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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의준 국립오페라단장 “3만 원이면 충분히 볼 수 있는 공연도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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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면에서 국립오페라단 김의준 단장은 독보적인 커리어를 가지고 있다. 그는 한국에 제대로 된 공연장이 거의 없던 1986년부터 공연장 경영에 발을 담갔다. 2007년부터 2010년까지 아시아태평양공연장연합회 부회장을 맡았고, 2010년에는 공연예술경영상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예술 경영’이라는 말이 생기기 전부터 예술 경영을 시작한 셈이다. 그러나 김의준 단장 여전히 자신은 예술에 대해 문외한이라며 겸손한 태도를 보인다. 2011년부터 현재까지 국립오페라단의 단장을 맡고 있는 김의준 단장은 오페라라는 새로운 분야에서 어떤 그림을 그려나가고 있을까. 그가 바라보는 한국 오페라와 예술경영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예술의전당을 찾았다.




이력이 독특하다. 건설회사에 입사해 예술의 전당 기초 공사에 참여하기도 했는데, 어떻게 공연예술 쪽 일을 하게 되었나?

건설회사에서 일했지만 엔지니어는 아니었다. 토목이나 건축 쪽에서 일하는 엔지니어가 아니라 안전, 구매, 해외 공사 수주 같은 일을 담당했다. 당시는 중동 붐이 일어날 때여서 건설 쪽 일을 하면 계속해서 해외로 나가야 했다. 중견 정도 되고 보니 안정적으로 한국에서 생활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마침 예술의 전당을 짓는 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곳에서 일을 시작했다. 집을 짓는 일을 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쉽게 접근했던 것 같다. 건물을 짓다 보니 일반 건물들과는 다르게 공연하는 곳이라고 했다. 그렇게 공사가 마무리되고 집 짓는 일을 하던 사람들은 사라지고 공연장을 운영할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다시 건설 일로 돌아가면 계속해서 해외에 나가야 해서 이곳에 눌러앉기로 마음먹었다. 그게 인연이라면 인연이다.

예술경영에 대한 인식이 별로 없었던 시절에 일을 시작했다. 어떻게 일을 꾸려왔는지 궁금하다.

세종문화회관이 유일한 공연장이던 시절이다. 예술경영 같은 개념은 전혀 없었다. 예술의전당은 콘서트 홀만 1986년도 먼저 개관했는데, 부장급이 없어서 직원들이 힘을 모아 일을 하는 구조였다. 부장을 모집한다는 소식을 듣고 내가 지원했다. 예술에 대해 아는 바가 없는 사람이 지원을 했으니 경영팀에서는 당황스러운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임자가 없었는지 내가 일을 맡게 되었다. 일을 시작하며 직원들을 살펴보니 다들 전문가였다. 처음부터 이쪽 일을 지향해서 시작한 사람들이라 일을 잘했다. 가만히 보니 일이 성사되지 않는 이유는 유일하게 돈 때문이었다. 그림은 잘 그리는데 지원되는 나랏돈으로는 원하는 일을 하기 어려웠던 거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도록 돈을 지원해주는 거구나, 하고 생각했다. 건설공사를 하며 계약을 도맡아 했는데, 거의 천육백억 정도 되는 건축 계약을 하곤 했다. 그러는 동안 쌓인 인맥들을 동원했다. 밥 한번 사겠다는 사람들에게 밥 대신 표를 사라고 하고, 프로그램에 5백만 원, 1천만 원씩 광고를 실으라고 이야기했다. 물론, 아직 협찬이나 광고 같은 개념은 없던 시절이다. 그렇게 돈을 받으니까 문제들이 많이 해결됐다. 그 뒤로는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나를 믿고 의지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일을 잘하다 보니 덩달아 좋은 성과들이 이어진 셈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당시, 이쪽에서 일하는 내 또래가 없었다. 아주 엉성할 때다. 나는 직장인으로 와서 일을 맡았고 그 과정에서 내가 할 수 있고 조직에 필요한 일을 했던 거다. 이제 와서 블루오션이었다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사실 나는 해외에 가지 않고 가족들과 서울에 살고 싶어서 열심히 노력했던 거다.

예술경영이 다른 경영과 달리 접근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

일반회사에서 직원들은 다양한 직종을 소화하면서 일한다. 원래 하던 일과 다른 일을 맡아도 충분히 호환하면서 일을 한다. 하지만 예술 분야는 모두가 전문가다. 무대 조명 담당이 의상을 담당할 수 없다. 또 각자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있다. 이 사람들은 할 수 있는 일, 지향하는 바가 뚜렷하다. 이런 사람들과 일하면서 경영자가 지나치게 개입하거나 일방적으로 지시하는 건 잘못이라 생각한다. 자신감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주고 격려하는 게 함께 일하는 좋은 방법이라 생각한다.

