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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작가 특집] 박서련 “한때, 소설가가 신처럼 느껴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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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고등학교 3학년 때 소설로 ‘15회 대산청소년문학상’ 금상을, 시로 ‘1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을 수상한 박서련 작가는 “쓸 수 있는 사람”이라는 마음과 “쓸 수 없는 사람이 되면 어떡하지”하는 복잡한 마음을 갖고 20대를 시작했다. 등단할 수 없을 것 같은 불안감이 점점 몸집을 키웠다. 20대 중반이 되어서야 <실천문학> 등단(2015년)으로 불안이 해소되었지만 원고 청탁이 없었다. 스타벅스 아르바이트를 하며, 중장비 자격증까지 알아보며, 다시 사무직 아르바이트를 하며 그럼에도 소설을 썼다. “그만 두기엔 너무 매력적인 일”이었기 때문에. 그리고 마침내 자신의 첫 장편 『체공녀 강주룡』 으로 제23회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한다.


『체공녀 강주룡』은 1931년 평양에서 고무 공장 파업을 주동하고 을밀대 지붕에 올라간, 우리나라 최초의 고공 농성 여성 노동자 강주룡의 이야기다. “강주룡이라는 인물을 남보다 조금 먼저 알아보았다는 자부심이 있다”는 작가의 이야기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강주룡은 매력적인 인물이다. 30년 남짓의 짧은 생에서 강주룡은 남편과 독립운동을 하고, 곧 남편을 잃고, 가족을 부양하고, 평양에서 노동 운동을 하다가 홀로 쓸쓸한 죽음을 맞는다. 사랑하는 남편이 나라의 독립을 원하니까 나도 그것을 원한다고 한 주룡. 낯선 이에게 “입에다 신짝 처넣어버리기 전에 썩 꺼지라”라고 일갈하는 주룡. 파업 현장에서 동지들에게 <국제가>를 부르자고 선도하는 주룡은 내내 씩씩하고 정 많은 친숙한 한 인간으로 살아난다. 마침 지난 8월 15일, 문재인 대통령이 광복절 축사에서 강주룡을 언급했다. 이렇게 기억해야 할 인물이 또 한 명 우리를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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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룡에게 반했다

 

제 23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을 축하드려요. 수상 소식 들었을 때 어떠셨어요?

 

고맙습니다. 그때 사무직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는데요. 외부에서 일을 보던 중에 전화를 받았어요. 너무 좋았어요. 일상의 자잘한 스트레스가 다 잊혔어요.

 

전혀 예상 못하셨어요?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 ‘되면 어떡하지’하는 생각은 있었어요. 되고 싶다, 되겠다가 구분되지 않는 상태로 상상을 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수상 소식 듣기 얼마 전(4/27)에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회담을 했잖아요. 그래서 ‘어쩌면?’하고 생각하기도 했어요. 내 소설에도 ‘을밀대’가 나오는데(웃음) 하면서요.

 

마침 어제(8/15)는 광복절 기념 축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강주룡을 언급하기도 했어요. 남다른 느낌이었을 것 같아요.


남다르기도 했고요. 저로서는 바라고 있기도 했어요. 이것 역시 예상과 상상이 뒤섞인 느낌인데요. 이즈음에 대통령께서 강주룡을 한 번 언급해주시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죠. 여성과 노동을 한꺼번에 말할 수 있으니까요. 강주룡이 독립유공자이기도 하잖아요. 여러 모로 의미가 있으니, 제 책 한 번만 봐주세요(웃음) 하는 욕망이 있었어요. 오전에 늦잠을 자고 일어났는데요. SNS를 켜니 이미 뉴스가 많이 공유되고 있더라고요. 당연한 일이기도 하지만 이 책을 쓴 저로서는 너무 호사여서 거짓말 같은 느낌이 있었어요.

 

이 소설은 어떻게 시작된 건가요?


많이 받은 질문이지만 답할 때마다 약간 달라지는 것 같은데요. 장편을 쓰긴 써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어떤 이야기를 쓸 것이냐가 고민이었죠. 두 가지 이야기를 고민하면서 친구들에게 말을 했더니 주룡의 이야기가 더 좋을 것 같다고 조언하더라고요. 실은 주룡 이야기는 어려울 것 같았거든요. 우선 사료가 많지 않고요. 감히 첫 장편으로 이 사람에게 접근했다가 누를 끼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있었어요. 하지만, 힘들지만 힘들수록 의미가 있는 것 아닐까 생각했고요. 그래서 쓰게 됐습니다.

