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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한혜정 “청년들에게 손해배상을 해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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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이곳은 일찌감치 망한 나라(선망국, 先亡國). ‘이게 나라냐’라는 외침에 휩싸였던 곳.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 시간 속에서 서구 언론과 지식인들은 희망을 발견한 듯 보였다. “현 시대의 모순을 누구보다 첨예하게 느끼고 움직이기 시작한 한국 시민들에게 기대를 걸어본다”는 것이었다. 과연 한국은 ‘망함’의 시기를 극복함으로서 선망하는 나라(선망국, 羨望國)가 될 수 있을까. 문화인류학자 조한혜정은 쉽게 낙관하는 대신 확실한 진단을 내린다. 세상이 계속 좋아질 것을 믿는 근대 문명은 수명을 다했고 지금 우리는 전환의 시기를 살고 있다는 것, 우리 모두가 “마음속 깊이 다른 시간대로의 이동을 간절히 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선망국의 시간』은 대전환의 시기에 우리 앞에 놓인 문제들과 다가올 시간에 대해 성찰한다. 인류학자로서 시대의 흐름을 읽으면서 대안교육, 마을살이, 청년문제와 관련해 대안적 공론의 장과 실천적 담론을 만들어 온 조한혜정 연세대 명예교수의 통찰과 지혜가 담겼다. 지난 4년간 한국사회를 뜨겁게 달군 사건들을 지켜보면서 <한겨레신문>에 연재했던 칼럼을 비롯해 인터뷰와 강연록, 대담을 모았다.

 

“그간 오로지 부강한 나라가 되기 위해 통합을 강조하며 달려온 ‘국민’이 다양성을 인정하고 연대하는 시민이 되어야 한다고” 저자는 확고한 목소리로 말한다. 선망국(先亡國)의 사람들은 “‘위’의 역사가 만들어낸 주체로서” 단일성과 통합성을 강조해 왔으며, 이들 ‘착한 국민’은 2016년 광화문 광장에서 ‘지혜로운 시민’으로 태어났다는 것. 분명한 사실은, 우리가 건너갈 시간 속에는 “‘아래’로부터 만들어진 주체”로서의 시민과 그들이 가진 다양성과 연대가 자리할 거라는 사실이다. 그러한 바람으로, 저자는 “자신을 돌보기 시작한 시민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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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고르기의 시간이 필요한 때


‘선망국’이라는 말은 이중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먼저 망한 나라(先亡國)’, ‘선망하는 나라(羨望國)’가 그것인데요. ‘먼저 망한 나라’라고 보시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그럴 수밖에 없는 조건이잖아요. 일제의 식민지를 겪었고, 그 후에 한국전쟁까지 겪었어요. 일본만 해도 전쟁을 겪은 후의 시간이 서양하고 동시대성으로 가거든요. 그런데 우리는 6.25 때문에 10년 늦어졌고, 그것도 아주 강압적인 형태의 군사독재적인 경제발전을 짧은 시간에 했어요. 그러면서 극단적인 불균형 발전이 됐고 ‘먹고 살면 된다, 강한 나라가 돼야 한다’는 식으로 끊임없이 외부에 목적을 정해놓고 자신을 돌보지 않고 달렸죠. 한편에서는 민주적이고 근대적인 이상향을 갖고 있던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싸우면서 87항쟁을 했고요. 민주화도 굉장히 짧은 시간 내에 한 건데, 그것도 구조라는 거대한 차원에서의 민주화죠. 정말 구성원들이 민주적으로 시민 혁명을 수행할 수 있었던 조건은 아니었잖아요. 사람들이 죽어가는 상황에서 싸워야했을 때는 작은 목소리들은 그냥 잠잠하라고 말했던 거죠.

 

요즘 우리사회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시면서 ‘선망국(先亡國)’의 징후를 감지하기도 하세요?


현 상태를 보면 사람들이 너무 괴로운 상황인 거잖아요. 우리가 여성 혐오를 계속 이야기하는데 미소지니(misogyny)의 여성 혐오와 달리 우리 사회는 혐오 사회가 된 거죠. 제 생각에는 이명박 박근혜 정부가 들어설 때부터 굉장한 냉소와 자포자기 같은 것들이 있었는데 그걸 넘어서서 굉장한 혐오와 적대가 일어나는 것 같아요. 선망국(先亡國)이라고 말할 때, 최근 벌어지고 있는 남녀 간의 전쟁이나 기후 변화 문제를 사례로 들 수 있을 텐데요.

