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미가 출연한 <수미네 반찬>은 ‘반찬’에 집중한 요리 프로그램이다. 욕쟁이 할매, 소녀 감성, 밥 잘 챙겨주는 손 큰 어머니 등 다양한 이미지를 지닌 김수미는 이 프로그램에서 계량컵이나 수저 대신 “이 정도” “요만치” “는 둥 만 둥” 요리를 한다. 최현석, 미카엘 아쉬미노프, 여경래 등 유명한 셰프들이 쩔쩔매면서 김수미의 요리를 배우고, 아이디어를 얻어 새로운 요리를 창작하면서 정성 가득한 엄마의 손맛을 재현하고자 했다.
TV 화면에 맛깔스러운 음식이 잡히면 리모컨이 멈추는 것과는 다르게, TV 밖 사람들은 점점 요리하지 않는다. 퇴근 후 장보기와 뒷정리 등을 생각하면 힘들고 피곤하다. 특히 한식은 일품요리보다는 반찬 여러 가지를 차려 먹는 방식이어서 더 엄두를 못 낸다. 한식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수미네 반찬>에 소개된 레시피가 그대로 책으로 담긴 『수미네 반찬』은 ‘집 나간 입맛’을 다시 집 안으로 끌어오려는 시도였다. 상추 무침, 코다리 조림, 간장게장 등 책에 실린 레시피는 누군가 나를 위해 해줬던 집밥의 기억을 불러일으킨다. 요리책으로 내기에 소박해 보이는 레시피지만, 김수미의 어릴 적 기억과 함께 실려 진심의 맛을 더했다.
인터뷰하러 간 곳에서는 <수미네 반찬> 녹화가 한창이었다. 긴 시간 녹화를 끝내고 대기실에서 만난 김수미는 정성과 마음이라는 단어를 여러 번 말했다. “배우인데 정작 연기는 하지 않고 예능 프로그램에 목숨을 걸”(12쪽)었던 이유도, 결국에는 정성껏 만든 음식을 누군가 맛있게 먹어주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한국 음식을 세계에 알리고 싶다
<수미네 반찬>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문태준 PD가 먼저 연락이 와서 반찬을 주제로 요리 프로그램을 하고 싶다고 했어요. 점점 집 반찬이 없어지는 게 아쉽다고 하더라고요. 저도 옛날 우리 할머니, 엄마가 해주던 반찬이 없어지는 게 아쉬웠거든요. 코드가 딱 맞아서 한 달 만에 프로그램을 시작했어요. 런칭하기까지 이렇게 빨리 된 프로그램은 없었다고 하더라고요. 전 세계를 돌아보면 일본은 스시가 있고 일본 음식점이 있어요. 중국 음식점도 곳곳에 있고요. 하지만 우리나라는 경제 순위로 그렇게 낮은 나라도 아닌데 음식은 꼴등이에요. 그것 때문에 제작발표회 할 때부터 한국 음식을 세계에 알리고 싶다고 말했는데, PD님하고도 모든 게 잘 맞았어요. 그래서 신나게 하고 있어요.
셰프들과 같이 작업하는 데 거부감은 없었나요?
벌써 미카엘도 불가리아 음식에 한식 재료를 넣고 있어요. 굳이 양식하는 셰프가 양식 요리에서도 김치 한 쪽을 넣는 게 좋았어요. 이렇게 슬슬 변화하면서 한국 음식도 알리면 좋죠. 특히 외국에 있는, 한국을 떠난 지 오래된 교포들은 이 방송을 울면서 본다고 해요. 자기 할머니, 엄마가 어렸을 때 해줬던 음식을 제가 방송에서 만드니까요.
박대 같은 것들이겠죠?
박대나 풀치 같은 거요. 그 음식을 하는 걸 보면서 죽은 줄만 알았던 잃어버린 친척을 만난 기분이라고 쓴 편지를 받은 적도 있어요.
셰프의 요리 방식과 김수미의 요리 방식이 달랐을 것 같아요.
원래 한식은 계량이 없어요. 한약재만 정확하게 계량하고, 왕실 음식에도 계량이 없었대요. 기미상궁이 간을 보고 왕한테 올렸죠. 우리 엄마도 그랬고 할머니도 그랬어요. 그러니까 저도 계량을 해서 요리를 하라면 못 해요. ‘이만큼, 저만큼, 자글자글, 는둥만둥’이 우리 엄마들이 쓰는 방식이에요. 처음에는 셰프들도 제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다가 이제는 익숙해서 알아듣더라고요. 사실 감이라는 게 결국 엄마 손맛이거든요.
