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일용(왼쪽) 고나무(오른쪽)
‘대단한 사명감이나 책임감 없이’ 1989년 순경 공채에 합격한 권일용 순경은 1992년 7월 동부경찰서 관할 파출소로 발령받아 처음으로 경찰 제복을 입었다. 가볍게 입기 시작했던 제복은 수많은 사건 현장과 범죄 피해자들을 마주 보면서 점점 무거워졌다. 제복의 무게가 제법 묵직하게 누르던 1999년 겨울 과학수사계 윤외출 계장의 전화를 받고 2000년 2월 9일 그동안 한국에는 없었던 ‘프로파일러’가 된다.
프로파일러는 범죄 현장에서 수집한 증거를 바탕으로 범인의 마음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그가 왜 이 장소에서, 이 사람을, 이런 방식으로 헤쳤는지, 어떻게 움직였고, 무엇을 신경 썼는지, 행동을 분석하고 방법을 알아내야 한다. 그들의 전기를 함께 기록한 고나무 작가는 서문에 “이 실화는, 이 돈키호테들이 어떻게 한국 최초의 프로파일링 팀을 만들고 그들이 범죄자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어떻게 성장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다.”라고 밝혔다.
한 명으로 시작한 프로파일러가 팀을 꾸리고, 그동안 존재하지 않았던 프로파일링이 경찰 내부에서 자리 잡는 과정은 하나의 의미 있는 기록이 된다. 또, 가볍게 입기 시작한 제복에 누군가의 죽음이 켜켜이 쌓여 기꺼이 범죄자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그의 표현대로라면 ‘다른 세계’로 건너가는 권일용이라는 사람의 드라마가 선명한 잔상을 남기기도 한다. 최초의 프로파일러가 은퇴 후 애증 했던 자신의 직업에 바치는 전 상서 같기도 하고, 고나무 작가의 말에 따르면 ‘새로운 방식을 도입하고 관철시킨 그들의 태도에 대한 전기’이기도 한 것이다.
“돈키호테는 혼자 싸울 수는 있어도 혼자 승리할 수는 없다.”
- 17쪽
출판사의 제안으로 함께 집필하게 되었다고 들었다.
권일용 : 알마출판사 이전에도 여러 출판사에서 제안이 있었는데, 결이 맞지 않았다. 언젠가 현장을 기록해야겠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일반적인 전기나 무용담을 쓰고 싶지는 않았다. 어떻게 일을 시작했고, 시대적인 상황은 어땠으며, 어떤 요구가 있었는지, 함께 일하는 프로파일러들의 고뇌를 함께 드러낼 수 있는 기록물을 남기고 싶었다. 마침 알마출판사에서 제안한 것이 추구하던 바와 맞았다. 고나무 작가가 이전에 했던 작업도 알았기 때문에 기대하고 시작했다.
고나무 : 권 교수는 어떻게 기록할 것인지 자기 고민이 뚜렷했다. 전기작가인 나는 캐릭터를 고민했다. 프로파일러를 다룬 무수한 언론 보도가 있지만, 언론 보도와 전기의 차이는 캐릭터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언론은 프로파일러 ‘권일용’이 한 프로파일링은 보도하지만, 그가 행동하면서 어떤 고민을 얼마나 치열하게 했는지 보도하진 않는다. 예를 들어 1994년 10월 21일, 성수대교가 무너진 때 권일용은 동부경찰서 감식 요원으로 있었다. 갑자기 끊어진 다리 위에서 차량 여섯 대가 추락했고, 교각 단면에 부딪힌 시신을 일주일간 하나하나 카메라로 찍었다. 무수히 많은 사건의 중심에서 권일용이 프로파일러로 성장한 과정을 그린 언론 보도는 없었다. 권 교수가 생각하는 방향과 나의 고민이 방향이 잘 맞았다.
서문에 ‘태도에 관한 전기’라고 밝힌다. 프로파일러 권일용의 전기이자 프로파일러 팀 전체에 관한 전기라고 했는데, 어떤 방향으로 쓸 것인지는 함께 결정한 건가.