 

여성 혐오와 관련된 부분은 어떤 건가요?


며칠 전에 미국에 다녀왔는데 남녀문제와 관련해서 사람들을 만났어요. 미국에도 여성 혐오가 분명히 있어요. 어떤 한 대상을 항상 자기 밑에 놓고 지배하고 싶어 하고, 특히 여자는 자기들을 위해서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경우에 그렇게 되죠. 여자에 대한 혐오, 약자에 대한 혐오는 약간 나치적인 경향을 가진 극우 남자들만의 조직에서는 있어요. 그런데 그렇게 여자를 미워하는 마음은 아니거든요. 대부분 헤이트 스피치(hate speech)는 인종문제가 먼저예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여자를 미워하는 식으로 가고 있죠. 예민 난민 이슈와 관련해서는 난민들이 우리 여자들을 강간할 지도 모른다고 하면서 또 다른 혐오로 가고요. 혐오의 관념이 너무 심하게 돼있는 상태잖아요. 왜 여성을 혐오하느냐, 그에 대한 설명은 굉장히 간단하죠. 우리가 마지막 냉전국가니까, 그리고 남자가 군대를 간다는 이유 하나로 그걸 보상하라는 논리가 이상하게 만들어지면서 그렇게 흘러간 거죠. 굉장히 어리석은 방향을 선택한 거예요.

 

그렇지만 ‘선망하는 나라’가 될 가능성이 있을까요?


결국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건 우리가 국민에서 시민, 시민에서 난민이 됐다는 거거든요. 우리 모두가 난민이라는 걸 인정하자는 거예요. 기후 문제만 보더라도 이건 재난이고 우리는 난민이 된 거잖아요. 이런 시점에서 ‘조금만 어떻게 하면 되지 않을까?’라는 식의 사유를 아예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조급하게 굴다가 더 망가뜨리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근본적으로 문제를 잡아야 되는 거니까요. 그런 맥락에서 ‘시간’이라는 단어를 넣은 거죠. 선망국이냐 아니냐는 식의 이야기에 시간을 많이 쏟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근대적인 시간을 넘어서 정말 다른 시간으로 이동할 수 있는 숨고르기와 최소한의 여유가 필요한데, 그 시간을 확보할 수 있느냐가 중요한 거죠.

 

<한겨레신문>에 연재하셨던 칼럼도 다수 실려 있어요.


칼럼을 쓸 때, 특히 세월호 이후에는 계속 우울해졌어요. 그래서 ‘우울해지지 않고 이 시간을 그대로 살아내는 방식이 무엇일까’ 생각했고요. 그러니까 글 쓰는 시간 자체가 기도하고 명상하는 시간이 된 건데, 그러면서 나 자신도 견디게 됐고 칼럼도 계속 쓸 수 있었어요. ‘그만 써야지’라는 생각도 했었거든요.

 

글쓰기가 괴로운 순간도 있었던 것 같아요. “진리를 말하려는 행위 자체가 무모하게 느껴지는 시대”라고 쓰셨고, “더 이상 합리가 통하지 않는 세상에서 글 쓰는 괴로움”을 토로하기도 하셨는데요.


사안 사안마다 해결될 수가 없는 거라는 걸 느끼는 거죠. 우리가 ‘청년일자리’라고 이야기하는 것도, 이게 일자리라는 개념으로 풀릴 수가 없는 거거든요. 기본적으로 사유의 개념을 바꿔야 되는 거예요. 제가 계속 이야기하는 게 모든 것은 우리가 가진 공공재이기 때문에 시민배당을 줘야 된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런 게 하나도 들어가 있지 않은 형태로 국가의 정책이 굴러가고 있잖아요.

 

쓰는 행위가 공허하게 느껴지실 때도 있나요?


우리는 나라가 막 좋아지는 계몽주의 시대도 살았잖아요. 그런데 이제는 혐오와 가짜 뉴스가 더 판을 치는 세상인데, 글쓰기를 즐겁게 하기는 힘들죠. 탈계몽주의 시대에는, 정말 기도라든가 다른 어떤 게 있지 않은 한, 어떻게 글을 쓸 수 있겠어요. 그리고 ‘왜 문제를 풀지도 못하면서 어려운 소리나 하냐’고 지식인에 대한 적개심을 가진 사람들도 있고요. 최근에는 책을 세 페이지 이상 못 읽는다는 이야기도 나오잖아요. 그건 정말 이해가 돼요. 그만큼 바쁘니까 그런 거죠.