반대로 셰프가 요리하는 걸 보면서 새로 배운 점도 있나요?
많아요. 오늘도 오리고기 요리하는 방법을 배웠어요. 또 놀란 게, 셰프님들이 자기 업계에서는 최고인데 무말랭이 한 번 못 무쳐봤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돌이켜 보면 저도 한식밖에 못하니까요. 양식 재료 주고 요리하라고 하면 땀 뻘뻘 흘리죠. 다른 드라마나 영화 제쳐놓고 이 프로그램을 열심히 하는 이유도 그거예요. 한 번도 김치를 안 담가 본 사람이 해보니까 맛있더라, 왜 반찬을 해서 남한테 주는지 그 기분을 알겠다고 하는 말을 들어요. 계속 이렇게 음식을 알리고 하지 않으면 우리의 것을 잃어버리게 돼요.
‘엄니’ 생각하면서 만든 요리
어머니께서 해주셨던 음식이 많이 나와요. 하지만 어머니에게 직접 배운 적은 한 번도 없다고요. 기억만으로 요리법을 살려내는 데 어려움은 없었나요?
처음에 있었죠. 처음 결혼하고 애를 낳고 나니까 너무 친정엄마가 그립더라고요. 입덧할 때는 너무 괴로웠어요. 엄마가 조물조물 해주던 겉절이랑 풀치조림 한 입만 먹으면 입덧이 가라앉을 것 같았어요. 그러다 군산에서 풀치를 주문해다 만들어봤어요. 먹어만 봤지 요리하는 걸 본 일이 없으니 기억을 더듬어서 조물조물 하다 한두 번은 실패했어요. 풀치가 너무 축축했죠. 알고 보니 반건조 풀치로 만들어야 했어요. 기억을 더듬어 보니 고추도 들어갔던 것 같아요. 그렇게 해서 아이들을 주니까 너무 맛있다는 거예요. 그게 재밌어서 또 해보고 몇십 년을 하다 보니 나름대로 응용을 하기도 했어요. 그때 우리 엄마는 비싸서 안 넣었던 전복이나 대하를 아귀찜에 넣기도 하고요.
한 번에 완성한 게 아니라 혀로 기억한 걸 맞춰가는 단계였군요.
그렇죠. ‘이거였어, 이 맛이었어!’ 할 때의 그 기쁨은 뭘로 말할 수가 없어요.
혹시 시도했지만 어머니의 손맛을 재현할 수 없었던 음식도 있나요?
놀랍게도 한 번도 실패한 게 없어요. 그러니까 제가 우리 엄마 손맛을 닮았나 봐요. (웃음) 그리고 제가 부엌에만 들어가면 눈동자가 살고 힘이 나요.
음식이랑 연관된 추억도 같이 책에 실렸어요. 다른 추억을 하나 말씀해 주시겠어요?
시골에 가서 늙은 호박을 보면 또 엄마 생각이 나요. 시골 농촌에는 호박이 지천에 열렸잖아요. 그러면 아침에 ‘막내야 호박 하나 따와라’ 하고 석석 썰어서 금방 음식을 만들어 주시고는 했어요. <수미네 반찬> 세트 지을 때도 감독에게 평상을 해달라고 했어요. 제가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 다섯 식구가 평상에 둘러앉아 밥 먹던 시절이에요. 우리 엄마는 부엌을 왔다 갔다 하면서 반찬 하나라도 자식 더 먹이려고 하고, 우리는 그걸 받아서 먹고, 봄에는 집 근처의 온 천지에 꽃이 피어 있었어요. 그 유년 시절이 자꾸 그리워요. 그래서 이렇게 세트를 지어 달라고 했어요.
책에 실린 요리 중 하나를 꼽아주신다면요?
풀치 조림이랑 아귀찜. 김치요. 김칫거리만 보면 담고 싶어서 힘이 솟아요.
천성 ‘엄마’ 김수미
김수미의 요리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간장게장이 떠올라요. 나중에 품질 때문에 비판을 받기도 하셨었죠.
