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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 김남주 “번역은 늦가을 낙엽 쓸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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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굶어죽을 위기에 놓였다. 겨울이 왔고, 먹을 것이 없었다. ‘그위친 부족’의 족장은 그간 부양하던 ‘두 늙은 여자’, ‘사’와 ‘칙디야크’를 버리고 떠나기로 한다. “사람들도 생존을 위해 이따금 짐승의 방식을 따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19쪽) 이윽고 황량하고, 잔인하게 추운 겨울 벌판에 외로이 남겨진 사와 칙디야크. 이들은 부족에 대한 배신의 고통에 몸을 떤다. 사람들은 이들에게 “죽음을 선고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두 늙은 여자는 이대로 죽을 것인가. 이때, 좌절에 빠진 칙디야크에게 사가 온 힘을 끌어 모아 말한다.

 

“어차피 죽을 거라면, 우리 뭔가 해보고 죽자고!”
 
대대로 전해오던 알래스카 인디언의 전설적인 이야기, 알래스카 ‘아타바스칸족’ 작가 벨마 월리스의 『두 늙은 여자』는 외따로 남겨진 두 늙은 여자가 처절한 위기의 순간 어떻게 삶을 다시 만들어 가는지 보여주는 이야기다. 이 ‘작은 책’을 친구에게 전해 받은 번역가 김남주는 “기본으로 돌아가는” 이 이야기가 좋아서 꼭 번역해 출간하고 싶었다. 로맹 가리의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 『가면의 생』 , 가즈오 이시구로의『녹턴』 , 『나를 보내지 마』 , 『창백한 언덕 풍경』  등을 번역하고, 『나의 프랑스식 서재』 , 『사라지는 번역자들』 을 쓴 번역가 김남주에게 이 책은 “노년의 의미를 되짚어봤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아주 중요한 이야기”였다. 책이 출간되어 무척 기쁘다는 김남주는 인터뷰에서 노년과 삶의 원시성, 번역과 독서의 의미를 넘나드는 풍성한 이야기를 전했다.


특히 노년에 대한 생각에 골몰하고 있다는 번역가 김남주는“마흔 개의 여름이 어떻게 여든 개의 여름을 이기겠는가.”(170-171쪽)라고 되물으며“나이라는 건 부끄러울 것도 자랑스러울 것도 없다. 다만 내 나이가 내게 소중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각자가 자신만의 노년의 아름다움을 찾아내기를, 친구와 함께 하기를, 그것이 책이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사와 칙디야크가 혼자였다면 이렇게 해내지 못했을 것 같아요. 외로웠겠죠. 저는 우리가 그런 친구를 발견하면 좋겠어요. 친구는 현실에도, 책 속에도 있어요. 책은 엄청나게 위대해서요. 책을 읽는 인간은 외롭지 않아요. 진짜로 책을 읽으면 삶이 달라져요. 우리가 벌써 칙디야크와 사를 떠올릴 수 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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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한 걸음


이 작품을 무척 좋아하셨다고요. 그간 많은 문학 작품을 번역해오셨는데요. 특별히 이 작품의 어떤 점이 마음에 담겼던 건가요?

 

기본으로 돌아가는 이야기였던 것 같아요. 사실 이 책은 문학 쪽이 아니에요. 문장도 울퉁불퉁하고요. 그래서 좋았고, 그래서 또 번역이 어려운 부분도 있었는데요. 최근 이런저런 상황으로 노년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됐어요. 노년에 대한 책도 좀 읽어보고, 실제로 노년에 대한 책을 쓰겠다는 생각으로 일을 진행하고도 있거든요. 그러다 이 책을 보니까 ‘그래, 이게 기본이었지, 사람 사는 일에서 나이를 먹는다는 것 그게 당연하지’라는 생각이 확 끼치더라고요. 그래서 책을 내고 싶었어요. 실제로 내게 될 줄은 몰랐는데 출판사와 얘기를 어떻게 이야기를 하다 내게 됐어요. 기뻐요.

 

선생님은 이 작품을 어떻게 만나셨어요?


어떤 친구가 읽던 책을 제게 줬어요. 작은 책인데 재미있다면서, 한 번 읽어보라고 해서 슬쩍 읽어봤는데 좋았어요.

 

짐작은 되지만, 말씀하신 ‘기본’이라는 것은 정확하게 뭘까요?


