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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선 “철학도, 철학자도 아닌 우리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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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나에게만 급정거한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모두 꿋꿋한데, 홀로 휘청이고 주저앉게 될 때. 단단히 버티고 서있을 마음의 근력은 대체 어떻게 키워야 할까. 홍대선 작가는 그 고독의 순간, 자신의 전공인 철학에서 앞으로 나아갈 힘을 찾았다.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원론적 질문이 철학에서만큼은 유효했다. 『어떻게 휘둘리지 않는 개인이 되는가』는 그가 철학자의 삶과 사상을 경전 삼아 ‘나’라는 정체성을 규정하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다.


<딴지일보>의 편집부국장을 지내고, 인문교양 팟캐스트 <안 물어봐도 알려주는 남 얘기>를 진행하는 그는 『축구문화사』,  『테무진 to the 칸』  등의 전작을 통해 인문ㆍ역사물도 만화처럼 재미있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작가다. 이번 책에도 딱딱하고 심오한 명제와 논증 대신, 철학자의 개인적인 삶과 철학이 생생한 이야기로 담겼다. 일찍이 인생의 진리를 깨달았을 것 같은 위대한 철학자들조차 때때로 주저앉고, 흔들리고, 실수하는 개인이었다는 사실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묘한 용기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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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치유하고 싶어 쓰기 시작했다

 

페이스북에 연재했던 글이라고 알고 있어요.

 

철학자의 삶과 철학에 대해 대략적으로 SNS에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출판을 염두에 둔 글이 아니었기 때문에 지금처럼 정갈하지 않았고 연재 기간도 제 마음대로였죠. 페이스북은 개인 SNS라는 점에서는 사적이지만, 타인이 글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는 공적이기 때문에 초고를 쓰기 굉장히 좋더라고요. 이 글이 책이 되든, 다른 원고의 한 파트가 되든, 그저 묻히든 상관없다는 생각으로 쓰기 시작했는데 중간쯤부터는 ‘책으로 나오겠다’는 감이 왔어요. 저는 SNS에 연재를 시작해 책을 낸 것이 처음인데, 글 쓰고 출간하는데 꽤 효율적인 방법인 것 같아요.

 

들어가는 말에서 ‘제 자신을 치유하고 싶어서 이 이야기를 쓰기 시작(5쪽)’했다고 했어요. 이러한 주제로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계기가 궁금해요.


개인적으로 고민이 많았어요. 음…….. 저희 가족에게 너무 거대한 불행이 닥쳤는데, 제가 어찌할 수 없는 일이었거든요. ‘안방의 세월호’라고 불리는 사건(가습기 살균제 사건)에 저희 어머니도 피해를 보았고, 돌아가신지 한참 뒤에야 그 사실을 알았어요. 사건과 관련된 법적, 의학적 시스템 그리고 그 안의 부정부패 등을 목격하면서 사회 구성원 전체에 대한 불신과 증오가 생겼고, 최종적으로는 내가 싫어졌어요. 그래서 2년 정도 굉장히 자학적인 사람이 됐죠. 그러다 내가 자살하거나 모든 걸 포기하지 않고 계속 살아가야할 이유가 있다면 그게 무엇일까 생각하게 된 거예요. 그 지점에서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나?’라는 아주 원론적인 물음에 맞닥뜨렸고, 철학자들은 스스로를 어떻게 관리했는지 살펴보기 시작했어요.

 

왜 철학에서 길을 찾으려 했을까요? 


배운 게 그것뿐이라, 자연스럽게 그리된 것 같아요.(웃음) 왜 가끔 할머니들이 안 해도 되는 일을 만들어하시는 모습을 볼 때가 있잖아요. “할머니 더운데 뭐 하려고 하세요”하면 “그냥 영감 생각이 나서 그런다”라면서 마늘을 막 빻는다던가. 사람이 정말 힘들면 없는 일을 만들어 하는데, 이번 글쓰기가 그것과 비슷했어요. 그런데 이왕이면 아무 의미 없는 단순노동보다 도움이 되는 일이었으면 싶었거든요. 철학은 글로 쓰였고, 결국 이야기잖아요. 철학자의 인생도 이야기고요. 저는 이야기를 쓰는 사람이니, 이걸 내 이야기로 한번 정리해보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실제로 마음을 추스르는 데 큰 도움이 됐어요.