 


‘난민이 된 시민들’의 지혜를 빌려야


기본소득, 시민배당에 대한 이야기도 책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데요. 우리 사회에서 이 담론이 활성화되고 긍정적인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을까요? 회의적인 게 사실입니다.

 

그렇죠. 그런데 실제로는 그 방법밖에 없잖아요. 모든 사람한테 100만 원씩만 주면 자존감 구기지 않고 굉장히 생산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건강한 사회가 될 수 있다는 거예요. 안 되면 실험부터 시작하면 되거든요. 그런데 아무도 실험하지 않아요. 하면 다 줘야 된다고 생각하고요. 그러니까 엄두를 못 내는 거죠. 길게 10년을 두고 준비를 하면 되는 거잖아요. 누가 대통령이든 상관없이. 그런 식의 사유를 하지 않으면 먼저 망하는 나라가 될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단계적으로 뭔가를 하지는 않고 이상한 복지 체제를 만들어 가고 있어요. 청년 중에서도 어떤 사람한테만 준다고 조건을 달고요. 그래서 아무런 성과 없이 모든 돈이 낭비되면서 우리가 사회를 바로잡을 시간을 다 뺏기고 있는 거예요.

 

그렇지만 희망을 발견하실 때도 있겠죠?


그래도 모여서 책을 보는 사람들이 생기잖아요. 거기에 희망을 두는 거죠. 광화문에 나갔던 시민들이 자각을 해서 같이 모여서 밥을 먹고 ‘이게 삶이구나’ 생각하고 취미 활동도 하고. 그러느라 더 바빠져서 책을 안 본다고 하더라도 상관이 없다고 생각해요. 책을 같이 본다고 했을 때는 정말로 희망이 있는 거고요. 요즘에는 ‘엄마들의 페미니즘’ 같은 모임들도 생겼다고 하는데, 엄마들이 페미니스트가 되는 것과는 상관없이, 어떤 주제를 가지고 토론을 하면서 스산한 난민에서 시민이 되어간다고 생각해요. 내가 난민인데 다잡고 나서 시민이 되는 거죠. 지금은 정말 ‘난민이 된 시민들’의 지혜를 빌려야 될 때거든요.

 

국가 주도적으로 끌고 갈 수 있는 게 아니라는 말씀이시군요.


얼마 전에 <민들레>에서 본 건데 ‘우리에게 필요한 건 즐거운 놀이터, 안전한 피난처다’라는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뭐든지 실험할 수 있는 즐거운 놀이터와 정말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는 피난처에서 뭔가 새로운 게 나올 수 있는 거죠. 그걸 하기 위한 시민배당을 줘야 이 사회가 사는 거예요. 지금은 국가가 할 수 있는 건 절대로 아니라는 거고요. 국가주의적인, 선진국이라는 시간 속에 있는 한 이 문제는 풀 수 없는 거예요. 문명이라는 게 흥망성쇠 하는 건데 지금은 그 곡선이 내려가고 있는 거잖아요. 그게 다시 오를 때 난민적인 시민들이 주역이 된다는 거예요. 그 사람들은 지금 자기 삶을 들여다보면서 생각하고 있죠. 스스로 상호부조 하는 관계를 맺으면서 ‘내가 누구인지, 그 동안 내가 어떤 짓을 했는지’부터 시작해서 ‘다음 단계로 가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라는 질문까지, 근본적으로 다른 방향을 생각할 수 있게 되는 거예요. 그런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야만 나라가 다시 살 수 있는 거죠.

 

청년배당의 경우에는 성남시에서 실시한 바 있는데요. 작가님과는 조금 다른 시각으로 접근한 것 아닌가 싶습니다. 어떤가요?