 

작가로서 매력을 느낄 수밖에 없던 이유가 있었을 것 같아요. 다른 이야기가 아닌 주룡의 이야기를 선택한 이유, 좀 더 구체적으로 들려주시면 어떨까요?


어쩔 수 없이 주룡에게 눈길이 갔어요. 어린 남자와 결혼을 했는데 그의 사랑을 받았다기보다 내가 그를 사랑했고, 처음 봤을 때도 아주 귀여운 사람이었다, 이런 말을 했던 자료가 있었어요. 주룡이 자신의 십 년을 차분히 되돌아보는데요. 1-2년밖에 같이 살았을 뿐인 남편에 대한 이야기가 그 인터뷰의 절반 가까이 차지하고 있었거든요. 그걸 보면서 이 사람의 삶에서 사랑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상상해보기도 했고요. 체공 농성을 하면서 단식도 하고, 그런 상태에서 인터뷰를 했는데도 “예전에 감옥에 갇혀서는 일주일까지 굶어봤는데 사흘쯤이야”하면서 농담도 던지고 그랬더라고요. 그 캐릭터가 정말 재미있었어요. 일단 제가 그 사람에게 반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시작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생각해요.

 

그 주룡의 인터뷰 자료는 어떻게 발견하게 되신 거예요?


타워 크레인 여성 기사들에 흥미가 있었거든요. 중장비 자격증을 따볼까 하기도 했었고, 직접 대화를 해본 것은 아니지만 타워 크레인 여성 기사님들을 가까이서 본 적도 있어서요. 검색을 하다가 김진숙 위원으로 키워드가 넘어갔고, 고공 농성에서 강주룡으로 또 다시 키워드가 넘어갔어요. 자료들이 부족한 가운데서도 그 사람에 대해 상세하게 알아보신, 먼저 그를 주목해주신 역사학자 박준성 선생님의 자료가 도움이 됐고요. 그걸 보면서 이야기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가장 가깝다고 느낀 한 사람, 강주룡


사료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공백을 채우는 일이 아주 중요한 작업이었을 것 같거든요. 힘들진 않으셨어요?


사료가 많지 않되, 어느 정도 촘촘함은 있었던 게 이 사람의 육성이 담긴 인터뷰 기사가 남아 있었던 거니까요. 그 인터뷰 기사를 가장 많이 참고하기도 했는데요. 왜 이렇게 말했을까, 에 주목하면서 캐릭터를 먼저 만들려고 노력했어요. 가령 평양에 가족과 함께 이주했느냐 하는 부분이 있어요. 정확하지 않죠. 하지만 주룡의 행적을 보면 빈민굴에서 혼자 죽었다는 내용이 있거든요. 인터뷰에서 “사리원에서는 아들 노릇을 하며 돈을 벌었고, 그러다 평양 온 것이 5년 쯤 됩니다”라는 말을 하는데요. 애매하게 가족에 대한 언급은 없어요. 최후의 행적, 그리고 이런 얼버무림으로 봐서는 이 사람이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숨기고 싶었던 게 아닐까,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렇다면 주룡은 혼자 사는 여성이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죠. 대부분의 공백들을 그렇게 메웠던 것 같아요.

 

사실은 공백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주룡은 아주 생생하게 살아 있는 느낌이에요. 작가님이 상상한 강주룡은 어떤 사람이었나요?


누구에게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발견되는 매력이 있다고 믿어요. 한 사람에 집중적으로 달라붙어서 그 사람의 내면과 행동 동기를 자세하게 설명하려다보니 그 사람이 매력적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었던 것 같은데요. 누가 봐도 매력이 있으되 친근한 사람을 상상했어요. 어쩌면 나와 다르지 않고, 나의 친구 같기도 한 사람으로 형상화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제 가까이에 모델로 생각했던 사람이 몇 있는데요. 친구일 수도 있고요. 사회적인 면에서는 저희 어머니를 떠올리기도 했어요. 어머니가 일을 진짜 잘하셨거든요. 생활력이 정말 강하셨어요. 하루의 일을 다 마쳐놓고 “이만하면 오늘도 떳떳하다”고 말하는 여성이어서요. 그런 모습을 많이 떠올렸어요.