 

책에 여섯 명의 철학자가 등장해요.


한 사람의 철학이라는 건 시대상, 그의 성격, 개인적 경험과 결코 분리될 수 없기에 철학뿐 아니라 철학자들의 삶을 함께 담은 글을 쓰고 싶었어요. 이렇게 접근하다 보니 시대상, 철학자의 삶, 철학 그리고 그 철학을 읽는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에 대한 인간론까지 하나의 고리로 완성되더라고요. 이렇게 원형의 고리로 완성된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는 서양근대철학자가 누구일까 생각했는데, 제 눈에는 데카르트, 스피노자, 칸트, 헤겔, 쇼펜하우어, 니체가 보였어요. 이들은 ‘나 자신은 무엇인가’라는 고통적인 질문을 파 내려갔던 사람들이에요. 문학적 활동뿐 아니라 개인의 삶에서도 ‘나 자신’을 찾으려 했고요.

 

어려운 내용을 쉽게 쓰는 게 정말 어려운 일이잖아요. 독서량이 대단했을 것 같아요.


집필할 땐 두 종류의 책 읽기가 있는데 하나는 글을 쓰는 데 필요한 참고문헌 읽기이고, 다른 하나는 내가 쓴 말 중 실수가 있는지, 부끄럽지 않을 정도의 공신력을 확보했는지 검열하는 책 읽기예요. 둘 중 후자가 훨씬 괴로워요. 말 그대로 노동이잖아요. 하지만 독자를 위해서는 해야만 하는 일이죠. 저는 기본적으로 쓰는 걸 즐기는 사람이라 글 쓰는 시간보다 책 읽는 시간이 훨씬 많이 들었어요. 한쪽에 해당하는 내용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책을 세 권 읽은 경우도 있어요.(웃음)

 

작가님의 글은 쉽고 재미있다는 평이 많아요. 하지만 결코 주제가 가벼운 건 아니잖아요. 글을 쉽게 쓰는 비결이 있나요?


이건 제 개인적인 취향인데, 저는 어린 시절부터 앉은 자리에서 기계적으로 다음 장을 척척 넘기며 책을 읽을 때 가장 즐거웠어요. 페이지터너라고 하죠? 그 기쁨을 공유하고 싶어요. 독자에게 페이지터닝이 잘 되는 책을 쓰고 싶기 때문에 몰입해서 빠르게 읽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늘 염두에 두고 글을 써요. 그래서 자초하는 고생이 많죠. 이번 책도 그랬어요. 최대한 쉽게 쓰고, 그걸 더 쉽게 만들기 위해 고치고 또 고쳤어요. 특히 편집자님께서 도움을 많이 주셨어요. “이 부분은 이해가 잘 안 된다. 더 쉽게 써달라”면서 내용에 대해 계속 질문하고, 무척 세심한 첫 독자가 되어주셨거든요. 덕분에 제가 목표한 것보다 훨씬 쉬운 책이 나왔어요.

 

 

철학자도 흔들리는 개인이었다


철학자들의 사생활부터 성격 등 기존 철학 관련서에서 볼 수 없는 이야기들이 나와요. 칸트가 코감기 이론을 생각했던 부분이나 쇼펜하우어의 미성숙한 모습 등을 보니 ‘이들도 유약한 인간이구나’ 싶더라고요.


