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학창시절을 보낸 이들은 누구나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시리즈에 대한 향수를 가지고 있다. “아는 만큼 느끼고 느끼는 것만큼 보인다”며 그가 보여준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고찰은 단순히 옛 것 혹은 볼거리로 치부하던 우리 문화재와 문화유산의 격을 높였고, 한때 문화유산 답사 열풍을 몰고 오기도 했다. 그렇게 20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여전히 아쉬움은 따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사람들의 문화와 전통을 대하는 태도는 과거에 비해 꽤 많이 향상됐다. 오늘날 한류 열풍이 세계를 휩쓰는 것은 어쩌면 그의 책을 통해 문화적 자긍심을 얻은 젊은 세대들이 우리나라의 불행했던 근대사에 영향을 받은 기성세대의 열등감을 극복한 덕분이 아닐까. 그런 측면에서 봤을 때 최근 문제로 지목되는 중ㆍ고교의 부실한 역사교육 현실에서 그의 신간 소식은 더 없는 반가움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일본편이라니, ‘왜 요즘과 같이 한일관계가 민감한 시기에’라는 어리둥절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어리둥절함은 유홍준 교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내 자연스레 해소될 수 있었다. 그간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는 일본의 망언과 끝없이 이어지는 정치권의 우경화 바람은 우리나라 정부는 물론 국민 모두의 민족감정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유홍준 교수는 격분하는 대신 학자로서, 또 냉정한 관찰자의 시각으로 양국의 문화에 깃든 갈등의 원인을 분석했다. 오래도록 이어지는 한일 간의 해묵은 역사논쟁의 이면에는 고대사 콤플렉스를 가진 일본의 입장과 개화기 강점의 치욕을 잊지 못하는 우리나라의 입장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유 교수는 이번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일본편』을 통해 감정과 자존심 대결로 얼룩진 양국의 문화와 역사를 더 이상 어느 한 쪽의 편협한 시각에서 보는 것을 멈춰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또 시야를 넓혀 더 큰 범위, 즉 동아시아의 역사 속에서 양국의 문화를 이해하고 해석해야함을 주문하고 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일본편』을 내면서
미술사학이란 어찌 보면 요즘 젊은이들의 관심과는 조금 동떨어져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유홍준 교수의 강연에는 늘 학생들이 붐빈다. 신간이 나오면 반드시 읽는 충성도 높은 독자들 역시 그들이다. 물론 주부와 여성, 교사 할 것 없이 많은 사람들에게도 그의 인기는 여전하다. 굳이 이유를 찾아보자면, 소탈한 그의 성품을 꼽을 수 있다. 더구나 역사라면 하품부터 하는 사람들까지도 이목을 집중시키는 그의 강의 스타일은 시종 유쾌하고 위트가 넘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 성품은 인터뷰 자리 역시 다르지 않았다. 더하고 덜함 없이 간결한 답변은 마치 강연을 듣는 듯 했다.
현장을 잘 알기 때문에 그렇죠. 책상에 앉아만 있어서는 그런 현장 중계가 안 되거든요. 답사를 가서도 버스에서 내려서 거기가 동서남북 중 어딘지도 모르고 보는 것 보다는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고 많이 둘러보게 합니다. 내가 답사를 가면 상당히 많이 걸어요. 그러니까 현장감이 있겠죠. 또 글 속에서 그렇게 보여주려고 노력을 하기도 하고요.
단지 문화유산 이야기만이 아니라 전문가적인 평을 친절한 설명과 함께 하고 있다는 것, 또 그 주변에 소소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에피소드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 교수님 글의 특징이 아닐까 싶은데요?
답사기는 답사했던 경험을 전달해 주는 것이니까요. 또 한편으로 현대사회 속에서 많이 잃어버린 것인데, 과정의 중요성이거든요. 어떤 목표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게 과정인데 나는 책을 통해 그 과정도 같이 보여주려 한 거죠. 단순한 옛날 얘기가 아니고 오늘날의 현실에서 그 옛날이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이야기하겠다는 입장이다 보니 다양한 내용이 포함된 것이고요.
예나 지금이나 미국이나 유럽 등 서양의 문물에 대한 관심은 높은 반면 우리가 살고 잇는 동북아 지역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덜하지 않나 싶습니다. 교수님의 책을 통해 그런 생각을 더욱 하게 됐는데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역의 문화와 역사를 먼저 제대로 아는 것이 당연하죠. 우리 홀로 살아간 것이 아닌 함께 살아온 역사가 있으니까요. 그렇게 인식을 해야 우리가 잘 보이고, 우리 역사인식이 올바로 되죠. 오랫동안 중국은 공산국가여서 왕래가 없었고 일본과의 관계는 내내 껄끄러웠잖아요. 특히 일본과는 겨우 1998년에 가서야 대중문화를 소통했잖아요. 이제는 우리가 올바로 알아야 될 때가 됐죠.