코맥 매카시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같은 소설도 있는데요. 결국 노년이 청춘에 밀리는 시대가 점점 온 것 같아요. 그건 또 디지털과 연동된 면이 있다고 생각하고요. 그런데 『두 늙은 여자』 를 읽다보니까 결국은 어느 시대에나 노년은 그랬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육체적인 힘이 약해졌을 때 퇴장해야 하는 존재가 되는 거죠. 그렇게 사회적인 관계에서 밀려나고요. 그것을 타계하는 방법을 요즘 사람들은 ‘노후 준비’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돈을 벌어놓자고 하는데요. 그것이 노후준비는 아닐 것 같아요. 이 책은 노년에 대한 핵심을 짚어준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그야말로 쉰 몇 개의 봄을 봤는데요. 지금이 좋아요. 내가 사라지기 전까지 다시 볼 봄들이 설레고요. 제가 좀 그랬나 봐요. 20대, 30대 때는 불안정하고 그랬어요. 지금은 오히려 나답게, 내 시각으로 삶을 살아낼 수 있을 것 같고요. 그런 점에서 이 책이 중요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 작품은 독립적이고 진취적인 ‘두 늙은 여자’를 통해 ‘늙음’의 가능성을 다시 생각하게 했어요. 특히 좋았던 건 이 두 여자가 부족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점이었고요.


“좀 더 해주세요, 언니들!”(웃음) 이런 메일도 받고 그랬죠. 저는 나아가 그런 생각까지 들었어요. 만약 이 사람들이 성공을 못했다고 해봐요. 이들이 그 설원에서 죽었다 해도 그 전의 삶과는 다른 것 같아요. 부족을 따라다니고, 부양을 받으며 살았던 삶과 스스로 삶 자체를 마주하고 살았던 기억은 다르겠죠. 그게 이미 성공인 거고요. 사람은 다 죽잖아요. 그러니까 꼭 잘 돼서 성공했다, 그래서 이 노년이 의미가 있다, 가 아니라 노년의 의미를 되짚어봤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아주 중요한 이야기인 것 같아요. 삶을 바라보는 시각을 바꿈으로써 우리의 기억을 바꿀 수 있고요. 그러면 삶이 달라지죠. 그 점이 저는 참 좋았어요.

 

역자 후기에서 “마흔 개의 여름이 어떻게 여든 개의 여름을 이기겠는가”(170-171쪽)라고 적기도 하셨죠.


정말 그래요. 예전 같으면 못했을 삶에 대한 너그러움을 지금은 갖고 있거든요. 살아서, 그동안 살았기 때문에 그 기억이 축적되어서 그런 거예요. 그런데 사람들은 이를 테면 마흔 살의 여자와 여든 살의 여자를 볼 때 마흔 살의 여자를 훨씬 더 경쟁력 있다고 생각해요. 그 부분을 우리가 다시 생각해봐야겠다, 하는 생각이 들어요.

 

선생님께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나 대사가 뭔지도 궁금해요.


많은 분들이 “어차피 죽을 거라면, 우리 뭔가 해보고 죽자고!”(45쪽)라는 얘기를 좋아하시더라고요. 좀 강렬하죠? 그런데 저는 이 문장이 좋았어요. “우리가 한 걸음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우리가 가려는 곳에 가까워지는 거야.”(69쪽) 삶은 이것 같아요. 가고자 하는 곳에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것. 이 한 걸음이 제일 중요한 것 같고요. 그것을 하고 있는 한 그곳이 이미 현재라는 생각이 들어요. 노년을 생각하고 있는 많은 분들이 한 걸음을 생각하셨으면 좋겠어요. 매일, 한 걸음.

 

우리가 한 걸음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우리가 가려는 곳에 가까워지는 거야. 오늘 나는 몸이 좋지 않지만, 내 마음은 몸을 이길 힘을 갖고 있어. 내 마음은 우리가 여기서 쉬는 대신 앞으로 나아가기를 원해. 그게 내가 하고 싶은 일이야.(69쪽)

 

지금 말씀은 현재에 대한 다른 생각처럼 들려요. 흔히 노년을 먼 미래라고 생각하잖아요. 그게 아니라 매일, 지금, 그리고 내일이 되면 다시 돌아오는 현재에 더 관심을 두는 거죠.


바로 그거예요. 그렇다고 해서 현재만 중요하다는 건 아니고요. 비중을 잡자면 과거를 1정도로 보고요. 미래를 2정도, 현재를 3정도로 보는 거예요. 과거는 지나갔어요. 미래는 사실 안 올지도 몰라요. 누가 알겠어요. 그러니 우리한테는 현재만 있죠. 거기서 너의 현재와 나의 현재가 만나는 거예요. 80세의 봄이 40세의 봄한테 잴 것도 없어요. 우리는 그냥 현재 이렇게 만난 거니까요.