그렇죠. 특히 쇼펜하우어는 많이 유약해요.(웃음) 사실 어느 정도의 지적성향을 가진 여성분치고 쇼펜하우어를 좋아하는 분은 없을 거예요. 여성혐오 철학자니까요. 그런데 제가 쓴 글을 읽은 한 페미니스트 여성 지인께서 “쇼펜하우어를 향한 미움이 많이 희석됐다”는 말씀을 해주셨어요. 그때 되게 기쁘더라고요. 쇼펜하우어의 삶을 들여다보면 그가 괴물이나 악마가 아니라는 걸 알게 돼요. 한심함, 약함, 실수 같은 것들을 보며 그 사람을 이해하고 나면 그렇게 두렵지 않죠. 이 지점에서 철학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기도 하고요. 사실 쇼펜하우어의 철학은 굉장히 장쾌하고 장대하고 감동적이에요. 성격은 나쁜데, 철학은 장대하다는 건 이상한 게 아니죠. 사람은 좋은 면과 나쁜 면을 모두 가질 수 있는 복합적 존재니까요.

 

철학자의 삶을 다룬 덕분에 철학을 잘 모르는 사람도 충분히 읽을 수 있겠더라고요. 굉장히 먼 존재 같았던 철학자들이 무척 가깝게 느껴졌어요.


보통 처음 철학을 배울 때, 데카르트를 예로 들면 백지상태인 학생이 바로 방법서설부터 배워요. 아무것도 모르는데 현장성, 생동감, 살 냄새, 시대적 상황 같은 것들이 싹 빠져버리니 철학이 마치 수학 공식처럼 느껴지죠. 그래서 외우거나, 억지로 이해하거나, 공부하거나 아니면 포기해버리는 것 같아요. 그런데 철학자들의 삶을 보여주고, 이들도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모습을 알려주면 사람들이 좀 더 쉽게 철학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그렇다고 해서 이들의 삶이 철학을 이해시키기 위한 도구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에요. 결국 철학은 철학자의 삶에서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니까요.

 

여섯 명의 철학자가 가진 공통점이 있나요?


예민함이요. 우리는 학교에서, 직장에서 예민하게 굴지 말고 불편한 게 있어도 참고 묵묵히 헤쳐 나갈 것을 요구받잖아요. 이들에게도 세상은 무뎌지라고 요구했지만, 여섯 명의 철학자 모두 너무 예민해서 그걸 참지 못했어요. 기분 나쁘고, 싫은 걸 다 표현했죠. 그런 면에서는 굉장히 약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요. 예민한 건 어떻게 보면 약함이잖아요. 그런데 ‘그래 나 예민해. 그래서 뭐 어쩔 건데?’라는 태도에 있어서는 강한 사람들이에요.

 

생각의 자유를 대가로 증오와 오해의 대상이 된 스피노자의 이야기는 요즘 시대를 살아가면서 주목할 만한 것이었어요. 자유를 얻으려면, 그만큼 무언가를 포기해야 한다는 거죠.


스피노자는 굉장히 존경스러운 사람이에요. 초연하고, 비장하고, 지성의 깊이 또한 서양철학사에서 수위를 다투는 인물이기 때문에 스피노자 편을 쓸 때는 별로 재미가 없었어요.(웃음) 사람이 좀 모나고 우스운 구석도 있어야 하는데, 스피노자는 정말 선비잖아요. 저는 스피노자가 근대 시민으로서 한 개인이 자유를 누리기 위해 사람이 어느 정도의 핍박을 견딜 수 있는지 그 한계를 시험하려고 당시 유럽이라는 실험실에 자신을 모르모트로 내놓았던 것이라 봐요. 왜냐면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거든요. 이 책의 저자 입장에서 현대적 시민으로 우리와 같은 개인을 만드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철학자는 스피노자라고 생각해요.


책에 등장하는 여섯 명의 철학자 중 가장 좋아하는 철학자가 누구인가요?


