필이 들어가지 않은 상태에서 출판사한테 계약금을 받았는데, 몇 달 동안 안 써져서 당황했죠. 음반 작업은, 제가 멀티가 안 되는 스타일이라서요(웃음). 그리고 음악 작업은 저 혼자 하는 게 아니라 함께하는 작업인데, 저랑 곡을 같이 쓰는 친구도 작업이 잘 안 돼서 진행이 될 수 없었죠.
『실내인간』을 읽은 독자들이 주인공 용휘의 모습에서 작가님의 모습이 많이 비쳐진다고 이야기하지 않던 가요.
많이 들었어요. 빵을 좋아한다는 점이나 성북동, 서점을 좋아하는 것들을 눈 여겨 봤을 거예요. 저도 쓰기 전에 잠깐 고민을 했어요. ‘내 이야기라고 생각하면 어떡하지?’’ 그런데 저를 아는 사람이 정말 별로 없어서 고민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피해갈 수 있었지만 피하지 않았어요. 이 이야기가 내 이야기인지 아닌지는 상관이 없어요. 단지 돈을 지불할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인가가 중요했어요. 소설 속 용휘는 자기 책이 나오면 서점을 순례하잖아요. 저는 성격상 그런 거 절대 못해요. 용휘는 자기가 원하지 않는 모습으로 살아가면서 그 모습을 누구한테도 보여주고 싶어하지 않아서 고립을 자처한 사람인데, 저는 관계에 갈증을 많이 느끼는 타입이에요. 알고 보면 되게 반대의 모습인데, 표피적인 코드만 보면 ‘어, 이거 이석원이네?’라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그런데 전 그렇게 생각해도 상관없어요.
관계에 갈증을 많이 느낀다고 했는데, 블로그가 그 갈증을 해소하는 공간이 아닐까 싶어요. 블로그(http://blog.naver.com/dearholmes) 제목이 ‘글을 위한 글’이잖아요. 소설을 쓰는 과정에서 블로그가 도움이 되었을 것 같기도 해요.
큰 힘이 됐어요. 안 그래도 관계의 폭이 좁은 편인데, 소설 쓸 때는 집에만 있으니까 더더욱 사람들과 소통할 기회가 없었어요. 블로그에서 사람들과 사적인 이야기를 하고 대화하면서 위안을 많이 받았어요. 블로그는 제 이야기를 쓰는 것보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공간이에요. 사람들 이야기를 듣다 보면 얻는 게 참 많아요. 그래서 제가 질문을 많이 해요.
『실내인간』에서 소설가 용휘는 작품을 쓰고 나면, 언제나 소영에게 먼저 글을 보여줬어요. 소영이 잡지사 편집장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신뢰하는 사이였기 때문일 텐데요. 작가님에게도 이런 존재가 있었나요.
다양한 사람들이 있어요. 글을 전문적으로 쓰는 사람, 그리고 일반 독자들의 반응도 보고 싶어서 일반인들에게도 보여 줘요. 글의 모니터를 주고 받는 건 굉장히 사적인 일이잖아요. 기본적으로 타인에게 물어봐야 하고, 또 그 사람의 판단을 내가 판단해야 하고요. 이 사람의 말이 신뢰할만하다고 판단되면 수용해요. 인물 설정이나 글의 흐름 등 많은 곳에서 영향을 받았어요. 그래서 기본적으로 초고가 정말 많이 달라졌어요. 초고가 1,800매였으니까요. 저는 일단 결과지상주의자에요. 과정이 어떻든 간데 사람들이 사서 읽을 만한 값어치가 있는 책을 만들고 싶었으니까요. 너무 많은 분들이 굉장한 도움을 주셨어요.
완벽주의 느낌이 있어요. 꼭 쓰지 않아도 될 수식어는 절대 쓰지 않으려는 강박이 있다고 할까요. 문장이 무척 간결하고 단정한 것도 같은 맥락일 것 같은데요.