고나무 : 존 더글러스와 마크 올셰이커의 『마인드 헌터』라는 책이 있다. 미국 프로파일러의 선조 격인 존 더글러스의 일대기를 그린 책인데, 마크 올셰이커라는 작가와 공동 집필했다. 전기 묘사 대상과 작가가 혼연일체 되어서 공저한 것이다. 한국의 『마인드 헌터』를 쓰고 싶었다. 권 교수도 초창기 프로파일러가 되었을 때 많이 읽었던 책이다.
취재 기간이 궁금했다.
고나무 : 몇 년 동안 몇 회에 걸쳐 만났느냐는 질문인가? 글쎄. 몇 회인지는 세 보지 않아 모르겠다. 2016년 11월에 처음 만나 2년에서 1년 6개월 정도 취재했던 것 같다. 그동안 권 교수도 퇴직하고, 나도 창업했던 시기가 겹쳐서 그때 빼고는 많은 시간 만났다. ‘권일용’과 그의 동료, 1기 공채 프로파일러, 피해자나 유가족 접촉을 시도하기도 했다. 취재 후에도 뉘앙스나 판결문 등으로 사실 확인 등을 해야 하니까 과정이 복잡했다. 그 동안 취재나 글쓰기에만 몰두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 정도 걸렸다.
“초창기에는 그저 막막했다. 모든 것을 혼자서, 알아서 해야 했다.”
- 48쪽
책에는 초창기 여섯 개 사건을 담았다. 여섯 개 사건이 인간 권일용과 프로파일링 수사가 자리 잡는 과정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했던 건가.
고나무 : 프로파일링 성장 과정에서 의미 있는 사건이나 프로파일러가 사건을 해결하고 범인을 검거하는 데 큰 역할을 했던 사건을 기준으로 뽑았다.
권일용 : 2000년에 처음 과학수사계가 생기고, 프로파일러로 발령이 났을 때만 해도 경찰 조직 내에서 프로파일러에 대한 기대가 별로 없었다. 그때만 해도 범죄의 이유가 단순했다. 원한이나 보복 등 관계에 의한 것이 많았고, 현장에서 세세하게 조사하고 수집한 증거물만으로도 범인이 검거되는 사건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유영철이 나타났다. 이건 동기나 목적이 불분명한 범죄가 사회에서 벌어진다는 의미로 치밀하게 준비하고 계획한 범죄이기 때문에 현장에 증거가 거의 남지 않는 것으로 변화되고 있다는 뜻이었다. 예측 가능한 범죄에서 불가능한 것으로 변화하는 과정이 초창기 사건들에서 잘 드러났고, 이는 프로파일러가 자리 잡는 과정일 뿐만 아니라 사회에서 벌어지는 범죄가 변화하는 흐름도 잘 보여 준다고 생각했다.
유영철이 나타난 2003년 이전에 프로파일러 직책을 만들어 미리 훈련한 것이 큰 예방이 되었을 것 같다.
권일용 : 유영철이 등장했을 때 바로 투입되었던 게 매우 중요한 의미였다고 생각한다. 범죄 유형이 변화하는 것을 예측하고 대비했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일이다.
특히 3장에 담긴 정남규 사건을 프로파일러로 자리 잡는 데 중요한 사건이라고 꼽았다.
고나무 : 여섯 개 사건이 모두 언론에 보도가 많이 된 것들이다. 그런데 양으로만 놓고 따졌을 때 정남규 사건이 보도 양이 적은데, 이 책에서는 매우 중요하게 다룬다. 우연히 검거된 연쇄살인범이 단순 강도로 잡혔다가 금방 풀려날 뻔한 사건이니까. 프로파일링이 범인 검거나 체포에 적극적인 기능을 했던 첫 사례다. 1장에 나온 조현길 사건도 언론에는 많이 보도되지 않은 사건이다. 한국 경찰 역사상 첫 프로파일 보고서를 작성했던 건데 그것도 기록된 게 많이 없다.