지금까지 국립오페라단은 성악가나 안무가가 수장을 맡았다. 공연장 최고경영자 출신 단장은 처음이라고 알고 있다. 어떤 면에서 장점이 있다고 생각하나.

예술을 했던 분들이 수장이 되면 자기가 했던 일에 관심이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 연극을 연출했던 사람은 연극에, 무용을 했던 사람이면 무용에 더 많은 힘을 쏟게 된다.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나 같은 사람은 특별히 한 분야에 집중하지 않고 골고루 관심을 가질 수 있다. 자세한 부분들을 잘 모르니까 일을 지시하는 게 아니라 믿고 맡기면서 힘을 내도록 격려한다. 대신 회사의 분위기나 방향 등 큰 그림을 그리는 게 내 일이라 생각한다.

한편의 오페라가 오르기까지 지난한 과정이 있을 것 같다.

내가 왔을 때, 이 회사가 50년이 되었다. 캐치프레이즈가 ‘아시아를 넘어 세계로’였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물론 여건은 된다. 뛰어난 자질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공연예술의 면에서 모든 게 복합적으로 어우러져있는 게 오페라다. 무엇보다 조화를 이루는 게 가장 어렵다. 가끔 오페라를 하는데 얼마나 많은 사람이 필요한지 세어보곤 한다. 예술의 전당에서 하는 공연은 적어도 250명에서 350명은 필요하다. 합창이나 무용, 오케스트라 같은 경우는 사람 수가 적기 때문에 소통하기가 편하다. 조화의 측면에서만 보면 훨씬 간단하다. 그런데 오페라는 오케스트라, 합창단, 연기하는 사람, 반다, 조명, 의상, 분장, 기획까지 물리적인 수부터 너무 많다. 게다가 예술가들은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듣지 않는 편이다. 자기 세계에 대한 고집도 있고, 일종의 기 싸움도 있다. 연습시간 같이 사소한 것에서부터 갈등이 생긴다. 300여명을 놓고 이런 부분을 조율해야 하니 문제가 끊이질 않는다.

유럽 각국에 비하면 한국 오페라는 그 시작이 늦은 편이다. 현재 한국 오페라는 어느 정도 수준에 와 있는가?

한국의 싱어들은 굉장한 실력을 가지고 있다. 유럽에 있는 오페라 하우스의 오페라단들은 한국 싱어들 없이는 공연을 하기 힘들 정도다. 문제는 팀워크다. 각각의 기량은 뛰어난데 같이 모여서 조화를 이루는 부분이 약하다. 기획이나 연출 같은 부분에서 종합적으로 조율하는 게 어렵다. 이 부분만 극복하면 우리 오페라 수준은 서양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거다. 지금도 우리 작품을 가지고 해외로 나가자는 이야기가 적극적으로 진행될 만큼 발전한 상황이다. 작년에 정부에서 해외공연 예산을 받고 기획을 한 적이 있었다. 정부예산의 경우 사용처를 임의로 변경할 수 없다. 해외 공연을 위한 예산은 반드시 거기에 써야 한다. 그래서 해외 시작을 살펴봤는데 우리와는 공기가 전혀 달랐다. 일단, 스케줄부터 너무 차이가 났다. 외국에서는 공연 프로그램을 이야기할 때, 3-4년을 앞서 이야기한다. 유명한 공연장은 6~7년 앞선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는 1년 단위로 내년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다 말을 꺼내기가 어렵더라. 한국 오페라 발전을 위해서는 시스템의 문제부터 해결되어야 한다.




창작 오페라 <처용>을 선보이며 세계 속에 한국 오페라의 위치를 공고히 하고 있다. 창작 오페라 작업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외국사람들이 우리나라에서 사물놀이를 한다고 하면 우리 입장에서 신기하기는 해도 그다지 끌리는 공연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프랑스랑 교류하면서 <카르멘>을 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우리 것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여기에도 문제는 있다. 공연이 끝나면 세트를 보관해야 하는데, 보관할 곳이 마땅치 않다. 창고를 2개 정도 확보해서 보관하고 있는데 새 공연이 끝나면 새로운 세트를 보관해야 해서 이전 것을 폐기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과거에 공연했던 우리 작품들의 세트가 남아있지 않다. 이번에는 <처용>과 <천생연분>을 올리고 어떻게든 세트를 보존해서 한국 작품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리 것을 제대로 만들어 소통해보려는 시도다.