저한테 글쓰기는 만만한 일은 아닌 것 같아요. 쓰고는 싶지만, 아주 간단한 일기, 한 두줄 짜리 문장을 쓰더라도 뭔가 걸리는 부분이 없을 때까지 고치고 또 고쳐요. 표현하고 싶은 욕구는 많지만 어려워요. 저한텐 글쓰기가 그런 것 같아요.
그런데 의외로 다른 사람들의 평가에는 휘둘리지 않는 것 같아요. 사람들이 칭찬을 해도 스스로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절대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 자신에게 무척 객관적인 사람인 것 같아요.
그러려고 애를 많이 써요. 하지만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에요. 그래서 글 쓰면서 인생 공부를 많이 했어요. 힘들지 않았다고 말할 수 없어요(웃음).
『보통의 존재』가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건 사실인데요. 혹시 이런 반응이 없었더라도 소설을 썼을까요.
그건 장담 못하는 것 같아요. 글을 사랑해서 글을 쓰는 건 아니에요. 회사 다니는 일이랑 똑같아요. 주어진 일을 비정상적으로 남들보다 열심히 할 뿐이지, 글 쓰는 거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요. 인생은 짧다고 생각하는데, 그래서 되도록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해요. 사람들이 ‘넌 글 쓰는 건 아닌 것 같다’라고 판단해줬다면 장담할 수 없어요. 썼을 수도 있지만 접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간절함을 버리고 살 건 아니지
『실내인간』을 읽으면서, 작가가 이렇게 친절해도 되는 건가 싶었어요. “친절하네 친절하네, 어, 너무 친절해” 이런 느낌이었어요. 작가의 의도가 있겠다 싶었고요.
정말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쉽게 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첫 소설이니까 저에게는 등단의 과정이나 마찬가지였거든요. 다음 책을 써도 되냐, 아니냐를 확인할 수 있는 책이기도 했고요. 어쭙잖게 문학 흉내를 내기보다는 정말 쉽게 사람들한테 다가가고 싶었어요. 저는 기본적으로 글을 슬 때,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어렵다는 느낌을 주는 건 쓰는 사람의 미숙함 때문이라는 신조가 있어요. 물론 제가 이렇게 전개해서 풀어나간 방식이 최선이고 결점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이 책이 어떻게 이해될 것인가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어요.
예상했던 반응과 독자들의 실제 반응이 비슷한가요.
너무 쉽고 친절하게 쓰여졌기 때문에 크게 벗어나지 않아요. 물론, 각자 훅을 두는 지점은 다르죠. 인물에 대한 이해는 워낙 친절하기 때문에 편차가 없어요. 마지막에 용휘가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고백할 때, 그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시더라고요. 어떻게 이야기할 것인가에 대한 부분은 많이 고민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잘한 선택이었던 것 같아요.
용휘는 소음을 끔찍이 싫어하는 소설가에요. 작가님도 무소음의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들었어요.
시끄러운 곳을 가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글 쓸 때는 음악도 못 들어요. 사실 소설 쓰면서 이게 제일 힘들었어요. 아파트에 살다 보니 다른 집에서 나오는 소음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는데, 나는 완전히 막아야겠고. 귀마개와 이사, 경찰서. 정말 수도 없이 다녔어요. 이사를 하려고 집도 여러 번 계약했는데, 막상 이사하는 날에 집을 가보면 들리지 않았던 소음이 들렸어요. 잔금을 다 치렀지만 이사는 못 가고, 월세는 나가고. 그렇게 반복됐어요.
산사의 절이나 창작촌은 그래도 소음이 덜했을 텐데요.
어머니 곁을 떠날 수가 없어요. 장이 좋지 않아서 어머니가 해주는 밥을 먹어야 하고. 또 저는 도시를 좋아하는 사람이라서 괜히 제가 없으면 서울에 큰 일이 날 것도 같고(웃음).
용휘가 ‘고통을 견디는 법은 그저 견디는 것’이라고 말했어요. 그게 인생이라고. 하지만 사람들은 간절히 원하면 꿈은 이뤄진다고 생각하잖아요. 물론 이뤄지지 않더라도 끊임없이 간절히 구하게 되는 게 사람의 마음이고요.