그 오해는 풀어야겠어요. 간장게장을 시작했던 이유도, 우리 집에 온 모든 손님이 간장게장이 맛있다고 했어요. 농담처럼 이걸 팔면 마음 놓고 사가겠다고 말한 게 씨가 되어서 사업을 시작했죠. 하지만 국산 게를 수억 원어치 사서 냉동고에 넣었는데 누가 그걸 다른 게로 바꿔치기했어요. 나중에 게장을 담았는데 열어보니까 품질이 안 나와서 한 달 만에 판매를 중단했어요. 그러던 와중에 다른 사람이 제 이름으로 팔았어요. 그때 팔았던 게 품질이 안 좋았죠. 그런 상황을 어떻게 일일이 해명하고 다닐 수 있겠어요. 제가 이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게 먹을 거로 장난치는 거예요. 그래서 김치 사업할 때도 행여 고춧가루를 바꿔치기할까 봐 버무리는 날 공장 가서 직접 버무렸어요. 그런 일을 겪고 나서는 웬만해서 사업은 잘 안 하려고 해요.
그런 사건을 겪고 나면 다른 사람 앞에 요리로 나선다는 부담감도 있을 것 같아요.
맞죠. 하지만 사실 김치와 게장 사업은 주변 사람이 원해서 시작한 거였어요.
김수미의 요리를 떠올린다면 가장 먼저 무엇이 떠오르게 될까요?
정성이요. 왜냐하면 우리가 어딜 가서 콩나물 하나를 먹더라도, 엄마가 무쳐주는 것과 종업원의 입장에서 무치는 건 천지 차이거든요. 손에는 기라는 게 있어요. 그게 정성이거든요. 조물조물하는 동안 자식을 향한 사랑이 다 들어가는 거예요. 저도 어느 식당에 가서 일한다면 음식을 무치면서 제 자식 주는 심정을 할까요? 물론 그런 장인이 많아요. 하지만 집에서 두부 한 모를 썰더라도 엄마의 마음이 다 들어가 있어요. 손으로 만지는 게 결국 사람의 체온이잖아요. 눈에 안 보여도 기가 다 들어가 있어요. 그래서 집밥이 중요한 거예요.
‘배우 김수미’에게는 여러 가지 이미지가 있는데, 인간 김수미에게 가장 맞는 이미지는 뭘까요?
천상 엄마일 거예요. 욕쟁이 이미지는 영화나 드라마 역할이었지 평소 그렇게 욕하고 다니진 않아요. 한동안 욕하는 드라마를 너무 많이 찍어서 제가 세고 무서운 사람인 줄 알아요. 하지만 저는 집에 있으면 주방에 있는 시간이 더 많고, 천상 꽃 좋아하고 음식 해서 사람들 먹이는 풍류를 좋아하는 천상 엄마예요.
책방을 운영하신 적도 있어요.
신문을 보다 OECD 국가 중에 주부 독서율이 최하위라는 말에 신문을 놓자마자 상가에다가 서점을 만들었어요. 그때 <전원일기>의 일용엄니가 굉장히 유명할 때라, 김수미보다 일용엄니가 더 유명해서 ‘일용엄니 책방’이라는 이름으로 한 3년 운영했죠.
소설과 에세이집도 내셨죠?
원래 문학을 하고 싶었거든요. 지금도 항상 한쪽 가슴은 문학에 대한 열정으로 허기져 있어요. 침대 머리에는 항상 시집을 놓고요. 어떤 날은 한 줄의 시로 하루를 살아요.
앞으로도 책을 낼 계획이 있나요?
요리책으로는 ‘수미네 반찬’ 2탄이 나올 가능성이 있어요. 그 외에는 ‘안녕히 계세요’라는 이름으로 마지막 에세이이자 유언장을 하나 내려고요. 지금 쓰고 있어요. 일 년 정도 뒤에 나오지 않을까요?
독자들에게 마지막으로 한 마디 부탁합니다.
지금은 1인 가구가 많아서, 나 혼자 내 입에 넣자고 음식 하는 것도 어찌 보면 초라할 거예요. 그러나 내가 나를 사랑해야죠. 내가 먹더라도 주말에 책을 보고 멋있게 만들어서 혼자 맛있게 먹는 게 나를 사랑하는 태도거든요. 그리고 음식을 했을 때 맛있게 된 기쁨을 느껴보라고 하고 싶어요. 지방에서 도시로 올라온 사람들은 집에서 부모님이 보내주는 김치도 한계가 있어요. 커피는 7천 원짜리 먹으면서 김밥 몇 개로 끼니를 때우는 건 잘못된 거라고 생각해요. 이 음식문화를 바꿔주고 싶어요.
수미네 반찬김수미, 최현석, 여경래, 미카엘 아쉬미노프 저 | 성안당
조금은 퉁명스럽고, 불친절하기 이를 데 없는 레시피지만 이상하게도 김수미라는 엄마가 하는 요리 속에는 그 정서적 공감대가 들어 있다.