굉장히 좋은 실험이라고 생각하고, 그런 실험을 곳곳에서 다 했으면 좋겠어요. 기본소득을 연구하시는 강남훈 선생님이라고 계신데, 그 분과 성남시가 같이 많이 연구해서 실시한 정책이었어요. 그런데 지원 금액이 너무 적었죠. 제가 이야기하는 건 열심히 노동하면 기본적인 생계가 해결될 수 있는 정도가 돼야 한다는 거예요. 지금 서울시에서도 그런 걸 많이 하는데, 진짜 제대로 된 전문가와 관과 당사자가 모여서 의논을 하면서 가줘야 돼요. 그렇게 안 하고 관은 관대로 주도를 하고 결정을 해버리니까 낭비가 되는 거죠. 그리고 장단기적으로 실험을 해야 되는데, 돈을 확 풀어서 빨리 써야 된다고 다 쓰면서 낭비를 하잖아요. 이런 지점이 그야말로 선망국(先亡國)의 특징적인 일의 방식이에요. 지금 문재인 정부도 관료행정을 단순화시켜야 돼요.

 

자세하게 말씀해주신다면요?


국가는 시장을 일정하게 견제하면서 모든 사람이 살아갈 수 있도록 사회를 만드는 거잖아요. 그런데 그게 관료체제화 돼버려서 아무도 뭘 할 수가 없는 상태가 되어 있어요. 그 지점을 바꾸지 않으면 문재인 정권이 할 수 있는 건 없어요. 계속 소득주도다 뭐다 해서 머릿속에 갖고 있는 어떤 걸 실현해 보려고 하는데요. 지금 시민들이 난민화 되고 세계화(globalize)되고 인터넷에서는 남녀가 대립하고 있는 상황인데, 과연 50대가 된 세대 중에서 몇 명이나 이런 현실을 인식하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그런 사람이 아니면 정책을 할 수가 없는 거잖아요. 문제를 제기하면 와서 듣고 같이 의논해서 빨리 해결방법을 찾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한데, 사회가 너무 빨리 변해서 무지하고 무능하거든요. 그런 지점에서 난민화 된 시민들의 힘을 빌려야 된다는 거예요.

 

그런 시민들을 위해서 기본소득 제도가 필요하고요.


난민화 된 시민이 진짜 시민이 될 수 있도록 최소한의 안전망이 있어야 되는 거죠. 기본소득이라든가 집이라든가, 적어도 모여서 살고 잠이라도 제대로 잘 수 있게 해야 되는 거예요. 그게 아니고 계속 프로젝트를 하라고 하니까, 사실 빈집 같은 게 굉장히 많아도 아무런 일이 안 일어나잖아요.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지는 장소가 되지 못하고 있는 거거든요. 계속 낭비되는 공간인 거죠. 뭔가 하는 척을 계속 하지만 낭비되는 공간인 거예요.

 


청년들에게 손해배상을 해줘야 한다


청년배당과 관련해서 “지원이라기보다는 청년들에게 손해배상을 해줘야 한다는 차원”이라고 하셨어요.


시민배당 이야기를 하면 ‘그 많은 사람한테 어떻게 주느냐’라고 하니까, 계속 단계별로 하자고 이야기하는 건데요. 실제로 60, 70대 분들도 정말 고생 많이 하셨죠. 그런데 우리 사회가 누구한테도 고생 많이 했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없어요. 그렇지만 청년들이 희망을 가지고 살아야지, 어쨌든 우리는 그 사회를 만든 책임도 있는 세대인 거죠. 그리고 저는 이렇게 시대착오적인 입시교육을 시킨 것에 대해서는 당연히 손해배상을 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대학에서 수업을 진행하시면서 청년들과 만나고 계시잖아요. 기성세대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이나 울분을 느끼는 청년들이 많다고 생각하세요?


우석훈 박사가 『88만원 세대』를 썼을 때는 꽤 있었죠. 이제 10년이 지났는데, 반대로 신자유주의에 자발적으로 편입하기로 한 친구들도 있는 것 같아요. 그 친구들은 자기계발서를 거의 성경처럼 읽었더라고요. 흔들릴 때마다 읽는 거예요. 그런 친구들은 그렇게 생각 안 하는 거죠.

 

‘나는 차별에 찬성합니다’라고 이야기하는 건가요?


‘내가 노력이 부족해서 그런 거다’라는 거죠. 지금 세대들은 그들과 또 다르게 생각하는 거예요. ‘계속해도 이게 아니구나’라는 건데, 구의역 사건이 굉장히 영향을 많이 미쳤을 것 같아요. 강남역 사건이 여성들을 각성시켰다면 구의역 사건을 계기로 청년들이 굉장히 각성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많이 달라지고 있는 거고요. 밑에서는 뭔가 달라지고 있겠죠. 이 책도 달라지고 있다고 믿고 싶어서 쓴 거고요(웃음).