현재 한국 오페라 시장은 얼마나 되나?

발레나 뮤지컬의 경우, 최근 시장이 꽤 성장했다. 발레는 오페라 한 편 만드는 것에 비하면 1/4이나 1/3의 비용이 들 거다. 최근 들어 해설도 하고 가족들끼리 보러 가는 문화도 생기고 있다. 겨울이 되면 <호두까기 인형>에 사람들이 몰리지 않나. 뮤지컬도 스타급 배우들이 생겨나면서 점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렇게 생긴 관객들이 점진적으로 오페라로 건너오는 중이다. 물이 가득 차서 넘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유입되는 관객이 많다. 사실 오페라를 보고 나면 다른 공연으로 돌아가기 어렵다. 아무래도 오페라가 조금 더 복잡하고 풍부한 장르이기 때문일 거다. 오페라를 자주 보면 다른 공연들이 단순하게 느껴질 정도다. 현재 오페라하우스에서 시야장애석 등 4천 석을 제외하면 전체 좌석이 1600석정도 된다. 보통 4회 공연이 가득 차면 괜찮은 걸로 생각한다. 지난 번 <카르멘>의 경우 4회가 끝나고 부족해서 1 회를 늘렸다. 점점 관객이 늘어가고 있다. 가능성이 있다. 물론 수지의 측면에서는 아니다. 사실 공연은 하면 할수록 손해다. 원래 이름난 공연장일수록 손해가 많다. 하지만 꼭 필요한 일이라 하는 거다.

국립오페라단은 국립인 만큼 과거에 대표로 있었던 LG아트센터와는 다른 부분이 있을 것 같다. 어떤 점에서 다른지, 특별히 신경 쓰는 부분이 궁금하다.

전에 일했던 LG아트센터는 조금 독특한 곳이다. 매년 공연할 예산이 언제든 확실하게 정해져 있었다. 돈이 항상 준비되어 있기 때문에 자신 있게 프로그램을 짤 수 있었다. 하지만 국고는 이에 비해 유동적이다. 관객의 불평이 있거나 정책상 변화가 있으면 예산이 줄어들 수 있다. 애초에 예산을 줄여서 기획하면 되지 않느냐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주어지는 예산을 충분히 써도 작품을 올리는데 버거운 상황이다. 게다가 해외 다른 팀들은 2-3년 앞선 그림을 그리고 있다. 뒤늦게 기획을 해서 오페라를 꾸리다 보면 이삭줍기를 하는 셈이다. 괜찮은 싱어나 무대 전문가들은 다 빠져나간 뒤에 시작하게 된다. 작업 여건이 어렵게 된다. 일정이 빠듯하게 정해지면 연습할 시간도 충분하지 않다. 공연장을 빌려야 하는데 늦게 시작하면 아무래도 불리하다. 오케스트라나 합창단 확보도 마찬가지다. 앞선 프로그래밍이 중요한 이유다. 관객들 입장에서도 미리 기획된 상을 보여주지 않는 곳에 대해서는 신뢰도가 떨어진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직원들이 전문가인데도 자신감이 없었다. 과거에는 수장들이 예술가였기 때문에 작품에 대해 깊이 관여했었다. 그런 속에서 지시한대로 일을 하다 보니 전체적인 그림을 모른 채, 맡은 일만 했던 것 같다. 내가 와서 보니 직원들이 전문가인데 자신감이 없더라. 당신들이 대한민국에서 최고라고 말하는데도 잘 믿지 않는 눈치였다. 이제는 조금씩 인식을 하는 것 같다. 나는 국립오페라단이 당신들 때문에 움직이는 거라고 말한다. 스스로 자긍심을 가지고 있어야 그 안에서 긍정적인 에너지가 나올 수 있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전문가이기 때문에 고집이 더 셀 것 같다. 팀워크를 이루는데 어려운 점은 없었나?

