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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은 “그다음에 우리는 어떻게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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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이 세 번째 에세이다. 2010년  『홋카이도 보통 열차』 를 내고 ‘마음의 각도가 1도 바뀌’었던 오지은 작가는,  『익숙한 새벽 세 시』에서 어른이 된 자신의 형편없음을 발견하고 설렘의 반대편에 섰다. 이후 3년, ‘기쁨을 느끼는 감각이 퇴화되는’ 병을 앓으면서 유럽 기차 풍경에 관한 기사를 읽었다. 그냥 즐거워지고 싶다는 담백함이 스위스부터 이탈리아까지의 기차 여행을 결정하게 했다.


『이런 나라도 즐겁고 싶다』 는 충동적으로 떠난 유럽 기차 여행에서 즐거움을 찾아 헤맨 기록이다. ‘이런 나’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문장을 뱉고, 결코 그런 뜻은 아니라며 문장의 꼬리를 끌어모아서 자기 말을 완성한다. 화려한 직업이지만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볼지 늘 신경 쓰고 쭈그러든다. 구석에 파묻혀 있는 걸 좋아하면서 또한 여행을 좋아한다. 앞과 뒤가 맞지 않는 사람이지만 그래도 즐거울 수는 있다.


자기 검열의 과정을 거친 1981년생 가수는 아직 회색 대륙에 있다. 앞으로도 상황이 바뀌리라는 낙관과 희망은 거의 없다. 다만 나아지리라는 보장이 없는 21세기의 사람들도 즐겁긴 해야 한다고,『이런 나라도 즐겁고 싶다』를 읽는 사람도 작은 즐거움을 찾았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커다란 산맥을 보는 여행이 있으면
작은 촛대를 보는 여행도 있다.
- 14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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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면 위로 뻐끔거리는 행위


‘책읽아웃’에 출연해서 글이 안 써진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어요. 『이런 나라도 즐겁고 싶다』를 쓰던 때였죠? 처음 마감은 작년 5월 즈음이라고 들었었는데요.

 

편집부에서 3개월 주면 쓸 거라고 생각했는데, 저는 항상 1년 이상 걸리는 사람인가 봐요. 이제는 항상 무슨 일이든 1년 이상 걸린다는 걸 인지하고 사람들과 이야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나날이 새로 깨닫지 않나요? 전부터 알고 있지만 늘 후회를 하죠.


어른이 된다는 게 얼마나 기대에 어긋나는 일인가요. 또 새삼 자신을 이렇게 알지 못하고요.


첫 장과 프롤로그만 6개월 넘게 쓰셨다고요.


구성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그런 걸까요? 음악할 때도 첫 곡의 편곡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거든요. 첫 번째 곡이 나오고 나서야 다음 곡이 생각나서요. 책도 비슷한 것 같아요. 초반에 톤이 정해지면 할 말이 정해지기도 하고, 무슨 톤으로 말할지가 늘 어려워요.


여행 이후 1년을 묵혀놓고 쓰게 됐는데, 글을 쓰면서 그 당시 감정과 느끼는 게 달라졌나요?


재해석이 많이 들어갔을 것 같아요. 여행 당시 했던 메모를 꺼내서 무엇이 글이 될 만하고 무엇이 자격이 없는지 따지는 데 오래 걸렸어요. 그 과정에서 어떤 기억은 증폭되고 어떤 기억은 소모됐어요. 삭제한 부분이 많고요.


『홋카이도 보통 열차』 와 비교하면 확실히 글밥이 많이 줄어들었어요.


그 책이 바로 자신의 감정에 취해서 흘러넘치는 감정을 주워 담으며 낸 책이에요. 그래서 아마 다시는 그런 책을 못 낼 거예요. 어떤 의미로는 청춘의 책이고요. 이번 책은 나이가 들수록 쓸데없이 과묵해지는 느낌 있잖아요. 말해봐야 의미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지워진 부분이 많아요. 두 책이 다른데, 『홋카이도 보통 열차』 를 읽은 분이 나이를 먹어서 『이런 나라도 즐겁고 싶다』도 재밌게 읽어주시는 게 흥미롭더라고요.