글쎄요. 꿈을 이뤄진다고 하지만 안 이뤄지는 게 90% 아닌가요. 예전에 어떤 큰 기업의 임원들이 모인 조찬 자리에 간 적이 있어요. 책을 내면 종종 강연 제의가 들어오는데 어쩌다 보니 함께하게 됐는데, 제가 거기서 이런 말을 했어요. ‘여기 사장도 있고 부사장도 있고 임원도 있을 텐데, 모든 사람들이 꼭대기에 올라가려고 노력하지만 결국 사장은 한 사람이다. 누구 하나 간절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을 테지만 다 이뤄질 순 없다. 교과서적으로 말한다면 모두들 간절하게 원했으니 꿈이 이뤄져야 하는데 세상은 그렇지 않다. 내가 글을 써야 한다면, 대부분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 최선을 다했지만 꿈이 이뤄지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 이제부터 어떻게 해야 하지?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요. 그걸 그려나가는 게 내가 해야 하는 일 아닌가 생각되고요. 제가 간절함이라는 걸 실제로도 많이 갖고 있는 사람이고 관심이 깊은 주제에요. 간절하게 원하는데 왜 이뤄지지 않는 거지? 그런 걸 끊임없이 생각하고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편이에요.
그럼 지금 가장 간절하게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다음 책을 낼 수 있고 소설가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요. 간절함으로 따지면, 간절하면 이뤄지는 거니까 불안해할 이유는 없는 건데, 엄청 불안해하고 간절해요(웃음).
『실내인간』 예약 판매를 할 때, 이석원 연습장울 줬잖아요. 이런 문구가 있더라고요. ‘인생은 운동장이고, 청춘은 연습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절함을 가지라는 의미가 아니었나요?
그건 제가 쓴 게 아니에요(웃음). 그리고 저는 기본적으로 책을 쓰는 이유가 ‘이래라 저래라’ 하고자 하는 게 아니라 질문을 던지고 싶어서 쓰는 거예요. ‘세상은 그렇지만, 이렇게 살아야 해요’가 아니라, 은근슬쩍 떠보는 거예요. 간절함을 버리고 살 건 아니지, 그 정도가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요.
종종 작가님께 음악이나 글에 있어서 조언을 구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 같은데요.
남에게 조언해주는 사람이 못돼요. 만약 그게 조언처럼 들리면 저한테 하는 이야기에요. 제가 말해줄 수 있는 건, 제가 아는 한에서는 말해주지만 일단 ‘저도 잘 모르겠어요’ 이러면서 말을 꺼내요.
소설 속 용휘는 사랑하는 사람이 생겨서 목적의식이 생겼고 어찌됐든 소설가가 됐잖아요. 작가님은 어떤가요. 타인으로부터 온 동기로 인해 뭔가를 갈구한 적이 있나요.
작가로서 인정 욕구가 하나도 없고, 나만 만족하면 되고 그렇다고는 말할 수 없어요. 타인의 시선이라는 부분에 대해서 오래 전부터 엄청 고민을 많이 했어요. 성격상 남을 의식하고 얽매이는 걸 싫어하는데, 대중 앞에 서는 사람이다 보니 그 시선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해요. 어렸을 때는 저만 그런 줄 알았는데, 이런 생각을 깨준 게 버지니아울프의 『어느 작가의 일기』를 읽고 나서부터 에요. 나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사소한 것에 상처 받고 신경을 쓰는 사람을 보면서, ‘이게 인간의 본성이구나’ 깨달았어요. 제가 전기를 좋아하는 편인데 이런 이유 때문이에요. 용휘라는 인물을 만들어낸 것도 기본적으로 이 사람은 세상 모든 일에 자신 있어 하지만, 알고 보면 엉망진창으로 살고 있는 사람이잖아요. 겉으로 보면 완벽한데 안을 파보면 결점이 많은 사람.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는 걸 좋아해서 결국 그런 사람을 만들어낸 것 같아요.