과거에는 이 일을 시작했을 때는 백지상태에서 한 사람, 한 사람 내가 선발했다. 그래서 당신이 나고, 내가 당신이라고 자주 이야기했다. 나는 소통을 위해 움직이는 사람일 뿐이고 실제로 일을 하는 당신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곤 했다. 그분들이 일을 잘하기도 했지만 회사와 일에 대한 애정도 컸다. 하지만 여기 와서 보니까 조금 다른 면이 있었다. 국공립 단체들은 다른 조직과는 조금 다르다. 온전히 이 조직만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 모였다고 보기 어려웠다. 제도를 개선하거나 인사 문제를 다루려 할 때 여러 가지 장애물이 있었다. 게다가 과정이 중요하다 보니 효율성이 떨어지는 면도 있다. 사조직의 경우는 결과를 중요시하는 편이다. 팀원, 팀장, 간부급 정도가 있으면 어떤 문제가 있을 때, 빨리 결정해서 당장 시작할 수 있다. 공연을 보러 가야 한다고 생각하면 당장 갈 수 있다. 하지만 공조직의 경우 절차가 중요하다. 그러지 않으면 누수 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일 텐데 일을 처리할 때는 빠르게 효율적으로 움직이기 어려운 면이 있다.




2011년부터 지금까지 국립오페라단을 이끌고 있다. 앞으로 한국 오페라의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게 있다면 무엇일까?

무엇보다 공연장이 필요하다. 또 합창단, 오케스트라, 그리고 싱어가 있어야 한다. 외국에서 보기에는 국립오페라단이 마치 페이퍼컴퍼니 같을 수 있다.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같은 경우는 3천명이 일을 한다. 발칸 산맥에 있는 오페라단도 850명이 일한다고 들었다. 그런 사람들과 만나서 대화를 하면 황당한 상황들이 벌어진다. 공연장이 있느냐고 물으면 예술의전당이라는 곳이 있는데 입주해서 쓴다고 하고, 합창단이 있느냐고 물으면 국립합창단이 옆방에 있다고 하고, 오케스트라가 있느냐고 물으면 코리안 심포니에서 도움을 받는 다고 대답해야 한다. 싱어들은 그때그때 모아서 쓴다고 이야기하면 그들은 이해가 잘 가지 않는 눈치다. 아무래도 주눅이 들게 된다.

물론 우리는 유럽과 역사와 전통의 시간이 다르다. 예전에 독일에 방문했을 때, 안내하던 사람이 이런 질문을 했다. 2차 대전 이후 연합군이 초토화시킨 땅에 돌아온 독일 사람들이 제일 먼저 지은 게 무엇일까? 나는 학교나 집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로서는 당연한 생각이다. 그런데 답은 공연장이었다. 당시에는 거짓말 같았다. 믿기 어려운 이야기였다. 그들은 공연장 없이는 못 사는 거다. 굶어도 공연은 봐야 하는 사람들이다. 이번에 <처용>에서 작곡을 맡아주신 이영조 선생님께서 독일에서 공부하실 때 이야기도 비슷한 맥락이다. 집에 파이프가 고장이나 배관공을 불렀는데 이 분이 일을 하다 말고 내일 와서 마무리하겠다고 했다는 거다. 마저 해달라고 하자 오늘 이스라엘 필이 와서 공연을 하는데 그걸 보러 가야 한다고 했단다. 음반은 들어봤는데 실제로 봐야 한다며 바삐 가는 걸 보며 한국이라면 이럴 수 있을까, 생각했다고 한다. 이렇듯 우리와는 아직 정서 자체가 많이 다른 셈이다.


오페라는 아직 대중들에게 익숙한 장르가 아니다. 오페라를 처음 만나는 대중들이 어떻게 오페라를 즐기면 좋을까?

나 역시 오페라를 즐긴 게 오래되지 않았다. 76년도에 건설회사에 있을 때였다. 세종문화회관을 짓고 나서 회사에 오페라 표가 왔다. 부인과 함께 공연을 보러 갔는데 이제와 생각해보니 그게 <카르멘>이었다. 예술 쪽에 문외한이었기 때문에 도대체 뭐 하는 건가 생각하며 보다 나왔다. 오페라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다면 보기 어려울 수 있다. 답답한 느낌이 들 수도 있다. 그래서 처음에는 미리 어떤 내용인지 살펴보고 가는 게 좋다. 하지만 조금씩 친숙해지면 발길을 끊기 어렵다. 관객들 중에는 같은 작품을 여러 번 보는 분들도 있다. 캐스팅이 바뀌기 때문에 맛이 다르다고 한다. 대부분 오페라가 비싸서 보기 힘들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관심이 없어서 그런 것이다. 3만원이면 충분히 볼 수 있다. 다른 공연들과 비교해 절대 비싼 값이 아니다.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차근차근 발을 디뎌본다면 충분히 그 맛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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