책을 쭉 읽은 제 소감은, ‘왜 이렇게 은근히 웃기지?’ 였어요.


잘 됐네요. 제 최고의 목적이었어요. 전체적인 골자는 웃긴 내용이 아니잖아요? 저는 기본적으로 안 즐거운 사람이니까요. 씁쓸한 내용이니까 유머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지금 마시고 있는 캬라멜 마끼아또 같네요. 커피는 쓴데 캬라멜을 뿌린 느낌.


『홋카이도 보통 열차』는 말이 많고 발랄했다면  『익숙한 새벽 세 시』는 매우…

 

정색했죠, 갑자기. “사실 나는 이런 사람이었어” 하고요.


두 전작을 생각해보면 이 책의 다른 점은, 웃기려는 욕심이 보이는 거죠.


‘드립’을 많이 쳤죠? (웃음) 제 상황을 블랙코미디처럼 바라보는 걸 수도 있어요. 결국에는 다 해프닝이고 에피소드이기 때문에 그런 걸까요? 한밤중에 열쇠가 부러지고 아웃렛 가서 무소유가 다 무슨 소용이냐며 트렁크를 사는 상황을 담담하게 쓰긴 조금 그렇잖아요. 쓴웃음 나는 상황 속에서도 자제하면서 웃기고 싶었어요. 친구가 제 책 읽는다고 하면 어디서 몇 번이나 웃었냐고 확인하죠.


예전에 오지은서영호 공연을 보러 간 적이 있어요. 사실, 음악은 잘 기억나지 않고 두 분이 만담한 것만 기억나요.


제가 계속 농담했었죠? 결국에는 우울한 인간이라 그런가 봐요. 태양을 바라보며 어떻게든 공기를 마셔보려고 수면 아래에서 뻐끔거리는 인간 같아요. 안 그러면 너무 가라앉으니까요. 그 행동이 필사적으로 보이지 않으려고 자제를 하는데, 수면 위로 뻐끔거리는 건 저에게 너무나 중요한 일 같아요. 확실히 태양을 동경하기도 하고요.


여행하는 자기 자신을 관조적으로 보려는 태도가 있었어요. 이를테면 자신을 ‘동북아시아인’이라고 표현하는 거죠. 유럽 안에서는 자신이 계속 이방인 중에서도 이방인이라는 걸 인지하고 있는 태도였어요.

 

제가 중국, 일본, 한국을 되게 재밌어해요. 이탈리아는 어떻고 영국은 어떻다는 것처럼 이 동북아 3국의 공통점이 분명 있는 것 같아요. 다들 긴장을 잘 풀지 못하는 태도가 있다고 할까요? 유럽인들은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칠링’(chilling)한다면 우리는 휴식도 ‘오늘 휴식할 것’이라고 써서 오늘 어디 가서 휴식을 어떻게 하고 사진을 찍어 올릴지 고민하잖아요. 그게 동북아는 성장 집약적 인간들이어서 그렇다고 생각하거든요.


뭐라도 열심히 하잖아요. 긴장을 풀지 못하고요.


쉬는 것도 머리를 텅 비우는 게 아니고 ‘쉬기’를 목표로 하고요. 저도 분명 그런 성질이 녹아있을 거예요. 여행에서 남기는 게 있어야 한다는 강박감이 있었으니까요. 그냥 재밌고 쉬고 싶다는 게 여행의 기본인데, 저는 여행 가면 반드시 가사를 써와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어요. 조금이라도 나은 자신이 되어야 할 것 같고 인생을 정리하고 온다는 착각이라도 건지려고 했죠. 그 착각도 이제는 그만 집착하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착각의 결정체가『홋카이도 보통 열차』였다면, 그다음 이게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한 게 『익숙한 새벽 세 시』였고, 그럼 그다음에 우리는 어떻게 하지? 재밌자! 하는 게 이 책이죠.