 

 

가슴을 콱 잡아다놓는 글


또 좋아했던 장면은 뭔가요?


원시성으로 돌아가는 이야기라 좋았어요. 토끼 머리로 스프를 만드는 장면이 나오잖아요. 토끼 고기를 다 먹고 마지막에 스프로 먹는 거예요. 토끼 한 마리를 알뜰히도 써요.(웃음) 가죽으로 털신도 만들고, 털로는 토시도 만들고요. 연어도 껍질로는 가방을 만들고, 그런 식이잖아요. 결국 그게 인간이었던 거예요. 지금은 부위별로 포장된 고기를 슈퍼마켓에서 사고, 이전의 과정을 무섭다고 하지만요. 사실은 그것을 제대로 보지 않는다는 게 더 무서운 일이에요. 그래서 죄책감을 안 느끼도록 만들어버리죠. 실제로는 다 관여해야 하는 거거든요. 각 과정에 좀 더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고요. 덫을 놓고 토끼를 잡아서 먹는 게 훨씬 건강한 삶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저도 반성을 했어요.

 

지금은 너무 단계가 많고, 너무 거리가 멀죠.


네, 그런 점을 보여주는 게 재미있었어요. 신발을 만드는 장면도 그렇잖아요. 지금 신발이라면 상점에 가서 사는 것이지만 여기서 신발은 만드는 거예요. 나무줄기를 잘라 휘어서 반원을 만들고, 거기에 동물의 가죽을 무두질하고 얽어서 만들죠. 그 설명을 보면서 유튜브를 찾아 봤어요. 인디언들이 어떻게 만드는지 제가 알아야 제대로 번역하겠구나 싶어서요. 그런데 그게 의외로 어떤 카타르시스를 줬어요. 기본으로 돌아가자면 결국은 먹고,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을 만들어 쓰는 것이면 전부인 거예요. 그리고 자기 전에 이야기를 들으면서 문학으로 지혜를 남기는 것이죠.

 

일과를 마친 두 늙은 여자가 긴 겨울밤에 서로의 삶을 이야기하는 장면도 참 좋죠. 이런 상황, 이런 시간이 마련되어서야 서로의 경험이 공유되었잖아요. 그 과정을 통해 이들의 과거는 기억이라는 기록으로 남게 되었어요. 과거가 다시 살아난 거예요.


과거가 다시 살아나 현재로 이어진 거죠. 인디언도 그랬지만 우리도 옛날에는 훨씬 더 육체노동을 많이 했던 거예요. 나이가 들면서 제 자신한테 많이 말하는 것은 매일 몸에 대해서 생각하자는 거거든요. 지상에 살아 있는 한 몸에 묶여 있으니까요. 그리고 죽기 전까지 제대로 움직이기를 원하니까 몸에 대해 생각하자, 했어요.

 

앞서 “문장이 울퉁불퉁”하다고도 하셨는데 이번 작품을 번역하시면서 고심한 부분이 있었다면 들려주세요.


두 타입의 작가가 있는 것 같아요. 열심히 하는 타입과 타고난 타입이죠. 물론 열심히 하는 타입도 타고난 부분이 있겠고, 타고난 타입도 열심히 하지 않으면 안 되죠. 그런데 벨마 월리스는 교육을 많이 받은 분도 아니고요. 그렇다 해서 타고난 분도 아니에요. ‘그위친 부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 열망이 글을 쓰게 만들었던 건데요. 그래선지 문장이 울퉁불퉁하고, 매끄럽지 못해요. 그런데요. 그게 또 매력적이에요. 번역자로서는 어린 아이가 쓴 가슴을 콱 잡아다놓는 글과 같은, 그것을 전달해주고 싶었죠. 그런데 동시에 이야기가 들어와야 하잖아요. 읽혀야 하니까 그 두 가지를 하느라 조금 애를 썼어요.

 

“어린 아이가 쓴 콱 잡아다놓은” 것이 어떤 의미인지 느껴지네요.