‘고통을 견디는 법은 그저 견디는 것, 편안해지는 순간이 오리라는 믿음’이라는 글귀가 인상적이었어요. 사실 모든 일이 그렇잖아요. 방법을 찾지만 해결이 안 되고 그저 견디다 보면 언젠가 끝이 나고.
사람들한테 물어봐요. 어젯밤에 죽도록 사랑하던 여자와 헤어졌는데, 어떻게 해야 하냐고. 방법을 찾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특별한 방법은 없는 거 같아요. 그런 게 하나도 소용 없다는 걸 아니까, 어쨌든 아프니까요.
4년 동안 슬럼프도 많았을 것 같은데요. 글이 안 풀릴 땐 어떻게 하셨어요?
책상에서 쉽게 못 일어나는 편이에요. 그러다가 놓게 될 때는 머리가 방전돼서 더 이상 안 돌아갈 때, 그 땐 일어났어요. 다시 돌아갈 때까지 산책도 하고 TV프로그램도 보고 그랬어요. 일일 드라마, 예능 다 챙겨봤어요. 4년 내내 매일매일 몇 번씩 방전이 됐어요. 아침에 눈을 떴을 때가 제일 잘 써지고 그러다 보면 방전되고, 또 아침 먹고 또 쓰고, 이렇게 완전히 방전될 때까지 반복하는 일상이었어요. 정말 힘들었어요. 어느 순간부터는 아무리 쉬어도 소용이 없는 단계가 왔어요. 그 때가 되면 대책이 없었어요. 쌀은 떨어져 가는데 글의 완성은 아직 멀었고. 정말 힘들었어요.
소설을 쓰다가 이제 정말 끝이구나, 싶은 순간이 있었나요.
2년 반 정도 썼을 때 끝났다 싶었어요. 그런데 뭐야? 이런 반응이 오고 역시 결점이 발견되고 그런 과정이 반복되면서 그러다 보니 정말 확신이라는 걸 못 믿게 되었어요(웃음).
전작을 썼을 때 ‘해방감을 느꼈다’고 표현한 적이 있더라고요. 『실내인간』을 쓰면서도 이런 해방감을 느꼈나요.
『보통의 존재』를 많은 분들이 읽어주셔서 그 때는 들뜬 마음에 ‘내 천직이 글쓰기인가?’라는 생각도 했어요. 그런데 『실내인간』을 쓰면서는 글쓰기가 해방, 자유 이런 느낌으로 다가온 것 같진 않아요. 글쓰기에 정의를 내릴 수 있는 단계도 아니고요. 역시 힘들구나, 싶을 뿐이에요. 회사를 다닐 때나 음악을 할 때도 계속 힘들었던 것처럼요.
나이탐험가, 인생은 한 번뿐이니까요
누군가 이석원 작가를 두고 ‘건조하게 희망을 바라보는 사람’이라고 했어요.
저한테 그런 구석도 있으리라 생각해요. 그런데 『보통의 존재』가 에세이였지만 거기에 있는 게 꼭 저라고 볼 수도 없어요. 그것도 어떻게 보면 하나의 픽션이라고 생각하는 게 저라는 사람이에요. 사적인 부분을 스스럼 없이 이야기할 수 있었던 것도, 제가 현실을 현실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픽션으로 보는 부분이 있어서 이기도 해요. 독자들은 충분히 책 속의 사람과 저를 동일시할 수 있겠지만요. 희망을 건조하게 바라볼 때도 있는가 하면, 미치도록 간절할 때도 있어요. 『실내인간』을 쓰면서 매일매일 기도하고 잤어요. ‘제발 끝내게 해달라고’ 이런 면에서 보면 건조한 것과는 거리가 멀 수도 있어요.
작품을 보다 보면, 문체가 작가의 성격과 굉장히 닮아 있는 경우가 있고 판이하게 다른 경우도 있어요. 작가님의 경우는 어떤가요.