 

천변에 나가 빨래를 해 와서 널고, 보리방아를 찧고, 무채를 썰어 꿰어 말리고, 시간이 남아 정주간 황토 칠을 싹 새로 하고, 식구들 밥상을 올리고, 야학에 나가려는 전빈을 배웅하고, 밤불을 홧홧하게 때고, 큰할머니부터 형님네까지 문안을 돌고, 방에 들어앉아 관솔불을 밝히고 식구들 옷깃을 뜯어고친다.

이만하면 오늘도 떳떳하다.(34쪽)

 

쓰면서 가장 애착이 갔던 장면을 소개해주실 수 있나요?


이 책에 대해 코멘터리를 하라고 하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데요. 지금 떠오르는 장면은 일단 이거예요. 주룡이 간도 꿈을 꾸고 깨서 옥이의 이마 선을 정리해주잖아요. 그러면서 “앞으로 너는 네가 바라는 대로 살았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는데요. 그 장면을 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어떤 독자 분이 ‘그 말이 독자인 나에게 하는 말처럼 느껴졌다’는 리뷰를 남겨주셔서 정말 감사했거든요. 제가 쓰면서도 주룡의 말이기 때문에 제가 주룡에게 위로 받고 있는 기분이 들었어요.

 

이 작품은 1920-3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과거의 이야기라고만은 볼 수 없었어요. 더군다나 마지막 문장, “저기 사람이 있다”(242쪽)에는 한참 머물게 되더라고요.


마음에 품고 있는 장면들이야 워낙 많았어요. 말씀하시 마지막 문장도 쓰면서 많이 울었던 부분인데요. 소수자, 약자를 위협하는 적들은 언제나 있잖아요. 주룡은 그런 것들을 어떻게 이겨냈는지 보여주는 샘플인 거죠. 그래서 제가 쓴 주룡에게서 저도 기운을 많이 얻었던 것 같아요. 주룡은 쓰는 동안 저 자신이기도 했고요. 제가 가장 가깝다고 느낀 한 사람이었어요.

 

그런가 하면 주룡의 마지막, 죽음에 대해서는 직접 보여주는 방식을 택하지 않았어요. 감옥에 있는 정달헌에게 소식을 전해주는 식으로 독자에게도 주룡의 죽음을 알려주는데요. 그 이유도 궁금합니다.


자료에 따르면 병원에서 나와 주룡을 동지들이 돌아가면서 돌봐주었다고 해요. 동지들도 생계가 있고, 가족들이 있으니 매일 주룡을 들여다볼 수는 없었겠죠. 교대로 간호를 했을 텐데요. 주룡이 이 시기 즈음 숨을 거뒀거든요. 동지들의 간호가 하루 이틀 소홀한 사이, 또는 이번 여름처럼 폭염이 심할 때 그랬겠죠. 그렇다면 돌봐주지 못한 사람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특히 나중에 그 소식을 알게 된 달헌은 어땠을까, 많이 생각했어요. 정달헌은 불운하게도 곁에 누구도 없었을 때 주룡이 죽었다는 것을 알았을 테니까요. 한편 그 죽음을 너무 축소시킬 수도 없었죠. 혼자서 죽음을 맞이할 때의 애처로움을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그리지도 않고, 지나치게 프로파간다의 느낌이 들지도 않게 하고 싶었고요. 그래서 조금 거리를 두는 방향으로 그의 죽음을 가장 안타까워 할 동지의 눈, 동료의 눈을 섞는 정도로 썼어요.

 

균형을 잡는 일이 정말 중요했을 것 같아요. 기억해야 할 인물을 되살리는 작업을 하다보면 경도되기 쉬우니까요. 영웅화 하고 싶은 욕심을 자제시키는 작업이기도 했을 것 같아요.


조금씩은 시쳇말로 ‘뽕’(웃음)을 넣은 부분이 있긴 한데요. 사실 저는 빈말로도 애국자나 애국주의자라고 하기는 어려운 사람이에요. 그래서 아마 주룡도 그런 사람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어요. ‘여자에게 국가는 없다’는 말을 하잖아요. 당대의 여성인 주룡도 비슷한 느낌이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나한테 해준 것 없는 나라를 독립시켜 뭐하나, 그렇지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원하니까 나도 독립을 원한다, 라고 할 수 있는 캐릭터로 주룡을 그렸어요. 이런 해석에 공감해주신 독자 분들이 많이 계신 것 같아서 다행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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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나를 데려가기를


지금 여기를 사는 박서련이라는 작가가 갖고 있는 고민이 무엇인지도 궁금하네요.