규슈 편과 아스카ㆍ나라 편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시리즈의 시작이라고 생각되는데요. 앞으로 이어질 일본편의 계획은 어떻게 되시나요. 또 독자에게 바라는 점이 있으시다면?
다음 편은 교토가 2권으로 그려질 거예요. 그리고 그 다음에는 오사카하고 대마도하고 동경이 남는데……, 그걸 내가 써야 되는지는 아직 모르겠어요. 왜냐하면 내 전공은 미술사이고, 교토까지는 문화유적 중심으로 내가 갖고 있는 전문지식을 통해 할 이야기가 많지만 그 다음은 역사 이야기거든요. 또 한일 근대사 문제도 거기에 녹아있고요. 역사 전문가도 아닌 내가 그 이야기를 쓰는 게 맞는지 잘 모르겠어요. 그래서 일단은 교토에서 끝내고 나머지는 나중에 생각해보려고요. 할 일은 많은데 나이는 먹어가니까(웃음), 일단은 70세가 넘어서도 여력이 있으면 그 뒤에 걸 쓸 수도 있겠지만 일단은 교토까지만 생각하고 있어요. 또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규슈나 나라, 아스카, 교토와 같은 곳을 갔을 때 유적 속에 우리와 어떤 연관이 있고 어떤 관점에서 그것을 보면 좋을지 미리 알게 됐으면 해요. 그러면 더 의미있게 다가올 거예요. 실제로 이미 이번 책 본 분들이 ‘그동안 난 일본 가서 뭘 본건지 모르겠다’는 얘기를 많이 해요.
일본, 욕하기 이전에 아는 것이 먼저다
그는 이번 책을 집필하며 한국과 일본 어느 한편의 관점으로 문화를 보는 우를 범하지 않았다. 때문에 한일 양쪽의 공격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라 했다. 그럼에도 굳이 책을 쓴 이유는 양국이 진흙탕 싸움에서 벗어나 좀 더 이상적이고 공존 가능한 방향으로 나아가길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모든 것을 차치하고라도 우리 입장에서도 무턱대고 일본을 거부하는 것은 확실히 문제가 있다. 우선 아는 것이 먼저라는 말이다.
한일관계는 여러 가지 껄끄러운 현황들이 많죠. 마치 진흙탕싸움처럼 서로 헐뜯고 또 생떼를 쓰고 그런 일이 반복적으로 이뤄지는데, 상대방이 그렇게 나온다고 해서 우리도 똑같은 방식으로 하는 것은 이전투구 이외는 아무것도 안 되고 미래도 없어요. ‘그들이 왜 스스로 생각해도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 이야기를 하는가’를 살펴보면 역사적이고 정치적인 정략이 있어요. 그건 올바른 것은 아니고 또 대국다운 면도 아닌 거죠. 그들이 동아시아의 일원으로 같이 살아주기를 바란다면, 우리는 조급하지 않게 ‘너희들이 좀 자숙하고 반성할 건 반성하고 덕을 길렀으면 좋겠다’는 입장으로 얘기하는 것이 더 어른스럽고 슬기로운 대처가 아닌가 생각을 해요.