장마다 프로파일링 보고서를 실은 것도 인상적이었다.
권일용 : 보고서라고 하기에도 민망하다. 많이 수정한 것이고, 밝힐 수 있는 것만 썼다. 정남규 사건은 개인적으로 큰 의미였다. 조직에서 프로파일러로 역할을 인정받았고 경사에서 경위로 특진하게 한 사건이기도 했다.
“이 시대가, 우리 사회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괴물을 낳기 시작했구나.”
- 101쪽
범인을 잡기 위해 ‘그화 되기’를 한다고. 범인이 범행 저지른 시간에 그 장소에 가서 분위기나 주변 풍경을 살피고, 범인의 마음이 되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권일용 : 과학적인 단서만으로 범인을 잡을 수 있다면 진술을 분석하거나 범인의 행동으로 무언가를 유추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범죄 패턴이 변화하는 지금은 ‘왜 이 사람이 이런 선택을 했는지, 이 선택의 동기는 무엇인지, 어떻게 형성되어서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알아야 한다. 그것을 알아야만 유사한 행동이 나왔을 때 분석할 수 있다. 그런데 나의 입장으로 타인을 분석하듯이 접근하면 사고 자체가 안 된다. 예를 들어 가해자가 “피해자가 운이 없어서 그렇게 된 겁니다.”라고 했을 때 “말이 되는 소리야?”라는 반응은 철저한 조사자의 입장이다. “그래, 피해자가 운이 없었을 수도 있어.”라고 하는 게 그의 삶과 사고방식에 빠져들었을 때 나오는 대답이다.
완전히 범인에 동화되어야 나올 수 있는 반응인 것 같다.
권일용 : 피해자를 같이 비난하는 게 아니다. 범인이 피해자를 어떻게 생각하고 이해하는지 알아야 한다. 그래야 다음에 비슷한 유형의 범죄자를 미리 예방하거나 발생했을 때 더욱 빨리 잡아서 다른 피해자가 나오는 것을 예방할 수 있다.
계속 범인처럼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 인간 권일용에게는 매우 힘든 일이었을 것 같다.
권일용 : 현장에 나가지 않는 프로파일러들은 ‘힘들고 어렵다’고만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장에 나가면 마음이 달라진다. 사건 현장에서 피해자를 직접 보고, 만지고, 범행 동기를 찾기 위해서는 끝없이 사진을 본다. 그러면 힘들다는 생각이 드는 게 말이 안 된다고 해야 하나. 이걸 분석하고 해석하는 일이 숙명처럼 느껴진다. 나는 제복을 입고 있으니까. 제복을 입고 이 역할을 하는 사람이니까, 숙명처럼 느껴지는 거다.
조현길과 밥을 먹고 나오면서 “‘이제 이런 괴물들과 같이 밥 먹고 살아야 하는구나’라고 느꼈습니다.”라고 했다. 수없이 느꼈을 기분일 텐데, 이런 기분을 느낄 때도 두렵다거나 그만해야겠다는 고민은 하지 않았나?
권일용 : 두렵다기보다는 완전히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제복을 입었으니까 그만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진 않았다. 제복은 국민과 한 약속이자 피해자와의 약속이다. 앞으로 뭘 할 수 있을지 찾는 게 우선이었다. 프로파일러가 되기 전에 CSI를 하며 수없이 많은 현장을 보고, 피해자를 보았다. 그때도 문제가 발생하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먼저 생각했다. 완전히 다른 세계로 들어왔다고 느꼈을 때도 ‘내 길인가, 아닌가’를 고민하지 않았다. 대단한 사명감이나 무게감으로 경찰이 된 거 아니었고, 경찰로 먹고살아야 하니까 계속했던 거다. 다만, 제복을 입고 본 현장이 내가 추구했던 삶 중 하나일 수도 있겠다고 느꼈던 것 같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 무언가 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싶었다. 현장에서 그런 걸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고나무 작가는 ‘권일용 되기’를 했다고?