정반합이네요? (웃음)


맞네, 정반합이었네요. 변증법적 출간. 헤겔이었군요. (웃음)

 

 

우는데 가끔 웃음이 나는 상태


책을 쓰겠다고 계약하고 여행을 가신 거잖아요. 마음을 내려놓으려야 놓을 수 없는 환경인데요.


계약을 애매하게 하고 갔어요. 여행을 갔다 와서 책으로 쓸 내용이 없을 수도 있잖아요. 보수적인 태도로 어떤 여행을 하게 될지 모르겠지만 왠지 제 감성 상태로는 쓸 말이 있을 것 같다는 모호한 말을 남기고 떠났어요. 그러고 보니 아직 계약을 안 한 책일 수도 있어요. 계약금도 다 받고 책은 나왔지만 계약한 기억이 없네요. 출판사와 신뢰 관계에 있나 봐요.


책이 나올지는 모르는 상황에서도 메모를 열심히 하셨어요.


너무 심심했어요. 혼자 여행 가면 할 게 없어서요. 앞에 있는 청년이 노래를 너무 시끄럽게 틀면 어디에라도 쓰고 싶잖아요. 계속 인터넷이 연결된 환경이었다면 트위터를 미친 듯이 했을 텐데, 인터넷이 잘 안되다 보니 열심히 메모했죠.


트위터 이야기를 하니 ‘쓰는사람’ 계정이 생각나요. 작년에 글이 너무 안 써질 무렵 계정을 만들어서 매일 얼마나 썼는지 적으셨죠.


큰 해결책이었어요. 괴로울 때 괴롭다고 생각만 하는 거랑 괴롭다고 말하는 건 다르다고 생각하거든요. 약간의 펑 트이는 느낌이 있어요. 그 느낌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많은 헛소리를 혼자 쓴다고 생각하는데, ‘쓰는사람’ 계정도 벽을 보고 이야기하는데 그 벽을 정해놓은 느낌이었어요. 벽에 대고 오늘 썼어, 못 썼어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해졌어요.


책에 실린 그림도 직접 그리셨어요.


이번 여행 때 아이패드를 가지고 간 김에 애플펜슬도 샀어요. 역시 너무 심심해서요. 노선도를 그리고 나니까 괜찮을 것 같더라고요. 음악을 할 때도 자기가 어설프게 친 피아노 연주를 들고 가서 전문 연주자에게 이 느낌대로 쳐달라고 하면 못 해요. 약간 소박할지라도 생각한 사람과 화자가 같이 착 붙는 느낌이 없어지거든요. 이 책도 훌륭하신 분이 그려주면 멋있었겠지만, 그게 어울리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가 꼬물꼬물 그린 게 훨씬 더 어울릴 거라고 생각했어요.


예전 인터뷰에서 하고 싶은 일로 유럽 기차 횡단을 꼽으신 적이 있는데, 소원을 이뤘네요.


아, 이뤘네요? 와!


충동적으로 비행기 표를 결제한 순간은 어떤 때였나요?


고립된 기분이 드는 깊은 밤이었어요. 무슨 일을 해도 즐겁지 않고 빠져나갈 구멍이 없는 것 같은 밤 있잖아요. 구글에 기차를 검색했더니 책에 소개한 론리플래닛 기사가 떴거든요. 저런 데 가면 너무 좋겠다 생각하면서 동시에 지금 갈 수도 있지 않나 생각이 든 거예요. 평소 같았으면 ‘너무 좋겠다’에서 끝났을 텐데 너무 좋다면 한번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발전한 거죠. ‘이렇게까지 좋은 거라면 이런 나라도 즐겁지 않을까, 이탈리아 가서 피자까지 먹었는데 안 즐거울 수 있을까?’


생각만 해도 즐겁네요.


그렇게 생각해 보니 이제까지는 유럽에 가더라도 현지인들이 가는 뒷골목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고 클럽에 가는 ‘현지인처럼 하는 여행’에 집착했던 거예요. 관광객의 왕도 중 왕도라는 스위스나 이탈리아는 나중에 가도 되겠지 하면서요. 오만한 생각이었죠. 나중이 어디 있어요. 그래서 대놓고 즐거워지라고 만든 코스를 즐겁게 즐기고 싶다는 생각으로 실천했어요. 정세랑 작가의 추천사에 따르면 울고 있는데 웃음이 나는 책이라고 합니다. 우는데 가끔 웃음이 나는 게 제 기본 상태라는 걸 새삼 깨달았어요.