번역학자 조르주 무냉(Georges Mounin)은 “번역자는 유리”라고 묘사하는데요. 채색유리도, 투명유리도 있을 수 있죠. 어떤 작품에 채색유리를 끼우면 번역자가 있다는 걸 사람들이 딱 알 수 있어요. 어떻게 생각하면 적어도 충실하게 번역했다는 거죠. 그런 부분에서는 ‘정숙한 추녀’예요. 원문에는 충실하지만 번역투일 수 있죠. 반면 투명유리가 끼워 있어서 거의 한국 소설 같아 좋다가도 원문과 대조하면 ‘아닌데?’할 수도 있어요. 물론 ‘정숙한 미녀’면 제일 좋겠지만(웃음) 번역자마다 치중하는 부분이 다른 것 같고요. 어떤 이는 원문의 충실도를 높게 보고, 어떤 이는 문장의 매끄러움을 선호하는데요. 저는 굳이 얘기하면 ‘정숙한 추녀’ 쪽이에요. 하지만 때론 번역자의 욕심 같은 게 생겨서 ‘아, 이건 내 문장을 만들어봐야겠다’라는 부분을 몇 군데 만나요. 그리고 그런 정도의 권리는 역자한테 있다고 생각하죠. 역자 개인이 책임을 지는 거고요.

 

『두 늙은 여자』 를 번역할 때는 욕심을 조금 내셨던 건가요?

 
로렌스 베누티(Lawrence Venuti)는 점점 더 역자의 역할을 중요시 하고 있죠. 결국은 개인적인 것으로 남을 거예요. 그렇게 오랫동안 이 논란이 계속되어 온 걸 보면 말이에요. 독자들도 자신이 좋은 쪽을 선택해서 읽는 거고요. 그런 걸 텐데요. 『두 늙은 여자』는 제가 원문의 투박성과 진솔성을 살리면서도 가독성 있게 읽히게 하려고 애쓴 번역이었어요.

 

기존에 해오던 번역과는 많이 다른 작업이었군요.


많이 다르죠. 일단 분량도 적고요. 피카소 같은 화가도 그렇고, 작가도 마찬가지로 나이가 들어서 어린 아이처럼 돌아가요. 실은 그건 굉장한 경지이지만요. 그런 것처럼 반환점을 돌아 근원으로 회귀하면서 좀 까다로워진다고 할까, 거추장스러운 것을 벗어버린다고 할까, 그런 본질에 가까운 것을 찾게 되는 것 같아요. 저에게도 이번 번역이 그중 하나가 아닐까 싶어요. 계획하는 번역 중에 대작이 하나 있어요. 그런 것도 할 테지만 또 이런 식의 번역, 지금 현재의 우리들한테 조금 더 직접적으로 다가가는 번역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요. 바로 지금 호소력이 있는 그런 작품을 하고 싶었어요.

 

그렇다면 이만한 현재의 이야기가 또 있을까 싶어요. 노년의 이야기, 그것도 자신의 삶을 되찾은 여성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여성, 게다가 여성‘들’이죠. 나아가 약자들의 연대까지 같이 얘기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을 거예요. 제목을 정할 때 고민이 있었어요. ‘Two Old Women’이 원제인데요. 그대로 번역하면 안 팔릴 것 같아서요. 제목 때문에 몇 달 묵혔어요. 그러다가 결국 이 제목으로 결정된 거거든요. 지금은 그러길 너무 잘했다고 생각해요. 또 띠지에 적힌 ‘노년의 성장소설’이라는 말이 정말 마음에 들었어요. 출판사에서 정한 건데요. 우리는 생명이 붙어있는 한 성장하거든요. 생명이 있는 한 가능성이 있어요. 중요한 것은 삶의 길이를 늘이는 것이 아니고요. 삶의 깊이를 갖는, 나답게 사는 것이죠. 그래서 이 책을 읽으신 분들이 메를로 퐁티(Merleau Ponty)가 누구지, 하면서 『지각의 현상학』도 한 번 읽어보시면 좋겠어요. 책 속에 길이 있다는 건 별 게 아니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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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의 어려움


번역가는 이를 테면 첫 번째 독자잖아요. 그렇게 생각하면 아주 적극적인 책읽기를 하고 계신 셈이에요.


두 가지예요. 밥벌이니까요. 밥벌이의 치사함과 엄숙함이 함께 있고요. 십여 년 전부터는 조금 먹고, 조금 살기로 해서 제가 좋아하는 것만 번역하기로 마음먹었는데요. 그 전에 제 기준은 느슨했어요. 나쁜 책만 아니고, 조건이 맞으면 한다. 조금 더 나아가서는 내 번역으로 독자들이 만나면 더 행복해지는 번역을 하자, 였어요. 그보다 더 전에는 더 느슨하게 절대 오역을 하지 말자, 세상에 없어야 할 책을 번역하지 말자, 였고요. 이를 테면 저는 멜로 소설이 참 나쁘다고 생각해요. 젊은 여자 후배들의 의식을 좀먹을 수 있거든요. 왕자님 같은 사람을 만나서 자기 삶이 변화되는, 그런 식의 소설은 정말 큰일이라고 생각해요. 드라마도 마찬가지죠. 어쨌든 번역자로서의 제 정체성, 책임감은 그런 정도이고요. 그 다음은 원고료에 타협한다(웃음), 여전히 이런 느슨한 기준을 갖고 있어요.