고나무 : 일단 권일용이 느끼고 생각한 걸 최대한 따라 했다. 권일용 팀을 제삼자의 관점에서 바라보았다. 오른쪽에는 대중이 있고, 왼쪽에 권일용이 있고, 그 가운데 내가 서 있다고 생각했다. 이 사람들의 활동과 고민을 가장 사실적으로 전달하고 싶었고 그게 ‘권일용 되기’였다. 가령 그 시점의 권일용은 물론이고, 아주 어린 시절부터 권일용의 행적을 모두 물었다. 그가 꾸었던 꿈이나 부모나 종교, 성장 과정에서의 생각 등 프로파일러 권일용 말고 인간 권일용이 지나온 길을 훑어보는 작업을 했다. 또 2000년도에 프로파일러로 발령을 받은 후 권일용의 책상에 있던 책을 따라 읽었다. 그 시점의 권일용이 했던 고민과 학습을 한 것이다.
권일용 작가가 갔던 사건 현장을 같은 시각 같은 동선으로 걷기도 했다고.
고나무 : 권일용은 늘 현장에 나가는 사람이다. 대표적인 현장인 정남규 사건은 걸었던 동선을 물어서 골목까지 똑같이 따라서 걸었다. 10년 전이기 때문에 재개발된 곳도 있었지만, 안 된 곳도 많다. 똑같지는 않겠지만, 대략적인 느낌을 잡는 것이다. 또 동료들을 만나서 그가 어떤 사람인지 묻는다. 나만의 특별한 방식이 아니다. 미국식 논픽션 마니아인데 어떻게 써야 하는지 나온 것들을 따라 한 거다.
쓰는 사람이 권일용이라는 사람에게 연민을 느끼고 있다는 인상도 받았다.
고나무 : 한 인간을 깊이 공부하다 보면 빠져들 수밖에 없지 않나. 그래도 늘 거리감을 가져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다. 소설가가 아니라 논픽션 작가이기 때문이다. 권일용이라는 프로파일러와 그의 팀을 잘 담는 게 전기작가의 목표이자 의무다. 그런데 권 교수가 인간 고나무와 비슷한 면이 많았다. 약간 또라이인 점. (웃음) 그래서 동화되거나 연민이 깊었지. 그래도 거리를 두는 게 결과물에 좋다고 생각해서 의식적으로 노력했다.
권일용 : 고 대표가 너무 몰입하고 있다고 생각되거나 지나치게 많은 부분 드러내고 있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함께 상의했다. 오래 만나다 보니 눈빛이나 말투만 봐도 너무 빠져들었다는 게 느껴지면 자르기도 하고, 같이 조절했던 것 같다.
유영철, 강호순, 정남규의 범죄 피해자들은 나의 이웃들이었다.
- 263쪽
쓸 때나 검수할 때 아무래도 생존 피해자나 피해자 가족을 염두에 두었을 것 같다.
고나무 : 5년 전 지존파 납치 생존자 인터뷰를 하면서 범죄 문제에 관심이 많이 생겼다. 범죄 논픽션 작가로 핵심 화두와 고민 중 하나가 범죄 피해자 트라우마다. 이 책을 쓰면서도 잔혹한 범행 방식을 일부러 묘사하지 않았다. 범죄 장면 묘사가 차별화할 지점이 아니라고 생각했고, 피해자나 그 가족이 불필요한 묘사를 보았을 때 심정을 떠올렸다. 흔히 미디어에서 범죄를 소비하는 방식으로 잔혹한 범행 방식을 다룰 때가 있다. 사람들이 1차원적으로 궁금해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극적이고 잘 팔리는 콘텐츠가 될 수 있다.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했다.
피해자 인터뷰도 시도했으나 실패하기도 했다고?