유럽 여행은 특히 생활과 분리된 느낌이 들잖아요. 이국적인 거리에, 서양인들로 가득하고요.


계속 자신을 멀리서 붕 뜬 사람으로 바라보게 되는 것 같아요. 크로아상을 먹으면서는 이 사람들이 어떻게 부스러기를 안 떨어뜨릴 수 있는지 너무 궁금하더라고요. 사람들이 저 조그만 동북아시아인이 크로아상 먹는 꼴 보라지 하면서 저를 안 좋게 볼 것 같았고요. 저는 모두 공작새처럼 풀 메이크업을 하고 멋진 코트를 입고 다니는 밀라노 같은 환경에서 거리낌 없이 그럼에도 나는 멋지다고 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그곳의 공기가 저를 박해하는 공기면 저는 박해당하는 스타일이죠. 그래서 완전히 찌그러져 있다가 왔어요. 예전에는 그걸 경험으로 치지도 않았을 것 같아요. 하지만 지금은 찌그러져 있던 시간도 분명 여행이고, 아무것도 못 봐도 분명 여행이라고 적었다는 게 나름대로 변한 것 같아요. 많이 본 날, 적게 본 날, 아무것도 못 느낀 날도 여행이라고 생각하게 됐고요.


‘혼자 여행하는 여성을 보면 연대감이 든다’는 문장이 있었어요. 실제로 여행하면서도 혼자 여행하는 여성들을 집중해서 봤던 편인가요?


특정 성별을 비하하려는 게 아니고, 다리를 벌리고 허리를 늘어뜨린 채 자는 아저씨는 자기가 안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럴 수 있거든요. 하지만 여성은 만취하지 않는 이상 공공장소에서 그런 자세로 잠에 빠지기 힘들어요. 여행하면서 안전이 중요한 와중에도 들뜬 마음과 세상에 얕보이고 싶지 않은 복잡한 마음이 부글부글 끓는 여성을 보면 초콜릿이라도 주고 싶고 눈인사라도 하고 싶은 오지랖이 있어요.

 

최근 매체에서 작가님을 호명하면 대개 페미니즘을 주제로 이야기하게 되는 것 같아요. 페미니즘을 이야기한 후로 혼자 여행하는 여성에게 더욱 눈길이 갔을 것도 같고요.


예전에는 저와 인연이 있거나 제가 좋아하는 요소가 있다거나 하는 이유로 특정 여자들을 좋아했는데, 지금은 좋아하는 여성의 폭이 많이 넓어졌어요. 그건 페미니즘의 덕분인 것 같아요. 이전에 이런 여자, 저런 여자는 싫다고 말한 게 여성혐오의 결과일 수도 있다는 걸 알아요.


그래서 기차의 맞은편 여성에게 아름답게 웃으신다고 말하신 거예요?


아름다운 여성한테는 아름답다고 이야기하자고 결심하게 됐어요. 장점이 있을 때 우리는 그 장점을 칭찬하는 데 적응이 안 되어 있더라고요. 우리는 스스로 칭찬하는 것도 박하고 상대방에게 칭찬하는 것도 박해요. 익숙하지 않아도 남에게 칭찬하는 걸 더 많이 하자 싶어서 누가 조금이라도 예쁘고 좋다 싶으면 칭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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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인 세계에서 생존하기


뮤지션으로는 10년, 작가로서도 8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어요. 편안해진 게 있을까요?


지금 말씀하신 걸 듣고 놀랐어요. 벌써 그렇게 됐군요. 작가로서는 이번 책이 확실히 편해진 것 같아요.  『홋카이도 보통 열차』 는 누가 읽는지도 신경 안 쓰고 그냥 하고 싶은 말을 적었다면, 『익숙한 새벽 세 시』 는 첫 책인 것처럼 과연 제 책이 누군가에게 가서 읽힐지 효용을 의심했어요. 지금은 그런 의심 없이 잘 전달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드네요. 글쓴이로는 편해졌지만 글 쓰는 건 정말 어려워졌어요. 누가 짧은 추천사만 부탁해도 너무 어려워요.