인간의 복잡함에 늘 흥미가 있어요. 강화길 작가님의 『다른 사람』을 인상 깊게 읽었는데요. 그 작품에 등장하는 여성들이 전부 피해자면서도 서로에게 약간씩 가해를 하기도 하거든요. 입체적인 인간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이 보여서 흥미로웠는데요. 인간의 복잡성을 정확하게 포착하고 이해하면서 쓰면 어렵기야 하겠지만 의미도 있고, 재미도 있는 작업이 된다는 믿음을 갖고 있어요. 모든 일이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잖아요. 강주룡과 제주 해녀 항일운동가가 언급된 대통령 축사 기사의 댓글에 ‘가짜 페미들은 꺼져라, 이 사람들이 진짜 여성이다’라는 식의 내용이 있었어요. 여성들은 이 뉴스에 지금까지는 제대로 호명된 적 없는 나와 같은 여성이 역사에 이름을 남겼고 지금이라도 빛을 보려 한다, 면서 감동하는데 일각에서는 그런 댓글을 달 수 있는 거죠. 그런 걸 보면 분노도 하지만 흥미롭거든요. 저는 앞으로도 그런 부분을 계속 바라보고 쓸 것 같아요.

 

묘하게 어긋나는, 인간의 다양하고 복잡한 면모를 보여주는 장면에 늘 매력을 느끼시는군요.


복잡한 생각이고, 엉킨 실타래 같은 생각이지만 계속 생각하다보면 그 끝에서 의외의 더 재미있는 생각이 떠오르기도 하는 것 같아요. 그런 것들을 찾아서 쓰고 싶어요.

 

2015년 <실천문학> 등단 후에 원고 청탁이 없어서 타워크레인 운전 자격증을 따려고 알아보기도 했다는 인터뷰를 봤어요. 사실 고등학교 때 이미 대상문학상과 문학동네 청소년문학상을 수상한 적도 있잖아요. 여러 의미에서 쉽지 않은 시간들이었을 것 같은데요. 그동안 작가님은 어떻게 변해왔나요?


쓴 지 10년은 넘었다고, 스스로는 생각하고 있는데요. 해가 더해질수록 겸손해지는 것 같아요. 어릴 때 칭찬을 너무 많이 받았어요. 과분한 인정을 많이 받았죠. 그것이 저의 자존의 근거이기도 했고요. 나는 쓸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으로 어떻게든 버티고 살기도 했었는데요. 쓸 수 없는 사람이 되면 어떡하지, 라는 두려움도 함께 품고 살았어요. 제가 지난날에 이뤘던 성취들만 쓰다듬으면서 그 자리에 머무르는 사람이 되지 않으려고 늘 애쓰고 있어요. 어렸을 때는 칭찬 받으려고, 펼치는 자아의 느낌으로 화려하게 쓰려고 노력했었다면 지금은 쓰기 자체에서 희열과 쾌감을 발견할 때가 있거든요.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쾌감을 느낄 때가 있어요. 제가 글을 압도하고 있다고 믿을 때를 지나서 글이 저를 어딘가로 데려가길 기다리면서 계속 작업을 거는(웃음) 그런 상태가 된 것 같아요.

 

칭찬을 많이 받았다면, 글과 관련된 이야기인가요?


시골 출신인데요. 학생 수가 적은 학교에서 그나마 성적이 잘 나와서 어른들이 신경 안 쓰는 아이였어요. 그 와중에도 학교 땡땡이치고 서울에 와서 글 쓰는 친구들과 만나고 그랬어요. 합평을 하기도 하고요. 상을 받은 건 어른들한테 인정을 받은 건데요. 또래 집단에서도 그랬어요. 저는 20대 중반까지도 합평을 하면 나쁜 말을 들어본 기억이 없거든요. 아마 나쁜 말을 들었어도 제가 기억에서 지워버렸을 테지만요.(웃음) 수상 실적이 많았기 때문이었을 것 같기도 하고요. 어쨌든 혼자서는 어깨으쓱거림이 있었죠.

 

글을 압도하고 있다고 믿을 때에서 글이 작가님을 어딘가로 데려가길 기다리게 된 때로 바뀌던 시기는 언제쯤이었을까요?