고나무 : 인터뷰 직전까지 갔는데 거절당했다. 그들에게는 여전히 잊을 수 없는 상처다. 자식이나 부인이 아무 의미 없이, 원한 없이 떠났으니까. 예를 들어 1억을 빌렸는데 갚지 않아서 살인을 당한 게 드라마 <수사반장> 시절의 인과관계가 있는 범죄였다면, 이 책에 나온 범죄들은 이유가 없다. 피해자 가족에게는 마치 재난 같은 거다.
두 사람에게는 늘 ‘왜 공감 능력을 상실한 인간이 태어났을까’라는 질문이 있었다. 책을 집필하면서 조금이라도 해소된 부분이 있나.
권일용 : ‘왜 범죄자가 되었느냐’보다는 같은 시대와 상황을 교감하면서 누구는 왜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가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만난 범죄자들의 특징을 생각해 보면 사회로부터 고립된 사람들이었다. 주변에 사람이 없었다. 똑같이 힘들고 어려운 일을 겪은 사람 중에서도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사람들은 왜 저지르지 않는가를 보면 주변에 자신의 고민을 듣고 지지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달랐다. 범죄 예방은 문단속을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서로 고립되지 않도록 국가적인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심리적으로나 물리적으로 고립된 사람들은 그 문제를 결국 남에게 발산하는 거다.
고나무 : 지금까지 전문가의 답변이라면, 나는 범죄자 인터뷰를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이 질문에 답할 능력은 없다. 다만 이 책을 작업한 작가로 답을 한다면, 가족의 중요성 같은 걸 느꼈다. 여기에서 가족이라는 낱말이 전통적 가족의 의미뿐만 아니라 성장 과정에서 좋은 관계 맺기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보살피고 배려해주고 존중해주는 사람이 주변에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책에는 한국에서 프로파일러가 자리 잡는 초창기에 관해 많이 다루었다. ‘아직 경찰 내부에서도 프로파일은 낯선 기법이었다’라는 문장이 많이 나온다. 현재는 어떻게 변화했는지, 앞으로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면 하는지, 바람이 있나.
권일용 : 시대가 변화함에 따라 앞으로 나올 범죄를 예습해야 한다. 프로파일러 1기가 2005년 선발되어 2006년에 첫 발령이 난다. 그로부터 12년이 지났다. 이들이 10년 동안 많이 다듬어졌다. 그중에서 훌륭한 프로파일러가 나올 것이다. 집단이 모여 있으니 미래를 대비한 연구도 더 활발하게 이루어지리라 생각한다.
고나무 : 책을 통해 없던 방식을 만들고 증명하는 과정, 낯섦을 보여주는 게 명확한 목표 중 하나였다. ‘권일용’ 혼자로 시작한 프로파일러가 현재는 서른두 명이 되었다. 이것으로 프로파일링, 프로파일러의 필요성은 증명되었다고 생각한다.
남기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지, 앞으로 계획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2권에 관한 계획을 언급하기도 했는데.
권일용 : 2권은 장난처럼 이야기한 건데, 아직은 모르겠다. 일단 어떤 거대한 바람보다는 피해자 가족들이 이 책을 통해 다시 고통을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다. 또 어려운 시대를 살고, 현재를 견디는 젊은 층들이 자기가 하고 싶고, 믿고 싶고, 가고 싶은 길에 대해 용기를 갖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나처럼 별거 아닌 사람도 이렇게 되었으니까. 피하지 말고, 자신이 소속된 곳에서 어떤 일을 더 할 수 있을지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고나무 : 당분간 작가로 글을 쓰지는 않을 것 같다. 범죄 전기작가를 발굴해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을 기획, 제작하는 기획사 대표로 활동할 예정이다. 한국 출판 시장에 미약한 실화 스토리, 논픽션, 실화 베이스의 픽션을 발굴하는 데 집중하려고 한다.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고나무, 권일용 저 | 알마
한국 최초의 프로파일러가 되고 그의 프로파일링 팀이 탄생하는 과정과, 그들이 사건 현장에서 기존의 관습과 고정관념을 딛고 수사에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하는 활약상을 그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