음악도 그런 기분이 드나요?


음악도 점점 어려워지긴 했네요. 지금부터가 진짜 어려워질 것 같다는 예감이 있어요. 선배들 말을 들어봐도 계속 어렵기만 하지 쉬워지지 않는데요. 정말 탈출구가 없네요. 여행이나 가야겠어요. (웃음)


자아를 써서 글을 쓰고 음악을 만드는데, 고갈됐다는 느낌도 들 것 같아요.


이 책을 쓰고 나서는 다음 책을 제가 쓸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완전히 고갈됐어요. 하지만 요새 음악 하고 싶은 마음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는 게 신기해요. 아마 천천히 하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


고갈되었지만 음악을 하고 싶어지는 기분은 뭘까요.


음악과 글이 다른 뇌를 쓴다는 증거인데, 오지은서영호 팀으로 음악 한 지가 2년 반 정도 됐더라고요. 2년 정도 묵히면 글을 얼마나 썼냐와 상관없이 음악이 하고 싶어지는 것 같아요. 음악 쪽 세포가 보기에는 글로 노력한 건 아무것도 안 한 거고, 이제 슬슬 음악할 때 되지 않았냐고 물어보는 기분이에요. 신기한 건, 저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이제까지 다리 근육만 쓰고 팔 근육은 안 썼으니까 웨이트 트레이닝은 할 수 있겠다는 마음이랄까요?


이번 책은 ‘마음이 희미해진 사람들’이, 『익숙한 새벽 세 시』는 ‘자신이 꿈꿔온 어른의 모습과 다르다는 사실에 당황하는 사람들’이 읽어줬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둘이 비슷하면서도 다를 것 같아요.


생각했던 어른이 되지 못해 당황했던 사람들의 다음 단계가 희미한 마음 아닐까요. 하나마나한 말 안 하게 되고, 예전에 재밌다고 끓어올랐던 것에 반응하지 않게 되고요. 어른이 어떤 개념이라고 잘라 이야기하긴 그렇지만 우리는 이미 어른이 되어버렸고, 세계가 회색인 것도 알게 된 상태에서 어떻게 생존해야 하는지가 제 화두예요. 그런 사람들이 제가 즐거워지려고 했던 기록을 읽고 본인만의 즐거운 방법을 찾았으면 했어요.


‘이대로 괜찮아. 뭐 별수 없지~’라는 마음으로 썼다고 하셨는데, 여전히 별수가 없어요.


별수 없는 게 21세기의 우리들인 것 같아요. 20세기의 우리가 마이클 잭슨이 문워크 하고 인간이 달에 가면서 새로운 가능성에 흥분해 있던 시기였다면, 21세기는 달은 계속 멀리 있고 마이클 잭슨도 죽었고, 다들 종말을 알고 있는 기운 빠진 상태로 살고 있다는 느낌이에요. 그래도 즐겁긴 해야 하잖아요. 즐거울 방법을 모색하고 있는 것 같아요.

 

방법은 뭘까요, 계속 여행을 해야 할까요?


분명 제가 모르는 게 아직도 있을 것 같아요. 스위스에 가는 게 재미있다는 걸 이제야 안 것처럼, 남들은 이미 알고 있는데 늦되게 배우는 게 있을 거예요. 이를테면 흑당이를 키우는 즐거움처럼 전혀 모르던 즐거움이요. 그래서 예전만큼 무턱대고 허무하진 않다는 생각이 들어요.


최근 입양한 강아지 이름이 흑당이죠?