좋아하는 것은 스피노자이고, 애정이 가는 건 쇼펜하우어예요. 결함투성이이고 나약한 쇼펜하우어의 모습이 꼭 저 같아서요. 뛰어난 두뇌와 저열한 성품의 언발란스도 매력적이고요. (웃음) 사실 우리는 모두 언발란스한 면이 있잖아요. 영혼은 남자인데 여자의 몸으로 태어났다거나, 부잣집 자식이고 싶은데 가정환경은 그 반대라던가, 운동선수가 되고 싶은데 운동 실력이 젬병이라던가 하는 것들은 모두 언발란스죠. 쇼펜하우어가 시작한 실존주의 철학은 이 언발란스를 해결해주지 않아요. ‘네가 가지고 태어난 짐이니까 네가 지고 가라’고 하죠. 그런데 그 비정한 결론이 아이러니하게 위로를 줘요. 해결책을 제시하진 않지만 우리를 알아주니까요. 또 쇼펜하우어는 성격이 나빠서인지 몰라도 헤겔까지 쌓아 올려 졌던 서양철학의 피라미들을 다 부수었어요. 부수려고 노력했고요. 전 그것도 용기라고 생각해요. 아, 물론 꼬장입니다.(웃음) 하지만 꼬장이라고 해서 용기가 아닌 건 아니니까요. 그의 결핍, 뛰어남과 모자람, 야심 이런 것들이 얽히고설킨 모습이 우리 모두와 다르지 않은 것 같아서 애착이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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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규정할 수 있는 건 오로지 나


현대의 개인을 가장 휘두르는 요소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알랭 드 보통이 말한 ‘불안’이요. 과거에는 업이 이미 주어진 것이기 때문에 숙명적이고 신성했어요. 왕은 왕으로 살다가 죽었고, 신하는 신하로 살다 죽었잖아요. 하지만 지금은 모두가 평등하다는 세상에 태어나서 몇 살에 어떤 직업을 갖고, 연봉을 얼마 받고, 어떻게 사는지가 비교되고, 남보다 못하면 그건 내 잘못이 되어버려요. 이건 결코 신성하지 않은 성적표죠. 사실 사람이 나쁘면 휘둘릴 필요가 없어요. 상대를 이용하면 되거든요. 사람이 휘둘리는 이유는 선량하기 때문이에요. ‘지금까지 나 좋자고 배낭여행 실컷 다니고 일은 안 했는데 부모님께 미안하네.’ 이런 생각이 들 때 휘둘리잖아요. 휘둘린다는 건 결코 나쁜 게 아니라 당연한 거예요. 그러니까 ‘휘둘리지 말자’가 아니라 자기가 설정한 범위 내에서 휘둘리자는 거죠. 그러기 위해서는 스스로 자기 정체성을 알아야 해요. 그걸 철학자들의 삶과 철학을 통해 함께 알아보자는 거죠.

 

그럼 작가님의 삶을 가장 휘두르는 건요?


탈모요. 탈모에 크게 휘둘리고 있어요. 저의 모근이 바람에 몹시 휘둘립니다.(웃음)

 

쇼펜하우어 『여록과 보유』의 고슴도치 이야기는 현대의 개인이 꼭 지녀야 할 태도인 것 같아요. 고슴도치 이야기를 혐오와 연관 지어 쓴 작가님의 페이스북 글을 보고 공감했어요.


성소수자가 너무 싫다고 가정해 볼게요. 그 마음은 잘못이 아니에요. 생겨난 마음이잖아요. 그것도 욕망이죠. 욕망은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없고 그 자체로 인정받아야 하는 거예요. 하지만 “싫으니까 사라져”라고 말하는 건 잘못된 거예요. 싫다는 말을 굳이 공개적으로 해서 그 사람들이 불편해져선 안 되니까요. 사람들이 착각할 수 있는 게, 싫다는 마음이 일면 극렬하게 혐오의 언행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나 혹은 싫다는 마음조차 안된다고 검열하는 분들이 있어요. 그런데 마음이 생기는 것까지 잘못됐다고 할 순 없어요. 고슴도치는 가시가 있어서 추운 겨울에 서로 너무 떨어지면 얼어 죽고, 너무 가까이 붙으면 가시에 찔려서 상처를 입는데, 서로 견딜 수 있는 적당한 간격이 바로 ‘정중함과 예의’라고 쇼펜하우어가 말했잖아요. 내 욕망이 소중한 것처럼, 타인의 욕망도 소중하기 때문에 서로 양해하고 살아가는 거리가 정중함과 예의에요.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태도죠.