 

1988년부터 번역을 해오셨으니 벌써 30년의 시간인데요. 여전한 번역의 어려움 같은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번역에는 아주 징글징글한 게 있다니까요.(웃음) 번역은 늦가을 낙엽 쓸기 같아요.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계속 나와요. 그러니까 계속 고쳐야 할 것 같아요. 벤야민도 번역되지 않는 부분은 늘 남는다, 는 이야기를 했는데요. 번역은 어쨌든 텍스트가 있잖아요. 정답이 있는 거예요. 때로는 진짜 잘 번역했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하지만 때로는 어떻게 해도 미진한 것 같을 때가 있죠. 그런 번역의 본질적 어려움이 있고요. 또 하나는 번역료가 너무 싸요. 30년 전 번역할 때는 번역료가 그런 대로 괜찮았던 것 같아요. 가끔 만나는 번역하는 친구가 있는데요. 우리는 사양 산업의 귀퉁이에 매달려서 살아왔다고 자조적으로 이야기 하곤 해요. 어쨌든 30년 간 일을 해왔는데 제대로 보상 받지 못하는 직업이라는 게 상당한 스트레스와 걱정이 있어요. 그래서 주변에 번역하겠다는 친구가 있으면 말려요.(웃음)

 

그럼에도 번역이 주는 즐거움이 있으신 거겠죠.


저자의 머릿속에 그렇게 오랫동안 있기는 어려울 거예요. 어떤 경우에는 저자한테 ‘너 이거 틀렸어!’(웃음)라고 얘기도 해줄 수 있고요. 게다가 그 저자가 마음에 들 경우는 정말 좋은 거죠.

 

가즈오 이시구로처럼 번역 당시에는 지금처럼 많이 읽히지 않았던 작품들도 있잖아요. 이렇게 뒤늦게 빛을 보는 작품들을 보면 아쉬움도, 반가움도 있으실 것 같아요.


가즈오 이시구로는 말이죠. 진짜 사람들이 몰랐어요. 심지어 다들 그랬어요. “너 일어도 하냐?”(웃음)라고요. 그런데 저는 정말 좋았어요. 가즈오 이시구로가 좋은 게 그는 기억의 문제에 천착하거든요. 굉장히 영리한 작가예요. 작품마다 장르는 바뀌지만 기억이라는 주제 하나는 물고 늘어지는 거예요. 이렇게 좋고, 재미있는 책을 왜 안 보는 걸까, 그랬는데요. 저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고 생각해요. 내가 현재 번역하고 있는 작가가 노벨상을 받는 일에는 행운이 함께 하는 일인 것 같아요. 참 감사하고 있어요.

 

그밖에 또 좋아하는 작가는 누구인가요?


이상하게 한 작가를 하면 계속 하게 되는 것 같아요. 로맹 가리도 그랬고요. 가즈오 이시구로도 그렇죠. 또 야스미나 레자(Yasmina Reza)라는 작가가 있어요. 희곡으로 시작했어요. <아트>라는 작품이 있고요. <대학살의 신>이라는 작품은 영화화되기도 했죠. 이 사람이 99년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해 2016년에 ‘르노도상’을 받았어요. 그 작품이 국내에 『지금 뭐하는 거예요, 장리노?』라는 제목으로 나왔는데요. 정말 매력적이에요. 소설이 대단히 현장성이 있고요. 대성할 작가예요. 요즘 아주 빠져있어요. 지금도 야스미나 레자의 교정지를 보다가 왔어요. ‘비탄’이라는 소설인데요. 이것도 노년에 대한 이야기예요. 『두 늙은 여자』가 아주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이라면 ‘비탄’은 현재예요. 난삽할 수도 있고요. 무엇보다 굉장히 재미있어요.

 

 

노년의 아름다움


앞서 최근 노년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고도 하셨고요. 삶에 너그러워졌다는 말씀도 하셨는데요. 이것은 어떤 이야기인가요?