“백제와 고구려는 서로 왕까지 죽이면서 싸웠던 불구대천의 원수지간이었다. 반면에 백제와 왜는 단 한번도 싸운 적이 없다. (중략) 민족주의의 세례를 받고 민족과 국가를 일치시켜 역사를 보아온 시각에 익숙해 있어서 고구려ㆍ백제ㆍ신라가 한 민족으로 한편이고 왜는 외적이었다는 선입견이 있으면 이 사실을 이해할 수 없다. (중략) 비약해서 말하여 4세기부터 6세기까지 당시 한반도와 왜의 상황을 보면 고구려ㆍ백제ㆍ신라의 3국시대가 아니라 가야ㆍ왜까지 포함된 5국시대였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동아시아 역사 전체 속에서 한국사와 일본사를 보아야 우리의 역사도 일본 역사도 제대로 이식할 수 있는 것이다.” | ||
우리나라에서 많은 사람들이 ‘일본의 문화는 우리가 다 해줬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데, 그건 고쳐야죠. 그들이 받아가서 자신들의 노력으로 발전시킨 것은 그들의 문화거든요. 그걸 인정을 안 해주면 동아시아에 문화사가 성립할 수 없어요. 유독 우리만 일본을 무시하고 있을 뿐이지 사실 국제적으로 보면 오래전부터 서양 사람이 동양을 이해하는 건 중국과 일본이란 창구를 통해서 였어요. 그렇게 주목받을 만한 성과도 있었고요. 어느 순간에는 일본이 우리보다 문화적 성취가 높았을 때도 있었거든요. 2천년 역사 속에 그런 때가 당연히 있을 수 있는 거죠. 일본을 통해서 배울 수 있는 기회도 있는데 그런 고정과념으로 상당부분을 놓쳐버리면 결국 우리가 손해거든요. 일본이 잘해서 이룩한 것에 대해서는 인정을 해줄 줄 알아야한다는 얘기죠. 물론 일본이 요즘처럼 하는 상황에서 보자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너희들 다 우리가 해준 거 아니냐’는 식으로 말하는 마음은 이해가 가죠. 하지만 최초에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710년 나라시대 이후에 그들이 만들 낸 것에 대해선 ‘우리가 준 것’이라고 얘기할 수 없는 거거든요.
그럼에도 우리나라 사람들의 경우 일단 역사적인 감정 탓에 일본이라면 무턱대고 싫어하는 사람도 많은데요.
우선 일본을 잘 모르잖아요. 일본 역사를 배운 적 없고 열심히 연구한 적도 없으니까요. 그런 이야기를 하려면 일본을 알고 배우고 나서 말하는 게 맞는다고 생각해요. 그렇지 않은 사람이 사회적으로 일본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이야기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저 들은 이야기 가지고 심정적인 선입견을 갖고 있을 뿐인 거죠. 그런 선입견은 벗어야 해요.
양국 간 문화적 콤플렉스 역시 직접적으로 언급하셨는데요. 요즘 우리나라 학생을 보면 앞 세대보다는 그런 콤플렉스가 없는 듯합니다. 하지만 이는 국사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기도 한데요. 교수님께서는 어떻게 보시는지요.
문화 역사 교육의 중요성은 말 하나 마나죠. 그리고 역사를 인식하는 것도 한반도에 이뤄진 역사만이 아니고 동아시아 전체가 어떻게 흘러왔는가에 대한 큰 맥락 속에서 봐야 해요. 그 안에서 우리를 보고, 자랑스러운 건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반성할 건 반성하는 시각에서 역사를 봐야죠. 맹목적 애국주의로 해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건 없어요.
책에서 ‘20년 전 문 밖에서 철판에 직접 구워준 덴만궁 길목 우산집의 야키모치’에 대한 기억도 언급하셨는데요. 책을 읽다보면 교수님의 일본 연구는 꽤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듯 합니다. 최초의 일본 방문은 언제쯤이신지요?
답사는 1986년 아스카에 간 것이 처음이고요. 최초의 방문은 1982년인가 일본교과서 파동이 났을 때인데, 그때는 고려불화라는 책의 편집을 맡아서 필름을 대여받기 위해서 나라를 방문한 것이었죠. 당시 동경도 들렸죠. 그리고 책에도 언급했지만 1986년에 아스카에 답사 가서 자전거를 타면서 그때부터 우리에게 일본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갖고 있었죠. 한국미술사 전공하다보면 중국미술사와 일본미술사를 같이 공부하게 돼있어요. 그 과정에서 일본 미술사의 내용이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라는 것을 느꼈어요. 또 어떤 면에서 참 훌륭하면서도 동아시아의 문화적 성취 속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있다는 걸 알게 됐죠, 그 후 한 20년 동안을 일 년에 한 두 번 씩 꼭 찾아가 확인했어요.
그 당시면 우리나라의 일본 대중문화개방보다 훨씬 이전인데요. 양국 간 역사 인식이나 감정 역시 지금보다 덜하진 않았을 듯한데, 교수님께서는 어떤 선입견이 없으셨는지요?
공부하는 사람은 어쨌든 진실로 다가가기 위해 객관적일 수밖에 없어요. 선입견이야 다 똑같았죠. 일본사람들 못됐고 또 일본은 우리문화를 상당히 영향을 받았는데 그걸 왜곡을 하고 있고…. 하지만 그 감정으로 세상을 보지 않고 그런 선입견이 어떻게, 왜 나왔는가 하는 것을 공부하면서 사실을 사실로서 확인하는 작업을 한 것이 이 책의 내용들이에요.