네, 흑당이는 버려진 강아지였어요. 개를 입양하고 싶어서 각종 입양 관련 카페를 다 돌아다니다 동네 동물병원에 갔는데, 인터넷에는 없었던 까맣고 조그만, 다른 개들과 다르게 기운도 하나도 없고 모던한 아기 강아지를 봤어요. 완전히 마음을 뺏겨서 데리고 왔죠. 그때는 모던 락이었는데…. 지금은 완전 펑크락입니다. 인형은 하루 만에 박살 내는 파괴 왕이에요. “너무 사랑해서 박살 낼게!” (웃음)


개를 키우는 일이 힘들기도 하지만, 정신건강에도 도움이 되잖아요.


문을 열고 들어오면 사진이나 인형이 아닌 귀여운 생명체가 나를 바라본다는 게 막연하게 상상한 것과는 아주 달라요. 물론 사고도 많이 치지만 이 아이가 가만히 저를 바라보고 있으면 생명이 소통하는 느낌이 확실히 있는 것 같아요. 따끈하고 이상한 일이에요.


『두 개의 목소리』  인터뷰에서 기혼 여성으로 출산과 육아를 고민한다는 이야기를 읽었어요. 흑당이는 그 고민의 결과물일까요?


흑당이는 별개라고 생각해요. 그 고민은 아직도 하고 있어요. 아이를 갖고 싶어도 가지지 못하는 나이라는 것도 세상에는 있으니까요. 그전까지는 계속 고민하게 될 것 같아요. 인간이 한 명 생기는 게 너무 큰 일인 것 같아서 고민만 계속하고 있네요.


개, 특히 어린 강아지를 키우는 일은 육아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해요.


그렇더라고요. 쥐면 꺼질까 불면 날아갈까 귀여움은 하나도 못 즐기고 키우느라 바빴어요. 사진으로 보면 뒤늦게서야 귀여운데 그때는 정신이 없어서요. 이제는 마음 편하게 귀엽네요. 어떤 의미로 크고 못나졌는데, 지금 덩치의 흑당이가 더 좋아요.


에필로그에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이야기를 쓰셨어요. 우울증이 책을 쓰는 중요한 기저가 되었다는 생각도 들고요.


우울증이 없었다면 전혀 다른 내용이 나왔겠죠. ‘오지은의 낄낄 하하 유럽 유람기’가 되었으려나요. 농담만 하다가 책으로 안 만들었을 수도 있고요. 결국 병이 저를 창작시키는 것도 있는 것 같아요. 요즘 최대의 고민은 책을 잘 읽을 수 없다는 거예요. 너무 좋아하는 일인데 못한다니 괴롭죠. 글을 쓰면 쓸수록 못 읽게 되는 것 같아요. 생각을 너무 많이 하게 되는 걸 수도 있고요.


「인생론」의 가사가 떠오르네요. ‘나로 태어났으니까 나로 살아가야만 해 / 자학에 사용하는 에너지를 절약합시다’.


누가 저보고 절망적인 세상에 사는 긍정주의자라고 말한 적이 있어요. 긍정적인 세상에서 절망적인 사람이 아니라요. 나 자신은 엉망이고 세상은 절망이지만 그냥 살자는 부류의 인간인가 봐요.


이 책은 어떤 책이 되길 바랐나요?


그냥 재미있게 읽히는 책이 되길 바랐어요. 마음에 남는 글이라든지 효용이 있는 글을 쓰는 방식으로 에세이 시장이 발달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외국에는 그냥 읽어서 재미있는 산문이 많잖아요. 제 목표도 그런 산문을 쓰는 거였어요. 목표를 달성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에세이 시장이 커졌으면 좋겠어요. 밤에 읽어도 마음이 일렁이지 않는, 좋은 의미로 무색무취인 글, 읽었을 때 재미있고 깔끔하게 읽히는 글이요. 이렇게 이야기하고 보니, 이 책은 그것보다는 약간 더 찐득하네요.

 

 


 

 


 

 

이런 나라도 즐겁고 싶다오지은 저 | 이봄
오지은 작가는 인생의 아이러니를 담백하게 받아들이려 노력하는 여행자다. 우리 삶이 가진 두 개의 모습, 그래서 발생하는 삶의 아이러니. 그 모두를 보여주기 위한 방법으로서의 여행이 오지은의 여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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