우리가 늙음을, 노년을 너무 평가절하해온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있고요. 또 최근 들은 얘기가 있는데요. ‘그렇게 고루한 생각을 하고 있다니 그는 서른이었지만 이미 노인이었고, 그렇게 진취적인 생각을 하고 있다니 그는 칠십이었지만 청년이었다.’서른 노인과 칠십 청년이라는 말이잖아요. 그런데 여기서 청년과 노인이라는 단어는 가치중립적이지 않아요. 청년은 좋은 의미, 노인은 나쁜 의미로 쓰였죠. 사실 그래서는 안 되는 거거든요. 나이라는 건 부끄러울 것도 자랑스러울 것도 없어요. 다만 내 나이가 내게 소중한 거죠. 이 작품에서 두 늙은 여자가 무리에서 뒤처지고 중요한 계기를 맞이하기 전까지 살아온 그런 식의 생활 태도가 결국은 노인에 대한 편견을 만든 게 아닐까, 하고요. 이런 생각이야말로 가장 좋은 노후준비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달리 노후준비가 아닌 것, 나이를 현재로 받아들이는 것에 관한 말씀이시죠?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라는 말도 하잖아요. 그 말 자체에 이미 나이에 대한 자격지심이나 가치평가가 들어 있는 거예요. 저는 그런 말을 들으면 오히려 좀 속상해요. 나이의 아름다움, 그것을 우리가 회복하자는 생각이 들어요. 특히 안타까운 건 30대 후반이나 40대 후반 정도의 후배들이 너무 나이 드는 것에 스트레스를 받아요. 심지어 결혼을 안 했다면 더 스트레스를 받고요. 절대 그럴 필요가 없거든요. 나이는 부끄러울 것도 자랑스러울 것도 없어요. 다만 소중해요. 나의 기억이니까요.

 

서로 더 만나야 할 것 같다는 생각도 종종 합니다. 너무 다른 존재로 보기도 하니까요.


한 선생님이 아흔 몇 해를 살아보니 인생의 절정은 65세부터 80세까지더라, 하신 적이 있는데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매일이 절정인 것 같아요. 지금의 현재, 나의 현재가 삶의 절정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죠. 평균 수명을 고려했을 때 제가 지금으로부터 20-30년 더 살 수 있다고 한다면 제가 지나온 그 어느 때의 삶보다 더 나답게 살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해요. 지금부터 펼쳐질 삶이 훨씬 더 기대돼요. 참 신기해요. 그러니까 그러기 위해서 해야 할 몫이 있는 거예요.

 

노년에 관한 책도 생각하고 계신다고요?


모친이 편찮으세요. 저희는 병원에 안 모시고 집에 계신데요. 그러면서 노년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됐어요. 저의 노년, 주변의 노년을 생각하고 책도 읽고 하면서 자연스럽게 어디서 원고 청탁이 오면 그쪽으로 쓰게 되는 거예요. 그렇게 글이 조금 모이면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생겼어요. 노년의 아름다움에 관한 것이죠. 노년이 생각보다 괜찮은 때인데(웃음) 말이에요. 하지만 차이가 참 많이 나요. 젊은이들은 다 젊음인데요. 노년은 사람마다 차이가 많이 나는 것 같아요. 특히 몸은 40-50년을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 유전적 요인에 따라 각각 다르죠. 몸은 마음의 스승인 것 같고요. 몸이 가르쳐주는 것을 잘 들어야 해요. 몸을 무시해서는 안 돼요. 이런 생각들을 지금 쓰고 있는데요. 아마 내년쯤에 나올 수 있을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이 책을 어떤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으신지 여쭐게요.

 
나이듦에 대해 생각하는 모든 사람들이 읽어주시면 좋겠어요. 노인이라는 말이 원래의 아름다운 의미를 되찾게 되기를 바라고요. 나이와 상관없이, 한겨울에 꺼져가는 모닥불 앞에 외롭게 앉아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모든 분들이 읽으셨으면 좋겠어요. ‘박새(칙디야크)’와 ‘별(사)’의 이야기가 마음의 온기를 전해줍니다. 우리 안에는 우리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놀라운 것들이 있다고요!


 

 


 

 

두 늙은 여자벨마 월리스 저/짐 그랜트 그림/김남주 역 | 이봄
두 노인이 서로를 응원하는 모습만큼 그녀들의 성장을 도운 사냥감인 다람쥐와 토끼와 순록 등의 동물을 세밀하게 묘사했다. 동물을 사냥하는 두 여인들의 동작 역시 생동감 있게 전달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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