우리문화의 자부심을 바탕으로 일본 문화도 배울 것은 배워야
이번 책에서 유홍준 교수는 일본 문화가 융성할 수 있었던 이유 중 문화적인 가치를 소중히 한 점을 들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도자기 문화이다. 그렇다고 우리나라 문화의 위대함을 간과한 것은 아니다. 그의 글은 우리 문화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글에서 중용의 미덕이 느껴진다.
시마즈가 28대 당주인 시마즈 나리아키라에 대한 내용을 읽으면서 일본의 운명을 바꾼 선각자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한편으로 그런 이들을 때문에 당시 일본과 조선의 입장이 바뀌었다는 생각도 들었는데요. 문득 우리나라에서도 시마즈 나리아키라와 같은 노력을 한 인물이 없었는지 궁금합니다.
우리나라는 제국주의의 침략 때문에 그럴 기회를 잃어버렸죠. 예를 들면 그 이전에 연암 박지원, 다산 정약용, 추사 김정희 같은 위대한 분들은 있었지만, 그분들은 개인이고 학자였을 뿐인 반면 시마즈 나리아키라는 번주였다는 차이가 있어요. 사실 그가 한 일은 국가가 안하면 개인은 할 수 없는 일들이었죠. 당시 일본에서 번주는 경제력과 군사력을 모두 가지고 있었기에 생각만이 아닌 실천을 할 수 있었던 거예요. 우리나라로서는 실천할 수 있는 상황이 안됐다는 것이 차이죠.
근대화 과정을 거치며 식민지가 된 우리로서는 역전을 당했다고 할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요. 책에서 임진왜란 당시 끌려간 도공 이삼평 등이 후한 대우를 받으며 일본 도자기의 새장을 열은 내용을 봤을 때, 두 나라의 운명이 갈린 것이 당시 문화를 대한 태도의 차이도 영향이 있을 듯합니다.
도자기만 갖고 얘기를 했을 땐 우리는 우리 역시 분원이 존재했으니, 나름대로 도자기 문화는 갖고 있었죠. 그러나 그걸 국제화하지 못한 것이 차이에요. 시도도 못했고 요구도 없었거든요. 그런데 일본은 그러한 요구가 밖으로부터 왔고 그걸 계기로 해서 도자문화가 융성했고요. 우리는 서구 세력이 들어왔을 땐 이미 자력으로 무엇을 해내기 힘든 상황이었어요. 일본은 어쨌든 변화를 먼저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서 근대화를 해 나간 것이고, 우리에게 기회가 왔을 때는 이미 식민지로 가는 길목이었던 것이 근대사의 비극이죠.
일본 편은 국내 편 7권을 쓰신 내공과 우리문화의 자부심을 바탕으로 쓰셨다고 하셨는데요.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우리 문화와 역사에 대해서 왠지 모르게 폄하하는 시각도 있는 듯합니다. 단순히 식민사관의 영향으로 치부할 수만은 없는 문제가 아닐까요?
그 점은 강연에서도 강조하는 것인데, 조선시대 문화가 굉장히 뛰어난 문화인데도 그 내용, 또는 그렇게 살아갔던 사람들의 노고와 위대한 정신이 국민들에게 잘 인식이 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더욱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통해 우리 문화의 뛰어난 점을 현장에서 전달을 해주니까 좋은 반응을 얻었다고 생각해요. 우리 문화에 대한 자부심은 어느 날 누구 한 사람의 노력으로만 되는 게 아니고 국민 전체가 노력 할 때 이뤄질 겁니다. 그런데 역사교육이나 역사저술은 어느 날 이게 필요하다고 해서 그때 딱 나오는 게 아니거든요. 누군가는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내가 하려는 것도 그런 노력의 일환이고요. 그런 노력이 이어진다면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역사인식의 보강으로 이어지겠죠. 난 결국엔 되리라고 봐요.
포용으로 시작하는 미래지향적 관계 정립이 필요
일본의 우경화, 그릇된 역사 인식에 대한 유홍준 교수의 평가에는 아쉬움이 느껴졌다. 한편으로 양심있는 일본 학자들의 자발적인 움직임에 대한 기대도 있었다. 그의 이야기처럼 동아시아적인 관점에서 우리와 일본은 싫든 좋든 앞으로도 함께 해야 할 이웃이기 때문이다.