이미 스무 살 때도 그랬을 거예요. 스무 살 때 많은 문청들이 위기를 느끼잖아요. 청소년 리그에서 좀 쓴다, 하다가 성인 리그로 나오면 갑자기 내 글은 비교도 안 된다는 사실이(웃음) 되게 아프게 다가오거든요. 한 번은 글을 안 쓰는 선배한테 투정하듯 이 얘기를 했어요. “앞으로 등단 못하면 어떡하죠?”라고 했더니 선배가 너무 아무렇지 않게 “거기까지가 네 운이었나보지.”라는 거예요. 그날 그 말을 듣고 너무 울었어요. 저도 내심은 그렇게 생각했는데 남이 그렇게 말할 수 있다는 사실이 냉정하게 다가왔던 것 같아요.

 

그렇게 등단을 했는데, 청탁은 없었고요.


등단했을 때는 개인적으로 가족사 때문에도 고통 받던 시기였어요. 그래서 등단 소식이 아주 기쁘긴 했어요. 오랫동안 오지 않던 인정의 순간이 드디어 왔다는 생각에 아주 기뻤죠. 그렇지만 다시 가족사로 고통 받았고, 저 자신으로 살았다기보다 누군가의 가족, 누군가의 무엇으로 휘둘리면서 지냈던 것 같아요. 아르바이트를 하며 지내다가 2017년 초반에 이 소설의 기획이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한국예술창작아카데미 지원사업에 다행히 선정이 되었어요. 덕분에 버텼고, 한겨레문학상을 타게 된 거죠. 동료 작가 분이 재등단이라는 표현을 쓰셨는데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다시 기회가 왔다, 이번에는 진짜 할 수 있는 것을 다 해야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죠.

 

 

그만 두기엔 너무 매력적인 일


여러 모로  『체공녀 강주룡』 이 의미가 큰 작품이네요. 작가의 말에 ‘이 책의 이름은 끝의 끝까지 내 이름의 옆에 놓일 것이다’라고 쓰셨는데요.


마감 직전이 정말 힘들었어요. 지원금이 떨어지면 취직을 해야겠다, 생각하면서 소설 마무리 단계로 나아가고 있었는데요. 생각보다 빨리 취직을 하게 되었어요. 글을 쓰면서 사무직 아르바이트도 겸하면서 개인적인 사정까지 겹쳤는데요. 저는 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몸은 아니었던지 한 번은 응급실에 실려 갔어요. 병원에서는 휴가 내서 쉬고, 소설도 쓰지 말라고 하셨죠. 결국은 휴가도 못 쓰고 소설도 썼는데요. 응급실에 실려 갈 때, 만약 이 소설이 잘 되면 이 이야기를 하면서 생색내야지, 생각했었어요.(웃음) 인터뷰에서 처음 얘기하는 거예요.(웃음)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무엇이 이렇게 쓰게 하는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어요.


그만 두기엔 너무 매력적인 일 같아요. 할 수 있다는 걸 안 이상은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일 중 하나인 것 같은데요. 어릴 때는 소설가가 신처럼 느껴졌어요. 어떻게 이야기를 만들지, 신기했는데요. 그러다 고등학생이 되어서 직접 소설을 써봤는데 할 수 있네? 한 번 더 써볼까? 한 거예요. 그러면서 계속 썼어요. 진짜 좋아서 썼죠. 그때 이 즐거운 일을 그만둘 수 없겠다고 생각했고요. 지금까지도 그 생각을 쭉 하고 있어요. 어렵지만 너무너무 즐거운 일이에요. 천계영 작가님 데뷔 단편집 『컴백홈』 작가의 말에 ‘만화를 보는 것보다 그리는 게 더 즐거워서 행복했던 나날’이라는 언급이 있어요. 그 말을 처음 읽을 때는 몰랐는데 지금은 진짜 공감해요. 직접 하는 게 훨씬 재미있는 것 같아요. 

 

언젠가 꼭 써보고 싶은 최종 소설이 있으세요?


『체공녀 강주룡』도 그때의 제가 할 수 있는 최대치였어요. 지금 하라고 해도 다시 못할 최대치라고 생각하긴 하는데요. 그래도 이것이 저의 궁극이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요. 이것은 다음 작업에 대한 태도에서도 마찬가지 같아요. 나의 인생 작품 같은 것은 지금 갖고 있다면 좋기는 하겠지만 지금 갖고 있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요. 약간 질문을 피해가는 말이 될까요?(웃음)


 

 

체공녀 강주룡박서련 저 | 한겨레출판
간도와 평양을 오가는 광활한 상상력에 ‘강주룡’이라는 매혹적인 인물을 불러낸 이 강렬한 이야기는 지금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깊은 울림으로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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