후자 쪽이 더 재밌지 않나 싶어요. 작품과 작가가 동일시된다면 그건 내 이야기이든 아니든 의미가 없을 것 같아요. 예전에 어떤 유명한 분이 『보통의 존재』를 읽고서, 자기 인생의 획을 그었다면서 ‘자기도 이렇게 담담하게 살고 싶고, 이런 담담한 사람이 너무 좋다’고 만나고 싶다고 했어요. 그런데 안 만났어요. 저는 그렇지 않으니까요.
스스로를 ‘나이탐험가’라고 칭하잖아요. 어떤 뜻인가요.
인생은 한 번뿐이라는 게 제 인생의 모토에요. 다음 생이 있더라도 지금의 자아로 태어나는 게 아니니까, 소용이 없는 거고.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내가 지금 마흔 셋이지만, 내 청춘은 끝났다고 생각하는 것보다는 인생에서 한 번밖에 경험할 수 없는 나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나이탐험가라고 말한 거고, 지금 마음도 변함 없어요.
언니네이발관 새 앨범을 기다리는 팬들도 많은데,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나요.
다음 앨범이 마지막 앨범이에요. 저는 마흔을 넘기면 곡이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어요. 만약에 곡 작업이 풀린다면 모든 걸 제쳐놓고 앨범 작업을 할 거예요. 그런데 같이 음악 하는 친구가 곡이 나오지 않고 있어요. 제가 지금 들어갈 시점은 아닌 거예요.
갑자기 곡이 잘 써져서 앨범을 만들어야겠다고 연락이 오면요? 소설의 흐름이 끊기진 않을까요.
글쎄요. 그건 끊겨도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그런데 그럴 것 같진 않아요. 왜냐하면 소설은 나이 먹어서도 쓸 수 있는데, 음악은 달라요. 나이 먹으면 작곡이 안 돼요.
왜 음악은 다른가요.
모르죠. 그건 조물주한테 물어봐야 해요. 비틀즈가 수많은 명반을 남겼지만 불과 3년 동안 나온 곡들이에요. 롤링스톤즈도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랜 기간 살아남은 밴드지만 명곡을 들어보면 다 20대 때 만든 거예요. 오랫동안 내줘서 고마운 거지, 사실 들을 만한 건 없어요. 운동선수도 똑같아요. 정년이 짧잖아요. 서른 넘기면 노장 소리를 들어야 하고요. 호흡이 긴 일은 따로 있어요. 왜인지는 저도 모르겠는데, 각자 일의 정년이 있는 것 같아요.
소설 말고 다른 창작에 대한 관심은 없나요. 영화광으로 알고 있어요.
영화 좋아해요. 연출에도 관심 있고요. 그런데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서요.
모르는 거죠. 언젠가 시나리오를 한 편 쓸지도.
아니에요(웃음).
소설가 이석원의 모습은 계속해서 볼 수 있는 건가요. 두 번째 소설, 궁금해요.
쓰고 있어요. 제 습성이 전에 만들었던 것과 다르게 가려는 습성이 있어요. 『보통의 존재』가 필체는 담당하지만 무겁고 깊게 들어가고 사람들을 먹먹하게 했다면, 『실내인간』은 요만큼도 스트레스를 안 주고 재밌고 경쾌하게 갔잖아요. 그래서 다음 작품은 완전히 다르게 가게 될 것 같아요. 소재는 밝힐 수 없어요. 제목인 다인 소설이에요. 제목이 여덟 글자인데, 나중에 한 번 보세요. 정말 여덟 글자인지(웃음).
- 실내인간
- 이석원 저 | 달
이야기는 실연의 상처를 간직한 채 낯선 곳으로 이사를 간 용우가 앞집에 사는 한 남자를 알게 되면서 시작된다. 호기심 많고 활달하면서도 한편으론 유약한 성품을 지닌 용우는 매사에 강인한 모습을 보이는 남자를 친형처럼 따르게 되는데 실내인간은 바로 용우가 만난 사내 김용휘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소설은 용우의 시선을 통해 본 한 사람의 기상천외한 삶을 통해 자신이 쌓은 탑에 갇혀버린 한 존재의 허망한 모습을 속도감 있는 서사와 섬세한 필치로 그려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