강연에서 “일본이 총칼을 앞세워 임진왜란과 일제 강점기를 시도했지만 모두 비극으로 끝났다”고 하셨는데요. 현재 일본 우경화 모습을 보면 과거의 실패에서 배우지 못한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전후 반성의 태도를 보이는 독일과도 완전히 다른 모습인데요?
섬에 갇혀 살았던 습성이죠. 독일하고 비교는 해 본 일이 없어 잘 모르겠어요. 없고 잘 모르겠고. 독일은 바로 국경선 없이 프랑스, 오스트리아, 폴란드하고 붙어있기 때문에 시시각각으로 그 문제가 다가왔을 거예요. 그런데 일본은 일단 떨어져 있으니까 자기도 모르게 국제사회 속에서의 폐쇄성이 있고, 그런 말을 했을 적에 바깥에서는 어떻게 생각할까에 대한 인식의 배려가 적게 나타난 건 사실이죠.
역사적 상처 있는 우리나라 무시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닌데요. 교수님께서는 이번 책을 발표하시면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어떻게 대처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그건 명백히 잘못했다고 얘길 해야죠. 하지만 서로 헐뜯는 말 보다는 이성을 회복하고 국제사회에서 공전과 공생을 할 수 있는 자세로 나올 것을 촉구해야죠. 또 현 일본 정권이 보여주는 태도가 일본인들의 보편적인 생각은 아닌 것 같아요. 일본에서도 양식 있는 지식인들이 있으니까 그들에게 호소를 해서 내부에서 시작되는 변화도 기대해 봐야죠.
향후 교토 편에 대한 관심도 높은데요. 구상을 말씀해주신다면?
교토는 일본문화의 꽃이에요. 교토 편은 일본이 어떻게 일본미를 완성했는가에 관한 얘기가 될 거에요. 아스카와 나라 편에서는 가야와 백제 사람들이 일본 고대문화에 끼친 영향이 얘기가 됐다면, 교토 편에서는 고구려 사람과 신라 사람들, 즉 도래인들이 했던 구체적인 이야기가 나올 거예요. 광룡사는 신라의 진씨들이 이룩했고 또 야마시로초의 고구려 절이 있던 터에서 고구려 사람들이 얼마나 뿌리를 내렸는지에 대한 이야기, 그 다음에 헤이안시대 이후 1천년동안 수도였고,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17개나 있는 곳으로서 교토를 조명해 볼 생각이에요. 일본미의 특질과 일본사람들에게 민족혼을 불러일으키는 문화유산에 대한 내용을 내가 아는 한 정확하게 전달하고 싶어요.
책이 일본에도 번역돼 출간되는 것으로 아는데요. 일본 독자에게도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실 듯 한데요?
일본어로 번역이 될 거라는 생각은 했지만, 그렇다고 일본 독자를 의식하고 쓴 것은 아니에요. 일본 독자를 생각했으면 너무 상식적인 얘기는 빼야 됐고, 한반도가 준 영향에 대해서 그렇게까지 자세하게 얘기할 필요가 없기도 하고요. 다만 외국인이 쓴 그 나라의 이야기라고 하는 건 그 나름으로 의미도 있고 재미도 있을 거라 생각해요. 이를테면 비숍여사가 100년 전 조선에 대해 쓴 책은 외국인이 썼기 때문에 우리들이 ‘아 외국인들 눈에는 이렇게 비칠 수 있구나’하는 것 처럼요. 얼마 전 일본의 유력 일간지 서울특파원과 인터뷰를 했는데, 그 분 얘기도 일본에도 불상이나 문학, 역사에 대한 책은 있지만 일반인들이 다 아울러서 볼 수 있는 책은 없었다며 일본 사람들이 재미있게 읽을 거라고 하더군요. 저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 유홍준 저 | 창비
1993년 제1권 ‘남도답사 일번지’를 시작으로 2012년 제7권 제주편 ‘돌하르방 어디 감수광’까지 20년 동안 330만 독자의 사랑을 받아왔고 한국 인문서 최초의 밀리언셀러로 기록된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이번에는 ‘일본 속의 한국문화’와 ‘일본문화의 정수’를 찾아 일본으로 떠난다. 그동안 펴낸 제7권까지의 국내편 ‘답사기’는 전국 각지의 문화유산을 답사하고 소개하면서 그 가치와 의의를 저자 특유의 입담과 안목으로 새롭게 조명해온바, 수준 높은 문화교양서이자 기행문학의 백미로 널리 알려져 ‘답사기’ 자체가 이미 문화유산의 반열에 올랐다는 평을 듣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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