 

‘교육의 전환’, ‘전환의 교육’과 관련해서 말씀하신 내용이 인상적이었어요. “‘아이의 미래를 설계할 수 있다’는 자만이나 ‘프로그램을 통해 학생들을 깨어나게 할 수 있다’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하며, 부모는 아이를 자신이 책임져야 할 존재로 여겨 불안과 공포 속에서 관리하려는 강박을 내려놓아야 한다”고 하셨죠.


그런 착각이 엄청난 불행을 몰고 온 거잖아요. 지금 입시교육이 안 바뀌는 이유도 그런 거죠. <민들레>에서 또 재밌게 본 내용이 있는데, 아이들이 밤에 한두 시간 유튜브를 보고 웹서핑을 하는 게 ‘유일하게 내가 스스로 선택해서 보는 시간’이라는 거예요. 학교에 가면 전부 타의적이잖아요. 그러니까 그 시간은 ‘나를 완전히 망가뜨리지는 않겠다는 자존을 유지하는 마지막 힘’이라고 하더라고요. 그게 어디로 가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나는 살아있는 사람이야’라는 걸 확인하고 싶어 하는 시간이라는 거죠. 아이들 나름대로 자기를 살리려고 어떤 시간을 확보하고 있는 건데, 그런 걸 엄마들도 조금 생각해야 될 것 같아요. 아이를 이미 난민으로 만들어버린 체제에서, 그 체제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면 안 되잖아요. 타이타닉이 계속 가라앉고 있는데, 그러면 빨리 배를 건져서 아이를 구제해야죠. 그렇게 해서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야 하는 때인데, 지금은 계속 침몰하는 타이타닉 속으로 밀어 넣고 있다는 거예요.

 

“나는 좋은 사회란 사람들 얼굴에 화기가 돌고 홀아버지가 아이 하나를 잘 키워내는 사회라 생각한다”고 쓰셨습니다. 어떤 모습의 사회를 꿈꾸세요?


제가 계속 이야기하는 게 주민자치회관 같은 데를 그냥 오픈을 하라는 거예요. 주민들이 열쇠를 가지고 있으면서, 국 잘 끓이는 사람은 와서 국 끓이고 반찬 잘 만드는 사람은 와서 반찬 만들고 그러면 된다는 거죠. 그러면 집밥 좋아하는 청년들이 가서 배우고, 그 날은 거기에서 밥을 먹는 거죠. 홀아버지도 아무런 문제없이 아이랑 거기 가서 밥을 먹는 거예요. 정말 안전한 삶의 장소가 되는 거죠. 그러다 보면 거기가 놀이터도 되고 정보도 나누고 서로 취직도 할 수 있는 거고요. 그때의 취직이라는 게 ‘일자리’가 아니고 ‘일거리’가 많이 생기는 거죠. 밥 먹을 데가 있고 잘 데가 있고, 그렇게 주거 문제가 잘 해결되면 굉장히 좋은 시민이 될 분들이 많아요. 그런데 그런 시민이 될 사람이 없는 거죠. 여유를 하나도 안 주고 생존에 허덕이게 하니까요.

 

다시 시민배당의 필요성을 이야기하게 되네요.


저는 정말로 시민배당 논의를 단계별로 시작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문재인 정권이 뭘 하려면, 경제 쪽에서 그것부터 시작을 해야 된다고 봐요. 소득주도는 전체 중에 하나의 이슈일 것이고, 적어도 큰 세 개의 주제 중에 하나는 기본소득 내지는 시민배당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다른 개념보다도 ‘여기에서 번 돈은 공유재다’, ‘최소한의 삶에 대해서 극단적인 불안에 살게 하는 건 국가가 아니다’라는 생각에서 접근해야 돼요. 그 다음부터는 시민들이 알아서 할 텐데, 저는 시민들이 굉장히 잘할 거라고 생각해요. 자기 삶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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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학번에게 기대를 거는 이유


“싸울 대상이 누구인지 제대로 알아차릴 수 있다면 세상은 평화를 되찾을 수 있을 테지요”라고 하셨는데요. 지금 우리는 무엇을 대상으로 싸워야 하는 걸까요?