 

이 책을 읽고 스피노자에게 반해  『에티카』 를 샀는데 못 읽겠다고 쓴 리뷰를 봤어요. 『어떻게 휘둘리지 않는 개인이 되는가』 를 읽고 철학에 관심이 생긴 ‘철알못’들에게 추천해주실 만한 책이 있나요?


제가 아는 책 중에서는 버트런드 러셀의  『서양철학사』 가 수준과 기품을 잃지 않고, 철학의 맥락을 놓치지 않는 선에서 가장 쉬운 책이에요.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뭔가를 마스터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는 것 같아요. 『수학의 정석』 을 공부해도 『실력 수학의 정석』을 풀지 않으면 수능 볼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듯 원서를 읽지 않으면 철학자를 모르는 것이라고 오해하죠. 그렇지 않거든요. 같은 내용을 쉽게 전달하기 위해 먼저 공부해서 책을 펴낸 저 같은 사람도 있고(웃음) 여러 인문학 관련 서적들이 있으니까 그런 걸 읽으셔도 괜찮아요. 그래서 그 철학자에 대해 알았고, 교훈이든 지적쾌감이든 무언가를 얻었으면 된 거예요. 

 

『어떻게 휘둘리지 않는 개인이 되는가』가 독자들에게 어떤 책이었으면 하나요?


쉽다, 재미있다, 감동적이다 모두 칭찬이지만, 저는 ‘쾌감’이었으면 좋겠어요. ‘아 그렇구나!’하는 지적쾌감. 여기서는 안도감도 쾌감의 일부라고 생각해요. ‘내가 그리 크게 잘못되진 않았구나’라는 안도감이요. 몰랐던 것을 알게 됐다는 지적만족감뿐 아니라 이 이야기가 나의 세계에서도 지속되고 있다는 쾌감 같은 걸 인문학적으로 느끼셨으면 해요.

 

저도 꽤 큰 지적쾌감을 느꼈어요. 다 읽은 뒤, ‘나 이제 어디 가서 철학으로 잘난 척 좀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던걸요.(웃음)


독자분들이 아는 척 좀 하시라고 술자리에서 슬쩍 꺼내기 좋은 이야기들을 철학자마다 신경 써서 넣어두었습니다.(웃음)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요즘 ‘팩트’가 유행이잖아요. 어떤 이야기를 하면 “그거 팩트야?”라는 말을 많이 하곤 하는데, 자기 스스로에 대해서는 너무 따져 물으면 안 돼요. ‘나는 왜 이럴까? 나는 왜 이렇게 부족하지?’라고 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그렇게 생긴 걸 어떡해요. 나는 그냥 나예요. 나는 잘못된 것도 아니고 옳은 것도 아니에요. 내가 있다고 세상이 훨씬 더 아름다워지지 않고, 그렇게 큰 문제가 생기지도 않아요. 그러니 ‘나’라는 팩트를 가지고 싸우지 말고 어떻게 관리하고 유지보수할 것인가, 어떻게 거리를 둘 것인가를 생각해야 해요. 그걸 알아내기 위해서 여섯 명의 철학자가 그렇게 고군분투 했고, 제가 책을 썼고, 여러분은 책을 읽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어떻게 휘둘리지 않는 개인이 되는가홍대선 저 | 푸른숲
무엇을 어떻게 해야 먹고살 수 있을지 앞이 보이지 않는 막막한 현실에서 우리는 철학자들의 내밀한 삶의 태도를 통해 자신만의 열쇠가 되어 줄 해결의 단초를 찾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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