혐오와 적대를 일으키는 세력이 누구라고 가리키는 체제를 벗어나야 할 것 같고요. 요즘 댓글을 계속 보고 있으면 죽을 것 같잖아요. 혐오와 적대 세력이 하는 일들을 보고 있는 게 힘들죠. 그런데 우리를 살게 하는 건 서로를 돌보는 사람들이니까요. 일단은 나를 살게 하는 삶의 장소, 시간, 관계를 확보하는 게 되게 중요해요. 온라인을 보면 지금이 적대와 혐오로 가득 찬 것 같지만, 사실은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형태로 고민하면서 살아가고 있을 거거든요. 그런데 SNS에서는 적대와 혐오만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거죠.

 

맞습니다. 인터넷이나 SNS를 잠깐만 봐도 불안감을 느껴요.


사실 페이스북의 주커버그도 불쌍한 사람이에요. 대학에 다닐 때는 자기한테 지금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은 상상도 못한 사람이잖아요. 어쨌든 회사를 망하게 하지 않으려면 누구한테 팔든가, 아니면 빅데이터를 어떻게 할 수밖에 없는 엄청난 압력이 들어오는 거예요. 그 사람도 자율성이 거의 없는 거죠. 그런 게 적인 거죠. 여자가 적이 아니고, 문재인이 적이 아니고요. 그리고 AI로 끊임없이 가게 하는, 무기를 끊임없이 사게 하는, 그런 것들도 모두 적이죠. 호락호락한 적은 아니고, 그 체제에서 정면으로 칠 수 있는 적도 아닌 것 같아요. 골리앗이랑 싸웠던 다윗처럼 어떤 다른 식의 전쟁이 될 것 같은데요.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우리가 삶을 추슬러야 된다는 거죠. 하루하루 혐오와 적대 속에 휩쓸리지 않는 형태로 살 수 있는 지혜와 명상의 시간, 같이 방안을 찾는 관계, 그런 것들이 있어야 되는 거죠.

 

90년대 학번에게 많은 기대를 걸고 계신 것 같아요.


80년대 학번 남자들은 군부독재에서 민주화를 하기 위해서 개인이 될 수가 없었어요. 시민이 될 수 없었고, 국가 대 국가로서 자기는 국가인 거예요. 그게 586 세대를 보면서 굉장히 걱정하는 부분인데요. 자신들은 여전히 국가인 거죠. 그런데 근대 국가가 성숙하고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가 만들어지려면 개인이 돼야 하거든요. 그 개인이 90년대 학번들부터는 됐다고 생각해요. 남자들의 폭력적 구조에 들어가지 않고 개성 있는 나로서 살겠다고 생각한 세대죠. 그리고 여자들하고도 굉장히 친하게 지낸 세대예요. 그래서 결혼을 해도 명절에 자기네 집과 아내네 집을 번갈아 가면서 간다든가, 그런 생각을 상식적 논리적으로 하는 세대이기 때문에 기대를 하는데요. 이 사람들이 IMF가 터지면서 생존에 급급해지고, 그러면서 그 중에 일베처럼 된 사람도 있을 것 같아요. 살다가 힘드니까.

 

그들이 어떤 역할을 해줄 수 있을까요?


여성들이 안전한 사회를 만들자고 말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대로 구조를 보지 못하고 약자한테 적개심으로 분풀이하는 것을 막아줘야 된다는 거죠. 그 위의 세대들은 국가가 돼야 했기 때문에 못했다면, 그 밑의 세대는 신자유주의에서 생존하기 급급해서 ‘차별에 찬성합니다’라고 할 수밖에 없었거든요. 구조를 보기가 굉장히 힘든 세대죠. 그 중간에 있는 세대가 지금 이야기를 해야 되는 거죠. 90년대 학번 친구들이 여자와 남을 도구화하지 않고 자율적으로 즐겁게 공생할 수 있는, 그런 가족과 사회와 마을을 만들어가야 될 거라고 생각해요.


 

 

선망국의 시간조한혜정 저 | 사이행성
근대 산업사회가 구조적으로 접어들 수밖에 없는 파괴의 단계인 ‘위험사회’이기도 하다. 이 책은 대전환의 시대를 슬기롭게 헤쳐 나가는 지혜와 방법을 모색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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